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원전 25㎞ 떨어진 곳서 치매 아내와 ‘자택 농성’”

ㆍ“국가가 개인 행복 못 지켜준 게 후쿠시마 사고”


사사키 다카시 전 도쿄준신여대 교수(73)는 2011년 3월11일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했을 때 이웃들의 피난 행렬에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원전에서 25㎞ 떨어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구 자택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며 ‘자택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을 벌인 이유는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정부는 ‘옥내 대피지역’으로 지정해놓고는 시내 병원과 노인시설을 30㎞ 권역 밖 시설로 이송했다. 이동 과정에서 의료진, 간병인의 도움 없이 이리저리 내돌려지다 사망한 노인 수만 사고 직후 1주일 동안 40~50명이었다. 정부 조치에 혼란과 불신을 느낀 주민 3만여명 중 80%가 자발적으로 피난을 가서 ‘가혹한 대피소’ 생활을 감수했다.


사사키 교수는 “명백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생각했다” “최선의 선택은 권내에 머무르며 의사나 스태프, 약품과 식료품을 시급히 보급하도록 국가와 현에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인지경이 된 집에서 블로그 ‘모노디아로고스’(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가 만든 말로 ‘독백’을 뜻한다)를 쓰며 “버림받은 마을에서 쌓이고 쌓인 분노와 항의, 탄식의 소리” 등을 토해냈다. 일본에서 주목받은 블로그(http://fuji-teivo.com)는 중국·스페인에 이어 한국에서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돌베개)란 책으로 번역됐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맞아 원전 사고의 비극과 혼란의 현장에서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 사사키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지난 6일 진행했다. 번역은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역자인 형진의 한남대 교양융복합대학 교수가 맡았다.


 

사사키 다카시 교수는 ‘자택농성’을 벌이며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깊게 사유하고 있다. ‘사랑의 보금자리’인 ‘농성장’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수년째 돌보는 그는 “아내 요시코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데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_ 돌베개 제공




▲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 선명하게 드러났다”

블로그에 올린 글 모은 ‘원전의 재앙…’ 한국 출간


- 한국어판 출간 소감은.


“친척 집에 인사드리는 것 같은 긴장과 기쁨을 느낀다. 원전 피해지역에 살면서 과거 조선인, 중국인이 겪은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일본제국에 빼앗긴 들’과 ‘국책 원전 사고로 빼앗긴 들’은 연결된다고 본다. 조선인, 중국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먼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감추거나 흐지부지하는 한, 진정한 화해도 우호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책의 여러 군데에서 ‘국가’를 비판했는데, 계기는.


“어렸을 때, 구만주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황군(일본군)이나 국가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보면서 비판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국민국가(nation)라는 ‘국가(state)’의 형태는 10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저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도호쿠 사람이고, 어쩌면 아이누의 피를 이어받았을 수도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영토분쟁 지역에도 원래 그 근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새 중국·조선·일본 등으로 선이 그어지고, 그곳에 사는 어민들은 그때마다 생활수단을 빼앗기고 혼란을 겪는 것이라고 본다.”


- 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의 ‘내적인 역사’를 언급했는데.


“정치가들의 등장과 전쟁을 역사의 주역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역사라는 큰 바다의 표면에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이다. 그런 파도의 밑바닥에는 서민의 일상이 있다. 어리석은 정치나 국책 때문에 서민의 삶이, 예를 들면 나라 밖으로 내몰린다든지 분단된다든지 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 “원전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성에 관한 문제”라고 책에 썼는데, 부연한다면. 


“먼저 인간·개인이 있고, 국가는 그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의 위탁을 받아 성립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관계성이 언제나 당연한 듯이 뒤집힌다. 원전 문제는 그 본래의 관계성을, 즉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원전 사고 후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정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변질돼버린다. 원전 사고 후에 정치가 얼마만큼 국민과 유리된 것이었는지, 국회 심의 등을 보면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민주주의, 의회정치 등 모든 면에서 금속성의 피로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점으로 돌아가 정치 본연의 자세를 되짚어야 하는데, 여전히 땜질식 정치를 하고 있다.


