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선이 ‘따 놓은 당상’으로 가는 흐름이다. 총리 주변에서는 남은 것은 총재 선거에서 압승해 ‘아베 1강’ 체제를 굳히는 것뿐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당내 세력 판도가 아베 총리 쪽으로 기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소속 파벌이자 당내 최대인 호소다파(94명), 2번째인 아소파(59명), 5번째인 니카이파(44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에 4번째 파벌인 기시다파(48명)의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 정조회장이 최근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아베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과 당원이 각각 405표이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국회의원 405표, 당원 47표로 결선이 치러진다. 의원표의 60%를 확보한 아베 총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하면 최장 3년을 더 집권할 수 있고,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다. 총리 측 바람대로 ‘아베 1강’ 체제가 탄탄대로를 달릴 가능성도 높다. 거칠 것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던 1년여 전 상황이 재현되는 셈이다.

 

총리 측으로선 그렇게 된다면야 금상첨화지만, ‘아베 1강 체제’의 폐해가 커지는 건 아닌지 짚어볼 대목이다. 징조는 나타나고 있다. 총리 주변에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찬밥을 먹을 것”이라고 의원들을 공공연하게 겁박하고, 의원들도 눈치껏 줄을 선다. ‘우에서 좌를 아우른다’던 자민당의 활력은 온데간데없다.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학원 스캔들에서 드러났던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의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아베 총리 3선 유력’ 보도가 나오던 즈음 실소를 자아내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자민당 소속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의원이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면서 이들에게 세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월간지 기고에서 당당히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각각 정치적 입장, 다양한 인생관이 있다”(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는 식으로 대응했다. 보편적 인권 문제에 눈을 감은 것이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어느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의원의 돌출 행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기타는 “남녀평등은 망상”이라거나, 성폭행을 폭로한 여성 저널리스트에 대해 “여자로서 잘못이 있었다”라는 등 망언을 반복해온 인물이다. 그가 선배 의원들로부터 “잘못한 게 없으니 가슴을 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듯이, 자민당 내에도 이런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인식이 일본 우익의 논리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우익은 전전(戰前)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 체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이 아베 총리의 최대 후원세력이자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다. 이들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는 개헌을 외치고 있고,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스기타는 ‘소녀상 폭발’ 발언을 하는 등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활동도 적극 해왔다. 그가 지난 총선에서 공천받을 때 우익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를 추천해줬다고 밝힌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기타 의원은 아베 총리 파벌인 호소다파 소속이다.

‘아베 1강 체제’의 장기화는 자민당의 활력만 잃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 사회 전반에 ‘손타쿠’와 ‘침묵’의 구조를 심화시킬 위험성도 지적된다. 최근 아베 총리와 자민당 의원들의 ‘폭우 술자리’를 비판하는 측에게 ‘거국일치’ 역공이 있었던 것은 이를 예고하는 듯하다. 조만간 스기타 같은 인물들이 더 당당하게 차별적 발언을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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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20일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으로 일본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옴 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 등 7명에 대한 사형이 지난 7일 오전 전격 집행됐다.

 

NHK 등 방송들은 당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속보를 내보냈고, 주요 신문들도 호외를 발행하는 등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후에도 시리즈 기사나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옴 진리교 사건의 파장과 의미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23년 전 옴 진리교 사건이 일본 사회에 던진 파장이 그만큼 심대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일본 언론들이 이번 사형 집행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일단락짓는 행위로 풀이하고 있는 점이다. 헤이세이는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연호로, 1989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내년 4월30일 퇴위하고, 아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5월1일 새 일왕에 즉위할 예정이다. ‘헤이세이 최대의 흉악 사건’으로 불리는 옴 진리교 사건을 헤이세이 안에 마무리짓고 새 연호의 시대를 맞이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옴 진리교는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 1994년 마쓰모토시 사린 사건,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극악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켰다. 이들 사건으로 29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은 인파가 몰리는 출근시간대 도쿄 도심에서 화학무기로 일반시민을 무차별적으로 노렸다는 점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새해 벽두 발생해 6300여명이 숨진 한신(阪神) 대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며칠 뒤엔 경찰청장 저격 사건까지 벌어졌다. ‘치안대국’을 자부하던 일본이 받은 충격은 컸다. 옴 진리교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에 24시간 체제의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하고, 위험단체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위기관리체제를 크게 전환하게 된다.

 

일본 사회가 옴 진리교 사건에서 헤이세이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는 이유는 더 있다. 1984년 요가 서클로 출발한 옴 진리교가 교세를 확장해 결국 테러집단으로 변질해간 것은 앞선 연호인 쇼와(昭和·1926~1989년) 말기에서 헤이세이에 걸쳐서다. 이 시기는 일본의 경제와 사회 구조가 크게 바뀌던 때다. 버블 경제와 그 붕괴, 급속한 국제화로 인해 지금까지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흔들렸다. 옴 진리교의 성장 배경에는 당시 ‘삶의 허무함’을 느끼던 젊은이들의 심리를 파고든 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는다. 왜 옴 진리교는 사회를 적대시해 사린 살포라는 극단으로 치달았는가. 왜 학력이 높았던 젊은이들이 교주의 지시 아래 무차별 살인으로 돌진했는가. 이들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건가.

 

옴 진리교의 뒤를 잇는 단체들은 현재 신자 1600명, 35곳의 관련시설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길거리나 대학, 인터넷에선 젊은이들을 노리는 ‘컬트집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한다. 고립감이나 불만, 극단적 사상의 유포 등 젊은이들이 옴 진리교에 끌렸던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이들이 기댈 장소를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등 타자를 배제하고 소외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宮台眞司)는 “사회 전체가 ‘옴’적으로 되고 있는데도 그 자각도 학습도 없이 사형이 집행됐다. 일본 사회는 ‘옴’을 자신들의 문제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일부 언론들이 “옴 진리교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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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변석개(朝變夕改)도 이 정도면 ‘갑’이다. 보는 사람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최근 북한에 ‘러브콜’을 연발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얘기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 “북한과 신뢰 관계를 증진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큰 결단을 기대한다”며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전진하고 싶다”고 했다. 18일에도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내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게는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도 했다. ‘대북 강경’ 일변도였던 그 아베 총리가 맞나 싶다. 그는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에서 북.미 정상 회담 관련 기자 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태도를 180도 바꿨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라고 부르면서, “100% 일치”를 과시했던 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계기를 줬다.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유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 ‘도널드’가 하는데 ‘신조’가 안 한다? 상상하기 어렵다.

