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에 해당되는 글 304건

  1. 2018.08.14 [세상읽기]종전선언의 종언
  2. 2018.08.14 [사설]평양 남북정상회담 확정, 비핵화 추동력 되찾아야
  3. 2018.08.10 [사설]조속한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협상 돌파구 마련하기를
  4. 2018.08.10 [정동칼럼]진정한 평화, 강자의 양보로 가능하다
  5. 2018.08.10 [기고]석탄 너머 남북연락사무소
  6. 2018.08.06 [사설]ARF에서 드러난 북·미 간 이견, 새로운 동력 필요하다
  7. 2018.08.06 [사설]우발충돌 방지, 신뢰구축 기반 마련한 남북 장성급회담
  8. 2018.07.27 [정동칼럼]‘종전의 시작’을 선언하자
  9. 2018.07.25 [사설]북한 미사일발사장 해체 시작, 미국도 상응 조치 취해야
  10. 2018.07.17 [사설]북·미 미군유해 송환·발굴 합의, 비핵화 논의로 이어져야
  11. 2018.07.16 [사설]주춤대는 북·미 협상, 한국의 ‘촉진자’ 역할 필요하다
  12. 2018.07.13 [정동칼럼]회의론과 장기적 관점의 함정
  13. 2018.07.13 [사설]북·미 정상회담 한 달, ‘비핵화’하려면 종전선언 필요하다
  14. 2018.07.12 [사설]기획탈북 확인된 북 종업원 사건, 진상규명 피할 수 없다
  15. 2018.07.09 [사설]북·미의 비핵화 이견, 후속협상에서 해소하면 된다
  16. 2018.07.05 [사설]미국은 왜 근거 없는 ‘북 비핵화 의심 정보’ 퍼뜨리나
  17. 2018.07.04 [기고]북한으로 수학여행을
  18. 2018.07.03 [사설]재개된 북·미대화, 차곡차곡 진전시켜야
  19. 2018.06.29 [녹색세상]불가역적 비핵화 주장의 저의
  20. 2018.06.28 [사설]북한의 긴 침묵, 비핵화 동력 약화시킬 수 있다

만스바흐와 배스케즈는 개별국가의 제안이나 요구가 글로벌 의제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의제가 강대국에 아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의제정치(agenda politics)로 명명했다. 북한 비핵화에 앞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문제가 미국, 중국에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종전선언의 주체로 휴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이해 당사국들 간 밀고 당기는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다.

 

평화협정이 결혼식이라면 종전선언은 약혼식이다. 연내까지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약혼식이 여차하면 무산될 기미도 보인다. 그렇다면 결혼식도 장담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을 끝내자’는 평화선언이 적확하다. 미래 어느 시점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체제의 평화협정만 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3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처음 제시한 때는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 5기 3차 회의에서 채택된 ‘미국 의회에 보내는 편지’에서였다. 내용을 보면 당시 북한은 닉슨 독트린 발표(1969) 이후 주한 7사단 철수와 닉슨의 방중(1972) 및 일본·중공 국교수립(1972), 그리고 미국이 월맹과 파리평화협정 체결(1973)에 따라 베트남 주둔 미군을 철수한 후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 등에 고무됐다.

 

이후 북한은 1984년 1월에 ‘남북불가침공동선언 및 대미 평화협정의 동시 체결’이라는 3자회담을 제시했다. 이는 베트남 문제 해결을 위한 파리회담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북한이 미국과 회담의 주당사자가 되어 평화협정 문제를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종속적 당사자’인 한국과는 불가침 체결로 돌파하겠다는 책략이었다. 이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0월 유엔총회에서 정전협정을 항구적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평화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 최초의 공식제안이었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여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의 문제로 종전선언과 무관한 것으로 선을 그었지만 북한이 현상타파 차원에서 종전선언 후 끈질기게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실을 북한이 잊을 리가 없다.

 

여기에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9일 이란에 가서 ‘핵 지식은 보존하겠다’고 했다. 이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이외에 6·12 북·미 공동합의문 4항 미군 유해 일부를 송환했으니 선행 조항인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1항)과 평화체제 구축(2항)을 미국이 준수하라는 압박차원의 대미(對美)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럼에도 핵 지식 보존 운운은 해서는 안될 이야기였다. 민감한 시점에 고위 당국자가 할 말 못할 말을 모두 내뱉을 경우 신뢰구축은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정리하자. 중국을 포함하는 4자 형태의 종전선언이 금상첨화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가 만만치 않다면 차선책으로 북한과 미국 간 양자 종전선언도 고려해봄 직하다. 북한의 등거리 외교노선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음을 어떻게 선명하게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종전선언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신뢰구축 후 군축을 하고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통상적인 평화체제 순서이기 때문이다.