- 재앙 속에서 사람들 간 연대나 불신의 문제는 어떻게 보나.


“대지진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묶어주면서도 서로의 다름도 실감하게 했다.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과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 확실히 구분됐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 이해관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인간관계, 사회에도 액상화(바닷물이 땅속으로 들어가 단단한 지반이 액체화되는 현상)가 있었다. 인간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이라는 기본 조건을 단순히 머리로만이 아니라 뼛속 깊이 체득해야 한다고 본다.”


- 인간을 불안정하고, 연약한 존재로 내몬 것 중 하나로 투기적 욕망을 꼽았다.


투기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게 국제경제다. 일순간에 육친을 잃어버린 비극 직후에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뉴스가 엔화 폭락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잔혹한 현실, 즉 인간의 불행이 누군가의 투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는 세계경제의 잘못된 현실을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 한국 정부는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추가 원전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탈원전’과는 거리가 있는데.


“한국 상황은 잘 모른다. 일본이 탈원전 노선을 표명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에 조언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에 앞서 탈원전을 선언하는 나라가 돼달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다.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방법이 아직 없는데 그것의 평화이용을 말하는 것은 완전히 언어도단이다.”


-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한국, 일본에서 핵무장론이 나온다.


“일본은 북한에 핵실험 중지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 등 핵보유국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폐기를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다. 핵실험만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 청년들에게 “필요할 때 분노하라”고 강조했다. 


“일본인은 정당하게 화내는 것을 잘못한다고 생각한다. 일렬횡대로 항의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한 태도로 나타내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시리즈 끝>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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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정부, 사고 전제 ‘원자력규제위’ 신설해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한국의 원전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생겼고 원전 추가 건설이 보류됐다. 그러나 원전사고로 인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한국의 원전 정책’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석한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재료물성DB센터장),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전 도쿄대 교수),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가 참석했다.


 

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국내 원전 대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사고는 예측불가 상황서 발생… 한수원 “안전할 것”만 되풀이

안전 자신하며 정보공개 꺼려… 최소한 ‘인재’ 막을 대책 필요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상황은 어떤가.

 

오다 다쿠지= 전체 원전 54기 중 52기가 안점점검을 위해 멈춰 있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발생했다”면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일본 원전 정책은 의외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원자력규제청(NRA)이 신설되는 등 조직은 바뀌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김익중=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가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여론에 따라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현재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과 중국, 인도 정도다. 미국 등 나머지 선진국은 이미 체르노빌 이후부터 원전을 계속 줄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위험한 원전을 계속 정지시키고 있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원전 정책은 얼마나 변화했나. 


김익중= 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월성 1호기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면서 대규모 정전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미 비상전원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정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대형사고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유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해 여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용수=원안위가 할 일은 선제적 안전조치인데 늘 뒷북만 치고 있다. 원전 고장 및 사고, 납품비리 등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또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연구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규제만 하는 게 아니라 규제를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반면 안전기술원은 예산이 없어 한수원의 연구자료를 참고하고 있는 수준이다.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 규제기관에 힘이 실린다.


김익중=국내 원전 규제기관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다. 일본 등 주요 원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 명칭에 ‘규제’가 포함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금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는 한수원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


-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원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김익중=정부와 한수원이 갖고 있는 원전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한수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토론회나 공청회도 마찬가지다.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꺼릴 이유가 없지 않나. 