 

‘절친’ 도널드와 이심전심인 만큼 향후 전개 과정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아베 총리까지 정상회담을 하려는 건 비핵화에 진전이 있다고 보는 거 아니겠냐”고 했다.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이유는 더 있다. ‘재팬 패싱(배제)’ 우려를 씻고 현 국면에 올라타겠다는 셈법이다. ‘납치의 아베’로 지금 자리까지 오른 아베 총리로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칫 정치생명까지 위험하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각종 스캔들로 떨어진 지지율 부양과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믿는 구석’일 것이다. 실체 없는 ‘대북 교섭설’이 흘러나오고, ‘다음은 내 차례’ ‘나는 속지 않는다’ 같은 낯뜨거운 제목들이 친(親)아베 언론에 등장하는 게 우연일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북·일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걸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베 정권에게 ‘북한 위협론’은 주요한 자산이었다. 지난해 10월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의 명분도 북한 핵·미사일 위기로 인한 ‘국난’ 돌파였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 정반대에서 아베 정권의 ‘동아줄’이 된 건 아이러니하다. 북한의 ‘대화 공세’를 “미소 외교” “시간 벌기”라고 비난하더니 지금은 “신뢰관계 증진”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자”고 한다.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의 목표로 삼고 있는 납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그간 압력이 필수라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스스로 선택지를 좁혀온 셈이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북·일 국교 정상화의 기초로 삼자고 하는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은 ‘불행한 과거의 청산’과 ‘현안사항의 해결’을 병기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납치 문제의 동시 청산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후자만 강조됐고, 전자는 사실상 무시됐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아베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반성 위에 새로운 북·일관계를 만들어갈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일본 보수우익 세력들이 말 그대로 ‘멘붕(정신 붕괴)’이라고 했다. 지난 70년간 한반도 분단 체제와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의존해온 이들에게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전면에 내세운 공동선언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비단 아베 총리나 일본 보수우익세력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동북아시아가 새로운 평화체제로 가는 것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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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둘러싼 의혹과 불상사가 끊이지 않는 일본에서 최근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 대학 미식축구 라이벌전의 ‘악질 태클’ 파문이다. 사건은 지난 6일 미식축구 명문인 니혼(日本)대와 간세가쿠인(關西學院)대의 라이벌전에서 일어났다. 니혼대 수비수가 볼과 상관없는 곳에서 무방비 상태인 간세가쿠인대 쿼터백에게 백태클을 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것이다.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해당 니혼대 선수는 지난 22일 사죄 기자회견을 열고 감독과 코치가 ‘악질 태클’을 하라고 사실상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선수는 “의욕이 부족하다고 연습에서 제외됐다가 코치로부터 ‘상대팀 쿼터백을 첫 플레이에서 부숴버리면 (경기에) 내보내겠다고 감독이 얘기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감독에게 “상대팀 쿼터백을 부수겠다. 써달라”고 말했고, 감독은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해당 감독과 코치가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지시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또 “‘부숴라’는 미식축구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부상을 입히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니혼대도 같은 내용의 답변서를 간세가쿠인대에 보냈다.

 

하지만 간세가쿠인대 측은 “답변서에 모순이 많다”면서 수사기관 등에 의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해당 수비수가 경기를 계속했고, 감독의 질책이나 후속 조치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코치진이 사실상 ‘악질 태클’을 유도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건 추이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치부를 드러낸 대학 스포츠계가 일본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적지 않은 이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문예평론가 사이토 미나코(齊藤美奈子)는 도쿄신문 칼럼에서 이번 사건이 ①감독이 전체적인 방향을 지시 ②코치가 ‘상대방 쿼터백을 부숴라’ 등 구체적 지시 ③ 다른 선택지가 없이 내몰린 선수가 ‘부술 테니 써달라’고 자청하는 구조라고 분석하면서 과거 일본 군대와 닮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회에는 지금도 일본 군대의 명령 계통과 역할 분담으로 움직이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실제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일본군은 사라졌지만, 일본군의 조직 원리나 문화는 기업이나 학교 등에 그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2015년 도시바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던 2008년 도시바의 사장은 임원회의에서 120억엔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분식회계를 하라는 말과 똑같았다. 무리한 지시가 떨어져도 어떻게든 완수해야 하는 것이 도시바의 조직문화였다.

 

아베 총리가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사학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총리의 의도를 공무원들이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한다.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은 “명령한 적이 없다”고 하면 된다.

 

한 일본 언론인은 이번 사건에서 전후 일본 사회의 ‘무책임의 구조’를 본다고 했다. 일본은 주변국에 심대한 고통을 안겼던 전쟁 책임 문제를 제대로 마주보지 않았다. 기업으로 치면 회장이라 할 일왕부터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위도 하지 않았고, 전쟁 책임에 대해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없었다.

 

역사학자 나카무라 마사노리(中村政則)는 <일본 전후사>에서 이런 일왕의 태도가 “전후 일본인의 정신사에 헤아릴 수 없는 마이너스 영향을 끼쳤다”면서 “전쟁 책임의식을 희박하게 했을 뿐 아니라 지도자의 정치적 책임, 도의적 책임을 지는 방식에 맺고 끊는 것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악질 태클’ 사건에 일본 사회의 이런 무책임 구조를 대입하는 것이 이 언론인만의 과대 해석은 아닐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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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도쿄 와세다대 근처의 아바코 예배실을 찾았다. 그림책 <꽃할머니>의 일본어판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꽃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기초로, 열세 살 소녀가 겪어야 했던 모진 고초를 그리면서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한·중·일 3국이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한국과 중국에선 2010년 출간됐지만, 일본에선 8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됐다.

 

이날 행사에는 <꽃할머니> 작가 권윤덕씨와 함께 일본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田島征三·78), 하마다 게이코(浜田桂子·71)가 나왔다. 두 사람은 ‘평화 그림책’ 탄생의 산고(産苦)를 지켜본 산증인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10여년간의 여정을 때로는 웃음을 섞어가면서 담담하게 술회했다.

 

<꽃할머니> 작가 권윤덕씨(왼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28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일본어판 출간 기념행사에서 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김진우 기자

 

‘평화 그림책’은 다시마를 비롯한 일본 그림책 작가 4명으로부터 시작됐다. 다시마는 “어떻게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부터 피해를 입힌 아시아의 작가들에게 호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005년 한국과 중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편지를 보내 취지를 설명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기도 했다. 2007년 중국 난징(南京)에 한·중·일 작가들이 모였다. 언어는 달랐지만, 아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지난날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오늘의 아픔을 나누며, 평화로운 내일로 함께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 그림책’은 다시마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하마다의 <평화란 어떤 걸까>(이상 한국어판 제목) 등의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다만 <꽃할머니>는 “심 할머니의 증언이 공문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일본어판 발간이 취소됐다. 일본 우익들의 공격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광’에 묻힐 뻔한 책을 살려낸 것도 다시마 등이었다. 기획을 처음 제안했다는 책임감이, 작고하기 전 만난 심 할머니와의 약속이 이들을 움직였다.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없었을까. 다시마는 “새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며 웃었다. 그는 우익의 선전차량들이 집 주변을 돌면서 스피커를 통해 “아이들을 적화(赤化)시킨다”고 비난하는 일을 겪었다. 하마다는 임신으로 부른 배를 안고 가두선전을 하는 우익들에게 다가가 “그만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마는 “80여년 전 미디어나 출판이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한 게 일본이 점점 (태평양)전쟁에 가까이 가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의문이 남았다. 갖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평화 그림책’을 밀어붙인 동력은 무엇일까. 실마리는 반평생을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면서 반전·평화·생명의 메시지를 전해온 이들의 이력에 있어 보였다. 다시마의 얘기처럼 일본 작가들이 한·중 작가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데는 ‘가해국’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양심과 실천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의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 관장은 마무리말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열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일본 시민들이 제안을 했고, 각국에서 온 이들이 서로 얼싸안고 했다. 가해자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여정은 멀다. 하지만 역사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어,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데서 미래가 바뀐다는 뜻처럼 들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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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 새로운 증거가 튀어나오는 이상(異常) 사태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지난 한 달여간이 그렇다. 오죽했으면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의 입에서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나올까.

