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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반군 이슬람국가(IS) 조직이 미국인 사진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한 잔혹한 영상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오바마의 외교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외교원칙은 결코 외교원칙이 될 수 없다면서 오바마의 중동정책은 실패라고 규정했다. 국내정치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퍼거슨시에서 18세의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경찰이 쏜 총에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흑백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 두 사건에는 미국외교논란과 문명갈등, 그리고 인종갈등 등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지만, 이면에 감춰진 국가의 존재이유라는 함의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국가는 내부적으로는 질서와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권력을 위임받고 폭력이 정당화되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국가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책무가 안팎으로 오작동한 사건들이다.

폴리의 죽음은 우선 악랄한 테러리스트의 범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만, 미국 외교정책의 실패에도 큰 책임이 있다. 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고민 없이 빌라도의 손 씻기에 가까운 외교의 대가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일관성 없는 오바마의 정책과 특히 이스라엘의 무차별한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IS 같은 조직의 성장에 땔감을 제공한다.

퍼거슨 사태도 국가의 하자를 드러낸 사건이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공권력에 의한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무엇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대응방식이다. 분명 공권력 과잉이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가의 기본이 무시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들은 범죄사건이든, 정치적인 반발이든 군사작전이나 전쟁을 하듯 대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마치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에서 식민지 사람들을 취급하던 방식이 부활한 것 같다. 시민혁명의 피로 이룩해온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통치자는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권력을 부여받은 그 국가가 다시 옛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국가의 모습은 더욱 절망스럽다. 민주주의도 형식과 제도로만 존재함으로써 기득권자들의 부당한 탐욕을 합법적으로(?) 보호하고 권력남용을 정당화시킨다. 검·경찰의 물리력은 시민불복종에만 위력을 발휘하고, 범죄자에게는 무력하다. 군은 안보 공포조장에만 위력을 발휘하고, 군내외부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함량미달이다. 외교는 통치자의 이미지 관리에만 위력을 발휘하고, 국익확보에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시리아에서 2년 전 실종된 미국 출신의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폴리로 추정되는 남성(왼쪽)이 사막에 무릎을 꿇고 있고, 뒤에 복면을 쓴 이슬람국가(IS) 조직원이 서 있다. _ 뉴시스


세월호와 함께 국가도 침몰하고, 민주주의는 누더기가 되어간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 중인 국가의 선장은 묵묵부답하며 책임을 떠넘길 대상만 찾고 있다. 국민에게 사과하며 최종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했던 말은 공수표가 되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유가족을 향해 흘리던 눈물의 진정성 여부는 청와대 정문에서 유민 아빠를 밀쳐내는 모습으로 민낯을 드러냈다. 앙상하게 뼈를 드러내는 유민 아빠의 모습은 오늘날 국민의 모습이며, 철옹성 같은 청와대는 오늘날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국민이 빠진 국가는 그냥 군림하는 지배자일 뿐이다. 국가는 국가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할 때 비로소 소중해지는 것이다. 국가권력이 아무리 강해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내 나라다 싶은 날이 없었다”는 밀양 송전탑 시위에 나섰던 87세의 할머니가 던진 고백과 “우리나라가 미친 것 같다”는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난 소녀의 편지는 곧 ‘우리에게 국가는 없다’는 외마디 비명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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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