김용수=시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학계와도 소통을 강화하면 한수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원전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원전의 운영상황을 폐쇄회로(CC)TV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오다 다쿠지=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는 지금의 한국처럼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용수=한수원이나 원안위로서는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정보공개 수준이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원자력안전위, 한수원 대변만… 해외의 규제역할 강조와 대조

전 세계적으로 노후원전 증가… 폐로·해체 당면 과제로 부상


- 원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대비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용수=‘원전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형사고는 기계적 결함과 기술자의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원전 자체의 안전 여부 못지않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과 자세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체르노빌 등 지금껏 발생한 대형 원전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검토해 사고에 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대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오다 다쿠지=원전 기술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안전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원자력 분야는 인기가 많아서 그때 일을 시작한 우수한 인재들이 현재 원전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2년 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원전 안전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익중=세계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현재 103기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한국(23기) 순이다. 이중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을 많이 운영할수록 대형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원전 개수를 줄여야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노후 원전은 폐로(수명이 다한 원전의 원자로를 처분하는 것)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이 지역의 원전 10기 중 30년 이상 운영된 4기에서 사고가 터졌다. 원전 수명연장도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 최근에는 체계적인 폐로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도 창립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수=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낡은 원전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뿐 아니라 안전한 해체까지 생각하게 했다. 


김익중=앞으로는 원전 건설 시장보다 원전 폐로 시장이 훨씬 커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 450기를 언젠가는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폐로 기술을 축적한 국가는 현재 많지 않다. 국내에서 먼저 준비하면 국내 원전 안전은 물론 한국 산업계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다 다쿠지=안전과 폐로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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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민가야.. 2013.08.01 07:10 신고
    원전 사고난 나라(일본)와 인근 황해안에 엄청 신규 건설하고 있는 나라(중국) 틈에 있으면서 자국 영토 내에도 좁은 국토에 수십기가 있으며 여러개가 연명하고 있는 원자로임. 수명을 생각하는 상급 두뇌라면 이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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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민 ‘탈원전 운동’ 수렴 실패 속 정치권은 우향우


일본 지바(千葉)현의 오다키마치(大多喜町)는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반세기 만에 재가동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도쿄전력이 가동을 중단한 뒤 방치돼 있던 시설을 자치단체가 연말까지 보수해 재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마을 하천의 물을 유도관을 통해 끌어들인 뒤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전력은 마을 11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에너지 자립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태양광발전이 각광을 받은 데 이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농업용수로나 하수처리장에 수차를 설치하는 정도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소수력발전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2년간 일본 각지에선 ‘에너지 지산지소’로 불리는 에너지 자립실험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역에서 쓸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움직임은 원전사고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 기성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인 17만여명이 2012년 7월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 ‘안녕 원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최했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아베노믹스·토건 부활·개헌… 약화된 ‘정치 구심’ 되살리기

지자체선 에너지 자립운동… 전력 독점구조 ‘이탈’ 움직임


정치권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2년 전 대지진에 이어 지난해 중국과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안팎에서 위기가 조성되자 정치권은 급격히 보수화 흐름을 보였고, 민주당의 개혁실험은 좌절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강한 일본’을 외치며 재난 이후 약화된 ‘구심력’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일본을 되찾겠다’는 자민당의 총선 슬로건의 속뜻은 50여년의 자민당 장기집권 과정을 통해 구축된 기성질서를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해 ‘원전 마피아’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자민당 내각은 전력회사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의무매입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도 매입가격을 10%가량 낮출 것을 검토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인다.


대담한 금융완화와 공공투자를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 대기업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대규모 건설기업들도 ‘토건주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반면 수입물가 상승은 가계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기업들에 종업원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이곤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베노믹스의 혜택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을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헌법의 개정요건을 완화하는 헌법 96조 개정에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찬성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반면 원전사고 이후 ‘각성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현실정치의 추진력이 되지 못한 채 고립분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정당들이 참패함으로써 구체제의 복귀를 막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자립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고, 원전 2기의 재가동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17만명이 참가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한 시민그룹들이 오는 10일 전국 270곳에서 동시다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일과성 이벤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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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일 진보 학자 아사노 교수