 

상황이 이런데도 발뺌과 책임 전가에 급급한 정권의 모습은 견제장치 없는 ‘아베 1강’의 본질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아베 총리와 그 주변에서 내뱉는 무수한 언어들은 국민들을 ‘지긋지긋’하게 만들어 “정치가 다 그런 거지”라는 정치 허무·혐오에 빠뜨리려는 것 같다. 문제가 없다고 계속 강변하다 보면 어차피 국민들은 곧 잊는 법, 이라고 깔보는 걸까.

 

아베 정권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은 더 있다. 재무성 관료 ‘톱’인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이다.

 

잡지 ‘주간신초’는 지난 12일 후쿠다 차관이 회식 등의 자리에서 재무성 출입 여기자들에게 성희롱을 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후쿠다 차관은 “키스해도 되느냐” “호텔로 가자” 등 노골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심지어 모리토모학원 문제를 질문하는 여기자에게 “가슴 만져도 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주간신초는 13일 성희롱 음성 녹음을 공개했다. 하지만 후쿠다 차관이 16일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아베 정권의 자세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후쿠다 차관에게 긴장감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의를 줬다”고 밝혔다. 후쿠다 차관의 간단한 보고만을 바탕으로 구두 주의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 것이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긴장감을 갖고 행동하게 하겠다”고 밝힌 걸로 봐서 아베 총리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베 정권은 ‘모든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주요 과제로 내걸고 있다.

 

이런 자세는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경우와 대비된다. 아베 정권은 마에카와 전 차관의 ‘데아이케(만남) 바’ 출입 보도에 호들갑을 떨었다. “교육행정의 최고 책임자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등 인신공격까지 반복했다. 그래 놓고선 현역 사무차관의 성희롱 의혹에는 무르게 대응했다.

 

하긴 스가 관방장관은 가케(加計)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과 관련, 총리 비서관의 ‘총리 사항’ 발언이 적힌 에히메(愛媛)현 면담기록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문서에 대해 정부가 코멘트하지 않는다”고 발을 뺐다. 정권에 불리한 일은 덮거나 피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측은 철저하게 때려 부순다.

 

아베 총리는 잇따르는 불상사에 대해 “고름을 다 짜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름이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권은 고름이 나오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진위가 흐릿해지면 국민들의 관심은 사그라들 것이라는 속내일지도 모른다. 실제 총리 관저에선 “2015년 안보법 통과 때도 야단법석이었지만 얼마 뒤 잠잠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아베 정권이 지금까지 몇 차례 위기를 극복해온 ‘자신감’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분란을 싫어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일본 국민들의 성향, 지리멸렬한 야당 상황 등도 거론된다.

 

그렇다면 지난 14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3만 시민의 외침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아베 정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잇따라 나오는 증거들과 커지는 분노들. 반면 국민의 ‘지긋지긋한 감정’의 허점을 파고드는 정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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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료 세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최근 한 달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흔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때 일본을 떠받친다고까지 얘기됐던 관료 세계의 혼란과 해이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을 둘러싼 재무성의 문서 조작. 아베 총리 측이 헐값 매각이나 문서 조작에 관여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두드러지는 점은 의혹이 제기된 당시 담당 국장이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을 필두로 재무성 관료들이 정권 옹호에 필사적이었다는 것이다. 사가와가 국세청 장관에 임명된 것도 이런 ‘충성심’을 평가받은 덕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런데 문서 조작 사건이 터지자 상황이 180도 뒤집혔다. 아베 정권은 “최종 책임은 사가와”(아소 다로 부총리)라면서 재무성 관료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사가와는 ‘꼬리 자르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 하나의 ‘사학 스캔들’이었던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은 다른 양상이다. ‘총리 의향’이라고 적힌 문부과학성(문부성) 문서가 공개된 데 이어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성 사무차관도 “총리 관저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마에카와는 ‘데아이케(만남)바’ 출입 보도 등으로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최근에는 문부성이 마에카와의 중학교 강연내용을 뒷조사했고, 친아베 성향의 자민당 의원 2명이 이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권에 반기를 든 사람은 끝까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한 모습이다. 앞서 사가와 건과 비교하면 정권에 충성해도 잘리고, 정권에 반항해도 잘린다.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시계를 조금 더 앞으로 돌리면 아베 정권 추락의 신호가 된 재량노동제 데이터 조작 문제가 있다. 아베 총리는 “재량노동제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자료도 있다”고 답변했지만 전제조건이 다른 데이터를 비교한 자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무부처인 후생노동성이 잠깐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실수한 것을 두고 ‘과잉 충성’에 눈이 먼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의도적인 사보타지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난해 유행어였던 ‘손타쿠(忖度)’ 문제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관료들이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기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은 감추고 보는 관료 집단의 구조적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난맥상의 배경에 5년 넘게 이어진 아베 ‘1강 체제’의 부작용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2014년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관료들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관료들이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총리관저의 뜻대로 알아서 움직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손타쿠’ 구조의 정점에 총리가 있는 셈이다. 일련의 사건에서 보이듯 아베 정권은 관료들을 정권을 지키는 도구로 생각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시한다. 자민당 와다 마사무네(和田政宗)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오타 미쓰루(太田充) 재무성 이재국장이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 비서관을 지냈던 점을 들면서 “아베 정권을 깎아내리려고 의도적으로 이상한 답변을 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철학자 우치야마 다카시(內山節)는 근대 정치의 병리로 ‘독재정치’를 낳는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와 관료제 문제를 들었다. 정치가는 선거가 끝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정치가 밑에서 관료들은 자기보신에 몰두한다. 그 속에 주권자에 대한 공복(公僕) 의식은 없다. 지금 총리 관저 앞에서,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울려퍼지는 함성은 바로 그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훼손된 데 대한 분노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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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1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공동주택 ‘소셜하임’에서 화재로 40대부터 80대의 남녀 1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소셜하임’은 빈곤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시설로, 입주자는 경제적으로 곤궁하거나 돌봐줄 친·인척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아키타현 요코테시의 맨션 ‘가테야미나미초 하이츠’에서 화재가 발생해 50~70대 입주자 5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모두 중·고령의 독거 남성들이었다.

 

앞서 지난해 5월엔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의 맨션 ‘나카무라소’가 전소해 50~80대 6명이 숨졌다. 나카무라소는 임차료를 하루씩 내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이나 생활보호를 신청한 노숙인들이 머무르는 장소로 이용했다고 한다.

 

3건의 화재에서 공통되는 것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노인들이었다는 점이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모두 낡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다. ‘소셜하임’은 원래 3층짜리 목조 여관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1층과 2층에 10㎡ 정도의 개인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이 빨리 번져 몸이 불편한 고령자들이 대피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소셜하임’ 참사 한 달여를 맞아 일본 언론들은 이번 사고가 ‘방재선진국’ 일본의 방재·피난 대책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소셜하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는 시설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들어 법의 ‘사각(死角)지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독거·빈곤 문제 등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드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화재가 발생한 3곳은 모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독거노인이나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일본에선 2000년대 들어 비영리법인(NPO)을 중심으로 빈곤층의 생활보호자 신청을 지원하는 활동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복지 행정은 이들을 받아들일 곳을 정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열악한 주거 환경에 고액의 이용료를 징수하는 ‘빈곤 비즈니스’ 시설이 생겨나게 됐다. 행정 측도 빈곤층이 살 수 있는 공영주택을 줄여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NPO 등은 직접 건물을 확보해 빈곤층에게 거처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자금력에는 한계가 있어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은 노후화된 목조 건물이 대다수였다.

