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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모스크바 시장을 전격 해임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8일 중국 방문 중에 “나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전격 해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메드베데프와 루쉬코프의 갈등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지난달부터 사이가 부쩍 멀어졌습니다. 영자지 모스크바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달 루쉬코프가 고속도로 건설 문제를 놓고 메드베데프와 상반되는 입장을 한 일간지에 기고하면서 갈등이 노골화됐다고 합니다.

2. 루쉬코프 시장은 어떤 인물인가요?

이 루쉬코프라는 사람은 18년 동안 모스크바 시장을 지내면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온 사람입니다. 집권 러시아연합당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죠. 옛소련의 기술관료 출신으로,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이 1987년 공산당 모스크바 지부장으로 있으면서 이 사람을 발탁했습니다.
루쉬코프의 부인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옐레나 바투리나라는 여성으로 러시아의 여걸, 철의 여인, 크렘린의 돈줄로 불립니다. 인테코라는 대형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억만장자인데요. 포브스지 집계에 따르면 재산이 29억 달러(약 33조원)에 이릅니다.
루쉬코프는 1992년 옐친에 의해 모스크바 시장으로 임명됐는데, 거기에도 바투리나의 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요. 아내는 돈으로 남편을 밀어주고, 남편은 권력으로 아내 쪽에 토건사업을 몰아주는 관계랄까요.


 루쉬코프

3. 루쉬코프가 재직하던 시절 공과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는데요.

루쉬코프는 근 20년간 시장으로 있으면서 모스크바를 ‘토건공화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프라가 확충되고 모스크바는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부동산 투기바람과 엄청난 인플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새 건물들과 마천루를 세우면서, 로시야 호텔 등 유서깊은 소비에트 시절의 랜드마크들을 없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루쉬코프의 지지율은 줄곧 70~80%를 유지해왔습니다만 화려한 생활에 대한 비난과 부패 의혹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4. 그런데 쫓겨났으니 루쉬코프의 반발이 거셀 듯한데요.

루쉬코프는 공식 성명을 내지는 않았지만 더뉴타임스 매거진에 보낸 서한에서 “2008년에 모스크바 지사선거를 독립적으로 치르게 해달라 요구한 것, 그리고 최근 킴키 고속도로 건에서 반대편에 선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 주장했다고 합니다. 루쉬코프의 임기는 내년 7월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루쉬코프는 반발의 표시로, 스스로 창당에 관여했던 집권 러시아연합에서도 탈퇴를 했습니다. 루쉬코프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인 이오시프 코브존 국가두마(하원) 부의장도 “크렘린은 모스크바의 목을 자른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 푸틴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대통령을 지내는 8년 동안 루쉬코프를 계속 연임시키며 힘을 실어줬던 푸틴도 이번에는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푸틴은 “루쉬코프는 모스크바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이 대통령에게 종속되어야지, 그 반대는 안 된다”고 못박았습니다. 시장 인사는 엄연히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겁니다.
최근 푸틴과 메드베데프 간에 모종의 정치협상이 벌어졌고, 메드베데프는 루쉬코프를 제거하도록 푸틴에게 압박을 가해 결국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각에선 “루쉬코프가 푸틴의 신임을 과신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메드베데프 /리아노보스티

6. 그럼 일단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승리로 봐도 되는 걸까요?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블로거들이나 정치분석가들 사이에선 “이제야 우리에게 대통령이 생겼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2008년 그루지야 전쟁 때 메드베데프는 “내가 군 투입을 최종 결정했다”고 수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루지야조차 “푸틴의 결정일 것”이라며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메드베데프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자신만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7. 근래 메드베데프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푸틴을 조금씩 밀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데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을 재개한 것, 푸틴의 대서방 강경자세로 마찰을 빚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갈등을 봉합한 것, 유엔에서 이란 제재안을 지지하며 미국 편에 선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눌렀다’고 할 수는 없지요.
뉴욕타임스는 “모스크바 시장을 잘랐다고 해서 ‘누가 러시아를 다스리는가’라는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메드베데프가 모스크바 시장을 자르는 데에 여전히 푸틴의 허가가 필요했고, 따라서 아직도 “보스는 푸틴”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어쨌든 메드베데프가 대선을 앞두고 한 걸음 내딛는데 성공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구정은 기자 (http://ttalgi21.khan.kr/3000)

Posted by KHross

 



내 전공의 명칭은 정말로 말 그대로 환경공부다. 영어로 Environmental Studies.

미국 사람들도 들었을 때 그게 전공이름이 되나 하는 표정이 된다. 나도 되는지 몰랐다. 엄밀히 따지자면 환경이나 공부나 단어 자체는 어쩌면 독립적인 역할을 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수질 환경깨끗한 환경이라는 단어를 놓고 봤을 때 각각에 있는 환경이라는 말의 이미지를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환경이라는 단어의 넓은 범주가 실감이 된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갖다 붙이기 좋은 단어에 대한 학문은 그 학문의 정의를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뭐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는 건 어디든 필요하니까.

Environmental studies
역시 이 학문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는 것이 처음이었다. 첫 학기에 와서 배워야 하는 필수 과목은 그래서 당연하게도 “foundation of environmental studies”.
어떻게 해서 환경공부라는 전공이 생기게 된 것인지, 어떻게 환경을 공부할 수 있는지 그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인 예들은 뭐가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수업이다, 라고 간단하게 말하기는 쉽지만 그에 대한 쉬운 답변은 하나도 없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모호하게 쓰일 수 있는 단어에 대한 학문, 아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에 있어서 왜 이것을 배우는지에 대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철학적 배경이나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환경에 대해서 공부하나?

환경공부란 무엇을 의미하나, 원래 존재하던 학제의 한계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 접근하기 시작하면 역시 사람의 생각할 수 있는 범위라던가, 원래 사물의 성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에 이르게 된다. ontology(존재론), epistemology(인식론) 등등 한국말로 들어도 알쏭달쏭한 것들이 환경공부를 하는데 첫 시작이 된다.
맙소사, 환경을 공부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이런 철학의 늪에서 무슨 말인지 모르고 허우적대고 있으면 그 다음으로 feminism, 여성학이 나온다. 도대체 여성학과 환경은 또 어떻게 연관이 되는 건지!

Feminism theory
는 너무 이렇게 확신에 차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환경을 비롯한 주류가 아닌(경제 베이스가 아닌 학문) 장애학, 마이너리티- Native Americans/ sexual minorities, 혹은 people speaking English as their second language(미국 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 즉 나 같은 사람) 들에 대한 사회학에 가장 철학적으로 기본 베이스를 제공하는 철학적 프레임이다.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소외계층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지도 않다.

이런 접근, Feminism theory, 은 통계를 사용하는 연구 방법론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고, 질적 연구에 철학적 배경을 제공한다.
즉 지식은 인간 밖에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닌, 사람의 경험이나 인식하는 것들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 이런 접근은 환경을 공부하는데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예컨대 연관성은 좀 떨어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지구 온난화가 과학적으로 진실이든 아닌 건 뭐가 중요하냐? 무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면, 그리고 느끼지 않더라도 꼭 일이 터져야지만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냐라는 거다.
뭐 이건 precautionary theory에 가깝긴 하지만, 이 학문에서 혹은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존재하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어떤 진리를 접근하는데 있어 완전 다른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환경을 공부하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에 한한다.

더군다나 학문의 세계라는 것은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폭이 좁으며 범학제적 접근에 대해 기존에 정립되어 있던 학문의 입장은 거부하거나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에 한계가 꽤나 뚜렷한 그런 곳이다.
때문에, 인식의 방향이 완전히 다를 수 있는 다른 학제가 서로 비슷한 용어로 이야기 하기 위해서, 혹은 그 자리에 비집고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롭게 정립한 학문은 원래 있던 용어로 소통해야 하고, 그게 여기서는 기존에 있던 많은 철학적 담론을 사용하거나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여러 사례 공부를 하게 된다.

리스트를 본다면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들도 궁금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 어쩌다 미국에서는 집 앞 잔디밭이 필요하게 되었는가? (혹은 미국의 중산층 집 앞의 잔디밭은 애초에 어쩌다 시작되었나?)
- 우리가 먹고 있는 싼 새우들은 어디서 들어왔을까?
-
과연 수자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던 댐은 어느 정도의 효용가치가 있을까?
-
당신이 먹고 있는 가공 처리된 물품 중 콘시럽(corn syrup)이 들지 않은 것이 몇 프로나 될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IMF(혹은 World Bank)
는 어떻게 그런 큰 힘을 세상에 미칠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어쩌다 진짜 이렇게 됐을까?

무엇보다 이게 궁금하지 않을까? 왜 환경공부를 하는데 저런 이야기를 다 해야 하는 걸까. 내 말이 그 말이다

Posted by KHross
1. 최근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면 댜오위다오) 선박 충돌로 중국과 갈등을 빚은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의 친밀한 관계 과시에 긴장하는 분위기라면서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중인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 27일 ‘제2차대전종결 65주년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역사 인식에 보조를 맞추기로 하면서 일본이 긴장하는 분위깁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충돌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 중·러의 ‘대일공조’ 불똥이 북방4개섬(쿠릴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튈지 모른다는 게 일본의 우려 인데요.
28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중·러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2차) 대전의 역사를 날조하고 나치독일과 그 동맹자를 영웅시하는 시도를 비난한다”는 인식을 같이 했고, “(중·러가) 대전 결과와 교훈과 관련해 매우 가까운 입장”이라고도 명시했습니다.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북방4개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양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센카쿠 충돌의 여진이 미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2. 일본이 걱정하는 북방 4개섬 영유권 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 집권 당시 옛 소련과 갈등을 빚었던 중국은 “북방영토는 일본의 땅”이라는 입장이었으나 89년 중·소 관계정상화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7월 러시아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을 대일전승기념일로 제정해 “2차대전 전체에 대한 공통된 역사인식을 갖자”는 중국의 요청을 수용했습니다. 러시아 역시 일본이 자국 영토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구요.
요미우리 신문은 후진타오 주석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이 각각 핵심적 이익에 관한 문제에서 상호 협력하자"고 제안했다면서 중국이 말하는 ‘핵심적 이익에 관한 문제’는 영토문제를 주권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인만큼 센카쿠 문제에 대한러시아의 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을 방문중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왼쪽)의 영접을 받으며
상하이 엑스포에서 열린 '러시아관의 날' 행사장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



“일본은 댜오위다오서 나가라” 중국인들이 8일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 근처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3. 센카쿠 충돌과 관련해서 일본에서는 초동 단계에서 대응이 잘못됐다는 ‘자성론’이 제기되고 있다면서요?


중국인 선장을 곧바로 돌려보냈으면 극한 대립으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인데요.
2004년 3월 중국인 활동가 7명이 센카쿠열도에 상륙했을 때 일본 당국은 이틀만에 이들을 강제추방형식으로 중국에 송환한 전례가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28일 중국은 선장 구속 때만해도 비교적 온건했으나, 일본이 구속기간을 연장하면서 강경자세로 돌아섰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선장 체포와 구속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당시 국토교통상)은 이날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어선의 순시선 충돌은) 악질적 사안으로 (선장의 구속은) 당연하다”고 초기 대응에는 잘못이 없었다고 확인했습니다.


4. 이번 센카쿠 열도 충돌건을 다시 한번 정리해 주십시오.


사건 발단은 지난 7일 동중국해 센카쿠열도 부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이 충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중국 어선을 나포해 조사를 벌였고 선장을 공부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중국은 곧바로 선장을 석방하라고 항의했지만 일본은 국내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본은 13일 선원 14명을 석방했지만 선장에 대해선 구속 기간을 열흘 연장시킨다고 발표했습다.
이에 중국 정부는 공개적인 비난, 희귀금속 희토류 수출 사실상 중단 등의 경제적 조치를 비롯해 민간교류 및 관광 취소나 중단까지 강한 대응을 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고위급 회담 요청도 거절했었죠.
그러자 일본 정부는 24일 결국 중국 어선 선장을 ‘처분 보류’ 형식을 빌어 풀어주면서 일본이 손을 들어, 중.일 간 표면상의 강한 대립은 일단락됐습니다.


