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가 남긴 구절에 이런 게 있다. “모든 전략적인 도로는 전제군주에 의해 지어졌다. 로마, 프로이센, 프랑스가 그랬다. 그 도로들은 나라를 직선으로 가로지른다. 다른 모든 길들은 꼬불꼬불하고 사람들의 시간만 낭비한다.”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슈퍼하이웨이가 두 명의 강력한 전제군주에 의해 지어진 것이 맞다.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autostrada)는 무솔리니가 집권한 지 2년 뒤인 1924년 지어졌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최초의 ‘진정한’ 슈퍼하이웨이는 나치 하에서 지어진 독일의 아우토반(autobahn)이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형태의 토목 공사 뒤에 자리하는 정신은 전체주의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후 고속도로 건설 붐은,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있건 없건,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고속도로 건설의 폭발은 공정한 자유시장이 작동한 결과물은 아니었다. 전설적 사례로 남아있는 1938년 로스앤젤레스의 세계 최장의 전차 시스템 매각이 대표적이다. 제너럴모터스는 스탠더드오일, 파이어스톤타이어와 합작해 이를 사들여 울타리를 치고 선로를 걷어냈다. 이로써 LA는 세계 제1의 자동차 대도시로 변모했고, 이른바 ‘자동차 문화’가 탄생했다. 주차장이 마련된 식당·영화관, 자동차 개조, 차량 세 대를 수용하는 주택 차고, 교통체증, 17중 추돌 사고, 스모그 등이 모두 LA에서 탄생했다. 이 모두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좋은 것인 양 퍼졌다. 오늘날 LA 땅의 3분의 2가 자동차 운행과 주차에 할애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내친김에 미 전역의 전차 선로를 사들이고 자동차 길을 위해 울타리를 쳤다.

자동차회사가 전차 선로와 철로를 없애기는 했지만, 이를 대신할 고속도로까지 지은 것은 아니다. 철도회사의 경우처럼, 자동차회사가 고속도로를 짓고 관리하기까지 했다면, 자동차 값이 얼마나 비싸졌겠는가. 몇몇 유료 도로를 제외하면 정부가 납세자 돈으로 지은 것이다.

또 다른 놀라운 사례는 1956년 의회가 고속도로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전국적인 주(州)간 고속도로 체계 구축을 승인한 것이다. 이 사업 예산은 당초 250억달러였으나 나중에 두 배로 불어났다. 사상 최대의 공공사업이라고들 했다.

그 결과 대부분 일직선에 경사가 거의 없고, 속도방지턱·신호등·횡단보도 같은 장애물도 없고, 24시간 내내 자동차와 콘크리트, 엄청난 굉음뿐인 6만5000㎞ 길이의 활주로 같은 길이 탄생했다. 환경에 미친 영향은 재앙이었다. 엄청난 면적의 광야가 불도저로 파헤쳐졌다.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는 동물들의 이동경로가 막혔고, 그런 게 없는 곳은 거대한 도살장으로 변모했다. 한때 길이라고 불렀던 것과 어떤 유사성도 찾기 어려웠고 그것을 따라 이동하는 것도 한때 여행이라고 불렀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독일 서부 에센 인근 고속도로(아우토반 A40)가 18일 질주하는 차량 대신 소풍객과 도보자, 자전거타는 사람 등으로 가득차 있다. 독일 루르 지방이 2010년 유럽연합(EU)의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의 하나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300만명이 참가해 폐쇄된 60㎞ 도로 위에서 ‘느림의 삶’을 즐겼다. (출처 : 경향DB)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 거대 자동차회사들은 생산품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팔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그 회사들은 각 지역에 자동차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이미 일부 나라에서는 그 과정이 상당히 진행됐다. 이 회사들은 고속도로 건설을 더 필요로 한다.

물론 그들이 도로를 짓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해당 지역의 납세자들이 돈을 댈 것이고, 일부는 유상원조 자금, 즉 빚으로 충당될 것이다.

적도를 따라 48차선 도로로 지구를 두르고 전 세계 3억5000만대 차량을 집어넣는다고 치자. 그러면 차가 꽉 막혀 전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차들이 움직이려면 이보다 네 배의 192차선 도로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새 차가 쏟아져나오는 속도에 맞춰 193차선을 짓는다면, 아찔한 속도로 도로를 지어야 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4차선을 기다리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설 것이다. 독자들 중엔 그런 상상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밤에 악몽을 별로 꾸지 않는다면 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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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저항은 자칭 ‘정치적 현실주의자’라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그것은 약자의 전술이고, ‘약자’는 폭력으로 맞서 이길 가망이 없는 사람들을 뜻하기 때문이다. 폭력을 써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가야 할 길이지만, 질 것이 확실하다면 비폭력이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비폭력은 차선책이다.

이러한 논법은 특히 식민지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나 압제적 정부에 직면한 사람들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복종하는 사고방식을 갖도록 훈련되어 어떤 경우에는 지배세력에 반론을 펴거나 불복종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프란츠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정신상태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파농은 식민지적 맥락에서 폭력이 식민지배자들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피지배자들을 복종하는 사고방식에서 해방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봤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폭력은 정화(淨化)하는 힘을 갖는다. 그것은 열등감, 절망, 나태로부터 본성을 해방시킨다. 또 두려움을 없애주고 자긍심을 회복시킨다”고 썼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폭력 자체가 이런 효과를 갖는 것인가, 아니면 폭력이 식민지 권력 시스템을 거부하는 표현의 하나인가? 물론 피지배자가 성공적으로 지배자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경우, 지배자가 평소 보여온 모습과 달리 전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총이나 폭탄으로 지배자를 죽이는 것은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환경주의자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총이나 폭탄의 사용은 일종의 기술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화약이 어떠한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피지배자가 좀 더 깊은 차원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지배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지배자의 위치를 부정하는 정신적 힘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자를 죽이면 그는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이로써 그때까지 지배받았던 사람의 삶은 더 쉬워지겠지만 그 사람이 (다른) 지배자의 명령을 거부할 힘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그런 힘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지배자를 마주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은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반면 비폭력·시민불복종은 문제를 직접 다룬다. 그런 사람은 폭압적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불복종함으로써 그 명령을 거부하는 능력을 키우고, 보여준다. 지배자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어렵다. 정신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살아 있는 지배자에게 맞서 복종을 거부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다. 간디가 사티야그라하(비폭력·불복종)는 힘없는 자의 무기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오히려 불복종이 어떠한 군인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신적 힘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는 오키나와 헤노코 농성장 (출처 : 경향DB)


내가 사는 오키나와는 법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론 식민지다. 시장, 저임 노동력, 자연자원 등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이 이 식민지에서 얻는 것은 미미하다.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를 두는 장소로 유용하다. 오키나와인들은 오랫동안 이 기지들을 반대해왔지만, 최근 들어 그들은 요구·탄원·호소하던 태도에서 거부하는 태도로 전환했다. 그들은 달성가능한 목표에 집중했다. ‘어디에도 기지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헤노코에 새 미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고 하는 것은 곧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과 오키나와 사이의 주종관계의 핵심을 파고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것은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장의 시위대는 건설작업을 직접 방해하고 있고,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경찰은 프로다운 침착함을 잃기 시작했고, 건설작업팀은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작업 마감일은 연기됐다. 그들은 “태풍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풍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번 것은 다른 종류의 태풍이다. 사람들로 이뤄진 태풍 말이다. 몇 주일 안에 그 태풍이 얼마나 빠른 바람을 만들어내는지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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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왕년에 미 해병대원이었다고 주장하며 내게 전단을 건넸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미국인들 앞으로 된 글이었다. 그 입장은 전형적인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논리는 아니었고, 미군들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지난 10월25일 나는 나하 공항에 갔다가 받은 그 전단을 여러 장 복사해 미군부대 관련 차량들에 꽂아뒀다. 미군부대 관련 차량은 자동차 번호판이 Y로 시작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부대 주차장에서 전단을 뿌리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합리화하며 가끔 그런 일을 한다. 물론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마치 내 차가 어디 있는지 몰라 찾는 것처럼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는 척하면 자연스럽게 여러 차량에 전단들을 꽂을 수 있다. 전단 내용은 이렇다.

왜 헤노코인가? 미국 군인, 가족, 부대 근로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군사 전략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넣는 것이 멍청한 짓이라는 점을 잘 안다. 일본 영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주일미군 기지의 75%를 몰아넣는 것은 그래서 가장 멍청한 짓이라는 의미다. 미국은 진주만 사건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진주만에 너무 많은 함정과 항공기가 몰려 있어서, 그 공격을 받은 뒤 미국 우파들(파시즘과 전쟁을 원치 않았던) 중에는 음모론을 제기할 정도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루스벨트는 태평양함대를 진주만에 미끼로 몰아넣었다. 멍청한 일본이 그 미끼를 물었고, 루스벨트는 전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아직도 일본 우파들은 사실이라고 믿는다. 우파에는 아베 신조 정부가 포함된다. 그들은 일본이 루스벨트에 속아서 미국을 공격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그걸 믿을 필요는 없다. 요지는 그들은 믿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자신에게 물어보라. 일본 정부는 왜 그렇게 단호하게 후텐마의 미 해병대 비행장을 본토로 이전할 수 없고, 오키나와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일까. 일본 본토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적자더미의 민간 공항들이 흔해빠졌다. 조금만 개조하면 헤노코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환경도 덜 파괴하고 제1해병항공단을 수용할 수 있다. 왜 그렇게 비싸고, 전략적으로 멍청한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

오키나와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 마타요시 에이키와 메도루마 슌의 소설에는 오키나와 전투 등에 대해 미국과 일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나타난다. (출처 : 경향DB)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오키나와 전투가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것은 이곳에 엄청난 일본군이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엄청난 군병력이 주둔했던 것은 전투가 일본 본토가 아니라 오키나와에서 벌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지금도 그렇듯이 법적으로 일본의 일부였지만 신성한 야마토를 둘러싼 마법 원의 밖에 있었다. 오키나와는 야마토를 지상전에서 구하기 위해 희생되었다.

그래서 똑같은 일이 지금도 벌어지는가. 일본 정부는 중국과 싸우려고 안달이다. 만약 그들이 중국과 싸우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 미사일은 어디에 떨어질까. 대부분 오키나와에 떨어질 것이다. 모든 미사일은 아니겠지만, 오키나와에는 도쿄만큼 미사일이 떨어질 것이다. 오키나와는 또다시 희생할 준비가 돼있는가. 이번에는 미사일 과녁으로 말이다.

여러분도 알 듯이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의 게임에 저당물로 이용되는 것에 넌더리를 낸다. 하지만 일본의 게임이 내가 설명한 대로라면 (여러분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 저당물이 될 것이다. 잘 생각해보길.

심퍼 피, 한 늙은 해병

(추신. 이 글을 당신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올려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보길.)

나는 이 논리가 꽤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런 이유가 없다면 왜 일본이 저렇게 확고하게 모든 군기지를 작은 오키나와에 둬야 한다고 고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주일미군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관점의 전환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해보게 한다. 일단 그런 사고 과정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의심하는 미군들이야말로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병력 철수를 결정하도록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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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은 어떤 사건을 ‘사건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까.

