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김민정의 '삶과 상상력''에 해당하는 글 10건

국경과 돈

돈이 국경을 넘기는 사람보다 쉽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세계 체제에 기반을 두니 그럴 것이다. 돈이 다국적 기업의 자본으로, 국제기관의 보조금이나 대부금으로, 전쟁을 막으려고 또는 도우려고, 자연재해의 피해를 덜어주려고,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으로, 국경을 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오늘날 세계의 구성단위인 국가의 주권은 자국의 통화를 정하고 그 유통에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세계화의 딜레마는 금융의 자유화 추세와 국가의 금융주권 사이에서 심각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는 국경을 넘기 시작한 돈이 어떻게 전 세계를 금융위기의 연쇄 작용으로 몰아넣는지 여실히 증명하였다. 2011년과 2012년 연이어 한국사회를 놀래 킨 저축은행의 부실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가 뒤늦게 터진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의 무분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문제의 시작이었지만, 정치권 로비로 사태를 무마하려 하고 임원과 특권층 고객에게만 은행 퇴출 정보를 흘린 비리와 부정부패가 문제를 키웠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금융기관 파산시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최대 5천만 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법규를 온 국민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저축은행 사태에 외국인 예금주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국가의 보상책임은 어떻게 될까?

 

사진: 아이슬란드 통화 크로나, 동전은 모두 해산물로 디자인되었다. 필자촬영

 

아이스세이브(Icesave) 사례

아이슬란드는 최근 ‘아이스세이브’ 사건에 대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법원의 승소 판결로 국내 해외뉴스를 탔다. 아이스세이브는 아이슬란드 은행인 란스방키(Landsbanki)가 2006년에 영국과 네덜란드를 상대로 판매한 인터넷 예금상품이다. 연7%의 고금리를 제시한 탓에 35만 명의 고객이 몰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슬란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첫 희생 국가였다. 2008년 10월 6일, 아이슬란드 민영 은행 세 곳이 파산하여 국영화되는데, 란스방키도 이중 하나였다. 당시 세 대형은행의 해외차입 규모는 620억 달러로 아이슬란드 전체 외채의 90%를 차지하였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국가 파산상태를 선고하여 외환 거래를 동결하고, 국내 통화인 크로나의 가치를 절반으로 격하시켰다.

 

사진: 아이스세이브 로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53억에 달하는 자국민의 예금을 우선 지급하고 아이슬란드에게 상환 압박을 가하였다. 영국은 란즈방키를 알카에다와 같은 반테러법 적용 조직으로 지정하기까지 하였다. 국가 간의 힘든 협상 끝에 2009년 6월 5일,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자국 예금주에게 지급한 금액 중 38억을 15년 동안 5.55% 이자로 빌려 갚고, 나머지는 란스방키 부동산을 처분하여 빚을 갚는 것에 합의하였다. 아이슬란드 정치권은 이 문제로 갑론을박을 벌였고 약간 수정된 법안이 가까스로 의회를 통과하였으나 6만 명의 청원을 접수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2010년 3월 6일에 시행된 국민투표에서 93%가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아이슬란드 정부는 빚을 지면서까지 외국인 예금주 보호를 시행하지는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이스세이브에 묶인 돈은 인구 32만 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 국내총생산의 8배에 달하는 규모였던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네덜란드와 이자율이 3.2%로 떨어진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였고 새 법안은 의회에서 다수의 지지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5만 명의 서명을 받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2011년 4월 10일 시행된 국민투표에서 60%가 반대하였다.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산하 감독청(ESA)에 아이슬란드를 제소하였다. 재판 중에 리히텐슈타인과 노르웨이는 아이슬란드를 지지하였고, 유럽연합 중 영국과 네덜란드만이 끝까지 아이슬란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1월 28일, 유럽자유무역연합은 아이슬란드가 영국과 네덜란드가 예금주들에게 돌려 준 돈을 갚을 필요가 없고 란스방키 자산 매각만으로 예금액을 상환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드디어 5년에 걸친 지난한 논쟁과 대결 국면 속에서 국경을 넘는 돈에 대한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었다.

