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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나 경쟁자와 불가피하게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적이었지만 오늘은 친구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한 친구는 아니고 언제든 다시 적이 될 수 있다. 소위 ‘프레너미(Frenemy)’이다. 친구라는 뜻의 ‘프렌드(Friend)’와 적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합쳐 만든 말이다. 철천지원수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에 타서 풍랑을 만난 오월동주(吳越同舟) 상황, 한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다가 어느새 함께 웃고 수다를 떠는 여성, 대기업에 맞서기 위해 경쟁 관계인 중소기업끼리 구축한 연합 전선 등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전 세계를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보조를 맞추는 미국과 중국도 대표적인 프레너미 관계이다. 2012년 2월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하자 미 언론은 “프레너미가 왔다”고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프레너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40년 지기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죗값을 덜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원수지간이 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뒤편 왼쪽에서 두번째)가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켈리언 콘웨이(뒤편 왼쪽) 등과 함께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본사를 방문해 경영진과 칼럼니스트,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엊그제 뉴욕타임스를 방문해 이 신문을 ‘세계의 보석’이라고 극찬했다. 함께 만난 20여명의 기자에게는 “내가 잘못하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 기쁘게 들을 것”이라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대선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트럼프에 대해서는 여성 편력과 세금 탈루 의혹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도 대선 기간 뉴욕타임스를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부르는 등 적대감을 표출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트럼프가 뉴욕타임스를 프레너미로 삼으려 한다며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정자라면 언론의 선의 있는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 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레너미와 어감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인 등 취재원과 언론의 이상적인 관계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까워 유착이 생겨도 안되고, 너무 떨어져 소통이 불가능해도 안된다는 의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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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결과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반응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마치 페이스북을 통해 조작된 뉴스를 보고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미국인들처럼, 특히 일부 진보 인사들은 잘못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해 엉뚱한 방향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트럼프는 미국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틀렸다. 현지시간으로 11월17일 현재, 힐러리 클린턴의 총득표는 6282만5754표, 반면 트럼프는 6148만6735표에 그치고 있다. 약 130만표 차가 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500만표가량 개표되지 않은 표가 남아있다.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당선은 민주주의적 원칙보다 연방주의적 원칙이 우선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선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성조기를 배경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ㅣAP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층은 분노한 노동자들이다?’

천만에. 트럼프의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들이다. 숫자를 보자. 미국인의 중위소득은 5만6000달러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약 6만1000달러의 중위소득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중위소득은 7만2000달러로, 클린턴 지지층에 비해 1만달러가 높을뿐더러 평범한 미국인들에 비해서도 1만6000달러나 더 높다. 이것은 평균이 아니라 중위값이므로 ‘슈퍼 리치’들이 공화당을 지지해서 왜곡된 통계가 아니다. 주요 트럼프 지지층이 ‘가난하고 분노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샌더스가 나갔다면 이겼을 것이다?’

어림도 없다. 샌더스는 클린턴에게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다. 특히 민주당의 ‘미래 지지 기반’인 히스패닉 및 소수자 집단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경선 패배의 원인이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전국 득표력이 필요하다. 샌더스는 백인 밀집 지역인 ‘러스트 벨트’에서만 상대적 우위를 갖는 약한 후보였다. 게다가 샌더스가 트럼프와 1 대 1 토론에서 어떤 처참한 꼴을 당했을지 상상해봐야 한다.

 

미국 대선 관련 주요 이벤트를 모두 시청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샌더스는 트럼프의 상대가 못된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잽 부시를 문자 그대로 짓뭉개버렸다. “닥쳐”(You shut up)라며 손가락질을 해대고 목청을 높이는 트럼프를 부시 집안의 세번째 대통령 출마자는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트럼프는 온갖 부동산 거래뿐 아니라 리얼리티 쇼와 프로레슬링 무대 등으로 단련된 ‘미디어 인파이터’다. ‘남자 대 남자’로 맞대결해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점잖게 나오면 말을 안 들어먹고, 똑같이 진흙탕 싸움을 하면 이쪽이 더 손해를 본다. 클린턴처럼 소수자에 속하는 누군가가 품위 있는 태도로 맞서는 것만이 해법이었다. 샌더스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었다.

 

정리해보자.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최소 130만표 뒤졌지만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해 승리했다. 게다가 트럼프 지지자들은 평균적인 미국인뿐 아니라 클린턴과 샌더스의 지지자들보다 잘사는, 교외에 거주하는 겉보기에 점잖은 백인 중산층들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키워드는 ‘분노한 민중’이 아니라 ‘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득권층’인 것이다.

 

그런데 왜 미국 대선을 ‘가난한 노동자의 반란’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을까? 한국식으로 치자면 여성, 세월호 희생자,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외국인 노동자, 중국계 동포 등을 모욕하며 증오를 선동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베 스타’가 바로 트럼프다. 일부 인사들은 그러나 승자에게 감정이입하여, 트럼프의 승리에 어떤 ‘진보적 가치’를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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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도널드 트럼프는 제일 강대국의 권좌를 차지했다. 다수의 미국인은 희망에 들떴고, 언제나 번영했던 1%는 안도했다. 또 다른 다수는 충격 속을 헤매고, 4%는 생계를 위협받으며, 1%는 린치 공포에 떤다. 1100만명의 불법체류자와 330만명의 무슬림이다. 여기에 약자로 구분되는 1%의 동성애자, 6%인 아시안, 18%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흑인과 여성을 포함한다면, 선거 결과는 가히 재앙급이다. 물론 이들 중에도 트럼프 지지세력은 있다.

 

하지만 거리를 가로지르는 위협, 극도의 혐오는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고 히잡과 피부색만을 표적으로 삼는다. 인권단체인 남부빈민법센터(SPLC)에 신고된 증오행위만 개표 후 500건에 육박한다.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인종주의자 스티브 배넌이 지명되고 초강경 반이민 노선을 펼칠 제프 세션스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됐다고 한다. 과연 미국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백인의 실제 생활 속 우월감은 안전할까.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대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극우 인종주의자인 스티브 배넌 전 브레이트바트 대표를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임명한 데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시위자가 트럼프 가면 아래 ‘인종주의자, 편견쟁이, 사기꾼’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AFP연합뉴스

 

한국의 몇몇 진보 언론에는 트럼프 당선이 “소외된 백인 노동자들이 만든 합리적 선택”이라는 과잉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부글대던 노동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변화를 선택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트럼프가 불쏘시개질을 한 분노가 ‘합리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

 

몇몇 진보 지식인들은 트럼프 안에 진보적 가치가 있다고도 말한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판, 외교안보에서 미국의 실리를 우선하는 고립주의 노선이 주한미군 철수 같은 한국 내 일부 진보의 주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철저한 보수이며 극우 포퓰리스트이다. 그가 말한 미국의 이익이 노동자와 농민과 소비자의 이익인지, 상위 10%를 위한 이익인지 봐야 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장 환호한 그룹은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삼는 에너지산업, 군수산업, 그리고 월스트리트다. 거대 제약회사들도 즉각적으로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트럼프가 말한 감세정책이 실행될 경우 최고 1%에게는 14%가 넘는 혜택이 돌아간다. 당연히 최상위 수혜자 명단에 트럼프의 이름도 오를 것이다.

 

미국의 달러 가치를 엄호하는 힘은 군사력이다. 버락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무르다고 비판해온 마이클 플린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낙점됐다. 미군 철수는 트럼프의 ‘흔들기’일 뿐이며, 방위비 추가 부담을 요구할 압박용 카드가 될 수 있다. 에너지 장관에 석유재벌 헤럴드 햄이 거론되는 데에서 보이듯, 화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긴장 국면 또한 우려를 낳는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암초를 만났다. 세계를 위협하는 반동이다.

 

트럼프 승리의 진정한 주역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다. 선거 후 통계가 보여주듯 당내 경선에서 분열됐던 지지층은 트럼프에게 다시 모였다. 거기에 오랜 시간 정치를 외면하던 나이든 백인표가 돌아오며 외연이 확대됐다. 이들이 경제적 이익과 진보적 가치를 만드는 발판으로 트럼프를 선택했다고는 할 수 없다. 백인 중하위층은 실력 위주 경쟁질서 속에서 엘리트 중심으로 꽉 짜여졌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 선택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트럼프는 또다시 배신의 선택을 준비한다. 성과 위주 교육을 대표하고, 교원노조와 교수들의 집단적 반발을 샀던 미셸 리가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된다.

 

선거 내내 트럼프가 재생한 것은 1960년대 리처드 닉슨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백인 노동자들에게 읊어댔던 3대 선동이다. ‘민권 운동 덕에 사람이 된 흑인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물든 여성이 남성의 권위를 깔아뭉갠다’, ‘반전 운동의 주역들은 사회주의자이며 대학을 나온 진보 엘리트들로 너희를 멸시할 것이다’. 트럼프는 이를 ‘흑인들에게 퍼주기를 하는 오바마케어 탓에 백인 주머니가 털렸다’, ‘일자리를 빼앗는 이민자’, ‘성폭행범 라티노와 테러리스트 무슬림’으로 버전업했다.