9월20일 오키나와 북부의 헤노코에서는 미 해병대 비행장 건설 반대 집회가 있었다. 5500여명이 모였다. 무대에는 소위 ‘반정부’ 인사들뿐만 아니라 시장들, 국회의원들, 정당 지도자들, 시·읍 의원 등 오키나와의 주요 자리에 있는 인물들도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더 많았지만, 평소에도 새 비행장을 지으려는 캠프 슈와브 출입문 앞에는 500명 정도가 모여 소란하게 집회를 한다. 그 앞바다에는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려는 카약 시위대들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해안경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다.

오키나와 언론매체에는 매일 이 뉴스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도쿄의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사실상 보도관제에 가깝다. 정부 관리들은 이 사안에 대해 논평할 때마다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 ‘논쟁은 종결됐다’, ‘결론이 났다’, ‘이제 끝난 문제다’, ‘이 수천명의 행동은 의미가 없다’라고 한다. 일본의 대부분 신문과 방송들은 고분고분하게 그 수천명의 오키나와인들이 매일 하는 일들은 뉴스가 아니라고 결론짓고 보도하지 않는다. 그 결과 대부분 본토 사람들은 이것이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경비대, 경찰, 전경, 해안경비대를 투입해 매우 능숙하게 반대 운동을 고사시키는 작전을 펴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인 이 전략은 공사를 방해하는 시위대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체포도 뉴스가 될 것이므로) 그저 물리적으로 공사 방해를 막는 것이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8월 14일 오키나와 나고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고 해상시위를 벌이다 일본 해안경비대에 제지당하고 있다. _ AP연합


시위대는 카약보다 약간 큰 배를 몇 척 갖고 있다. 나는 그중 하나인 헤이와마루(平和丸)를 타고 이 고사 전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기회가 있었다. 새 비행장은 오우라만(灣)의 일부를 메워서 지을 계획이다. 공사 현장은 바다에 뜬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고, 바리케이드는 바다 밑바닥에 줄로 고정돼 있다. 현재 인부들은 바다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토양 샘플을 채취하고 있는데, 이 작업은 산호초와 바다 생명체에 매우 해롭다. 카약 시위대는 쇠사슬로 연결된 바리케이드를 넘어 작업 현장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이들은 카약을 타고 쇠사슬 위를 넘어가는 기술을 개발했다. 카약은 매우 가벼워서 몸을 뒤로 기울이면 뱃머리가 물 위로 떠오르고, 그 순간 전력을 다해 노를 저으면 쇠사슬을 절반쯤 넘어가게 된다. 그 순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 바이케이드를 완전히 넘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해안경비대가 몰려와 시위대를 카약에서 끌어내 바리케이드 밖으로 밀어내버린 뒤 놓아준다. 해안경비대의 이 작전은 늘 성공한다. 그들의 힘은 카약 시위대보다 훨씬 세기 때문에 식은 죽 먹기다. 카약이 10여척이라면 해안경비대는 선체 밖에 엔진이 두 개 달린 큰 고무보트 20여척에 완전무장한 경비대를 운용한다. 그들은 헬멧, 고글, 방수 무전기와 카메라, 쌍안경, 확성기, 잠수 장비를 갖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망원렌즈 카메라로 채증을 하며 본부에 무선으로 보고한다. 그들의 전략은 아무도 공사현장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내 그 누구도 어떠한 범죄 혐의로도 체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 카약 시위대는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목 등을 다치기도 한다. 하지만 해안경비대는 “어떠한 부상도 없었다”고 일축한다. 의사와 당사자가 부상이 있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즉 정부 전략은 기지반대 운동을 ‘사건이 아닌 것’으로 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압도적인 경찰력과 재원을 이용해 이 일을 사건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누군가 신문들에 왜 이 뉴스를 보도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면 신문들은 할 말이 있다. “그런 뉴스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누군가 정부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면, 정부도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없었거든요.”

그들은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여 걱정하지 마시라. 이 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실제 현실은 (언론에 나오는) 가상현실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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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이 끔찍한 점이 많기는 해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유일하게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특히 그들은 전쟁이나 전쟁 위협을 통해서만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서양 역사에서 그 좋은 예는 팍스로마나(로마제국에 의한 평화)가 될 것이다. 로마의 지배는 신민들이 반항하려 할 때마다 로마 군대에 의해 진압됐다는 점에서 일종의 ‘평화’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 반란군 지도자 중 한 명이 말했듯 “그들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현대에는 어떤 전쟁이 평화를 가져왔는가. 연합국들의 관점에서 1차 세계대전은 “모든 전쟁을 종식하는 전쟁”으로 선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치즘과 2차 세계대전을 낳았다. 2차대전은 냉전을 불렀고, 냉전은 다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가져왔다. 즉 전쟁은 더 많은 전쟁을 낳는다. 미국의 첫번째 이라크전쟁은 2차 이라크전으로 이어졌고, 최근 신문에 보도되듯이 그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전쟁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과 전쟁 정책은 스스로 적을 만들어낸다.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로 권력을 장악했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독재자가 됐다. 그는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하고 나서야 권좌에서 끌려내려왔다. 알카에다 역시 CIA의 지원과 훈련을 받아 설립돼 소련을 아프간에서 몰아내는 데 쓰였다.

미국은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이란 침공을 수십억달러의 경제원조, 무기·기술 지원 등으로 지지했지만 결국 20년 뒤 후세인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십억달러를 더 쓰고 수많은 생명을 죽여야 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가 1984년 후세인과 악수하는 유명한 사진이 남아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는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1945년 이후 군사 행동을 하지 않은 일본은 예외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의 상대적 평화는 전쟁에 이겨서가 아니라 져서 누리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은 일본 정치 엘리트들의 결정이 아니라 전시 세대의 집단적 결정의 결과물이었다. 오늘날 그 세대가 나이 들고 점점 줄어들면서 전쟁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로 이뤄진 일본 정부는 상대적 평화의 시대의 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오키나와 거주 미국인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씨가 작년 3월 서울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앞에서 열린 '이라크 침공 10년, 미국은 전쟁범죄를 사죄하라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러나 최근 몇년간 전쟁은 좀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뭔가 폭력적이지만 엄밀히 말해 전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이 변화는 1937년 독일의 보수적인 정치이론가 칼 슈미트가 예견한 것이다. 슈미트는 국제연맹이 진정한 세계정부가 되고 전쟁이 불법화되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인기 있는 생각에 반대했다. 그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의 논증은 따라가볼 가치가 있다. 그는 세계정부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썼다. 세계정부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폭력의 권리를 독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정부에 대항하는 어떠한 반군도 불법으로 규정될 것이고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범죄자로 여겨질 것이다. 그 시스템 안에서 전쟁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충돌은 정의 아니면 불의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고(고로 전쟁이 아니고) 이 경우 불의는 단지 범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전쟁은 일종의 존엄성이라도 있다. 왜냐하면 전쟁은 “상대가 해적이나 폭력배가 아닌 ‘국가’, ‘국제법의 주체’라는 점에서 정의와 명예와 가치를 찾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정부하에서는 “더 이상 전쟁은 없고, 오로지 처형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은 세계를 통치할 능력이 결코 없다. 하지만 미국은 점점 더 그렇게 행세하고 있고, 슈미트가 예견한 세계정부의 견해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적들은 체포되더라도 전쟁포로의 권리를 가진 군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범죄자, 즉 슈미트의 ‘해적’이나 ‘폭력배’는 아니더라도 ‘테러리스트’, ‘불법 전투원’으로 인식된다. 미국 무인 전투기의 조종사들은 미국 본토 기지의 책상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버튼을 누르고 처형을 수행할 뿐이다.

이렇듯 팍스아메리카나(미국 제국에 의한 평화)하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전쟁’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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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이 칼럼 담당자가 일본 방위상 오노데라 이쓰노리가 7월11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 원고를 내게 보내줬다. CSIS는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다. 거기 모이는 사람들을 ‘워싱턴 외교정책 커뮤니티’라고 부를 수 있다. 그 행사는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의 권력관계를 드러내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원고를 읽은 뒤 나는 CSIS 홈페이지를 검색해 그 행사 동영상을 발견했다. 여기서 텍스트에 담겨있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CSIS의 소장 존 J 햄리였다. 그는 연설자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설명한 뒤 메모를 흘깃 보더니 잠시 머뭇거렸다. “오도네라, 아니 오노데라군.” 그러고는 자신이 그를 몇번 만난 적이 있다며 마치 대학 총장이 모범 학생을 칭찬하듯 말했다. “이 장관은 조용하게 확신을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령 독일 국방장관을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햄리는 “우리가 이런 성격과 배경(워싱턴의 대학에서 연수했다), 일본 방위상의 경험을 가진 사람을 갖게 된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의 어느 누구도, 심지어 오노데라조차도, 그런 의미부여를 부정하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정책 커뮤니티에서 일본 방위상은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상식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아시아·태평양의 바람직한 미래는 미국의 (군사력 사용) 약속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의 아·태 재균형을 전적으로 환영하고 지지한다”, “일본은 (미국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과 손잡고 길을 걸어가겠다”, “나는 그런 노력이 미국과의 관계를 급격히 향상시켜줄 것으로 확신한다”(일본은 신실하고 하나뿐인 아내로서 남편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인가?) 같은 언사가 넘쳐났다.

오노데라는 최근 두 커플 사이에 승강이가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미국 의원들을 비롯한 워싱턴 외교정책 커뮤니티 사람들의 많은 방문을 받았고, 이들은 아베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던 것 같다. “전직 국무장관은 내게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나는 논문을 방어하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한 뒤 그는 나를 스탠퍼드 강연에 초청했다.”(그에게 구두시험 통과 학점을 준 전직 장관은 콘돌리자 라이스였던 모양이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하는 미·일 국방장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이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 국방부에서 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_ 뉴시스


현실에서의 정책에 관해 오노데라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그는 일본의 아·태 전략은 “강압적 행동에 의한 현상(現狀) 변경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여덟번 했다. 그것은 지금 아·태지역의 현상이 강압적 행동 위협으로 만들어져 유지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미국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 외교정책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나아가 이란, 북한 등의 레짐체인지라는) 강압적 행동에 의한 현상 변경 전략이 중심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이 ‘강압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정책을 정말 진지하게 편다면 미국 외교정책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노데라가 쓴 두가지 표현은 설명을 요한다. 하나는 “자위(自衛)”이다. 그는 “오늘날 어떤 위협도, 그것이 세계 어디서 생기든지, 일본 안보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논리라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전쟁도 자위로 정당화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최소한 필요한 정도의 무력 사용”이다. “최소한”은 작은 것처럼 들리지만 전쟁에서 “최소한 필요한 무력”은 이기는 데 필요한 무력이다. 어느 나라와 싸우느냐에 따라 “최소한”은 얼마든지 아주 커질 수 있다. 오노데라는 일본 헌법이 “최소한의” 무력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의 의견이다. 하지만 사실은, 헌법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 9조는 정부의 교전권을 부인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이날 토론에서 전혀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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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의 기본 원칙은 어떤 전쟁은 정의롭고 어떤 전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쟁이려면 우선 정당한 명분을 가져야 하고, 전쟁법에 따라 전쟁이 수행돼야 한다. 전쟁법에 따른다는 것은 독가스를 쓰지 않고, 포로를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으며,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는 것 등이다. 과거에는 정당한 명분에 많은 것이 해당됐지만 오늘날에는 유엔 헌장에 따라 유일하게 정당한 명분은 자기방어이다. 유엔 헌장이 채택된 이래 국가 지도자들은 자신의 전쟁을 ‘경찰 행동’이라고 부르거나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군사 원칙을 들이대며 이 규칙을 우회해왔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어떻게 해서 정의로워질 수 있는가. 전쟁 말고 국가의 폭력 사용이 정당화되는 것은 유죄를 인정받은 형사범 처벌이다. 벌금, 감금, 그리고 나라에 따라 사형도 한다. 하지만 정전론(正戰論)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군인은 형사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인이 적에게 잡히더라도 처벌받지 않고 전쟁 포로로 억류되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대개는 무고한 젊은이들인 이들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는가?