 

서울, 평양, 워싱턴 모두 조바심이 나있다. 북·미는 비핵화라는 같은 책을 갖고 서로 다른 쪽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둘러 북·미가 같은 쪽을 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문에 따라 과감하게 톱다운 조치를 취하는 게 꼬일 때로 꼬인 매듭을 푸는 최선의 방법인 듯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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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9월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회담에서 쌍방은 판문점선언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했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가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날짜가 공동보도문에 담기지 않은 것은 심각한 이견이라기보다는 미세 조정이 추가로 필요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판문점선언에도 담겨있는 ‘가을, 평양 정상회담’을 남북이 차질 없이 이행키로 한 것을 환영한다.

 

‘정상외교의 계절’인 9월에 남북이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은 답보 중인 한반도 정세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9월에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9월11~13일), 유엔총회(9월18일~10월1일) 등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많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등 한반도 문제 당사국 정상들이 어느 자리에서든 만나 협의를 벌일 개연성이 높다. 9월9일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

 

상반기 숨 가쁘게 달려온 한반도 정세는 하반기 들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하면서 북·미관계의 틀을 바꿔놨음에도 과거 관성이 남아 후속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의 첫 조처로 핵·미사일 시설 목록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 조치로 종전선언을 먼저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지켜볼 일이다. 북·미 협상의 교착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면서 판문점선언의 이행도 차질을 빚고 있는 형국이다.

 

관건은 북·미 협상의 의미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북·미 양측에만 맡겨서는 개선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착국면이 장기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때보다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먼저 제안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남북 정상은 5월26일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만나 좌초위기에 빠진 북·미 정상회담을 살려낸 바 있다. 이번에도 남북 정상이 지혜와 의지를 모아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비핵화협상의 추동력을 살려낼 것을 기대한다.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일정에 오른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느라 남북관계 개선작업이 겉돌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통일부는 2년반째 가동중단 중인 개성공단의 설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입주기업인들의 방북조차 막고 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차제에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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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오는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했다. 북측은 9일 오전 통지문을 통해 판문점선언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하자고 제의했고, 정부가 이에 즉각 동의해 회담이 성사됐다. 정부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구성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조속히 개최돼 북·미 간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북·미 간 북핵 협상은 교착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리스트 제출 등을 압박하는 미국에 맞서 제재 완화 및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동력이 없으면 헤쳐나가기 어려울 만큼 협상이 수렁에 빠져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북한이 유엔 제재를 교묘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제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교환하며 대화의 끈을 유지했지만 불안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을에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 계획을 앞당겨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북·미대화의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오는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가 협상을 진척시킬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먼저 제안한 점이 특히 주목된다. 그만큼 북·미 간 중재가 절실하며, 따라서 북·미 교착 상황을 타개할 의지가 강하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속도감 있게 이행하면서 연내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남북정상회담은 절실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에 성실히 임할 뿐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의전을 갖춘 평양 방문이 아니라 실무형 판문점 회담도 좋다. 문 대통령의 이번 중재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미 양측을 모두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종전선언과 핵무기 리스트 제출을 동시에 하는 방안도 제안해봄 직하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고, 궁극적으로 북·미 양국 정상이 담대한 결정을 주고받는 장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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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벽에 부딪혔다. 올해 벽두부터 숨 가쁘게 달려왔던 변화가 교착상태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70년 고착된 분단의 갈등체제를 감안하면 난항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안타까움까지 감추기는 힘들다. 2013년 이래 수년간 악화일로의 전쟁위기를 일거에 뒤집은 전격성만큼 엄청난 기대를 주었고, 전쟁위기는 평화의 소중함을 배가시켰다. 북·미의 두 정상도 싱가포르 조우가 가진 역사의 무게로 말미암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게임을 했다. 반세기 이상 묵은 불신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신뢰관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이상 상호신뢰 없는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핵무기 완성 이전에는 대북 불신 속에서도 핵사찰로 비핵화를 검증할 방법이 있었지만, 완성 이후에는 신뢰만이 비핵화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새판 짜기’에 대한 헤드라인만 제시됐을 뿐인데 양국은 너무 낙관적이었던 같다.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실천사항 합의는 미군유해 송환 외엔 없었고, 고위급회담으로 미뤄졌었다. 하지만 김영철과 폼페이오의 만남에서도 상대의 양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자국의 양보에 대한 과대평가로 말미암아 빈손으로 끝나버렸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단행했고, 유해 송환과 동창리 미사일실험장 폐쇄를 실행했으므로 미국이 양보할 차례라고 보지만, 미국은 한·미 군사훈련 취소는 물론이고, 세계최강의 패권국이 북한 정상을 만나준 것 자체가 엄청난 양보이며, 북한의 조치들은 미흡하며 전혀 등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교착이 성공을 위한 진통일 수도 있으나 오랜 불신구조의 관성으로 인해 실패의 수렁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를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부재로 몰고,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 거부를 체제보장 약속에 대한 불신으로 몰면서 지난 사반세기의 실패 구도로 복원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상 김정은 체제는 미국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트럼프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다. 북한으로서는 트럼프의 결심으로 가능한 몇 안되는 조치인 종전선언마저 얻어낼 수 없다면 제재해제는 꿈도 꿀 수 없고,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리비아모델과 다름없다고 여길 수 있다.

