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국은 지난 5월 쿠데타 후 표면적으로는 잠잠한 듯 보인다. 쁘라윳 찬오차 국가평화질서회의 의장은 7월 중 임시 헌법을 공포하고, 오는 9월 과도정부를 출범시킨 후 2015년 10월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에 맞설 반쿠데타 세력들의 움직임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전 프어타이당 당수인 짜루퐁 르엉쑤완과 ‘레드셔츠’ 강경파 리더인 짝끄라폽 펜캐가 추진 중인 ‘쎄리타이’(자유타이운동)라고 불리는 망명정부 수립이지만 그 세력의 확장 가능성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 전 태국 일간신문에는 반정부 시위대 ‘옐로셔츠’ 지도자였던 쑤텝 트억쑤반 전 부총리가 승복을 입고 탁발하는 사진이 실렸다. 그는 고향인 태국 남부 쑤랏타니도의 한 사원에서 출가했다. 우리에게 출가라는 말은 다소 낯설지만 태국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이른바 단기출가 습속은 14세기 중엽 쑤코타이 왕조의 리타이왕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의 푸미폰 국왕도 젊은 시절 출가한 적이 있다. 일반 성인 남성들은 성년의 나이가 되면 출가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불교도 태국인들이 공덕을 쌓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정치인들은 종종 정치적으로 불운한 시절 출가하곤 해 정치적 해석을 낳게 했다. 1932년 입헌혁명의 주역으로 두 차례나 총리직에 올랐으나 1957년 싸릿 타나랏 주도의 쿠데타로 축출된 피분 쏭크람 총리는 일본으로 망명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에 맞서 일본과 공수동맹을 맺은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망명 중이던 1960년 인도를 방문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서 출가했다. 그는 그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태국으로의 귀국을 원했지만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1964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 부다가야 숲속의 보리수 (출처 : 경향DB)

1973년 10월 학생혁명 후 독재자로 낙인찍혀 쫓겨났던 타넘 낏띠카쩐 총리는 1976년 귀국해 푸미폰 국왕이 단기출가했던 버원니웻 사원에서 출가했다. 그의 귀국에 대해 반대여론이 많았음에도 이후 태국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출가의 덕이 적지 않았다. 그는 후일 정치에 다시 발을 들이지는 않았으나 훼손된 정치적 이미지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다가 2004년 사망했다.

정치인들의 출가행위는 전통 태국사회에서 정치와 불교(승가)의 밀접한 관계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국민들의 도덕적 가치, 사고, 행동양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사회질서와 정치체제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치체제는 항상 불교와의 관련성을 증거함으로써 정당성을 유지하려 했다. 전근대 시대 왕들의 단기출가 습속은 이런 정치적 이유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불교정치체제’를 유지했던 동남아의 다른 상좌부불교 국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명 ‘프라파빠까로(빛을 만드는 사람)’를 갖게 된 쑤텝이 앞으로 머물기로 한 사원은 젊었을 때 이미 한 차례 단기출가한 적이 있는 쑤언목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현대 태국이 낳은 가장 저명한 불교 사상가이며 불교개혁운동을 이끌었던 풋타탓 스님이 만든 사원이다.

쑤언목의 의미는 ‘자유와 구원의 정원’이다. 쑤텝은 비타협적이고 외골수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어 반대세력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심각한 지역 간, 계급 간 갈등의 한가운데 섰던 문제의 인물이다. 그는 얼마 전 지난 시위 기간 중 자신이 군 수뇌부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발설로 군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그의 출가는 쿠데타 후 어떤 정치적 입지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택한 정치행위의 일종으로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그의 정치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김홍구 |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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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석좌교수



한반도의 주변 정세가 긴박해지면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의 외교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핵심은 한쪽에 치우친 외교보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협력적인 외교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의전적이고 정치적인 과시형 외교가 아니라 국익과 미래를 위한 실질적 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주변 4강과의 외교정책은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를 풀어가는 데 절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번에 중국에 특사를 파견한 것은 적절하고 의욕적인 출발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이분법적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정책 기조를 밝혔다. 한·미동맹의 유지 관리를 바탕으로 한·중 간 전략적 협력관계의 심화 발전 병행과 더불어 주변국 외교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변화하는 글로벌 질서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동북아시아를 새로운 무대로 설정하고 신극동전략으로 동진하는 러시아 외교를 주목하는 정교한 외교적 혜안을 주문하고 싶다. 한국 외교가 지향하는 중견국 리더십 확보를 위해선 한·미·중의 전략대화 못지않게 대러시아 관계가 긴요하다. 여기에는 한국의 제한적인 외교자산을 균형적으로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