고전적인 대답 중 하나는 전쟁이 결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결투에서는 양측이 규칙을 이해하고 합의한다. 결투를 하기로 했다면 내가 상대방을 죽이거나 상처 입힐 권리를 갖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나를 죽이거나 상처 입힐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칼이나 총알이 내 몸을 먼저 통과하더라도 나는 불평할 근거가 없다.

무인기 설명듣는 박대통령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것을 나 역시 상대방에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논리가 스포츠에도 적용된다. 복싱 시합에서 선수들은 링 밖에서 했다면 체포될 행동을 한다. 선수들은 링 위에서 피를 흘리기도 하고, 뇌진탕을 겪기도 하며, 뼈가 부러지는가 하면, 내상을 입기도 하고, 때론 죽기도 한다. 하지만 복싱 선수들은 형사범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선수들 각자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시합을 하기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투의 이상적인 한 형태는 두 군대가 거대한 축구장 같은 곳에 집결해 마주 보고 결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전투에서는 군인들 말고는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 고대에는 이런 유형에 꼭 들어맞는 전투가 있었다. 하지만 장거리포, 비행기, 로켓 등이 발명된 이후에 벌어지는 지상전은 이런 유형이 거의 없다. 20, 21세기의 전쟁에서는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다.

이 모두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간 전쟁은 몇 가지 이상한 방향으로 점점 더 결투 형태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결투에서 양측은 목숨을 건다. 기량과 운이 있다면 상대방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히고도 자신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수 있다. 즉 ‘싸울 기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게릴라 조직은 자살폭탄이라는 전술을 쓴다. 생존의 모든 희망을 포기함으로써 그 공격자는 자신의 폭격 임무의 성공 확률을 높인다. 윤리적으로 보면 이는 매우 혼란스럽다. 한편으로는 희생자들 대부분이 비전투원이기 때문에 이 행동은 전쟁범죄가 된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공격자는 범행과 동시에 사형을 당한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영웅적 행동의 보상을 하늘에서 받는다고 믿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대개 완전히 속아 넘어가지 않았나 두렵다.

결투 형태에서 벗어난 또 다른 공격은 무인기의 사용이다. 자살공격자가 자신의 목숨을 완전히 내던지는 경우라면 무인기 조종사는 생명의 위험을 전혀 무릅쓰지 않는다. 무인기 조종사는 미국 모처의 기지에 앉아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또는 이라크 상공에 로봇 비행기를 띄워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암살한다. 그러다 보면 그 주변에 있는 누구라도 죽을 수 있다. 무인기의 로켓포에 죽은 희생자들은 조종사에게 해를 입힐, 즉 ‘싸울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다. 물론 그들이 무인기를 격추시킬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

미군이 무인기 조종사들에게 훈장을 줬을 때 과거 전쟁에 참전한 퇴역군인들이 분노해 집회를 벌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떻게 위험을 전혀 무릅쓰지 않은 사람에게 영웅적 행동을 했다고 치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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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1일은 일본 판결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22일자 신문들이 보도했듯이 둘이 서로 무관하지만 비슷하게 획기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구체적 내용에서는 무관하지만 아베 정부에 매우 큰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는 관련돼 있다는 의미다.

일 본 같은 나라에서 판사들이 법률이 헌법에 위배돼 무효라거나 정부 정책이 인권을 침해했으므로 중단돼야 한다고 판결하는 경우는 드물다. 헌법은 판사들에게 그런 판결을 할 권한을 주지만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판사들은 자신을 독립적 사법부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고 정부 공무원으로서 비판자로부터 정부를 보호하는 게 자기 일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난 21일은 달랐다.

이곳 오키나와에서는 군기지가 큰 이슈여서인지 신문들은 요코하마 지방법원이 항공자위대의 도쿄 인근 아츠기 공군기지 항공기들에 오후 10시에서 오전 6시 사이에 이·착륙을 금지하는 판결을 한 소식을 머리기사로 전했다. 법원은 정부가 7000명의 원고들에게 소음 공해에 대한 배상으로 70억엔(약 702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소음이 원고들의 잠을 방해하고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과거에도 재판부가 금전 형태로 배상을 명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판사가 정부에 야간 비행을 금지하도록 대담하게 명령한 첫 사례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는 두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하나는 “방위상이 허용한 때를 제외하고”라는 단서조항이다. 또 하나는, 더 심각한 것인데, 아츠기 기지를 이용하는 항공기의 대부분은 미군 항공기인데, 그들에게는 이 판결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사의 논리는 일본이 미국에 아츠기 기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한 정부 간 협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일본 법률로도 미국에 그 사용을 제한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자들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나는 그 논리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설명할 능력이 안된다. 아마도 판사가 하려는 말은 일·미 안보조약은 미국으로 하여금 단지 일본에 기지를 둘 수 있게 허가했을 뿐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문제에서는 어떤 조항도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미국의 기지 사용 권리가 점령기 때인 1945년 상태로 남아있다는 의미인가?

F22랩터 전투기 4대가 미 공군기지 상공에서 비행훈련을 하고 있다. (출처 :Ap연합)


원고들은 판결의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항소해 미군기도 야간비행 금지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예정이다. 나는 그들이 이길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번 판결로 만들어진 상황은 법원이 미군기의 아츠기 기지 야간 이·착륙도 불법이고 지역민의 건강에 해롭다고 판단했지만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정도로 요약된다. 그것은 방어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두 번째 판결은 후쿠이 지방법원이 간사이 전력회사에 후쿠이현에 있는 오이 원전의 재가동을 금지한 것이다. 내가 예전 칼럼에 썼듯이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능한 한 많은 미군기지를 지으려는 욕망과 일본 도시민들이 원전을 먼 시골에 지으려는 욕망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을 도쿄전력이 소유하고 있고 도쿄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오이 원전도 간사이 전력회사가 소유하고 있으며, 생산된 전기는 후쿠이가 아니라 간사이로 보내진다.

오이 원전은 2012년 8월 재가동했으나 2013년 9월 ‘정기’ 안전 점검을 위해 가동 중단됐다. 소송은 이 원전이 계속 가동 중단된 채로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려고 제기됐다. 판사의 언어는 매우 강하다. 전력회사 측은 있을지도 모를 자연재해에 충분할 정도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판사는 “미래에 대해 근거없이 낙관적인 견해를 가정한 근거 박약한 조치”라고 표현했다. 이런 말은 전 세계 원전에 다 해당될 수 있겠지만 특히 지진에 취약한 일본의 모든 원전에 해당된다. 간사이전력 홍보실 측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후쿠이에는 1927년 이후 큰 지진이 없지 않았느냐.” 그게 바로 “근거없는 낙관주의”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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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과 해병대

4월12일 류큐신보(琉球新報) 1면에 미국 정부의 외교관과 해병대 장교가 똑같은 질문에 답한 기사가 실렸다. 우선 외교관의 답이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필자는 국방장관을 민간인, 즉 외교관으로 기술했다)은 최근 도쿄에서 미국이 오키나와 현지사의 요구대로 5년 내에 후텐마 해병대 기지를 폐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오키나와에 기지 부담을 줄이는 문제를 계속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해병대 최고지휘관 존 위슬러 중장은 4월3일 똑같은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는 오키나와 북부 헤노코에 새 기지가 완공되지 않는 한 후텐마 기지는 폐쇄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10년은 걸릴 거라고 했다. 물론 그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오키나와인들의 절대다수가 새 기지에 반대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직접 행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위슬러의 암묵적 메시지는 “오키나와인들이 새 기지에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후텐마 기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후텐마에 해병대 기지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 나름의 보복 조치라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해병대 쪽 대답이 더 마음에 든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18년

바로 아래 기사는 4월12일이 미국과 일본 정부가 후텐마 미군 기지를 기노완시에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지 18년째 되는 날이라는 점을 조명했다. 오키나와인들이 새 기지 건설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후텐마 기지가 지금쯤 폐쇄됐을 것이란 점에서 위슬러 말은 아마 맞을 것이다. 그 대신 새 기지 건설 예정지인 헤노코의 오우라만(灣)은 생태적 재앙을 겪었을 것이다. 오키나와인들은 그동안 경험했던 집단적 자부심과 자존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헤노코에서 한줌의 흙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미국과 일본이 18년 전 그 계획을 포기할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_ ‘헌법9조 노벨평화상 실행위원회’ 화면 캡처(출처 :경향DB)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같은 신문 29면에는 노벨상위원회가 일본 헌법 9조의 노벨평화상 후보 신청을 받아줬다는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받아줬다”는 말은 278개의 다른 신청자들과 함께 후보로 올려줬다는 뜻이다. 몇 달 전 나는 선의로 이 운동을 시작한 한 젊은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대화를 통해 왜 그 청원을 지지하지 않는지 설명했다. 우선 그것은 자기만족의 측면이 크다. 신청에 참여한 사람들은 헌법 9조 지지자들이고, 따라서 아무리 간접적으로 한 것이라도 그들 스스로 수상 후보로 자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더 중요하게는, 내가 예전에 이 코너에서 썼듯이 여론조사 결과 일본인 51%가 헌법 9조를 지지한다고 답하면서도 81%가 일·미 안보조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사람은 11%에 불과했다. 헌법 9조를 지지하는 대다수가 안보조약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이 사람들은 평화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다른 누군가가 그들 대신 싸워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해할 만 하지만 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미군기지를 일본, 대부분 오키나와에 들여놓은 근원이 바로 안보조약이다. 헤노코에 새 기지를 지으려는 압력 뒤에도 안보조약이 있다.

헌법 9조의 종말?

이튿날부터 거의 매일 이 신문에는 자민당 정부의 ‘해석에 의한’ 헌법 9조 변경 계획에 대한 기사가 담겼다.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일본 정부는 전쟁, 전쟁 위협, 전쟁 준비를 포기하도록 하는 9조에 대한 해석을 전쟁을 수행하고, 전쟁 위협을 하며, 전쟁 준비를 하는 의미로 바꾸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놀라운 논법의 전례를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1984>에서 “전쟁이 곧 평화”라는 정부 슬로건에서 찾을 수 있다. 노벨상위원회가 일본 헌법 9조에 상을 주고자 한다면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이다.

