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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에필로그 ‘인간적인 도시를 위하여’

‘인간적인’ 도시,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지난해 11월부터 석 달에 걸쳐 남미와 유럽,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돌며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미래를 위한 준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살펴봤다. 도시의 규모나 개발 정도, 고민거리는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국가나 민족 같은 추상적인 틀과 달리 도시는 사람들이 걷고 보고 먹고 일하는 ‘공간’이며, 이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도시에는 수많은 공공 공간이 있다. 학교도 있고, 전철역도 있고, 슈퍼마켓도 있고, 공원과 산책로도 있다. 이 모든 시설에 ‘누구나 차별 없이’ ‘언제라도 불편하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도시 인권의 핵심이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거나,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처럼 흑인이라는 이유로 버스 앞자리에 앉지 못한다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거부당한다면 행복한 도시가 아니다.

어느 곳에든 편하게 접근하고 누릴 권리는 차별당하는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은 도시에서 의식하든 하지 않든 수많은 행동을 한다. 덴마크 도시학자 얀 겔은 이미 1970년대 도시 거주민의 움직임을 세분화, 도시 설계에서 고려할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도시 공공 공간을 평가하는 이 척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교통사고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 범죄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 소음이나 악취 같은 불쾌한 감각·경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것 등이다.

또한 우리는 도시 안에서 걷거나, 서서 거리를 바라보거나, 앉아 있거나, 듣고 말한다. 놀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햇볕을 즐기기도 한다. 그중 ‘걷기’ 하나만 해도 길의 크기, 걷는 거리, 도로의 소재와 높낮이 변화 같은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코펜하겐 시내 벤치들을 관찰한 얀 겔은 행인들을 바라보게끔 놓인 벤치에는 행인들에 등을 돌린 벤치보다 10배 많은 사람들이 앉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는 길가 상점의 크기도 시민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 캐나다 저술가 찰스 몽고메리는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대형 상가 근처에 사는 노인들은 작은 상점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사는 노인들보다 노화 속도가 빠르다”고 지적한다. 넓은 면적을 차지한 통유리 건물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걸 막는 장애물이고, 이런 지역 노인들은 외출을 줄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덴마크의 대도시들은 1980년대부터 은행들의 도심 지점 개설을 규제했다. 은행 외벽은 보안상 창문과 문이 거의 없어, 은행들이 몰린 거리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미국 뉴욕과 캐나다 밴쿠버 등도 상점들의 도로변 면적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섬세한 고민들이 모든 공공 공간에 적용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2015년까지 탄소중립 도시가 되겠다고 선언한 코펜하겐은 통근자 교통수단 분담률이 자동차 31%, 대중교통 28%, 자전거 37%이고 보행이 4%를 차지한다. 이 수준에 이르기까지 당국은 자동차 도로와 주차공간을 연 2~3%씩 단계적으로 줄이면서 자전거길과 버스전용차로를 늘렸다.

결국 도시 공간의 설계를 바꾸는 것, 공동체가 활성화되게 하는 것,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쓰는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는 것, 그 안에서 경제가 순환되게 하는 ‘연대 경제의 모델’을 만드는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의 박용남 소장은 살기 좋은 도시로 가기 위한 몇 가지 요인들을 꼽았다. 첫째는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보행 조건을 개선하고, 자전거가 활성화되게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하며, 대중교통이 잘 작동해야 한다. 

둘째, 지역화폐나 협동조합 같은 연대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둘러본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도시 볼로냐와 트렌토, 지역은행과 대안화폐로 빈민촌을 살린 브라질 포르탈레자의 해변마을은 그런 도전을 하는 곳들이었다. 박 소장은 세 번째로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고 자원 재활용을 극대화하면서 도시 전반의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특별취재팀 구정은·정유진·남지원 국제부, 김보미 전국사회부, 윤승민 경제부, 김창길 사진부 기자, 오관철 베이징·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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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서울시립대에서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 나탈리 두알때 밸무드스를 만났다. 콜롬비아 보고타시 지구계획사무국에 일하는 공무원이다. 도시계획을 배우기 위해 1년 전 한국에 왔단다. “서울에서는 무엇인가 ‘바꾸자’ 하면 바로 실행되더라고요. 위례신도시는 7년이 걸렸다는데, 보고타는 계획을 확정하는 데에만 5년이 걸려요.” 같이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쿨락 안톤은 동유럽 벨라루스 페르보마이스키의 지방공무원으로 도시계획·건설책임자다. 그래서 뉴타운 정책에 관심이 많다. 그는 “재개발을 하거나 지하철 공사를 할 때 공공기관이 정책을 세우고 민간이 건설을 맡는 구조는 흥미롭다. 효율적인 재개발 방식으로 벨라루스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나탈리 두알때 밸무드스·쿨락 안톤·카르바잘 핀토 바바라(왼쪽부터)


이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서울의 속도다. “서울의 인구밀도와 성장속도는 압축성장 모델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적절한 방법이었음을 보여준다. 보고타는 도심 공간이 부족하다. 서울의 재개발 과정에서 건물을 복합용도로 사용해 생산성을 높였던 정책을 들여다보고 있다.”(나탈리) “서울은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들과 다른 계획성장을 택했다. 성장속도가 빨랐던 것은 이 방식이 효율적이었다는 얘기다. 서울은 목표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시개발의 성과가 나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성공한 경험은 무엇이든 도움이 된다.”(쿨락)

압축성장이 필요한 곳에 서울의 경험은 유용한 팁이라고 했다. 보고타에서 온 도시계획가 카르바잘 핀토 바바라는 “서울은 신도시 건설 등의 큰 프로젝트뿐 아니라 여성용 원룸 짓기 같은 작은 프로젝트도 동시에 진행하는 식으로 다양한 도시계획을 실현하고 있다”고 했다. 

“9개 지하철 노선을 비롯한 대중교통과 도로·주택·공원 같은 공공공간, 무역·상업단지까지 짧은 시간 내에 완성했잖아요. 법 규정도 견인차 역할을 한 것 같더군요. 토지보상제가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도 비슷한 법이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해요.”

서울은 살기 좋은 도시라고도 했다. “급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도시 기반시설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한 방법이 궁금한 거예요. 수돗물도 그렇고, 어디서든 10~15분 내 탈 수 있는 대중교통도 그렇죠. 주거지 바로 옆에 상업지가 있어 편리한 점도 있고요. 마곡단지는 정보기술(IT) 산업단지인데 주거도 가능하잖아요. 아마 서울은 사람들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빠르게 발전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을 거예요. 가난하고, 집이 없는 사람도 모였죠. 답은 ‘콤팩트시티’(Compact city)인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일하고 돌아와 아이를 키우고 여가를 보내는 것이 작은 생활반경 안에서 해결되도록 한 것이죠.”(나탈리)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경쟁력도 들려줬다. 

카르바잘은 한마디로 “지루하지 않은 도시”라고 했다. “갤러리와 도서관, 공원 등 문화공간이 많아요. 가장 좋은 것은 산이에요. 북한산을 자주 가는데, 시민들이 언제든 오를 산이 도심 복판에 있다는 것은 서울의 큰 자산이죠.” 나탈리는 ‘사람’이 서울의 강점이라고 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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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울의 도시철학’을 묻는다

인구 1038만명. 1인당 소득 2만8739달러. 도시 지속가능성 세계 7위.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서울이 60여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일제로부터 독립해 잃어버렸던 이름, 한성이 아닌 서울을 되찾은 지 70년. 1964년 342만명이던 인구는 3배가 됐고 국민 5명 중 1명이 서울에 터를 잡았다. 1961년 100달러에도 못 미쳤던 개인소득은 300배로 늘었다. 

판자촌 밀어낸 산업화 상징


세계에서 9번째로 비싼 물가, 청년실업률이 10%를 넘고 혼자 사는 청년의 36%가 주거빈곤층인 곳. 무질서한 도로와 옛 소련식 콘크리트 아파트, ‘영혼없는 단조로움’(론리플래닛 서울판)이 가득한 세계 최악의 도시 3위. 성장과 효율성을 내걸고 달려온 서울의 또 다른 성적표다. 격변의 한국, 그 수도 서울은 어떤 도시철학을 담고 있을까.

서울 종로3가와 퇴계로3가를 잇는 세운상가의 지난해 7월 모습이다. 세운상가는 한국의 첫 주상복합건물이며, 서울의 도시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곳이다. 전후 도심재개발의 일환으로 지어진 이 상가는 한때 전자·전기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쇠락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다시 살릴 방법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 ‘서울 철학’과 세운상가

해방 후 냉전의 중심에 섰던 한국의 운명은 서울 곳곳에도 흔적을 남겼다. 일제는 1930년대 말 태평양전쟁을 시작했고 한성 역시 공습 대비에 들어갔다. 4대문 안을 가르는 청계천을 따라 동서로 곧게 뻗은 길. 폭격을 받아 불길이 이 도로를 타고 도심 전체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일제는 남북으로 소개 도로를 냈다. 왕실 사당인 종묘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로 한복판에 폭 50m, 길이 1㎞를 치워 소개 도로를 완성했으나 일제는 이 커다란 빈터를 만들고 두 달 뒤 패망했다.

광복의 기쁨이 찾아왔지만 서울은 곧 한국전쟁으로 쑥대밭이 됐다. 피란길에 오른 이들이 종로 가운데의 텅 빈 옛 소개도로에 판잣집을 지었다. 전후 이곳은 빈민촌과 사창가가 됐다. 1960년대 도심재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했던 군사정권에는 이 슬럼가가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판자촌을 밀어내 서울의 랜드마크를 짓기로 한다. 건축가 김수근은 이 소개도로를 따라 한국의 첫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를 제안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2차 세계대전 후 복구 과정에서 전 세계는 옛 도시를 복원할지, 새 정체성을 만들지 고민했다”며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수근식 모더니즘의 결합이 세운상가로 구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성장의 열망이 세워올린 세운상가는 전자·전기·기계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TV와 컴퓨터 수요가 늘던 시기에 이 상가는 강북의 거대 산업생태계를 이끌었다. 구하지 못할 부품이 없었고, 조립하지 못하는 게 없었다. ‘세운상가에선 미사일도 만든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위쪽 아파트 건물에는 슈퍼마켓, 실내골프장, 피트니스센터도 있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이곳 주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1990년대에 누릴 삶을 살고 있었다.


첫 정비방안 나온 지 36년, 사업 미궁에… 사실상 방치

이름처럼 ‘세상의 기운을 모은’ 상가를 흔든 것은 1968년 1·21사태다. 무장공비가 들어와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다. 안보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강북 대신 강남’이 대세가 됐다. 강남 개발의 시동이 걸렸고 1979년 세운상가는 정비에 들어갔다. 용산전자상가가 급부상한 1990년대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줄자 더 이상 서울의 현대화에 쓸모가 없어진 세운상가는 ‘빽판’ ‘빨간테이프’ ‘야한 잡지’의 기억조차 덮어야 했다. 2007년 마침내 전면 철거 계획이 확정됐다.

하지만 주민을 배제한 도시계획은 갈등을 낳았다. 700%가 넘는 용적률, 재개발 기대심리로 치솟은 땅값. 주민들의 개발 부담은 커졌고 상가 안팎에선 불협화음이 나왔다. 세계 경제위기로 부동산 경기마저 침체되자 사업성은 미궁에 빠졌다. 첫 정비안이 나온 지 30년이 지나도록 세운상가는 방치됐다.


■ 무질서의 역사… 서울식 해법

서울은 유럽·미주 도시와 100년 넘게 벌어져 있던 산업화 속도를 따라잡아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덕분에 도시에는 무질서한 공간이 산재해 있고, 시민들의 삶속엔 불평등이 스며 있다. 서울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한 네덜란드 건축가 바트 레우세르는 질서 없는 서울의 도심 경관을 ‘생존을 위한 흔적’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쓴 책 <서울해결법(Seoulutions)>은 해방 후 반세기 넘게 굴곡진 삶을 견뎌온 ‘서울(Seoul)의 해법(Solution)’을 이야기한다.