한·러 6자회담 수석대표가 외교부 청사에서 회동하고 있다. (경향신문DB)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 규모는 200억달러에 달하고 투자와 합작부문에서 새로운 협력공간이 열려 있다. 특히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과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프로젝트는 통일 한반도 미래와 러시아 동방정책의 국가적 이해가 맞물린 국제연대 협력 모델이다. 지정학적 역할과 북·러관계 복원을 도모하고 있는 러시아와는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공조와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유럽 중심의 대외정책을 아시아로 선회하고 있다. 강한 러시아 재건을 표방한 푸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파워 국가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극동지역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증가를 완화하고 동북아 리더십을 확보하여 아·태국가들과의 경제협력체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는 극동 개발과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푸틴은 2012년 ‘모스코브스키예 노보스티’지에 기고한 ‘러시아와 변화하는 세계’라는 글에서 북한의 핵 억제를 위해 남북이 상호 신뢰하에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남북문제 및 한반도 통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국가 중의 하나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강화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다.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신중했다.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가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냉정과 절제를 유지해야 하고, 결의안은 중립적이고 지역의 안전에 기여해야 하며,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정 수호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나라 모두 북한의 자극을 최소화하면서 우호세력임을 경쟁적으로 자임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동북아지역에서의 러시아 역할과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남·북·러 3자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실현은 통일로 가는 길이다. 한·러 양국은 아·태지역의 경제·정치적 파트너로서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서 한국은 역내 중견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갈등과 미·일 대 중·러의 첨예한 대립을 억제하고 세력균형의 실리적 외교정책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러시아 특사 파견은 지난 정권처럼 허세적인 정치인이나 의전적인 측근 중심의 1회성이 되어선 안된다. 선진국처럼 전문가 중심의 친러시아 라인을 구성해 연속성을 지향하는 특사 외교가 필요하다. G2시대에 대응하는 다변화·균형 질서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러시아는 한국의 키 플레이어이자 파트너이다. 미국도 대외정책에서 러시아 카드를 활용하고 있음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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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대한민국 5년을 이끌어갈 박근혜호가 시동을 걸었다. 52%의 기대만큼이나 48%의 우려도 크기 때문에 인수위원회의 출항 준비는 만만치 않다. 5년의 항해도를 그려가는 데 가장 큰 도전은 경제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의 삶을 돌보는 일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일자리 증대, 경제적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확대, 물가 및 집값 안정, 사교육비 절감 등 국민의 경제적 삶을 향상시키는 정책과제가 항해도에서 우선순위로 설정될 것이다. 외교정책의 지표와 과제도 민생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되어야 할 것이고 경제외교의 비중은 격상돼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은 이미 정력적으로 경제외교를 추진해왔다. 국력의 상대적 쇠퇴를 겪고 있는 미국은 “현시점에서 최선의 외교정책은 경제발전”이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말처럼 경제부흥을 위해 경제외교의 위상을 안보외교와 함께 미국 외교의 양대 축으로 격상시켰다. 중국은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이란 지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국제환경을 마련하는 외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핵심이익을 확고히 지키되 미국과 과도한 패권경쟁을 벌이지 않으면서 수출확대와 내수진작, 사회격차 시정을 추구하는 경제 우선 외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아베 정권은 헌법개정이나 국방군 설치 등 우익적 의제를 일단 접어두고 FTA 정책, 엔저(低)정책 등 정책수단을 총동원하며 경제회생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2010년대는 경제외교의 치열한 각축장이 될 것이며 한국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체계적이고 정교한 경제외교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중국 정부 특사와 얘기하는 박근혜 당선인 (경향신문DB)


박근혜 외교의 첫 단추 끼우기는 아마도 FTA 교섭이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2월 말 한·중·일 FTA와 역내포괄경제협정(RCEP)의 동시 교섭개시와 함께 한·중 FTA 협상도 본격화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경제살리기와 한·미동맹 복원이란 두마리 토끼를 일거에 잡기 위해 한·미 FTA 비준을 향한 쇠고기 협상에 나서다 촛불정국을 맞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FTA가 가져다줄 동맹효과도 모호한 데다 대기업 수출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 FTA로는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먹거리의 국민안전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협상은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려웠다. 향후 FTA 항해도는 경제영토 확대란 성장 프레임을 탈피해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진출 촉진,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세심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섭에서 상대적 이익추구를 넘어 공생과 연대의 가치를 담아 동아시아지역의 협력적 질서를 이끌어 경제에 미치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여가야 한다.


