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10년대였다. 하지만 반짝했을 뿐 역사적으로 사회주의가 미국에서 견실하게 뿌리내린 적은 없었다. 아마도 서구의 발달된 산업국가 중 사회주의가 주요 정당의 강령으로 자리 잡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미국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해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 힐러리 클린턴은 누가 봐도 벅찬 상대였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주 버몬트를 정치무대로 삼아 평생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샌더스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22개주 경선에서 클린턴을 이겼다. 그의 지지가 없다면 클린턴은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

14일 워싱턴DC 프라이머리가 마무리되며 135일간 펼쳐진 클린턴과의 경선레이스가 끝났다. 샌더스는 패배했으나 미국 사회에 던진 경제정의의 화두는 그 울림이 크다. 현대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그는 평생 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화두로 붙잡고 살아왔다. 그에게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고,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다”라는 말은 해당되지 않았다. 샌더스는 부자 증세, 대학등록금 무상화, 보편적 복지 등 북유럽 모델을 미국에 적용하겠다는 공약을 통해 1980년대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시대가 미국에서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통해 미국의 불평등을 부끄러워했다. 기득권 벽에 막힌 샌더스가 대통령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나 그의 꿈은 ‘샌더스 키즈’가 이어받을 것이다.


샌더스 선거유세_샌더스 SNS


20 대 80의 사회를 넘어 1 대 99의 사회로 흘러가는 게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그의 용기와 비전은 세계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선거가 끝나면 공약을 쉽게 내팽개치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샌더스의 일관된 소신이 주는 신뢰감과 진정성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1년여 동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인이었던 샌더스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만약 그가 현실 정치에서 물러난다면 그를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한국의 많은 시민들도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오관철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던 시절 한·중 언론인 교류 행사에 참석했다가 20대 평론원(우리의 논설위원격)을 만난 적이 있다. 통상 수습기자 생활을 마친 후 취재부서로 배치받는 국내 언론계 풍토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이어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논조는 공산당의 방침을 따르면 되고 민감한 사안은 보도지침이 내려오니 20대 논설위원이 가능하겠구나’라며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중국 공무원들은 좀처럼 외국 언론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뭄에 콩 나듯이 열리는 고위 공직자들의 기자회견은 사실상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질문에 대한 사전 심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국 주재 외국 기자들은 중국 외교부에서 매년 심사를 받아 기자증을 재발급받아야 한다.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마오쩌둥(毛澤東)은 선전선동의 귀재였다. 언론은 당의 중요한 선전 도구로 민중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단결하고 투쟁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현재도 보도 기준은 당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기자들을 상대로 이념 공작강화를 명분으로 사상교육도 주기적으로 행해진다.

중국 인부 2명이 마오쩌둥 초상화에 묻은 검정 페인트를 닦아내고 있다_AP연합뉴스


도무지 빈틈이 없을 것 같던 중국의 언론 통제와 검열에 균열이 가는 것일까. 최근 용기 있는 중국 언론인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예컨대 중국 남부지역에서 발행되는 남방도시보의 중견 기자인 위사오레이는 이번주 “더는 공산당의 성(姓)을 따를 수 없다”며 공개 사직서를 제출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들어 보수화 흐름이 강해지면서 언론 옥죄기가 노골화하자 반발하는 기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중국에서 언론자유화 운동이 활활 타오르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 사회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사회”라고 썼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중국은 여전히 닫힌 사회다.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도쿄 지국장이 그제 “박근혜 정부는 내가 취재해본 한국 정부들 중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정부”라고 말했다.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된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신년 기자회견을 사례로 들었다. 한국은 중국의 언론 풍토에 훈수 둘 처지가 아니다.


오관철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30대 초반의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혁명군은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맞서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갔다. 가난한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쿠바 혁명군은 1959년 1월 혁명에 성공했다. 한때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지독한 반미주의자였다. 미국 플로리다 해안에서 약 145㎞ 떨어진 쿠바에서는 혁명 성공 후 미국 기업가들의 재산이 몰수됐고 양국 관계는 1961년 끊겼다. 쿠바와 단교한 미국 대통령이 바로 존 F 케네디였다.

‘검은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 역사적인 쿠바 방문길에 나섰다. 오바마는 진보적 이미지의 케네디를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는다. 케네디가(家)도 오바마의 적극적 후원세력이었다. 오바마는 2013년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일 대사에 케네디의 장녀인 캐롤라인 케네디를 기용했다. 이런 오바마가 임기 마지막 해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한 것이다. 미주 대륙에 남아있던 마지막 냉전구도를 깨기 위한 결단으로도 평가되나 쿠바의 자생적인 변화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장 출혈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하자 혁명동지이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권력을 넘기기 시작했다. 오바마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준 라울 카스트로는 경제적 실리를 위해 적성국인 미국과 수교할 정도로 실용주의적 면모를 발휘했다.

반가움의 손 인사 쿠바 아바나 시립박물관에 도착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링컨의 초상화 앞에서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_AP연합뉴스

‘역사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오바마의 쿠바 방문이지만 오바마와 피델 카스트로 간 만남은 예정돼 있지 않다. 전설적인 혁명투사 체 게바라와 공산주의 이념을 자신에게 소개했던 동생의 대미 접근을 외면한 것인지, 오바마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인지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다. 혹시 피델 카스트로가 영원한 반미주의자로 역사책에 기록되기를 희망했던 것은 아닐까. 오바마의 쿠바 방문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래도 미국과 북한을 바라보면 미국과 쿠바 관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진전이다. 1960년 수교한 북한과 쿠바는 가장 가까운 사회주의 우방국가다.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과의 악수’를 청했건만 미국과 북한 간 악수는 언제쯤 볼 수 있는 것일까.


오관철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이명박 정부 시절 한·중관계는 전반적으로 냉각기였다. 대미 편중외교로 중국이 많이 섭섭해했다. 천안함 사태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면서 대응방향을 두고 1992년 수교 후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

한국의 차기 정부에서 한·중관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은 조짐은 2012년 8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나타났다.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이 전격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미래의 중국 최고지도자가 참석하자 북한을 의식하지 않고 한국과 가까워지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국 기자들의 취재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온화한 미소는 꽤 인상적이었다.

2012년 11월 18차 공산당대회에서 그는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서 당선됐다. 양국 간 관계는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에, 부친의 후광을 입은 닮은꼴 정치인이란 점도 작용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중국을 방문했고, 시 주석도 2014년 7월 한국을 찾았다. 중국에서 당 총서기에 오른 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박 대통령이 중국의 2차대전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한·중 밀월은 최고조에 달했다. 북·중관계는 대조적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중국은 김정은 영도를 즉각 인정하며 대를 잇는 북·중 친선을 과시했지만 2013년 초의 3차 핵실험은 시 주석의 분노를 불렀다. 그가 북한을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한국에서 점차 힘을 얻었고 북·중관계는 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다.