Posted by KHross

1. 아부 그라이브 수감자 인권모독 사건이 미국에서 다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2004년 세계를 분노에 빠뜨렸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미군 병사들은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극도의 모욕과 고통을 주는 고문을 저지르면서 ‘웃고 즐기는’ 모습이 사진 등으로 공개돼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요. 만행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다시 미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2. 보상이 어떻게 되었기에 문제가 되고 있을까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6년이 지났습니다. 지난달 말 미군 전투부대는 모두 철수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라크전 ‘작전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아부 그라이브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수감자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뭔가 보상금이 주어졌다는 기록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2004년에 미 정부가 피해자들 보상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었나요?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사건 당시 미국의 이라크전을 책임지고 있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의회에 나와 증언하면서 “비참하고 짐승 같은 학대와 잔인함을 겪은”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보상을 해줄 법적인 길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부 그라이브 스캔들로 사임 압력에 부딪친 럼즈펠드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빈 소리에 불과했던 거죠.


4. 피해보상을 신청한 사람들은 없는지?
 

미 육군에 따르면 지금까지 육군 청구센터(Army Claims Service)에 보상을 요구한 아부 그라이브 피해자는 약 30명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청구 내역에 대해 군은 지금까지 ‘조사 중’이라는군요. 또한 군은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아부 그라이브 학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AP는 전했습니다.

육군 기록 상, 아부 그라이브에서 풀려난 사람에게 보상금이 지급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라크 정부 측에 비공식적으로라도 보상을 위한 돈을 내준 적도 없다는 겁니다.


5. 미 국방부는 전쟁 피해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금을 별도로 책정을 해놓고 있다는데.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방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도중 미군과 연합군의 공격으로 숨지거나 다친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 혹은 재산피해에 대한 배상 명목으로 3090만 달러(약 357억원)을 내줬습니다.

하지만 그 돈 중에서도 아부 그라이브 피해자들에게 전달된 건 전혀 없다는 군요. 사실 전쟁 통에 피살된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도 형편없기 짝이 없는데 ‘모욕과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에는 사실상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6. 그럼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는 방법은 없나요?

미군이 스스로 밝혔듯 그들에 대한 보상금은 지급된 바도, 계획된 것도 없으니 남은 길은 소송뿐이겠죠.

당시 미군들에 학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라크인 수감자들은 250명이 넘었지만,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낼 길조차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먼저 냈고요, 이에 대해서 미국 대법원이 곧 판결을 내릴 예정이어서 주목됩니다.
여기서 승소를 하면 비로소 피해자들은 미국 법원에 피해보상을 청구할 길이 열리는 거지요.


7. 당시 가해자들은 어떻게 됐는지?
 

마침 26일은 아부 그라이브 학대 사건의 ‘주인공’으로 악명 높았던 린디 잉글랜드 이병이 미 텍사스 포트후드의 군사법정에 기소된 지 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잉글랜드를 비롯해 재판에 회부된 미군은 모두 11명이었는데, 고문이나 가혹행위 등 직접적인 범죄 혐의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근무태만’ 따위로 기소됐기 때문에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많았지요.


‘여군’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부각됐던 잉글랜드 이병의 경우도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기소 전 이미 1년 반 가까이 구금돼 있었던 터라(함께 범행을 저지른 그레이너라는 또 다른 미군 병사의 아기를 임신해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고요) 1년 반 더 복역한 뒤 풀려났고요.

이라크전은 끝났다고 하지만, 그 ‘뒤처리’와 앙금은 한참을 갈 것 같습니다.

Posted by KHross

엄형식(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있고, 그들의 논리가 있지요. 그리고 그들의 논리는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배자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통용됩니다. 그 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가 도래하면, 이전 세대에 진리로 믿어졌던 많은 것들이 지배세력의 기망이었음이 드러나곤 하죠.

‘시장’이라는 우상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하 시장교도라 부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분들이 시장의 논리를 이야기할 때는 절대적인 진리를 이야기하는 경외감을 가지고 있기에 교도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이 다스리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한국 유명 마트체인의 젊은 경영주가 트위터를 통해서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다고 하더군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00914173103§ion=02).

그 양반이 ‘실질적 소비’와 ‘이념적 소비’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네요.
한국에서 ‘실질’과 ‘이념’이라는 표현을 쓸 때의 전제에는 최소투자로 최대효용을 추구하는 ‘실질적 소비’가 진짜이고, ‘이념적 소비’라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라는 뉘앙스가 들어있죠. 시장교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가 이런 것이죠.
“니네가 그래봐야, 인간들은 다 자기 욕심을 추구하면서 살게 돼있어… 인간은 그런 존재거든… 다른 식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헛된 망상가들이 불어넣은 이념에 혹해서 그런거야… 별거 없어…”

저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의 생존본능에 충실한 동물(식물도 그렇다죠…)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스스로의 행동을 성찰할 수 있고, 이성을 통해 본능을 관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지요.
이런 점에서 이성적인 인간들이 수행하는 소비를 비롯한 경제활동 역시 성찰적일 수 있고, 다양한 가치와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싼 것을 찾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생태적 결과를 고려해서 조금 부담되도 유기농 식품을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노동탄압을 하는 기업의 물건은 구매를 거부할 수 있죠…
멀리 보지 않아도, 시장교도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의 명품들을 구입함으로서 경제적 효용보다는 스스로의 계급적 특권을 과시하려는 소비를 하고 있죠. 생각없이 이런 과시소비를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대안경제는 경제의 개념에 대한 시장교의 도그마를 넘어서서, 다양한 가치와 원칙에 기반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저는 이들의 가치와 실천이 점점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장교도들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독재체제인 한국과 달리, 다른 경제방식이 일정한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소위 주류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유럽에서의 경험들은 눈여겨볼 지점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안경제라고 불리는 영역의 실천들은 ‘이념적 소비’에서 시작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특히 제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국가와 시장에 의해 해결되지 않자 민중들이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려 했던 ‘전통적 사회적 경제’와는 달리, 새로운 가치에 기반하여 시작한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연대금융이라고 불리는 조직들에는 70-80년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실행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신들의 예금이 투자되는 것을 반대한 ‘이념적’ 예금주들이 자신들의 예금을 빼내어 의미있는 곳에 투자하고자 시작된 조직들이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확산되고 있는 AMAP이라는 운동은 한 농민에게 적절한 보상이 되는 금액을 계산해서 20-30명의 인근 도시지역의 ‘이념적’ 주민들이 나누어 회비로 납부하고, 농민은 이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로컬푸드라는 이름의 운동이 발전하고 있지요.
제3세계 주민들에게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적절한 비용을 (‘적절한’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보상하고, 윤리적이고 환경적인 규범을 거래의 기준에 포함시킨 ‘이념적인’ 공정무역은 이미 유럽에서 주류유통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젊은 경영자가 이런 이야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님은) 소비를 이념적으로 한다. 님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

아마도 이 분은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했듯이, 경제활동의 주체들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를 위해 경제활동을 하고 이것이 경제전반을 돌아가게 한다는 이야기를 염두에 두셨던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분의 이야기는 대안경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념적인 소비를 통해 연결되는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를 염려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대안경제에서의 경제활동은 신뢰라고 하는 사회적 자본의 역할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대안경제의 활동을 통해 사회적 자본이 증가한다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밀집지역인 스페인 북부나 이탈리아 북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대안경제가 증가시킨 사회적 자본은 그 지역 경제 일반을 활성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재래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과 지원이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고, 그래서 재래시장도 자신을 염려해주는 소비자들을 생각하는 새로운 관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그분들의 싸움도 승리할 수 있겠죠)

그 젊은 경영자는 또 “(사람들의 주장이) 마트의 진화를 부정하는 듯 들린다”, “우리도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네요.

맞습니다. 저 또한 시장자체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행동하는 기업들이 경쟁에 직면하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분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이 적응해야 하는 환경은 대부분 자연환경이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이고, 결국 사람들이 정치를 통해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일반적인 기업들에게까지 대안경제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별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안경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서 기업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좀더 인간과 자연을 고려하는 성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 식구가 이용하는 벨기에 유통체인인 Colruyt의 소식지를 받아보는데, 이 기업이 NGO와 함께 아프리카 베냉이라는 나라의 농민들로 하여금 양질의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그렇게 생산된 쌀을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내용을 홍보하더군요.
Colruyt는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주주의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일반기업이지만, 현지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과 노동자들의 만족도, 다양한 사회적 실천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기업입니다.

이 기업의 CEO가 천사와 같은 품성을 갖추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옛날에 운동권 물을 좀 먹어서?

제 생각에는 변화한 소비자들의 의식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앞서서 적응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안경제는 비록 그 양적인 규모가 주류경제를 압도하지는 못하지만, 소비자들의 가치와 태도를 변화시킴으로서 경제활동에 관련된 새로운 환경을 이끌어 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젊은 경영자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이념적’인 태도를 비판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그의 주장 역시 ‘이념적’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의 이념이 지배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진리’인 것처럼 취급받을 뿐인 것입니다.
저는 맑스 선생처럼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이고 사회주의는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양한 가치와 논리가 서로 보완되는 다원적인 경제를 통해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경제 본연의 기능이 생태적인 한계를 고려하면서 지속가능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장교도들의 독재체제를 민주화시키는 ‘이념적’인 생산과 소비를 조직하는 운동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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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2주 전, <카를라 브루니의 은밀한 사생활>을 파헤치는 책의 출간 소식이 요란하게 외신을 탔다. 집시들을 추방한 프랑스가 유럽의회에 의해 제소되고 거친 비난의 소리들이 프랑스를 향해 쏟아지던 바로 그 순간에.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난감한 일들이 발생하면, 때마침 연예인 커플들이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듯. 엘리제궁이 이 책의 출간을 방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소문마저, 실은 출판사와 엘리제궁이 짜고 치는 장난으로 보일 만큼, 상황은 매우 절묘했다. 사실 이 책의 등장이 사르코지에게 해가 될 것은 거의 없다. 카를라 브루니의 역할은 등장 초부터 그러했다.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시선을 끝없이 분산시키는, 대통령 옆을 공식적으로 차지한 화려한 바비인형. 연애와 정치가 뒤섞일 때, 사람들의 호기심은 최대치로 치솟는 것을 우린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사르코지는 정치 지면에서 연예계 기사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수법을 능란하게 구사하면서 집권 3년을 헤쳐왔다.

전 부인 세실리아가 임기 중,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찾아 사르코지를 떠난 후, 헤어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만난 브루니와 전격 결혼하면서, 사르코지가 언론에 전한 첫눈에 반한 이유는, “세실리아와 똑 닮은 외모”였다. 그가 브루니에게 선사한 결혼반지가, 세실리아에게 준 것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보도될 만큼, 대통령의 연애는 그의 정치보다 흥미진진한 기삿거리들을 제공해 주었다.
                                                                       
참한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문제의 이 책을 사간다. 이 책을 사는 사람이 정말 있구나 싶어, 집에 와서 아마존 순위를 검색해 보았다. 31위. 생각보다 선전이다. 카를라 혹은 사르코지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아버지의 여자친구였던 카를라가 어느날 남편과 연인이 되고, 아이까지 낳는 걸 겪었던 소설가 쥐스틴 레비는 이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토로해냈다. 그 밖에도 “카를라 브루니에 대한 진짜 스토리” “브루니와 야심가들” “사르코지와 그의 여자들”… 더 파헤칠 것도 없는 그들의 사생활은 이미 재탕 삼탕으로 우려먹은 지 오래다.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미 일부일처제의 지루함에 대해, 사랑은 오래가지만 열정은 2~3주면 사라지므로,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터이다. 그녀는 사생활을 굳이 숨긴 적도 없고, 그것을 부끄러워한 적은 더더욱 없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그녀의 사생활을 애써 “폭로”하는 책들은 그 누구의 정치적, 사회적 생명도 위협하지 않는다. 정치를 가리는 현란한 가십으로서의 효력을 계속 이어나갈 뿐이다.

