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2일 약 40만건의 이라크전 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아프간전에 이은 이라크전에 대한 비밀문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군의 이라크전 수행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 관련 자료들입니다. 미군이 민간인 사망자를 파악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주장과 달리 자세히 파악해온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미군의 검문소가 주된 민간인 학살의 장소가 됐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 Founder of the Wikileaks website Julian Assange displays a page from the Wikileaks page on October 23, 2010 during a press conference at the Park Plaza hotel in central London. WikiLeaks' founder Julian Assange said today that hundreds of thousands of classified US military documents leaked by the website showed the 'truth' on the Iraq war. "This disclosure is about the truth," Assange told a news conference in London after WikiLeaks released 400,000 documents which give a grim snapshot of the Iraq war, including showing the abuse of Iraqi civilians by Iraqi security forces.



1. 검문소가 민간인 대학살 장소로 됐다구요?
  
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로부터 사전에 입수해 10주 동안 분석해온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2004년 1월부터 2010년 1월 이라크 내 검문소에서만 1만4000건의 총격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민간인 681명. 대부분 정지 수신호를 알아보지 못한 운전자들이 차량을 멈추지 않자 차량폭탄테러를 우려한 미군의 발포로 벌어진 참사들입니다. 많은 경우 수니파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임신한 부인이나 가족을 병원으로 후송하는 차량을 향해서도 총을 겨눈 경우.
2006년 5월 수도 바그다드 북쪽 110㎞ 떨어진 사마라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으로 가던 임신부 나히바 자심(35)과 삼촌은 물론 뱃속의 아이까지 미군의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2005년 9월 수도 바그다드 남부 무사이브 근처의 도로 검문소에서도 미군 2명이 정지 신호를 무시한 차량을 향해 총격을 퍼부어 앞좌석의 남녀 성인 2명이 숨지고, 뒷좌석에 있던 6살 및 9살 아이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해 10월 바그다드의 한 검문소에서도 미군 총격으로 아이 2명이 숨지고 다른 아이와 여성 1명은 부상했습니다.

6월14일 이라크 중부 라마디 근처의 허리케인 포인트 기지의 검문소에서도 어린이 2명과 어른 5명이 숨졌습니다.

2. 민간인 오인 살해 뒤에 미군은 거짓 보고를 했다구요?

2007년 7월 바그다드에서 미군은 검은색 BMW 차량이 정지 신호를 무시하자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는데요. 차량 안엔 성인 남녀 2명과 아이 2명이 있었습니다. 미군은 사후 보고서에서 차량 안에 탄약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탑승자가 누구였으며 왜 탄약 차량으로 판단했는지에 대한 조사없이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습니다.


 
(FILES) A picture taken on February 16, 2007 shows Iraqi soldiers manning a checkpoint in central Baghdad. Suicide bombings, torture and military firefights -- for all the fragmentation and redaction in some 400,000 US military documents released by wikiLeaks on October 22, 2010, a grim snapshot emerges of the Iraq war. AFP PHOTO/AHMAD AL-RUBAYE


3. 이라크 보안군의 수감자 학대 사례는?
 
알자지라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 보안군이 수감자에 대해 자행한 학대행위는 1000여건이 넘습니다. 수백명이 감옥안에서 학대와 고문을 당했으며, 수감자 사망 보고만 6건이나 됐습니다.
 

수감자들이 당한 고문의 형태는 구타와 불고문, 채찍질, 전기고문, 성적 학대 등 다양했습니다. 한 수감자는 교도관들에 의해 손가락이 잘리고 몸에 산성 용액이 뿌려지는 고문을 당했구요. 한 미군은 바그다드 수용소에서 수감자 95명 한 방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책상다리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이들의 몸에서 담뱃불 자국이 발견됐습니다.

미군은 이런 행태를 상관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보고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조사가 필요치 않다는 식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회피했습니다.

2006년 6월 말 이후 보고된 이라크 보안군의 수감자 학대 건은 이라크가 주권국가가 된 이후여서 간여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처사는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위배했다는 지적을 면키는 어렵습니다.

미국은 1994년 이 협약에 비준했으며, 비준 국가는 고문이 우려되는 곳으로 수감자를 이송해서는 안됩니다.
 

4. 이란이 이라크 내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구요?
 
이란 혁명수비대의 핵심부대인 쿠드스가 이라크 반군 세력을 저격수로 훈련시키고 이라크 관리 암살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2003년 미군 침공과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로 이란이 이라크에 비해 월등한 군사적 우위을 점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지적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전 개시 당시 이란의 보유 탱크는 1565대로 이라크의 2200대보다 적었지만, 최근엔 1613대로 이라크의 149대보다 10배이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A store holder prepares newspapers headlining WikiLeaks story for sale at a newsagent in Wimbledon, southwest London, Saturday, Oct. 23, 2010. WikiLeaks the online whistle-blower web site are to release some U.S. secret documents on their war in Ir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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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으로부터 600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미국의 무기판매 기록중 사상 최대 규모인데요, 이번 거래로 걸프 아랍국가들의 군비확장 경쟁은 더 가열될 것으로 보입니다. 걸프 아랍국가들이 전쟁 없는 상황에서 보기 드문 군비확장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미국으로부터 구입하는 규모만 1230억달러(약 13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이란에 대한 전쟁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테러세력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내부적인 목적도 있는 것으로도 분석됩니다.



1.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무기거래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으로부터 600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구입할 예정입니다.  F15 전투기 84대, 아파치 헬기 70대, 블랙호크 헬기 72대 등과 함께 미사일과 레이더 등 군사장비를 향후 15~20년간 인도받게 됩니다. 20일 AP통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이같은 무기판매 계획을 의회에 공식으로 전달했으며, 의회의 승인을 받는대로 이행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미국은 이번 무기판매에 앞서 아랍국가들과 불편한 관계인 이스라엘과 이미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2. 사우디가 이렇게 무기를 사들이는 이유는 무엇이죠? 
미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나이츠는 “핵무장 이란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면서 “사우디의 이번 무기구입은 이란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사우디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앤드루 샤피로 미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차관보는 “중동지역 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꼭 이란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위기 고조를 경계했습니다.



3. 사우디의 영향으로 인접 걸프국가들도 앞다퉈 무기 구입을 늘리고 있다구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역고고도방어시스템(THAAD)을 미국 록히드마틴사로부터 70억달러어치를 사들이기로 확정했습니다. 이란이 지난 수년간 미사일을 개발해온 데 따른 대응으로 분석되구요. UAE는 프랑스로부터도 라팔 전투기 80기를 포함해 최고 400억달러어치 무기를 추가로 구입할 계획입니다. 
 
 쿠웨이트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 체계를 정비할 예정이며, 오만과 쿠웨이트는 전투기와 지휘통제시스템을 정비하는데 각각 120억달러, 70억달러를 지출할 예정입니다. 이에 질세라 이스라엘은 사우디가 구입한 F15보다 성능이 우수한 스텔스 전투기 F35를 27억5000만달러어치 구입하기로 최근 결정했습니다.



4. 걸프국들이 군비지출을 늘리는 배경은?

