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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편안이 20일(현지시간) 상·하원을 통과했다.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1623조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슈퍼 감세안’이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31년 만에 최대 규모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9.6%에서 37%로 낮추는 게 감세안의 핵심이다. 내년부터 감세가 시행되면 혜택은 대기업과 부유층에 돌아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대기업들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로 10년간 1조달러의 세금을 덜 내게 됐다. 연소득 73만3000달러가 넘는 부유층은 연평균 5만달러가량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게다가 개인 상속세 면제 기준이 560만달러에서 1120만달러로 올라가면서 부유층은 상속세 부담도 덜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제개편안이 통과되자 “중산층에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감세안이 시행되면 연방 정부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5890억달러에서 내년부터는 9000억달러 안팎으로 늘어난다. 세수 증가는 400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재정이 적자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감세안은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공개된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미국 상위 1% 소득 계층의 몫은 전체의 22%에 그쳤으나 2014년에는 39%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미국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것은 대기업과 부유층에 유리한 세금제도를 운영한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정의를 훼손하는 부자 감세안을 통과시키며 소득불평등을 심화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재계와 보수진영은 미국 감세안 통과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린 것은 글로벌 감세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두 나라의 법인세 실효세율(과세표준 대비 실제 세부담액 비율)을 따져보면 적절치 않은 공세다. 미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3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21.8%)를 웃돌지만 한국은 18%에 불과하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내년부터 미국과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역전돼 국내 기업을 해외로 내쫓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원내대표는 감세안이 통과되자 “중산층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뻔뻔한 도둑질”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뻔뻔한 도둑질’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소득불평등 해소에 역행하는 것이다.

 

Posted by KHross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18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질서를 흔드는 ‘수정주의 국가’라고 규정한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중국을 적극 견제함으로써 경제·안보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해 나가겠다는 뜻이 담긴 보고서다. 보고서는 미 본토 및 미국민 보호, 미국의 번영 증진, 힘을 통한 평화 유지, 미국의 영향력 확대 등을 4대 핵심 이익으로 꼽았다.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은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열강들 간 힘의 대결이 펼쳐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뉴욕타임스가 30년간 휴지기를 보낸 초강대국들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고 분석한 것은 적절한 묘사다.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은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와 확연히 다르다. 오바마 행정부는 다자주의 안보 체제와 협력을 중시하고 중국과도 파트너십을 강화하려 했던 반면 트럼프는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 국가로 보는 대결주의를 표방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19ㅃ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몽’을 내세우며 서방과 체제경쟁에 나설 뜻을 밝힌 것에 영향을 받은 면도 있어 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서도 오바마 보고서의 경우 7차례 언급할 정도로 중시한 반면 트럼프 보고서는 한차례에 그쳤다. 출범 초기부터 드러났던 트럼프 행정부의 ‘갈등 유발적 독단주의’가 앞으로 국제사회에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걱정이 앞선다.

 

조화와 협력을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트럼프 행정부가 깨뜨린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파기한 데 이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규정해 지구촌의 화약고인 중동에 기름을 부은 상태다.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된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모든 결정을 백지화하는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 것도 미국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는 압도적인 힘으로 북한의 침략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강제할 옵션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대북압박 전략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의 해법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격돌할 장소는 아무래도 동북아시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해 미국은 이미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두 패권국 간의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이 전략적 사고, 균형 감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Posted by KHross

“저기 뒤에 가짜뉴스(fake news)가 있다. 전부 다는 아니다. 물론 일부는 괜찮은 사람들이다. 어디 보자. 한 30% 정도는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군기지에서 열린 연방수사국(FBI) 내셔널 아카데미 졸업식에서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가리키며 졸업생들과 생중계로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한 말이다. 가볍게 미국 언론인의 70%는 가짜(fake)가 돼 버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워싱턴에서 지켜본 트럼프 정부 1년은 불안하고 실망스러웠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배타적 백인 민족주의로 조금씩 휩쓸려 가는 미국은 더 이상 다양성을 원동력으로 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 우선주의만큼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올 한 해 자주 사용한 단어는 ‘가짜뉴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한 케이블 채널 인터뷰에서 “미디어가 내가 만든 용어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가짜란 단어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가짜뉴스란 단어는 19세기 말부터 사용됐다. 물론 이 용어를 세계에 유행시킨 당사자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다. 영국 사전출판사 콜린스는 지난달 2일 올해의 단어에 가짜뉴스를 선정하고, 지난 1년간 사용 빈도가 365% 급증했다고 밝혔다.

 

가짜뉴스는 본래 언론 보도를 가장해 온라인 공간에서 퍼지는 거짓되고 선정적인 정보를 말한다. 전통 언론의 영향력을 추락시키고 현실을 왜곡하는 가짜뉴스의 폐해는 심각하다. 당장 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가짜뉴스를 활용해 지난해 미국 선거에 개입했다고 결론 내린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란 말을 자신을 비판하는 주류 언론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며 의미를 비틀었다. 존 로이드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안 현실(alternative reality)을 만들어냈다”며 “언론인들의 실수는 가짜뉴스 공격으로 증폭되고, 주류 언론은 거만한 엘리트들이 소외된 이들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공격은 권력 견제라는 언론의 기본 기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할 정치권력의 언론 무력화 시도가 수정헌법 1조로 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16명이 직접 고발한 성추행 의혹을 보도해도 그는 가짜뉴스라고 역공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98일 동안 하루 평균 5.5개의 거짓말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했다. 가짜뉴스 공격은 포퓰리즘을 무기로 집권한 ‘피노키오 대통령’이 고안한 자기방어 수단인 셈이다.

 

미국의 퇴행은 전 세계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 세계 15개 권위주의 국가에서 인권탄압 등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가짜뉴스 공격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군 감옥 인권실태를 고발한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를 “우리는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반박했고, 중국 인민일보는 인권운동가 고문 주장에 “트럼프가 옳다. 가짜뉴스는 적이다”고 대응했다. 가짜뉴스가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된 셈이다.