 

여기에 동참한 세력은 백인만이 아니다. 경제력을 갖춘 이민 1세대뿐 아니라 1.5세, 2세 전문직 종사자들도 끼어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작동한 것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 속에 정보기술(IT) 업계는 값싼 무경력자, 인도나 중국, 남미 등지에서 온 고학력 이민자로 대체되고 있다. 의료계나 연구직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정책은 사이다처럼 향수를 자극했고, 먼저 이민 온 세대들은 트럼프를 용인했다.

 

노엄 촘스키는 지난 14일 선거 결과를 분석하며 ‘다정한 파시즘’이라는 말을 썼다. 오래도록 끓고 있던 분노와 두려움을 ‘솔직함’으로 폭발시키고, 그 열기에 약자를 제물로 던져버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의 탄생. 욕망은 논리적이지 않기에, 세계 곳곳의 분노는 극우 정당들에 손을 내주고 있다.

 

우리의 광장은 뜨겁지만 어느 순간 각자의 희망에 따라 분열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광장에서 거둬내야 할 승리는 악을 제거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악을 무너뜨리고 세워낼 정의의 조각을 맞춰내야 한다. 각자 꿈꾸는 나라의 세세한 모양을 맞추고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더 이상 광장의 언어가 정치의 언어에 죽어가는 치욕을 허락할 수는 없다.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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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8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미국의 지성잡지라고 일컬어지는 ‘뉴요커’는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의 비극’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분석을 실었다. 각기 다른 전문가들의 분석이 얼마만큼 정확하고 포괄적인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놓고라도, 내가 보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가 지닌 ‘가치관’이다.

 

그의 삶이나 선거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연설과 행동에서 드러난 그의 가치관은 여성혐오, 인종혐오, 성소수자혐오, 이슬람혐오, 외국인혐오 등 갖가지 ‘혐오주의’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결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가 지닌 이러한 지독한 문제점 때문에 적어도 트럼프의 당선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표출해 온 남성 중심주의, 백인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기독교 중심주의, 자국민 중심주의가 인종, 피부색, 젠더, 국적, 종교, 성정체성 등에서 유래하는 ‘다름’에 대한 적대감을 제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도화된 적대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를 자연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합법화’시키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항의하는 시위가 12일(현지시간) 뉴욕, 캘리포니아, 필라델피아, 오리건 등 미국 곳곳에서 계속됐다. 1만명이 시위에 나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_ UPI

 

미국은 21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신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국은 단순히 모든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한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물론 트럼프는 전통적 의미의 파시즘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치관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현대판 파시즘을 국내외의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행사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여성, 이주민, 이슬람교도,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많은 이들을 제도적으로 ‘주변화’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범죄화’함으로서, 미국은 환대사회가 아닌 적대사회로, 포용사회가 아닌 배제사회로의 이행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할 위험이 있다. 미국이 이렇게 타자에 대한 혐오사회로 이행하면 이 세계 곳곳에 다층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러한 혐오적 가치를 노골화하고 있는 트럼프를 지지했는가를 조명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가능하게 한 막강한 세력은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하층 백인’, 특히 남성들이었다. 트럼프가 여자였다면 또는 그가 엄청난 부를 소유한 백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남성’들이 적대와 혐오를 노골화한 남성 트럼프를 지지하고, 그의 경제적 부와 성공을 자신들의 판타지로 삼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인종, 계층, 성별이 작동한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한 학력주의가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비판적 사유하기’를 주요 목적으로 삼는 교육을 통해서, 평등과 정의, 그리고 포용과 관용을 배우는 것의 중요성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류의 보편가치인 정의, 평등, 포용의 관점에서 볼 때 언제나 진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제적인 ‘보이는 발전’이 언제나 인간됨을 의미하는 가치들의 확산인 ‘보이지 않는 발전’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특정한 그룹에 대한 인권 유린과 탄압이 자연적인 것으로 제도화될 때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비판적 사유’와 그 사유에 근거한 연대적 실천이다. 그래서 ‘사유-판단-행동’은 우리가 이 세계와 연계되는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 세계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 장-뤽 낭시의 말이다. 그런데 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생태위기, 기아, 전쟁 등 ‘보이는 파괴’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권리 확장, 평등과 정의와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의 붕괴도 심각하게 이 세계의 파괴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배우고, 그 사유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스스로 성숙하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적대와 혐오사회로의 이행에 다층적으로 저항하고 실천하기 위한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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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국 시민인 당신을 위로할 처지가 아닌 줄은 압니다. 그러나 서로 슬픔과 고통을 나누면 한결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평생 여자의 꽁무니나 쫓고 혐오발언을 일삼던 자가 대통령 된다는 사실에 한숨짓습니다. 로비스트·가족으로 인수위원회를 구성한 트럼프를 보며 다시 절망하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 한국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트럼프는 성인입니다. 수세에 몰린다고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가업을 일궜다’며 동정심을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손자를 봤을 나이인데도 위기마다 고아라는 걸 내세우거나 “외롭게 살았다”는 어리광으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습니다. 최고 권력을 맘껏 누리면서도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국정을 이끌지 못할 만큼 미성숙하지도 않고, 사람과 마주하기를 꺼리는 아이처럼 낯가림이 심하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우리 한국인을 떠올려 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타워 앞에서 반트럼프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당신은 트럼프의 아들·딸·사위가 공직을 맡는 걸 싫어하겠지만, 그들의 지위에 합당한 책임은 물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일상적으로 평가받고 감시받을 테니까요. 적어도 박근혜처럼 하지는 않을 겁니다. 박근혜가 어떻게 했느냐고요? 가족을 감시한다며 청와대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했죠. 그래서 우리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 있는 동안 ‘또 다른 가족’이 감시망 밖에서 활개 칠 수 있게 마당을 펼쳐주었습니다.

 

트럼프가 인종·여성차별주의자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분노한 노동자를 대변하기도 했죠. 하지만 박근혜가 대변한 건 죽은 박정희·최태민입니다. 산 사람 중에선 딱 한 명 있습니다. 최순실. 이게 4년간 발각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바로 박근혜의 강점, 잘 속이고 잘 감추는 능력 덕입니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 눈 깜짝 안 하고 말하는 솜씨를 트럼프는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트럼프의 흠은 너무 솔직하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당신이 트럼프 대통령 치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략 짐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가 자신의 공약대로 하겠다고 말함으로써 불안을 부추기고, 말한 대로 안 하겠다고 함으로써 혼란을 조성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조정기를 거치면 줄기가 잡히겠지요. 요즘 취임도 하지 않은 트럼프가 벌써 공약을 현실에 맞게 수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자고로 짖는 개는 물지 않습니다. 설사 물려 해도 짖는 소리는 미리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다행히 미국에는 제 역할을 하는 감시견이 많습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한국 주류 언론처럼 레임덕이 없는 한 실정을 눈감아주는 비겁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FBI 같은 보안기구도 권력에 종속된 한국의 검찰·국정원 같지는 않습니다. 부를 독차지하면서도 감옥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돈 뜯기 쉬운 재벌 총수라는 독특한 직업도 당신 나라에는 없습니다. 먹이가 없으니 박근혜·최순실 같은 사냥꾼도 없겠지요. 공화당도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새누리당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와는 달리 당신에게는 트럼프를 달래거나 바로잡거나 피할 기회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4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깜깜했습니다. 재벌 총수를 독대해 강압적으로 돈을 모으는 전두환·노태우 수법을 쓸 줄 우리가 몰랐던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총리, 장관, 참모들이 나랏일을 알아서 잘 챙기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제야 드러났지만 그 집단은 명목상의 지위만 가진 종이 정부, 일하는 척만 하는 은폐용 정부였습니다. 대통령 주치의조차 진짜를 따로 둘 만큼 그들은 빈틈없이 이중정부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종이 정부에 얼마나 묻고 따졌는지 아십니까? 그럼에도 하나도 고쳐지지 않은 이유가 뭘까 얼마나 궁금했는지 아십니까?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다릅니다. 개가 짖지도 않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발을 물어뜯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분이 무척 더럽죠.

 

여기 웬만해서는 짖지 않는 개들이 사는 조용한 동네가 있습니다. 도둑 없는 동네인 줄 알고 사람들이 경계심 풀고 대문 열어 놓고 삽니다. 그사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도적이 동네를 다 털어갑니다. 뒤늦게 온 동네 개들이 짖습니다. 보통 개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따라 짖기도 하는데 따라 짖지도 못하고 끙끙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군요. 새누리라고 합니다. 자, 이런 상황이면 당신은 우리보다 처지가 조금은 나은 겁니다.

 

그러나 이건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시작이지만, 우리는 어쨌든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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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원전 25㎞ 떨어진 곳서 치매 아내와 ‘자택 농성’”

ㆍ“국가가 개인 행복 못 지켜준 게 후쿠시마 사고”


사사키 다카시 전 도쿄준신여대 교수(73)는 2011년 3월11일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했을 때 이웃들의 피난 행렬에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원전에서 25㎞ 떨어진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구 자택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며 ‘자택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을 벌인 이유는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정부는 ‘옥내 대피지역’으로 지정해놓고는 시내 병원과 노인시설을 30㎞ 권역 밖 시설로 이송했다. 이동 과정에서 의료진, 간병인의 도움 없이 이리저리 내돌려지다 사망한 노인 수만 사고 직후 1주일 동안 40~50명이었다. 정부 조치에 혼란과 불신을 느낀 주민 3만여명 중 80%가 자발적으로 피난을 가서 ‘가혹한 대피소’ 생활을 감수했다.


