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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도쿄 와세다대 근처의 아바코 예배실을 찾았다. 그림책 <꽃할머니>의 일본어판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꽃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기초로, 열세 살 소녀가 겪어야 했던 모진 고초를 그리면서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한·중·일 3국이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한국과 중국에선 2010년 출간됐지만, 일본에선 8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됐다.

 

이날 행사에는 <꽃할머니> 작가 권윤덕씨와 함께 일본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田島征三·78), 하마다 게이코(浜田桂子·71)가 나왔다. 두 사람은 ‘평화 그림책’ 탄생의 산고(産苦)를 지켜본 산증인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10여년간의 여정을 때로는 웃음을 섞어가면서 담담하게 술회했다.

 

<꽃할머니> 작가 권윤덕씨(왼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28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일본어판 출간 기념행사에서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김진우 기자

 

‘평화 그림책’은 다시마를 비롯한 일본 그림책 작가 4명으로부터 시작됐다. 다시마는 “어떻게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부터 피해를 입힌 아시아의 작가들에게 호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005년 한국과 중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편지를 보내 취지를 설명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기도 했다. 2007년 중국 난징(南京)에 한·중·일 작가들이 모였다. 언어는 달랐지만, 아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지난날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오늘의 아픔을 나누며, 평화로운 내일로 함께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 그림책’은 다시마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하마다의 <평화란 어떤 걸까>(이상 한국어판 제목) 등의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다만 <꽃할머니>는 “심 할머니의 증언이 공문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일본어판 발간이 취소됐다. 일본 우익들의 공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광’에 묻힐 뻔한 책을 살려낸 것도 다시마 등이었다. 기획을 처음 제안했다는 책임감이, 작고하기 전 만난 심 할머니와의 약속이 이들을 움직였다.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없었을까. 다시마는 “새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며 웃었다. 그는 우익의 선전차량들이 집 주변을 돌면서 스피커를 통해 “아이들을 적화(赤化)시킨다”고 비난하는 일을 겪었다. 하마다는 임신으로 부른 배를 안고 가두선전을 하는 우익들에게 다가가 “그만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마는 “80여년 전 미디어나 출판이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한 게 일본이 점점 (태평양)전쟁에 가까이 가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의문이 남았다. 갖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평화 그림책’을 밀어붙인 동력은 무엇일까. 실마리는 반평생을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면서 반전·평화·생명의 메시지를 전해온 이들의 이력에 있어 보였다. 다시마의 얘기처럼 일본 작가들이 한·중 작가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데는 ‘가해국’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양심과 실천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의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 관장은 마무리말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열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일본 시민들이 제안을 했고, 각국에서 온 이들이 서로 얼싸안고 했다. 가해자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여정은 멀다. 하지만 역사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어,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데서 미래가 바뀐다는 뜻처럼 들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Posted by KHross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일대 전기가 될 북·미 정상회담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5일 이틀 연속 “회담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며 곧 공개할 것처럼 언급한 북·미 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회담 개최지도 판문점이 아닌 싱가포르가 유력시되고 있다. 지난 주말로 예상됐던 북한 억류 미국인 3명의 송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미국이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관계 진전 국면과 어울리지 않는 적대적 언술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난기류가 회담 흥행을 위한 트럼프의 뜸들이기나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는 북·미 간 신경전 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도 7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소식도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북한에 접근하고 있다며 미국 조야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트럼프가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좀 더 확인하고 미사일 등에서 확실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워싱턴에 팽배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은 핵폐기 원칙으로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제시하고, 생물·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영구적 폐기와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의 미국 비판 성명은 이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오는 2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양측 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조정 및 중재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북한의 핵폐기와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접근해야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양측 간 신뢰를 조성하면서 북핵폐기방안에 대한 이견을 메우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핫라인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9일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모처럼 맞은 북핵 및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Posted by KHross

1968년은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해 4월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사망했고, 반전·평화를 외쳤던 5월 혁명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 후 50년이 흐르는 동안 전쟁은 끝났고 차별은 옳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달 1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은 우리 안의 차별 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고 완고한 것인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23세 동갑내기 사업가인 레이션 넬슨과 돈테 로빈슨은 이날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에서 또 다른 사업 파트너 앤드루 야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넬슨과 로빈슨은 스타벅스 직원에게 “음료를 아직 주문하지 않았지만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야멸차게도 “안된다”고 대답했고 급기야 이 두 사람에게 “매장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넬슨과 로빈슨이 나가지 않자 직원은 경찰을 불렀다. 넬슨과 로빈슨은 흑인이었다.

 

야프가 스타벅스에 막 도착했을 때 경찰은 두 흑인 청년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넬슨과 로빈슨이 체포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후폭풍을 일으켰다.

 

미국 인구조사국과 하버드대, 스탠퍼드대가 공동 진행 중인 ‘기회균등 프로젝트’는 미국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는 차별의 실상을 보여준다. 프로젝트의 일환인 ‘미국의 인종과 경제적 기회’ 보고서를 보면 30대 흑인 남성의 99%는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또래 백인 남성보다 소득 수준이 낮았다.