대북 제제 방안 논의를 위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고 있다_AP연합뉴스


여기까지가 지난달 북한의 4차 핵실험 전 약 4년 동안 나타났던 한·중, 북·중 관계의 겉그림이다. 하지만 지난달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중국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한국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배신감을 토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중국 눈치 보지 말고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중국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가 ‘사상 최고’ ‘아름다운 우정, 행복한 동행’이라고 한·중관계를 평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중국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다.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켜 내치의 어려움을 상쇄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든,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수단으로만 중국 카드를 생각했든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은 부주석 신분이던 2010년 10월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발언을 했다. 중국군 6·25참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반대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중국 정부를 대표한 정론(定論)”이라고 규정했다. 사실 북·중이 냉각기였다고 해도 중국은 한반도 외교에서 한국 쏠림을 경계하고 남북한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 물밑에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가 한번쯤은 중국의 속내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한·중 밀월의 거품을 빼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중국이 북한과 무조건적 혈맹관계에서 벗어나 국가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중국이 북한에 갖고 있는 최대의 목표는 안정이며 북한의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북한과의 관계유지다. 우리가 중국에 서운한 마음에,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말려 사드 배치를 수용한다면 한·중관계는 다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서 닭이 울면 인천까지 들린다는 말이 있다. 두 나라는 대대손손 부대끼며 살아야 할 나라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일을 빨리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을 마음에 새기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베이징 오관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북·중관계는 ‘혈맹’이란 말로 곧잘 표현되지만 양국 간 갈등의 뿌리는 꽤 깊다. 1992년 7월15일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평양에 도착, 헬리콥터를 타고 평안남도 연풍호수로 향했다. 김일성 주석 별장에 도착한 첸치천은 자신을 기다리던 김 주석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에 따라 중국은 이미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변함없이 조선(북한)과의 우호관계를 귀하게 여길 것이며 조선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지한다”고 위로했다. 김 주석은 “중국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조선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첸치천 통역으로 동행했던 장팅옌(張庭延) 초대 주한 중국대사는 2012년 한·중 수교 50주년을 맞아 중국 관영 매체 인민화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회고했다. 장팅옌은 “김일성 주석과의 회견에 수차례 참석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짧고, 이렇게 말을 적게 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훈으로 “중국을 믿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선대만큼 자신을 예우해주지 않는 중국에 갖고 있는 섭섭함은 예상외로 깊다는 말도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13년 3월 주석에 오른 뒤 37개국을 방문했지만 북한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풀만 먹더라도 핵을 갖겠다’는 북한을 중국이 다룬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북한이 지난 6일 '수소탄 실험'을 단행한 이후 곳곳에서 '핵보유국'임을 부각하면서 이를 내부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경제발전을 위한 추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군중대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다._연합뉴스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이 견디다 못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중국은 동북부 다칭(大慶)유전에서 단둥(丹東)을 거쳐 북한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원유 공급 외에 군수물자 송출과 접경무역 등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북한이 혈맹이어서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 때문이다. 이를 중단할 경우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의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중국은 주변국들에 묻고 있다. 중국이 겉으로는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남북을 분할 관리하는 것이 중국에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는 일방적 통일은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상황이다.

중국 법가 사상가 한비자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적들에 대항할 준비를 하지만 진정한 재난은 친구로 여기는 쪽에서 온다”고 했다.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을 보며 한비자 말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던 것처럼 급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중국에 북한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공허하고 비현실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은 북한을 어르고 달래면서 관계를 지속할 것이다. 한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남과 북이 대립하면서 각각 중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미래가 바람직한 모습일까. 남북관계가 좋아야 중국에 대한 우리 발언권이 강해질 수 있다. 우리가 북핵 문제를 다루면서 한반도와 한민족의 장기적인 미래를 얼마나 염두에 두고 접근 중인지 궁금하다.


베이징 오관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홍콩은 중국 주권이 미치는 땅이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따라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시내 가판대나 서점에서는 중국 권부의 얘기를 다룬,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사를 실은 잡지들이 버젓이 판매된다. 최고 지도자들의 건강문제까지 과감하게 기사화할 정도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기사도 많지만 홍콩이 누리는 언론자유가 충만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민감한 내용을 담은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도 홍콩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중국어 신문 명보(明報)는 홍콩에서 가장 신뢰받는 매체에 속한다. 중국의 인권과 정치에 성역 없는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매체로 보도의 정확성도 높다. 홍콩 식자층은 물론 외국인들이 중국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들 매체는 중국 본토에서 직접 접속하기 어렵다. 툭하면 끊기긴 하지만 우회 프로그램이 있어야 접속이 가능하다. 물론 중국에서 뉴욕타임스 등 일부 서방 언론의 접속이 원천봉쇄돼 있고 페이스북, 구글 접속이 차단되는 등 인터넷 통제가 심각한 편이란 점을 감안하면 홍콩만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니다.

112년 전통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수에 성공한 알리바바 마윈(馬雲) 회장이 명보까지 인수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부인하긴 하지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수 소식이 보도됐을 때도 연막을 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날 인수가격이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기업 알리바바가 잇따라 홍콩 유력 매체 인수에 나선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광고판매 하락과 구독률 감소로 어려움에 처한 게 홍콩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으로서 신문의 위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재벌이 언론사를 인수한다는 점, 그것도 중국 재벌이 중국에 비판적 성향을 보여온 언론을 소유하려는 것은 뭔가 배경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중국 지도자들의 독특한 언론관 때문이다. 중국의 언론은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위해 일하는 선전 도구로 간주된다. 무엇을 선전하고 무엇을 선전하지 말지는 당의 방침과 지도에 따라야 한다. 알리바바가 민간 기업이긴 하지만 중국 선전당국의 영향력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알리바바를 통한 홍콩의 비판 언론 길들이기는 불가피할 수 있다. 언론사에서 자체적으로 자기검열 현상이 만연해질 수도 있다.

홍콩에서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매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신문사 앞에서 홍콩의 언론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행정장관 직선제 쟁취를 위한 민주화 운동에서 좌절감을 느낀 홍콩 민주화 세력으로서는 알리바바의 언론사 인수가 우려할 만한 현상일 수밖에 없다.

