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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53년 만에 쿠바에 대한 제재를 풀기로 했다. 지구상에서 미국의 적대국으로 남은 세 나라 중에 먼저 관계회복의 장을 열게 됐다. 현재 이란과 미국이 다자회담의 형태로 핵문제 해결과 더불어 국교정상화를 모색하고 있으니 그 뒤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란과 쿠바와 비교하면 북·미관계는 최악이라 북한만 홀로 남겨진 셈이다.

냉전이 붕괴된 지 20년도 지났다. 얼음은 벌써 녹아버렸어야 하는데 끈질기게도 이어왔다. 무엇보다 단절과 고립의 차가운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내온 민초들에게 고통의 시간들이 아닐 수 없다. 이 겨울을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이란의 회교정권일까? 카스트로 형제와 김씨 일가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오랜 시간 독재 권력을 휘두르며 다수 민중을 탄압해온 주범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 전체를 얼게 만드는 얼음광풍의 진원지라고 할 수는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전이 붕괴된 지금 그들은 각자가 흩어져 악착같이 버티는 조각얼음에 불과하다. 얼리는 것도, 녹이는 것도 힘을 가진 측의 선택이다. 이는 미국과 쿠바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쿠바는 끊임없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해왔지만, 미국이 얼음바람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이 마침내 이를 인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긴 세월 미국이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쿠바 정부가 자국민을 억압하는 명분을 주었을 뿐이라며, 실패한 낡은 접근방식을 버리고 쿠바와 미국 국민, 그리고 전 세계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선택했다고 고백했다.

오바마의 남은 임기 동안 그 훈풍이 북한까지 닿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이란보다 심각한 핵문제가 있고, 쿠바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인권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대중 견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스스로 몸을 녹일 생각이 없고, 한국 정부도 해빙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2년 전 북한을 향해서는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고, 안으로는 국민통합을 위한 따뜻한 보수를 지향한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그 기억의 실체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미국에 수감됐다 이날 석방된 쿠바인 헤라르도 에르난데스, 라몬 라바니노, 안토니오 게레로(왼쪽부터)를 환영하고 있다. _ AP연합


국내 정치도 온통 얼어붙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로 정당이 정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통합진보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동의하지 않지만, 사실 그들은 북한처럼 조각얼음일 뿐이다. 조각얼음을 녹이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적 관용이 답이지만 정부는 얼음을 녹일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다. 더 고립시키고 더 얼게 만든다. 행동의 결과가 아닌 생각의 다름을 선거로 심판하지 않고, 공권력으로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에 대한 침해이자 헌법과 역사의 후퇴이다. 스스로 시대착오적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의 집단적 이성 탈출이 남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쿠바 때문에, 북한 때문에 이 세계가 얼어버릴 수 있을까? 그것은 21세기 인류문명과 세계시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 말대로 ‘종북좌빨’이 존재한다 해도 그들의 시대착오적 조각얼음으로 국민 전체를 종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식민지와 전쟁, 독재를 핏빛 희생으로 극복해온 우리 민족의 역량을 모독하는 것이다.

2년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내치와 외교에서 모두 흔들리는 박근혜 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해 정국을 얼려버리는 것으로 잡은 듯하다. 비선 의혹으로 추락하는 지지율을 공안의 얼음광풍으로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시간은 흐르기에 2015년의 새해도 밝고, 봄도 오겠지만 한반도는 안팎으로 상당 기간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우울한 세밑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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