 

가짜뉴스 공격이 통하는 배경에는 주류 언론들의 신뢰 추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민의 신뢰 회복은 언론의 몫이다. 하지만 오만한 언론이 밉다고 언론의 권력 견제 역할까지 무시해서는 안된다. CNN 보도의 형평성에 불만이 있더라도 CNN을 때려눕히는 동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는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폐해는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대북 무조건 대화’ 제안은 사흘 만에 폐기됐다. 백악관이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덮은 것이다. 혹시라도 제재·압박 체제에 누수가 생길까봐 황급히 빗장을 거는 모양새다. 온탕 냉탕을 오가는 미국의 태도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대화는 북한에서도 찬밥 신세다.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도 유엔에서 “비핵화 대화를 거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북 대화 시기상조론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금은 제재하고 압박할 때라는 것이다. 대화무용론도 퍼져 있다. 대화했지만 핵개발을 멈추지 못했다는 이유다. 그러면 압박과 제재하는 동안 핵개발 속도가 빨라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모든 대화는 소득을 낳는다. 합의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 의중 파악은 가능하다. 북한이 무슨 의도로 핵을 개발하는지, 핵위협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언제 도발행진을 멈출 건지 가늠할 단서를 제공한다. 모두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안이지만 모르는 것들이다. ‘닥치고 제재·압박’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효과다.

 

미국과 한국 보수층은 대북 대화 제의를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한 면죄부나 보상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김정은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기 위한 음모로 몰기도 한다. 이는 오해일 뿐이다. 남북은 1983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겨냥해 북한 공작원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17명이 사망한 아웅산 사건 1년여 뒤 대화를 시작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끌어낸 바 있다. 미국 역시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때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 대화가 보상이나 무조건적인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둘 다 성사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화가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위협적 행동이 감소하는 것도 검증된 사실이다. 제재와 압박 역시 유용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화와 협상을 외면한 채 제재하고 압박하면 북한이 손들고 항복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상상하는 것과 달리 대화는 결코 유화 조치가 아니다. 상충하는 국익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무대이기 때문에 온갖 지략과 책략, 독설과 협박이 난무한다. 괜히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보수층이 대화를 깎아내리는 것은 북한과의 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협상장에서의 북한은, 협상으로 먹고사는 미국도 손을 들 만큼 집요하고 강력하다. 북한의 벼랑끝전술이나 살라미전술은 세계적으로 호가 났다. 이런 북한을 상대하다 실패할까봐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시작조차 않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보수층은 대북 강경책을 신봉한다. 하지만 이 강경책은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김정은의 위상을 격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책을 펴는 동안 3대 세습 권력자에서 핵대업을 완성한 ‘사회주의 위인’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위와 어깨를 나란히 할 기세다. 외부에서 제재와 압박을 가할수록 지도자를 중심으로 응집력이 강화되는 북한 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오랜 제재에도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현실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물론 국제 정세가 북한에 유리하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 규범을 무시한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내력은 한계에 달한 상태다. 틸러슨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책을 논의했다는 놀라운 정보를 공개했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이 이를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자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과 엄벌 감정이 위험수위라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대화와 압박, 어느 한쪽을 절대화하거나 백안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문제를 이념의 좌표로 삼는 행태를 배격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도덕적, 이념적 잣대가 아니라 오로지 실용적 차원으로 접근할 사안이다. 문제를 풀 수만 있다면 대화든 압박이든 가릴 이유가 없다.

 

현재 북핵 대화의 여건은 무르익은 상태다. 북한이 실질적인 핵무력 완성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순간에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협상력 극대화를 노린 대화 신호로 보인다. 미국도 북핵·미사일의 실전배치 이전에 현 수준에서 동결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결론은 대화다. 북한과 미국의 대화 거부는 대화 조건을 둘러싼 기싸움 성격을 띤다.

 

원래 대화는 조건 없이 하는 것이다. 신뢰와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다가 실패한 과거를 답습할 시간이 없다. 대화를 통해 얻어낼 결과를 대화 시작의 조건으로 거는 것은 시간이 필요할 때나 구사하는 전략이다. 자존심과 적대감 때문에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가정을 가진 남성이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 일명 ‘후라리맨’을 두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후라리맨’은 ‘흔들흔들’을 뜻하는 일본어 ‘후라리’에 남성을 뜻하는 영어 ‘맨(man)’을 합친 말이다. 원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만 했던 남성들이 정년 퇴직 후 가정에서 있을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한 일본 사회학자가 만들어낸 용어다. 그런데 최근엔 ‘후라리맨’이 한창 일할 나이인 남성들에게도 쓰이고 있다. 회사 업무가 끝난 뒤에도 귀가하지 않고 거리를 헤매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의 발단은 공영방송 NHK의 한 정보프로그램이 이 ‘후라리맨’을 특집으로 잇따라 다루면서다. 방송에선 퇴근 후 집에 바로 가지 않고 근처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거나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남성 회사원들이 등장했다. 저녁 시간대 도쿄 시내의 가전양판점에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가득한 모습도 보여줬다. 일본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퇴근이 빨라졌지만 정작 여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는 남자들이 ‘후라리맨’이 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방송이 나간 뒤 인터넷에는 비판 댓글이 쇄도했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남성들이 “혼자만의 시간의 필요하다” “일찍 귀가해도 아내의 집안일에 방해가 된다” 등의 이유를 댔는데, 이게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아내에게 가사와 육아를 강요하고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혼자만의 시간은 여성도 필요하다” 등의 비난이 잇따른 것이다. 그중에는 “워킹맘이 식사를 만들지 않으면 ‘엄마 실격’이라면서, 남성은 ‘후라리맨’이라고 해서 ‘여러 부담을 지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라니 도대체 뭐냐”라는 신랄한 비판도 있었다.

