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스바흐와 배스케즈는 개별국가의 제안이나 요구가 글로벌 의제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의제가 강대국에 아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의제정치(agenda politics)로 명명했다. 북한 비핵화에 앞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문제가 미국, 중국에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종전선언의 주체로 휴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이해 당사국들 간 밀고 당기는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다.

 

평화협정이 결혼식이라면 종전선언은 약혼식이다. 연내까지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약혼식이 여차하면 무산될 기미도 보인다. 그렇다면 결혼식도 장담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을 끝내자’는 평화선언이 적확하다. 미래 어느 시점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체제의 평화협정만 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3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처음 제시한 때는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 5기 3차 회의에서 채택된 ‘미국 의회에 보내는 편지’에서였다. 내용을 보면 당시 북한은 닉슨 독트린 발표(1969) 이후 주한 7사단 철수와 닉슨의 방중(1972) 및 일본·중공 국교수립(1972), 그리고 미국이 월맹과 파리평화협정 체결(1973)에 따라 베트남 주둔 미군을 철수한 후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 등에 고무됐다.

 

이후 북한은 1984년 1월에 ‘남북불가침공동선언 및 대미 평화협정의 동시 체결’이라는 3자회담을 제시했다. 이는 베트남 문제 해결을 위한 파리회담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북한이 미국과 회담의 주당사자가 되어 평화협정 문제를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종속적 당사자’인 한국과는 불가침 체결로 돌파하겠다는 책략이었다. 이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0월 유엔총회에서 정전협정을 항구적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평화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 최초의 공식제안이었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여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의 문제로 종전선언과 무관한 것으로 선을 그었지만 북한이 현상타파 차원에서 종전선언 후 끈질기게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실을 북한이 잊을 리가 없다.

 

여기에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9일 이란에 가서 ‘핵 지식은 보존하겠다’고 했다. 이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이외에 6·12 북·미 공동합의문 4항 미군 유해 일부를 송환했으니 선행 조항인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1항)과 평화체제 구축(2항)을 미국이 준수하라는 압박차원의 대미(對美)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럼에도 핵 지식 보존 운운은 해서는 안될 이야기였다. 민감한 시점에 고위 당국자가 할 말 못할 말을 모두 내뱉을 경우 신뢰구축은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정리하자. 중국을 포함하는 4자 형태의 종전선언이 금상첨화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가 만만치 않다면 차선책으로 북한과 미국 간 양자 종전선언도 고려해봄 직하다. 북한의 등거리 외교노선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음을 어떻게 선명하게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종전선언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신뢰구축 후 군축을 하고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통상적인 평화체제 순서이기 때문이다.

 

서울, 평양, 워싱턴 모두 조바심이 나있다. 북·미는 비핵화라는 같은 책을 갖고 서로 다른 쪽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둘러 북·미가 같은 쪽을 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문에 따라 과감하게 톱다운 조치를 취하는 게 꼬일 때로 꼬인 매듭을 푸는 최선의 방법인 듯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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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9월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회담에서 쌍방은 판문점선언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했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가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날짜가 공동보도문에 담기지 않은 것은 심각한 이견이라기보다는 미세 조정이 추가로 필요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판문점선언에도 담겨있는 ‘가을, 평양 정상회담’을 남북이 차질 없이 이행키로 한 것을 환영한다.

 

‘정상외교의 계절’인 9월에 남북이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은 답보 중인 한반도 정세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9월에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9월11~13일), 유엔총회(9월18일~10월1일) 등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많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등 한반도 문제 당사국 정상들이 어느 자리에서든 만나 협의를 벌일 개연성이 높다. 9월9일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

 

상반기 숨 가쁘게 달려온 한반도 정세는 하반기 들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하면서 북·미관계의 틀을 바꿔놨음에도 과거 관성이 남아 후속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의 첫 조처로 핵·미사일 시설 목록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 조치로 종전선언을 먼저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지켜볼 일이다. 북·미 협상의 교착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면서 판문점선언의 이행도 차질을 빚고 있는 형국이다.

 

관건은 북·미 협상의 의미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북·미 양측에만 맡겨서는 개선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착국면이 장기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때보다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먼저 제안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남북 정상은 5월26일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만나 좌초위기에 빠진 북·미 정상회담을 살려낸 바 있다. 이번에도 남북 정상이 지혜와 의지를 모아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비핵화협상의 추동력을 살려낼 것을 기대한다.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일정에 오른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느라 남북관계 개선작업이 겉돌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통일부는 2년반째 가동중단 중인 개성공단의 설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입주기업인들의 방북조차 막고 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차제에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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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푸른빛이었다.” 구소련의 공군 중위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에 나가 지구를 본 뒤 한 말이다. 소련이 1957년 10월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을 때 미국인들이 받았던 충격(스푸트니크 쇼크)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소련은 인류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까지 성공한 것이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우주 개발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다. 우주 개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군사기술에 활용할 수 있고, 국민들의 사기를 제고하며 나라의 기술과 경제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초반은 소련의 승리가 이어졌다. 인공위성 발사에서 소련에 3개월 뒤진(1958년 1월, 익스플로러 1호) 미국은 유인 우주선에서 설욕을 노렸지만 이 또한 10개월(1962년 2월, 존 글렌) 뒤처졌다. 인류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1963년 6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최초의 우주 유영(1965년 3월, 알렉세이 레오노프) 등도 모조리 소련의 몫이었다.

