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지난달 27일 러시아를 제재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러시아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데 유럽도 화가 났다. 독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미국이 관할을 넘어 유럽 기업을 제재하는 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지난주 “우리의 우려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법 시행 후 EU는 수일내 적정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제재에 같이 동참하고 있는 유럽이 왜 미국에 화를 내는 걸까. 가스관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제재 법안에서 기존 러시아 제재에 “러시아 가스관 수출의 건설·복구 사업에 투자하거나 물자 및 기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더했다. 법안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오는 가스관 확장사업인 노드스트림2 프로젝트를 콕 찍어 “EU의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고 적었다. 본심은 뒷문장에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에너지 수출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독일은 이를 놓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선 ‘무엇보다 미국(America Above All)’이라고 했다. 미국의 가스 수출을 늘리려고 러시아 제재를 이용했다는 얘기다. 발트해저 1200㎞에 깔린 노드스트림은 동유럽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 브이보르그에서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로 바로 가스를 보낸다. 노드스트림2가 놓이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가스의 80%가 독일을 거쳐가게 된다. 독일이 중계지가 되는 셈이다. 독일의 이권만 걸린 게 아니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주도했지만 이 사업에는 독일의 유니퍼와 윈터셀, 프랑스의 엔지, 영국·네덜란드 합작 로열더치셀, 오스트리아의 OMV 등 서유럽의 에너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배로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는 그간 러시아의 값싼 가스값에 밀려 유럽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러시아는 유럽 가스의 34%를 공급한다. 노드스트림2가 깔리면 40%를 넘을 수 있다.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처를 다변화해야 하지만 시장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미국을 보는 유럽의 마음은 불편하다. 가스관 밸브가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든, 미국이든 일방적 사업자는 달갑지 않다.

 

러시아 제재 법안은 동·서유럽을 찢어놓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동유럽 국가들은 노드스트림2 사업을 반대해왔다. 가스가 독일로 바로 오면 경유 수수료를 뺏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폴란드가 타격이 제일 크다. 이들 나라가 빼앗길 경유 수익을 가져가는 중유럽은 독일 편에 서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불안감, 서유럽을 향한 경제적 박탈감이 심한 동유럽을 끌어당기고 있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를 찾은 건 서막이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달 30일부터 에스토니아 등 동유럽을 순방 중이다.

 

국익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게 외교라지만 미국은 이번에 대놓고 ‘얌체짓’을 했다. 그런데 미국은 제대로 계산기를 두드린 걸까. 미국 기업들도 의회에 반대 로비를 벌였다. 엑손모빌, GE, 셰브론 같은 에너지 기업뿐 아니라 보잉, 씨티, 마스터카드, 포드 등이 제재 때문에 러시아보다 미국 산업에 손해가 클 거라고 걱정했다. 러시아가 관련된 극지방, 심해 유전 개발부터 금융 거래, 주요 광물 수입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미국만 이익을 보는 글로벌 비즈니스란 없는 법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전통의 우방 미국과 유럽 사이는 껄끄럽기만 하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분담금 문제에 이어 가스관은 그 간격을 더 벌려놓을 듯하다. 미국과 유럽이 멀어질수록 러시아가 움직일 공간은 더 커진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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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오후 5시17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바티칸에 도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헬무트 콜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스 보도를 통해서였다. 메르켈은 급히 조용한 장소를 찾아 콜의 부인 마이케 리히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도를 표하고 장례 절차를 논의해야 했다. ‘독일 통일의 설계자’ 콜에게는 국장이 마땅했다. 리히터는 유럽장(葬)을 말했다. 리히터는 이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얘기를 끝낸 뒤였다. 다음날 융커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장을 거론하며 운을 띄웠다. 콜이 유럽통합에 기여했고, 세 명뿐인 EU명예시민이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그렇게 콜은 지난 1일 치러진 사상 첫 유럽장의 주인공이 됐다. 콜의 영결식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치러졌다. 그가 안치된 관은 라인강을 따라 고향 인근 독일 남서부 슈파이어 성당으로 옮겨져 장례미사 후 묘지에 묻혔다.

 

1일(현지시간) 첫 유럽연합(EU)장으로 치러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콜 전 총리의 시신을 실은 관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라인강을 따라 배로 이동해 고인의 고향 인근 독일 남서부 슈파이어의 아데나우어 공원묘지에 묻혔다. 슈파이어 _ EPA연합뉴스

 

정작 독일 국민들은 콜의 업적을 제대로 기리고 애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콜의 부인은 독일 땅에서 이뤄지는 어떤 국가 의식도 거부했다. 리히터가 생각한 유럽의회 영결식 초대 명단에는 당초 독일 정치인이 한 명도 없었다. 나중에 주변에서 리히터를 설득해 메르켈만 간신히 추도사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메르켈은 ‘정치적 아버지’를 보내는 ‘상주’가 아니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여러 연사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의도는 명백했다. 콜은 말년에 메르켈을 “배신자”라 불렀다. 콜은 동독 정부의 부대변인이던 메르켈을 중앙 정계에 발탁했지만, 1998년 기독민주연합의 정치자금 스캔들 때 메르켈에 의해 당 대표에서 물러나야 했다. 콜은 메르켈이 등에 칼을 꽂았다고 여겼다. 콜의 분노를 샀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도 초대받지 못했다. 콜의 후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콜 임기 말년의 자료 파기문제를 조사할 때 슈타인마이어가 총리실 실장이었다.