같은 시간 아마존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책은,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부자들의 대통령>이다. 미셸 뱅송, 모리크 뱅송 샤를로, 두 사회학자가 저술한 이 책은 사르코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이해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부를 축적하며, 그들끼리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국가조직을 이용하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금융방패, 세금감면, 처벌대상에서 제외 등은 돈으로 만들어진 신흥귀족들을 위한 계급투쟁의 최전방에 선 사르코지가 구사하는 일부 가시적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가면 뒤에는 오로지 특정 계급만을 위한 정부가 작동하고 있음을 이 책은 신랄하게 폭로하고 있다. 출간 3주 만에 아마존 책 종합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맹랑한 책의 선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외신도, 혹은 프랑스 일간지들도 곱게 입을 다물고 있다. 아무렴. 그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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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어떻게 해서 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지루하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조금의 조율을 시간을 줘야겠다 하는 순간, 미국 생활과 각 나라를 나다니며 계속적으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 중에 하나가 떠올랐다.

자연환경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환경에 관한 이야기. 시선.

이번에 처음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오게 된 아가씨와 룸메이트로 지내고 있다. 꽤나 말라 보이는 몸에도 불구하고 식성이 좋아 간만에 냉장고에서 버리는 음식이 없어지는 것에 즐거워하는 나날.

함께 우적우적 음식을 해먹으며 간간히 이야기 하다 어느 한국에서의 아가씨들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몸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 전 여기에 있으니까 제가 마른 건지 뚱뚱한 건지 모르겠어요. 너무 좋아요. 한국에 있을 땐 친구들 만날 때 마다 몸매에 신경이 가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누군가의 몸에 대해 친절이라는 핑계 혹은 관심이라는 포장으로 얼마나 많이 살 좀 빼야겠다라는 말을 많이 해 왔는지.
그리고 그 잣대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내 몸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주체를 누구에게 전도했는지, 전도되어 왔는지도 생각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이미 집중적으로 조명한 학자가 있다. 푸코(Michel Foucault) 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21세기에 새롭게 대두되는 많은 사회적 이슈, 학계의 관심에 중심이 되고 있는 철학가. (물론 Environmental Studies에서도 그의 관점은 계속적으로 회자된다.) 어쨌든 그가 시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내 신체를 가지고 겪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사회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 사회의 혹은 다수의 감시 아래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이것은 비단 몸에 대한 권리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삶에 관여하기가 쉬운가. 우리는 무수한 시간을 자신의 최선의 선택을 위해 쓴다.
그런 시간을 아주 간단하게 한 마디로 죽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살육의 공간은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통해 더 넓게 쉽게 확장되어 버린다. 우리는 거대한 감시의 감옥아래에 살고 있다.



(이 양반이 푸코. 낯이 익다)


이런 이야기, 사실 많이 논의되었다. 식상하다. 하지만, 많이 나왔다는 것은, 그 만큼 밖에서 본 시선에서 볼 때 이 사회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라는 말과 연결된다.

운이 좋아 외국에 가본 사람이라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지 안다. 어딘가를 떠나고 싶나? 훌쩍, 아무도 모르는 곳에

우리는 사회라는 구조로 정당화된 폭력적인 시선에 너무 관대한 건 아닌가.
이런 시선은 점점 더 확장되어 내 몸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방법,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의 페이스 전부에 관여한다. 사회는 우리를 정신적 유아로 만들고 우리는 사회의 시선에 매달려 지낸다.
특이한 취향 재미있는 발상 그리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이런 당연한 이야기까지도 거대한 사회의 그물망에 이미 포섭되어있다. 
남들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향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욕구 안에서서만 안전할 뿐이고, 진짜로 체제를 거부하는 그 순간, 아니 조금이라도 그 틀에 맞추지 않았을 때, 사회의 기준과 나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모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 이것은 나의 과대망상일지도 모른다. 처음 글에서도 밝혔듯 나라는 그릇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무분별하게 쏘아대는 일반화된 정보에 개념 없이 받아들이고 그 시선을 타인에게 적용한다. 한 명 한 명의 속은 곪고 아파하는데. 그 한 명이 언젠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은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논의가 들어가는 것은 이 지점이다. 비슷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혐오, 타인에 대한 일반화된 시선,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문제에 똑같은 잣대로 접근하는 것이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minorities or marginalized)라고 지칭되는 것들에 대한 학문의 근원이 된다.
역시 쉽지 않다. 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많은 것들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아직도 나는 “도대체 저 가방은 어디서 구한 걸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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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같은 책을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어떤 책의 어떤 문장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갑작스런 충동이 사랑병처럼 강렬하게 차오를 때도 종종 있다.

때문에 한번 좋아진 책은 몇십 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고 다 끌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남에게 책을 주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좋아하고 유익한 책이라도 한번 읽었으면 아낌없이 주려고 한다. 책이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널리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권은 예외다. 법륜 스님의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은 남에게 빌려줬다가도 다 읽었다고 하면 쏜살같이 달려가 받아온다. 이 책은 책장에 꽂혀있는 법이 없고 항상 화장실이나 침대 밑에 널려 있다. 며칠 전 읽은 한 대목을 소개한다.


"현재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 혹은 세계는 늘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회 혹은 세계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가 우리들을 옭아맬 수도 있다. ... 주로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들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사회 전체가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국가라면 이웃 나라에 짓밟히는 요인이 될 수 있고, 개인이라면 경쟁 대열에서 처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문명이라면 한 문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예를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조 말엽, 당시 엘리트 계층이었던 선비들이 미래를 읽고 예측하는 안목을 가졌더라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거나 외세 때문에 분단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그야말로 격변기 중의 격변기였다. 서구 열강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침략하고, 거대한 중국은 붕괴되고 있었으며, 신분제사회는 무너지고, 전통사회의 기틀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도 더듬이가 잘린 곤충들처럼 무디게 움직였기 때문에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민족 전체가 100년이 넘도록 고통을 겪었다......

지금 우리들은 100년 전 선조들이 겪었던 그 격변의 시대보다도 변화의 진폭이 더 큰 세계화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막연한 혼돈과 불안에 휩싸여 있을 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 우리들의 삶을 얼마만큼 변화시킬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륜 스님의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학"   96쪽, 정토출판, 2002년




마침 이 문장을 읽은 날, 나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사대강 토론회에서 "내년 6월께 공사가 끝난 뒤 물이 썩고 악화한다는 실증적 자료가 나오면 정권을 내놓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주1)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우리나라가 정말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환경피해는 공사가 끝나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이 나라 자손이 살아갈 터전을 지킬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이치는 대단한 첨단 지식이 아니다. 외국의 사례만 읽어도 알 수 있고 웬만한 네티즌이면 아는 사실이다. 정부가 사대강공사의 모델로 삼는다는 독일 라인강과 이자르강 준설의 후유증으로 지하수가 땅속으로 꺼져 숲이 죽고 경작지가 말라가는 현상은 공사가 끝난 10-20년 후 나타나기 시작했다.(주2)





Abb. 1: Die Furkationszone des Oberrheins zwischen Basel und Breisach.


Abb. 2: Die Maanderzone des Oberrheins zwischen Karlsruhe und Mannheim.



자연은 그렇게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악착같이 견디다가 한도를 넘는 어느 순간 사정없이 무너져내린다.

라인강에 보를 설치하면서 홍수피해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지금 독일의 중학교에서도 가르친다.(주3)
그러나 그런 환경피해가 금방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라인강에 보가 계속 건설되었다. 자연의 섭리를 파악한 1980년에야 라인강에 계획되었던 보 건설은 모두 취소되고 법으로 보 건설이 금지되었다.
백년에 한번 일어나던 규모의 대홍수가 라인강에 보를 설치한 후 해마다 일어난 사실을 보여주는 비교 그래프는 독일 정부의 극비문서가 아니라 독일 연방자연보호청의 대국민 홍보자료에 나온다.(주4) 

원희룡 의원이 환경피해가 뒤늦게 나타난다는 이치를 몰라서 저런 소리를 했어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했다면 더 한심한 노릇이다. 알면서 그랬다면 국민을 속였다는 말인데, 속임수도 격이 있지, 국민의 수준을 뭘로 보고 저런 얕은 속임수를 쓰는지 기가 막힌다.

둘째, 정권은 일개 국회의원이 자기 맘대로 가져갔다가 내놓는 물건이 아니다.

정부든 야당이든 여당이든, 국민이 그만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요즘들어 도를 넘어서는 경거망동을 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사대강공사에 대해 "지금 착수하는 단계라면 선택 폭이 많고 얼굴 붉힐 일이 없을 텐데, 지금 30~60% 공정율을 보이는 상황에서..."라며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했다.
사대강공사 착수 단계에서 정부가 국민의 반대를 묵살하고 공사를 밀어붙이는 바람에 얼굴 붉혔던 일을 벌써 잊었는가? 몇십 년 전도 아니고 불과 몇달 전에 일어난 일을 저렇게 왜곡하다니. 거의 생떼 수준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008년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경부운하는 반드시 한다는 전제 하에 환경 경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겠다"(주5)고 말함으로써 '할지 안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검토가 반드시 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식의 초보적 논리 모순을 드러냈음에도, 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런 모순된 말에 대항해 논리를 펼치자니, 국민의 지성이 모욕당하는 느낌이다.

법륜 스님이 썼듯이 "100년 전 선조들이 겪었던 그 격변의 시대보다도 변화의 진폭이 더 큰 세계화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커녕 당장 자기가 말하는 문장의 앞뒤도 맞추지 못한 채 찰나적인 눈속임을 일삼는 인사들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식인 또는 엘리트 집단'이라니, 국가적 위기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상이 변해서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인이 될 수 없다. 권력층이 정보를 독점하여 국민의 더듬이를 잘라버리고 마음대로 끌고다닐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30년 전 광주학살  현장을 찍은 필름이 독일 기자의 과자상자에 감춰져 김포공항을 빠져나가 독일 제1공영TV의 저녁뉴스를 타고 유럽 전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국내에선 옆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한국  신부님들이 '나는 처자식이 없으니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로 몸에 숨겨 다시 한국으로 반입한 비디오 테잎이 은밀히 상영됨으로써 광주학살의 진실이 장장 6년만에 국내에 알려졌다.(주6)

그런 시대가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지만 이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시대 얘기로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덕분에 이제 권력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선진 외국도 이렇게 한다"는 말로 모든 거짓을 덮고 모든 불의를 합리화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정보를 독점하고 한 수 앞섰던 소수의 권력자 대신 수많은 지식인, 지성인들이 대중 속에서 탄생하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세상이 열렸다. 인터넷은 학력과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도 명확한 근거를 토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깨우치고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어느 저명한 권력지향형 교수가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스위스에도 운하가 있다고 주장하면, 유럽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위키백과에서 유럽 수로지도를 찾아 인터넷에 올려 반박할 수 있고,(주7) 이를 본 또다른 네티즌은 구글맵과 비교하여 산맥이 있는 곳에는 수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알릴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이 하천 재자연화공사의 성공작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독일 이자르 강의 물도 보가 있어서 풍부하고 깨끗한 것이라 말해도, 이자르 강 근처에 사는 평범한 교포가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보라는 것이 독일의 공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문화재일 뿐 강물이 깨끗하게 하는 원인은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알릴 수 있다.(주8)

어느 신문사 기자가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가 강을 완전히 자연으로 되돌리지 않고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린 것이라는 뮌헨 수자원국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인공과 자연이 적절히 섞인 상태가 최선인 것처럼 호도해도,(주9) 뮌헨에서 자식을 키우는 교포는 독일정부가 독일 학생 교육용으로 만든 유럽연합 물관리 기본지침을 번역해서 소개함으로써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주3, 주10)

평범한 이들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함으로써 국민을 향한 진실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넉넉한 월급 받으면서 사대강공사를 홍보하는 관료들에 대항하여 어디서 돈을 받기는 커녕 생업을 하는 틈틈이 잠을 줄여가며 번역을 하고 글을 쓰는 자원봉사자들이 절대로 먼저 지쳐 떨어지지 않을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부패한 권력 대신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지순한 염원이다. 이 염원은 사회를 이끌겠다는 우쭐한 공명심이 아니라, 세계가 용틀임하는 이 격동의 시대에 한국이 자기 살을 파먹으며 연명하는 토건국가로 남아 있다가는 다시 한번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절대절명의 위기의식에서 나온다.
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종족을 번식하려는 본능의 몸부림이다. 봄에 새싹이 터오르듯이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빛나는 자존감을 그 어떤 권력이나 재력이 막을 수 있으리.