 

양대 강국의 우주전쟁은 달 탐사로 이어졌다. 여기서도 시작은 소련이 좋았다. 1959년 9월 달 표면에 최초로 우주선(루나 2호)을 날려보낸 소련은 달 뒷면 촬영(1959년 10월, 루나 3호), 달 착륙(1966년 2월 루나 9호) 등에서도 미국에 앞섰다.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미·소의 우주전쟁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데서 역전됐다. 잇단 발사 실패 등으로 소련이 주춤하는 사이 1969년 7월21일 아폴로 11호를 탄 미국인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이후 미국은 우주왕복선 개발 등에서도 소련에 앞서 나갔고 냉전이 끝나면서 우주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우주군’ 창설을 선언하면서 30여년 만에 강대국들 간의 우주전쟁이 다시 시작될 조짐이다. 이번에는 중국이 상대다. 중국은 2045년까지 세계 최고의 우주 기술 강국이 되겠다는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우주군 창설에 대해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지난 11일 “미국이 우주에서 절대 패권을 거머쥐려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등 제2차 우주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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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현지시간) 예멘 북부 사다주의 자흐얀 지역에서 어린이들이 탄 통학버스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국제연합군에 폭격당해 어린이 29명 등 최소 50명이 숨지고 77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아이들을 태운 통학버스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학습하는 여름캠프를 마치고 모스크로 향하던 길에 시장에서 잠시 멈춘 사이에 폭격을 당했다. 현장에 흩어진 주인 잃은 책가방과 트럭 짐칸에 엉켜 있는 어린이들의 주검, 피투성이가 된 아이들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장면들이 뉴스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6월 27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한 어린이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에 서 있다. 유엔에 따르면 수년간 계속된 예멘 내전으로 1316명의 어린이가 죽거나 다쳤다. EPA연합뉴스

 

학교버스를 겨냥한 폭격은 반인도적 전쟁범죄로, 국제사회가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보면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 요구 없이 사우디가 자체 조사하도록 해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공습 직후 “예멘 반군 후티가 어린이를 인간방패로 삼았다”며 적법한 작전이라고 강변하던 사우디에 조사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과 다를 바 없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유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영국의 카렌 피어스 유엔주재 대사가 “믿을 수 있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안보리가 직접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렇게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안보리가 좌고우면하지 말고 직접 조사에 나서 반인도적 전쟁범죄를 근절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3년반째 접어들며 장기화되고 있는 예멘 내전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고통당하고 있다. 유니세프가 9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내전 이후 어린이 2400여명이 숨졌고, 3600여명이 부상했다. 병원과 학교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습 때문에 희생이 커질 뿐 아니라 구호가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국제단체들이 접근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헨리에타 포어 유니세프 총재는 “유엔 안보리와 국제사회는 교전세력들이 어린이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하도록, 전쟁을 끝내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의 말대로 전쟁을 멈추는 것만이 어린이들의 추가 희생을 막는 길이다. 

 

희생을 추모하는 트위터 글들에는 ‘어린이는 타깃이 아니다(#Children#Notatarget)’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있다. 말 그대로다. 어른들 간의 추악한 전쟁 때문에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더 이상 벌어져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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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오는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했다. 북측은 9일 오전 통지문을 통해 판문점선언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하자고 제의했고, 정부가 이에 즉각 동의해 회담이 성사됐다. 정부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구성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조속히 개최돼 북·미 간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북·미 간 북핵 협상은 교착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리스트 제출 등을 압박하는 미국에 맞서 제재 완화 및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동력이 없으면 헤쳐나가기 어려울 만큼 협상이 수렁에 빠져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북한이 유엔 제재를 교묘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제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교환하며 대화의 끈을 유지했지만 불안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을에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 계획을 앞당겨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북·미대화의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오는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가 협상을 진척시킬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먼저 제안한 점이 특히 주목된다. 그만큼 북·미 간 중재가 절실하며, 따라서 북·미 교착 상황을 타개할 의지가 강하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속도감 있게 이행하면서 연내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남북정상회담은 절실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에 성실히 임할 뿐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의전을 갖춘 평양 방문이 아니라 실무형 판문점 회담도 좋다. 문 대통령의 이번 중재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미 양측을 모두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종전선언과 핵무기 리스트 제출을 동시에 하는 방안도 제안해봄 직하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고, 궁극적으로 북·미 양국 정상이 담대한 결정을 주고받는 장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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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벽에 부딪혔다. 올해 벽두부터 숨 가쁘게 달려왔던 변화가 교착상태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70년 고착된 분단의 갈등체제를 감안하면 난항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안타까움까지 감추기는 힘들다. 2013년 이래 수년간 악화일로의 전쟁위기를 일거에 뒤집은 전격성만큼 엄청난 기대를 주었고, 전쟁위기는 평화의 소중함을 배가시켰다. 북·미의 두 정상도 싱가포르 조우가 가진 역사의 무게로 말미암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게임을 했다. 반세기 이상 묵은 불신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신뢰관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이상 상호신뢰 없는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핵무기 완성 이전에는 대북 불신 속에서도 핵사찰로 비핵화를 검증할 방법이 있었지만, 완성 이후에는 신뢰만이 비핵화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새판 짜기’에 대한 헤드라인만 제시됐을 뿐인데 양국은 너무 낙관적이었던 같다.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실천사항 합의는 미군유해 송환 외엔 없었고, 고위급회담으로 미뤄졌었다. 하지만 김영철과 폼페이오의 만남에서도 상대의 양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자국의 양보에 대한 과대평가로 말미암아 빈손으로 끝나버렸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단행했고, 유해 송환과 동창리 미사일실험장 폐쇄를 실행했으므로 미국이 양보할 차례라고 보지만, 미국은 한·미 군사훈련 취소는 물론이고, 세계최강의 패권국이 북한 정상을 만나준 것 자체가 엄청난 양보이며, 북한의 조치들은 미흡하며 전혀 등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교착이 성공을 위한 진통일 수도 있으나 오랜 불신구조의 관성으로 인해 실패의 수렁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를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부재로 몰고,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 거부를 체제보장 약속에 대한 불신으로 몰면서 지난 사반세기의 실패 구도로 복원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상 김정은 체제는 미국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트럼프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다. 북한으로서는 트럼프의 결심으로 가능한 몇 안되는 조치인 종전선언마저 얻어낼 수 없다면 제재해제는 꿈도 꿀 수 없고,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리비아모델과 다름없다고 여길 수 있다.

