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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0.06.06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2) 최영진 유엔특별대표 인터뷰 (1)
  2. 2010.06.01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1) 우리 안의 아프리카
  3. 2010.05.26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0) 무지개나라 남아공의 내일은
  4. 2010.05.25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9) 세계와 접속하는 대륙
  5. 2010.05.18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8)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
  6. 2010.05.17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7) 민주화로의 갈림길
  7. 2010.05.17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6) 검은 대륙을 떠도는 사람들
  8. 2010.05.11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5) 아프리카는 거대한 슬럼
  9. 2010.05.05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4) 석유와 카카오
  10. 2010.05.04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3) 독립 50년, '성찰의 시기'
  11. 2010.05.02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2) 성장과 혼란의 도시들
  12. 2010.04.27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1) 희망에 들뜬 아프리카
  13. 2008.09.21 (7) “공동체 삶을 위한 소비… 내가 변화의 주체”
  14. 2008.09.08 (6)-2 ‘착한 소비자’가 되려면
  15. 2008.09.08 (6)-1 참소비 풀뿌리 ‘생협’ 확산
  16. 2008.08.24 (5)-2 “소비자 아닌 인간 중심의 가치 추구” (1)
  17. 2008.08.24 (5)-1 ‘지역소비’의 유토피아 英 토트네스
  18. 2008.08.18 (4)-2 “원가 부담되지만 지역 농산물 고수”
  19. 2008.08.18 (4)-1 일본의 착한 식생활 '푸드 마일리지'
  20. 2008.08.11 (3)-2 “윤리적 소비는 관심·선택의 기준 있어야” (1)
지난 4월 초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의 유엔평화유지사령부(ONUCI)를 찾았다. 이 나라에서는 2002년 남북 간 분쟁이 일어나 유엔 평화유지군 1만명이 파병돼 있다. 반군의 무장해제와 차기 정부를 뽑는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비롯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호·재건사업을 관리하는 것이 모두 ONUCI의 일이다.
ONUCI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는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명에 따라 ONUCI를 맡고 있는 최영진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만났다. 오랜 외교관 경험과 아프리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대표는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글로벌 이슈들을 마주해야 한다며 한국에 ‘계몽된 국익(enlightened national interest)’의 관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최대표는 “코트디부아르의 분쟁도 글로벌화와 연관돼 있다”는 말로 현지 상황을 소개했다. 이 나라는 1960년 독립 이래로 경제가 괜찮은 편이었다. 사헬(사하라 이남 건조지대)에 위치한 말리나 부르키나파소와 달리 농업 조건이 좋아 언제나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1800만 인구 중 600만명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세계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식민시대부터 이어져온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존하다보니 곡물가 하락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 경제가 좋을 때는 이주민들을 데려다 농사일을 시켰는데 카카오, 커피값이 떨어지니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서아프리카 내분에도 '글로벌한' 배경이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주자들, 그리고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북부인들이 정부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을 했던 초대 대통령이 죽은 뒤 정정불안이 가시화됐다. 2002년 대선에서 로랑 바그보 현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북부 주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무장하고 나서 일종의 내전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유혈충돌은 끝났지만 아직 정부가 약속한 대선을 치르지 않아 갈등이 남아있다. 최대표는 “먼저 갈라진 남과북을 합치는 작업을 할 것인가, 일단 대선을 치른 뒤 화합작업을 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한국의 해방정국을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에서 한국이 겪어온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분단 요소가 있는 나라에 선거만 도입하는 것은 큰 분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도가 곧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교육과 문화의 바탕이 없는 ‘선거 민주주의’는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실제 중부아프리카의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서아프리카의 내전지역이었던 라이베리아는 유엔 관리 하에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그 이후’가 없었다. 민주선거가 좋은 가버넌스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재정이 없는 라이베리아에 유엔이 지원을 해줘 군인 2000명과 경찰 4000명을 양성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월급을 줄 예산이 없다. 콩고민주공화국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내전을 끝내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군대를 키웠다. 하지만 역시 그들을 먹여살릴 정부 재정이 없다. 외부지원금은 부패 때문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결과는 악순환이다. 월급을 받지 못한 군인들은 반군처럼 변질돼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개발' 동아시아 모델엔 신중론

개발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권위주의적 개발과정을 모델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최대표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특수한 과정이었다.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의 경험을 ‘이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또한 권위주의적 개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과정이다. 그는 “한국은 권위주의적 개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면서 “이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권위주의적 개발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발전모델이 아프리카에서 성공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한 국민 계몽, 좋은 가버넌스를 위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ONUCI는 교육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주요 활동은 무장해제를 점검하고 치안 순찰을 하는 것 뿐 아니라 교육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방 교육시설 확충에 유엔군을 보내자 주민들이 유엔군에 훨씬 호의적으로 변했다.
준비 안된 선거민주주의보다 장기적인 교육·개발을 중시하는 최대표의 생각은 서방 원조공여국들로부터 ‘민주주의를 도외시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최대표는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말해주면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돈을 내주는 서방 원조공여국들과는 생각의 격차가 있다. 이 갭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동아시아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계몽된 국익'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그는 한국 같은 나라들이 개발과 원조 사이의 갭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본은 기회를 놓쳤다. 서양식 모델에 따라 돈만 냈다. 교육과 문화에 투자,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개발을 도와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최대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시각과, 개발이나 경제안정·통합을 우선 필요로 하는 후진국의 시각을 동시에 갖는 것은 힘든 일”이라면서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바뀐,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대표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다르고 역사도 다른 곳에서 자기를 키울 수 있다”면서 “서양만 보지 말고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라”고 주문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우리가 많이 뒤쳐져 있었기에 선진국들을 쳐다보며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덜 발전한 쪽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극히 부족하다. 평화유지군 7200명과 경찰병력 1200명, 민간 지원인력 등 1만명이 유엔 깃발 아래 ONUCI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등 남아시아 파견인력과 아프리카 주변국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은 최대표 외에 일본인 2명과 한국 군인 2명, 중국인 8명이 전부다. 그나마 중국은 평화유지군 파병 2년만에 전세계에 보낸 병력 규모가 2000명으로 벌써 한국을 넘어섰다.
이라크전 파병 과정에서 ‘석유 많은 나라에 군대를 보내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판친 것이 사실이다. 최대표는 “우리가 당장 어떤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범 세계적인 문제에 국제사회의 일환으로 대처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인 국익, 미래를 내다보는 그것이 ‘계몽된 국익’이다”라고 강조했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그들과 함께 섞일때 희망 있어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활동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 이충성씨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몰려와 ‘니하, 니하’라고 인사한다”고 전했다. ‘니하’는 중국어 인사 ‘니하오’의 르완다식 발음이다. 키갈리에서 진행중인 대규모 공사는 대부분 중국 자본이 투자된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최근 가입한 산유국 앙골라와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최근 한국 중소기업과 개인사업가들의 진출이 늘고는 있지만 장기적,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우스터에 사는 교민 김종우씨는 “한국의 이미지가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좋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비록 장삿속일지언정 중국은 장기적 안목에서 아프리카를 지원하고 투자를 한다. 반면 한국은 ‘아프리카를 알아야 한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거대한 시장’이라고 요란스레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투자를 하지않는다.” 지난 4월 나이지리아 라고스 코트라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곽희윤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면서 “러시아, 브라질, 인도도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우리는 정부·기업 차원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생각도, 장기적으로 지원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호기구 피스프렌드의 황학주 대표는 한국인들이 당장의 이익만 바라볼 뿐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케냐·탄자니아의 마사이족은 멀리까지 땔감을 구하러 다니면서도 가까이 있는 나무 뿌리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다 잡아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과 지혜로 안다. 그래서 마사이족 거주지역은 지금까지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이 지은 나이로비의 호텔에는 야생동물 뷔페식당이 있다”. 황 대표는 그것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한국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각성된 젊은이들 중에는 한국을 싫어하는 이들이 벌써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특정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가난한 환경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현지에 나와 살고있는 교민들이 현지 문화를 인정치 않고 교류를 거부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고 조심스레 지적했다. 현지인들을 막연하게 범죄자 취급하는가 하면, 집안일을 돕는 현지 주민을 구타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한 교민은 그곳에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허름한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일부 남아공 교민들은 흑백 분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에서 ‘백인문화’만을 선호하고 유색인 공동체와 거리를 두곤 한다.
강영수 코트라 요하네스버그 센터장은 “한국인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생활방식, 문화체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 센터장은 “2년전 요하네스버그로 발령받았을 때 두려운 마음에 인터넷 검색부터 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곳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르완다 ‘지구촌나눔운동’의 김윤정 간사는 “쩍쩍 갈라진 땅, 흙집, 원주민들만을 생각하다가 이 곳에 와서 미약하게나마 도시가 발달한 것을 보고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키갈리·라고스·아비장·요하네스버그|구정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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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아프리카 거리’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 지난 3월 이 곳의 한 아프리카 식당을 찾았다. 한국에서 먹기 힘든 플랜틴(바나나튀김)과 병아리콩 스튜를 팔고, 위성TV로 나이지리아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식당 안에서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우르르 몰려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종업원들도, 손님들도 모두 나이지리아인이다.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한국인’이 찾아왔다는 것에 오히려 그들이 호기심을 느끼며 신기해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지난 24일 이 곳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취재진임을 밝히자 종업원들과 손님들, 길 밖에 모여 떠들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의 태도가 갑자기 싸늘하게 바뀌었다. 메뉴를 가져다주었던 여성 종업원은 부엌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젊은 남성도 “직원이 아니다”라면서 취재진을 몰아내려했다. 어렵사리 한국인 식당 주인과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주인은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우리 식당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말만 했다.

식당 윗골목에 있는 레게 미용실. 아프리카인들은 곱슬머리를 그대로 두면 피부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짧게 밀거나 펴서 고정을 해야한다. 그들을 위해 서울 안에도 그들만의 미용실이 생겼다. 미용실 안에서는 아프리카인 여성 미용사가 손님들의 머리를 말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들어가자 겁을 먹은 듯했다. 그 곳에 있던 남성은 “보스(사장)에게 물어라,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서 입을 닫았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의 ‘아프리카 거리’.
이곳에는 아프리카인들이 자주 찾는 식당과 미용실 등이 모여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한달여 전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농촌을 찾았을 때, 현지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를 붙들고 “우리 딸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한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느냐”고들 물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난 꿈의 나라’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난 얼마 안 되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인들이 ‘도망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비치는 듯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그들에게 닫혀있는 나라,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한달 동안 행정안전부가 전국에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2009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조사 결과’라는 보고서를 냈다. 불법·합법 체류자를 가리지 않고 각 지자체 안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과 귀화자, 외국인 자녀 숫자를 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내 외국인 수는 총 110만6884명이었다. 그 중 절반이 중국인(조선족 포함)이었고, 그 나머지도 아시아인이 대부분이었다. 아프리카인의 숫자는 따로 나와있지 않았다.
한 금융회사가 국내 외국인 중 고소득 전문인력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만든 외국인 현황 자료에는 나이지리아인 794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인 225명이 통계에 잡혔다. 그러나 이태원에서 아프리카 식당을 운영하면서 무역회사 일도 겸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사업가에게 “나이지리아인이 얼마나 들어와있느냐”고 물었더니 “2000명,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올 1월 조사한 ‘장단기 체류 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아프리카인은 7191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주민 숫자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불법체류자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 출신들에게는 단순노동비자(E-9)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는 “한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예외가 있다면 남아공 출신의 백인 영어강사들이다. 남아공은 1994년 흑인정권이 출범한 뒤 흑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흑인경제력육성(BEE)’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과거 기득권을 누리던 백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우르르 유럽, 아시아 등지로 떠났다. 영어교육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한국도 그들의 ‘시장’ 중 하나였다. 한국 내 남아공인들이 인터넷 사이트 ‘페이스북’에 만든 클럽에는 800명이 가입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른바 ‘영어 네이티브 국가’ 출신들을 영어강사로 받아들이면서도 남아공을 제외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영어권 국가’ 출신들은 받지 않는다. 이 또한 ‘한국식 인종차별’의 한 모습이다.

한국에 와있는 남아공 출신들은 아프리카인으로서 한국을 어떻게 느낄까. 2006년부터 서울에 살면서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H씨가 지난해 겪은 일이다. 국내의 한 유명 일간지에서 H씨가 일하던 대학의 여름방학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취재하러 학교를 방문했다. H씨의 수업을 참관하고 인터뷰를 해 갔는데, 며칠 뒤 발행된 이 신문 기사에는 “금발에 푸른 눈의 미국인 강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고 쓰여있었다. H씨는 갈색 머리의 남아공 여성이다. 그는 “남아공 강사에게 대학생들이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한국의 언론은 받아들일 수 없었나보다”면서 씁쓸해했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이 받는 차별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 뻔하다.

구호기구 ‘피스프렌드’의 황학주 대표는 1992년부터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에서 구호활동을 해왔다. 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아프리카는 검고, 비가 안 오고, 못 살고, 그래서 열등하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 사람들에겐 그들 나름의 완전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보다 못한 것도 있고 뛰어난 것도 있다는 점을 보지 않는다.”
심지어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도우려 하는 사람들조차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경우가 많다고 황 대표는 지적했다.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을 그들과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돕는다’고들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역설적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본다. 한국에 아프리카인들이 적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구상의 가난한 이들이 가고파 하는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은 주요20개국(G20)에 끼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큰 그늘을 가진 큰 나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적은 수의 아프리카인들이라도 이태원 같은 곳에 한데 모여서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라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과 거리를 두고, 번번이 눈칫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태원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교회와 식당과 가게와 미용실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거리가 있는 이태원1동과 한남동, 보광동 주변조차도 ‘뉴타운’ 건립계획에 따라 2017년까지는 모두 허물어질 예정이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르완다 <암소은행> 방문기


“우리는 보통 아프리카가 전쟁 때문에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가난 때문에 전쟁이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난과 전쟁의 악순환을 끊어야 해요.”
지난 4월말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만난 비정부기구(NGO) 지구촌나눔운동의 지성혜 간사는 ‘암소은행’ 사업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성적인 빈곤을 끝내지 않으면 국가·종족 간의 분쟁이 생겨 생활기반과 생산시설이 파괴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지난해 르완다에서 암소은행 사업을 시작했다. 키갈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최빈곤 지역’ 냐루바카 섹터 주민들에게 암소 구입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르완다 정부의 ‘집집마다 암소 한 마리 키우기 캠페인’과 뜻이 맞아서 사업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고질적 영양실조를 몰아내려면 우유와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암소를 보급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암소는 ‘그림의 떡’이었다. 우량 암소 한 마리의 분양가는 한화 약 80만원이지만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에 불과하다.
몽골, 베트남에서 이미 가축은행 사업으로 성과를 거둔 지구촌나눔운동은 르완다 정부와 접촉해 암소은행 사업을 구체화했다. 영양실조 추방 외에 ‘소득증대’라는 목표가 추가됐다. 하루 평균 10리터 정도 생산되는 우유가 중요한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기금 마련을 위해 삼성의 후원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수혜자 12명을 선정해 암소 구입비를 전달했다. 수혜자는 암소를 키울 수 있는 능력과 대출금을 상환하겠다는 자립 의지를 평가해 선정했다. 돈만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축산 세미나와 암소 건강상태 관리 등 후속 서비스가 계속 이어진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암소은행 사업을 르완다 곳곳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아프리카를 돕는 한국인들의 손길이 더디지만 늘어가고 있다.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말리와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에 총 17억1500여만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유·무상 원조를 합한 우리 정부의 아프리카 지원 규모는 지난해 1억100만달러를 기록했다. 또 해외로 나가는 모든 여행객이 최빈 개도국을 돕는 데 동참하게 되는 ‘국제빈곤퇴치기여금’도 도입됐다. 국제선 항공권 1장을 구입할 때마다 1000원씩 적립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NGO 활동가들은 “아직 멀었다”고 입을 모은다. 지성혜 간사는 “우리 인식의 틀이 한반도에 국한돼야 할 이유가 없다”며 “시민의식에 기반해 아프리카인들과 나눌 때 우리도 그 속에서 같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키갈리|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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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월드컵 개최를 앞둔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 곳곳에 붙어 있는 문구다. 남아공 월드컵을 바라보는 해외의 우려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지난달 요하네스버그 북부 샌턴 신시가지에 들어서자 힐튼호텔 등 고급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대형쇼핑몰 4곳이 구름다리를 통해 연결된 ‘샌턴시티’ 쇼핑가도 외국인들을 유혹했다. 치안도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샌턴을 벗어나면 요하네스버그는 ‘다른 세상’이다. 1994년 백인정권 붕괴 이전까지 번영을 구가했던 옛 도심지역은 이후 발전을 멈췄다. 건물은 70~80년대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인들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다니는 것을 꺼린다. 흑인 권력이 들어선 후 백인들이 샌턴 지역으로 주거 및 상업 기반을 옮겨가면서 나타난 변화다. 흑인, 백인, 혼혈, 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산다고 해서 ‘무지개 나라’로 불리는 남아공의 현주소다.




