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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2011년은 아랍 및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자유와 해방을 향한 민중의 에너지가 거침없이 확산되는 실정이다. 1월에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3년의 독재자 벤 알리를 퇴임시켰고, 2월에는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의 힘이 30년의 독재자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했다. 이제 아랍세계 주요 도시의 광장은 압제와 빈곤의 종식을 요구하는 시민의 함성으로 가득 차고 있다.

리비아 카다피의 40년 철통 독재도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하며 조금씩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일 달러로 부유한 바레인에서도 왕정을 향한 반발의 파도가 거세다. 알제리와 모로코, 예멘과 이라크 등 북아프리카·중동 전 지역에서 민주화의 열풍이 휘몰아친다. 2009년 대선에서 이미 봉기가 일어났지만 실패했던 이란의 민중도 다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타고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주간 유럽에 머물면서 바라본 이슬람의 민주혁명은 한반도에서 듣는 것보다 훨씬 가깝고 뜨겁게 느껴졌다. 지중해만 건너면 튀니지나 이집트라는 지리적 근접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럽에는 1500만명에 달하는 북아프리카·중동의 이민자들이 생활하면서 실질적으로 두 대륙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성찰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일간 르몽드는 1848년 유럽의 시민혁명, 1989년 동유럽의 민주혁명, 그리고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혁명을 비교하는 특별대담을 실었다. 이미 하나의 세계사적 변화의 기미를 보인다는 인식이다. 첫째, 세 혁명은 모두 아주 부조리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정치적 상황에서 갑자기 역동적인 전개가 이뤄졌다. 둘째, 시민이 독재의 탄압에 대한 내면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요구하는 순간 혁명의 도화선이 형성된다. 셋째, 혁명은 민주화로 연결되어 성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反)혁명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혁명도 혁명의 소중한 성과를 완전히 돌이키지는 못한다는 교훈이다.


다른 한편 장기간 아랍세계의 독재체제와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던 유럽 각국의 외교정책은 최근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중의 삶의 조건이나 인권에는 무관심한 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는 안정된 정치체제가 필요하다’는 현실주의적 논리는 이제 머쓱해졌다. 특히 서구 정치인과 경제인이 아랍 독재정권으로부터 갖은 특혜와 선물을 누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가가 아닌 개인을 위한 현실적 계산이었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유럽연합이 독재자와 가족, 측근의 재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아랍 민중의 신뢰’라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이번 민주화 운동이 한반도에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민을 굶기고 독재집단을 살찌우는 정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진실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다 해도 부당한 지배는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한국의 민주화를 이끄는 정신이었고, 진보를 자임하는 민주세력이라면 남과 북, 한반도와 중동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흔들어야 할 투쟁의 등불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할 일은?

하지만 한국의 자칭 진보, 민주 세력은 조로(早老)했다. 투쟁의 등불 대신 선거 정치의 계산기를 들고 2012년의 양대 선거만 준비한다. 그리고 벤 알리와 무바라크와 카다피를 합한 것보다 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북의 체제에 대해 현실주의적 대화와 지원만을 노래한다. 비록 3대 세습과 같은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지만 그래도 부드럽게 다뤄야지 안그러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에서 얻은 ‘북한도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교훈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사회주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포함하여) 대안이 아니라는 성급하고 왜곡된 결론을 내린 한국의 민주세력이다. 2011년에는 올바른 교훈을 얻길 바란다.

Posted by KHross

이웃에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한 작가가 산다. 그의 책들은 모두 프랑스 최고 권위의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3000권 이상 팔린 적은 없다. 당연히 인세로만 살지 못한다. 그러나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월세 1000유로(약 150만원)의 아파트에서 그리 궁색하지 않은 작가의 삶을 수십년째 영위하고 있다. 무슨 수로?

몇 년 전부터 그는 매년 지방 소도시에 머물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 그리고 1주일에 두 번 주민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연다. 1년의 계약기간 동안 지자체는 그에게 생활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레지던스)을 제공하고, 한 달에 2000유로를 지급한다. 글쓰기 교실에 참여하는 이들은 교사, 전직 간호사, 의사, 보험회사 직원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의 사람들이다. 저녁 8시에 열리는 글쓰기 교실의 열기는 종종 자정에 이르도록 식을 줄 모른다.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도 작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고, 글쓰기를 통해 발견한 이 새로운 세상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느끼고자 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읽는 것. 그래서 그는 마을 도서관의 장서를 재정비한다. 인구 3000명이 채 안되는 이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는 정식사서가 없고, 도립도서관에서 임의로 보내는 책들로 서가는 채워졌다. 작가는 며칠 동안 도립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책들을 고르고, 없는 책들은 주문해서, 마을 도서관의 장서들을 새롭게 구비시킨다.


이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한 중년 부인은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집에서 만든 산딸기잼이며, 오이피클 따위를 조심스럽게 내밀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장이 서면, 거기서 마을사람들이 직접 가꾼 과일과 야채를 사면서 종종 그들의 삶을 듣는다. 그는 이 모든 삶을 바탕으로 애잔한 사랑얘기를 쓸 수도 섬뜩한 스릴러를 쓸 수도 있다. 전적으로 작가의 권한이다. 다만 이 작은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할 뿐.

한때 칸영화제 커미셔너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그 시절에는 앵테르미탕(공연·영화·방송 분야에서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로, 10개월간 507시간을 계약에 의해 일하면 나머지 기간에 실업급여를 탄다)의 지위로 살아갔고, 그때와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납입했던 소박한 규모의 국민연금을 올해부터 탄다. 프랑스국립영화센터(CNC)는 지원을 결정한 독립영화들의 시나리오를 그에게 보내, 촬영 전 마지막 손질을 의뢰하기도 한다. 소위 스크립트 닥터의 역할이다. 조만간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파리 4구로부터 임대주택을 제공받게 된다. 임대주택의 우선권은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 주어지지만, 지자체들은 예술가들이 그 지역에 있는 것이 다른 주민들을 위해 좋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몫도 남겨둔다. 5년째 대기자로 있던 그에게 드디어 올가을, 지금 집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멋진 아파트가 주어질 거라고 구청이 알려왔다.

한 작가의 존재는 사회 전체를 향해 명확하게 기능한다. 그는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하고, 그들 속에 있는 토양을 일구어 열매 맺도록 자극한다. 작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사회는, 지자체·국가·출판사가 일자리·주거·실업급여·연금·느긋한 기다림 등 각각의 방식으로 작가가 작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조한다. 프랑스 좌파연대 대표 멜랑숑은 “내가 모든 직업의 급여를 정할 수 있다면, 난 시인에게 가장 높은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예술가들을 예술가로 살게 하는 것이다.

Posted by KHross

혁명은 민중들이 권력자를 내쫓고 그 자의 곳간을 터는 일로 시작된다. 그 속엔 금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권력이 다수를 지배하느라 감춰두고 왜곡해왔던 진실들도 함께 숨겨져 있다. 권위와 무력, 거짓으로 유지되어 온 체제는 그 순간, 발가벗고 허물어진다. 재미있는 일은, 아랍국가에서 혁명이 성공할 때마다 프랑스 정가의 비밀 곳간이 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벤 알리가 튀니지를 탈출하기 직전까지, 경찰병력을 튀니지에 파견하여 독재권력을 옹호할 것을 건의했던 외무부 장관 미셸 알리오 마리는 혁명이 진행 중인 튀니지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걸로 알려져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다.

 
“그... 그럴까요?” 도착했던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사업가, 벤 알리의 절친이자 독재권력의 수호자인 아지즈 밀드가 자신의 전용기를 타라고 제안하기에, 그의 친절을 받아들여 휴가지로 향했을 뿐, 권력을 남용한 건 없다고 둘러대던 그녀. 며칠 뒤, 이 여행은 94세, 92세에 이르는 그녀의 부모가 아지즈 밀드 소유의 부동산업체를 사들이는 비즈니스 여행이었고, 그 자가 공항에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튀니지 벤 알리 대통령 (경향DB)

연로하신 부모님이 구입한 대규모의 부동산은 실질적으로 그녀 소유가 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붕괴 직전의 튀니지 정권으로부터 받은 대가성일 수 있다는 추측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튀니지 경찰병력 파견 발언이야말로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는 사건이다. 신문 지상에서 그녀의 코는 점점 더 길게 그려지고, 야당은 강하게 그녀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총리 피용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버젓이 이집트 무바라크가 제공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그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머물면서 개인 휴가를 즐겼다.

아랍국가의 부패한 독재권력들과 프랑스 정가가 오랫동안 맺어온 질척한 밀월관계가, 혁명이 거듭될 때마다, 한꺼풀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다. 조마조마해하며 불똥이 튈까봐 염려하고 있는 건 사회당 쪽 인사들도 마찬가지. 사회당 대선후보로 점쳐지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은 2년 전, “튀니지야말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제체제를 갖춘 나라”라며 벤 알리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현재 반독재 시위 물결이 거세지고 있는 알제리, 그리고 그 바로 옆 나라 모로코에서도 혁명이 성공한다면, 프랑스 정가에 미칠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좌우 정치인은 물론 지식인·예술가·언론인들까지 프랑스 지배계급들이 나른한 몸과 마음을 축여오던, 정서적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제국주의는 사라지고 식민지는 청산되었으나, 프랑스인들이 옛 식민지 국가들에서 벌여온 제국주의적 관습들은 이제 이들 나라에서의 혁명과 함께 제거되어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르몽드는 지난주 아랍세계에서 이어지는 혁명의 물결에, 프랑스 지식인 사회가 지나치게 침묵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독재를 청산해 낸 아랍세계가 단결하여 반 이스라엘 전선을 확고하게 그을 것이며, 자신들을 보위해주던 프랑스 정권을 향해서도 날선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들에게 즉각적인 혁명에 대한 환호를 주저하게 한다고 르몽드는 지적한다.

왕의 목을 잘라냈던, 혁명의 원조국가 프랑스. 그러나 그걸로만 계속 장사를 해먹기엔, 오늘날까지 털어내지 못한 제국주의의 먼지가 너무 두껍다. 그리고 혁명은 힘이 세다. 심지어는 옆 나라에서 굴러다니는 위선의 먼지까지 털어준다. 더 많은 혁명이, 지구상에 들러붙은 위선의 먼지를 다 털어낼 때까지.