 

이는 부유층도 다르지 않았다. 소득 5분위(최상위) 가정에서 자란 흑인과 백인 소년을 추적해보니 30대가 됐을 때 하위 계층으로 떨어진 비율이 백인보다 흑인에서 더 높았다. 똑같이 ‘금수저’로 태어났더라도 어른이 된 후 여전히 금수저를 물고 있는 쪽은 백인이 더 많더라는 얘기다. 경제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비율도 백인이 더 높았다. 소득 1분위(최하위) 가정의 백인 소년이 성장해 5분위 가정을 꾸리는 비율은 10.6%였지만 흑인은 2.5%에 그쳤다. 사회에 나와 창업을 하거나 일자리를 구해 소득을 올리는 과정에서 흑인은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한국인도 차별에선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 상당수가 일터에서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혼혈’이라고 놀림당하는 일도 빈번하다. 인종 차별뿐 아니라 경제적 차별도 만연한 곳이 한국이다. 부자가 빈자를 괄시하고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갑질’한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임대아파트에 사는 애들과 놀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는 것은 과장 섞인 풍문이 아니라 엄연히 실재하는 일이다.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가자. 경찰에 체포된 넬슨과 로빈슨은 당연하게도 무혐의로 풀려났다. 스타벅스는 두 청년을 경찰에 신고했던 직원을 해고하고, 두 청년에겐 온라인에서 대학 강의를 무료 수강할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두 청년은 필라델피아시 당국과도 합의에 이르렀다. 소송을 걸어 거액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상징적인 합의금 1달러씩만 받고 소송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시 당국이 기금 20만달러(약 2억1500만원)를 조성해 자신들과 같은 젊은 사업가를 지원하도록 했다.

 

스타벅스 직원과 경찰은 넬슨과 로빈슨을 수상한 이등시민으로 취급했지만 이 사건의 결론은 어떠한가. 정작 박수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들은 두 청년이고 스타벅스와 경찰엔 비난이 쏟아졌다. 국적을 막론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한 사람의 품격을 완성하는 법이다. 이 품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말로는 대한항공 조씨 집안사람들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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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남북정상회담 후 첫 통화를 갖고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과정에서 한·중이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뤄 나가는 과정에서 시 주석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시 주석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고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공조를 유지·강화하자”고 답했다.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는 과정에서 한·중 정상이 긴밀한 협력을 다짐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중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고 있는 ‘중국 패싱’론을 불식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중국은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는 판문점선언 내용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중국이 ‘종전선언’의 당사자에서 빠질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전체제가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한 채 남북한과 미국 3자가 중심이 되는 구도가 되면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이 외교부장이 북한에 급파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것도 이런 우려들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청와대는 중국이 굳이 종전선언에 주체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은 한국·미국과의 수교로 적대관계를 청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주요 당사국인 중국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날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과정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함으로써 ‘중국 패싱’ 논란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으로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는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복원됐다. 한·중 간 협력은 한반도 대전환 국면을 이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앞으로도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관련국들이 소외되지 않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세심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KHross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는 초당적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발의됐다. 민주당 소속 툴시 가버드 의원과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인 공화당 테드 요호 의원이 판문점선언이 나온 직후 이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 의회에서 여야가 초당적 결의안을 낸 것은 처음이다. 여러 정책을 두고 대립해온 공화·민주 양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오자 한목소리로 트럼프의 대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나선 것이다. 싸우다가도 필요하면 당을 떠나 협력하는 모습이 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여야 정치권이 정책을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논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대립과 논쟁은 시민과 공동체 전체를 위해 협력·보완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치엔 이런 과정이 없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거나 이념적 성향이 강한 정치지도자가 당을 이끌면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국론을 모아 시민의 불안을 불식시키기는커녕 당리당략에 따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합리적 비판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객관적인 사실마저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일에도 판문점선언을 이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되지도 않은 북핵폐기를 다 된 것처럼 선동하고 있다”며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과거 여당 시절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요구한 것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번 판문점선언은 이전 남북 합의보다 진일보한 데다 최대 현안인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초당적으로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미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다. 우리도 이참에 초당적 협력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여권은 야당과 정보를 공유하고, 야당은 합리적인 비판과 토론으로 대응책을 함께 찾아야 한다. 이는 정치권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정세균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판문점선언 이행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 여야 대표들과 이런 자리를 만드는 게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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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치러지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때아닌 주한미군 문제가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쓴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보수야당은 주한미군 철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며 문 특보의 해임을 요구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며 논란 확산에 선을 긋고, 문 특보에게 경고메시지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로 판문점을 거론한 데 이어 수일 내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발표될 것이라고 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 사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로널드 레이건(1983년 11월14일), 빌 클린턴(1993년 7월11일), 조지 W 부시(2002년 2월20일), 버락 오바마(2012년 3월25일) 전 대통령이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측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논쟁은 소모적이다. 문 특보의 기고가 시점상 부적절하긴 했어도 내용상 특별히 문제 삼을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이고, 한·미동맹은 1차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당사국 간 평화협정을 체결해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면 기존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의 재검토는 피할 수 없다. 북한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대북 억지를 위한 동맹과 미군이 과연 필요한지는 충분히 논의해봐야 할 사안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나타날 다양한 안보 현실을 고려해 활발하게 논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신성불가침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보수야당이 문 특보의 개인 발언을 키우는 것은 정치쟁점화하자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주한미군 문제만 나오면 맥락 없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주한미군에 대한 한반도 당사국들의 입장은 대충 드러나 있다. 남·북·미는 주한미군이 어떤 형태로든 동북아의 평화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언론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력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입장도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한다”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과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 않다고 문 대통령이 전한 바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지금은 평화체제·비핵화 논의에 집중해야 할 때다. 때아닌 주한미군 문제가 정쟁화되면서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보수야당이 개인적 발언을 키워 정쟁의 소재로 삼는 것은 구태의연한 행태이다. 문 교수도 학자이기에 앞서 대통령특보라는 신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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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판문점이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리는 싱가포르를 포함해 다양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의집·자유의집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을 통해 북한과도 연락했다”고도 했다. 미국과 북한이 내부 검토를 넘어 문 대통령을 매개로 ‘판문점 개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는 ‘역사의 메카’가 될지 주목된다.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으로 넘어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북·미 양측에 통상적인 정상회담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인 데다 한반도와 세계평화가 걸린 세기의 담판이기 때문이다. 양국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경호나 홍보 등 실무적인 문제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평양과 워싱턴은 일찌감치 후보지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체제에 대한 합법성 부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은 워싱턴에서는 경호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싱가포르나 몽골은 나쁘지 않은 후보지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이다. 