요하네스버그 대학 캠퍼스에서 지난달 15일 흑인과 백인 학생들이 각각 따로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 이청솔 기자



남아공의 새로운 도전

남아공은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94년 이후 남아공 경제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사라진 데다 흑인 노동력이 경제 시스템 안으로 편입된 효과였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남아공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공 사회는 악명 높은 치안 불안, 빈부격차, 고급두뇌 유출, 에이즈, 전력난 등 각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월드컵을 ‘대반전’의 계기로 삼을 작정이지만 토지개혁이라는 ‘뇌관’이 남아 있어 사회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고급주택들은 대부분 높은 담장을 세워놓고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설치해 ‘자체 방어’하고 있다. 그렇게 해놓아도 잠시 대문이 열린 틈에 강도가 들어와 집안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치안이 나쁘다고 교민 박대범씨는 전했다.
강영수 코트라 요하네스버그 센터장도 “남아공의 치안상황은 외국인들의 투자를 막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치안불안은 94년 백인정권 붕괴 이후 주요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폭압적 백인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적으로 집권한 정부들은 예전만큼의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흑인 거주지역인 타운십에 주로 존재하던 범죄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케이프타운대학 사회학과 멜리사 스테인 교수는 이를 ‘범죄의 민주화’라고 부르고 있다.

경제적 불안은 치안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고용불안으로 잠재적 범죄자들이 양산됐다. 94년 20%였던 실업률은 현재 2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2003년 한때 31%까지 치솟기도 했다. 특히 백인 실업률은 4%에 머무는 반면 흑인 가운데는 약 40%가 실업자다.





전력난도 남아공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8년 초에는 예상치 못했던 정전 사태가 계속 이어져 전력할당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흑인들이 정권을 잡은 후 공공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데 대해 집권세력은 “백인정권 당시 교육 기회에서 철저히 소외됐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교육과정 자체가 달라 흑인들은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학 과목을 배우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흑인들은 인종 비율에 따라 공무원을 선발하는 정책에 힘입어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거 진출할 수 있었다.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실력으로만 경쟁을 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민간 부문의 경제력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는 ‘흑인경제력육성(BEE·Black Economic Empowerment)’ 프로그램이 있다. BEE는 흑인 기업과 사업가에 대한 전반적인 우대와 특혜 조치인데 이에 힘입어 흑인 중산층이 탄생했다.

그러나 BEE로 인해 유능한 백인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자 ‘두뇌 유출’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죗값을 치르기 싫다”며 외국행을 택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대학에서 만난 백인 학생 에밀(금융관리학과 3학년)은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면서 “BEE는 분명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BEE가 흑인 부호들이라는 또 다른 특권층만 만들었을 뿐 실제 빈곤층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코트라 강 센터장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BEE가 필요하다는 데는 남아공 재계도 동의한다”며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남아공 사회가 현재 겪는 여러 문제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후유증이다. 흑백 간 경제력 격차가 극복되지 않으면서 사회갈등도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양상이다. 도시를 벗어나면 여전히 백인들이 대토지를 소유하고 흑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농장을 경영하는 등 아파르트헤이트 이전의 경제 구조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토지개혁 이슈가 남아공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부는 2014년까지 농지의 30%를 흑인들에게 재분배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았다. 백인들이 이 방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토지개혁은 물밑에 잠재해 있던 흑백갈등을 노출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요하네스버그 샌턴 지역의 부유층 주택에 강도 침입을 막기 위한 고압 전기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남아공에서 엿본 희망

그래도 요하네스버그대학에선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젊은층은 어떻게든 과거의 갈등을 씻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무지개 나라답게 캠퍼스에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캠퍼스에서 서로 다른 인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4%가 “하루에 한 차례도 다른 인종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라온 환경과 문화적 배경이 달라 다른 인종과 어울리기가 쉽지는 않다”면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노력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20대 초반인 이들은 16년 전 무너진 아파르트헤이트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다. 공학을 전공하는 흑인 학생 카라보는 “집에서는 여전히 부모가 백인들을 욕하는 것을 듣지만 나는 백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웨스턴케이프주 우스터에 사는 백인 포도농장주 에바(72)도 “과거의 잘못은 우리 세대의 일”이라며 “젊은이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남아공이 큰 혼란 없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흑인정권을 안착시킨 데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공로가 컸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로, 27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흑백 모두에게 인정받는 리더십으로 사회통합을 가능케 했다. 92세의 고령인 만델라 이후 남아공인들을 하나로 묶어줄 정신적 지도자는 없다. 실제 2007년 만델라 사망설이 나돌자 “이제 백인들이 학살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전국이 들썩이기도 했다. 남아공은 만델라 없이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우스터 | 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에이즈로 남아공서만 연 35만명 사망


지난달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웨스턴케이프주 드두어런스의 한 에이즈 아동 유치원을 찾았다. 해맑은 표정으로 아침식사를 하던 아이들 40여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몸속에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교육과 건강 관리를 담당하는 이 유치원은 노르웨이 비정부기구가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드두어런스의 한 에이즈 아동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지난달 22일 교사의 도움을 받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에이즈는 남아공인들의 삶을 위협하는 질병이다. 2007년 현재 남아공 인구 4900여만명 가운데 570만명이 HIV에 감염돼 있다. 연간 에이즈 사망자는 35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노동가능 연령층의 4분의 1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는 사람은 전체의 28%에 불과하다.

에이즈로 신음하는 건 남아공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이 에이즈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겪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HIV 감염자가 무려 2450만명이다. 선진국의 경우 감염자들이 건강관리를 받아 에이즈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지만, 아프리카는 ‘언제 죽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남아공은 에이즈 확산 방지에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다. 90년대 초 에이즈가 한참 퍼질 당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콘돔 사용 캠페인에 대해서 일부 흑인들은 “흑인 인구를 줄이기 위한 백인들의 음모”라고 의심했다. 2000년대 타보 음베키 정권은 “에이즈는 흑인, 라틴계 등을 없애기 위한 음모의 일환으로 꾸며낸 것”이라는 주장으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국민들은 에이즈에 무지했고 사망자는 계속 늘어갔다. 이제 정부가 ‘에이즈 5개년 계획’을 세워 에이즈와의 싸움을 시작했지만 NGO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에이즈를 너무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우간다와 세네갈은 아프리카가 에이즈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80년대 자국민 상당수가 HIV에 감염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위험한 성행위를 경고하는 홍보 포스터를 도로에 내걸었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성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92년에서 2002년 사이 임신부의 HIV 감염률은 30%에서 5%로 떨어졌다. 세네갈은 아예 처음부터 에이즈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 경우다. 콘돔 사용과 검사 실시를 권장해 HIV 감염률이 10년 이상 2% 미만을 유지하고 있다.


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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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는 살아있었다. 지난달 초 바닷가 마리나 로드에서 바라본 아파파 항구. 거대한 선박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항구를 에워싼 거대한 석유탱크엔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TOTAL)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하니웰 제분공장의 밀가루 사일로들도 보였다. 울타리 너머로 어마어마한 양의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고, 입구에는 컨테이너 차량과 레미콘과 탱크로리들이 줄을 이어 정체가 극심했다.
서아프리카의 경제 동맥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과 함께 아프리카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아파파의 모습이었다. 짐을 내린 뒤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 차량들 밑에선 하역노동자들이 차체를 그늘삼아 쉬고 있었다. 또 다른 항구인 틴캔 아일랜드로 이어지는 길에는 세븐업 음료공장과 설탕 정제공장 등이 보였다.




라고스의 아파파 항구



흙바닥 ‘컴퓨터 빌리지’

아파파에서 조금 떨어진 이케자 지역.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인터넷 카페’ 간판이 보였다. 젊은이들에게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최대 인기 품목이다. 이케자 안쪽에는 ‘오군비이 커뮤니티’라는 시장이 있다. 라고스 사람들이 ‘컴퓨터 빌리지’라 부르는 이 곳은 일종의 전자상가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엔 자갈과 쓰레기가 한데 뒹굴고, 휴대전화 액세서리와 컴퓨터 부품 따위를 파는 노점상들과 구경 나온 시민들이 북적였다. 길 양옆 상가들은 전자제품 광고로 뒤덮여 있었다. 512mb 중고컴퓨터와 삼성·LG·파나소닉 모니터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손님을 기다렸다.
제법 그럴싸한 외양을 갖춘 휴대전화 상점에 들어갔다. 삼성이나 LG 휴대전화는 3000나이라(2만4000원)에서부터 5만3000나이라(42만4000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했다. 노키아가 워낙 저가공세를 펼치는 탓에, 컴퓨터와 달리 휴대전화는 중고물품이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고 한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가게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거리에는 구글 SMS 서비스가 시작된다는 광고판이 늘어서있었다.

남아공과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몇몇 나라들은 경제력이나 자원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원 요소가 지배적이다보니 원자재 가격이 곧 이들 나라의 경제를 결정한다. 지난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일제히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서방이 지갑을 닫은 탓이 컸다. 남아공의 경우 월드컵 특수를 홍보하고 있었음에도 성장률이 -1.9%를 기록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채굴 경제’, ‘플랜테이션 경제’를 벗어나는 것이 지상과제다.





라고스의 '컴퓨터빌리지'.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컴퓨터 빌리지'. 흙바닥 먼지속에서 노점상들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팔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휴대전화 가입자가 6299만명에 이르는 거대 IT시장이다. 라고스/구정은 기자


르완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비전 2020’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화 실험을 하고 있다. 인구 90%가 농민이지만 휴대전화 사용자 비율은 해마다 배로 늘어 2008년 현재 14%로까지 높아졌다. 남아공 통신회사인 MTN 직원들은 유니폼을 갖춰입고 수도 키갈리 곳곳에서 선불제 휴대전화카드를 판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궁벽한 농촌의 구멍가게에도 MTN 로고는 붙어있다. ‘르완다에서는 MTN이 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선인터넷망도 속속 깔리고 있다. 국제입찰을 통해 사업자로 선정된 KT도 그곳에서 와이브로망을 구축하고 있다. 현지 정부 관계자는 “내륙의 소국인 르완다가 세계와 연결되려면 정보통신기술(IT) 발전이 필수”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빈국들은 기존 유선통신망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무선으로 ‘점프’하는 경우가 많다.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도 그런 곳이다. 간선도로를 벗어나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마을이지만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든 무선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다. 아비장 근교의 허접한 버스정류장 곳곳에는 어김없이 나무 탁자로 된 전화카드 가판대가 있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 도심의 컴퓨터 관련용품 상점 ‘IT 센터’의 모습.
르완다인들의 구매력이 낮아 값싼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키갈리 | 이청솔 기자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곳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휴대전화 카드판매소.
통신요금이 비싸고 신용거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선불카드를 사서 입력해 사용한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코트디부아르 아비장국립대학 학생들이 프랑스 지원으로 설립된 인터넷센터에서 컴퓨터 실습을 하고 있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문제는 경제력이 IT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트디부아르는 통신요금이 워낙 비싸, 휴대전화를 들고다니면서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르완다의 휴대전화 요금은 분당 150~200원, 인터넷 이용요금은 월 4만~8만원이다. 나이지리아의 휴대전화 요금은 분당 800원선. 서비스 공급자들은 인프라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비싼 요금을 매긴다. 아직은 시장이 작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신용 경제’가 없다보니 무조건 선불제다. 그래도 휴대전화는 많이 퍼졌으나, 컴퓨터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일반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키갈리에서 ‘IT 센터’라는 컴퓨터가게를 운영하는 중국인 레이(36)는 “조금씩 판매가 늘고는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원유도 가공해서 판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동쪽의 그랑바삼. 흙길 5㎞를 자동차로 달려가면 주변 시골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시설이 나온다. 정부가 지은 IT 벤처육성단지 ‘비팁(VITIP)’이다. 원래 국영정유회사 SIR 것이던 땅을 정부가 넘겨받아 2008년 비팁을 지었다. 지금은 60헥타르 면적에 건물 몇 동이 전부이지만 근처에 680헥타르의 대규모 단지를 짓고 있다. 지금까지 100억세파(25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
출범 당시 20개 회사가 협력 협약을 맺었고 그 중 15개가 입주를 끝냈다. 세네갈·프랑스 합작기업도 있고, 당국이 남아공 기업과 자국 기업과의 파트너십 협정을 중개해준 경우도 있다. 아직 15개 기업 고용인원은 모두 100명에 불과하지만 올해 말까지는 IT 분야와 생명공학(BT) 분야 기업 40개로 늘릴 예정이다. 비팁 매니저 클로드 데니는 “아직 기술수준이 낮고 벤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서 “지금 들어와 있는 회사들은 컴퓨터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뒤 주변 가나나 베냉 등으로 재수출하는 수준이지만 발전성은 크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 그랑바삼의 '비팁(VITIP)' 정보기술산업단지. 그랑바삼/구정은 기자


에너지 분야에서도 1차 산품 수출을 넘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석유수출국인 나이지리아는 원유를 정제·가공·유통시킬 능력이 없어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에 유전을 내줬다. 석유매장량이 362억배럴이나 되는데 국내에선 정제유가 모자라 기름값 폭동이 일어난다. 반면 코트디부아르는 원유 매장량이 1억배럴에 불과하지만 ‘똑똑한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해안 유전에서 퍼올린 질 좋은 석유는 비싸게 팔고,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파라핀이 많이 들어있는 질 낮은 원유를 사들인다. 이를 정제해 국내에서 쓰거나 다시 외국으로 판다. 제3세계 산유국 중에선 드물게 업스트림(탐사·시추·채굴)을 넘어 다운스트림(석유의 정제·가공·유통 부문)에 손대고 있는 것이다. 아비장 해안가에는 미래의 원동력이 될 정유소들이 들어서 있다.
박윤준 주 코트디부아르 대사는 “나이지리아는 정유소들이 낡고 고장나 가동율이 27%에 불과하지만 코트디부아르의 정유소 가동율은 90%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석유 수출은 이 나라 최대 수출품목이던 카카오 수출액을 2006년 추월했다. 근래 카카오와 커피, 팜오일(야자유) 등 플랜테이션 작물 가격도 올라가는 추세다. 코트디부아르는 농산물을 거둬들인 그대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찾고 있다.

라고스·키갈리·그랑바삼|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문제는 인프라


아프리카 어느 나라이건, 수도 혹은 최대도시를 벗어나면 전기도 수도도 없는 시골이다. 사정이 나은 축이라는 코트디부아르는 독립 뒤 1960~70년대 농산물 호황에 힘입어 ‘서아프리카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발전을 보여줬다. 장기집권을 했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초대 대통령은 수도를 아비장에서 자기 고향인 야마수쿠로로 옮기고 내륙지역까지 수도·전력공급망을 깔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인프라는 아직도 그 선에 멈춰서 있다. 지난달 아비장에서 만난 현지 사람들은 “2002년 내전 때에도 전기와 수도는 끊어지지 않았다”고 자랑하지만 유지·보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 교민들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포장도로들과 고층건물들은 대개 30~40년 전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비장 도심 상업·행정지구인 플라토의 고층건물들은 멀리서 보면 근사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흉물스런 외관을 드러낸다.





내륙의 교역중심지 부아케는 북부의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 19세기 말 프랑스가 노예시장을 세웠던 곳이고, 한때는 아비장과 니제르를 잇는 철도교역 중심지였다. 지금은 화물철도만 운행하며 노예 대신 목화와 커피, 카카오, 사이잘(선인장의 일종), 담배, 얌, 야자같은 농산물을 실어나른다. 부르키나파소와 아비장을 잇는 고속도로 위로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물을 실은 트럭들이 위태롭게 달렸다. 아프리카의 침식성 토양 때문에 아스팔트 여기저기에 움푹한 구멍이 나있지만 보수가 되지 않아 차들이 널을 뛴다.
내전 때 반군의 거점도시였고 지금도 정부의 통치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부아케에 이르자 총 든 반군이 고속버스에 올라타고 ‘통행료’를 뜯었다. 차창 밖에선 반군 병사와 정부군 병사 간에 싸움이 났다. 충돌이라도 일어날까 걱정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두 병사에게서 총을 빼앗았다. 유엔 평화유지군 차량이 혼잡을 뚫고 지나갔다. 이 나라에서 반군이 ‘통행료’로 거둬들이는 돈이 연간 3억달러(약 3500억원) 규모라고 한다.
반지오 다고베르 경제인프라부 장관을 만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묻자 그는 “돈이 모자란다”는 말부터 꺼냈다. 이 나라 올해 예산은 4447억세파(1조1117억원). 그중 인프라 투자비용으로 943억 세파를 잡아놨다.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지않지만 예산 규모 자체가 작다. 다고베르 장관은 “아비장의 수도물 공급에만 앞으로 몇년 동안 3000억 세파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예산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최대도시 아비장 인구 500만명 중 3분의 1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상수도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3분의2다. 포장도로의 88%는 노후 도로여서 재정비에 매년 4000억 세파가 필요하다. 돈은 역시 없다. 정부는 2대 항구인 아비장 항구와 산페드로 항구의 보수공사에 민간 자본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 다고베르 장관은 “재정을 충당하려면 공항을 비롯한 자산들을 민영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아비장 공항은 민간에 팔았다.
나이지리아는 인프라 부족이 특히 심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난이다. 연간 1만2000㎽ 이상의 전기가 필요한데, 지금은 발전소를 모두 돌려도 6000㎽ 밖에 못 만든다. 그나마도 설비가 낡아 실제 가동량은 2500~3000㎽에 머물고 있다. 필요한 전기의 4분의1만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교민 조홍선씨는 “하루에 6시간만 전기가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면서 “라고스 도심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전기가 좀 들어온다 싶으면 그 옆 이코이에는 하루 2~3시간 밖에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정수시설이 모자라 물도 제한급수를 하고 있다. 그나마 내륙은 전력망이 안 깔렸거나 끊어져 나이지리아 전체 인구의 40%만이 전기를 쓸 수 있다.
조씨가 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라고스 주(州) 정부가 지난해 거리미화를 위해서라며 영국에서 쓰레기통을 20만개 수입했다. 쓰레기통 정도는 라고스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전력 공급이 모자라고 전기요금이 비싸다보니 차라리 수입하는 것이 더 쌌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는 산유국이지만 국영석유회사 NNPC와 셸, 엑손모빌 등 외국기업 합작회사들을 통해 모두 수출하고 정제유를 수입한다. 그래서 기름이 비싸고 전기는 모자란다. 수시로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운전기사 수라주는 라고스 시내를 돌다가도 기름은 꼭 같은 주유소에서만 넣는다. “여기가 NNPC 주유소라서 기름 질이 좋다. 다른 곳에서 넣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다.” 주유소의 주유기 중에서도 하나만 제대로 작동한다. 줄줄 새는 주유기 앞에 잘못 줄을 섰다간 돈 내고 땅바닥에 기름을 다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세계 10위 석유수출국’의 현실이었다. 코트라 라고스 비즈니스센터의 곽희윤 센터장은 “이곳 사람들도 사업감각이 늘고 있고 경제붐이 일고 있으나, 에너지가 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곽 센터장은 “정부가 45개 ‘완제품 생산금지품목’을 정해 자국 산업을 키우려 하고 있지만 인프라와 전력난 때문에 역부족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부아케·아비장·라고스|구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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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오전 르완다 수도 키갈리. 가탱가 지역 주민센터 앞에서 한 여성이 16년 전 일어난 ‘대학살’을 증언하기 위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는 마을 사람들이 죽어갔던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며 “오늘 증인으로서 당시 벌어졌던 일을 그대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재판의 격식은 따지지 않는 듯했다. 이날 열린 항소심 재판에선 법복 입은 판사 대신 옆 마을 주민들 중 명망 있는 이들이 법관 역할을 맡았다. 재판 장소도 주민센터 내 30㎡ 정도 크기의 소강당이었다. 이웃 마을에서는 이날 판사가 배탈이 나서 재판이 미뤄졌다고 했다. 이것이 르완다의 지역사회별로 이루어지는 1994년 제노사이드(인종말살) 전범재판 ‘가차차’의 모습이었다.