수평·수직으로 덧대고 덧붙여 면적을 늘리고 층마다 출입문을 단 뒤 외부계단으로 연결한 주택들은 도시 구조물이 살아 숨쉬는 존재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택가와 상업지가 얽혀 있는 홍대에 주목했다. 1층을 개조해 사무실로 만든 주택, 에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 있는 시장. 예상치 못했던 변화를 받아들이며 사회·경제적 요구를 그때그때 담아온 홍대의 끊임 없는 변화는 서울의 역동성을 대표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불법 건축행위가 사회에 흡수돼 합법화되는 유연성을 한국의 독특한 도시변형 요소로 봤다. 용적률과 고도제한 같은 법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경제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조금씩 편법을 오가는 건축물들은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용도폐기·복원’ 해법 주목


서울은 최근 성장의 대안이 될 철학을 찾고 있다. 낡은 것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고쳐쓸 수도 있다, 두서없이 쌓인 기억도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발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를 ‘재개발’하지 않아도 ‘재생’시킬 수 있다. 세운상가도 이 방향에 맞춰 철거하는 대신 축적된 기술을 이용해 강북의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2006년 되살아난 청계천과 다시 한번 만나게끔 보행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생태적 재생뿐 아니라 건물 자체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적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며 “세운상가의 기억과 역사를 복원하는 것도 도시의 자원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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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세계의 지역화폐들

브라질 포르탈레자의 파우마스 은행이 발행하는 ‘파우마’와 같은 소규모 화폐를 통칭 대안화폐 혹은 지역화폐라 부른다. 파우마처럼 돈(지폐)의 형태를 띤 것들도 있고, 계좌상의 가상화폐로만 유통되는 것도 있다. 지역의 돈이 지역 안에서 쓰이게 하자는 것이다. 은퇴자들이나 기존 경제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이 노동력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목표의 하나다.

미국의 이타카아워


독일의 킴가우어


대표적인 지역화폐는 1983년 캐나다의 마이클 린턴이 만든 ‘레츠(LETS)’라는 것이다. ‘지역 내 교환시스템’의 약칭인 레츠는 밴쿠버 근교의 코트니에서 시작돼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일한 시간만큼을 화폐처럼 적립하고 교환할 수 있게 한 가상화폐들도 있다.

미국 워싱턴에는 자원자들이 노동한 시간만큼을 적립, 다른 이들의 노동이나 생산물과 교환하는 타임달러라는 게 있다. 1991년 뉴욕주 이타카라는 소도시에서 시작된 ‘이타카아워(Ithaca Hours)’도 비슷한 개념이다. 이타카에서는 가상계좌가 아니라 지폐를 만들어 실제로 통용시킨다.

‘틀랄록(Tlaloc)’은 원래 아스테카 문명에서 비(雨)의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멕시코시티의 대학교수이자 건축가였던 루이스 로페스예라 멘데스는 1985년 지진이 도시를 강타한 뒤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과 빈민들을 돕기 위해 ‘민중을 위한 개발(PDP)’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이 기구는 1995년 틀랄록이라는 이름의 지역화폐 시스템을 출범시켰다. 아르헨티나의 크레디토, 프랑스의 SOL, 독일의 슈테른탈러와 킴가우어, 영국의 브리스톨파운드 같은 지역화폐들이 유통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서민들 사이에서 ‘신트랄’이라는 대안화폐가 널리 쓰인다. 소비자와 판매자 간 합의만 이뤄지면 누구든 스스로 발행하는 통화다.

시민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기구인 ‘인간도시컨센서스’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대전한밭레츠, 과천품앗이, 성미산공동체, 서초품앗이, 구미사랑고리, 부산사하품앗이 등이 지역화폐를 만들어 지역 안에서 돈이 돌 수 있게 하고 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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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주민연합 장수 회원 67세 루르데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의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면서 직원에게 “콘준토 파우메이라스 주민연합 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분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직원은 흔쾌히 두 블록 떨어진 곳까지 안내해줬다. 찾아간 곳은 마리아 데 루르데스(67)의 집이었다. 파우마스 은행에서 배운 봉제기술로 인형을 만들어 파는 루르데스는 이날도 집 한쪽 작업실에서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루르데스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재봉틀 작업을 하고 있다.


해변 마을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루르데스는 1980년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해 허허벌판 위에 천막을 치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그때 정부로부터 내팽개쳐졌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하루하루 버티다가 주민연합 가입을 권고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위해 주민연합이 무엇인지 길거리 연극과 라디오 방송으로 알리고 있었다. 회원이 되려면 매달 3헤알(약 1020원) 정도를 내야 했다. 삯바느질로 살아온 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어떤 이들은 “말만 번드르르하고 돈만 뜯어 갈 것”이라며 말렸으나 루르데스는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 “그때 저희는 누구라도 좋으니 도움이 절실했어요. 저부터 참여해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997년 파우마스 은행이 설립되자 누구보다 먼저 은행의 봉제기술 강좌를 들었다. 기술을 배우자 삯바느질보다 훨씬 벌이가 좋은 옷이나 인형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무이자 대출을 받아 원단을 사서 인형을 만들었다. 그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파우마스 은행으로 달려갔고, 그때마다 은행은 100~300헤알을 빌려줬다”면서 “언제든 돈을 빌릴 보루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위안과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파우마스 봉제기술학교 자문위원이 되어 자신이 배운 것을 주민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월회비가 아깝다며 만류하던 이들도 지금은 똑같이 지역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불공평하게 느껴진 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이미 제가 낸 회비보다 더 큰 것을 돌려받았습니다. 제 회비가 모두가 잘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그것이 더 기뻐요.”

<포르탈레자(브라질) |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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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브라질 포르탈레자 ‘기적의 은행’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는 해안 관광도시다. 백사장과 야자수가 해마다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혹한다. 바닷가 파라솔 뒤에는 최신식 호텔들이 즐비하다. 빈민들이 만든 ‘기적의 은행’ 파우마스는 이 해안에서 내륙으로 23㎞ 떨어진 마을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에 있다.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콘준토 파우메이라스로 가는 사이, 창밖의 풍경은 어느 순간 허름한 벽돌집과 공터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차창 뒤를 돌아보니 해안 끄트머리에 병풍처럼 늘어선 빌딩숲이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해안과 이곳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쳐져 있는 것 같았다.

도시개발에 쫓겨난 이주민 ‘가난 이기자’ 주민연합 조성


버스는 황량한 마을 한복판에 멈췄다. 풍족한 것이라곤 뜨거운 햇살밖에 없는 듯했다. 한 시간 전 바라본 바닷가와 이 마을이 같은 도시에 속한 곳이 맞을까. 노란 2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외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누구도 가난을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다. 변두리 은행,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은행이야!’ 인구 3만명의 빈민촌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파우마스 은행이었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 마을 전경.


■ 버림받은 자들의 마을 ‘콘준토 파우메이라스’ 

도시 개발은 종종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빌딩을 짓고 도로를 놓는 일은 원래 그곳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는 도시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 주민 대다수는 1970년대 초까지 포르탈레자 해안에 살던 가난한 어부들이었다. 정부가 이곳이 가진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시 당국은 1973년 이 지역의 파벨라도스(슬럼 주민을 지칭하는 경멸적 용어)를 교외로 강제 이주시키고 도시 개발을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추방된 원주민들은 포르탈레자 교외의 습지와 공터를 할당받았다. 전기와 수도, 대중교통은 물론 집도, 학교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1973~1981년 내륙 농촌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로 마을 인구는 빠르게 늘었다. 포르탈레자의 깨끗한 거리와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에 취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스스로 뭉쳐야 했다. ‘누구도 가난을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1981년 ‘콘준토 파우메이라스 주민연합’이라는 주민회를 조직했다. 진보적인 가톨릭 교회와 국제 비정부기구(NGO)들도 돕기 시작했다. 주민연합의 1차 목표는 수도, 전력, 도로 등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시 정부를 압박해 예산을 따오고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아 더디지만 조금씩 마을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학교를 지을 벽돌을 날랐다. 주민연합이 조직된 후 7년이 지난 1988년 처음으로 마을에 수도가 놓였고,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대 말에는 파벨라(슬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초기 5곳서만 통용 ‘파우마’ 지금은 240여개 상점서 거래 

마을 내 소비 20%→93%로 경제활동 선순환 이뤄져


그러나 이들 앞에는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이 도시의 꼴을 갖추자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에서조차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주민의 90%는 가구당 소득이 하루 7달러 미만인 빈곤층이었으며 75%는 문맹이었다. 인프라가 갖춰진 지 1년 만에 가옥세와 토지세, 수도료를 낼 수 없는 주민 30%가 이곳을 떠났다. 1997년 주민연합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의 고민은 16년 전 출범할 때와 똑같았다. “우리 모두가 이 마을에서 계속 함께 살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가난한가.”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돈이 없었고, 그나마 번 돈의 대부분을 마을 밖에서 썼다. 여전히 마을은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 ‘껍데기’였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은행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역 단체가 기증한 2000헤알의 기부금으로 시작한 이 공동체 은행은 마을 내 생산과 소비의 불쏘시개가 돼주기 위해 태어났다.

헤알화, 파우마로 교환하는 주민들 지난 2월2일 파우마스 은행 직원(오른쪽)이 브라질 공식 화폐인 헤알화를 파우마스 은행이 발행하는 지역화폐인 ‘파우마’로 교환해주고 있다. 파우마와 헤알은 1 대 1로 교환되며 파우마스 은행과 계약한 마을 내 상점에서만 통용된다.


■ 지역화폐 ‘파우마’를 체험하다

지난 2월2일 파우마스 은행을 방문한 취재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브라질 화폐 ‘헤알’을 파우마스 은행이 발행하는 지역화폐 ‘파우마’로 바꾼 것이었다. 

50헤알(약 1만7000원)을 건네니 50파우마가 돌아왔다. 헤알과 1대1로 교환되는 파우마는 파우마스 은행과 계약한 마을 안 상점에서만 통용된다.

파우마를 다시 헤알로 바꿀 때에는 2%의 관리비용을 공제한다.

처음에는 종이로 카드를 만들어 5개 상점에서 소꿉장난처럼 출발했던 것이 지금은 주유소, 약국, 마트 등 240여개의 상점으로 확대됐다. 파우마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은행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조아킴 지 멜루의 신망 덕분이었다. 

가톨릭 사제로서 사회운동에 헌신해온 그는 1980년대 주민연합에 합류했다. 멜루는 “1997년 당시 주민들은 돈의 80%를 마을 밖에서 썼다”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총생산량보다 ‘돈의 흐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우리의 첫번째 목표는 사람들이 마을 안에서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상인들의 협조가 절실했다. 멜루를 비롯한 주민연합 원로들이 상인들을 직접 설득하러 다녔다. 파우마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유인책도 마련했다. 멜루는 “파우마가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주민연합의 성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신뢰였다”고 말했다. 그 신뢰가 은행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은행을 살리고 마을을 발전시키자는 것에 모두가 자발적으로 동참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마을이 잘살려면 경제적 연대가 필수적”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주인에게 “파우마로 계산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얼마든지 된다”고 답했다. 마을에서 가장 큰 마트의 매니저인 엘리스 안젤라(37)는 “우리는 파우마와 헤알을 전혀 차별하지 않는다”며 “벌어들인 파우마로는 파우마스 은행에 전기요금과 세금을 내는 데 쓴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파우마를 받았지만 이제는 받지 않는다는 가게들도 있다. 멜루는 “파우마 사용률이 초기보다 많이 줄어든 것은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파우마는 마을 내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도구였으며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말했다. 실제 1997년 20%에 불과했던 지역 내 소비 비중은 2011년 93%로까지 증가했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의 한 마트 직원이 지역화폐인 ‘파우마’로 물건값을 받고 있다.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 청년들이 파우마스 은행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 파우마스 은행이 그리는 소비와 생산의 지도

파우마스는 은행의 역할을 넘어 마을 경제공동체를 아우르는 ‘기획재정부’ 역할을 담당한다. 마을 청년들을 고용해 2년마다 한 번씩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품의 종류와 양, 지역 주민들의 씀씀이와 소비 내용을 조사해 ‘소비·생산 지도’를 그리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 지도는 파우마스 은행이 주민들에게 창업 대출을 하고 직업교육을 할 때 소중한 자료로 쓰인다. 멜루는 “가난한 마을이 함께 잘살려면 경제적 연대가 필수적”이라며 “누군가 이미 있는 가게보다 더 크고 좋은 가게를 내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우마스 은행은 제도권 은행의 문턱을 넘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0~3%의 낮은 금리로 창업 대출을 해준다. 이때 ‘소비·생산 지도’를 바탕으로 이들의 창업 계획을 검토한 후 기존 사업과 중복되면 업종을 바꾸도록 설득한다. 한국에서처럼 이미 포화상태인 치킨가게를 열고 싶다고 대출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목 좋은 곳에 더 크고 좋은 인테리어를 갖춘 치킨가게를 열라”고 하기보다는, 치킨 포장박스를 생산하는 사업을 권유해 상생할 수 있도록 조율해 주는 것이다.


