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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지난 화요일, 햇빛 가득하던 파리 시내에 요란한 자동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가보니, 양쪽 차선을 완전히 점거한 대형 트랙터들이 꼬리를 물고 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항의하는 프랑스 전역의 농민들이 1500대의 트랙터를 타고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대낮에 시가지에 진입한 탱크처럼 긴 트랙터 대열의 시각적 효과는 위협적이었다. “사르코지, 너의 정책은 빵점이야!” “브루니(사르코지 대통령 부인), 우린 사랑과 물만 먹고 살 순 없어.” “우리 농업을 지키는 데는 대가가 필요하다.” 슬로건들은 단호했지만, 시위는 유쾌했다.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치거나, 미소를 보내며, 그들의 싸움을 지지했다.

전통적 농업국인 프랑스, 식량자급이 가능했던 이 나라의 농업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사르코지가 집권한 3년 전부터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농민들의 수익은 더 이상 농업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떨어져갔다. 그들은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요구했다. 식량주권과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임을 강조하며….

많은 농민들이 땅을 떠났다. 지난 10년간 프랑스 농장의 숫자는 30% 감소해 이제 1만여개만 남았다. 자살하는 농민, 땅을 떠나는 농민들의 이야기는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세상 그 어느 나라의 농민도 여유롭고 풍족하지 못하다.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잘 먹고 싶어하는데, 그럼 이들이 포기한 식량 생산은 누가 독점하는가. 궁극적으로 농민의 희생을 이익으로 챙기는 자들은 소수의 다국적 종자기업들이다. 1·2차 세계대전에서 폭약, 전투용 가스 등을 만들던 다국적기업들은 오늘날 전 세계 종자·비료산업을 장악하면서 식량생산 주도권을 쥐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고엽제, DDT를 만든 회사 몬산토는 현재 전 세계 유전자변형작물(GMO) 종자 특허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소위 죽음을 파는 회사들, 그들과 결탁한 WTO, 정치권력은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 그들은 유독성 화학물질로 지구의 토양을 초토화시키고, GMO와 강력한 비료로 노동력을 최소화하는 기업농을 지휘하면서, 농민을 땅에서 내쫓는다. 거기서 생산된 작물들은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인체를 공격한다. 생명의 근원인 땅에 대한 착취는 가부장적 자본이 창궐하는 이 시대에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식량 자급률이 26%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 농민들은 삽 하나 머리에 든 권력의 땅에 대한 착취로 토지를 잃고, 서민들은 살아갈 터전을 잃는 중이다. 우리가 삶을 비로소 누릴 수 있게 되는 첫 조건은 우리의 삶이 싹튼 그 땅에 평화롭게 뿌리내리는 것인데.



시위에 참여한 한 프랑스 농민의 말이 가슴을 적신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건,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지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죠. 서로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대부분의 시간에 우린 완전히 혼자거든요. 그거 아세요? 착취가 강화될수록 사람들은 서로 분리당하는 거.”

대지의 여신, 풍요의 여신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베풀 수 있도록, 땅을 착취한 권력을 멀리 보내고, 땅을 위로할 긴 시간이 이제 필요하다. 만국의 농민, 노동자 그리고 삶을 착취당한 모든 이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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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다. 지난 15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턴 신시가지의 월드컵 입장권 판매소 앞에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이었다. 전날 아침 9시에 와 24시간 동안 줄서서 기다린 끝에 결국 표를 쥐고 기뻐하던 타보(22)는 “역대 최고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며 “남아공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의 나라에서 열리는 잔치만 구경했던 가나인 이민자 딘 달라스는 “우리 팀이 곧 온다”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 기간에는 여러 경기장에서 아프리카 출전국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박람회가 열린다”며 “이번 월드컵은 아프리카 전체의 행사”라고 강조했다.






이번 월드컵은 남아공 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자랑거리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마침 올해는 1960년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독립의 봄’ 이후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월드컵에 진출한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등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올해로 독립한지 반세기를 맞은 것이다.
 
경향신문은지난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아공과 서아프리카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나이지리아, 상아와 카카오의 나라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신을 모색중인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중부 아프리카의 르완다를 찾았다. 아픈 과거와 어지러운 현재를 넘어 내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주경기장 격인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과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사커시티는 아프리카 전통 그릇인 ‘칼라바시’를 본떠 호리병 모양으로 지어졌다. 남아공이 속한 A조 경기의 표를 사러 왔다는 조한(25)은 “남아공이 성공한다면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도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지구의 오지로 여겨져온 아프리카에서 세계 전체의 이벤트가 열린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체가 기대감에 들뜬 분위기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상아와 노예들을 실어날랐던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우푸에 부아니 스타디움(축구장)이 위용을 자랑한다. 도시를 둘러싼 석호 옆 공터에선 소년들이 무더위 속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국가적인 자랑거리’인 디디에 드로그바의 뒤를 좇아 미래의 축구스타를 꿈꾸는 소년들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내 슐레레에 있는 국립경기장 옆에서도 망고나무를 울타리 삼아 아이들이 축구경기를 한창이었다. 열 두어살의 어린 소년들이지만 모두 미래의 대표선수를 꿈꾸며 요하네스버그의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아비장·라고스 | 구정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축구공과 함께 튀어오르는 희망


남부 아프리카 최대 도시이자 남아공의 ‘경제 수도’인 요하네스버그는 부산했다. 지난 12일 올리버 탐보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아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프리카 첫 대회에 대한 바깥 세상의 불신을 반박이라도 하듯 “준비가 끝났다”, “세계적 수준의 개최 도시”라는 표어들이 거리를 뒤엎었다. 흑인정권이 들어선 뒤 새로 형성된 샌턴의 신시가지에서는 고속 경전철 ‘하우트레인’ 1단계 공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5월 중 올리버 탐보 국제공항에서 샌턴을 잇는 1단계 철로가 개통되고 내년 3월 이전에 행정수도 프리토리아까지 연결하는 2단계 공사가 완공된다. 멀리 남서부의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 프리토리아를 거쳐 짐바브웨 국경까지 이어지는 남아공의 ‘대동맥’ N1 고속도로도 곳곳에서 확장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 통합지향하는 월드컵

과거 백인정치세력들의 거점이었고 지금도 남아공의 정치 중심인 케이프타운 역시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은 조만간 확장공사가 끝나면 거대공항으로 변신한다. 연간 400만명이던 수용능력을 연간 1400만명으로 늘리기 위해 공사비 23억랜드(약 3450억원)를 들였다. 현지 일간지 아그레스는 “리노베이션이 끝나면 아프리카 최고의 공항이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과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도 각각 확장·신축 공사를 끝내고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사커시티는 남아공 사람들에겐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1990년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처음으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웃한 소웨토(SOWETO) 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시절 흑인들이 강제로 쫓겨나 형성된 마을이다. 지금은 요하네스버그 인구의 40%가 소웨토에 거주하고 있다. 소웨토와 사커시티는 남아공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인 셈이다.
20년 전 만델라를 환영하며 몰려든 흑인들의 심장이 뛰었던 사커시티는 이제 흑백 통합의 마당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대학 회계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한 흑인 여학생은 “그동안 남아공에서 축구는 흑인 스포츠, 럭비와 크리켓은 백인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월드컵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라고스 시내를 장식하고 있는 월드컵 광고판. 남아공 기업으로 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하다시피한
이동통신회사 MTN의 선전물들이다. 


 
‘검은 대륙’으로 남아있던 아프리카는 지금 세계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상아와 노예를 실어날랐던 서아프리카의 상아 해안으로 가보자. 이름 그대로 ‘상아 해안(Cote D'Ivoire)’이라는 뜻인 코트디부아르는 나이지리아와 함께 서아프리카의 중심 국가 중 하나다. 코트디부아르 최대 도시인 아비장은 인구 500만명의 대도시로, 민물과 짠물이 뒤섞인 라군(석호)을 끼고 고층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레바논계 이민자들의 돈으로 지은 커다란 모스크들이 높이 솟은 첨탑을 자랑하고, 역시 레바논계가 운영하는 현대적인 쇼핑몰에는 수입산 물품들이 즐비했다.

