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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에 해당되는 글 258건

  1. 2018.05.24 [사설]남·북·미는 불신 털고 북·미 회담 성공에 매진을
  2. 2018.05.23 [기고]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성공 가능성 높이려면
  3. 2018.05.23 [사설]북한의 남측 취재 거부, 판문점선언 훼손 행위다
  4. 2018.05.23 [세상읽기]트럼프의 햄버거와 ‘낫싱버거’
  5. 2018.05.21 [아침을 열며]덩샤오핑의 길, 김정은의 길
  6. 2018.05.18 [사설]상호존중의 가치 담은 트럼프 모델을 기대한다
  7. 2018.05.18 [정동칼럼]극복해야 할 3개의 악마
  8. 2018.05.17 [사설]누가 북·미 정상회담을 흔들고 있나
  9. 2018.05.16 [여적]핵무덤
  10. 2018.05.15 [조호연 칼럼]김정은의 ‘평화외교’
  11. 2018.05.14 [사설]“북한 번영 위해 협력할 준비 돼 있다”는 미국
  12. 2018.05.11 [사설]불확실성 걷어낸 북·미 정상회담, 이제는 디테일이다
  13. 2018.05.09 [사설]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또 전격 방중한 김정은
  14. 2018.05.09 [사설]6년 만의 대통령 방일, 평화 촉진하는 한·일관계로
  15. 2018.05.08 [사설]북·미 난기류 조짐, 더 중요해진 한·미 정상회담
  16. 2018.05.08 [사설]긴밀한 소통과 공조 다짐한 한·중 정상 간 통화
  17. 2018.05.03 [사설]초당협력으로 트럼프의 대북정책 지지한 미 의회
  18. 2018.05.03 [사설]평화협정 이후 주한미군에 관한 생산적 논의를
  19. 2018.05.02 [사설]‘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김정은의 결단을 기대하며
  20. 2018.05.02 [사설]미국의 비핵화 구상, 북한과 절충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6월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으며 북·미 간 실질적·구체적 비핵화와 체제안전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수용하면 정권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색된 비핵화 정세 속에서 나온 두 정상의 발언에 주목한다. 마침 북한도 태도를 바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남측 취재단의 방북을 허가했다. 이를 계기로 비핵화와 남북교류 시계가 다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환하게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 _ 연합뉴스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우려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트럼프의 발언부터 모호하다. 회담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면서도 취소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비핵화) 조건들이 충족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체제안전 보장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CVID를 거듭 천명한 것도 거슬린다. 북한이 절대적 안보자산인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상황임을 고려하면 좀 더 진지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해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방안을 수용할 것처럼 시사한 것은 청신호다. “일괄타결이 바람직하다”면서도 “한꺼번에 이뤄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여건으로 봤을 때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단시간에 거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기대와 달리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구체적 로드맵을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로 경색된 국면을 타개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을 되살리는 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목표였다. 회담 결과 북·미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는 있게 됐지만 성공적인 회담을 보장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회담 성공을 위한 남북한, 미국의 매진이 중요한 이유다. 신뢰 기반이 취약한 남북 및 북·미관계에서는 긍정적인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엇갈리는 신호들 가운데 부정적인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긍정적인 것을 적극 살리는 실용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논의되지 않았거나 미진한 대목이 있더라도 향후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 낙관주의가 성공을 부른다.

 

Posted by KHross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완전한 비핵화 협상이 제대로 타결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담이 열리더라도 성과가 나올지 불확실한 탓이다. 게다가 회담 성과가 좋더라도 추후 제대로 이행될지 안심할 수 없다.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근거도 있다. 70년간 분단된 남북이 그 시간 동안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합리적 의심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신중한 행동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결정적 실수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협상의 실패 이유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거나 손해가 적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약속 위반에 대해 국제기구는 제재를 강화했다. 상호 감내할 만한 수준의 이러한 흐름이 장기간 반복, 순환됐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북한의 핵보유 위협이 국제사회를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로 북한의 경제 취약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협상 성공의 시급한 여건이 형성됐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 백악관 영빈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가운데)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 _ 연합뉴스

 

상호 윈윈(win-win)의 내용이라면 국제사회와 북한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호 혜택의 폭이 클수록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완전한 비핵화는 표면상 북한에 불리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핵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경제 성장의 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의 핵 불안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유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성공으로 미국 내외에서 얻게 될 긍정적 평가는 외면하기 어려운 막대한 보너스다. 그래서 북·미 모두에 충분히 매력적인 협상이다.

 

역사의 진보는 걱정과 협상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상대를 의심만 하면 다음 협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어떤 의심도 완전히 해소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하지 말 것을 요구해서도 안된다. 걱정 없는 협상은 흔히 실수와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것은 충분히 우려하면서 협상하는 것이다. 그럴 때 협상에서 실수와 실패를 줄이고 신뢰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공감했다. 협상의 관건은 방법이다. 선 폐기, 후 제제해제 또는 폐기와 제재해제의 동시 진행 등이 논의된다. 갈등의 여지가 있다. 이유는 신뢰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서로를 믿기 어렵다. 걱정만 하면 현 상태가 지속된다. 걱정하지 않고 협상하면 실패의 역사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걱정과 협상의 병행이 요구된다. 걱정한 내용을 협상에 반영하는 것. 걱정한 내용을 국제기구나 주변국이 보증하는 것. 사고에 대한 걱정을 해결하는 보험 시스템, 계약의 불안감을 줄여주는 담보 시스템의 활용 등.

