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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인의 공감과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소탈한 모습과 꾸밈없고 분명한 메시지로 효과를 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낮은 곳을 향해 청빈과 자비를 실천하면서 그것이 파격 행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야 할 길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첫 교황이다. 엘살바도르(구세주), 상파울루(바울 성인), 콘셉시온(성모잉태), 아순시온(성모승천) 등 곳곳의 가톨릭식 지명이 예증하듯 라틴아메리카는 명실공히 가톨릭의 최대 중심지다. 세계 최대의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과 멕시코를 비롯해 전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의 45%가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하고 있으며 교황을 배출한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신자는 인구 4000만명 가운데 70%에 이른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예전보다 더 다양해진 종교 지형과 새로운 변화의 조짐 속에서도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은 가장 유력한 종교 전통으로 남아 있다.

2013년 11월에 발표된 교황 권고문 <복음의 기쁨>은 이렇게 염원한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 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저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이는 한 지도자의 신선한 각성과 개성의 표현이라기보다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의 전통과 역사를 반영하는 고백이다. 특히 중요한 대목은 이것이 해방신학이나 일부 교회의 선택이 아니라 지역 교회 차원에서 시대의 징후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해온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공식 견해였다는 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첫 권고문 <복음의 기쁨> 한국어판 (출처 : 경향DB)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막바지에 당시 교황 바오로 6세는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신자들에게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주교들에게 대륙 차원의 사목 계획을 권고했다. 이를 계기로 신자들이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기초교회공동체가 라틴아메리카 여러 곳에 세워졌다.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주교회의는 이 공동체를 교회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가난, 정치적 억압, 폭력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신자들이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이어 1979년 멕시코 푸에블라의 제3차 회의부터 2007년 브라질 아파레시다의 제5차 회의까지 주교들은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승인하고 재확인했다.

<복음의 기쁨>에서, 그리고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에 교황은 신자유주의와 실용이라는 이름의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비판하고 가난을 만들어내는 비인간적 경제 모델을 거부한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교회의 변화와 공동선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많은 이들이 복음의 기쁨을 누리자고 권유했다.

이런 거울에 비춰볼 때 한국 사회와 기독교의 형색은 공공성이나 공적인 책임, 투명성과는 거리가 너무 먼 듯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한 남자 수도회인 예수회가 설립한 국내의 유명 대학교에는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이 있다. 다른 건물이 적지 않을 텐데 포스코는 왜 하필 ‘빈자의 성인’ 프란치스코와 만났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에서 탄생한 별난 결합이자 모순어법의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또 이것은 경건의 능력 없이 경건의 모양새만 있는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단면이 아닐까?

몇 달간 교황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수십권의 서적이 출판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땅의 종교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대체로 확인되었다. 섬김의 삶을 이루려는 교황의 진지한 사목방문을 환영하며 존경을 표한다. 또 교황의 방문이 한국 기독교계의 방향 전환(회개)과 개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구체적인 현실과 만나지 않는 ‘딴 세상’의 신앙, 세속 권력과의 엉뚱한 제휴에서 벗어나 한국의 기독교가 하늘의 뜻을 이뤄가는 단단한 전통을 쌓아가길 기원한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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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