# ‘공차는 아이들’의 꿈

아프리카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자 자부심과 함께 희망을 얘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아비장에서 만난 아델 꾸아미(30)는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 “세계에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보여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델은 “아프리카도 이제 ‘세계’에 끼어야 한다”면서 빈곤과 내전의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로 아프리카가 다시 태어날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비장대학 법학과 2학년 도소 페리마(22)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면서 “경제가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고스 국립경기장 앞에서 공 차는 아이들. 유니폼은 제각각이고 너덜너덜하지만
열 두어살 된 아이들이 뒤로 넘어져서도 시저스킥을 찬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1억5000만명의 인구와 362억 배럴(세계 10위)의 석유자원을 가진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올라가고 도로를 새로 닦느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 같았다. 가로등마다 “2010년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광고판이 붙어있다. 젊은이들은 “아프리카를 알릴 기회”라 입을 모았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나이지리아에선 “한국의 축구 실력이 무섭다”고 엄살을 떠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유명클럽 첼시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국립경기장 앞에서 공을 차던 소년 마이클 투볼샤(12)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나이지리아 출신 스타 카누를 좋아한다고 했다. 가슴에 ‘삼성(SAMSUNG)’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마이클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몹시 수줍어하면서 “만유”라고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는 것이 이 소년의 장래 희망이다. 마이클은 월드컵이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가깝게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지단, 호날두, 에시엔 등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소년들이 공을 향해 달렸다. 마이클 팀은 첼시 유니폼이고, 상대편에는 맨유와 리버풀 등의 붉은 셔츠가 섞여 있다. 아직은 통일된 유니폼도 없지만 소년들의 꿈만은 세계로 향해 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더라도, 가난한 나라에서 맨몸으로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가 축구다. 지난 17일 비포장 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린 끝에 도착한 르완다 북부주 가챙예 지역 커피농장의 아이들은 바나나잎으로 만든 공 하나로 축구시합을 하고 있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지만 좋아하는 팀을 묻자 “잉글랜드” “맨유”라며 월드컵이 열리는 것도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EPL의 명성은 이런 궁벽한 곳에까지 파고들었다. 수도 치갈리(키갈리) 중심 키요부 지역의 대형 쇼핑몰 ‘나꾸마트’나 부촌 야루타라마의 MTN 센터 등에서는 커피숍,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형 텔레비전으로 EPL 경기를 함께 관람했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하네스버그·아비장·라고스·키갈리|글·사진= 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월드컵, 남아공에 무엇을 남길까

남아프리카공화국 무역산업부(DTI)는 월드컵을 통해 남아공 경제에 약 213억 달러(23조6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약 127억 랜드(12조9000억원)의 직접 소비 창출효과와 15만9000여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DTI 관계자는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월드컵 기간 동안 남아공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관광산업이 활황을 맞을 것이고 토목·건설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DTI는 그러나 이런 직접적인 효과보다도, 해외에서 남아공의 이미지가 개선되는 것이 경제에 미칠 간접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TI 관계자는 “아프리카와 남아공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앞으로 지속가능한 경기상승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산하 진보기업포럼의 달 스와인폴 의장은 특히 인프라 개선 효과를 강조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로망이 업그레이드되고 공항이  신축·확장됐으며 브로드밴드나 위성 디지털TV 보급이 늘고 대중교통체계도 개선됐다는 것이다.
스와인폴 의장은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 어떤 자산들이 남아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며 “모든 남아공인들이 환상적인 인프라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만 여행객을 맞기 위해 지은 호텔들이 두달 뒤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월드컵의 효과는 최소한 10년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건설 붐 이면에서 빈민가 강제철거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 베이징, 시드니 등 올림픽을 치른 대도시들이 거대 이벤트를 앞두고 폭력적인 빈민가 철거작전을 벌였듯 요하네스버그에서도 빈민들이 떼밀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얼마전 “남아공 당국이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주요 대도시에서 빈민가를 때려부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집권 ANC는 ‘환상적인 인프라’를 강조했지만, 도시 빈민이나 짐바브웨 등지에서 들어온 불법이주 노동자들이 ‘국가의 적’ 취급을 받으며 내팽개쳐지고 있는 것이다.
요하네스버그 주요 축구경기장 중 하나인 엘리스파크 경기장 부근 빈민가에서는 지난 24일 여성과 어린이들이 ‘붉은 개미’라 불리는 철거용역반의 폭력에 밀려 비명을 지르며 쫓겨났다. 빈민들이 얼기설기 지은 집들은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했다. 철거용역반은 가재도구를 불태우며 빈민들에게 이를 지켜보게 했다. ‘붉은 개미’들은 정부 용역으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빨간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서민층에서 충원된다. 인권단체들은 “과거 백인정권이 가난한 백인들을 부추겨 흑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듯 이제는 흑인정권이 일자리 없는 서민들을 부추겨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최하층 빈민들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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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23 경향신문


사실 MBC ‘PD수첩’이 지난 화요일에 보도한 검사와 스폰서, 그리고 성접대 내용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그런 내용은 실명이 빠져서 그렇지 이미 출간된 여러 책들을 통해서도 알려졌던 일이다. 진짜로 놀랄 부분은 ‘PD수첩’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보도를 해냈다는 점, 그리고 명확한 증거와 증언을 담아 초점 있게 보도했다는 점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불충분한 증거와 믿을 수 없는 증언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법원 판단에 비추어보면, ‘PD수첩’의 고발내용은 증거 중심이었다. 법 공부를 하지 않은 나의 무식한 판단으로는, 이번에 ‘PD수첩’을 진행한 최승호 PD를 임시검사로 임명해서 곧바로 재판에 들어가도 될 것 같다.


김창길 기자

 
방송에서 지검장의 이름이 직접 거론된 부산검찰청은 보도 내용이 “선정적”이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정도의 선정성을 가진 사건이었기에 같은 시간대 다른 방송사의 연예프로인 ‘강심장’과 ‘승승장구’보다 시청률에서 앞지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면 시청자를 모독하는 말일까?

사실이지 이번 보도가 아니었더라도 검찰, 혹은 검사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비판은 최근에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몇 달 전에 나온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의 적나라한 지적도 그랬고, 또 김두식 교수가 작년에 낸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서의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내는 법조인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이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인 것은 내용이 선정적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검찰에 대한 비판의식이 누적되었던 탓일까?


증거·증언 담은 초점있는 방송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에 검사가 제주도에서의 골프접대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이때 국회에서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은 삼성에 의해 골프접대 받고 식사접대 받은 검사들의 명단, 삼성이 접대 내용과 시간까지 적어 서류형태로 만든 명단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한 전 총리 재판 담당검사들이 과연 골프접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느냐고 검찰총장에게 따져 물었다. 검찰총장도 그 명단에 빠져있지 않다고 박 의원은 지적했다.

이 장면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널리 퍼져있다. 그 명단의 내용은 조사되어야 마땅할 사안인 것 같은데 조사되지 않았고, 또 국회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골프접대 따위는 별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충분히 선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스폰서를 받고 접대를 받는 검사가 검찰의 다수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숫자로는 다수가 아닐 것이다. 숫자로도 다수라면 대한민국은 정말 끝이다. 하지만 검찰을 지휘하는 자들이 그런 환경을 용인하는 한, 그들이 다수자이다. 세상을 남성이 지배하니 여성이 소수자라 불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직한 검사의 마인드가 검찰을 지배하지 못한다면 그 정직한 검사가 다수라도 검찰의 소수자일 뿐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리스트에 있는 법조인들, 그리고 ‘PD수첩’에 공개된 문서에 언급된 검사들, 소수의 권력자들에게는 공개되었으나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그 인물들에 대해 명백히 조사하라. 그렇지 않으면, 접대 받는 검사들이 아니라 정직한 검사들이 검찰의 예외적인 존재가 된다.


‘정직한 검사’가 예외존재 안되게

검찰을 바로 세우려면 국민들이 끝까지 지켜보고 말하고 비판해야 한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있었던 어떤 대화의 자리가 기억이 난다. 당시에 안상수 의원의 좌파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안 의원을 후원하는 이에게 주위에서 안 의원을 염려하는 말을 하자 그 후원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별거 없어요. 시간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 잊어버릴 텐데요 뭐. 천안함 사건이 터졌으니 이젠 그 일엔 아무도 신경을 안 쓸 거예요.” 궁금해진다. 이번의 의 보도가 얼마나 오래 국민들에게 기억될까? 그 기억의 시간만큼만 검찰이 변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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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지난 14일, 세느강변 도로를 축소하여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강변정비사업계획을 내놓았다. 2012년까지 세느강변 일부 도로를 차단, 축소하여 녹지와 휴식, 문화공간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속한 소통이 생명인 대도시에서 적잖은 반발이 예상되지만, 쾌적한 도시 만들기에 방점을 찍은 그의 일관된 정책철학은 이 계획을 긍정적으로 읽게 한다.

 


선거 전,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한 들라노에 시장은 2003년 파리 시장에 당선, 2008년 재선된 후 지금까지 친환경도시 만들기에 노력을 집중해왔다. 2020년까지 파리시는 자동차 수를 40%,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녹색’은 지구촌을 휩쓰는 최상의 정치슬로건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들라노에의 정책의지는 2006년 지상전차(tram)의 도입으로 처음 실천된다.