 

사진: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시위, 2008년. Copyright: Icelandic Photo Agency

개방은 하되, 국경의 턱을 낮출 수는 없는: 아이슬란드와 유럽연합

북극권 바로 아래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이차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어업을 통해 잘사는 북구권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금융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면서 경제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금융 산업이 지나치게 성장하는 것에 발맞추어 정부와 금융당국의 감독과 통제는 강화되지 못하였고 결국 국가 파산 상태를 맞았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슬란드의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논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이슬란드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민 수는 내가 사는 춘천 인구보다 약간 많은 32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국민들은 일찍이 874년에 이주해 온 바이킹 선조와의 친척관계를 오늘날까지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한다. 게다가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아 온 국민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아이슬란드같이 동질적이고 국민 정체성이 강한 작은 나라로서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도 가입하지 않는 것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 밖에 남아 있으면 별도의 정책과 규제를 받아들여야 하고, 유럽연합 안으로 들어가면 목소리크고 영향력 있는 유럽 강국들에게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위험이 크다. 

아이스세이브 사건 등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이슬란드 내부에서는 유럽연합으로 들어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당시 화가 난 영국과 네덜란드는 빚진 돈 갚는 것을 유럽연합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기도 했었다. 2009년도만 해도 아이슬란드가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유럽연합에 들어갔었더라면 유럽 중앙은행의 지원으로 위기를 쉽게 극복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도 유럽연합 가입 신청 안은 당시 아이슬란드 의회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유럽연합과의 공식협상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제 3%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한 아이슬란드의 위기 극복과정을 돌아보면서, 자국 통화와 중앙은행을 지켰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긴축을 미루고 빈곤층에 대한 복지 지출을 더 늘려서 국내 소비를 유지하였다. 또한 통화를 평가 절하하여 수출을 늘리고 자국민의 해외 지출을 줄였다. 결국 아이슬란드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적인 통화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스세이브 사건이 아이슬란드의 승리로 종료되면서, 이제 아이슬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은 공동수산정책을 취하는 유럽연합과의 어업권 쿼터와 아이슬란드의 고래잡이 허용 등이 주요 문제로 남았다. 하지만 가입협상이 성공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에 부쳐지게 될 텐데 그 결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작은 나라이기에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살아나가야 하는 아이슬란드. 하지만 국경을 낮추는 지역연합체로 들어간다면 국가 주권을 지킬 방책을 다 잃게 될까 걱정되는 것이다. 전번 글에서 소개하였듯이, 아이슬란드 정부가 언어와 이름체계 등 역사문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며 개방과 수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국경이 낮아지는 시대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처한 공동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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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사람 되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이름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모든 사회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통해 사회성원으로 받아들인다.

모리스 고들리에(Godelier)라는 프랑스 인류학자는 여러 지역의 부족사회 연구를 통해, 한 명의 인간이 탄생하는 데에는 부모가 아이의 몸을 만드는 생식과정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많은 부족사회에서 아이의 숨은 조상이나 신이 영혼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는 아직 완전히 태어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부모와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골라 받는 경우에서 부터 아버지 쪽 친족의 이름을 받는 경우까지 다양하였다.

이름은 그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름은 앞서 산 누군가의 이름을 물려받거나, 의미있는 자연현상을 지칭하거나, 특정한 가치가 담긴 단어를 빌려 온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성인(saints)의 이름을 가져와 세례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렇고, 한국에서 아버지 집안의 성씨를 물려받고 문중의 항렬자를 쓰는 것이 그렇다. 유교의 격식을 벗어난 현대 한국에서 부모들은 간혹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이기도 한다. 즉, 각 사회마다 이름에 인간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각기 다른 문화적 방식, 이름 짓는 방식이 있다. 

아이슬란드식 이름 짓기

북극권 바로 아래 위치한 화산섬 나라 아이슬란드는 고대 노르딕의 이름체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름은 두 개에서 네 개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이름은 부모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 중에서 가져온다. 마지막 이름은 보통 아버지의 첫 이름 즉 ‘퍼스트 네임’에 ‘-의 아들’(-son)이나 ‘-의 딸’(-dottir)이란 수식어를 붙여서 만든다. 그러니까 아이슬란드에서는 마지막 이름. 즉 ‘라스트 네임’이 ‘-도띠르’로 끝나면 모두 여자이고, ‘-손’으로 끝나면 모두 남자인 것이다. 이 ‘라스트 네임’은 단지 그 사람의 아버지의 (간혹 어머니의) 첫 이름을 알려 줄 뿐, 한 가족 안에는 여러 ‘라스트 네임’이 뒤섞여 있다. 독특한 감수성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로 우리에도 알려진 아이슬란드 가수 비욕의 가계도를 보면, 삼 세대에 속한 가족 일곱 명은 제각기 다른 ‘라스트 네임’을 가진다. 