 

일본에선 독거노인들이 집을 빌리기란 쉽지 않다. 집주인들이 ‘고독사’ 등을 우려해 집을 빌려주길 꺼리기 때문이다. 결국 재해에 가장 취약한 곳에, 재해에 가장 취약한 사회적 약자가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소셜하임’을 운영하는 업체 대표는 화재 직후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여력이 안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소셜하임’은 유료노인홈이나 무료저가숙박소에 해당되지 않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 해도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지금까지의 ‘선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생활보호 급여자 2명 이상이 이용하고, 법적 지위가 없는 시설이 2015년 6월 현재 전국에 1236곳이 있다.

 

최근 일본에선 추위로 인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실내 동사(凍死)’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노인 고립과 빈곤 문제가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소셜하임’ 사고가 정부의 규제 강화로만 끝날 게 아니라, 노인·빈곤 문제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소셜하임’ 사고 같은 화재 참사가 발생하면 여론은 떠들썩해지곤 한다. 하지만 빈곤 노인의 고독사에 대해선 그 정도 반응이 없는 것은 왜일까. 비단 일본에만 해당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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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한국인을 그냥 자기 아래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아니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부터 그랬어요. 이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최근 저녁 자리에서 만난 재일동포 2세가 한 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얘기까지 나오나 싶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70년 넘게 살아온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재일동포들이 겪은 일상적인 차별과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또 다른 재일동포는 “일본인의 ‘분풀이’ 대상이 일본 사회 내의 힘없는 사람, 특히 재일동포”라고 했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의 고통을 누구보다 절감해온 이들이다. 그래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의미는 남다른 듯했다. 본국에 평화와 통일의 불씨가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하는 일본 사회의 야멸찬 시선에 대한 우려가 더 커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평창 블리스 힐 스테이트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현안에 대해 논의 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실제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일본 정부와 일부 언론 등 일본 사회의 대응은 편향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일본의 위기감이나 대북 압박 정책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대응책이나 관련 언급들을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방한 전부터 아베 신조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조속한 실시를 요구할 것이라고 대놓고 공언했다. 일부 언론에선 ‘만일의 경우’라면서 평창을 노린 북한 미사일 공격을 버젓이 거론하는 등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도 위기론을 부채질했다. 한국 일부 보수단체의 시위를 반복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12일자에 북한 응원단이 쓴 남성 가면 논란을 보도하면서 아예 ‘김일성이 200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인터넷은 더 심하다. 유튜브에 ‘평창오륜’으로 검색해보면 아연실색하게 된다. 한국은 북한의 꼭두각시 나라고, 평창은 한국민들에게도 외면받아 당장 망할 것 같다. ‘헤이트스피치(차별·혐오 발언)’에 저촉되는 단어만 쓰지 않았을 뿐, ‘한국 조롱’과 ‘혐한(嫌韓) 정서’가 넘쳐난다.

 

문제는 이런 퇴행적 인식들이 일부 누리꾼을 넘어 TV 방송과 출판 등 전체 미디어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후지TV에 나온 한 패널은 ‘오사카에 북한 테러리스트가 대량 잠복해 있어 위험하다’는 내용의 언급을 했다. 오사카에는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사회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진지하게 살펴보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일본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는 <영속패전론>에서 일본의 보수 세력들이 1945년 패전 뒤 미국에 깊이 굴복하는 반면, 좌절된 내셔널리즘의 스트레스를 아시아에서 온 힘을 다해 패전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뒤틀림이 일본과 주변국에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어 파국을 부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전후 70년이 지나도록 과거의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역사·영토 왜곡 주장을 강화하고, ‘전쟁가능한 국가’를 향한 개헌을 서두르고 있다. 뭐든 트집을 잡아 ‘재일동포 탓’으로 공격하려는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상당수 일본인은 이에 무관심하다.

 

일본 TV의 와이드쇼 진행자는 올림픽 직전의 한국 사회 ‘혼란상’을 전하면서 “한국 사회의 폐색감(꽉 막힌 느낌)”을 원인으로 들었다. 최근 일본의 과도한 ‘한국 때리기’가  패전 이후 일본의 ‘뒤틀림’ ‘폐색감’의 분출이라고 한다면 편향적이라고 할 것인가.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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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와 맞닿은 일본 아키타(秋田)현 오가(男鹿)시.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사찰 도센지(洞泉寺)에는 유골 10구가 임시 안치돼 있다. 이 유골들은 지난해 11~12월 북한에서 표류해온 것으로 보이는 조잡한 목선 내부 등에서 발견된 것이다.

 

본당에 줄지어 놓여 있는 하얀 유골함들 앞에서 주지 스님은 매일 아침 독경을 한다. 그는 “해마다 4~5구의 유골을 받아들이지만 작년은 이상하게도 많았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도센지는 오가시의 의뢰로 1950년대부터 신원불명의 유골을 받아들여왔다. 1~2년이 지나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유골은 경내 무연고자 묘에 안치된다.

 

지난달 초 ‘재일조선인’이라는 여성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북한의) 어업권이 중국에 팔려서 거친 동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등의 내용이 써 있었다. 봉양에 써달라면서 1만엔이 동봉돼 있었다. 이 밖에도 감사 편지가 몇 통 더 왔고,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방문한 남성도 있었다. 주지 스님은 “북한에 대한 생각은 복잡하겠지만 따뜻한 반응이 많아 안심”이라고 했다.

 