 

판문점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우선 중립적 성격을 띠는 ‘제3의 공간’이기 때문에 북·미 모두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판문점이 갖는 한반도 분단과 화해의 상징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에서 평화체제로의 대전환을 협상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북한군과 유엔사가 관할하기 때문에 경호가 용이하고, 서울과 개성을 베이스캠프 삼아 차량 이동도 편리하다.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생중계가 완벽하게 이뤄진 점은 흥행 효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다. 판문점이 다른 해외 후보지와 달리 회담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장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미 간 사전 협상이 잘돼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정상회담 기간에 석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동행 귀국하는 장면은 판문점에서만 보여줄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개최지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도 매우 밝아진 상황이다. 더 이상 개최 장소 문제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시간도,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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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었지만 동년배 친구들은 이제 당신을 버렸다.”

작가 겸 감독으로 활동하는 중국의 한한이 모바이크 창업자 후웨이웨이에게 독설을 했다. 두 사람은 1982년 동갑이다. 한한의 독설은 중국 최대 외식배달서비스 업체인 메이퇀이 모바이크를 약 4조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한 직후 나왔다.

 

후웨이웨이는 중국 직장인들에겐 꿈이자 희망 같은 존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후 11년간 기자로 일했다. 창업이나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3년 전 모바이크를 창립했다. 자전거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GPS 칩이 내장된 자전거를 특수 제작해 실시간 수요와 동선을 파악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로 업계를 빠르게 장악했다. 자전거 1000대로 시작한 사업은 현재 900만대로 불어났다. 중국을 포함해 15개 국가, 200여개 도시에 진출했다.

 

‘대중창업·만중창신(大衆創業·萬衆創新).’ ‘많은 사람의 무리가 창업하고 창조와 혁신에 임하자’고 나선 중국에서는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창업은 시작도 힘들지만 버티기는 더 힘들고, 성공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모바이크도 올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용자들의 보증금, 금융기관 대출 등으로 부채 규모가 1조원을 넘었다. 여기에 공유 자전거 이용 건수가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고민이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각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누구도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매년 7% 가까운 경제 성장을 하며 무섭게 변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老鋪)가 있다. 상무부가 노포로 공식 인증한 ‘중화노자호’는 1128개에 달한다. 그러나 전통을 유지하는 일도 고난이 따른다. 현재까지도 그럭저럭 잘나가는 노포는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노포의 주인들은 자신의 점포가 상업적인 가치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고 믿는다.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인터넷이라는 도전에 맞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단오절에 먹는 쭝즈는 찹쌀을 삼각형 형태로 대나무 잎에 싸서 찐 중국판 삼각 김밥이다. 저장의 노포인 우팡자이는 쭝즈에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방패 이미지를 넣었다. 휴대전화로 주문부터 결제까지 모두 해결하는 무인 식당도 만들었다. 100년 된 가게라곤 믿기 힘들다. 1931년 탄생한 바이취에링은 ‘중국판 박가분’이다. 할머니들의 화장품으로 치부되던 이 화장품은 지난해 ‘1931’이라는 광고 사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통 치파오를 입은 여인의 그림과 함께 ‘시간을 죽여버린다’는 강한 문구를 넣었다. 오래된 이미지를 정면 돌파하면서 10대, 20대 고객을 끌어들였다. 1887년 개업한 차 전문점 우위타이(吳裕太)는 ‘올드 우(吳)가 젊은 우(吳)’로 변했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변화에 나섰다. 재스민차를 세련된 중국식 한지와 종이 노끈으로 포장해주는 등 노력으로 35세 이하의 고객 비중이 70%를 차지한다.

 

윈난의 차 기업인 다이그룹은 스타벅스 같은 보이차 카페를 만들었다. 북유럽식 인테리어에 편안한 소파와 조명을 설치했다. 주 품목은 보이차지만 티라미수 같은 케이크도 판다. 아이폰에 맥북을 쓰는 신세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일한다. 노포들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한한은 “창업은 벼락부자와 동의어가 아니며 좌절과 실패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아홉 번 죽을 뻔하다 한 번 살아나는 구사일생이 아니라 9999번 죽을 뻔하나 한 번 사는 게 창업이라고도 했다. 겨우 30대 중반에 부동산 수입으로 시간을 보낼 셈이냐고 되묻는다.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 칼 같은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 기업가 정신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명확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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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한달가량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비핵화 구상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좋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주는 발언이자 방법론에서도 북·미 사이에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방식에서는 아직 상당한 간극이 느껴진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리비아 모델을 많이 염두에 두고 있지만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볼턴은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양보하기 전 북한이 핵무기와 핵연료, 미사일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그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완벽한 검증과 완전히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볼턴이 ‘북한은 다르다’고 말한 것은 리비아 모델이 아닌 변형된 방식을 구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2일 (출처:경향신문DB)

 