 

지난달 19일 르완다의 가탱가 지역 주민센터 밖에서 수의를 입은 가차차 재판 피고인들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키갈리 | 이청솔 기자



르완다는 당시 후투족 정부와 투치족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인구 1000여만명 중 80만명 이상이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사망자는 대부분 소수민족인 투치족이었다. 누구든지 가족이나 친척 가운데 1명 이상은 당시 내전의 희생자가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전날까지도 이웃에 살던 사람들, 친구, 직장 동료들이 하루 아침에 적이 되어 죽고죽이는 살인극을 벌였다. 내전에서 이겨 정권을 잡은 투치족 정부는 두 민족의 화해 없이는 르완다를 다시 세울 수 없다고 보고 과거사 청산에 매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내전과 학살, 인종차별의 아픈 과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옛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일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이 안고 있는 과제다.

인종말살 이후 16년, 화해는 먼 길

가차차 재판은 반인도범죄자 수가 너무 많아 보통의 법정에는 그들 모두를 세울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도입됐다. 1999년까지 체포된 종족살해 가해자만 12만명이었다.
정부는 9000개 마을에 전통적 재판제도에서 빌어온 가차차를 설치하고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하게 했다. 인종말살을 계획적으로 주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가해자들을 모두 법정에 세워 진실을 밝혀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가차차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은 이들은 모두 형량대로 복역을 해야 한다. 과거사 청산의 모범 케이스로 꼽히는 가차차는 2008년까지 대부분의 재판이 마무리되고 현재는 항소심만 진행중이다.
르완다에는 교육과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통합화해위원회’라는 것도 있다. 대학 입학을 앞둔 모든 학생들은 이 위원회에서 여는 ‘인간도(연대) 캠프’에 들어가 1~2달 동안 르완다 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2005년에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 과정인 ‘이토레로(부족식 집단교육)’도 생겨 이미 16만명이 이 과정을 거쳐갔다. 르완다는 또 해마다 4월 초 2주를 ‘제노사이드 추모주간’으로 지정해 각종 행사를 치른다. 마을 주민들은 이 기간 한 자리에 모여 당시 벌어졌던 일들을 회고하고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는 의지를 다진다.

내전에서 밀려난 후투족 강경파들은 여전히 이웃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반군 활동을 하고 있지만 르완다의 과거사 청산은 성공적이다. 이 나라에서는 “투치족이냐, 후투족이냐”를 묻는 것이 금지됐다. 외국인이 궁금증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답이 돌아온다. 정부도 민족에 따른 차별대우를 헌법으로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니코데메 부과바리 르완다국립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투치족인 폴 카가메 대통령이 후투족도 적절히 기용했기 때문에 사회가 안정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과거사 청산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에는 16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부과바리 교수는 “정부가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한 화해를 이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매년 제노사이드를 회고한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르완다 통합화해위는 임시기구가 아닌 상설기구로 창설됐다. 통합화해위의 찰스 무치사는 “화해는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로 모두 끝’이라며 위원회의 문을 닫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금지하자 ‘프랑스어 사용층’(후투족), ‘영어 사용층’(투치족) 등 종족을 가리키는 일종의 ‘암호’가 등장하는 등 진정한 화해는 도리어 늦어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백인정권 무너져도 사회 모순 여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체제가 무너진 뒤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라는 과거사 청산 모델을 만들었다. 백인 정권에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불러내 증언을 듣고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힌다고 판단되는 경우 죄를 ‘사면’해주는 것이다. 이 모델은 이후 아르헨티나, 칠레, 동티모르, 가나, 한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진실화해위는 사면을 신청한 7112명 중 849명을 대상자로 선정하고 98년 임무를 마쳤다. 남아공은 13%의 백인이 나머지 인종 전체를 통제하는 억압적 구조에서 내전이나 보복 등의 큰 후유증 없이 민주적 체제로 옮겨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진실화해위가 화해에 초점을 두고 사면권을 남용하는 바람에 반인권 범죄자들을 너무 쉽게 용서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넬슨 만델라 등의 흑인 지도자들이 수감됐던 케이프타운 앞바다 로벤섬 감옥은 이제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백인이지만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해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벌였던 리처드 화이팅은 지금 로벤섬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 화이팅은 백인정권 때 징집을 피해 보츠와나로 망명했다. ANC는 이제 집권당이 됐고 화이팅은 아파르트헤이트 자료 수집과 조사·정리를 맡고 있다. 그는 “남아공 진실화해위의 활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반면 과거사 청산이 형식에 그치면서 모순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케이프타운대학 사회학과의 멜리사 스테인 교수는 최근 백인 농장주 외젠 테르블랑슈가 농장 노동자들에게 살해된 일을 예로 들었다. 그는 “대농장을 소유한 백인 농장주가 흑인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는 그대로다”라며 “남아공 사회가 지난 16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르완다와 남아공 사람들은 모두 ‘정치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벨기에 식민정권이 떠난 후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이 본격화됐던 르완다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부분 나라의 내전 뒤에는 오랜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다. 그 갈등의 골을 메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르완다 통합화해위의 찰스 무치사는 “지도자들이 특정 집단이 부를 독점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갈등을 해소하려 애쓰면 문제는 사라진다”고 말했다. 남아공에서는 백인정권이 무너진지 16년이 지났지만 흑백 정치인들이 여전히 인종갈등을 권력 강화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요하네스버그대학에서 만난 흑인 여학생은 “흑백간 통합의 정도는 여전히 별로 높지 않다”며 “서로를 증오하게 해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키갈리·케이프타운·요하네스버그|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정치기반 허약, 자국서 전범재판 못해


서아프리카의 최빈국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은 2000년대 초 내전이 모두 끝나자 과거사 청산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내전의 상처가 너무 깊었던 탓에 실제로는 전범재판도 자기네 나라에서 치르지 못할 정도로 정부의 정치·경제적 기반이 허약하다.
라이베리아 내전의 장본인인 찰스 테일러는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1989년 코트디부아르에서 반군을 창설했다. 이듬해 사무엘 도에 대통령이 살해당하면서 라이베리아는 내전에 들어갔고, 결국 15만명의 사망자를 남기고 96년에야 끝났다. 97년 대선에서, 국민들은 테일러가 낙선하면 다시 내전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에게 표를 던졌다. 당시 테일러의 선거 슬로건은 “그는 내 부모를 죽였지만 나는 그에게 표를 준다”였다. 결국 테일러는 국민들의 두려움에 기대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테일러는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이웃 시에라리온의 내전도 부추겼다. 그의 지원을 받은 시에라리온 반군은 다이아몬드 광산 대부분을 점령했다. 92년 쿠데타로 시작된 시에라리온 내전은 10년동안 이어졌다. 반군은 내전 기간 집단 강간·학살·아동살해 등 끔찍한 범죄들을 자행했다. 특히 소년병들에게 마약을 줘가며 민간인들의 팔을 절단하도록 한 만행으로 악명을 떨쳤다.
2000년대 들어 라이베리아에서 테일러에 맞선 내전이 다시 일어났다. 테일러는 물러난 뒤 나이지리아로 도망쳤다가 2006년 체포됐다. 같은 해 라이베리아에서는 아프리카 첫 여성 국가원수인 엘렌 존슨-설리프 대통령이 당선돼 재건의 희망이 고조됐다. 그러나 라이베리아 민주 정부는 테일러의 귀국이 몰고올 정치적 불안을 이유로 테일러를 시에라리온으로 이송했다. 시에라리온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아도 역내 불안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유엔은 그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형무소로 이감했다. 2007년 이후 특별법정은 ICC에서 테일러를 재판하고 있다.
라이베리아나 시에라리온은 반인도범죄를 재판할 전문적인 역량과 재원이 모자라,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과거사 청산을 하고 있다. 르완다의 경우도 일급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담당하는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는 자국 내에 설치하지 않고 이웃 탄자니아에 두고 있다. 

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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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은 1960년대 건국 이후 군부 쿠데타와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가장 최근인 1980년 독립한 짐바브웨는 30년간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기니와 모리타니에서는 군사쿠데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디 아민의 폭정을 끝낸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몇해 전부터 ‘종신집권 개헌’을 하며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토고에서는 40년 철권통치를 했던 에야데마 냐싱베의 아들 포레 냐싱베가 세습 집권했다.
아프리카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경제만큼이나 형편없어 보인다. 그러나 뉴스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독재체제를 끝내고 민주화로 나아가는 나라들이 더 많다. 문제는 이런 나라에서도 지역 갈등과 종족 갈등, 종교간 충돌, 부패와 경제 퇴행 등 심각한 민주화의 진통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강압적 통치체제가 사라진 뒤 모든 갈등이 표면으로 치솟아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는 나이지리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방을 위한 선거, 서방을 위한 개혁

인구 1억5000만명(세계 8위)의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신흥경제국인 동시에 민주화의 실험장이다. 1999년 사니 아바차 장군의 군부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군정에서 민정으로 ‘평화적 이양’에 성공했을 때 세계는 이 나라에 박수를 보냈다. 나이지리아가 내전 없이 민주화 과정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적이었다. 군 장성 출신이지만 군복을 벗고 ‘민선 연방대통령’으로 99년과 2003년 연달아 집권한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민주화의 모범으로 외부에서 추앙받았다. 두 차례 대선과 사이사이 치러진 총선, 지방선거(주의회·주지사 선거) 등은 국제 감시단으로부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인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지난달 라고스 대학 정치학과 카요데 소레메쿤 교수를 만나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깨끗했던’ 지난 선거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공정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나이지리아의 민주화 과정은 첫째 취약하고, 둘째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나라 사법제도와 반부패 기구들은 아직도 약하다. 제도적 뒷받침이 약한 민주주의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소레메쿤 교수는 “기나긴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사회가 고도로 군사화됐다”고 지적한다. 군 출신 인사들이 여전히 연방정부와 36개 주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부근에 도열한 군인들. 2002년 정부군-반군 간 내전이 벌어진 뒤 유엔평화유지군 관리감독 하에
휴전조치가 실시되고 있으나 아직 안정은 요원하다. 아비장 | 구정은 기자



코트디부아르 내륙도시 부아케 부근 도로에서 검문을 하는 반군 병사들. 휴전협상으로 무장해제를 약속했지만
반군은 여전히 국토의 절반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부아케/구정은 기자


가난한 이 나라에서 행정비용은 터무니없이 많이 들어간다. 민간정권이 되면서 선심정책과 층층이 쌓인 부패 때문에 정부 운영비용이 엄청나게 늘었다. 행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관료기구는 비대해졌다. 독재가 무너진 후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혜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패와 정실주의 때문에 민주화의 혜택이 전 국민들에게 고르게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북부 무슬림 하우사족과 기독교 종족들 간에는 유혈충돌이 수시로 반복된다. 겉보기엔 종족·종교 갈등이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정치투쟁’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가난에 있다. 가난한 주민들은 얼마 되지 않는 생존 자원(토지와 물)을 차지하기 위해 종족·종교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인다. 정치지도자들은 사실상 이를 조장·방조하며 자기 세력을 불리고, 연방정부에 압력을 넣어 이득을 얻어낸다. 억압적인 군부정권이 무너진 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느끼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부작용 때문에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목소리다.






개발과 민주주의, 르완다의 실험

90년대 끔찍한 제노사이드(인종말살)와 내전을 거친 르완다. 2000년대 들어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고 있다. 내전 이후 처음 치러진 2003년 대선에서는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95%를 득표해 당선됐다. 르완다애국전선(RPF)을 이끌고 내전을 종식시킨 카가메는 국민들에게 ‘국부(國父)’로 추앙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투자환경이 좋은 나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치안 유지와 경제 재건에 힘을 쏟은 것도 카가메의 업적이다.
2003년 제정된 새 헌법은 어느 나라 헌법보다도 민주적이라는 평이다. 인종, 민족, 종교에 따른 차별이나 정치활동은 원천적으로 금지됐다. 의원의 30%를 여성 몫으로 할당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전체 의석의 56%를 여성이 차지했다. 르완다국립대학 정치학과의 니코데메 부과바리 교수는 “르완다에서는 이웃 부룬디나 콩고민주공화국과는 달리 밤에 여성이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인종말살 내전 때 집단 강간과 여성 살해가 전국을 휩쓸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 도심의 대형 상점인 나쿠마트 내부에 폴 카가메 대통령의 사진이 붙어 있다. 키갈리 | 이청솔 기자


오는 8월 대선에서도 카가메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카가메가 현재의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우간다의 무세베니는 1986년 역시 내전을 끝내고 집권한 뒤 민족주의와 개발을 앞세워 민심을 얻었다. 그러나 집권 뒤 개헌을 통해 정당 설립을 금지하고 대통령 3선 제한 조항을 삭제, 사실상 독재체제를 부활시켰다. 르완다에서도 카가메의 권력 독점을 읽을 수 있는 징후가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키갈리 교민 이충성씨는 “카가메가 빅브라더처럼 모두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6개월 앞둔 지난 2월 키갈리에서 수류탄 폭발사건이 일어나 2명이 숨졌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전 육군참모총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했다. 르완다 정부는 군 인사들과 ‘잠재적 대선주자’들을 우르르 잡아들여, “폭발 사고를 기회로 정적들을 제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카가메 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해서는 ‘국경없는 기자회’와 미국 등이 이미 여러차례 경고했다. 카가메가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을 시도한다면 르완다는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지 모른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속설처럼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고개를 들 수도 있다. 연방법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시민은 “이미 집권당인 RPF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모든 부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건국 영웅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이 33년간 집권하고 93년 사망했다. 여러 정치세력의 각축전이 벌어지더니 2000년 급기야 쿠데타가 일어났다. 2년 뒤에는 북부의 반군이 정부에 맞서 내전을 일으켰다. 사망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졌다. 국토의 절반, 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북부 지방은 여전히 조세·치안 등을 반군이 담당하고 있다. 내륙의 수도 야마수크로에는 거대한 정부청사와 대통령궁이 위엄을 자랑한다. 하지만 북부로 조금만 올라가니, 총 든 반군들이 시외버스와 트럭들을 세우고 통행세를 걷고 있었다.
케냐에서도 24년간 집권한 다니엘 아랍 모이가 2002년 물러난 뒤 혼란이 벌어졌다. 콩고민주공화국(DRC·민주콩고)은 내전과 쿠데타와 대통령 암살을 겪은 뒤 국제사회의 감시 속에 선거가 실시됐고, 암살당한 전대통령 아들인 조셉 카빌라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돈으로 키워진 이 나라의 새로운 군대는 요즘 동부 앙골라 접경지대에서 반군과 싸운다는 핑계로 주민들을 살해·착취하고 있다. 라이베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내전’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된 뒤 민주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국가원수인 엘렌 존슨-설리프 대통령이 2006년 취임했으나 예산도 재정도 행정력도 없어 재건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민주주의 뿐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민주주의의 길로 나가기 시작한 나라들이 혼란에 휩싸여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후퇴한 사례는 많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자유선거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나라들을 지켜본 외국 전문가들 사이에는 ‘아프로 페시미즘(Afro-pessimis·아프리카 비관주의)’이 널리 퍼져 있다. 외부에서 아무리 원조를 해줘도 부패 때문에 제대로 투자가 되지 않고, 힘겹게 민주주의를 이뤄도 오히려 부작용만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에도 ‘아프리카적 특수성’이란 것이 있다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주장한다. 주로 아프리카 내부에 그런 시각이 많다. 일종의 개발독재 옹호론으로도 비친다.