 

트럼프는 9개월 이상 북한의 도발 중단과 유해 송환을 업적으로 내세우는 동시에,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에 단호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내 비판을 피해가는 방식으로 중간선거까지 끌고 갈 심산인 것 같다. 중국도 미국의 군사공격 가능성이 없어지고, 북·중관계가 회복된 국면에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 급해진 것은 다시 남북이다.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의 연내 실현에 합의했을 뿐 아니라, 중간선거 이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중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으며, 선거 후 미국의 국내정치에 따라 장기 교착 또는 파국을 배제할 수 없다.

 

미사용 카드가 남아있다. 북·미 고위급회담이 풀지 못한 것은 다시 정상의 결단으로 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순서는 북한의 요구대로, 비핵화조치의 규모는 미국의 요구대로 맞교환하는 방식, 즉 종전선언이 먼저 나오되, 거의 동시적으로 북한은 검증과 사찰 및 핵무기 일부 폐기를 포함한 과감한 선제조치를 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결심에 달렸다. 트럼프에 과도한 의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설득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미국의 벽을 넘어야 풀린다.

 

‘진정한 평화는 강자의 양보로만 가능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통일이 평화로만 느껴지지 않았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초등학교 교실의 환경미화로 항상 붙어있던 남북군사력비교표, 숫자상 압도적이었던 북한의 무기들을 보며 적화통일의 위협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보다 수십배의 국력을 갖게 된 후, 통일은 아마도 북한에 위협적이었을 거다. 보수정부는 대놓고 흡수통일을, 진보정부는 개방·개혁으로 포장했지만, 위협은 같다. 비핵화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 위협이 되는 비핵화는 실패한다. 약자에 대한 일방적 항복요구는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했던 이유만 재생시킬 뿐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결심을 실현하는 건 ‘진정성’이란 신기루에 매달리기보다는, 비핵화를 유도해 낼 교환에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강자의 항복요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위협을 제거하는 교환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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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이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석탄 수출국이다. 작년에 1억8000만t의 석탄을 수출했다. 이 중 한국은 유연탄과 무연탄을 합해 2600만t을 수입했다. 러시아산 석탄은 러시아 관세법에 따라 러시아 연방 상공회의소가 발급한 러시아 원산지 증명서과 함께 한국으로 수입된다. 러시아산 석탄을 수입하는 한국 수입업자로서는 러시아 기관이 발급한 원산지 증명서를 신뢰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안에 북한산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수입업체가 북한산 석탄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러시아산 원산지 증명서를 제출해 관세청에 신고했다면 이는 관세법 위반 사건이다. 보통의 원산지 위반 사건으로, 관세청이 조사해서 밝히면 된다. 러시아도 자신의 석탄산업에 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석탄 원산지 증명서 발급 절차를 대대적으로 점검할 것이다. 석탄 문제는 한국과 러시아의 관세당국이 철저하게 조사해서 막으면 된다. 특히 러시아 연방 상공회의소가 원산지 증명서 발급을 제대로 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니 지금은 석탄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자. 바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다.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는 군인들의 ‘판문점 체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남과 북이 함께 만드는 상시적인 상호 신뢰의 틀이다. 남과 북이 상시적 공동연락사무소 조직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함께 포괄적 교류 협력과 신뢰 구축을 치밀하게 상시적으로 마련하고 실천하는 일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올해의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숙원이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국제법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틀을 넘어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 국제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유엔 안보리 제재 자체가 ‘외교관계 빈 협약’에 따라 대사관 등 외교시설을 북한에 설치할 권리를 인정한다(안보리 2375호, 27항). 국제법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외교관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유엔 회원국인 한국은 이 조항을 적극 원용할 수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해 설비를 북한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라 한국의 국제법적 권리다. 마치 유엔 제재상 불가능한 것인데 예외를 인정받는다는 식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회원국으로서의 외교권에 포함된 권리라는 기본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의 단독 대북 제재 대상도 아니다. 미국 연방 법령도 정부 활동은 처음부터 대북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를 ‘보편적인 허가 사항’이라고 한다(미 연방 법령집 83 FR 9182, § 510.513). 미국 법이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허용하는 ‘미 연방정부의 업무’는 매우 광범위하다. 정부 기관이 권한이 있거나, 행정적 의무가 있거나 또는 자문을 할 수 있는 일체의 업무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지역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하여 하는 일체의 활동은 한국 정부 업무에 해당한다.