알리바바 측은 이 같은 우려를 일축한다. 마윈은 “우리를 지나치게 무시한다”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토로한다. 매일매일의 편집결정은 뉴스룸의 편집자들이 하며 기업의 이사회실에서 결정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알리바바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보자면 ‘서방 언론들이 중국의 통치방식을 수긍하지 못하면서 중국에 왜곡보도를 일삼는다’고 주장하는 중국 지도층의 인식이 깊게 배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미래의 일을 현재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알리바바의 디지털 역량과 홍콩 유력지들의 신뢰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알리바바가 이미 글로벌 기업인 만큼 편집권 독립 논란을 자초하진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윈이 홍콩의 언론자유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란 평가보다는 중국 경제의 혁신 아이콘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콩의 언론자유는 중국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자산이다.



베이징 오관철 okc@kyunghyang.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중국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얘기할 때 “소금이 있는데 간장은 뭐하러 사?”라는 말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다. 구이저우(貴州)성의 한 빈농이 했던 말로 기억된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화교 출신의 게리 로크는 지난해 2월 이임을 앞두고 “베이징 같은 대도시는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외딴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해야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농촌에서 정부가 정한 빈곤선인 연간 2300위안(약 41만원)을 밑도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는 7017만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중국에서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동으로 누리자는 말이다. 지난 10월 하순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5중전회) 이후 부쩍 강조되고 있다. 이 회의가 내년부터 5년 동안 진행되는 13차 5개년 계획을 집중 논의한 만큼 공동부유론은 향후 중국 국정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3·5 계획은 단순한 경제발전 계획이라기보다 총체적인 국가발전 전략이다.

지난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관련 회의에서 “빈곤을 제거하며 민생을 개선하고 점진적으로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당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 중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공동부유다.

공동부유론은 줄여서 공부론(共富論)으로도 불린다. 선부론(先富論·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과 함께 중국에서 치열한 노선 다툼의 대상이 돼 왔다. 공부론은 선부론이 득세하면서 빚어진 불균형 성장과 빈부 격차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논쟁은 2011년 당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와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간에 벌어졌다. 보시라이는 “중국이 파이를 잘 분배할 때”라며 공공임대주택 건설, 호적개혁 등 빈곤층을 겨냥한 정책을 주장하면서 신좌파의 기수로 각광받았다. 반면 왕양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며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당내 개혁파를 대변했다. 보시라이는 시진핑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부패의 덫에 걸려 실각한 인물이다. 그의 몰락과 함께 공부론도 덩달아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물론 공부론이 보시라이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역대 지도자들도 언급하긴 했지만 보시라이는 강한 추진력으로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중국인들에게 남겼다.


보시라이 중국 전 충칭시 서기_AP연합뉴스


중국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보시라이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공부론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국 내 빈부격차가 갖는 심각성을 반영한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소홀해졌던 사회주의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이며 백성을 잘 먹이는 것이 진짜 공산당이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신호이기도 하다. 공부론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만큼 중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국은 앞으로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것뿐 아니라 국내 소비도 더 늘려야 한다.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 전환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국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하고 소득분배 개선은 필수적이다. 보시라이와 격돌했던 왕양 부총리가 국무원(행정부) 빈곤퇴치 영도소조(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그전까지 빈곤인구를 해방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빈곤층 껴안기가 포퓰리즘으로 매도당하고 있진 않다. 진보와 보수 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중국이지만 성장과 복지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지만은 툭하면 포퓰리즘 논란이 불거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아 보인다.


베이징 오관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베이징에서 ‘중국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일 저녁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중국 외교의 고민을 전했다. 박 시장은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의 말이라며 “이분이 아주 우아하게 영어로 잘 설명했는데 실제로는 중국 외교의 큰 고민들을 눈치채게 됐다”고 했다. 푸 주임은 외교부 부부장(차관) 출신으로 중국 외교에서 늘 ‘여성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 베테랑 외교관이다.

박 시장은 “그가 현존하는 세계질서를 제대로 존중하고 참여하겠다고 하면서도 현존하는 세계질서라는 것이 결국은 중국을 배제하는 게 아니냐, 이런 관점의 미묘한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푸 주임이 미국과 정직한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미·중관계를 신형대국관계라고 하면서 운명을 같이하고 책임을 같이하는 것이 중국의 꿈이고 세계의 꿈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의 확고한 맹방이란 점에서 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고 박 시장은 설명했다.

푸 주임의 인식은 중국의 부상을 미국이 인정하고 국제무대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예를 들면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등 서방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이며 변방에 불과하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박원순 서울시장_경향DB


박 시장 간담회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보여주고 있는 어지러울 정도의 외교 행보가 푸 주임이 털어놓은 고민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행보를 돌아보자. 지난 9월 미국 국빈방문에서 시 주석과 중국 인사들은 신형대국관계를 역설했으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측 인사들은 크게 호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정상회담 회담 당시와 미국의 반응은 사뭇 달랐던 것 같다는 게 베이징 외교 소식통의 전언이다.

아무튼 시 주석은 10월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영국을 찾았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특급 환대를 받은 그는 영국과 ‘글로벌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켰다. 역시 중국의 경제력이 무기였다.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이 공을 들이는 남중국해 분쟁의 주요 당사국 베트남을 찾았고, 싱가포르에서는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과 역사적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상회담을 주도했다. 양안 정상회담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시 주석이 해외로 나간 것은 이렇고, 베이징에는 최근 선진 주요 7개국(G7) 국가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시 주석은 오는 14일부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하며 파리 기후변화회의와 남아공 방문 일정도 잡혀 있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미국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시 주석의 외교 일정은 미국을 겨냥한 행보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국제 규범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 할 때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도 중국에 말을 해달라”고 얘기한 데서 엿볼 수 있다. 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볼지 의견이 제각각이나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건설적 대화는 어렵다. 물론 중국은 상대하기 어려운 나라다. 영유권 분쟁만 해도 먼저 일을 저지른 후 수습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저지르는 식의 행보를 통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분명한 점은 중국이 주변국을 대상으로 계속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이란 점이다.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한·중관계를 유지하기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베이징 오관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지난 16일 북·중 호시무역구 설립 행사 취재차 중국 단둥(丹東)시를 찾았다가 압록강에서 모터보트를 탈 기회가 있었다. 대형 유람선도 있었지만 북한 땅과 주민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쾌속 보트를 택했다.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관광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보트에 탄 10여명의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 시선은 북한 땅에 고정됐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자전거를 들고 목선에 오르는 주민들이 보였다. 아마도 압록강변의 다른 북한 지역으로 가는 듯했다. 총을 멘 채 주민을 감시하는 북한군 병사는 야위어 보였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주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몇 해 전 강가의 북한 주민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관광객들 행태를 두고 ‘인간 사파리’ 관광이란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게 생각났다.