르완다국립대학 정치학과의 니코데메 부과바리 교수는 “르완다는 이제 막 첫발을 뗀 나라”라며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인도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야는 <자유의 미래>에서 “표를 통해 정권을 잡는 선거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결코 강제할 수 없다”면서 “서방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제3세계 유권자들에게 선거를 ‘선물’해주고 자화자찬해왔다”고 폄하했다. 반면 유엔과 서방국들은 “보편적 인권·민주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어디에서나 중요하며 아프리카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맞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민주주의인가’ 하는 것이다. 개발경제학자 폴 콜리어와 앙케 회플러는 민주주의를 ‘선거경쟁(자유선거)’과 ‘견제와 균형’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눠 아프리카 국가들을 분석했다.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1966년 독립 뒤 세렛세 카마를 비롯해 3명의 대통령이 재선, 삼선으로 집권했고 2008년 카마의 아들인 전직 장성 이안 카마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 나라는 ‘선거경쟁’ 측면은 약하다고 볼 수 있지만 똑똑한 지도자, 잘 기능하는 관료제도를 갖췄다. 정치권 내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까닭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국가개발에 배분했고, 아프리카에선 드물게 저소득 국가에서 중소득 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분쟁은 한번도 없었다.

반면 나이지리아에서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공직을 자기 집안, 자기 부족 출신들로 채우는 전형적인 정실주의 국가다. 권력층은 자원 이익을 빼돌려 유권자들의 표를 사고, 집권하면 다시 이득을 챙긴다.
라고스 대학 정치학자 카요데 소레메쿤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민주주의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부분의 군부독재가 아시아에서처럼 ‘피플파워’가 아닌, 독재자의 죽음이나 내전 등으로 인해 종식됐다”고 지적했다. “우린 우리 손으로 나쁜 지도자를 몰아내고 좋은 지도자를 선택한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탄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나라의 미래를 “신중한 낙관주의(cautious optimism)”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언론의 비판기능이 살아 있고 사법제도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바꾸는 것만이 방법”이라며 이를 위한 끝없는 교육, 대중들의 각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고스·키갈리/구정은·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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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나가라 하면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입니다. 별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달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해안도시 케이프타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농촌 마을 드두어런스에서 만난 짐바브웨 출신의 이민자 머시는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머시가 머물고 있는 곳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제공한 텐트가 모여있는 난민촌.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흑인거주지구 슬럼에 살았다. 열악한 환경이기는 해도 ‘집’이 있었고 남아공 주류 부족 중 하나인 코사족 이웃들도 있었다.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들이 작년 11월 남아공 주류 부족 코사족에게 밀려나기 전까지 살았던
드두어런스의 슬럼. 이들이 살던 집에는 현재 코사족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드두어런스 | 이청솔 기자


슬럼에서 난민촌으로… 밀려나는 이민자들
 
코사족이 머시의 집을 부수고 집기를 빼앗아간 것은 지난해 11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이유에서였다.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백인 농장주들이 ‘일을 잘하고 똑똑하다’는 이유로 짐바브웨 출신자들을 많이 고용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저임금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내준 코사족은 폭력으로 되갚았다.
머시를 비롯한 이민자 1000여명은 맨몸으로 내몰렸다. 머시는 “이번달말이면 유엔이 제공해준 텐트도 철거된다고 한다”며 어디로 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짐바브웨는 여전히 엉터리 경제정책으로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철권통치 아래 있다. 무가베는 무리한 토지개혁으로 식량부족을 불렀다.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2008년 2억3100만%를 기록했다.
 
대륙 곳곳을 떠도는 이주민 문제는 아프리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유엔은 합법적 이민자와 난민 2200만명이 아프리카 대륙을 떠도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불법이민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특히 가장 앞선 경제력을 가진 남아공은 인근 짐바브웨, 레소토, 모잠비크 뿐 아니라 멀리 콩고민주공화국, 가나, 나이지리아 등에서 몰려온 이주자들까지 더해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짐바브웨 출신 약 300만명을 포함해 불법 이주자만 대략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월드컵을 앞둔 남아공 정부가 일자리를 빼앗긴 서민들의 분노를 이용해 이주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3월 요하네스버그 제2 축구경기장인 엘리스파크 경기장 부근 빈민가에서는 이민자들이 ‘붉은 개미’라 불리는 철거용역반의 폭력에 쫓겨났다. 이민자들이 얼기설기 지은 집들은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했다.
붉은 개미는 정부 용역으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빨간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서민층으로 이뤄져 있다. 인권단체들은 “과거 백인정권이 가난한 백인들을 부추겨 흑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듯 흑인정권은 일자리 없는 서민들을 부추겨 외국인 노동자들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에워싼 거대한 슬럼의 주민들 중에도 인근 베냉, 토고, 니제르 등지에서 온 이주자들이 많다. 아프리카 내의 이주에는 ‘일자리’라는 경제적 이유 외에 정치적 동기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무가베가 철권통치를 일삼는 짐바브웨나 1990년대 후반 이후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은 이민자를 쏟아내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여기에 서구 열강들의 일방적 국경 획정도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떠돌게 하는 이유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남아공 드두어런스 내 슬럼에서 쫓겨난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부근에 천막으로 마련해준 난민촌의 모습. 드두어런스 | 이청솔 기자


 
곳곳에 ‘송금은행’
 
2002년 발발한 코트디부아르 내 남북 분쟁에는 50년전 독립 과정에서 벌어진 ‘국경선 그리기’의 실책과 북부 사하라 지방의 사막화 문제 등 복잡한 배경이 숨어 있다.

사하라 남부 사헬(건조지대) 지역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와 대서양에 접해 있는 코트디부아르는 민족적·문화적·경제적으로 한 묶음이 되었어야 했지만 50년 전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두 나라로 갈렸다. 코트디부아르는 열대우림과 바다, 농장과 항구를 모두 가졌지만 내륙국가인 부르키나파소는 독자적 생존이 힘든 조건이다. 게다가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등은 점점 확장되어가는 사하라 사막의 남진(南進)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은 독립 이래로 꾸준히 남부의 코트디부아르로 내려왔고, 이제는 부르키나파소인 300만명과 말리인 100만명을 비롯해 600만명이나 되는 외지인들이 코트디부아르에 살고 있다. 이들 ‘국민 아닌 국민’은 자신들을 국민으로 인정해 선거권을 달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고, 남북간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대선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물류를 코트디부아르에 의지할 뿐 아니라, 코트디부아르에 나가 있는 노동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에 경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로 올라가는 코트디부아르 내륙도시 부아케에서는 미국 송금회사 웨스턴유니온 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정된 가나에는 90년대 혹독한 내전을 겪은 라이베리아에서 온 난민들이 수만명씩 거주한다. 이들은 전쟁 난민으로 가나에 들어왔지만, 내전이 끝나고 몇년이 지나도록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들을 정치적 난민으로 규정하고 난민촌을 지원해주었지만 라이베리아에 2005년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의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지원을 끊고 송환작업을 하고 있다. 한때 10만명이 넘었던 난민 수는 지금은 3만5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나, 이들은 끝내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라이베리아에는 일자리가 없지만 가나에서는 허드렛일을 하거나 국제기구의 원조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난민과 일자리 때문에 고향을 벗어난 경제적 이주민을 가르기는 쉽지 않다. 가나에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토고 출신 난민 8500여명도 이름만 난민일 뿐,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국제이주기구(IOM) 등은 ‘귀환시켜야 할 난민’으로 규정하는 대신 이들을 이주노동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프리카 중심국가인 케냐도 난민 반 이주민 반 성격을 띤 외지인들 문제를 안고 있다. 소말리아인 17만3000명과 수단인 7만3000명, 에티오피아인 1만6000명이 국경지대와 나이로비 주변 슬럼가에 살고 있다. 이들도 출발점은 분쟁과 살육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이었으나, 지금은 경제적 동인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유민(IDP)들도 넘쳐난다. 케냐는 비교적 안정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 선거부정 시비로 폭동이 일어난 뒤 25만~40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집을 떠나 국내를 떠도는 유민이 됐다. 콩고민주공화국에는 앙골라에서 넘어온 13만3000명과 르완다인 3만7000명 등이 떠돌고 있다. 내전이 끝난 뒤 몇년이 지나도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유민은 140만명에 이른다. 


드두어런스·부아케·라고스 | 이청솔·구정은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정치인들 민생고 화살 이주민에 돌려”


지난달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옛 도심에 자리잡은 난민사회협의체(CBRC)를 찾았다. 이 협의체는 주로 요하네스버그 부근에 거주하는 난민과 이민자들을 돕는 비정부기구다. 요하네스버그 옛 도심은 1994년 백인정권 붕괴 이후 사실상 슬럼으로 전락했다. 시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도심을 ‘점령’했기 때문”이라며 외부인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난민은 인종·종교·민족·정치적 입장 등의 차이로 인해 국외에 거주하며 출신 국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인정을 받은 이들이다. 그러나 난민 단체인 CBRC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6.5㎡(5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상근직원 3명이 일하고 있다. 재키스 카만다 사무국장은 “단체 운영이 어려워 별도의 수익사업으로 꾸려나가고 있다”며 2005년에 발간한 소식지를 건넸다. 네덜란드 정부의 후원이 끊어진 이후로는 소식지도 찍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공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의 난민사회협의체(CBRC) 사무실.
‘더 나은 아프리카를 위해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쓰인 걸개그림이 벽에 붙어 있다. 요하네스버그 | 이청솔 기자


카만다는 2008년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진 요하네스버그 뿐 아니라 “이주민이 있는 곳이면 남아공 어디든 제노포비아(인종혐오) 범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토착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선동이 이주민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수도, 전기, 보건시설 등 부족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제대로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으로 풀어야 하는데 마치 이주민들이 공공서비스를 ‘훔쳐가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만다는 “저임금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이주민들과 남아공 서민들의 경쟁을 생산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미숙련 노동자들의 기술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주민들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태도는 ‘무관심’이나 마찬가지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인 카만다는 1999년에 남아공으로 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2003년에 기한이 만료된 신분증을 아직도 갱신하지 못했다. 7년동안 4차례나 재발급을 신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 그는 “신분증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지만 정치범 신세라 고국에 돌아가지도 못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요하네스버그|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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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건물이 솟아오르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바닷가를 따라 난 허버트 매컬레이 고가도로 위로 일본제, 유럽제 자동차들이 달린다. 그 아래에는 라고스 주민들이 아데콜리 빌리지라 부르는 수상촌(水上村)이 있다. 세상 어디에서나, 뭍에서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정착하는 곳이 물 위다.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지 모르지만 거기 사는 이들에겐 열악한 생존의 현장이다.


ㆍ더 이상 갈 곳 없는 ‘밑바닥 10억’… 도시의 그늘서 사투

말이 좋아 ‘마을’이지 아데콜리는 ‘주거지’라고 하기 힘든 곳이었다. 얕은 바다에 띄운 나룻배에선 여성들과 아이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고, 사이사이 좁은 부지에는 온통 목재 가공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습기와 열기와 톱밥이 뒤섞여 숨이 막혀왔다. 바다는 온갖 오염물들과 쓰레기로 울긋불긋 물들어 제 색깔을 알기 힘들었다.
얼기설기 판자집들 사이 그늘진 좁은 통로에는 젊은 청년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주민들은 성난 얼굴로 이방인을 바라봤다. 내륙 지방과 라고스 주변 여러 주(州), 혹은 베냉 등 이웃나라에서 온 가난한 이주자들이 주민의 주를 이룬다. 상당수 주민들은 주중에 이곳 판잣집에 살며 고기를 잡거나 목재 공장에서 일하고, 주말엔 멀리 떨어진 시골 집으로 돌아간다. 수상촌 건너편 빅토리아 아일랜드에는 아덴지 아델레 거리의 높이 솟은 스카이라인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라고스 해안 아파파 항구를 돌아 와프 로드로 이동하는 길. 차량 정체가 시작되자 구걸하려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차 문을 열려고 달려드는 한 소년을 옆에 있던 소녀가 재빨리 제지하더니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시늉을 한다. 라고스 슬럼가는 외국인들에겐 공포의 대상. 자칫 밤중에 차량 정체로 멈추기라도 하면 젊은이 수십명이 멈춰선 차들을 앞에서부터 훑어가며 강탈을 한다.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이런 강도들을 만나면 현지인이건 외국인이건 달라는대로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전엔 강도들이 사람을 죽이진 않았는데, 얼마 전 지방도로에서 강도들이 시외버스를 털고 나서 승객들을 모두 자동차로 깔아 죽인 일이 일어나 공포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수상촌


아프리카 대도시들은 예외 없이 거대한 슬럼이다. 세계은행 분석가로 일했던 윌리엄 이스털리 같은 개발경제학자들이 ‘밑바닥의 10억명(Bottom Billion)’이라 부르는 절대빈곤 상태의 사람들, 이른바 ‘지구상 하위 10억명’ 중 대부분이 아프리카에 거주한다. 농촌에서도 먹고살지 못해 도시로 몰려온 슬럼 주민들은 세계화의 어두운 그늘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시내 서민주택가인 요뿌공에서 와사까라 슬럼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판잣집의 바다’였다. 상업중심지인 아자메의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노숙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낮에는 구걸이나 도둑질을 하고, 밤에는 버스 밑에 들어가 잔다. 이 곳 서민들의 교통수단은 ‘워러워러’라 불리는 다 망가진 낡은 택시와, ‘바카’라는 이름의 미니버스다. 문짝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워러워러와 바카를 번갈아 타고 해안마을 벵제르빌로 이동했다. 1인당 200세파(약 500원)를 받는 낡은 바카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차가 달릴 수 있나” 싶게 낡았다. 스무살 남짓 되어보이는 청년이 달리는 차 문에 몸을 반쯤 걸친 채 “벵제르빌!”이라 외치며 승객들을 불렀다.
옛 식민시절 한때 수도였던 해안도시지만 지금은 아비장 외곽의 슬럼이 됐다. 아르마탄(사하라에서 넘어오는 모래바람)의 시기가 지났는데도 공해와 먼지가 뒤섞여 온통 대기는 뿌연 빛이었다. 꼬불꼬불한 진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좁다란 골목으로 이어진 빈민가가 나왔다.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비(33)라는 여성은 11명의 식구와 이곳의 진흙집에 살고 있다. 정해진 소득은 없다. 구근 작물인 카사바나 야자를 따다 팔아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한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 옆에 버려진 망고 껍데기에 파리떼가 득시글거렸다. 음식을 만들 때 덤불을 태우고 남은 재가 뒤섞여 공기는 매캐했다.


도시외곽 ‘판잣집의 바다’ 구걸·약탈·유혈폭동 빈번

타 주느비에브(40세)는 서부 파코블리에서 살다가 분쟁이 일어나 4년 전 아비장으로 왔다. 하지만 지낼 곳이 없어 벵제르빌에 정착했다. 남편과 시누이, 여섯 아이들과 이 곳에 산다. 남편은 아비장 시내에서 경비원으로 일해 월 평균 5만세파(약 12만5000원)를 받는다. “파코블리에서는 남편이 재봉사 일을 해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는데 여기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타 주느비에브는 “내게도 돈을 벌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종잣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코트디부아르 벵제르빌, 흙집에서 자라는 아이들


언덕 위에는 옛 식민시절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고아원이 있었다. 마침 예방접종일이어서, 학년별로 색깔 맞춘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을 서서 예방주사를 맞고 있었다.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한 쪽에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몇사람만 모이면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것은 아프리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 수준을 자랑하지만 슬럼으로도 유명한 나라다. 지난달 22일 남부 웨스턴케이프주 드 두어런스의 슬럼을 방문했다. 이 곳에는 약 5000여명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흑인 코사족이다. 차에서 내려 슬럼 안으로 들어서자 슬레이트로 지붕과 벽을 두른 나즈막한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들은 대부분 주변 포도 농장으로 일을 나가고 아이들만 남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의 유일한 장난감은 폐타이어다. 폐타이어로 만든 그네를 타고 있던 노바 펠로(5)는 장래희망을 묻자 “농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보고 듣는 유일한 ‘직업’이 포도 농장에 고용돼 일하는 농업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알렉산드리아 슬럼은 웬만한 남아공인들도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이곳에서는 시시때때로 유혈 폭동이 일어난다. 2008년 5월에는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에서 온 이민자들을 겨냥한 빈민들의 공격이 일어나 ‘제노포비아(인종혐오)’ 범죄가 남아공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모두 62명이 사망,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종식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됐다. 이민자들이 요하네스버그 토착 줄루족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슬럼 안의 빈곤층이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형국이다. 교민 박대범씨는 “알렉산드리아는 사실상 경찰도 포기한 지역”이라고 전했다. 남아공 슬럼들은 대부분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흑인들을 강제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백인정권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고 16년이 지났지만 슬럼의 치안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키베라 슬럼은 동아프리카의 빈민과 난민들이 모두 모이는 아프리카 최대 슬럼이다. 계절에 따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어 인구는 60만명에서 150만명 사이로 추산된다. 면적은 나이로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로비 인구의 4분의1이 키베라에 산다.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는 가구는 거의 없다.