 

물론 양측 다 속을 것을 걱정해서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주저한다.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신용사회다. 약속 위반자와 사기꾼은 적발되고, 비난받고, 처벌받는다. 그 피해가 이익보다 크므로 약속을 지키려 한다. 국제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약속 이행으로 큰 도움을 얻는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주변국의 역할이 크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가져오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여 북한의 핵보유 필요성이 없도록 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진로 | 영산대 교수·정치평론학회 이사>

 

Posted by KHross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남한 기자단 방북이 무산됐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등 4개국 외신기자단은 23~25일 진행될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위해 22일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북측이 남측 취재진 8명의 명단을 접수하지 않아 동행하지 못했다. 북한이 비핵화의 첫발을 떼는 역사적인 행사 취재에 당사국인 한국이 제외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더구나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는 남북 정상 간의 약속이기도 했다. 북한의 약속 위반은 ‘남북 간 모든 합의들을 반드시 이행함으로써 과거의 대결과 반목을 끝내자’는 판문점선언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초대받은 외신 기자들이 22일 원산 갈마비행장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실험장 폐기 방침을 천명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일주일 뒤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5월 중 핵실험장 폐기를 진행할 것이며 남한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은 지난 15일 통신사와 방송사 기자를 각각 4명씩 초청하겠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그러다 16일 돌연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하며 남측을 압박하더니 취재진 방북마저 불허한 것이다. 북한은 올 들어 남북관계에서 과거와 달리 신의·성실에 기초한 태도로 임했고, 그 때문에 남측 여론의 호평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남측 여론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짧은 기간이지만 남북 간에 상당한 신뢰관계가 조성됐고, 이를 의심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약속 위반은 여론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약속 파기는 남북관계에서 상당기간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을 반기지 않는 세력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이를 끄집어내면서 남남갈등을 유발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남측 여론의 지지가 약화될 경우 남북관계가 삐걱거려 왔음은 북한 당국도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향후 남북관계에서 이런 약속 위반이 재발돼선 안된다.  

 

한가지 짚을 것은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정치쇼’로 깎아내리거나 북한이 취재비로 1인당 1만달러(1100만원)라는 거액을 요구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를 한 보수언론들의 태도다. 이날 방북한 외신기자들은 북한이 통상적인 금액의 항공·숙박비를 요구했다고 했다. ‘1인당 1만달러’는 허위보도였던 셈이다. 방북 취재가 무산된 데는 북한이 하는 일이라면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보수언론들도 원인 제공을 한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KHross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돌고 돌다 싱가포르로 결정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외교무대 데뷔가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셈이다. 극비리에 중국을 다녀오곤 했던 ‘잠행 순방’이 아니라 회담 장소와 일정 등이 미리 공개된 ‘정상적인’ 해외순방이다. 북한이 돌연 적대적인 입장으로 되돌아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 국무장관이 두 번이나 방북하고, 때를 맞춰 억류되어 있던 미국시민을 북한이 석방한 것 등에서 볼 때 비핵화의 큰 흐름은 만들어졌다. 비핵화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23일 (출처:경향신문DB)

 

비핵화는 북한의 미래를 어디로 돌려보낼 것이냐와 직결된다. 정상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이 구명조끼가 아니라 대형 구조선이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완전 비핵화가 이루어지면 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통해 미국 민간자본의 대북 직접 투자를 허용할 수 있다고도 했다. 환상을 가져서도 안되겠지만 큰 판돈을 내걸고 치열한 외교전이 예고된 셈이다. 가보지 않은 비핵화라는 긴 여정을 앞에 두고서 트럼프, 김정은 모두 승자가 되는 해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어떤 모델 경로를 밟든지 간에 비핵화 진입 자체가 야심찬 계획임은 분명하다. 물론 회담 개최 전까지 각자 장외에서 주고받는 수싸움(외교전)이 치열할 것이다.

 

북한은 공언한 대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세리머니’에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몇몇 국가의 기자들만 초청하면서 비핵화 선전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이는 비핵화가 한반도의 미래에서 부인할 수 없는 진보의 원칙임을 과시하면서 한·미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김정은의 영리한 포석이다. 그렇다면 2003년에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복귀 자격을 두고 논란이 있겠지만 ‘돌아온 탕아’를 내치기도 쉽지 않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전문가들의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북한의 행위와 의도에 대해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비핵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에게서 젊은 독재자에게 비핵화라는 쓴 약을 삼키도록 했다는 자신감이 읽힌다. 미국이 북한의 ‘번영’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승부수를 던진 배경이다.