“대학, 언론, 노동조합이 비판기능을 상실한 현재의 일본은 1920년대보다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64·사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미디어학)는 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2년을 맞은 일본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가 거론한 1920년대는 일본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1911~1925)’ 시대를 가리킨다. 아사노 교수는 “당시엔 언론들이 침략전쟁을 반대하기도 했고 진보세력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천황(일왕)제 폐지를 외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집회와 언론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도 비판 주체들이 사회적 의제 설정이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노 교수는 특히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에 대해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원전추진 세력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민주주의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이 원전정책을 폐기했고, 유럽에서 녹색당 등이 선전한 반면 일본에서는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현에서조차 자민당이 압승했다. 


그는 “비판기능이 상실되면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그대로 용인되는 반면 혁신세력들이 주장해온 일본의 ‘비무장 중립론’은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질 정도로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로 아사노 교수는 “일본이 본래 민주주의 성향이 약한 데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단죄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 때문”이라며 “아베 내각이 편협한 내셔널리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형사사건’입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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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후쿠시마 원전엔 아직도 치명적 방사성물질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방사성물질 대량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현재도 시간당 최대 1000만㏃(베크렐)의 방사성물질(세슘 기준)이 새어나오고 있다. ㏃은 방사성물질 측정단위로, 식품의 경우 세슘 허용치는 ㎏당 370㏃이다. 사고로 노심용해(멜트다운)된 핵연료봉은 현재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무너져내린 건물 더미에 부착된 방사성물질이 끊임없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 직원들이 지난 1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4호기 앞에 모여 있다. 도쿄전력은 3·11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앞두고 이날 언론에 원전을 공개했다. 후쿠시마 _ AFP 연합뉴스



▲ 연료봉 회수는 고사하고 오염물질 처리도 힘겨워

연내 원전 재가동 방침도 안전기준 강화로 불투명


도쿄전력은 2050년까지 후쿠시마 원전 폐쇄를 목표로 건물 잔해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4호기에선 오는 11월부터 저장수조에 있는 폐연료봉 회수가 진행된다. 


또 내년부터 2021년까지 원자로 격납용기 보수를 마친 뒤 2021년부터 녹아버린 핵연료봉의 회수와 건물 해체에 나선다.


하지만 노심용해된 연료봉 회수작업은 방사선량이 치명적이어서 현재로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1호기 격납용기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11㏜(시버트)로 노출되면 즉사할 수 있다. 1~3호 건물의 방사선량도 시간당 20~100m㏜(밀리시버트)나 돼 로봇이나 원격조종 크레인을 동원해야 한다. 1~3호기 원자로 내부에는 노심용해된 핵연료봉이 1496개, 1~4호기 저장수조에는 3106개의 폐연료봉이 있다. 1~3호기 원자로의 온도는 17~31도, 4호기 폐연료봉 저장수조는 20도 전후(3월1일 현재)로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루 수백t씩 불어나는 방사성물질 오염수도 골칫거리다. 1~4호기 주변의 오염수는 36만5000t(2월26일 현재)으로, 25m 크기 수영장 480개 분량에 달한다. 도쿄전력은 2015년까지 70만t 분량의 물탱크를 추가 설치하는 한편 내륙 쪽의 지하수가 원전부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우물을 파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안전점검을 거쳐 원전들을 재가동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연내 재가동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선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마련한 새 안전기준을 충족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데다, 활성단층이 속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새 안전기준은 비상시에 대비해 원자로 중앙제어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제2제어실을 마련하고, 원자로 냉각을 위해 방수포를 설치하도록 했다.