 

트럼프는 9개월 이상 북한의 도발 중단과 유해 송환을 업적으로 내세우는 동시에,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에 단호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내 비판을 피해가는 방식으로 중간선거까지 끌고 갈 심산인 것 같다. 중국도 미국의 군사공격 가능성이 없어지고, 북·중관계가 회복된 국면에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 급해진 것은 다시 남북이다.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의 연내 실현에 합의했을 뿐 아니라, 중간선거 이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중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으며, 선거 후 미국의 국내정치에 따라 장기 교착 또는 파국을 배제할 수 없다.

 

미사용 카드가 남아있다. 북·미 고위급회담이 풀지 못한 것은 다시 정상의 결단으로 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순서는 북한의 요구대로, 비핵화조치의 규모는 미국의 요구대로 맞교환하는 방식, 즉 종전선언이 먼저 나오되, 거의 동시적으로 북한은 검증과 사찰 및 핵무기 일부 폐기를 포함한 과감한 선제조치를 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결심에 달렸다. 트럼프에 과도한 의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설득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미국의 벽을 넘어야 풀린다.

 

‘진정한 평화는 강자의 양보로만 가능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통일이 평화로만 느껴지지 않았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초등학교 교실의 환경미화로 항상 붙어있던 남북군사력비교표, 숫자상 압도적이었던 북한의 무기들을 보며 적화통일의 위협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보다 수십배의 국력을 갖게 된 후, 통일은 아마도 북한에 위협적이었을 거다. 보수정부는 대놓고 흡수통일을, 진보정부는 개방·개혁으로 포장했지만, 위협은 같다. 비핵화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 위협이 되는 비핵화는 실패한다. 약자에 대한 일방적 항복요구는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했던 이유만 재생시킬 뿐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결심을 실현하는 건 ‘진정성’이란 신기루에 매달리기보다는, 비핵화를 유도해 낼 교환에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강자의 항복요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위협을 제거하는 교환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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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이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석탄 수출국이다. 작년에 1억8000만t의 석탄을 수출했다. 이 중 한국은 유연탄과 무연탄을 합해 2600만t을 수입했다. 러시아산 석탄은 러시아 관세법에 따라 러시아 연방 상공회의소가 발급한 러시아 원산지 증명서과 함께 한국으로 수입된다. 러시아산 석탄을 수입하는 한국 수입업자로서는 러시아 기관이 발급한 원산지 증명서를 신뢰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안에 북한산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수입업체가 북한산 석탄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러시아산 원산지 증명서를 제출해 관세청에 신고했다면 이는 관세법 위반 사건이다. 보통의 원산지 위반 사건으로, 관세청이 조사해서 밝히면 된다. 러시아도 자신의 석탄산업에 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석탄 원산지 증명서 발급 절차를 대대적으로 점검할 것이다. 석탄 문제는 한국과 러시아의 관세당국이 철저하게 조사해서 막으면 된다. 특히 러시아 연방 상공회의소가 원산지 증명서 발급을 제대로 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니 지금은 석탄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자. 바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다.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는 군인들의 ‘판문점 체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남과 북이 함께 만드는 상시적인 상호 신뢰의 틀이다. 남과 북이 상시적 공동연락사무소 조직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함께 포괄적 교류 협력과 신뢰 구축을 치밀하게 상시적으로 마련하고 실천하는 일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올해의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숙원이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국제법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틀을 넘어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 국제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유엔 안보리 제재 자체가 ‘외교관계 빈 협약’에 따라 대사관 등 외교시설을 북한에 설치할 권리를 인정한다(안보리 2375호, 27항). 국제법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외교관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유엔 회원국인 한국은 이 조항을 적극 원용할 수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해 설비를 북한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라 한국의 국제법적 권리다. 마치 유엔 제재상 불가능한 것인데 예외를 인정받는다는 식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회원국으로서의 외교권에 포함된 권리라는 기본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의 단독 대북 제재 대상도 아니다. 미국 연방 법령도 정부 활동은 처음부터 대북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를 ‘보편적인 허가 사항’이라고 한다(미 연방 법령집 83 FR 9182, § 510.513). 미국 법이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허용하는 ‘미 연방정부의 업무’는 매우 광범위하다. 정부 기관이 권한이 있거나, 행정적 의무가 있거나 또는 자문을 할 수 있는 일체의 업무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지역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하여 하는 일체의 활동은 한국 정부 업무에 해당한다.

 

한국이 북한과 함께 북한 지역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은 유엔 제재와 미국 단독 제재와 하등 관계없이 주권국가로서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엄중한 시기다.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모든 일을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물려 선순환을 이루도록 치밀하게,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유엔 제재는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나 제재만으로는 충분히 평화를 만들 수 없다. 진정한 평화는 제재가 아니라 신뢰와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이 국제법적으로 가지는 권한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야말로 평화를 만드는 신뢰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한방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 앞으로 나갈 톱니바퀴 체계를 잘 마련해야 한다. 선순환의 톱니바퀴를 생산하는 공간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한국이 주도해서 설치해야 한다. 석탄이 문제가 아니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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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탕(錢塘)강은 중국 항저우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굴곡이 심하고 조석 차이가 크다. 교량을 건설하기엔 악조건이다. 중국이 자국 기술로 설계·완공한 첫 복층대교는 1937년 첸탕강에 세워졌다. 1453m 길이의 첸탕대교는 상층부에는 차량이, 하층부에는 기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류허(六合)탑과 시후(西湖)의 풍경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37개월간 공사 끝에 완공을 앞둔 1937년, 중일전쟁이 전면전에 돌입하면서 전화가 상하이로 확대됐다. 항저우까지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천탕대교는 그해 11월17일 전면 개통하면서 교량 밑에는 100여개의 폭발물을 설치했다. 일본군의 항저우 침략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안타깝게도 개통 한 달여 만에 폭파되고 말았다. 첸탕대교를 지은 ‘중국 교량의 아버지’ 마오이성(茅以升)은 제 손으로 만든 다리를 스스로 폭파시키면서 “항일전쟁에 반드시 승리하고, 이 다리도 복구한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은 일본이 패망한 후 1946년 실현된다.