 

콜의 두 아들은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국장을 치르길 원했다고 한다. 또 아버지가 2001년 불행하게 자살한 어머니 하넬로어 옆에 묻히길 바랐지만 리히터는 거부했다. 콜이 1990년대 중반부터 가깝게 지내던 35살 연하의 총리실 직원 리히터와 2008년 재혼한 뒤 부자는 의절하다시피 했고 가까운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도 단절됐다. 큰아들 발터는 콜의 별세 후 콜의 자택을 찾았지만 들어가지도 못했다. 콜의 가족은 슈파이어 장례미사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마음은 극도로 불편한 듯하다. 오늘의 독일을 만든 주인공에게 오늘의 독일이 부정당하는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콜은 그저 이름난 정치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독일 역사의 한 장(章)이었다. 메르켈의 말대로 “콜이 없었다면 나를 포함해 1990년 전까지 베를린 장벽 뒤편(동독)에 살았던 수백만명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적대로 말년을 보낸 콜의 마지막 가는 길은 상처로 얼룩졌다. 콜의 정치적 유산은 콜만의 것도, 특정 유족의 것만도, 독일인의 것만도 아니다. 콜의 삶은 자신에 의해서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도 윤색되거나 삭제될 수 없는 공공의 기억이다. 콜은 기록 파기를 강력히 부인해 왔지만 그의 총리 재임 16년 동안의 총리실 기록에는 상당한 공백이 있다. 특히 독일 통일을 추진한 1989~1990년 당시 기록들이 없다고 한다. 콜의 자택에는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리히터가 ‘권리’를 주장한다는 이 기록은 누구의 것일까.

 

개인의 영욕 앞에 역사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정치인의 마지막은 씁쓸했다. 시대가 기록하는 이의 족적은 묘지에도 찍혀야 한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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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월27일 저녁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알제 시내가 갑자기 캄캄한 암흑이 됐다. 전기가 나갔다. 전기가 부족해서도, 전력회사의 실수도, 천재지변이 온 것도 아니었다. 정부가 일부러 끊은 것이다. 정부가 수백만명의 불편과 바꾼 것은 알자지라 방송이었다. 이날 알자지라는 알제리 반정부 인사의 토론을 내보낼 예정이었다. 알제리군의 민간인 학살 같은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카타르 도하 알자지라 본사를 방문했다. 무바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 모든 소란이 이 작은 성냥갑에서 나온단 말이냐.” 개국한 지 3년밖에 안된 카타르의 방송사는 그렇게 중동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바라크는 2년 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시민혁명으로 30년 독재를 내려놓고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지금 알자지라는 다시 걸프국이 주도한 카타르 ‘왕따’ 사태의 최전선에 섰다. 이웃 나라 쿠웨이트 군주 셰이크 사바가 중재를 자처하며 왕따를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지만 갈등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걸프국들이 원하는 건 뭘까. 걸프 안팎에서는 카타르와 이란의 친밀한 관계, 카타르의 ‘얄미운’ 개혁 등 여러 배경이 복잡하게 얽힌 이번 사태의 희생양으로 알자지라가 거론된다.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사우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수개월의 외교분쟁 끝에 카타르 주재 자국 대사를 모두 소환했다. 그때도 알자지라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팔레스타인 하마스 같은 저항조직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카타르의 특사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난 직후 카타르는 알자지라의 이집트 채널을 폐쇄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놨다. 단교까지 치달은 상황을 볼 때 카타르는 이번에 더 큰 양보를 해야 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UAE의 유명 지역 평론가인 술탄 소우드 알카세미는 지난 4일 트위터에 “카타르의 첫 화해 제스처는 알자지라 폐쇄가 될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1996년 4월 영국 BBC방송이 사우디 정부와 공동 소유하고 있던 ‘BBC아랍’이 사우디의 검열을 둘러싼 갈등 끝에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일하던 인력과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전 국왕이 ‘빌려준’ 5억 카타르 리얄(약 1500억원)이 합쳐져 그해 11월 알자지라가 탄생했다. 알자지라는 철저한 정부의 보도 통제에 익숙하던 중동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물주’인 카타르 왕실과 정부를 빼면 알자지라의 보도 대상이 아닌 게 없었다. 알자지라는 아랍권 TV로는 처음으로 히브리어를 하는 이스라엘인을 방송에 내보낸 언론이었다. 알자지라가 선보인 라이브 토크쇼 <반대방향(The Opposite Direction)>은 늘 논쟁거리였다. 알자지라의 모토는 ‘의견 그리고 또 다른 의견’이다. 종래 언론에서 볼 수 없던 다른 목소리와 금기들이 전파를 탔다. 그들은 서방 언론과도 달랐다. 알자지라만 내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BBC, CNN 등에서 재방송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개국 후 첫 10년 동안 카타르 정부에 450건이 넘는 외교적 항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난해 개국 20년을 맞은 알자지라는 400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확보한 중동의 1위 방송사가 됐다.

 

2010~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의 ‘알자지라 울렁증’은 더 극심해졌다. 당시 알자지라는 소셜미디어와 함께 ‘아랍의 봄’의 일등 공신으로 거론되며 ‘알자지라 효과’라는 말을 낳았다. 이집트 사상 최초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하고 들어선 엘시시 정권은 2014년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보도로 테러를 도왔다”며 알자지라 기자들을 가두고 추방했다. 사우디도 단교하자마자 알자지라의 리야드 사무소를 폐쇄해버렸다.

 

걸프국들과 카타르가 어떤 타협을 볼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만약 타협안에 휘말려 ‘다른 목소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다른 건 원래 불편한 법이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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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세요?”