 걸프 국가들의 군비지출은 2003년 이라크전 발발 이후 이란의 지역패권 야심을 경계하면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즈먼은 “이들 국가의 군비지출은 이란의 10배에 달한다”면서 “이란은 성능이 떨어지는 러시아·중국제 재래식 무기가 낡기까지 한 상태여서 이를 보상하기 위해 핵개발에 나섰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군비경쟁이 이란에 대한 억제효과는 있겠지만,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무기 판매는 불안정한 걸프 지역의 지정학 측면에서 사우디가 기동력을 확보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레바논 일간 데일리스타는 “이란의 위협은 상존해온 것이므로 현재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내부의 테러공격이 강화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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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 이야기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은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300달러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죠. 
우리가 많이 들어본 콩고와는 다른 나라입니다. 콩고는 그 옆에 있는 콩고공화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콩고강 한 옆엔 콩고공화국이 있고, 한 쪽엔 콩고민주공화국이 있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예전에는 자이르라고 불렸죠. 지금의 이름은 민주콩고이지만 민주주의가 정착되려면 오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나라이기도 합니다. 15년 내전의 마침표는 찍었지만 여전히 반군들의 폭력은 계속되고, 민간인을 상대로 한 ‘집단 성폭행’이 유행처럼 자행되고 있습니다. CNN방송은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의 비극을 소개했습니다.


2. 어떤 비극?


동부 남키부주의 주도인 부카부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카타나’는 겉보기엔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보이지만, 얼마 전 그곳에서 반군들이 참혹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나라는 동쪽으로 르완다, 부룬디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마나제라라는 여성은 르완다와 인접한 카타나 마을에 삽니다. 

르완다 반군이 국경을 넘어와 민가를 공격하자, 마나제라의 남편은 살기 위해 달아났습니다. 마나제라는 다른 여성 8명과 함께 숲 속으로 끌려가 성폭행 당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일상적인 일이라는 겁니다. 마나제라는 CNN 인터뷰에서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세계가 자기네들 사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남키부주의 주도 부카부에서 80㎞ 떨어진 음웬가에서 16일 주민들이 
내전 당시의 집단 성폭행을 재연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음웬가 | AFP연합뉴스




3. 민주콩고 동부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지역에서는 르완다 반군 르완다해방민주군(FDLR)과 민주콩고 반군인 마이마이가 번갈아 드나들며 지역 마을들을 급습해 주민들을 죽이고, 집단 성폭행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동부지방에서 3개 무장 민병대에 의한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303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달 초에는 정부군도 잇따라 주민들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가장 힘 없는 시골 여성들이 최악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거죠.


4. 유엔도 얼마 전 이 지역의 심각한 인권상황에 대해 경고했다고요.


지난 15일 유엔은 “지난해 민주콩고 동부에서 1만5000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은 민주콩고를 ‘전 세계 집단 성폭행의 중심지’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부터 파병된 유엔평화유지군은 정작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나제라가 살던 곳은 유엔군 기지가 인접했던 곳이었습니다.
17일에는 참다못한 피해 여성들이 직접 거리로 나왔습니다. 퍼스트레이디인 올리베 렘베 카빌라를 비롯해 수천명의 여성들이 부카부에서 행진을 벌였습니다.






대량학살과 약탈, 강간 등의 혐의로 체포된 민주콩고 전 부통령 장 피에르 벰바(뒤)가 
19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헤이그 | AP연합뉴스



5. 민주콩고의 정치상황은 어떻기에?

옛 자이르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1960년대 독립했습니다.
자원도 많고 땅도 넓어서 잠재력이 없지 않았지만 군벌의 가혹한 통치가 계속됐습니다. 국부를 주머닛돈처럼 챙겼던 모부투 세세 세코라는 독재자가 1997년까지 부정축재를 하다가 쿠데타로 쫓겨났고요.
그 뒤에 쿠데타를 일으킨 로랑 카빌라 등 군벌들 간 내전이 벌어졌고, 카빌라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15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인해 사망자만 540만 명을 헤아립니다.

그런데 카빌라는 2006년 석연찮은 총격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조제프 카빌라 현대통령이 집권했습니다. 국제사회의 감시와 지원 속에 민주화 과정을 밟았고, 나름 성공적으로 평화선거를 치러 조제프 카빌라가 2006년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국경지대에서는 여전히 유혈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6. 자원이 많다는 데 발전 정도는.


면적 234만㎢로 한반도 10배 크기입니다.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갖고 있으며 석유매장량도 15억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전이 끝난 뒤 이 나라의 자원에 눈독 들인 해외투자가들이 몰려와 개발붐이 일고 있고, 최근 몇 년 새 경제성장률이 7~9%에 이르고 있습니다. 남아공 등지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들도 앞 다퉈 진출하고 있는 곳이죠.

하지만 수도 킨샤샤 땅값과 물가 엄청 뛰어오른 데 비해 대다수 국민들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원이 덫이 되는 느낌입니다. 민주콩고의 자원 가운데 코발트는 매장량 기준으로 보면 세계 50%. 다이아몬드는 30%, 휴대전화 재료가 되는 콜탄은 70%랍니다. 반군들은 동부 지역의 풍부한 광물자원을 놓고 정부군과 경쟁하면서 민간인 성폭행을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얼마 전 민주콩고에 다녀온 후배의 말로는, 킨샤샤에서는 사람들이 '돈 독이 올라' 무법천지인데 인프라는 여전히 형편 없고 빈곤의 기미는 가시지 않는 상황이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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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에서 고교생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고요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계의 총파업이 현지시간 14일로 3일째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전역에서 수만 명의 고교생들이 처음 가두시위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사회생활에 뛰어들 나이가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연대를 하겠다고 거리로 나온 것인데요. 심각한 청년실업과 사회보장제도의 약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깔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2. 몇 개 학교에서 얼마나 나왔나요.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L)은 1100개 고등학교가 이번 총파업에 동참했으며 이중 700곳에서 수업이 중단됐다고 밝혔습니다. 남부 툴루즈에서 1만명, 보르도 7000명 등이 대체로 평화적인 거리집회를 가졌지만 BFM TV에는 파리 중심가에서 바리케이드를 치는 학생들과 남부에서 쓰레기 수거통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는 장면이 보도됐습니다. 

파리에서는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 학생이 시위진압용 고무탄에 눈을 맞아 실명 위기에 처했고 수십 명이 연행됐습니다.





High school students vote during a general assembly during their protest 

against the pension reform, Thursday, Oct. 14, 2010 in Rennes, western France.

 (AP Photo/David Vincent)




3. 학생들의 주장은 뭔가요?


빅토르 콜롬바니 UNL 회장은 일간 르몽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연금개혁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며 “앞으로도 계속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개혁안으로 정년이 60세에서 62세로 연장될 경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150만개 모자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2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이 24%에 이른다고 AFP통신 등은 전했습니다.

10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자 정부는 당혹해하는 모습입니다. 파리 시 관계자는 “자칫 도심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고, 집권 국민행동연합은 야당이 학생들의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4. 과거에도 학생들이 정부 정책에 대거 반발하고 나서면서 정부안이 결국 철회된 전례가 적지 않죠?