2년마다 ‘소비·생산지도’… 업종 중복 때 대체 권유


일례로 파우마스 은행은 지역 청년들이 컴퓨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다른 지역까지 힘들게 버스를 갈아타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에는 컴퓨터 기술 학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 측은 지역 내 한 슈퍼마켓 사장을 찾아가 컴퓨터 관련 분야로 업종을 확장하라고 권유했다. 이미 마을에 슈퍼마켓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 사장은 지금 성공적인 컴퓨터 학원 매니저가 됐다. 이처럼 세심한 업종 선택과 직업교육을 병행한 덕분에 파우마스 은행의 대출 상환율은 93%에 달한다.

파우마스 은행에서 우베란디아(35)라는 주부를 만났다. 버스 운전사인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아이들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졸 학력인 우베란디아가 찾을 수 있는 일거리는 흔치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미리 돈을 모아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의 대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애당초 서류심사 자격이 되지 않았고, 이자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파우마스 은행 대출 광고를 봤다. 파우마스는 기꺼이 4000헤알을 빌려줬다. 파우마스는 마을 경제규모가 커지고 창업 업종이 다양해지면서 최근에는 헤알화로도 대출을 해준다.

창업에 필요한 지식 교육… 대출 상환율 93% 달해


우베란디아는 그 돈으로 향수가게를 열었다. 4년 만에 대출금을 모두 갚고 1000헤알을 저축했다. 지금은 파우마스 은행에서 여성 창업자들을 위해 운영 중인 회계 수업을 듣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후 유명 제과 체인점을 열기 위해서다. 새 사업을 위한 대출 상담을 받던 그는 “파우마스 대출로 사업을 한 뒤 내가 얻은 것은 단순히 돈만이 아니다. 내 자신이 ‘강한 여자’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우베란디아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의 인상이 어땠냐”고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해변과 너무 큰 격차가 느껴졌다고 솔직히 답하자, 그는 “맞다. 우리 마을은 더 많이 발전해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이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혹시 우리 마을에 슈퍼마켓이 얼마나 많은지 봤느냐. 이전에는 구멍가게도 없던 곳이다. 지금 우리 마을에 학교가 얼마나 많은지도 확인했느냐. 그건 아이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의미다.”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는 가난을 힘을 합해 이겨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이었다.


<포르탈레자(브라질) | 글·사진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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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회적 협동조합 카페 실습생

점심시간을 맞은 이탈리아 볼로냐 중심가의 2층짜리 카페테리아 ‘카페 드 라 페’는 파니니며 샌드위치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서빙을 담당한 크리스티안 수치 치멘티니(23)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까만 앞치마를 두른 차림으로 쉴 새 없이 주문을 받고, 접시를 나르고, 손님이 식사를 마친 자리를 청소했다. 수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의 이마와 셔츠 뒷덜미에는 땀이 송글송글 배어 있었다. 치멘티니의 하루는 오전 11시에 출근하면서 시작된다. 점심 손님이 몰리기 전에 가게를 치우고, 낮 12시를 조금 넘기면 주방과 홀을 바쁘게 오가며 서빙을 한다.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1시간 정도 쉴 짬이 난다. 오후 4시부터 1시간 정도 가게를 청소하면 하루가 끝난다.

치멘티니는 요식업 계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졸업 뒤에도 취직이 잘되지 않았다. 학교는 그에게 ‘이우스타레스’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추천했다. 이우스타레스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취업이 힘든 청소년들에게 실습 기회를 주고 일자리를 소개해준다. 주로 사회단체나 법원, 학교 등에서 위탁한 청소년들이 이곳에 온다. 지금까지 이 카페에서 취업교육을 받은 청소년은 모두 350명. 주 30시간, 3~6개월 실습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더 오래 일하기도 한다. 치멘티니는 교육과정을 다 끝내고 실습생 자격으로 2년째 이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협동조합 이우스타레스가 운영하는 카페테리아 ‘카페 드 라 페’에서 실습생 크리스티안 수치 치멘티니가 커피를 손님에게 건네고 있다.


지난 1월26일 이 카페를 찾았다. 카페 책임자이자 요리사인 프란치스코 본필리오리(38)는 “취업하기 힘든 아이들에게 첫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는 첫 경력을 만들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이 아이들이 일을 전혀 해 보지 않은 아이들보다는 현장에서 일을 더 잘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우스타레스는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의욕을 심어주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현장 실습만이 아니라 워드프로세서로 이력서를 작성하는 법 같은 취업 실무도 가르친다. 올해부터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손님들이나 동료들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방법도 지도하기로 했다. 난민이나 이주민 2세, 정규교육을 다 못 받은 아이들에게는 이탈리아어도 가르쳐준다. 소말리아나 중국, 필리핀, 몰도바, 몬테네그로 등에서 온 청소년들이 지금 치멘티니와 함께 일하고 있다. 

치멘티니의 교육기간은 올해 끝난다. “이곳은 나의 두 번째 집과 같은 곳이에요. 이곳에서 만난 동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나를 잘 대우해줘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손님이 뜸한 오후, 부지런히 빈 테이블의 커피잔을 치우면서 그가 말했다.

<볼로냐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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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트렌토 중앙역 부근에는 노란 외벽에 아기자기 흰 간판이 달린 가죽공방 ‘사무엘레’가 있다. 취업이 어려운 이들에게 가죽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알선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1998년 시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하던 이들 4명이 출자해 만들었다.

6개월에서 최대 2년간 취약계층 무상교육

처음에는 직업교육만 하는 조합을 구상했지만, 조합을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생들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다. 창업 아이템으로 가죽공방을 택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월27일 공방에서 만난 다니엘라 주시 부대표(35)는 “조합을 만들 무렵 이곳에서는 가죽제품이 크게 유행했다.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 가죽 재료를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다. 초기 비용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트렌토 협동조합 ‘가죽공방 사무엘레’ 지난 1월27일 이탈리아 트렌토의 협동조합 가죽공방 사무엘레에서 자원봉사자 카트리나 산필리포가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무엘레는 취업이 어려운 이들에게 가죽공예를 가르치고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트렌토 | 남지원 기자


사무엘레는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훈련시켜 노동시장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 미혼모, 외국에서 온 난민 등을 가르친다. 현재 이곳에서 교육받는 ‘학생’은 25명 정도다. 한 사람이 교육을 받는 기간은 6개월에서 2년, 교육비는 받지 않는다. 직원들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조합 운영을 돕는다. 가죽 바느질을 가르치는 자원봉사자 카트리나 산필리포(60)는 다른 조합에서 ‘문제아’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직원들이나 교육생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산필리포처럼 트렌토 주변 지역의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1900명이 넘는다.

교육생들이 만든 제품들은 공방에서 판매된다. 공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중년 남성이 들어와 “아들 결혼식 방명록으로 쓰려고 한다”며 30유로를 주고 갈색 가죽 표지의 두툼한 노트를 사갔다. 교육을 마친 이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일반 기업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사무엘레에서 조합 간 네트워크를 통해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 가방과 종이봉투 따위를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 알피(ALPI)도 이곳 교육생들이 많이 취직하는 곳이다.

일자리 찾기 도와… 수혜자 4만명 달해

트렌토에서는 협동조합이 복지 인프라이기도 하다. 사회적협동조합은 노인과 여성, 장애인, 사회 부적응자 등 소외계층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거나(A유형) 직업훈련을 해주는 형태(B유형)로 나뉜다. 1970년대 오일쇼크 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정부가 시민들의 복지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자,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협동조합이 그 틈을 메우게 됐다. 공공부문은 사회적협동조합과 서비스 구매계약을 체결, 주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한다. 사무엘레도 시의 위탁을 받아 집중력 장애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나 이주민들에게 직업교육을 해주고 있다.

지난 1월27일 이탈리아 트렌토의 협동조합 은행 ‘카사 루랄레’ 앞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트렌토 | 남지원 기자


사회적협동조합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트렌티노에는 그런 조합이 82개가 있다. 트렌토 북쪽에 자리잡은 ‘아리아나’는 장애가 있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돕는 조합이다. 어린이들이 다닐 수 있는 케어 센터와 청소년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운영한다. 갈매기라는 뜻의 ‘일 가비아노’는 알코올·마약중독자, 수감자들에게 목공기술을 가르쳐 벤치나 테이블 등을 만든다. 시내 공원과 놀이터의 벤치와 테이블은 대부분 일 가비아노가 만든 것이다. 핵가족 시대의 가정 내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병인과 가사도우미를 보내는 ‘르 파르팔레’에는 간병인과 가사도우미 400명이 등록돼 있다.

'협동조합은 복지의 한 축' 정부, 조합에 세금 감면

이탈리아 전체로 봐도 사회적협동조합은 복지의 중요한 한 축이다. 이들이 국가 전체 사회서비스의 약 50%를 담당한다. 교육·직업훈련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는 4만명에 이른다. 정부는 이들 조합의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는 물론, 고용보험금이나 후원금에 붙는 세금까지 깎아준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조합에 창업자금과 지원금을 투자해주는 공공기관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8일 이탈리아 협동조합연맹 회원 7000명 앞에서 복지 영역에서 협동조합이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부양시키는 모터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협동조합을 통해 청년들의 고용기회를 창출해야 하며, 의료영역에서 복지의 새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트렌토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황의 메시지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트렌토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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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볼로냐·트렌토협동조합의 힘

협동조합은 소규모 생산자나 소상공인, 소비자들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들이 모여 서로 도와가며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경제조직이다. 협동조합이 창출해낸 이익은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대신 조합원과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도시 경제가 전부 협동조합으로 짜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협동조합 도시 볼로냐와 트렌토 시민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협동조합과 함께 살아간다.

주민 절반이 조합원, 금융·농업·건설 등 모든 분야서 이뤄져

지난 1월26일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주도 볼로냐를 찾았다. 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에게 볼로냐에 협동조합이 얼마나 많으냐고 묻자 “나도 택시협동조합 소속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볼로냐 택시기사들은 회사에 소속되는 대신 협동조합을 만들어 일한다. ‘코타보’라는 이름의 택시조합은 1967년부터 운영됐다. 소속 기사는 81명이다. 조합은 공동 콜센터를 두고 있으며 차량 유지보수와 법률지원을 맡는다.



볼로냐 협동조합 마트 ‘이페르콥’ 1월26일 이탈리아 볼로냐의 ‘협동조합 마트’ 이페르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볼로냐에는 이페르콥의 대형 매장 4곳이 있다. 시민들은 동네 가게에 가듯 협동조합 매장을 찾아 할인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 볼로냐 | 남지원 기자


■ 인구 절반이 조합원, ‘협동조합의 도시’ 트렌토

택시로 10분 정도 달려 ‘이페르콥(Ipercoop)’이라는 슈퍼마켓에 갔다. ‘협동조합 마트’라는 소개를 받고 왔기 때문에 한국의 대형마트와는 다를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페르콥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마트와 다를 바 없었다. 거대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베네통 같은 브랜드부터 안경점과 액세서리 가게, 전자제품 판매점 등이 입점해 있었다. 채소와 과일, 와인과 치즈, 생활용품 등 진열된 물품도 평범한 상점과 똑같았다. 

퇴근 후 장을 보러 온 롱카라티(43)의 바구니에는 채소 몇 종류와 청소용품, 비닐팩이 들어 있었다. 롱카라티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 매장을 찾는다. 생필품은 모두 여기서 산다. 왜 협동조합 마트를 찾느냐고 묻자 그는 “물건은 다른 마트와 똑같지만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훨씬 싸다”고 설명했다. 볼로냐에는 이페르콥의 대형 매장이 4개 있다. 조합원이 아니어도 물건을 살 수 있지만,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되면 구매금액의 일부를 적립받거나 할인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 

볼로냐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찾아 소비자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한국의 대도시 사람들이 동네 마트의 적립카드를 만드는 것처럼 일상적이다. 하지만 두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볼로냐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쓴 돈은 마트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협동조합 영역에 투자된다. 이탈리아 법에 따라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전체 이윤의 80%까지만 분배할 수 있다. 나머지는 반드시 조합 운영에 재투자해야 하고, 전체의 3%는 전국 규모의 협동조합기금에 적립해야 한다. 해산된 협동조합이 남긴 자금도 이 기금에 적립된다.