 

한국이 북한과 함께 북한 지역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은 유엔 제재와 미국 단독 제재와 하등 관계없이 주권국가로서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엄중한 시기다.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모든 일을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물려 선순환을 이루도록 치밀하게,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유엔 제재는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나 제재만으로는 충분히 평화를 만들 수 없다. 진정한 평화는 제재가 아니라 신뢰와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가지는 권한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야말로 평화를 만드는 신뢰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한방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 앞으로 나갈 톱니바퀴 체계를 잘 마련해야 한다. 선순환의 톱니바퀴를 생산하는 공간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한국이 주도해서 설치해야 한다. 석탄이 문제가 아니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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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5일 종료됐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중국과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찬 회동에 대해서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으며, 판문점선언을 외교무대에서 실현하기 위한 기초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리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간 회담은 없었다.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의 공식 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남·북·미 3국 외교장관들은 회담장 안팎에서 각자 입장만 폈다. 이번 ARF에서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종전선언의 전기가 마련되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에 참석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대표단 모두 내내 미소는 띠었지만 양국 간 입장차는 작지 않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대북 제재 유지와 종전선언 협상의 더딘 진척에 불만을 제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를 엄격하게 이행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법인 등을 제재 리스트에 새로 추가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북 제재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북·미 간 협상이 지난한 길임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뢰를 확인하고 있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ARF 개회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미측이 ARF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북한에 전달했다. 양 정상이 모두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협상에서 정상 간 신뢰와 유대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다.

 

이제 북핵 문제가 실무선의 협상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새로운 협상 동력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다음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양측을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분위기 조성이 더욱 필요해졌다.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발사장치 해체 등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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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남북이 31일 판문점에서 9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와 유해 공동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적대행위 중단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소장)은 회담 후 “(이들 내용에 대해) 큰 틀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며 “구체적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은 계속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중장도 “회담이 무척 생산적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록 합의문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성과를 거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남북이 공감한 4가지 조치는 상호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 간 우발충돌 방지와 신뢰구축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특히 DMZ 내 GP를 시범적으로나마 철수하는 것은 JSA 내 비무장과 더불어 남북 간 적대행위를 줄이는 가시적인 첫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동안 DMZ는 말만 비무장지대였을 뿐 남북이 서로 중무장한 병력을 앞세워 첨예하게 맞서온 대결의 현장이었다. 여기에 서해상에서 포격훈련 중지 및 해안포 폐쇄 등 적대 행위까지 중단한다면 지상과 해상 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뒤 65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 남북이 합의문을 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회담 분위기로 볼 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측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확언한 터라 후속 논의 과정에 큰 난관은 없어 보인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초석을 놓은 동시에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북·미 간 핵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때마침 북한이 넘긴 6·25 전사 미군 유해가 1일 하와이로 송환됐다. 북·미 양국이 합의한 DMZ 내 유해 발굴에 남측까지 가세하면 상호 신뢰를 더욱 증진할 수 있다. 북측 안 수석대표는 군사 분야가 남북대화를 선도 하도록 하자고 했다. 남북 군사회담은 대북 경제제재와 달리 합의에 제약이 없다. 다음달 개최되는 서울 안보대화에 북측이 대표단을 보내는 것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북방한계선 일대 해역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후속 회담을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성급회담에서 마련한 공감대를 토대로 북한과 대화 모멘텀을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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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협상을 다루는 분석틀 중에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는 것이 있다. 국제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국가 간 협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 실무진 간의 협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실무진 간에 주고받기를 잘하여 서로 합의를 이루면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국가 간 협상은 이렇게 단선적으로 협상 실무진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의 협상 실무진끼리 아무리 합리적인 타결을 보아도 그 타결된 안을 각기 국내의 이해 당사자에게 가져가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안은 죽어버리고 만다. 특히 협상된 내용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거나, 국내 여론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국내의 설득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국제와 국내의 양면에서 동시에 접점을 찾아야 협상이 타결된다는 의미에서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 간 협상을 양면게임이라고 부른다.