 

하지만 속기바둑처럼 신속하고도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불신의 구조를 곧바로 해체할지는 불분명하다. 은닉이 가능한 핵무기와 관련 물질들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가 간단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사찰이 ‘과학적’으로 실시된다면 검증은 ‘정치적’이다. 환자의 건강상태를 엑스레이 사진을 찍는 등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검사하는 행위가 사찰이라면, 검사 후 자료를 놓고서 외과, 방사선과 등 의료진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검증인 셈이다. 의사들의 소견이 일치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실제 핵무기와 군사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들은 원칙적으로 핵무기와 군사시설 등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다. 이들의 조사활동 범위는 널리 알려진 영변 원자로, 핵물리연구소, 김일성대학교 내 교육용 준임계시설, 우라늄 광산, 폐기물 시설, 원자로, 정련 시설 등에 국한된다. 따라서 연구시설 규모와 위치, 시료 채취 등을 통한 원자로 가동 기록, 수출입 통제 품목에 대한 수입 경로 파악, 연구자들과의 인터뷰, 기타 정보 자산 등을 통한 광범위한 활동이 부수적으로 이어져야만 북핵 퍼즐의 윤곽이라도 그릴 수가 있다.

 

2년 전 이맘때 트럼프는 애틀랜타 유세에서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핵협상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나는 오직 나은 협상을 할 것”이라고 했다. 평양에서 날아온 ‘로켓맨’과의 역사적 대좌는 트럼프 자신이 뱉은 말들 중에서 극히 드문 실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지뢰가 깔려있을 세기적 회담이 ‘낫싱버거’(속 빈 강정)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Posted by KHross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중국의 천지개벽을 이끌어낸 덩샤오핑 같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될 수 있을까. 그가 비핵화를 통해 개혁개방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이 같은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상당 기간 안개 자욱한 시간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이 중국과 체제 동질성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덩샤오핑은 김 위원장이 간과할 수 없는 롤모델임에 틀림없다.

 

덩샤오핑은 청년 시절 프랑스 유학, 대장정 참여를 거쳐 군·지방정부·외교 등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은 뒤 70세가 넘어 최고 지도자가 됐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 실각, ‘광야의 경험’을 거치며 자신을 단련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 역시 해외 유학 경험이 있고 절대 권력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덩샤오핑과 일부 공통점이 있다.

 

그가 향후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점치기엔 아직 시기상조란 의견이 많지만 덩샤오핑은 덩샤오핑이고, 김정은은 김정은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교훈 삼아,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린다면 북한식 모델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모든 건 그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

 

중국 개혁개방 원년인 1978년 10월 미국 GM이 중국 정부와 자동차 생산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했다. 토머스 머피 GM 단장은 중국 측과 협상에서 합자 형식을 제안하며 자신의 지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중국 인사에게도 지갑을 꺼내달라 요구했다. 이어 합자란 양측이 낸 돈을 합해 기업을 경영하되 이익이 나면 나누고, 손해가 나면 함께 부담하는 형태라 설명했다. 중국 측 인사는 “어떻게 공산당과 자본가가 손을 잡는단 말인가”라며 일단 거부한 채 덩샤오핑에게 보고했다. 결국 덩샤오핑은 “합자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허락했고, 중·외 제조업 협력의 물꼬를 텄다.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회주의체제 국가들이 개혁개방에 나설 때 최고 지도자의 결단력과 예지가 그만큼 중요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덩샤오핑은 공산당이 독단과 극단주의에 빠지면 반드시 실패하며, 실용주의적 노선을 취할 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1980년대 내내 보수파 반발에 직면했지만 남순강화로 돌파했으며 때로는 보수세력과 타협하고, 심지어 관료들의 부패를 일정 부분 용인해가며 개혁동력을 이끌어냈다. 만약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과 같은 결단력과 유연성을 보여준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힘차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본격 나설 수 있었던 데는 대외환경 개선도 크게 작용했다. 1972년 일본과 수교했으며 미국과는 1979년 국교정상화를 이뤄냈다. 다음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개혁개방에 중대한 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1978년 11개의 항구를 개방하고 단계적으로 이를 연결해 대륙으로 확대하는 점→선→면 전략을 취했다. 북한도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태도를 취했지만 과단성 있는 조치를 내놓진 못했다. 심각한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부의 경제적 지원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시장경제체제 도입에는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말 현재 북한에는 중앙급 경제특구 5개, 지방급 경제개발구 19개가 지정돼 있다. 1991년 나선경제무역지대를 특구로 지정한 후 2000년대 들어 개성, 금강산, 신의주, 황금평·위화도가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그러나 지역별로 중복지정되는 등 종합적 계획하에 추진된 건 아니다. 예컨대 신의주 인근에는 황금평·위화도경제특구, 신의주경제특구, 압록강경제개발구가 지정돼 있다. 시장을 대하는 기본 입장에서 중국과 달랐고 제도적 뒷받침도 미흡했다.

 

물론 북한과 중국은 다르고, 덩샤오핑의 전략이 흠결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로 제한된 지역에서 실험을 거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가능하나 북한은 특정 지역에 국한해 개혁개방을 실험하기가 쉽지 않다. 체제동요에 대한 지도층의 불안감도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누구든지 부자가 되라”는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은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로 만들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이루고 생존과 발전을 위해 거대한 실험에 적극 나선다면 주변국들은 아마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2500만명의 내수시장과 중국 동북3성 및 유라시아 대륙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인 북한의 경제적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산이라면 덩샤오핑은 길에 비유된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길이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오관철 경제부장>