비등수형은 격납용기의 압력을 낮출 수 있도록 필터형 배기구(벤트)를 갖춰야 한다. 원전을 지을 수 없는 활성단층의 판단기준은 12만~13만년에서 40만년으로 강화했다. 이런 기준을 연내에 충족할 수 있는 원전은 50기 가운데 5기 안팎에 불과하며,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원자로 폐쇄를 선택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오는 18일까지 각 자치단체들은 원전사고 시 주민 대피를 비롯한 방재계획을 작성해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규제위는 방재계획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치단체에 있는 원전 재가동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교도통신은 “재가동 신청을 하더라도 규제위의 안전심사가 연내 마무리되기 어려운 데다, 현재 가동 중인 간사이전력 오이 3, 4호기가 9월 정기검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하반기에 재차 ‘원전제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3일 보도했다. 결국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의지에도 일본의 원전정책은 서서히 ‘감(減)원전’ 쪽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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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년 만에 다시 찾은 도호쿠… 주민들 상처 치유 안돼


지난해 3월에 이어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와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는 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구가 더뎌 보였다. 


지난달 26일 신칸센 정차역이 있는 이와테현 이치노세키(一關)시에서 렌터카를 몰고 1시간여 만에 도착한 리쿠젠타카타시는 해안에 남아있던 ‘기적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기적의 소나무는 일단 베어진 뒤 방부처리 작업을 거쳐 오는 22일 그 자리에 원상태로 복원될 예정이다. 연안 도심부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사차량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몇 채 남은 건물들을 철거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안 도심부에 유일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다카다마쓰바라(高田松原)’ 휴게소 광장에는 추도시설이 들어섰다. 수백년 된 소나무 7만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던 경승지다. 건물 부근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개의 형상이 건물 철거현장 쪽을 향해 놓여 있었다.


남쪽 해안도로로 30분쯤 달려 도착한 게센누마는 1년 전에 비해 항구 주변이 말끔해졌다. ‘상어박물관’ 앞 공터에 덩그렇게 놓여있던 소형 어선도 치워졌고, 해안 부근의 공공기관 합동청사도 철거됐다. 쓰나미에 떠밀려온 60m 길이의 거대한 ‘제18 교토쿠마루(共德丸)호’에는 조그만 탁자가 마련돼 참배객들을 맞이했다. 게센누마시는 이 선박의 철거 여부를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조만간 결정하기로 했다.


지진과 쓰나미를 피해 대피한 한 일본인 남매가 이시노마키시의 철길에 앉아 있다. (경향DB)


게센누마의 항구 부근에는 가건물로 부흥상가가 지어지는 등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주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거의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교민 이미나씨(45)는 “대지진 이후 치매나 우울증에 걸린 노인들이 크게 늘어났고, 등교를 거부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사히신문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福島) 3개 현의 42개 시·정·촌 단체장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복구와 부흥작업 완료 시기를 6~10년 후로 전망한 응답이 절반을 넘는 22명에 달했다.



리쿠젠타카타(이와테)·게센누마(미야기)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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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 구로다 고키 부정장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을 하루속히 안정화시키는 것이 주민 귀환을 위한 대전제입니다.”


일본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의 구로다 고키(黑田耕喜·60·사진) 부정장(副町長)은 지난달 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순조로운 주민 귀환을 위해 정부가 하루빨리 원전 안정화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3월 말 행정업무가 원상복귀한 뒤 방사성 오염물질 제거(제염) 작업에 가장 공을 들여 방사선량은 많이 떨어졌지만, 주민들의 근본적인 불안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주민 복귀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 제염 작업은 예정대로 잘 진척되고 있는가.


“지난해 초부터 시작해 주민 거주공간 주변, 공공시설, 학교 등은 대략 완료했다. 2011년 말 제염계획을 세울 당시 히로노마치의 방사선량은 0.5~7마이크로시버트(μSv)였는데 0.3~4μSv까지 내리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 기준치인 연간 피폭량 1mSv에 맞추려면 시간당 0.23μSv까지 내려야 하지만 우선은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제염을 하더라도 방사능 수치가 내려가지 않는 곳이 많다.


- 제염을 했는데 왜 수치가 내려가지 않나.