This Week’s Newspapers

The Diplomat and the Marine

 On the front page of the 12 April Ryukyu Shimpo is an article in which both a US Government diplomat and a US Marine answer the same question. I will give the diplomat’s answer first. When he was in Tokyo recently, US Secretary of Defense Chuck Hagel was asked if the US would be able to shut down Futenma Marine Airbase within five years, as Okinawa‘s Governor has requested. Hagel said, “We want to continue to pursue discussions concerning the reduction of the burden of bases on Okinawa.”
 Asked the same question on 3 April, Lt. General John E Wissler, the top Marine officer in Okinawa, said, “The answer is ’no‘”. He said that the base will not be closed until the new Marine base at Henoko, in northern Okinawa, is completed. Assuming that it goes smoothly, that is expected to take ten years. And of course it will not go smoothly. In fact it might not take place at all. The great majority of Okinawans are opposed to this new base, and many of them are prepared to take direct action to prevent its construction. Wissler’s unspoken message is, “If the Okinawans hadn‘t opposed the new base, Futenma might have been gone long ago.” In a way, keeping the Marine base in Futenma is America’s revenge.
 Still, I like the Marine better. You can understand what he‘s saying,

Eighteen Years

 Immediately below that is an article noting that 12 April marked the eighteenth year since the US and Japanese Governments announced that they were going to remove the Futenma US Marine Airbase from Ginowan City. Wissler is perhaps correct that if Okinawans hadn’t opposed construction of the new base, Futenma Base would have been closed down by now. At the same time, Oura Bay, where the new base is to be built, would have suffered ecological catastrophe. And the Okinawans would have not experienced the great gains in collective pride and self-respect they have experienced over those years. So far not a shovelful of dirt has been moved from one place to another at Henoko. What is amazing is that the US and Japan haven‘t had the wit to give up the plan.

Nobel Peace Prize for Article 9?

 On Page 29 of the same paper is an article reporting that the Nobel Prize Committee has accepted the application nominating Article 9 of the Japanese Constitution for the Nobel Peace Prize. “Accepted” here means accepted as an application, along with 278 other applications. Several months ago I received a telephone from the good-hearted young woman who started this movement, and we had a long and painful conversation in which I explained why I would not become a sponsor. First, it has the feel of self-congratulation. The people who sent in this application are supporters of Article 9, so it seems as though they are, however indirectly, nominating themselves for the prize. Second, and more important, as I have written here before opinion polls have shown that while about 51% of the Japanese public say they support Article 9, 81% say they support the Japan-US Security Treaty, and only 11% say they positively oppose it.. This means that not all, but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who support Article 9 also support the Security Treaty. These people are not committed to peace; rather they are hoping that should war come, someone else will fight it in their place. This is understandable, but not prize-winning. And it is the Security Treaty that is the basis for bringing US military bases into Japan - mostly Okinawa. It is the Security Treaty that is behind the pressure to build the new base in Henoko.

The End of Article 9?

 The newspaper on the following day, and about every day since then, have contained articles on the LDP Government’s plan to change Article 9 “by reinterpretation”. No need to explain the details; what it amounts to is that the Government is planning to “interpret” Article 9, which says Japan renounces war, threat of war and preparation for war, to mean that it is permitted for Japan to carry out war, threaten war and prepare for war. We can find a precedent for this astounding reasoning in George Orwell‘s great counter-utopian novel 1984, in which one of the government’s slogans is “War is Peace”. If the Nobel Peace Prize Committee wants to give the prize to the Japanese Constitution‘s Article 9, they would do well to hurry.


<정리 | 손제민 워싱턴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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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일본 동북지방에서 일어난 3·11 지진-해일-핵 참화에서 미군, 특히 해군과 해병대는 재난구호에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일본어의 친구라는 의미의 ‘도모다치’ 작전으로 불린다. 미 해군이 보낸 20여척의 배 중에는 항모 로널드레이건호도 있었다. 이것은 중요하다. 센다이 공항이 파괴된 상황에서 로널드레이건호는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가용한 비행장이었다. 헬기는 함상에서 식량·옷·담요를 실어날랐고, 관측항공기는 피해 정도를 조사했으며, 해병대는 인명 구조와 제염 작업을 위해 파견됐다. 나중에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도모다치 작전으로 일본 내 미군의 인기가 올라갔다.

하지만 이제 그 ‘우정’이 도전에 직면했다. 로널드레이건호에 승선한 미 해군과 해병대원들 중 70여명(수는 늘어나고 있다)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쿄전력이 미 해군에 방사선 수치에 대해 거짓 정보를 줬다고 주장한다. 도쿄전력은 그들에게(당시엔 일본 국민과 세계에 말하는 형식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물질 누출은 건강에 위험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해군은 핵 문제에서 전문가들이다. 게다가 로널드레이건호는 핵추진 항모이다. 최근에 밝혀진 바로 로널드레이건호는 해안에서 160㎞가량 떨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측정한 대기의 방사선 수치는 정상치의 30배였다. 이 수치는 10시간 노출되면 갑상샘이 손상되기 시작하는 수준이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앞에 있는 도쿄전력 직원들 (AFP연합뉴스)


지난 19일 미국의 TV뉴스 프로그램 <데모크라시 나우>가 이 소송에 대해 보도했다. 방송에 출연한 소송대리인 찰스 보너 변호사는 원고들이 20~23세 젊은이들에게 흔치 않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갑상샘암, 고환암, 뇌종양, 자궁출혈, 백혈병 등이다. 22세의 한 해군 병사는 백혈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또 다른 해군 병사의 부인은 뇌·척추암 진단을 받은 아기를 출산했다. 방송의 또 다른 출연자인 스티브 시몬스 중위는 트럭을 운전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나중에는 다리가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보너 변호사는 도쿄전력이 미 해군을 포함한 전 세계에 건강에 아무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하는 동안 사실은 비상발전기도 끊겼고 냉각장치도 작동하지 않아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즉 그러는 동안 관리자들은 암흑 속에서 미친 듯이 뭘 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발버둥쳤던 거죠. 그들은 노동자들을 어둠 속으로 보내 자동차 배터리를 가져오게 하고, 이들은 폭풍 속에서 자동차에서 배터리를 꺼내서 손전등을 들고 원자로의 냉각수 공급장치에 연결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도쿄전력 노동자들이 원자로를 냉각시키려고 바닷물을 퍼붓기 시작했을 때 엄청난 양의 방사성물질 오염수가 태평양에 쏟아져나왔다. 대부분의 해군 함정들처럼 로널드레이건호도 해수를 담수화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그렇게 해서 선원들의 식수를 조달한다.

“이 젊은 선원들은 담수화된 물을 사용했습니다. 그 물로 목욕하고, 양치도 하고, 요리도 했죠. 그들은 공기는 물론이고 음식과 식수를 통해서도 방사성물질을 섭취했고, 이제 아픈 거죠.”

도쿄전력은 미국 내에 자산이 있기 때문에 이 소송은 성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쿄전력에 소송을 제기한 주체가 미 해군이 아니라 개별 해군과 해병대 병사들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군은 도쿄전력과 마찬가지로 이 병사들이 위험한 방사선 수치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방송의 또 다른 출연자 카일 클리블랜드가 정보자유법에 따라 확보한 공개 문건에 따르면 로널드레이건호에 승선한 장교들은 도쿄전력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방사선 수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뉴스 프로그램의 인터넷 보도에는 로널드레이건호 함상 갑판을 병사들이 방호복을 입고 커다란 걸레에 비누거품을 묻혀 마구 문지르는 모습이 나온다. 과연 어떠한 은폐가 있었다면, 분명히 해군도 그 일부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의 ‘도모다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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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나는 미·일이 미 해병대 후텐마 공군기지를 기노완시에서 북오키나와 나고시의 헤노코로 옮기려는 계획에 대해 썼다. 또 히로카즈 나카이마 현 지사가 작년 말 어떻게 2010년 선거 공약을 깨고 도쿄 정부의 헤노코 기지건설 시작을 승인해줬는지도 썼다.


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가 낙심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해도 결코 이길 수 없어. 그러니 포기하자”라고 한들,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또 하나의 시험대가 있었으니 1월19일 나고시장 선거였다. 현 시장 이나미네 스스무는 과거에 기지 건설 반대를 공약하고 시장이 됐다. 그에게 도전장을 낸 두 후보는 기지 건설을 지지했다.


아베 신조 정부에 이것은 꼭 이겨야 하는 선거였다. 그들은 당 고위직과 고관들을 내려보내 기지 건설 찬성파 두 후보 중 한 명을 주저앉혀 후보를 단일화했다. 그러고는 당과 정부의 거물들을 보내 선거운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돈이 엄청나게 풀린 것으로 전해진다. 기지 사업에서 한몫 챙겨보려는 지역의 기업들도 자사 직원들을 동원했을 것이다. 급기야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은 기지 건설 찬성파가 이기면 나고시가 500억엔(약 5230억원)을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전체 선거구를 상대로 한 공개적 금품 살포 시도였다. 인구 6만2000명의 작은 도시 나고와 일본이라는 국가의 한판 대결이었고, 막판까지 승패를 알기 어려웠다.



일본 나고시장 선거 (경향DB)



결과는 이나미네의 낙승이었다. 오키나와에 드리운 패배주의는 몇 주일 만에 끝났다. 이것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위대한 선거 승리들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나고는 매수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중앙정부의 보조금 제안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선거 직후 이나미네는 시장의 권한으로, 도쿄에 이 계획을 재고해 달라고 호소하는 게 아니라, 더이상 진행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막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기지 건설과 관련해 어떠한 도로·항만·강 사용도 금지하겠다고 했다. 이 시설은 모두 시 정부 관할 하에 있다. 그리고 그는 기지 건설을 전제로 한 어떤 협상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나미네는 직업 정치인도 시민운동가 출신도 아니다. 그는 원래 나고시 교육청 공무원이었다. 지금도 그는 매일 아침 교통안전 자원봉사자로 아이들의 등하교를 돕고 있다. 여기에 정치에 주는 교훈이 있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노’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국민주권과 관련한 시사점도 있다. 도쿄 정부는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고시민들의 대답은 ‘아니오, 우리는 이미 결정했습니다’이다.


아베 정부는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새 기지를 지을 것이라고 미국에 말한다. 그들은 이나미네를 설득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시장의 권한을 빼앗기 위해 법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전경이나 자위대를 보내 공사를 강행할 것인가. 그들은 오키나와 전투 직후 미군이 기지 부지를 확보할 때 쓴 이른바 ‘불도저와 총’의 방식을 쓸 것인가.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고의 상황을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오키나와의 기지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올리버 스톤(지난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현장 및 오키나와를 방문했다)과 피터 쿠즈니크 같은 해외 인사들이 선거 이후 연대 서한을 작성해 세계 각국의 작가, 학자, 영화감독 100여명의 연명서를 돌린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럽다. 이것은 인터넷 청원운동으로 발전했다. 나는 이 청원서를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양심에 어떤 영향을 주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것은 나고시민들에게 그들이 고립돼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미·일 정상에게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그들이 나고에 진입하기 위해 지저분한 수법이나 폭력을 동원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청원서는 http://chn.ge/1ecQPUJ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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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역사에서 12월27일은 암흑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오키나와 현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는 그날 그의 선거공약은 물론이고 지난 3년간 했던 말들, 그리고 오키나와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지사의 의무를 팽개치고 미·일 정부가 미 해병대 기지를 북부 오키나와 헤노코 매립지에 건설하려는 계획을 승인했다.


이번 일은 식민지 지배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연구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카이마가 마치 프란츠 파농, 알베르 메미 같은 반(反)식민주의 지식인들의 저작을 탐독한 뒤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것 같은, 식민주의의 아주 고전적인 사례다. 그들이 썼듯이, 식민지는 외부의 힘만으로 지배할 수 없다. 식민지 지배를 받는 사람들, 특히 그 중에 엘리트 계급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엘리트 계급은 식민지적 상황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이들로 식민 지배자들처럼 사고하고, 스스로 지배자와 동급으로 여긴다.