리비아 모델은 핵폐기-검증-보상조치가 순서대로 이뤄지는 핵폐기 방식을 말한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핵포기 선언을 한 뒤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핵 관련 시설과 장비를 폐기했고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사찰도 받았다. 이후 2006년이 돼서야 미국과 수교하는 등 보상이 주어졌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리비아 모델은 일방적인 핵무장해제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핵폐기는 ‘현찰’로 먼저 지급하고 보상은 ‘어음’으로 받는 격이기 때문에 상당한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는 성사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은 리비아 모델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여왔다.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핵포기를 한 탓에 정권이 무너지고 살해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핵이 없던 리비아와 달리 핵을 보유하고 운반수단인 장거리미사일까지 완성 단계에 도달해 있다. 리비아 모델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단계적 비핵화’와 거리가 크다. 단계적 비핵화는 핵폐기-보상의 단계별 이행계획을 마련한 뒤 이를 단계별로 실천해나가는 방식이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방식을 제시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접촉 과정에서 의제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은 남아 있다. 남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강하고, 미국이 이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담판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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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를 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아침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한다. 남북이 대결 상태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리면서 한반도 대결 구도의 양축인 남북 및 북·미 대결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분단과 전쟁, 적대와 대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남북은 과거 두 번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수많은 회담을 열었지만 대결을 끝내지도, 평화를 일구지도 못했다. 한반도 평화 문제의 핵심인 미국을 제외한 채 남북만의 논의에 그쳐 한계가 뚜렷한 탓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회담을 둘러싼 외적 환경은 긍정적이다. 남북은 김 위원장의 올 신년사를 기점으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회담을 성사시켰다. 한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려는 수요가 큰 것이다. 북측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전격 결정했다. 회담 전망을 밝게 하는 소식이었다. 남측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호응했고, 북측도 같은 조처로 화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측의 선도적 조치를 환영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이 북측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지역으로 내려오는 것은 남북 해빙의 출발을 상징한다. 북핵 문제의 원인 제공자인 김 위원장이 잇단 자발적인 조처들과 함께 안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쪽행을 하는 것은 그만큼 회담이 불러올 화해가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반드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둬야 하는 벼랑 끝 담판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한의 핵개발과 위협으로 조성된 긴장 고조의 최정점에서 시작된 대화의 성과가 미진할 경우 북핵 해결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용기와 결단으로 회담을 성사시킨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결실을 거둘 것으로 믿는다.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는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 발전 3가지다. 세 가지 의제는 서로 맞물려 있어 어느 하나만 개선되는 방식으로는 진척을 볼 수 없다. 서로 촉진하는 선순환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북·미 현안이기도 해 남북 간 논의만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특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핵화의 경우 북·미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이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의 수준을 적정하게 조절할 필요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문 대통령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체제보장과 군사적 위협 해소를 조건으로 비핵화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비핵화 합의 수준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의 논의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최소한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진전된 입장이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각오로 창의적인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핵폐기 방법 및 시한 등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비핵화에 맞춰 진전시켜가야 한다. 핵이 사라졌다고 해도 북·미 사이에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비핵화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핵제조 기술과 인력, 경험이 있으므로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핵 재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등 일부 사안이 국제문제화돼 남북만의 논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그러나 남북 간 독자 합의가 가능한 영역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무장지대 내 남북 초소 철거나 무기 철수 등이 대표적인 사안이다. 남북관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우선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와 군사 분야 등 각급 남북회담 재개 및 정례화에 합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차기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반드시 개최 일정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판문점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이다.

 

이곳에서 정전체제를 마감하는 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상징 이상의 의미가 크다. 남북정상회담이 70년 대결의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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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워싱턴의 최대 화제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직 포르노 배우의 성추문, 그 뒷정리를 하던 트럼프 개인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도 북한 뉴스에 묻혔다. 트럼프가 해고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회고록도 북한 이슈만 없다면 더 팔릴지 모른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미사일을 개발하기 직전이니 북핵 문제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핵 외교전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을 통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 트럼프의 전격적인 정상회담 수락과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김정은 면담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대화모드로 급전환됐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중단, 핵실험장 폐기 카드를 던지며 본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다.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이어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일정도 정해질 것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해석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들이 못 푼 난제를 풀겠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이슈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의 기대감이 급상승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부분 조심스럽다. 특히 워싱턴 싱크탱크 북한 전문가들의 회의론은 일관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선언을 “핵보유국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김정은이 이성적이며 책임감 있는 핵보유국 정상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비핵화는 미국과의 군축 대화로 실현될 수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희망적 관측은 경계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중 누가 받아야 하는지를 벌써부터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전문가라면 이들과 달라야 한다. 평정심, 신중함, 명확한 현실감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전문가적 회의론도 현 시국을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된다. 회의론자들은 북한의 평화공세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핵 개발의 시간을 벌고, 한·미관계도 이간질하려는 의도라고 확신한다. 틀을 벗어난 파격적 현실을 해석하기는 어려운 사고다. 이들은 김정은의 선제적 북·미 정상회담 제안과 트럼프의 전격적 수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들의 분석보다 북·미 간의 협상은 이미 한참 더 나갔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북한과 협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온갖 곳에서 나에게 북한과 협상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우스울 뿐”이라고 비웃을 정도다.

 

논리로 무장한 회의론은 외교의 역할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어느날 갑자기 핵을 폐기하기로 결단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추론은 현실적이다. 다만 김정은은 이제 핵이 아니라 경제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 체제안전 보장 등 미국의 합당한 조치가 있으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북·미의 상호작용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이뤄갈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을 열어둬야 한다. 김정은은 믿을 수 없고, 트럼프는 불안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의 압박 작전, 한국의 중재 외교, 북한의 노림수가 맞물려 관련국들은 이제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입구에 서 있다. 섣부른 희망적 관측은 물론 지나친 회의론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조심스러운 낙관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두고 확률 계산을 하던 몇 달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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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쇄 발표를 전 세계가 환영했지만 자유한국당만 쇼라며 평가절하했다.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핵동결 발표를 마치 핵폐기선언 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쇼를 연상시킵니다. 남북평화쇼를 하고 있는 문 정권은 참으로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아무말대잔치나 독설을 넘어서는 위험수위 발언이다. 상황 왜곡과 악의가 담겨 있다.