Posted by KHross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전격 연기한 데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비판하며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를 거론하며 반발하자 미국이 진화에 나섰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리비아 모델이 미국의 공식 방침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것이 우리가 적용 중인 모델인지 알지 못한다”면서 “정해진 틀은 없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델”이라고 했다. ‘트럼프 모델’이라는 언급은 과거의 특정한 비핵화 방식을 답습하는 대신 북한의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비핵화 방식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북한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고, 상황을 추스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17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존중의 정신하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미, 남북 간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입장을 조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호존중의 정신’은 이 시점에서 북·미 양측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방북한 정의용 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북·미대화에 나서는 조건으로 “대화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상호존중의 자세로 대화하자는 뜻이다. 사실 국가 간의 외교는 상호존중의 정신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덕목에 비춰볼 때 트럼프 행정부 일부 관리들의 최근 대북 발언이 상대방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수준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 반출 및 미국 이송을 거론하고, 북한이 줄곧 반대의사를 밝혀온 ‘리비아식 해법’을 가이드라인인 양 제시하며 굴복을 강요하는 듯한 언행을 했다. 역사적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기라는 점은 안중에도 없고,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듯한, 오만방자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체제안전 보장 약속이 ‘불가역적인’ 것인지를 가장 우려한다. 그런 북한에 무조건 완전 폐기만을 요구하며 정권 붕괴로 이어진 리비아 모델을 꺼내드는 볼턴의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협상을 앞두고 기싸움을 벌일 수는 있다. 하지만 기싸움이 상궤를 벗어나 협상 상대에게 불안이나 모멸감을 준다면 판 자체를 깰 수도 있다. 백악관 대변인이 거론한 ‘트럼프 모델’이 어떤 방식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트럼프 모델에는 상호존중의 가치가 담길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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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선언에 합의하고, 6월12일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구체적 사항에 대한 합의 여부가 중심에 놓여있지만 기저에는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국제정치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스케일과 스피드로 역사 대변혁의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이 급작스럽게 열리다보니 기대감도 상승하지만, 놀라움은 물론이고 생경함과 불안감까지 동반되는 것이 사실이다. 변화의 국면에 도사린 3개의 악마는 성공적 결말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살얼음 같은 아슬아슬함을 주고, 실패를 예측하는 이들에게는 의심의 근거를 주며, 그리고 성공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무기를 제공한다.

 

첫 번째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그 유명한 ‘악마’다. 중요한 일에서 실패는 작은 것에서 나온다거나 또는 합의나 계약에서 세부조항 때문에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 함정이 있을 때를 비유하는 이 표현은 진부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지만, 여전히 강력한 제동력을 가진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으니 돌다리도 두드려봐야 하고, 유리그릇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말로 무게를 싣고 있는 이유다.

 

한반도 분단체제로 인한 적대관계 70년과 북핵 위기 사반세기로 말미암은 불신의 구조화는 언제든지 디테일의 악마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일괄타결의 빅딜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물론이고, 합의 이후의 실행과정에서 디테일의 악마는 순간순간 위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따라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그러나 숨어있는 악마와 숨어든 악마는 구별해야 한다. 악마가 디테일에 숨은 것인데 문재인 정부가 찾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능이겠지만, 권력보존이라는 사익을 위해 평화의 역사를 바꾸는 일을 방해하는 일부세력들은 디테일에 숨어든 악마다. 디테일이 원칙과 목표를 흔들지 못하도록 치밀함과 유연함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숨어든 악마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게 가속도를 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상대방을 악마로 모는 것인데, 특히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악마화가 가진 문제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사회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유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미국 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극도의 대북 불신에다 자국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면서 실패를 예단한다. 미국 내 뿌리 깊은 도덕적 근본주의는 외교적 협상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다. 악마와는 협상할 수 없고, 협상은 오직 적이 굴복할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북한의 이례적인 선제적 양보조치들을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으로 해석하지 않고, 도리어 합의에 대한 조건의 문턱을 높이고, 골대를 뒤로 물리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회고록의 말미에서 미국대외정책의 최대 문제점을 ‘악마화 전략’이라고 규정하면서, 특히 북한에 대해 왜 그렇게도 혹독하게 대하는지, 악의 축 같은 심한 용어를 사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만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세 번째 악마는 관성이다. 한번 경로가 정해지면 그것이 아주 부조리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경로의존의 기성질서가 변화를 거부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른바 물귀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70년 냉전 및 분단체제를 살다보니 뿌리 깊은 관성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전쟁가설>로 유명한 역사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현재 시점의 결과가 미래의 시점에서 가능한 결과를 제약하기 때문에, 변화보다 현상유지를 고집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혁명이 일어나기 힘든 것인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보다, 익숙해진 현재의 고통을 참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디테일의 악마, 상대에 대한 악마화, 그리고 관성의 물귀신을 극복해야만 분단체제는 해소되고 평화의 시대가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70년 묵은 엄청난 불신구조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그것도 단기간에 만들어내야만 변화가 가능한 기막힌 역설이 놓여있다. 북한은 30여년에 걸쳐 전력을 쏟아 개발한 핵을 포기해도 체제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미국은 그런 핵을 북한이 정말 포기했다는 신뢰가 매우 짧은 시간에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실패해서는 안될 마지막 기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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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6일 한국과 미국에 강도 높은 경고 조치를 취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이날로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압박했다.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담판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낙관적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의한 지 하루도 안돼 일방적으로 회담을 연기한 북한의 행태는 대단히 유감스럽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판을 깨지는 않겠지만 한·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맥스선더’ 훈련을 거론했지만 전적으로 이것 때문에 회담을 연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훈련은 ‘4·27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이미 공표됐고, 지난 11일부터 시작해 한창 훈련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훈련이 장애물이라고 인식했다면 사전에 문제 삼거나, 훈련 중 회담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여러 차례 한국과 미국이 연합훈련을 계속할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그렇다고 ‘맥스선더’ 훈련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미는 전과 달리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첨단 F-22 랩터 전투기 8대를 동원했고,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표했다. 북한은 이번 훈련에 대해 통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판문점선언을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를 약속해놓고 군사훈련을 강화한 것에 대한 실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과 선의에 남조선과 미국이 무례무도한 도발로 대답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이해된다. 한국과 미국은 이 같은 북한의 우려를 경시하면 안된다.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핵이라는 유일한 자산을 내세워 정권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는 북한의 입장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비록 한·미 양국에 동시에 경고를 날렸지만 실질적인 겨냥점은 미국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김 부상의 성명에 잘 나타난다. 그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 고위관리들이 ‘선 핵포기, 후 보상’이나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등을 밝히고 있다면서 “이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라고 규정했다.