 

그러자 NHK는 후속 보도로 이 같은 반론들과 실태들을 더 다뤘다. 다른 방송이나 신문, 잡지도 관련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다. 그런데 후속 보도들에서도 여전히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자도 괴로워’류의 흥미 위주식 보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NHK는 비판의 목소리를 소개하면서도 “바로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기분을 이해한다” “전업주부라도 바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 등 ‘공감의 목소리’를 전했다. 마치 여론이 찬반으로 양분된 인상을 준다. “아이 중심의 집은 거북하다” “육아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아내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심리를 전했다. 한 언론에선 “집 안 내 서열이 반려동물보다 아래”라는 ‘핍박받는 남성’ 사례를 다루기도 했다. NHK는 또 앞서 소개된 남성이 아내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취미를 함께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 부부는 자녀가 없었다.

 

물론 남자도 괴롭다. 사회는 무뚝뚝하게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미덕이던 과거와는 다른 남성상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이쿠맨(육아하는 남자)’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쿠맨’이 마치 능력 있는 남성의 ‘브랜드’처럼 쓰이는 면도 없지 않다. 가사와 육아라는 끝나지 않은 작업에 짓눌려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련의 후라리맨 보도에선 사회의 요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진지하게 짚는 대목을 좀체 보기 힘들다. 일본에는 여성 60%가 첫째 아이를 낳은 뒤 퇴직하는 등 성별 역할 분담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반면 일손 부족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의도는 차치하고 ‘일하는 방식 개혁’의 지향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고, 부부가 적정하게 가사·육아를 분담하는 것이다. 종국엔 가정과 일을 병립하고, 아이를 키우기 쉬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후라리맨’ 논란은 그러한 의식과 제반 여건이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을 거꾸로 보여줬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Posted by KHross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뒤 노동신문 사설은 이렇게 썼다. “희세의 천출위인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만이 안아 오실 수 있는 특대사변, 대승리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트로피를 함께 들 사람이 있다. 오바마와 트럼프다.

 

미국은 대북 정책 실패를 통해 북핵 개발에 기여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한의 요구에 대한 미국의 대응, 미국의 요구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얽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북한은 핵무력 완성까지 미국과 함께해왔다. 완성 선언 이후의 길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라는 동반자가 있다. 김정은 홀로 가지 않는다. 이번 2인무(二人舞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완성 선언 이전보다 좀 더 민감하고 복잡하다는 사실뿐이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서로 엇갈리는 두 개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선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성을 선언, 선을 넘지 않으리라는 암시를 했다. 미국에 예방공격 명분을 주지 않은 것이다. 평창 올림픽과의 시간상 거리도 적당하다. 올림픽 코앞인 1월에 발사했다면 협상으로 국면 전환할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협상도 가능하다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아직 대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없다. 그리고 미리 완성 선언을 해놓음으로써 비핵화로 되돌릴 가능성에 쐐기를 박았다.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으로 명기했을 때처럼 비핵화 꿈을 단념케 하려는 심리적 선제공격이다.

 

미국이 완성 선언을 미심쩍어하고, 그 때문에 미국의 대북 자세가 여전히 뻣뻣하다고 느끼면 북한은 핵무기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이 경우 재진입 기술을 개발해 태평양 상공에서 폭발 실험을 단행하는, 이른바 특대형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는 북한이 추가 도발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북한이 현재의 핵개발 수준에 만족하고 대화에 나서도록 국면 전환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트럼프의 다른 선택지는 북한이 굴복할 때까지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짐짓 그걸 과시한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김정은과 트럼프 두 사람 앞에 각각 두 가지 길이 있다면,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네 가지다. 둘 모두 정면충돌하거나 둘 다 충돌을 피해 대화하는 경우, 둘 중 한쪽이 대결적 자세로 나가고 다른 쪽이 맞서지 않는 경우다.

 

최악인 정면충돌을 피하고 최선인 대화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정책 결정권자가 냉정하고 매우 이성적이어야 한다. 북한이 만일 미국의 어떤 행동에 자극받아 핵무력에 대한 신뢰를 100% 보장해 보이겠다며 기술 개발에 다시 나섰다고 치자. 그래서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ICBM을 시험 발사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과 미국 모두 곤란해진다. 전쟁 상황에 직면해서도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누가 먼저 시작하든 전쟁은 북한의 종말을 가져온다.

 

트럼프에게도 딜레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탄핵당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을 상대로 예방공격을 해야 하나? 미국인을 포함한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천문학적인 군비를 쏟아부으며 전쟁의 수렁에 빠져야 하나? 한국·중국·러시아가 모두 반대하는 전쟁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게임 참가자가 합리적이면 최악의 게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트럼프는 서로 미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은 1.5트랙 대화에서 트럼프가 정말 미친 것인지, 그저 미친 척하는 것인지 미국 전문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미친 강아지라고 했다. 바로 이 두 사람이 지금 서툰 탱고를 추며 네 개의 문 가운데 하나를 통과하려고 한다.

 

북·미관계는 상대의 신호와 선택이 나의 신호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성에 지배된다. 두 사람은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한발 한발 내디뎌야 한다. 상대의 주파수를 잘 파악해야 한다. 좋은 신호는 좋은 반응을 유도하고, 나쁜 신호는 나쁜 반응을 부추기기 딱 좋은 순간이다. 탱고와 같은 2인무는 박자가 안 맞으면 몸이 부딪치거나 상대의 발등을 밟게 된다. 최악을 피하려는 상대의 입장을 약점이라고 여기고 더 몰아붙여 보라. 즉각 파국이다. 두 사람은 전쟁으로 가는 문을 피하고, 평화로 가는 문을 통과할까?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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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명물 ‘둥피’가 사라졌다.