 

지금 한반도에는 상상을 불허하는 사변적 사건들이 연이어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이 나왔고, 이를 논의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릴 예정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쇄는 한·미 정상과의 담판 시 협상 카드로 쓸 것으로 예상했는데 회담 전에 선제적으로 양보한 것이 합리적인 상황 판단일 것이다. 국가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니 실천력도 담보됐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비핵화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실패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행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북한과 미국은 비핵화를 위해 지난 4개월여간 일관된 노력을 전개해왔다. 이 같은 노력이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지금 전쟁의 광기에 휘말렸을지 모른다. 벌써 군사 충돌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면서 북한은 5개월째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고, 북·미 간에는 ‘말폭탄’ 대신 평화의 언어가 오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쇼라면 차라리 쇼를 선택하고 싶다.

 

비핵화는 보수에게 위기로 작용할 것이다. 비핵화는 단순한 북핵폐기를 넘어 북한의 정상국가화 즉 외부세계와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국가로의 변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 국가 전략을 전환한 것은 이를 위한 안배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남북 대결구도에 안주해온 한국 보수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이다. 북한 체제는 시대착오이고 모순이기 때문에 그냥 놔둬도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는 케케묵은 대북관 탓이다. 보수가 ‘나쁜’ 북한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호시절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착해진’ 북한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 비핵화 노력을 깎아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실패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것은 입지를 축소하게 될 것이다. 북핵 해결이 아니라 북한 붕괴를 시도하다 북핵 고도화를 방치하고 시간만 낭비한 과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라도 달라져야 한다.

 

비핵화 프로세스의 폭풍은 동북아 질서도 근본적으로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로 인해 북한의 위협이 감소되면 한·미 동맹의 기반은 침식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한·미동맹의 대척점에 서 있던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정치적 입장을 재설정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한반도 정세구도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양상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단초적 현상은 벌써 작동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의지를 북한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확실하다”고 확인해주고, 북한이 핵포기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해명해주는 현실이 그것이다. 조만간 김 위원장이 한·미 정부의 입장을 대신 해명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 못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남·북·미 3국 지도자가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핵화 3각 협의체’라고 부를 만하다. 이는 향후 비핵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남·북·미 동맹’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개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 보수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못 믿을 테고, 문 대통령은 믿기 거북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만은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 한반도의 비핵화 및 평화 체제 바람은 역사가 손짓했을 때 3국의 지도자가 순응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한국 보수는 시대착오적 미망을 버리지 못한 채 역사의 전환점에서 방황하고 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악마화된 북한 관념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가하면 된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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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운명을 가를 회담이 나흘 뒤 시작된다. 세계의 눈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으로 쏠린다. 군사분계선에서 만날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가 10년 만에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음을 상징할 것이다. 세계의 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을 주시할 것이다. 그의 육성은 뒤이은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를 읽을 단서가 된다. 지금 한반도 시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앞질러가고 있다. 굵직한 뉴스가 이어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4월 초 극비리에 방북해 김정은을 만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종전’을 언급했다. 김정은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및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했다. 지난 1주일 동안 있었던 일이다. 남북이, 북·미가 회담장에 마주 앉기 전에 나온 예고편들이다.

 

연쇄 회담을 관통하는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요구에 북한은 답을 내놔야 한다. 미국은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과 관계 정상화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핵개발을 서둘렀다. 65년 한반도 정전체제의 산물이다. 그래서 비핵화,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는 따로 노는 게 아니다. 한 묶음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다. 이를 상대가 먼저 입장을 굽혀야 한다는 선후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각자의 입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폼페이오의 비공개 방북은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었다. 폼페이오가 김정은의 생각을 직접 듣고 트럼프의 생각을 전하면서 핵심 의제를 조율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김정은 탐구’다. 트럼프는 남한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 듣고 김정은의 만남 요청을 전격 수락했지만, 자신을 “늙다리 미치광이”라 부른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웬만큼의 신상정보는 파악하고 있을 게다. 그러나 회담 준비를 총괄하는 최측근 인사가 관찰한 김정은 스타일은 회담 준비에도 유용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로 방북하며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부여받은 세 가지 임무 중 첫 번째가 “김정일 위원장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오시오”였다고 한다.

 

18년 전에도 그랬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무르익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해 10월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냈다. 폼페이오 이전 미국 최고위 당국자의 방북이었다. 기자단 57명을 포함, 210여명의 대규모 방문단이다. 올브라이트의 첫 일정은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3시간 회담을 하고 대집단체조 아리랑을 함께 관람했다. 올브라이트는 방북 후 김정일에 대해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훌륭한 대화 상대이며 실용주의적이고 결단력이 있다”는 인상평을 남겼다. 또 “김정일은 북한의 안보와 경제지원이 보장되면 군사적 양보를 할 준비가 돼 있는,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한 지도자”라고 했다. 올브라이트의 방북 2주 전에 김정일의 대미 특사가 워싱턴으로 갔다. 군부 실력자인 인민군 총정치국장 조명록이다. 10월10일 조명록은 올브라이트와의 회담에선 정장을 입었고 클린턴을 예방할 때는 군복을 입었다. 이튿날 북·미관계의 근본적 개선, 정전협정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전쟁상태 종식을 위한 4자회담 등을 담은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당시 북·미의 상호 특사 방문과 그 결과는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없던 일이 됐다. 클린턴 임기 말 추진된 데다 11월7일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승리하면서다. 공화당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위대한 미국 대통령이 사악한 독재자를 찾아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클린턴의 방북을 반대했다.