기금은 새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이익을 내기 어려운 작은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시민들이 마트에서 쓴 돈이 경제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구조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키웠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정부는 협동조합 형태로 기업을 꾸리는 이들에게 법인세 감면 등 여러 혜택을 준다. 지방정부도 협동조합 창립을 장려하고 지원금을 준다.

19세기부터 협동조합 경제를 발전시켜온 이탈리아에는 이런 도시들이 많다. 볼로냐 북쪽, 알프스 산자락의 작은 도시 트렌토는 명실상부 ‘협동조합의 도시’다. 기차역에서 나와 골목길을 걷는 동안 협동조합을 뜻하는 ‘cooperativa’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슈퍼마켓과 카페, 은행, 심지어 하수도 공사를 하고 있던 건설회사조차 협동조합 이름을 달고 있다.

트렌토를 중심도시로 하는 트렌티노 지역의 인구는 50만명인데 2013년 기준으로 절반이 넘는 27만3000명이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트렌티노 전역의 협동조합 수는 533곳이나 된다. 19세기 후반 빈농들이 가톨릭 신부들을 중심으로 모여 협동조합을 꾸리고 연맹을 창설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지금 트렌티노에는 금융과 농업, 소비자, 사회서비스 및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 협동조합이 구성돼 있다. 예금의 68%, 대출의 61%를 협동조합 은행이 담당한다. 농업협동조합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90%나 된다. 1만5000명이 협동조합에 고용돼 일하고 있으며 순자산은 26억유로 규모다. 트렌티노 지역 총생산의 15%, 고용의 14%를 협동조합이 차지한다. 소비자 협동조합 매장 외에 일반 가게가 전혀 없는 마을도 193곳이나 된다.

1월26일 이탈리아 볼로냐의 협동조합 서점 코프 리브레리아에서 시민들이 서가를 둘러보고 있다. 볼로냐 | 남지원 기자


■ 코페르니쿠스가 교편 잡던 대학 옆엔 예스러운 ‘조합 책방’

노인 사회서비스와 문화사업을 하는 ‘스페스’는 트렌티노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 중 하나다. 요양원을 8곳 운영하고 있고 직원은 500명이나 된다. 스페스 관계자들은 “우리는 이윤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사회적인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스페스와 같은 큰 협동조합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곳에서 벌어들인 돈을 수익성 없는 사업부문에 투자하고, 조합원들과 주민들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한다.

스페스는 트렌토 중심가에서 ‘바리첸트로’라는 이름의 식당 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채식 식사와 커피를 파는 레스토랑이기도 하지만 이 공간의 더 큰 목적은 주민들에게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는 것이다. 1월27일 찾은 바리첸트로에는 이탈리아어와 아랍어 코스, 만화 그리기 모임, 어린이를 위한 재활용 천으로 공룡 꼬리 만들기 프로그램, 축구게임 모임, 집 밖에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공부 모임에 참여하라는 안내물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경제활동으로 쓴 돈 협동조합에 재투자...지역경제 활성·선순환

햇볕 잘 드는 테이블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네 사람이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회색과 하늘색 털실을 섞어 양말을 뜨던 테오도라 베르티는 “7년째 겨울이 되면 매주 화요일 오후 4시30분에 여기 모여 뜨개질을 한다”고 모임을 소개했다. 뜨개질 같은 옛 가정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할머니들이 이 모임을 만들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볼로냐의 볼로냐대학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15세기 교편을 잡았던 곳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도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1세기에 세워진 이 유서 깊은 대학 옆에는 ‘코프 리브레리아’라는 서점이 있다. 책을 많이 파는 것보다 좋은 책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이 서점 역시 ‘조합 책방’이다. 시집 코너를 둘러보던 시인 도메니코 브란칼레(39)는 “코프 리브레리아는 작은 동네 책방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 오면 서점 주인이 ‘도메니코, 네가 좋아할 만한 책이 여기 있어’라며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뽑아 주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볼로냐·트렌토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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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중국 산둥성 르자오시

중국 산둥(山東)반도 남쪽의 르자오(日照)시에는 생태도시, 정원도시, 에너지모델 도시, 순환경제 도시 등 타이틀이 많이 따라 붙는다. 중국이 세계의 생산기지가 되면서 오염배출국의 오명을 덮어쓰고 있으나, 친환경·저에너지 정책으로 도시를 혁신시킨 사례도 적지 않다. 르자오는 중국의 생태형 미래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

중국의 생태형 미래도시로 손꼽히는 산둥반도 남쪽의 르자오 시내 아파트 단지 지붕마다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돼 있다. 르자오 | 오관철 특파원


인구 290만명의 르자오는 해가 먼저 뜨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태양광 발전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이를 에너지 수급에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지난 1월 말 찾아간 르자오 시내의 아파트들에는 높낮이에 관계없이 지붕이나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태양광 덕에 3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700위안(약 12만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르자오 시 에너지절약과학기술과 위광후이(于光輝) 과장의 설명이다. 절감 액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보급률은 거의 100%에 근접했다.

르자오시 둥강(東港)구 리청화위안(麗城花園)에 사는 주민 장모씨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40평가량 되는 아파트에 지난해 여름 벽면공사를 했다. 소요된 비용 1만1000위안(약 192만원)의 절반은 시에서 내줬다. 장씨는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줘 2도가량 실내온도를 높이고, 여름에는 냉방효과로 2도가량 낮춰준다”고 말했다. 시내 전체 아파트를 대상으로 이런 공사가 2013년부터 시작됐다. 

르자오는 해안선 길이가 168.5㎞에 이르는 바닷가 도시다. 금빛 모래밭이 60㎞ 이상 이어져 ‘골든 코스트’로 불릴 정도다. 시내와 가까운 완핑커우(万平口) 해안은 예전에는 국영 석유기업의 22개 원유탱크가 있어 어수선했고 오염도 심했다. 하지만 2006~2007년 이 시설들을 쫓아냈다. 당국은 국내외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해안 리노베이션을 맡겼다. 그 후 이곳은 수상스포츠와 레저활동이 결합된 복합 해변공원단지로 탈바꿈했다. 시 건설위원회 자오펑(趙峰) 과장은 “생태도시를 만들기 위해 맨 먼저 해안선 위주로 녹화(綠化)를 했다”고 말했다.

르자오를 흐르는 5개의 강은 총 길이가 120㎞에 이른다. 지난해 시 당국은 강의 유역을 할당, 오염방지를 책임지게 한 허장(河長)제도를 도입했다. 강변 일부는 영구 건설금지 구역으로 정해 부동산 개발의 유혹을 막았다. 버려진 채석장 20여곳은 인공호수와 산책로를 갖춘 공원으로 바뀌었다. 채석장 자리에 호수를 만든 인허(銀河)공원에는 강태공이 낚시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강태공의 고향이 르자오다.


모든 아파트 지붕에 집열판, 강 곳곳에 오염방지 책임자...유엔 ‘살기 좋은 도시’ 수상

르자오 도시계획전시관 광장에는 생태도시 건설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조형물이 있다. 2009년 10월5일 유엔 해비타트가 주최하는 ‘살기 좋은 도시’ 상을 받은 것이다. 2007년에는 스위스 바젤 에너지 정상회의에서 세계 클린에너지상을 수상했다. 중국 도시로는 처음이었다. 르자오는 1989년 6월 현에서 시로 승격한 후 생태도시 건설에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췄다. 르자오의 생태도시 조성은 정책의 연속성과 함께 도시계획에 여러 주체들을 참여시킨 점이 특징이다. 시민들은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등을 통해 정부에 제안을 할 수 있다. 중국도시계획설계연구원과 퉁지(同濟)대학, 칭화대학, 베이징임업대학전문가들은 물론 미국과 독일의 연구소들도 참여해 도시계획과 발전을 조언했다.

경제개발과 환경보호 간의 균형을 잡는 데에 성공한 르자오의 경험은 개발도상국들이 모델로 삼을 만하다. 르자오는 자동차 부품과 신에너지 해양산업 관광 물류 등을 성장동력으로 육성을 추진 중이다. 국내 업체 중에는 자동변속기를 생산하는 현대파워텍 등 현대자동차 계열사들이 여럿 입주했다. 환경보호국 류타오(劉濤) 주임은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 기업들을 유치하려 애썼다”며 “환경보호 속에 발전하고 발전 중에 환경을 보호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르자오 | 오관철 특파원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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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래 위한 투자’ 케냐 콘자시티·아부다비 마스다르시티

지난 1월15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를 벗어나 제2의 도시 몸바사로 이어지는 A109번 도로를 달렸다. 해발 1660m의 고원도시인 나이로비에서 벗어나 동부로 내려갈수록 눈에 비치는 풍경들은 바뀌어갔다. 고층건물이 줄지어 선 나이로비와 달리 ‘몸바사 로드’로 불리는 고속도로 주변은 타조와 얼룩말들이 돌아다니는 사바나(초원) 지대다. 나이로비에서 60㎞쯤 떨어진 곳에 이르자 사바나 가운데 서 있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콘자(Konza) 테크노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케냐 정부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떠 만들고 있는 정보기술(IT) 산업도시, 일명 ‘실리콘 사바나’라 불리는 콘자시티 공사현장이었다.

지난 1월18일 케냐 나이로비 인근 마을에서 모바일 입출금 서비스인 ‘엠페사’를 운영하고 있는 가게로 한 이용객이 들어가고 있다. 나이로비 | 김창길 기자


케냐 나이로비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콘자시티 건설현장에서 지난 1월15일 도로 기반시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콘자 | 김창길 기자


■ 동아프리카 미래 ‘실리콘 사바나’

1단계 공사는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현장사무소에는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1단계 공사 조감도가 걸려 있다. 160㏊에 걸쳐 생명과학 연구단지, 주거지역, 대학교 등을 건설하는 것이 1단계 공사다. 이 지역을 관통할 4.7㎞ 길이 도로를 닦기 위해 포클레인 2대가 사바나를 덮고 있는 버티졸 토양을 제거하는 중이었다. 아열대 지방에 많이 분포한 버티졸 토양은 날씨가 건조해지면 균열이 생긴다. 콘자시티 전체 개발구역 2000㏊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추공 7개가 있다. 4월까지 이 시추공에 파이프를 연결해 공사현장에 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콘자시티는 인프라 구축이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콘자개발청 관리담당관 아브라함 온뎅은 “인프라 공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투자와 입주 신청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냐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비전 2030’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실리콘 사바나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세계 정보기술 업체들을 유치해 산업단지를 만들고 대학과 주거지역을 짓되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도 보존해 첨단기술과 야생 생태계의 공존을 모색하겠다는 게 케냐 정부의 계획이다.

▲ 케냐 콘자시티
토착 통신사 사파리컴, 은행 없이도 소액 결제 등 모바일 결제서비스 ‘대박’
사파리컴 성공 본 케냐 산단·대학·주거지 공존 IT 중심 발전 전략 세워
신도시 개발로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까지 기대


케냐가 이 프로젝트를 착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토착 통신회사 사파리컴의 성공이 컸다. 사파리컴의 모바일 결제서비스 ‘엠페사’가 속된 말로 대박을 내면서 신흥 IT 강국을 향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통신·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케냐에서는 대도시를 벗어나면 은행을 이용할 수 없었는데 엠페사가 그 빈틈을 메워줬다. 사파리컴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은행을 이용하지 않아도 엠페사 계좌를 개설해 여러 가맹점들에서 소액 결제를 하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엠페사와 제휴한 은행의 예금 서비스도 휴대전화로 이용할 수 있다. 나이로비에서 만난 기드온(25)은 “엠페사가 케냐의 결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사파리컴 덕에 케냐는 아프리카의 통신업계를 장악한 인도 에어텔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됐다.