베이징 동물원 의류 도매시장의 줄임말인 ‘둥피(動批)’는 중국 북부 지역의 최대 의류 집산지다. 1990년대부터 동물원 근처에 들어서기 시작한 의류 도매상가는 10여개로 늘어났다. 도매시장이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동물원에 판다 구경 가는 게 아니라 옷 구경하러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베이징 관광 코스 중 하나로도 꼽혔다. 둥피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3만명, 일일 방문객 수는 1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베이징시 도시정비계획에 따라 둥피는 지난달 3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상가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둥딩(東鼎)이 이날 마지막 영업을 했다. 정리 세일 기회를 잡으려는 알뜰 소비자들과 사라져 가는 둥피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려는 시민들이 몰렸다. 상가에 전기가 끊긴 후까지 손님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곳에서 설빔을 준비했다던 중년 손님과 옷을 팔아 자식을 대학까지 보냈다는 주인이 함께 추억을 풀어냈다. 그 추억들은 이날 이후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베이징의 시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둥화먼(東華門) 야시장이 문을 닫았다. 32년 만이다. 꼬치며 쌀국수를 팔던 88개 상점 주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퇴근길에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베이징 토박이들도 추억의 장소를 잃었다.

 

시장이 사라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장으로 화물과 사람들이 몰리면서 가뜩이나 복잡한 베이징 교통에 부담이 가중된다. 시장을 외곽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베이징의 비(非)수도 기능을 인근 퉁저우, 슝안으로 옮기려는 중국 정부 정책에 부합한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타오바오 등 인터넷 쇼핑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재래시장의 인기가 시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시장들은 주로 정책적 이유로 폐쇄된다. 특히 외래인구 제한이 주목적이다. 시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농촌에서 온 외지인들이다. 시장이 베이징 밖으로 이사 가면 베이징 호적이 없는 이들도 함께 외곽으로 이동한다. 베이징 상주인구를 2300만명으로 제한하려는 당국의 계획과 잘 맞는다. 둥피에 있던 대부분 상가들은 베이징 외곽인 옌지아오(燕郊)로 옮길 예정이다. 노동자들도 이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을 것이다.

 

지난달 18일 베이징 외곽 다싱구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서 불이 나 1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화재가 난 건물은 지하 창고, 1층 공장, 2층 숙소 형태로 된 영세 공장이었다. 베이징시는 이 화재 사건을 계기로 40일간 집중 안전 점검에 나섰다. 그리고 비슷한 형태의 공장에서 일하는 하층민들을 안전 미흡을 이유로 강제로 쫓아내고 있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 거처도 정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임시 거처, 이사 서비스 등을 제공하겠다고 나섰지만 당국은 이 또한 통제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매체 보도도 통제하고 있다.

 

도시 밖으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도시민들 사이의 교류도 단절시키고 있다. 택배 기사, 가사 도우미 등 10만여명에 달하는 하층 노동자들이 베이징 밖으로 밀려났다.

 

도시와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진화한다. 베이징 역사는 3000여년 전 춘추 전국시대 연나라 수도인 옌징(燕京)에서부터 시작됐다. 요, 금,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 지금의 베이징은 시장도 사람도 떠나간 적막한 곳이 돼 가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의 ‘도시병’을 걱정하면서 핵심 행정 기능과 베이징 호적을 가진 ‘필수 인구’만 남길 태세다. 사람과 온기가 없어지고 기능만 남은 베이징은 도시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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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은 북핵 문제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2017년 11월29일 이전과 이후’로 구별될 만큼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입증한 것은 아니지만, 북핵 문제를 다루는 국제적 메커니즘은 이 같은 북한의 ‘정치적 선언’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국가 전략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핵·경제 병진노선’의 한 축인 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한 북한의 다음 목표는 나머지 한 축인 ‘경제강국 건설’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따라서 북한은 제재 해제에 매달릴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대비하는 것 외에는 핵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자신들에게 가해진 제재가 부당하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다. 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비핵화 요구의 강도를 낮추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제재가 느슨해진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말하는 ‘경제강국 건설’ ‘병진노선 완성’ ‘제재 해제’ ‘핵보유국 지위 인정’ 등은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진 동의어다.

 

지금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북한이 핵기폭 장치를 개발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을 때 미국에게 북핵 문제는 동북아 지역 문제였다. 지역 동맹국의 안보문제이며 국제 비확산체제의 사안일 뿐이었다. 하지만 북한 미사일이 미국을 사정권에 넣게 되면서 북핵은 지역 문제가 아닌 ‘미국의 안보 문제’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이다. 이제 미국은 북핵 문제의 ‘운전석’을 다른 나라에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둔 현 단계에서 ‘동결’을 미끼로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추가 제재 등 강력한 대응을 말하고 있지만, 제재를 강화하고 나면 결국 협상론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협상이 열린다면 이는 북한과 미국이 주도하게 되고 한·미 관계는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는 안보 문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을 직접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핵능력 동결, 핵 사용 및 확산 금지 등에 합의하고 관계개선을 모색하게 되면 북한에는 최상이며 한국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핵 문제는 어느덧 한·미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점까지 흘러왔다. 미국과의 철저하고 세밀한 협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협상의 궁극적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한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한 절대 제재는 풀릴 수 없고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도 없으며 핵보유보다 비핵화의 인센티브가 더 크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한국이 이 문제를 주도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북·북핵 전략이 필요하다. 달라진 북핵 논의 구조 속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실종되거나 국익에 반하는 쪽으로 흐름이 전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력은 이제부터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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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그제 한 포럼에 참석해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가 전쟁 가능성을 고조시켰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매일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이 핵으로 무장할 잠재적 위협은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이득이 아니다”라고 한·일의 핵무장 가능성을 제기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어제 CBS에 출연해 “미국의 정책은 북한이 핵탄두로 미국을 공격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선제공격이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화론이 사라지고 전쟁론이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이 브리핑 룸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전쟁론과 선제타격론은 한 달여 만에 재등장한 것이다. 맥매스터는 지난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뒀을 때만 해도 “전쟁 없이 북한 문제를 푸는 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화성-15형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을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표다. 그레이엄 의원의 선제타격론도 미국 내 대북 여론의 강경 회귀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위기 고조는 일차적으로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미국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북한이 최근 두 달여 동안 도발을 중단했을 때 제재 강화 외에 적극적인 대화 시도 등 다각적인 북핵 해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임기 동안에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다. 과거 대북 정책에 대한 성찰 없이 이제 와서 한반도 위기를 부추기는 초강경정책을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미국이 전쟁을 언급한 것은 전략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선제타격이나 전쟁론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 동시에 압박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협상에 앞서 기싸움을 벌이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중단 및 폐기로 맞서고 있다. 의도야 어떻든 한반도의 파멸로 이어질 선제타격은 절대 안된다. 설령 대북 대화를 위한 전략적 카드라고 하더라도 자제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은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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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늘 추수감사절 요리에 쓸 야채를 씻는데 한 번 씻을 때마다 생수 4병을 썼다. 그렇게 3번을 씻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난 21일,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탈리아 부퍼드 기자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부퍼드의 고향은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플린트다. 지난해 이맘때 플린트 주민 멜리사 메이스도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식구들이 모여 앉은 식탁을 배경으로 작은 화이트보드에 추수감사절 요리를 하면서 쓴 생수 58병의 내역이 적혀 있다. 칠면조 해동하고 소금물에 담그기: 생수 33병, 칠면조 헹구기: 3병, 야채 씻기: 6병, 으깬 감자 요리: 6병…. 메이스는 지난 22일 온라인 매체 쿼츠에 “올해도 생수병을 따다 손에 물집이 잡혔다”고 말했다.