북한 땅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보트가 강 중간에서 갑자기 시동을 껐다. 이어 허름한 배로 다가갔고 상대편 배에 탄 낯선 사람이 관광객이 탄 보트에 줄을 거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배 안에는 산삼술, 오리알 30개들이 상자, 각종 담배 등 북한산 상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침묵이 흐른 끝에 “산삼술은 얼마입니까”라고 한국말로 묻자 간단하게 “100위안”이란 답이 돌아왔다. 한편에서 “싸게 해 주세요”라는 말도 들렸다. 북한 당국이 주민을 보내 외화벌이를 시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도 물건을 하나 사는 게 어떨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동승했던 단둥 거주 한국인 사업가는 “저분은 북한 주민이 아닙니다. 물건을 사지 마세요”라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신도 예전에 동정심을 느껴 물건을 산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중국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상인이 간단한 한국말 몇 마디만 익힌 뒤 배에 올라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해 잇속을 챙기려는 상술이 씁쓸했다.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하고 한국인들이 단둥을 통해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런 식의 상술이 발붙이긴 어려울 것이다. 인간 사파리 관광 논란도 애당초 없었을 게다.



단둥에서 보면 중국이 핵 개발을 이유로 북한을 버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양국 외교가 냉·온탕을 오가도 경제는 별개였다. 북·중은 1400㎞의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단둥, 지안(集安), 투먼(圖們) 등 접경지역에서는 강폭이 10여m가 안되는 곳도 많다. 이런 북한과 중국이 과연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있을까. 한달에 300달러의 월급을 받고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단둥에 1만명가량 있다고 한다. 중국인 택시기사는 앞으로 수년 내에 북한 근로자가 10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지에선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 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5·24 조치를 내렸지만 오히려 중국에만 득이 되고 북한의 중국 예속화만 가중시켰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 한국인의 방북 불허 등을 골자로 하는 5·24 조치는 단둥의 한국인 대북 사업가들에게도 직격탄을 안겼기 때문이다.

단둥 거주 한국인은 한때 50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700~800명으로 줄었다. 2002년 북한이 경제특별구로 지정했던 신의주와 철교로 연결된 단둥은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선양(瀋陽)과 연결되는 고속철이 최근 개통하는 등 중국 주도로 다양한 지역 발전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멀리 보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끄는 도시일 수 있고 한반도 안정을 위한 전략적 가치도 높다. 그러나 한국 정부 관련 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도 거의 진출해 있지 않다. 단둥에서는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북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낯선 한국인에게는 아직 냉담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 단둥이 남북 간 교류의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오관철 베이징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미국 대선주자들의 ‘중국 때리기’ 레이스가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인사들의 막말 퍼레이드에 이어 민주당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중국 때리기에 가세했다. 굴기(堀起·우뚝 일어섬)하는 중국이 내년 미 대선에서 중요한 대외정책의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상궤를 벗어난 일부의 중국 때리기는 볼썽사납다.

힐러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7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여성에 관한 글로벌 서밋에 참석해 유엔과 공동으로 회의를 주관하자 “창피한 줄 모른다(shameless)”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여성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중국의 지도자가 여성권리를 위한 회담을 주관할 자격이 있느냐는 얘기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힐러리의 예의에서 크게 벗어난 표현은 막말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난했다. 힐러리는 2012년 국무장관 시절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중국의 인권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선택한 시점이다. 집권 후 처음으로 유엔 외교무대에 나선 시 주석에게 ‘고약한 선물’을 안긴 것이다.

공화당 경선의 선두 주자인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도 도를 넘고 있다. 그가 민주당 유력 후보인 힐러리와의 양자 대결에서 지지율이 앞선 것으로 최근 조사됐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만약 대통령에 당선돼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미·중관계는 파국으로 갈 게 뻔하다. 그가 “미국 경제가 너무 늦기 전에 중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빼앗긴 일자리 200만개를 되찾아 오겠다고도 했다. 미·중 양국이 경제적으로 깊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지난해 양국 간 교역규모는 5551억달러에 달하며 상호 투자규모는 1200억달러에 이른다. 스콧 워커 미국 위스콘신 주지사는 시 주석의 방미 일정을 아예 취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했다. 공화당에서 급부상하는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는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대해 더 공격적인 군사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패커드 전 CEO_경향DB



대선주자들의 중국 때리기는 중국을 외부의 적으로 설정해 애국주의를 불러일으키고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의도다. 양국 관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 중국 때리기가 가져올 부정적 효과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 중국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실망 못지않게 미국 정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양국 국민들의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물론 미국 대선주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중국을 비판했지만 당선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달라진 사례도 적지 않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08년 대선 때 중국의 환율조작 행태를 강력히 비난했지만 여전히 환율조작 문제로 중국을 제재하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란 시각도 없진 않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중국의 해킹 논란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경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과도한 개입, 종교 및 인권 탄압 등으로 미·중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평화공존을 얘기하면 미국 일부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팔아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한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8년 집권했기 때문에 역사적 전례로 보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공화당 주자들의 중국 때리기가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공생관계이며 미국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글로벌 경제에 미칠 파장을 숙고해야 한다. 중국만 탓하고 무작정 중국에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자국을 먼저 돌아봐야 할 때다.


베이징 오관철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한·중은 더욱 가까워지고 북·중은 더 멀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중국과 논의키로 했다고 박 대통령이 밝힌 것도 전승절 외교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주석 간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2일 중국 반(半)관영 매체인 중국신문은 정상회담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내용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과 똑같았다. 중국 외교부가 써준 기사를 보도한 것이다. 중국 언론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중국 정부가 얼마나 한반도 정책에 대한 메시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남북 쌍방이 계속 대화를 통해 관계 개선을 이루고 화해 협력을 추진하며 최종적으로는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걸 환영한다”고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이 마치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한국과 적극 협력할 것처럼 비치고 있지만 중국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줄곧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통일을 지지해왔다. 자주적이란 의미에 대해 명확한 언급은 없지만 외세 개입 없이 남북한의 평화적 대화를 통해, 일방의 굴복 없이 통일을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북한이 원하는 적화통일이나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흡수통일은 중국이 바라는 통일과 거리가 멀다. 중국의 자주통일 언급이 통일 후 한반도에서 미군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솔직히 중국이 정말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 중국 외교부의 입장은 지겨울 정도로 똑같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에 반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한반도 비핵화 등등. 베이징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한반도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파악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기자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중국 정부의 표현이 입력돼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을 전하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대청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_경향DB