“집에서도 현관이나 실내는 효과가 있지만, 오래된 지붕은 제염을 해도 별 효과가 없다. 콘크리트 재질의 미세한 구멍에 들어가 있는 방사성물질은 (고압살수기로 씻어내도) 잘 제거되지 않는다.”


- 귀환하는 주민이 예상보다 적은 이유는.


“귀환 등록을 한 주민이 737명이지만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일주일 가운데 사나흘은 히로노에서 지내는 주민들도 있어 실질적인 거주인구는 더 많다. 하지만 귀환해도 상점가가 복귀하지 않아 생필품을 사려면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의료인력도 절반밖에 돌아오지 않아 인공투석을 하러 차로 30분 떨어진 이와키까지 가는 이들도 있다.”


- 귀환을 꺼리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인가.


“아무래도 아이들을 둔 육아세대가 많다. 방사선량이 낮아졌다고 해도 아직 후쿠시마 원전이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정부에 가장 요청하고 싶은 것은 뭔가.


“사고 원전을 하루빨리 수습해 안정화하는 것이 주민 귀환의 대전제다. 의료시설 확충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제염사업이나 복구재정 지원도 중간에 흐지부지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히로노마치(후쿠시마)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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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오염 흙 걷어내고 채소 키웠지만, 양심상 내다 팔 자신 없어”


“정부는 돌아와도 좋다고 귀향을 권하지만, 슈퍼마켓도 의사도 제대로 없으니 돌아와봤자 소용없어.”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여㎞ 떨어진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廣野町)의 한 농가에서 만난 고하타 가쓰히로(木幡勝廣·70)는 “왜 귀환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되받았다. 고하타는 차로 30분쯤 떨어진 이와키(磐城)시의 임대주택에 부인과 살면서 1주일에 4~5번씩 히로노의 집에 들른다. 텃밭 일부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 무, 콩 등 채소를 재배해 먹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뒤 새로 흙을 깔고 최대한 신경써 재배했지만 양심상 내다팔 자신은 없다. 쌀농사도 진즉에 그만뒀다. 세슘 허용치가 ㎏당 100베크렐(㏃) 이하면 농산물을 출하해도 된다는 정부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슘이 100㏃ 나오면 안되고 90㏃ 나오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지은 쌀도 안 먹는 판인데 농사를 지을 수 있겠어?


후쿠시마 원전에서 3㎞ 떨어진 후타바마치(雙葉町)의 신축 아파트에 살던 딸네 식구들은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수도권의 사이타마(埼玉)현으로 피난한 이후 발길을 끊었다. 고하타의 집엔 고교 시절 소프트볼 선수였던 딸의 사진과 손자 사진이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딸네 식구가 안 와 섭섭하긴 하지만 이런 곳에 아이를 놔둘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방사능 오염 흙·나뭇가지 수거 지난달 25일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의 한 농가에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인부들이 농가의 밭 표면에서 걷어낸 흙과 나뭇가지들을 수거해 비닐포대에 담고 있다. 히로노마치(후쿠시마) _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 “슈퍼·의사 없어 귀향 꺼려” 첫 귀촌선언 마을 15% 그쳐

