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서 미·중의 패권경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최근 막을 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는 경제적 영향력을 놓고 벌인 한판 힘겨루기였다. 분위기는 중국이 매우 공세적인 반면, 미국은 수세적이었다. 중국은 2001년 상하이 APEC 때보다 8배나 불린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심각한 고민에 빠뜨리는 대국의 굴기를 과시했다. 구체적 결실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태자유무역지대화(FTAAP)에 대한 21개국의 지지 확보였는데, 이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강력한 대항마이자, 중국의 다양한 다자주의 전략에 대한 미국의 반대를 우회하는 방안이었다.

미국의 견제도 있었다.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에서 TPP 12개국 회담을 별도로 진행했고, 회원국 경영자 모임에서 오바마는 중국의 사이버해킹과 인권문제를 조준했다. 홈그라운드라는 점을 감안해도 중국의 도전은 예사롭지 않다. 13년 전 상하이 때만 해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위해 국제경제 표준을 준수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제 머니파워를 기반으로 아예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 질서의 준수를 거부하고 자신의 질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미·중의 패권경쟁 1라운드는 2010년을 전후로 시작되었다. 물론 지난해 6월 캘리포니아에서 두 정상이 만나 타협점도 모색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인정하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신형대국관계를 제시했으며, 미국은 수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유지는 곧 중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두루뭉술한 합의는 애초부터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었다. 경쟁은 이제 경제로 옮아가는데, 대체라기보다 전선확대라고 봐야 한다. 일단은 중간선거 패배의 후유증으로 레임덕이 가속화될 오바마에 비해, 반부패 드라이브로 국내적으로 지지기반이 더 확고해진 시진핑의 기선제압이다.

APEC을 포함한 최근 동북아 정세의 또 다른 특징은 역내국들이 근본 전략의 변화는 없더라도 나름의 예비 지렛대를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북한이 인질들을 전격적으로 석방한 것이나, 중·일이 오랫동안 막혀 있던 정상회담의 문을 연 것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외교다. 각국의 전략적 변화들이 한국을 건너뛰는 양상을 보임으로써 존재감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뒷북과 꼼수외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중·일 정상회담과 지난 3월 한·미·일 정상회담을 교묘히 섞는 나름의 묘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전혀 영양가 없는 제안이었다. 목적이나 구체적 합의 없는 만남 자체는 일본의 입지만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제안을 일본은 환영하는 데 반해 정작 중국은 냉랭한 이유다.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주석(오른쪽) _ AP연합


중국과의 FTA 체결을 결실로 내세우지만 이 역시 오판이다. 국방부가 최신 무기라면 전체적인 운용성과 전략도 없이 사재기에 골몰하는 것처럼 한국의 통상외교는 FTA 체결 자체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 보인다. 정부의 체결강박증은 이제 꼭 필요한 절차와 대비과정마저도 생략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읽지도 않으면서 참고서만 사 모으면 공부를 저절로 잘한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정부의 맹목적 통상정책은 우리 경제를 허브는커녕 강대국 사이에서 휘둘리며 이용당하는 소위 ‘스포크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날이 무자비해지는 신자유주의의 거친 바다에서 국가의 공공성과 주권, 대민 책임은 완전히 내던져지고 있다. 그사이 대내적으로는 복지가 사치로 매도돼 국민을 이간질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외교는 지정학적 저주 속의 분단구조를 극복하기는커녕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데도 대부분의 언론은 실상을 호도하기에 분주하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