민생정치에서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듯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순항을 위해서는 급격한 대외충격을 흡수할 국제안전망 확보가 긴요하다. 위기의 충격은 약자가 가장 크게 받기 때문에 대외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국제협력 외교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장시대를 열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국면을 맞아 악전고투하였다. G20 서울 정상회의는 생존의 문제로서 국제적 금융안전망을 구축할 호기였으나 정작 정부는 “대한민국 세계 중심에 서다”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국위선양 행사로 치른 경향이 있다. 박근혜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를 냉정히 평가한 후, 금융이 민생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외교부처와 경제부처의 협업, 민간과 정부의 협업에 의해 국가지(知)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적, 지구적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안보·통일정책도 민생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높은 파고는 박근혜호의 시련이다. 핵선군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군사비를 증강해야 한다는 논리는 민생정치와 맞지 않는다. 북을 품는 영리한 외교로 힘의 논리를 제압하고 군사력을 대체해야 한다.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민생의 국정운영을 돕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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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 전남과학대 교수·일문학


 

일본 유학에서 귀국한 뒤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한·일가교에 매진하는 학자로서 일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아베 총리에게 충언드립니다. 한국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에 동원돼 피해를 본 근로정신대 할머님들이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광주에서는 2009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도 결성돼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도 있지만, 동향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 해결에 헌신적이었던 양심적인 일본작가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를 연구하는 입장이기에 저 또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99년 초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군수공장 등에서 불법노역에 시달렸음에도 임금도 받지 못하고 귀국했기에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를 기각해 버렸습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출항의 돛을 올린 계기이기도 합니다.


(경향신문DB)


그런데 그 후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인 강제노동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일본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2010년 일본 니시마쓰(西松)건설사가 일제강점기 니카타(新潟)에서 노동하며 피해를 입은 중국인 징용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미쓰비시중공업도 자세를 바꿔 피해자 측과 2010년부터 도쿄와 나고야 등에서 16차례나 협상을 진행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배상 건과 관련한 협상이 지난해 7월6일 최종적으로 결렬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국내의 광주지법에 제기한 상태입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미쓰비시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협상을 진행해오다가 개인보상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이유로 들거나,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들었는데, 일본 기업에서 중국인 피해자들을 보상한 선례가 있는 만큼 속히 피해보상을 하고 공개 사과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일찍이 마쓰다 도키코는 강제동원으로 피해를 입은 이국 징용자의 실태 조사와 진상규명에 앞장서 중국인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참회의 마음이 조선인에게도 다를 바 없이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나오카 광산의 참극’이라는 논평을 통해서도 “중국인 강제연행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 조선인 강제연행 사건이었고, 동시에 그건 전시 일본의 1억 국민에게 부과된 군사적 생산 총동원 체제하에서 일어난 무수한 비운과 직접 연결된 학대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그러한 진실의 모태가 되었던 것은 침략전쟁 그 자체였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논평은 군대 보유와 전쟁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평화헌법 개정이 얼마나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할 것인지를 일깨웁니다. 다른 한편 피해 보상과 성찰의 문제도 당시의 조선인과 중국인 징용자가 대등한 처우를 받아야 함을 ‘중국인 강제연행=조선인 강제연행 사건’으로 지적한 것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일본 기업이 중국인 징용 피해자에게는 수십억원을 보상했는데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피해보상과 공개사과가 절실합니다. 신년 한·일우호를 위해 각별한 관심으로 살피셔서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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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기자


 