1차로 절반이 개통되어, 현재 하루 11만명을 실어 나르는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고 2012년 전 구간이 완성되면 하루 이용자 수는 파리 인구 10%에 해당하는 27만명으로 늘어난다. 파리시는 전차 설치를 위해 왕복 6차선을 3차선으로 줄였다. 과감한 차량통행 억제정책으로 우파의 거센 반발이 있었으나 2년여에 걸친 설득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시내 자동차 사고는 40% 감소했고, 시민들은 맑아진 공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들라노에가 추진한 또 하나의 교통혁명은 벨리브. ‘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의 합성어인 벨리브는 공공 자전거 임대제도로, 친환경 교통혁명을 주도하는 파리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07년 도입된 이 제도는 1년 만에 하루이용자가 18만명에 이를만큼 성공궤도에 즉시 진입했다. 파리시의 ‘자전거 혁명’을 배우기 위해 파리시 교통국를 찾는 해외관료들의 방문이 수개월치까지 예약되어 있을 정도다. 벨리브에 성공한 파리시는 내년에 공공 전기자동차 임대제도도 도입한다.

같은 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장 재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공교육 재건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한나라당과 우리나라 공교육 사이의 악연을 지난 4년간 보아온 한 사람으로서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사교육과 학교폭력, 준비물 없는 학교를 만들고 하위 30%까지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의 공약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그의 의지에 신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무상급식은 빨갱이 정책이라며, 경기도 교육감이 시도하던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한 것이 한나라당 도의원들이다. 대학 등록금 반값을 공약했다가, 그러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대통령도 같은 당 소속이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뇌물을 거둬들여 교장들과 함께 깊은 타락의 수렁에 투신하는 동안 오 시장은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는가. 오 시장이 당론을 벗어난 사람이었다면, 공교육 파괴가 자행되는 동안 한 번쯤 소신을 밝혔어야 옳다.

오 시장의 지난 4년은 디자인, 한강르네상스, 광화문광장, 스노보드대회로 이어지는, 일관성과 정책철학이 집약되지 않는 행정들로 점철되었다. 정책의 연속성을 내세우며 연임을 호소하지만, 그가 지금 내세우는 주요 공약엔 과거 그가 역점을 두어온 사업은 없다. 듣기 좋은 말만 일관성 없이 나열하는 선거는, 유권자들이 대거 ‘묻지마 투표’에 나서면서 정책대결이 부재했던 지난 대선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책철학과 의지가 검증되지 않는 선거에선, 이미지정치와 미사여구만이 판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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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 중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는 찬사를 누려온 이 매혹의 도시는, 화려한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지우지 못한 흔적만 남은 무대처럼 폐허의 인상이 역력하다. 도시의 골목골목에는 여전히 에메랄드빛 물결이 출렁이고, 찬연한 과거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베네치아 상인들의 숨결에서는 불안을 머금은 공격성이 느껴지고, 산 마르코 광장을 뒤덮은 대형 향수 광고판은 베네치아의 슬픈 오늘을 대변해준다.



30년 사이, 베네치아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 6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생활기반으로서의 도시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베네치아 주민들의 이탈은 생존의 불안을 느낄 만큼의 잦은 침수가 그 1차적 원인이다. 지구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요인뿐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지반이 가라앉는 데다,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시 당국, 부족한 재정을 오로지 조세로 메우기 위해 급격히 인상한 세금, 주변 도시보다 3배나 높은 물가 등 정책 실패가 더해졌다. 마침 베네치아 시장 선거가 있었다. 행정당국의 경각심과 정책의 쇄신을 촉구하며, 베네치아 장례식 퍼포먼스까지 벌인 주민들은 잇단 스캔들의 주인공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주요 인물 레나토 브르네타를 물리치고 중도좌파 조르조 오르소니를 선택했다.

프랑스에서도 2주 전 지방선거가 있었다. 좌파연합은 집권당을 누르고, 프랑스 전역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사르코지라는 선명한 우파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하였을망정, 국민 대다수의 이해를 역행했던 그의 실정에는 가차없는 심판을 한 것이다. 선거 후 사흘 뒤 실시된 대규모 파업과 집회에는 얼굴에 피멍 든 모습을 한 사르코지가 담긴 스티커가 도시 곳곳에 나붙었다.

유럽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파리가 결코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친절한 도시도 분명 아니다. 오히려 거만하고 개인주의적인 파리지엥의 이미지는 관광객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파리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베네치아와 파리, 모두 조상의 빛난 유산을 밑천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파리 사람들은 단지 조상의 덕에 기대 장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1789년 시민혁명에서부터 파리코뮌, 레지스탕스운동, 68혁명에 이르기까지 권위와 구시대의 유산에 수동적으로 운명을 맡기지 않고, 날선 비판의식과 역동적인 실천으로, 그들의 삶이 존재로 가득하게 하길 멈추지 않았다. 중·고생들은 정부의 반교육적인 교육개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교사들은 기꺼이 총파업에 동참한다. 구애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들을 매혹하는 파리의 매력은 이런 삶에 대한 당당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학자들은 2030년이면 베네치아에 주민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새만금을 2020년까지 한국의 베네치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4대강으로 인한 국론분열만으로도 이 나라 에너지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것만 같고, 가라앉은 해군함은 속수무책으로 바닷속에 있는데, 물로 얻은 정권은 물로 허물어질 것인가. 6월2일의 선택이 우리에게 해답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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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요즈음 일들을 종이에 써보았다. 먼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있고,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점입가경의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이 있다. 또 봉은사와 관련해 돌출된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 좌파 발언도 있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 있다. 이 리스트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권력이라는 단어가 공통점으로 떠올랐다.
 

우철훈 기자


권력이란 “내 의지를 남에게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막스 베버는 말했다. 그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서만 정치행위를 생각했기에, 권력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남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행위는 곧 통치행위요, 지배행위다.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고, 권력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상책이다. 지배자의 생각을 피지배자가 알 필요가 없고, 지배층의 이익은 곧 국가 이익이다. 이렇게 이해된 권력은 폭력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국가폭력과 동의어처럼 된다.


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 몇몇 정치학과 교수들과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한 저명한 교수가 “정치란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이자, 그것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것이 ‘현실정치’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학자들의 뇌리에 박힌 생각이며, 그에게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는 생각이다.

진정한 권력은 함께함에서 나와

진정한 권력은 그런 게 아니다. 권력은 사람들의 함께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공동의 뜻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폭정, 과두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권력 개념이다. 폭군의 나라에서 복종은 칼에 대한 공포에서 나온다. 돈의 힘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복종은 더 많은 경제적 부를 향한 집단적 욕망에서 나온다. 민주적 권력은 복종을 거부하고 인간답게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열망에 기초한다. 이 같은 상식적인 말이라도 요즘 시대라면 되새길 만한 것 같다.

지금까지 10만권이 넘게 팔렸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은 다음 한명숙 전 총리 재판 소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검찰이 하는 말을 못 믿겠다. 혹 검찰이 이 글을 보고 못마땅하다면, 제발 그 책에 나오는 검찰을 불신하게 만드는 그 수많은 사례들을 자세히 조사하고 알려 검찰이 믿을 수 있는 조직임을 입증해 주었으면 싶다. 삼성과의 관계도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을 해 주고 말이다. 그래야 검찰의 권력이 민주적이라고 진정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봉은사 일도 권력의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좌파가 빨갱이로 인식된다.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그의 인생이 끝나던 때가 있었다. 요새 부쩍 많이 들려오는 좌파, 빨갱이, 좌빨이라는 말은 소통을 위한 사고를 순식간에 중단시키고 관계모드를 전략적으로 바꿔 버린다. 대화는 끝난다. 안상수 의원과 명진 스님의 진실게임보다 더 무섭고 무거운 사태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있다. 한마디의 말로 상대를 날려버리려 하고, 또 거친 말로 사람들의 사고를 멈추게 만드는 분위기 말이다.

검찰은 하는 말 믿을 수 있게 하라

천안함의 침몰로 실종된 이들은 거의 부사관과 사병들이다. 배의 구조와 폭발이 일어난 지점 때문이다. 비상조치를 취하는 과정이나 사고 전후 정황에 대해 불만과 의문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군이 최선을 다했고 또 다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고통을 받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를 보내며, 아들을 곧 군에 보내야 하는 이로서 아픈 마음을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알고 싶다고 울부짖는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 사건이 하나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권력이 없는 이들은 고통의 주체라도 사건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민주적 권력이 회복될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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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최근 한국에 낙태 논란이 있다기에, 옛날에 결론난 얘기가 왜 새삼 거론되나 하다가, 낙태 금지가 정부의 저출산대책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정부의 이런 발상은, 자신은 술 취해 매일 밤늦게 들어오면서 월급봉투만 던져주면, 아내는 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시부모한테 효도도 대신해주겠거니 기대하는 한국 남편들 모습과 닮았다. 가열되는 경쟁 교육, 살인적 등록금, 자살하는 아이들, 비정규직 900만, 세계 1위 성산업국…. 이 지경에서, 낙태만 금지하면 출산율은 상승한다? 지독한 가부장적 사고만이 이런 전근대적 발상을 감히 정책이라 부를 수 있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가 연 외신기자 간담회의 ‘룸살롱 사건’도 이 같은 정권의 무감각을 잘 대변해준다. 한 외신기자가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룸살롱 등 잘못된 직장 회식문화 때문 아니냐”고 질문한 데 대해, 대변인은 “일국의 장관에게 그런 부적절한 단어 사용” 운운하며 한국 폄훼, 황당 발언으로 치부했다. 장관은 “한국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커져 오히려 저출산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룸살롱 관련은 전혀 잘못된 정보”라고 받아쳤다. 이 질문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2배로 증액된 접대비 한도액, ‘접대비 실명제 폐지’와 관련한 것이었다. 한국 기업의 평균 접대비는 외국 기업의 100배다. 연 20조원에 이른다는 접대비로 남성들은 거대하고 끈끈한 연대를 형성하며, 업무상 거사들은 그 안에서 결정된다. 그 질퍽한 연대에서 안전하게 배제된 여성들에게 남는 자리는 주변적인 업무뿐인 걸 몰라서들 그러시나.