파농은 <대지의 저주 받은 사람들>에서 이렇게 썼다. “(식민지 민족 부르주아는) 그의 나라 사람들과 함께 교육받아야 한다. 즉 그들이 식민지 대학 교육을 거치며 낚아채가는 지적, 기술적 자본을 그의 나라 사람들이 처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이 중간계급이 이러한 영웅적이고 긍정적이며 유익하고 정의로운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대신 식민지 부르주아는 어리석고 경멸스러우며 냉소적인, 전통적 부르주아들처럼 충격적인(반민족적) 방식으로 그들의 영혼을 평온하게 한 채 사라져갈 것이다.”


가련한 친구, 나카이마는 도쿄와 워싱턴의 정부 당국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그 사람, 오키나와의 영혼을 그렇게 헐값에 팔아치우리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라며 냉소적 농담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감도 못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카이마가 어리석게 행동했다고 해서 그가 어리석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매우 숙련된 솜씨로 식민지 피지배 엘리트의 역할을 해냈다. 자신의 엘리트 지위를 통해 갖게 된 “지적, 기술적 자본을 그의 나라 사람들이 처분할 수 있도록” 했으니까. 나 스스로도 당혹스럽지만, 그는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나는 원래 그의 변덕스럽고 모호한 태도가 도쿄의 중앙정부를 속이기 위한 것이고 결국엔 오키나와 주민들 편에 설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민족적 영웅이 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던 사람이, 그래서 자손 대대로 영웅담이 전승될 수 있었던 사람이, 거짓말쟁이, 배신자의 길을 택해 오키나와 역사에서 식민주의가 어떻게 영혼을 타락시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된 것이 놀라울 뿐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나카이마가 아베 신조 총리에게 얻어낸 ‘양보’는 세 가지 범주로 요약된다. ① 총리가 지킬 수 없는 애매한 약속들 ② 수개월 또는 수년 전 이미 결정된 것들 ③ 오키나와현 예산에 아주 조금 더 주는 돈.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 '굴욕의 날' 집회(출처 :AP연합)


성경 용어로 말하자면, 나카이마는 오키나와의 영원한 권리(birthright)를 죽(pottage) 한 그릇에 팔아 넘겼다(창세기 25:33). 매립, 즉 엄청난 양의 흙과 돌, 쓰레기를 오우라만에 쏟아붓게 되면 환경은 영원히 파괴될 것이다. 그 대가로 받은 돈과 다른 ‘죽’들은 몇년 안에 흩어져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실제 현실’은 아니다. 오키나와의 영원한 권리는 나카이마가 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키나와인들은 그러한 거래의 실현을 막을 결의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현청 앞에서 거의 매일 시위를 하고 있으며, 매립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단도 구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오키나와 현의회는 나카이마 사퇴를 결의했다.


1월19일은 헤노코가 속한 나고시장 선거일이다. 대립선은 매우 분명히 그어져 있다. 재선을 노리는 현 시장은 이 사업에 반대함을 분명히 표시했고, 도전자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현 시장이 우세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도쿄 중앙정부 입장에서 시장을 바꾸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엄청난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공사 계약을 기대하는 기업들도 돈을 풀 것이다. 이 선거까지 돈으로 매수가 가능할 것인가. 그 결과에 따라 많은 게 결정될 것이다.


The Great Betrayal


 December 27 will be remembered as a black day in Okinawan history. On that day, Okinawa Governor Nakaima Hirokazu cast aside his campaign promises, his statements made repeatedly during the last three years, and his duty as Governor to represent the Okinawan people’s will, and approved the US and Japanese governments’ plan to build a new US Marine Corps base on reclaimed land at Henoko, in northern Okinawa.


 This is also an event that will be researched and debated for years by people who want to understand the mechanics of colonial domination. It is a classical case, as though Nakaima had studied the works of the great anti-colonial scholars such as Franz Fanon and Albert Memmi, and learned from them what to do. As they wrote, a colony can’t be controlled by outside force alone; it requires cooperation from among the elite class of the colonized people, elites who hope to profit from the colonial situation, who have learned to think like the colonists, and who imagine themselves as having passed over into a status of equality with them.


 In his The Wretched of the Earth Fanon wrote that in a colony the national bourgeoisie ought to put itself to school with the people: in other words to put at the people’s disposal the intellectual and technical capital that it has snatched when going through the colonial universities. But unhappily we shall see that very often the national middle-class does not follow this heroic, positive, fruitful and just path; rather, it disappears with its soul set at peace into the shocking ways - shocking because anti-national - of a traditional bourgeoisie, of a bourgeoisie which is stupidly, contemptibly, cynically bourgeois.


 Nakaima, poor fellow, probably has no inkling of the cynical jokes made about him by government officials at drinking parties in Tokyo and Washington DC. “Who would have thought (they are surely saying) he would sell Okinawa’s soul so cheaply?”


 But if Nakaima behaved stupidly, this doesn’t mean he was stupid. With remarkable skill he played the role of a colonized elite putting “at the people’s disposal the intellectual and technical capital” he had attained through his elite status. He fooled a lot of people. I have to confess, to my great embarrassment, that he fooled me. I had persuaded myself that his vagaries and ambiguities were designed to deceive the Tokyo Government, and that in the end he would stand with the Okinawan people. I still find it astounding that a person who is offered the rare opportunity to become a national hero, one whose story is passed on for generations into the future, should instead choose the role of liar, betrayer, one who will go down in Okinawan history as one of the great examples of how colonialism can corrupt the soul. And for what? The “concessions” Nakaima claims to have gotten from the Prime Minister fall into three categories: 1) Vague promises that the PM will not be able to keep, 2) things that had already been decided months or years ago, and 3) a little bit more money in the Prefectural budget.


 In biblical terms, it seems that Nakaima has sold Okinawa’s birthright for a mess of pottage (Genesis 25:33). Reclamation (i.e. dumping massive amounts of dirt, rocks, , junk into Oura Bay) would destroy it perhaps forever, while the money and other “pottage” will be dissipated in a few years. But the “seeming” is not the “being”. Okinawa’s birthright was not his to sell, and the Okinawans are determined to prevent the sale from taking place. They are demonstrating almost daily in front of the Prefectural offices, launching a court action to have reclamation declared illegal, and carrying out all sorts of other protest actions (just as I was writing this, the Okinawa Prefectural Legislature passed a resolution demanding Nakaima’s resignation).


 The next major event on schedule is the election for Mayor of Nago City (where Henoko is located), to be held January 19. The issue is clearly defined there: the incumbent Mayor, who is standing for reelection, is adamantly against the project, the other candidate is enthusiastically for it. All polls show a majority of voters supporting the incumbent, but for the Tokyo Government it is vitally important to have him defeated, and it is reported that they are prepared to spend fabulous sums to achieve that. Money will also be poured in by the companies expecting to get construction contracts. So very much now depends on whether this election can be bought.


<번역 |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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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전체 사실을 얘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상에 발표했다. 전체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거짓말할 의도를 공공연히 밝힌 거라고 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1971년 <정치에서의 거짓말>이라는 에세이에서 지적했듯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 속임수, 고의적 허위, 명백한 거짓말을 합법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유사 이래 늘 있어왔다”. 물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어떤 정부가 이번에 일본 정부가 했듯이(비록 무심코 그랬다 하더라도) 거짓말을 정책의 중심에 놓는 경우는 드물다.


아렌트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내부고발 행위 중 하나인, 대니얼 엘스버그가 펜타곤페이퍼를 뉴욕타임스에 넘겨준 사건에 기초해 이 에세이를 썼다. 47권으로 이뤄진 펜타곤페이퍼에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을 어떻게 시작해 점점 확대해나갔는지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이 문건의 첫 번째 충격은 “거짓말하는 정책은 적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국내 청중에 대한 선전 목적, 특히 의회를 속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통킹만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북베트남 순찰선이 미국 군함을 두 차례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의 소녀(1973년 전쟁의 공포란 제목으로 퓰리처상 수상)(출처 :경향DB)


미국은 이것을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 개시에 이은 전쟁 확대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했다. 하지만 진실은, 첫 번째 사건은 미국 군함이 먼저 발포했고, 두 번째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북베트남 정부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의회와 대중은 속아 넘어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정부와 군 당국자들이 자신의 거짓말을 어떻게 해서 진심으로 또는 마지못해 진실로 믿게 되느냐에 있다. 정부의 공식적 거짓말이 갖는 문제는 그 거짓말이 정책의 기초가 된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그 예로 미국 정부가 북베트남을 폭격함으로써 남베트남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에 대한 북베트남의 지원을 중단하게 할 수 있고, 그러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논리를 대중에게 설파한 것을 들었다. 펜타곤페이퍼를 보면 중앙정보국(CIA) 정보원들은 그 이전에 정부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스스로의 거짓말에 얽매여 정책을 계속 밀고나갔고, 미국은 결국 굴욕스럽게 퇴각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된다. 아베 정부가 그렇게 숨기고 싶은 사실은 무엇일까. 당장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의 정확한 상황이다. 일본 의회와 대중이 진상을 파악하게 되면 2020년 도쿄 올림픽 장소는 다른 나라로 바뀌게 될 것이고, 일본에서 핵발전을 계속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도쿄전력은 현장에 어떠한 잠재적 내부고발자를 들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 전문가들의 도움을 사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함으로써 거짓말로 자승자박했다. 


거짓말로 여론을 바꿀 순 있어도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꿀 수는 없다. 후쿠시마 재난은 정부의 보도자료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의 물리학 법칙에 따라 전개될 것이다. 이는 정부가 거짓말하려 하는 다른 대부분 문제들에도 적용된다.


거짓말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일단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히면 그 후로는 아무도 그 사람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거짓말쟁이가 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사람 말 중에 어떤 게 거짓말이고 어떤 게 아닌지 알아낼 길이 없다는 데 있다. 비슷한 논리로 일본 정부가 진실을 감추는 정책을 발표한 이후 정부의 특정한 발표들을 믿을 이유가 더 이상 없어진다. 


따라서 기자들은 이제부터 일본 정부 발표를 보도할 때 ‘추정된다(alleged)’, ‘그들 주장에 따르면… 하다(purported)’, ‘주장된다(claimed)’ 등의 표현을 쓰는 게 안전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성명을 기사로 쓸 때 기사 마지막에 다음 문장을 붙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단서: 상기 기사는 일본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담고 있음. 하지만 정부는 정보를 감추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므로 본지는 이 발언들 중 어떤 것도 사실임을 보증할 수 없음.” 


(원문은 www.khan.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번역 |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Secrets


Japan’s Abe Shinzo Government has passed a new State Secrets Protection Law. In doing so, it has announced to the world its intention not to tell the whole truth about what it is doing. As not telling the whole truth is a form of lying, we can say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has publicly announced its intention to lie.


As Hannah Arendt pointed out in her 1971 essay “Lying in Politics”, “Secrecy . . . and deception, the deliberate falsehood and the outright lie used as legitimate means to achieve political ends, have been with us since the beginning of recorded history.” Of course: governments lie. It is rare, however, for a government to announce, as the Japanese government (however inadvertently) has done, that it is making lying a central aspect of its policy.