 

비욕 사진의 출처는 홈페이지 http://www.bjork.com, 가족관계는 http://en.wikipedia.org/wiki/Bj%C3%B6rk

 

비욕네 가족들은 두 개 또는 세 개로 구성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이름은 최대 네 개로 구성할 수 있다. 비욕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이름은 아버지의 첫 번째 이름(Guðmundur)에 ‘-의 딸’(-dottir)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비욕의 아들(F)의 이름은 세 개로 구성되었는데, 아이슬란드인 아버지 이름 중 두개를 물려받아 아이슬란드식으로 지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딸(G)의 이름이다. 이사도라의 이름은 미국인 아버지의 부계성(Barney)을 물려받아 미국식이다. 그렇지만 ‘비욕의 딸’(‘비욕’이 형용사형 ‘비야카르’가 되어, Bjarkardottir)이란 아이슬란드식 마지막 이름형태를 두 번째 이름으로 넣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식과 미국식이 혼합된 퓨전형이라 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이름 소송

새해 들어 외신에 보도된 아이슬란드 소식 중 하나는 블래르(Blær Bjarkardottir)라는 15세 소녀가 국가의 이름위원회(Naming Committee)를 상대로 낸 이름 등록 소송이다. 아이슬란드 이름위원회는 남녀로 구분된 삼천 여개의 이름을 정하여 등록을 허용해준다. 유니섹스 이름은 사용할 수 없으며, 리스트에 없는 새 이름은 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등록할 수 있다.

문제가 된 ‘블래르’란 이름은 ‘가벼운 바람’이란 뜻인데, 아이슬란드 어에서는 바람이 남성 명사이기 때문에 남자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이슬란드의 대문호 할도르(Halldor Laxness)가 일찍이 1957년에 소설 속 여자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1973년에는 여자 한 명이 이 이름으로 등록된 적이 있다. 원고의 어머니가 새로 태어난 딸에게 이 이름을 붙이려고 할 때 교회목사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이 이름으로 영세를 주었다. 그런데, 이름위원회에서 등록을 거부하여 블래르는 입학서류 등 공식 문건에 그냥 ‘여자아이’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슬란드 이름 소송 기사가 실린 영국의 일간지, 사진은 블래르 모녀

국가가 이름을 선택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니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슬란드의 사정을 들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름위원회는 1991년에 출범하였는데, 아이슬란드 문법에 따라 젠더별로 형용사 변용이 가능한 이름만 허용하여 아이슬란드 언어를 지켜고자 한다. 또한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역사서의 이름들이 중요한 문화 자원이라고 생각하여 그 리스트를 관리하고자 한다. 실제 정부의 이름 관리는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에 이미 아이슬란드식 ‘라스트 네임’을 사용하도록 법을 제정하였고, 1952-1995년 사이에는 외국인도 아이슬란드식 이름을 가지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1991년에 새로 위원회를 구성한 이유는 아마도 해외로 이주한 아이슬란드인 수가 증가하고 또 새로운 스타일의 이름을 원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슬란드 국내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위원회는 블래르의 이름 등록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름의 젠더 구분과 평등

여기까지만 보면, 아이슬란드가 전통 수호라는 기치를 내걸고 성차별을 하는 사회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아이슬란드는 1980년에 이미 여성대통령이 나왔고,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평등 지수가 세계 1위인 나라이다 (여성신문 2012년 10월 26일).