 

북한과 미국 모두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서로가 최대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될 것 같지 않다면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만난다고 해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겠다고 한다. 김정은에게 기선을 잡히지 않겠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방북 이후 트럼프가 한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세계적 성공이 되도록 무엇이든지 할 것” 등의 말들을 보면 김정은 면담 보고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정상회담 일정·장소는 아직 미정이다. 이를 포함해 사전에 조율해야 할 것들이 더 남았을 것이다. 이제는 김정은의 특사가 트럼프를 찾아가 ‘예비회담’을 할 필요가 있다. 협상은, 특히 북·미 협상은 신뢰를 쌓는 과정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이 6월 초에 만난다면 아직 한 달 정도 남았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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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으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재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했다. 북한은 동시에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새로운 노선도 채택했다.

 

올 들어 도발을 중지하고 대외 관계개선 의지를 밝힌 북한이 핵과 관련해 취한 첫 구체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다. 청와대는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매우 좋은 뉴스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를 더욱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한다. 북한의 이번 조치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사를 밝힌 뒤 이뤄졌다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언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이고 담대한 조치이다. 조건 없이 핵동결(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전례가 없다. 북한은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했다. 투명성 언급은 향후 사찰을 허용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핵화를 향한 첫 단추인 핵동결이 시작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 폐기도 비핵화에 맞춰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운 대결적인 국가 노선을 벗어나 국제사회와 공존하는 정상국가로 가겠다는 뜻이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년 동안 추진한 핵·경제 병진 노선을 통해 상당한 경제 성장 성과를 거뒀다. 경제발전에 집중하겠다는 이번 선언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대외 개방을 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이라는 형식을 갖춘 점도 주목된다. 객관적으로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게 한 것이다. 북한의 선언과 발표를 기만전술로 치부하는 시각이 나오지만 합당한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의 핵실험 중단 선언이 비핵화 논의에 긍정적 환경을 조성했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담보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핵실험 중단의 명분으로 핵무기의 선제적 불사용과 핵 군축, 비확산을 언급했다. 핵 군축과 비확산은 전형적인 핵보유국의 논리로, 핵무기를 경제적 보상 등을 받고 줄일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핵을 폐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 미래 핵개발은 접었지만 과거 및 현재 핵에 대한 협상과 보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셈이다.

 

북핵 문제의 최종적 타결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대담한 핵폐기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핵폐기와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핵합의 후 실행 단계에서 어긋난 전례를 감안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흘 뒤인 오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주의제로 놓고 논의한다.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미 정상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게 길을 닦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되 비핵화의 개념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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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세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외교 이벤트가 열린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이를 토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온다면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구축, 남북 평화공존의 출발이 될 것이다. 실패하면 전쟁의 위기가 이전보다 짙게 드리워질 수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지금의 갑작스러운 정세변화의 원동력이 북한의 달라진 태도였던 것처럼, 앞으로 전개될 일들의 성패 역시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제재를 피하고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기 위한 시간벌기라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고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6일 정부의 대북 특별사절단에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핵포기와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를 맞바꾸자는 제안이다. 북한의 진정성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단서는 앞으로 벌어질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체제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로 한·미에 무엇을 요구하는지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안전보장 조치에 대해 명시적이고 일관되게 밝힌 적이 없다. 우리에게 낯익은 ‘대북 적대시정책 철폐’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북한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체제안전보장은 평화협정 체결이나 불가침 선언일 수도 있고 북·미 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 철폐,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나 완전 철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는 당사자인 북한도 잘 모른다. 북핵 협상에서 일괄타결식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북한에 딱히 뭐가 필요한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꾸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한·미의 고민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의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라면, 북한의 고민은 체제안전을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것인지가 대화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를 한다면 진지한 협상의 기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우산 철폐나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 등을 들고 나올 경우 한·미는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체제안전을 위한 조치는 외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 붕괴는 주로 정통성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더 크다. 흔히 북한과 비교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나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도 본질은 핵무기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당시 구소련이 남겨놓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는 독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정권이 붕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은 형용모순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하자 러시아가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무력개입했으며 우크라이나가 독립 당시 미·러 등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영토와 안전을 보장받은 ‘부다페스트 협약’이 결국 휴지조각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에 주는 시사점은 독재정권이 민중봉기로 붕괴했다는 점, 확실한 담보가 없는 다자안보조약은 무용지물이므로 견고한 장치의 동북아 다자안보체제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지, 핵포기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붕괴한 것도 나토와 미국의 공습 이전에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민중혁명이 직접 원인이다. 설사 우크라이나와 리비아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내부에서 촉발된 정권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미가 제공할 수 있는 안전보장조치는 북한 체제안전에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체제유지에 필요한 외부환경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북한 통치체제가 지속가능할 리 없다. 오히려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려면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비핵화와 그에 따른 주변 강대국의 안전보장 외에 비현실적이고 기형적인 통치체제와 인권 문제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해 나가는 내부 개혁조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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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최근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핵화 등 핵심 의제를 조율하는 수준까지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역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룰 핵심 의제에 관해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교감하면서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남북한)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질적인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지한 상태이다. 항구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북한이 주변국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에 이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북·미 수교를 하기 위한 법률적·현실적 여건이 마련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지지발언은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 정도의 반대급부는 줄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만 요구해왔을 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협상에 북한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사하고 회담 개최 자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체제보장에 관한 우려를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18일 공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계획 소식이 주목된다. 비핵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발전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실천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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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 새로운 증거가 튀어나오는 이상(異常) 사태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지난 한 달여간이 그렇다. 오죽했으면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의 입에서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올까.

 

상황이 이런데도 발뺌과 책임 전가에 급급한 정권의 모습은 견제장치 없는 ‘아베 1강’의 본질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아베 총리와 그 주변에서 내뱉는 무수한 언어들은 국민들을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정치가 다 그런 거지”라는 정치 허무·혐오에 빠뜨리려는 것 같다. 문제가 없다고 계속 강변하다 보면 어차피 국민들은 곧 잊는 법, 이라고 깔보는 걸까.