사사키 교수는 “명백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생각했다” “최선의 선택은 권내에 머무르며 의사나 스태프, 약품과 식료품을 시급히 보급하도록 국가와 현에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인지경이 된 집에서 블로그 ‘모노디아로고스’(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가 만든 말로 ‘독백’을 뜻한다)를 쓰며 “버림받은 마을에서 쌓이고 쌓인 분노와 항의, 탄식의 소리” 등을 토해냈다. 일본에서 주목받은 블로그(http://fuji-teivo.com)는 중국·스페인에 이어 한국에서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돌베개)란 책으로 번역됐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맞아 원전 사고의 비극과 혼란의 현장에서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 사사키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지난 6일 진행했다. 번역은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 역자인 형진의 한남대 교양융복합대학 교수가 맡았다.


 

사사키 다카시 교수는 ‘자택농성’을 벌이며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깊게 사유하고 있다. ‘사랑의 보금자리’인 ‘농성장’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수년째 돌보는 그는 “아내 요시코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데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_ 돌베개 제공




▲ “국민과 동떨어진 정치 선명하게 드러났다”

블로그에 올린 글 모은 ‘원전의 재앙…’ 한국 출간


- 한국어판 출간 소감은.


“친척 집에 인사드리는 것 같은 긴장과 기쁨을 느낀다. 원전 피해지역에 살면서 과거 조선인, 중국인이 겪은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일본제국에 빼앗긴 들’과 ‘국책 원전 사고로 빼앗긴 들’은 연결된다고 본다. 조선인, 중국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먼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감추거나 흐지부지하는 한, 진정한 화해도 우호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책의 여러 군데에서 ‘국가’를 비판했는데, 계기는.


“어렸을 때, 구만주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황군(일본군)이나 국가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보면서 비판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국민국가(nation)라는 ‘국가(state)’의 형태는 10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저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도호쿠 사람이고, 어쩌면 아이누의 피를 이어받았을 수도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영토분쟁 지역에도 원래 그 근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새 중국·조선·일본 등으로 선이 그어지고, 그곳에 사는 어민들은 그때마다 생활수단을 빼앗기고 혼란을 겪는 것이라고 본다.”


- 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의 ‘내적인 역사’를 언급했는데.


“정치가들의 등장과 전쟁을 역사의 주역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역사라는 큰 바다의 표면에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이다. 그런 파도의 밑바닥에는 서민의 일상이 있다. 어리석은 정치나 국책 때문에 서민의 삶이, 예를 들면 나라 밖으로 내몰린다든지 분단된다든지 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 “원전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성에 관한 문제”라고 책에 썼는데, 부연한다면. 


“먼저 인간·개인이 있고, 국가는 그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의 위탁을 받아 성립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관계성이 언제나 당연한 듯이 뒤집힌다. 원전 문제는 그 본래의 관계성을, 즉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원전 사고 후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정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변질돼버린다. 원전 사고 후에 정치가 얼마만큼 국민과 유리된 것이었는지, 국회 심의 등을 보면 이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민주주의, 의회정치 등 모든 면에서 금속성의 피로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점으로 돌아가 정치 본연의 자세를 되짚어야 하는데, 여전히 땜질식 정치를 하고 있다.


- 재앙 속에서 사람들 간 연대나 불신의 문제는 어떻게 보나.


“대지진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로 묶어주면서도 서로의 다름도 실감하게 했다.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과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 확실히 구분됐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 이해관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인간관계, 사회에도 액상화(바닷물이 땅속으로 들어가 단단한 지반이 액체화되는 현상)가 있었다. 인간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이라는 기본 조건을 단순히 머리로만이 아니라 뼛속 깊이 체득해야 한다고 본다.”


- 인간을 불안정하고, 연약한 존재로 내몬 것 중 하나로 투기적 욕망을 꼽았다.


투기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게 국제경제다. 일순간에 육친을 잃어버린 비극 직후에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뉴스가 엔화 폭락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잔혹한 현실, 즉 인간의 불행이 누군가의 투기적 욕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는 세계경제의 잘못된 현실을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 같다.”


- 한국 정부는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추가 원전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탈원전’과는 거리가 있는데.


“한국 상황은 잘 모른다. 일본이 탈원전 노선을 표명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에 조언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에 앞서 탈원전을 선언하는 나라가 돼달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다.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리방법이 아직 없는데 그것의 평화이용을 말하는 것은 완전히 언어도단이다.”


-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한국, 일본에서 핵무장론이 나온다.


“일본은 북한에 핵실험 중지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 등 핵보유국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폐기를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다. 핵실험만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 청년들에게 “필요할 때 분노하라”고 강조했다. 


“일본인은 정당하게 화내는 것을 잘못한다고 생각한다. 일렬횡대로 항의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한 태도로 나타내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시리즈 끝>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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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정부, 사고 전제 ‘원자력규제위’ 신설해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한국의 원전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생겼고 원전 추가 건설이 보류됐다. 그러나 원전사고로 인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한국의 원전 정책’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석한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재료물성DB센터장),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전 도쿄대 교수),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가 참석했다.


 

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국내 원전 대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사고는 예측불가 상황서 발생… 한수원 “안전할 것”만 되풀이

안전 자신하며 정보공개 꺼려… 최소한 ‘인재’ 막을 대책 필요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상황은 어떤가.

 

오다 다쿠지= 전체 원전 54기 중 52기가 안점점검을 위해 멈춰 있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발생했다”면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일본 원전 정책은 의외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원자력규제청(NRA)이 신설되는 등 조직은 바뀌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김익중=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가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여론에 따라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현재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과 중국, 인도 정도다. 미국 등 나머지 선진국은 이미 체르노빌 이후부터 원전을 계속 줄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위험한 원전을 계속 정지시키고 있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원전 정책은 얼마나 변화했나. 


김익중= 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월성 1호기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면서 대규모 정전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미 비상전원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정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대형사고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유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해 여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용수=원안위가 할 일은 선제적 안전조치인데 늘 뒷북만 치고 있다. 원전 고장 및 사고, 납품비리 등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또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연구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규제만 하는 게 아니라 규제를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반면 안전기술원은 예산이 없어 한수원의 연구자료를 참고하고 있는 수준이다.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 규제기관에 힘이 실린다.


김익중=국내 원전 규제기관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다. 일본 등 주요 원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 명칭에 ‘규제’가 포함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금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는 한수원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


-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원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김익중=정부와 한수원이 갖고 있는 원전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한수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토론회나 공청회도 마찬가지다.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꺼릴 이유가 없지 않나. 


김용수=시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학계와도 소통을 강화하면 한수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원전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원전의 운영상황을 폐쇄회로(CC)TV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오다 다쿠지=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는 지금의 한국처럼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용수=한수원이나 원안위로서는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정보공개 수준이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원자력안전위, 한수원 대변만… 해외의 규제역할 강조와 대조

전 세계적으로 노후원전 증가… 폐로·해체 당면 과제로 부상


- 원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대비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용수=‘원전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형사고는 기계적 결함과 기술자의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원전 자체의 안전 여부 못지않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과 자세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체르노빌 등 지금껏 발생한 대형 원전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검토해 사고에 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대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오다 다쿠지=원전 기술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안전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원자력 분야는 인기가 많아서 그때 일을 시작한 우수한 인재들이 현재 원전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2년 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원전 안전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익중=세계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현재 103기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한국(23기) 순이다. 이중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을 많이 운영할수록 대형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원전 개수를 줄여야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노후 원전은 폐로(수명이 다한 원전의 원자로를 처분하는 것)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이 지역의 원전 10기 중 30년 이상 운영된 4기에서 사고가 터졌다. 원전 수명연장도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 최근에는 체계적인 폐로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도 창립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수=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낡은 원전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뿐 아니라 안전한 해체까지 생각하게 했다. 


김익중=앞으로는 원전 건설 시장보다 원전 폐로 시장이 훨씬 커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 450기를 언젠가는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폐로 기술을 축적한 국가는 현재 많지 않다. 국내에서 먼저 준비하면 국내 원전 안전은 물론 한국 산업계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다 다쿠지=안전과 폐로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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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민가야.. 2013.08.01 07:10 신고
    원전 사고난 나라(일본)와 인근 황해안에 엄청 신규 건설하고 있는 나라(중국) 틈에 있으면서 자국 영토 내에도 좁은 국토에 수십기가 있으며 여러개가 연명하고 있는 원자로임. 수명을 생각하는 상급 두뇌라면 이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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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민 ‘탈원전 운동’ 수렴 실패 속 정치권은 우향우


일본 지바(千葉)현의 오다키마치(大多喜町)는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반세기 만에 재가동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도쿄전력이 가동을 중단한 뒤 방치돼 있던 시설을 자치단체가 연말까지 보수해 재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마을 하천의 물을 유도관을 통해 끌어들인 뒤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전력은 마을 11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에너지 자립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태양광발전이 각광을 받은 데 이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농업용수로나 하수처리장에 수차를 설치하는 정도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소수력발전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2년간 일본 각지에선 ‘에너지 지산지소’로 불리는 에너지 자립실험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역에서 쓸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움직임은 원전사고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 기성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인 17만여명이 2012년 7월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 ‘안녕 원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최했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아베노믹스·토건 부활·개헌… 약화된 ‘정치 구심’ 되살리기

지자체선 에너지 자립운동… 전력 독점구조 ‘이탈’ 움직임


정치권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2년 전 대지진에 이어 지난해 중국과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안팎에서 위기가 조성되자 정치권은 급격히 보수화 흐름을 보였고, 민주당의 개혁실험은 좌절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강한 일본’을 외치며 재난 이후 약화된 ‘구심력’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일본을 되찾겠다’는 자민당의 총선 슬로건의 속뜻은 50여년의 자민당 장기집권 과정을 통해 구축된 기성질서를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해 ‘원전 마피아’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자민당 내각은 전력회사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의무매입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도 매입가격을 10%가량 낮출 것을 검토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인다.