정부는 엠페사의 성공을 보고 IT 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콘자개발청 관계자는 “대학 교육체계도 정보통신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IBM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동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케냐를 선택한 데다, 정부도 관련 분야 지원을 늘리고 있다. 신기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청년 인구가 60%에 이르고 인구 90%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점도 케냐의 강점이다. 지정학적 이점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집트와 나이지리아는 케냐보다 경제 규모는 크지만 정정이 불안하다. 아프리카에서 정보기술이 앞서나간 곳은 르완다지만 르완다는 케냐보다 경제 규모가 작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등 여러 국제기구와 외국 기업들이 들어가 있는 나이로비는 명실상부한 동아프리카의 중심도시다. 그러나 전국의 빈민들이 몰리면서 나이로비 외곽은 아프리카 최대의 슬럼으로 변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소말리아 출신 난민들까지 밀려들어와 인프라 부족과 치안 문제가 심각하다. 콘자시티는 정보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케냐의 꿈이 실린 곳임과 동시에, 붐비고 오염된 나이로비의 한계를 극복할 해법이기도 하다. 기업뿐 아니라 대학과 주거지역을 함께 만들어, ‘아이디어만 들고 입주할 수 있는’ IT 생태계를 만들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콘자시티는 2030년까지 20만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1월15일 콘자시티 건설 현장사무소에서 현장 관계자가 도시계획도를 보여주고 있다. 160㏊에 걸쳐 생명과학 연구단지, 주거지역, 대학교 등을 건설하는 것이 1단계 공사다. 콘자 | 김창길 기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시티 중앙에 에어컨이 아닌 자연 바람을 이용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바람탑(윈드타워)이 세워져 있다. 건물들도 적당히 그늘이 생기게 배치해 뜨거운 중동의 태양 아래서도 에어컨 없이 야외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 ‘탄소 제로’ 꿈꾸는 마스다르시티

지난 세기 동안 발전과 쇠락을 거쳐온 낡은 도시들의 ‘재생’과 함께, 각국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21세기에 걸맞은 미래형 혁신도시들이다. 거대 산업에 의존해 성장해온 도시들은 이미 30~40년 전부터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정보기술이나 교육산업 등에 미래를 건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보스턴처럼 대학도시에서 연구·개발 중심도시로 거듭난 곳이 있는가 하면, 콘자시티처럼 ‘초원에 새 도시를 짓는’ 계획도 있다.

걸프 에너지 부국들은 ‘화석연료 이후’를 위한 미래도시 구상이 한창이다. 그 중 한 곳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를 찾아갔다. 아부다비가 ‘포스트 석유시대’의 도시 모델로 건설 중인 마스다르시티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1월21일 이 신도시의 중심 시설인 마스다르 인스티튜트(마스다르공과대학)에 들어서니 어른 키만 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온이 낮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스다르시티 디자인 디렉터인 크리스 원이 물었다. 그는 주변 지역보다 이곳의 체감기온이 10도는 낮을 것이라면서, 도시를 설계할 때 공기가 내부에서 최대한 순환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걸프 산유국들은 전기를 펑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유매장량 980억배럴(2013년 추정치), 세계 7위의 원유 보유국인 UAE는 전체 에너지를 화석연료를 통해 얻는다. 이 나라 전기는 100% 석유나 천연가스를 태워 얻는다는 뜻이다. 핵발전량 0%, 수력발전 0%, 재생가능 에너지 0%. 2010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그렇다. 

최근 UAE는 바뀌고 있다. 지난해 6월 UAE는 아부다비에서 에너지 업계 대표들과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미래 에너지 서밋’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세계 최대 풍력 터빈 제조회사인 덴마크의 베스타스와 함께 ‘번영을 위한 바람’ 프로젝트를 추진, 저개발국의 에너지난 해소를 도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UAE를 구성하는 7개 에미리트(토후국) 중 수장 격인 아부다비는 석유 고갈 이후를 내다보며 미래 에너지 투자를 급속히 늘리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에 대한 투자와 함께, 아부다비 미래 구상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마스다르시티다. 

2004년 타계한 아부다비 지도자 자예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이 청정에너지 도시 구상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외부에서는 “UAE의 새로운 쇼가 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아부다비는 2008년 첫삽을 뜬 뒤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정부가 투자한 무바달라 개발회사 계열사인 마스다르가 도시 건설을 떠맡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의 협력으로 마스다르 인스티튜트를 세우고, 석유·가스 산업의 발전 방향과 기후변화 문제를 다룰 연구소를 세웠다. 

지난 1월2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시티에 태양광 패널이 줄지어 설치돼 있다. 패널을 통해 발전된 전기는 마스다르시티 주요 시설들을 가동하는 데 쓰인다.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탄소 제로’ 도시로 건설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마스다르시티 주민들이 도시를 순환하는 무인이동차량인 PRT 정류장에서 내리고 있다. 이 차량은 전기로 운행된다.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 도시의 중심이 된 ‘바람탑’

마스다르시티에서는 도시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곧 에너지 절약이자 미래 전략이다. 원은 “보도블록도 태양열을 흡수해 반사하지 않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마스다르 인스티튜트 외벽은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와 중국 베이징 올림픽 수영 경기장 워터큐브에 쓰였던 ETFE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이 재료는 낮에 흡수한 태양열을 밤에 방출한다. 단열 효과도 뛰어나다. 창문 차양막조차도 직사광선을 받는 시간을 3시간 이내로 줄이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계산돼 만들어졌다. 건물 높이는 4층을 넘지 않게 해 볕이 잘 들지만, 그늘이 적당히 생기게끔 건물들을 배치해 에어컨 없이 야외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마스다르 인스티튜트 한가운데에는 45m의 ‘윈드타워’가 서 있다. 이 탑은 높은 곳에서 바람을 받아들여 공기통을 통해 아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원래 중동의 큰 건물에는 오래전부터 바람 기둥이 있었다. 이란에서는 바드기르, 아랍어로는 말카프라 부르는 전통적인 바람 기둥을 응용해 만든 것이 마스다르의 윈드타워다. 이 탑 덕에 마스다르 인스티튜트는 다른 곳보다 시원하다. 바람탑은 마스다르시티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 아부다비 마스다르시티
에너지 안 아끼던 산유국, 재생가능 에너지 눈 돌려
2008년 도시 건설 첫삽… 공기 순환에 설계 초점 둬
‘윈드타워’ 도시의 명물로… 무인 전기차 PRT도 운행


이 도시의 또 다른 명물은 PRT라는 무인 전기차다. 어른 네 명이 마주보고 탈 수 있는 이 차에는 운전석도 운전자도 없다. 하지만 화면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전진, 후진, 회전 모두 막힘 없이 정해진 구간을 달린다. 정거장 2개 길이의 짧은 노선에 불과하지만 탄소 배출 없는 교통수단으로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마스다르시티는 지금 건설이 진행 중이다. 마스다르사와 독일 지멘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일본 미쓰비시 등 굴지의 기업들을 비롯해 20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나 주거지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마스다르를 ‘탄소 제로(0) 도시’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을 뿐 아니라, 마스다르 인스티튜트와 지멘스 본부 등 주요 건물들도 자체 태양광 패널을 갖고 있다. 

아직은 태양광 발전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지역 발전당국으로부터 전기를 받아 쓰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도시 건설이 늦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부다비 정부의 의지는 굳건해 보였다. 

다만 주민들 사이에 아직은 친환경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모자라는 것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원은 말했다. 


<콘자·아부다비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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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산업화로 텅 빈 도시를 문화로 채운다. 문화로 ‘이야기’를 만들고 정체성을 살리며 지속가능한 도시의 동력으로 삼는 재생 전략은 이미 큰 흐름이다. 영국의 찰스 랜들리는 <창조도시>에서,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론>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말한다.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 역시 <창조하는 도시>에서 전통과 문화로 새 삶을 꾸린 도시를 전하고 있다.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는 유네스코가 2009년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가장 잘 이뤄진 창조도시’로 선정한 곳이다. 연 700만명이 자연을 즐기러 오는 지역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경관조례’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400년 넘게 지진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에도시대부터 쌓인 전통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섬유업체들이 모여 단단한 산업기반이 있다. 견직물과 봉제뿐 아니라 금속·인쇄공업도 발달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_ 위키피디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완성된 가나자와의 문화가 쉽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가 관광자원화 취지로 전통건물 보존지역을 지정하려 하자 주민들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주거환경이 나빠진다며 강하게 저항했고, 관광객과 주민들의 갈등으로 소란을 빚은 경우도 많았다. 토박이 예술가들은 관광산업이 가나자와 문화의 진면목을 없앤다며 맞서기도 했다. 지자체가 지역 문화단체들을 설득해 오랜 시간 주민과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이 가능했다.

서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들이 문화도시를 꿈꾸지만 외부에서 주도하는 재개발이나 겉치레 성과에 치중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과거 가나자와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나가사키(長崎)는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나가사키도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미쓰비시 자본에 장악됐고, 중공업과 조선업 의존도가 높아졌다. 결국 중공업과 조선업 성장이 멈추자 도시 전체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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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독일 함부르크시민들의 도전

법인 만들어 시에 협상 제안, 골목 보존하며 개발하기로

조각을 하는 크리스틴 에벨링(49·사진)에게 독일 함부르크의 골목은 작업실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는 골목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울 홍대앞 같은 느낌의 가게에 청년들이 모여 음악과 사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월13일 카페에 들어서 커피를 주문하자, 점원은 “값은 알아서 달라”고 답했다. 카운터에 붙은 메뉴판에는 “매일 컨디션이 달라 커피 맛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 아닌 경고가 붙어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는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 12채가 남아 있다. 건물 안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한다.


독일 함부르크 ‘강에피어텔’에 있는 작은 터널 안쪽 벽에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놓았다.


에벨링은 커피를 뽑아 카페 옆 자신의 공방으로 들어갔다. 15년 전부터 예술가 친구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던 곳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그동안 이들이 만든 조각과 설치미술, 그림들이 놓여 있다. 골목 한쪽 큰 길과 맞닿은 터널은 분홍색으로 칠하고 ‘골목으로 오라’(komm in die Gange)는 간판도 달았다. 골목(Gang)과 구역(Viertel)을 합친 이름의 공간, ‘강에피어텔’(Gangeviertel)이다.

크리스틴 에벨링


에벨링이 이곳에 온 것은 2000년 즈음이다. 함부르크 시청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인 이곳은 낡은 건물이 늘어선 골목이었다. 1953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2채 건물은 재개발되지 않아 옛 모습 그대로였다. 도심 속에 버려진 골목은 그 자체로 예술가들이 간절히 찾는 공방이었다. 밤새 불을 켜고 그림을 그려도 되고, 큰 소리로 음악을 연주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에벨링은 방치된 건물들의 1~2층을 쓸 수 있도록 임시계약 형태로 시의 승인을 받았다. 에벨링을 비롯해 60명 넘는 예술가들이 속속 들어왔다. 여름에는 160~180명이 작업을 하러 찾아왔다. 저마다 재주껏 꾸민 공간에 술집과 카페를 차리고 서로 어울렸다. 골목의 이웃이 된 화가와 작가, 음악가들은 수시로 모여 생각을 나누고 장애인들을 초청해 그림이나 악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땅 값 비싼 도심 속 예술인 마을은 오래 가기 힘들었다. 에벨링은 2009년 시청으로부터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시 소유의 건물 12채를 네덜란드 회사에 넘겨 고층빌딩과 고급 주상복합건물로 재개발하려는 것이었다. 서울 강북의 옛 도심에서도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낡은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돈 있는 이들이 도심으로 회귀하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하는 주민들은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여기서도 논란거리였다.

강에피어텔 주변은 이미 고층건물 숲으로 변한 상태였으니 도움을 청할 이웃도 없었다. “우리는 정당한 입주자인데 이렇게 작업실을 뺏길 수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이들은 ‘불법점거자’가 돼 싸움을 시작했다. 에벨링은 이곳의 이야기를 알리기 시작했고 독일 전역의 화가, 음악가, 건축가들이 힘을 보탰다. 시민들도 옛 골목을 지켜야 한다며 같이 목소리를 냈다. 함부르크 시내 곳곳에서 거리축제와 콘서트를 열었다.

예술가들은 법인을 만들어 스스로 재개발 사업을 떠맡기로 했다. 시에 협상을 제안하고 조합을 결성했다. 강에피어텔 지킴이 190명이 모였고 십시일반 돈을 낸 예술가와 시민 조합원이 300명이었다. 시는 마침내 예술가들을 개발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고 공공자금을 투입해 함부르크의 역사가 담긴 골목을 보존하면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에벨링은 “개발 계획을 세울 때부터 ‘투자자’가 아니라 ‘시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건물 2채가 리모델링됐다.