Posted by KHross

*출처 : 유로진보넷 (http://eurojinbo.net/)
*작성자 : 비단터

내가 튀니지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파리의 한 동학은 세계혁명에 동참하러 가는줄 알았단다. 그럴꺼면 이집트로 갔어야지..;;

튀니지에 혁명이 발발한 것은 학위받고 바람도 쐴겸 튀니스에 사는 지인을 보려고 이너넷으로 미리 (취소가 거의 불가능한) 비행기표를 사놓은지 고작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불안하게 상황을 지켜보다가 결국 표를 날릴수 없어 튀니스공항에 도착한 것이 2월 4일.. 아직 혁명은 기운이 채 식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서 보니 프랑스정부는 7일까지 튀니지로의 단순여행을 금지시킨 상태였는데 14일까지로 연장한다고 뉴스에 나왔다. 역시 비행기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프랑스인은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넘덜이 겁이 많긴 하지만 그 와중에 기어들어간 난 모냐고..ㅡ.ㅜ

이참에 혁명의 자취를 제대로 디벼보리라 마음 먹었다. 2005년 프랑스에서 이민 2, 3세들이 소요를 일으켰을 때도 그 진원지인 클리쉬 수부아 에도 가보고 공존의 기술 : 방리유, 프랑스공화주의의 이면 도 작업하지 않았던가. 이거 가지고 또 글을 쓰면 소요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질지두..^^; 


아직 튀니스 시내 곳곳에 장갑차와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어 아직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었다. 사진은 시내 중심에 있는 내무성 앞.

그러나 한켠에서는 여전히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아랍어라서 구경하던 다른 시민에게 물어보니 (지난 정권 인사인) 총리도 바꾸고 군인들 치우라고 요구하는 거라는데..


사진을 찍다가 만난 마누바대학 학생들.. 이후 한시간 넘게 시내를 같이 다니면서 생생한 얘기도 듣고 여러가지 정보도 얻었다. 덕분에 혁명관련해서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과 잡지도 사왔다. 이번 튀니지 탐방의 가장 큰 수확이다. 역시 시위확산에 페이스북의 영향이 컸다는걸 알려주듯, 조금 얘기하고 나자 바로 페북아이디를 물어왔다.

드디어 자유다. 자유 만세!

민주주의와 세속주의


튀니지 여성은 자유로우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거리의 다른 한켠에서는 또다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혁명과정에서 죽은 희생자에 대한 보상 요구

사람들이 모이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혁명과정에서 굶주리고 성난 군중에 의해 불타고 털린 대형마트들이 많다. Geant도 털렸다는데 Carrefour는 빨리 대처했는지 무사했다. Carrefour 앞에는 아직도 장갑차가 지키고 있었다. 사진은 모노프리.

밖에서는 별거 아닌듯 보이지만...

내부는 처참했다.

대통령 벤 알리도 문제였지만 마눌인 트라벨시 집안이 무쟈게 말아 잡수셨단다. 그래서 혁명과정에서 부촌에 있는 몇몇 집들도 불타고 털렸다. 사진은 처조카 이메드 트라벨시의 집. 낮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담장은 그들이 아무런 신변의 위협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이 사건이 얼마나 급작스러웠던 것인지 알려준다.

창문까지 떼어갔는지 깔끔하다. 동행했던 미모의 KOICA 튀니지 소장도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역시 정치학전공이라 그런지 혁명의 자취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통했다.

 

완전히 불타고 털린 집 내부.

뒷뜰에 세워둔 차도 완전히 전소된 상태.

* 원문보기 : 이슬람 민주화혁명의 진원지를 가다 (유로진보넷)


 

Posted by KHross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촉발된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시간이 갈수록 중동 전체 지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25일부터 시작되어 2월 11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임하기까지 18일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은 이집트와 중동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면서 중동의 국제질서의 재편 조짐마저 예상 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이집트 혁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가운데, 그 여파가 예멘과 사우디, 리비아나 이란 등 중동의 여타 국가로 얼마나 확산되어갈지, 그 결과 중동 석유시장이나 국내 진출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중동을 넘어 중국이나 북한 등으로 민주화 운동이 확산될 수도 있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집트 혁명을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에 비견하는 분석도 간간히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2011년 우리나라에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얘기다. 과연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이미 우리나라가 20여 년 전에 이미 겪었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형의 사건이고 지금은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도 주지 못하는 것인가.

우선 확인해 둘 것이 있다. 이집트 혁명이 발발한 원인을 무바라크의 30년 장기독재 체제에 대한 정치적 민주화 요구로만 국한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튀니지나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의 적지 않은 국가들에서 장기 독재체제가 존속하거나 심지어 왕정 형태를 띤 정치체제가 21세기까지 이어온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집트 혁명의 도화선도 지난해인 2010년 6월 부패경찰이 마리화나를 나누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29세 청년 인권운동가 칼레드 사이드에 대한 분노였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 참석자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경향DB)


그러나 현재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기본적으로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가 미치고 있는 파장과 영향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진실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위기 충격이 시작된 이래 4년을 지나고 있지만 세계 경제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외형적인 지표경기 등은 다소 호전되고 있고 금융 불안도 일정하게 완화되고는 있으나 국민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실업률이나 소득은 여전히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을 보더라도 이는 명확하다. 미국 경제는 3%수준의 성장률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고 부실 은행들이 수익률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실업률은 9% 이상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유럽 역시 9~10% 수준의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 이전 4%에 머물던 미국의 실업률과 비교한다면 두 배가 넘는 실업률이다. 당연히 소득도 개선되지 않았다. 경제위기는 실생활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이집트를 포함하여 대부분 중동 국가들의 실업률도 마찬가지다. 공식 실업률 기준으로 9% 이상의 높은 실업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중 후진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것처럼, 공식 실업률을 뛰어넘는 사실상 실업자들, 그리고 엄청난 빈부 격차로 인해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야 할 빈곤층이 30~40%를 육박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높은 실업률과 소득정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것이 최근에 이른바 ‘물가 폭등’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 완화’라는 이름아래 경기를 부양한다고 대규모로 풀기 시작한 달러 유동성은 달러로 표시되는 석유, 원자재, 각종 곡물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다. 여기에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가치가 떨어지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글로벌 자금들이 이들 원자재와 곡물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실수요와 무관한 투기적 수요를 발생시키면서 가격폭등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인해 공급이 차질을 빚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높은 실업과 소득정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식료품과 생필품 위주의 물가가 10%이상씩 치솟았던 것은 서민들의 생계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가중시켰고, 이것이 최근 중동의 민주화 시위의 강력한 경제적 배경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튀니지 혁명을 ‘굶주림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튀니지 혁명의 도화선이 지난해 12월 대학을 나온 청년 과일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로부터 시작되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정치 민주화에 대한 요구 이전에 경제적인 생계 압박이 중동 혁명의 중대한 이유였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혁명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세계적 경제위기 자체라고 할 만 하다.
 

                        (경향 DB)


고용불안과 소득정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식료품과 같은 서민물가가 폭등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지금의 중동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거니와, 이는 1970~1980년대의 한국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2011년 지금 한국사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사한 상황은 존재한다. 한국 역시 세계경제위기 영향권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국의 고성장 효과’ 덕택에 그 인접국이자 수출의존도 30%라는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경제는 지난해 6.1%의 고성장을 누려왔고 일자리도 약 30만개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고용상황은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을 회복하지 못했고, 늘어난 일자리의 상당부분도 사회서비스의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임시직 일자리가 많았다. 올해에는 그나마 경제 성장률도 둔화될 것이고 일자리 증가 속도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인상과 소득증가도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수준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주로 해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석유와 원자재 가격, 그리고 곡물 수입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산 소비재 수입물가 역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국민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석유, 원자재, 곡물, 중국산 소비재의 수입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중이고 이는 생산 원가와 생산자 물가, 소비자 물가로 계속 전이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대학들이 등록금 가격 동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상대열에 합류했고, 잘못된 부동산 정책 탓으로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며,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공공요금이 인상 대기 중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 불안 걱정이 중동국가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올해에는 정부가 경제성장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G20을 개최하여 국격을 높였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경제실적을 내세우며 설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친 서민 - 중도실용정책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집트 혁명과 중동 민주화 바람의 여파는 중동과, 중국, 북한 등에게만 해당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정부가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고용불안과 물가 불안에 걱정을 키워가고 있는 우리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이 글은 통일뉴스(www.tongilnews.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새사연 http://saesayon.org  원문보기
Posted by KHross
봄내

한국형 실업극복 모델을 발견하다. – “징벌적 근로국가 모델 (Punitive Workfare State Model)”
OECD 데이터를 검토하다가, 한국과 관련하여 눈에 띄는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장기실업률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8년 현재 한국이 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장기실업율이 멕시코 (1.7%)에 이어 가장 적은 2.7%가 아니겠습니까? 소위 선진국, 복지국가입네 하는 나라들은 몇몇 예외적인 나라를 제외하고는 기본이 10%가 넘고, OECD 평균은 25.9%나 되는데 말입니다. 물론 한국의 실업률도 인상적으로 낮습니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아이슬란드에 이어 3.2%로 네 번째로 낮은 실업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OECD 평균 6.1%).

이는 한국의 경제발전모델이 실업극복 모델에 있어서는 어느 OECD 국가보다도 우수한 모델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대통령께서 밝히신 것처럼 ‘국격’을 높이기 위해, 낡고 후진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모방하기 보다는 한국의 경험을 세계 만방에 모델로 제시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렇게 낮은 장기실업률과 실업률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를 영국 좌파들의 위장전술인 “슘페터리안 근로국가 모델 (Schumpeterian Workfare State Model)”의 기만성을 넘어서는 진정한 “징벌적 근로국가 모델 (Punitive Workfare State Model)”이라는 놀라운 효과를 가진 실업극복 모델로서 제시하고자 합니다.

 

1. 낮은 사회복지 비율 (2005년 현재 GDP 대비 사회지출 최고 낮음 6.9%, OECD 평균 20.6%)
ð 낮은 수준의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실업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길거리에 나가 앉을 수밖에 없으므로 죽기살기로 일자리를 구해야 함. 반면, 복지국가를 자랑하는 다른 OECD국가들에서는 실업이 오래 지속되어도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실업상태로 지낼 수 있음.

è  효과 : 낮은 실업률 및 장기실업률

 
2. 높은 노동유연성
ð죽기살기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허접한 일자리라도 금방금방 채울 수 있음. 느슨한 노동법과 법원판결에도 굴하지 않는 재벌들의 비정규직 운용이 시스템의 다른 축을 이루고 있음.

è 효과 : 기업경쟁력 강화

 

3. 높은 스트레스
ð 죽기살기로 일해야 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함. 이러한 높은 스트레스는 일자리 창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함.

è 효과 : 매일 음주가무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요식업 및 성산업 발달. 대부분의 요식업은 자영업의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높은 기업가 정신의 일상화가 이루어짐.