중국의 입장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한국 내 일부 분위기를 보면서 2013년 2월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부편집인이던 덩위원(鄧聿文)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은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명 칼럼을 썼다. 중국 외교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대해석되면서 한국에서도 파장을 불렀다. 그러나 중앙당교의 한 교수는 “중국의 웬만한 한반도 전문가들을 대부분 아는데 들어본 적이 없는 분”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것으로 본다”는 말이 나왔다. 덩위원은 중국 외교부의 강한 항의를 받았으며 학습시보 부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베이징에서 만나는 우리 교민들이나 중국인들은 정말 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중국에 대해 이해가 깊다며 감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 전략은 냉철하다.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국은 여전히 중시한다. 전승절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힌 것이지만 중국에도 상당한 외교적 성과다.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을 분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으로 파견하는 대사는 차관급이지만 한국에는 국장급이 간다. 북한은 중국에 밉지만 결코 쉽게 갈라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려되는 건 남북이 모두 중국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중국의 원조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이대로 가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중국 경제 의존도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크다.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대중 외교에서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옆집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좋지 않다.


오관철 | 베이징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지난 12일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11월15일 18차 공산당 대회에서 총서기에 등극한 후 1000일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를 ‘주석’, 영어권 국가들은 ‘프레지던트(President)’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총서기’란 호칭을 많이 쓴다. 공산당이 중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압도적이다. 중국 매체들은 우리 언론처럼 특정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지도자의 공과를 특별히 다루진 않는다. 중국에서 현직에 있는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 특히 과(過)를 거론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톈진(天津)의 항구에서 사망·실종자수를 포함해 200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낸 대폭발 사고가 있었다. 앞서 상하이에서는 신년맞이 행사에서 36명이 숨진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6월초에는 ‘중국판 세월호 사고’로 불리는 양쯔강 유람선 사고로 440여명이 희생됐다. 톈진 폭발 사고에 묻혔지만 이달에는 산시(陝西)성에서 산사태로 60여명이 매몰됐다.

잇따르는 재난 속에 많은 중국인들이 망연자실하고 외국에서도 애도가 쏟아졌다. 나라 크기로 보나 인구로 보나 중국에서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양파껍질 까듯 인재의 측면이 끝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중국의 위상과 달리 국내에서는 백성들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화려한 외치(外治), 우려스러운 내치(內治)’가 요즘 중국의 모습이다.

시 주석은 총서기에 등극하며 전 세계에 ‘중국의 꿈’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국제무대에서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에 중국인들은 열광했다. 미국이 반대하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끌어들였다. 2022년 동계 올림픽 유치도 눈부신 외교적 성과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정문 서명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최경환 경제부총리)_경향DB


나라는 이처럼 강해지고 있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면 일반 국민들, 특히 중산층 이하의 삶은 고달프고 불안하다. 얽히고설킨 경제문제로 민초들의 고통은 깊다. 국가와 관영 언론이 합작해 만든 증시 광풍에 휩쓸려 들어간 개인투자자들은 주가 폭락으로 좌절하고 있다. 잇단 대형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잃은 유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유언비어 확산 금지란 명목으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억압되고 유족들은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많은 대형 사고들은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로 드러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중국이 과거의 재난에서 얼마나 많은 교훈을 얻고 구태를 개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국인들은 자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대로 청나라의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 130여년을 꼽는다. 강희제(康熙帝), 옹정제(雍正帝), 건륭제(乾隆帝)로 이어지는 시기에 청나라는 눈부신 부흥을 일궜다. 특히 강희제의 리더십과 용인술을 중국 지도자들은 배우고 싶어한다. 1661년부터 1722년까지 61년간 중국을 다스린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최전성기의 서막을 연 군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안민(安民)이야말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했다.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천하를 편안하게 다스리려면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다음달 3일 2차 대전 승전 70주년 열병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물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열병식을 통해 많은 중국인들은 70년 전의 중국과 오늘의 중국을 비교하며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이 잇따라 터지면서 당과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지금 “강한 중국이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생명권이 보장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의 꿈”이라고 외치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중국이 요즘처럼 ‘국가자본주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적이 있을까. 공안 정국의 그늘이 어른거리고 증시 안정을 이유로 정부가 시장 참여자들의 팔목을 비트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중국식 발전 모델이 거둔 성과와 ‘차이나 머니’의 위력, 서구의 쇠퇴 등으로 이제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이달 초 국가안전법을 제정한 중국은 인권변호사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달에 최소 230여명의 인권변호사들이 구금되거나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고 추산한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난 7일 성명에서 “국가안전법이 관여하는 분야가 광범위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가안전법은 인터넷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는 방패막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당국에 인터넷은 통치자의 이념을 선전하고 전파하는 유용한 도구이자 체제에 도전하는 선동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최근 불안한 증시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보여준 노골적 관치(官治)로 국민들의 불신은 깊어졌고, 시장의 힘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만들겠다던 중국 지도자들의 공언은 무색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 정부는 시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꾸지 않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게 됐다. 사실 대주주에게 이미 매도한 주식을 일정 비율 다시 사들이도록 압박하고, 상장기업의 절반 이상이 거래정지된 상황에서 주가가 오른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아들이자 중국국제금융공사 회장을 지낸 주윈라이(朱雲來)는 “(증시 안정책으로) 기업공개를 중단시킨 것은 바람직한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증시 위기 대응과정에서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국은 1979년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선언한 후 공산당 체제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결합시키는 모델을 채택했고 효용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반대하고, 민영화와 강력한 재산권을 주장하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았다. 통신, 은행, 에너지 등 국가 기간산업의 무분별한 민영화를 거부했고 한국처럼 먹튀 논란도 생기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요구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시달려온 제3세계 국가들은 원조에 조건을 달지 않는 중국을 환영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국가 못지않게 중국을 필두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국가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 분포도 _경향DB


중국에는 56개 민족, 14억명 이상이 살고 있다. 문명 수준이 뒤떨어지는 온갖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방에 가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웬만한 나라와 비슷한 크기의 지역을 다스린다.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경우 남한의 80%에 해당하는 면적에 인구 3200만명의 충칭을 다스리며 서남왕(西南王)으로 군림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지 답이 안 보인다.