Arendt wrote her essay on the occasion of one of the greatest whistle-blowing actions in American history, when government researcher Daniel Ellsberg handed a copy of the Pentagon Papers to the New York Times. These papers, comprising forty-seven volumes, told the “secret” story of how the US government entered, and then escalated, the Vietnam War. As Arendt showed, the first surprise revealed by these documents was “that the policy of lying was hardly ever aimed at the enemy . . . but was destined chiefly, if not exclusively, for domestic consumption, for propaganda at home, and especially for the purpose of deceiving Congress.” This was made clear in the case of the Tonkin Gulf Incident, in which the US government claimed that North Vietnamese patrol boats had twice attacked US military vessels in the Tonkin Gulf. Though the US used this as justification for escalating the war by launching bombing attacks on North Vietnam, the truth was that in the first case the US ships had fired first, and the second case never happened. Of course, the North Vietnamese government knew that; it was the American public, and the Congress, who were deceived.


Even more remarkable is the way government and military officials came to believe, or half-believe, their own lies. The trouble with a government telling a public lie is that the lie becomes a basis for policy. An example Arendt gives is when the US Government told the public that bombing North Vietnam would force it to quit supporting the insurrection in the South, and end the war quickly. The Pentagon Papers showed that CIA intelligence sources had already told the Government that that was not going to happen. But the Government, trapped in its lie, continued in its losing policy until the US was finally, and humiliatingly, defeated.


So one wonders, what are the facts that the Abe Government is so anxious to conceal? Surely one of the most urgent right now is the true situation at TEPCO’s nuclear reactors at Fukushima. Presumably if the Japanese Diet and public fully knew the true situation there, the 2020 Tokyo Olympics would be relocated, and nuclear power would be abolished in Japan. (It seems clear that TEPCO is refusing help from foreign experts because they don’t want to invite any potential whistle-blowers to the site.) But, as with the US in the Vietnam War, the Japanese Government has trapped itself in the lie that Fukushima is “under control”. Lies can change public opinion, but they can’t change reality. The Fukushima disaster will unfold according to its own physical laws, unaffected by government press releases. The same is true of most other matters that governments try to lie about.


Another problem with lying is that, once your reputation as a liar is established, no one thereafter need believe anything you say. Of course liars don’t lie about everything, but the trouble is there is no way of knowing which of their statements are the true ones, and which the lies. Similarly since the Japanese Government has announced a policy of concealing the truth, there is no longer a reason to believe any of its particular announcements. It would probably be a good idea henceforth for news reporters writing about Japanese Government announcements to make liberal use of words such as “alleged”, “purported”, “claimed”, etc. Or it might be appropriate, when writing an article that reports Japanese Government statements, to attach a note at the end such as the following:

Disclaimer: The above article contains assertions made by officials of the Japanese Government. However as that government has publicly announced a policy of concealing information, this newspaper cannot attest to the facticity of any of those stat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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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학기에 오키나와 국제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강의를 하고 있다. 여러 텍스트 중 학생들에게 읽히는 것은 조지 오웰이 1949년에 쓴 소설 <1984>다. 이것은 E M 포스터의 단편 <기계가 멈추다>(1909), 카렐 카펙의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1909), 자미아틴의 <우리>(1922),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1),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1953)과 더불어 20세기의 훌륭한 디스토피아 저작들 중 하나다. 각 작품은 미래를 그린 픽션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가르쳐주는 바가 있다. 


디스토피아 픽션은 사회 분석의 한 방법이다. 저자는 어떤 흐름을 포착해 그것이 계속 이어질 경우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그려낸다. 포스터와 카펙에게 그것은 노동의 기계화였고, 헉슬리에게는 기술적으로 생산된 ‘행복’이었다. 브래드버리에게 그것은 전자적으로 창출된 가상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 오웰에게는 그것이 안보국가였다.


오웰이 상상한 미래 속에서 세상은 세 개의 초대국으로 나뉜다. 구(舊)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오세아니아’, 구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그리고 구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다. 이 초대국들은 영구전쟁 상태다. 구도는 늘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나머지 한 나라를 적대하는 식이다. 하지만 동맹은 변한다. 오늘의 동맹이 내일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맹이 된다. 국민들은 국가가 하는 일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동맹이 변할 때에도 모든 신문과 역사책은 새로운 동맹이 예전에도 늘 동맹이었으며, 결코 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식으로 수정된다. 


[어제의 오늘] 1949년 조지 오웰 ‘1984년’ 출간 (일러스트 : 김상민)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러한 기록을 고치는 일에 종사한다. 그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동맹에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한 뒤 그러한 변화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새로운 동맹이 과거부터 계속 동맹이었다고 진심으로 믿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오웰은 이러한 마음 상태를 ‘이중사고(doublethink)’라고 표현했다.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단어인데, 어떤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알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 나라 사이의 전쟁은 정치적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세 나라의 정치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세 나라 모두 같은 슬로건을 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그러면 왜 전쟁을 하는 걸까. 


윈스턴은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설명한 비밀서적에서 답을 발견한다. ‘전쟁은 순전히 국내적인 사건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 전쟁은 각국의 지배집단이 그 국민들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것이고, 전쟁의 목적은 영토를 정복하거나 막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같은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있다.’


영구전쟁은 나라를 영구 위기상태로 만든다. 이로써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법적인 권리를 유예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으며, 급기야 역사를 고쳐 쓸 수도 있다. 자국민들을 상대로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고, 정부의 결정과 조치를 비밀에 부칠 수 있으며, 대중의 분노를 나라 밖으로 향하게 해 ‘적’에게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1984>에서 국가의 이러한 경향은 결국 극단적 결말을 맞게 된다. 그 결말은 기발하고, 매혹적이며, 우울하다. 왜 우울하냐면 오늘날 전쟁과 전쟁협박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자국 시민을 감시하는 것은 테러와의 영구전쟁 때문인가, 아니면 자국민 감시를 위해 테러와 영구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을 내 조국에 대해 해봤지만 같은 질문을 다른 나라에도 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일본에서 자민당 정부는 국가에 전쟁권을 부여하고 총리에게 비상사태와 헌법권리 유예 선언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헌법을 바꾸려 한다. 그러면 비상사태는 수단이고 전쟁이 목적인가, 아니면 전쟁은 수단이고 비상사태가 목적인가.


며칠 전 한 일본 정부 관리는 헌법 9조(평화헌법 조항)에 대해 일본이 전쟁에 나가 싸울 권리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해석 개헌’을 하면 헌법을 고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쟁은 평화”인 셈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이중사고의 예가 있을까.


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번역 |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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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40년 전쟁이 그쳤다네요. 우리나라 어떤 한 분이 멈추게 하셨다는데.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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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쿄를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 적임지로 홍보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이렇게 말했다. “일각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 도쿄에는 어떠한 위험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말은 일본 주류 언론이 보기에도 좀 과했던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보수적인 도쿄 도지사 이노세 나오키도 완곡하게나마 이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아베의 말은,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뜻이지 “지금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예전 칼럼에서 소개한 적 있는 반원전 저널리스트 히로세 다카시의 반응은 이보다 좀 더 직접적이다. 히로세가 보기에 아베의 말은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다. 그는 이 거짓말을 전 세계, 특히 전 세계 스포츠계에 알리고자 했다. 그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할 꿈을 꾸고 있는 젊은 선수들과 코치, 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을 썼다. 그는 영문으로 된 이 편지를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각국 사무소에 보냈으며, 다른 언어들로도 번역 중이다. 이러한 행동은 2020년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바라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올림픽 유치에 고무돼 있는 도쿄 시민들에게는 매정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실을 숨기는 것이야말로 매정한 행동이고, 나아가 범죄적 행위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 (출처 :AP연합)

그의 편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도쿄의 방사능 수치는 위험한 수준이다. 도쿄 시내 한 공원의 흙에서 체르노빌 핵 참사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방사능이 관측됐다. 후쿠시마와 도쿄 사이에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방사능에 오염된 구름이 내려오는 데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후쿠시마 제1원전 내에서는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핵 연료봉이 과열되고 녹아서 닿는 물체들을 계속 녹여버렸다. 원자로 바닥을 녹이고, 건물 바닥의 콘크리트까지 녹여 결국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 도쿄전력 직원들은 지난 2년반 동안 필사적으로 원자로에 물을 부었지만 그 물이 녹아내린 연료봉까지 도달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런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원자로에 부어진 물은 바다로 유입된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표수의 바다 유입을 늦출 수는 있지만 지하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히로세는 쓰나미가 닥칠 때 해수면이 낮아질 때 해안선 주변의 우물들 수위도 낮아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지하수와 바닷물이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 지하수는 해저 땅 밑으로 유입되어 결국 바닷물로 솟아난다. 이걸 막을 길은 없다.


정부 대변인들은 태평양의 방사능 수치가 안전 기준을 넘어선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베의 말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히로세는 편지에서 “이는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각 층을 지날 때 살아있다고 해서 ‘지금까진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도쿄 쓰키지(築地) 어시장에서 방사선량이 0.05시버트로 정상치보다 조금 높게 측정되었다. 생선의 방사선량을 재는 기기 주변에서는 2~3배가량 더 높게 나왔다. 일본의 시장에서는 생선과 농산품에 원산지 표시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북지방의 생산물은 사지 않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은 이 지방의 산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 원산지 표시를 고친다. 통조림에 포장한 음식과 식당에서 조리하는 음식은 원산지 표시조차 하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정부의 방사선 허용치는 “저준위 방사선 폐기물의 기준치와 같다”.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의 방사선 수치를 낮추기 위해 표토만 채취해 비닐봉지에 보관한다. 하지만 그 봉지들을 보낼 곳이 없다. 어떤 지역도 그걸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산처럼 쌓인 봉지들이 후쿠시마 지역에 흩어져 있게 된다. 이 봉지들은 비바람과 눈서리를 맞고 결국 흙이 터져나오게 된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아베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쓴 성명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언어란 참으로 놀라운 도구이다. 진실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글러스 러미스 | 전 도쿄 쓰다주쿠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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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간지들에 떠도는 소문이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독서를 전혀 하지 않고 만화만 읽는다는. 그가 총리였을 때 관용차 뒷좌석에 만화책을 숨겨두고 이동 중에 읽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가 최근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잘 설명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그는 7월29일 극우 성향의 청중들 앞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어느 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바이마르헌법이 나치헌법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마르헌법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바뀌었다. 우리도 거기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로이터 연합>




나중에 그는 그 말을 철회했다. 문제는 그런 유의 말은 철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술사가 실수로 소매 안에 숨겨진 카드를 노출했다면, 그것을 다시 숨기려 든다고 해서 그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끔찍할 정도로 무식함을 드러내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나중에 그 말을 철회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무식하지 않구나 하고 생각을 고쳐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소, 아베 신조 그리고 그들 나름의 ‘보수주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1945년 이전의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은 일본인들이 시민이 아니라 신민(臣民)이었던 때이고, 대체로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던 때이다. 그들이 헌법을 바꾸려는 목적은 일본이란 국가에 전쟁에 나가 싸울 권리를 주려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정치도 그들이 그리는 ‘목가적인’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도 아소 같은 사람이 추축국(樞軸國)으로 전쟁에 나갔던 시절을 낭만화하는 것이 옛 협력국 나치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자아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향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그리워할 만한 대상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 옛날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할 필요가 있다. 헌법을 다시 쓰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열정을 갖고 임하는 것은 역사책, 주로 학교에서 쓰이는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는 일이다. 이 영역에서 그들은 얼마간 일을 진행했다. 그들의 역사학 방법론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수정 교과서의 저자와 편자들은 한 나라의 역사는 젊은 사람들이 읽었을 때 나쁜 느낌이 들지 않게 써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즉 역사 기술의 기준이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것인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미래세대가 읽게 될 때 나쁜 느낌을 가질 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이 행해지고 나면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다시 말하지만, 카드를 노출했다면 다시 소매 안에 넣어도 소용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려고 한다. 수정 역사교과서들은 일본이 1930년대에 중국을 ‘침략’하지 않고 중국에 ‘진출’했다고 기술한다. 난징 대학살도 과장됐고, 일본군은 오키나와 전투 막판에 오키나와인들에게 자살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고 천황에 대한 충성심에서 자살했다고 기술한다. 위안부 여성들은 보수를 많이 받은 자발적 이주자들이고, 태평양전쟁은 서구제국주의를 아시아에서 몰아내기 위해 벌인 전쟁으로 그리 나쁜 기획은 아니었다고 기술한다.