주 해설 및 증빙 자료 링크

주1:
한겨레 2010.9.16 
주2: 라인강 상류에 위치한 노이엔부르그(프라이부르그 행정권)의 강변숲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툴라의 공사(1817-1876)가 끝난지 십년 만에 지하수면이 표토에서 2m 아래로, 1900년 무렵에는 나무 뿌리가 닿지 못하는 깊이로 내려갔다. (빨간치마네집, 라인강 인공개량의 후유증에서 독일 전문지를 인용한 글. 원문 출처는 '데어 라인' 알베르트 라이프/ 폴커 슈페트 교수 공저, Der Rhein, Albert Reif/Volker Späth) ;독일 이자르 강의 준설과 직강화 공사는 1888년에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강바닥과 지하수가 하강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하상보호 공사는 1910-1920 사이에 진행되었다. (빨간치마네집, 독일 이자르 강, 시련의 역사)
주3:
강, 물 이상의 존재 [학생용 학습교재] (독일 연방환경부 2009), 번역연대 
주4: 라인 강 보 설치와 100년 빈도 홍수의 상관관계. 세로축은 홍수 수위, 가로축은 보 설치 년도. 1928년 최초의 보 설치 이후 1950년대부터 보를 줄줄이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홍수 간격은 짧아져 100년 빈도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 아울러 라인 강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던 식물성장기 홍수마저 일어나는 이변이 생겼다(검은 막대). (출처: 독일연방 자연보호ㆍ생태계 연구소, 휘긴/헨리히프라이제 공저) 도표 크게 보기
주5: 서울신문 2008.2.29
주6: 광주학살의 진실과 당시의 언론통제 상황을 보여주는 KBS 다큐 '푸른눈의 목격자', 유튜브, May the blue eye witnesses 80 years. 01.avi , 총 여섯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었으니 제목 끝에 붙은 번호 순서대로 계속 보세요. 어찌된 일인지 3번은 없네요. ㅠㅠ 1번부터 보기
주7: 위키페디아 유럽 수로망 지도 Europäische Wasserstraßen
주8: 빨간치마네 집,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 총감독과의 인터뷰
주9: 뉴데일리 2010.9.9.
주10: 강, 물 이상의 존재 [교사용 학습교재] (독일 연방환경부 2009), 번역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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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밖에서 본 안’ 혹은 ‘안에서 못 느꼈던 밖’ 이라는 것에 꽤나 당혹스러웠다는 걸 인정해야 겠다. 외국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부하는 내용(내 경우는 ‘환경’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못해 안달난 나라에서 살다가 온 내가 지금 이 곳에서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공부하고 있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왜 이런 거 있잖아, 완전 희한하지 않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나라는 한 인간이 느끼거나 배울 수 있는 절대적인 경험치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단순히 어떻더라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건 이렇다’라고 단순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피하고자 하는 부분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재미는 있다. 파시즘도 원래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키고 흥미롭고 왠지 나름의 논리가 개인적인 체험과 맞물려 말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아, 너무 멀리 나갔다. 그저 앞으로 내가 말하는 것이 때로는 자의식 과잉에 편견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뿐이다. 약간은 불친절할지도 모르는 글에 대해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정도의 포용을 바라는, 미리 드리는 사과문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는 현재 뉴욕주립대에서 환경공부를 하고 있다. 시러큐스(Syracuse) 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환경산림대학원에서 논문과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시라큐스는 어감이 예뻐 좋아했는데 근처 로마(Rome)나 트로이(troy) 같은 지명으로 짐작해보건대 이탈리아 어딘가의 마을 이름이지 않을까 싶다.
인구대비 공원 수가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라고도 한다. 뉴욕이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을 무렵, 뉴욕과 캐나다를 잊는 수로가 지나가는 주요도시 중 하나가 이 곳이었고, 그 시절의 잠시 동안 깜짝 번성기간이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할 얘기가 정해졌다. 대 호수(Great Lake)와 뉴욕시티(NYC)를 잇는 Erie canal, 이리 수로 혹은 운하.

무려 1825년에 완공된 이리(Erie) 운하는 위에서 잠시 말했듯, 뉴욕과 맞물려 있는 대서양으로 물건을 운송하기 위해 만든 교통시설이다. 미국은 땅덩이가 실제로 보고 느껴봐야 정말 크구나 하고 체감하게 될 정도의 넓은 나라라 내륙에서 해안으로 물건을 운송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택배를 신청하면 아주 빨라야 3일, 평균 일주일, 늦으면 한 달도 걸리는 곳이니까.
그런 지역에 있으면 좀 더 빠른 운송수단을 찾는 일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된다. 어딘가의 ‘정비’ 사업과는 다르게.



어쨌든 1807년에 사업을 신청한 이 새로운 운하는 뉴욕시티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콘크리트의 정글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그 다른 쪽 끝인 그레이트 레이크의 도시 버팔로(Buffalo), 수로가 지나가는 도시들, 로마, 유티카(Utica), 시러큐) 그리고 마지막 알바니(Albany) 또한 호황을 누렸다.
그 호황은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미국의 많은 인구가 뉴욕 주로 이주하게 되었고, 많은 관련 산업들이 발전했다. 그 때 이주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이 초록이 많은 곳을 떠나지 않고, 그 산업의 아주 일부 역시 남아있다.
그 때의 사람과 그리고 주인이 떠난 산업 현장들은 아직도 그 때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이미 이리 운하를 대신한 뉴욕주 바지 운하(New York State Barge Canal)도 그 쓰임새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이리 수로의 물은 거의 다 말라붙었고, 말라 붙지 않은 물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곳들은 주민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실제로 운송이 행해졌던 곳들은, 마치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같은, 그 정도의 아우라는 없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유적지 같은 느낌만 남아 있다.

사실 페르세폴리스는 좀 과장이지만, 길을 잃어 버팔로 시내 어딘가를 지나갈 때, 그 항구의 모습은, 몇해 전 페르세폴리스의 폐허에 야생화만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같은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 잠깐의 호황은 황홀했었고, 인간의 기술력에는 한계가 없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운송의 어려움과 동시에 실업률까지 해결한 그 곳에 남은 것은 후광조차 없는 쓸쓸함이라니. (그럼 대체 이 정도의 이유도 없이 진행될 많은 사업들은 어떤 종말을 맞을까.)



환경공부를 하고 있자면 이런 폐허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개발(Development)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양립 가능한 말인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뭔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경제(economy)는 뭔가? 그렇다면 대안으로 나온 생태적 경제(ecological economy)는 어떤 점에서 대안인가?

이런 물음에 부딪칠 때면 나는 언제나, 현 체제에 문제가 있어 나온 대안 역시 인간이 만든 제한적인 것들이고, 이미 존재하는 문제 많은 프레임에 다른 재료만을 슬쩍 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저렇게 전부 폐허가 되고 말 텐데.

하지만 그래서야 세상이 멸망할 때 사과나무를 하나 더 심는 마음가짐이 되겠냔 말이다. 수송이 필요했던 이 곳에서도 남은 것이 애잔함뿐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의 이유 없는 파괴 정도는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익이 오지 않더라도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어쩌면 환경을 공부하며 혹은 세상을 알아가며 희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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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한국과 프랑스는 먼 나라다. 양국이 서로의 뉴스를 전할 때 등장하는 뉴스들은 상대국 내에서의 중요도가 아니라 자극성의 정도에 따라 걸러진다. 한국에서 근 1년간 가장 비중있게 다뤄진 프랑스 관련 뉴스는 아트사커의 몰락이었다. 남아공월드컵 최대의 이변으로 꼽혔던 프랑스팀이 부진에 이어 졸렬한 내분으로 내달릴 때, 한국 신문들은 이를 1면에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이 좋아하는 한국은 남한보다는 북한이다. 남쪽보다는 북쪽에서 자극적이고 위험도 수위가 높게 관측되는 뉴스들이 더 자주 생산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강도 높게 다뤄진 남한발 뉴스가 있다면 천안함 사태,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갓난아이를 죽도록 방치한 부부이야기 정도다. 양국이 그다지 관심없어 하는 공통된 뉴스가 있다면 집회나 시위, 파업이다. 2년 전 촛불을 든 시민들의 저항이 대한민국을 100일 넘게 뒤흔들었을 때,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시큰둥 그 자체였다. 한국언론들도 프랑스에서의 시민저항을 다루는 걸 재미없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프랑스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슈가 있다면, 바로 이것 총파업인 것을…. 집회는 주로 토요일에 하지만, 파업은 당연히 평일에 한다. 지난 7일 총파업이 있었다. 선생들이 대부분 파업했고,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RER(전철)도 거의 끊겼다. 총파업에 참여한 사람의 수는 250만명으로 집계되었고, 이 총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70%를 상회했다. 이쯤 되면 거리에서 느껴지는 지지도는 물론 90%를 웃돈다. 이토록 저항없이 가뿐하게 치러지는 총파업을 이끌었던 이슈는 연금개혁이다. 별거 아닌 듯싶다. 사르코지는 집권초부터, 현재 60세로 되어 있는 정년을 2년 연장하려고 한다. 이게 뭐가 나쁘다고 저 난리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만 18세부터 일한 사람이 연금을 받으려면 44년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62세에 가서 비로소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단 한시기의 실직도 없이 연금을 납부할 수 있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18세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질적으로는 70세가 거의 되어서야 이 연금을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은 이 개혁법안은 순전히 고용주의 이해만을 대변한 법안이라고 일축한다. 그녀의 시각은 이 법안을 둘러싼 노동자 전체의 시각이기도 하다.

총파업이 있던 날 대규모 시위를 휩쓴 슬로건은 “나는 계급투쟁을 한다!”였다. 정부는 연금제도를 이대로 지속하다간 금고가 곧 바닥난다고 엄살을 떨고 있지만, 수조억원의 주체할 수 없는 로레알사의 상속녀 베탕쿠르를 둘러싼 뇌물스캔들은 “베탕쿠르의 금고를 털어 연금을 지급하라”는 직설적인 슬로건을 가능케 한다. ‘우리를 착취해온 자들의 금고를 털어라.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계급투쟁이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연금개혁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의 정치생명 전체를, 명예를 건 국민과의 대결이며, 그들이 저지른 모든 실정이 구축한 불신이 정권 최대 사업에 대한 최대치의 저항을 부르는 중이다.

신나는 총파업이 거리를 휩쓸고 난 다음날 카페로 달려가 신문들을 찾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신문도 찾을 수 없었다. 기자들도, 인쇄공들도 모두 같이 파업을 했기 때문! 헉! 이 철저한 총파업에 대한 충성도를 찬양해야 하는 걸까. 아님 이 중요한 순간, 총파업 결과를 속속들이 전파해야 할 언론의 임무를 방기한 그들을 질타해야 하는 것일까. 언제나 예기치 않은 대목에서 뒤통수를 쳐주시는 프렌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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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지 님은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 칼스루에 공과대학 건축과에서 공부하고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뮌헨에서 살면서 프리랜서로 독일 문화재청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임혜지 님의 개인 블로그 <빨간 치마네 집>(http://hanamana.de)에 실린 것을 옮겨오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원래 뮌헨은 운하의 도시였다. 12세기 건립 이래 19세기까지만 해도 베니스처럼 운하가 뮌헨 시내에 실핏줄처럼 촘촘히 얽혀 있었다. 지금은 시내의 거의 모든 운하가 자동차 도로와 지하철에 밀려 복개되거나 폐쇄되었지만 인구 몇 만의 작은 도시였을 때에도 총 운하 길이가 70km였다니 그 장관을 상상할 수 있겠다.


 

오늘의 피스터 거리(Pfisterstr.)에 있던 피스터 천, 1907년 사진. (출처 위키페디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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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뮌헨 지도 (출처 위키페디아 링크)



뮌헨과 인접해 흐르는 이자르 강은 알프스를 흐르는 산악하천답게 물살이 빠르고 계절에 따라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해서 수위가 불안정하고, 수많은 잔가지를 만들며 이리저리 구불구불 흐르다가 홍수라도 한번 나면 엉뚱한 곳에 새 물길을 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주민들은 물을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이자르 강보다 높이 위치한 도심 쪽으로 운하를 파서 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였다.

주민들은 운하의 물을 이용해 농사짓고 물레방아를 돌려 밀가루를 찧었다. 운하는 도시의 오폐수를 흘려보내는 하수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이자르 강을 통해 먼 곳에서 온 와인이나 건축자재를 도심으로 운송하는 뱃길 역할도 했다.