여성의 왕성한 사회활동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면, 유럽 최대 출산국 프랑스에서 91%의 국민이 “가정은 여성의 일자리가 아니다”라고 답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는 어찌 설명할까. 교육과 의료가 공공서비스로 제공되면서, 각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통로가 넓게 열려 있는 사회에서 행복한 다산의 조건은 생성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50%는 혼외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혼외에서 아이를 낳는 일로 사회적 지탄도 경제적 곤궁도 겪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가 낳지만, 시민으로 키우는 건 사회가 함께한다.

프랑스에선 1975년 낙태가 합법화됐다. 이는 68년 이후 지속된 권리와 성에 대한 자유를 위한 여성들의 투쟁의 결과였다. 99년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거리에 서 있는 콘돔자판기를 보고, 첨엔 이 과감한 성적 개방성이 놀라웠다. 그러나 사랑과 성에 대해 솔직한 사회 분위기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억압하는 권위적 질서에 대항해 쟁취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콘돔자판기도 방종이 아닌 자율의 상징으로 보였다. 여성이 자기 몸과 자기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낙태 합법화를 위해 이곳 사람들이 도달한 합의다. 힘겹게 모두가 학습하며 얻어낸 사회적 합의는 좀처럼 후퇴하지 않으며, 이는 오늘 출산 대국 프랑스의 밑거름이기도 하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 사회가 갖는 의무는 철저한 성교육. 프랑스에선 부모가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성에 대해 정확하게 긍정적으로 말해주고, 학교는 ‘안전한 사랑’을 가르친다. 생명은 양지에서 움트는 법이다. 낙태와 저출산을 연결시키는 아둔한 이명박 정부. 거꾸로 돌기 시작한 시계는 이들을 1세기 전으로 끌고 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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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과일가게에 들어가 과일을 골라 계산대에 놓는데, 가게 직원이 내게 묻는다.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어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순간 헤아려보았다. 심각해진 내 얼굴을 보며, “당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골랐느냐”는 말이었을 뿐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이런 표현이 있다는 걸 모른다면, 이건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에요” 했더니, 그는 바로 응수한다.

“그렇죠. 언제나 우린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예술을 통해서나, 사랑을 통해서나, 자신이 가치를 두는 어떤 일을 통해서. 결국 모두 뭔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건데, 사랑할 땐 다음날 죽어도 후회 없도록 사랑해야죠. 삶은 늘 죽음 옆에 있는 거니까, 내일 삶이 멈추어도 후회 없도록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행복을 찾았어요?”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고, 당신은요? 하고 물었다. “그렇죠. 사랑을 통해서. 정상에서 바닥까지 가봤고, 지금도 행복을 찾고 있어요.”

초면에 이런 얘기를 나누고, 엷게 서로 미소 지으며 헤어졌다. 가게를 나서니, 길엔 노숙인들이 앉아있었다. 동전 하나 줄 수 없느냐고 하기에 가볍게 무시했다가 사과를 줘도 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사과라면 많이 있으니 줄 수 있다면서 두 개를 건넸다. 청년은 “골덴사과네” 하면서 신나게 받았다. 캐셔 청년과의 예기치 않은 대화, 노숙인에게 돈 대신 사과를 건네고, 그걸 즐겁게 받은 그들을 통해 작은 ‘행복’이 내 안에서 순간적으로 작렬하는 걸 느꼈다.



슈퍼마켓의 캐셔, 거리의 청소부, 노숙인, 우리에게 그들은 투명인간에 가깝다. 그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우린 언제나 기록을 경신하는 사람처럼 질주하는 삶을 사니까. 그러는 동안,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그 모든 사람들은 벽이 되고, 기계가 되고, 도구가 된다. 우리도 고객이 되고 행인이 될 뿐이다. 내가 그들을 소외시키는 동안 내 안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도 같이 소외된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유럽의 다출산국 프랑스를 찾은 한 기자는 프랑스 사회의 출산·육아정책보다 개인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프랑스 사람들의 의식이 부럽더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주위에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회의식이 부러웠다고 했다. 사회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각자 내 안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이들에게 정착돼 있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성공보다 ‘행복’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이 내전국 수준의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한국 사람들이 내전국 수준의 불안한 삶을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 또한 우리 안에서 형편없이 비틀거리고 있는 행복의 기준을 어떻게 바로 세우는가에 달려 있다. 브라이언 오서는 김연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행복하지 않은 소녀였고 그녀를 행복한 소녀로 만드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저 엄청난 긴장의 순간에 저 소녀가 평화로운 미소를 피워올릴 수 있는 비결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든, 캐셔를 하든, 행복하지 않으면 지는 거다. 지금 당장 행복해질지어다. 정부가 뭘 어떻게 해주지 않아도, 당신 곁에 오서 코치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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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혁혁한 성과를 거두어 흥분과 기쁨 속에 며칠을 지냈다. 폐막식은 별로였지만 개막식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세계인의 잔치다운 구성을 보였고 몇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개막식 공연 끝 부분에 ‘평화의 노래’가 연주될 것이라고 한 뒤 소개된 노래 제목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할렐루야’였기 때문이다. 할렐루야는 ‘신께 영광을’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이런 제목의 노래가 어찌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들이 참여하는 올림픽에서, 그것도 평화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불릴 수 있는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연합뉴스 제공


잠시 후 K D 랭이라는 여가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 만화영화 <슈렉>에 삽입되었던 ‘할렐루야’였다. 인터넷을 뒤져보고 알게 된 내용에 따르면, 이 노래는 캐나다의 유명한 가수 레너드 코헨이 1984년에 만들어 처음 부른 것으로 그동안 200명이 넘는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해온, 최고의 팝송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노랫말의 남다른 깊이 때문에 그 유명한 밥 딜런도 애창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할렐루야는 차갑고 깨져버린(브로큰) 외로운 할렐루야이다. 이 할렐루야는 특정 종교와 무관하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실존을 걸어 부르는 노래, 절대자를 향해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은유이다.


절대자를 향한 찬미의 노래

그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의미와 연관해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함께 사용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한 왕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유부녀를 사랑하고 임신을 시킨 뒤, 그 남편을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다. 간음과 음모와 살인을 저지른 그가 신을 향해 부른 할렐루야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깨진, 가증스러운 할렐루야인 것이다.

가사에는 “아마도 신이 하늘에 계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사랑으로부터 배운 것은 당신을 능가하는 자를 쏴 죽이는 방법뿐”이라는, 밥 딜런이 좋아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성공을 바라면서 그를 능가하는 자를 어떻게 하면 거꾸러뜨리고 죽일 수 있는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성공을 향한 이 시대 최고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이러한 ‘브로큰 할렐루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찬미 소리이고, 정적을 쓰러뜨리고 정치적 성공을 이루어낸 정치가들의 노래이며, 진정 아파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자신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큰 교회들의 찬송가가 아니겠는가. 이런 브로큰 할렐루야를 신이 즐거워할 것인가.


또 다른 의미는 이렇다.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다 해도 나는 오직 할렐루야만을 입에 머금고 노래의 신 앞에 서리라”는 가사의 한 구절처럼, 성실히 노력했으나 힘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할렐루야 또한 브로큰 할렐루야이다.

인생 가운데 경쟁은 불가피하며 패배자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코헨은 이런 브로큰 할렐루야나 승리자의 할렐루야는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역설했다. 누구든 생명에 대해 깊은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상관없이 그들의 노래는 모두 아름답다는 것이다.