그러나 국가안정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 체제다. 중국 상황이 특수하다고 해서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내세워 국가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게 언제까지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일당체제라 해도 이론적으로는 지도자들이 선의를 갖고 국민을 받들 수 있다. 수십년 동안 지방에서 갈고 닦은 중국 지도자들의 통치술은 남다르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중국 중산층 가정의 많은 자녀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가고 자유 민주주의의 공기를 마시고 돌아오고 있다. 중국이 공산당의 힘과 날로 높아지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궁금하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남편이 공무원이고 자신은 대학교 부교수인 중국인 장모씨. 예전에는 주식시장을 도박판이라며 멀리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광둥(廣東)성 주장(珠江)삼각주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천모씨는 공장을 팔아 수백만위안의 현금을 들고 주식 투자에 나섰다. 베이징 대학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주식시세를 쳐다보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3개월 전 주식 투자에 나선 대학생 청모씨는 “진짜 주식시장을 모른다”면서 “어떤 종목을 살지 단지 다른 친구들을 따라할 뿐”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산시(陝西)성 싱핑(興平)시 난류(南留)촌에서는 830여가구 중 100가구가량이 주식시장에 발을 담갔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왕모 여사는 7만위안(약 1260만원)을 갖고 시작해 반년 만에 12만위안을 벌었다고 한다. 상승을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물든 주식 시세판을 바라보며 활짝 웃던 노인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국 증시는 지난 1년 동안 이처럼 빈부격차, 지위고하,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개미(개인투자자)들을 끌어당겼다. 고된 노동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이야말로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국민)’들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중국의 주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르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증시가 과열됐다는 거품론이 끊이지 않았지만 중국에선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대신 “중국에서 주식에 투자하려면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을 잊으라”, “투자를 두려워한다면 이미 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투기를 부추긴 전문가들도 있었다.

중국 증시의 활황은 정부와 언론, 금융기관의 합작품이다. 거품을 경고하는 이들에겐 중국 주가를 이해하려면 영도자들의 생각부터 읽으라는 면박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1억~2억명을 넘는 중국 개미들은 투자의 위험성을 얼마나 제대로 고지받았을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농민공들에게 주식 투자를 부추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경제 규모는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데 주식시장은 너무 낙후된 것 아닌가.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 투자 수익률도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대다수 중국 투자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중국 증시_경향DB




최근 중국 증시에서 주가가 하루에만 7% 폭락하는 등 급격한 조정을 겪으면서 개미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그리스 사태가 스릴러라면 중국 증시는 호러쇼라고 외신은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여전히 증시 부양에 열중한다.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내리고 언론에선 폭등 후 폭락은 정상적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개미들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다.

앞으로라도 개미들에게 헛된 망상을 심어주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중국 정부는 과열된 증시를 연착륙시키고 개미들을 탈출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중국의 주가가 뛴다고 우리가 배 아파할 이유도 없고, 폭락한다고 동정할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주가 폭락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지난 29일 베이징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정문 서명식이 열렸다. 오전까지 자욱하게 끼었던 스모그도 오후 들어 돌연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서 걷혔다. 그리스 사태로 전 세계 증시가 침체되는 가운데 중국 증시는 주말을 틈타 발표된 기준금리와 지준율 동시인하라는 부양책에 힘입어 상승장으로 개장했다. 그러나 결국 하락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중국 정부가 증시를 쥐락펴락해도 경기 사이클과 악재는 반영되기 마련이다. AIIB 협정문 서명으로 팡파르를 울리고 있는 한편에서 터져 나오는 중국 개미들의 한숨을 보면서 중국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주식시장은 경제의 거울이라고 한다. 중국 증시가 중국의 온전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베이징에서 생활하다 보면 난처한 일 중 하나가 병원을 찾아야 할 때다. 최근 한인 거주지역인 왕징(望京) 부근에 있는 중국 병원을 찾았다 적잖이 놀랐다. 겉으로는 멀쩡한 대형 종합병원이었으나 의료기기 수준, 청결도 등에서 한국 대도시의 웬만한 병원과 비교가 안됐다. 의료진의 수준 역시 한국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교민들의 평가다. 외국인을 위한 전용 창구가 개설된 병원도 있지만 등록비만 1000위안(약 18만원)이 넘고 의사들은 중국인 환자들을 진료하는 같은 의사들이다. 외국인들이 빨리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급행비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일 뿐이다. 병원 찾을 일이 있으면 한국으로 빨리 들어가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은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도 한국과 비교해 높지 않다. 한국 학부모들처럼 자녀들의 의대 진학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환자 진료가 허용된 후 중국에서 한국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는 매년 늘고 있다. 성형을 중심으로 의료분야에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매우 높다. 하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정부의 어설픈 대응이 앞으로 많은 것을 바꿔 놓을지 모른다.

메르스 의심환자 한국인이 홍콩을 거쳐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로 입국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나, 이 남성과 밀접 접촉했던 한국인이 귀국했다 다시 홍콩으로 입국하려 했던 것이나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고위험 의심환자를 중국으로 내보낸 것이니 한·중관계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외교당국은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다. 중국인들이 메르스를 중동호흡기증후군이 아니라 ‘한국호흡기증후군’으로 불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국의 의료적 수준은 우수하지만 정부의 질병 관리 방식은 중국에 충격을 줬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부위와 전파력·치사율 (출처 : 경향DB)


면적이 좁고 외국인 방문객이 많아 전염병에 극도로 민감한 홍콩에서는 한국 정부에 격앙된 반응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언론에선 “한국이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당시 타격이 심하지 않았고 현실에 안주해 왔기 때문에 이번 대응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아시아의 경제강국 한국이 의외로 치명적인 질병에 방어 능력이 취약하다는 점은 놀랍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호팍렁 홍콩대 교수는 현지 언론에 “한국 정부가 24곳의 병원 명단을 뒤늦게 공개한 것도 웃기는 일이며 홍콩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공중의 분노를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당국자들의 말에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마저 외면한 것 아니냐는 분노도 읽힌다. 메르스 사태 대처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대응은 침착·신속하면서 투명했다. 한국인 확진환자가 후이저우 중심인민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며 병원 이름을 일찌감치 공개했고 국민들의 협조를 통해 밀접 접촉자들을 모두 찾아냈다. 사스 사태 당시 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일본 언론도 사스 사태의 교훈을 살린 중국이 한국보다 더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중국 당국은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사스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베이징은 안전하며 사스는 곧 억제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몇 달이나 사스 발생 사실을 감췄고 사스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홍콩 역시 사스 사태를 통해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가 간 정보 공유, 격리 치료만이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행동으로 옮겼다.