곳곳 제염작업… 누락 많아, 정부 목표치의 4배 오염도


■ “슈퍼마켓도 의사도 없어 돌아와도 헛일”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을 맞아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원전 반경 10~30㎞ 권역인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와 가와우치무라 현지를 찾았다. 히로노마치는 원전1호기가 폭발한 다음날인 3월13일 정장(町長·한국의 읍장에 해당)이 전 주민 피난지시를 내렸다. 주민들은 원전 반경 40~60㎞ 떨어진 이와키와 고리야마 등지로 대피했다. 1년이 지난 뒤인 지난해 3월 말 정장이 ‘귀환’ 메시지를 내렸고, 그로부터 또 한 해가 지났지만 귀환한 주민은 737명(2월 현재)으로 전체 주민(5541명)의 13%에 불과하다. 보육원과 초·중학교도 지난해 2학기부터 수업을 재개했지만 학생 수가 569명에서 103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히로노마치에 거주하는 학생은 36명뿐이고 3분의 2는 25㎞ 떨어진 이와키에서 스쿨버스로 통학한다. 의료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도 귀향을 꺼리게 한다. 히로노마치에 치과의사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이날 방문한 히로노마치 일대의 방사선량은 0.2마이크로시버트(μ㏜) 안팎으로 도쿄의 4배 정도 수준이다. 정(町)사무소 입구에 설치된 측정기는 0.08μ㏜를 가리켰다. 2011년 말부터 1년 넘게 ‘제염’으로 불리는 방사능오염물 제거작업을 실시한 결과다. 렌터카를 몰고 돌아본 히로노마치 곳곳에서 방진마스크에 헬멧을 쓴 작업원들이 가로수 부근의 흙을 걷어 검은색 비닐포대에 담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제염작업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가 생활반경 20m 전체에 대해 제염작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빠지는 곳이 적지 않아요.” 


히로노마치 기초의원 하타나카 히로코(畑中大子·63)는 “트랙터가 들어가지 않는 텃밭 등은 업체들이 제염작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하타도 집 마당의 나무를 잘라달라고 요구했지만 미루는 바람에 30만엔(약 350만원)을 들여 벌목했다. 게다가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과가 신통치 않다. 아무리 고압살수기를 동원해도 콘크리트의 미세한 구멍에 들어가 박혀 있는 방사성물질은 걷어낼 수 없다. 고하타의 집 지붕도 제염을 했지만 시간당 방사선량이 정부 목표치(시간당 0.23μ㏜=연간 1밀리시버트(mSv))의 4배인 0.9μ㏜나 돼 지붕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마을 삼림도 제염하겠다고 하더니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하긴 삼림에 쌓인 방사능 오염을 무슨 수로 제거할지 의심스럽기도 하고.”(고하타) 





■ 주민 떠나버린 마을엔 중장비와 대형트럭만 


히로노마치는 일본 정부에 의해 긴급사태 시 피난준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지난해 해제됐다. 700여명의 주민들이 돌아왔다고 하지만, 이곳에 머무른 3시간 남짓 동안 거리에서 마주친 것은 헬멧과 마스크를 쓴 작업원들과 대형 덤프트럭뿐이었다. 제염작업, 방사성폐기물 임시적치장 설치공사 등으로 히로노마치에만 75억엔(약 810억원)의 정부예산이 지원됐고, 이에 따라 3000명에 이르는 공사인력들이 히로노마치 곳곳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부들이 이와키에서 차를 이용해 원전 부근 마을로 출퇴근을 하는 바람에 간선도로가 새벽부터 정체를 이룬다. 히로노마치의 제염사업을 수주한 회사는 일본 굴지의 건설업체. 이 회사는 원전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타나카 의원은 “원전을 지으며 배를 불린 대형 건설업체들이 제염작업도 도맡으면서 이중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바다를 낀 산촌마을로 아름다운 풍광이 일품이던 히로노마치는 사고 이후 살풍경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즐겨 찾던 후타쓰누마 종합공원에는 도쿄전력 하청기업의 사무실이 들어섰다. 공원 부지에는 작업차량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해변 쪽 화력발전소 부근에는 방사성폐기물 적치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전쟁으로 주민들이 떠나버린 마을을 점령군이 장악한 듯한 ‘부흥특수’의 기묘한 풍경이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어떻게든 돌아와 살겠지만 젊은이들은 살 수 있겠어? 나도 언젠가는 돌아와 살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 고하타의 이마에 팬 주름이 더 깊어졌다.