1968년 샤를 드골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68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난 20여년 동안 4~5년 간격으로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습니다. 86년에는 대학개혁법안에 반대하는 대학생 수십만명이 시위에 나섰다가 한 학생이 숨지면서 시위가 가열됐고, 결국 법안이 철회됐죠. 

90년에는 리오넬 조스팽 교육장관의 개혁안에 반발하면서 고등학생들이 파리에서만 10만명이 모여 시위를 했고요. 이어 94년에는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최저임금안에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뛰쳐나와 결국 임금안이 폐기됐습니다. 발라뒤르는 한때 대권을 노리고 있었는데 시위가 단초가 되어 결국 대선에서 탈락했고요.




High school students demonstrate in Marseille, southern France,Thursday, Oct. 14, 2010.

(AP Photo/Claude Paris)




5. 니콜라 사르코지 현대통령도 사실 학생 시위 덕을 본 사람이라는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만, 2006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밑에서 2인자였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최초고용계약이라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최초고용계약은, 26세 이하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에는 2년 안에 아무 조건 없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를 담은 노동법 개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는데 결국 시위에 밀려 철회됐죠. 학생들, 야당들이 엄청나게 반발한 이 법안 때문에 결국 빌팽 총리는 중도 낙마했고 집권당 내 대권 경쟁자였던 사르코지가 어부지리를 얻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사르코지는 최초고용계약이 너무 심하다면서 은근히 정부 시책을 비판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청년 시위에 부딪치는 입장이 됐습니다. (사실은 2008년에도 사르코지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인다면서 교원 수를 줄이겠다고 했다가 파리에서 십만 명 이상의 고등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인 적이 있기는 했습니다.)


6. 총파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지난 12일 노동계가 총파업을 강행했습니다. 한달 새 네 번째 파업입니다. 시위는 12일 이후로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요. 노동계는 16일 다시 전국적인 시위를 벌일 계획입니다. 12일 파업의 경우 노동계는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이 350만명 정도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120만명 정도로 추산하는 등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잇단 파업에 수많은 이들이 참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원에서 통과된 연금개혁법안은 지난 11일 상원에서도 통과가 됐으니 이제 시행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반발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난 11일 여론조사기관 CSA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파업을 지지한다고 했고, 61%는 노동자들의 무기한 파업에도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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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매몰에서 구출까지, 모든 과정을 한 눈에 보시려면 

http://khross.khan.kr/13 - 여기를 보십시오




1. 칠레 광부들 구출작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현지시간 13일 밤 9시55분 칠레 북부 코피아포 인근 산호세 광산 매몰현장 안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루이스 우르수아(54)가 캡슐 밖으로 걸어나왔습니다. 

구조 현장에서는 기쁨의 함성이 터졌습니다. 전12일 밤 11시20분에 구조대원을 실은 캡슐 ‘불사조’가 지하로 내려간 이래로, 21시간 44분간에 걸친 구조 드라마가 이로써 막을 내렸습니다. 

우르수아는 캡슐에서 나와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과 포옹을 한 뒤 “전 세계가 기다린 일을 우리가 해냈다”며 “우리가 열심히 싸운 70일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이 됐네요.


첫 구조자였던 플로렌시오 아발로스가 지상에 올라오기까지, 캡슐이 왕복하는 데에 1시간이 걸렸는데 그 뒤에 구조작업에 계속 탄력이 붙었습니다. 

당초에는 캡슐을 타고 나오는 데에 1명당 1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이 됐는데 진행 과정에서 40여분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 최소한 이틀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았는데 만 하루도 안 되어 마무리됐습니다.
하이메 마날리치 보건장관이 1차 건강검진 결과를 발표했는데, 1명은 폐렴 증상이 심하고 2명은 치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네요. 특별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7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아주 양호한 편이죠. 안에서 조직적으로, 생활을 잘 유지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3. 축구공을 선물 받은 광부도 있던데.


프랭클린 로보스라는 광부는 축구 선수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녜라 대통령이 미리 축구공을 준비해갔다가 로보스가 나오자 선물을 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로보스가 대통령 앞에서 그 축구공을 직접 차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Relatives and friends of 33 freed miners celebrate the end of the successful rescue operation 

at the camp outside the San Jose mine near Copiapo, Chile, Wednesday Oct. 13, 2010.




광산 아래 캠프 에스페란사(희망)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은 한 명 한 명 캡슐에서 나오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울고 웃었습니다. 구조작업이 끝나자 인근 도시 코피아포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시민 1만여명이 모여서 축제를 벌였고, 수도 산티아고에서도 곳곳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밤늦도록 기쁨을 나눴습니다.


4. 구조 비용도 엄청 많이 들었다는데.


피녜라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33명의 광부들을 구조하는 데 2000만달러(222억원) 이상이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현장에 설치돼 있던 희망 캠프의 유지비까지 포함하면 총 비용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칠레 정부는 구조작업 비용을 산호세 광산 소유주인 광업회사 산 에스테반에 청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이 회사는 파산상태여서 비용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비용도 칠레 국영 구리회사 코델코가 1500만 달러를 부담했고 민간 업체들이 500만 달러를 보탰다고 합니다. 매몰 광부의 가족들은 산에스테반을 상대로 1200만달러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는데 이 역시 받아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네요.


5. 칠레 광부들 구출에 시선이 쏠리면서 어제 전세계 온라인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광부들 구출작업이 이뤄지는 근 24시간 동안 전세계의 시선이 산호세 광산에 쏠렸습니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광부들의 구조작업에 대한 뉴스는 전 세계 온라인 상에서 분당 40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칠레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구조작업이 시작된 후 1분당 478개의 뉴스를 게재했고, 미국에 거주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1분당 1265개의 글을 올렸다고 페이스북 측이 밝혔습니다.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한 라우렌세 홀보르네 칠레 광업부 장관은 이번 사건 이후로 트위터 팔로어 6만1000명이 생겼습니다. 특히 홀보르네 장관은 항상 웃는 모습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인기인이 됐다는 소식입니다.


6. 피녜라 칠레 대통령도 인기가 올라갔을 듯.


피녜라 대통령이 구출작업이 시작되자 “우리의 최고 자산은 구리가 아닌 광부들”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올해 60세의 피녜라 대통령은 지난 1월 대선에서 승리를 했고, 3월에 취임을 했습니다. 취임 직전인 2월에 지진이 일어나서, 집권 초반에는 그 뒷수습에 바빴습니다. 