해가 바뀌었어도 북한 추정 어선이나 어민의 시신이 일본 해안에 떠밀려오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앞바다에 북한 어선 추정 목선 1척이 뒤집힌 채 밀려왔다. 부근에선 일부 백골화한 남자 시신 1구가 발견됐고, 며칠 후 선박 안에서 남자 시신 7구가 수습됐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2013~2016년 50~60척이던 북한 추정 어선은 지난 1년간 사상 최대인 104척이 밀려왔다. 이 중 생존자가 있는 경우는 5건으로 42명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11건으로 43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일본에 표류해오는 배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북한 당국이 식량난 타개를 위해 어업을 장려하면서 어민들이 먼바다까지 나온 데다 예년보다 날씨가 안 좋아 풍랑에 휩쓸렸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당국에 발견되지 않고 바다를 떠도는 배와 시신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낡은 목선을 타고 거친 바다로 나오는 이들. 그리고 시신이 되어 차가운 바다를 떠도는 이들. 북한 당국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표류 어선과 어민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북한 핵·미사일 위기론과 맞물려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북한 때리기’ 소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관심은 북한 공작선이 아닌지, 북한 스파이가 타고 온 건 아닌지에 집중됐다. 지난해 11월 홋카이도 앞바다 무인도에 표착한 북한 어민들의 ‘도둑질’이 여론을 악화시켰다곤 해도 과잉 반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과 언론들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키웠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공작원 등 여러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집권 자민당의 한 의원은 바이오 테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북한 공작원이 굳이 낡은 목선을 타고 거친 겨울 바다에 나와 일본에 잠입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란 추론은 묻혔다. 과열 반응이 지나고 남은 것은 냉담이다.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목숨을 걸고 차가운 바다로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차가운 바다를 시신으로 떠도는 이들도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자식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시신이 되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북한 당국이 인수에 소극적인 탓도 있어서, 앞서 도센지 같은 곳의 무연고자 묘에 묻힌다. 이들은 ‘신원불명의 행로병자’로 처리된다고 한다. 앞서 도센지 주지 스님은 “일본인도 북한인도 생명의 무게는 같다. 시신은 가족이 있는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장례식도 올리지 못한다. 부디 편안히 잠들라고만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도쿄|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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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 ‘기대 반 불안 반’의 심정이 된다. 다가올 1년이 어떨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언론에서 신년 기획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새해의 과제를 짚고, 어떤 1년이 될지 전망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비롯해 방송과 주간지 등에선 ‘2018년 일본’을 전망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내년 4월 말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로 ‘헤이세이(平成·현 일왕의 연호)’ 시대가 3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는 점을 비추어 헤이세이 시대를 되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짚는 ‘헤이세이라는 것은’이라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일본 경제 대예측’ 특집을 통해 지난해 2만2900선대까지 올랐던 닛케이 평균주가가 올해 3만선대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전문가의 예측을 실었다. 일본 경제가 장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최근 상황이 이 같은 낙관적인 전망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향후 일본 경제의 ‘변수’로 북한 핵·미사일 위기,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경제 동향과 함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선택’을 드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지, 그 선택이 어디까지 현실화할지에 따라서 일본 경제, 아니 일본 사회의 향방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일본은 올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는 중대 분기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전방위적인 무장 강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戰力) 보유를 하지 못하도록 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해 헌법기념일인 5월3일 ‘전쟁 포기’(1항)와 ‘전력 불보유 및 교전권 비인정’(2항)을 규정한 현행 헌법 9조에 자위대의 근거를 명확히 한 개정 헌법의 2020년 시행을 목표로 제시했다. 집권 자민당도 최근 개헌안의 국회 발의를 연내에 마치고 늦어도 내년 봄까지 국민투표를 거쳐 2020년 새 헌법을 시행한다는 목표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은 현재 중·참의원 모두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개헌에 신중한 연립여당 공명당과 개헌에 반대하는 제1야당 입헌민주당, 그리고 절반 가까운 개헌 반대 여론이 변수다.

 

이런 상황 때문에 아베 총리가 필생의 비원(悲願)인 헌법 개정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둘 경우 국민 분열 등 적지 않은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개헌 논의에만 매몰될 경우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 연두소감(신년사)에서 헌법 개정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위대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작년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으니 당연히 당에서 (개헌 논의를) 진행해 줄 것”이라며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할 뜻을 내비쳤다.

 

공교롭게도 아베 총리는 신년사에서 150년 전 메이지(明治) 유신을 사례로 들면서 ‘국난 극복’을 강조했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지만, 이때 정해진 일본의 행로는 70년 후 군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패전으로 이어진다. 보수우익세력들은 일왕을 중심으로 세계에 위세를 떨치던 ‘메이지 일본’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패전 후 73년. 아베 총리는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꾸려 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국가 만들기’가 어떻게 될지, ‘불안’의 한 해가 시작된다고 느끼는 일본 시민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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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가진 남성이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 일명 ‘후라리맨’을 두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후라리맨’은 ‘흔들흔들’을 뜻하는 일본어 ‘후라리’에 남성을 뜻하는 영어 ‘맨(man)’을 합친 말이다. 원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만 했던 남성들이 정년 퇴직 후 가정에서 있을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한 일본 사회학자가 만들어낸 용어다. 그런데 최근엔 ‘후라리맨’이 한창 일할 나이인 남성들에게도 쓰이고 있다. 회사 업무가 끝난 뒤에도 귀가하지 않고 거리를 헤매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의 발단은 공영방송 NHK의 한 정보프로그램이 이 ‘후라리맨’을 특집으로 잇따라 다루면서다. 방송에선 퇴근 후 집에 바로 가지 않고 근처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거나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남성 회사원들이 등장했다. 저녁 시간대 도쿄 시내의 가전양판점에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가득한 모습도 보여줬다. 일본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퇴근이 빨라졌지만 정작 여유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는 남자들이 ‘후라리맨’이 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방송이 나간 뒤 인터넷에는 비판 댓글이 쇄도했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남성들이 “혼자만의 시간의 필요하다” “일찍 귀가해도 아내의 집안일에 방해가 된다” 등의 이유를 댔는데, 이게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아내에게 가사와 육아를 강요하고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혼자만의 시간은 여성도 필요하다” 등의 비난이 잇따른 것이다. 그중에는 “워킹맘이 식사를 만들지 않으면 ‘엄마 실격’이라면서, 남성은 ‘후라리맨’이라고 해서 ‘여러 부담을 지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라니 도대체 뭐냐”라는 신랄한 비판도 있었다.

 

그러자 NHK는 후속 보도로 이 같은 반론들과 실태들을 더 다뤘다. 다른 방송이나 신문, 잡지도 관련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다. 그런데 후속 보도들에서도 여전히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자도 괴로워’류의 흥미 위주식 보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NHK는 비판의 목소리를 소개하면서도 “바로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기분을 이해한다” “전업주부라도 바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 등 ‘공감의 목소리’를 전했다. 마치 여론이 찬반으로 양분된 인상을 준다. “아이 중심의 집은 거북하다” “육아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아내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심리를 전했다. 한 언론에선 “집 안 내 서열이 반려동물보다 아래”라는 ‘핍박받는 남성’ 사례를 다루기도 했다. NHK는 또 앞서 소개된 남성이 아내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취미를 함께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 부부는 자녀가 없었다.

 

물론 남자도 괴롭다. 사회는 무뚝뚝하게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미덕이던 과거와는 다른 남성상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이쿠맨(육아하는 남자)’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쿠맨’이 마치 능력 있는 남성의 ‘브랜드’처럼 쓰이는 면도 없지 않다. 가사와 육아라는 끝나지 않은 작업에 짓눌려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련의 후라리맨 보도에선 사회의 요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진지하게 짚는 대목을 좀체 보기 힘들다. 일본에는 여성 60%가 첫째 아이를 낳은 뒤 퇴직하는 등 성별 역할 분담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반면 일손 부족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의도는 차치하고 ‘일하는 방식 개혁’의 지향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고, 부부가 적정하게 가사·육아를 분담하는 것이다. 종국엔 가정과 일을 병립하고, 아이를 키우기 쉬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후라리맨’ 논란은 그러한 의식과 제반 여건이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을 거꾸로 보여줬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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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시의 한 아파트에서 9구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피해자 9명의 신원이 확인되는 등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15세 여고생으로, 17세 여고생 2명까지 여고생만 3명이다. 19세 대학생과 20대 초·중반 4명 등 5명도 모두 여성이다. 이 밖에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으러 나섰던 20대 남성 1명이 살해됐다.