지난달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여성경제정상회의(W20) 회의장. 사회자의 직설적인 질문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옆에 앉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어쩔 줄 몰라하는 메르켈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폭소했다. 사회자가 패널에게도 물었다. “여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메르켈의 초청을 받아 패널로 나란히 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의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여성 지도자의 롤모델로 여겨지는 메르켈은 왜 끝내 손을 들지 않았을까.


이 작은 에피소드는 다분히 고지식하고 수사(修辭)와 친하지 않은 그의 성격 탓인 듯하다. 메르켈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페미니즘의 역사는 내가 공감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나는 그저 모든 여성이 선택과 기회의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이런 게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페미니스트겠지만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타이틀로 날 꾸미고 싶지 않다.” 그는 2013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한다면 진짜 페미니스트들이 불쾌하게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번쩍 손을 든 ‘퍼스트도터’ 이방카가 지난 2일 <일하는 여성: 성공의 법칙 다시 쓰기>라는 책을 냈다.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잘나가는 사업가로서 ‘워킹맘’들에게 전하는 성공의 조언을 담은 책이다. 누군가는 부러워 책을 사볼지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온갖 영감을 주는 명언으로 범벅이 된 딸기 밀크셰이크”라고 표현했다. 실제 이방카의 책은 소크라테스,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제인 구달 등 명사의 말로 가득하다. 구달은 “내 말을 진심으로 이해했길 바란다”고 뼈 있는 충고를 던졌다.


주옥같은 말씀이 겉도는 이유는 그와 어우러진 이방카의 공허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대선 기간에 너무 바빠 마사지도 받지 못했고 매일 아침 20분씩 하던 명상을 할 시간도 없었다”고 토로한다. 또 육아휴직을 하는 엄마들에게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당신이 떠난 자리를 지키게 하라”고 조언한다. 부동산 재벌의 딸로 태어나 7억4000만달러(약 8300억원)를 가진 자산가이자 아랫사람에게 언제든 일을 맡기고 언제든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는 트럼프그룹 부회장이니 가능한 얘기다. 성평등 운동가인 파티마 고스 그레이브는 “아무리 드라이브를 하고 화창한 해변에 놀러 나가도 집세와 밥값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두 자녀 엄마의 삶의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험은 공감의 자양분이다. 그러나 겪어봤다고 공감할 줄 아는 건 아니다. 진짜 공감은 내 경험에 대한 성찰, 다른 이의 경험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이게 빠진 경험은 상처를 주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이방카의 ‘워킹맘’ 운운이 울림이 없는 이유, 차라리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메르켈의 말이 더 와닿는 이유다.


우리에게도 ‘내가 해봐서 다 안다’고 입버릇처럼 ‘노오력’을 말하던 대통령이 있었다. 찢어지는 가난에 고학으로 성공한 그는 시장에서 어묵을 먹고 청년들에게 실업타개책으로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런 경험도 없는 또 다른 대통령은 ‘아버지가 해봐서 안다’며 ‘한강의 기적’을 말하고 청년들에게 “중동에 가라”고 했다. 올해 대선에 나왔던 어떤 후보는 경비직 아버지와 까막눈 어머니를 앞세워 서민대통령을 자처하면서 ‘귀족노조’를 귀가 따갑도록 들먹였다.


새 대통령은 ‘친구 같은 대통령’을 말한다. 공허한 아는 척과 오만한 ‘지적질’은 이제 그만.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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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잠을 이룰 수 있는가.” 온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51)은 지난해 11월6일 영국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하자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규칙적으로 자고 일하고 잘 먹고 운동도 한다.” 시리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느끼느냐고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테러리스트들의 잘못이다. 우리는 지금 자선이 아니라 전쟁을 얘기하고 있다.”

한때 아랍의 새로운 리더로 기대를 받았던 의학도는 ‘괴물’이 돼 있었다. 34살에 아버지 하페즈의 ‘30년 철권통치’를 이어받은 아사드는 당초 정치에 뜻이 없었다. 후계자는 카리스마 넘치던 장남 바셀이었다. 둘째 아사드는 1988년 다마스쿠스 의대를 졸업하고 시리아군에서 의사로 일하다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안과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속도광’ 바셀이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하페즈는 그를 시리아로 불러들였다. 새 후계자를 위한 권력승계가 시작됐다. 아사드는 군에 들어가 권력 기반을 다지고 제2 권력자로 반부패 사정을 주도해 정적들을 제거했다. 2000년 하페즈가 사망하자 그해 7월 치러진 대선에서 아사드는 유일한 후보였다. 군, 정보기관, 집권 바트당을 장악한 아사드 세력은 헌법을 고쳐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이를 40살에서 34살로 낮췄다. 지지율은 99.7%였다.

 

아사드는 취임하면서 개혁, 경제 근대화, 우리만의 민주화 실험을 공언했다. ‘다마스쿠스의 봄’이 왔다. 그는 2000년 11월 인권탄압과 고문으로 악명 높던 메제흐 교도소를 폐쇄하고 아버지 치하에서 투옥된 정치범 수백명을 풀어줬다.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언론이 문을 열고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장이 허용됐다.

 

그러나 봄은 덧없이 짧았다. 해가 바뀌자 수백명이 다시 잡혀가고 언로는 막혔다. 서방 교육을 받은 젊은 지도자는 왜 돌변한 것일까. 시리아를 반세기 동안 지배한 아사드가(家)는 수니파가 다수인 시리아에서 10% 남짓 되는 소수인 시아파 분파 알라위파다. 시리아 정치는 1946년 독립 후 민주주의가 3년 만에 무너지고 이후 쿠데타가 거듭되며 줄곧 군이 좌우해왔다. 알라위파의 핵심 권력 기반도 군이었다. 아버지의 측근들과 아사드가문이 주축인 친위대 ‘공화국수비대’는 개혁에 세게 저항했다. 소수 권력집단의 강렬한 생존본능과 불안에 아사드는 쉽게 굴복해버렸다. 아사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부를 새 엘리트들에게 몰아주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정치개혁은 당초 그의 리스트에 있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아사드는 2007년에도 유일한 대선 후보로 99.8%의 지지를 받아 임기를 7년 더 연장했다.