벵제르빌·라고스·요하네스버그·드두어런스 | 구정은·이청솔 기자


 

왜 아프리카는 아시아식 발전을 따라하지 못하나


얼마 전 김태영 국방장관이 아프리카를 가리켜 “무식한 흑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일국의 각료에게서 나온 말이라 하기엔 몰지각한 수준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고 장관도 곧 이를 사과했지만, 한 대륙을 짓누르는 ‘절대 빈곤’과 다른 대륙 주민들의 ‘글로벌 책임’에 대해서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이들은 곧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아프리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질문이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실적은 대부분 형편없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구매력 기준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가 넘는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가봉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세계의 평균기대수명은 67.6세인데 아프리카는 51.5세로 훨씬 떨어진다. 독재·경제난·에이즈가 겹친 짐바브웨는 겨우 39.7세다. 라이베리아와 르완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인구의 90% 이상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이다.
‘흑인’이라는 인종적 요소를 빼버리고 생각하더라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교육수준이 낮은 대륙임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아프리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왜 아프리카는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만 한다. 서방의 원조단체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들을 가장 괴롭히는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2007년 제프리 삭스가 <빈곤의 종말>에서 원조의 기술적인 문제점과 관점의 잘못 등을 지적하고 나선 뒤, 개발경제학자들 사이에 아프리카 개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들이 지적하는 아프리카의 빈곤의 원인은 여러가지다.
식민시절의 착취로 국부를 빼앗기고 발전 경로가 왜곡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프리카 최빈국들은 ‘국가를 지탱할만한 지리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탓에 가난하다는 분석이 많다. 아시아나 중남미의 개도국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적·문화적 공동체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 이전에 국가의 틀을 갖추고 있던 경우가 드물었다. 과거 나름의 제국을 형성했던 가나, 말리, 짐바브웨 등이 있지만 현재의 이 나라들과는 사실상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역사속 존재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지리적·기후적인 요인들로 해서 국가가 형성될만한 농업기반을 갖지 못했던 곳들을 식민종주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별국가로 나눈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일례로 사하라 남쪽 부르키나파소는 사막지대의 내륙국가라 코트디부아르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교역이 불가능하다. 이웃한 차드나 카메룬 등도 비슷하다. 동아프리카의 우간다는 1990년대 이후 정치안정 덕에 개발 절차를 밟고 있지만 역시 내륙의 소국이어서 성장이 제한돼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개발경제학자 폴 콜리어 교수는 저서 <빈곤의 경제학>에서 “아프리카는 개발 격차를 따라잡을 절호의 찬스를 아시아에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졌던 80년대가 저임금 개도국들이 세계시장에 편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 때 아시아는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이미 집적의 경제를 구축하고 있었기에 엄청난 경쟁력을 누렸다.
반면 아프리카의 ‘밑바닥 국가’들은 저임금 노동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집적의 이점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처럼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인 정치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들도 집적의 이점을 이용해 시장에 진입한 반면 아프리카는 기회를 놓쳤다.
개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마중물이 될 원조가 필요하다”(제프리 삭스)는 주장과 “제3세계의 성공적인 개도국들은 원조가 아닌 자신들의 힘으로 일어섰다”(윌리엄 이스털리)는 반론, “자원·내륙국·분쟁 등의 덫에 걸린 밑바닥 국가들엔 다차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폴 콜리어)는 등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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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수출국이다. 아비장에서 서쪽으로 바닷가를 끼고 달리다 보면 보이는 것은 모두 플랜테이션 농장들이어서, 대체 이 나라 사람들 먹을 것은 어디서 키우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시속 80km로 3시간을 달리는 사이 도로 양옆에는 팜(야자), 코코넛, 고무, 카카오 농장들이 계속 스쳐지나갔다.
그 중 한 카카오 농장에 들렀다. 수확철이 아니어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들의 하청업체나 현지 대지주들이 운영하는 팜 농장과 달리 카카오 농장은 대개 가족농 형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철에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 ‘아동노동’이라는 악명을 얻었고, 이 때문에 한동안 카카오 수출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7~9월 한 차례 수확을 한 뒤 11월부터 1월까지 본격적인 수확을 하고, 그 사이 ‘카카오 농한기’에는 쌀이나 카사바 등 식량작물을 키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서쪽 그랑라우 가는 길에 있는 코코넛 농장(위).
공업용·식용으로 쓰이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한 야자와 카카오 등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끝 없이 펼쳐져 있다.
아래 사진에 맨 앞쪽에 있는 것은 식용작물인 카사바이고, 뒤쪽엔 팜(야자)이 보인다.
 


‘석유와 카카오’

몇년 전부터 아프리카 경제 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으나,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자원의 보고’라는 쪽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앙골라, 수단 등의 산유국과 광물자원을 많이 가진 몇몇 나라를 빼면 아프리카는 여전히 플랜테이션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광물자원의 경우도 아직은 1차적인 원유·원광 생산에 그치고 있다. ‘석유와 카카오’가 아프리카를 지탱해주는 힘인 셈이다.
아비장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에는 목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줄을 이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임업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미 보르네오 숲 파괴가 많이 진행돼 나왕, 마호가니, 티크 등 고급 수종(樹種)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보르네오 섬을 공유하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정부는 가공되지 않은 목재의 수출을 금지하며 자국 숲 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여전히 에보니(흑단) 등 고급수종이 통나무 그대로 수출되고 있다. 열대 토지는 온대지역의 토지와 달리 척박하다. 부식토가 쌓이지 않기 때문에 양분이 토양에 많이 보전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무가 사라지면 표토가 깎여나가면서 바로 황폐해진다.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나무를 심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 생산성이 떨어지면 모두 태워버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엑손모빌 건물. 사람들이 '엑손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이 건물 단지에는
직원들의 주거시설을 비롯해 '그들만의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최근 주요 경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개 에너지·광물자원 수출이나 세계시장 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플랜테이션 작물에 의존하는 수출형 농업으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경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한다. 라고스에 있는 코트라 비즈니스센터의 곽희윤 관장은 “이 나라 정치도 문화도, 모두 석유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화 수입의 95%, 국가재정의 80%가 석유부문에서 나온다.
하지만 석유가 그만큼 이 나라 경제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손쉽게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자원이 있으면 미개발국은 제조업 발전보다 자원을 퍼내는 데에만 의존하게 된다. 개발경제학자들이 ‘자원의 덫’이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남부 니제르델타 유전지대에서는 석유 채굴에 따른 이익을 환수하기 위한 원주민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상을 하는 사이, 부패한 관리들과 일부 주민들은 송유관에 구멍을 내 석유를 빼돌린다. 매년 니제르델타에서 이렇게 새나가는 석유가 10억 달러 어치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선진국 시장 따라 요동

국제사회가 독재국가로 지목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짐바브웨는 넌센스에 가까운 인플레와 금수조치로 생필품·식량부족을 겪고 있다. 그 와중에도 이 나라가 버티는 힘은 다이아몬드와 금 등 자원 덕분이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은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과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희귀 금속류로 먹고 산다. 지방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유혈사태가 반복되고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농민들 대부분이 빈곤 상태이지만 수도 킨샤사에는 자원을 노리는 외국 기업들이 밀려들고 있다. 자원개발 붐 속에서도 이 나라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구매력기준)은 세계 최저수준인 300달러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도 많이 진출하고 있는 중부 아프리카의 앙골라는 30년 내전의 상처를 딛고 신흥 산유국으로 떠올랐다. 2006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가입과 함께 앙골라의 국제적인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수도 루안다 도심에서는 나날이 건물이 올라가고 땅값이 몇 년 새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구매력기준 1인당 GDP는 근래 8900~9000달러 선으로 훌쩍 뛰었다. 하지만 자원의 혜택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는 나라에서, 오일달러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몫일 뿐이다. 1280만 인구 중 80%는 여전히 농민이며, 국민 40%는 빈곤선 이하에서 산다.

또한 수출용 환금작물 위주의 플랜테이션 농업이나 원자재 의존 구조 때문에 아프리카는 세계시장의 변동에 몹시 취약하다. 선진국 산업활동이 위축되거나 부자나라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공업용 팜유, 카카오·커피 등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농민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2000년대 성장률 7~9%의 고속성장을 하던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금융위기 여파로 근래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졌다. 앙골라는 2007년 실질 GDP 증가율이 21.1%, 2008년엔 13.2%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2009년에는 마이너스 0.6% 성장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07~09년 실질 GDP 증가율이 5.5%에서 3.7%로, 다시 마이너스 1.8%로 내려갔다. 나이지리아·앙골라와 함께 아프리카의 또다른 주요 산유국인 수단 역시 같은 기간 10.2%에서 6.6%, 3.8%로 성장세가 떨어졌다.

그랑라우(코트디부아르)·라고스|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코트디부아르의 '새마을 운동'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서쪽, 해안도시 그랑라우를 지나 덜컹거리는 흙길을 달려 은지다 마을로 들어서자 ‘새마을운동(Saemaul Undong)’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주 코트디부아르 한국대사관의 지원으로 새마을운동을 배워 지난해부터 실험하고 있는 곳이다. 박윤준 대사는 “이곳 사람들에게 ‘자조’와 ‘협동’을 가르쳐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소개했다. 협업을 통한 농업경영의 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산비탈에 풀어 키우던 닭을 우리에 넣어 양계장을 만든 일이었다. 500마리를 데려다가 키우기 시작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다보니 접종 시기를 놓쳐 닭들이 모두 죽어버렸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움을 얻는다고 했다. 한쪽에는 화단처럼 흙을 돋우어 철망으로 덮어 놓았다. 개울가 젖은 흙에서 자라는 게를 가져다가 야자를 먹여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철망 속 흙 밑에 집게발은 빨갛고 등딱지는 파란, 손바닥만한 게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토양이 비옥하지 않고 기후조건도 극단적인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질병이 많아 노동력은 늘 부족하다. 이곳 주민들은 구근작물인 카사바를 갈아 아티키라는 빵을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원조기관과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카사바 가는 기계 2대를 마을에 들여놓고 여성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여성들 중 한 그룹은 카사바를 재배하고 한 그룹은 아티키를 만든다. 세 번째 그룹은 만든 ‘제품’을 내다 판다. 마을 한쪽에서 젊은 여성이 카사바를 쌓아놓고 뽀얀 구근을 깎고 있었다. 돈이라고는 손에 쥘 방도가 없었던 마을 여성들에게, 새마을운동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산비탈 붉은 흙, 뙤약볕 밑에서 농민들은 ‘경영’을 배우기 위해 열심이었다. 새마을운동을 배우려고 한국에도 다녀갔다는 주쿠아 코쿠라 가브리엘(56) 촌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아주 생소해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들어왔던 프랑스 구호기관들은 원조라는 명분으로 돈을 주었다. 이들에게 ‘돈이 아니라 스스로 서는 법을 가르친다’는 한국의 지원방식은 낯설었다. 지레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나 여자들이 아티키로 돈을 손에 쥐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닭 숫자가 늘고, 마을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망은 이르고 갈 길은 멀다. 코트디부아르는 농업국가이지만 보조금을 잔뜩 받는 외국산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업화도 되기 전에 농업생산의 위기가 닥치면 재앙이다. 은지다라는 마을 이름은 ‘먹고 잔다’는 뜻이다. 마을 주민들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마을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점점 달라져가는 ‘글로벌 농업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떨어내지 못하는 듯했다. 

그랑라우(코트디부아르)|구정은 기자



르완다의 커피 협동조합




“은행에서 돈 한 푼 빌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죠. 하지만 조합이 생긴 뒤로는 더 이상 힘없는 농부가 아닙니다.”
지난달 17일 르완다 북부주 가쳉에 지역의 아비쿠다카와 커피 농장에서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를 수확하던 그라시안(42)은 커피조합이 생기기 전을 회상하며 웃었다. 그라시안이 소속된 아비쿠다카와 커피조합은 2004년 조직됐다. 지금은 주변 커피농 1976명이 소속된 르완다 내 4번째 규모의 조합으로 성장했다. 그라시안은 조합이 결성된 이후 벌이가 늘어 집을 새로 지었고 자녀 학비도 모두 댈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커피나무 300그루를 가진 그라시안은 조합 가입 전 12만 르완다프랑(약 24만원)에 불과하던 연간 수입이 20만 르완다프랑(약 40만원)까지 치솟았다.
르완다는 국내총생산(GDP)의 42%가 커피 등 농업에서 나온다. 최근 이 나라의 커피조합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해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달리 주민들이 조합원이 되어 투자를 하고 생산량과 경작지 넓이에 따라 수익을 분배받는다. 정부가 1999년 처음 커피조합을 도입하면서 노린 것은 집적을 통한 생산비용 절감 효과였다. 정부의 계획은 맞아떨어졌다. 1996년 1만5000에 불과했던 커피 생산량이 올해는 3만으로 늘 전망이다. 품질도 놀랄만큼 좋아졌다. 1990년대까지 2등급 취급을 받던 르완다 커피는 최근 커피품질 경연대회인 컵오브엑셀런스(COE)에서 5위 안에 진입했다. 브라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커피 명산지들로 이뤄진 COE 주최국 명단에도 2008년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여전히 농가 규모가 영세하다는 점이다. 그라시안도 커피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콩, 옥수수, 파인애플 등을 함께 키운다. 커피 등 환금작물 의존성을 낮추고 산업화를 이루는 것은 르완다 경제의 과제로 남아있다.  

가쳉에|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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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 교외 코코디에 있는 아비장 국립대학교를 지난달 찾았다. 서아프리카의 중심 대학 중의 하나로 주변국들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유학을 오는 이 대학은 유럽의 대학도시들처럼 넓은 부지에 소도시같이 꾸며져 있었다.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에선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모여든 학생들이 삼삼오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올해는 1960년 ‘아프리카 독립의 봄’ 이후 50년이 되는 해다. 아비장 대학 학생들을 만나 ‘독립 50주년’의 의미와 아프리카의 장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젊은이들은 “진정한 독립을 이루었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통계학과 학생 레옹은 “우리가 쓰는 물건 대부분이 프랑스 것이고, 몇 안 되는 기업들도 프랑스 기술에 의존한다”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그들 그늘 밑에 있다”고 말했다. 법학과 2학년 도소 페리마(22)와 마리잔(22)은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며 정부가 계획하는 기념행사들에 냉소를 보냈다. 친구 도소 페리마(22)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부패했는데 우리 젊은 세대에게 어떤 미래가 있겠느냐”며 “독립은 관심 밖”이라고 잘라말했다.


아비장 대학에서 만난 도소 페리마(왼쪽)와 마리잔. 도소 페리마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고,
마리잔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두 여학생 모두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어 보였다.


“그들이 떠나고나서야 시험대에 올랐다”

프랑스 식민정부의 첫 수도였다는 상아해안의 옛 도시 그랑바쌈. 프랑스인들이 지은 낡은 2층 건물은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복도에는 백인 관료들이 흑인 원주민들을 부리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이 걸려있고, 전기가 모자라 낮에도 어두운 전시실에는 이 나라 여러 부족의 전통의상을 입힌 인물모형들이 서 있었다. 아름답지만 낡은 박물관을 나오면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리가 나온다.
고즈넉한 해안 마을은 철 지난 관광지 같기도 했고, 폐허처럼 보이기도 했다. 길모퉁이 담장에 ‘개교 50주년 기념’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프랑스인들이 쓰던 건물이 독립과 함께 학교로 변해 반세기를 맞은 것이다. 학교 건물은 한번도 신축·보수공사를 하지 않아 50년 전 프랑스인들이 떠날 때 그대로였다. 외세가 물러난 뒤 이 나라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를 그 낡은 건물이 되묻고 있는 듯했다. 고즈넉한 바닷가에선 프랑스인 주민 몇명이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들 사이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코트디부아르는 독립 이후 안정을 구가했지만 2000년대 들어 남쪽의 정부군과 북쪽의 반군 간 유혈충돌이 일어난 뒤 나라가 경제가 황폐해지고 인프라도 후퇴했다. 가장 큰 변화는 프랑스인들이 떠난 것이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데비(39)는 “우리는 국민의식, 주인의식 같은 게 없었다. 내전으로 외국인들이 떠나면서야 비로소 시험대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위기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 스스로의 문제와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이 코트디부아르를 점령하고 첫 수도로 삼았다는 그랑바쌈.

그랑바쌈의 식민 시절 건물은 지금은 관광객들을 맞는 박물관이나 아트센터가 되어 있다.

'개교 50주년'. 옛 식민시절 건물이 독립과 함께 고등학교로 변했지만
그후 보수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50년 전 그대로의 낡은 모습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각축전을 벌였던 서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베냉 등이 50년 전 독립을 했고,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도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탄자니아, 소말리아 등이 자유를 얻었다. 대륙의 가로세로로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신생국가들이 우르르 탄생했다. 그 중엔 오랫동안 역사적·지리적·문화적 공동체를 구성해온 나라도 있었고, 아무 상관없는 민족들이 본의 아니게 한 국경안에 속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아프리카는 다른 어떤 대륙보다도 많은 재난과 분쟁을 겪었다. 똑같이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가난 속에 출발한 아시아 국가들이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세계의 주역으로 거듭난 것과 달리, 아프리카는 반세기 내내 갈짓자 걸음을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이제 자원과 경제개발을 발판으로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제2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반세기의 성과를 묻는다

아비장 시내 두플라토 고급주택가의 독립50주년 기념준비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 지지 아돌프 카조 부위원장(오른쪽 사진)을 만났다. 준비위는 국민화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포츠행사들과, 매스컴을 통해 독립 이후 국가 수립과 재건 과정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연중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직 대법관이기도 한 지지 부위원장은 솔직하게 지난 반세기를 평가했다. “여러 가지 기념행사들을 관통하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난 50년간 무엇을 이루었는가, 두 번째 그동안 이룬 자유와 성취를 어떻게 유지·발전시킬 것인가, 그리고 국민들에게 어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립 100주년 때에는 최소한 지금보다 훨씬 나은 국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의 기점이 되는 2010년에 만난 아프리카인들은 축제 분위기보다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자’는 성찰의 분위기가 강했다. 아프리카와 다른 대륙의 발전 속도가 달랐던 이유를 자문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숨고르기를 할 때라는 인식이 많은 듯했다. 지지 부위원장은 “코트디부아르가 속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13개 회원국 중 작은 섬나라 카포베르데와 세네갈을 빼면 모든 나라들이 분쟁을 겪었다”면서 “왜 아프리카에서는 분쟁이 가시지 않는지, 지나온 반세기의 방향성이 맞았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거의 형성되지 못한 아프리카의 특수성 때문에 성찰의 분위기조차도 국가가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독립 50년에 대한 다소 냉소적인 반응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57년 독립한 가나는 2007년 옛 식민종주국인 영국의 사절단을 불러모아 50년의 성과를 홍보하고 축제를 열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에선 인프라가 가장 좋고 경제개발에 전념하는 ‘똑똑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나의 독립 반세기보다는 오히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더 주목받았다. 오바마가 상아해안의 노예무역 유적을 찾아 “아프리카의 책임과 권리”를 역설하자 그제서야 세계가 그 곳에 눈을 돌렸다. 잘 알려진대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가나 출신이지만, 퇴임 뒤 잠시 귀국해 열렬한 환영을 받고는 다시 스위스 제네바로 가 활동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인 우푸에 부아니는 군대를 키우는 대신 국가재정을 인프라 확충에 돌리고 프랑스군을 주둔시켜 치안을 맡겼다. 덕분에 주변국들처럼 잦은 쿠데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지만, 프랑스와의 단절도 그만큼 늦어졌다. 지금도 프랑스군이 주둔하면서 치안의 일부를 담당한다.
아비장대학 인문학부의 아누마타키 아케세 교수는 “사람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50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아프리카”라면서 “아직도 옛 식민지 국가들의 자원에 의존하는 프랑스도 참 불쌍한 나라”라고 말했다. 아누마타키 교수는 급여가 적어 컨설팅회사에도 적을 두고 있었다. 아비장대학은 학생 수가 5만명에 이르는데, 종이가 모자라 시험도 제대로 못 치르는 형편이었다.