뉘우치고 용서를 빌 때 참 의미

브로큰 할렐루야의 이러한 이중적 의미 때문에, 이 노래는 올림픽에 어울리는 평화의 노래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 첫번째 할렐루야를 부르는 이들이 뉘우치고 그 길을 돌이킨다면 말이다. 다윗이 현자 나단의 질책을 듣고 크게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던 것처럼, 그런 돌이킴이 있을 때에만 두 의미의 할렐루야는 하나가 된다. (참고로 내겐 이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는 랭보다 코헨의 할렐루야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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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파리의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 외벽에 설치됐던 작품 하나가, 설치된 지 몇 시간도 안돼 철거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문제의 작품은 과거 프랑스에서 수학한 바 있는 중국 작가 고시우란의 것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라는 내용의 글자를 검은 배너에 흰 글씨로 담고 있다. 누가 보아도, 2007년 사르코지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사용한 슬로건 ‘많이 일하고, 많이 벌자’를 비튼 문구다. 그대로 걸려 있었다면 ‘그렇군, 재밌군’ 하고 넘어갔을 설치작품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철거’되자, 이 나라의 어지간한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팔짝 뛸 만큼 부끄러운 학교 당국의 처사가 삽시간에 인터넷 공간을 타고 프랑스 전역에 번졌다. 하필 중국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흥미를 더 자극했다. 걸핏하면 중국의 희박한 인권의식과 정치적 후진성을 비난해온 것이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의 ‘많이 일하고, 많이 벌자’ 슬로건은 ‘많이 일하고, 많이 벌고, 빨리 죽자?’와 같은 방식으로 비하되면서, 당시에도 격렬한 공격을 받았다.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고, 당연히 실업자는 늘어나며, 일터에 남은 사람들이 혹 월급을 좀 더 받을지언정, 그들이 과거에 알지 못했던 직장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는 -민영화된 프랑스텔레콤에서는 지난 2년간 25명이 연쇄자살했다- 것이 사르코지 집권 이후 프랑스의 새롭고 슬픈 풍경이다. 사건은 문화부장관 프레데릭 미테랑이 전화를 걸어 작품을 원위치시킬 것을 학교에 명하고, 작가에게 직접 사과를 함으로써 마무리된다. 그리하여 다시 파리 보자르 건물 외벽에 걸리게 된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는, 대담한 설치미술에서 정치적 퍼포먼스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심하게 알아서 기어주시는 분들 때문에, 언제나 일은 커지게 마련이다. 학교의 행동은, 두목 앞에서 슬슬 눈치 보며 점수 좀 따보려고 약한 주민들을 괴롭히는 똘마니의 품새 그대로다. 만만치 않은 배짱의 중국 작가가 학교를 대상으로 소송이라도 걸기 전, 어수룩한 품행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던 미테랑 장관이 그나마 최소한의 상식을 발휘하여 불을 껐기에, 국제적 망신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곳의 대체적 여론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한국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얼마 전 이름을 올리신 유인촌 장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그가 단지 순천에 들른다는 이유로,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던, 권양숙 기증도서 팻말 사건. 이는 유 장관과 심하게 알아서 기어주시는 기관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입각 이후 임기가 남은 문화부 산하 기관장들을 청소하는 일에 몰두했던 유 장관은 결국, 문화예술위원회 한 지붕 아래 두 위원장 같은 코믹한 뉴스거리를 만들어 냈다. 이 와중에 구경 난 예술위를 마냥 바라만 보고 있는 문화부. 파리 보자르 건물 앞에서 ‘철거된’ 설치미술처럼, 모르고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주는 아둔한 정치의 열매라고나 할까. 자존심이나 원칙도 없이 낮은 포복과 아첨을 일삼는 자들이 번식한다는 것은 공포와 파시즘의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런 자들이 벌이는 웃지 못할 코미디에 가능한 한 큰 소리로 껄껄 웃어주고, 공포를 명랑한 승리로 전환시키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다. 똘똘하고 당당한 그 중국의 처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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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외규장각 도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문화연대가 제기한 도서반환 소송에 대해 프랑스 행정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연대는 즉각 항소를 결정하고 10만유로에 달하는 항소비용 마련을 위해 1만인 시민지원단을 모집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약탈자, 제국주의자, 뻔뻔하고 오만한 프랑스를 신나게 욕해주기를 되풀이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법도 있고 도덕·상식 따위들의 룰이 있건만, 결국 가장 자주 우리 삶의 질서로 적용되는 것은 힘의 논리라는 사실을 매번 깨달으며 우린 긴 한숨을 내쉰다.

사람들은 종종 궁금해한다. 우리가 이렇게 분통 터뜨리고 있을 때, 프랑스 시민들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불행하게도 프랑스에서는 외규장각 도서는커녕 병인년에 양국 사이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조차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어떤 여론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프랑스 박물관들을 가득 채우는 유물의 대부분은 제국주의 시절, 전 세계를 다니며 약탈해온 것들이니 그것을 돌려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테고 예외를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쉽지 않은 일을 해결하는 길에는 두 가지 정도가 있다. 그중 하나는 정치적 결단에 의한 해결이고, 또 하나는 시민들이 격렬한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일 터이다.

한국 정부는 시민들이 성금을 걷어 프랑스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이 와중에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재불 사학자 박병선씨가 처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 주불 한국대사관에 알렸던 1978년, 한국 정부가 ‘뭐하러 이런 걸 찾아내서 귀찮게 하냐’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놀랍지 않다. 국민 사이에 외규장각 도서반환 운동이 벌어지며, 국민적 관심이 쏠리자 정부가 조금씩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또 얼마나 국민의 분노가 일어야 이 영혼 없는 자들의 둔한 민심감지기는 작동하는 걸까.

더 깊은 한숨의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007년 진행된 조사에 의하면 고문헌을 소장한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서울대 규장각 등 41개의 학술기관,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226만여점의 고문서 가운데 한글로 해독이 된 것은 0.04%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반만년 역사를 지닌 ‘위대한 문화민족’의 수식어를 우리에게 명징하게 인식시켜줄, 선현 정신의 보고를 우린 그저 보관만 하고 있을 뿐이다. “16세기 영국의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21세기의 영국 어린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지만, 19세기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저서는 21세기 한국의 지식인 대부분이 읽지 못한다.” 우리나라 고문서 번역을 책임지는 한국고전번역원장의 말이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다산 정약용을 읽을 수 없게 만들었나.

프랑스의 오만을 꺾고, 그 책들이 우리 품에 귀환하기만을 바랄 뿐,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현재 우리 삶과 만나게 하는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한국사회의 불편한 진실은 외규장각 도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나를 더 깊이 한숨 쉬게 만든다. 고은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은 없지만 노벨 문학상 발표 때가 되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와야 할 의무라도 그에게 있는 듯, 그의 집 앞을 지키는 수많은 언론의 민망한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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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5 경향신문


2월은 졸업 시즌입니다. 그런데 이번 졸업식들은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각별히 어려워진 환경 속으로 졸업생들이 나가 어떻게 살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이렇게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행복하세요?” “행복한 졸업인가요?”라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보통은 “행복한 졸업식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말하겠지만, 이번에는 당신의 행복을 물어 보고 싶어요.

졸업식이 무어라고 거기에 잇대 행복을 물어보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졸업은 하나의 매듭이고 또 삶의 중간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끝이니까 이때가 스스로의 행복을 점검할 최고의 기회라고 답하고 싶어요.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인생의 의미를 말하려면 삶의 끝인 죽음을 지금의 순간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 거나 비슷해요. 지금을 인생의 끝으로 놓고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통째로 들여다볼 때 내 삶의 의미가 짚어지기 때문이지요. 졸업 자체가 하나의 매듭이고,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전환점이니까 이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미, 그리고 그 삶이 행복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마땅하지요.

대학에 떨어져 불행한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어떤 이는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갔는데, 재수해야 하는데, 대학은커녕 당장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무슨 행복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는 이 가운데는 취직을 못해 갑갑한데 무슨 행복이냐고, 당장 용돈 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거예요.

출처: 경향신문 웹DB


이 시대는 여러분들이 행복을 느낄 시대는 아닌가 싶기도 해요. 경쟁사회에서 승리를 쟁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때 행복은 항상 승리와 함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실제로 행복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우수한 성적으로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남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직장을 다니고, 남들이 오르지 못하는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해도 그 삶이 자살로 끝나버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그런 삶에 대해 우리는 끝만 빼놓고 나머지는 모두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지금 순간에 그렇다, 아니다를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루어 놓은 일이 나의 행복의 조건이 되거나, 지금의 내 기분이 나의 행복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삶 전체를 놓고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피어>라는 책의 저자 벤-샤하르는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 이분법적 사고를 갖게 하는 나쁜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어떤 노력을 통해 행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면 그 다음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행복한지를 묻지 말고 ‘어떻게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행복의 조건은 과거에 달려 있지 않고 나의 삶 전체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무엇을 향해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삶이었는가를 물을 수 있는 진정한 시점은 언젠가 다가올 우리의 삶이 끝나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행복의 조건은 삶 전체에 달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했거나,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거나,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하거나 당신이 맞이하는 졸업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아닙니다.

행복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꽃이 되게 하는 일, 다른 꽃과 더불어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어내는 일입니다. 이때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더 행복하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졸업하는 여러분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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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은퇴 직후 1년간, 평균 10년이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얘기다. 아침마다, 몸이 아파도, 폭설로 길이 덮여도, 이불을 걷어차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터로 향해야 하는 노동의 ‘의무’를 벗어던진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늦잠을 자도, 가고 싶은 곳에 가도,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도 되는 ‘자유’를 획득한다는 것은.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소식을 접하며 살짝 웃었다.