‘강에피어텔’ 건물 밖에 자전거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만들어져 있다. 함부르크 | 김보미 기자


임대료 인상 등 여전히 ‘숙제’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주민참여 개발이라 해도 새 단장한 건물의 임대료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시는 물론이고 연방정부와 유럽연합(EU) 공공자금까지 포함해 이미 40만유로가 들어갔으니 조합의 권한도 많이 제한될 거예요. 임대료가 얼마나 비싸질지 알 수 없어요.” 리모델링한 건물을 사들이려면 375만유로(약 45억원)나 필요하니 예술가들에겐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99년간 시에 장기임대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에벨링은 골목을 지켜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도심 재개발에 맞선 공동체의 힘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는 데에 있습니다. 기업과 시장논리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대안을 생각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죠. 도시 공간은 상품이 아니라 생활공간임을 인식해야 하는데, 지자체가 그걸 못 하면 재단이나 조합이 해야죠.” 에벨링은 나흘 뒤 함부르크 곳곳에서 발상의 전환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집회를 연다고 했다. 공터였거나 낡은 주택가였던 곳에 대형상업시설이 들어온 곳들을 돌며 쫓겨난 예술가,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다. 그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함부르크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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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남동쪽 끝 톨비악 지구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이 있다. 서울 이화여대 ECC를 설계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이 건물을 지었다. 반쯤 펴진 책을 상징하는 L자형 건물 네 채가 안마당을 둘러싼 구조로 된 이 건물은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와 함께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건축물로 꼽힌다.


국립 미테랑도서관 건립, 주민 늘고 젊은층 명소로...“살고 싶은 곳으로 바뀌어”

지난 1월30일 미테랑도서관을 찾았다. 현대적으로 장식된 열람실은 절반 넘게 차 있었다. 대학생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나이 지긋한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도서관 앞 카페는 재잘거리는 젊은이들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도서관 18층에 올라서자 몽마르트르 언덕부터 에펠탑까지,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안내를 맡은 직원 카롤 르리가브는 창밖을 가리키며 “이쪽은 주거지구, 이쪽은 업무지구가 조성돼 있다. 건너편은 공원”이라고 설명해줬다.



프랑스 파리 톨비악의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전경. 산업이 쇠락한 뒤 1980년대까지 폐허처럼 방치됐던 파리 남부 톨비악은 국가적인 ‘랜드마크 사업’으로 추진된 도서관 건립과 함께 문화와 학술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도서관이 생긴 뒤 교통이 확충되고 공원과 산책길이 조성되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파리 | 남지원 기자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센강 쪽에서 강아지와 함께 걸어오는 주부 야니크(55)와 마주쳤다. 야니크는 톨비악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톨비악은 “물건을 실어나르는 배와 상인들로 북적북적하고 활기찬 동네”였다. 톨비악은 파리 외곽순환도로와 가깝운데다 센강 하구를 끼고 있고 기차역이 있는 교통의 요충이다. 상업과 운송업의 중심지였고, 물류창고와 소규모 공장들도 밀집해 있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여기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야니크를 비롯한 주민들에게 전해들은 톨비악의 궤적은 스페인의 빌바오와 거의 비슷했다. 두 곳 모두 산업시대의 물류 중심지에서 낙후된 채 버려진 지역이 됐다. 빌바오가 더러워진 강을 살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도시를 살린 것처럼, 톨비악도 지역을 살릴 핵심 아이템을 찾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1980년대까지 거의 폐허로 남아 있던 톨비악에 ‘새로운 도시’로 가는 열쇠가 되어준 것은 도서관이었다. 국립도서관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도시개발을 진행하던 프랑스 정부는 1980년대에 새 국립도서관 건설계획을 세웠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은 새 도서관이 파리를 대표할 랜드마크가 되어야 하며, 사회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열린 문화공간이 돼야 한다고 봤다. 정부는 시 소유지였던 쇠락한 상업지구 톨비악을 도서관 부지로 결정했다. 마침내 1996년 완공된 도서관은 장서 규모만 140만권에 달한다.

도서관은 눈에 보이는 랜드마크를 넘어 지역 전체를 바꾼 거대한 문화 인프라가 됐다. 톨비악을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고, 낙후되고 텅 빈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뒤이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톨비악이 도심과 더 잘 연결돼야 도서관이 온전히 시민들의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도서관을 짓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주변 공간을 모두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부와 시는 도서관 주변을 재개발해 주거지역과 업무지구로 만들었다. 도서관 건물과 조화시키기 위해 주변 건축에도 도서관의 주재료인 나무와 유리, 메탈, 콘크리트가 주로 사용됐다.

1990년대 후반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다. 야니크는 “도서관이 생긴 뒤 내 삶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이웃들이 생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변의 아름다운 도서관 근처에 조성된 신도시는 파리지앵의 인기를 끌었다. 문화시설과 편의시설, 녹지 공간도 늘어났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스포츠센터가 들어섰고, 지하철이 새로 뚫렸다. 파리 제7대학이 2006년 도서관 옆으로 이전해오기도 했다. 야니크는 도서관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도서관이 생긴 후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교통이 편해졌고 동네가 깨끗해졌어요. 센강과 골목길을 따라 산책하고 집 근처로 소풍 가 햇빛을 쬐는 즐거움을 전에는 몰랐어요.”

루브르박물관 분관 지은 프랑스 랑스·UAE 아부다비 “도시 이미지·정체성 바꿔”

문화예술은 쇠락한 도시 이미지를 지우고, 새롭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입시킨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도 한다. 유럽의 낡은 공업도시들에서 도시를 되살리는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가 ‘문화도시 만들기’다. 파리에서 200㎞ 떨어진 랑스도 그런 예다. 석탄산업이 침체돼 폐광 도시가 된 랑스에는 2012년 루브르박물관의 첫 분관이 들어섰다.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루브르 소장품 205점이 이곳으로 옮겨갔다. 랑스는 루브르 분관을 통해 폐광 도시에서 미술관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개관 첫 해에만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90만명의 관람객이 랑스에 몰렸다.

올해 문을 여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루브르박물관 분관 가상도. 도시와 다리로 연결된 사디야트섬의 2.43㎢ 규모 문화지구에 위치한다. | 루브르 아부다비 분관 홈페이지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에 투자하고 나선 대표적인 지역은 중동 석유부국들이다. 걸프 부국들은 막대한 오일머니로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층 건물’ ‘세계 최초의 7성호텔’이 외신에는 많이 보도됐으나 실상 이들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석유 시대 이후에도 살아남을 문화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다. 가장 앞서나간다는 평을 듣는 도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다. 도시와 600m 길이의 다리로 연결된 사디야트섬의 2.43㎢ 규모 문화지구에는 올해 루브르박물관의 세 번째 분관이 문을 연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루브르 아부다비’는 바다 위의 흰 돔으로 이뤄져 있다. 내년에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분관과 자이드국립박물관이 문을 열면 아부다비는 3개의 거대한 박물관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카타르 왕실은 도하의 거대한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거장들의 작품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지난달 카타르 왕실은 폴 고갱이 타히티 시절 그린 그림 ‘언제 결혼하니’를 약 3억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다. 중동 국가들은 세계 유명 대학 분교 유치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아부다비에서는 미국 뉴욕대 분교가 문을 열었고, 파리 소르본대학 분교도 있다. UAE 두바이에는 런던비즈니스스쿨과 미국 미시간주립대, 카타르에는 미국 조지타운대 등의 분교가 들어서 있다.

일본 요코하마는 바깥에서 인프라를 끌어오는 대신 역사적 건축물과 예술가들의 창조활동을 접목시켜 독특한 문화도시로 발돋움했다. 2000년대부터 ‘창조도시 프로젝트’를 가동한 요코하마가 가장 중시한 것은 예술가들이 정착해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자는 구상이었다. 요코하마는 시내에 많이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중 일부를 사들여 예술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다이이치은행 건물이 대표적이다. 요코하마는 도시 고유의 색채를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도시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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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확장 막기 위해 역 중심으로 자전거도로
외곽에 차전용도로 설계
아이들 맘껏 골목 누벼도 시내 교통사고 거의 없어


지난 1월15일, 네덜란드의 소도시 하우턴역에 도착했다. 인구 5만명이 사는 이 도시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40분 남짓 가면 나온다. 아침부터 비가 제법 내렸지만 조용하고 아담한 거리에는 일과를 시작한 주민들과 학교 가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2층 플랫폼에서 1층으로 내려가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앙개찰구가 자전거 수백대에 ‘포위’돼 있었다. 출입문이 열리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운전자들은 능숙하게 빈자리에 자전거를 대고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자전거를 탄 채 기차역에 들어와 1~2분 내 열차로 환승하는 시스템은 세계에서 하우턴역밖에 없다고 했다. 

하우턴은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에서도 ‘꿈의 자전거 마을’이다. 나비가 날개를 펼친 모양의 이 도시는 네덜란드의 대표 ‘피스타드’(Fietsstad·자전거 도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대로를 1월14일 오전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줄지어 지나고 있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하우턴의 도로를 체험해보기 위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내로 나갔다. 역 주변에 상점들이 있고, 역에서 동서로 뻗은 큰 자전거 도로 옆에 시청과 초등학교가 있다. 붉은 바닥이 깔린 길을 따라 달리니, 나무가 빼곡한 골목 여기저기 주택들이 보였다. 바닥에는 방지턱이나 꼬마 언덕이 울퉁불퉁 계속된다. 속도를 낮추기 위한 장치다. 하우턴에서 차와 자전거는 시속 30㎞를 넘을 수 없다. 외곽으로 나가자 도시를 에워싼 자동차전용도로(링로드)가 나왔다. 그 아래 굴다리 밑으로 난 자전거길은 대도시 위트레흐트까지 이어져 있다. 아이들은 이 길을 따라 20분 거리에 있는 위트레흐트의 고등학교에 다니고, 직장인들은 위트레흐트대학에 있는 직장으로 향한다.

1970년대 초 하우턴은 3000명이 사는 소도시였다. 정부는 이곳을 10만명 규모의 베드타운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옛 도심을 지키고 싶었던 주민들이 반발했다. 논의 끝에 인구는 3만명까지만 늘리기로 했다. 단 새 도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다니기 편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우턴역을 짓고, 역을 중심으로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이 길가에 학교와 상점 등을 배치했다. 마을 안에서의 이동은 자전거만 있으면 충분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1월15일 네덜란드 하우턴역 개찰구 주변에 수백대의 자전거가 서 있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골목에 집들을 짓고, 도시가 더 커지지 않게 링로드를 둘렀다. 자동차로 도시를 가로지를 수 없기 때문에 차를 타고 이동하려면 일단 링로드로 나갔다가 다시 샛길로 들어가야 한다. 자전거로는 어디든 8~9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 차를 타면 갈 길은 복잡해진다.

1990년대 도시를 확장할 때에도 설계의 기본은 유지됐다. 링로드 경계를 허물지 않고 쌍둥이 마을을 하나 더 붙였다. 카스텔룸 하우턴역을 내고 중앙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일직선이 아닌 5각형 도로를 제방처럼 쌓았다. 공공시설은 역시 자전거길 중심으로 배치했고, 경계에 링로드를 만들었다. 나비 모양의 하우턴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이 도시 안에서는 차를 타면 몹시 불편하다. 자전거에서 내려, 하우턴역에서 카스텔룸까지 차를 타고 가봤다. 도심을 못 지나니 하우턴 중앙 자전거길 부근 좁은 차로를 지나 링로드로 나갔다. 반대편 날개의 링로드로 이동해 카스텔룸역과 닿아 있는 좁은 차로로 들어갔는데, 곳곳이 막다른 길이었다. 자전거도로와 일방통행로가 많아 10여분을 헤맸다. 하우턴에서는 차량용 표지판을 찾기 힘들다.

그 대신에 주민들은 안전과 자유를 얻었다. 아이들은 마음껏 골목을 돌아다니고 자전거를 탄다. 유치원생들도 부모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시내 교통사고는 거의 없다. 10년 전 시내버스도 아예 사라졌다. 도시 안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 외에 다른 교통수단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


하우턴의 철학 ‘놀이처럼 즐기며 사는 마을’

하우턴의 집들은 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 길은 손금처럼 방향성을 알 수 없게 여기저기로 나 있다. 숲속 공원 같기도 하고 동화 속 마을 같기도 한 이 자전거 도시는 누가 만들었을까.