è 효과 : 음주와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많아지기 때문에 의료업 및 생명공학 발달

 

4. 치열한 경쟁
ð 그나마 같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특정 대학들을 입학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시스템을 경험하게 함. 일부 선진적인 지역에서는 고등학교부터 입시를 함으로서 좀더 어린 시절부터 경쟁을 배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

è 효과 : 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서비스업 발달

 

스웨덴 국왕도 회의를 품고 있다는 낡은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 보다, 미국도 영국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선별적 복지국가 모델 보다 (이런 점에서 오세훈 시장은 복지주의자들에게 타협하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의 기적을 일구었고 G20 의장국도 해본 한국의 反복지국가 전략을 통해 성공적인 실업극복 모델을 달성했음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이를 알려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이 모델은 국민, 특히 노동자, 농민, 서민의 행복은 절대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유로진보넷http://eurojinbo.net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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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페르디낭 셀린(Louis Ferdinand Celine). 그는 20세기 프랑스 작가 중 푸르스트(Proust)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알려진, 프랑스 문단에 전기와도 같은 충격적인 흔적을 남긴 작가다.
 
그러나 셀린을 무엇보다 오래 회자되게 하는 것은 반유태작가로서의 오명이다. 그가 2차 대전을 즈음하여 드러낸 반유태주의 입장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특유의 가차없이 통렬한 언어로 그는 반유태주의 시각을 담은 팸플릿을 작성했고, 반유태주의 모임에 참석하여 연설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적은 그로 하여금 6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하며, 전후 프랑스 법정에서 국적과 재산을 박탈당하게 하고, 사면된 이후에도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당한 삶 속에 그를 가둔다.


그의 과오가 사법적 판단에 의해 이토록 철저하게 규명되고 혹독한 죄값을 치르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의 셀린은 많은 이들이 알베르 카뮈와 더불어 그를 프랑스 대표 작가로 꼽을 만큼 확고한 자리를 지켜왔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되는 올해, 프랑스 문화부는 2011년에 국가적으로 기념해야 할 인물의 한 사람으로 셀린을 리스트에 올렸다가 뒤늦게 유태인 단체의 비난에 밀려 삭제하는 소동을 빚었고,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셀린은 논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셀린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자신이 목도한 현실을 신랄하고 살아있는 언어, 특유의 쓰고도 감미로운 해학으로 표현해내던 작가였다. 출세작 <밤의 끝으로의 여행>에서, 그는 호전적인 민족주의와 식민주의를 맹렬히 비판했고, 그를 확고한 기반 위에 올려놓은 또 다른 작품 <외상 죽음>에서는 자본주의를 공격한다. 36년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뒤엔 당시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공산주의의 허구를 소설 <죄의 고백>을 통해 맹렬하게 폭로했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 출처: pasunautre.com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전쟁 중에는 연합군들은 물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했다. 유태인들에 적대적 감정을 품었을지언정 나치에 협력했던 페탕 정부 하의 프랑스를 매서운 아이러니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이 마주하던 모든 전체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펜을 휘둘렀던 그가 반유태주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에 실족한 바 있다 하더라도, 이미 그 대가를 치렀고, 그의 대부분의 작품세계가 반유태주의와 무관한 것임을 들어 문화부의 줏대 없는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프랑스 사회에 드세다.

이 비난의 한 가운데에는 <반유태주의>라고 하는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민감한 금기에 대한 “저항”이 작동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서의 만행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분노하라>의 작가 스테판 에셀의 강연이 유태인 사회의 압력에 의해 취소된 사건이 사람들을 경악시킨 직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태인들이 나치로부터 겪은 고통은, 반유태주의를 이 사회 최고의 금기로 만듦과 동시에, 점점 나치정권을 닮아가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에 이성적인 비판을 거부하는, 스스로를 향한 칼날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압도적 명성이 그의 정치적인 과오를 덮어서도, 예술가의 정치적인 과오가 예술적인 성취 자체를 지워서도 안된다. 과오가 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해 명백하게 규명하고 기록하여 알리되, 그가 남긴 작품들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할 일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친일작가들을 가진 우리. 그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을 수도, 여과없이 찬양할 수도 없는 난감한 시절을 오래 보내왔다. 규명되지 않은 역사는 언제고 우리의 발목을 잡고, 넘어뜨리며, 논란 속에 빠뜨리는데… 서정주의 아름다운 시를 후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그의 친일행적을 감춰야할 필요는 결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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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아마존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샘, 아니 강들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가뭄-폭우 사이클이 동반하면서 생태계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아마존의 주요 지류 가운데 하나인 네그로 강의 수위는 최고 30m인데, 작년 10월 이래 13m 수준으로 떨어졌다. 10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곳곳에서 배의 운항이 불가능해서 6만가구가 고립 상태에 있다. 주변 62개 군 가운데 40개가 비상사태 하에 있고, 공군기가 고립된 지역에 식량과 의약품을 투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우기가 시작되는 3~4월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몰아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005년의 경우 풍속 140㎞의 강풍을 동반한 폭우에 6억6000만 주의 나무가 뽑혔다고 한다.

   
가뭄·폭우 사이클에 생태계 악화


가뭄과 폭우 사이클이 왜 생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태평양의 남방진동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직 확실히 해명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마투그로수주나 파라주와 같은 곳에 가뭄이 6개월이나 지속되고 있어 이곳 열대우림이 사바나 식생대로 바뀌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아마존은 360만㎢의 규모로 세계 동식물 종수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에서 2009년 사이 10년간 매일 3종의 새로운 생물이 탄생하는 공간이라고 세계자연보호기금이 밝혔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생겼을 법한 가뭄-폭우 사이클은 종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최대의 위협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에 의한 우림의 직접적인 파괴도 심각하다. 지난 30년간 우림의 17%가 개발이란 미명하에 사라졌다. 파괴 속도도 놀랍다. 지난 20년간 10초당 1개의 축구 경기장 크기가 사라졌다. 최근에는 육우와 대두 가격이 오르니, 열대우림을 태워 목초지와 경작지로 만드는 것이 유행병처럼 퍼졌다. 그 넓은 지대를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인공위성밖에 없다. 그러니 규제는 사후약방문 격이다.

        아마존 숲에서 목축업자들이 소 사육장을 만들기 위해 지른 불로 연기가 솟고 있다. [경향 Web DB]

룰라 정부 8년간 아마존은 개발론자와 보존론자 사이에서 표류하다가, 결국 개발 논리에 굴복하고 말았다. 룰라 정부는 임기 말기에 삼림법을 개정하여 2008년 이전의 불법 개발자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했다. 대지주와 농업이익이 강하게 포진해 있는 의회 내 논쟁에서 환경론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신 삼림법은 환경규제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관하여, 향후 불법 파괴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주장이 지속가능성 논리를 밀어낸 것이다. 룰라 정부가 밀어붙인 또 다른 치적(?)은 파라주에 있는 벨루몽치 수력댐 건설이다. 중국의 삼협댐, 브라질과 파라과이 접경의 이타이푸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이 댐은 2015년에 가동이 되면 11만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한다. 80억유로가 투하된 이 프로젝트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건 ‘성장가속화프로그램’의 핵심 사업이었다. 하지만 500㎢의 우림지대가 물속에 잠기고, 5만명의 원주민과 농민들이 소개돼야 했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 배우 시고니 위버까지 가세한 환경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룰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1만8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2600만명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 개발주의에 ‘설상가상’


하지만 아마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 불가능할까? 극소수의 예이지만 아크리주의 경험은 우림을 보존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우림을 태우고 그곳에다 유전자 조작 대두를 심는 것은 대지주와 종자회사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하지만 자영농민이나 원주민들은 우림을 보호하면서 고부가가치의 자원을 채취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존에는 나무 외에도 2150종의 다용도 식물이 있다고 한다. 고부가가치형의 채집형 개발이 대안이 될 법하건만, 룰라는 대지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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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수영 /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 samarakim01@hotmail.com


큰 사회 프로그램의 비난에 대한 돌파구

그러나 이러한 비판 여론 가운데에서도 캐머런 내각은 약간은 예상치 못한 대안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정부는 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봉사활동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통신회사나 일부 기업들이 포인트를 적립하면 영화, 레스토랑 등 문화시설을 누릴 수 있는 고객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대형 슈퍼마켓이나 기업에서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영국 정부는 Nectar, Tesco 그리고 Recycle Bank 카드와 같이 기업의 유명한 포인트 서비스와 제휴하여 봉사활동을 했을 때 이와 같은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화폐제도(LETS)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으로서 사회적 공헌을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에게도 이득이 되는 1석 2조의 효과를 갖는 아이디어다.




재원 확보에서도 일단 위기를 모면한 상태다. 2010년 11월 25일 보수당 정부는 당초 예상했던 6천만 파운드의 두 배에 이르는 1.5억 파운드의 자금을 출연하여 ‘큰 사회 은행’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총 목표 금액인 4억 파운드에는 못 미치지만 대단한 수확이다. 
큰 사회 은행에 자금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은행들은 바클레이즈,HSBC, 로이즈 뱅킹그룹, 스코틀랜드 뱅크, 산탄데르 영국 법인 등 5개 대형 은행이다. 
은행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러한 대대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보수당의 협상력 때문이었다. 캐머런 총리는 은행권에서 직원들에게 100만 파운드 이상의 보너스 지급을 할 때 그 세부내용을 공개하도록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은행권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직업으로 보수 문제에 대해서 항상 사회의 눈총과 정부의 감시를 받아왔던 은행원들에게는 환영할만한 협상카드였다. 영국은행협회(British Bankers’ Association)에서는 "은행들이 보수지급과 관련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회적 의무를 알고 있다"며, "정부와 펀드 참여를 논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큰 사회’ 프로젝트는 캐머런의 획기적인 구상에서 출발하여, 황당하고 엉성하다는 비판을 거쳐, 다시 전략적인 대안을 내놓는 방식을 거듭하면서 변모하고 있다. 때문에 아직은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진보파의 예상대로 시장화의 압박을 가속화하게 될지, 아니면 정말로 사회가 커지는 결과를 가져올지 예견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조화로운 사회를 향한 끊임 없는 성찰