12년 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의 중압감을 벗어던지고, 먼 나라로 훌훌 떠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파리에 와서 체류증을 갱신하느라 찍은 증명사진을 한국에서의 ‘직딩’ 시절 증명사진과 비교해 보니, 전자가 10년쯤 젊어 보였던 것이다. 스물아홉에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삶을 일구던 그 시절, 난 여전히 아침마다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몽파르나스 지하철역의 긴 환승통로를 뛰곤 했다. 한 해 전, 혜화지하철역의 긴 계단을 헉헉거리며 뛰어올라갔던 것처럼. 그런데 그 사이 나는 젊어지고 있었다. ‘즐거움에 근거한 노동’을 하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얼굴에 나타났던 회춘(!)의 기적을 설명해 준다.

프랑스 사람들은 60대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답한다. 비로소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몸이 여전히 말을 들어주는 시기. 물론 그들의 행복은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탱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에 크게 기인한다. 파출부든 은행원이든 60세 무렵이면 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나 연금을 타며 생활할 수 있다.

더 이상 돈을 벌어야 할 의무도, 재테크를 해야 할 강박감도 사라진다. 그러나 매년 4개월씩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고령사회 프랑스에서 말년의 자유는 점점 길어지고, 결국 행복에의 정복은 자유에 대한 정복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유를 길들이고 즐기는 것은, 아니 무엇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뭔가를 생산해 내야만 의미있는 삶인 것처럼 세뇌되어 온 우리의 사고는 혁명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가 아는 한국 퇴직자들의 익숙한 풍경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어찌할 줄 모르고, 무력감에 빠진 남자들이다. 우정을 나누는 친구도, 취미도 가꾸고 살아오지 못한 그들이 활기차게 삶을 누리는 아내 곁을 맴돌며 귀찮게 굴어, 남편들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 ‘은퇴남편증후군’이 사회문제화할 정도니, 은퇴 후 젊어지기는커녕 옆 사람까지 늙게 만든다.

마르크스의 사위로 더 유명한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노동에 대한 열정, 숭배에서 벗어날 것을 역설했다. 노동을 숭배하고 금욕을 강제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착취하기 위해 조작해낸 생각일 뿐, 하루 3시간의 노동만으로 인류는 충분히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으며, 과잉노동이 과잉생산을 만들고, 상품의 과잉은 구매부족, 폐업, 노동계층의 가난, 지배계층의 과소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살아가는 일이 마치 무언가를 소비하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대사회에서, 19세기에 탄생한 그의 생각은 모던하게 느껴진다.

노동의 의무가 내게서 사라질 때, 내가 기꺼이 주물럭거리고 싶은 나의 즐거운 노동 혹은 나의 즐거운 휴식은 무엇인지, 미리 생각하고 훈련한다. 길고도 찬란한 제3의 인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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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4 경향신문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마련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 말은 옳지 않다. 진실은 은폐될 수도,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질 수도 있다. 강의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동전 던지기를 예로 든 적이 있다. 동전을 던져 교탁에 떨어지게 한 뒤 손으로 덮고 어느 면이 위로 올라왔는지를 물어보았다. 진실은 앞면 혹은 뒷면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확인 없이 동전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진실은 은폐된 것이다! 내가 그것을 확인했더라도 별로 상관이 없다. 그것은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씨가 인사 청탁과 관련해 5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결정적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명숙씨 측에서는 “돈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하지 않은 일의 직접 증거란 없으니까. 제시할 수 있는 건 정황증거 외에는 없으므로, 현금 5만달러를 어떻게 여성의 호주머니에, 그것도 업무시간에 찔러 넣어줄 수 있겠는가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이제 진실은 입증의 대상이 아니라 게임의 대상이 된다.

입증의 대상서 게임의 대상으로

일본의 명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는 숲속에서 일어난 사무라이 살인사건과 관련한 네 개의 증언이 나온다. 죽은 사무라이의 혼령을 포함한 사건 당사자 세 사람과 목격자의 증언 모두가 달랐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설명한 현장은 각자의 의식적·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윤색되어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무라이의 죽음, 사라진 보석 박힌 검의 행방, 사무라이의 아내에 대한 겁간과 같은 기초적 사실은 동일해도, 각각의 사실에 대한 해석과 인과관계 구성은 완전히 달랐다. 이 영화는 사건의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사실이란 게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줄 뿐이다.

출처: 경향신문 웹DB


이번 진실게임의 주인공은 검찰과 한명숙씨이며, 주변에 정세균씨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등장한다. 이 게임의 청취자는 시민이고, 배경은 정치이며, 게임 도구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민들은 검찰, 언론들 그리고 당사자들이 만든 이야기를 접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이야기는 구성된 것이며, 사실 자체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의식적·무의식적인 동기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을 평가하고 표를 던질 이들이 시민이라는 점이다. 드라마가 시청자를 향하듯, 이 게임도 시민을 향하고 있다.

이 글의 제목은 “한명숙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한명숙 사건’의 진실”이다. 전자는 이 일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표현하고, 후자는 ‘한명숙 사건’이라는 말과 사건의 설정 자체가 하는 기능에 대해 묻는다.

사람들이 ‘한명숙 사건’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한명숙과, 5만달러와, 뇌물이라는 단어를 연결짓게 된다. 실체와 무관하게 말이 기능한다. 이 표현 자체가 한명숙씨의 기존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를 더한다. 사실과 상관없이 말은 이미 정치적 기능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게임의 진정한 플레이어는 ‘말’이다.


거짓이 사실보다 더 그럴듯해

사실과 거짓이 충돌할 때 더 그럴듯한 것은 항상 거짓말 쪽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많지만 거짓말은 항상 그럴듯하게 꾸며진다. 거짓말이 사실보다 더 논리적이다.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진실이 결국 밝혀질 것이라는 것은 허구다.

하지만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결국 밝혀질 것임을 믿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신념과 노력이 바른 정치를 위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와 논리가 아니라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한명숙 사건’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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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올해부터 프랑스에선 커플 간에 행해진 정신적 폭력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에 의한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고발한 책 <정신적 폭력>(마리프랑스 이리고옌)이 출간되어, 프랑스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 책 이후 프랑스 사회는 ‘정신적 폭력’을 일상에 만연한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게 되었고, 정부는 비로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법적인 처벌을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가까운 사이, 특히 부부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지는 모욕, 무시, 위협, 멸시…. 결국 자존감을 완전히 파괴하고, 정신적인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일상적 괴롭힘의 피해자는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정은 애당초 ‘사랑’의 이름으로 구성되는 보드라운 결을 가진 사회의 기초단위지만, 동시에 가부장을 중심으로, 권위가 무기가 되고 힘이 되는 권위주의 사회를 훈련시키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 평화로운 가면 뒤에 너무 자주 숨어있는 야만의 얼굴을 사회가 외면하면 할수록, 시들어가는 영혼들의 신음은 깊어진다.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사회적 모럴로 정착하면서, 사람들은 창조적 삶의 주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가 굴러갈 수 있도록 열심히 복무하다가 어느날 폐처분되는 타이어로 취급당한다. 그들이 삼켜 넘겨야만 하는 스트레스는 어디로든 배출되고, 가장 먼저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의 존재를 침식시킨다.



수 년간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은 자존감을 잃고, 가해자가 늘어놓는 흔한 변명, 즉 “원인은 너에게 있다”는 논리에 부지불식간에 설득당한다고 피해자들은 진술한다. 극도로 위축된 이들은 자신을 점점 추하고 약한 존재로 느낄 뿐,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일을 좀처럼 감행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 같은 ‘스펙 지상주의’ 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전문의에게조차 호소하길 꺼린다.

자존감이 파괴된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옆 사람이 한마디 건네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되지만, ‘당신이 당신의 남편 혹은 부모로부터 심각한 정신적 공격을 당했고, 그들이 당신에게 입힌 피해는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이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피해자가 이 사회에 수만 명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그들의 피해를 사회적·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 자체로 피해자들이 홀로 짊어졌던 문제를 사회가 함께 걸머지면서 문제 해결의 시작점에 서게 해준다.

2009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단어는 신종플루였지만 20, 30대 청년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원인은 자살이었다. 육체적 폭력에 대해서는 법이 개입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삶을 일궈나갈 야성을 거세시키는 정신적 폭력에 대해 우린 무방비 상태이다. 권위와 공포로 유지되는 사회일수록, 거기에 저항하며 각자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예방이 더욱 절실하다. 당신은 소중하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인격을 짓밟을 수 없다고 당신의 부모, 남편, 아내가 말해주지 않을 땐, 사회가 말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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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굳이 계몽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들이 변함없이 즐기는 우리 문화의 하나가 음식이다. ‘전통’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비로소 우리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 된 현실에서, 음식은 현재 우리가 즐기는 그것이, 이 땅에서 나서 진화해 온 바로 그것인, 매우 드물고 소중한 영역이다.