지난 1월15일 하우턴 시 도시계획 담당자 안드레 보터만스를 만나 물었다. 그는 “도시계획에서는 교통, 건축, 공공공간에 어떻게 철학을 반영할지 고민한다”며 말을 꺼냈다. 1960년대에는 크고 높은 건물, 자동차와 대형 주차장이 공간에 대한 의식을 지배했다. 70년대에 그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차 대신 아이들이 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민들, 도시계획가들이 하우턴에 모여 이런 시대적 요구와 이상을 현실로 만든 겁니다.”

하우턴 지도 _ 위키피디아


무엇보다 주민들은 도시가 커지거나 위트레흐트 같은 대도시에 흡수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도시 경계에 링로드를 만든 것은 확장을 막기 위해서였다. “격자 모양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도시는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놀이처럼 즐기며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려 했던 반세기 전 도시계획이 실현된 셈입니다.”

마침 당시에는 녹색정책이 힘을 얻고 있었고, 녹색당의 발언권도 컸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몇몇 정책은 50년이 지나서야 완성됐어요. 세계에서 하우턴을 보러온 이들에게 저는 ‘기다리라’고 조언합니다. 10년도 짧을 수 있어요.” 하우턴은 모든 기능을 곳곳에 분산시켜 학교와 직장과 상점이 모두 자전거로 갈 만한 거리에 있게 했다. 자전거 길만 잘 닦는다고 될 일은 아닌 셈이다.

서울도 자전거 천국이 될 수 있을까. 보터만스도 “이 실험을 대도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하우턴이 날개 한쪽만 있을 때는 주민 이동수단 중 43%가 자전거였지만, 한쪽 더 확장되면서 37%로 줄었다. 다른 곳에 집을 두고 하우턴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차를 타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제구조는 물론이고 시민들의 생각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총리도 자전거로 출퇴근해요. 사회에서 자전거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도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시장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졌다.

<하우턴(네덜란드)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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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민·관 협력 에너지주택 설계

태양광 패널을 얹은 16세기 교회, 전기 대신 지붕에서 열을 끌어다 쓰는 레스토랑. 중세 건축물과 대학 캠퍼스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도시인 독일 튀빙겐은 친환경 건물의 실험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 1월12일 남쪽 뮐렌지구 주택가에 들어서자 저녁놀에 물든 한 건물 벽(사진)이 유난히 반짝였다. 창문처럼 생긴 네모난 유리는 가까이에서 보니 태양광 패널이다. 문 옆 디지털 안내판에는 이 패널들로 생산한 전기량이 뜬다. 5층짜리 건물 곳곳 패널들로 1월 들어 그때까지 모은 전기는 3590W였다.


바로 옆 4층 주택은 베란다 없이 큰 창문이 벽을 채우고 있다. 알루미늄 대신 나무를 여러 겹 쌓은 창호를 둘러 단열이 잘된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고급 주택 옥상에는 이끼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었다. 1535년 지어진 마을교회는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다시 얹었다. 강변의 유명 식당은 태양열 집열기로 지하 양조장을 돌린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면 건물 짓는 비용이 10%는 더 들어간다. 그런데도 건축주가 이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정부 보조금과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튀빙겐시는 1990년대 뮐렌지구와 옛 프랑스군 주둔지 등을 재개발하면서 에너지 철학이 맞는 건축가들과 함께 건축주들을 설득했다. 튀빙겐 건축가워킹그룹의 가르시아 엘첼은 “독일의 재생에너지는 처음엔 비싼 석유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이런 흐름이 더 확고해지고 있다”며 “기름값이 떨어져도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흔들릴 수 없다”고 말했다.

<튀빙겐(독일)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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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들

▲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
메구로 강바람 이용해 도심 ‘열섬 현상’ 차단
프랑스·독일 등에선 자전거·전기차 공유


도시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는 태생적으로 자연과의 공존에 한계를 안고 있다. 오랜 세월 개발과 산업화를 거쳐온 도시들은 자연을 희생시킨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독일에서는 1990년대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록연정’이 들어선 후 이런 기조가 확고한 정책이 됐고, 현 집권당인 우파 기민·기사연합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탈원전을 키워드로 하는 에너지정책의 변화는 ‘도시에서 자연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연방정부가 2000년 ‘지속가능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30㏊ 목표제’도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집 짓고 길 내는 데 쓰이는 땅을 2020년까지 하루 30㏊ 이하로 억제한다는 선언이다. 계획이 나올 때만 해도 독일에서는 매일 100㏊ 이상의 자연이 도시환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를 줄이려면 남아있는 자연생태계를 보호하는 동시에 도심의 토지를 재활용해야 한다.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시 보방의 도심 녹지 모습. | 보방마을 홈페이지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의 보방(Vauban)은 군 기지가 이전하면서 5000명이 사는 마을이 들어선 곳이다. 이 도시에는 길과 찻길, 심지어 노면전차가 지나는 선로에도 잔디밭이나 오솔길이 나 있다. 하우턴과 달리 보방은 자동차 운행에 제한을 두는 대신 주차장을 없애 자연스럽게 친환경 이동수단을 주류로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집을 사려면 마을 외곽의 주차구역을 사야 한다. 차가 없거나 앞으로도 차를 살 생각이 없다면 주차구역을 사는 대신에 마을 주변 녹지 지분을 산다. 장차 주차장이 더 필요해질 경우 이 지분을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에, 녹지를 사는 것은 주민의 의무이자 투자가 된다.

일본 도쿄에는 ‘바람 부는 마을’이 있다. 도쿄 남부 오사키(大崎)역 주변은 공장지대가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1970년대에 재개발됐다. 당시 시나가와(品川)구가 난개발을 막고자 세운 원칙은 메구로(目黑)강을 끼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당국은 오사키 남동쪽 도쿄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도심으로 부는 길목이 되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60㏊의 개발 지대가 바람길이 되게 해 ‘열섬 현상’을 막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강을 따라 바람이 지나도록 도로와 건축물을 설계했다. 주택가의 건물 옥상, 벽면은 식물로 덮었다. 강변에도 녹지를 만들어 온도를 낮췄다.

2010년 동계올림픽 선수촌이 있었던 캐나다 밴쿠버의 폴스크릭은 사람들이 쓰고 버린 열(熱)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마을은 ‘지역에너지시스템’을 만들어 주민들이 설거지나 샤워를 하고 흘려보내는 물을 모은다. 양수장의 작은 발전소에서는 하수도의 따뜻한 물에서 열을 뽑아내 전기를 생산한다. 이 시스템이 생긴 뒤 폴스크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4분의 1로 줄었다.

1996년 화석연료 없는 도시를 선언한 스웨덴 크로노베리 주의 주도 벡셰는 유럽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꼽힌다. 1인당 온실가스 발생량을 2025년까지 1993년의 70%로 줄이려는 이곳은 203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아예 끝내려 하고 있다. 석유 대신 나무를 쓰고 남은 찌꺼기를 모아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고, 쓰레기는 20가지로 분류해 재활용한다. 벡셰의 지속가능 에너지 사용 비율은 2012년 전체 에너지의 절반이 넘는 58%에 이르렀다.

친환경 접근에 경제성이 맞물린 ‘공유’는 도시 지속가능성의 가장 큰 화두다. 프랑스 파리는 도시 안팎에 공유자전거 ‘벨리브’ 정류장이 1450곳, 공유전기차 ‘오토리브’ 정류장이 1100곳 있다. 파리는 2007년 벨리브가 큰 성공을 거둔 뒤 2011년 오토리브를 도입해 공유교통 체계를 완성했다. 시내든 주택가든 300m마다 벨리브와 오토리브 정류장이 있고, 시민들은 회원가입만 하면 싼 값에 어디서든 자전거와 전기차를 빌려 탈 수 있다. 반납은 아무 정류장에나 세워두면 끝이다. 1월31일 파리에서 만난 중학교 교사 마린(48)은 출퇴근에 오토리브를 이용한다고 했다. 15㎞ 거리를 왕복 10유로(약 1만3000원)에 오가지만 “기름값, 주차비를 생각하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파리는 시 당국이 이런 시스템을 갖췄지만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공유교통도 유럽에선 보편적이다. 지난 1월13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약속 장소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드라이브나우’ 앱을 켜 주변의 공유자동차를 찾았다. BMW의 ‘미니’ 차량이 부근에 있었다.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이 차를 쓰는데 1분당 24유로센트(약 300원)면 된다. 회원카드로 문을 열고 운전해 약속 장소에 도착한 뒤 공용주차장에 세웠다. 약속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누군가 ‘공유해’ 갔다. 이 업체만 2300여대의 공유자동차를 운영하고 있다. 


<함부르크 | 김보미 ·파리 | 남지원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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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규모의 경제로 해결할 수 없는 도시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쪽 끝에 있는 카옐리샤는 흑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다. 케이프타운 외곽의 타운십(한국의 구와 비슷한 행정구역) 중 하나인 이곳의 주민 40만명 중 70%는 판잣집에 산다. 사망률이 매우 높아 인구의 75%가 35세 이하다. 젊은이의 4분의 1은 에이즈에 감염됐다. 케이프타운 최대 빈민촌이 있는 이 지역에는 마을을 지키는 농부들이 산다. 물을 얻으러 200m 이상 걸어야 하는 곳에서 농업은 사치같이 들린다. 하지만 이들의 농업은 마을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고향의 농부’라는 뜻의 시민단체 ‘아발리미 베제카야(Abalimi Bezekhaya)’는 1982년부터 빈민촌에서 텃밭농업 교육을 하고 있다. 이들이 텃밭운동을 시작한 것은 일자리가 없는 빈민들에게 살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남아공은 농업대국이지만 급격히 산업화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작은 농사일들이 없어졌다. 특히 인종분리 시기에 흑인 남성들이 도시와 광산의 노동자로 끌려가면서 농촌이 비게 됐다. 남아 있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러 대도시로 나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도시 카옐리샤 중심의 공터에 만든 마을정원과 일본 후쿠오카현 야나가와시 수로가 정비된 모습(왼쪽 사진부터). | 아발리미 베제카야 소식지·야나가와시 홈페이지


슬럼화된 도시 변두리에 남겨진 가족은 일하러 나간 식구가 돈을 보내오지 않으면 굶주릴 수밖에 없다. 텃밭을 가꾸면 당장 먹거리가 생기고 남는 작물을 팔 수도 있다. ‘아발리미’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버려진 국유지와 빈터에 토마토와 당근, 감자를 심었다. 모종을 다루고 퇴비를 만들며 땅을 고르는 방법도 배웠다. 작물은 지역 학교와 주민들 사이에서 팔려나간다. 마을이 생산지이자 시장이 된 것이다. 이런 풀뿌리 농업공동체는 매년 3000명의 소농을 배출하고 있다.

일본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후쿠오카(福岡)현 야나가와(柳川)는 도심에 60㎞에 달하는 수로가 있어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을 모은다. 인구 8만명의 이 소도시는 주변 농어촌 마을과 수로로 이어져 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가 야나가와 운하를 선진 관광 사례로 선전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곳은 개발논리에 사라질 뻔했던 물길을 주민들이 지켜내 도시를 되살린 대표적인 사례다. 1960년대 화학비료 사용이 늘면서 야나가와의 수로는 오염수로 가득 찼다. 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자 콘크리트로 수로를 덮어 도로나 주차장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1977년 수로를 메워버리는 계획이 확정됐다.