매몰 17일만에 광부들의 생존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산호세에 와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열성적으로 광부들을 응원하고 구조작업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였지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피녜라는 언론을 능숙하게 잘 공략했다”면서 지지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피녜라는 얼마 전에는 자국 내에서 광산업을 벌이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세금을 높이는 법안을 발의해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실은 칠레 자체가 승자죠. 대지진 때에도 평소의 철저한 방재대책 덕에 사망자가 적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이번에 칠레의 광산기술과 구조기술, 국민을 아끼는 정부의 열성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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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이 오인공격으로 파키스탄 병사들이 숨진 것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파키스탄에 공식 사과를 했다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지난달 30일 아프간 주둔 나토군 헬기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초소를 폭격해 병사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6일 앤 패터슨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는  “미군 헬기가 파키스탄 국경 수비대원을 자신들이 쫓던 탈레반 무장전사로 오인한 데 따라 이 같은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고 밝히고, “파키스탄과 이번 사건으로 숨지거나 부상당한 국경수비대원들의 가족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파키스탄이 미군의 오인 폭격으로 자국 병사들이 숨진 것을 계기로 아프간으로 통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주요 물자 수송로를 폐쇄한 데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나토의 연료 운송차량을 타깃으로 연쇄 공격을 퍼부으면서 아프간전 수행에 차질이 올까 우려한 까닭입니다. 알자지라 방송은 미국과 파키스탄 양국 모두 이날 미국이 보여준 ‘저자세’로 일단 폐쇄됐던 아프팍 국경 지대의 운송로는 곧 다시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A Pakistani policemen stands guard beside burning NATO supplies oil tankers in Nowshera on October 7, 2010 following a late night an attack by the Taliban. More than 40 NATO vehicles were destroyed in two separate Taliban attacks in Pakistan on October 6 as the militants stepped up their efforts to disrupt supply routes into Afghanistan. AFP PHOTO / A. MAJEED


2. 하지만 운송료가 다시 열린다고 해서 두 나라의 근본적인 긴장은 풀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데요.  파키스탄이 ‘완전한 미국의 동맹국’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분석이 많다면서요?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가 파키스탄에 사과한 이날, 미국 백악관은 정례보고서에서 “파키스탄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와의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파키스탄군이 남와지스리스탄에서 무장세력과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병사들이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 보고서는 최근 양국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동맹국인 파키스탄의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이 반영된 것인데요.

 오늘(7일)이 아프간 개전 9주년입니다. 전쟁이 10년째로 접어들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중대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탈레반과의 화해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파키스탄과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고, 파키스탄은 미군 철수 이후에 아프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어 탈레반 소통에 미온적입니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이 무장세력과 연계돼 있다고 알려져 미국 입장에서는 파키스탄이 영 탐탁지 않은데요, 아프간전에 있어서 전략상 매우 중요해서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3. 아프간 주둔 나토군으로 가는 물자 수송로는 파키스탄에서 어느 정도 차지 하나요?

 아프간 주둔 미군과 나토군의 보급품 가운데 절반 가량이 파키스탄을 거쳐 공급되기 때문에 파키스탄 보급로는 전략상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아프간 주둔 미군의 물품 중 30%가 러시아와 옛소련 독립국을 포함한 ‘북부 보급망’을 통해 운송되고 있는데 미 국방부 대변인인 데이브 레이펀 대령은 토르캄 보급로 폐쇄가 길어지면 대안을 더 찾아볼 것이라면서 지금으로서는 다른 보급로들이 열려 있어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Pakistani firefighters try to extinguish burning NATO oil tankers following a Taliban attack in Nowshera on October 7, 2010. More than 40 NATO vehicles were destroyed in two separate Taliban attacks in Pakistan on October 6 as the militants stepped up their efforts to disrupt supply routes into Afghanistan. AFP PHOTO / A. MAJEED


4.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 지대에서 탈레반의 공격과 미군의 공습이 더 거세지고 있다구요?

 탈레반 측은 파키스탄 내 나토군의 보급로를 마비시키겠다면서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대해 무인기 공격을 가하는 데 대한 보복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날에만 파키스탄 두 지역에서 나타군의 아프간 물자 수송을 막으려는 탈레반으로 공격으로 1명이 숨지고 최소 55개의 연료 탱크가 불탔습니다. 미군은 이날 파키스탄 북서부 부족지역을 미사일로 공격, 5명이 숨졌습니다. 파키스탄 북서 부족지구는 유럽 테러 공격 계획의 근거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부족지구 북(北)와지리스탄 주의 주요 도시 미란샤의 무장기지에 2발의 미사일 공격이 가해졌다고 밝혔는데요,  미란샤에서는 (탈레반의) 외국인 전사들이 유럽에 대해 뭄바이식 테러 공격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Fuel tankers, which were carrying supplies to foreign forces in Afghanistan, explode after they were attacked in the outskirts of Quetta October 6, 2010. Gunmen in Pakistan attacked and set fire to 20 trucks transporting supplies to NATO troops in Afghanistan on Wednesday, police said. REUTERS/Stringer




5. 지난 4월에 미국 멕시코만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있었죠.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멕시코만 유정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대응이 미숙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구요?

 미국 BP 기름유출 조사위원회는 5일 오바마 행정부가 BP를 지나치게 신뢰한 데다 유출 초기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막는 등 유출사고에 부적절하게 대응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사고가 일어난 후 열흘 동안 응답자들(미 정부 관리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응답자들은 한결같이 대규모의 기름유출을 맞닥뜨린 순간에도 ‘BP가 알아서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6. 미국 행정부가 초기에 기름 유출 규모를 실제보다 적게 파악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이번 보고서에도 그 내용이 담겼나요?

 보고서는 미 행정부가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유출 규모를 실제보다 적게 파악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켰다고 지적했는데요. 기름유출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나기 전인 4월 말이나 5월 초 미국해양대기청(NOAA)가 ‘최악의 경우의 유출 수치’를 발표할 것을 요청했으나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거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여러 과학자들이 유출 정도가 심각하다고 경고했지만 미 행정부는 하루 유출 추정량의 10분의 1 정도인 하루 5000배럴 정도가 유출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백악관 담당자는 지난 8월 ‘기름의 4분의 3 이상은 해당 지역에서 없어졌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자연분해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바다 속에는 기름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증발한 기름은 대기 중에도 잠시 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멕시코만의 사고 유정은 지난 19일 BP에 의해 밀봉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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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느냐를 두고 관심을 모았던 브라질 대선이 어제 치러졌는데요.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3일의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50%를 넘는 1위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브라질인들은 오는 31일 1위와 2위 득표자를 좋고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습니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50%∼52%의 득표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여성 후보, 딜마 호세프 대통령 후보가 예상을 깨고 46.6%를 득표하는데 그쳐 '브라질 최초의 여성대통령 탄생'은 일단 연기됐습니다. 브라질 대선을 관장하는 최고선거법원은 4일 개표결과 호세프 후보(62-노동자당)가 46.6%로 1위, 주제 세하 후보(68-사회민주당)는 32.8%로 2위, 마리나 실바 후보(52-녹색당)는 19.5%로 3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는데요.
대다수의 분석가들은 3주후 결선투표에서 호세프 후보가 낙승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결선일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낙관적 예측을 삼가는 소수 분석가들도 있습니다. 결국은 19.5%에 달하는 실바 후보 지지표의 향방이 결선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왼쪽은 딜마 호세프, 오른쪽은 주제 세하. (AFP PHOTO/VANDERLEI ALMEIDA)



2. 승리가 예상됐던 호세프 후보가 50%를 넘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호세프 후보가 대선 출마를 위해 여러 달 전 룰라 대통령 내각의 선임장관을 사임한 뒤 그 후임자로 들어간 '같은 당의 정치적 동지'가 지난 달 부패 스캔들을 일으켜 이로 인해 호세프 후보의 표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노동자당의 스캔들이 불거지자 야당의 세하 후보는 선거유세 중 이것을 집중적으로 부각했고, 이로 인해 호세프의 표가 세하 후보나 3위 주자인 실바 후보로 일부 옮겨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호세프 후보의 예기치 못한 약세는 또한 경쟁자 세하 후보와 공약에 있어 별 차이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이들 두 후보는 룰라 현 대통령의 실용적인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그 대로 계승하겠다고 공약해 이슈는 “누가 더 룰라의 노선을 정확하게 따르느냐”하는 문제가 됐는데요.
게다가 정치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호세프 후보는 국민적 영웅인 룰라 대통령에 비해 정치적 카리스마가 약한 점도 꼽힙니다. 