아이슬란드는 남한 면적 85% 정도의 영토에 남한 인구의 0.6%인 30여만명이 사는 작은 나라로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입국 심사 시 출입국관리 직원이 여권을 보지 않고 아이슬란드어로 말을 걸어 자국민인지 판단했을 정도라고 한다. 과거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지배하에 있었고 이차대전 후에는 영국과 어업전쟁을 겪었던 작은 나라로서 아이슬란드는, 주권수호를 위해 여러 차원에서 ‘토종의’ 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예를 들면, 아이슬란드의 토종말은 일단 국경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 올 수 있다. 아이슬란드 어는 노르딕 고어에 속하는데 변화가 늦어 현재에도 천여 년 전의 고서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이름으로도 천여 년 전 역사서에 등장하는 조상의 이름이 여전히 사용된다. 작은 나라로서 국민정체성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국가가 전통 이름체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름의 성별 ‘구분’은 문법상 젠더별로 다르게 변용하는 언어를 보존하려는 것이지, 이름체계를 통해 성 ‘차별’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주로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만든 ‘라스트 네임’은 부계 혈통을 따르는 집안의 성씨가 아니라 아버지만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며 이마저도 호칭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교수라는 직함, 또는 미스나 미스터 칭호 뒤에 붙는 이름은 ‘라스트 네임’이 아니라 ‘퍼스트 네임’이고, 전화번호부도 첫 번째 이름순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드물지만 어머니 이름으로 ‘-의 아들’ 또는 ‘-의 딸’이라는 라스트 네임을 만들기도 하고, 부모 이름을 다 사용하여 ‘ -와 -의 아들’ 또는 ‘-와 -의 딸’이라는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어머니 성을 같이 쓰는 경우가 있고, 내 남동생네 부부의 예처럼 부모 이름에서 한자씩 떼어서 아이의 이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이름에도 한 사회의 가치와 성규범, 가족과 친족, 사회의 변화 방향 등이 담겨있다. 아이슬란드 국가의 이름관리는 세계화의 시대에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역설의 교훈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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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기'는 초기 인류사회 진화과정의 상징이었다. 큰 동물 사냥은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협력해야만 했던 주요 활동이었고, 포획물의 각기 다른 부위에 대한 배분은 집단내 위계 및 지도력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 속에서 ‘고기'는 항상 곡식이나 채소보다 더 희귀하고 가치있는 음식이었고, 육식과 사냥은 인류사회가 남성중심으로 집단화되고 위계화되는 초기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어이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사람이 먹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고기는 각기 다르다. 먹어서는 안되는 고기를 규정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종교적 금기이다.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돼지를 더럽다고 생각하여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대표적이다.

한편 말이나 개는 인간과의 친밀성 때문에 먹는 것이 금기시 되기도 하는데,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성에 대한 해석은 식용자원의 풍부함이나 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따라서 달라진다. 오늘날에는 개를 가축으로 볼 지 반려동물로 볼 지에 따라, 개고기를 가난하던 농경시절의 단백질 보충용으로 볼 것인지 먹을 게 넘치는 시대의 정력음식으로 볼 것인지가 달라진다.


근대로 접어들면서는 산업화된 축산업이 고기소비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 유럽에서 곡물이 자라지 않고 인구밀도가 낮아 육식을 하던 곳에서는 주로 말고기와 양고기를 먹었고, 미 대륙의 초기 이민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공장제 축산업이 도입되면서 고기 수요는 돼지와 닭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살을 찌우기 위해 고안된 좁은 공간에서 사료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육되고 기계적으로 도살되는 고기를 먹는다. 비인본주의적 축산 상황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아예 ‘고기'를 먹지말자는 자발적 채식주의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후기산업 시대에는, 종교적 금기, 반려동물에 대한 배려, 공장제 축산업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주장들이 특정 ‘고기'를 먹지 말아야할 근거로 공존한다.    

2.
겨울방학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카빅 친구네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수퍼마켓에 간 첫 날 진열된 고기류를 보고 난 ‘어어' 소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가 있는 건 당연했지만, 양고기에 말고기까지 있었다.

이렇게 수퍼마켓의 고기가 다양한 것은 아이슬란드의 지리환경적 요인에 근거한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권으로 분류되는 북위 66도 바로 아래, 남한 면적의 84% 크기의 섬나라인데, 인구는 32만여 명으로 남한의 1/150에 불과하다. 나무나 곡식이 자랄 수 없는 화산 지형이라 전통적으로 주식은 육고기와 생선이었다. 아이슬란드는 특별한 산업 시설이 없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수산업의 부흥으로 급속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전통적으로 양을 키워왔고 체구가 작고 추위에 강한 토종말이 있어서, 산업화된 축산업 육고기 삼종세트 외에도 자연적 환경에서 자란 양과 말이 고기로 소비되는 것이다. 