 

첸탕대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항일의 역사가 됐다. 중국인들의 항일 정신을 일깨우는 상징이자,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국 기술로 만들었다는 자부심까지 안겨줬다. 중국의 교량은 육지와 육지뿐 아니라 역사와 역사를 연결하곤 한다. 이런 이유로 중국 지도자들에게 대교 건설은 리더십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과업이다.

 

중국에서 가장 긴 강줄기인 창(長)강에는 1950~1970년대 경쟁적으로 교량이 들어섰다. 이 대교들은 대약진 운동의 고난을 견디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희망이 됐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1957년 개통된 우한의 창강대교는 신중국 성립 후 창강에 건설된 첫 교량이다. ‘만리창강 제1교’라고도 부른다. 마오쩌둥은 소동파의 ‘수조가두(水調歌頭)’를 본떠 지은 ‘수조가두·유영(游泳)’에서 “창강대교가 남북을 가로지르니 천연의 요새가 탄탄대로로 변했다”고 칭송했다. 이 다리의 건설은 제1차 5개년 계획의 중요한 성과로 기록됐다. 1968년이 돼서야 창강에 순 중국 기술로 만든 다리가 건설됐다. 난징의 창강대교다. 이 다리는 냉전시대에 중국의 기술적 자부심을 높였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체면을 세운 교량은 샤먼대교다. 중국의 첫 해상교량으로 1991년 개통됐다. 푸젠성 지메이와 샤먼섬을 연결하면서 샤먼 경제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장쩌민은 대교 현판을 친필로 썼고, 개통식에 직접 참석해 테이프를 잘랐다. 경제특구인 샤먼에 들어선 해상 교량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다리’는 홍콩과 광둥성 주하이(珠海)를 거쳐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港珠澳)대교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다리는 전체 길이 55㎞에 달해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교량으로 기록된다. 2009년 12월부터 약 9년간 건설했지만 기술적 문제, 예산 초과, 건설 인부 사망 등 악재로 지난해 12월 예정이던 개통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 다리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과도 맞닿아 있다. 개통되면 주하이에서 홍콩까지 가는 시간이 기존 3시간에서 30분으로 줄어든다. 주하이, 홍콩, 마카오뿐 아니라 선전, 광저우까지 하루 생활권으로 묶어 경제 파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2030년까지 광둥성과 홍콩 및 마카오를 하나로 묶는 세계 최대의 경제 허브를 건설하려는 계획의 핵심이다. 강주아오대교는 이르면 다음달 말 개통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중국 성향의 홍콩 매체를 중심으로 시 주석의 영향력 약화를 계속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강주아오대교가 시 주석에게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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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하이만의 중심 도시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는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다. 바닷속으로 사람을 보내 신선을 구해오라고 했다는 진시황을 도시 이름에 차용해서일까. 아니다. 유명 관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와 산하이관(山海關)을 시의 직할구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명대에 축조된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하이관에 비한다면, 베이다이허의 역사는 짧다. 베이다이허는 1898년 청의 마지막 황제 광서제가 봉금을 해제하고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도시가 만들어졌다. 이어 여행 전용철도와 항공노선이 개설됐고, 18홀 골프장도 들어섰다. 중국 관광 역사상 제1호의 사건들이다. 베이다이허가 ‘중국 관광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이유다.

 

베이다이허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50년대 이후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 공산당 지도부가 즐겨 찾으며 정치 휴양소로 주목을 받았다. 1987년 여름, 덩샤오핑이 중국 전문가들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공산당 사무소가 마련됐다. 이후 베이다이허는 공산당 지도부의 비밀회의 장소로 통했다.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지도부 회의는 17차례 열렸고, 전문가 회의에 1000여명이 초청됐다.

 

지난 4일 중국 공산당의 베이다이허 비밀회의가 개막됐다. 신화통신은 당중앙조직부장 천시가 중국과학원 전문가 등 62명과 좌담회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베이다이허 전문가 회의는 상무위원인 당 중앙서기처 서기가 주재하는 게 관례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주재자는 서기처 서기였던 류윈산이었다. 당연히 올해 회의는 현 중앙서기처 서기 왕후닝 상무위원이 맡아야 했다.

 

왕후닝이 아닌 천시가 베이다이허 회의를 주재했다는 소식에 각종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왕후닝은 장쩌민·후진타오 주석을 이론적으로 보좌해온 공산당 이데올로그다. 시진핑의 2기 집권을 성사시킨 ‘책사’이기도 하다. 왕후닝의 동정은 최근 한 달 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그의 부재는 관심거리다. 외신은 시진핑 개인숭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최측근 왕후닝을 속죄양으로 삼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억측의 실마리는 관영 매체가 제공했다. 베이다이허 비밀회의를 보도한 신화통신의 속내가 궁금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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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5일 종료됐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중국과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찬 회동에 대해서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으며, 판문점선언을 외교무대에서 실현하기 위한 기초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리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간 회담은 없었다.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의 공식 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남·북·미 3국 외교장관들은 회담장 안팎에서 각자 입장만 폈다. 이번 ARF에서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종전선언의 전기가 마련되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에 참석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대표단 모두 내내 미소는 띠었지만 양국 간 입장차는 작지 않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대북 제재 유지와 종전선언 협상의 더딘 진척에 불만을 제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를 엄격하게 이행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법인 등을 제재 리스트에 새로 추가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북 제재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북·미 간 협상이 지난한 길임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뢰를 확인하고 있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ARF 개회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미측이 ARF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북한에 전달했다. 양 정상이 모두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협상에서 정상 간 신뢰와 유대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다.