상파울루 교외 상베르나르두의 투표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룰라. (AP Photo/Andre Penner)



3. 결선에 나선 두 후보들은 각각 어떤 인물인가요?

 
호세프는 1964-85년간 브라질의 군사독재 기간 중 좌파 무장저항 운동을 벌여 수 년간 투옥되는 등 '투사'였으나 그후 룰라 정부의 에너지 장관, 수석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이번에 대선 후보로 나섰습니다.
경쟁자인 주제 세하는 주지사, 시장, 상원의원 등을 거쳐 페르난도 카르도수 정부에서 기획부 및 보건부 장관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2002년 사회민주당과 중도 좌우파의 지지를 얻어 대선에 출마했으나 룰라에게 크게 패한 뒤 이번에 대통령직에 재도전하고 있습니다.

 

4.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네요.  
 
네, 현지시간 4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노벨 생리의학상은 체외수정(IVF) 기술을 개발, "전 세계 10% 이상의 부부를 포함해 상당수 인간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불임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명예교수 에드워즈 박사(85)에게 돌아갔다고 발표했습니다.

위원회는 에드워즈 박사의 중요한 발견들이 현재와 같은 성공적인 체외수정 기술로 이어짐으로써 새로운 의학 분야가 등장했으며 그의 업적은 현대 의학 발달에 이정표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에드워즈는
1950년대부터 체외수정이 불임 치료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연구한 끝에 인간 난자 성숙 과정 등 수정의 중요 원리를 발견하고 1969년 마침내 시험관에서 인간의 정자와 난자를 수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인 패트릭 스텝토 의사와 함께 1978년 7월 25일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이 탄생함으로써 연구의 결실을 보았으며,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400만명 이상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In this July 12, 2008 photo British physiologist Robert Edwards, left, attends the 30th anniversary of the world‘s first
"test tube" fertilization baby Louise Joy Brown, right, holding her son Cameron. (AP Photo/Chris Radburn, PA)



 

5. 에드워즈 박사의 공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1950년대부터 수정 과정에 대한 기초연구를 시작한 에드워즈 박사는 인간 난자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성숙하고 여기에 호르몬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했고,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가능해지는 시점과 조건 등도 밝혀냈습니다.
또 복강경 시술의 선구자인 스텝토 박사는 복강경을 이용해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하고 인공적으로 수정한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는 등 시험관 아기 시술 실현에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시험관 아기 시술법을 개발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에 세계 최초의 인공수정 불임치료 병원인 ‘보언홀 클리닉’을 설립, IVF를 불임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스텝토 박사는 1988년에 숨져, 생존자에게만 상을 준다는 노벨상 원칙에 따라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에드워즈 교수에게는 1000만 스웨덴 크로네(약 16억7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립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는 이날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5일), 화학상(6일), 문학상(7일), 평화상(8일), 경제학상(11일) 순으로 발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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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가 강경하게 집시 추방 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의 집시 포용정책이 주목받고 있다구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교외에 거주하고 있는 집시 안토니오 모레노는 대부분 극빈층인 다른 유럽 국가의 동족들과 달리 4개의 침실과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여유있게 살고 있습니다. 자신 소유의 스튜디오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다루는 버젓한 직업도 갖고 있구요. 또 그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잇따라 쫓겨나고 있는 동족들과는 달리 강제 추방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인구 4만명가량의 불법 정착촌에 살면서도 그가 이처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스페인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집시에 대해 수십년째 통합 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최근 서유럽 국가들이 집시를 문제거리로 보고 추방하고 있는 데 반해, 스페인은 집시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유지하고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스페인 거주 집시들이 지난 3월 말 부활절 전주인 수난주간을 맞아 말라가에서 행진을 하며 춤을 추고 있다. 말라가 | 로이터연합뉴스



2. 스페인의 집시 포용정책은 어떤 것인지, 또 그효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스페인에서 집시들에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1975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은 이후부터 입니다. 취직, 교육은 물론 4명 이상 모이는 것조차 금지됐던 집시들에게 주택 보조, 의료 보조, 교육 등의 사회적 혜택이 부여됐고, 집시들의 생활은 극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스페인 집시들 가운데 빈민가 거주 비율이 1978년 78%에서 현재 16%로 낮아졌고, 절반가량은 집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집시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맹률이 15%가량으로 떨어졌고, 또 집시의 75%가량이 고정적인 수입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집시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고, 스페인 사회에 통합하는 데 스페인 정부는 매년 3600만유로(약 560억원)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3. 스페인에서 집시들이 기존 사회에 쉽게 융합되고, 정부가 통합 정책을 실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스페인에 거주하는 집시는 약 97만명으로 추산되며, 서유럽에서는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우선 스페인에서도 가장 많은 집시들이 거주하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관습이 집시들과 비슷한 것이 집시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되는 주 원인이 됐습니다. 가족과 가문을 중요시하고 연장자의 권위에 따르는 집시들의 관습이 스페인 남부지방의 전통과 비슷했기 때문에 집시와 원주민 간의 결혼이나 교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빈번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재자 프랑코 사후에 집시 등 모든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헌법이 만들어진 덕분에 집시들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요. 현재 스페인은 다른 유럽국가는 물론 집시들의 고향인 루마니아에서도 집시통합정책을 배울 정도로 집시에 대한 정책이 성공한 국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EU 집행위 비비안 레딩 부위원장은 타임지에 보낸 이메일에서 “스페인 정부는 집시 인구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긍정적인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4. 스페인들 사이에서 집시에 대한 편견은 없는지?

 그러나 스페인에서도 집시가 아닌 스페인인에 비해 집시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인종차별적 시각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2006년 여론조사에서 스페인인의 40%가 집시들이 이웃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2007년 루마니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해 유럽 내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루마니아 국적 집시들에 대한 대우도 스페인이 안고 있는 고민 중 하나입니다.  스페인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집시와 집시가 아닌 스페인인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는 집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활성화하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데, 스페인의 집시 어린이 10명 중 2명만이 중등교육을 마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입니다.