 

플린트에서는 수돗물이 납에 오염돼 먹지 못한 지 30일로 790일이 된다. 병에 든 생수로 살아온 지 3년째지만 추수감사절 요리는 플린트의 불합리를 더욱 아프게 드러낸다. 지나 러스터는 7살 딸을 목욕시킬 때 딸아이와 ‘생수로 욕조 채우기’ 게임을 한다. 30분이 걸린다. 러스터네 네 식구의 하루에는 생수 150병이 든다. 그가 수돗물을 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변기 물을 내릴 때.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매달 먹지도 못하는 물에 200달러가 넘는 돈을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온다. 2010년대 들어 시 재정이 악화되면서 플린트의 수도요금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환경보건 단체 푸드앤드워터워치가 지난해 2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전해 1월 기준 플린트의 가구당 연간 수도요금은 864.32달러로 전국 500개 도시 중 가장 비쌌고 전국 평균 요금의 거의 3배였다.

 

플린트는 전체 인구 9만7000여명 중 흑인이 57%이며 전체 인구의 42%가 빈곤층이다. 플린트가 고향인 마이클 무어 감독은 “공화당 소속 릭 스나이더 주지사가 2011년 취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였다. 세수가 줄자 학교, 연금, 식수 안전 등 공공 예산을 깎았다”고 비판했다.

 

플린트시는 디트로이트의 상수관을 이용해 깨끗한 휴론 호수의 물을 사서 쓰다가 재정난이 심해지자 2014년 4월25일 가까운 플린트강으로 상수원을 바꿨다. 이때부터 수돗물이 누렇게 변하고 악취가 났다. 플린트는 1908년 제너럴모터스(GM)가 설립된 곳이다. GM 공장은 번영을 가져다줬지만 플린트강은 ‘GM의 하수구’로 불렸다. 강물은 깨끗하지 않았고 낡은 상수도관은 부식돼 있었다. 주정부는 돈이 없다고 약품 처리도 하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납에 오염된 수돗물이 나왔지만 주정부는 “안전하다”고 무시하다가 이듬해 10월에야 수돗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그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납에 중독되고 레지오넬라병으로 주민 12명이 숨졌다.

 

플린트 사태로 전국이 들끓었다. 정부가 움직이고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해결은 더뎠다. “제때 보고를 안 했다” “몰랐다”는 공무원들의 변명이 반복되고 성난 주민들은 시·주·연방정부를 상대로 10여건의 집단 소송을 걸었다. 지난 3월에야 환경보호국(EPA)은 플린트 상수도 시설 개선에 1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정부는 플린트의 오염된 상수도관 1만8000개를 교체하는 데 동의했다. 지난 6월까지 시 공무원 15명이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지난 21일 플린트 시의회는 주정부 산하 수도청에서 30년 동안 상수원을 공급받는 합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지금 당국이 물을 여과해 납 성분은 안전한 수준까지 낮췄다고 하지만 누구도 수돗물에 손대지 않는다. 시 재정과 주민의 건강을 바꾼 결정은 다시 심각한 불신과 절망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상수도관이 모두 바뀌는 2020년이면 마음이 좀 놓이고 생수병을 따는 수고로움이 덜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플린트에 사는 한 우리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는 마음의 상처는 치료될 것 같지 않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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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미국인이 5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이동의 연휴였다. 대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났고, 주요 공항에서는 비행기 연착이 잇따랐다.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조카도,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삼촌도 고향 집에 모였다. 연휴를 이용해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았다.

 

명절 연휴에 모인 가족이 즐겁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대화가 있다. 노총각·노처녀 결혼 이야기, 중·고등학생 성적 비교만큼이나 짜증을 유발해 화기애애한 가족 만찬을 망칠 수 있는 화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8~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화로 정치가 일등으로 꼽혔다. 종교나 돈 문제보다 정치를 더 입에 올리기 싫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61%가 정치 대화는 가장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해 여야 구분이 없었다. 인종적으로는 66%가 정치 대화가 걱정이라고 답한 백인들이 가장 조심스러웠다. 백인 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가장 심각하다는 의미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조사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백인들의 여론은 지지 47% 대 반대 49%로 극명하게 갈렸다. 트럼프만 생각하면 짜증부터 나는 민주당 지지자 조카와 미국 노동자들이 못살게 된 것은 이민자들 때문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트럼프 열성팬 삼촌이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정치를 논해봤자 싸움밖에 날 게 없다.

 

대선 직전이었던 지난해 추수감사절 가족모임 때는 “선거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한마디면 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는 다르다. 세제 개편, 오바마케어 폐지, 이민 문제 등 논쟁적인 이슈들이 널려 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해도, 성추행 문제를 개탄해도 모든 게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로 귀결된다. 언론들은 추수감사절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충고를 내놨다. NBC는 “올해 추수감사절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며 ‘추수감사절 정치 이야기에서 살아남는 법’ 7가지를 충고했다. 정치 대화를 가능하면 피하고, 불가피하다면 상대방의 자극적 언사에 반응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다. CNN도 에티켓 전문가를 동원해 ‘가족 연휴 식사 자리에서 정치 대화 방법’ 5가지를 소개했다.