 

미완의 ‘다마스쿠스의 봄’은 10년 뒤 다시 왔다. 2011년 ‘아랍의 봄’이었다. 오랫동안 억눌린 분노와 절망이 터져나왔다. 시민들은 1963년부터 ‘숙적’ 이스라엘의 전쟁 위협을 빌미로 온 나라를 짓눌러 온 ‘비상사태’를 해제하라며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아사드는 거대한 분노에 못 이겨 비상사태는 해제했지만 시위에 무자비한 탄압으로 맞섰다.

 

내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아사드를 멈춰 세울 기회는 시리아 정부군, 반군, 이슬람국가(IS), 미국, 러시아가 뒤얽히면서 멀어져 버렸다. 그 사이 32만여명이 목숨을 잃고 490만명이 시리아를 떠났고 630만명이 집을 잃었다. 아일란 쿠르디는 터키 해변에서 익사했고 오므란 다크니시는 건물에 깔려 피를 흘렸고 쌍둥이 아기는 화학무기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괴물이 된 지도자와 국제사회의 복잡한 게임 속에서 참혹한 희생을 치른 시리아인들의 바람은 이젠 너무도 소박할지 모른다. 그저 총성과 공습이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다마스쿠스의 봄’은 아직도 멀었나.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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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만찬을 함께하지 않은 것은 한국 측이 초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파문을 일으켰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8일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만찬 초대를 하지 않은 것이 대중적으로 좋지 않게 비칠 것이라는 점을 한국 측이 마지막 순간 깨닫고 ‘내가 피곤해서 만찬을 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냈다”고 말했다.

 

과연 한국은 그를 만찬에 초대하지 않았을까. 외교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의사소통 혼선”이라고 에둘러 해명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의 첫번째 방한을 ‘지극정성으로’ 준비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부러 틸러슨과의 만찬을 피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외교부는 준비 과정에서 만찬을 당연한 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외교부 해명이 명쾌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잘못이라고 적시하기 어려운 한국의 고민이 배어 있는 탓이다.

 

백번 양보해서 한국이 정말로 초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상대국 장관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다. 더구나 한국 측이 ‘뒤늦게 여론을 의식해 거짓 해명을 한 것’이라는 틸러슨의 추측성 부연설명은 외교부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에 사용하던 “국제예양(禮讓)”과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무례한 발언이다. 또 한국은 ‘틸러슨이 피곤해서 만찬을 취소했다’고 성명을 낸 적이 없다. 무엇을 할지 여부는 주최국이 정하는 것이라는 발언도 경우에 맞지 않다. 장관급 만찬과 같은 중요한 외교행위가 양측 조율 없이 일방적 조치로 이뤄지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수명이 2개월 남은 시한부 정부라고 해도 동맹국을 이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틸러슨의 무례하고 섣부른 발언은 복잡하고 민감한 국제이슈를 다뤄나가야 할 미 국무장관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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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 국무부 내부 게시판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연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나 그 외 발언을 주저 않고 미국의 정책이라고 여겼다. 그럼 트위터는?” 이 글을 올린 외교관은 “외교 공무원은 당선자의 즉흥적 트위터 발언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나”라며 국무부에 명확한 공식적 메시지를 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영화 대사를 인용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 꽤 험난한 길이 될 거야”라고 적었다.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찾아 헤아려 보니 당선이 확정된 지난해 11월9일부터 지난 17일까지 69일 동안 330개가 넘는 트윗이 올라왔다. 매일 평균 5개 정도씩 쓴 거다. 하루에 10개 넘게 쏟아낸 날도 있다. 반면, 기자회견은 지난 11일 딱 1번 있었다. 그것도 언론과 내내 싸우다 끝났다.

 

주류 미디어를 불신하는 그는 당선 후에도 트위터로 세상과 대면하고 있다.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것도, 주요 인선 발표도 여기서 이뤄졌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연일 국제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37년간 묵인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론하면 왜 안되느냐고 했고, 핵합의를 타결한 이란과 관계정상화 중이던 쿠바를 다시 협박했고, 미국의 핵무기를 늘릴 수 있다고도 했다. 또 미국이 제재하고 있는 러시아와 “잘 지내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영국 더타임스 웹사이트에 실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인터뷰. 더타임스 웹사이트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하고 충동적인 트윗은 외교와 상극이다. 외교의 본질인 일관성, 의전, 비슷비슷한 말 사이에 담긴 예민한 뉘앙스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복잡한 이해 당사국이 걸린 외교는 한번 꼬이면 풀기도 어렵다. 교과서 같은 정상회담 문구 하나도 두꺼운 보고서와 수없는 물밑 조율의 결과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퇴임을 앞두고 “외교정책이 트위터의 140자 안에서 만들어진다면 마땅히 져야 할 합리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고 결국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든 것을 짜여진 대로 통제해야 하는 중국 같은 나라가 진의를 알 수 없는 트위터로 트럼프에게 ‘주적’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그 황당함은 짐작이 가능하다.

