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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매일 북한과 미국의 전쟁 가능성을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괌 포위사격 발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경고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온라인에서는 핵전쟁 대피시설과 비상식량 등 전쟁 대비 물품들의 판매가 급증했다.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미국 언론들의 호들갑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사태 두둔 발언 이후 북한 뉴스는 찾기 어려워졌고 화제는 미국 사회의 현존하는 병폐인 인종주의 문제로 급반전됐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 시민들의 반응이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기자는 최근 이번 사태를 회고하는 기사에서 “북핵 위기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마치 두 개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전쟁 위기를 전하는 긴박한 뉴스에 비해 서울 시민들의 반응은 너무나 차분하고 심지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20년 넘게 반복되는 북핵 위기를 한반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0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내셔널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베드민스터_A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위기감은 흙탕물 가라앉듯이 진정되고 있지만 물밑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위기는 이제 본격화됐다는 게 맞는 말이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의 말처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는 “게임 체인저”였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북핵을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임박한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에 대한 속내를 상당 부분 드러냈다. 한국 입장에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이다.

 

2년 후라고 가정해보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터득하고 활용 가능한 ICBM을 모처에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완성까지 2년으로 예상했다가 1년 앞당겼다고 하니 내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한·미는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정부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닐지 모른다.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할 것이고 각종 군사적 옵션이 거론될 것이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거기(한국)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을 폈다는 공화당 의원의 전언은 새삼 공포스럽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미 공격 징후가 없어도 예방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는 지난 20일 “2002년 이라크전 이후 백악관에서 적국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이렇게 많은 토론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선택도 있다. 북한을 파키스탄처럼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미 북핵을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DNI 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이제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정하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전술핵 도입, 핵개발 등 핵으로 핵을 대응하자는 요구도 이어질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으로 며칠 잠잠하던 한반도는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미국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 북핵 위기가 몇 번 더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이냐 북핵 인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20년을 넘게 끌어온 북핵 외교에서 한·미의 완패를 의미한다. 서울 시민들은 무관심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외교관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