 

북한 입장에서 볼턴의 발언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의 반발로 후퇴했던 비핵화 요건을 다시 강화한 것은 물론 북핵 반출 및 미국 이송을 강요하고 북한 인권 개선까지 주장하는 등 잇단 강경 발언으로 북한을 압박해왔다. 북한으로서는 비핵화가 완료된 후에야 국제사회와의 경제 교류가 가능하며, 그것도 미국의 지원 형태가 아니라 정상적인 교역을 통해야 할 것이라고 못 박은 대목에서는 모멸감까지 느꼈을 법하다.

 

볼턴의 발언이 조율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기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사전조율 과정상의 기싸움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볼턴의 언행만으로는 회담을 하자는 것인지, 북한 정권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북 체제안전 보장이 핵심의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북·미 현안을 앞세우면 북·미 정상회담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 평화의 소중한 기회이다. 누구든 회담을 흔든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설령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히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직접 회담에 관여하는 남·북·미 당국자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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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만9000명의 소도시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는 ‘원폭의 고향’이다. 미국 정부가 1942년 비밀 핵개발 프로젝트였던 ‘맨해튼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와 함께 인공적으로 급조한 도시다.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보이’(꼬맹이)를 이곳에서 만들었다. 리틀보이는 맨해튼계획을 승인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별명이다. 이때부터 오크리지는 ‘비밀의 도시’ ‘원자력 도시’로 불렸다.

 

이곳에는 지금도 원자력 공장과 원자에너지 박물관 등 미국의 국립과학시설이 있다. 워낙 한적한 곳이라서 평소 찾는 이가 드물지만 일본인 관광객이라면 질색할 만한 장소다. 이 도시 주민들도 맨해튼계획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미 정부에 따르면 5만2000여명이 암 발병 등 방사능 피폭 후유증으로 보상을 받았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인 매년 8월6일 이 도시 주변에서 반핵집회가 열린다. 핵 없는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상징적 장소다.

 

냉전 종식 이후 오크리지는 핵물질과 관련 장비의 저장고 역할을 해왔다. 1994년 빌 클린턴 미 정부가 구소련 붕괴 후 핵물질 관리가 잘되지 않자 카자흐스탄에 있던 핵무기 원료 고농축우라늄(HEU) 600㎏을 이곳으로 옮겨온 게 효시다. 이어 2003~2005년 25t에 달하는 리비아의 핵개발 장비와 문서들이 옮겨졌고, 2010년부터는 칠레의 HEU도 이곳에서 보관되고 있다. 냉전 시 ‘원폭의 요람’이던 곳이 ‘핵 종말처리장’ 혹은 ‘핵무덤’으로 바뀌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핵은 인류를 단번에 무덤으로 보낼 수 있는 역사상 가장 흉측한 무기다. 그런 점에서 핵무덤은 많을수록 좋다. 아니 종국적으로는 핵무덤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노력이 요구된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3일(현지시간) 북한의 핵물질을 반출해 보관할 장소로 오크리지를 지목했다. 그는 비핵화가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 핵무기를 폐기해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핵물질 보관 및 폐기 기술력과 경험으로 보면 일견 합리적인 제안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남는 의문이 하나 있다. 북핵은 반드시 미국으로 옮겨야만 하는가?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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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기싸움 과정에서 북한의 대응은 인상적이었다. 그 백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다롄 방문이었다. 미국이 비핵화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인권문제까지 거론하며 압박해오자 맞불카드를 꺼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미국과의 담판을 앞둔 상황에서 뒷배를 든든히 다져놓은 바 있다. 그런 그가 불과 40일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을 버팀목 삼아 미국에 맞선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미국은 비핵화 요건을 원래 수준으로 완화했고, 추가적인 요구사항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이 정상회담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기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과거 북한의 등거리외교를 연상시킨다.