두 달 전 모하메드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커다란 갈색 눈에 아이답지 않은 우울함이 깃든 여덟살 소년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에 산다. 지중해와 육로로 몇 시간 거리인 곳이지만 소년은 태어나서 바다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소원이 “바닷가에 놀러가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이스라엘에 빼앗긴 예루살렘과 우리의 땅들을 되찾고 싶다”고도 말했다. 매달 작은 금액을 보태는 것만으로는 큰 도움이 될 수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모하메드가 사는 제닌은 전체 마을 가운데 여섯 곳이 분리장벽으로 고립돼 있다. 높이 5~8m짜리 콘크리트가 마을을 둘러쳤다.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 주민들은 매번 이스라엘 당국의 까다로운 검문을 거쳐야 한다. 주민 80%의 생계가 달린 농업은 망가졌다. 주요 경작물인 올리브나무 25만그루 이상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훼손되거나 뿌리째 뽑혔다. 식량부족을 겪는 주민들 비율은 56%에 달한다. 모하메드네 가족이 함께 바다 여행을 가기에는 길도, 가정 형편도 여의치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물자 유입도 제한된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축구공을 보내려 문의했지만, 이스라엘의 엄격한 통관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선물 발송 금지국가’로 분류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건물 잔해 위를 걷고 있다. (경향신문DB)


이런 현실을 팔레스타인 만화가 나지 알 알리는 작은 유리병 속에 갇힌 채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물고기에 빗대 그린 바 있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유리병을 깨고 바다로 나아갈 힘도 없이 서서히 죽어가는 물고기 같은 신세라는 자조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경제·정치·군사적으로 압도하는 이스라엘은 요즘 잇따른 강공으로 그 병마저 깨뜨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에는 서쪽 가자지구의 정부청사와 언론사까지 가리지 않고 맹폭하더니 이번주에는 동쪽 요르단강 서안에 국제법상 불법적인 영토확장인 정착촌 건설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동분쟁의 씨앗을 뿌린 ‘그레이트 게임’과 홀로코스트의 원죄가 있는 유럽, 그리고 유대인이 강력한 로비단체를 형성한 미국에서는 이 같은 이스라엘의 막무가내식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기껏해야 비난성명이 고작이다. 각국 정부나 언론이 강수를 두려면 반유대주의 혐의의 역풍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 같은 국제외교력의 비대칭성을 이스라엘은 그간 십분 이용해왔다. 


하지만 아랍 민주화 이후 중동 각국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현명한 외교적 해법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런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이자 ‘약자’로서 박해받던 과거에 사회의식이 멈춰 있는 이스라엘은 새로운 피해자이자 약자 집단인 팔레스타인을 만들고 있다. 한때 유럽의 게토에도 바닷가에 놀러가고 빼앗긴 집을 되찾고 싶어 한 유대인 소년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의 반복은 참으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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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 전 외교통상부 장관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플랜더스 지방은 양귀비로 유명하다. 오랜 참호전으로 초목들이 포화 속에 타들어간 곳에 오직 양귀비만이 병사들의 무덤 위에 피어올랐다. 시인들은 “플랜더스의 양귀비는 젊은 병사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슬퍼했고, 학자들은 이 피가 잘못 선택된 정치인들의 어리석은 야망 때문에 흘린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 양귀비는 세계 각국 현충일의 리본이 되었다. 


흔히 정치 계절은 어리석은 계절이라고 한다. 본질적 국가 이익보다는 파당적 이익에 몰입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지금 동아시아를 흔들고 있는 민족주의와 영토 분쟁의 결합 뒤에는 이런 어리석은 이유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국내도 나라의 원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당면 과제들의 대책을 토론해야 할 대선 정국이 느닷없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5년간 서해는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어 왔다. 젊은 장병들이 흘리지 않을 수도 있었던 피를 흘려야 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대 우리 정부는 남북간의 충돌을 방지하면서 이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 군비태세 강화와 남북간 소통이라는 양면적 접근을 해왔다. 서해공동어로수역이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공동어로수역은, 첫째, NLL을 기선으로 하여 양측이 같은 면적의 수역을 내놓는 개념이므로 NLL이 남북간의 해상 경계선임을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고, 둘째, 남북 대치를 틈타 중국 어선이 채가던 고기를 남북 어선이 함께 잡을 수 있으며, 셋째, 남북 해군 초계정간 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NLL포기 규탄 결의문 채택한 새누리당 (경향신문DB)


공동어로수역 설정 방식은 앞으로 협상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로서는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 장치가 수립될 때까지는 NLL을 확고히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고, 북한은 우선 숨통을 좀 열어 보자는 것이 당장의 목표인 만큼 협상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선전적 주장과 현실적 요구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새겨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 후보가 남북간 기존 해상 경계선 존중을 전제로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 방안을 북한과 논의할 용의를 표명한 것은 바람직하다. 제대로 잡은 방향이 흑백논란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건만 해도 그렇다. 설사 지금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 유사한 취지의 NLL 관련 대화가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효력을 갖는 것은 문서화된 합의이다. 간혹 최종 문서 합의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대화를 ‘토의 기록’이라는 형식의 공동문서로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2007년 정상회담의 경우, 유일한 공동문서는 ‘10·4 선언’이다.