그러나 이 초기 단계에서 확실히 아쉬운 점은 하나 있다. 바로 관심의 초점이 "큰 정부냐, 큰 사회냐"와 같이 양과 규모에 치중하여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는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가 되는 애매모호한 단어다. 대처는 1987년 ‘사회’를 ‘국가’라는 말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개인과 가족이 인간의 복지를 개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세상에는 사회라는 실체는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국가의 권력을 대폭 없애겠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캐머런은 ‘사회’와 ‘국가’를 포함하거나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캐머런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실 세상에는 사회라는 실체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와 같은 것은 아니다 (There is such a thing as society. It is just not the same thing as the state)’. 
다시 말해 개인 차원을 넘어섰지만 국가가 아닌 공동체, 예를 들어 시민사회나 시장이 엄연히 존재하고, 큰 사회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는 큰 국가가 아니라, 큰 시민사회나 큰 시장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시민사회의 부흥을 암시하는 이러한 표어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2010년 10월 3일 미래포럼에서 발 빠르게 큰 사회 프로젝트를 한국의 시민단체들에 소개하고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지난 노동당의 ‘큰 정부’이나, 보수당의 ‘작은 정부’ 그리고 최근의 ‘큰 사회’ 담론에서는 질과 과정에 대한 성찰이 빠져있다. 
정부의 역할을 시장이 대신한다거나, 정부가 줄어들면 시민사회가 커질 것이라는 계산은 다소 기계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 정부, 시민사회는 결코 다른 영역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시장만큼 자원을 자유롭고 신속하게 교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드물며,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시민사회는 지역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이고 따라서 시민들의 실상과 욕구가 제일 잘 반영된 공간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행정 운영을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나 공동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시민사회가 자유롭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진작시키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조율과 큰 그림을 짜는 역할은 모든 이익집단과 단체를 넘어설 수 있는 정부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부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따라서 누구의 역할을 줄이고, 늘이느냐의 문제와 함께 반드시 논의 되어야 하는 것이 ‘큰 사회’라는 틀 안에서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어떻게 권력을 배분하고, 협력하며, 자신의 역할을 담당해나갈 것이냐는 문제다. 
다시 말해 ‘큰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화로운 행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상설적인 협상, 토론기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파트너십이라는 명목 하에 한쪽 기구, 예를 들어 시장에만 권력이 쏠리는 시장화나, 정부의 역할만 커진 비대한 정부나, 시민사회의 카오스를 면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communication)’만이 민주주의 사회를 성숙시키는 최고이자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큰 사회 구상에는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어떻게 소통하면서 세부 사업을 진행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인 큰 사회가 말 그대로 큰 사회를 넘어 조화로운 사회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몸집 크기만이 아니라 소통이 흐를 수 있는 혈관을 놓는 작업이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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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수영 /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 samarakim01@hotmail.com


큰 사회 담론에 대한 일차적 평가 

사실 캐머런이 ‘큰 사회’ 구상을 처음 발표했을 때, 여론의 전반적인 반응은 어리둥절함이었다. 

보수파 역사가 제임스 헌터는 큰 사회는 ‘시민의 책임감과 자존감을 고양시키고, 참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철학’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파와 좌파가 ‘큰 사회’라는 모토에서 받은 첫 인상은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큰 사회 정책과 관련한 시사 및 학술토론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토론 주제는, "그래서 결국 보수당이 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였다. 
추상적인 뜻 때문에 비판의 초점도 다양했다. 일부 보수 여론은 큰 정부가 제 3의 길을 따라서 한 ‘블레어의 유령’에 불과하다고 혹평을 했고, 진보 여론은 국가의 힘이 없어도 풀뿌리 시민사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보수당 내부에서는 캐머런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큰 사회 프로젝트를 위해 네 도시를 ‘전위 지역 (vanguard area)’으로 지정했는데, ‘전위’란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와 레닌이 사용했던 용어다. 또한 공동체 운동 활동가들을 정부로 직접 초대하며 공동체 조직화(community organising)와 주민 지도력(group leaders)의 발굴을 격려한 것은 사회개혁가인 알린스키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큰 사회 프로젝트를 ‘보수파의 급진적인 혁명’이라고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당에서는 큰 사회 담론을 허울 좋은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대한 사회라는 수사로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철회하려는 의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밀리반 노동당 당수와 더불어 노동당 전 장관인 크리스 브라이언트도 큰 사회 정책을 ‘싼 정부’ 정책이라고 비하했으며, 6만 명의 회원이 속해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 사회단체인 Unite the Union도 큰 사회 담론은 ‘시장화’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큰 사회는 그저 담론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강령과 공약은 대부분 지루하기 마련인데 큰 사회 구상은 흥미진진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상이 상당히 독특하고 세밀하고 급진적인 프로그램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회 프로젝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실제 실행되는 하위 프로그램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큰 사회 프로그램들

큰 사회 기획 중에 먼저 관심을 끄는 점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동체 조직화(community organizing)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전 정부들도 지역의 시민단체나 자선단체 및 자원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들을 해왔다. 그러나 캐머런 내각은 이와 같은 간접적인 지원을 넘어서, 정부가 직접 5000여명의 공동체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훈련시켜, 이들이 각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조직을 건설하고, 확대시키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이외에도 16세의 아이들을 활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는 목적으로 이른바 시민권 서비스(National Citizenship Service)라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릴 때부터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지역공동체 활동에 직접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공동체 조직화’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알린스키에게 영향을 받는 빈민운동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진보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 조직 운동에 국가가 개입하여 주민과 학생들을 훈련하는 방식은 알린스키의 사상보다는 상명하달식으로 마을을 조직했던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 육성 과정을 떠오르게 한다. 때문에 제럴드 워너라는 논평가는 ‘위로부터 명령하는 정부의 정책을 철폐한다고 선언한 정부의 수상이 큰 사회 정책을 사회에게 하달했다’며 캐머런의 자가당착적 말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큰 사회 구상을 한국식 새마을 운동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큰 사회 구상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정부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행정 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 골자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지방정부에서는 매달 시민들에게 각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 각 지역의 범죄율과 종류 등을 밝힐 예정이다. 
또한 지역사회 주민들이 지방행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지방정부의 예산계획, 의결, 집행과정을 공개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곳에 얼마의 예산을 분배할지에 대한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정부가 지방세를 올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이나 우체국이나 지역의 가게들 문을 닫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도 공동체 시민들에게 부여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노동자소유기업 등 제 3섹터 시장을 육성하며, 공공영역의 서비스를 제 3섹터 시장에게 넘긴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예를 들어, 공공영역의 노동자들이 노동자소유기업을 창설하여 독립하면, 지방정부가 지금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던 사회복지서비스 프로그램들을 이들에게 위탁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지역의 전철 및 마을버스 운영, 인터넷망 구축 사업, 쓰레기 수거 및 재활용 사업, 학교운영 등도 지역주민과 민간에게 넘기겠다는 계획도 큰 사회 구상에 포함되어 있다.




정책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재원확보 방법에 대해서는 더 파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공동체 운동가를 훈련시키고, 협동조합 및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등 ‘큰 사회’ 프로젝트에 드는 기금을 은행의 휴면예금으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몇 십 년 간 영국 은행들에 잠자고 있는 휴면예금이 약 4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같은 휴면예금을 모아 ‘큰 사회 은행(Big Society Bank)’을 설립하면 정부의 예산을 쏟지 않고도 자선단체와 사회적 기업, 자원봉사 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캐머런 내각은 위와 같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기념하고 홍보할 ‘큰 사회의 날(Big Society Day)’을 지정하여 공포할 것이라고도 한다.

큰 사회 프로그램들에 대한 평가

큰 사회 프로젝트의 일부 사업들은 아직 지방자치행정이 완전히 뿌리내렸다고 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다소 무모해 보인다. 예산집행을 지역주민에게 공개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한다는 것이나, 학교 운영에 지역사회 주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이 폐쇄적인 곳에서는 자칫하면 지역의 유지나 일부 사회단체가 예산집행이나 사업위탁을 독차지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보다는 자치의 경험이 오래된 영국사회의 경우 이러한 일이 완전 허황된 계획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큰 사회 기획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이미 노동당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던 사업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예전부터 ‘우리 길거리 고치기(Fix My Street)’ 운동을 진행해 왔다. 그것은 지방정부가 연간 집행해야 하는 예산이 남았을 때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고 공사하는 데 돈을 쏟아 붙는 관행을 없애고, 실제로 꼭 고쳐야 하는 거리를 보수하는 데 예산을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픽스마이스트리트(www.fixmystreet.com)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주민들이 직접 발견한 벽의 낙서, 고장 난 가로등, 깨진 보도블록을 신고하는 것이다. 구글의 지도창을 이용해 문제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면 관공서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다음 날 해당 관공서에 문제가 보고되고 바로 해결될 수 있다. 
이는 동네 구석구석을 전부 살피기 어려운 구청공무원들이 지역 주민들의 협력으로 예산을 꼭 필요한 곳에 집행할 수 있는 효과를 갖는 전략이다. 이 운동을 통해 주 평균 1,000여 건의 문제지역이 정부에 보고되고 있고, 2010년 11월 현재까지 111,467건의 도로공사가 이를 통해 진행되었을 만큼 성공한 정책 아이디어다. 캐머런이 제안한 참여적 예산집행(participatory budgeting)은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큰 사회 정책에 포함된 자유 학교(free school)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미래를 위한 학교 세우기(BSF: Building Schools for the Future)’라는 이름으로 노동당 정부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BSF는 영국 정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학교 리모델링 프로그램으로 낙후된 학교 시설을 시장의 자금력을 동원해 개선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BSF는 시장의 논리에 건설 및 진행과정을 맡기지 않는다. 우선 건설회사들은 원칙적으로 학교 주변지역의 주민과 실업자들을 건설노동자로 고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 건설 및 리모델링 과정에 인턴으로 직접 참여하도록 기회를 주고, 그 중 유능한 학생을 건설회사에 특별 채용하는 기회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한 학교 시설은 방과 후에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여 지역 문화센터로 사용하는 것이 BSF의 목적이다. 지역사회, 시장, 그리고 정부가 BSF를 중심으로 매우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 3섹터 시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아직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국은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수가 전체 노동자의 5%를 넘어섰다. 따라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육성은 갑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United the Union이 지적했듯이 첫째는 인력의 문제이고 둘째는 재원의 문제다. 
첫째, 인력 면에 있어서, 영국은 자원봉사활동의 전통이 강한 사회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예산감시에서부터 쓰레기수거, 마을버스 운영까지 민간인들이 참여하려면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처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빡빡한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가 정부 행정 전반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사회참여에 할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논평가 에드 웨스트는 결국 종교단체와 모임처럼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일부 사람들만 봉사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The Times는 "만약 마을버스 운영과 같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한 사업을 민간 자원봉사 단체들에게 맡긴다면, 초기에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마을버스를 운전하겠다고 나서겠지만, 결국 몇 년이 못 가서 열정은 식어버릴 것이고 모든 마을버스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고 전망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 년 간 약 3 백만 명의 외국인이 이주해왔을 정도로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되어버린 영국에서, 정부의 조율과 조정이 없이 각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자치를 맡긴다는 것은, 결국 여러 민족과 이민자들의 분열과 분리,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마디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참여에 기댄 사업들은 지속성, 전문성 그리고 형평성 면에서 현저히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재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큰 사회 기획의 핵심재원을 휴면계좌의 예금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예금을 ‘훔치려’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우려가 되었던 점은 결국 정부의 구상이 발표되면서 시민들이 휴면계좌를 다시 살려서 예금을 출금하거나, 휴면계좌를 통해 은연중에 수익을 누렸던 은행이 순순히 기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큰 사회 정책을 실행하는 데 총 4억 파운드의 예산이 들 것이라고 계획했지만, 이보다 훨씬 적은 6천만 파운드로 큰 사회 은행이 출발한다는 발표했고, 따라서 부족한 재원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가디언(The Guardian)과 같은 진보적 언론은 프로젝트가 안정적인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탄탄한 인력과 자본을 가진 시장기업이 공공서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교통, 의료서비스, 인터넷 시설 구축을 민간에게 맡긴다는 뜻은 실체가 모호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시민사회조직에게 맡긴다는 말이 아니라, 시장기업에 맡긴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크로동(Croydon)과 같은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시민사회단체에 정부가 지원하던 예산의 70%를 삭감하기까지 했으니, 큰 사회가 사실 시민사회단체나 공동체 조직을 촉진시킨다는 정책이라기보다 정부의 재원을 줄이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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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에 계신 김홍수영(samarakim01@hotmail.com)님께서 유로진보넷에 올리신 글입니다. 저자의 동의를 얻어 이 곳에도 게재합니다.