특히 아이슬란드의 양은 봄에 들판에 풀어놓았다가 가을에 축사에 가두는 자연 방목 방식으로 자라기 때문에 양고기는 백프로 유기농 자연산이다. 양을 먹는 부위와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우선 살코기는 그냥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염장이나 훈제로 보관했다 먹기도 한다. 양머리를 반으로 갈라 삶은 후 훈제한 것도 있고, 양머리에서 뼈를 발라내고 눌러 만든 양머리 편육도 있다. 양의 피나 양의 간을 호밀과 섞어 만든 소시지도 있고, 양의 고환을 쪄서 만든 편육도 있다. 고기뿐 아니라 양의 털에서는 울을 뽑고 가죽으로는 가방 등을 만든다. 

한편 아이슬란드에서는 육고기와 물고기의 중간급 범주라고 할 수 있는, 상어와 고래, 물개 고기를 맛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개는 아이슬란드에는 거의 없고 가까운 그린란드에 많지만, 물개고기 메뉴를 갖춘 아이슬란드 전통 레스토랑들이 있다. 고래 고기는 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아이슬란드에서는 모양상의 혐오를 이유로 오징어나 문어를 좋아하고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3.
마침 내가 방문한 시기는 ‘쏘리(Þorri)'였다. (쏘리(Þorri)’아이슬란드 월력(月曆) 118일에서 24일 사이의 금요일부터 218일에서 24일 사이의 토요일까지인, 이 시기 내내 전통음식을 준비해놓고 집을 방문하는 친지나 친구들과 먹는다.)

겨울의 한 중간인 이 시기는 전통음식을 먹는 ‘쏘라블롯(Þorrablot) 이라는 축제기간이기도 하여, ‘쏘리(Þorri)'는 아이슬란드 월력(月曆) 상 1월 18일에서 24일 사이의 금요일부터 2월 18일에서 24일 사이의 토요일까지인데, 이 시기 내내 전통음식을 준비해놓고 집을 방문하는 친지나 친구들과 먹는다.

아이슬란드의 전통적인 고기 섭취방식을 잘 알 수 있었다. 축제 상차림에 포함되는 동물은 양과 고래, 상어, 청어 등이며, 상차림에 나오는 고기 요리는 모두 냉장이나 냉동장비가 없던 시절 보존용으로 조리된 것이다.   

초대받아 가 본 친구네 친척집의 상차림은 위와 같았다. 우선 아이슬란드 삭힌 음식의 대표격인 삭힌 상어고기(하우칼)가 있었다. 우리나라 홍어 삭힌 것에 버금가는 맛인데, 굵은 모래땅에 구멍을 파서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상어를 넣고 돌로 눌러 즙이 흘러나오도록 두어 달 둔 후 꺼내어 말린 것을 깍두기 모양으로 토막낸 것이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훼이(whey, 유장) 절임이 나왔다. 우유에서 지방과 단백질이 분리되면 시큼한 액체가 남는데, 여기에 고기를 절여서 보관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양고기 머리 편육이나 양고환 편육, 양피 소시지, 양간 소시지, 그리고 고래지방 부분을 이 액체에 절여 두고 먹었는데, 예전 방식 그대로 오늘날의 축제 식탁에도 오른다. 그리고 양의 다양한 부위를 훈제한 요리가 있다.

훼이 절임은 소금 간 없이 시큼하고 물컹한 날고기 식감이라 처음 먹기엔 여간 고역스럽지 않았다. 정작 날 데려간 아이슬란드 친구는 손도 대지 않고 훈제고기만 먹었지만, 나로서는 궁금하기도 했고 외국손님에 대한 초대자의 기대도 만족시켜드리고자 종류별로 한 점씩 다 먹어 보았다. 기름진 우유의 신맛이 고기와 지방 특유의 질감과 만난 요상한 맛으로 세 점째부터는 정말 먹기 힘들었다. 반면 양머리훈제구이와 양고기햄은 양고기 특유의 강한 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무척 친숙한 맛이라 반가운 맘으로 먹었다. 여기에 곁들이는 것은 단단한 질감의 검은색 호밀빵과 밀가루와 호밀을 섞어서 얇게 구은 납작빵이다. 감자와 콩요리도 함께 먹고 말린 대구포에도 버터를 발라 먹는다. 여기에 몰트라는 우리나라 식혜같은 발효음료를 오렌지맛 청량음료에 섞어 마신다.  