대담한 금융완화와 공공투자를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 대기업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대규모 건설기업들도 ‘토건주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반면 수입물가 상승은 가계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기업들에 종업원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이곤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베노믹스의 혜택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을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헌법의 개정요건을 완화하는 헌법 96조 개정에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찬성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반면 원전사고 이후 ‘각성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현실정치의 추진력이 되지 못한 채 고립분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정당들이 참패함으로써 구체제의 복귀를 막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자립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고, 원전 2기의 재가동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17만명이 참가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한 시민그룹들이 오는 10일 전국 270곳에서 동시다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일과성 이벤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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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일 진보 학자 아사노 교수


“대학, 언론, 노동조합이 비판기능을 상실한 현재의 일본은 1920년대보다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64·사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미디어학)는 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2년을 맞은 일본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가 거론한 1920년대는 일본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1911~1925)’ 시대를 가리킨다. 아사노 교수는 “당시엔 언론들이 침략전쟁을 반대하기도 했고 진보세력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천황(일왕)제 폐지를 외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집회와 언론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도 비판 주체들이 사회적 의제 설정이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노 교수는 특히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에 대해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원전추진 세력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민주주의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이 원전정책을 폐기했고, 유럽에서 녹색당 등이 선전한 반면 일본에서는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현에서조차 자민당이 압승했다. 


그는 “비판기능이 상실되면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그대로 용인되는 반면 혁신세력들이 주장해온 일본의 ‘비무장 중립론’은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질 정도로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로 아사노 교수는 “일본이 본래 민주주의 성향이 약한 데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단죄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 때문”이라며 “아베 내각이 편협한 내셔널리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형사사건’입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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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후쿠시마 원전엔 아직도 치명적 방사성물질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방사성물질 대량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현재도 시간당 최대 1000만㏃(베크렐)의 방사성물질(세슘 기준)이 새어나오고 있다. ㏃은 방사성물질 측정단위로, 식품의 경우 세슘 허용치는 ㎏당 370㏃이다. 사고로 노심용해(멜트다운)된 핵연료봉은 현재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무너져내린 건물 더미에 부착된 방사성물질이 끊임없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 직원들이 지난 1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4호기 앞에 모여 있다. 도쿄전력은 3·11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앞두고 이날 언론에 원전을 공개했다. 후쿠시마 _ AFP 연합뉴스



▲ 연료봉 회수는 고사하고 오염물질 처리도 힘겨워

연내 원전 재가동 방침도 안전기준 강화로 불투명


도쿄전력은 2050년까지 후쿠시마 원전 폐쇄를 목표로 건물 잔해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4호기에선 오는 11월부터 저장수조에 있는 폐연료봉 회수가 진행된다. 


또 내년부터 2021년까지 원자로 격납용기 보수를 마친 뒤 2021년부터 녹아버린 핵연료봉의 회수와 건물 해체에 나선다.


하지만 노심용해된 연료봉 회수작업은 방사선량이 치명적이어서 현재로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1호기 격납용기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11㏜(시버트)로 노출되면 즉사할 수 있다. 1~3호 건물의 방사선량도 시간당 20~100m㏜(밀리시버트)나 돼 로봇이나 원격조종 크레인을 동원해야 한다. 1~3호기 원자로 내부에는 노심용해된 핵연료봉이 1496개, 1~4호기 저장수조에는 3106개의 폐연료봉이 있다. 1~3호기 원자로의 온도는 17~31도, 4호기 폐연료봉 저장수조는 20도 전후(3월1일 현재)로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루 수백t씩 불어나는 방사성물질 오염수도 골칫거리다. 1~4호기 주변의 오염수는 36만5000t(2월26일 현재)으로, 25m 크기 수영장 480개 분량에 달한다. 도쿄전력은 2015년까지 70만t 분량의 물탱크를 추가 설치하는 한편 내륙 쪽의 지하수가 원전부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우물을 파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안전점검을 거쳐 원전들을 재가동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연내 재가동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선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마련한 새 안전기준을 충족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데다, 활성단층이 속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새 안전기준은 비상시에 대비해 원자로 중앙제어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제2제어실을 마련하고, 원자로 냉각을 위해 방수포를 설치하도록 했다.


비등수형은 격납용기의 압력을 낮출 수 있도록 필터형 배기구(벤트)를 갖춰야 한다. 원전을 지을 수 없는 활성단층의 판단기준은 12만~13만년에서 40만년으로 강화했다. 이런 기준을 연내에 충족할 수 있는 원전은 50기 가운데 5기 안팎에 불과하며,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원자로 폐쇄를 선택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오는 18일까지 각 자치단체들은 원전사고 시 주민 대피를 비롯한 방재계획을 작성해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규제위는 방재계획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치단체에 있는 원전 재가동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교도통신은 “재가동 신청을 하더라도 규제위의 안전심사가 연내 마무리되기 어려운 데다, 현재 가동 중인 간사이전력 오이 3, 4호기가 9월 정기검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하반기에 재차 ‘원전제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3일 보도했다. 결국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의지에도 일본의 원전정책은 서서히 ‘감(減)원전’ 쪽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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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년 만에 다시 찾은 도호쿠… 주민들 상처 치유 안돼


지난해 3월에 이어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와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는 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구가 더뎌 보였다. 


지난달 26일 신칸센 정차역이 있는 이와테현 이치노세키(一關)시에서 렌터카를 몰고 1시간여 만에 도착한 리쿠젠타카타시는 해안에 남아있던 ‘기적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기적의 소나무는 일단 베어진 뒤 방부처리 작업을 거쳐 오는 22일 그 자리에 원상태로 복원될 예정이다. 연안 도심부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사차량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몇 채 남은 건물들을 철거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안 도심부에 유일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다카다마쓰바라(高田松原)’ 휴게소 광장에는 추도시설이 들어섰다. 수백년 된 소나무 7만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던 경승지다. 건물 부근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개의 형상이 건물 철거현장 쪽을 향해 놓여 있었다.


남쪽 해안도로로 30분쯤 달려 도착한 게센누마는 1년 전에 비해 항구 주변이 말끔해졌다. ‘상어박물관’ 앞 공터에 덩그렇게 놓여있던 소형 어선도 치워졌고, 해안 부근의 공공기관 합동청사도 철거됐다. 쓰나미에 떠밀려온 60m 길이의 거대한 ‘제18 교토쿠마루(共德丸)호’에는 조그만 탁자가 마련돼 참배객들을 맞이했다. 게센누마시는 이 선박의 철거 여부를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조만간 결정하기로 했다.


지진과 쓰나미를 피해 대피한 한 일본인 남매가 이시노마키시의 철길에 앉아 있다. (경향DB)


게센누마의 항구 부근에는 가건물로 부흥상가가 지어지는 등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주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거의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교민 이미나씨(45)는 “대지진 이후 치매나 우울증에 걸린 노인들이 크게 늘어났고, 등교를 거부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사히신문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福島) 3개 현의 42개 시·정·촌 단체장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복구와 부흥작업 완료 시기를 6~10년 후로 전망한 응답이 절반을 넘는 22명에 달했다.



리쿠젠타카타(이와테)·게센누마(미야기)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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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 구로다 고키 부정장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을 하루속히 안정화시키는 것이 주민 귀환을 위한 대전제입니다.”


일본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의 구로다 고키(黑田耕喜·60·사진) 부정장(副町長)은 지난달 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순조로운 주민 귀환을 위해 정부가 하루빨리 원전 안정화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3월 말 행정업무가 원상복귀한 뒤 방사성 오염물질 제거(제염) 작업에 가장 공을 들여 방사선량은 많이 떨어졌지만, 주민들의 근본적인 불안요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주민 복귀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 제염 작업은 예정대로 잘 진척되고 있는가.


“지난해 초부터 시작해 주민 거주공간 주변, 공공시설, 학교 등은 대략 완료했다. 2011년 말 제염계획을 세울 당시 히로노마치의 방사선량은 0.5~7마이크로시버트(μSv)였는데 0.3~4μSv까지 내리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 기준치인 연간 피폭량 1mSv에 맞추려면 시간당 0.23μSv까지 내려야 하지만 우선은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제염을 하더라도 방사능 수치가 내려가지 않는 곳이 많다.


- 제염을 했는데 왜 수치가 내려가지 않나.


“집에서도 현관이나 실내는 효과가 있지만, 오래된 지붕은 제염을 해도 별 효과가 없다. 콘크리트 재질의 미세한 구멍에 들어가 있는 방사성물질은 (고압살수기로 씻어내도) 잘 제거되지 않는다.”