10년 전, 파리에는 20개 정도의 한식당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100개에 육박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거의 모두 좋아한다. 아니 극찬한다. 처음 한국 음식을 접하는 프랑스인들과의 자리에선 언제나 열광과 감동을 예견할 수 있다. 한국 음식에 입문한 프랑스 사람들은, 이후 열렬한 한국 음식 홍보대사가 된다. 한국 음식이 이곳에서 점점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사람의 많은 손길 끝에서 탄생하는 음식 자체의 매력에서 출발한다.

얼마 전 파리에서 한식 세계화 교육이 이루어졌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축이 되고,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한식세계화추진단이 파리에 온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은, 결식아동 25만명에 대한 내년도 지원예산 541억원이 삭감되는 대신 240억원이 편성되어 구설에 올랐던, 문제의 그 사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음식이 수 세기 동안 축적해온 그 고유의 저력으로 이제 비로소 세계 곳곳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 “21세기 성장동력” 운운하며, 정부가 어쭙잖은 훈수를 두려는 자태가 미덥지 않아서다.



물론 정부가 한식 세계화에 관심을 갖는 사실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들어설 자리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빈 구석을 채우고, 모자란 부분을 거들어주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디저트가 약한 한식에서 디저트 메뉴를 개발한달지, 손이 많이 가는 조리과정을 단축하는 기구를 개발한달지, 전반적인 홍보를 한달지.

그러나 파리에서 나흘간 이루어진 교육에는 한식업 종사자보다 일반인이 더 많았고, 특히 20여명이 참석한 실습교육엔 3분의 2 이상이 일반 한국 주부들이었다. 실습도, 공지한 대로 궁중요리와 푸드스타일링 교육을 하는 대신 일반 요리학원에서 흔히 하는 평범한 요리 실습이 진행되었다. 농식품부는 우리 식재료로 교육을 해 한국 식재료 수출을 진작한다고 했으나 정작 한국산 식재료는 협찬사인 'ㄷ'참치캔뿐이었다.

더 애통한 사실은, 파리 한국문화원이 지난해 치러낸 한국요리축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효과적인 행사였음에도, 정부는 그 행사의 금년 예산을 없애고 ‘김윤옥표’ 한식세계화 교육을 밀어넣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파리 한국문화원은 파리의 한국식당들에 대한 홍보는 물론 영화 <식객> 상영, 한식 상차림 전시, 요리실습, 시식회 등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한식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명백하게 한식을 각인시켰던 이 행사는 한국인들끼리 불어로 된 현수막을 걸어놓고 행한 조리 실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었다.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알리기 전에, 우리 아이들부터 굶기지 말고 먹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진행되는 한식 세계화 사업이, 결국 외국에 사는 한국 주부들에게 참치캔의 깊은 맛을 다시 한 번 알리는 블랙 코미디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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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경향신문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주어진 때이다. 가볍게 찾은 병원에서 돌연 말기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래서 지금까지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싶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그러한 때일 것이다. 3년을 넘게 투병생활을 해 오다 세번째 개복수술을 앞두고 <죽음이 눈뜨게 한 삶>이라는 책을 펴낸 김성찬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 좋은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면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다”고 쓰고 있다. 병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은 축복이라는 말이다.

일상에서 시간은 시계바늘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듯 한없이 반복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반복은 우리에게 권태를 느끼게 한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의 삶이 무한히 계속되는 원운동이 아님을 느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인생은 시작과 끝 사이의 선과 같음을 깨닫고 이를 통째로 돌아볼 때가 바로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되는 순간이다.

출처: 경향신문 웹DB


혁명은 질서로의 복귀와 회복

하지만 무슨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내가 과연 제대로 살아오고 있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연말은 내게 마치 시간이 끝나는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한 해의 시작과 끝이라는 관념은 인간의 작위적인 구분일 뿐이다. 일 년이란 지구가 원운동을 하면서 도는 궤도의 한 점을 임의로 설정하고 그곳으로 지구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그 자리로 왔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한 해의 첫 날과 끝 날을 구분하는 것은 원의 한 점을 잘라 직선으로 놓고 보는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지구의 원환운동을 일컫는 천문학 용어가 레볼루션, 곧 혁명이라고 번역되는 단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원환운동을 의미하는 천문학의 용어가 세계의 변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일까? 레볼루션, 즉 혁명이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를 갖고 사용된 것은 17세기의 서구였다. 그때의 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의 창출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에로 복귀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혁명은 복구와 회복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크롬웰 혁명 이후의 영국에서는, 혁명을 통해 얻은 것은 “다시 찾은 자유”라고 선언되었다. 원래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던 자유를 혁명을 통해 회복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법의 배경에는, 인간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법칙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혁명은 구질서를 끝내고 새 세계를 도래케 하는 것이지만, 그 새로운 세계란 창조된 세계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참된 질서가 회복된 세계인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삶의 의미를 새해의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다시 망각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본래의 궤도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2009년은 국내에서는 용산사태, 해외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 폭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까지도 그 일들은 해결되지도, 나아지지도 않고 있다. 이런 일들은 처음부터 본궤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가 있는 일들이었다.

용산참사의 현장인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이 철거되는 모습 (출처: 경향신문 웹DB)


본궤도에서 멀리 벗어난 ‘용산’

지구가 원운동을 하다가 원래의 그 자리로 돌아오는 이 연말에 우리에게는 원래의 질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생각과, 거기에 우리의 삶을 조율하는 혁명의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용산’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생각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것이 ‘신도시’나 ‘분양가’가 될 수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런 일들에 대해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혁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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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세상의 모든 파업은 자신을 위한 싸움인 동시에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싸움이다. 나 자신의 밥그릇을 위한 싸움은 결국 모두의 밥그릇과 건강한 영혼을 위한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파티에 가는 여인처럼, 온 도시가 매혹적인 치장 속에서, 축제전야의 흥분을 나누는 파리에서, 관광객들로 붐벼야 할 국립박물관들은 현재 파업 중이다. 

2주전, 가장 먼저 파업을 시작한 퐁피두센터에 이어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등 70여 개의 박물관, 국립극장들이 연이어 파업 대열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문화부문 공기관의 고용을 대폭 축소하고, 문화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며, 점진적으로 국가에 속해 있던 문화 기관들을 지자체에 이양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관광국 프랑스에서, 문 닫힌 루브르 박물관에 실망할 관광객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을 만도 한데, 이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우리의 파업은 관람객들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맞이하기 위한 것”이기에, 닫힌 문 앞에서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실망의 목소리가 없진 않으나, 파업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라고 노조 측은 전한다.

물론, 파업에 참여하는 박물관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입장을 알린다. 불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이어 에스페란토로 적힌 전단을 만들어, 닫힌 박물관 앞에서 파업의 이유를 설명하며 시민들과 대화한다. 때로는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고, 관람객들을 박물관에 입장시키기도 한다. 파업 중일 지라도,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던 관객들은 그들의 파업에 더 큰 지지와 이해를 보낸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운행을 멈춘 KTX 열차가 차량기지에 서 있다. / 우철훈 기자



프랑스 국립박물관들의 파업은 물론 초유의 사태는 아니다. 2001년, 루브르 박물관은 무려 23일간 파업을 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던 당국의 의도를 좌절시켰고, 2006년에도 국립박물관들은 파업을 통해, 축소되었던 고용을 되찾았던 바 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의 미래 자체가 현정부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1959년, 앙드레 말로를 수장으로 한 문화부가 설립된 이래, 프랑스 문화부는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 문화의 민주화를 최대 목표로 삼아왔다. 가능한 모든 것을 상행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맹렬 신자유주의 집단 사르코지정부는, 반세기 동안, 좌우정부를 거치면서도 꿋꿋하게 지켜 온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를 파괴하는데 문화부의 목표를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박물관 직원 수를 줄이고, 재정지원을 축소하면, 박물관들은 입장료를 올릴 것이고, 전시품들의 규모와 질적 수준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하는 박물관들은, 전시의 초점을 오로지 상업적인 목표에 맞추게 되면서, 박물관에서마저, 문화는 사라지고, 문화를 팔아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상행위만이 앙상하게 남는다. 관람객들은 전보다 형편없는 전시를 더 오랜 시간 줄을 서고, 비싼 돈을 지불하며 관람해야 한다.
결국, 문화부는 재정 지출을 당장 감소시킬 수 있겠지만, 그 대가는 모든 사람이 비싸게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예견된 불행을 막기 위해, 박물관 직원들은, 그들이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인 파업을 신성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파리에 왔던 첫 해이던 1999년 봄, 파리지하철 파업을 처음 겪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아침, 지하철역 입구의 철창은 내려져 있었다. 버스들도 멈춰 섰다.
내려진 철창을 발견한 사람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서 각자의 일터를 향해 걸었다. 어떤 이들은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고, 또 어떤 이들은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들고 나왔다. 분노도 논란도 없었다. 마치 온 도시가 도보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진 것 같은 또 다른 축제의 광경이 연출되었다.
일터가 너무 먼 사람들은? 안 간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어쩔 수 없는(?)는 휴식과 정지를 받아들인다.