 

용의자 시라이시 다카히로(白石隆浩·27)는 사건 현장인 아파트에 입주한 지난 8월 말부터 약 두 달 동안 이들 9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는 사체를 절단해 아이스박스에 나눠 담은 뒤 일부는 밤에 쓰레기로 버렸다. 그는 피해자들에 대해 “트위터에서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관적인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린 여성들에게 “함께 죽자”는 메시지를 보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시라이시는 경찰 조사에서 “정말 죽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피해자들은 “죽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자살을 바라다가 화를 자초했다고 간단히 결론지어도 될까.

 

마지막으로 희생된 20대 중반 여성은 한부모가정 자녀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나온 뒤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이 여성을 길렀다. 그 어머니마저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피해 여성은 지난여름 이혼한 뒤 아이를 혼자 길렀다.

 

이 여성은 마음의 병을 안고서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이번 사건의 배경에 있는 게 아닐까. 피해 여성들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여대생이거나 만화가를 꿈꾼 여고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실종되기 직전까지 학교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가족과도 접촉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는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상대나 장소가 없었다.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인터넷상에서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죽고 싶다’고 했지만 실은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길 바랐을지 모른다. 시라이시는 이런 여성들의 ‘틈’을 파고들어갔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실태를 알아야 한다. 구루메(久留米)대학이 지난해 일본 중·고생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죽고 싶다고 때때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3.7%였다. 이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로 가족에 이어 인터넷이 뒤를 이었다. 친구나 학교보다 인터넷에 의지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이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통계가 집계된 31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특히 어려울 때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 ‘사회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75.9%만 ‘그렇다’고 답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대 사회에선 개인을 지지해주던 가족이나 친구, 연고 집단이 해체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사회관계는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도와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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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엔(廣辭苑)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백과사전이다.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1955년 초판을 간행한 이래 누적판매 1190만부를 자랑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6판이 나왔다. 1991년 4판 이후엔 개정할 때마다 항목을 늘려왔다. “일본어로서 정착한 단어”를 엄선해왔다고 한다.

 

최근 이와나미쇼텐은 고지엔 7판을 내년 1월12일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개정판은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7판은 24만개 항목이 실린 6판보다 항목이 약 1만개 더 늘어난다.

이와나미쇼텐이 공개한 고지엔 7판에 추가되는 단어를 보자.

 

‘아프리’(앱), ‘후릭쿠’(flick·터치 패널 화면을 살짝 밀어 조작) 같은 정보기술(IT) 용어나 iPS세포(만능줄기세포) 등 과학 용어가 많이 포함됐다. 그만큼 IT·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대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노리노리’(경쾌한, 기분 좋은), ‘갓쓰리’(실컷) 같은 단어나 ‘오히메사마닷코’(공주님 안기)처럼 대중문화에서 유래한 단어도 추가됐다.

 

뜻이 새로 들어간 단어도 있다. ‘호켄’(보험)에는 “잘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별도 수단”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보험을 들어놓는다”고 말하는 우리와 비슷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사회 분야 신조어다. ‘블랙기업’은 고용 불안 상태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말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이 직장에서 당하는 괴롭힘과 부당한 처우를 뜻하는 ‘마타니티 하라스멘토’(maternity harassment), 결혼 활동을 뜻하는 ‘곤카쓰’(婚活),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나는 냄새인 ‘가레슈’(加齡臭) 같은 신조어에선 저출산·고령화나 여성차별 등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엿본다. 주일미군이 오키나와에 배치한 수륙이착륙기로, 종종 사고를 일으켜 일본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오스프리’도 추가됐다.

 

새로 포함되는 단어 가운데 일본 언론이 제일 먼저 드는 건 ‘안전신화’다. 1990년대 이후 크고 작은 사고가 반복되면서 ‘안전대국’ 일본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깎여나갔다. 결정타를 먹인 사건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다.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본 원전의 ‘안전신화’는 붕괴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현대를 특징지은 ‘확실성’은 끝났다”는 기사를 실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일본은 또 다른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메이드 인 재팬’(일본산)에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모노즈쿠리(장인정신) 신화’다. 일본 고베제강의 알루미늄·구리 품질 조작에 이어 닛산자동차와 스바루의 무자격자에 의한 출하 전 검사 등 대표적 제조기업의 부정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부정이 30~40년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고품질과 안전성을 내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제조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건의 폭발성 여부에 따라 ‘모노즈쿠리’라는 항목에 새로운 뜻이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고지엔에 새로 추가되는 단어는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함) 같은 신조어들이 사회의 일면을 날카롭게 집어냈다.

 

그러고 보면 고지엔 7판에 ‘손타쿠’(忖度·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다)나 ‘국난’(國難·나라가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에 새로운 뜻이 더해지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손타쿠’는 “(아베 총리 등) 윗사람의 뜻을 알아서 기다”라는 뜻이, ‘국난’에는 “꼼수 해산 비판을 막기 위해 갖다붙인 명분으로, 북한 위협과 저출산·고령화를 가리킴”이라는 뜻이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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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집으로 신문대금을 받으러 오는 신문 배달원이 있다. 신문을 구독한 지 반년이 넘다보니 안면이 꽤 익숙해졌다. 신문대금을 전해주는 짧은 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한국인 신문 배달원도 많았는데, 지금은 몽골이나 네팔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다가 필자가 한국 기자라는 것을 알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북한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최근 일본인을 만나면 이런 질문이 어김없이 나온다. 북한의 긴박한 정세가 일본인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8월과 9월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상공을 잇달아 통과했다. 일본 정부는 전국순간경보시스템(J얼럿) 등을 통해 홋카이도 등 12개 현 주민들에게 피란을 권고했다.

 

이런 북한 정세를 ‘국가 존립의 위기’를 뜻하는 ‘국난(國難)’으로 끌어올린 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그는 북한 정세를 저출산·고령화 문제와 함께 ‘국난’으로 꼽고, ‘꼼수 해산’으로 비판받는 조기 중의원 해산을 ‘국난 돌파 해산’이라고 강변한다. 거리 유세의 3분의 1 이상을 북한 문제에 할당한다. 10일 시작된 12일간의 공식 선거전에도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아베 정권이 ‘한반도 위기론’을 부채질해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줄곧 제기돼왔다. 그 정점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발언이다. 그는 지난달 23일 북한 비상사태 시 대량난민 유입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무장난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자위대가 출동해 사살할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처럼 ‘한반도 위기론’을 강조해온 아베 정권이 정치공백을 발생시킬 수 있는 조기 총선을 감행한 건 실소를 자아낸다. 북한 대응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큰 이론(異論)이 없는 북한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아베 정권의 장기인 ‘편 가르기’다.

문제는 북풍 활용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아베 정권은 2년 전 헌법 해석을 억지로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관련법을 통과시켰다. 자민당 내에선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론’은 물론 ‘핵 무장론’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겠다고 표명하고 있다.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는 최전선에서 애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민의 선택’을 이유로 이런 움직임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전쟁가능한 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베 대항마’로 꼽히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지사가 선전해도 마찬가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전쟁을 염두에 둔 국가 만들기’에 이해가 일치한다.

