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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사이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운 건 음모요, 가장 크게 잃어버린 건 신임이다.” 10년 후 홍콩의 미래를 가상으로 그려낸 2015년의 홍콩 영화 <10년>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영화는 미래를 너무 암울하게 묘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번 홍콩 행정수반 선거 과정은 내내 이 대사를 연상시켰다. 

 

오래전부터 홍콩인들이 직선을 요구했던 행정수반 선거는 결국 소수 선거인단의 선거로 치러졌다. 중앙정부의 지지를 받은 후보 캐리 람이 유효표 1163표 중 777표를 얻어 당선되었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존 창은 365표에 그쳤다. 선거 직전 유세 현장에서 만난 존 창의 지지자들은 그의 당선이 곧 ‘홍콩의 승리’라며, 기적을 만들어내자고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존 창의 선거 구호는 “신임, 단결, 희망”이었다. 이 평범한 단어들이 왜 그토록 사람들을 열광시켰을까?

 

존 창은 “홍콩을 살 만한 곳으로 다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앞에서 무거운 무력감에 짓눌린 이들에게 인상 좋은 할아버지 존 창이 외치는 “다시 서로를 믿으며 희망을 갖자”는 구호는, 바로 홍콩인들이 가장 절실히 듣고 싶던 말이었다.

 

올해는 홍콩의 중국 귀속 20주년이다. 선거 직후 홍콩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이제 자유경제는 종말을 고하고 홍콩은 급속히 대륙화된다. 중국이 ‘50년 불변’을 약속한 2047년까지 갈 것도 없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식민 시절 홍콩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많은 이들은 홍콩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이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선거 다음날 정부는 행정수반 직선제를 요구한 2014년 우산혁명 주도자 등 9명을 기소하며, 모든 반대행동에 강하게 대응할 것임을 예고했다.

 

독립을 주장하는 강경파 붐이 약해진 지금, 홍콩 독립에 찬성하는지 묻는 질문에 고등학생들은 “우산혁명 때라면 찬성했겠지만 지금은 독립파가 너무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모두가 혼란스럽다. 가장 비참한 건 홍콩의 협상력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중국에 홍콩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이미 여러 면에서 홍콩은 중국 본토보다 뒤떨어지고 있다.

 

홍콩인들은 좋은 시절이 다 사라져 간다고 개탄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깊이 성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홍콩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동안 답은 분명해 보였다. 중국 본토에 없는 민주와 인권, 법치와 자유였다. 그러나 그것은 홍콩인에게조차 결코 분명하지 않다. 필자가 만난 이들은, 정말 홍콩인이 민주를 소중히 여긴다면 선거제도에 항의하지 않은 채 그저 존 창이 덜 친중적이라며 지지하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법치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면 왜 지난 2년간 법을 어기는 시위가 지지를 받았는가. 홍콩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그동안 ‘민주’와 ‘법치’라는 답으로 봉합돼 왔지만, 더 이상 그 봉합은 유효하지 않다.

 

어느 문화활동가는 말한다. “과거를 그리며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 희망이 없으면 떠나겠다는 이들 말고 여기 남아 살아갈 이들이 홍콩을 만들어갈 것이다. 순민(順民)으로 살 수 없다면 조그만 행동이라도 하며 사는 길밖에 없다.”

 

장정아 인천대중국학과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