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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분을 위령(慰靈)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도지사로서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깊은 일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지난 25일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쿄도 위령협회 주최로 열리는 추도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고, 조선인 희생자도 거기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학살 희생자와 자연재해 희생자는 다르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은 모습이다.

 

고이케 지사는 내달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 측 요구를 거절해 논란이 일었다. 전임 지사들은 추도문을 매년 보내왔고, 고이케 지사도 취임 첫해인 지난해 추도문을 보냈다. 일본 언론은 태도가 바뀐 배경에 추도비에 적힌 ‘희생자수 6000여명’ 문구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선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이 숫자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학살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고이케 지사의 모습에서 가해 사실과 책임을 덮으려는 일본 우익들의 익숙한 패턴을 보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종전기념일(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를 이유로 든다. 전쟁 책임과 주변국에 대한 가해 사실은 사라지고 없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기획·주도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선인 희생자를 전체 희생자에 뭉뚱그려 넣는 식으로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의 이번 행태는 이전부터 지적돼온 배외주의가 보다 명확한 형태로 폭주하려는 ‘전주곡’으로 보인다. 그는 ‘첫 여성 총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지만, 극우 포퓰리스트 성향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평화헌법 개정이 목표인 극우단체 일본회의에서 활동하고 있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한다. 극우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강연회에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사에 취임한 직후 전임 지사의 제2한국학교 부지 대여 방침을 백지화했다. “보육원 대기아동 문제가 심각한데 외국인에게 왜 공간을 내주느냐”는 우익의 반발에 편승한 것이다. 이는 보육시설 부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분노를 외국인에게 향하게 하는 전형적 배외주의다. ‘고이케 신당’을 추진하는 ‘일본 퍼스트회’는 배외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각각 ‘호주 퍼스트’ ‘뉴질랜드 퍼스트’라는 극우 정치운동이나 정당이 존재한다. 고이케 지사는 ‘고이케 극장’이라 불릴 정도로 능수능란한 이미지 정치로 대중 지지를 얻어 왔다. 하지만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항마로 꼽히지만, 아베 총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질 게 없는 극우 포퓰리스트의 모습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는 공원 내에선 같은 시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단체가 ‘진실의 간토대지진 희생자 위령제’라는 ‘맞불’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주최자는 과거 고이케 지사의 강연회를 개최한 ‘재특회’ 관련 단체다. 재특회는 혐한(嫌韓)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를 이어온 배외주의 단체다.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거절한 것이 이런 움직임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학살 사실을 왜곡하고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이런 배외주의가 대재난을 통해 극대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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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