 

명절 모임에서 정치 대화를 피해야 한다는 충고는 일반론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짜증 유발자로 전락한 현실이 갈수록 악화된다면 문제가 된다. CNN의 지난해 조사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렵다는 응답은 53%, 정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응답은 43%였다. 하지만 올해 NPR·PBS 조사에서는 정치 대화가 두렵다는 답변이 58%로 늘었고, 기대한다는 답변은 31%로 크게 줄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민주당 지지자들의 절망감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민주당 지지자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다른 생각을 듣는 게 흥미롭고 정보가 된다는 답변은 28%에 불과했고, 짜증나고 절망적이란 답변은 63%나 됐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현안에 대한 생각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조사에서 현재 미국 정치권의 담론이 긍정적이란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부정적이란 평가가 50%, 분노가 느껴진다는 답변은 36%였다.

 

트럼프 정부 첫해가 한 달 남았다. 화합보다는 편가르기에 집중하고, 지지층 확장은 포기한 채 ‘개탄스러운 사람들(deplorables)’의 이탈을 막는 데만 주력하는 대통령이 있는 한 정치는 계속 갈등의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고, 서민들 건강보험 혜택 축소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공화당도, 그런 공화당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도 갈등 유발자다. 미국에서 정치가 미래를 선도하기보다는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볼수록 강해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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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지난 11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더니 사흘 뒤에는 리커창 총리가 사드의 ‘단계적 처리’를 거론했다. 지난 22일에는 왕이 외교부장까지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사드를 언급했다. 지난달 31일 한·중 양국이 ‘관계개선을 위한 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드 갈등이 봉합됐다’고 한 것과 다른 행동이다. 다음달 한·중 정상회담에서까지 이 문제가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임 후 첫 방중한 강 장관은 22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과 회동하며 문재인 대통령 방중 일정과 양국관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중 양국이 사드 갈등을 봉합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 결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밝혔다. 시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사드 배치가 임시 조치라는 점까지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불(사드 추가배치,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을 하지 않는다)’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외교부 장관이 공언하고,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중국의 우려 사항을 이해한다고 밝혔으면 중국은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한국 당국자들을 만날 때마다 사드를 거론하고 압박하는 것은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 중국은 ‘3불’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넘어 사드 운용에 제한을 가하는 ‘1한(限)’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사드에 대한 기술적 설명과 성주 기지에 대한 현지조사, 사드 레이더 중국 방향 차단벽 설치 등 세 가지 조치 이행을 요구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사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망발이다. 한국의 보수층은 정부가 3불 이외에 추가로 양보한 것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 합의 후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작 한국인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을 압박한다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중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주의해야 한다. 각자 입장이 다르더라도 구동존이의 자세로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미래로 가자면서 자꾸 사드를 건드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중국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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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했던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북핵 문제에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두 달여에 걸친 북한의 도발 중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으로 형성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졌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암살하고, 억류하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사망한 사건이 직접적 요인이다. 미국의 잇단 대화 요구에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은 냉랭한 태도도 재지정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중단했지만 이것이 비핵화로 가기 위한 행동이라는 어떠한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비핵화 협상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하면서 “살인정권을 고립화하려는 우리의 최대의 압박 작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불량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다시 얻게 됐다. 하지만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북핵 문제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고강도 유엔 제재를 받아온 북한으로선 이번에 제재가 추가된다 해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 등 무력시위를 재개하고 이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위기상황이 다시 펼쳐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시 주석의 특사를 만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미국에 이어 중국과도 대화를 거부한 것은 북한을 위해서도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다. 성과 없는 중국 특사 파견은 미국이 집착하는 ‘중국역할론’의 한계도 잘 보여준다. 이제 미국은 북한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핵개발을 고집하는 한 북한은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핵보유국은커녕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불량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이 하루빨리 망상을 떨쳐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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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시의 한 아파트에서 9구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피해자 9명의 신원이 확인되는 등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15세 여고생으로, 17세 여고생 2명까지 여고생만 3명이다. 19세 대학생과 20대 초·중반 4명 등 5명도 모두 여성이다. 이 밖에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으러 나섰던 20대 남성 1명이 살해됐다.

 

용의자 시라이시 다카히로(白石隆浩·27)는 사건 현장인 아파트에 입주한 지난 8월 말부터 약 두 달 동안 이들 9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는 사체를 절단해 아이스박스에 나눠 담은 뒤 일부는 밤에 쓰레기로 버렸다. 그는 피해자들에 대해 “트위터에서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관적인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린 여성들에게 “함께 죽자”는 메시지를 보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시라이시는 경찰 조사에서 “정말 죽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피해자들은 “죽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자살을 바라다가 화를 자초했다고 간단히 결론지어도 될까.

 

마지막으로 희생된 20대 중반 여성은 한부모가정 자녀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나온 뒤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이 여성을 길렀다. 그 어머니마저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피해 여성은 지난여름 이혼한 뒤 아이를 혼자 길렀다.