- 귀환하는 주민이 예상보다 적은 이유는.


“귀환 등록을 한 주민이 737명이지만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일주일 가운데 사나흘은 히로노에서 지내는 주민들도 있어 실질적인 거주인구는 더 많다. 하지만 귀환해도 상점가가 복귀하지 않아 생필품을 사려면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의료인력도 절반밖에 돌아오지 않아 인공투석을 하러 차로 30분 떨어진 이와키까지 가는 이들도 있다.”


- 귀환을 꺼리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인가.


“아무래도 아이들을 둔 육아세대가 많다. 방사선량이 낮아졌다고 해도 아직 후쿠시마 원전이 안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정부에 가장 요청하고 싶은 것은 뭔가.


“사고 원전을 하루빨리 수습해 안정화하는 것이 주민 귀환의 대전제다. 의료시설 확충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제염사업이나 복구재정 지원도 중간에 흐지부지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히로노마치(후쿠시마)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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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오염 흙 걷어내고 채소 키웠지만, 양심상 내다 팔 자신 없어”


“정부는 돌아와도 좋다고 귀향을 권하지만, 슈퍼마켓도 의사도 제대로 없으니 돌아와봤자 소용없어.”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여㎞ 떨어진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廣野町)의 한 농가에서 만난 고하타 가쓰히로(木幡勝廣·70)는 “왜 귀환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되받았다. 고하타는 차로 30분쯤 떨어진 이와키(磐城)시의 임대주택에 부인과 살면서 1주일에 4~5번씩 히로노의 집에 들른다. 텃밭 일부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 무, 콩 등 채소를 재배해 먹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뒤 새로 흙을 깔고 최대한 신경써 재배했지만 양심상 내다팔 자신은 없다. 쌀농사도 진즉에 그만뒀다. 세슘 허용치가 ㎏당 100베크렐(㏃) 이하면 농산물을 출하해도 된다는 정부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슘이 100㏃ 나오면 안되고 90㏃ 나오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지은 쌀도 안 먹는 판인데 농사를 지을 수 있겠어?


후쿠시마 원전에서 3㎞ 떨어진 후타바마치(雙葉町)의 신축 아파트에 살던 딸네 식구들은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수도권의 사이타마(埼玉)현으로 피난한 이후 발길을 끊었다. 고하타의 집엔 고교 시절 소프트볼 선수였던 딸의 사진과 손자 사진이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딸네 식구가 안 와 섭섭하긴 하지만 이런 곳에 아이를 놔둘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방사능 오염 흙·나뭇가지 수거 지난달 25일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의 한 농가에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인부들이 농가의 밭 표면에서 걷어낸 흙과 나뭇가지들을 수거해 비닐포대에 담고 있다. 히로노마치(후쿠시마) _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 “슈퍼·의사 없어 귀향 꺼려” 첫 귀촌선언 마을 15% 그쳐

곳곳 제염작업… 누락 많아, 정부 목표치의 4배 오염도


■ “슈퍼마켓도 의사도 없어 돌아와도 헛일”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을 맞아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원전 반경 10~30㎞ 권역인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와 가와우치무라 현지를 찾았다. 히로노마치는 원전1호기가 폭발한 다음날인 3월13일 정장(町長·한국의 읍장에 해당)이 전 주민 피난지시를 내렸다. 주민들은 원전 반경 40~60㎞ 떨어진 이와키와 고리야마 등지로 대피했다. 1년이 지난 뒤인 지난해 3월 말 정장이 ‘귀환’ 메시지를 내렸고, 그로부터 또 한 해가 지났지만 귀환한 주민은 737명(2월 현재)으로 전체 주민(5541명)의 13%에 불과하다. 보육원과 초·중학교도 지난해 2학기부터 수업을 재개했지만 학생 수가 569명에서 103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히로노마치에 거주하는 학생은 36명뿐이고 3분의 2는 25㎞ 떨어진 이와키에서 스쿨버스로 통학한다. 의료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도 귀향을 꺼리게 한다. 히로노마치에 치과의사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이날 방문한 히로노마치 일대의 방사선량은 0.2마이크로시버트(μ㏜) 안팎으로 도쿄의 4배 정도 수준이다. 정(町)사무소 입구에 설치된 측정기는 0.08μ㏜를 가리켰다. 2011년 말부터 1년 넘게 ‘제염’으로 불리는 방사능오염물 제거작업을 실시한 결과다. 렌터카를 몰고 돌아본 히로노마치 곳곳에서 방진마스크에 헬멧을 쓴 작업원들이 가로수 부근의 흙을 걷어 검은색 비닐포대에 담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제염작업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가 생활반경 20m 전체에 대해 제염작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빠지는 곳이 적지 않아요.” 


히로노마치 기초의원 하타나카 히로코(畑中大子·63)는 “트랙터가 들어가지 않는 텃밭 등은 업체들이 제염작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하타도 집 마당의 나무를 잘라달라고 요구했지만 미루는 바람에 30만엔(약 350만원)을 들여 벌목했다. 게다가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과가 신통치 않다. 아무리 고압살수기를 동원해도 콘크리트의 미세한 구멍에 들어가 박혀 있는 방사성물질은 걷어낼 수 없다. 고하타의 집 지붕도 제염을 했지만 시간당 방사선량이 정부 목표치(시간당 0.23μ㏜=연간 1밀리시버트(mSv))의 4배인 0.9μ㏜나 돼 지붕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마을 삼림도 제염하겠다고 하더니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하긴 삼림에 쌓인 방사능 오염을 무슨 수로 제거할지 의심스럽기도 하고.”(고하타) 





■ 주민 떠나버린 마을엔 중장비와 대형트럭만 


히로노마치는 일본 정부에 의해 긴급사태 시 피난준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지난해 해제됐다. 700여명의 주민들이 돌아왔다고 하지만, 이곳에 머무른 3시간 남짓 동안 거리에서 마주친 것은 헬멧과 마스크를 쓴 작업원들과 대형 덤프트럭뿐이었다. 제염작업, 방사성폐기물 임시적치장 설치공사 등으로 히로노마치에만 75억엔(약 810억원)의 정부예산이 지원됐고, 이에 따라 3000명에 이르는 공사인력들이 히로노마치 곳곳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부들이 이와키에서 차를 이용해 원전 부근 마을로 출퇴근을 하는 바람에 간선도로가 새벽부터 정체를 이룬다. 히로노마치의 제염사업을 수주한 회사는 일본 굴지의 건설업체. 이 회사는 원전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타나카 의원은 “원전을 지으며 배를 불린 대형 건설업체들이 제염작업도 도맡으면서 이중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바다를 낀 산촌마을로 아름다운 풍광이 일품이던 히로노마치는 사고 이후 살풍경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즐겨 찾던 후타쓰누마 종합공원에는 도쿄전력 하청기업의 사무실이 들어섰다. 공원 부지에는 작업차량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해변 쪽 화력발전소 부근에는 방사성폐기물 적치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전쟁으로 주민들이 떠나버린 마을을 점령군이 장악한 듯한 ‘부흥특수’의 기묘한 풍경이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어떻게든 돌아와 살겠지만 젊은이들은 살 수 있겠어? 나도 언젠가는 돌아와 살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 고하타의 이마에 팬 주름이 더 깊어졌다.




■ ‘부흥의 선두지역’조차 주민 귀환은 15%에 불과 


히로노마치에서 내륙으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가와우치무라(川內村)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전 반경 10~30㎞ 권역이지만 방사선량이 비교적 낮아 피난준비구역 중에서 가장 먼저 ‘귀촌선언’을 한 마을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부흥의 선두지역’이라고 치켜올리기도 했지만 3800명의 주민들 가운데 지난달까지 422명(15%)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나마 가와우치무라는 도쿄, 오사카 등에서 4개의 기업이 진출하면서 일자리도 생겼고, 지난 1월26일에는 독일 기업이 이곳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이용한 채소공장도 4월부터 가동해 오염걱정 없는 신선채소도 공급된다. 주민 거주 공간의 방사선량도 정부의 목표치인 시간당 0.23μ㏜를 거의 달성했다. 촌사무소에서 만난 요코다 마사요시(橫田正義·51) 제염계장은 “피난지에서 취업을 하며 정착한 이들도 적지 않다”며 “완전한 귀환은 아니지만 피난지와 이곳을 오가며 생활하는 이들을 합하면 1000명쯤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NHK방송이 이곳 엔도 유코(遠藤雄幸) 촌장의 귀촌분투기를 방영할 정도로 주목받은 마을이지만, 방사능오염폐기물 임시적치장을 확보하지 못해 비닐포대들이 밭이나 민가 주변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 인적 끊긴 원전 주변 지역…‘소와 충돌 주의’ 입간판