 

트럼프의 ‘트윗질’을 걱정하는 건 다 비슷하다. 지난 10일 퀴니피악대학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의 64%가 트럼프가 개인 트위터 계정을 닫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를 담당한 팀 말로이는 “아마 140자로는 트럼프에게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그가 트위터를 끊기를 원하는지 설명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는 사이 비난하고 걱정할 시기도 지나고 있다. 이제 듣도 보도 못한 ‘트위터 외교’는 현실이 된다. 하루 뒤면 트럼프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백악관에 들어간 뒤에도 트위터를 놓을 생각이 없다고 공언했다.

 

국무부는 당장 어려운 숙제를 떠맡았다. 측근들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과연 미국의 외교정책인가? 트럼프가 계속 트위터로 외교하겠다면 국무부는 얼마나 개입해야 할까? 각국의 외교안보 부서도 정색해야 할지 말지 헷갈린다.

 

혹자는 트럼프가 트위터로 의도한 것이 혼선 그 자체라고 보기도 한다. 판을 아예 흔들어 타협의 여지도 없던 문제마저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효과를 노린다는 거다. 실제 재미도 봤다.

 

대통령 전용기도 비싸다고 튕겨 보잉사에 값을 깎았고 ‘국경세’ 협박에 포드, GM, 도요타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이 손을 들었다. 트럼프가 자랑해 마지 않는 ‘거래의 기술’이 외교에도 통할까. 아니면 트위터 해독에 씨름하다 허망하게 4년이 흘러갈 것인가. 트럼프 본인도 답을 알지 못하는 모험이다. 분명한 건 트위터가 힘을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 외교에 꽤 유용한 메가폰이 될 거라는 점이다. ‘트위터 골목대장’이 오고 있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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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종업원들 근무 추정 북한식당 최근 북한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종업원들이 탈출했다고 24일 정부가 확인한 가운데 이들의 근무지로 추정되는 곳 중 한 곳인 상하이 북한식당 앞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_연합뉴스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또 근무지를 이탈해 제3국으로 탈출했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던 북한식당 지배인 1명과 종업원 12명이 탈출해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이후 40여일 만이다. 정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달 8일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은 중산층 이상 성분 좋은 사람들이며,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압박이 집단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관련 정보를 적극 공개하더니 이번엔 말을 아낀다.

통일부 당국자는 24일 “최근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이 이탈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라고만 밝혔다. 탈출한 인원 수와 근무했던 식당의 소재지, 탈출 시점, 현재 근황 등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외교부가 설명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탈북민의 안전 문제, 외교적인 문제, 주변국과의 문제 때문에 구체사항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탈북자와 관련해 기존에 취해오던 태도로 복귀한 것이다. 40여일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3명의 집단 탈북과 이번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탈출 사이의 차이점은 두 가지다. 정부가 13명의 탈북 사실을 공개한 것은 그들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이튿날이었다. 최근 탈출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은 제3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앞선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출 때 정부가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개한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당시가 20대 총선을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는 사실이 더해져야 퍼즐이 완성된다.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의심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부가 민감한 시기에 대북 정보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가 꼬리가 밟힌 사례는 또 있다. 정부가 ‘처형’됐다고 공식 발표했던 북한의 리영길 전 인민군 총참모장이 제7차 노동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정부가 북한 관련 첩보를 ‘신속’하고도 ‘화끈’하게 공개했다가 제대로 망신을 당한 ‘리영길 처형설’은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발표한 2월10일 공개한 것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12년 만에 중단시키면서 오는 파장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가 탈북자 관련 정보 공개에 관한 기존 원칙으로 복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사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북한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장난’을 한 책임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김재중 | 정치부 hermes@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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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히로시마를 방문할지 고민하고 있다. 전임자 10명 중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그가 하려는 이유는 많다. 그는 무엇보다 훗날 ‘핵무기 없는 세상’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취임 첫 해 노벨평화상을 안겨준 이 비전을, 임기 마지막 해에 최초로 핵폭탄이 투하된 도시를 방문해 재천명하는 것은 여러 모로 그림이 좋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제안한 것에 화답하게 돼 미국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과의 관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전략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더 많다. 우선 보수층의 반발이다. 오바마는 취임 직후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해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제안했고, 쿠바 레짐체인지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히로시마까지 찾는다면 ‘미국의 과오를 또 사과한 유약한 대통령’이라는 보수층의 공격에 시달릴 것이다. 원폭 투하로 미군 사망자를 줄였다고 믿는 참전군인·전쟁포로 단체들도 반발한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아베 정권 시기에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구실을 준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_경향DB

일제강점기에 대한 반감과 원폭 투하가 곧 해방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강한 한국에서는 부정적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핵무기가 다시 쓰일 일이 없기를 바라는 시민으로서 그의 방문은 반대할 명분이 적고 오히려 지지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아시아의 이웃 나라 사람들을 강제동원하고 학대한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범죄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트루먼의 원폭 투하 역시 민간인을 희생시킨 ‘반인도적 범죄’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반대하기보다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앞에도 잠깐 들러 묵념하도록 권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 사망자 및 생존자는 전체 피해자의 10%인 7만명이 넘는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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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가 채택된 지 2일로 한 달이 지났다. 역대 최고 수준 제재라는 평가를 받는 유엔 결의 외에도 한·미·일 등은 독자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도 전면적인 제재 이행을 공언하고 실행중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정부가 보여준 제재와 압박은 다른 나라와 성격이 다르다.

