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반역자’로 몰린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처지가 궁색하다. 지난달 27일 독립 선언 후 자치정부가 해산되고 검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는 벨기에 브뤼셀로 몸을 피했다. 그가 여기서 정치적 망명을 하려 한다는 설이 돌았다. 지난달 31일 그는 “망명을 신청하러 온 게 아니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이곳에 왔다”며 “스페인 정부가 (신변 등) 보장을 해준다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벨기에 정부에는 네덜란드어권 지역 플랑드르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신플랑드르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이들이 우호적으로 대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회 최대 정당으로 정치권의 ‘주류’가 된 신플랑드르연대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푸지데몬을 초대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벨기에 언론에 따르면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신플랑드르연대 출신 장관들이 만나 스페인과 외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푸지데몬과 접촉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지난달 29일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는 수십만 인파가 바르셀로나 거리를 메웠다. 스페인 깃발이 나부꼈다. ‘침묵하던 다수’가 나왔다고들 했다. 카탈루냐 독립을 주도했던 민중연합후보당(ERC)과 그가 속한 카탈루냐민주당(PDeCAT)은 조기총선을 받아들였다.

퇴로가 막힌 푸지데몬은 결국 12월21일 치러질 조기선거를 받아들이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고 했지만 이미 힘은 빠졌다. 스페인 고등법원은 푸지데몬과 해산된 자치정부 각료 13명에게 2일 반역죄를 심판할 마드리드의 법정에 서라며 소환장을 발부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푸지데몬은 최고 3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스페인 정부는 푸지데몬을 궁지로 몰았으니 성공한 걸까. 당장 분리주의자의 목소리는 작아진 듯하지만 12월 선거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카탈루냐의 민심은 복잡하다. 지난달 1일 스페인 경찰의 봉쇄 속에 얼렁뚱땅 치러진 국민투표는 투표율이 43%에 불과해 반쪽 여론에 불과했다. 카탈루냐의 독립 찬성과 반대 여론은 늘 분분했다. 엘문도가 여론조사기관 시그마도스에 의뢰해 지난달 30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43.3%가 독립을 반대해 찬성 여론(42.5%)보다 조금 높았다. 독립 선언 전인 지난달 23~26일 실시된 조사다. 자치정부의 공공여론조사센터가 지난달 31일 내놓은 결과는 찬성이 48.7%로 반대 43.6%보다 높다.

 

그러나 또 다른 조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시그마도스 조사에서 카탈루냐인들은 중앙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려 헌법 155조를 적용하는 것에 55.5%가 반대하고 32.5%만 찬성했다. ‘침묵하는 다수’들이 독립에 부정적이어도 중앙정부의 강경대응과 억압적 직접 통치 역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풀뿌리 시민활동가 출신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의 말은 카탈루냐 사태의 본질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다. “분리주의 정당들이 다수의 지지를 결여한 채 카탈루냐 독립 공화국을 향해 ‘가미카제식 질주’를 한 것에 대응해 마드리드는 ‘민주주의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둘 사이에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정치’는 실종되고 유권자도 소외됐다.

스페인 정부와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의 정치 도박은 돌아 돌아 결국 다시 카탈루냐 유권자의 손에 맡겨졌다. 위기의 근인을 짚어보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단 스페인 정부가 폭력 없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누군가의 출마를 제한하지 않고 투명한 선거를 보장하는 것이다. 선거를 유리하게 움직이려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또 결과가 어떻든 민의를 과대포장해 또 다른 정치 도박을 벌이는 일은 카탈루냐 유권자를 배신하는 것이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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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