진정한 독립은 '경제적 독립'에서부터


“내가 살아보지도 않은 식민시절을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이지리아 라고스대학에서 만난 심리학과 학생 소쿠두는 독립 50주년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라고스에서도 과거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각은 극히 비판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였다. 경제적 독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프리카는 옛 식민종주국에 원자재를 수출하고 생필품을 사온다. 그나마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등은 중동·아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 때문에 아시아권과 교역을 늘리고 있지만 대서양 연안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옛 지배자들 없이는 여전히 지탱하기 힘든 형편이다.
단적인 예가 코트디부아르, 말리, 세네갈, 토고 등 서아프리카 옛 프랑스 식민지 8개국이 쓰고 있는 ‘세파(CFA) 프랑’이라는 화폐다. 2차 대전 종전 뒤인 1945년 프랑화 가치가 떨어지자 프랑스가 식민지들의 손실을 막기 위해 세파 프랑이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 르네 플레벵은 “자비로운 프랑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딸들의 피해를 막아주기 위해 화폐를 만들어준 것”이라 주장했었다.
그후 수십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나라들은 프랑스에서 찍은 돈을 ‘사서’ 자국 내에서 유통시킨다. 유로화 출범 뒤 프랑스에서 사라진 ‘프랑’은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살아남았다. 세파 프랑은 유로화에 고정환율로 묶여 있어 암시장을 없애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그 대신 수출을 늘리기 위한 개별 국가 차원의 환율정책을 쓸 수가 없다. 세파 프랑과 유로의 환율은 프랑스가 결정한다. “화폐도 못 찍는 나라가 독립국이라 할 수 있느냐”는 자조가 나올 법하다.

경제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 탓’이라고 아프리카인들은 입을 모은다. 정치지도자·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이 독립 이후 아프리카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가 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였다.
라고스대학 정치학과 카요데 소레메쿤 교수는 “아프리카의 부패한 지도층은 식민시대 구조 그대로 독립 국가를 통치했고 새로운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전히 부유층은 영국으로 자식들을 보내 가르치고, 영국 은행에 돈을 모아둔다”며 “심지어 식민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향수)를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소레메쿤 교수는 지난해말 미국행 항공기 폭탄테러를 시도한 나이지리아 청년 압둘무탈라브 사례도 ‘식민지 마인드(mind)’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유명 은행가 가문에서 자란 압둘무탈라브는 중학교 때부터 토고의 영국계 학교에서 교육받고 런던에 유학했지만, 오히려 그 곳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졌다. 소레메쿤 교수는 “뿌리 없이 옛 지배세력을 추종한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테러리즘이었다”면서 “식민지 정신상태(colonial mentality)가 바뀌어야만 진정한 독립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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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경제중심도시인 라고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이 거대도시는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 없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상업중심지인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레키 지구에는 정부가 택지를 개발, 고급 주택가를 짓고 있었다. 정원에 수영장이 있는 2층, 3층짜리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고, 대문 앞에는 사설 경비원들이나 집주인의 돈을 받은 현지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뛰는 물가, 막히는 거리

레키 지구 한쪽에 위치한 샵라이트. 서울의 대형 쇼핑몰들처럼 크진 않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서점, 상점들을 갖춘 쇼핑몰이다. 그 안의 대형마트에서는 값비싼 수입 식료품들을 팔고 있다. 이달 초 가봤을 때 망고주스 1000ml 하나가 1300나이라(약 1만원)였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석유부국인데, 부패와 행정 실패로 전력은 모자란다. 그렇다보니 제조업 발달이 늦어 생필품도 모두 외국에서 사들인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국적인 소득수준은 매우 낮지만 라고스 부자들의 씀씀이는 선진국 못지않은 듯했다. 레키 입구에 중국 회사가 지었다는 ‘오리엔탈 호텔’이 얼마 전 새로 문을 열었다. 그 앞에서는 민간자본을 들여 도로를 닦고 있다. 톨게이트 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운전사들은 “길을 다니는데 돈을 내라고 하면 어떡하냐”며 라고스 주 정부의 민자유치 정책에 불평을 했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내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고급 주택가.
석유 달러가 넘쳐나면서 라고스 곳곳에 고급 주택들과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라고스 시내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한 쇼핑몰. 냉방이 잘 된 쇼핑몰에선
스페인 의류체인 망고를 비롯한 외국 브랜드들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프리카 각국은 자원과 농산물 등을 팔아 개발·성장을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돈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흥청대는 소비와 건설 붐, 부동산 상승이 패키지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빈부격차, 환경오염, 부패, 질병, 이주자 문제 등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혼란들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들이 넘쳐나는 라고스 거리는 경제개발의 부산물인 혼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일본차들과 한국차, 유럽차들 사이로 오카다(오토바이 택시)가 이리저리 비집고 다녔다. 교통체증은 일상이고, 역주행은 기본이다. 신흥 석유부국답게 돈 돌아가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주택 임대료가 턱없이 올라 방 3개짜리 아파트 2년 임대료가 2억원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집도 하루에 몇 번씩 전기가 나가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형편이다.
라고스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교민 조홍선씨는 “10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 문화가 바뀌려면 한 세대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 몇 년 낙관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예전에는 길을 닦으면 6개월 만에 다시 망가졌는데, 새로 짓는 도로는 규정을 지켜서 제대로 짓고 있다”면서 “뭔가가 되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직 부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가 느껴지고 있고, 세계 최악으로 꼽히는 라고스의 치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라군(석호)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스카이라인.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근교 리비에라의 신흥 주택가.
아비장 부근에는 들판을 없애고 현대식 주택을 짓는 택지개발 사업이 한창이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시내 존꺄트르의 상점가.
레바논계 상인들이 운영하는 한국 자동차판매점을 비롯해 외국차 판매점과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다.



라군(석호)을 따라 이어진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산책로는 잘 꾸며진 화단과 쓰레기더미가 번갈아 나와 들쭉날쭉 행정을 입증해보이고 있었다. 행정·상업지구인 플라토로 가는 도로는 출퇴근시간 내내 극심한 교통체증이 벌어졌다.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존꺄트르(4지구)에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고급 외제차 숍들이 즐비했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난지 50년이 지났지만 최근까지도 이 나라 경제는 프랑스인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때 6만명에 이르던 프랑스인들은 2002년 남북 간 유혈사태 뒤 많이 빠져나가 지금은 1만5000~2만명만 남아있다. 한국 대기업들도 아비장에 지사를 두었다가 일제히 철수시켰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레바논계 이민자들이다. 19세기부터 이주해와 오래도록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레바논계가 도소매업과 부동산의 70%를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돈은 도는데 일자리가 없다

근래엔 아프리카 어디에나 중국인들이 넘친다. 나이지리아에 중국인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공식적으론 10만명 정도라고 하지만 “30만명은 될 것”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원이 없지만 교역이 활발한 코트디부아르에도 중국인들이 1만명 이상 들어와 있다. 중국 국영 에너지회사들이 코트디부아르 정유회사와의 합작을 추진하고 있는데, 계약만 성사되면 만 명 넘게 더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한 화교는 “기업 하나 들어오면 (중국인이) 몇천명씩 오니까 우리야 좋지”라면서 중국 바람을 반겼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화물용 철도를 제외하면 내륙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시외버스 밖에 없어 북새통을 이룬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아자메 거리. 서민들이 몰리는 중심가의 아자메는
도로 포장도 돼 있지 않아 지저분하고 어수선했다.


90년대 내전의 상처를 씻고 고속성장 중인 르완다도 개발과 그에 따른 혼란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까치루 등 수도 치갈리(키갈리)의 중심가에는 컨벤션센터 등 고층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컨벤션센터에는 중국 자본이 참여하고 있는데 2012년 완공될 예정이다.
2004년 기준 도로포장률이 14%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는 도로 포장공사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직 외국 회사들이 직접 진출해있지는 않지만, 자동차에 대한 치갈리 사람들의 욕망은 대단하다. 주변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쳐 수입해온 일본·유럽·한국차가 새까만 연기를 뿜으며 달린다. 루헹게리, 부타레 등 지방을 오가는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은 차와 사람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치갈리의 강남’ 격인 야루타라마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외국인들과 현지 부자들이 사는 이 일대 고급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200만~300만원 선이다. 교민 이충성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집값이 치솟는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개발의 혜택이 철저하게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자원을 팔아 손쉽게 번 돈으로 부패한 기득권층이 배를 불리는 사이, 산업발전은 늦어지기 십상이다.
서아프리카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라고스의 알파파 항구에는 컨테이너선들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하지만 그 안에 실린 것들 중 나이지리아 혹은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스스로 생산·수출하는 것은 거의 없다. 모두 중국 등지에서 실어온 저가의 수입품이나 아시아·유럽에서 가져오는 중고 물품들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국내총생산(GDP)의 33.4%는 농업, 34.1%는 제조업, 32.5%는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조업 발전은 실제로는 더디기만 하다. 알파파 항구에 늘어선 거대한 제분소와 음료수 병입 공장 정도다. 공식 실업률은 4.9%(2007년 기준)이지만, 이 수치를 대면 모두가 웃는다. 교민들은 “대졸자들 중 제대로 된 직장에 정식 취업하는 사람은 다섯 명 중 1명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게 일자리를 얻은 대졸 신규취업자들의 월급은 4만 나이라(32만원) 정도인데, 라고스 시내 무선인터넷 이용료만 해도 한달에 1만 나이라다.

아델 꾸암미(30)는 코트디부아르 중부 아보보도키 태생이다. 아델은 아비장 국립대학 영문과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일자리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 아델의 남편은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는데 역시 아직 고정수입이 없다. 부부는 허드렛일이나 다름없는 일로 월 평균 10만세파(약 25만원)를 번다. 그 중 5만세파는 집세로 나간다.
아델의 동창 마게리트는 버진항공 카운터 일을 하고 있다. 역시 아비장 대학을 나온 발리 보두앵은 외곽의 고아원에서 일하고 있고, 알퐁소는 외국 기관 운전기사로 근무한다. 집안 좋고 운 좋으면 젊은 나이에 장차관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업자 신세다. 모든 것이 연줄로 이뤄진다. 한 마을에서 한 사람이 출세하면 그 마을 전체를 먹여 살려야 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좌절감은 몹시 컸다.

아비장·라고스·키갈리|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부패 못 잡으면 발전은 없다


몇 해 전 아프리카 중부의 차드 정부가 유엔 등으로부터 받은 원조자금의 실제 집행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보건 예산의 전달 흐름을 추적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중앙정부에서 나간 예산 중 실제 지방 보건소로 전달된 금액은 단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뒤 차드 정부는 석유수출 이익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유엔과 손을 잡고 위탁관리기구에 모든 것을 맡겼다. 관료기구의 ‘부패의 사슬’을 끊고 개발 이익을 고르게 배분, 국가 전체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조치였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프리카가 겪는 빈곤의 가장 큰 원인은 여전한 부패라고 주민들이나 교민들이나 학자·관료들이나 입을 모은다. 과거엔 국제기구나 서방 국가들이 내주는 원조가 부패한 관료들의 먹이였지만 지금은 자원 수입이 더 큰 먹잇감이다. 나이지리아처럼 자원이 많고 덩치가 큰 나라는 어떤 나라들보다도 부패한 자들이 챙겨갈 몫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치러야 할 부패의 비용도 크다.
부패를 없애기 위한 시도도 없지 않지만 성공사례는 드물다. 케냐의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은 2002년 집권 뒤 국제투명성기구 케냐본부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존 지통고를 등용해 부정부패 척결을 맡겼다. 하지만 국제기구 원조자금 횡령을 잇달아 적발한 지통고는 석연찮은 이유로 중도에 쫓겨났다. 가나의 재무장관을 지낸 크웨시 보치웨이는 1980년대 프랑스 원조기구에서 대규모 원조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다. 모두들 보치웨이가 원조를 따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을 챙겼을 거라고 의심, 오히려 각료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가나 대통령이던 제리 롤링스의 조카가 무단으로 국가 예산을 주무르자 화가 난 보치웨이는 결국 정부 개혁을 포기하고 사임했다. 케냐의 지통고와 가나의 보치웨이는 그 이래로 지금까지 해외 체류 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아프리카 특파원을 지낸 로버트 게스트는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 시절인 2003년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에 취임한 여성각료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가 라고스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걸 보고 “이 나라에서 고위관리가 일반인들처럼 줄을 서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이웰라 장관은 재직 때 살해 협박까지 받으면서도 각 주 정부에 할당하는 예산을 전면 공개,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04년 중앙은행장이 된 소장 경제학자 찰스 솔루도는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강행, 뇌물로 영업허가를 받아 방만하게 운영하던 64개 시중은행을 폐쇄·합병해버렸다.
하지만 국민들 반응은 여전히 합격점과는 거리가 멀다. 오바산조 정부는 외국 원조를 받으려고 부패를 고치는 시늉만 했을 뿐,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 오바산조의 딸이 부패혐의로 기소된 적도 있다. 한 교민은 “민선대통령 오바산조와 이전의 군부독재자 간 차이점이 있다면 군부독재자는 노골적으로 대놓고 챙겼다는 점, 오바산조는 눈치를 보며 챙겼다는 점 뿐”이라고 말했다. 오바산조는 2007년 퇴임했지만 여전히 나이지리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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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가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다. 지난 15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턴 신시가지의 월드컵 입장권 판매소 앞에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이었다. 전날 아침 9시에 와 24시간 동안 줄서서 기다린 끝에 결국 표를 쥐고 기뻐하던 타보(22)는 “역대 최고의 월드컵이 될 것”이라며 “남아공에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의 나라에서 열리는 잔치만 구경했던 가나인 이민자 딘 달라스는 “우리 팀이 곧 온다”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월드컵 기간에는 여러 경기장에서 아프리카 출전국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박람회가 열린다”며 “이번 월드컵은 아프리카 전체의 행사”라고 강조했다.






이번 월드컵은 남아공 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자랑거리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마침 올해는 1960년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독립의 봄’ 이후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월드컵에 진출한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등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올해로 독립한지 반세기를 맞은 것이다.
 
경향신문은지난 3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아공과 서아프리카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나이지리아, 상아와 카카오의 나라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신을 모색중인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중부 아프리카의 르완다를 찾았다. 아픈 과거와 어지러운 현재를 넘어 내일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 주경기장 격인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과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사커시티는 아프리카 전통 그릇인 ‘칼라바시’를 본떠 호리병 모양으로 지어졌다. 남아공이 속한 A조 경기의 표를 사러 왔다는 조한(25)은 “남아공이 성공한다면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도 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지구의 오지로 여겨져온 아프리카에서 세계 전체의 이벤트가 열린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체가 기대감에 들뜬 분위기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상아와 노예들을 실어날랐던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우푸에 부아니 스타디움(축구장)이 위용을 자랑한다. 도시를 둘러싼 석호 옆 공터에선 소년들이 무더위 속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국가적인 자랑거리’인 디디에 드로그바의 뒤를 좇아 미래의 축구스타를 꿈꾸는 소년들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내 슐레레에 있는 국립경기장 옆에서도 망고나무를 울타리 삼아 아이들이 축구경기를 한창이었다. 열 두어살의 어린 소년들이지만 모두 미래의 대표선수를 꿈꾸며 요하네스버그의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아비장·라고스 | 구정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축구공과 함께 튀어오르는 희망


남부 아프리카 최대 도시이자 남아공의 ‘경제 수도’인 요하네스버그는 부산했다. 지난 12일 올리버 탐보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아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프리카 첫 대회에 대한 바깥 세상의 불신을 반박이라도 하듯 “준비가 끝났다”, “세계적 수준의 개최 도시”라는 표어들이 거리를 뒤엎었다. 흑인정권이 들어선 뒤 새로 형성된 샌턴의 신시가지에서는 고속 경전철 ‘하우트레인’ 1단계 공정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5월 중 올리버 탐보 국제공항에서 샌턴을 잇는 1단계 철로가 개통되고 내년 3월 이전에 행정수도 프리토리아까지 연결하는 2단계 공사가 완공된다. 멀리 남서부의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 프리토리아를 거쳐 짐바브웨 국경까지 이어지는 남아공의 ‘대동맥’ N1 고속도로도 곳곳에서 확장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 통합지향하는 월드컵

과거 백인정치세력들의 거점이었고 지금도 남아공의 정치 중심인 케이프타운 역시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은 조만간 확장공사가 끝나면 거대공항으로 변신한다. 연간 400만명이던 수용능력을 연간 1400만명으로 늘리기 위해 공사비 23억랜드(약 3450억원)를 들였다. 현지 일간지 아그레스는 “리노베이션이 끝나면 아프리카 최고의 공항이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과 케이프타운의 그린포인트 경기장도 각각 확장·신축 공사를 끝내고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사커시티는 남아공 사람들에겐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1990년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처음으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웃한 소웨토(SOWETO) 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시절 흑인들이 강제로 쫓겨나 형성된 마을이다. 지금은 요하네스버그 인구의 40%가 소웨토에 거주하고 있다. 소웨토와 사커시티는 남아공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인 셈이다.
20년 전 만델라를 환영하며 몰려든 흑인들의 심장이 뛰었던 사커시티는 이제 흑백 통합의 마당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대학 회계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한 흑인 여학생은 “그동안 남아공에서 축구는 흑인 스포츠, 럭비와 크리켓은 백인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월드컵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라고스 시내를 장식하고 있는 월드컵 광고판. 남아공 기업으로 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하다시피한
이동통신회사 MTN의 선전물들이다. 


