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지난주 유엔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다. 시쳇말로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였다. 먼저 나선 박 대통령의 연설은 지난 1년 반의 반복이었다. 다자정상외교의 화려한 무대에서의 데뷔는 이미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의 의미 없는 재탕으로 끝이 났다.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드레스덴 선언, DMZ 평화공원 조성, 그리고 통일대박론 등 거론하기도 숨이 가쁜 내용들이 어느 하나 실질적인 행동이 전혀 없는 구호이며 정치적 상징조작임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신뢰 프로세스가 과정이 아니라 전제조건임이 분명해짐으로써 현정부의 대북정책이 겉모습만 아주 조금 다를 뿐 전임 정부와의 차이는 찾을 수 없어졌다.

외교 제안은 상대를 인정해야 하고, 그 상대가 호응할 만한 내용을 가져야 하지만 연설의 그 어떤 부분에도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색내고, 북한이 얼마나 나쁜 정권인가를 일방적으로 강조한 것은 연설이 북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북핵 폐기 요구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강한 비판을 더한 것 역시 북한에 대한 악마화와 고립이 연설의 목적이지, 북한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의 당위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방법과 시기에서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역효과를 발휘한다. 입구도 막고 출구도 막고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결국 항복하라는 것이고, 계속되는 독일 통일 사례와의 비교는 흡수통일이 유일한 본심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역사상 그런 압박으로 항복한 국가는 없었다는 점에서 국익을 위한 실용외교에서도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거센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예상했더라면 실체 없는 외교수사에 불과함을 자인한 것이다.

이어진 오바마의 연설은 현실을 더욱 일깨워준다. 그의 연설은 작년에 이어 북한이나 한반도가 낄 자리가 없었다. 공개 참수로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IS 난제가 가진 충격과 시급성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미국의 대외정책 순위에서 한반도 문제가 차지하는 우선순위가 우리의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준 것 외에도 꼭 따져봐야 할 함의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아무리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중동과 유럽의 안정을 전제조건으로 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IS와 이란핵 문제, 그리고 우크라이나사태가 아시아로 향하는 발목을 잡는다. 이런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상당 기간 소강상태를 이룰 것이고, 한국이나 일본을 동원한 아웃소싱 위주로 가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 역시 전략적 인내 또는 무시전략이 유지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9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_ 뉴시스


이런 상황은 미국이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신뢰 프로세스가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이탈한 독자적 대북접근이 되지 않도록 상당한 견제를 해왔던 것에 비하면 한국의 운신 폭이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대북정책에 있어 마땅한 해법도 없고, 정책순위는 점점 하락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을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결단이지만, 이번 유엔 연설에서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북핵 문제, 주한미군 주둔분담금, 대일정책, 미사일방어, 원자력협정 개정, TPP 이슈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의 대미 레버리지는 없고 미국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국면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말은 한다고 하지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다지만 듣는 것이 아닌 불통의 리더십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역사와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단은 없고 정점의 현실권력만 유지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