 

싱가포르 유력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가 11일자 신문 1면 톱기사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회담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싱가포르 _ AP연합뉴스

 

중·소 분쟁 시절 균형외교는 북한의 생존전략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가며 막대한 원조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소련이 6·25전쟁 차입금을 탕감하고 화력발전소와 정유공장을 지어주면, 중국도 뒤질세라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고 고무타이어공장을 건설해주는 식이었다. 공산권 패권과 이념을 놓고 갈등하던 중국과 소련은 우군확보를 위해 빚을 내면서까지 북한 지원에 매달렸다. “북한이 외교 하나는 잘한다”는 외교 속설이 나올 정도였다. ‘줄타기외교’란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탁월한 외교술이 북한의 생존과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서방과 수교하면서 균형외교를 펼 상대가 사라진 것이다. 1994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기간 내내 그럴 기회를 아예 갖지 못했다. 이때 북한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서방의 제재가 집중되고 공산권으로부터는 지원이 끊기는 이중의 곤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국력 쇠퇴와 체제 위협의 가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핵개발도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선보인 전략은 ‘신균형외교’라 할 만하다. 중국과 소련의 경쟁 구도가 사라진 상황에서 핵폐기를 수단으로 균형외교를 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대를 건너뛰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외교재능 DNA를 물려받았는지 모른다. 북한에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60년간 균형외교를 이끌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란 외교자산이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김영남은 1928년생으로 올해 만 90세의 고령이지만 김정은의 외교 가정교사로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김여정과 방남한 그는 꼿꼿한 자세와 조리 있는 말솜씨로 녹록지 않은 존재감을 알렸다. 북한이 40여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가장 잘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 셈이다.

 

사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은 어느 한 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등거리외교가 필수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대륙세력과 해양 세력,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접점에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본디 반도국가는 지정적학 위치에 따른 득과 실의 잠재적 가치를 갖지만, 남북은 전략 요충지나 교두보로서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완충역할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남북이 미국과 중국 및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중 상당 몫을 반목과 갈등 비용으로 도로 지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6·25나 각종 군사 충돌로 인한 인적 피해를 고려하면 결코 제대로 실리를 챙겼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김정은의 신균형외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단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70년간 남북한 7000만 민족을 옥죄어온 적대와 군사적 대결을 제거하고 한반도 평화가 조성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중국이 아닌,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견제와 균형을 주조로 하는 균형외교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북한은 중국의 완충국가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친미국가, 미국의 우방국이 될 수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제사회와 조화롭게 지내는 정상국가 북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북한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한반도 평화, 남북 화해 및 공동 번영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근본틀이 깨지는 과정에서 고통과 혼란이 있겠지만 그것은 즐거운 혼란일 터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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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찬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북·미 정상회담 사전협상을 진두 지휘해온 폼페이오가 북한에 대해 ‘번영’이란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폼페이오의 방북에서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에 도달하면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을 하는 방안이 북·미 간에 심도 있게 협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이 비핵화 행동에 나선 일정 단계에서 국제기구의 대북 융자나 외국기업의 대북 투자를 막아온 미국 국내법령이나 독자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그동안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한 대북 체제 보장과 평화체제 구축 방안은 자주 거론돼 왔지만 경제적 보상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올 들어 조성된 한반도 대화국면에서 핵심 쟁점은 비핵화이지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를 지렛대로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경제발전을 위한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이 주요 목표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폼페이오의 ‘북한 번영을 위한 협력’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발걸음을 가볍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북한은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방식으로 폐쇄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으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및 남한 기자들을 초청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북한은 국제 기자단을 위해 원산에 숙소와 기자센터를 설치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특별전용열차를 편성하는 등 취재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을 폐쇄할 때 대외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 앞두고 양측이 발신하는 긍정적 신호들은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양측의 긍정적 조치와 언급이 ‘불가역적인’ 약속으로 굳어지도록 문재인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그래서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 직전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이 참석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다면 최선의 조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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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0일 “(폼페이오 장관이) 조미(북·미) 수뇌회담 준비를 위하여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에게 북·미 정상회담 사실을 알린 것은 좋은 신호다. 이제 북한에 정상회담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김 위원장 등과 “의제로 올려놓으려는 사안들에 대해, 그리고 성공적 회담을 위한 여건들을 확실히 갖추기 위해 어떤 식으로 조율해 나갈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하며 웃고 있다. 평양 _ AP연합뉴스

 

북·미의 이런 움직임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됐음을 시사한다. 최근 미국 측이 비핵화의 수위를 ‘완전한 비핵화(CVID)’에서 ‘영구적인 비핵화(PVID)’로 높이는가 하면, 대량살상무기, 북한 인권 등을 새롭게 요구하고, 이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생성된 난기류가 가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직전 비핵화 수위를 애초의 CVID로 낮춘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의 수준과 달성시한에 동의했고, 미국도 체제안전 보장에 대해 북한이 만족할 수준의 방안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중앙TV가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였다고 보도한 대목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7~8일 방중 과정에서 거론한 ‘대북 적대정책과 안전에 대한 위협 해소’에 대해 미국이 진전된 답안을 내놨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태까지 일방적인 비핵화만 요구하던 미국이 그 반대급부를 제시했다면 정상회담에서의 ‘빅딜’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그동안 억류해온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해 폼페이오의 귀국길에 동행케 한 것도 호재다. 북·미 양측이 마지막까지 진지한 대화로 요구사항을 조율해 나가는 모습은 회담 전망을 밝게 한다.  