메르스 사태에 직면해 한국 보건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마치 사스 사태 당시 중국 관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제 중국인들에게 한국이 의료 선진국이란 말을 하기 어렵게 됐다. 일부 누리꾼들을 제외하고 중국 주류 언론들이 ‘혐한증’(한국을 혐오함)을 드러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남중국해가 격랑에 휩싸였다. 미국은 중국발 해양위협을 거론하고, 중국은 미국이 중국 위협론을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일이 동맹을 격상시키고 중·러가 동맹수준의 밀월 관계를 구가하는 상황에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 간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격돌이 벌어지고 있다. 남중국해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원유 수송로인 데다 한반도에 영향력이 큰 미·중 간 ‘그레이트 게임’의 격돌장이란 점에서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중 간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고개를 드는 게 중국 위협론이다. 미국이 아시아 회귀전략을 본격화하는 이유도 중국 봉쇄가 목적이다. 미국이 그동안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킨다는 구실로 세계 도처에서 군사 작전을 벌여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패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했지만 미국 위협론은 중국 위협론만큼 화두로 떠올랐던 것 같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글로벌 가치를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잘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국이 글로벌 규칙 제정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미국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결국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다른 가치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이 되어선 안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중국에서 살다보면 ‘정말 중국이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도를 넘는 탄압, 시민사회와 언론 통제, 일당 체제하의 뿌리 깊은 부패 토양 등은 중국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요인들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팽창주의는 중국의 유전자에 없다”며 절대로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내치는 외교의 발목을 잡는 무시 못할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중국에 타성적인 시각을 고수하는 한 중국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중국의 영향력이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 국력에 맞는 외교를 펴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며 중국의 힘으로 볼 때 미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이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기존 질서의 파괴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중국 원유 수입의 80% 이상은 아직까지 미국 해군이 통제하는 말라카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들어와야 한다. 중국이 태국 남부 말레이반도에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인공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나 파키스탄에 항구를 확보해 원유 수송로를 다변화하려는 것도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베이징 사범대 제2부속중학교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탁구를 배우고 있다. _ AP연합


국가 간 관계에서 자신들은 아무리 악의가 없다고 해도 다른 나라가 쉽게 믿어주긴 힘들며 이는 정상적이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주변국의 불신과 의혹을 해소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국 역시 중국 위협론을 의도적으로 악용해선 안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양국 간 대화채널이 경제, 인문교류, 군사, 법집행 등의 분야에서 90여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한 중국 학자는 “양국이 어떤 상황에서도 무력충돌이 발생해선 안된다는 점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중이 갈수록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은 자명하고 우리가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은 불가피할 수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한국 방문 중에 한반도 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해 우리에게 대중 외교의 최대 부담 요인 중 하나인 사드 문제가 또다시 돌출했다. 우리가 중국 위협론에 경도돼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미국을 멀리해 중국으로부터 가벼이 취급당해서도 안된다. 오로지 현실주의에 입각해 국익을 우선으로 외교를 펴야 한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상대로 구사한 ‘표정외교’를 둘러싸고 진의가 뭔지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 22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아베 총리와 만났을 때와 달랐다. 온화한 미소를 잘 짓는 평소 모습에 비춰 당시 시 주석의 표정은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고 어두웠다.

시 주석이 웃는 장면은 중·일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반둥회담에 앞서 양국은 부단히 접촉을 해왔다. 지난달 보아오포럼에서 시 주석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를 만났고,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달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회견에서 올해를 중·일관계의 시험대이면서 기회로 규정했다. 이런 기류로 미뤄 다자외교 무대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 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에게 미소지으며 실리를 위해서라면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를 만나 웃을 줄 알며, 위엄을 접을 줄도 아는 유연한 지도자란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줬다. 오는 9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미국과의 갈등 요인을 줄이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일본을 유인하기 위해 실리외교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물론 양국 관계가 역사문제를 묻어두고 앞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일본이 2차대전 중 저지른 만행은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국 국영 TV에서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항일 드라마가 방영된다.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반둥회담을 소개하면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시 주석은 양손을 의자 손잡이에 걸치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인 반면 아베 총리는 두 손을 모으고 시 주석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미소짓는 시 주석의 모습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중국이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통제되는 사회라 하더라도 역사문제에 있어 시 주석이 평소 언행과 원칙을 내팽개쳤다는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이 변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_ AP연합


문제는 시 주석의 표정외교가 우리 외교의 경직성과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게 국제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얼마나 대일 외교의 경색국면을 풀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 왔는지 궁금하다.

남북한과의 관계에서 시 주석의 표정외교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음달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대전 전승절 기념행사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혹자는 북한의 행태상 막판까지 참석을 저울질할 것이고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지기엔 사전 교감이 너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그의 참석은 확정적이며 중·러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일부 정상들과 접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올 들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모스크바에서 시·김 회동이 이뤄진다면 어떤 모습이 연출될 것인가.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 주석은 냉랭한 표정을 지을까. 오는 9월에는 베이징에서 역시 2차대전 전승행사가 열린다. 그때 시·김 회동이 성사된다면 시 주석은 아베 총리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소를 보여줄 것인가.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도 한·일관계도 막혀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역사상 최고의 관계라는 중국은 안갯속을 헤치며 실리를 좇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북한은 지금까지 세 차례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7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 신청서를 보냈으나 ADB를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고, 올해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 의사를 밝혔지만 중국의 거부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지난 2월 주중 북한대사관 고위 관계자를 통해 AIIB를 주도하는 중국 정부에 가입 의사를 전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AIIB가 열려 있는, 포괄적·다자적 개발기구이지만 북한과 관련된 정황을 알지 못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꺼려 정확한 사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이 자국의 경제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북한의 금융수준 부족을 이유로 중국이 거절했다’ ‘북한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나 ADB의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입이 어려웠다’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은 표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중국이 북한의 가입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면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국과 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장담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AIIB는 중국의 글로벌 위상을 보여주는 자부심의 상징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 때문에 AIIB가 ‘흥행’에 실패하는 상황을 상정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 언론들이 AIIB의 친구그룹(朋友圈)이 확대되고 있다고 연일 보도했지만 한때 혈맹관계였던 북한은 결국 친구그룹에 끼지 못했다.