NLL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의 핵심 고리이다. 최근 북한의 NLL 침범 사례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대통령 후보들의 새로운 남북관계 공약에 비추어, 다음 정부 출범시 튼튼한 안보 위에 남북관계발전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 논쟁해야 할 것은 NLL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아울러 NLL의 정의에 대한 논쟁도 앞으로 통일을 이룰 때는 우리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경계선을 허무는 것이 되어야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나라를 지키는 것이 최상의 국가 안보이다. 지도자들이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죽음으로 사수해야 할 선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젊은 장병들을 담보로 정치 구호에 몰입하는 것으로 비친다. 서해가 바다의 참호전으로 끝없이 젊은 피를 삼키는 한반도의 플랜더스가 될 수는 없다. 어리석은 정치의 계절이 안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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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미국의 애플과 중국의 화웨이(華爲).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들이다. 애플과 비교하긴 아직 무리지만 화웨이에 대해서는 베이징에 있는 국내 기업인들 중에도 탐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화웨이의 성장은 폭발적이다. 지난해 매출은 13억달러(약 1조4000억원)로 전년(7억6500만달러)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화웨이가 얼마 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악성 소프트웨어가 심어진 통신장비를 이용해 미국의 안보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는 스파이 기업일 수 있으니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화웨이와 거래를 하지 말라는 게 미 의회의 요구다. 캐나다, 호주 등 미국과 가까운 국가들도 동조하고 있어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


(경향신문DB)


 중국인들의 아이폰 사랑은 유별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대표적 하청업체인 폭스콘이 중국 노동자들의 무덤이라는 점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사실이다. 선전, 청두 등 팍스콘 중국 공장에서 2010년 이후 10여명의 근로자들이 투신자살했다. 겉으로는 폭스콘의 군대식 경영이 주범이나 배후에는 하청업체를 통해 이익을 쥐어짜내는 애플이 있다. 랑셴핑(郞咸平) 홍콩 중문대 석좌교수는 “애플은 미국인의 위선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꽃 같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원흉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폭스콘은 그저 그들의 하수인에 불과했다”고 비난한다. 폭스콘의 중국 내 옌타이 공장은 지난달부터 실습생이라는 명목으로 16세 미만 청소년을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치권이 이런 애플에 얼마나 진지하게 인간중시 경영을 요구했는지는 의문이다. 화웨이는 미국 내에서 단지 1700명을 고용하고 있으니 미국은 화웨이쯤은 없어도 되고, 폭스콘은 중국에서 100만명을 고용하고 있으니 중국은 애플에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는 것일까?


중국 언론들은 미국 의회가 화웨이란 기업이 중국이란 국가, 공산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중국에서 영업하는 보잉이나 모토로라는 미국 정부와 관계가 없느냐고 따지고 있다. 화웨이의 기업 경영이 좀 더 투명해야 하나, 미국 의회가 스파이 혐의까지 적용하는 건 아무래도 중국 때리기란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사실 미국에서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중국 때리기는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를 중심으로 한 미국 정치권의 중국 때리기는 양국 수교 이래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롬니는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정부의 불공정 보조금과 미국 기술 도용, 전산망 해킹까지 거론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강도가 약하긴 하나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비판해 왔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오는 22일 예정된 미국 대선의 마지막 3차 토론회에서는 ‘중국의 굴기와 내일의 세계’가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 이면에 감춰진 사실은 미국의 쇠락이다. 지도자들이 나라를 잘못 경영한 책임을 중국에 떠넘겨서는 곤란하다. 한때 유행하던 황화론(黃禍論·황색 인종이 서양 문명을 압도한다는 백색 인종의 공포심)이 다시 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과 일본 때리기로 이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불현듯 한국의 대선 때마다 나타나는 북한 때리기가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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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지난 3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주도 옌지(延吉)에서 자치주 창립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환갑을 맞은 해인 만큼 중앙에서 상무위원급, 나아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참석할 것이란 설이 파다했다. 하지만 쑨정차이(孫政才) 지린성 당서기 등 상무위원보다 낮은 급의 인사가 기념식에 참석하는 데 그쳤다. 중국으로서는 소수민족의 잔치를 떠들썩하게 치르기에는 역시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한글과 중국어가 뒤섞인 간판이 이채로운 옌지 남새도매시장의 모습. (경향신문DB)