이제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의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까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협상이다. 그리고 양국이 아직까지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최대 전쟁능력인 핵을 포기하는 협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패전에 해당하는 무장해제라고 볼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해 온 북한의 군부와 인민들이 미국 앞에서 무장해제와 패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및 남한과 대결적 전쟁상태가 지속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리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하더라도 이를 북한 국내에서 실행에 옮길 명분과 설득논리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전쟁상태가 종식되고 미국, 그리고 남한과의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성립된다는 확실한 신뢰가 있어야 북한이 핵심전력인 핵을 포기할 명분이 생긴다. 전쟁용으로 개발한 핵을 평화적 환경이 도래했으므로 포기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경제건설에 투입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전이 국내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북한은 의미 있는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과 한국이 우선적으로 ‘종전선언’을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국내적으로 이미 악마화되어 있는 북한에 선뜻 ‘종전’이라는 선물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종전을 선언했는데 북한이 비핵화를 질질 끌면서 제재의 완화만을 노린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북한에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거기다가 종전과 함께 정전협정이 사라지면 유엔사령부의 존재 및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북한이 문제 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한·미동맹의 문제까지 엮이게 되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남한과 미국의 매우 급격한 변동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안보적 우려 역시 존재한다.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생각에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국내적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회동을 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하지만 양면게임의 성격상, 그리고 전쟁용이라는 북핵의 성격상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다. 북한도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그리고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및 ICBM 조립시설 해체라는 초기조치 등을 보여주면서 미국에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종전선언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전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종전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제 종전이라는 과정의 시작을 알린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이라는 과정이 시작되면 전쟁용 무기인 핵을 해체하는 과정도 시작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도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조치들을 취해감에 따라 신뢰가 쌓이고, 궁극적으로는 종전 과정의 끝을 선언하면서 바로 평화체제 수립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종전이 시작되었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핵폐기의 명분이 생기고, 종전이 완벽하게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국내의 우려도 상당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 종전 과정의 끝을 알리는 선언, 그리고 평화체제 및 관계정상화를 향한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외교가 종전선언을 놓고 미국의 선처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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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3일(미국 현지시간)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핵심시설 해체 시작’ 보고서에서 평북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고 위성사진 판독결과를 토대로 분석했다. 청와대도 이 동향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밝혔다. 서해위성발사장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핵심 시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곧 폐쇄할 것이라고 말한 미사일 엔진시험장이 바로 이곳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38노스의 관측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본격적인 비핵화 관련 조치를 이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는 비핵화와 관련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못지않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생산중단을 확증하기 위한 선제조치를 취함으로써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트럼프 행정부가 움직일 명분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향한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평가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은 한국전쟁의 종전선언 문제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비핵화 조치를 위한 초기적 안전보장 장치로 보고, 조기에 종전선언을 할 것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전쟁종식을 선포하는 차원을 넘어 불가침선언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내부 반론 탓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 대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23일 “종전선언 문제는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합의사항의 하나”라면서 “유감스러운 것은, 최근 미국이 입장을 돌변해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답보 국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 시설 해체에 착수한 것은 교착국면을 선제적으로 풀면서 미국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한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사항을 실천에 옮기면서 미국에 공을 넘긴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서해위성발사장의 해체작업이 던진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화답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 조치에 상응하는 것으로 종전선언만 한 게 없다. 북한이 요구할 뿐 아니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이기도 하다. 미국으로서도 비핵화의 마중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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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군당국이 15일 장성급회담을 9년여 만에 열어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유해 송환 및 발굴 작업을 11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16일 실무회담을 열어 유해 송환과 관련한 세부절차를 협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생산적이었고 협력적이었으며 확고한 약속들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제4항 유해 송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공동성명에는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양측이 공동성명의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기로 한 것은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신뢰구축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한·미 군 장병들이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미 6·25 전사자 유해 상호봉환’ 행사에서 2001년 북·미가 공동발굴한 윤경혁 일병 유해(왼쪽)와 2016년 6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69)은 추모사에서 “남북의 유해 공동발굴에 대비해 국방부 유해발굴단의 전문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충하겠다”며 “유해 발굴을 통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송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한·미 현역장병 등이 참가했다. 권도현 기자

 

미국은 ‘단 한 명의 군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을 정도로 장병들의 유해 발굴·송환을 각별하게 챙겨왔다. 북한에는 5300명가량의 미군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만큼 이번 합의는 향후 협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여론의 지지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미군 유해가 군사적 요충지에 묻혀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의 유해 발굴 허용은 미국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표로 볼 수 있다. 유해 발굴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지리 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북한군과 유엔군사령부 간의 회담이고,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주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13년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던 북한이 이번에 유엔사와의 협의채널을 복구한 것은 종전선언-평화협정에 앞서 정전체제를 잠정적으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직접 다룰 순 없겠지만, 정전체제를 폐기하려면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순서라는 점에서 함의가 작지 않다. 이 채널이 정전체제상의 다양한 의제들을 협의하면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유해 송환 합의가 공동성명상의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미국이 최근 정상회담 후속협의를 위한 실무그룹의 진용을 갖춘 것은 이런 점에서 긍정적인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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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 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비핵화 이후 한반도 평화·번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한 달 만에 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에서 문 대통령이 ‘포스트 비핵화’의 비전을 제시하며 강한 어조로 추진의지를 내비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설은 남북이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면 대북 제재 해제가 필수적이고, 그러려면 비핵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핵화 의지를 독려하는 의미가 있다.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 후 첫 일정으로 힌두교를 대표하는 성지인 '악샤르담 힌두사원'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북·미 간 후속 협상이 속도를 내도록 한국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최근 행보에서도 엿보인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목표”라고 한 것은 종전선언에 소극적인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확실히 완화됐지만, 최근 북·미의 태도는 기대감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핵화와 관련해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협상 장기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협상의 장기화는 북·미 양측에 득이 될 게 없을 뿐 아니라 신속한 비핵화를 기반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려는 한국으로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완되고 있는 북·미 협상을 바짝 죄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싱가포르 렉처’ 연설 후 문답에서 “(북·미) 정상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북·미를 압박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북·미가 협상 모멘텀을 확보하도록 남북, 한·미 간 소통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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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북·미의 정상들이 70년 묵은 적대관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세계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경이로이 바라보면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회의론과 부정적 여론이 지배했다.     

