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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廣安)시는 중국 쓰촨(四川)성 동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충칭(重慶)시의 위세에 기 한번 펴지 못하는 처지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고향이라는 말만 나오면 어깨에 힘을 준다. 최근 이 작은 소도시의 부서기가 중국에서 덩샤오핑 못지않은 ‘유명인’이 됐다. 다만 명성이 아닌 오명이라는 점이 문제다.

 

오명의 시작은 지난 11일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청두의 한 유치원 교사와 학부모 간 단톡방 대화가 공개되면서부터다. 대화 내용은 그야말로 ‘갑질’의 전형이다. 교사는 단톡방에서 옌(嚴)모 원생이 잘못을 저질러 혼자 앉아 있게 하는 벌을 줬다고 알렸다. 그러자 옌 원생 엄마는 “당장 유치원 전체 원생들과 교사들이 있는 앞에서 우리 딸에게 공개 사과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장에게 당신이 옌 부서기 딸을 어떻게 대했는지 다 이르겠다”고 흥분했다. 원장과 직접 전화하는 사이라며 친분을 과시했다. 다른 학부모가 옌 원생의 엄마에게 진정하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 엄마는 단톡방에 유치원 측에서 교사를 ‘처리’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이 갑질 단톡이 공개되자 중국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옌 원생의 엄마가 교사에게 무리한 사과를 요구하며 공개 망신을 준 것에도 흥분했지만, 유치원 측이 고위 공직자 부인의 말만 듣고 정당한 절차 없이 교사를 처벌했다는 데 훨씬 더 분노했다. 갑질에 흥분한 중국 누리꾼들은 ‘옌 부서기’라는 단어만으로 광안시 부서기로 재직 중인 옌춘펑(嚴春風)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옌 부서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쓰촨성 기율위는 14일부터 이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나흘 후인 18일 옌 부서기가 중대한 규율 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중국 누리꾼 수사대가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잡아낸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난징(南京)시 장닝(江寧)구의 부동산 국장이었던 저우주겅은 2009년 공식석상에서 손목에 차고 나타난 명품시계가 문제가 됐다. 결국 뇌물수수 혐의까지 드러나 사법처리됐다. 산시(陝西)성에서는 양다차이 안전감독국 국장이 교통사고 참사현장에서 웃는가 하면 명품시계를 바꿔 차고 다니는 장면이 누리꾼들에게 공분을 사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미소국장’이라는 오명을 얻은 양다차이는 결국 수뢰 혐의로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옌 부서기 갑질 사건 해결에는 중국 ‘을’들의 단결과 팩트체크가 큰 힘이 됐다.

 

유치원 측에서는 교사를 쫓아낸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갑질에 흥분한 다른 학부모는 교사가 퇴출당한 사실을 꼼꼼하게 증언했다. 권력을 부당하게 휘두른 갑질에 흥분한 ‘을’들은 소도시의 부서기 월급으로는 고가의 유치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측과 주장만 내세운 것이 아니라 그의 비리를 거미줄 치듯 촘촘히 추적했다. 옌 부서기가 소유한 호화 주택, 고급 자동차, 공직 외에 따로 운영하고 있던 회사 상황까지 파헤치며 옌 부서기를 압박했다. 익명의 제보자가 옌 부서기가 내부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이 조사에서 갑질을 한 ‘옌모 원생 엄마’와는 5년 전 이혼했다고 밝혔지만 이웃 주민들은 옌 부서기와 계속 왕래가 있다면서 증거 사진을 올렸다. 옌 부서기는 조사에서는 1남1녀를 두고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또 다른 3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누리꾼 증언으로 밝혀졌다.

 

당사자가 아무리 거짓 해명으로 도망가려고 해도 수많은 ‘을’들의 힘까지 넘어설 수 없었다. 갑질이 강해질수록 ‘을’들은 더 정확해져야 한다. 옌 부서기와 관련한 ‘을’들의 제보는 정확했고, 이 덕분에 옌 부서기에게 갑의 지위를 뺏는 데는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갑질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을’들이 적극적으로 뭉쳐야 한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마찬가지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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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