 냉전 당시 우리와 교류가 막혀 있던 조선족들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비로소 한국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옌볜 경제의 젖줄은 한국이다. 하지만 부모가 한국으로 들어가 조부모와 함께 사는 청소년들이 상당수이고, 일자리를 찾아 부부 중 한쪽이 한국으로 나가면서 이혼도 늘고 있다. 가족 해체는 조선족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현재 자치주 내 조선족 인구는 8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전체 자치주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37%로, 1953년 70.5%와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한족으로의 동화 현상도 심상찮다. 옌지에 사는 조선족 부부는 “한국말을 모르는 아이에게 매일 한국 TV를 열심히 보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업으로, 부동산 투자로 베이징에서 부를 일군 조선족들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에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고단수다. 강제이주 방식으로 소수민족을 해체하려 한 옛 소련과 달리 중국은 소수민족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자치권을 부여했다. 인구 억제정책도 소수민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족을 소수민족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고위직에 진출한 소수민족은 극히 제한적이며, 조선족자치주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당 서기 역시 한족이다. 소수민족의 자치권은 인정하지만 분리 요구는 용납할 수 없다는 다원일체론(多元一體論)이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핵심이다. 우리로서는 한·중 수교 후 조선족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안타깝다. 옌볜 일대는 항일 독립투쟁지였고, 윤동주 생가 등 우국선열들의 숨결이 흐르는 곳이다. 조선족들은 민족적 정체성도 자존심도 높다. 10년 전 조선족자치주 성립 50주년 당시에도 지금 제기되는 비슷한 우려들이 팽배했지만 아직까지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가고, 베이징 같은 대도시로 나가는 조선족들을 탓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조선족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옌볜을 포함한 지린성에 한국이 투자한 금액은 전체 투자금액의 2%에 불과하다.


물론 조선족자치주가 와해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괜한 우려는 아니지만 쉽사리 해체되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의 인구 감소로 자치주가 해체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소수민족 비율이 30%에 훨씬 못 미치지만 자치를 유지하는 곳도 많다. 오히려 조선족 사회의 문제점을 중국 탓으로만 돌리고 편애한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접근할 경우 조선족 사회에 되레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티베트의 사례에서 보듯 중국은 주로 변방에 포진하고 있는 소수민족의 동향에 무척 민감하다. 앞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고, 북한의 개혁·개방이 가시화할수록 조선족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한·중 수교 20주년과 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맞아 한민족 네트워크의 강화를 위한 장기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갖춰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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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국제부 기자


 

이달 초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45)는 배우 뺨치는 미남이다. 보도사진 속 빛나는 그를 중심으로 주변인물들은 순식간에 조연이 된다. ‘멕시코의 고소영’급 미녀 여배우인 부인 앙헬리카 리베라(41)와 함께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은 ‘젊은 정치인이 12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는 드라마’ 장면을 연상시켰다.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제도혁명당 후보 (경향신문DB)


 ‘텔레노벨라’(드라마)의 왕국 멕시코에서 선거전략으로 텔레비전의 강력한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페냐 니에토의 승리는 마치 “완벽하게 연출된 ‘대통령 만들기’ 리얼리티쇼”에 가까웠다고 전기작가 헤나로 비야밀은 지적한다. 대선운동 전부터 TV에 자주 출연했고, TV 스타와 재혼했고, TV 배우들과 정치행사에 동행하는 데 거금을 뿌렸다. 마약카르텔 연루 혐의와 경제파탄, 71년 장기집권으로 얼룩진 제도혁명당의 이미지는 대선후보로 나선 그가 가지런한 흰 치열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자 말끔하게 사라졌다. 유권자들은 리얼리티쇼에서 시청자 투표를 하듯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참여민주주의의 중요 원칙인 선거가 오락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멕시코 안에서 제기됐다. 


이 같은 현상은 미디어전문가 닐 포스트먼이 1985년 저서 <죽도록 즐기기>에서 일찌감치 예견한 바 있다.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도구에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선 어떤 사상이 내재돼 있다”고 가정하는 그는 12세기 안경의 발명이 신체적 노화의 부정, 현미경의 등장이 보이지 않는 심리 연구로 이어진 것처럼, 매체로서의 텔레비전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꿨다고 지적한다. 역사성이 지워진 정보의 현재성과 강력한 오락성이 그것이다. 텔레비전의 강력한 자기장 안에서 정치는 오락화된다. 