Mueka_Pfisterbach15

밀가루를 빻아 왕궁에 조달하는 빵을 굽던 뮌헨의 물방아간. 오른쪽에 보이는 난간 밑으로
1960년대까지 운하가 흘렀다. (현재의 Pfistererstr와 Sparkassestr 모퉁이)




옛날부터 이자르 강의 홍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계절 따라 강물이 넘쳤지만 강 주변을 넓게 비워두어 인간에게 미치는 범람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인간은 수만 년 동안 강을 이용하면서도 강의 본성에 적응하며 살았다.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강 사이에 처음 변화가 생겼다. 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오자 도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다. 인구가 급증하니 집값이 올랐고 가난한 이들은 범람의 위험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땅값이 싼 강변에 집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홍수가 날 때마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나기 시작했고, 인간은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강물이 이리저리 넘치며 흐르지 않도록 강바닥을 깊이 팠고 강변에 둑을 쌓아 강물을 가두었다.

1888년부터 이자르 강에도 이런 공사가 있었다. 그러자 강변으로 넘쳐나며 흐르느라 힘을 소진하던 물살이 강변이 강둑으로 막히자 남아나는 힘으로 강바닥을 강타하여 깎아냈다.
강바닥이 낮아지자 강변 지하수도 내려갔다. 질척질척하던 강변 토지에서 물이 빠져버리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집을 짓고 살기에도 좋아졌다. 가용할 땅도 생겨, 홍수도 막아,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물방아간이나 증기기관차 공장처럼 물을 이용하는 시설을 이제는 강가에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도심에 있는 운하의 필요성도 점차 줄어들었다.

때마침 산업혁명의 꽃이라 불리는 전기가 발명되자 독일은 2차 산업혁명의 기수답게 19세기에 이미 이자르 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주1)

강변에는 전기와 증기를 이용한 공장들이 세워졌다. 수력발전은 일정하게 흐르는 물을 필요로 했기에 강 옆에 수로를 만들고 강물을 빼돌려 가둬두었다가 이용했다. 물이 인간의 유일한 동력자원이던 시절, 유럽에서는 이렇게 강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달하고 강변 도시가 새로 생기거나 발전했으므로, 그곳에 흐르는 강에도 그런 역사적 흔적이 남았다.



Mueka_Tivoli15

뮌헨 티볼리 수력발전소. 1896년 건설, 증기기관차 공장과 제분소를 위한 전력 생산.
1985년 문화재 등록, 0.9MW (현재 유럽에 세워지는 신형 풍차 한 대의 전력은 5MW).



Mueka_Baeckermuehle15

뮌헨의 개인소유 수력발전소 벡커뮐레. 원래는 역사적인 물방아간이었는데
1988년부터 터빈을 달아 소량의 전력 생산(0.138 MW).  


그런데 강을 굴착하고 직선화한 지 20년 쯤 지나자 이자르 강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공사의 후유증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이때부터 인간에게 피해를 입힐 만큼 커졌다는 말이 맞겠다.

강바닥과 지하수가 내려가고 강변 토지에서 물이 빠져버리자 그 땅을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강바닥과 지하수가 계속 하강했다는 점이다.
1910년경에는 강바닥이 공사 이전에 비해 10m 더 내려갔다. 그러자 나무가 뿌리를 내려도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해 인근 숲이 죽어갔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으며 우물을 깊게 파도 지하수에 도달할 수 없어 주민의 안녕이 위협받게 되었다.

1910-1920년 사이에 이자르 강에서는 다시 한번 대대적인 하천공사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지난 공사의 후유증인 지하수의 하강을 막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강바닥에 200m 간격으로 일정하게 50-60cm 높이의 콘크리트 단을 만들어 강바닥을 강타하던 물살의 힘을 그곳으로 유도했다.
바닥 경사가 특히 급한 곳에는 콘크리트로 강화한 인공폭포나 폭포수 계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통해 강바닥이 더 깊이 패는 현상과 그에 따르는 지하수의 하강을 일단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인공으로 인한 피해를 더욱 강력한 인공구조물을 통해 막아나가는 동안 강은 점차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 수목과 모래톱이 어우러졌던 물가는 검푸른 이끼로 미끌거리는 콘크리트와 돌 벽에 갇혀 흐르는 수로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점차 길들여져서 문명 세계의 강은 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문명 세계의 강은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들고 나던 강이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예기치 않게 넘쳐올라 인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보다 강력한 둑을 지어가며 이에 맞섰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루고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홍수의 재앙이 날로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선조들의 하천공사에 있다는 것을(주2)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주3)
어떤 기술로 어떤 둑을 쌓아도 인공적으로는 홍수의 위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증명되었다.(주4)


Mueka_Rhein640
라인 강 보 설치와 100년 빈도 홍수의 상관관계. 세로축은 홍수 수위, 가로축은 보 설치 년도.
1928년 최초의 보 설치 이후 1950년대부터 보를 줄줄이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홍수 간격은 짧아져
100년 빈도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 아울러 라인 강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던
식물성장기 홍수마저
일어나는 이변이 생겼다(검은 막대).

(출처: 독일연방 자연보호ㆍ생태계 연구소, 휘긴/헨리히프라이제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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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작업만이 가장 저렴하게 홍수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정부와 학자들 사이 팽배했지만, 하천 건설업계의 로비 또한 치열했다.
일단 보나 댐을 건설해 강을 막으면 그 후유증을 막기 위해 하류 쪽에 보나 댐을 계속 건설해야 하므로(주5) 건설업체의 입장에서 보나 댐 공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런 이유로 도나우(다뉴브) 강에 보나 댐을 설치하려는 RMD AG(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건설한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여전히 강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매년 대대적인 데모를 벌이고 있다.(주6)

유럽인을 홍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물관리 기본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은 2015년까지 가능한 한 모든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고, 불가능할 경우라도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복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엄중한 벌칙금 제도를 통해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있다.(주7)
유럽에서는 큰 강이 인접하는 여러 국가를 거치면서 흐르기 때문에 상류에 위치한 회원국이 잘못해서 환경이 파괴되면 그 피해가 하류에 위치한 다른 회원국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2015년이 5년 앞으로 다가온 현재, 모든 회원국은 국내법을 ‘물관리 기본지침’에 맞추어 크고 작은 강의 재자연화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독일 이자르 강의 뮌헨 구간 복원공사는 성공사례로 손꼽혀 미국과 러시아까지 벤치 마킹하기 위해 답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뮌헨 이자르 강 복원공사의 매력이자 어려움은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도심 구간을 되도록 자연으로 되돌리는 시도를 했다는 데 있다.
독일의 3대 대도시이자 독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뮌헨 시내를 관통하는 이자르 강이니, 건물이며 도로들이 강변에 얼마나 바짝 붙어 들어섰겠는가? 그럼에도 홍수피해를 막고 시민에게 도심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강변에 남은 자투리 땅을 이용해 복원공사를 벌인 수고가 얼마나 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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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르 강 시내구간의 재자연화공사



또 다른 이자르 강의 핸디캡은 역사의 흔적이 상처처럼 남아 있는 강이라는 점이다.

이자르 강에는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고색창연한 수력발전소 뿐 아니라 하천공사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강바닥에 박아놓은 인공 폭포수 계단 같은 인공구조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손댈 수 없다. 그
러나 포기하지 않고 강을 한 뼘이라도 자연으로 되돌리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독일을 오늘의 기술 강국으로 키워준 조상의 업적은 그대로 존중하고 보존하되 미래를 살아갈 후손이 입게 될 환경피해는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안간힘 쓰는 마음씨가 갸륵하다.

제 나라에서 이렇게 극진히 보살핌 받는 이자르 강이 요즘 엉뚱하게도 남의 나라에서 수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측 전문가들은 이자르 강바닥이 더 내려가지 않도록 100년 전에 설치한 구조물을 새로 만든 보와 댐이라 우기고(주8) 수많은 보들이 물을 막고 있어 이자르 강물이 깨끗한 것이라고 법정에서 위증하고 있다.(주9)
이자르 강 뮌헨 전체 구간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8개를 합쳐도 오늘날 북해에 줄줄이 설치되는 현대식 풍차 세 대가 생산하는 전력량에도 못 미치는데,(주10) 이를 두고 "독일은 강을 활용하는 선진국"이라서 잘 산다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상습으로 하는 건지, 참 예의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Mueka_Fall15

한강소송  법정(2010. 6. 18.)에서 정부측 전문가가 이자르 강의 보라고 위증한 구조물.

이 구조물은 강을 가로막는 보가 아니라 두 개의 섬 사이에 위치한 낙차공이다.

이 장소는 중세시대부터 뗏목이 정박하던 선착장이었고, 이자르 강보다 높이 위치한
뮌헨 시 가까이로 뗏목을 대려고 강을 일부 막아 수위를 끌어올렸다.
높아진 물이 이자르 강으로 되돌려지는 곳에는 낙차가 생겨 그 부분의 강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폭포처럼 생긴 낙차공을 만들었다. 1873년 건축, 문화재 지정.

(이자르강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씨가 2010월 7월 5일 오후 2시 필자와 전화통화에서 확인)


 
Mueka_kaskade15

위의 뗏목 선착장과 함께 문화재 앙상블로 지정된 5단 짜리 카스카덴(폭포 계단).

이자르 강 직선화공사 이후 강바닥이 패는 현상이 생기자 100년전에 설치했다.
(이자르강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 씨가 2010년 7월 5일 오후 2시 필자와 전화통화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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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소송 법정(2010. 6. 18.)에서 정부측 전문가가 이자르 강의 보라고 위증한 구조물.
이 구조물은 정부측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유량확보를 위해 물을 막는 보가 아니라
강바닥을 보호하는 하상보호공이다(높이 2.5m). 위에 얹은 다리가 100년 되었으니까
그 밑에 있는 하상보호공은 더 오래된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철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철거하려면 물의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강변에 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한데 공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장소(Flaucher)는 중세 때부터 뮌헨으로 들어가는 운하가 시작되던 곳이다.

(이자르강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 씨가 2010년 5월 10일 오전 8시 필자와 인터뷰에서 확인)
 


우리 조상들은 독일과 같은 기술강국의 초석을 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독일처럼 강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보존해주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전화위복의 행운아들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강을 훼손해서 조상의 공덕을 단숨에 날리고 후손에게 재난과 빚만 물려주려 하는데, 우리는 이를 방관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조상과 후손에게 면목이 없다.

지금 망쳐지는 강은 다시 되돌릴 수 없고, 그 피해는 가지를 치며 퍼져나간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에 도전해 강을 굴복시켰다고 믿었던 산업혁명의 기수들이 150년 만에 깨달은 과학적 진실이다.

내 가족을 위해 밥짓는 일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동네로 들어오는 산불부터 끄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조상이 물려준 집도 날리고 어린 자식들에게 빚만 잔뜩 남기는 계약서에 찍히는 도장 단속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4대강 사업은 아직 반도 끝나지 않았다. 한 삽이라도 더 뜨기 전에 막아야 한다.


9월 11일 토요일, 저의 몸은 독일에 있지만 저의 영혼은 서울광장의 10만 명 인간 띠잇기 행사에 참여할 것입니다. 부디 저와 함께하셔서 4대강 사업을 기필코 막겠다는 국민의 의지를 표현해주세요. 지방에 계시는 분들도 그날 가까운 곳에 행사가 있는지 살펴서 꼭 참여해주세요.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누구 말이 옳은지 모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을 위해 한글로 옮겨진 독일 자료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문해주세요.



뮌헨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임혜지 드림.




<주>

주1: "1894에 건설된 뮌헨의 이자르베르케 (Isarwerke GmbH)는 독일에서 최초로 지역 공급을 담당한 수력발전회사였다." (독일 엔지니어 연맹이 발간한 '전기의 역사' 링크)

주2: "홍수 발생의 주 원인들: ...하천에 대한 공사가 특히 주 원인이다. 개천과 하천에 대한 직선화, 강기슭의 강화, 강바닥의 준설 등의 공사는 강물이 흐르는 속도(유속)를 높인다. 강 상류에서 물이 불어난 경우 강물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강 하류로 흐르고 강 하류에 위치한 주거지역은 홍수의 위협에 처한다. 일종의 문제전이(Problemverlagerung)현상이다." (독일 연방환경부에서 2009년에 제작한 교사용 학습교재 "강, 물 이상의 존재" 50쪽, 원문 링크, 번역 링크.