 

이로써 북·미 양측은 정상회담으로 가는 막바지 고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빅딜’의 이행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완전히 해소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대해 미국은 “잘게 쪼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세밀한 추가 조율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중재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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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또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8일 전용기 편으로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고 북한과 중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2012년 집권 후 북한을 벗어난 적이 없는 김 위원장이 지난 3월에 이어 40일 만에 중국을 재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생전 처음 항공기를 타고 외국방문길에 나선 데다 방문지도 수도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아무래도 급하게 시 주석을 만나야 할 사정이 생긴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판문점선언에서 중국의 한반도 평화체제 당사자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 시 주석 역시 방중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8일 중국 다롄의 휴양지 방추이다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다롄 _ 신화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최근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난기류 조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회담 개최 장소 및 일정 발표가 지연되고, 미국 측에서 비핵화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요구들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와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 측의 공세를 경고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방중이 문제될 것은 없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기싸움의 일환으로 보면 될 터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방중이 북·미 정상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의 회동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확고부동하고 명확한 입장”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유관 각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과 안전 위협을 없앤다면 북한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고 비핵화는 실현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또 “북·미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유관 각국이 단계별로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를 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추진하자”고 말한 것은 단계별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에 대한 다자적 보장 및 이행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한반도 평화구축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을 도리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핵화 문제를 미·중 패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미만의 힘으로 풀기 어렵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이해당사국이자 지지세력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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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일 정상회담을 연다. 문 대통령은 3국 정상회의에서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회의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을 지지하는 특별성명이 나오면 한·미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분위기를 다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부터 매년 연례적으로 개최돼오다가 2013년과 2014년에는 중·일 영토갈등, 한·일관계 악화 등으로 열리지 못했다. 이번 회의도 3년 만에 개최되는 것이다. 이번에 열리는 회의가 한반도 상황을 둘러싸고 강화돼온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를 완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방일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6년5개월 만이다. 비록 하루 일정이지만 아베 총리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방한했고 이번에 문 대통령이 답방함으로써 한·일 정상 셔틀외교가 복원되는 의미도 작지 않다. 3국 정상회의 뒤에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도 한·일관계 복원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8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 성공은 물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여정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평범한 당부 같지만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면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에 나선 지금 일본이 유독 일본인 납치 문제로 대북 압박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언중유골’의 지적이다.

 

25년 넘게 끌어온 북핵 문제가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면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일본도 적극 협력할 의무가 있다. 20세기 초 일본에 의한 한반도 식민지 지배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잉태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직접 거론했고, 북·일대화의 중재 노력을 한 점을 감안하면 일본도 한국 정부가 구상 중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로드맵에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순리다.

 