정당 대신 정치인이 부각되고, 이미지 정치에서 사람들은 구체적 이익이 아니라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한다. 과거에 정당이나 정치인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TV 속에서 중요성을 잃어버린다. 대신 ‘만들어진 이미지’가 선거 판세를 좌우한다. 


그래서인지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좋은 정치인이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각광받는 경향이 강하다. 페냐 니에토처럼 수려한 외모를 갖췄거나,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욕망하는 물질적 성공을 움켜쥔 재력가이거나, 비극을 딛고 일어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소공녀’가 그렇다. 정치인이 정책개발을 비롯한 본업과는 무관한 ‘귀여운 율동’이나 각종 행사 방문으로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것도 경쟁자보다 더 강한 잔영을 유권자의 눈에 새기기 위한 일종의 TV 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본질을 읽어내는 수고 없이는 참여민주주의가 리얼리티쇼로 전락할 위험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유권자의 표 한 장 무게가 리얼리티쇼의 참여전화 한 통 무게와 같을 수는 없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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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지난달 말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라트비아대학 동아시아센터에서 있었던 회의에 참석하느라고, 동유럽에 위치한 이 나라를 처음으로 찾을 수 있었다. 회의 주제는 ‘동아시아의 풍경과 시’라는 것이었다. 어느 문화 전통에서나 자연이 예술의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풍경 또는 산수는 옛날부터 동아시아 문학과 예술의 특별한 주제였다. 또 여기에는 교훈이 있었다. 그것은 세속적인 명리--정치나 부를 높이 생각하지 않고 자연에 순화하면서 겸허하게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자연 속에서, 한 뙈기의 밭을 갈아 굶주림을 없애고 조그만 오두막을 지어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다면, 인생은 그것으로 흡족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고행의 인생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에 작고한 생태 철학자 아르네 네스는 자연 속에서의 검소한 삶이 기쁨과 자아실현을 위하여 가장 풍요로운 삶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학문에는 그 나름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본 상정들이 들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인간(존 폴리티콘)’은 정치학의, 이윤 추구에 골몰하는 ‘경제인간’은 경제학의 인간 개념이다. 사회과학 아래에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가정이 들어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 문학의 지혜는, 이러한 것을 넘어서 삶의 원형은 자연 환경과 전원의 삶에 있다는 것이다.

송시열처럼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도 서울을 향해 가면서, “조용히 산수의 뜻을 살펴보니, 내가 ‘정치의’ 풍진 세상으로 가는 것을 혐오한다(靜觀山水意 嫌我向風塵)”는 시를 썼다. 강조되는 것은 자연 속의 삶이 경제나 정치에 선행한다는 사실이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인간의 관계는, 환경문제가 커지는 오늘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라트비아를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였다. 주최자가 그것을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만, 4박5일의 짧은 체제 중 주마간산격으로 살펴 본 리가와 라트비아는 기술 문명이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특별하게 좋은 자연 환경, 지리적 환경을 가진 곳이었다. 라트비아 같은, 말하자면, 유럽의 변두리 국가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수도 리가는 독일의 어느 도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유럽적인 도시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지금 라트비아는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어있지만, 유럽은 역사적으로 상호 문화교류가 활발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리가는 고풍한 느낌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였다. 리가의 구시가지의 조약돌 포장 길에는 석조와 벽돌의 옛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빽빽이 서있었다.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신흥 지역 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고층건물의 하나는 ‘삼성’이라는 광고판을 달고 있었다.) 간판이 없는 좁은 길들에 서 있는 건물들은 음침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오래 눌러 살아 온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구건물의 상당수는 자세히 보면 화려하게 장식을 새겨 넣은 건물들인데, 이것들은 19세기 말의, ‘유겐트슈틸’ 또는 ‘누보아르’라고 부르는 양식의 건물들로서, 이곳이 유네스코에서 누보아르 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라고 했다.
과히 넓지 않은 강을 끼고 펼쳐진 공원의 푸른 나무와 잔디는 구시가지 전체를 자연의 일부가 되게 했다. 인구 70만의 리가는 우리 기준으로는 작은 도시이다. 사람이 북적대지 않는 공원은 시인이 시를 명상하면서 거닐 수 있는 한적한 곳이었다. 공원의 한 쪽에는 흰 주랑(柱廊)이 받쳐 든 오페라 하우스가 서있는데, 10월 한 달 내내 오페라, 콘서트, 발레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6000~7000원 정도인 것 같았다.)