 

필자는 싱가포르 현장 가까이서 관찰한 후 곧바로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을 돌면서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 및 한반도 전문가들과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세계에서 트럼프를 믿는 국가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고,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믿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외에는 모두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목표 달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사 케나 미국 보좌관, 알렉스 왕 국무부 동 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 성 김 미국 대사, NSC코리아 앨리슨 후커 감독이 박 화 영빈관에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회의론자들은 줄곧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긍정적 평가와 자화자찬에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다가, 회담 이후 3주간의 소강 상태와 이후 폼페이오의 3차 방북 결과를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적 견해들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허장성세였을 줄 알았다는 반응과, 북한은 얻을 것을 이미 얻었고, 비핵화의 진정성은 원래부터 없었으며, 따라서 과거의 반복일 뿐이라는 반응이 가장 많다. 센토사 회담의 성패 여부를 후속 조치를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미뤘던 셈인데 이마저 성과가 없이 끝났으니 정상회담도 실패라는 논리다. 

 

그런데 회의론자들은 북·미 정상이 구체적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거나 실행과정 국면마다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회의론의 장점은 섣부른 기대를 만들어 실패할 때 더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되는 낙관론의 함정을 피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성공이 가져다주는 행복 배가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은 성공이나 변화에 대해 전적인 우연에 의존한 장점보다 훨씬 더 치명적 함정을 지닌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특히 현재 벌어지는 전혀 다른 비핵화 게임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회의론으로 접근해도 검증이나 제재를 통해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의 자발적 핵폐기 없이는, 그리고 그 핵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는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회의론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기에 비핵화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바뀐 게임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을 그나마 트럼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계약을 지킬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그때 한 악수를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함으로써 회의론을 반박했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전적인 부정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사실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북핵이 그동안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 압박의 빌미였기에 비핵화 과정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커지거나 북한이 지나친 대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천천히 가기를 원한다. 트럼프까지 반복적으로 중국의 배후에서의 훼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는 회의론 못지않은 깊은 함정이 존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5년간 북한핵 문제 해결에 실패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시간제한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한 현재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반대 분위기를 트럼프와 폼페이오 두 사람이 막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은 현재보다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속도전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북·미 협상의 소강국면, 회의론, 그리고 장기적 관점으로 인한 첫 장애물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 북한은 자신들이 포기한 것에 비해 미국이 정치적 종전선언마저 거부한다면 대미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북한이 선제적으로 더 많이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하더라도 제재완화는커녕 정치적 종전선언까지 받아낼 수 없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모델 재현이다. 한국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교차보증’에 나섬으로써 막힌 혈로를 뚫어 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조심할 때가 아니라 나설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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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북·미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세기의 회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현재 국면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후속협상에서 ‘비핵화 일정표’ 같은 성과물이 나오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선의’를 믿고 성급하게 나섰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가 미국 언론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 의회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카드를 다시 꺼내라는 강경론이 불거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비핵화’ 요구만 내놨을 뿐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번에도 또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의 첫번째 항목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두번째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세번째에 배치돼 있다. 북·미 정상이 서명해 전 세계에 공개한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로 구성돼 있다면 후속협상에서도 각 항목에 최소한 동등한 무게감을 갖고 다룰 필요가 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최소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은 잠정적인 대북 안전보장책이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이 있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미국도 그간 종전선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비핵화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북·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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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2016년 4월 한국에 온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을 면담한 뒤 “종업원이 한국에 오게 된 경위에서 여러 가지 결점이 있음을 파악했다”며 “이들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특별보고관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나의 제언은 최대한 신속하게 철저하고 독립적인 진상규명과 조사를 통해 책임자가 누구인지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들이 중국에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납치된 거라면 범죄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간 국내에서 제기돼온 ‘기획탈북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유엔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한 셈이다.

 