 

아베 정권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은 더 있다. 재무성 관료 ‘톱’인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이다.

 

잡지 ‘주간신초’는 지난 12일 후쿠다 차관이 회식 등의 자리에서 재무성 출입 여기자들에게 성희롱을 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후쿠다 차관은 “키스해도 되느냐” “호텔로 가자” 등 노골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심지어 모리토모학원 문제를 질문하는 여기자에게 “가슴 만져도 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주간신초는 13일 성희롱 음성 녹음을 공개했다. 하지만 후쿠다 차관이 16일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아베 정권의 자세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후쿠다 차관에게 긴장감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후쿠다 차관의 간단한 보고만을 바탕으로 구두 주의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 것이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긴장감을 갖고 행동하게 하겠다”고 밝힌 걸로 봐서 아베 총리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베 정권은 ‘모든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주요 과제로 내걸고 있다.

 

이런 자세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경우와 대비된다. 아베 정권은 마에카와 전 차관의 ‘데아이케(만남) 바’ 출입 보도에 호들갑을 떨었다.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등 인신공격까지 반복했다. 그래 놓고선 현역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에는 무르게 대응했다.

 

하긴 스가 관방장관은 가케(加計)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과 관련, 총리 비서관의 ‘총리 사항’ 발언이 적힌 에히메(愛媛)현 면담기록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문서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하지 않는다”고 발을 뺐다. 정권에 불리한 일은 덮거나 피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측은 철저하게 때려 부순다.

 

아베 총리는 잇따르는 불상사에 대해 “고름을 다 짜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름이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권은 고름이 나오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진위가 흐릿해지면 국민들의 관심은 사그라들 것이라는 속내일지도 모른다. 실제 총리 관저에선 “2015년 안보법 통과 때도 야단법석이었지만 얼마 뒤 잠잠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아베 정권이 지금까지 몇 차례 위기를 극복해온 ‘자신감’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분란을 싫어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일본 국민들의 성향, 지리멸렬한 야당 상황 등도 거론된다.

 

그렇다면 지난 14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3만 시민의 외침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아베 정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잇따라 나오는 증거들과 커지는 분노들. 반면 국민의 ‘지긋지긋한 감정’의 허점을 파고드는 정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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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현재의 극적인 상황전개는 지난 사반세기의 데자뷔가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 국면은 북핵 문제 자체부터 해법, 그리고 이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구도까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판’ 자체가 바뀌고 있으며, 따라서 성공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북핵위기의 장기화로 인한 현실의 경로의존성만큼이나, 판단 역시 같은 함정에 빠져있을 경우 절호의 기회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성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첫 번째 근거는 북한의 변화다. 북한은 지난해 말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전략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결과 대화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후 비핵화에 관련된 어떤 협상도 거부해왔는데, 지금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불신구조 속에서 협상의 불리함을 느껴왔다. 즉 한·미 양국의 제재-보상의 가역성에 비해 핵개발 중단-재개는 상대적으로 훨씬 비가역적이므로 불리했지만 이제는 가역성을 확보하였다. 둘째, 생존을 위해 개발한 핵이 최후까지 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얻었다는 측면이 있으나, 동시에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초래함으로써 재차 생존이 위협받는 전형적인 ‘핵보유의 딜레마’를 겪게 되었다. 셋째,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의 성공을 먼저 이룬 후 경제로 간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한데, 집권 이후 일관되게 부유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김정은의 약속과도 연결된다. 이 3가지를 종합하면 북한이 생존을 위해 주변국의 반대와 압박의 천신만고 속에서도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보다, 체제생존을 확신할 만큼의 반대급부가 주어진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더 설득력을 부여한다. 더불어 제재와 압박이 어느 정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 지표로도 북한이 당장 제재로 인해 위기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막다른 골목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미국의 변화인데, 단연 트럼프가 핵심이다. 트럼프야말로 지난 25년간 없었던 변수로서 불예측성의 ‘트럼프 리스크’가 남아있지만 기존 사고와 방법론을 뛰어넘는 파격은 역설적으로 빅딜 가능성을 높인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로서는 안팎으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전세역전을 위해 놓칠 수 없는 비장의 카드다. 한국 특사단이 방미했을 때 전한 북한의 메시지를 전격적으로 받은 이유다. 과거의 점진적 방식을 거부하고 임기 내에 일괄타결방식(one-shot deal)을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숨겨진 동기가 또 있다. 트럼피즘의 저변에 깔린 백인인종주의는 오바마케어, 파리기후변화협약, TPP, FTA, 이란핵협상 등 오바마의 모든 것을 뒤집어 왔는데, 북한 핵 문제는 오바마가 이루지 못한 것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흑인대통령의 극복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가 이전과는 다르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인내와 뚝심으로,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천재일우의 계기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냈다. 진보정부 10년의 시행착오를 통해 실용성과 용의주도함을 배웠고, 보수정부 9년을 통해서 반면교사로 대화와 협상이 유일한 해법임을 절감했다. 또한 북핵 해결에 있어 한·미 공조의 필수성과 북·미 타결의 중요성을 이해하였기에 한·미 입구론→남북 경유론→북·미 출구론의 바람직한 방향을 택하고 있다.