도시도 오랜 시간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데, 리가는 그러한 도시였지만, 라트비아는 자연의 나라였다. 주최자인 프랑크 크라우스하르 교수의 호의로 나는 리가를 벗어나 라트비아의 시골을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리가 시를 가로지르는 다우가바 강은 도시를 벗어나자 곧 강변을 채운 무성한 나무들과 그 위의 맑은 하늘을 비추면서 흐르고 있는 유유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후에 이어서 농가들이 외롭게 서있는 초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의 하나는 집 곁에 전신주처럼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 기둥들이었다. 그 꼭대기에는 새둥주리를 받들고 있는 나뭇대들이 얹혀 있었다.

이것은 철따라 옮겨 오는 황새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한번 자리를 정하면,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황새들의 습관이라고 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농가들 가운데에는 폐가처럼 보이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많은 경우 폐가가 아니라 건축 중인 집들이라고 했다. 새 집을 짓거나 귀농하는 사람들은 집을 짓다가 몇 년 그대로 덮어 두고 돈이 모이면 다시 계속해 짓고 하는 식으로 집을 짓는 데 그러한 집들이 폐가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거주지와 집의 진정한 뜻을 생각하게 하는 참으로 여유 있는 삶의 표현이었다. 원래 라트비아는 12세기부터 독일에서 진출해 온 모험가, 기사, 신부들이 개척하면서 유럽 문명권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곳인데, 그러한 사람들의 성(城)들의 유적이 있다고 했지만, 그러한 성곽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우리의 국도 넓이의 길에는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 우리가 갔던 도로의 상당 부분은 비포장 도로였다. 크라우스하르 교수의 설명으로는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곳에는 포장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에서 하는 일은 계절에 따라 도로의 흙을 고르게 다지는 정도라고 했다. 사실 라트비아의 면적은 남한의 3분의 2 정도가 되지만, 인구는 23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 것이 주마간산으로 살펴본 라트비아였다. 그러나 지금 유럽을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를 라트비아가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8년 이후 라트비아 경제는 25% 정도가 축소되었는데, 금년 들어 경제가 상당히 회복되고 성장률이 3%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원에서 며칠 사이에 나는 세 사람의 걸인을 보았다. 한 사람은 아코디언을 또 다른 사람은 트럼펫을 연주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에 본 50대 후반이나 60대 초의 부인네였다. 그녀는 별로 날씬하지 않은 몸매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들은 돈을 구걸하는 것보다는 공연에 대한 요금을 청하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나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에는 호텔 근처의 길에 수레를 밀고 온 장사꾼들이 기념품을 팔다가 일정 시간 후에 짐을 거두었다.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20%가 되었다고 하니 사회 불안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이 표면에 크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다. 내각을 뒤흔드는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으나, 돔브롭스키스 총리는 몇 번의 연립 내각을 재조직하여 사태를 수습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라트비아 사회의 평정은 표면적 인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었다. 라트비아만큼 오랫동안 외세의 각축장이 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 지역에 사람이 옮겨 온 지는 1만년이 넘는다고 했지만, 유사 이래 독일, 러시아, 스웨덴, 폴란드의 패권 쟁탈전이 끊임없다가, 정작 독립한 것은 1차 대전 이후의 20여 년간 그리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있었던 1990년의 독립 선언 이후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 조직의 여러 가능성 가운데, 민족국가라는 단위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어떻게 도시를 만들고 문화를 이루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한 것일까? 이러한 점에서 문명의 인상은 주마간산의 피상적 인상일 수도 있지만, 피상적인 대로 그 인상이야말로 라트비아의 근본에 닿아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라트비아의 핵심은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를 넘어 자연과 지리에 밀착한 삶에 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콩 대학에서 온 허순이(何珣怡) 교수의 발표는 산과 물 등 지리적 조건에 민감한 <시경>의 시들을 논하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근본은 가장 원초적으로 볼 때, 자연 환경을 이리저리 갈라놓은 지리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상기하자는 것이 아시아적 통찰이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동아시아 사회들이 이 통찰을 편안하게 현실화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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