중국은 현재 충실하게 제재를 이행하고 있는 단계에 있지만 언제든 강약 조절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은 의회의 대북제재법을 통해 가능해진 ‘세컨더리 보이콧’을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6일 행정명령을 통해 독자 대북 제재를 강화할 때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언제든지 ‘세컨더리 보이콧’을 가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두었을 뿐 실제로 그 카드를 쓰지는 않았다. 미 의회의 대북제재법이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총을 만들어 행정부에 준 것이라면, 이번 행정명령은 그 총에 장전을 해놓은 것에 해당한다. 쏠지 말지는 여전히 정책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일본도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통로는 차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대표들이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해 찬성의견을 표시하고 있다._연합뉴스

제재가 북한 태도를 바꾸기 위한 카드로 의미 있게 작동하려면 북한 태도에 따라 그 제재를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한다. 미·중·일 등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제재’를 택하고 최후의 수단은 아직 동원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재는 대화 재개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포함해 정부가 취한 대북 제재 조치는 마지막 카드까지 모두 써버린 ‘올인 베팅’이며 퇴로를 스스로 차단한 배수진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압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부가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지하지만 제재 강화 이후에 대한 분명한 전략과 정책적 방향이 있어야 한다. 제재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제재는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와 담판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협상용 칩’을 모으는 작업일 뿐이다.


정치부 | 유신모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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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북한의 핵실험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미국과 북한이 지난해 가을 평화협정에 대해 비밀리에 얘기를 나눴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는 물론 언론도 놀라게 한 사건이다. 보도가 나온 후 3주가 지나도록 미 국무부 대변인과 대북정책특별대표, 주한 미대사관이 한국의 청중을 향해 미국 입장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평화 협상을 병행 추진하자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제안이 있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돌아온다는 근본적인 결정을 내리면 궁극적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한반도에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3일 정례 브리핑에서 “비핵화가 논의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6자회담이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미국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 평화 협상 추진을 병행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았다. 비핵화 논의를 할 수만 있다면 평화 협상과 비핵화 협상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들은 미국이 병행론을 배제하지 않은 것에 ‘한국 소외론’을 제기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테러방지법 표결 저지 필리버스터 진행 중 울먹이고 있다 _경향DB


이에 미국 정부는 8일 주한 미국대사관 언론 성명과 성김 특별대표의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우리와 협력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비핵화가 출발점이며 회담의 형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논란을 진화했다. 미국 정부의 평화협정에 대한 입장은 6자회담의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북한이 핵을 폐기한 이후 다시 핵무장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한반도의 안보구조를 바꾸기 위해 비핵화 논의와 함께 적절한 시기에 평화협정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변한 것은 지난 10년 사이 핵능력을 향상시킨 북한이 정작 병행론에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 변한 것이라면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의 정권 붕괴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언명했다는 점이다. 정작 남북이 손놓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나 언론 등 청중들이 듣기 좋게 얘기하는지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손제민 | 워싱턴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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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무실에 이 신문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인민일보사를 둘러보던 중 자매지인 환구시보를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환구시보는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놓고 군사대응 불사도 거론하는 등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던 언론이다.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19일 인민일보사를 방문해 둘러보던 중 환구시보를 가리키며 “내 사무실에서 이 신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_환구시보 웨이보

시 주석에게 직접 거론된 환구시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환구시보는 20일 공식 웨이보(微博)계정에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하며 “바쁜 와중에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줘 시 다다(大大·시 주석 별칭)에게 감사한다. 중압감이 산처럼 커졌다”고 올렸다.

최근 사드를 둘러싼 한·중 이견이 커지면서 환구시보를 인용한 보도가 잇따랐다. 환구시보는 “한국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중국 사회는 동북 지역에 해방군을 늘려 강력대응하는 것을 지지할 것”(16일),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한국은 독립성을 더 잃게 되고 국가적 지위에 엄중한 악영향을 받게 될 것”(17일)이라는 등 경고성 논평과 기사를 보도했다. 환구시보를 인용한 한국언론의 보도가 이어지자 한국 외교당국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한국 외교당국 측은 18일 베이징에 주재하는 언론사 특파원들에게 “환구시보는 인민일보 산하지만 상업성을 띈 국제전문 매체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의미를 절하했다.

이날 시 주석은 인민일보 등과 가진 여론공작좌담회에서 “당의 뉴스와 여론 작업은 당의 원칙을 지켜야 하고 무엇보다 당의 여론지도방침을 따라야 한다”면서 언론은 당과 다른 정치적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언론의 메시지를 애써 낮춰 보려는 것은 한·중 온도차만 더 벌릴 수 있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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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승전국 지위를 얻지 못해 그 후속조치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관계는 이처럼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출발해 어느덧 50년이 흘렀다.

모든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난 세월의 모순을 하루아침에 바로잡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지난 28일 한·일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합의의 문제는 법적 책임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로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일본에 해준 것이 진짜 문제다.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책임은 고사하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조차 명확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말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지만 이를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무력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강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는 많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적 입증과 평가는 앞으로 얼마든지 명확하게 내려질 수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이 28일 서울 외교부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서성일 기자


이번 합의는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현재 상태에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해 이 같은 길을 원천 차단해버렸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으며 앞으로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번 합의로 보장해준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로 상호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합의로서 효력이 없다.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는 인권에 관한 것이어서 어느 나라도 이에 침묵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을 결집시켜왔다. 이제 와서 “일본과 약속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겠다”고 할 것인가.