1997년부터 지난 14년 간 집권했던 영국 노동당 내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0년 5월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이끄는 보수당이 정권을 잡았다. 

‘큰 사회(Big Society)’ 프로젝트는 노동당과 보수당이 접전을 벌이던 5월 총선부터, 이후 보수당과 자민당의 연립 내각이 출범하고현재에 이르기까지, 올 한 해 동안 영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보수당 정부의 새로운 정책 청사진이다. 
‘큰 사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과거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의 정책 지표인 ‘제 3의길’만큼이나 뜨겁다. 연일 뉴스와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개그만이 풍자소재로 삼기도 한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학계에서도 ‘큰 사회’를 주제로 연구와 논평을 내놓는것이 대세가 되었다. 정계에 몸 담은 사람이라면 큰 사회라는 말을 하루에도 한번은 하고 넘어갈 만큼 큰 사회의 사회적 파장이 문자 그대로 크다. 

아직 보수당이 집권한 지 1년이 안 되었고, 큰 사회라는 공약이 밑그림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 7월 이후부터다. 따라서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조금 이르다. 하지만 큰 사회 담론은 대처리즘이나 제 3의 길처럼 영국을 넘어서 세계 정책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큰 사회가 시민단체를 통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점에서, 민간 파트너십으로 진행되고 있고 사회적 기업을 자활사업단의 발전 모델 중 하나로 보고 있는 한국의 자활사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따라서 영국의 ‘큰 사회’ 프로젝트에 대한 비평은 한국 사회의 사회정책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2월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AP


‘큰 사회’ 프로젝트가 표방하는 핵심모토는 화이트홀(영국 관청 밀집 구역)로부터 지역사회로 권력을 대대적으로 이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수-자민당 내각은 

1) 시민사회단체에 공공서비스를 위탁하고
2) 협동조합,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 등 제 3섹터 시장을 육성하며
3) 지역사회 주민들이 지방 행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4) 정부의 행정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이 청사진을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는 우선 셔턴, 버크셔, 에덴밸리, 리버풀 4개 도시를 정책 시범 실시 지역인 이른바 ‘전위 지역(vanguard areas)’으로 지정했다. 또한 지난 7월 지역 공동체 운동 활동가들(community activists)과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초대해 큰 사회 네트워크(Big Society Network)라는 전국 시민단체 조직을 발족시켰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Teach First의 창시자인 냇 웨이를 큰 정부 프로젝트의 공식 정책 조언자로 내정하고, 그를 상원의회의 의원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이러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이 적은 거대한 정부(big government)가 갖는 폐단을 줄이고, 영국의 파손된 사회(broken society)를 아래로부터 개혁하여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된 거대한 사회(big society)를 재건하는 것’이 영국의 새로운 국정 철학의 목표라고 밝혔다. 
사실 이와 같은 보수당 내각의 국정 철학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2005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보수당의 당수가 된 캐머런이 주도적으로 구상하고 밀고 나갔던 공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회 프로젝트를 말할 때, 캐머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전략가, 캐머런 총리 

캐머런 총리는 한마디로 영리한 이미지 메이커이자 전략가다. 
정치선거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는 케네디와 닉슨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케네디에게 닉슨이 결정적으로 패배하게 된 이유는 당시 미국 선거에 도입되기 시작한 TV 토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경쟁이 관건인 TV 프로그램에서 평범한 스타일인 닉슨은 수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케네디를 이기기에는 어려웠다. 
물론 선거에서는 정책내용과 유권자의 이해관계가 승리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하지만 정치가 사람의 마음을 끌고 이끌어가는 활동이라고 할 때 후보자의 이미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서도 정치인의 이미지, 상징색깔, 로고송이 중요한 선거 전략 포인트가 되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에 있어서 캐머런도 케네디만큼 영리하고 한편으로는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운이 좋았던 것은 그의 경쟁자가 고든 브라운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였던 토니 블레어에 이어 노동당 당수가 된, 정책 브레인 출신 고든 브라운은 일선 지도자가 되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지루하며 추진력이 없다는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캐머런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및 경제학을 졸업한 수재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학교 클럽에서 마약을 하며 방황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 함께 부각되면서, 능력도 있지만 원칙만 고수하지는 않는 자유분방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캐머런의 역동적이고 도발적인 모습은 오히려 보수적인 이미지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을 탐탁지 않아 했던 노동당의 일부 지지층과 젊은 층의 표를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아내 사만다의 임신 소식은 캐머런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총선의 ‘비밀병기’가 되어주었다. 캐머런 부부가 어린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임신 소식이 상당한 동정표를 끌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략가적 면모는 정치적 수사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대처리즘은 아니지만 대처를 존경한다."고 말하며, 보수당의 대처 지지자들을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대처리즘의 비판세력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자신을 "토니 블레어의 상속자"라고 선전하며, 블레어 이후 리더십 있는 지도자를 찾던 노동당 지지자까지 자신의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큰 사회’ 담론은 캐머런 스스로 선전하듯이 ‘제 3의 길’의 보수당 버전이다. 블레어 노동당 전 총리가 사민주의의 길에 자유주의의 길을 가미한 제 3의 길을 발표하면서 진보당 내에서 보수적 색깔을 띤 것처럼, 캐머런은 보수당 총수로 집권했지만 보수당 내에서는 다소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공공부분을 시장과 개인에게 이양하여 정부의 재정부담 줄이는 것이 목표였던 ‘대처리즘’과 중앙정부의 권력과 공공서비스를 지역사회와 공동체로 이양한다는 ‘큰 사회’는 결과적으로 같은 그림일 수도 있다. 이것이 노동당의 새 지도자 에드 밀레반(Edward Miliband)이 ‘큰 사회는 민영화를 포장한 말장난일 뿐’이라고 비난한 이유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캐머런의 정책 청사진에서는 대처를 비롯한 보수당이 공공연하게 밀고 나갔던 ‘작은 정부’라는 용어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대신 작은 정부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주는 ‘큰 사회’라는 표어를 내건다. 

캐머런은 큰 사회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큰 사회 정책은 정부 재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크고 멋지게 만들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절약되는 효과가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는 작아질(smaller)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의 목소리는 더 커질(louder)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국정에 참여하도록 촉진시키고 신장시키고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지만 정부의 역할을 줄인다는 표현보다는 사회의 기능을 촉진한다는 말이, 문제를 축소한다는 표현보다 장점을 확대한다는 말이 훨씬 듣기 좋다. 캐머런 내각이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은 기가 막힌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노동당의 비판처럼 단순히 말장난이라고만 비하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정책이 어떤 지향점을 표방하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가 정책의 공급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큰 사회’는 수요자적 관점에서 정책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진짜 의도는 정부 예산 절감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시각에 반전을 시도하는 도발, 그것이 캐머런이 보수당의 10여 년간의 열세 속에서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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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 국방장관으로 이라크전쟁을 주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의 회고록이 지난 8일 출간됐다. 그는 회고록에서 2003년 방한 당시 한국의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이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다고 썼다. 50여년 전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죽어간 은혜를 망각하고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전쟁에 동참하기 꺼렸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동일한 성격의 사건으로 믿고 있는 그의 역사 인식이 놀랍다. 유엔 결의를 통해 세계 각국이 자발적으로 참전한 한국전쟁과 ‘명분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같을 수는 없다.

한국이 ‘역사적 기억상실증 환자’라면 2차대전 때 미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되찾았으면서도 이라크전에 동참하지 않은 프랑스에도 같은 진단이 내려져야 한다. 또 미국을 따라 전쟁에 동참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받을 이유도 없다.

한국은 과거에 빚진 것이 있으니 많은 국가들이 거부한 명분없는 전쟁에도 당연히 동참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동맹국 국방장관이 아니라 빚을 못 갚으면 살을 잘라가겠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모습이 연상된다.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세가 심각한 쪽은 따로 있다. 사담 후세인이 세계 안보를 위해 제거돼야 마땅한 위험한 독재자가 된 것은 불과 수년 전까지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후세인에게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실을 ‘편리하게’ 망각했기에 가능했다. 또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야만적 고문을 승인했던 럼즈펠드가 회고록에서 이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은 것은 불편한 지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독특한 증상의 기억상실증 때문일 것이다. 

부시 행정부 초기 한·미관계가 삐걱거렸던 이유는 한국이 배은망덕한 탓이 아니라, 미 행정부에 럼즈펠드 같은 인식을 가진 ‘네오콘’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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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 발목이 잡힌 것은 순전히 닐니리맘보 때문이었다. 꽃분홍 실크 브라우스 박종선 아저씨의 닐리리맘보만 아니었어도...


한인회 회장을 맡은 순희 언니가 내게 전화해서 한인회 추석잔치를 도와줄 수 있을지 물었을 때 나는 차마 바빠서 못 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밤근무를 하면서 한인회를 이끌고 있는 언니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독일 사람인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건강이 안 좋아서 골골하던 남편은 순희 언니네 아저씨 혼자서 그 많은 식탁과 의자를 끌게 할 수는 없다며 자기가 먼저 승낙해 버렸다.

막상 잔치날이 되었을 때 나는 미리 가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4대강사업 국민소송에서 정부측 위증을 증명하는 독일 자료를 날짜 맞춰 번역하느라고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먼저 가버렸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단 가서 준비만이라도 도와주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헐레벌떡 잔치 장소에 도착했다. 시작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지만 벌써 준비가 다 끝나 있었다. 아까 버럭 화내면서 먼저 나간 것이 마음에 쓰여서 남편부터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남편도 늦게 온 탓에 도와줄 일이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순희 언니네 아저씨가 무대 위의 태극기를 반듯하게 고쳐 달면서 “그 사람 컨디션이 안 좋아보이길래 마침 그 쪽 방향으로 가는 차편이 있어서 돌려보냈다”고 마치 큰형처럼 푸근하게 말했다.