킨타나 보고관은 이번 방한에서 파악한 내용과 권고사항 등을 유엔총회에 제출할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한국 인권수준의 잣대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통일부 당국자는 ‘자유의사에 따른 탈북’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킨타나 보고관은 종업원들의 북한 귀환 여부에 대해 “그들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이라는 종업원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귀담아야 할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일부만 돌아갈 경우 남측에 남는 종업원들의 가족들이 북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송환에 반대하고 있지만, 원칙에 입각해 풀어가면 해법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종업원들은 킨타나 보고관에게 “딸처럼, 가족처럼 생각하고 이 문제에 접근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지적이다. 정부와 관계당국, 정치권은 그간 정략적·정치공학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나의 가족이 자기 의사에 반해 원치 않는 타국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게 됐다. 철저하고 신속한 진상규명에 나서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이런 ‘부정의(不正義)’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인권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획탈북’이 당시 정부와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확인될 경우 엄정한 법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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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6~7일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 문제에서 합의 도출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핵심 사안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비핵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회담 직후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것도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없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회담 전략의 의도도 있겠지만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의 입장 차가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빨리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염원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이어 고위급과 실무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정상들의 추인을 받아 이행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 로드맵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 이견을 좁히고 양보함으로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측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이견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망라해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서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신봉하는 CVID가 과연 유일무이한 방안인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해 북한의 거부감이 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에 북한도 구체적인 자체 안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쪽이 낸 방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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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 당국과 언론이 최근 잇따라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재료인 농축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거나 핵탄두 및 핵관련 시설의 숫자를 줄여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2010년부터 영변 외 제3의 장소에서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해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미 정상회담 후 소강상태였던 비핵화 협상이 막 재개된 시점에 왜 이런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2박3일간 북한을 방문, 6·12 북미정상회담에 이은 후속 비핵화 협상을 한다고 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23일만에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것으로, 양국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탈 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폼페이오 장관이 워싱턴 국무부에서 '2018년 인신매매보고서'를 발표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의혹은 대부분 근거가 미흡한 것들이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강성’ 지역에서 2010년부터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왔다고 보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어떤 정보기관이 그 같은 정보를 갖고 있는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방정보국(DIA)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65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북한이 미국 정부를 속이고 이보다 훨씬 적게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 신문의 또 다른 보도도 문제가 많다. 북한 핵무기가 65개로 매우 많은 것으로 추산하지만 맞는지 알 수 없는 데다 신고도 하기 전에 축소신고를 할 것이라고 예단하며 북한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핵관련 성실신고 여부는 국제사회 사찰과 신고, 폐기, 검증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에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을 맞을 때마다 비밀 핵 의혹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의 플루토늄 축소신고 의혹이나 1998년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논란, 2002년의 고농축 우라늄(HEU)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모두 무산됐다. 하지만 추후 이들 의혹은 미국의 대북 강경파에 의한 거짓 정보로 밝혀지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점에서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의 배경과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금명간 방북해 북측과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원칙만 합의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사실상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들 때문에 비핵화의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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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를 항구적인 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일부 시·도교육청은 청소년의 북한 수학여행, 남북한 학생교류 사업 추진을 천명하였다. 북한에 대해 가감 없이 알기 위해 북한을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 수학여행은 제대로 추진된다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냉전의식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통일 전,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는 남북 학생교류에서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던 국가가 분단되면서 적대적 관계에 있던 두 체제에서 자란 청소년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전 서독은 분단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약화되는 청소년 세대의 민족 동질의식이 언젠가 맞이할 통일시대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지식 중심 수업을 넘어 실제 경험을 통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전후로 광범위한 사회문화 교류가 추진되고, 서독인의 동독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을 비롯한 동·서독 청소년 교류가 추진되었다.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은 크게 사전교육, 본수학여행, 사후교육의 과정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수학여행 실시에 앞서 동독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전교육이 실시되었다. 사전교육은 동독 관련 자료의 개발·제공 역할을 하였던 전독문제연구소가 담당하였는데 수학여행에 참여하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사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사전교육 후 서베를린을 경유한 3~5일 일정의 동독 수학여행이 추진되었다. 수학여행 종료 후에는 소감문 형식의 서면보고서 제출 방식으로 사후지도가 이뤄졌다. 처음 추진될 당시, 매년 2000여명 수준이었던 참가 학생 규모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3만여명으로 늘어나 1980년대 후반까지 33만여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다.

 

추진 초기에 동독 수학여행은 ‘장벽 너머’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서독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여행 인프라가 열악하고, 제한된 지역 방문은 물론 한정된 사람만 접촉이 가능한 수학여행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고, 일부의 경우 폐쇄적인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독은 동·서독 청소년의 만남, 토론회 등 동·서독 학생 간 직접 접촉을 추진하였지만 동독의 소극적 태도로 이러한 만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 수학여행은 청소년에게 ‘장벽 너머에 우리와 역사·문화적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직접 체험을 통해 현존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의도했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음에도, 동독 수학여행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의 시사점으로 첫째, 참여 학생이 북한 수학여행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남북 간 큰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현 세대에게 북한 수학여행이 남북의 심화된 이질성을 넘어 평화,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남북한 청소년 교류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1회성 만남을 넘어, 남북 학생 간에 우편 등을 통한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양측 청소년 간에 실제적인 유대감이 형성·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북한은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교류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체제유지 관점에서 동독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소년 간 직접 만남은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던 동독의 사례를 우리 또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사업이 적절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된 적대 관계와 감정이 일시적인 교류를 통해 단시일 내에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북한 수학여행을 통해, ‘차이가 있지만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우리와 한 핏줄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시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이 그러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구섭 | 전남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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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3주 만에 재개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북측 인사가 지난 1일부터 판문점에서 만나 비핵화 후속 조치들을 협의하고 있다. 오는 6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돼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였던 북·미대화가 재가동된 것이다. 지난 20일간의 북·미대화 공백은 비핵화 협상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비핵화 대화가 끊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북·미 사이에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이 진행되고,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 상봉 개최 합의 등 4·27 판문점선언이 이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본질적 사안인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후속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일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왼쪽)가 2일 오전 숙소인 서울 종로 포시즌스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이 북한 핵프로그램을 1년 내에 해체하는 방안을 고안했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의심이 간다. 볼턴은 리비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핵폐기 작업에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리비아의 무조건적인 핵폐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몰아붙이는 태도가 걱정스럽다. 그의 발언은 미국의 공식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2020년까지 비핵화 완성을 목표치로 제시했다가 최근 구체적인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북한에 대해 강온병행 전략을 구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율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된 이상 굳이 이런 자세를 드러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북·미 사이에는 무엇보다 일관된 입장과 언행일치의 태도가 요구된다.