더욱 자괴감이 들게 하는 것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대가로 받은 것이 돈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공동기자회견 발표문에서 ‘상기 1항2조에서 표명한 조치를 일본이 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1항2조는 일본이 10억엔의 예산을 출연해 위안부 재단을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연봉 정도의 돈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거론치 않겠다는 이 합의를 국제사회는 어떻게 바라볼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8일 회담을 마친 뒤 일본 기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그토록 원하던 ‘위안부 면죄부’를 단돈 10억엔에 건네준 것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역사에 영원히 굴욕 외교로 기록될 것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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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남북 당국회담이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로 결렬된 뒤 정부는 금강산관광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 저촉될 수 있다는 논리를 또 꺼내들었다. 이 문제가 결의 위반인지 여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안보리결의 조항은 2가지다. 2013년 1월에 나온 안보리결의 2087에 “제재회피를 위해 대량의 현금을 이용하는 것을 개탄한다”는 내용이 있다. ‘너희들이 외교행낭을 통해 현금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북한에 경고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어 2014년 3월 나온 결의 2094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대량살상무기(WMD) 또는 안보리결의 위반 행동과 관련된 대량현금 이동 및 금융서비스 제공을 금지한 것이다.


금강산관광이 시작한지 10년이 된다. 17일 육로 통행로가 왼쪽에 보이지만 관광 중단으로 오가는 차량은 없다._경향DB


이 조항들에서 알 수 있듯이 유엔결의는 정상적인 무역이나 은행을 통한 금융거래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대량의 현금이 유입되더라도 그것이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결의 위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관광대금이 핵개발에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부 우려대로라면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과의 모든 상거래가 결의 위반이다.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 유엔결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각국 정부 몫이다. 설사 안보리에 문의한다 해도 “알아서 판단하라”고 답할 게 뻔하다. 이 논란은 시작된 지 2년이 훨씬 넘었다. 검토를 끝내고 결론을 내리기에 너무도 충분한 시간이다. 정부가 아직도 “검토 중”이라는 낡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며 버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남북관계에서 금강산관광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안보리결의 뒤에 숨어 구차한 변명으로 시간 끌어봐야 북한에 비난 명분만 줄 뿐이다. 현금 지불 대신 사회 인프라 제공을 제안하든, 북한이 금강산관광을 절실히 원하는 것을 이용해 더 큰 것을 받아내든, 재개 불가 선언을 하든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는 남북관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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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 방문에서 한·미관계에 대한 최상급 수사를 연일 쏟아냈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중국을 자극하고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치 지난달 베이징 전승절 행사 참석으로 미국에 진 빚을 갚으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미동맹을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을 기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의 핵심 역할을 맡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반도 남녘에서 기적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낸 한·미동맹이 이제 한반도 전역으로 기적의 역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해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한·미가 협력해 북한을 붕괴시키고 통일 이후 주한미군이 북한에 주둔하도록 하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문제 삼기 따라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_경향DB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중관계 발전을 지지한다”는 립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중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으나, 미·중 간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미국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이 채택한 대북 공동성명도 북핵을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적시해 놓았지만, 정작 이 시급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중국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북핵에 대한 한·미의 강경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중국을 압박한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미·중 사이에서 박 대통령이 보여준 외교는 균형감과는 거리가 멀다. 미·중 사이에서 양쪽을 오가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균형외교가 아니라 기계적인 ‘시계추 외교’다. 이런 기계적 균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운신폭을 좁히고 결과적으로 미·중 양쪽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박 대통령이 다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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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5일 미국 국방부의 의장행사에 참석하고 있을 때 워싱턴 외신기자클럽에서는 미국계 베트남인 여성 활동가가 주최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인들에 의한 베트남 여성 성폭력에 대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베트남의 목소리’라는 단체는 베트남에 있는 피해자들을 화상 전화로 연결해 피해 경험을 들려줬다. 어머니가 한국 군인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신과 누이들이 태어났고,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는 45세 남성의 얘기에서 시작해 그의 어머니 등 네 명의 여성이 나와 증언했다. 이 단체는 그런 피해자가 수천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돕고 있는 놈 콜맨 전 상원의원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 문제로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과했을 당시 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그 성명을 비판했다”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보낸 군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조직적인 성폭력 범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열린 '3ㆍ8 세계여성의 날 및 나비기금 발족 2주년 기자회견'도중 한 참석자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범죄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_서성일 기자



낯설지 않은 사례들이고, 나라와 사람 이름만 바꾸면 어쩐지 익숙한 표현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라는 질문에 이 단체는 “마침 박 대통령이 미국에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급조된 행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은 성폭력 피해자 수천명의 근거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는데 ‘조직적 범죄’라면 그 범죄에 미국도 연루돼 있다고 봐야 되느냐”는 질문에 전직 미국 상원의원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활동 뒤 일본 정부의 작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박근혜 정부를 흠집내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단체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성폭력 피해자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전시하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 그 누구라도 옹호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여기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한국군에 피해를 본 베트남 여성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전시 성폭력 피해자로서 연대하는 것, 전쟁의 피해자들이 민족 감정에 이용되기보다 서로 고통을 어루만지고 그 기억을 함께하는 것 말이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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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 주유엔대표부 대사가 22일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일반적인 무역은 제재를 받지 않고 있는데 제재 폭이 점점 넓어지고 그런 부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대북제재가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제한하는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엔이 특정국의 수출입을 차단하는 극단적인 제재를 가한 경우는 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거의 유일하다. 이 제재로 이라크의 국가 기반시설은 완전히 파괴됐고 1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중 절반은 어린이였다. 1996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이처럼 가혹한 민간인 피해를 초래한 제재가 가치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할지도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 회원국도 아닌 한국 대사가 안보리 제재 내용을 예단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활동의 범위를 넘어 일반적인 무역 거래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지나치다. 이 같은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 생각해봤는지도 의문스럽다.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민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비인도적 행위(collective punishment)는 제네바협약 위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서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_연합뉴스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도발은 북한 스스로 붕괴를 재촉하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별러왔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혹한 제재를 가할 태세다. 이 같은 정부 태도에는 ‘통일로 북한의 핵·인권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이 오버랩된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면 그때 국제사회와 그에 합당한 제재를 논의하면 된다. 지금은 제재를 거론할 때가 아니라 북한의 발사를 저지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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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 일이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의 마지막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체포하는 작전으로 끝났다”고 소개했다. 이것이 기사화되자 군 당국은 ‘호떡집’이었다. 당장 언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런 군의 입장을 믿는 기자는 없었다. 대외비 ‘작전계획’의 일부분이 노출된 데 대한 당혹감과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나온 것임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군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조상호 국방부 군구조개혁추진관(육군 준장)은 27일 한국국방안보포럼 세미나 발제문에서 “한국군은 핵 억제전력을 ‘4축’ 개념으로 확대했다”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폭격 등 기존 ‘3축’에 ‘참수(斬首·decapitation)작전’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세습 후계자 김정은이 열병식을 지켜보며 주석단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_경향DB