주3: “오늘날의 하천공사는 근대에 있었던 초기의 수리시설공사와 확연히 구별된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하천환경의 어느 한 곳에 변화를 주면 국지적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하천체계는 폭넓게 손상되고 그 피해효과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뮌헨 공대의 수리학연구소 소장인 동시에 오버나하 수리모형실험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테오더 슈트로블(Theoder Strobl) 교수가 2006년에 공저한 전공서적 <Wasserbau(수리학)> 81쪽. 번역 링크)

주4: "세계 최대의 재보험사 뮌헨재보험은 .... 자연재해가 지난 40년간 추세대로 향후 60년간 증가한다면 전 세계 국민총생산액을 다 합쳐도 피해를 복구하기에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2002년 이미 예측한 바 있다. 습지의 홍수예방과 기타 생태적 기능을 고려할 때 전 세계 습지의 연간 경제적 가치는 580억 유로(약 87조 7천억 원)에 이른다고 독일 연방자연보호청장은 말한다." (2005년도 독일 연방자연보호청 자료, 원문 링크, 번역 링크)

주5: 2008. 4. 29. 독일 바덴뷔르템베르그 주정부 수로청 토사 담당 트롬페터(Trompeter)씨 인터뷰. 2008. 5. 1. 독일 니더알트아이히에서 열린 도나우 데모에서 독일연방의원(사민당) 이르버(Brunhilde Irber) 씨 연설, 같은 날 독일환경보호연맹 회장 바이거 교수(Prof. Weiger) 인터뷰.

주6: 매년 5월에 도나우 강변의 니더알트아이히 마을에서 열리는 도나우데모에는 주민, 환경단체, 정치가들 뿐만 아니라 시장, 공무원,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도나우 강에 보를 세우려는 건설회사를 고발하고 성토하여 장장 20년 전부터 이들의 로비에 굳건히 맞서고 있다.

주7: "유럽연합 법규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기한을 어기는 회원국에 대해서는 유럽연합법원의 유럽연합 법규위반 관련 소송절차를 거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벌금은 1일 최고 75만유로까지 부과한다[12.8]." (뮌헨공대 테오더 슈트로블(Theoder Strobl) 교수가 2006년에 공저한 전공서적 <Wasserbau(수리학)> 559 쪽. 번역 링크)

주8: 2010. 8. 27. 부산지방법원 낙동강 소송

주9: 2010. 4. 2.  부산지방법원 낙동강 소송 (신문 링크)

주10: 이자르 강의 수력발전소 리스트에 따르면 뮌헨 구간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8개의 전력은 총 13.65MW (자료 링크), 풍차공원에 즐비한 현대식 풍차 한 대당 전력은 5MW.(자료 링크)



<참고문헌>
- 번역연대 http://www.hanamana.de/dul    
-테오도르 스트로블(Theoder Strobl), 수리학(Wasserbau), 2006  
-독일 연방환경부 제작 교사용 학습교재, 2009 http://www.bmu.de/files/pdfs/allgemein/application/pdf/wasser_de_handreichung.pdf    
-독일 연방자연보호청 자료, 2005  http://www.bfn.de/pm_33_2005.html    
-이자르 강 http://de.wikipedia.org/wiki/Isar, http://regiowiki.pnp.de/index.php/Isar    
-뮌헨의 운하 http://de.wikipedia.org/wiki/M%C3%BCnchner_Stadtb%C3%A4che    
-전기의 역사(Aus der Geschichte der Elektrizität), 독일 엔지니어 연맹 정보지 http://www.vdi.de/fileadmin/vdi_de/redakteur/bvs/bv_thueringen_dateien/Ausgaben_2004/3_2004/geschichte.pdf
-풍차공원 http://de.wikipedia.org/wiki/Windpark
-부산지방법원 낙동강 소송 2010. 4. 2. 신문기사 http://www.ihknews.com/news_PDF/news20100407.pdf

사진 출처
- 피스터 천, 1907년 사진. (출처 위키페디아) http://de.wikipedia.org/w/index.php?title=Datei:M%C3%BCnchen_-_Pfisterstr._%28heute_Sparkassenstr.%29_1907.jpg&filetimestamp=20090716185605
-1613년 뮌헨 지도 (출처 위키페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0/Volckmer_Munich_1613_streams.png
- 티볼리 수력발전소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5/Tivoli-Kraftwerk_Muenchen.JPG
- 벡커뮐레 수력발전소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5/Munich_Auer-Muehlbach_Powerstation-Baeckermuehle_from_nort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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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지난 수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일간 르몽드는 전면에 걸쳐 <시>에 대한 평과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일간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도 뜨거운 찬사를 곁들이며 칸영화제 기간 동안 열렬한 호응을 받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에는 마치 끓고 있는 수프와 같이 놀라운 한국 사회의 에너지가 넘친다.” 피가로가 <시>에 대해 평한 것처럼, 세계영화계가 한국 영화에 거는 기대 속에는 쓰라리고 거칠면서도 그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도전적 힘에 대한 끈끈한 응시가 들어있다. 이창동은 이러한 세계영화계의 기대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않는 저력있는 영화인임에 분명하다.



르몽드는 이창동과의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한국에선 0점 받은 <시>’로 뽑았다. 칸영화제에서는 시나리오상을 거머쥔 이 영화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작지원 사업 심사에서 ‘0점’을 받았고, 결국 그 어떤 지원도 정부 측으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상황과 동떨어져 있는 그들에게도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을 터. 어떻게 이러한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언론들은 전 정부의 장관에 대한 현 정부의 보복으로 해석했다고 이창동은 조심스럽게 밝혔다.

사람들은 흔히 유인촌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를 대표한다면, 이창동이 노무현 정부의 문화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머릿속에 대치시키곤 한다. 그러나 그는 단 1년간 문화부를 이끌었다. 네이버 인물정보를 보면, 이창동은 자신의 경력에 문화부 장관 재임 사실을 적고 있지 않다. 본인의 의지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왜 그토록 짧은 기간만 장관직을 수행했는지 묻는 기자에게 이창동은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축소시키려는 미국의 압력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수용하려 하였고, 여기에 대해 나는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답했다. 자신의 반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걸림돌이 되자 장관직을 떠났다는 것이다. 당시 이창동은 자신의 사직 이유에 대해 함구했다. 문화부를 떠나기 직전, 이창동은 1년간 장관직에 머물면서 전국의 거의 모든 문화예술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함께 만들어낸 문화부 최초의 백년대계라 할 만한 ‘창의한국’ ‘새 예술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창동은 “꿈만 꿀 수 있더라도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답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다. 그의 뒤를 이은 정동채, 김명곤, 김종민 장관 시절 이 곱디고운 꿈들은 철저하게 폐기되었다.

유인촌 장관은 문화계 전역에서 전 정부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새 문화부 장관의 임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떠났다. 그 뒤를 이어, 17년간 17번의 부동산 거래를 하며 살아온 신재민 문화부 장관 후보자에게 유산된 꿈을 들여다봐줄 것을 희망하는 건 멋쩍은 일이다.

“이창동은 강물 위에 떨어진 꽃잎이 아니라 하나의 시체로, 그러나 분명 꽃처럼 떠다니는 시체로 우리를 맞이한다”로 시작되는 리베라시옹의 평은 “여주인공 미자는 세상을 보려 하고, 느끼려 애쓰지만, 그녀는 이미 그 안에 있다. 그러나 사과는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로 끝을 맺는다.

유산된 꿈, 꽃처럼 떠다니는 시체는 그러나, 이렇게 응축되어 있다가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언어로 살아나 우리에게 강렬한 동시대인의 무뎌진 감각을 되살린다. 문득, 그 17년 동안 신재민 후보자는 몇 편의 영화를 보았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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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형식 (봄내,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벨기에는 인구 1,000만 명의 인구가 경상도만한 면적에 와글대면서 사는 유럽의 작은 나라입니다. 나라는 작지만, 사회적 경제 또는 시민사회라는 면에서 살펴보면 대단히 역동적인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살라먼 등의 비영리부문(non-profit sector)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벨기에는 비영리부문이 국민경제, 특히 고용과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라입니다 (경제활동인구 대비 비영리부문 노동력 (유급+자원활동) 네덜란드 13%, 벨기에 12%, 한국은 4%).
비영리부문이 일정한 수익을 배분한다는 이유로 협동조합을 제외시키고, 통상적으로 사회적경제의 부문으로 간주되지 않는 공익법인(사립학교법인이나 병원법인 같은)을 포함시키고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한 나라의 시민사회 또는 사회적경제의 규모를 상당한 정도로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벨기에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제가 인상적으로 관찰한 것은 19세기 후반 근대적 시민사회 형성과정에서 나타난 가톨릭 교회와 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의 경쟁입니다.
오래된 국가기구의 역사를 가진 영국이나, 공화주의에 기반한 프랑스와는 달리, 1830년에야 독립된 나라로서의 역사를 시작한 벨기에는 강력한 국가기구가 존재하기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심지어, 왕도 독립이 된 이후에, 당시 독일 귀족가문이면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었던 외국인을 스카우트해왔고, 그나마도 국왕으로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헌법을 인정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크게 두 사상적 축을 중심으로 삶을 조직해갔습니다
.

그 한 축이 오랫동안 민중들의 삶
그 자체였던 가톨릭 교회입니다.
교회의 교구는 그 자체가 마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종교적인 의례뿐만 아니라, 축제, 장례, 교육, 구제, 상호부조, 그리고 생산을 함께하는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이 등장하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세속주의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던 길드 등 직업조합의 전통 속에서 사람들은 교회가 아닌 다른 삶의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주의자들은 마을마다 민중의 집을 세우고,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빵집을 운영했습니다.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상호공제기금이 형성되고, 노동자들의 축제와 여가를 위한 클럽들이 성장했습니다.


그리하여
, 20세기 중반까지 벨기에는 가톨릭교회를 삶의 중심에 놓고, 가톨릭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가톨릭 상호공제조합을 이용하며, 가톨릭이 운영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기독교민주당에 투표하는 사람들과 사회주의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상호공제조합에 가입하고,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면서 사회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두 시민사회가 공존하게 됩니다.
양 진영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경쟁적으로 민간단체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내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로에게 우호적인 시민사회 진영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사회 조직들을 지원했고, (제가 보기에) 이것이 전체적으로 시민사회의 총량을 키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사회당 메이데이 행진 - 100년이 넘은 사회당 계열 동네 악대가
'인터네셔날'을 연주하며 행진합니다. (리에쥬, 2008)]



2
차 대전 이후의 경제성장과 복지국가의 형성은 사회적경제의 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통적인 상호부조제도였던 상호공제조합(mutual)들은 공공의료보험에 편입되었습니다. 오늘날 양대 상호공제조합인 기독교 상호공제조합(Mutualité Chrétienne)과 사회주의 상호공제조합(Mutualité Socialiste et Syndicale)를 포함하여, 5개의 주요한 상호공제조합들이 민간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관리하는 공공의료보험 기금의 하위인프라로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상호공제조합]                        [사회주의-노동조합 상호공제조합]



협동조합들, 특히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은행협동조합들은 금융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다른 일반은행으로 통폐합되면서 본래의 공동체적이고 운동적인 성격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CBC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KBC라고 불리는) Dexia 등이 협동조합 은행을 흡수하거나 통합한 은행들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협동조합들이 시장환경에 적응하면서, 정체성을 잊을 만큼 규모가 커지거나, 또는 반대로 시장경쟁에 밀려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벨기에에서는 흔히 ASBL(Association Sans But Lucratif, 비영리민간단체)로 불리는 민간단체는 전통적으로 주로 카톨릭 진영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되어 사회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견제를 받아오긴 했지만,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에 기반한 민간단체들도 점차 증가했습니다.
1960
년대까지 벨기에의 사회적 경제는 이렇듯 복지국가의 틀 속에서 제도화되는 동시에 가톨릭과 사회주의라는 양대 이데올로기 축을 중심으로 안정화되게 됩니다
.

