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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독일 총선 결과가 나온 후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SPD) 대표는 ‘씁쓸한 승리’를 거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향해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슐츠가 메르켈 총리를 비웃을 처지는 아니다. 이번 총선의 최대 패자는 다름 아닌 슐츠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지금 존폐 기로에 놓였다. 사민당은 한때 굳건한 ‘노동자의 정당’이었다. 진보적 성향의 청년층과 중산층의 지지까지 더해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가 이끌던 1960~1980년대는 4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신승한 2002년에도 38.5%로 연정을 끌고 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20.5%로 주저앉아 1933년 이래 최악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사민당의 텃밭이던 구동독지역, 북부 함부르크, 브레멘과 서부 루르의 산업 지역 등에서 대거 지지층을 잃은 것이 컸다. 독일 주간 디자이트는 “사민당이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기댈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썼다. 여론조사기관인 인프라테스트디맵과 선거연구그룹(FGW)의 분석을 보자. 노동자 계층의 사민당 지지율은 1998년 49%에서 올해 25%로 반토막이 났다. 4년 전 총선과 비교해보면 사민당 지지자 중 여전히 사민당을 지지한 사람은 절반(53%)밖에 안된다. 사민당을 지지했던 이들의 9.2%는 이번에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고, 이념좌표에서 매우 오른쪽에 있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자유민주당에로 4.5%, 4.9%씩, 사민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좌파당으로 6.2%가 이탈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뒤에 ‘앵그리 화이트’가 있었다면 AfD의 약진 뒤에는 ‘성난 오시(Ossi)’들이 있었다. 오시는 구동독지역 사람을 말한다. AfD는 구동독지역에서 전국 지지율의 2배 가까운 22.5%를 득표했다. 인구개발베를린연구소의 라이너 클링홀츠는 디벨트에 “좌절한 사람들이 AfD를 시위용 정당으로 선택했다”며 “이들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일자리가 없어진 변화의 루저”라고 말했다. ‘오시’들은 실업자 사회보장제도 개혁과 밀려드는 난민으로 ‘뭔가를 빼앗겼다’고 느꼈다.

 

사민당은 8년 대연정 속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이번 총선 캠페인에서 뒤늦게 ‘사회정의’를 외쳤지만 유권자의 80%가 사민당이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해 뭘 하려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슐츠는 메르켈의 연정 제안을 거부하고 야당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야당이 된다고 활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독일 사민당의 모습은 유럽 전통 좌파의 위기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은 올해 대선에서 6%의 지지율로 결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6월 총선에서는 284석의 거대 정당에서 29석짜리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다. 영국 노동당은 ‘제3의 길’을 주창한 토니 블레어 이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러미 코빈을 중심으로 한 강경좌파가 당을 이끌고 있지만 재집권은 물음표다. 스페인의 사회당도 극좌 포데모스와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에게 지지기반을 내줬다.

 

이들은 하나같이 노동의 변화를 읽지 못하거나 외면했다.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거대 노조로 결속돼 있지도 않고 삶의 수준과 노동의 조건도 제각각 달라졌다. 역설적이게도 1990~2000년대 좌파 정당들이 선택한 ‘뉴레프트’가 이렇게 파편화되고 분절된 노동을 도왔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이 그랬고 슈뢰더가 밀어붙인 ‘개혁 2010’이 그랬다.

 

그 결과 이제 민심은 ‘계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일련의 선거를 통해 왜 좌파 정당들이 우리의 문제를 더 이상 대변해주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다. 독일 총선은 노동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좌파 정당들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

 

<이인숙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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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