 

이제 북핵 문제가 실무선의 협상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새로운 협상 동력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다음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양측을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분위기 조성이 더욱 필요해졌다.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발사장치 해체 등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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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남북이 31일 판문점에서 9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와 유해 공동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적대행위 중단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소장)은 회담 후 “(이들 내용에 대해) 큰 틀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며 “구체적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은 계속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중장도 “회담이 무척 생산적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록 합의문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성과를 거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남북이 공감한 4가지 조치는 상호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 간 우발충돌 방지와 신뢰구축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특히 DMZ 내 GP를 시범적으로나마 철수하는 것은 JSA 내 비무장과 더불어 남북 간 적대행위를 줄이는 가시적인 첫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동안 DMZ는 말만 비무장지대였을 뿐 남북이 서로 중무장한 병력을 앞세워 첨예하게 맞서온 대결의 현장이었다. 여기에 서해상에서 포격훈련 중지 및 해안포 폐쇄 등 적대 행위까지 중단한다면 지상과 해상 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뒤 65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 남북이 합의문을 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회담 분위기로 볼 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측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확언한 터라 후속 논의 과정에 큰 난관은 없어 보인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초석을 놓은 동시에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북·미 간 핵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때마침 북한이 넘긴 6·25 전사 미군 유해가 1일 하와이로 송환됐다. 북·미 양국이 합의한 DMZ 내 유해 발굴에 남측까지 가세하면 상호 신뢰를 더욱 증진할 수 있다. 북측 안 수석대표는 군사 분야가 남북대화를 선도 하도록 하자고 했다. 남북 군사회담은 대북 경제제재와 달리 합의에 제약이 없다. 다음달 개최되는 서울 안보대화에 북측이 대표단을 보내는 것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북방한계선 일대 해역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후속 회담을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성급회담에서 마련한 공감대를 토대로 북한과 대화 모멘텀을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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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선이 ‘따 놓은 당상’으로 가는 흐름이다. 총리 주변에서는 남은 것은 총재 선거에서 압승해 ‘아베 1강’ 체제를 굳히는 것뿐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당내 세력 판도가 아베 총리 쪽으로 기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소속 파벌이자 당내 최대인 호소다파(94명), 2번째인 아소파(59명), 5번째인 니카이파(44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에 4번째 파벌인 기시다파(48명)의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 정조회장이 최근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아베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과 당원이 각각 405표이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국회의원 405표, 당원 47표로 결선이 치러진다. 의원표의 60%를 확보한 아베 총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하면 최장 3년을 더 집권할 수 있고,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다. 총리 측 바람대로 ‘아베 1강’ 체제가 탄탄대로를 달릴 가능성도 높다. 거칠 것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던 1년여 전 상황이 재현되는 셈이다.

 

총리 측으로선 그렇게 된다면야 금상첨화지만, ‘아베 1강 체제’의 폐해가 커지는 건 아닌지 짚어볼 대목이다. 징조는 나타나고 있다. 총리 주변에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찬밥을 먹을 것”이라고 의원들을 공공연하게 겁박하고, 의원들도 눈치껏 줄을 선다. ‘우에서 좌를 아우른다’던 자민당의 활력은 온데간데없다.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학원 스캔들에서 드러났던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의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아베 총리 3선 유력’ 보도가 나오던 즈음 실소를 자아내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자민당 소속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의원이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면서 이들에게 세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월간지 기고에서 당당히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각각 정치적 입장, 다양한 인생관이 있다”(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는 식으로 대응했다. 보편적 인권 문제에 눈을 감은 것이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어느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의원의 돌출 행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기타는 “남녀평등은 망상”이라거나, 성폭행을 폭로한 여성 저널리스트에 대해 “여자로서 잘못이 있었다”라는 등 망언을 반복해온 인물이다. 그가 선배 의원들로부터 “잘못한 게 없으니 가슴을 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듯이, 자민당 내에도 이런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인식이 일본 우익의 논리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우익은 전전(戰前)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 체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이 아베 총리의 최대 후원세력이자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다. 이들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는 개헌을 외치고 있고,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스기타는 ‘소녀상 폭발’ 발언을 하는 등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활동도 적극 해왔다. 그가 지난 총선에서 공천받을 때 우익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를 추천해줬다고 밝힌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기타 의원은 아베 총리 파벌인 호소다파 소속이다.

‘아베 1강 체제’의 장기화는 자민당의 활력만 잃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 사회 전반에 ‘손타쿠’와 ‘침묵’의 구조를 심화시킬 위험성도 지적된다. 최근 아베 총리와 자민당 의원들의 ‘폭우 술자리’를 비판하는 측에게 ‘거국일치’ 역공이 있었던 것은 이를 예고하는 듯하다. 조만간 스기타 같은 인물들이 더 당당하게 차별적 발언을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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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초유의 산불이 발생해 아테네 인근 휴양도시 마티(Mati)가 잿더미로 변했다. 절벽 근처 한 건물에선 26명이 한꺼번에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탈출을 막았고 궁여지책으로 건물 안으로 피신했으나 불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쫓아오는 불길이 너무 빨라 바다로 피신하기도 전에 죽거나, 구명보트가 뒤집혀 사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망자만 100명 가까이 된다. 아비규환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제 더 안타까운 사실이 알려졌다. 시신들의 유전자를 감식한 결과 아홉 살 난 쌍둥이 소피아와 바실리키 자매가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발견된 것이다. 이들 네 사람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꼭 껴안고 있었다고 한다. 자매의 아버지는 앞서 SNS와 방송을 통해 “구조용 보트에서 딸들을 본 것 같다. 연락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무사귀환의 바람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리스 아테네 인근 라피나에서 23일(현지시간) 발생한 산불에 긴급 대피한 주민들이 건물이 불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화재로 24일까지 최소 50명이 숨졌다. 그리스 적십자에 따르면 해변가 마을 마티에서만 시신 26구가 발견됐다. 구조당국은 라피나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화재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불길이 거세고 기온이 계속 오르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피나 _ AFP연합뉴스

 

이번 산불의 생존자는 “불길이 돌진해와 등이 타는 것 같아 살기 위해 바다로 달렸다”며 “폼페이 최후의 날 같았다”고 했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남부 베수비오 화산 분화로 폼페이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1500년이 지난 뒤 운하 건설 공사 도중 전설 속의 도시가 발견됐고 수세기에 걸쳐 발굴이 이뤄졌다. 도시 유물은 발견됐으나 간간이 빈 공간이 있을 뿐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간에 석회를 부어보니 사람과 개 등 형상이 드러났다. 일상생활을 하다 불에 타 죽은 참혹한 모습들이었다.