후쿠시마에서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한계선은 히로노마치 정(町)사무소 부근이었다. 이곳 이북지역은 식당, 휴게소, 펜션 등이 모두 문을 굳게 닫았고,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오는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만이 눈에 띌 뿐 주민은 그림자도 찾기 어렵다. 원전 반경 16㎞ 나라하(楢葉) 마을 부근의 휴게소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방사선량을 재자 0.4~5μ㏜로 뛰었다. 원전사고 직후 나라하 마을주민의 임시 대피시설로 쓰였던 국도변 휴게소에는 ‘소와 충돌, 감속’이라는 경고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이 돌보지 않아 야생화된 소들이 먹이를 찾아 도로변 쪽으로 출몰하면서 통행차량과 부딪치는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원전 반경 12㎞ 도미오카(富岡)의 경찰통제선 부근의 폐쇄된 편의점 주변엔 철제 재떨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었었고, 인적 끊긴 주유소에는 지진으로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잡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히로노마치·가와우치무라(후쿠시마)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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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 투표일인 6일, 대세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에게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9시. 찌뿌둥한 날씨 속에 파리 남부 콩방숑 지하철역 부근에 차로를 따라 늘어선 전통시장에서 파리 시민들을 만났다. 상인들과 장보러 나온 주민들은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선거”라고 말했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긴축재정에 대한 불만 속에 ‘갈아보자’는 목소리가 조금 두드러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샤를 드골이 프랑스 여성에게 참정권을 준 이래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투표에 빠져본 적이 없다. 벌써 투표하고 나왔다.” 양말묶음을 고르던 올해 80세 조제트 할머니가 말했다. 한국 재즈가수 나윤선씨를 좋아하는 올랑드 지지자인 서점 주인 알랭(47)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지지자인 친구가 서른 부쯤의 신문과 잡지를 배급하러 가게로 들어오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옥신각신 중이었다. “사르코지가 이번 선거에서 이길 거다.” “이봐, 보는 안목이 그렇게 형편없나!” 좌대 위에 갖가지 채소를 올려놓은 프레드(32)는 많은 유권자들처럼 “누가 더 나아서 찍는 투표가 아니라 덜 나쁜 후보를 찍는 투표”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르코지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다. 계란을 진열하던 상인 마르셀(61)은 “좌파(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영 미덥지 못해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계란 꾸러미를 건네받던 돌스(66)는 “나도 투표권만 있으면 투표장에 갔을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그는 “45년째 프랑스에서 일하느라 손이 곱았지만, 낼 세금 다 냈어도 투표권이 없다”고 서운한 듯 말했다. 그가 장바구니를 들고 자리를 뜨자 가게 주인 마르셀은 “내가 이래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된다는 사르코지를 지지한다”고 조용하게 말했다. 


휴일 아침 시내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젊은이들도 만나봤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사르코지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나디아(37)는 “이번에는 올랑드가 프랑스 경제를 살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 맥도널드 직원 알리(21)는 “아직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다”면서 “사르코지는 대통령으로서 지금까지의 실적이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플로랑스라는 시민은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수 확대 같은 올랑드의 공약은 공공부채규모가 상당한 프랑스로서는 ‘자살’에 가까운 정책이지만, 사르코지에 반대하기 때문에 올랑드에게 표를 던졌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번 선거가 ‘사르코지 응징’의 성격이 강함을 보여주는 얘기다. 


재선에 도전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6일 파리 16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오고 있다. 파리 _ AP연합뉴스



유권자들이 전국 6만5000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이날, 두 대선후보도 투표소로 향했다. 사르코지는 파리 부유층 거주지구인 16구 투표소에 부인 카를라 브루니와 함께 나타나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회색봉투로 감싼 투표용지를 투명한 투표함 안에 넣었다. 올랑드는 자신의 지역구인 프랑스 중부 튈시에서 사실혼 관계이자 정치부 기자 출신인 여자친구 발레리 트리에베일레르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이날 정오 기준 30.66%로, 지난달 22일 1차 투표 때보다는 높았지만 34.11%를 보인 2007년 대선 결선투표에 비해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프랑스 내무부는 밝혔다.


이날 선거를 앞두고 막판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와 사르코지의 지지율 격차가 일주일 전 10%포인트에서 4%포인트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날 저녁 8시에 발표되는 출구조사 결과에서 막판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선거를 앞둔 주말판에서 “일요일에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사르코지의 뒷심이 역전극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 쪽에 무게가 실린다. 프랑스는 이날 저녁 8시 투표 종료에 앞서 예상결과 발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7만5000유로(약 1억1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간에 위기의 프랑스 경제를 개혁하고 유로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넉넉한 과반수의 득표를 얻어야 개혁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빙의 승리보다는 큰 표차 승리가 요구되고 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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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율은 79.47%. 10명 중 8명이 투표소를 찾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의 강한 정치참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같은 참여의식은 제도교육이 아닌, 부모세대의 높은 정치참여 태도가 자연스럽게 자녀세대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지난 3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서 정치를 ‘즐긴다’는 인상마저 줬다.


이날 오후 파리 4대학(소르본) 앞에서 만난 신디아(24·학생)는 “정치는 삶”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부모가 투표소에 갈 때 함께 가고, 다녀온 뒤 선거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정치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보니 각종 사회문제에 학생들이 단결해 항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6년 프랑스 대학생 수십만명은 정부가 청년층의 고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만들려는 ‘최초고용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두 달간 노동조합들과 함께 이어가면서 결국 정책을 폐기시킨 경험이 있다. 신디아는 “프랑스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연대하는 힘이 약했다. 프랑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초고용계약(CPE)'의 철회를 요구하는 프랑스 청년들이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향DB)


대학생 마테오(22)는 “어릴 때 부모님이 친구들과 정치문제로 토론할 때 무관심한 척 옆에서 놀면서도 어떤 이야기인지 듣곤 했다”면서 “프랑스 중등교육 과정에는 정치참여를 교육하는 과정은 없지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민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오레이아(20)는 “15살 때 부모님들이 ‘선거는 꼭 해야 하는 거다. 투표소까지 가서 기권표를 행사하더라도 꼭 참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참여정치를 몸에 익힌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는 ‘투표참여’ 독려 포스터는 찾아볼 수 없다. 길에 붙은 각 정당의 선거포스터도 요란하지 않다. 다양한 색깔의 커다란 플래카드도 보이지 않는다. 눈썰미가 나쁘다면 프랑스가 대선기간이라는 것조차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삶 속에 이미 들어온 정치를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투표장으로 향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두 명의 후보를 비교평가하는 대선후보 TV토론은 유권자의 절반인 2000만명이 시청했다.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날카로운 정책 비교평가로 이어진다. 대학생 엘레오노(21)는 “TV토론은 후보 각자가 자신의 공약을 지지자들뿐만 아닌 모든 국민 앞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라며 “후보 간 상호 비방이 격렬했던 이번 토론은 기대 이하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브루노(25)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는 프랑스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니콜라 사르코지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 모두 민감사안인 탓에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차 투표율이 높았던 이유 중의 하나로 극우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리가 꼽히기도 한다. 2002년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던 프랑스 유권자들이 그의 딸 마린 르펜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껴 투표소로 향했다는 것이다. 한 남학생은 “르펜이 그럼에도 이번에 18%나 되는 지지율을 얻은 것은 상당히 충격이었다”면서 “이번 대선은 올랑드나 사르코지 둘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보다 ‘최악은 피하기 위해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라는 얘기를 친구들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제위기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주류 정치인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프랑스 유권자들은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변화 가능성을 굳게 믿는 셈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 (경향DB)


이 같은 프랑스의 높은 정치참여는 불안했던 정치역사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1789년 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체제변화를 거쳤고 1960년대에는 알제리전쟁의 여파로 체제불안을 겪었다. 보통사람들은 사회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보를 공유했고, 이것이 유럽 내에서도 정치성향이 두드러진다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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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올랑드 “부유층만 보호 경제 나빠져”

ㆍ사르코지 “거짓, 협잡꾼” 원색 대응


2일 저녁 9시. 프랑스 대선 결선을 앞두고 두 후보를 한자리에서 평가할 단 한번의 기회인 TV토론 중계가 TF1과 프랑스2 채널을 통해 시작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은 오른쪽에,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58)는 왼편에 앉아 6일 결선투표를 나흘 앞둔 마지막 승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설전을 벌였다. 커다란 전자시계가 두 후보자의 발언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무던한 인상의 올랑드는 예상밖으로 ‘토론 달인’ 사르코지에게 밀리지 않고 팽팽한 대결을 폈다. 올랑드는 “보수적인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유층만 보호한 결과 프랑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와 경기둔화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결과가 있든 당신은 (책임을 지지 않고) 항상 만족하는 사람”이라며 사르코지의 현실인식을 꼬집었다. 불같은 토론매너의 사르코지는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즉각 받아쳤지만 토론 내내 올랑드의 공세는 계속됐다.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정부와 공기업, 언론사 주요 직책을 자신의 정치적 패거리로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고, 사르코지는 “조그만 협잡꾼”이라며 원색적으로 반응했다. 