남편도 못 도와줬다면 그 많은 탁자들과 의자들을 대체 누가 날랐단 말일까? 몇몇 언니들이 그 무거운 것들을 손으로 들어서 날랐는 것이다. 올해는 도와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나와서 슬슬했다며 영호 언니는 생색도 내지 않고 순하게 웃었다. 나는 언니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언니들은 구박은거녕 오래간만에 이렇게 얼굴 보니까 반갑다고 나를 얼싸안았다.

홀에는 탁자며 의자들이 정렬되어 곱게 물든 단풍 장식을 이고 앉아 추석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부엌에선 잔치 음식을 커다란 쟁반에 소담스럽게 담아내왔다. 잡채, 삼색나물, 고기, 생선전, 야채전, 오징어 무침, 김밥, 김치, 깍뚜기가 뷔페 상을 가득 채웠는데도 음식쟁반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독일의 한인잔치를 빛내주는 올디 가수 박종선 아저씨가 시작 전에 몸풀이로 부르는 흘러간 옛노래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서로 어울려 나를 유혹했다. 가지 마, 가지 마.

나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4대강이 생각나서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어나려는 순간 나를 다시 주저앉힌 것은? 닐니리 니일니리 닐니리맘보오 풍짜풍짜~ 내 몸이 저절로 끄덕거렸다. 하필이면 왜 이 노래인지, 닐리리맘보가 내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기억도 안 났지만 난 순간적으로 신나게 춤추며 놀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날 밤, 나는 원도 없이 춤을 췄다. 음악에 맞춰 사교춤을 추는 나이 지긋한 한독 거플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먼저 가버린 남편을 아쉬워하던 나는 맞은편에 앉은 꼬마 총각이 음악에 맞춰 끄덕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꼬마 총각 손을 잡고 앞으로 와다다다 뛰어나가서 우아한 커플 옆에서 개다리춤을 마구 췄다. 꼬마 총각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흥겨운 춤판이 벌어졌다. 한인회 임원 언니가 뒤에서 음료수 팔다 말고 혼자서 몸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언니를 무작정 앞으로 끌고 나왔고, 그날 처음 한인회 잔치에 나온 명주가 그걸 보고 센스 있게 얼른 쫓아가서 음료수 판매를 맡았다.

명주와 현정이는 그날 한인회 잔치에 처음 나왔다. 글을 통해 만난 우리는 서로 좋게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만날 시간이 없어서 늘 아쉬웠다. 제대로 한번 만나자고 벼르기만 하면서 몇 년을 보내느니 일년에 두 번씩 한인회 잔치에서 얼굴이라도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 적이 있는데 그날 그것이 실현된 것이다. 그냥 얼굴만 봤어도 기뻤겠지만 그 와중에 우리는 흘러간 옛 사연을 풀어놓으며 서로 남의 일에 감동해서 찔끔거리며 울기까지 했으니 한인회 잔치를 그야말로 알뜰하게 활용한 셈이다.

현정이가 물었다.
“언니, 저기 어린아이 안고 있는 젊은 부부 있지, 누군지 알아?”
“한인회 잔치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난 누군지 모르겠어.“
현정이는
”그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그 커플을 손으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통성명이 이루어지고 신상정보가 교환되었다. 다음 음악이 나오자 그 부인이 와서 현정이에게 춤을 청했다. 나는 너무나도 시원하고 신선한 현정이의 태도에 존경의 눈길을 마구 퍼부었다. 몇 년이나 한 가족이 와서 혼자 놀고 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눈인사 외에는 따스한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독일식 예절이랄까 독일인 특유의 망설임이 어느새 내 몸에도 배어 있었다.

한국에서 산 시간의 두 배가 훨씬 넘는 37년의 세월을 독일에서 보내고 있는 나. 나는 한국인들과 늘 접촉하며 산 것은 아니지만 한인회 잔치에는 꼬박꼬박 나갔다. 언젠가 친구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내게 물었다. 어려서 한국을 떠나서 독일 사람처럼 살면서 한국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없어 보이는 내가 한인회 잔치에 열심히 쫓아다니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당장 내게 필요한 모임은 아니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모임이라면 지지하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평생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한인회 잔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필요할 모임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게 당장 필요한 모임이었던 것 같다. 독일인들과 경쟁하며, 또는 그들에 동화되어 사는 동안 어느새 내 몸 안에 스며든 독일식 정서를 털어버리고 하루 저녁만이라도 옛날의 정서로 돌아가 보는 후련한 굿판이었던 것이다. 이런 굿판을 통해 정기적으로 영적인 해방감을 맛보며 다시금 독일 생활에 매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편인 나는 우리 아이들을 독일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며 키웠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은 크면서 나름대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이 한국인의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 별 문제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가볍고 따스한 한국식 정서를 한인회 잔치를 통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었다.

늙어서 치매가 들면 나중에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는 수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평생을 함께한 독일인 배우자와 자식들도, 한국에 사는 부모 형제도 소용이 없다. 오직 같은 도시에 사는 한인들만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들이 될 것이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모국어로 말 붙여주며 김치라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뮌헨에서 만난 언니들, 동생들과의 인연을 각별하게 여긴다. 우리는 극한상황이 닥치면 서로에게 가족 이상으로 의지가 되어줄 사람들이다. 

곧 있을 한인회 구정잔치를 생각하면 나는 즐겁다. 이런저런 이익을 떠나서 그냥 즐겁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만날 일이 즐겁고, 한국식 잔치 음식을 먹을 일이 즐겁고, 춤추고 놀 일이 즐겁다.

그리운 님들! 2월 12일에 뮌헨에서 만나요, 닐니리맘보~


뮌헨 한인회 구정잔치는

2011년 2월 12일 토요일 오후 5 시

Pfarrsaal der Kreuzkirche in der Hiltenspergerstr. 55, 80796 München (U2 Hohenzollernplatz 하차)에서 열립니다.

신순희 회장님(Tel. 089-848532)이나 한인회 홈피(http://www.haninhoe-muenchen.de)에 문의하시면 친절하게 안내해드립니다.

지난 해 마음만 있었지 사정이 안 되어 만나지 못한 친지들과 한인회 구정잔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세요.

*글,사진 출처 : http://www.hanamana.de/hana/(빨간치마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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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말이 되자 세계적인 브랜드숍들이 모여 있는 호놀룰루의 ‘알라 모아나’ 쇼핑몰 풍경이 바뀌었다. 상점가를 도매하다시피 붙어있던 연말 세일 포스터는 다 떨어지고 대신 “봄 신상품 입고” 선전물이 나붙었다.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 검은 금요일로 시작했던 연말연시 세일의 막은 내리고 상가도 고객도 ‘정상’으로 돌아온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서양 풍속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는 악운이 깃들었다는 ‘13일의 금요일’을 말한다.

하지만 쇼핑과 관련해서는 11월 넷째 주 금요일, 즉 추수감사절 다음 날을 말한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날부터 가게 운영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빨간 잉크 대신 검은 잉크로 장부를 기재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이날을 기점으로 미국의 백화점과 상점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특수를 노린 대대적인 장기 바겐세일에 들어간다. 새벽에 상점 문을 열고 한정수량의 몇 가지 핵심 상품을 무지하게 싼 가격으로 내놓고 전체적으로도 추가 할인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모은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이른 아침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베스트바이” 매장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쇼퍼들 (AP 사진, Peter Pereira)

이렇게 시작되는 ‘홀리데이 세일’의 기세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에 최고조에 달한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지난 직후인 이때가 미국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구나 전자제품, 보석 등 단가가 높은 물품의 구매희망 목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다 이때 사기도 한다. 새해로 접어들면 재고상품이 줄어들면서 세일의 기세는 한풀 꺾이지만 매장에 따라서는 1월말까지 홀리데이 세일을 진행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미국 시장에서 연말연시 두 달간의 매출액이 일 년 전체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실제 2009년 미국 백화점의 12월 매출액은 전달에 비해 45% 증가하였고, 12월 한 달간의 매출액은 일 년의 14%를 차지하였다 (www.census.gov/retail).

11월말이면 미국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겨울인데, 할인상품을 건지려는 사람들은 새벽에 매장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가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밤부터 줄을 선다. 그러다가 심심치 않게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2008년에는 최초로 상점 직원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새벽 5시에 문을 연 뉴욕 주의 한 “월마트”매장에서 물밀 듯이 덮쳐들어오는 고객들에게 밟혀, 34세의 직원이 사망한 것이다. 작년에도 총기가 등장하는 폭력사건이 보도되었다. 위스콘신 주의 한 “토이져러스” 매장에서 새치기를 하려던 21세의 여성이 항의를 듣자 줄 선 사람들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체포된 것이다. 토이져서스 매장은 작년부터 블랙 프라이데이 개점 시간을 추수감사절날인 목요일 밤 10시로 더욱 앞당겼고, 사건은 매장 문을 열자마자 발생하였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타겟” 매장 계산대에 줄 선 고객들 (AP 사진/ Jeff Chiu)


미국에는 왜, 이렇게 폭력사태까지 유발되는 홀리데이 쇼핑 관행이 자리 잡은 것일까? 실제로 미끼상품은 얼마 되지 않고 한정 판매를 하기 때문에 얻을 확률도 매우 낮지만, 사람들은 밤새워 줄을 서고 새벽부터 쇼핑을 시작하여 계획에 없던 다른 많은 물건들을 사게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쇼핑에 들이는 시간과 차량 연료, 스트레스 등을 생각한다면 온라인 쇼핑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특정한 날 몰려나가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일까? 언론 보도에서 학자들은 ‘블랙 프라이데이’의 쇼핑관행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모방 심리이고 자신의 소비에 자부심을 가지기 위한 (나는 할인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득을 보는 소비자라는) 경쟁 심리라고 설명한다. 한편 쇼퍼들, 특히 여성 쇼퍼들은 ‘이날’의 쇼핑은 오래전부터 여자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해온 관행이고 전통이며, 휴가 후에 주변사람들과 나눌 주요 화젯거리라고 답한다.  