 

그리스뿐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산불로 화염지옥이 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44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형 산불로 곳곳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전문가들은 산불이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의 결과라고 말한다. 산불 발생에는 30도 이상의 기온과 30% 이하의 습도, 시속 30㎞ 이상의 풍속이라는 ‘30-30-30 법칙’이 있다. 그런데 유럽과 북미가 기후변화로 혹서·가뭄·바람 등 ‘불의 기후’가 됐다는 것이다. 폼페이의 최후가 자연재해라면 그리스 마티의 참화는 인재다. 기후변화 대책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됐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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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관통하며 남중국해로 흘러든다. 길이 4909㎞. 동남아 최대의 강이며 아시아에서는 창장, 황허에 이어 세번째, 세계에서는 7번째로 길다.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나라들을 두루 적셔주어 ‘동남아의 젖줄’로 불린다.

 

메콩강은 오랫동안 원시의 강이었다. 상류는 산간 고원지대인 데다 교통이 불편해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중국이 메콩강 상류인 란창강 조사를 시작한 것은 민국시대인 1914년이 처음이다. 중하류 지역의 동남아 국가들 역시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메콩강 개발이나 이용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메콩강에 포클레인이 들어선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중국이 앞장을 섰다. 메콩강 상류에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고, 댐 아래에서는 대형 선박을 운항한다는 ‘란창강 개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지금까지 7개의 대형 댐이 들어섰다.

 

26일 라오스 아타프 댐붕괴 사고현장으로 접근하는 도로 주변이 사고의 여파로 생긴 낙석들로 어지럽혀져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댐 건설로 오랜 잠에 빠져 있던 메콩강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수량이 줄고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강우량이 적은 해에는 유역 국가들이 극심한 가뭄과 식수난을 겪어야 했다. 급기야 메콩강 인근 국가들이 연대해 일어나 중국과 ‘물 전쟁’을 벌였다. 동남아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중국은 막대한 원조와 투자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메콩강 갈등은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댐 건설에 참여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인도차이나 최빈국 라오스는 메콩강 댐 건설에 올인하고 있다. 수력발전을 통해 얻는 전력을 수출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동남아시아 배터리 프로젝트’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46개 댐이 들어섰다. 건설 예정인 수력발전 댐은 54개나 된다.

 

라오스의 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메콩워치 등 국제단체들은 무분별한 발전 댐 건설이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중단을 요구해 왔다. 강 인근 주민의 삶과 소수민족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재 메콩강 유역에는 4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수백명의 희생을 부른 라오스 댐 붕괴사고가 개발에 신음해온 메콩강 하신(河神)의 분노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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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협상을 다루는 분석틀 중에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는 것이 있다. 국제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국가 간 협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 실무진 간의 협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실무진 간에 주고받기를 잘하여 서로 합의를 이루면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국가 간 협상은 이렇게 단선적으로 협상 실무진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의 협상 실무진끼리 아무리 합리적인 타결을 보아도 그 타결된 안을 각기 국내의 이해 당사자에게 가져가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안은 죽어버리고 만다. 특히 협상된 내용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거나, 국내 여론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국내의 설득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국제와 국내의 양면에서 동시에 접점을 찾아야 협상이 타결된다는 의미에서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 간 협상을 양면게임이라고 부른다.

이제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의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까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협상이다. 그리고 양국이 아직까지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최대 전쟁능력인 핵을 포기하는 협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패전에 해당하는 무장해제라고 볼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해 온 북한의 군부와 인민들이 미국 앞에서 무장해제와 패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및 남한과 대결적 전쟁상태가 지속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리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하더라도 이를 북한 국내에서 실행에 옮길 명분과 설득논리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전쟁상태가 종식되고 미국, 그리고 남한과의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성립된다는 확실한 신뢰가 있어야 북한이 핵심전력인 핵을 포기할 명분이 생긴다. 전쟁용으로 개발한 핵을 평화적 환경이 도래했으므로 포기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경제건설에 투입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전이 국내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북한은 의미 있는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과 한국이 우선적으로 ‘종전선언’을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국내적으로 이미 악마화되어 있는 북한에 선뜻 ‘종전’이라는 선물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종전을 선언했는데 북한이 비핵화를 질질 끌면서 제재의 완화만을 노린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북한에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거기다가 종전과 함께 정전협정이 사라지면 유엔사령부의 존재 및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북한이 문제 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한·미동맹의 문제까지 엮이게 되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남한과 미국의 매우 급격한 변동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안보적 우려 역시 존재한다.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생각에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국내적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회동을 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하지만 양면게임의 성격상, 그리고 전쟁용이라는 북핵의 성격상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다. 북한도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그리고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및 ICBM 조립시설 해체라는 초기조치 등을 보여주면서 미국에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종전선언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전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종전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제 종전이라는 과정의 시작을 알린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이라는 과정이 시작되면 전쟁용 무기인 핵을 해체하는 과정도 시작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도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조치들을 취해감에 따라 신뢰가 쌓이고, 궁극적으로는 종전 과정의 끝을 선언하면서 바로 평화체제 수립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종전이 시작되었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핵폐기의 명분이 생기고, 종전이 완벽하게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국내의 우려도 상당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 종전 과정의 끝을 알리는 선언, 그리고 평화체제 및 관계정상화를 향한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외교가 종전선언을 놓고 미국의 선처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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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3일(미국 현지시간)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핵심시설 해체 시작’ 보고서에서 평북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고 위성사진 판독결과를 토대로 분석했다. 청와대도 이 동향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밝혔다. 서해위성발사장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핵심 시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곧 폐쇄할 것이라고 말한 미사일 엔진시험장이 바로 이곳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38노스의 관측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본격적인 비핵화 관련 조치를 이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는 비핵화와 관련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못지않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생산중단을 확증하기 위한 선제조치를 취함으로써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트럼프 행정부가 움직일 명분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향한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평가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은 한국전쟁의 종전선언 문제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비핵화 조치를 위한 초기적 안전보장 장치로 보고, 조기에 종전선언을 할 것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전쟁종식을 선포하는 차원을 넘어 불가침선언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내부 반론 탓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 대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23일 “종전선언 문제는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합의사항의 하나”라면서 “유감스러운 것은, 최근 미국이 입장을 돌변해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답보 국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 시설 해체에 착수한 것은 교착국면을 선제적으로 풀면서 미국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한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사항을 실천에 옮기면서 미국에 공을 넘긴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서해위성발사장의 해체작업이 던진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화답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 조치에 상응하는 것으로 종전선언만 한 게 없다. 북한이 요구할 뿐 아니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이기도 하다. 미국으로서도 비핵화의 마중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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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無錫) 직업기술대학교의 기숙사에 살고 있는 400여명의 학생들은 이달 초 학교 측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퇴거 명령을 받았다. 일주일 내로 기숙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현재의 기숙사는 재작년에 지어진 최신식이지만 이사 가는 곳의 시설은 매우 낙후됐다. 심야에는 온수가 공급되지 않아 샤워하기도 힘들다.