곡식을 키울 수도 야채나 과일을 재배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양과 고래, 상어고기를 저장식으로 먹었던 아이슬란드는, ‘먹지 말아야할' 고기에 대한 금기가 가장 덜 발달한 문화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오늘날의 아이슬란드에는 태국 쟈스민 쌀과 중남미 망고가 수입되고, 미국식 패밀리레스토랑에서부터 중국 음식점과 인디안 음식점도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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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오나르도 다빈치 2012.06.05 18:06 신고
    나는 어릴때부터 육식을 멀리해왔다.
    내가 그랬듯 언젠가 다른 이들도 동물 학살을
    인류 학살과 동등하게 볼 날이 올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
  2. 알버트 슈바이처 2012.06.05 18:08 신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그 전통이 뿌리 깊이 박혀있고 후광이
    있더라도 모든 잔혹한 전통에 대해서는 반대하여야 한다.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미개한 생명체라 하더라도
    다른 생물을 해하고 고통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은 피하여만
    한다.그렇게 하는 것이 전혀 정당성없는 우리의 죄를 사하는 방법이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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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시대
, 국경을 넘나드는 관광객이 늘수록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절도도 함께 느는 것은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특히 유명 관광지를 다녀온 주변 사람에게서는 놀라운 수법으로 지갑이나 가방을 채인 경험담을 듣더라도 별로 놀랍지 않다. 그동안 내가 접한 사례만 해도, 앙코르 와트 숙소에서 열린 창문으로 긴 작대기를 넣어 지갑 든 옷을 빼낸 경우, 프라하 행 밤기차에서 끌어 앉고 잠든 대형배낭 아랫부분을 열고 귀중품을 가져간 경우,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앞사람이 물건을 떨어뜨린 척 바람 잡으며 뒷사람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날치기한 경우 등이 있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마닐라 도심지의 멀쩡한 커피숍 안에서 바닥에 놔 둔 가방을 채간 줄도 모르고 한참 앉아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던 나의 사례가 있다.
 
                                                               필리핀 마닐라 시내 전경|경향신문 DB

관광지에서 절도가 많이 발생한다는 건 그만큼 절도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걸 의미한다. 보통 그룹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바람을 잡거나 망보는 사람, 훔치는 사람, 훔친 물건을 넘겨주는 사람, 이를 받아 파는 사람 등의 역할을 분담한다. 한편 피해자 관광객들은 여행자 보험 청구나 새 여권 신청을 위해 경찰 신고서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한 담당 경찰이나 공증인 인력 수요도 증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의 서류 작성을 돕는 외국어 통역 봉사자 고용이 늘기도 한다. 일을 치는사람이 늘수록 일을 처리하는사람들도 더욱 필요해지고, 관광객 절도를 처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목적은 범인을 잡고 범죄를 근절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 관광객이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고 가능한 빨리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여행지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조처하는 것이다. 관광객의 체류는 모든 나라에서 단기간만 허용되며, 관광객이 지갑이나 가방 도난으로 범인을 잡겠다고 머무르는 경우는 (아마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이렇게 볼 때 어쩌면 절도는 (싱가포르나 스위스 같은 국가를 예외로 한다면?) 관광산업이 확대될수록 부산물로 따르는 비공식 경제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상 이러한 범죄는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했을 때보다 더 관대히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관광지가 관광객의 출신국가보다 더 가난한 나라일 경우, 그렇지 않더라도 관광객이 절도범보다 더 부유한 개인일 것이라는 전제하에,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 편이다. 어찌되었든 관광은 남의 터전으로 놀러 나온여가활동이고, 절도는 자기 터전에서 먹고 살기 위한생계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와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된 계기가 있다. 얼마 전 나는 지난 20년 간 15회 이상 방문했던 필리핀에서 처음으로일생 최대의 도난사건을 겪었다. 마닐라 대도시 커피숍에서, 주인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도 (단지 노트북으로 일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을 뿐이고), 새빨간 색의 눈에 띠는 배낭을, 그것도 출국 하루 전날 밤에, ‘그들이 집어 들고 나간 것이다, 거의 모든 귀중품을 잃어버렸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여권속의 미국비자였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한국대사관에서 하루 만에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나갈 수 있으나, 나는 미국서 받은 학술교류비자를 가지고 호놀룰루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인인 남자 두 명 중 한 명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가는 바람에 사태는 다소 복잡해졌다