참수작전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징후가 보이면 핵무기 승인권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미리 제거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핵 전략 이론 중 하나인 ‘참수공격’과 같은 개념인 ‘참수작전’은 첫 공격에서 적 지휘부를 제거함으로써 이후 이어질 핵 보복 공격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참수작전은 요즘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참수 행위를 연상시킨다. 북측으로서는 ‘최고존엄’인 김 제1비서의 목을 자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만하다.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문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책임한 발언이다. 군 장성이 참수작전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문제다.

작전은 ‘모호성’이 적에게 더 큰 두려움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북한은 당장 ‘최고 존엄’이 사라지면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핵보복에 나서는 소위 ‘파괴보장(Fail-deadly)’을 준비할 것이다.


박성진 | 정치부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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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가 갑자기 한국 외교의 지상 과제가 됐다.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한국 주재로 3국 정상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관료·전문가·언론까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명분으로 보나, 관례로 보나 3국 정상회의는 복원돼야 하는 것이 맞다. 특히 한국은 이 행사의 의장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기가 꼭 지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정부 의도는 한·일 정상회담에 있다. 역사인식, 위안부 문제 등에 변화가 없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만들어 외교적 곤경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배경에서 추진되는 3국 정상회의는 한국의 외교적 주도권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3국 정상회의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주도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한국이 강경자세에서 ‘회군(回軍)’하고 있음을 확인한 상태다. 한·일관계보다 중·일관계 개선에 집중할 것이다. 3국 정상회의는 가뜩이나 한국에 기세등등한 일본에 날개를 달아주는 행사가 될 것이다. 특히 3국 정상회의는 중·일관계 개선을 촉진하는 기능도 한다. 한·일관계가 막힌 상태에서 중·일이 가까워지면 한국의 외교 입지는 줄어든다. 한국은 3국 정상회의로 당장의 곤궁함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래 3국 정상회의 일정은 2013년 5월이었다. 하지만 당시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산적한 국정과제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진 한·일 긴장 등으로 손을 대지 못했다. 만일 정부가 그때 3국 정상회의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성사시켰더라면 동북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진 동북아 갈등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 책임이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성사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한국은 동북아 협력과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박근혜 정부의 외교구호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탄력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기회를 놓치고 수순이 뒤바뀐 상태에서 3국 정상회의가 열리면 이 같은 효과를 낼 수 없다. 외교에서 상책은 사태를 예방하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 외교는 하수의 방책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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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1년 중 한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듣는 때는 한국전쟁 휴전일이다. 미국은 전쟁이 시작된 6월25일보다 전쟁이 끝난 7월27일을 더 기념한다. 미국 대통령의 포고문이 나오는 것도 이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4일 발표한 ‘한국전쟁 참전군인 휴전일’ 포고문에서 “압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유가 뿌리 내리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굴복하기를 거부했는지 기억하자”며 한국전 참전군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즈음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비 주변에서는 하늘색 재킷을 입은 참전군인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들을 위한 행사도 많이 열린다. 25일 인근 링컨기념관 앞에서 열린 ‘리멤버 727’이란 행사도 그중 하나였다. 주미한국문화원 등이 후원하고 재미 한인 2세들이 주도해 마련한 행사다. 한복 입은 소녀들의 춤과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 ‘이매진(Imagine)’ 열창에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지켰다.


이 자리에서 발언한 두 명의 ‘용기 있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주몽골 부대사로 있던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해 공직을 사퇴한 미 육군 예비역 대령 앤 라이트(69). 그는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 워싱턴에 있는 네 개의 전쟁기념비를 언급하며 “전쟁기념비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 분단은 남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모두에 군비증강의 구실을 제공하고 학교, 병원, 복지, 환경에 쓰여야 할 돈들을 군대로 돌리고 있다”며 “남북한 양국이 화해와 서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 작업은 전쟁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발언한 탈북자 조진혜씨(28)는 고통스러운 탈북 경험을 얘기하며 “레짐체인지(체제 교체)를 통해 김씨 가문을 끝장내는 것만이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탈출한 뒤 미국에 정착한 조진혜씨가 지난 30일 미국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강당에서 열린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공개 청문회에 나와 증언을 하면서 눈물짓고 있다. _ AP연합뉴스


한 명은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다른 한 명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앞서 백악관 앞에서는 미군의 탄저균 한국 영토 반입에 항의하는 재미동포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튿날인 2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국전 기념비에 헌화하며 ‘피를 나눈 미국과 영원히 같이 가겠다’고 했다. 이틀 전 세상을 떠난 <두 개의 한국>의 저자 돈 오버도퍼는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두 개의 한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책에는 “두 개의 한국 사람들을 위하여. 다시 하나 되기를, 조만간”이라는 지은이 헌사가 붙어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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