우리가 AIIB에 가입하기로 좀 더 일찍 결단을 내리고 북한 가입 문제를 중국 측과 논의했으면 어땠을까. 과거 우리 정부의 태도로 보면 이렇게 했어야 맞는다.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2013년 11월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해 3월 독일 드레스덴 방문 연설에서 북한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제안했다. 북한을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 국책연구기관들도 꾸준히 제기했던 사안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처 : 경향DB)


AIIB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경제를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가입 무산은 아쉽다. 북한이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AIIB와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AIIB는 총회 승인을 거치면 비회원국에도 자금 및 투자 지원을 허용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 추가로 가입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대북 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면 AIIB를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방안이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퍼주기 논란으로 직접 북한을 돕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AIIB를 북한 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을 바라고 있으며 점차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조짐도 포착된다. 과거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은 미국, 일본의 제지로 무산됐지만 현재 AIIB에는 미·일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 자세변화가 없는 한 AIIB의 북한에 대한 투자 논의과정에서 핵 개발이나 인권 문제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중국이 북한의 가입을 용인하거나 투자 결정에 동조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북한도 비핵화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제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어느 도시에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한지, 개발 필요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준비해 AIIB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나서야 한다. 남북한이 놓치기엔 아까운 큰 장이 펼쳐지려 하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다음달 초 부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장수 신임 주중 대사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한·중관계가 1992년 수교 후 최고라고 하나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논란으로 양국 관계가 매우 불편해질 수도 있는 미묘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군인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장관, 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 대사는 일각에서 ‘사드 대사’로 불린다. 중국을 상대로 한국 내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양해를 얻어내는 게 주요 목표로 부여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중국 전문가는 “사드는 북핵의 위협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생존의 도구다. 중국을 위협하려는 게 아니란 점을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김 대사의 첫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사드 논란에 대해 미국의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바도 없다는 이른바 ‘3 NO’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사드가 배치될지 불투명한 것이다. 김 대사의 구상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위에서 김 대사에게 사드 대사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그의 대중 외교 활동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방한 중인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16일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와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외교부를 방문해 승강기를 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중국 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국내에서 사드 배치가 논란이 되는 것만으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은 사드를 배치하고 싶어하는 것 같고, 중국은 100% 반대할 것이고 양국 관계가 참 갑갑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피습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문안한 자리에서 ‘영원히 함께 갑시다’라고 말한 대목도 중국은 가벼이 넘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도 이런데 우리가 사드 배치로 확연히 기울 경우 중국의 반발 강도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 사드는 배치하고 중국과는 경제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경분리식 접근도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중국은 최우선 외교 순위를 대미 관계 강화에 두고, 중국과는 경제 협력만을 증진시키려 했던 한국의 태도를 못마땅해 했다. 물론 중국이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국에 경제적 보복을 가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중국은 민족주의적 감정에 불이 붙으면 무서운 나라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적 보복이 우리 기업에 해를 미칠 개연성이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월 방중 기간에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올해 우리 경제의 호재로 저유가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두 가지를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은 미우나 고우나 부대끼며 살아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 우리의 국익은 안보와 경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과연 정부 부처 내에도 사드 배치에 대한 인식과 파장에 대한 종합적 대책이 마련돼 있는지 의문이다.

대사는 본국의 훈령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대통령의 측근인 김 대사는 그에 머물러선 안된다. 중국의 기류를 세밀히 파악해 한·중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직언을 마다해선 안된다. 이는 경제를 감안해 중국에 고개를 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결론을 가지고 대중 외교를 펼 것이 아니라 중국의 각계 인사들을 접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을 신중하게 평가한 후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사드 문제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중국이 대국임을 들먹이며 우리에게 줄을 세우려 한다면 쓴소리도 해야 할 것이다.

김 대사가 우리 대중 외교의 지평을 넓힐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군 출신이 중국 대사를 맡는 것은 그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중국 군부는 외교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그가 인민해방군 영도자들과 ‘관시(關係·인맥이란 뜻)’를 깊게 맺을 수 있는 노장(老將)이란 말도 나온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최근 접했던 두 명의 중국통(中國通) 이야기다. 우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거쳐 CNN 중국특파원으로 일하다 최근 퇴직한 지미 기자이다. 중국 국영 CCTV는 지난 22일 저녁, 33년 동안 중국에서 외신 기자로 일했던 그의 이야기를 20분가량 다뤘다.

올해 64세인 필리핀 국적의 지미는 20세이던 1971년 학생 교류 차원에서 중국을 방문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필리핀 학생운동의 주요 지도자였으나 공교롭게도 필리핀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체포자 리스트에 올랐고 귀국길이 막힌 것이다. 베이징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은 그는 1982년 타임에 입사했으며 2001년 CNN으로 옮겨 중국지사 수석 기자를 지냈다.

지미 기자는 “하나의 사진이나 한마디 말로 중국을 규정하긴 어렵다”며 “중국은 어떤 사람에게는 판다를 사랑하는 나라로, 어떤 사람에게는 독재 국가로 각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란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를 외국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기자들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가 “공식석상에서 중국 지도자들에게 정치제도 등 민감한 문제를 질문했지만 중국 당국과의 사전 조율은 없었으며 이는 자신에게 악의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 시대 역사의 증인인 지미 기자는 “(지도자들이) 중국을 관리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너무 빨리 몰거나 멈추면 넘어지게 된다”고 조언했다.

로버트 로렌스 쿤 박사(71)를 본 것은 지난 11일부터 이틀 동안 중국 국무원이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에서 주최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국제포럼에서다. 그는 둘째날 포럼 서밋에서 30여개국에서 온 전문가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중국 매체들의 카메라 세례와 고위 인사들의 환영 분위기가 뜨거웠다. 쿤 회장은 “국제 사회에서 더 큰 책임을 지려는 중국을 지지하며 진짜 갈등은 정치체제의 다름에서 오는 게 아니라 국가 간 발전의 불균형 등에서 온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려는 냉전적 사고를 가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쿤 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미국의 기업인 출신이다. 1980년대 말부터 중국 관리들의 자문역을 맡았고 2005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평전을 쓰면서 유명해졌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지방정부 지도자 시절 그와 만났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중국을 연구했으며 세계에 중국을 알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쿤 박사는 지난해 출간된 <시진핑, 치국리정(治國理政)을 말하다> 출판기념회에서도 강연했다. 모두가 그에 대한 중국의 믿음과 배려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이 중국을 중국 내부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재적 접근론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서방 세계에 중국의 논리를 전파하는 인물로 중국이 각별히 관리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우리가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싫든 좋든 우리가 필연적으로 부딪치며 살아야 할 이웃 국가다. 중국이 인정하는 라오펑여우(老朋友·오랜 친구)의 존재가 국가적 자산인 시대다.

소위 '중국통'이라 불리우는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 (출처 : 경향DB)


이런 점에서 최근 이뤄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사에서 미국통에 편중된 인사가 이뤄졌다는 소식은 아쉽다. 중국통 홀대인지, 중국통 부재 탓인지 알 수는 없으나 민간에 주는 신호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중 수교가 1992년 이뤄졌으니 지미 기자나 쿤 박사가 중국을 알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중국과 외교 관계가 없었다. 중국은 워낙 복잡한 나라여서 제대로 된 중국통을 양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깊이 있는 중국통을 배출하기에 아직 시간이 모자란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국통을 발굴하고 키워주려는 국가적, 사회적 노력이 아직 치열하지 않아 보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