[시사2판4판]당황하셨어요? (출처 :경향DB)


나는 역사란 기분 좋은 이야기이기를 바라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한다. 미국인으로서 나는 조국의 역사책에 미국에 온 아프리카인들은 꽤 보수를 잘 받은 자발적 이주자였다거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것처럼 기꺼이 노예가 되려는 사람들로 기록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많은 독일인들도 그들 역사에서 나치 시절이 없었더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아소 부총리는 역사를 꼭 만화책에 그려진 수준으로 믿으려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공포스러운 일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을 제대로 마주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그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고나서야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하기 마련이다’라는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가 종종 인용된다. 이 말은 과거를 일부러 왜곡하는 사람은 과거를 의도적으로 반복하려고 한다는 의미 아닐까.



Good Old Days

There is a rumor, circulated in the Japanese weekly magazines, that Aso Taro, former Prime Minister and present Deputy Prime Minister of Japan, never reads real books, but only manga. It is said that when he was PM he kept a stash of these in the back of his official car so he could read them going to and from meetings and other duties. If these rumors are true, they would go a long way toward explaining his recent gaffe. On July 29 this year, speaking before an ultra-rightist audience on the subject of Constitutional amendment he said, according to the Asahi Shimbun‘s summary,

It should be done quietly. One day everybody woke up and found that the Weimar Constitution had been changed, replaced by the Nazi Constitution. It changed without anyone noticing. Maybe we could learn from that. No hullabaloo.

Later he “retracted” the statement. The trouble is, something like that can’t be retracted. If a magician accidentally reveals that he has a card hidden up his sleeve, he can‘t save the situation by trying to hide it again. Also, if you make a statement that reveals your dreadful ignorance (the Weimar Constitution was never amended by the Nazis; the Nazi’s did not take power “quietly”) retracting it will not persuade people that you weren‘t so ignorant after all.

Aso, Abe Shinzo and others who share their sort of “conservatism” seem to have an intense nostalgia for the good old days before 1945, when the Japanese people were subjects and not citizens, and pretty much did what they were told. Their aim in changing the Constitution is not only to give the Japanese state the right to fight wars, but also to return domestic Japan to that (as they imagine) idyllic pre-war past. So logically it shouldn’t be surprising that their romanticization of the Axis days would generate warm feelings toward their old Nazi partner.

But in order to sustain this nostalgia, they find it necessary to rewrite the story of the old days, so as to make it appear as an appropriate object for nostalgia. In addition to rewriting the Constitution, one of their passions has been to rewrite the history books - especially those used in the schools. In this they have made some headway. Their historical methodology is quite remarkable. Authors and editors of these revised textbooks have said openly, a country‘s history should not be written in such a way as to make young people feel bad when they read about it. That is, the criterion for deciding what to write is not “what happened” but “how this will make people feel”. Certainly we ought not to do things that make young people of future generations feel bad when they learn about them. But once the things are done, it’s too late. Again, you can‘t put the card back up the sleeve. But they try. Text books have appeared saying that Japan didn’t “invade”, but only “advanced” into China in the 1930s, that the Rape of Nanking has been exaggerated, that the Japanese military didn‘t really order Okinawan civilians to commit suicide at the end of the Battle of Okinawa (they committed suicide out of loyalty to the Emperor), that the Comfort Women were well-paid volunteers, and that on the whole, as the Pacific War was motivated by the desire to drive Western Imperialism out of Asia, it wasn’t such a bad enterprise. 


I sympathize with the wish that history could be a feel-good story. As an American, I wish I could read a history of my country in which the Africans who came there were well-paid volunteers (or as in the movie Gone With The Wind, perfectly happy to be slaves), in which the country expanded by negotiating with the Indians and obtaining their permission, and in which the atomic bomb was never dropped. I am sure there are many Germans who wish there was a history of Germany with no Nazi era. And I suppose Deputy Prime Minister Aso would like to believe (and quite possibly does believe) that history is accurately depicted in manga. Sadly, history as it happened is full of horrors, and it requires great courage to face it. But only if you face it, can you learn from it what needs to be learned. George Santayana‘s aphorism, “Those who cannot learn from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is often quoted. Does this mean that those who deliberately distort the past intend to repeat it?


더글러스 러미스 | 전 도쿄 쓰다주쿠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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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대 갖고 싶지 않은 것을 꼽자면 첫번째는 암(癌)이고, 두번째는 부러진 다리, 세번째는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를 꼽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다. 나는 전화벨이 울리는 걸 싫어한다. 울리는 전화벨은 마치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든, 당장 멈추고 전화를 받으라는 명령처럼 느껴진다. 독서 중일 수도 있고 요리를 하거나 연애를 하는 중일 수도 있지만 뭐든 상관 없다. 전화벨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들어야 한다.


나는 도쿄에 살 때 대도시 거주의 기쁨 중 하나가 익명성에서 오는 자유라는 점을 알게 됐다. 기차를 탈 때나 분주한 거리를 거닐 때, 세상 어느 누구도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매일 일터에 오가며 세 시간가량 방해받지 않고 독서할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은 어떤 전화로부터도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어딜 가든 전화기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견디기 어렵다.


나는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커피숍에 앉아 누군가와 얘기하다가 대화가 재미있을 무렵 상대방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미안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전화를 찾는다. 마치 주인의 부름을 받은 굴욕적인 하인처럼 행동한다. “이 호주머니였나? 아니지, 저 호주머니야. 아니야, 아, 아마도 가방에 있나보다. 아, 여기 있네. 미안해요. 잠깐만. 여보세요?”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저런 걸 갖고 싶지 않아. 절대로.’


(경향DB)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면 ‘아무도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류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 특히 휴대전화에 위치추적장치라도 달려있기라도 하면, 막말로 경찰이 당신이 매 순간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정부 요원들은 당신이 휴대전화에 말하는 것이나 쓰는 것을 언제든 읽어낼 수 있다. 대중이 완전한 감시 체계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정부의 감시 요원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어떤 발명품이 거꾸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현상을 ‘근원적 독점(radical monopoly)’으로 표현했다. 가령 누군가 자동차를 발명했다고 하자. 처음에 그것은 비싼 사치품이거나 부자들의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점차 많은 자동차들이 판매되며 도시는 그에 맞게끔 재설계된다. 대형 마트가 생겨나고 골목 상권은 사라진다. 곧 식료품 구매 등 가족 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이 자동차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다. 자동차는 필수품이 된다. ‘제대로’ 된 삶을 위해 당신은 꼭 차를 몰아야 한다.


지하철에서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향DB)


휴대전화는 ‘근원적 독점’ 효과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휴대전화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휴대전화 ‘영업사원’으로 조직화된다. “뭐라고, 휴대전화가 아직도 없어?” 여기서 ‘아직도’가 중요하다.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심지어 무례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밤낮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휴대전화로 연락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점점 더 상식처럼 되고 있다. 휴대전화를 강권하는 사람은 영업사원이 아니라 바로 사용자들이다. 사회 전체가 휴대전화 판매 부서로 조직화돼 나처럼 완강하게 버티는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마음 약하게 만들어 그 끔찍한 물건을 장만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근원적 독점’이란 말은 이 새로운 현상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휴대전화 구매 압력은 편리함이나 필수재로서의 압력 정도가 아니다. 안 사겠다고 버티는 사람은 ‘왕따’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나는 ‘전체주의적 독점(totalitarian monopoly)’이란 말을 쓰고자 한다. 여기서 ‘전체주의’는 정치적 극단이란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를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영업사원으로 조직화하는 전체성을 향한 역동적인 기획이다. 생산자들에게 그것은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더글러스 러미스 | 평화운동가·전 도쿄 쓰다주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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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월15일자 칼럼에서 일본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을 다뤘다. 요즘 2006년 쓴 책 <憲法は、政府に對する命令である>(헌법은 정부에 대한 명령이다)의 후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헌법개정안을 최근 몇주간 좀더 주의깊게 연구했다. 이 칼럼에서는 최근 연구에서 알게 된 것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한국의 독자들도 이웃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본국 헌법은 전후시대의 산물로, 대일본제국 정부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일본 국민들에게 넘겨준 것이다. 헌법 제정 이후 자민당은 그 권력을 자신들이 되찾아오기를 원했으나 국민들은 자민당에 다시 권력을 넘겨주는 것을 거부했다. 현행 자민당 헌법개정안은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다시 빼앗아오는 식으로 설계돼 있다. 국회에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의석수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요즘 자민당의 인기를 감안하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헌법개정안은, 사실은 완전히 새로운 헌법인데, 천황의 지위를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 헌법의 1조는 천황을 “국가수반”으로 선언한다. 현행 헌법 3조는 천황이 국사(國事) 행위를 위해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구하도록 하고 있지만, 새 헌법에서는 “승인”이란 말이 빠져있다. 현행 헌법 4조는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항에 따라서만 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개정안에서는 제한의 의미를 담은 ‘~만’이 삭제됐다. 그리고 지난번에 썼듯이 현행 헌법 99조는 ‘천황’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들에게 헌법을 “존중하고 준수할” 의무를 규정하지만 개정안에서는 천황을 뺐다. 쉽게 말해 현행 헌법은 천황을 법의 틀 내에 포함시켜놓고 권력을 제어하지만, 새 헌법에서는 천황을 이 구속에서 해방시킨다.