그렇다면, 벨기에에서 새로운 사회적 경제는 언제, 왜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원문은 http://eurojinbo.net/?document_srl=81064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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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형식 (봄내,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유럽의 사회적 기업은 어떤가요?”

이 질문은 두 가지 지점에서 저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유럽의 이미지와는 달리, 유럽, 적어도 유럽연합은 역사와 문화, 언어를 달리하는 27개국이 모여있는 ‘다양성’의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보다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라, 사람마다, 조직마다 각각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놓고 있습니다만, 제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사회적 기업은 역사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이 있다가 최근에 와서 발견되었다거나, 무언가 사회 적기업이라고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있다고 전제하는 접근법, 다시 말해 개념/이데올로기 자체가 실체인 것처럼 오해하는 ‘물신주의’를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이라 불리던, (제 표현을 사용하자면) 새로운 사회적 경제라 불리던 간에, 무언가 새로운 개념과 이름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현상’이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현재도 발전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그 이유를 설명하겠지만, 일단 저는 이 현상을 ‘새로운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흔히 듣고 있는 사회적 기업도 이 현상의 일부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주류화되고 있는 공정무역이나 로컬푸드, 아직 실험적이지만 지역화폐나 지역수준의 새로운 거버넌스 등도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현상에 포함됩니다.

새로운 사회적 경제가 뭐냐, 어떤 원리에 기반해서 작동하느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자본주의와 다르냐 등등의 이야기를 이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은 아닙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제가 유럽에 머무르면서 모은 자료와 만났던 사람, 그리고 방문했던 조직들을 정리해보고, 이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현상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를 질문해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현상’을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무엇에 비해 새로운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사회적 경제의 이야기는 흔히 19세기 초반의 유럽에서 등장한 ‘전통적 사회적 경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전통적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 ‘공상주의자’라고 낙인 찍었던 (왜 공상적인지 우리가 판단할 여유도 없이!!) 푸르동, 푸리에, 생시몽, 오웬 그리고 마르크스에게 덜 찍혔는지, 아니면 마르크스가 관심을 가질 정도의 비중도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상주의자’에서 열외가 된 뷔셰, 르 쁠레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협동조합 공화국’에 대한 꿈과 20세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복지국가의 형성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덩달아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어간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민간단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장구한 역사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려면, 별로 재미도 없고,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군요. 전통적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마음을 잡고, 준비를 잘 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제가 살고 있는 벨기에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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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8월에도 당신 곁에 있어줄 가장 충실한 파리지앵.” ‘파리지앵’이라는 일간지가 8월에 내세우는 광고 카피다. 8월 파리에는 카페에서 같이 수다를 떨어줄 이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빵집도, 공연장도 문을 닫고 대입 수험생도, 공무원도, 심지어는 방송사도 논다. 재방송으로 뒤범벅된 따분한 TV를 감수해야 하는 게 프랑스의 8월이다. 법정유급휴가가 5주인 데다, 전 세계에서 휴가 활용도가 가장 높은(89%)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휴식할 권리를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한번은 직원과 약속을 잡고 은행에 갔는데 10분 늦었다. 다행히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오전 11시40분. 당연히 상담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직원 앞에 앉았는데 “미안하지만, 당신은 늦게 왔고, 나는 원래 11시45분에 식사를 하러 가기 때문에 당신과 오늘 상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상담시간이 적어도 10분은 걸릴 테고, 당신 때문에 내 5분을 빼앗길 수는 없지 않으냐”는 말을 웃으며 차분히 하는 여직원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권리는 저런 식으로 사수하는 거였니!! 뒤통수를 한 대 퍽 맞고, 우리나라 같으면 ‘황당 은행원’으로 신문에 날 일이라 생각한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8월에는 별 사건이 없다. 정치인, 노조나 시민단체도 같이 놀아주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더운 여름날, 이 나라 정서상 결코 쉽지 않은 부지런을 떨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임신한 여인을 경찰이 질질 끌고가는 동영상은 그렇게 해서, 프랑스의 새로운 국가이미지로 떠올랐다. 집시 추방계획이 발표된 지 9일 만에 강제철거가 집행된 것이다. 강가에 캠프를 치고 집단거주하던 집시들이 자다가 봉변을 당했고, 소식을 듣고 몰려온 인권·사회단체 사람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마찰이 일기도 했지만, 상황은 반나절 만에 종료됐다.

집시는 인도 북서부에서부터 유럽 전체를 유랑하며 사는 민족이다. 그들에겐 국적도, 정부도 없다. 어느 민족에나 있는 종교나 지도자, 그들을 연대시키는 정치적 신념도 없다. 오직 유랑할 자유를 빼앗는 것만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 뿐. 유럽 땅에 지금 같은 국경이 선명하게 그어지기 전부터 자유롭게 유랑해온 그들에게, 불법체류자의 딱지를 붙이며 “치안불안”을 들먹이는 프랑스 정부야말로 바람을 가르는 새들을 향해 그물망을 치고 잡겠다 덤벼드는 꼴이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바스티유 장에 가면, 언제나 집시들을 만날 수 있다. 집시소녀들은 봄이 막 움트기 시작하면 라일락을 다발로 묶어서 판다. 이들이 파는 라일락은 언제나 내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향기로운 신호였다. 집시들은 어느 나라에 가서나 자신들의 음악과 춤을 통해 그 나라의 예술을 풍요롭게 재탄생시킨 민족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플라멩코, 헝가리안 랩소디로 대표되는 음울하면서도 광적인 헝가리음악,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나오는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의 창조는 집시들이 흩뿌려 놓은 문화적 유산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삶은 언제나 예술이라는 유희를 동반한다는 걸 그들의 자취가 말해준다.

집시들의 언어에는 의무와 소유를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소유만이 존재를 입증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왕성한 생존이야말로 우파 정권들이 경계해야 할 위험한 집단일지도 모른다. 소유하기보다 강렬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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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부르카 벗겨내기가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벨기에 의회가 지난 4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금지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프랑스 하원이 이달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고, 스페인에서도 조만간 통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부르카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의상 가운데 하나로 눈을 제외한 몸 전체를 검은색으로 가리는 옷이다.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즉각 구금, 체포할 수 있도록 했고, 실제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고 방송에 등장한 여성앵커가 남성들에게 살해되는 사건도 있어, 부르카는 여성탄압의 상징이 되어왔다. 남성들은 누드로 도배된 도색잡지를 보건 말건, 여성의 신체는 오직 그 남편만 볼 수 있다는 ‘기도 안 차는’ 부르카 착용의 논리가 이 전신 베일을 전통적, 종교적 의미로 존중해주기만은 힘든 지점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의 이번 표결에 대해 명쾌하게 긍정할 수 없는 것은 정치권의 의도가 명백히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르카 착용에 대해, 이것이 여성의 존엄을 해치며, 프랑스 정신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나, 문제는 이 말씀을 하신 화자에게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을 소탕하겠다며 2001년 아프간을 침략하면서 “탈레반으로부터의 아프간 여성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운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달까. 탈레반 정권은 진작 붕괴됐는데, 전쟁은 어인 일인지 10년째 끝날 줄 모르고, 한국은 한 달 전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쟁에 또다시 파병했다. 부시가 ‘공포’를 팔아 정치를 했다면 사르코지는 ‘증오’를 팔아 정치를 한다. 2005년 내무부 장관 시절, 아랍계 청년들을 향해 “쓰레기들, 쓸어버리겠다”고 발언해 폭동을 대확산시키고, 그 기회를 인종갈등과 치안불안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활용한 이래, 증오를 부추기는 화끈한 선동정치는 그의 주종목이 되어버렸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600만명.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이 중 부르카를 착용하는 여성은 1900명 선이다. 7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부르카를 두른 여성을 마주친 경험은 아직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정권을 잡은 후, 교통신호만 위반해도 4~5명의 경찰관이 앞뒤로 차를 둘러싼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은 표정으로. 인종분쟁을 증폭시키고 증오를 확대하는 것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하는 사르코지야말로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그를 편견 없이 대통령으로 뽑아준 프랑스인들의 쿨한 시민정신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중이다.

프랑스의 남녀 임금격차는 26.9%에 달한다. 우리(38%)보단 낫지만, 감히 여성의 존엄성 운운할 정신이 있다면, 1900명의 부르카 착용에 신경쓰기 전에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겪는 심각한 불평등부터 신경썼어야 했다. “진정으로 검은 두건을 두른 자는 사르코지, 부시이며,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는 무리”라는 한 프랑스 네티즌의 지적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최근 국내에 급격히 늘어나는 성폭력을 걱정하면서 무심코(?)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들의 다리를 자료화면으로 내보내는 SBS의 행태도, ‘성나라당’ 집권 이후 고삐 풀려가는 사내들의 평정심은 들여다볼 줄 모르면서 지나치게 여성들을 걱정(!)해주는 남근주의적 센스에서 빚어진 사고다. 옷을 벗건, 껴입건, 좀 놔두시죠. 상식적인 평등과 자유가 사회에 작동한다면, 여성들도 댁들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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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형식 (봄내,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가볍게 쓰겠다는 것이... 서설이 벌써 너무 길어졌네요. 


원래 이번 글은 제가 경험한 어느 기업의 사회적인 성격의 ‘너무나도’ 혁신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려고 시작했는데...

최근 라이언에어(www.ryanair.com)를 몇 번 이용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가항공의 개척자로서 워낙 유명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발상을 전환하는 파격적인 운항방식도 잘 알려져 있죠.
저렴한 요금을 선택한 대가로 자질구레한 불편을 감내하는 가운데, 라이언에어의 혁신적인 마인드가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 재미있는 점들을 관찰할 수 있어서,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라이언에어의 세 가지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

먼저, 라이언에어의 ‘€Million’ 프로그램입니다.
어느 항공사의 승무원들 보다 더 바쁜 것 같은 라이언에어의 승무원들이 군것질 거리 판매를 위해 한 번, 면세품 판매를 위해 한 번 지나간 후, 다시 무언가를 판매하기 위해서 복도에 나서더군요.
승객들이 혹시라도 무얼 파는지 이해하지 못할까봐 방송을 통해 다국어로 친절하게 설명한 상품은, 다름 아닌 ‘복권’! 라이언에어에서 발행하는 이 2유로짜리 복권은 1등으로 당첨될 경우, 4만 유로의 현금이나 4만 유로에 해당하는 차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권의 수익은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와 시력장애 예방을 위한 단체를 위해 쓰입니다.
복권을 6개 사면 20%를 깎아서 10유로에 준답니다. 다른 항공사들도 기부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기부 봉투를 나누어주고 거두어가는 정도의 소극적인 프로그램들이죠. 이렇게 복권이라는 상품을 개발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공세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은 드문 경우일 겁니다.

사실, 처음 라이언에어를 탔을 때부터 보았던 복권프로그램은 신선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사회적기업에 관련시켜 이야기를 할 동기까지는 부여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저를 자극한 것은 엊그제 라이언에어 기내잡지(좌석마다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승무원이 배포하고 회수하는... 하지만 광고로 가득한 이 잡지는 라이언에어에서 화장실과 함께 유일한 무료 서비스입니다. 가져가도 무방한...)에서 발견한 정말로 독특한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인 ‘The Girls of Ryanair’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마다 라이언에어 여승무원들을 모델로 하여 세미누드 사진을 찍고, 이 사진들로 제작된 달력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인데, 올해는 몇 주 만에 모두 팔린 달력판매 수익금 11만 유로를 장애어린이를 위한 재단에 기부했다고 하네요.

처음 기사를 보았을 때, “이건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들이나, 기꺼이 세미누드 모델이 되어준 승무원들이, 스스로가 플레이보이지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뭔가 참신한 발상과 파격적인 마인드가 필요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어 찌되었든 기업총수가 부정부패로 처벌을 받은 후, 선처를 조건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사재를 출연하여 조성된 기금 보다는 훨씬 좋은 돈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류사회에 의해 낙인찍히고, 소수자로 몰려버린 흡연자들을 위한 적극적인 배려 또한 인상적인 라이언에어의 정책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비행시간 동안 흡연을 못해 괴로워하는 흡연자들을 위해 기내 면세품 판매 시, 연기가 나지 않는 전자담배를 판매하더군요. 혹시라도 정보부족으로 흡연자들의 권익이 손상되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방송으로 면세품 판매를 알리면서, 역시 다국어로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전자담배 판매만 한다면, 수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면서, 현지의 시간과 날씨 정보 등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을 하면서, 꼭 “이 공항의 흡연구역은 어디어디에 있다”는 정보를 빼놓지 않더군요. 이 정도면 전자담배를 팔기 위한 마케팅을 넘어서서, 소수자에 대한 일관된 배려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착륙을 전후로 하여 비행기를 급강하시킴으로서 승객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청룡열차를 타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거나, 착륙을 하면서 뒷바퀴를 좀 세게 지상에 걸침으로서 뒷좌석에 앉은 승객들에게 비행기 사고에 대한 가상체험을 제공하는 고객서비스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라이언에어도 사회적 기업인가? 