 

이 여성은 마음의 병을 안고서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이번 사건의 배경에 있는 게 아닐까. 피해 여성들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여대생이거나 만화가를 꿈꾼 여고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실종되기 직전까지 학교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가족과도 접촉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는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상대나 장소가 없었다.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인터넷상에서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죽고 싶다’고 했지만 실은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길 바랐을지 모른다. 시라이시는 이런 여성들의 ‘틈’을 파고들어갔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실태를 알아야 한다. 구루메(久留米)대학이 지난해 일본 중·고생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죽고 싶다고 때때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3.7%였다. 이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로 가족에 이어 인터넷이 뒤를 이었다. 친구나 학교보다 인터넷에 의지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이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통계가 집계된 31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특히 어려울 때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 ‘사회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75.9%만 ‘그렇다’고 답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대 사회에선 개인을 지지해주던 가족이나 친구, 연고 집단이 해체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사회관계는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도와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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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8일 한국을 국빈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국회연설도 했다. 트럼프가 방한 기간 동안 대북발언 수위를 방한 전보다 더 높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트럼프는 비교적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업가 출신 대통령답게 비싼 무기도 팔고 대미투자도 유치해 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지난 6월 회담과는 달리 문 대통령에게 선물도 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14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아시아 순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서성일 기자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두 가지 중요한 말을 했다. “한국이 수십억달러의 미국 무기를 사기로 했다”는 것과 “미·북 간에 물밑대화를 해왔다. 지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국의 금년 국방예산이 400억달러 수준이고 그중 10% 정도를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용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항간에 나도는 70억달러설은 사실일 수 있다. 무기 구매로 엄청난 비용을 쓰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미국 무기는 어차피 사야 하는 것이고,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오려면 첨단 정찰자산도 구매해 둬야 한다. 일방적 손해는 아니고 사전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대북 압박·제재를 주장해 오던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 미·북 물밑대화를 시인했다. 어떤 맥락일까? 아마도 “압박·제재를 계속하더라도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 있는 퇴로는 열어둬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권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북핵정책이 압박·제재에서 대화·협상 쪽으로도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 8일 국회연설에서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북한도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두 번 반발하는 것에 그쳤다. 트럼프가 언급한 미·북 물밑접촉이 공식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북한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9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책임론’ 대신 미·중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의’가 강조되었다. 이는 미·중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2535억달러라는 거액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 주효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11일 베트남에서 “김정은과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며 미·북 대화 가능성을 더 열어놨다. 사실 미·북 물밑대화의 징후는 지난달 하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10월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강연에서 북 외무성 미국국장 최선희는 “북·미 간 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다”고 했고, 30일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조지프 윤은 미 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북한이 약 60일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 직접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방한 기간 중의 트럼프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9월15일 이후 지금까지 60일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조용하다. 트럼프도 15일 ‘중대발표’에서 예상을 깨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런 움직임이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방한 이후 전개되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대화 쪽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7일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시점에 맞춰 북한 제네바 대사가 중국의 제안인 ‘쌍중단’마저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건 중국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시켜 주면 ‘쌍중단’으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위기설’이 가라앉고 대화로 나갈 수 있는 국면이 전개되려 하는 건 다행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남북대화를 준비해야 하는데,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화 재개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애착을 보이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스키경기 일부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북한 참가와 남북공동개최를 유도할 수 있다. 체육회담과 함께 내년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한반도평화포럼 여성·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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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겸 외교위원회 위원장과 잇따라 만났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접견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시 주석의 특사 방문이 북·중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진전에 기여할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마침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가 지난 17일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쌍중단(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시 주석의 구상)’을 전제로 대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한·미 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미국과의 협상은 없다”면서도 “미국이 먼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그다음에 우리가 뭘 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9월 미사일 발사 이후 두 달 동안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오른쪽)이 18일 평양에서 북한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평양 _ AP연합뉴스

 

쑹 특사 파견을 중국보다 먼저 발표한 바 있는 북한은 특사 파견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중국은 당초 쑹 특사의 평양행을 시진핑 2기 출범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은 쑹 특사와 리수용의 회담을 전하면서 “조선반도와 지역 정세, 쌍무관계를 비롯한 공동의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논의됐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특사 파견은) 큰 움직임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려보자”며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런 움직임들이 대화를 위한 긍정적 신호이기를 바란다.

 

한·미 양국이 북핵 위기 국면의 전환을 원한다면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 불러온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미·중 양국 정상 간 쌍중단에 관한 입장이 엇갈렸다는 소식은 매우 유감스럽다. 최근 미 항공모함 3척이 한반도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북한은 매해 12월부터 대규모 동계 군사훈련에 들어간다. 지금이야말로 북·미 양측이 쌍중단을 진지하게 검토할 적기다. 트럼프는 압박 강화만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핵 문제를 중국에 맡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한·미 간, 미·중 간 활발한 의견 교환은 물론 북·미 간 직접 협상을 통해 북한의 도발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으로 의견을 모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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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한·미, 미·중을 비롯한 북핵 관련국들의 연쇄 정상회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중국의 제19차 당대회 이후 북핵 당사국들의 행보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로 17일 북한에 파견할 방침이고, ‘북한 관련 중대 발표’를 예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아시아 순방 결과를 설명하면서 기존 대북 접근방식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고 말했지만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이나 군사옵션은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이 두 달 넘게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쑹 부장의 방북이 제19차 당대회 결과와 시진핑 2기 체제 출범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당 대 당’ 외교를 총괄하는 대외연락부장이 특사로 나선 것이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쑹 부장이 방북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북핵 논의 결과를 전달하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촉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중국의 특사 파견은 중국이 북핵 문제 중재 역할을 재가동하는 의미가 있다. 북한은 쑹 부장의 방북을 반기는 모습이다. 그의 방북 사실을 중국 정부나 언론이 발표하기도 전에 조선중앙통신이 먼저 보도했다. 시 주석의 대북 특사 파견 자체가 지난해 2월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특별대표 이후 1년9개월 만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장기간 이어지고 중국마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면서 고립무원이던 북한 입장에서 중국과의 고위급 인사 교류 재개는 청신호일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서는 북·중관계 개선을 환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트럼프와 달리 일관되게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강조해왔다. 북·중관계 개선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전망을 밝게 해 줄 것이다. 아시아 순방기간 동안 강온양면의 복잡한 북핵 메시지를 쏟아냈던 트럼프가 순방 결과 발표에서 대북 강경 자세를 보이지 않은 것도 나쁘지 않은 신호다. 이 같은 북핵 관련국들의 움직임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환경 조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 정부가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고 당사자로서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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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河北)성 이(易)현 시골 마을에 있는 한 사당은 1년 수입이 17억원에 달한다. 특별히 큰 운영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들어오는 돈이 그대로 수입이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사당이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 사당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유독 이곳에 사람과 돈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바로 차신(車神)이라는 21세기 신 덕분이다.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도포를 입은 차신은 두 손으로 자동차 핸들을 꼭 붙잡고 있다. 사당 한쪽 벽에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그려져 있다. 운전면허시험을 보기 전에 여기 와서 절하면 찰떡같이 붙고, 교통사고도 나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자동차 핸들과 신이라는 어색한 조합은 소셜미디어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관리인은 하루에 한 번 ‘공덕함’에 모인 돈을 수거해 간다. 많게는 몇 백만원씩 쌓인다고 한다. 변변한 관광지가 없는 이 시골 마을은 대부분의 수입을 차신으로부터 얻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신이 정말 ‘무사고 안전운전’을 책임질 거라고 믿는 걸까. 그보다는 신이 핸들을 들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찾고, 찾은 김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절도 하고,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재미를 찾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일종의 ‘놀이’인 셈이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행사인 광군제(光棍節·11일)가 지나갔다. 모두가 알리바바가 광군제 행사가 진행된 11일 하루 동안 1682억위안(약 28조3078억원)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싱글들이 쇼핑하거나 선물 주는 날이었던 광군제가 쇼핑 축제가 되고 8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이면에는 바로 ‘재미’가 있다.