미국 밖의 시선에서 보자면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중소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판매 상술이 극적으로 구현된 광경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품 가격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오래된 고전적 논쟁 주제이다. 투입된 자본과 노동력의 가치로 계산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소위 자유 시장에서 형성되는 수요와 공급 곡선의 접점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미국의 홀리데이 세일은 후자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한 대사회적 합의이자 천명이다. 이 시기는 주기적으로 공급가격을 내려 기존 소비 수준을 유지할 뿐 아니라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창출하는 식으로 시장체계를 보강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재건과 보강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라는 의례와 결합하여 도덕적 동기가 수반되는 전통과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폭력사태는 자본주의 시장시스템이 전통적 의례 가치와 결합하면서 생겨나는 긴장을 대변한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파티를 열고 선물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변관계를 유지하고 확인하는 시기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쇼핑을 통해 실현된다. 작년 총기사건의 주인공인 21세 여성도 어린 딸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생긴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쇼핑을 통한 사회적 위치 확인의 시대가 수요공급 곡선의 시장가격 체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할 때, ‘싸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가격의 실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그래프상의 시장가격 변화가 싸다와 비싸다를 상대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쇼퍼들은 어떤 제품이 기존 가격보다 싸졌다고 판단되면 필요와 무관하게 구매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여전히 비싸다고 판단되면 그 희소성으로 인해 물품의 구매와 소유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가히 소비의 덫이라 할 만한 시대를 이끌고 있는 미국 연말연시의 풍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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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가끔 등장하는 ‘소식통’이란 단어는 특정 사안에 정통하고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사안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소식통’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이 두루뭉술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정보를 알려준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 공무원 사회에는 그 소식통을 반드시 가려내 정보 유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팽배하다. 특히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을 다루는 외교통상부는 기사 내용은 둘째고 발설자 색출이 우선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가 나오면, 서울의 외교부 간부들은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이 발설자라고 곧바로 단정한다. 그리곤 담당자를 질책하고 징계한다. 세계의 정치·외교·안보 중심도시 워싱턴에 수백, 수천의 ‘소식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듯하다.

인맥이 밑천인 기자들은 어디를 가든 필사적으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기자의 본능이자 생존의 과제다. 매일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가동시켜 사안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워싱턴 특파원 중에 오직 현지 공관 직원만을 취재원으로 삼고 있는 어리숙한 기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곧 대사관 직원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특파원의 소스는 대사관이 전부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직원들을 불신하고 기자들의 취재노력을 폄훼하는 일차원적 인식 때문에 생사람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애꿎은 해외의 일선 실무자들을 닦달하기 전에, 본부 고위직 간부 중에 특정 언론에 정보를 흘려주고 그 언론이 자신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인사들은 없는지 먼저 살펴봤으면 좋겠다. 또 기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면 언론 접촉 차단에 앞서 적극적인 소통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속는 셈치더라도 한번 믿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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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며칠 전에 올린  '(운하) 한반도에 퍼지는 역행침식 현상' 을 읽은 한 네티즌께서 그 내용을 증명하는 사진들을 찾아서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쓴 글이지만 그 내용을 사진으로 직접 확인하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한번 보셔요.

<이하 목로주점님의 글>
님의 글을 읽고 정말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검색을 좀 하였습니다. 사실 지난 추석 신진교가 무너진 것도 독일 땅에 있으니 전혀 모르고 있다 뒤 늦게 알았거든요.
사진들을 보니 그 역행침식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이 가네요.

추적 60분에서 서울의 남산 규모의 자갈과 흙을 강바닥에서 퍼냈다고 보도한 바로 그 곳, 여주 근방 남한강 사업구간만 찾아보았는데 그 곳으로 흘러드는 샛강만도 6개, 거기서 모두 침식현상이 다음과 같이 일어나고 있어요. ㅠㅠ

간매천 둑의 무너짐 (상류쪽 방향) - 아래 사진


간매천 옆의 논길도 무너지고..(하류쪽 방향) - 아래 사진
 


금당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한 하상보호공도 물의 힘에 싹쓸이..- 아래 사진



여주읍을 가로지르는 소양천의 둑이 와르르- 아래 사진



소양천 둑 옆의 도로 지반이 완전히 꺼졌어요.- 아래 사진



이런! 연양천의 신진교는... - 아래 사진



연양천 끝에 설치한 하상보호공 역시 다 쓸려나갔네요.- 아래 사진



금당교 교각은 허공에 붕 떠있어요. 이게 강바닥이 침식되어 다 깍이는 역행침식인거죠?- 아래 사진



여주 사는 친지에게 물었더니 부서진 다리만 급히 철거하였고 나머지 무너진 부분은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는군요. 강을 계속 퍼나가는 공사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로를 수리하는 것보다 더 급한가봐요.

첨에 강바닥에서 퍼낸 그 모래와 자갈을 몽땅 팔아 지자체와 정부가 반씩 나누어 갖는다는 말에 얼씨구나 했을 여주시가 이렇게 허물어진 피해지역의 공사비용으로는 모래 판 값으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이젠 실감을 하겠네요.
그러니까 말씀하시는 강바닥의 준설로 역행침식이 진행된다는 것은 이런 현상이 이제 앞으로 계속 생긴다는 뜻인가요?

<이상 목로주점님의 글>
목로주점님의 질문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님이 하신 똑같은 질문을 KBS 취재진이 인터뷰에서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님께 드렸습니다. 답변은 "이제 시작입니다"였습니다. 울고 싶습니다."
인터넷으로 마음을 모아 진실을 밝혀주시는 네티즌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랫글 '(운하) 한반도에 퍼지는 역행침식 현상' 을 퍼가신 고마운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이 사진들도 퍼가셔서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모두가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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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올해 서울에는 평소의 겨울보다 눈이 더 많이 온 것 같다. 적어도 들리는 느낌으로는 그렇다. ‘서울에 눈이 옵니다. 올 예정입니다라는 뉴스를 꽤나 많이 들은 것 같다. 아니면 눈이 많이 와서 도로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대중교통은 혼잡하다는 뉴스들. 그런데, 그런 뉴스를 들을 때 마다 도대체 그 만큼의 눈이 뭐가 대설특보란 말인가 하고 시라큐스에서 몇 해 보낸 사람 답게 비웃고는 한다

통칭, 업스테잇 뉴욕(Upstate New York) 에 속해있는 시라큐스는 엄청난 적설양으로 악명이 드높다. 나의 한국의 상황을 보며 느끼는 비웃음을 뉴욕타임지(12 23)에서 잘도 표현했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시라큐스 사람들도 다른 지역(최근의 맨하튼의 폭설로 인한 JFK 공항 폐쇄라던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As much as the people here enjoy complaining about the snow, they may take greater pleasure mocking the less hardy citizens, for whom snowfall is a catastrophe rather than just weather.” 여기 시라큐스 사람들이 눈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즐기는 것 만큼, 그들은 눈오는 것이 재앙인 지역에 사람 사람들을 놀리는 것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낀다. 라고(꽤나 재밌는 기사니 시간 있으신 분들은 원문: http://www.nytimes.com/2010/12/23/nyregion/23snow.html?_r=3&hp 를 읽어보시길

그도 그럴 것이 아래에 다시 말하게 되겠지만 95시간 동안 단 한시간의 쉴 틈도 없이 눈이 왔을 때 조차 여기의 공항은 단지 15분간 운행을 중지했고, 다른 공공기관및 학교도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12월 눈오던 날의 시러큐스


더 춥고 더 눈 많이 오는 곳도 물론 있지만, 적설량에 있어서는 사실 시라큐스 알래스카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다 라고 쓰고 실질적으로 얼마나 내리는지 정확하게 알아봤더니 알래스카와 산간지역을 제외하고 터크힐고원(the Tug Hill Plateau) 지역에 위치한 시라큐스와 워터타운(Watertown)이 다른 곳에 뒤지는 것이 아니라 적설량 많은 것은 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연간 평균 200인치(507.9센티, 5미 터)의 눈이 내린다고 한다(출처: http://www.erh.noaa.gov/ National Weather Service). 알아보고 되려 내가 더 놀랐다. 생각해보면 이번 2010 12월에 삼일동안 내린 눈이 약 45인치( 115센티), 이번 12월 동안 내린 눈이 71.9인치( 183센티) 였으니 쉽게 납득이 가기도 한다. 차곡차곡 눈이 쌓여 창하나를 거의 다 막았었으니까. 사실 그렇게 눈 오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 이곳에 내리는 눈은 결정체가 큰 편이라 육안으로도 결정체의 모양이 꽤나 자세히 볼 수 있고, 때문에 더 반짝거리고 푹신푹신한 눈이라 꽤나 이쁘고 이벤트적인 요소가 있다. 다른 곳과 확연히 다른 시라큐스의 눈은 이곳의 지리적인 요소로 인한 것이다. 아직은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기후변화 때문이 아닌.

온타리온 호수에서 생긴 눈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

이 곳의 눈은 다른 곳에서 내리는 눈과는 그 형성방법이라던가 내리는 형상 같은 것이 다르다. 이 곳에서 멀지 않은 맨하튼(물론 차로 4시간이 걸리지만)에서 12월에 눈 폭풍이 내릴 때 이 곳은 잠잠했다. 이런 차이는 레이크 이팩트(Lake Effect, 호수 효과)라고 하는 기후적 특성에 의한 것인데, 예전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는 The Great Lake(대호수)가 근처 지역에는 엄청난 눈이 내리는 것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이름처럼 너무나도 커서 운송을 위한 이리 운하(Erie Canal) 을 만들게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호수 효과로 생기는 눈은 아주 찬 공기(혹은 바람)가 큰() 호수 수면을 지나갈 때, 호수 표면의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이 증기로 변해 차가운 공기와 합류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버림으로서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증기의 합류는 오래지나지 않아 근처의 지역에 눈으로 떨어지게 되는게, 이렇게 빠른 순환의 증기는 성격이 특이한 눈(좀 더 부슬부슬한)을 만들어 땅에 뿌리고, 이런 지역을 일컬어 Snow Belt (대설지대) 라고 한다. 미국의 북동부의 많은 지역(미시간, 미네소타, 버팔로 등등) 이 여기에 속하는데 시라큐스의 경우, Great Lake, 혹은 온타리오 호수 (Lake Ontario)의 물이 터크힐고원(Tug Hill Plateau) 남쪽에 있는 시라큐스에 눈으로, 혹은 비로 내린다.

레이크 이팩트에 영향을 받는 지역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곳 답게 그 방비는 철저하다. 왠만한 눈에는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학교 등도 눈 때문에 문 닫는 일이 없다. 밤새 내려도 12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눈 치우는 공무원(위의 뉴욕타임즈에서는 눈 전사’: snowfighter 라고 표현했다) 덕분에 어쨌든 대부분의 큰 도로는 말끔하다. 눈을 치우기 위해 사용되는 강력한 소금 덕분에 가죽옷이나 동물 모피 같은 것은 입을 수도 없으니 동물보호단체들이 보면 환영할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소금 때문에 매해 부식되는 도로를 보수해야 하니 결국엔 셈셈인가. 이 곳의 눈이 지겹기도 하지만, 기후 변화 같은 걸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더 싫을 것 같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95%로 넘는 이 곳은 이 곳답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했으면 좋겠다. 지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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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이 공공의 적이 된 것일까요. 각국이 소말리아 해적에 대처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어떤 대응들을 내놓고 있을까요?
유엔은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하려면 소말리아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 그리고 생포한 해적을 사법처리할 특별재판소를 설치할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 소말리아 해적 문제와 관련해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구요?