■ ‘부흥의 선두지역’조차 주민 귀환은 15%에 불과 


히로노마치에서 내륙으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가와우치무라(川內村)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전 반경 10~30㎞ 권역이지만 방사선량이 비교적 낮아 피난준비구역 중에서 가장 먼저 ‘귀촌선언’을 한 마을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부흥의 선두지역’이라고 치켜올리기도 했지만 3800명의 주민들 가운데 지난달까지 422명(15%)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나마 가와우치무라는 도쿄, 오사카 등에서 4개의 기업이 진출하면서 일자리도 생겼고, 지난 1월26일에는 독일 기업이 이곳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이용한 채소공장도 4월부터 가동해 오염걱정 없는 신선채소도 공급된다. 주민 거주 공간의 방사선량도 정부의 목표치인 시간당 0.23μ㏜를 거의 달성했다. 촌사무소에서 만난 요코다 마사요시(橫田正義·51) 제염계장은 “피난지에서 취업을 하며 정착한 이들도 적지 않다”며 “완전한 귀환은 아니지만 피난지와 이곳을 오가며 생활하는 이들을 합하면 1000명쯤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NHK방송이 이곳 엔도 유코(遠藤雄幸) 촌장의 귀촌분투기를 방영할 정도로 주목받은 마을이지만, 방사능오염폐기물 임시적치장을 확보하지 못해 비닐포대들이 밭이나 민가 주변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 인적 끊긴 원전 주변 지역…‘소와 충돌 주의’ 입간판


후쿠시마에서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한계선은 히로노마치 정(町)사무소 부근이었다. 이곳 이북지역은 식당, 휴게소, 펜션 등이 모두 문을 굳게 닫았고,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오는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만이 눈에 띌 뿐 주민은 그림자도 찾기 어렵다. 원전 반경 16㎞ 나라하(楢葉) 마을 부근의 휴게소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방사선량을 재자 0.4~5μ㏜로 뛰었다. 원전사고 직후 나라하 마을주민의 임시 대피시설로 쓰였던 국도변 휴게소에는 ‘소와 충돌, 감속’이라는 경고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이 돌보지 않아 야생화된 소들이 먹이를 찾아 도로변 쪽으로 출몰하면서 통행차량과 부딪치는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원전 반경 12㎞ 도미오카(富岡)의 경찰통제선 부근의 폐쇄된 편의점 주변엔 철제 재떨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었었고, 인적 끊긴 주유소에는 지진으로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잡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히로노마치·가와우치무라(후쿠시마)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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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너지산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경제산업상은 지난 1월26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여름 전국 원자력발전소가 전혀 가동이 안되더라도 지난해처럼 절전을 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 원전에 비판적인 에다노 장관의 말은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최근 다시 입장을 바꿨다. “주민동의가 필요하다”는 전제는 변함이 없지만 일부 재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바꾼 것이다. 그의 말바꿈은 원전정책의 향방을 둘러싸고 일본 정치권 내부에서 진통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버금가는 대재난을 겪었음에도 일본 정부는 원전정책에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 여론은 70% 이상이 원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과 산업계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원전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긴 했지만 ‘원전 기득권층’의 압력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다음달이면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 6호기(니가타현)와 도마리(泊) 원전 3호기(홋카이도) 2기의 가동 중단으로 일본 원전 54기 전체가 멈춘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처음으로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멈춘 간사이(關西)전력 산하 후쿠이(福井)현 오이(大飯) 원전 3호기와 4호기에 대해 재가동 수순에 착수할 계획이다. 하지만 안전평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각 원전은 긴급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원 상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한 비상전원 차를 확보하지 못한 원전이 상당수다. 쓰나미에 대비해 방파제를 더 높이 쌓는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앞으로도 2년 이상 걸린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전국 원전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비상사태 시 수소폭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무리한 원전은 한 곳도 없었다. 방파제 보강공사도 연내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은 3곳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대참사를 막을 정도로 안전성을 확보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伴英宰)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인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동일 규모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면 시기상조”라고 마이니치신문을 통해 지적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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