올해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20주년이 되는 해다. 문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 문제는 짚고 넘어가되 이와 별도로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여러 과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정착에 양국이 긴밀하게 보조를 맞추는 것이야말로 미래지향적 협력의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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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일대 전기가 될 북·미 정상회담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5일 이틀 연속 “회담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며 곧 공개할 것처럼 언급한 북·미 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회담 개최지도 판문점이 아닌 싱가포르가 유력시되고 있다. 지난 주말로 예상됐던 북한 억류 미국인 3명의 송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미국이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관계 진전 국면과 어울리지 않는 적대적 언술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난기류가 회담 흥행을 위한 트럼프의 뜸들이기나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는 북·미 간 신경전 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도 7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소식도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북한에 접근하고 있다며 미국 조야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트럼프가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좀 더 확인하고 미사일 등에서 확실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워싱턴에 팽배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은 핵폐기 원칙으로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제시하고, 생물·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영구적 폐기와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의 미국 비판 성명은 이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오는 2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양측 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조정 및 중재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북한의 핵폐기와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접근해야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양측 간 신뢰를 조성하면서 북핵폐기방안에 대한 이견을 메우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핫라인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9일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모처럼 맞은 북핵 및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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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남북정상회담 후 첫 통화를 갖고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과정에서 한·중이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뤄 나가는 과정에서 시 주석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시 주석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고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공조를 유지·강화하자”고 답했다.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는 과정에서 한·중 정상이 긴밀한 협력을 다짐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중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고 있는 ‘중국 패싱’론을 불식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중국은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는 판문점선언 내용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중국이 ‘종전선언’의 당사자에서 빠질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전체제가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국을 배제한 채 남북한과 미국 3자가 중심이 되는 구도가 되면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이 외교부장이 북한에 급파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것도 이런 우려들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청와대는 중국이 굳이 종전선언에 주체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은 한국·미국과의 수교로 적대관계를 청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주요 당사국인 중국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날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과정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함으로써 ‘중국 패싱’ 논란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으로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는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복원됐다. 한·중 간 협력은 한반도 대전환 국면을 이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앞으로도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관련국들이 소외되지 않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세심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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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는 초당적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발의됐다. 민주당 소속 툴시 가버드 의원과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인 공화당 테드 요호 의원이 판문점선언이 나온 직후 이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 의회에서 여야가 초당적 결의안을 낸 것은 처음이다. 여러 정책을 두고 대립해온 공화·민주 양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오자 한목소리로 트럼프의 대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나선 것이다. 싸우다가도 필요하면 당을 떠나 협력하는 모습이 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여야 정치권이 정책을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논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대립과 논쟁은 시민과 공동체 전체를 위해 협력·보완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치엔 이런 과정이 없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거나 이념적 성향이 강한 정치지도자가 당을 이끌면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국론을 모아 시민의 불안을 불식시키기는커녕 당리당략에 따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합리적 비판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객관적인 사실마저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일에도 판문점선언을 이끌어낸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되지도 않은 북핵폐기를 다 된 것처럼 선동하고 있다”며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과거 여당 시절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요구한 것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번 판문점선언은 이전 남북 합의보다 진일보한 데다 최대 현안인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초당적으로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미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부러워만 할 때가 아니다. 우리도 이참에 초당적 협력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여권은 야당과 정보를 공유하고, 야당은 합리적인 비판과 토론으로 대응책을 함께 찾아야 한다. 이는 정치권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정세균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판문점선언 이행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 여야 대표들과 이런 자리를 만드는 게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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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치러지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때아닌 주한미군 문제가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미국의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쓴 것이 발단이 됐다. 이에 보수야당은 주한미군 철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며 문 특보의 해임을 요구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며 논란 확산에 선을 긋고, 문 특보에게 경고메시지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로 판문점을 거론한 데 이어 수일 내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발표될 것이라고 하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 사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로널드 레이건(1983년 11월14일), 빌 클린턴(1993년 7월11일), 조지 W 부시(2002년 2월20일), 버락 오바마(2012년 3월25일) 전 대통령이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북측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논쟁은 소모적이다. 문 특보의 기고가 시점상 부적절하긴 했어도 내용상 특별히 문제 삼을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이고, 한·미동맹은 1차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당사국 간 평화협정을 체결해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면 기존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의 재검토는 피할 수 없다. 북한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대북 억지를 위한 동맹과 미군이 과연 필요한지는 충분히 논의해봐야 할 사안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나타날 다양한 안보 현실을 고려해 활발하게 논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신성불가침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보수야당이 문 특보의 개인 발언을 키우는 것은 정치쟁점화하자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주한미군 문제만 나오면 맥락 없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주한미군에 대한 한반도 당사국들의 입장은 대충 드러나 있다. 남·북·미는 주한미군이 어떤 형태로든 동북아의 평화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언론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력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입장도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한다”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과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주한미군 철수를 비핵화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 않다고 문 대통령이 전한 바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지금은 평화체제·비핵화 논의에 집중해야 할 때다. 때아닌 주한미군 문제가 정쟁화되면서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보수야당이 개인적 발언을 키워 정쟁의 소재로 삼는 것은 구태의연한 행태이다. 문 교수도 학자이기에 앞서 대통령특보라는 신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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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판문점이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리는 싱가포르를 포함해 다양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의집·자유의집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을 통해 북한과도 연락했다”고도 했다. 미국과 북한이 내부 검토를 넘어 문 대통령을 매개로 ‘판문점 개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는 ‘역사의 메카’가 될지 주목된다.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으로 넘어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북·미 양측에 통상적인 정상회담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인 데다 한반도와 세계평화가 걸린 세기의 담판이기 때문이다. 양국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경호나 홍보 등 실무적인 문제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평양과 워싱턴은 일찌감치 후보지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체제에 대한 합법성 부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은 워싱턴에서는 경호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싱가포르나 몽골은 나쁘지 않은 후보지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이다. 

 

판문점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우선 중립적 성격을 띠는 ‘제3의 공간’이기 때문에 북·미 모두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판문점이 갖는 한반도 분단과 화해의 상징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에서 평화체제로의 대전환을 협상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북한군과 유엔사가 관할하기 때문에 경호가 용이하고, 서울과 개성을 베이스캠프 삼아 차량 이동도 편리하다.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생중계가 완벽하게 이뤄진 점은 흥행 효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다. 판문점이 다른 해외 후보지와 달리 회담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장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미 간 사전 협상이 잘돼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정상회담 기간에 석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동행 귀국하는 장면은 판문점에서만 보여줄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개최지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도 매우 밝아진 상황이다. 더 이상 개최 장소 문제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시간도,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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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한달가량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비핵화 구상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좋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주는 발언이자 방법론에서도 북·미 사이에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방식에서는 아직 상당한 간극이 느껴진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리비아 모델을 많이 염두에 두고 있지만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볼턴은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양보하기 전 북한이 핵무기와 핵연료, 미사일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그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완벽한 검증과 완전히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볼턴이 ‘북한은 다르다’고 말한 것은 리비아 모델이 아닌 변형된 방식을 구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2일 (출처:경향신문DB)

 

리비아 모델은 핵폐기-검증-보상조치가 순서대로 이뤄지는 핵폐기 방식을 말한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핵포기 선언을 한 뒤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핵 관련 시설과 장비를 폐기했고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사찰도 받았다. 이후 2006년이 돼서야 미국과 수교하는 등 보상이 주어졌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리비아 모델은 일방적인 핵무장해제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핵폐기는 ‘현찰’로 먼저 지급하고 보상은 ‘어음’으로 받는 격이기 때문에 상당한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는 성사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은 리비아 모델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여왔다.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핵포기를 한 탓에 정권이 무너지고 살해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핵이 없던 리비아와 달리 핵을 보유하고 운반수단인 장거리미사일까지 완성 단계에 도달해 있다. 리비아 모델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단계적 비핵화’와 거리가 크다. 단계적 비핵화는 핵폐기-보상의 단계별 이행계획을 마련한 뒤 이를 단계별로 실천해나가는 방식이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방식을 제시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접촉 과정에서 의제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은 남아 있다. 남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강하고, 미국이 이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담판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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