파리지엥들이 지하철 파업을 맞이하는 모습은, 비가 오니 비를 맞는 것과 같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뿐, 아무도 하늘을 향해 항의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온 세상이 인정하는 권리인 파업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있는 세상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일 뿐인 것이다.

세계인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이 도시의 오늘은 예술을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줄 알고, 각자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행위를 관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프랑스의 한 네티즌이 썼던 대로, 닫힌 박물관에 실망한 관광객들은 거기서 대신 프랑스 노동자들의 지치지 않는 사회의식과 투쟁정신을 볼 것이다.
어차피 문화는 멀리 내다보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볼 땐, 늘 밑지는 장사가 될 뿐이다. 파업도 그러하다. 100미터 앞도 보지 못하고, 코 앞의 현상만을 확대하여 비추는 언론, 그 얄팍한 언론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파업은 무한 질주를 방해하는 길가에 튕겨져 나온 모난 돌 일 뿐이다.
그러나 모난 돌들이 길가에 튀어나오면, 간혹 그 돌 뿌리에 누군가 걸려 넘어지더라도, 우린 그 돌을 원망만 하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오랜 질주본능에 딴지를 거는 “모난 돌”들의 항변에 함께 귀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철도파업이 정부와 우파언론들이 그들에게 옭아맨, “불법”과 “폭력”이란 억지로 좌초하였다.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이를 민영화하여 시민들의 주머니를 갈취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명백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멈춰선 열차로 인해 면접시험을 보지 못한 수험생들의 사례 등만을 부각시킨, 보수언론의 치졸한 보도행태는 어김없이 반복되었고, 노조는 우리 사회의 무한질주를 방해하는 악마처럼 취급되었다.

기꺼이 모난 돌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바른 길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우린 대체 어디로 달려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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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윤리적 소비를 위한 제언 전문가 좌담

글 김유진·정환보 · 사진 김문석기자



상품의 제조·유통 과정은 물론 기업정신과 같은 이면의 가치까지 고려해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는 이제 한국에서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생활협동조합이나 공정무역, 친환경 소비 등의 다양한 윤리적 소비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출발선에 선 만큼 소비자의 저변을 넓히고 시장을 확대하는 등의 과제도 안고 있다. 경향신문은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의 윤리적 소비 현황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을 열었다. 지난달 25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좌담은 최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덕승|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


이덕승 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이하 이덕승)=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개개인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윤리적 소비는 이타적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조직적 사회운동을 통한 변화의 시대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가치를 통해 실현하는 시대다.



김찬호|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이하 김찬호)=이번 정부 들어 경제 살리기가 화두이고, 8·15에는 녹색 성장도 얘기했다. 둘 다 의미가 있지만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인데, 생산뿐 아니라 소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중요하다. 돈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화의 주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박창순|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이하 박창순)=산업화 이후 대량 생산·대량 소비 체제가 굳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지구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이 윤리적 소비의 근본이라고 본다. 윤리적 소비를 한 마디로 말하면 책임있는 소비다. 상품 구매 결정권을 가진 소비자가 단순히 상품만이 아닌, 제조의 성격과 제조 과정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을 위한 깨어있는 소비다.



 


이보은|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이하 이보은)=소비자 권리가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브랜드나 기업 상술에 포획된 측면이 있다.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따질 수밖에 없다. 윤리적 소비는 시민의 양심과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만나는 접점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본다.



이덕승=보통 소비는 경제적 효용성에 입각한 행위인데 이를 비윤리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윤리적 소비는 개인의 만족 추구와 관계 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다른 가치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비자 운동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보은=한국에서 윤리적 소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불매운동에서부터 발전된 서구와 다른 점이다. 기업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은 선진국 수준인데, 소비자 쪽에서는 초과 비용 지불 의사가 낮게 나오는 등 미흡하다. 과거 녹색소비자 운동이 있었고 2004년쯤부터 공정무역이 도입됐다. 하지만 외국처럼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나 교육의 소산이라기 보다는 세계 시장에 자리잡은 비즈니스들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시작됐다.



김찬호=공정무역 이전에 생활협동조합이 있었다. 일본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한국 생협은 처음부터 직거래와 농촌 살리기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모델이다. 먹거리 중심인데 위험사회에서 불안이 커지면서 최근 늘고 있다. 생협은 어떻게 보면 가장 이타적인 요소와 이기적인 요소가 만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당장 이익이 안 되더라도 지구 전체까지 고려하는 부분은 미진하다. 또 환경과 관련된 것은 있지만 문화에서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술 대신 연극을 보는 것이 곧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인데 말이다.

 

박창순=다양한 생협이 윤리적 소비의 확대에 기여했다고 본다. 다만 조합원 위주여서 제한적이고, 빈곤 등 국제적 이슈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공정무역은 한국에서 첫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이보은=‘우리 밀 살리기 운동’은 한국의 윤리적 소비 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시장 점유율도 나름대로 성공한 것으로 안다. 그동안 생협은 유일한 진지(陣地)였는데, 일반 시장에 진입한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농촌에 대한 부채의식, 신토불이 등이 갖는 한계도 있다. 국내 농업을 돕는 일과 함께 국제무역 속의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찬호=‘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듯이 내셔널 코드가 강한 측면이 있는데, 글로벌한 차원에서도 기회로 바라보거나 방어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가 한 축을 맡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반지 하나 만드는 데 브라질 금 채굴 노동자들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받는다는 점 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로컬 차원에서라면 지역화폐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박창순=윤리적 소비가 보다 활성화되려면 개인이나 시민사회, 기업,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특히 ‘촛불’에서 개인의 힘이 크다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윤리적 소비, 윤리적 생산도 일상에서 실천한다면 가능하다. 공정무역의 경우 시장 확대라는 과제와 함께 소비자 교육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외국에 정부개발원조(ODA)를 하고 있는데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관련 정책도 추진하면 좋겠다.




김찬호=지난해 ‘고용 없는 성장’을 했는데, 존재 가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노동은 밥벌이 수단으로, 유통은 사기, 소비는 욕망의 탕진으로 전락하는 등 경제행위 전반에 왜곡이 있다. 또 소비 차원에서 윤리가 화두인데, 윤리라는 말은 도덕주의적 느낌이 든다. 삶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꾸면 어떨까 한다. 시장이라는 것은 원래 사회문화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형의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은 더더욱 희망이 없다.

이보은=촛불 정국에서 보여준 개인의 참여가 일상 속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슈퍼마켓에 가는 일이 지구의 미래가 걸린 투표행위와 같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과 정부 정책에 변화를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도 시급하다. 윤리적 소비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해서 반 소비 운동도 포함된다. 시민사회가 좀더 다양한 활동으로 윤리적 소비 의식을 키워야 한다. 또 윤리적 소비가 확산되려면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나 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모델이 나올 수 있다. 정부가 하는 사회적 기업 사업은 취약 계층에 치중돼있는데, 새로운 문화적 가치들을 포함해야 한다. 환경마크와 같은 긍정적 정책들도 더 나와야 한다.



이덕승=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의 변화다. 윤리적 상품들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90년대 초반 녹색상품 구매 운동이 일었는데 제품의 품질이 그다지 우수하지 않아서 약화됐다. 공정무역도 일반 대기업 등과 눈높이를 맞춰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얻고, 공공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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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기자



‘착한 소비자’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환경과 인권을 배려하는 감수성,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결심만 있다면 일상에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여성환경연대와 icoop생협연합회의 도움으로 윤리적 소비 수칙들을 모아봤다.



■ 친환경적 먹거리를 선택한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을 먹지 않는다. GMO는 인체에 유해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다국적 기업의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 전 세계 가난한 농민들을 더욱 궁핍하게 한다. 대신 생산자를 배려하는 공정무역 제품을 골라 쓴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에서 대량의 곡물 사료로 사육된 소, 돼지, 닭고기를 먹는 것도 자제한다.



■ 친환경적 옷차림을 즐긴다



유행에 따라 한철 입고 버리는 값싼 ‘패스트 패션’은 거부한다. 저임금 노동 착취로 생산됐을 가능성이 큰 데다, 옷을 폐기할 때 환경 유해 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새 옷을 자꾸 사들이기보다 리폼 등 스타일 변형 서비스를 받는다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지역 중심으로 소비한다



대형 할인점보다 가까운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하면, 차량 이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충동구매도 막을 수 있다. 해외 여행을 떠나서도 대형 리조트·음식점 체인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나 식당을 이용한다. 다국적 자본이 아닌 현지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책임 있는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 적극적 목소리를 낸다



기업에 윤리적 제품의 생산을 요구하고, 식품 안전과 관련된 각종 캠페인이나 학교 급식 감시단 등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친환경적이고 검증된 국내 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에 참여하는 것도 소비자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 지갑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한다


우리가 사고, 쓰고, 버리는 물건의 양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윤리적 소비의 핵심이다. 필요한 물건인지, 빌리거나 나눠쓸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한다. 물건을 다 쓰고 난 후에 어떻게 처리할지에도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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