 

알리바바는 니콜 키드먼, 판빙빙 같은 국내외 유명 배우 등을 모아 전날 밤 갈라쇼를 연다. 마윈 회장은 올해 갈라쇼에서 직접 출연한 무술 영화 <공수도>를 공개했다. 기업 회장이 뒤에 엄숙하게 앉아 있지 않고 무대의 주인공으로 직접 나섰다. 전 세계 스타와 기업의 회장과 임직원이 다 함께 광군제를 축제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사야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소외된다. 이 거대한 파티에 참여하고 싶게 만드니 매출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올해 광군제의 의미는 천문학적 매출액 자체보다는 쇼핑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만드느냐에 있었다. 온라인 매체인 ‘텅쉰오락’은 “화려한 갈라쇼를 보면 명절 전 설렘과 비슷한 기분이 들고, 그 기분에 홀려 다이어트, 피부 관리,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관련 상품을 사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골 마을의 사당도, 할인행사도, 즐거움이 있어야 지갑이 열린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주목받았던 ‘코리아세일페스타’도 올해로 3년째를 맞지만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 힘들다. 할인품목과 할인율의 한계, 연휴 및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행사 효과 반감, 낮은 행사 인지도가 장애물로 꼽힌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행사에는 판매자도, 소비자도 즐겁게 참여하는 이를 찾기 힘들다. 페스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축제로 승화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마윈 회장은 13일 CCTV와의 인터뷰에서 “광군제는 알리바바에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와 판매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알리바바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광군제를 통해 소비자와 판매자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 싶고 그래서 택배뿐 아니라 전자페이, 판매 플랫폼 기술을 계속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알리바바가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소비자와 판매자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광군제의 기본 신념만큼은 새겨볼 만하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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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우선 순방 목표 중 달성한 게 없다.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순방이 끝나가는 지금 북핵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겠다던 다짐도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14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아시아 순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마닐라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리더십에서 비롯된 위상 약화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인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공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상대로 경제 실리를 챙기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안의 경중을 못 가리는 행동이다. 경제적 이익은 얻었을지 몰라도 지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서 모순적 발언과 위협을 일삼는 트럼프의 변덕에는 북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가 믿을 만한 협상가인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치광이인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트럼프를 견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의 아시아 정치 전문가가 엊그제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눈에 띄게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꼽았다. 사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관계를 무시하면서 국제회의에서 공간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과 상대국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미국의 영향력은 트럼프에 의해 쇠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위대한 나라에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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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위기, 무역 불균형, 미·중관계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트럼프는 양국의 무역 불균형에 대해 “미·중 무역이 일방적이지만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 자국민들을 위해 이익을 취한다고 다른 나라를 어떻게 비난하냐”고 말했다. 그는 “시 주석과 과거 미·중 무역 상황을 토론한 적이 있으며, 절실한 행동을 취해 중국 시장 진입 문제 등 무역 왜곡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 지적재산권 보호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상부상조 관계를 부각하며 무역 갈등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날 2535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제품을 구매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두 정상은 또 향후 외교·안보 대화와 전면적인 경제 대화, 법 집행 및 사이버보안 대화, 사회·인문 대화 등 4대 고위급 대화 체계를 지속하기로 하는 등 상호 협력적인 미·중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방문 환영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국 정상은 환영식 후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무역 불균형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날까지 한·중·일 3개국 순방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 다낭으로 향한다. 베이징 _ AFP연합뉴스

 

발표한 회담 내용만 보면 두 정상의 만남은 갈등보다 소통·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에서의 첫 만남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북핵 해법과 관련해 트럼프는 시 주석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시 주석을 추어올리며 은근히 중국 역할을 강조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트럼프는 “중국은 이 문제를 쉽고도 신속하게 풀 수 있다”면서 “시 주석이 그 일을 열심히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또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대북 결의를 전면적으로 실천하는 데 동의했고, (북한이) 경솔하고 위험한 행동을 포기하도록 대북 견제와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안보리 결의를 엄격하고도 전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설명했다.

 

트럼프가 매우 부드러운 태도를 드러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중국이 2535억달러어치를 미국에서 구매하기로 계약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미국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당초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대가치고는 괜찮은 거래라고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일본·한국·중국을 순방한 주요 목적의 하나는 중국에 대북 제재 강화를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만일 미국의 압력에 중국이 소극적으로 반응할 경우 미국 독자적인 북핵 해결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을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중국의 미국 제품 대량 구매라는 실리를 얻는 데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대북 제재 강화 원칙에 합의하고도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 앞에서 멈춰 선 형세가 됐다.

 

트럼프는 동북아 3국 순방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에 의탁하거나, 한·미·일 대북 제재 공조만으로는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3국 순방을 정리하면서 북핵·미사일 문제의 접근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에도 중국의 대북 접근법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대화와 제재의 병행으로 북한의 위험한 도박을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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