이 역시 지난번에 지적했는데, 현행 헌법이 공공복리에 부합하는 한 인권을 조건없이 보장하는 반면, 새 헌법에는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한다. 이는 인권을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대상에서, 정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 한해 허용하는 것으로 변모시킨다. 추가적으로, 새 헌법은 인권이 전체적으로 유예되는 “비상사태” 조건을 새로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총리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지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새 헌법은 현행 헌법 9조가 부인해온 정부의 교전권을 부활시킨다. 이는 일본 군인들이 다시 전쟁에 나가 살인죄에 저촉될 우려 없이 사람들을 죽일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자위대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아오모리 시내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경향DB)


나는 예전 칼럼에서 현행 헌법의 화자(話者)는 분명히 일본 국민이라고 썼다. 그러나 새 헌법의 화자는 불분명하다. 그 이후 새 헌법의 화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민당 지도부다. 그 점은 새 헌법의 내용과 어조에서 분명해진다. 새 헌법안의 내용을 보면 그들의 정치 사상뿐만 아니라 그들 특유의 상투적 표현, 미적 감각, 선입관, 특정한 것에 대한 열정, 역사관 그리고 그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문제와 그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공백이 모두 담겨있다. 새 헌법안의 어조를 보면 뽐내고, 성마르고, 화내고, 때론 자신감이 없으며, 일본 국민에 대한 깊은 불신을 담은 자민당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국민에 대한 불신은 아마도 이 헌법의 화자 즉 주권(主權)의 목소리가 국민의 것이 아니라 자민당의 것임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따라서 102조에 새로 삽입된 “모든 국민은 이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구 자체를 주권적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


(AP연합뉴스)


자민당이 국민에 분노하고 그들을 불신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차대전 종료 이래 일본 국민들은 한동안 자민당을 여당으로 선출해주긴 했지만 자민당에 자유로운 통치권을 주지는 않았고, 활동에 제한을 가했다. 자민당에게 가장 성가신 일은 헌법 개정이 해마다 국민들의 방해로 막힌 것이다. 새 헌법안은 그러한 국민들에게 벌칙을 주려는 차원에서 고안된 것 같다.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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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나 국민을 구성하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이론이 존재한다. 대개는 공통된 언어, 종교, 문화, 인종 등이 제시된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국민’이 다른 경우가 있지 않은가. 또 같은 가톨릭,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신자지만 ‘국민’이 다른 경우도 있고, 한 나라에 이 모든 종교신자들이 같은 ‘국민’으로 있는 경우도 있다. 문화와 인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정말로 중요한 문화와 인종의 차이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이란 아마도 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국민’이 된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국민으로 여기게끔 하는 것 중 하나는 공통된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공통된 역사가 공유되는지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는 어떤 중대한 역사적 날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지 보는 것이다. 내가 도쿄의 한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이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부르는, 그래서 회고하고 추모하는 이날을 한국에서는 해방일 또는 광복절로 부르며 축하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받는 모습을 보았다.


지난달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군 참전국들과 평화조약에 서명하고 독립을 회복한 1952년 4월28일을 두고 비슷한 종류의 역사 이해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올해 아베 내각은 그날을 ‘일본 주권회복의 날’로 부르며 축하행사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평화조약에는 오키나와에 대한 주권을 미군정에 넘긴다는 조항도 들어 있었다. 미군정은 그 후로도 20년간 계속됐다. 그래서 4월28일을 기념하는 오키나와인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서 4월28일은 ‘굴욕의 날’로 불린다.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 '굴욕의 날' 집회 (경향DB)


아베는 국회의원들과 현(縣) 지사들을 축하행사에 초청했다. 오키나와현의 지사는 참석하기를 거부했다. 오키나와에서는 (보수성향) 나하 시장이 조직한 항의집회가 있었다. 집회는 기노완시의 원형극장에서 열렸는데,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좌석이 다 차서 입구가 닫혔다. 주최 측에 따르면 1만명 정도가 참석했다. 아베 정부가 조직한 주권회복의 날 행사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이다. 강조하건대 연설자들은 ‘진보진영’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보수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연설자가 “아베 신조와 그의 당은 오키나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 안됐지만,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믿음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달리 행동할 것이라는 희망에 집착하는 태도이다. 나는 오히려 그들이 주권회복의 날 기념식이 오키나와에는 모욕임을 잘 이해한다고 본다. 문제는 그들이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다. 심지어 적어도 그들 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오키나와를 모욕하고 오키나와인들의 호소와 항의가 소용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축하행사를 강행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있는 점과 비슷한 이치다. 사람들은 종종 “그들(본토인)은 이 기지들이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 이 기지들 중 하나를 일본 본토로 옮기자고 제안하면 본토인들은 즉각 항의집회를 열 것이다. 때로 그들은 본심을 노출하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뭐라고요, 미군기지를 본토로 옮긴다고요? 왜요, 그러면 이곳도 오키나와처럼 된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미군기지가 얼마나 큰 부담인지 설명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도 미군기지가 부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2년 본토의 이익을 위해 오키나와를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베 내각은 4월28일 축하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오키나와인들의 감정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래서 1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키나와에서 ‘굴욕의 날’이라 부르는 날에 항의집회를 위해 모였다. 이런 식으로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의 간극은 커져간다.


(경향DB)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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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몇년 전, 기밀 해제된 미국 전략사령부의 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행동 또는 피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대응을 너무 구체적으로 밝혀서는 안된다. 우리가 억지하려는 적의 행동이 나타나려 할 때 미국이 적에게 가할 수 있는 조치의 모호성에서 비롯되는 장점 때문에 우리가 너무 충분히 합리적이고 냉정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손해이다. 일부 요소는 잠재적으로 ‘통제 불가능’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적국 정책 결정자들의 마음 속에 두려움과 의구심을 만들고 강화시키는데 이로울 수 있다. 두려움의 본질은 실제로 작동하는 억지력에 있다. 핵심 이익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도 ‘비합리적이고 복수심에 가득찰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모든 적들에게 투사하고자 하는 국가적 페르소나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는 이를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불렀다. 핵무기가 억지력으로 작용하려면 단순히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문제는 보통의 인간적 감정이나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실제로 그걸 사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핵무기에 의한 첫번째 타격은 도덕적으로 매우 꺼림칙한 일이 될 것이고, 두번째 타격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뒤의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효과적인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는 적들에게 자국 지도자가 핵무기를 쓸 정도로 미치광이라는-위 문서 표현에 따르자면 ‘통제 불가능한’ 또는 ‘비이성적이고 복수심이 강한’-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미국 핵잠수함 부산입항 (경향DB)


따라서 이것은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의 문제는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든, 미치광이 전략은 미국 정책의 한 부분이다. 미국은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정도로 정부 내에 미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적국들에 납득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한 미치광이 전략은 성공했다. 적국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핵무기를 실제 사용함으로써 언제든 그걸 쓸 수 있음을 입증한 유일한 나라다.


의도했건 안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역시 적들에게 이러한 (미치광이) 국가적 페르소나를 투사하는데 성공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7일 현재 미국과 북한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위험한 핵 대치를 벌이고 있다. 북한 당국은 핵 공격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미국 당국은 북한은 핵 공격이 자살행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살’이란 표현에서 보듯, 미국 역시 보복 타격을 할 때는 핵으로 할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은 지난 60년간 미국의 핵 공격 위협 아래서 살아왔다. 그 기간 대부분 북한은 어떠한 핵 억지력도 갖추지 못한 채였다. 그러한 경험이 그 나라의 합리성을 증진시켰을까, 아니면 서서히 나타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피해망상증과 분노에 찬 공격, 돌발적인 통제불능한 폭력-를 가져왔을까. 후자이기를 바라지는 말자.


대한민국의 햇볕정책이 막 닻을 올린 2000년 9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미국 네오콘 싱크탱크는 ‘미국 방위의 재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다. 


“(…) 어떠한 현실적인 (한반도) 통일 이후 시나리오에서도 미군은 북한에서 안정화 작전의 한 역할을 담당할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반도 통일’은 “한반도 북부에 대한 미군의 군사적 점령”을 의미했다. 2개월 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미 행정부에 기용됐다. 


2년 뒤인 2002년 1월29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선언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준비를 시작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유엔 무기감시단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확인한 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에는 어떠한 억지력도 없었다.


훈련하는 북한군인들 (경향DB)


북한 관리들은 이러한 사태 전개를 주시했다. 짐작컨대 북한 사람들이 이 일에서 얻은 교훈은 ‘악의 축’ 명단에 있는 나라 중에 핵 억지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미국에 침공당한다는 것일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다는 게 분명해졌을 때인 2003년 1월 북한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악의 축’은 부시의 구호였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누가 대통령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미군과 한국군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 훈련 및 북한 침공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워게임을 수행했다. 침공은 여전히 미국의 한반도 통일 모델의 하나이고, 핵 공포는 여전히 하나의 옵션으로 남아있다. 북한의 반응이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미치광이 전략을 오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60년간 미국의 핵 위협 아래 살아오면서 진짜로 미쳐버린 것인가.



 
Nuclear Terrorism


A US Strategic Command document declassified a few years ago contains the following passage:


(...) While it is crucial to explicitly define and communicate the acts or damage that we would find unacceptable, we should not be too specific about our responses. Because of the value that comes from the ambiguity of what the US might do to an adversary if the acts we seek to deter are carried out, it hurts to portray ourselves as too fully rational and cool - headed. The fact that some elements may appear to be potentially “out of control” can be beneficial to creating and reinforcing fears and doubts within the minds of an adversary‘s decision makers. This essential sense of fear is the working force of deterrence. That the US may become irrational and vindictive if its vital interests are attacked should be a part of the national persona we project to all adversaries. (...)


Richard Nixon and Henry Kissinger called this the Madman Strategy. For nuclear weapons to serve as a deterrent, it’s not enough simply to possess them. The problem is, no person of ordinary human feeling or rationality would actually use them. A first strike would be a moral abomination; a second strike would be too late. For nuclear weapons to be an effective deterrent, a government must persuade adversaries that its leaders are crazy enough to use them - as the document says, “out of control”, “irrational and vindictive”.


Thus it‘s not a question of who is the US president. Whoever is president, the Madman Strategy is US policy. And it has succeeded, in that the US’s adversaries are persuaded that there are people in the US government mentally deranged enough to use the Bomb. I am also persuaded. After all, the US is the only country to prove itself capable of doing it by actually doing it. Twice. 


Whether intentional or not,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has also been successful in projecting this national persona to its adversaries. As I write (7 April) the US and the DPRK are engaged in the most dangerous nuclear standoff since the Cuban missile crisis. DPRK representatives are saying they are ready to launch a nuclear attack. US representatives are saying, probably they won’t do it, because they are rational enough to understand that it would mean suicide. By “suicide” they mean that the US would take revenge by launching a nuclear attack. 


The DPRK has been under threat of US nuclear attack for six decades, most of that time without any nuclear deterrent capability. Does such an experience improve one‘s rationality, or does it bring on a slow version of PTSD: paranoia, attacks of rage, sudden uncontrollable violence? Let’s hope not the latter.


In September 2000, as the ROK‘s Sunshine Policy was just getting started, a neoconservative US think tank called The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published a paper titled “Rebuilding America’s Defenses.” It contained the sentence,


“…in any realistic post-unification scenario, U.S. forces are likely to have some role in stability operations in North Korea.”


In this view, “reunification of Korea” meant “US military occupation of the North”. After George W. Bush was elected president two months later, many of the authors of this document joined his administration.


Two years later, on 29 January, 2002, President Bush declared that Iraq, Iran, and North Korea formed an “axis of evil”. Then the US began preparations to invade Iraq. Significantly, it invaded Iraq only after it was assured by the UN Weapons Inspection Team that Iraq had no weapons of mass 

destruction: no “deterrent”.


Surely the DPRK officials watched these developments closely. Presumably the lesson they drew from them was, countries on the “axis of evil” list that have no nuclear deterrent get invaded by the US.


In January, 2003, when it had become clear that the US was going to invade Iraq, the DPRK announced its withdrawal from the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Axis of evil” was a GW Bush slogan, but again it seems not to matter who is president. Last month the US military in the ROK staged a mock nuclear attack on the DPRK, and carried out a war game on the scenario of invading that country. Invasion is still the US model for reunification, and nuclear terror is still an option. The response of the North appears to be mad, but is it an overuse of the Madman Strategy, or have six decades of living under US nuclear threat driven them genuinely mad?






<번역 | 손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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