하지만 도시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역 생태계와 밀접히 연결된 수로를 메우면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물길을 없애는 대신 되살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시의회는 수로 준설과 오염수 관리로 방향을 틀었다. 주민들은 수로에서 고기를 잡고 헤엄치던 추억을 전하며 ‘물이 있는 삶’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년간 100차례 넘는 간담회를 열었고, 200개 주민모임이 수로를 71개 구간으로 나눠 각자 책임을 맡기로 했다. 주민들은 그 후 1년에 한 번씩 수문을 닫고 강바닥을 청소한다. 수향(水鄕) 야나가와는 이렇게 부활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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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도시 속 마을 만들기’ 왜

인구 1000만명인 대도시 서울에도 ‘마을’이 살아 숨쉴 수 있을까. 세계의 대도시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사무실과 공장이 가득했던 도심도 대개 수십년 사이에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며 ‘도시재생’은 세계의 화두가 됐다. 특히 쇠락해가는 곳들은 물리적 환경이 열악한 데다 이주자들이 들어와 자리 잡은 곳이 많다.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린 이런 지역은 더 오랫동안 뒤떨어진 채 남아 있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영국에서 이민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1990년대에 ‘커뮤니티 뉴딜’이라 불리는 마을재생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커뮤니티 뉴딜 사업은 주거문제뿐 아니라 주민교육과 직업훈련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 지역 단체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적극적으로 주민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주민참여 없이 이윤을 좇아 이뤄지는 재개발은 오히려 원주민을 몰아내고 지역 격차만 키운다는 것은 한국의 재개발사업들이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포플라하카 페이스북


영국 정부는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39곳에 20억파운드(약 3조5000억원)를 쏟아부었다. 정부 지원을 받은 시민 자치단체들은 범죄를 줄이고 뒤처진 학교교육을 바꾸려 애썼으며 주민이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런던에는 평생학습관과 비슷한 ‘아이디어 스토어’가 시장이나 쇼핑센터에 붙어 있다.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이 쇼핑지와 연계된 장소를 원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1970년대 오일쇼크로 정부나 민간기업 주도의 부동산 개발이 타격을 받은 뒤 마을 살리기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특히 외부 자본이 주도한 개발에는 주민들이 원하는 환경보전이나 지역복지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점도 이런 움직임에 한몫했다. 당시 시작된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는 지역의 생활환경 파괴에 대한 반발의 형태를 띠었다. 환경을 되살리고 역사적 경관을 보전하거나 일조권 등 주거환경 권리를 찾는 운동이 된 것이다.

오이타(大分)현의 유후인(由布院)은 주변에 철강·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 농업의 쇠퇴를 겪었다. 주민들은 개발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던 온천을 수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온천 도시들이 대기업을 끌어들여 리조트 짓기에 매달린 것과 달리 주민들의 삶을 지키고 주민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을 관리했다. 지역에서 기른 식재료로 식당을 꾸리고 온천 여관에 딸린 매장에서 농민들이 만든 잼과 과자를 판다. 마을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이곳 주민들은 유후인을 일본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탈바꿈시켰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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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런던 포플라의 실험

▲ 개발 이익, 마을로 환원 청년층 ‘마을 주체’로
육성 이주자 거주 극빈층 지역 20여년 만에 환골탈태


도시마다 사각지대가 있고, 거기에 소외된 이들이 모여든다. 낡은 집들, 가난, 교육에서 배제되는 사람들, 도시의 문제들이 그곳에 고인다. 영국 런던에도 이런 곳이 있다. 템스강 줄기가 남쪽으로 옴폭 꺾이는 ‘포플라’(Poplar)가 그곳이다. 지난 1월16일 버스를 타고 동네에 들어서자 남아시아에서 쓰이는 벵골어 간판이 보였다. 골목에는 아시아계 주민들이 가득했다.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썼고, 차도르나 검은 아뱌야(겉옷)를 입은 이들도 있었다.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하는 이들 중 영어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타워햄릿 자치구의 작은 동네 포플라의 주민 중 백인은 23%뿐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이 열명 중 넷이고, 무슬림(44%)이 절반 가까이 된다. 실업률은 영국 전체 평균의 2배인 15.7%다. 저소득층이 많아서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가정이 절반 이상(50.9%)이다. 런던의 금융신도시 카나리워프의 마천루들을 지척에 둔 포플라는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며, 빈곤의 역사가 200년이 넘는다.

런던의 비영리단체 포플라하카가 관리하고 있는 마을 안 공원. 우범지역이었던 곳이 주민 휴식처가 됐다. 이 단체는 건물 재개발로 얻은 수익을 주민 교육과 마을 환경개선 등에 재투자하고 있다. 런던 | 김보미 기자


■ 개발 이익은 주민 몫으로

하지만 포플라는 바뀌고 있다. 그 변화는 사회적 기업 포플라 하카(Poplar HARCA)가 활동하는 규모 3㎢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하카는 ‘주택과 공동체 재생산협회’(Housing and Regeneration Community Association)의 줄인 말이다. 이들은 부동산 개발을 통해 ‘마을의 재구성’에 도전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집 8500채를 보유한 하카는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키우고 자치를 확대하는 데에 이익을 환원해왔고, 그 성과는 마을 곳곳에 나타나 있다.

1950~1960년대 지은 아파트가 늘어선 포플라 세인트폴스웨이에 들어서자 동네 사랑방이 나왔다.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카페 ‘페이퍼 앤드 컵’은 번 돈으로 주민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마을을 후원하세요’라는 글이 쓰인 셔츠를 입은 점원 중에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가 재활치료를 받고 취직한 사람도 있다. 주변 미용실과 공방도 주민들이 연 마을가게다. 카페 옆에는 어린이집이, 위층에는 주민교실이 열리고 있었다. 한 쪽 방은 영어, 다른 방에서는 컴퓨터를 가르친다. 하카가 만든 마을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대개 아시아계 이주여성이다.

마을상점과 교육 공간, 주민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포플라 내 건물 재개발에서 얻는다. 카페 앞 12층짜리 신축 빌딩은 하카가 민간업체와 함께 2층짜리 낡은 건물을 증축한 것인데 공공임대 등 사회적 주택으로 쓸 2개층을 빼고는 민간에 팔았다. 이런 수익과 정부·기업의 보조금이나 기부금을 합쳐 연간 400만파운드(약 80억원)를 모은다. 개발이익은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다.

하카 주택의 입주자는 2만5000명이지만 하카의 활동은 포플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경전철(DLR) 랭던파크역은 대중교통이 부족한 지역 사정을 하카와 주민들이 정부에 요구해 얻어낸 성과물이다. 300명이나 되는 하카 직원들은 포플라의 모든 주민들이 지역 개발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 많은 영국에서도 이런 재투자는 흔치 않다.

왜 주택단지를 넘어 마을 전체일까. “거주자만 교육하는 것은 커뮤니티(지역)를 살리는 개념이라고 볼 수 없어요. 전체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깨끗한 건물이나 포장도로가 삶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죠. 커뮤니티가 단절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강한 공동체는 주민들의 자부심에서 나오는데 그러려면 마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건물에 얼마를 투자해 몇 층이나 높아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죠.” 하카 지역주민 디렉터 바부 어차르지의 설명이다.

영국 런던의 비영리단체 포플라하카가 마을 청년들을 위해 마련한 건물 ‘스포트라이트’ 내 녹음실에서 청소년들이 방송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포플라하카 페이스북


포플라하카가 운영하는 컴퓨터 교실에서 주민들이 지난 1월16일 수업을 듣고 있다. | 포플라하카 페이스북


■ ‘소셜 믹스’가 성공의 관건

하카가 재건축한 건물에는 1~2개 층에 사회적 주택이 들어간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싼 집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새로 생기는 주거지에 일반 주택과 공공임대가 공존하게 되면서 여러 계층이 섞이는 효과가 있다. 재건축한 건물 1층에는 대개 마을기업들이 입점한다. 유통업체는 대기업보다 소규모 상점에 우선권을 준다.

이 단체가 포플라에 다양한 계층을 담는 소셜 믹스(사회적 혼합) 주택가를 만드는 것은 수십년간의 도시재생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영국 정부의 정책과도 일치한다. 포플라가 위치한 런던 동부의 도크랜드는 영국이 식민지를 확장하고 미국과 교역을 늘렸던 17~19세기 쉼 없이 원자재와 완제품을 나르던 물류 중심지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활기를 잃었다.

1970년대부터 이 거대 유휴지를 고층 업무지구로 바꾸는 계획이 추진돼 1990년대 카나리워프를 중심으로 한 도심 재개발이 이뤄졌다. 영국의 첫 무인 경전철 도크랜드 라인이 깔렸고, 지하철 주빌리 노선도 연장됐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는 도크랜드 고속도로와 런던 동서를 잇는 라임하우스 링크 터널, 도심공항인 런던시티공항도 생겼다. 카나리워프를 둘러싼 템스강 주변은 고급 거주지역이 됐지만 바로 옆 포플라는 번화가 속 섬으로 남았다.

1998년 노동당 정부는 이곳의 재생을 맡을 단체를 뽑아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카는 포플라를 바꿀 방안을 제시했다. 타워햄릿 자치구는 공공주택들을 시민단체로 넘기기로 했다. 주민들은 임대주택 단지별로 지자체 관리하에 남을지 하카로 갈지를 놓고 투표했다. 형편없는 기반시설과 낡은 주택에 불만이 컸던 7개 단지 4500가구는 즉시 하카를 선택했다. 주택 소유권과 세입자 관리 의무가 하카로 넘어갔다.

하카 주민권한매니저 핀탄 타이넌은 “주민들은 특히 정부의 주택정책에서 소외돼 왔다는 인식이 컸고 운영에 참여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주택관리는 전문가가 할 수 있지만,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단지별 주민운영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들이 모인 이사회에서 하카의 활동 을 결정한다. 지금까지 포플라 지역에서 12개 단지가 하카 소속이 됐다.

지역 부동산 관리를 맡은 포플라하카는 건물 재개발로 얻은 수익을 주민 교육 등에 재투자하고 있다. 런던 | 김보미 기자


■ 젊은이들을 살려야 마을이 산다

하카는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가장 공을 들인다. 파이넌은 “1~2인 가구보다 아이가 있는 가족 거주자가 많기 때문에 포플라의 청년 인구비율은 유럽에서 가장 높다”며 “청년들도 마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카의 임대주택에는 단지별로 주민위원회가 있고, 위원장들이 모여 지역 일을 논의한다. 여기에 청년권익위원회를 만들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다. 11~19세 아이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청년층의 요구를 전달하기도 하고, 마을 안전을 개선하는 활동을 제안해 참여하기도 한다.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청소년들이 특정지역에 몰려 있지 않도록 마을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를 또래들에게 알려주거나 지역 범죄보고서를 만화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다.

랭던파크역 앞 ‘스포트라이트’는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지어졌다. 음악 녹음실과 공연장, 체육관과 권투장, 크고 작은 회의실 등 이 건물에 있는 시설은 모두 지역 청년층들을 위한 것이다. 체육·음악강좌는 마을에서 재능기부를 받아 이뤄지기도 한다. 체육관에서는 인근 랭던파크스쿨 중학생들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운동장이 없는 이 학교는 마을 시설을 나눠쓰고 있었다. 청년들은 목공·전기 기술을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보건교육을 받고 마을과 파트너십을 맺은 병원에 견습생으로 가기도 한다. 지역 학교가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하자 하카가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킹스칼리지런던과 워윅대, 퀸메리런던대 등 대학들의 지원을 받아 세인트폴스웨이에 ‘신탁학교’(Trust School)를 꾸리기도 했다.

20년 가까운 실험은 조금씩 마을을 바꾸고 있다. 정부의 ‘지역빈곤지수’(Index of Multiple Deprivation) 조사에서 2005년 포플라는 최악의 결과를 냈지만 2010년 꼴찌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약 3만2500개 지역 중 뒤에서 12번째 정도까지 올라왔다. 랭던파크스쿨은 정부의 학업성취도 기준도 통과했다. 신탁학교를 비롯해 하카가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같은 지역에 있는 매나필드, 바이그로브 초등학교는 영국 교육기준청 종합평가에서 가장 좋은 등급을 받았다.

17년간 집들을 고치고 지역 이주민 재교육에 초점을 뒀던 하카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올세인트역 앞 크리스프 시장 재개발로 마을 상권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2006년 시장 부근 주택단지가 하카에 들어오면서 1950년 문을 연 오래된 시장도 함께 넘어왔다. 지역이 쇠퇴하면서 시장도 15년 전부터 쇠락해가던 상황이다. 최근 크리스프의 빈 가게 하나를 마을 청년이 임대해 자전거 수리점을 만들었다. 시몬 캐럴 포플라하카 공간서비스담당자는 “지역성을 유지하면서 여가활동에서조차 소외됐던 주민들이 마을 안에서 즐길거리를 찾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며 “목 좋은 시장의 장점을 살려 이익을 높이면 마을기업의 임대료를 낮추는 식으로 주민들에게 재투자할 여력이 커진다”고 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 일자리까지 만들 수 있다. 민간업자와 재개발을 하되 수익금은 시장을 바꾸는 데 쓸 예정이다. 포플라에는 아직 대형 영화관이나 큰 상점들이 없다. 시장이 새 모습을 찾으면 주민들이 도심에 나가지 않아도 여가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하카는 기대하고 있다.

<런던 |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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