다소 비꼬는 투로 쓰기는 했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라이언에어가 어떠어떠한 기업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가끔 글이 옮겨지면서 진의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어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의 혼란스러운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를 좀 과장해서 써 본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은 “그래, 라이언에어도 사회적기업이네!”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앞으로 유로진보넷을 통해 나눌 글을 통해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지,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던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의 변화는 무엇인지, 이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왜 라이언에어가 혁신적인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공헌만으로는 사회적 기업이라 불리기 적합하지 않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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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좌파 한인들의 유럽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유로진보넷(http://eurojinbo.net)의 기획시리즈 <도시, 마을, 그리고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엄형식님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엄형식님은 이 글에서 요즘 유행처럼 이야기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 연원과, 그것이 상업적으로 오히려 '악용'되는 과정에 대해 지적합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인간의 얼굴을 한 '다른 경제'를 고민하기 위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에 첨부된 이미지들은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입니다. 원문은 유로진보넷 사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운영자



엄형식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사회적경제란 무엇이고, 사회적 기업은 무엇인가? 왜 최근 들어 사회적 기업이 주목을 받고 있고, 사회적 기업은 그러한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무엇이 사회적 기업의 ‘새로움’이고, ‘사회적’ 성격인가? 사회적경제와 사회적 기업은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는가?

저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대안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기획으로서의 사회적경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이러한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개념에 대한 이야기와 현장의 사례들에 대한 소개, 개인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 -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에서 도깨비방망이로 

사회적 기업은 ‘무엇이다’라고 명쾌하게 정의 내려질 수 있는 실체에 대한 개념이 아닌, 어떠한 현상을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함으로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적 도구일 뿐입니다.

태초에 ‘사회적 기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죠. 따라서 누군가가 특정한 현상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이것이 정말 사회적 기업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보다, ‘왜 그 사람은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들이 단순한 말장난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새로운 표현으로 불릴만한 변화와 새로운 현상이 우리 시대에 존재한다는 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많이 사용되면서 당초 특정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도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서, 개념 스스로가 고유의 의미를 가진 실체인 것처럼 자가발전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개념이 공공정책에서 인정받기 시작하고, 변화한 사회 속에서 잘 먹히는 새로운 마케팅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제가 보기에) 유럽에서 사회적 기업 (social enterprise) 개념이 등장한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미국식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 사회적 기업가 정신(social entrepreneurship) 개념과 중복되면서, 개념이 밝히고자 했던 역사적 현상과 별로 관계없는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개념으로 변모해왔습니다.
이는 다양한 이해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사회적 기업 개념이 정치적으로 동원되어온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착한 기업'들의 현실을 비꼰 카툰. 출처는 http://www.zdnet.com/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적 개념이 대중적으로 그 적절함을 인정받아 발전하는 것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시민사회에 토대를 두고 ‘해방’의 가치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던 역사적 현상들을 설명하고자 했던 개념이 자본과 국가의 도구적 개념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자본과 국가가 시민사회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개혁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고, 저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여전히 판단유보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오해 - 사회적 혁신이면 충분한가? 

개념 자체의 자가발전을 촉진시키는 논거 중에 ‘사회적 혁신’을 사회적 기업의 핵심으로 보는 접근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조직적 특성, 즉 비영리적 성격과 민주적/참여적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산출하는 활동의 결과물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혁신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향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회적 기업이라고 불리는 조직들이 보여주는 주요한 혁신은 자본주의 기업과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인드, 민주적/참여적 지배구조를 통해 구현되는 일하는 사람 및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설정, 그리고 스스로가 시민사회의 구성요소로서 다양한 지역시민사회의 자원과의 연계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상적으로만 보면, 이러한 사회적 기업의 혁신능력은 기존 자본주의 기업의 발상을 뛰어넘는 ‘혁신적 사고’의 하나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 다른지 보다는, “다르다”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죠.

결국, 사회적인 목적에 조금이라도 관련되는 혁신적인 발상이 쉽게 ‘사회적 혁신’으로 해석되고, 더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표방하는 자본주의 기업이나, 운영방식에서 소비자 참여의 폭을 넓히고 수익의 일부를 공익사업에 사용하는 공기업들도 사회적 기업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곤 합니다.
어찌되었든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기업’이니까요... 이렇듯 개념의 자가발전은 개념이 시작되었던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개념으로 진화하고, 더 나아가 원래의 가치에 대척되는 반대편의 개념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개념’ 일병 구하기 - 그의 이름을 바꾸어서라도...  

저는 사회적 기업 개념이 당초 설명하고자 했던 현상은 시민사회의 해방적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운동들이었고,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기업 개념은 그것이 갖는 정책적 유용성 이전에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되고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자가 발전한 개념이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다면, 이는 다른 용어를 통해 설명되거나 (사회적 기업가나 사회적 기업가정신과 같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오용이 이미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었다면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원래의 현상을 구별하여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용어도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오래된 개념이지만, 사회적 기업만큼 인기가 있지는 않은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을 제가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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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난 소중하니까.’ 10년 전쯤, 지겹도록 들었던 저 광고의 주인공, 로레알사가 프랑스를 스캔들 정국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어지간한 남의 인생살이엔 콧방귀도 안 뀌는 이 동네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집안 얘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 연유는 재벌가에서 벌어진 그 흔한 재산 소송의 귀퉁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로 흘러간 불법 정치자금의 꼬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87세의 릴리안 베탕쿠르는 로레알사 창업주의 딸로, 로레알사 주식의 31%를 점유하고 있는 프랑스 제1의 거부다. 이 여인의 주변을 40여년 전부터 맴도는 사람이 있었으니, 소위 다큐전문 사진작가 바니에란 자다. 꾸준히 베탕쿠르가 주변을 맴돌던 그는, 20년 뒤 베탕쿠르 가족의 절친이 되기에 이른다. 귀도 성치 않고, 심신 상태도 흐릿해진 릴리안의 심리를 조정하여 약 1조5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빼간 혐의로 이 자를 고소하고, 어머니가 자산관리 부적격자이니 자신이 그 대리인 역할을 하겠다고 외동딸이 소송을 걸면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릴리안은 인생 최고의 낙이 바니에와의 대화였다며, 딸의 방해로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딸이 오히려 자신을 모함한다고 항변한다. 그 와중에 릴리안의 경리담당 직원이 비밀리에 녹음테이프에 담아오던 몇 가지 진실을 법정에서 폭로하고, 언론에 진술하면서 사르코지가 시장이던 시절부터 그와, 그의 대선자금 담당이던 뵈르트(현 노동부 장관)에게 지속적으로 불법 정치자금이 건네진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다급해진 사르코지는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측근의 결백을 소리 높여 주장하였으나,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그러면서 연금개혁(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는)은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천명한다. 프랑스의 모든 노조들이 총력을 다해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연금개혁이다. 이제 그의 지지율은 프랑스의 그 어떤 대통령도 가보지 못했던 26%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보다, 일개 경리직원의 말을 사람들이 더 신뢰하기까지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23살의 대학도 아직 안 졸업한, 오토바이 뺑소니 경력의 심히 의심스러운 청년을, 단지 사르코지의 아들이란 이유로 정부 고위직에 임명하려다, 천지를 뒤흔드는 조롱소리에 카드를 잠시 내려놓은 일도 있었다. 농민박람회에서 만난 농민에게 악수를 청한 사르코지의 손을 한 농민이 회피하자, “꺼져버려, 이 멍청아”라고 시원하게 내질러 유튜브의 톱스타가 된 적도 있다. 교황과의 면담 중에 아내 브루니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들킨 사건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2008년, 사르코지가 임기 1년을 넘겼을 때,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마리안은 표제로 “제기랄, 4년이나 남았어!”를 뽑아냈다. 친부자 반서민 색깔이 명백한 데다, 경악할 수밖에 없는 언어감각,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르코지를 1년간 겪고 난 프랑스인들의 피로감을 정확하게 드러낸 한마디였다. 집권 3년차에 해당하는 지난 1년을 르몽드는 “끔찍한 한해”라고 묘사했다. 한 동안 시사주간지들은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표지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어딘지 좀 이상해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얼굴은 사르코지였다. “사르코지 왕조” 라는 유행어를 뒷받침하는 섬뜩한 패러디였다. 프랑스 사람들과 정치얘기를 하면, 꼭 우리나라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친밀감을 급격히 느끼는 요즘이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우리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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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16  경향신문 

베트남 신부 땃티황옥씨가 우리나라에 온 지 1주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되었다.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니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난 6월 말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4년6개월의 임기를 다하고 그 업무를 종료하였다. 임기가 다하기는 했는데, 과연 해야 할 일도 다했을까? 이런 위원회는 할 일을 다 해야만 임기가 끝나는 게 아닌가? 이런 최근의 일들을 보면서 나는 국가의 품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 신부 죽음 막을 수 없었나

오래전 군 복무할 때의 일이었다. 전두환 정권하의 일인데, 행정병으로 복무하던 내가 소속된 부대는 당시 비상시 작전계획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 즈음 군무를 마친 늦은 밤, 친하게 지내던 동료 둘과 몰래 술잔을 나누게 되었다. 문득 한 친구가, “전쟁이 나면 난 탈영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는, “그래? 난 아직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라고 화답했다. “왜 그러는데? 왜 탈영한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이런 나라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고 싶지는 않아”라는 것이었다. “탈영하면 어쩔 건데?”라고 물으니 “뭐, 일본으로 밀항하든지…”라는 답이 날아왔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이후의 과정이 전개될 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일이 퍽도 오래전 군에서 있었던 바로 이 충격적인 대화였다. 그래. 이 땅에서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 천안함이 누군가에 의해 폭침되었다면 그 짓을 한 쪽은 북한일 것이라고 나도 생각했다.

선거가 코앞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정부의 대응이 냉철했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방장관은 “북한의 개입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김동성 의원은 “그 말은 북한의 개입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논리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동일한 전제에서 “북한의 개입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똑같이 논리적으로 추론된다. 이후에 할 일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충분히 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천안함 증거 충분한 조사 아쉬워

한반도에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전쟁을 수행할 젊은이들의 참전 동기가 확실해야 한다. 애국심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의 몫이라면, 그들이 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만드는 일은 기성세대, 특히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의 몫이다. 그나마 참여연대가 유엔을 상대로 했던 일 덕분에 체면을 조금은 살렸다. 정부의 체면은 깎였겠지만 나라의 품격은 덜 깎였다는 말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기남기자)

학문의 세계에 대해 말하자면, 학문의 품격은 엄격성에서 나온다. 재미 한인학자인 내 은사는 한국에서 발간해 보내온 한 저술에 외국 학자 이름의 영문표기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는 “책의 품위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오류”라고 말했다. 지나친 비판이 아니냐는 반문에 그는 “학문적 자질의 문제”라고 하였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학자들이 과학적 근거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한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들의 학문적 품격을 위해서도, 나라의 품격을 위해서도 말이다.

불의하게 고통 받은 모든 이들의 억울함을 신원하는 그날까지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가족과 눈물의 이별을 뒤로한 채 행복을 꿈꾸며 왔던 베트남 신부에게 한국 땅이 저주의 땅으로 바뀌지 않도록 할 수 없었을까? 시간을 충분히 갖고서 천안함 관련 증거들을 비판적으로 철저히 점검할 수는 없었을까?

국가의 품격을 위해서는 이런 모든 일들을 꼼꼼히 살펴야만 한다. 떨어진 국격에 마음 아파하자니, 곧 학회에서 만나야 할 베트남 친구 교수를 무슨 낯으로 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드민다. 그들에게 내 인격도 함께 추락해버렸으니 말이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