 

정치권이 당파적 목적을 위해 북한 위기론을 부채질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도 ‘개전 전야’ 같은 분위기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상공을 통과한 홋카이도에서 700㎞ 넘게 떨어진 나가노(長野)현까지 피란 경보가 발령됐다. 미사일이 홋카이도에서 2200㎞ 떨어진 태평양에 낙하한 뒤에도 방송국은 정부 발표를 반복해 내보냈다. 정부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위기를 부추기면서 사회 전체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

 

한때 한국에서 보수·수구세력의 ‘전가의 보도’로 쓰였던 북풍이 바다 건너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게 아이러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비상시국이니 국민은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비판 여론에 족쇄를 채우고, 태평양 전쟁을 향해 돌진했다. 역사의 망령이 현대 일본에서 되살아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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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7월 유효구인배율은 1.52배였다. 일자리를 구하는 100명이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이 152곳이라는 뜻이다. 유효구인배율은 지난 2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했다. 같은 날 취업정보회사 리쿠르트가 발표한 내년 봄 졸업예정인 대학생의 내정률(취직이 결정된 사람의 비율)은 84.2%였다. 지난해 79.3%보다 4.9%포인트 올랐다. 2개 이상 기업들에 취직이 결정된 대학생도 64.2%나 됐다. 최근 일본에서 이어지고 있는 ‘구직자 우위’ 취직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이쯤 되면 일본 젊은이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야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젊은 사원들이 적지 않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취직이 이렇게 잘되는 시대에 우울증이라니. ‘취업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 입장에선 “무슨 배부른 소리냐” 싶겠지만, 일본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거나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젊은 사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와세다대 4학년생은 “1년 위 선배가 입사하고 곧바로 우울증에 걸려 회사를 그만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밝혔다. 도쿄대 법학대학원생은 “사회인이 된 친구들이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는 글을 자주 본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산업전문의도 “신입사원의 우울증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런 ‘신형 우울증’의 특징은 직장에선 침울한 상태지만, 일터를 떠나면 밝아지곤 해서 상사들이 ‘진짜 우울병 맞나’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하지만 악화될 경우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신형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 우선 젊은 세대들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하다는 점을 거론한다. 달리기 경주에선 순위를 매기지 않고, 성적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 등 20대가 거친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자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아이 증후군’이다. 항상 ‘좋은 아이’로 비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이를 조장한다. ‘연결’된 친구들은 많지만,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별로 없는 탓에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 가운데 과정을 중시하는 ‘착실한 사람’이 많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런 사람은 중도에 좌절을 겪으면 ‘수정’이 안된다.

 

확실히 요즘 일본 젊은이들 가운데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는 게 괴로워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약해 빠졌어”라고만 생각하면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 젊은이들에게 과도한 압력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 구조나 사회적 분위기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우울증 등 ‘마음의 병’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는 498건으로 해당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원인별로는 ‘파워하라’(직장 상사의 횡포)로 대표되는 직장 내 괴롭힘, 왕따, 폭행이 74건으로 가장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가 20명 증가한 107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일손 부족으로 인해 20대가 ‘즉시 전력감’으로 여겨지면서 직장에서 과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요즘 일본에서 거의 매일 듣는 말이 ‘일하는 방식 개혁’이다. 일본 정부는 장시간 노동 근절, 유연근무제 확산 등 실행계획들을 내놓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실행계획들 속에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사회는 개인보다 회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회사주의’가 뿌리 깊다. “주변의 공기를 읽는다”는 집단주의 문화도 여전하다. ‘좋은 아이’로 보이고 싶은 젊은이일수록 걸리기 쉽다는 ‘신형 우울증’도 이런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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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분을 위령(慰靈)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도지사로서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깊은 일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지난 25일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쿄도 위령협회 주최로 열리는 추도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고, 조선인 희생자도 거기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학살 희생자와 자연재해 희생자는 다르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은 모습이다.

 

고이케 지사는 내달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 측 요구를 거절해 논란이 일었다. 전임 지사들은 추도문을 매년 보내왔고, 고이케 지사도 취임 첫해인 지난해 추도문을 보냈다. 일본 언론은 태도가 바뀐 배경에 추도비에 적힌 ‘희생자수 6000여명’ 문구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선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이 숫자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학살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고이케 지사의 모습에서 가해 사실과 책임을 덮으려는 일본 우익들의 익숙한 패턴을 보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종전기념일(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를 이유로 든다. 전쟁 책임과 주변국에 대한 가해 사실은 사라지고 없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기획·주도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선인 희생자를 전체 희생자에 뭉뚱그려 넣는 식으로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의 이번 행태는 이전부터 지적돼온 배외주의가 보다 명확한 형태로 폭주하려는 ‘전주곡’으로 보인다. 그는 ‘첫 여성 총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지만, 극우 포퓰리스트 성향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평화헌법 개정이 목표인 극우단체 일본회의에서 활동하고 있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한다. 극우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강연회에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사에 취임한 직후 전임 지사의 제2한국학교 부지 대여 방침을 백지화했다. “보육원 대기아동 문제가 심각한데 외국인에게 왜 공간을 내주느냐”는 우익의 반발에 편승한 것이다. 이는 보육시설 부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분노를 외국인에게 향하게 하는 전형적 배외주의다. ‘고이케 신당’을 추진하는 ‘일본 퍼스트회’는 배외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각각 ‘호주 퍼스트’ ‘뉴질랜드 퍼스트’라는 극우 정치운동이나 정당이 존재한다. 고이케 지사는 ‘고이케 극장’이라 불릴 정도로 능수능란한 이미지 정치로 대중 지지를 얻어 왔다. 하지만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항마로 꼽히지만, 아베 총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질 게 없는 극우 포퓰리스트의 모습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는 공원 내에선 같은 시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단체가 ‘진실의 간토대지진 희생자 위령제’라는 ‘맞불’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주최자는 과거 고이케 지사의 강연회를 개최한 ‘재특회’ 관련 단체다. 재특회는 혐한(嫌韓)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를 이어온 배외주의 단체다.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거절한 것이 이런 움직임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학살 사실을 왜곡하고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이런 배외주의가 대재난을 통해 극대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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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하고 정중하게 국민이 맡겨준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개각을 단행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상태로 8초 정도 있었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사과드리고 싶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저자세로 일관했다. 지난 4월 특파원 부임 이래 보아온 아베 총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베 총리의 몸 낮추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요미우리TV에 나와 “마음가짐에 교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측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답변 태도를 ‘반성’한 것이다. ‘일생의 과업’이라던 개헌에 대해서도 “일정이 정해진 게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라고 했다. 마치 “나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홍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단행한 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아베 총리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물론 지지율 추락으로 ‘아베 1강’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이론(異論)을 틀어막는 ‘1강 체제’를 구축해왔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결형 정치’로 정권 구심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정치 자세에는 한때 70%를 넘봤던 높은 지지율, 2012년 정권 탈환 당시의 중의원 선거를 포함해 4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승을 기록해온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대결형·강압적 정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와 지지율 급락으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개각으로 ‘민심(民心)의 일신(一新)’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의 개각과 저자세 행보는 일정한 효과를 얻고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추락은 일단 멈췄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2~9%포인트 정도 상승한 35~44.4% 수준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회복세로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일러 보인다. 지지율 상승이 개각에 따른 반짝 효과일 가능성도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을 상회하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3~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54%로, 찬성 36%를 웃돌았다.