 
‘검은 대륙’으로 남아있던 아프리카는 지금 세계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상아와 노예를 실어날랐던 서아프리카의 상아 해안으로 가보자. 이름 그대로 ‘상아 해안(Cote D'Ivoire)’이라는 뜻인 코트디부아르는 나이지리아와 함께 서아프리카의 중심 국가 중 하나다. 코트디부아르 최대 도시인 아비장은 인구 500만명의 대도시로, 민물과 짠물이 뒤섞인 라군(석호)을 끼고 고층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레바논계 이민자들의 돈으로 지은 커다란 모스크들이 높이 솟은 첨탑을 자랑하고, 역시 레바논계가 운영하는 현대적인 쇼핑몰에는 수입산 물품들이 즐비했다.

# ‘공차는 아이들’의 꿈

아프리카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자 자부심과 함께 희망을 얘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아비장에서 만난 아델 꾸아미(30)는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 “세계에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보여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델은 “아프리카도 이제 ‘세계’에 끼어야 한다”면서 빈곤과 내전의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로 아프리카가 다시 태어날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비장대학 법학과 2학년 도소 페리마(22)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면서 “경제가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고스 국립경기장 앞에서 공 차는 아이들. 유니폼은 제각각이고 너덜너덜하지만
열 두어살 된 아이들이 뒤로 넘어져서도 시저스킥을 찬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1억5000만명의 인구와 362억 배럴(세계 10위)의 석유자원을 가진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올라가고 도로를 새로 닦느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 같았다. 가로등마다 “2010년 우리는 하나가 된다”는 광고판이 붙어있다. 젊은이들은 “아프리카를 알릴 기회”라 입을 모았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나이지리아에선 “한국의 축구 실력이 무섭다”고 엄살을 떠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유명클럽 첼시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국립경기장 앞에서 공을 차던 소년 마이클 투볼샤(12)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나이지리아 출신 스타 카누를 좋아한다고 했다. 가슴에 ‘삼성(SAMSUNG)’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마이클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몹시 수줍어하면서 “만유”라고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는 것이 이 소년의 장래 희망이다. 마이클은 월드컵이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가깝게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지단, 호날두, 에시엔 등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소년들이 공을 향해 달렸다. 마이클 팀은 첼시 유니폼이고, 상대편에는 맨유와 리버풀 등의 붉은 셔츠가 섞여 있다. 아직은 통일된 유니폼도 없지만 소년들의 꿈만은 세계로 향해 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더라도, 가난한 나라에서 맨몸으로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가 축구다. 지난 17일 비포장 도로를 2시간 넘게 달린 끝에 도착한 르완다 북부주 가챙예 지역 커피농장의 아이들은 바나나잎으로 만든 공 하나로 축구시합을 하고 있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지만 좋아하는 팀을 묻자 “잉글랜드” “맨유”라며 월드컵이 열리는 것도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EPL의 명성은 이런 궁벽한 곳에까지 파고들었다. 수도 치갈리(키갈리) 중심 키요부 지역의 대형 쇼핑몰 ‘나꾸마트’나 부촌 야루타라마의 MTN 센터 등에서는 커피숍, 음식점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형 텔레비전으로 EPL 경기를 함께 관람했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하네스버그·아비장·라고스·키갈리|글·사진= 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월드컵, 남아공에 무엇을 남길까

남아프리카공화국 무역산업부(DTI)는 월드컵을 통해 남아공 경제에 약 213억 달러(23조6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약 127억 랜드(12조9000억원)의 직접 소비 창출효과와 15만9000여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DTI 관계자는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월드컵 기간 동안 남아공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관광산업이 활황을 맞을 것이고 토목·건설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DTI는 그러나 이런 직접적인 효과보다도, 해외에서 남아공의 이미지가 개선되는 것이 경제에 미칠 간접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TI 관계자는 “아프리카와 남아공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앞으로 지속가능한 경기상승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산하 진보기업포럼의 달 스와인폴 의장은 특히 인프라 개선 효과를 강조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로망이 업그레이드되고 공항이  신축·확장됐으며 브로드밴드나 위성 디지털TV 보급이 늘고 대중교통체계도 개선됐다는 것이다.
스와인폴 의장은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 어떤 자산들이 남아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며 “모든 남아공인들이 환상적인 인프라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만 여행객을 맞기 위해 지은 호텔들이 두달 뒤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월드컵의 효과는 최소한 10년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건설 붐 이면에서 빈민가 강제철거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 베이징, 시드니 등 올림픽을 치른 대도시들이 거대 이벤트를 앞두고 폭력적인 빈민가 철거작전을 벌였듯 요하네스버그에서도 빈민들이 떼밀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얼마전 “남아공 당국이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주요 대도시에서 빈민가를 때려부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집권 ANC는 ‘환상적인 인프라’를 강조했지만, 도시 빈민이나 짐바브웨 등지에서 들어온 불법이주 노동자들이 ‘국가의 적’ 취급을 받으며 내팽개쳐지고 있는 것이다.
요하네스버그 주요 축구경기장 중 하나인 엘리스파크 경기장 부근 빈민가에서는 지난 24일 여성과 어린이들이 ‘붉은 개미’라 불리는 철거용역반의 폭력에 밀려 비명을 지르며 쫓겨났다. 빈민들이 얼기설기 지은 집들은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했다. 철거용역반은 가재도구를 불태우며 빈민들에게 이를 지켜보게 했다. ‘붉은 개미’들은 정부 용역으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로, 빨간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서민층에서 충원된다. 인권단체들은 “과거 백인정권이 가난한 백인들을 부추겨 흑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듯 이제는 흑인정권이 일자리 없는 서민들을 부추겨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최하층 빈민들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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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윤리적 소비를 위한 제언 전문가 좌담

글 김유진·정환보 · 사진 김문석기자



상품의 제조·유통 과정은 물론 기업정신과 같은 이면의 가치까지 고려해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는 이제 한국에서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생활협동조합이나 공정무역, 친환경 소비 등의 다양한 윤리적 소비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출발선에 선 만큼 소비자의 저변을 넓히고 시장을 확대하는 등의 과제도 안고 있다. 경향신문은 기획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한국의 윤리적 소비 현황을 진단하고 향후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전문가 좌담을 열었다. 지난달 25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좌담은 최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덕승|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


이덕승 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이하 이덕승)=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개개인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윤리적 소비는 이타적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조직적 사회운동을 통한 변화의 시대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가치를 통해 실현하는 시대다.



김찬호|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이하 김찬호)=이번 정부 들어 경제 살리기가 화두이고, 8·15에는 녹색 성장도 얘기했다. 둘 다 의미가 있지만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인데, 생산뿐 아니라 소비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중요하다. 돈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화의 주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박창순|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이하 박창순)=산업화 이후 대량 생산·대량 소비 체제가 굳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지구 생태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이 윤리적 소비의 근본이라고 본다. 윤리적 소비를 한 마디로 말하면 책임있는 소비다. 상품 구매 결정권을 가진 소비자가 단순히 상품만이 아닌, 제조의 성격과 제조 과정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을 위한 깨어있는 소비다.



 


이보은|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이하 이보은)=소비자 권리가 신장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브랜드나 기업 상술에 포획된 측면이 있다.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따질 수밖에 없다. 윤리적 소비는 시민의 양심과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만나는 접점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본다.



이덕승=보통 소비는 경제적 효용성에 입각한 행위인데 이를 비윤리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윤리적 소비는 개인의 만족 추구와 관계 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다른 가치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비자 운동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보은=한국에서 윤리적 소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불매운동에서부터 발전된 서구와 다른 점이다. 기업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은 선진국 수준인데, 소비자 쪽에서는 초과 비용 지불 의사가 낮게 나오는 등 미흡하다. 과거 녹색소비자 운동이 있었고 2004년쯤부터 공정무역이 도입됐다. 하지만 외국처럼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나 교육의 소산이라기 보다는 세계 시장에 자리잡은 비즈니스들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시작됐다.



김찬호=공정무역 이전에 생활협동조합이 있었다. 일본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한국 생협은 처음부터 직거래와 농촌 살리기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모델이다. 먹거리 중심인데 위험사회에서 불안이 커지면서 최근 늘고 있다. 생협은 어떻게 보면 가장 이타적인 요소와 이기적인 요소가 만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당장 이익이 안 되더라도 지구 전체까지 고려하는 부분은 미진하다. 또 환경과 관련된 것은 있지만 문화에서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 술 대신 연극을 보는 것이 곧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인데 말이다.

 

박창순=다양한 생협이 윤리적 소비의 확대에 기여했다고 본다. 다만 조합원 위주여서 제한적이고, 빈곤 등 국제적 이슈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공정무역은 한국에서 첫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이보은=‘우리 밀 살리기 운동’은 한국의 윤리적 소비 운동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시장 점유율도 나름대로 성공한 것으로 안다. 그동안 생협은 유일한 진지(陣地)였는데, 일반 시장에 진입한 것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농촌에 대한 부채의식, 신토불이 등이 갖는 한계도 있다. 국내 농업을 돕는 일과 함께 국제무역 속의 공정성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찬호=‘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듯이 내셔널 코드가 강한 측면이 있는데, 글로벌한 차원에서도 기회로 바라보거나 방어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가 한 축을 맡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반지 하나 만드는 데 브라질 금 채굴 노동자들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받는다는 점 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로컬 차원에서라면 지역화폐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박창순=윤리적 소비가 보다 활성화되려면 개인이나 시민사회, 기업,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특히 ‘촛불’에서 개인의 힘이 크다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윤리적 소비, 윤리적 생산도 일상에서 실천한다면 가능하다. 공정무역의 경우 시장 확대라는 과제와 함께 소비자 교육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외국에 정부개발원조(ODA)를 하고 있는데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관련 정책도 추진하면 좋겠다.




김찬호=지난해 ‘고용 없는 성장’을 했는데, 존재 가치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노동은 밥벌이 수단으로, 유통은 사기, 소비는 욕망의 탕진으로 전락하는 등 경제행위 전반에 왜곡이 있다. 또 소비 차원에서 윤리가 화두인데, 윤리라는 말은 도덕주의적 느낌이 든다. 삶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꾸면 어떨까 한다. 시장이라는 것은 원래 사회문화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형의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은 더더욱 희망이 없다.

이보은=촛불 정국에서 보여준 개인의 참여가 일상 속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슈퍼마켓에 가는 일이 지구의 미래가 걸린 투표행위와 같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과 정부 정책에 변화를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도 시급하다. 윤리적 소비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해서 반 소비 운동도 포함된다. 시민사회가 좀더 다양한 활동으로 윤리적 소비 의식을 키워야 한다. 또 윤리적 소비가 확산되려면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나 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모델이 나올 수 있다. 정부가 하는 사회적 기업 사업은 취약 계층에 치중돼있는데, 새로운 문화적 가치들을 포함해야 한다. 환경마크와 같은 긍정적 정책들도 더 나와야 한다.



이덕승=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의 변화다. 윤리적 상품들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90년대 초반 녹색상품 구매 운동이 일었는데 제품의 품질이 그다지 우수하지 않아서 약화됐다. 공정무역도 일반 대기업 등과 눈높이를 맞춰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얻고, 공공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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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기자



‘착한 소비자’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환경과 인권을 배려하는 감수성,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결심만 있다면 일상에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여성환경연대와 icoop생협연합회의 도움으로 윤리적 소비 수칙들을 모아봤다.



■ 친환경적 먹거리를 선택한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을 먹지 않는다. GMO는 인체에 유해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다국적 기업의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 전 세계 가난한 농민들을 더욱 궁핍하게 한다. 대신 생산자를 배려하는 공정무역 제품을 골라 쓴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에서 대량의 곡물 사료로 사육된 소, 돼지, 닭고기를 먹는 것도 자제한다.



■ 친환경적 옷차림을 즐긴다



유행에 따라 한철 입고 버리는 값싼 ‘패스트 패션’은 거부한다. 저임금 노동 착취로 생산됐을 가능성이 큰 데다, 옷을 폐기할 때 환경 유해 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새 옷을 자꾸 사들이기보다 리폼 등 스타일 변형 서비스를 받는다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지역 중심으로 소비한다



대형 할인점보다 가까운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하면, 차량 이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충동구매도 막을 수 있다. 해외 여행을 떠나서도 대형 리조트·음식점 체인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나 식당을 이용한다. 다국적 자본이 아닌 현지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책임 있는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 적극적 목소리를 낸다



기업에 윤리적 제품의 생산을 요구하고, 식품 안전과 관련된 각종 캠페인이나 학교 급식 감시단 등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친환경적이고 검증된 국내 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에 참여하는 것도 소비자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 지갑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한다


우리가 사고, 쓰고, 버리는 물건의 양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윤리적 소비의 핵심이다. 필요한 물건인지, 빌리거나 나눠쓸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한다. 물건을 다 쓰고 난 후에 어떻게 처리할지에도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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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걸음마 뗀 한국의 ‘윤리 소비’

글 김유진·사진 정지윤기자



지난 7월30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icoop 안산시민들의생활협동조합’ 7월 마을 모임(아래사진)이 열리는 정창숙씨(35) 아파트에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자, ‘물품 민원’ 시간부터 진행할게요.” 생협 조합원인 주부 10명과 둥글게 둘러앉은 icoop 안산생협의 김은희 사무국장이 운을 뗐다. 생협에서 구입하는 물건의 품질이나 배달 문제 등에 대해 조합원들이 불만과 건의 사항을 나누는 자리다.





조금 비싸고 번거로워도 기꺼이 ‘친환경 먹거리’ 유통



한 주부가 더운 여름철이라 생협의 유기농 제품이 신경 쓰인다고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라인 매장이 너무 붐벼서 불편한데 직원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선희씨(41)는 “요즘 계란과 돼지고기 사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특히 돼지고기는 인터넷에서 모두 동났을 정도다.



김 사무국장이 곡물가 폭등으로 돼지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난 데다 봄부터 조합원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물량이 많이 부족해졌다고 설명했다.



주부들은 이날 가정에서 수도요금을 절약하는 방법도 논의했다. 물 사용량이 많아지는 여름, 환경과 에너지를 생각하는 알뜰하고 윤리적인 소비자가 되자는 취지다.


정씨는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세계적으로 물 부족이 심각하고, 식수조차 없어 힘든 나라들이 많다”고 말했다.
 


물·전기 아끼는 방법도 토론



샤워기나 세탁기 등을 절수·절전형으로 교체하고, 세수나 양치, 설거지할 때 컵이나 대야에 물을 담아 쓰자는 등의 제안이 쏟아졌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의 유통을 지향하는 생협. 생협은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이자, 윤리적 소비의 풀뿌리 현장으로 볼 수 있다. 조금 비싸고 번거롭더라도 환경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믿을 만한 제품을 사겠다는 생협 조합원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윤리적 소비자 군단이다.



자녀가 아토피를 앓고 있어 생협에 가입했다는 강난예씨(45)는 “생협의 물품에는 색소나 항생제,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맛도 좋다”며 “일반 가격보다 100~200원 비싸지만 부담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생협에서 대부분의 장을 보고 있는 최수아씨(34)는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로서 (생협에서 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올들어 회원 수 2배 늘어



지난해 9월 처음 시작된 icoop 안산생협 마을모임은 안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임에 속한다.



경북 포항에서 안산으로 이사한 뒤 마을모임을 시작한 정창숙씨는 “사실은 네살 된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가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주위 사람들에게 생협 가입을 적극 권유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생협 조합원이 된 정씨는 중고 장난감 구입,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등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당장 변화는 없을지라도 환경 파괴를 조금씩 막을 수 있다면 내 아이 세대가 어른이 될 때에는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생협의 역사는 1980년대 무렵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최근 환경과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협의 인기는 부쩍 높아졌다. icoop 생협연합회(전 한국생협연대)도 올들어 지난 6월까지 회원 수가 지난해보다 200%나 늘어나는 등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안전성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불거진 5월 한 달에만 2133명이 신규 가입했다.



icoop 생협의 전수영 조합지원팀장은 “과거 생협이 출자금을 내는 조합원들 중심이었다면, 대기업의 증가와 수입농산물로 인한 타격이 커지면서 좀더 큰 사회운동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나 쌀 시장 개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생협 5년차 주부’인 김선희씨는 얼마 전 생협에서 친환경 농가를 방문했을 때 “친환경 농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목격했다”면서 “소비자로서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생협 외에 공정무역, 기업 보이콧, 책임여행 등 다른 윤리적 소비 형태도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공정무역·기업 보이콧 관심



공정무역의 경우 200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정무역을 시작한 ‘아름다운 가게’가 네팔 공정무역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등을 판매하고 있고, YMCA는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커피숍 ‘카페 티모르’를 운영 중이다.
 