사르코지는 토론 내내 올랑드의 경제정책이 유럽의 성공모델인 독일과 정반대이며, 자칫 프랑스를 스페인처럼 경제위기로 몰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랑드는 “나는 대통령으로서”라는 표현을 여러차례 쓰면서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자신의 약점을 감췄다. 그는 또 사르코지가 유럽 재정위기 해결과정에서 독일에 지나치게 굴종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만약 내가 당선되면 독일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레이스 반 년 동안 단 한번도 결선투표 예상지지율 면에서 올랑드를 이겨보지 못한 사르코지는 자신의 장기인 토론에서조차 올랑드에 압도적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토크쇼 녹화 현장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경향DB)


3일 아침 현지 언론들의 판정은 ‘무승부’가 대세인 가운데 ‘올랑드가 승기를 굳혔다’는 평가가 섞였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사르코지가 뒤집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은 두 후보가 그간 주장해온 경제·교육·핵·주거·이민 등의 여러 공약들을 간명하게 유권자들에게 설명하는 기회였다. 유권자의 절반인 2000만명이 2일 밤 12시까지 진행된 토론을 시청했으며 시청률은 TV토론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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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높은 임대료 앞세워 기존 가게들 내몰아” 상인들 비판 목소리



파리 중심가 개선문부터 시원하게 뻗은 가로수길인 샹젤리제는 프랑스인들이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손꼽는 프랑스의 자존심 같은 곳이다. 하지만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전 세계 다국적 브랜드들의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갭, 자라, H&M처럼 세계 여느 대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중저가 의류브랜드 간판들이 즐비하다. 대형 음반매장 버진 메가스토어가 철수한 노른자위 자리에 애플이 진출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1978년부터 샹젤리제 현재 자리를 34년째 지켜온 간이매점 주인 모하메드(50)는 가게 앞 매장들의 변천사를 쭉 읊었다. “디즈니 매장이 들어선 저 자리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 은행이 있었다. 바로 옆 자라 매장은 전에는 맥도널드, 그 전엔 프랑스 구두가게였다. 저기 모퉁이를 돌아가면 레바논식 캬바레가 있었고….” 그는 “옛날엔 산책할 때도 안전했지만 요즘은 동냥꾼에 소매치기가 극성”이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1914년부터 샹젤리제에 자리해온 프랑스 화장품업체 겔랑의 매장직원 나디아(63)는 평생 본 거리가 변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1960년대만 해도 샹젤리제에는 고급매장 사이를 마치 오페라 극장에 가듯 차려입은 사람들이 거닐었죠. 하지만 20년 전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가 들어오고, 10년 전부터는 다국적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관광객들이 몰리고, 치솟는 세를 못견딘 기존 가게들이 떠났거든요.” 겔랑 매장 인근의 중저가 화장품 매장 ‘세포라’는 개당 13유로(약 1만9000원)쯤 하는 파운데이션 등을 사려는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샹젤리제는 프랑스의 오늘을 집약하는 곳이다. 일자리 부족과 빈부격차가 지난 10년간 심화되면서 사람들의 구매력은 줄어들었고, 그에 맞춰 저가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했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파리 시민들이 2일 세계적으로 각광받은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와 미국 월트디즈니 기념품 매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파리 _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프랑스 통계청(INSEE)은 프랑스의 실업률이 11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1999년 이후 최고치인 10%를 기록하고, 구매력도 2007년 이후 약화됐다고 최근 집계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예전에 일요일에 문을 여는 가게는 아랍인 상점 정도였지만, 요즘은 프랑스인들이 운영하는 식료품점 등도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마스터 셰프> 같은 요리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사람들이 돈을 아끼려 외식 대신 재료를 구입해 직접 요리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국내 정책 가운데 하나가 ‘구매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구매력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권한 뒤 신자유주의 기조가 상당히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프랑스 민주단일노조 쉬드(SUD) 소속 체신노조(PTT)의 파트릭 아케르망 중앙지부장은 2일 인터뷰에서 “사르코지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대기업 일자리를 잡겠다면서 기업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간접세인 소비세는 올려서 결국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며 “1960년대 말 프랑스가 도입한 최저임금제(SMIC)도 일자리를 만들려면 고용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폐지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가 유럽연합의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강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프랑스 좌·우파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파업 횟수를 사안에 따라 지정하는 유럽연합의 새 정책 추진 내용은 영락없이 기업가 편의적이다. 니콜라 갈레피드 쉬드 체신노조연맹 대표는 “만약 프랑스 경제가 더 악화된다면 유럽연합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극우파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에 대한 지지도가 더욱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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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집권 후 첫 노동절 집회

ㆍ올랑드 “사르코지 노조 공격, 프랑스 분열시켜”


지난 1일 오후. 보름 만에 비가 갠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는 시민들이 전통적으로 노동절을 기념하는 작은 은방울꽃 다발과 화분을 주고받으며 간만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노동절 행사는 정치색이 강하다. 오는 6일 대선 결선투표를 닷새 앞두고 열린 노동절 행사는 ‘3당 3색’으로 진행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이 이끄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은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17년 만에 정권교체를 노리는 사회당과 노동조합은 바스티유 광장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극우 국민전선은 오페라 광장에서 각각 행사를 열었다. 이 가운데 논란을 부른 집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진짜 노동(le vrai travail)’이라는 주제로 연 대안 노동절이었다. 


사르코지가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것은 집권 5년 만에 처음이었다. 청·백·홍 삼색 국기를 흔드는 수만명(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3만명)의 인파가 모인 자리에서 사르코지는 “우리는 사회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규제를 완화해 프랑스 고유의 사회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좌파가 노동을 옹호하는 척하면서 되레 악화시켰다”고 지적한 뒤 노동조합들을 겨냥해 “(혁명의) 붉은 깃발을 내려놓고 프랑스를 위해 헌신하라! 우리는 삼색 깃발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중국도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데 프랑스가 우리의 가치, 정체성과 국경을 못 지킬 이유가 없다”며 극우파적인 수사를 얹었다. 


햇볕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인파 사이로 ‘투표 불참은 투표권을 외국인들에게 주는 것’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된다’ 같은 손팻말들도 보였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세를 과시하기 위한 이날 집회에는 지방에 있는 대중운동연합 소속 당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사르코지가 강조한 ‘진짜 노동’의 정의는 뭘까. 행사 주최 측 소속인 마티유 마렌(30·공무원)은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속한 사회당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일 뿐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은 아니다”라면서 “진짜 노동자를 위한 지도자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하며, 그건 바로 사르코지다”라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정당으로 대중운동연합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지중해 휴양도시 코트다쥐르에서 기차를 타고 온 마리 삼포프랑소(27)는 “책임 있는 노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진짜’ 노동자가 많다는 사르코지 말에 동의한다”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 노동절’에 프랑스 지식인들은 사르코지를 1940년대 나치 협력자인 프랑스 총리 앙리 페탱에 비유할 정도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노동을 ‘진짜’와 ‘가짜’로 갈라 사회대립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사르코지는 집권한 이래 줄곧 ‘분리통치’를 꾀해왔다. 프랑스인과 이민자, 노동자와 수급자,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로 나누는 방식”이라며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르몽드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 장 바티스트(33)는 “사르코지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다. 그가 언제 노동자들을 위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난데없이 노동자 집회까지 연 것은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22일 1차 투표에서 약 18%를 득표하며 돌풍을 일으킨 국민전선 마린 르펜(44)의 지지층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사르코지는 승산이 없다. 르펜의 지지층에는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살림이 어려워진 노동계층이 상당히 포진해 있다. 하지만 르펜은 사르코지의 몰락을 그냥 지켜볼 참이다. 르펜은 오페라 광장에서 열린 국민전선 노동절 집회에서 해마다 그랬듯이 프랑스의 구국영웅 잔 다르크의 청동빛 모형에 경의를 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사르코지와 올랑드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희망은 오는 일요일(결선투표)에 있지 않다. 우리의 진짜 전투는 총선에 있다”면서 의회 진출을 통해 국민전선을 주류 정치세력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58)는 이날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사회당 및 노조 주최의 노동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프랑스 중부 느베르에서 열린 피에르 베레고보이 전 사회당 총리 사망 19주기에 참석한 그는 사회당의 마지막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의 계승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사르코지의 노동 분열책을 비판했다. 그는 “실업자가 400만명이나 되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 이때 누가 노동의 가치를 수호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올랑드(54%)에게 8%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2일 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올랑드의 미숙함과 경험부족을 집중 노출시키려는 전략으로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프랑스 우파는 과거 TV토론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킨 바 있다. 1974년 당시 우파의 지스카르 데스탱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에게 뒤졌지만 TV토론에서 “미테랑은 과거 인물”이라고 몰아붙인 끝에 당선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양자 대결에서 ‘토론의 달인’인 사르코지가 올랑드보다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날 TV토론에서 사르코지는 올랑드의 세금정책과 지출정책이 사회주의로 복귀하는 위험한 정책이라는 점과 노조 단체교섭권 폐지 등 노사관계의 새로운 프랑스 모델을 주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과거 동거녀이자 2007년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는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노조를 공격해 프랑스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 교사 6만명 신규 채용, 정년 62세로 2년 연장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르코지 지지자들은 그의 재선을 확신하고 있다. 사르코지가 연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파리1대학생 막심(19)은 “사회당은 행정경험이 부족하다”면서 17년 만의 사회당 재집권을 눈앞에 둔 “올랑드 후보가 장관직을 단 한 차례도 지내본 적 없는 인물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 발레리 댕빌(64)도 “사르코지가 경제정책에 실패했다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2007년 이후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겠느냐. 사르코지는 위기에 강하니 마지막에 역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럽 각국의 정권교체 도미노로 이어지고 있는 긴축재정의 여파를 사르코지가 이겨낼 수 있을까. 유럽연합의 경제적 통합과 신자유주의에 따른 시민들의 피로도가 긴축정책으로 극에 달하면서 유럽연합의 방향과 통합속도도 갈림길에 선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대선의 결과는 그 풍향계가 될 것이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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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너지산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경제산업상은 지난 1월26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여름 전국 원자력발전소가 전혀 가동이 안되더라도 지난해처럼 절전을 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 원전에 비판적인 에다노 장관의 말은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최근 다시 입장을 바꿨다. “주민동의가 필요하다”는 전제는 변함이 없지만 일부 재가동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바꾼 것이다. 그의 말바꿈은 원전정책의 향방을 둘러싸고 일본 정치권 내부에서 진통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버금가는 대재난을 겪었음에도 일본 정부는 원전정책에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 여론은 70% 이상이 원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과 산업계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원전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긴 했지만 ‘원전 기득권층’의 압력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다음달이면 가시와자키카리와(柏崎刈羽) 원전 6호기(니가타현)와 도마리(泊) 원전 3호기(홋카이도) 2기의 가동 중단으로 일본 원전 54기 전체가 멈춘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처음으로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멈춘 간사이(關西)전력 산하 후쿠이(福井)현 오이(大飯) 원전 3호기와 4호기에 대해 재가동 수순에 착수할 계획이다. 하지만 안전평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각 원전은 긴급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원 상실 사태가 일어났을 때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한 비상전원 차를 확보하지 못한 원전이 상당수다. 쓰나미에 대비해 방파제를 더 높이 쌓는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앞으로도 2년 이상 걸린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전국 원전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비상사태 시 수소폭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무리한 원전은 한 곳도 없었다. 방파제 보강공사도 연내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은 3곳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대참사를 막을 정도로 안전성을 확보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원자력자료정보실 반 히데유키(伴英宰)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인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동일 규모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면 시기상조”라고 마이니치신문을 통해 지적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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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띠링.’