 

한 저널리스트는 이번 새 내각에 대해 ‘잊어주세요 내각’이라고 이름붙였다. 개각을 통해 가케학원 특혜 의혹,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자위대의 문서 은폐 의혹 등 3개의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가케학원 의혹의 핵심 인물인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 전 이사장이나 자위대 문서 은폐 의혹과 관련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의 국회 출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가 “정해진 일정이 없다”고 했지만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각료들의 면면이 아니다. 국민에 대해 겸허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베 총리 자신이 바뀌느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안보 관련법 성립, 원전 재가동, 공모죄법 성립, 개헌 추진 등 ‘아베 노선’을 일방통행식으로 달려왔다. 비판이나 의문의 목소리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과가 지금 ‘아베 1강’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미 그를 불신에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이번에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호박에 줄 긋기’식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 일본 국민들이 그를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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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신경 쓰지 않고 밟고 다니는 맨홀 뚜껑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맨홀 뚜껑 인증샷’을 찍거나 ‘맨홀 카드’를 모으기 위해 각 지역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맨홀 뚜껑 애호가’를 가리키는 ‘만호라(manholer)’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디자인의 맨홀 뚜껑을 내놓고 있다. 후루사토(고향) 납세에 대한 답례품으로 맨홀 뚜껑을 준비하는 지자체까지 생겼다.

 

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맨홀 뚜껑이 존재한다. 지역 특산품이나 동식물, 명소 등이 새겨져 있고 색깔이 들어가 있기도 해서 일본의 ‘서브 컬처’(하위문화)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런 ‘디자인 맨홀’의 발상지는 1977년 물고기 떼를 새겨넣은 오키나와 나하(那覇)시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하수도단체가 설립한 ‘하수도홍보 플랫폼’에 따르면 일본에는 간단한 기하학적 문양을 포함해 약 1만2000종의 맨홀 뚜껑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화 <명탐정 코난>의 캐릭터를 그린 돗토리현 호쿠에이정의 맨홀 뚜껑(왼쪽 사진)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메지성을 새긴 효고현 히메지시의 맨홀 뚜껑.

 

이런 맨홀 뚜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애호가인 ‘만호라’도 적지 않다. 이들은 현지에 직접 가서 맨홀 뚜껑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현지에 직접 갔다는 ‘인증샷’으로 올리는 이들도 있다.

 

맨홀 뚜껑 붐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 맨홀 카드다. 앞면에는 맨홀 뚜껑 사진과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가, 뒷면에는 디자인의 유래와 지역 정보가 실려 있다. 각 지역 관공서나 하수도 관련 시설에서 무료로 발매된다. 맨홀 카드는 ‘하수도홍보 플랫폼’이 하수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 4월 처음 무료 형태로 발매했다. 첫 시리즈 30종은 10만장이 순식간에 팔려 증쇄를 해야 했다. 이후 4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다. 1일부터 지자체 49곳이 참여한 5번째 시리즈가 발매됐다. 지금까지 191개 지자체가 222종을 발행했는데, 이달 안에 총발행장수가 100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맨홀 카드는 독특한 디자인에, 현지에 가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다는 희소성이 더해지면서 열광적인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인기 카드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2만엔(20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지난 1월 사이타마(埼玉)현에서 개최한 ‘맨홀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에는 예상 입장객 700명을 훌쩍 넘는 3000명이 몰려들었다. 이 행사장에선 ‘작은 에도’로 불리는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의 상징인 시계탑 문양 맨홀 카드를 비롯해 맨홀 카드 9종을 미리 배포하면서 ‘만호라’들로 혼잡을 이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맨홀 뚜껑과 맨홀 카드 제작에 공을 들이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맨홀 카드를 구하러 온 이들이 지역 명소를 둘러보도록 해 지역 활성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지역을 대표하는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넣은 한정판 맨홀 뚜껑도 등장하고 있다. 공룡 화석이 다수 출토된 것으로 유명한 후쿠이(福井)현에선 공룡을 디자인한 맨홀 카드를 발행했다.

 

맨홀 카드를 기획한 ‘하수도홍보 플랫폼’의 야마다 히데토(山田秀人)는 “한 종의 카드를 절대 한 곳에서밖에 얻을 수 없다는 설계로 수집 난도를 높인 게 수집가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전체 맨홀 카드를 완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후지산이 포함된 카드’처럼 지역이나 마을, 명소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카드를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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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깊이 반성한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겸허하게 일을 추진하겠다”.

지난 2일 도쿄도의회 선거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 말들이다. 야당의 추궁에 “신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니까 (야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맞받아치던 사람이 한 말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바싹 몸을 낮춘 모습이다.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로까지 표현된 선거 결과와 지지율 추락이 어지간히 뼈아프긴 했나 보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존 57석의 절반도 안되는 역대 최저인 23석을 얻었다. 지난 10일 발표된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대 중반으로 2012년 12월 2차 내각 발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베 총리가 8월 초 ‘대폭 개각’을 서둘러 천명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돌아선 민심을 붙잡기 위해 면모를 일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성’이니 ‘겸허’니 하는 단어에 얼마만큼의 성심성의가 담겨 있을까.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선거 이후 잇따랐다. “자위대로서 잘 부탁한다”는 발언으로 선거 참패의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지난 6일 규슈 북부에 폭우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약 1시간 청사를 떠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위대가 실종자 수색 및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현장에 투입된 상황에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베 1강’ 체제의 해이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아베 1강 체제의 ‘혼네(本音·본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또 있다. 자민당 구도 쇼조(工藤彰三) 중의원 의원은 지난 1일 지원 유세에 나선 아베 총리에게 야유를 보낸 청중에 대해 “조직범죄처벌법(공모죄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11일 시행된 공모죄법은 인권 탄압과 비판여론 봉쇄 등 ‘감시사회’ 우려가 줄곧 제기된 법안이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도 야유를 보낸 청중을 두고 “프로활동가에 의한 방해”라고 쓴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따지고 보면 당시 지원 유세에서 아베 총리의 언행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는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 공모죄법 강행 처리, 도요타 마유코(豊田眞由子) 중의원 의원의 비서관 폭언·폭행 파문 등 연일 터지는 불상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선거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두연설에 나섰다. 그런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야유를 보내는 청중들에게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고 말했다. 울분과 분노를 표출하는 청중들을 향해 ‘이런 사람들’이라면서 국민·비(非)국민으로 편 가르기를 한 것이다. 이런 인식과 태도가 ‘반성’ ‘겸허’ 같은 말들로 가려질 수 있을까.

 

아베 총리는 ‘당장의 소나기부터 피하고 보자’는 생각일지 모른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지리멸렬함이 계속될 것이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돌풍도 예전 민주당(민진당 전신)처럼 한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경제와 외교로 점수를 딴 뒤 다시 논란 많은 법률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면 된다.’ 아베 총리가 개헌 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추측이 억측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이런 꼼수를 꿰뚫어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런 사람들’이라고 했던 이들이 ‘아베 1강’ 독주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아베 총리는 9일 “하나하나 결과를 내가는 방법밖에 신뢰 회복의 길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만큼 중요한 게 과정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비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신뢰 회복의 길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에게 이런 ‘주권재민’은 눈엣가시가 아닐까. 그러니까 난폭한 방법으로 헌법을 바꿔 전전(戰前)으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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