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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와 미국 방문은 최근에 가장 주목을 끈 아메리카 관련 뉴스라고 할 만하다. 순방 일정에 양국을 함께 포함했다는 것은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을 이루는 데 교황이 기여한 바를 공식화하는 동시에 가톨릭교회가 여러 지역에서 상이한 정치적·문화적 도전에 직면함에도 복음의 정신은 동일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상징적 기획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교황은 양국에서 모두 26차례의 연설을 통해 그동안의 명성에 걸맞은 소신 발언을 남겼다. 특히 가톨릭 영세자가 8000만명에 이르고 대법원 판사 9명 중 6명이 가톨릭 신자인 미국에서 쿠바와의 관계 개선, 기후 변화, 불평등과의 전쟁, 민감한 사회적 쟁점 등에 관해 교황은 보수주의자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지 모를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

쿠바 아바나의 혁명광장에서 교황은 쿠바인들이 “타국인들처럼 아픔이 있지만 다시 일어나 희망 속에서 계속 걷는 법을 안다”고 격려하고 “봉사는 이념과 관련된 적이 없다. 우리는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 때문”이라고 강론했다. 또 미국 동부의 대표적인 세 도시에서 교황은 노숙인 시설과 교도소를 방문하고 이주민 가족들을 만나는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는 행보를 이어갔다.

교황을 지칭하는 단어 pontiff는 라틴어 pontifex에서 유래했고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고대 로마에서 성스러운 티베르 강 위에 다리를 놓는 중책을 맡은 대신관(大神官)에게 주어진 칭호였으나 세월이 흘러 교황을 예우하는 경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번 순방에서도 교황은 밖으로 나가 빈곤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며 자기 것을 나눠야 하는 신자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름에 어울리는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듯 보인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에 이어 이번 순방에 즈음해 콜롬비아 평화 협상의 진전에도 교황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명곡 ‘험한 풍랑 위에 우뚝 선 다리처럼’ 평화의 매개자, 화해의 조정자 역할에 주력하면서 오늘날 기독교인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숙고하게 만드는 교황의 활동을 접하면서 다리를 놓는다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오랫동안 가톨릭교를 비롯한 기독교의 정체는 낙태 반대, 혼인이나 동성 관계에 대한 보수적 태도의 견지와 연계돼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들의 초점이 그런 신조의 엄격한 고수에 앞서 빈민, 이주민, 난민, 박해받는 소수자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로 옮겨지길 바라는 듯하다.

반면에 엉뚱하고 불필요한 다리 놓기의 사례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 하면 부정 청탁의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르고, 예전에 들었던 멕시코인들의 농담 역시 웃기지만 슬픈 얘기를 담고 있다. 한때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공약 가운데 ‘다리를 놓겠다’는 게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강이 없으니 다리가 필요 없다는 참모의 조언에 이렇게 대꾸하는 입후보자까지 있었단다. “그렇다면 물길을 파서라도 다리를 놓자!” 그뿐 아니라 누군가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편리함과 안전을 도모하기보다 지배와 통제 욕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다리를 놓는 곳까지 있나 보다.

굳이 비유하자면, 역사교과서 집필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에 견줄 수 있겠다. 전문가들의 거듭된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검사 기준에 통과해 제 기능을 발휘해온 기존의 다리들을 없애고 자기 방식대로 자기 취향에 맞는 다리 하나만을 신축하겠다는 권력자의 불쾌한 고집과 시간을 거스르는 허망한 독재적 발상이 이미 충분한 한국 사회의 분열을 극대화하고 있다.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심고자 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나 존경의 표시로 그의 이름을 빌린 현 교황의 복음적 권고와 얼마나 거리가 먼지 신물이 날 뿐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 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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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