자크 랑 유엔 특별대표는 24 소말리아 해적 문제와 관련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소말리아 해적에 관련해 군사비용과 몸값, 물품 손실, 선박 보험료 등 제반 손실비용이 연간 70억달러(약 8조원)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에서 해적들이 이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프랑스 외교장관을 역임한 랑 대표는 “첨단장비로 무장한 해적들이 인도양 먼바다로 진출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가 긴급 대처에 나서지 않으면 소말리아의 ‘해적 경제’는 계속 번창해 돌이키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2010년 9월6일 케냐 몸바사 법정에 들어서는 소말리아 해적 7명 중 1명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이들은 독일 해군의 프리깃함을 AK47 5정, 권총 2정, 로켓추진수류탄(RPG) 1정과 칼 한 자루로 납치하려다 실패한 뒤 체포됐다. 몸바사 | AP연합뉴스

 

2. 특별재판소 설치를 제안했다구요?
제3국인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국제 재판소를 설치해 소말리아법에 따라 해적을 처벌하는 방안이 논의 중입니다. 1988년 리비아인에 의한 스코틀랜드 로커비 팬암기 폭탄테러 재판법정이 네덜란드에 설치됐던 것과 같은 방식이죠.
1991년 정권 붕괴 이후 군벌의 난립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에서는 해적의 기소 및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소말리아 연안을 초계 중인 각국 해군에 의해 체포된 10명 중 9명이 재판할 방법이 없어 현장에서 즉각 방면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재판정 및 수용시설과 소말리아의 사법체계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2500만달러(약 280억원)로 추산했습니다. 랑 대표는 2008년 이후 약 2000명의 인질이 붙잡혔고 이 중 일부가 최고 950만달러(약 106억원)의 몸값을 지불한 데 비하면 적은 예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3. 다른 나라들은 소말리아 해적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죠?


다음 표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한데요.



소말리아 해적들은 현재 전 세계 13개국에 780명이 분산 수감 중입니다.
그런데 사법처리 비용과 혐의 입증 부담이 매우 큽니다. 네덜란드는 유럽국가 중 처음 소말리아 해적을 법정에 세워 5년형을 선고했으나 수감자가 망명신청을 해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한국과 유럽연합(EU),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국제사회가 파견한 군함들의 초계활동 범위를 소말리아 연안까지 넓혀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24일 연합해군사령부(CMF)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기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는데요.
CMF의 크리스 챔버스 참모장은 이날 필리핀 외무부에서 CMF의 해적퇴치 작전을 설명하며 “필리핀 정부가 소말리아 해적들을 기소한다면 해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세계 선원의 5분의 1이 필리핀인일 정도로 필리핀 선원이 많아 필리핀이 해적으로 인해 입는 피해도 큰 편입니다. 필리핀 정부에 따르면 현재 소말리아 해적에 억류된 필리핀인은 119명에 달한다네요.


4. 이 같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소말리아 국민들의 반감도 있을 텐데요.
소말리아의 국민 70%가 해적행위를 소말리아 영해를 수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정부 상태를 틈타 새우와 참치를 불법조업으로 싹쓸이하고 핵·화학폐기물을 불법투기하는 외국 선박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서 입니다.

소말리아의 배타적경제수역 내 불법어획 피해액은 2003~2004년에만 1억달러(약 1118억원)로 추산되는데, 전 국민의 73%가 일소득 2달러 미만인 빈곤국에서는 큰 피해입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해적의 주요 근거지역인 펀트랜드와 소말리랜드에 대규모 경제원조를 제공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젊은이들이 해적활동에 참여하지 않도록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죠.소말리아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해적활동이 증가하면서 해적이 경제·사회의 중심이자 상위계급을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소말리아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야긴데요.

26일은 아프리카의 빈국 소말리아에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이끌던 독재정권이 무너진지 꼭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독재정권이 무너진 1991년부터 지금까지 20년째 극심한 내전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의 내전속에서 소말리아인 40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57만명은 난민이 돼 인접국으로 떠돌고 140만명은 살던 곳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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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낙하산 인사 감시기구’를 만들고 낙하산과의 싸움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낙하산 인사란 고위 공직자가 퇴직 후 관련 기업이나 법인의 고위직에 재취업하는 것이죠. 더 말해서 뭐하겠습니까마는. 일본에서도 수십년 간 관료사회에서 관행적으로 횡행하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아왔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27일 정부가 공무원의 인사와 관련한 민원을 처리하고 낙하산 인사를 감시·조사하는 ‘인사공정위원회(가칭)’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정부의 독립기관으로 공무원 인사 업무를 담당해 온 인사원이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이것은 설치규정을 삭제해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공무원제도개혁 관련법안을 오는 3월 정기 국회에 제출해 처리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낙하산 인사와의 싸움을 벌인다는 걸까요.

사실은 이미 내각부에 관련 감시기구가 있기는 있습니다. ‘재취직 등 감시위원회’라는 건데, 이게 그동안 유명무실해졌던 모양이네요. 신설될 인사공정위원회는 관련 문제가 생겼을 때 조사 권한을 갖는 ‘재취직등 감시·적정화위원회’를 두어 낙하산 대책 마련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동안 낙하산 인사의 배경이 돼 온 것 중의 하나가 정부의 구조조정이었습니다. 정부가 방대한 관료조직을 정리하기 위해서 조기퇴직을 권장해왔는데, 오히려 이것이 다른 기관으로의 낙하산 인사를 조장한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이죠. 
정부는 공무원의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하고, 연금을 받는 나이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쪽에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낙하산’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요.

일본도 우리랑 조직문화가 비슷해서, 중앙 성·청 공무원의 경우 후배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거나 동기가 공무원의 최고봉 격인 사무차관에 오르면 현행 60세 정년이 되지 않았더라도 퇴직을 합니다. 

그 대신 사실상 이들에게는 독립행정법인들에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보장됩니다. 독립행정법인이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시절 방대한 정부 규모를 줄이되 민간에 완전히 내놓기 힘든 일들을 할 기관이 필요하다면서 설립한 공공기관들입니다. 우리의 공사와 비슷한 조직들로 보면 될 듯하네요. 
당초엔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고 개혁 차원에서 신설했는데 오히려 낙하산 처리기관들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일본의 낙하산 관료들은 연봉이 얼마나 될까요.

법인,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연봉은 1억엔 안팎인 게 보통이고, 몇 년간 근무하다가 다른 자리로 옮기는 ‘와타리(건너가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직 때마다 고액의 퇴직금이 나오는 덕분에 엄청난 금전적 이익이 돌아간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낙하산은 능력에 따른 인사가 아니고 연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관제담합, 수의계약, 세금 낭비 등 부작용이 끊임없이 지적돼왔습니다.
 특히 일반 기업으로 갈 경우, 낙하산 인사를 받는 법인들도 결국은 이들이 든든한 ‘백줄’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수의계약으로 정부의 공공사업을 발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감독 관청의 감시도 느슨한 편이어서, 낙하산 인사가 “관제담합의 온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낙하산 인사가 숫자로 봤을 때엔 어느 정도나 될까요.

2008년 인사원 통계에 따르면 공공사업을 쥐고 있는 국토교통성의 낙하산 인사가 205명으로 가장 많았고, 재무성(67명), 국세청(42명)이 뒤를 이었습니다. 3개 부처의 낙하산 인사는 전체 낙하산 인사(468명)의 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권 많은 이런 부처들이 이른바 ‘물 좋은 자리’인 것이죠. 
민주당 정책자료집 2009년판에 따르면 2만5245명의 국가공무원이 독립행정법인과 공익법인 등 4504곳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현재 일하고 있습니다. 
또 2007년에만 이들이 취업한 단체에 12조1334억엔이 지원됐습니다.

낙하산을 근절시키겠다는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과거 고이즈미 정권도 2006년 낙하산 인사 관행을 바꾸겠다며 떠들썩하게 종합 대책을 발표했었지요. 
퇴직 공무원이 재직 중 맡았던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업이나 공익법인에 들어갈 경우 ‘부정행위’ 발생 여부를 감시하는 전문가 기구를 내각부에 설치한 것인데요. 이게 앞서 말한 ‘재취직 등 감시위원회’라는 건데, 유명무실해졌다고 말씀드렸죠. 

낙하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40대 이상 공무원 조기권고퇴직 관행을 바꾸기 위해 공무원들이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전문스태프직’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지금 민주당 정권이 하겠다고 하는 방안들, 그 때도 얘기 나왔던 것들인 셈입니다. 

민주당은 첫 정권교체에 성공한 2009년 8월 총선 때 ‘낙하산 전면 금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금 칼을 빼들었지만 잘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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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30여년 전 중국이 계급투쟁 대신 경제성장을 목표로 개혁개방을 선언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를 적극 환영하고 지원했다. 비록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낡은 정치이념과 공산당 영도의 일당체제를 고수하면서 경제적으로만 문을 여는 부분적 사회 개혁이었지만, 중국은 점진적인 변화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미국·유럽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변모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식 | 연합뉴스 | 경향신문DB 

중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인해 전 세계가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기대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중국은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걸었던 것과 전혀 다른 경로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주류 국가들과 다른 가치관과 사회 시스템을 유지한 채 미국과 함께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양대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성장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이 갖고 있는 파워가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치적 투명성이나 내적인 성장 없이 외형을 키운 중국이 장차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당혹스러워한다.

지난해 중국이 센카쿠열도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주변국들에 보여준 강경 대처법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문제를 놓고 노르웨이에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려는 모습 등을 보고 이 같은 미국의 우려는 더욱 심각해졌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공존하며 대국으로 성장한다는 ‘화평굴기(和平 起)’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에 대해 ‘강호(江湖)에서 금기시하는 암수(暗數)도 서슴지 않는 무림의 새로운 강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난 19일 백악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중국에 인권, 법치, 언론자유 등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단지 도덕적 기준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복합성, 정치적 다원화, 투명한 법치를 갖추지 않은 중국의 부상은 전 세계적 위협인 동시에 미국에도 심각한 도전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가치체계를 공유하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 이 같은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인권문제를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 미국산 여객기 수백대를 사들이고 수백억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한 것보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중국 스스로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경제성장이나 사회적 통제력을 무한정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중국 지도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사회적으로 완전히 개방된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와 함께 13억 인구의 거대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장악력은 사라지고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언젠가는 끊기고 말 길을 달리면서도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현 지도부와 차기 권력이 갖고 있는 딜레마다.

지난해 세계 모든 나라들은 미·중 양국이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두 거인은 ‘앞으로 싸우지 않고 지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세계를 안심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중국은 장차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에는 여전히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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