 

비핵화 대화의 왕도는 없다. 하지만 합의 번복이나 무산의 경험이 많은 북·미 사이에는 합의 이행은 물론 후속 협상의 속도와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상호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의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동력이 약화되고, 반대로 너무 서둘러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서로 동시적·단계적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차곡차곡 진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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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가진 핵무기를 모두 없애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남한에서는 많은 사람이 북한의 핵무기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을 ‘완전한 비핵화’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한반도의 반쪽만을 겨냥한 불완전한 해석이다. 비핵화의 대상은 한반도 전체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핵무기를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핵무기도 한반도에 존재해서도 안되고 개발되어서도 안되고 한반도를 겨냥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모두 폐기되어야 하고, 핵무기를 탑재한 항공모함과 전투기, 그리고 잠수함이 한반도 영해에 들어오는 일이 완전히 없어져야 하고, 한반도를 겨냥한 핵무기, 남한을 위한 핵우산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렇게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북·미 정상의 합의에 CVID라는 말이 빠져 있다고 해서 핵심이 빠진 합의, 미국이 손해보는 합의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의미의 CVID 중에서 완전과 검증 가능은 실현 가능하다.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감시해서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역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불가역적 비핵화란 핵무기를 만들 가능성을 모조리 차단함으로써 다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물리학과 화학 같은 자연과학과 기계공학, 원자력공학, 재료공학, 컴퓨터공학 같은 공학을 연구하지도 가르치지도 말고, 과학기술의 초보상태로 내려가라는 말과 다름없다.

 

핵무기는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과학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나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한국과 일본도 개발하려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핵무기이다. 단지 마음을 먹지 않았거나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아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개발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은 언제든지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핵무기를 모두 폐기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과학기술 수준은 그대로 유지한다면, 다시 핵무기 보유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니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북한의 과학기술을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그럼으로써 북한을 존립 불가능의 상태로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북한이 망해 없어져야만 가능한 것이 불가역적 비핵화인 것이다.

 

북한이 망해야만 불가역적 비핵화가 가능하다면 CVID가 협상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 불가능한 것이 된다. 망해야 할 대상과는 협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CVID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은 협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거나 압박이나 전쟁을 통해 무너뜨리는 것만을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는 셈이다. 이들에게는 한반도에서 수많은 생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대의 관심거리다. 그러나 한반도의 대다수 사람들은 오직 평화적인 방식으로만 한반도 비핵화에 도달하는 것을 원한다. 전쟁이나 압박을 통해 북한이 망하는 것은 북한 인민뿐 아니라 대다수 남한 시민들도 원하지 않는다.

 

불가역적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비핵화를 하지 말자는 비현실적인 주장이고, 한반도의 긴장을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현 상황의 영원한 고착이나 전쟁을 원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진로에 조금 방해는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가 평화로 성큼 다가가도록 하려면 CVID에 숨어 있는 저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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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27일로 보름이 지났지만 비핵화 로드맵을 논의할 후속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양측 간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일 것이라는 관측은 나오지만 공식적인 협상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북·미가 정상회담의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협상을 이른 시일 내 개최키로 약속한다는 공동성명 이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외견상 북·미 간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홍보하고 있고,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을 압박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북한 역시 6·25 기념행사에서 종전과 달리 대규모 반미 군중집회를 하지 않았다. 북한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미군유해 송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북 사이에서도 8월 이산가족 상봉행사 합의, 군사당국자 회담 및 철도회담 개최 등 4·27 판문점선언을 착착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질적 사안인 북·미 사이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후속 움직임이 없다.

 

무엇보다 북한의 소극적인 대응이 아쉽다. 미국은 여러 차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제의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의 협상 상대조차 정하지 않고 있다. 이 바람에 이달 성사될 것으로 예상됐던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지연되고 있다. 폼페이오와 북한 고위관리 간 협상을 뒷받침할 북·미 실무협상진 구성도 감감무소식이다. 한·미의 연합군사훈련은 유예됐지만 북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미사일엔진 실험장 폐기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북측은 이같이 침묵하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 공백이 장기화되면 반대여론이 힘을 얻게 된다.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한 협상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핵화 동력은 약화될 게 뻔하다. 신뢰기반이 취약한 북·미 사이에서는 신뢰를 쌓아가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양측이 정상회담을 했지만 상호 신뢰가 단단한 상태는 아니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작은 움직임이라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만이 아니라 한국과 주변국들도 비핵화 논의 촉진을 위해 적극 협력하고 지원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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