 

남·북·미 핵심 3자 행위자의 변화 이외에도 현 구도의 차이점은 매우 두드러진다. 이전과는 달리 최고위급의 결단에 의한 톱다운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북핵 문제의 성격상 최고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과거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세분화된 단계의 완성이 되면 마지막으로 핵폐기 단계에 진입하는 점진적 방식과는 달리 큰 틀에서 합의한 다음 단계적 이행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종합할 때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말 또는 6월 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는 무엇일까?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다짐과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북·미 회담의 ‘길잡이’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 임기 내 또는 2020년 5월 말(또는 6월 초)까지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확실한 체제보장의 맞교환 완성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후 2년간은 이행의 단계적 과정이 되겠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속도전이 될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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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지난 12년 동안 운영되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SAIS) 내 한·미연구소가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 조치에 따라 다음달 문을 닫는다고 대학 측이 밝혔다. 한·미연구소 논란은 당초 국내 보수언론들이 한국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앞세워 보수성향의 구재회 한·미연구소장을 교체하려 한다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재인 코드에 맞추려 소장 교체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연구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의 문제로 초점이 이동했다.

 

우선 이 연구소가 한국 정부로부터 연간 약 20억원씩 모두 200억여원을 지원받았지만 연구 실적이 미미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연구 실적인 연구보고서가 2015년 이후부터 나오지 않았고, 특별보고서도 2016년 8월 이후 없었다는 것이다. 순수 연구비와 한국학 학자 양성 등 핵심사업에는 예산의 4분의 1도 쓰지 않으면서 인건비가 56%나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 유력 정치인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하거나 한국인들의 미국 방문 시 행사를 주최하는 데 치우쳤다고 하니 공공외교를 강화한다는 당초 목적에 부합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연구소는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한두장짜리 결산보고서만 제출하는 등 무성의하게 대응했다. 지난해에는 국회가 예산 투명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부대의견을 달고서야 지원 예산이 통과됐는데 이마저 거부했다.

 

이런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의 문제는 외면한 채 연구소장 교체만 주목한 언론들의 문제 제기는 도를 지나쳤다. 이들은 대학 측 인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에만 귀기울이면서 ‘문재인 정권판 블랙리스트’라는 말까지 썼다. 한국을 잘 아는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이 문제제기를 했으니 의심은 할 수 있었겠지만 정부 비판을 위해 일부러 사실관계를 도외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세련되지 못한 대응도 아쉽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11일 한·미연구소 측이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논란의 핵심이라고 했지만 이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청와대 행정관의 석연찮은 역할과 국책 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투명한 해외 연구지원과 공공외교 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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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간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하루 다가오지만, 김정은이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체제보장을 해주면 정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까? 하나의 체제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불가침 조약, 평화협정? 
 
우크라이나에서 핵폐기 논의 때 군과 보수파는 러시아 위협을 들어 핵폐기를 반대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미국·영국과 함께 안전보장 각서를 체결했다. 핵이 폐기됐다.

 

그리고 7년여 지난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역사는 조약 협정을 맺고도 전쟁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협정 이상이 요구된다. 항구적인 평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법제도, 정책, 질서의 총체, 즉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체제보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비핵화-체제보장(평화체제)을 위한 협상이 있었지만 김정일은 평화 대신 핵을 선택했다. 김정일의 시각에서 평화체제는 체제보장책이 아니다. 체제불안 촉진책이다. 평화가 북한 내부로 스며들면 비평화체제인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고 김정일은 믿었을 것이다.

 

그때 북한은 ‘우리 체제는 우리가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이 보장해준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게 체제보장의 본질이다. 김정일처럼 자기 통치에 불안감을 느끼면 외부의 체제보장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가 정권 안정을 확신하지 못하면 한·미가 비핵화-체제보장 교환 로드맵을 아무리 정교하게 짠들 소용없다. 협상 국면을 공허한 논리 대결과 제자리를 맴도는 소모적 논쟁의 수렁에 빠뜨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가 김정은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노심초사한 김정일과 달리 자신감에 찬 김정은은 북한을 확 바꿔 놓고 있다. 김정일은 정권 붕괴 걱정에 선군정치를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선군정치 정당화의 근거를 무너뜨렸다.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김일성 유격대 결성일인 1932년 4월25일에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게 1948년 2월8일로 옮긴 것이다.

 

인민군에 덧씌워진 항일 혁명 전통의 계승자라는 신화의 베일을 걷어내서 보통 군대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조치였다. 선군정치의 제도적 장치이자 상징이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다. 선군정치는 껍데기만 남았다. 선군정치의 거품을 뺀 김정은은 지난 9일 당 정치국회의 내용을 하루만에 공개하는 등 정치를 정상화했다. 김정일의 은둔 통치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정책도 다르다. 김정일은 2002년 경제 활력을 위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도입, 안팎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체제안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3년 만에 그만두었고 결국 경제난이 심화됐다. 반면 김정은은 과감한 시장 요소를 도입했고, 경제 상황을 개선시켰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통제·빈곤·부족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북한-은 사실 김정일의 작품이다. 북한에서도 1960년대까지 김일성 시대는 좋은 시절, 1970년 이후 김정일 시대는 나쁜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가히 살부(殺父)의 정신으로 김정일 시대의 나쁜 기억을 지워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빈말로 하던 광폭정치도 그가 실천하고 있다. 북한 내 정권교체와 다를 바 없다. 김정은이 핵 문제에 대해 김정일과 다른 계획을 갖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 근원은 외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 가능성을 지닌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김정일 시대에는 실패했던 비핵화-체제보장이 김정은 시대에는 가능해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트럼프도 체제 변화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의 시간 벌기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아직도 김정은에게서 김정일을 보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의 핵폐기 결단이 임박했다고 예단해서도 안된다. 핵폐기는 북한 내부의 변화로 충분하지 않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카드를 보고 결심할 것이다. 역시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있고, 아버지가 못 이룬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겠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핵폐기는 김정은·트럼프 두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공동작품이다. 우리는 분단 70년 만에 낡은 냉전의 섬에서 탈출해 한반도 평화를 손에 쥘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 우리가 왜 트럼프가 잘하기를 빌지 않겠는가?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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