 

잘 지내고 있던 기숙사를 놔두고 후진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분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원래 살던 기숙사가 유학생 기숙사로 바뀐다는 것이다. 당초 6인실이었으나 2인실로 개조해 더 호화롭게 만들고 유학생들을 받겠다는 학교 방침에 학생들은 폭발했다. “못 나가겠다”는 학생들과 “당장 나가라”는 교직원 측이 충돌했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너희 것이 아니라 학교 것이니 당장 이사 가라”고 고압적으로 소리치는 교직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까지 공개되면서 분노는 전국으로 번졌다.

 

중국 대부분의 대학들은 유학생 기숙사를 분리 운영하고 있다. 보통 6인실이지만 유학생 기숙사는 1~2인실로 구성돼 있다. 유학생 기숙사 가격도 몇 배나 비싸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래왔다. 그런데 최근 ‘하나의 학교, 두 개의 기숙사’ 문제가 여기저기서 동시 폭발하고 있다.

 

지난 10일 시안석유대학 대학원생 기숙사 건물이 갑자기 정전이 됐다. 마침 논문을 쓰고 있던 한 학생은 저장되지 않은 대부분의 내용을 날렸다고 했다. 학교 측은 정전이 시설 정비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유학생 기숙사는 전기가 정상적으로 공급돼 에어컨 냉방까지 됐다. 중국 대학원생 기숙사는 선풍기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들은 명백한 차별 대우라고 항의했다. 산둥성의 한 대학은 도서관에 교수, 유학생 전용 열람실을 따로 설치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유학생들이 주로 쓰는 건물 경비원이 전동차 배터리 충전을 하던 중국 학생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중국 학생은 충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학교 측이 진화에 나섰다.

 

2017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 국적 학생은 49만명이다. 아시아 최대다. 당초 다른 기숙사를 제공한 것은 유학생 안전 보장과 효율적 관리를 위한 학교 측의 방침 때문이었다. 톈안먼 사태 직후 중국 대학에서 유학생들의 동태는 철저한 감시 대상이었다. 유학생 기숙사는 점등 제한 시간이 있는 중국 학생 기숙사와 달리 24시간 전기와 온수가 제공됐다. 유학생들에게는 몇 배 비싼 기숙사비를 받았고 이것이 중국 대학의 든든한 수입원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학교에서 자국 학생과 외국 학생을 따로 생활하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방침이다. 중국 학생도 유학생도 기숙사 선택의 자유가 없다. 중국 대학생들은 기숙사 밖에서 거주하는 것이 대체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 더 높다. 유학생들 입장에서도 같은 반 친구들과 따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납득하기 힘들다. 자국에서 역차별 받는 중국 학생들의 불만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신학기가 되면 갈등은 더 선명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980~1990년대 외국인 전용 화폐인 외화교환권을 사용했다. 고궁 등 입장권 가격도 외국인에게는 따로 책정하는 2중 정책을 썼다가 이제는 사라졌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대학 내 내·외국인 차별도 개선돼야 옳다.

 

우시 직업기술대학은 기숙사를 옮기지 않으면 학칙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벌점을 매기고 졸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이미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다. 학교 측의 억지 행정으로 애먼 유학생들이 화살을 맞을 않을지 우려된다.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피해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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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서 잇단 패전으로 패색이 짙던 러시아는 1905년 함대 파견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그해 5월27일 러시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지휘하는 발틱함대는 대한해협에서 일본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결과는 마찬가지, 러시아의 참패였다. 전함 38척 가운데 19척은 격침되고 7척은 나포됐다. 본국으로 돌아간 배는 3척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보물선’ 침몰 사실이 제기됐다. 당시 도엔스키 해군 중장은 ‘150조원어치의 금괴를 싣고 있던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일본 군함의 추격을 받던 중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침몰했다’고 기록했다.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2018.7.17 [신일그룹 제공=연합뉴스

 

전사(戰史)의 기록이 너무 뚜렷해 보물선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980년대 초 일본은 쓰시마섬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정의 선체와 함께 금괴 17개를 발굴했다. 한국에서는 1999년 동아건설이 한국해양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해 본격적인 돈스코이호 탐사에 나섰다. 이후 2003년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발굴했으나 동아건설이 다른 그룹으로 합병되면서 인양까지 하진 못했다.  