지난 1일 오후 1시50분 리비아와 튀니지의 국경 부근에 다다르자 자동 로밍된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리운전이나 세일정보를 알려주는 스팸 문자가 그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국경을 건너자마자 ‘아, 이제 전화가 되는 곳으로 나왔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고 환호성이 터졌다. 그동안 좋은 친구가 된 리비아인 운전기사 유세프 파토리(34)가 우리 앞에서 뻔히 운전하고 있는데도, 그는 리비아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리비아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벗어나 마침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던 그곳이 파토리에게는 사랑하는 임신한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이 있는 가정이자 고향일 텐데 말이다.




■ ‘왜 리비아로 가는가’ 다시 물었다


이날 오전 11시. 그동안 숙소로 썼던 트리폴리 알 와단 호텔을 출발해 튀니지로 향했다. 동료 기자들 중 한 명은 트리폴리에 더 남기로 했다. 그를 두고 나오는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지만 ‘얼른 튀니지로 들어가면 씻을 수 있겠지’ ‘맘껏 먹을 수 있겠지’ 하는 원시적인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리비아에서 취재를 마치고 튀니지로 나오는 길은 지난달 27일 들어갈 때 이용했던 남부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다하브-와진’ 국경 대신 북부의 ‘빈 가르데인-라스 아즈다이르’를 통하는 루트를 택했다. 튀니지 제르바에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까지 북부 국경을 통하면 쭉 뻗은 해안도로를 따라 약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도로를 따라 이어진 거점 도시에서 벌어졌던 반군과 정부군 간의 교전으로 이 국경은 한동안 가로막혀 있었다.


리비아 취재 기간 중 트리폴리에서는 ‘반군이 해안도로 중간중간의 도시들을 완전히 장악했고 교전도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경도 열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식’일 뿐 확인된 것이 아니었다. ‘그 도로를 이용해도 괜찮다’는 증거를 자꾸 모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트리폴리 코린시아 호텔 로비에서 만난 외국 기자들에게 “해안도로가 안전하다는데 정말이냐?”라는 질문을 계속해댔다. 한 호주 기자가 “회사 동료 일부가 그 길을 타고 하루 전 나갔다”고 말해줬다. 그의 얘기만으로 도로가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안심이 됐다.


■ 형용 못할, 불태워진 학살 현장


지중해 왼편을 따라 뻗어 있는 해안도로를 타면 푸른 지중해를 내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차창으로는 황량한 사막만이 펼쳐졌다. 우리 일행이 탄 차는 트리폴리를 지나 자위야, 사브라타, 주아라 등을 거쳐 쌩쌩 내달렸다. 반군들의 검문소도 남부 국경을 통과할 때보다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계속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특히 마지막까지 교전이 벌어졌던 도시 주아라를 통과할 때는 혹시나 저격수가 있을지 몰라 건물 옥상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주아라 지역 일부 도로에서는 반군들이 길을 가로막고 “위험하니 우회하라”며 다른 길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쿵쾅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황량한 사막을 보며 트리폴리에서의 여정 가운데 한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트리폴리를 떠나기 전날 들른 트리폴리 남쪽 카미스 여단 옆 임시 수감시설이다. 수감시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누추한 창고는 50여명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학살의 현장이었다. 이미 시신은 처리되고 없었지만 수십구의 시신을 불태운 뒤 남은 악취는 코를 찔렀다. 난생 처음 맡아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였다. 쥐고 있던 손수건을 저절로 코에 갖다댔다. 현장을 목격한 인근 주민들이 다가와 설명해줬다. 엄마를 따라 나온 세 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학살의 참혹함을 모르고 누비는 어린아이라니. 미래 리비아에 남은 과제는 바로 저런 꼬마 아이에게 왜 이런 학살이 일어났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에딘 병원에서 만난 여의사 모하메드 이남에 대한 인상도 강하게 남았다. 트리폴리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동안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한 뒤 5년간 병원에서 근무했다. 35세 미혼 여성으로 히잡을 쓰고도 전혀 거리낌 없이 일하는 이남은 외신에서 묘사되는 억압된 무슬림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외국 기자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영어를 구사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영어는 금지하고 오직 아랍어만을 배우게 했기 때문에 독학으로 익혔다고 했다. 가끔씩 자신이 얘기하고 싶은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윽, 이게 다 카다피 때문”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어린아이들과 젊은 세대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없이 죽어간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남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불쑥 올라왔다. 그 울컥함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동지애이자 힘든 시간을 겪어온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튀니지로 돌아와 곧바로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쉬운 영어로 또박또박. “당신의 열정에 감동받았습니다. 리비아와 당신의 미래에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처음 한국을 떠나 리비아로 향할 때 떠올렸던 “왜 위험한 리비아로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리비아에서 받은 타 신문사 기자로부터의 e메일 한 통이 생각났다. 일면식도 없는 그 기자는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고 극심한 스트레스,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겠지만 몸조심하라”고 응원했다. 그는 또 한 기고문을 읽다가 ‘왜 리비아로 가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떠올랐다며 그 글을 링크해서 보내줬다. 리비아 현장을 누비며 속보를 전하고 있는 영국 스카이뉴스 채널의 알렉스 크로퍼드의 남편 리처드 에드몬슨이 쓴 것이었다. 크로퍼드는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 현장 등 수많은 분쟁지역을 취재한 대표적인 여성 기자다. 인디펜던트 기자로 일하다 ‘전업주부’가 된 남편 에드몬슨은 크로퍼드가 보육에 소홀하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지난달 29일 인디펜던트에 반박하는 글을 썼다.


“내 아내 알렉스를 화나게 하고 싶다면 그를 여기자라고 부르거나 또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말하면 됩니다. 알렉스에게 여기자는 전쟁터로 가서는 안된다고, 특히 어린아이들이 집에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말해보세요. 그렇다면 그건 매우 치명적인 말이 될 겁니다. 알렉스는 지난주 참석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남성 기자들은 ‘남기자’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알렉스는 다시 리비아로 갈 것입니다. 그는 그가 말하고 싶은 사실을 위해 싸워왔고, ‘여성·아내·엄마’라는 작은 구멍으로 그를 보려 하는 사람들과도 싸워왔습니다.”


■ 해안도로 타고 튀니지로 귀환


나 역시 ‘왜 리비아를 다녀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기자’가 아니라 ‘기자’로서 대답해야 할 것 같다. 기자는 개인의 가치관과 판단력에 기초해 현장과 사건을 보고 기사를 작성한다. 그곳이 전장이든 휴양지든 상관없다. ‘여기자’이기 때문에 ‘남자’ 기자와는 다른 감수성과 접근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그것을 기사로 소화했더라도 그것은 여성이 아니라 ‘기자’로서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수가 적고, 과거에 그래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분쟁 현장으로 달려간 ‘여기자’가 관심 내지는 차별을 받고 있지만, 현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보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리비아 현장에는 ‘기자’가 있다.


‘살아서’ 기사를 보냈으니 선배가 말해줬던 종군기자 제1수칙은 잘 지킨 셈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멀리서 큰 소리가 나면 혹시 총소리가 아닐까 깜짝깜짝 놀란다. 이제 그런 일도 추억으로 간직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일상은 다 잊으라’는 여행자의 제1수칙을 마음에 담고 여행금지국가가 아닌 리비아를 다시 찾을 날을 기대해본다. 그때에는 반군 기숙사로 쓰였던 알 와단 호텔 야외 수영장에 몸을 담가볼 수 있을 것이다. 호텔 엔지니어 타레크와 약속한 대로. 


<제르바에서> 끝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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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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