A Romanian Roma man carries a large bag, after he and more than 200 others arrived on two special flights from France, in Bucharest, Romania, Tuesday, Sept. 14, 2010. France's deportations of Gypsies are "a disgrace" and probably break EU law, the European Union's executive body declared Tuesday in a stinging rebuke that set up a showdown with French President Nicolas Sarkozy's conservative government. (AP Photo/Vadim Ghirda)/


5. 다른 유럽 국가들의 대집시 정책은 어떤가요?

 이탈리아, 프랑스 등 스페인 주변의 유럽 국가들은 최근 집시 추방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지난 5월 자국 내 51개 집시 집단거주지에 대한 해산작업에 들어간 데 이어 올여름 집시 8000여명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추방했습니다. EU가 프랑스정부의 집시 추방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프랑스는 오는 15일부터 추방되는 이민자들의 열 손가락 지문을 채취하는 등 오히려 반집시 정책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12세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은 이민자 전원의 지문을 채취해 재입국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지요. 프랑스는 추방되는 집시들에게 어른 300유로(약 46만원), 어린이 100유로씩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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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는 3일로 독일통일 20주년이 됩니다.


냉전의 붕괴에 매듭을 지은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통일과정이 시작된 지 20년이 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죠.
독일 언론들은 통일 이후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사들을 일제히 내보내고 있는데요. 냉전의 후유증과 갑작스런 흡수통일의 부작용,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과정에 초점들을 맞추고 있습니다.


2. 전반적인 평가는.


지난 8월 옛 동독지역인 브란덴부르크주의 마티아스 플라체크 주지사가 슈피겔과 회견하면서 “서독이 동독을 '병합(Anschluss)'했다. 독일 통일이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20년간 진행된 통일·통합의 과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발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 내에서 나오는 평가는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쪽입니다. 올 봄 이코노미스트가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 동독인의 91%와 서독인의 85%가 통일이 옳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5년째 집권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통일은 성공적이다. 통일 독일은 이제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지구촌의 수호국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면서 자신감을 표출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통일 뒤 처음으로 탄생한 동독 출신 총리죠.




서독 쪽에서 바라본 베를린 장벽 풍경. 1978년 3월, 뫼들라로이트 Moedlareuth 에서 찍은 거라고 합니다. /로이터




3. 통일 비용도 많이 들었는데, 경제적으론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단기적으로 보면 통일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통일 이후의 경제적 이익은 매우 컸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일단 옛 동독지역 임금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보다 싸기 때문에 통일 이후 독일은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과, 또 규모의 경제를 이뤄낼 수 있는 유럽 최대의 시장을 얻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들어간 비용도 적지 않다. 독일 정부는 20년 동안 평균적으로 매년 GDP의 4% 가까이 되는 막대한 비용을 동독 지역 인프라 투자 등에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냉전시절 동서독 양측이 써야 했던 안보비용이 크게 낮아졌다고 합니다.


4. 하지만 아직도 양측간 ‘사회적 통합’은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시각도.


주간지 '벨트 암 존탁'이 26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가 눈에 띕니다.
옛 서독지역 사람들의 68%는 20년이 지났지만 통일 뒤 옛 동독지역을 한 번도 여행하지 않았거나 거의 가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동독 지역 사람들 중에는 서독에 가지 않았다는 응답이 29%로 차이가 났습니다. 아무래도 양측의 경제적 격차를 보여주는 거겠죠.


5. 옛 동독지역의 경제는 지금도 옛 서독지역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데.


독일을 여행해보신 분들이라면 예전에 동독이었던 지역과 서독이었던 지역의 인프라 차이나 경제적인 활기의 차이가 확 느껴졌을 텐데요.
실제로 동독 지역 5개 주의 실업률은 11~13%로 독일 전체 실업률 보다 3%포인트나 높습니다. 그동안 총 1조3,000억 유로(약 2,011조원)의 연방예산이 동독 지역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동독지역 주민들의 GDP는 서독 지역의 65.8%에 머물고 있습니다.
독일 30대 기업들 중 옛 동독 지역에 본사를 가진 기업은 하나도 없으며, 독일의 하위권 7개 주 가운데 6개 주가 옛 동독 지역입니다.


6. 그럼 동독 지역 사람들은 불만이 높지 않을까.


통독 직후 서로 경멸적인 의미에서 부르던 '오시(ossie·동독인)' '베시(wessie·서독인)'의 호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동독인들은 “2등 시민으로 취급 받는다”는 불평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통독 이후 동독 지역 주민 300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 지역으로 이동한 탓에 동독 지역은 노동력 공동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동독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꾸준히 개선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동독지역 GDP가 통일 직후인 1991년에는 40%에 불과했었지요. 옛 동독인들의 평균 기대수명도 통일 전에 비해 6년 가까이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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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뉴스같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소식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대학교(UJ)가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 측에 “우리가 내놓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결연관계를 끝내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UJ는 29일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담은 문서를 벤구리온 대학에 전달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이 보도했습니다.
조건 중에는 벤구리온 대학이 팔레스타인 대학들과 함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할 것,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군사활동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점령통치를 지원하는 모든 직·간접적인 활동을 중단할 것 등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 결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배경이 된 것이로군요?


겉보기엔 두 대학 간의 일이지만, 그 속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통치에 대한 반대, 대학과 군의 밀접한 협력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반의 ‘군사국가화’에 대한 비판, 대학기구와 학문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윤리적 판단’을 행동의 가치기준으로 삼으려는 노력 등이 다 들어있습니다.

UJ의 아담 하비브 부총장은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말했습니다. “첫째,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설 것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 두번째, 인간 존엄성을 높이고 화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S African academics allege that Ben-Gurion university has collaborative projects with the Israeli army [REUTERS]



-팔레스타인의 반응은?

팔레스타인연대위원회(PSC)의 살림 발리 선임연구원은 알자지라방송에 “UJ의 움직임은 사회정의를 위한 교육기관들의 투쟁에 전례 없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와 비슷한 ‘보이콧’이 확산돼 자신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요하네스버그 대학은 어떤 대학인가요?
 

UJ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협력관계’를 선언하고 나온 데에는 이 대학이 갖고 있는 상징성, 나아가 남아공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들어있습니다. UJ는 예전에는 란드 아프리칸스 대학(Rand Afrikaans University)이라 불리던 학교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백인들만 입학이 허용되는 학교였지요.

란드 아프리칸스 대학과, 소웨토(백인정권 때 강제로 만든 흑인 거주지역)의 한 흑인 대학이 합쳐져 2005년 현재의 UJ가 출범했습니다.

UJ가 벤구리온 대학과 결연관계를 맺은 것은 지난해 8월입니다. 두 대학은 학술 협력과 연구진 교환, 담수화 연구·미세해조류 연구 등 연구협력을 하기로 하고 MOU를 교환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조건을 들고 나왔는지요?
 

하지만 UJ가 벤구리온 대학과 협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먼드 투투 주교를 비롯해 주요 인사 250여명이 UJ를 향해 이스라엘 기관과의 협력을 끝내라고 촉구했지요. 특히 벤구리온 대학이 이스라엘 군의 군사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은 더욱 커졌습니다.