 

지난 17일 돈스코이호 선체 발견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는 선체에 선명하게 새겨진  ‘DONSKOII’(돈스코이) 글자와 함께 대포·기관총·앵커·연돌 등도 발견됐다. 113년 전 침몰한 돈스코이호(6200t급)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선체 등 유물이나 발견 위치는 도엔스키의 기록과 부합한다. 세인의 관심은 온통 금괴 존재 여부에 쏠리고 있다. 선체 탐사를 주관한 그룹 산하 기업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이 그룹은 발굴 보증금을 충당하겠다며 돈스코이호를 담보로 코인 판매에 들어갔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는 증거는 없다. 설사 금괴가 나오더라도 소유권 분쟁은 피할 수 없다. 발굴은 ‘국유재산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 규정’에 따라야 한다. 100년이 지났지만 러시아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탐사단은 9~10월쯤 선체를 인양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탐사가 적법하게 진행됐는지, 또 인양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등 따져봐야 할 일이 많다. 이참에 돈스코이호를 ‘보물선’보다는 ‘역사 유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어떨까.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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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으로 6박7일에 걸친 유럽 순방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트럼프식 정상외교의 특징과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18개월 동안 21개 나라를 방문했다. 10개국은 다자 국제회의를 위해 찾았고, 11개국은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같은 기간 23개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8개국을 방문한 데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방 횟수는 적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첫 순방국으로 택했고,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헬싱키 _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기존 미국 외교의 패러다임을 거부한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동맹 때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는 지난 15일 CBS 인터뷰에서 “무역에서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적”이라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는 EU와 연을 끊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러시아 가스 도입을 추진하는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라고 비난했다. 동맹국들이 그를 반길 리 없다.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엘리자베스 여왕이 혼자 만났다. 찰스 왕세자 등 누구도 그와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에서 규범과 원칙은 무의미하다. 이익만이 최우선이다. 소위 ‘아메리카 퍼스트’ 원칙이다. 그는 “무역에서 동맹은 없다”며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EU에 대해 관세 폭탄을 협박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시종 유럽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만 요구했다. 그는 전후 자유주의 세계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은 뒷전이다. 오직 국내 지지층만 바라본다. 외교 정책이 국제 관계뿐 아니라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투 레벨 게임’은 상식이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외교는 국내 정치의 수단이 된 느낌이다.

 

독재자들과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다는 것도 트럼프 정상외교의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과의 만남을 긍정 평가했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문가들과 정치권의 반대와 불신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북·미 정상 간의 개인적 신뢰는 후속 협상의 바탕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아 보인다. 톰 플레이트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재떨이 외교’라고 혹평했다. 자기 뜻에 반대하는 나라나 그 나라 정상을 향해 크고 무겁고 각진 재떨이를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욕설외교’라고 불렀다. 폴리티코는 “메이 총리의 측근들은 트럼프 특유의 브랜드인 욕설외교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폭주를 관리하기보다는 견뎌내는 쪽으로 노력했다”고 영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스타일의 정상외교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이면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리더가 아니다. 미국 우선이 미국 혐오, 미국 배제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인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까지 할 경우 6년 후 국제사회에서 자기 나라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지적한다. “트럼프는 미국을 친한 친구도 없고,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지속적 가치에 구속받지 않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언제든 등 뒤에서 칼을 찌를 준비가 돼 있으며, 선거로 당선된 민주주의자보다 마피아 같은 독재자들이 더 편한 이기적이고 부정직한 나라로 만들고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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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대 여성이라면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올해로 첫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1998년 6월6일 처음 방송된 이 드라마는 뉴욕에 사는 싱글 여성 캐리와 샬럿, 미란다, 서맨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뉴요커의 삶을 비현실적으로 화려하게 포장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진취적이고 당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은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이 뉴욕과 뉴요커를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속 뉴욕은 여성들의 꿈이 실현되는 도시였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똑 부러지는 변호사 미란다를 연기했던 배우 신시아 닉슨은 실제 뉴욕을 멋진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3월 닉슨은 뉴욕 주지사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는 9월 당내 경선에서 현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이기면 11월 중간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 스틸컷

 

인지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지만 닉슨 앞에 닥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정치 경험 없는 유명인’에게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유명인을 선출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닉슨이 여성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닉슨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단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자격을 갖췄다’는 사실을 다섯 차례 이상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이라 차별당한다는 감정은 단지 닉슨의 기분 탓이 아니다. 러트거스대 데비 월시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남녀를 비교할 때) 남성은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남성보다 더 크고 많은 성과를 남들 앞에 전시해야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닉슨처럼 분투하는 여성들은 또 있다. 중간선거 본선행 티켓을 획득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뉴욕주 상원의원 경선에 출사표를 낸 줄리아 살라사르,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제피르 티치아웃이 그들이다.

 

28세 신인 오카시오-코테즈는 지난달 27일 뉴욕 연방 하원의원 14선거구 민주당 경선에서 10선 의원 조지프 크롤리를 꺾었다. 영세 자영업자였던 미국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사도우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카시오-코테즈는 주류가 아니었다.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이번 경선에서 당의 지원은 없었다. 그는 유권자를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밑바닥에서부터 지지 기반을 다져 올렸다. 공약은 민주당의 기존 노선보다 진보적인 의제를 내걸었다.

 

오카시오-코테즈의 경선 승리는 즉각 다른 3명의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닉슨의 캠프에는 하룻밤 사이 새로운 후원자 300여명이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기부했다. 몇몇 민주당 중진들이 닉슨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살라사르는 오카시오-코테즈의 승리 당일에만 후원금 2만달러를 모금했다. 티치아웃의 캠프엔 자원봉사자 120여명이 신규 등록했다.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과거 여성 정치인들이 마음의 응원을 주고받는 수준이었다면 이들은 공동 유세를 하고 자원봉사자를 서로 빌려준다. 오카시오-코테즈 캠프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은 경선이 끝나자 닉슨과 살라사르, 티치아웃의 캠프로 ‘원정’을 떠났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물심양면 지지했던 것처럼 이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기득권 정치인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참신한 대안이 되고 있다. 뉴욕은 이들의 꿈을 실현해주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이 동경하는 도시가 될까. 드라마 ‘본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9월 경선을 기다리고 있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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