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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2일 쿠바 아바나의 국제공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가 만났다. 두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려 천년의 적대감과 분열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상봉일 수밖에 없었다. 키릴 총대주교가 “사랑하는 형제여, 만나서 기쁩니다”라고 인사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침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두 지도자는 천년 동안 성찬의식에 동참하는 교감을 상실하고 예로부터 쌓아온 갈등 탓에 상처받고 분열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종교적 진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존중하는 평화적인 풍토, 종교 간 대화와 일치를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러시아 정교회에는 가톨릭교를 진정한 기독교로부터의 일탈로 보는 보수파가 여전히 적지 않고 많은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교황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두 지도자는 한목소리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내전과 혼란, 테러 속에서 박해받고 추방 위협에 시달리는 기독교인들을 전 세계가 보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또 파괴와 약탈로 황폐해진 교회를 염려하면서 종교적 구호를 내세워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8세기 초 비잔티움(동로마) 황제 레오 3세의 성상(聖像)숭배금지령에 로마교회가 불복함으로써 시작된 두 교회의 불화는 16세기 종교개혁에 훨씬 앞서 가톨릭, 즉 보편적 기독교의 세계를 갈라놓았다. 가톨릭이 서유럽 일대에 뿌리를 내린 데 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정교회로 발전한 동방교회는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확산되었다. 동·서 교회의 불화는 11세기 중엽에 상대방을 정죄하면서 돌이키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케룰라리오스와 교황 레오 9세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고 서로 파문을 선고하면서 1054년 대분열이 공식화된 것이었다. 더욱이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 당시 서방 기독교인들이 자행한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은 서로의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전까지 동·서 교회를 다시 합치려는 시도가 있긴 했으나 비잔티움의 루카스 노타라스 대공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의 모자를 보느니 차라리 술탄의 터번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만남을 갖고 있다 _연합뉴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까지 봉쇄와 고립에 시달린 작은 섬 쿠바가 천년 만의 상봉 현장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구세계의 오랜 분쟁과 거리가 먼 곳, 분열의 응어리가 남아 있는 로마, 이스탄불, 모스크바 등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난 두 교회의 수장은 쿠바를 남북과 동서의 교차로이자 새로운 세계의 희망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지난해 9월 쿠바에서 라울 카스트로와 회담하면서 이번 상봉의 주선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대한 쿠바인들과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라울 카스트로에게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 쿠바가 이런 길을 계속 간다면, 단합과 일치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한 달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논의, 유엔 대북 제재 결의 등을 통해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감이 높아졌다. 한반도가 휴전 상태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답답한 되돌이표 형국 속에서 제재를 개의치 않는 듯한 북쪽 권력자의 난폭한 행보나 국민을 위해 혼자만 일한다고 생각하는지 집요하게 다른 이들을 타박하기에 분주한 남쪽 권력자의 일방통행은 산뜻함이 부족한 이른 봄을 으스스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교회의 역사적 상봉처럼 따사롭고 평화로운 장면이 더딘 에움길과 같은 한반도에서도 현실로 다가오길 좀 더 끈질기게 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되돌이표 형국에 갇혀 긴장과 몰이해 속에 살도록 강요당한 우리에게 역사가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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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