투투는 지난 26일 남아공 일간지에 기고해 “이스라엘의 대학들은 이스라엘 체제의 일부”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학교에도 갈 수 없는데 이스라엘 대학들은 그 사이 점령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연구와 기술개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스라엘 문제에 남아공이 왜 그리 민감한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 못잖게, 남아공 흑인들에게도 이스라엘은 증오와 분노의 대상입니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협력으로 남아공이 핵 개발에 나섰다가, 나중에 자발적으로 포기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두 나라는 온 세상에서 음으로 양으로 못된 짓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둘 다 미국의 암묵적인, 혹은 노골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지켜주는 경비견 역할을 했었지요.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남아공은 아프리카에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냉전 시기에 중동 아랍국가들에서 민주화와 사회주의 바람이 일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면서 소련의 영향력이 중동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요. 남아공은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에 좌파 성향의 민족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하게끔 공작을 했죠.


(일례로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의 부인인 그라사 마샬 여사는 모잠비크 건국 영웅이자 흑인 민족주의 투사였던 사모라 마샬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만델라같은 자국 내 흑인 운동가들을 감옥에 가둔 것 뿐 아니라, 모잠비크의 민족주의자 마샬을 암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흑인들을 핍박하는 인종주의 뒤에서 참으로 여러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지요.)





남아공과 이스라엘은 또한 요즘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많이 거론됐던 민간군사회사(PMC)의 원산이기도 했습니다. 남아공의 용병회사들은 세계 곳곳에서 미군을 떠받쳐주거나 제국주의적 수탈을 돕는 역할을 했고, 이스라엘은 암살 공작과 무기 수출 등으로 세계에서 암적인 활약을 했습니다.


남아공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미국을 대신해서 백인정권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도 남아공에서는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 등 여러 보이콧이 펼쳐진 바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나요?


이스라엘과의 학문적 교류조차 끊으려고 하는 보이콧은 남아공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3년 영국의 몇몇 대학들이 이스라엘 연구기관과의 결연을 끊는 것을 추진했다가 무산됐고요. 2005년에는 영국 대학강사협의회에서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과 바르 일란 대학과의 연계를 끊어야 한다는 투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하버드 법대의 앨런 더쇼위츠 교수가 비슷한 운동을 벌였다가 위협을 받고 그만둔 적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선 그런 시도를 하기만 하면 유대계 단체들이 나서서 ‘반유대주의자’로 몰아붙이기 때문에 실행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던 거죠.


남아공의 백인정권이 무너지는 데에는 흑인들의 투쟁에 더해서 이에 공감한 세계 시민들의 캠페인, 거기서 생겨난 국제적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 결국은 거기에 등떼밀린 미국과 유럽의 금수조치 등이 있었습니다. '국제적 압박'의 힘을 아는 남아공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더욱 반갑고 의미심장하게 보입니다.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중동판 아파르트헤이트'니까요.

UJ의 움직임이 이스라엘의 만행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고, 이스라엘인들에게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구정은 기자(http://ttalgi21.khan.kr/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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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모스크바 시장을 전격 해임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8일 중국 방문 중에 “나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전격 해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메드베데프와 루쉬코프의 갈등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지난달부터 사이가 부쩍 멀어졌습니다. 영자지 모스크바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달 루쉬코프가 고속도로 건설 문제를 놓고 메드베데프와 상반되는 입장을 한 일간지에 기고하면서 갈등이 노골화됐다고 합니다.

2. 루쉬코프 시장은 어떤 인물인가요?

이 루쉬코프라는 사람은 18년 동안 모스크바 시장을 지내면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온 사람입니다. 집권 러시아연합당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죠. 옛소련의 기술관료 출신으로,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이 1987년 공산당 모스크바 지부장으로 있으면서 이 사람을 발탁했습니다.
루쉬코프의 부인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옐레나 바투리나라는 여성으로 러시아의 여걸, 철의 여인, 크렘린의 돈줄로 불립니다. 인테코라는 대형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억만장자인데요. 포브스지 집계에 따르면 재산이 29억 달러(약 33조원)에 이릅니다.
루쉬코프는 1992년 옐친에 의해 모스크바 시장으로 임명됐는데, 거기에도 바투리나의 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요. 아내는 돈으로 남편을 밀어주고, 남편은 권력으로 아내 쪽에 토건사업을 몰아주는 관계랄까요.


 루쉬코프

3. 루쉬코프가 재직하던 시절 공과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는데요.

루쉬코프는 근 20년간 시장으로 있으면서 모스크바를 ‘토건공화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프라가 확충되고 모스크바는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부동산 투기바람과 엄청난 인플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새 건물들과 마천루를 세우면서, 로시야 호텔 등 유서깊은 소비에트 시절의 랜드마크들을 없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루쉬코프의 지지율은 줄곧 70~80%를 유지해왔습니다만 화려한 생활에 대한 비난과 부패 의혹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4. 그런데 쫓겨났으니 루쉬코프의 반발이 거셀 듯한데요.

루쉬코프는 공식 성명을 내지는 않았지만 더뉴타임스 매거진에 보낸 서한에서 “2008년에 모스크바 지사선거를 독립적으로 치르게 해달라 요구한 것, 그리고 최근 킴키 고속도로 건에서 반대편에 선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 주장했다고 합니다. 루쉬코프의 임기는 내년 7월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루쉬코프는 반발의 표시로, 스스로 창당에 관여했던 집권 러시아연합에서도 탈퇴를 했습니다. 루쉬코프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인 이오시프 코브존 국가두마(하원) 부의장도 “크렘린은 모스크바의 목을 자른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 푸틴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대통령을 지내는 8년 동안 루쉬코프를 계속 연임시키며 힘을 실어줬던 푸틴도 이번에는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푸틴은 “루쉬코프는 모스크바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이 대통령에게 종속되어야지, 그 반대는 안 된다”고 못박았습니다. 시장 인사는 엄연히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겁니다.
최근 푸틴과 메드베데프 간에 모종의 정치협상이 벌어졌고, 메드베데프는 루쉬코프를 제거하도록 푸틴에게 압박을 가해 결국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각에선 “루쉬코프가 푸틴의 신임을 과신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메드베데프 /리아노보스티