두레생협은 2004년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서 생산된 공정무역 설탕을 출시했고, icoop 생협은 콜롬비아 생산자로부터 사들인 커피와 초콜릿 등을 팔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의류, 장신구, 도자기, 차 등 120여종의 공정무역 제품을 지난해부터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서울 안국동에 공정무역 전문 오프라인 매장 ‘그루’를 열었다.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 본사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팔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국내 대기업이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6월부터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에서 공정무역연합이 유통하는 공정무역 인증 초콜릿, 잼, 설탕, 코코아 등을 팔고 있다. 보이콧 운동 역시 윤리적 소비 운동의 한 형태로 정착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가 불거졌을 때 이랜드 계열사인 홈에버, 뉴코아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이랜드가 여성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하고 노조를 탄압한 데 반발하면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자는 의미였다. ‘나쁜 기업 이랜드 불매 시민행동’이 조직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한 캠페인이 펼쳐졌다.



몇 해 전부터 서구에서 윤리적 소비의 하나로 떠오른 ‘책임여행’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기름 유출 사고로 큰 피해를 본 충남 태안지역에서 단체 봉사활동을 벌이거나,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 가족, 기업 단위로 일부러 태안을 찾는 것 등은 책임여행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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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트네스 변혁 마을 공동설립자 벤 브랑윈

토트네스 | 정환보기자



대안적 삶을 찾아 토트네스를 찾는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 이곳에서 토트네스 파운드를 발행하는 등 지역공동체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토트네스 변혁 마을(TTT)’의 공동설립자 벤 브랑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브랑윈에게 “토트네스가 윤리적 소비의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일상생활에서 윤리적 소비자가 되려면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그는 대뜸 “소비자는 누구를 말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사람에게 ‘소비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회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품에 상표를 붙이는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소비자라는 딱지를 붙였다”면서 “사람이 소비자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소비자’라는 단어 앞에 ‘윤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TTT운동은 궁극적으로 ‘행복’ ‘관계’ 등의 인간중심적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현대 소비사회는 물질적 가치인 ‘경제성장’을 그 중심에 놓는다. 이 같은 전제 하에 브랑윈은 윤리적 소비 개념 자체에 회의적이다. 그는 “소비에 ‘윤리적’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갖다붙인 것은 기존의 경제성장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며, 패러다임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이 지고지선인 사회는 항상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지구는 그것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인류는 현재 에너지 정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다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를 혁파해야 합니다.”



그는 “토트네스에서도 전체 인구 8000여명 가운데 TTT운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2000명 정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며 “단 5%만이라도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브랑윈의 등 뒤에는 2025년까지 토트네스에서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힌 연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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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탄탄한 경제·돈독한 유대 지역화폐 ‘tp’로 산다

토트네스 | 글·사진 정환보기자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에요. 평화로운 마을이기도 하지요.”



지난 6월 말 영국 남서부 데본주의 토트네스에서 만난 베스 크레든 할머니의 말이다. 토트네스는 영국의 은퇴 노년층과 보헤미안 스타일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인구 8000여명의 소도시다.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의 상점가인 하이스트리트의 주말 풍경. 토트네스는 윤리적 생산·유통·소비를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가파른 오르막길에 형성된 중심가인 토트네스의 하이스트리트에는 ‘윤리적 상점’들이 가득했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육류와 식료품을 파는 정육점, 야채 가게, 식당은 물론 공정무역 옷가게들도 여럿 보였다.



상점들 3분의2 가량 동참



이들 가게의 출입문에 붙어있는 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역 화폐인 ‘토트네스 파운드(tp)’ 사용이 가능하다는 표지였다. 200m 남짓한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전체 상점의 3분의 2가량은 이 표지를 붙여 놓았다. 1토트네스 파운드는 1파운드에 해당한다. 일부 상품과 식당 메뉴만 tp로 계산하면 2~3%가량의 할인이 될 뿐 대부분은 가격이 같다.



환율도 똑같고 가격도 대동소이한데, 지역 화폐를 받는 상점이 많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화폐를 발행하는 일종의 중앙은행 ‘토트네스 변혁 마을(Transition Town Totnes, TTT)’ 단체의 본부를 찾아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토트네스 파운드가 이 지역의 경제를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TTT의 공동설립자 롭 홉킨스는 “지구적 규모의 자본·상품·서비스 순환이 이루어지는 현재 상황에서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돈이 그 지역을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같은 금액을 쓰더라도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화폐를 사용하면 궁극적으로 지역경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개인의 지출이 거대자본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역 화폐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토트네스 파운드는 2007년 3월 TTT가 발행한 것이다. 1tp권 지폐만 발행되며 300tp(약 60만원)로 시작했다. 2년도 안 된 현재 이 지역에는 6000tp(1200만원)가 돌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의 참여로 토트네스 파운드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고무된 TTT는 상점과 상점 간의 거래 편의를 위한 전자화폐 도입을 준비 중이다.



홉킨스는 지역 화폐 활성화가 환경을 살릴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역 화폐는 지역 상점들만 쓰기 때문에 결국 ‘지역 상점 이용 캠페인’과 다르지 않다. 지역 화폐가 지역민의 생활 속에 자리잡게 되면 에너지 소비의 주범 중 하나인 대형 마트가 설 땅이 사라진다.



대형마트 추방 환경도 살려


 


토트네스 하이스트리트의 한 식료품점에 지역 화폐인 토트네스 파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가까운 곳에서 충분히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는데, 단지 싸다는 이유로 대형 마트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현대인들의 소비 행태다. 대형 마트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탄소를 발생시킨다. 유통 거리와 가격을 맞바꾼 것이다. 하지만 홉킨스의 생각은 달랐다. 당장은 쌀지 몰라도 결국 가격 수준이 오르는 게 대형 유통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가격은 작은 문제일 수 있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와 지구 환경 문제는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홉킨스는 “앞으로는 작은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트네스 파운드는 작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유로화가 유럽 통합의 상징이듯 토트네스 파운드는 토트네스 주민들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하이스트리트 꼭대기에 있는 ‘비숍스턴’은 공정무역을 거친 인도풍 의류를 판매하는 상점이다. 이곳에서 지난해부터 일하고 있는 홀리 보드머(22)는 토트네스 자랑에 열을 올렸다. 보드머는 “토트네스 태생은 아니지만 이곳은 고향보다 더 고향같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좋다고 했다. 그는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고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에 유대관계 형성이 잘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게가 공동체 ‘고리’ 역할

 


지역 화폐 토트네스 파운드




하이스트리트의 상점은 물건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커피와 주스 등을 파는 ‘레몬젤리’ 카페에는 ‘주민 후원 모금함’이 있다. 이번 후원 대상은 여자친구와 베트남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토비 포트(24)다. 그는 자전거 사고로 중상을 입어 2년여간 병상 신세를 졌고 최근 건강을 회복했다. 레몬젤리 매장에는 그의 완쾌를 축하하는 토트네스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메시지가 담긴 방명록이 비치돼 있었다. 이들은 1~100파운드의 후원금을 기꺼이 내놓았다.



하이스트리트 옆에 있는 ‘마켓 스퀘어’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장이 열린다. 간이 판매대를 고정적으로 차리는 업체는 11곳 정도다. 모두 장터 인근에 거주하면서 직접 생산한 식료품을 판다. 치즈, 잼, 빵 등이 주로 사고파는 식품들이다. 식품 이외에도 각종 중고제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도 성행하고 있다. 헌책 판매대에서는 ‘로컬 푸드’와 대안적 삶을 소개하는 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마을회관에서 ‘직거래장터’가 열린다. 여기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많이 파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람과 교류하고 직접 만든 식품을 이웃과 나누어 갖는 것이 목적이다. 2000년부터 이곳에서 달걀과 달걀요리를 팔고 있는 리오아나 마티아스는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먹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민들 “삶과 소비는 하나”



장터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력이 넘쳤다. 삶과 소비가 분리되지 않은 토트네스 주민들은 윤리적 소비를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다음달 TTT 지역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홉킨스는 달라이 라마가 말한 ‘우리 시대의 역설’을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그는 ‘인류는 달나라까지 다녀왔지만 이웃을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현대인들은 편리하게 살게 됐지만 시간은 더 부족해졌다’고 한 달라이 라마의 말을 전하면서 “토트네스에서의 삶은 여느 현대인들과 다른 삶이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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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 전문 식당 기쓰 우오신’ 사장 가쿠다 마모루

오사카 | 박지희기자



일본에서는 최근 푸드 마일리지를 도입, 적용하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에 될 수 있는 한 지역 토산물을 사용, ‘착한 소비’에 기여하면서 고객들에게 푸드 마일리지의 홍보 대사도 되는 셈이다. 


 
한국에는 생소하지만, 관혼상제 행사용 배달 도시락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기쓰 우오신(木津うを新)’의 가쿠다 마모루(角田守) 사장(사진)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가쿠다 사장은 사실 푸드 마일리지를 알기 전부터 지역의 농산물 사용을 선호해왔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나고 자란 채소를 먹는 생태계의 순환이 사람의 품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정리하고 조사하다보니 푸드 마일리지에도 닿게 됐다”며 “될 수 있는 대로 일본의 것, 그래도 안된다면 한국 등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난 재료를 사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메뉴까지 바꿨다. 그는 “국산 성게는 너무 비싸 저렴한 도시락에는 아예 넣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산 송이버섯은 맛이 좋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과감히 빼버렸다”고 말했다.



대신 인근 교토에서 나는 오이의 일종인 게마큐리, 오사카산 연근, 호박 등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전통 채소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천이 쉬운 일은 아니다. 농지가 사라져가는 요즘, 도시 한복판에서 전통 채소를 찾으려면 제법 발품을 팔아야 한다. 2%선인 오사카의 식품 자급률이 특히 문제다. 한때 가쿠다 사장의 할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농가에서 공급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끊겼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다. 보통 음식업의 원가는 판매 가격의 40% 전후를 맴돈다. 하지만 이곳의 원가는 60%에 이른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마이너스지만, 전체적인 이미지 향상에는 도움이 됐다. 푸드 마일리지와 지역 토산물을 알리는 노력을 좋게 보는 시선이 늘면서 기업의 대량 구매도 늘었다.



가쿠다 사장은 “처음에는 반대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자긍심을 갖게 됐다”며 “가격 위주로 생각하는 소비 문화 대신 환경과 순환을 고려하는 의식이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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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식재료 이동거리·온실가스 일일이 체크

오사카 | 글·사진 박지희기자




일본 오사카의 묘켄자카 초등학교에서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이 진행된 지난 6월11일, 하야시 미호 간사(오른쪽 두번째)가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처 효고현에서 생산된 귤은 별 한 개이지만, 미국에서 온 오렌지는 별이 열 다섯 개, 그레이프후르트는 서른 개랍니다.” “말도 안돼.” “엣, 거짓말.”



지난 6월11일, 오사카부(大阪府) 가타노시(交野市)에 위치한 묘켄자카(妙見坂)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 도중 벌어진 풍경이다. 이 게임에서 나온 ‘별’은 단맛이나 품질을 나타내는 단위가 아니다. 과일이 생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배출된 모든 이산화탄소의 양, 즉 푸드 마일리지를 나타낸다.



식재료의 운송 거리와 이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고려하는 푸드 마일리지는 친환경 식생활을 부르는 ‘착한 소비’다. 푸드 마일리지를 의식하고 먹거리를 택할 때 운송 거리를 줄인 그 지역의 제철음식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국산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1g에 불과하지만 수입산은 341g으로 늘어난다. 푸드 마일리지를 의식하고 먹을거리를 택한다면 운송 거리를 줄인, 그 지역의 제철 음식을 먹게 된다. 결국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물론 지역 농업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 식생활을 부르는 ‘착한 소비’인 셈이다.



일본에는 2000년대 들어 도입됐지만 이제야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다.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을 진행한 아오조라(靑空) 재단의 하야시 미호(林美帆) 간사는 “처음 들을 땐 비행기나 쇼핑처럼 푸드 마일리지도 많이 쌓여야 좋은 것인 줄 착각하는 분이 많다”며 웃었다. 푸드 마일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이다보니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일본에서는 거품경기 붕괴 후 ‘99엔숍’ ‘100엔숍’이 붐을 이룰 정도로 쇼핑에서 금액이 중시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아오조라 재단은 게임과 별을 통해 푸드 마일리지의 이해를 돕는다. 1970년대와 요즘, 봄과 겨울의 계절에 따라 4개의 팀을 나누고 주로 소비되는 식재료 카드로 식단을 만든 뒤 카드 이면에 표시된 별로 이산화탄소량을 비교해보는 것. 별 한개는 이산화탄소 20g만큼을 나타낸다.



이날은 환경 관련 세미나에서 재단의 쇼핑 게임을 접한 나가노 쇼지(永野勝次) 교장의 추천으로 교사 20여명이 참여했다. 가장 이산화탄소가 적은 팀은 생선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짜 9개의 별을 얻은 ‘70년 봄팀’이었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오사카 인근에서 재배된 데다 쇼핑도 도보로 이동, 이산화탄소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현재 겨울팀’은 별 36개로 앞 팀에 비해 4배나 더 많았다. 식재료 대부분이 외국산이고 자동차로 슈퍼마켓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교사들도 막상 비교해 본 결과를 보고 예상보다 큰 차이에 깜짝 놀랐다. 5학년을 담당하는 교사 도야마 리츠코(富山律子)는 “매스컴에서 보고 푸드 마일리지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개념이 막연했다”며 “교사로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주부로서 쇼핑할 때도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야시 간사는 “푸드 마일리지를 눈으로 비교하면 바로 충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이 또 한번 놀라는 것은 무조건 근처에서 또 국내에서 재배된 식재료라 해서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내 홋카이도에서 키운 양파와 뉴질랜드에서 자란 호박을 비교하면 당연히 홋카이도 쪽에서 나온 것이 더 적을 듯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홋카이도에서는 트럭으로 소량 수송하게 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비행기로 대량 수송하기 때문에 개당 푸드 마일리지는 오히려 뉴질랜드 쪽이 더 적게 된다. 또 국내산만을 고집할 경우 사계절의 특성상 제철 음식이 아닌 작물을 온실에서 키워야 해 탄소 배출량이 더욱 늘어나는 경우도 생긴다. 교사 이가 오사무(伊賀治)는 “푸드 마일리지를 적용해 안을 들여다보니 우동이나 채소 절임처럼 당연히 일본식 밥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외국산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일본 내에서는 푸드 마일리지와 친환경 식생활과 관련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39%로 떨어진 데다 중국산 ‘농약 만두’로 식품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식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이 불어닥친 까닭이다. 실제 일본의 연간 푸드 마일리지는 약 9000억㎞로 우리나라(3000억㎞)의 3배, 프랑스(1000억㎞)의 9배에 이른다.



아오조라 재단은 푸드 마일리지의 본격적 실천을 위해 도쿠시마부(德島府) 도쿠시마시(德島市)의 생활협동조합과 협력을 준비 중이다. 생협이 운영하는 매장의 식품에 푸드 마일리지 표지를 붙이는 것. 푸드 마일리지의 홍보와 함께 이산화탄소와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다. 도쿄에서는 ‘대지를 지키는 모임(大地を守る會)’에서 푸드 마일리지 게임의 ‘별’과 비슷한 개념의 ‘포코’를 제안,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포코는 식품은 물론 택배 대상 상품에도 표시돼 이산화탄소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의 ‘신토불이’ 운동처럼 자국 내에서 생산된 식품을 소비하자는 ‘지산지쇼(地産地消)’ 운동도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하야시 간사는 “무조건 외국산 식품을 반대한다거나 도보 쇼핑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푸드 마일리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물건을 사는 일이 단지 개인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있는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

영국 환경운동가 팀 랭이 창안한 것으로 식재료가 생산·운송·소비되는 과정에서 운반된 거리를 뜻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인간 활동의 모든 것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흔적을 뜻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과 결합, 이동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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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롭 해리슨/ 英 ‘에티컬 컨슈머’편집장

맨체스터 | 정환보기자



영국 맨체스터에는 ‘에티컬 컨슈머(Ethical Consumer, 윤리적 소비자)’라는 잡지가 있다. 에티컬 컨슈머는 20년 역사의 격월간 잡지로 기업과 제품을 윤리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해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롭 해리슨 편집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리적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출발점이며, 선택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청소년들은 중·장년층과 달리 전통적 개념의 윤리적 소비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브랜드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광고를 통해 접하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리슨 편집장은 그것이 오히려 윤리적 소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청소년들은 우리 잡지를 통해 나이키,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 자신들이 항상 관심을 갖는 브랜드와 기업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윤리적 소비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해리슨은 선택의 중요성을 꼽았다. 소비는 결국 선택을 동반하는데 일상적 소비 생활에서 이런 선택의 기준을 정립하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윤리적 소비는 비싸다’는 생각도 편견이라고 했다. ‘꽃’ 같은 일부 품목에서는 유기농 제품이 더 싸다는 평가 결과를 제시했다.


해리슨은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참여도 운동 확산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인기 높은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학교 급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해 큰 성과를 거둔 사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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