6. 그럼 일단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승리로 봐도 되는 걸까요?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블로거들이나 정치분석가들 사이에선 “이제야 우리에게 대통령이 생겼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2008년 그루지야 전쟁 때 메드베데프는 “내가 군 투입을 최종 결정했다”고 수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루지야조차 “푸틴의 결정일 것”이라며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메드베데프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자신만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7. 근래 메드베데프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푸틴을 조금씩 밀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데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을 재개한 것, 푸틴의 대서방 강경자세로 마찰을 빚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갈등을 봉합한 것, 유엔에서 이란 제재안을 지지하며 미국 편에 선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눌렀다’고 할 수는 없지요.
뉴욕타임스는 “모스크바 시장을 잘랐다고 해서 ‘누가 러시아를 다스리는가’라는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메드베데프가 모스크바 시장을 자르는 데에 여전히 푸틴의 허가가 필요했고, 따라서 아직도 “보스는 푸틴”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어쨌든 메드베데프가 대선을 앞두고 한 걸음 내딛는데 성공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구정은 기자 (http://ttalgi21.khan.kr/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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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면 댜오위다오) 선박 충돌로 중국과 갈등을 빚은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의 친밀한 관계 과시에 긴장하는 분위기라면서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중인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 27일 ‘제2차대전종결 65주년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역사 인식에 보조를 맞추기로 하면서 일본이 긴장하는 분위깁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충돌로 중국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 중·러의 ‘대일공조’ 불똥이 북방4개섬(쿠릴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튈지 모른다는 게 일본의 우려 인데요.
28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중·러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2차) 대전의 역사를 날조하고 나치독일과 그 동맹자를 영웅시하는 시도를 비난한다”는 인식을 같이 했고, “(중·러가) 대전 결과와 교훈과 관련해 매우 가까운 입장”이라고도 명시했습니다.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북방4개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양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센카쿠 충돌의 여진이 미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2. 일본이 걱정하는 북방 4개섬 영유권 분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 집권 당시 옛 소련과 갈등을 빚었던 중국은 “북방영토는 일본의 땅”이라는 입장이었으나 89년 중·소 관계정상화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7월 러시아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을 대일전승기념일로 제정해 “2차대전 전체에 대한 공통된 역사인식을 갖자”는 중국의 요청을 수용했습니다. 러시아 역시 일본이 자국 영토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구요.
요미우리 신문은 후진타오 주석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양국이 각각 핵심적 이익에 관한 문제에서 상호 협력하자"고 제안했다면서 중국이 말하는 ‘핵심적 이익에 관한 문제’는 영토문제를 주권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인만큼 센카쿠 문제에 대한러시아의 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을 방문중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왼쪽)의 영접을 받으며
상하이 엑스포에서 열린 '러시아관의 날' 행사장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



“일본은 댜오위다오서 나가라” 중국인들이 8일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 근처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3. 센카쿠 충돌과 관련해서 일본에서는 초동 단계에서 대응이 잘못됐다는 ‘자성론’이 제기되고 있다면서요?


중국인 선장을 곧바로 돌려보냈으면 극한 대립으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인데요.
2004년 3월 중국인 활동가 7명이 센카쿠열도에 상륙했을 때 일본 당국은 이틀만에 이들을 강제추방형식으로 중국에 송환한 전례가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28일 중국은 선장 구속 때만해도 비교적 온건했으나, 일본이 구속기간을 연장하면서 강경자세로 돌아섰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선장 체포와 구속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당시 국토교통상)은 이날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어선의 순시선 충돌은) 악질적 사안으로 (선장의 구속은) 당연하다”고 초기 대응에는 잘못이 없었다고 확인했습니다.


4. 이번 센카쿠 열도 충돌건을 다시 한번 정리해 주십시오.


사건 발단은 지난 7일 동중국해 센카쿠열도 부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이 충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중국 어선을 나포해 조사를 벌였고 선장을 공부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중국은 곧바로 선장을 석방하라고 항의했지만 일본은 국내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본은 13일 선원 14명을 석방했지만 선장에 대해선 구속 기간을 열흘 연장시킨다고 발표했습다.
이에 중국 정부는 공개적인 비난, 희귀금속 희토류 수출 사실상 중단 등의 경제적 조치를 비롯해 민간교류 및 관광 취소나 중단까지 강한 대응을 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고위급 회담 요청도 거절했었죠.
그러자 일본 정부는 24일 결국 중국 어선 선장을 ‘처분 보류’ 형식을 빌어 풀어주면서 일본이 손을 들어, 중.일 간 표면상의 강한 대립은 일단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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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그라이브 수감자 인권모독 사건이 미국에서 다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2004년 세계를 분노에 빠뜨렸던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미군 병사들은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극도의 모욕과 고통을 주는 고문을 저지르면서 ‘웃고 즐기는’ 모습이 사진 등으로 공개돼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요. 만행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다시 미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2. 보상이 어떻게 되었기에 문제가 되고 있을까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6년이 지났습니다. 지난달 말 미군 전투부대는 모두 철수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라크전 ‘작전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아부 그라이브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수감자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뭔가 보상금이 주어졌다는 기록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2004년에 미 정부가 피해자들 보상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었나요?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사건 당시 미국의 이라크전을 책임지고 있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의회에 나와 증언하면서 “비참하고 짐승 같은 학대와 잔인함을 겪은”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보상을 해줄 법적인 길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부 그라이브 스캔들로 사임 압력에 부딪친 럼즈펠드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빈 소리에 불과했던 거죠.


4. 피해보상을 신청한 사람들은 없는지?
 

미 육군에 따르면 지금까지 육군 청구센터(Army Claims Service)에 보상을 요구한 아부 그라이브 피해자는 약 30명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청구 내역에 대해 군은 지금까지 ‘조사 중’이라는군요. 또한 군은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아부 그라이브 학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AP는 전했습니다.

육군 기록 상, 아부 그라이브에서 풀려난 사람에게 보상금이 지급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이라크 정부 측에 비공식적으로라도 보상을 위한 돈을 내준 적도 없다는 겁니다.


5. 미 국방부는 전쟁 피해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금을 별도로 책정을 해놓고 있다는데.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방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 도중 미군과 연합군의 공격으로 숨지거나 다친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 혹은 재산피해에 대한 배상 명목으로 3090만 달러(약 357억원)을 내줬습니다.

하지만 그 돈 중에서도 아부 그라이브 피해자들에게 전달된 건 전혀 없다는 군요. 사실 전쟁 통에 피살된 민간인들에 대한 보상도 형편없기 짝이 없는데 ‘모욕과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에는 사실상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6. 그럼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는 방법은 없나요?

미군이 스스로 밝혔듯 그들에 대한 보상금은 지급된 바도, 계획된 것도 없으니 남은 길은 소송뿐이겠죠.

당시 미군들에 학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라크인 수감자들은 250명이 넘었지만,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낼 길조차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요구하는 소송을 먼저 냈고요, 이에 대해서 미국 대법원이 곧 판결을 내릴 예정이어서 주목됩니다.
여기서 승소를 하면 비로소 피해자들은 미국 법원에 피해보상을 청구할 길이 열리는 거지요.


7. 당시 가해자들은 어떻게 됐는지?
 

마침 26일은 아부 그라이브 학대 사건의 ‘주인공’으로 악명 높았던 린디 잉글랜드 이병이 미 텍사스 포트후드의 군사법정에 기소된 지 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잉글랜드를 비롯해 재판에 회부된 미군은 모두 11명이었는데, 고문이나 가혹행위 등 직접적인 범죄 혐의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근무태만’ 따위로 기소됐기 때문에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많았지요.


‘여군’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부각됐던 잉글랜드 이병의 경우도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기소 전 이미 1년 반 가까이 구금돼 있었던 터라(함께 범행을 저지른 그레이너라는 또 다른 미군 병사의 아기를 임신해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고요) 1년 반 더 복역한 뒤 풀려났고요.

이라크전은 끝났다고 하지만, 그 ‘뒤처리’와 앙금은 한참을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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