커피숍 직원이 범인 핸드폰으로, 나가기 직전까지 서로 문자를 교환한 공범에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넣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범인의 별칭과 사건 이후 전화했다 끊은 친구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 놓은 다음, 핸드폰은 경찰서로 넘겼다. 필리핀에서는 (신분을 등록하고 은행계좌로 요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선불카드로 요금을 찍어 넣는 프리페이드핸드폰을 많이 쓰는데 이 경우는 신분확인이 안 된다. 배낭 속 핸드폰도 함께 분실한 나 역시 다시 프리페이드핸드폰을 사서 범인 친구와 문자질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조건 절절한호소를 날렸다. 여기에 동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외국인 피해자가 직접 나섰기 때문이지, 이 친구가 답변을 해오는 것이었다. 내용상으로는 난 모르는 일이다. 누가 그런 것인지 알아보겠다는 식이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말을 주고받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호소에는
미국비자를 다시 받아야 해서 범인인 너의 친구 O 주변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는 식의 압력도 들어가기 시작했다결론만 간단히 말하면 상당한 우여곡절 끝에, 미국비자가 든 한국여권과 조사인터뷰 메모가 담긴 수첩, 신분증, 아파트 열쇠를 돌려받게 되었다. 쇼핑몰 쓰레기통에서 주웠다는 전달품은 새 비닐 봉투에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었고, 중년 남성의 전달자는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신분증을 보여주려 하였다. 게다가 이 전달자는 이틀 후에 안부 문자를 보내어 내가 떠났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여러 가지로 손실이 컸지만 필리핀 영토에서 한국 국민이 미국 비자를 재발급 받는 수고로움과 비용만은 줄이게 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범인 측근이 어떤 식으로든 나와 대화를 이어나간 것은 내가 스스로를 피해자보다 더 넓은 범위의 불쌍한사람으로 위치지우고, ‘너희를 이해하니 나도 이해해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범인의 핸드폰이 경찰서에 있기 때문에 내가 오래 머물수록 특별 수사를 부탁하여 핸드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추적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는 매우 낮지만) 생기는 것이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한국이었다면 범인측은 아마 확실하게 연락을 끊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과 달리 필리핀에서는 절대로 넘지 못할 경계나 선()’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이번 경험도 절도범과 피해자라는 명백히 척진 관계에서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의중을 떠보고 절충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필리핀식 사고를 보여준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스스로와 필리핀 사회 양편 모두에게
, 관광객 절도의 죄를 묻게 되었다. 국민소득이 자기네의 1/8.5 인 나라에 와서 남들이 뺏고 싶은 물건을 들고 다니고 부러움을 사는 소비를 하는 것은 절대 자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록] 필리핀과 한국 주요 지표 비교

국가

면적()

인구()

인구밀도

(/)

일인당
 
GDP($)

HDI지수/순위1)
 
(192개국 중, 2010)

GEM 지수/순위2)
 
(93개국 중
, 2007-8

필리핀

299.764

91,983,000

(2009)

306.6
(43
번째)

3,520

(2009)

0.638/ 97

0.590/ 45

한국

100.210

48,875,000

(2010)

491
(21
번째)

29,835

(2010)

0.877/ 12

0.510/ 64

1) HDI는 인간개발지수로 기대수명문자해득률교육수준경제수준으로 산출된 지수이다.

2) GEM은 여성권한척도로 의회고위직전문직 내 여성비율과 여성임금비로 산출된 지수인데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이다.

[후기]
매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열흘 일정이 스무날로 늘어난 덕에, 오래 못 본 현지 거주 후배의 사는 이야기도 듣고, 가볼 일 없던 각종 관공서와 새로 조성되고 있는 대규모 도심개발지역도 둘러보게 되었다. 일처리 후에는 비행기 일정까지 날짜가 남아 평소 가보고 싶던 팔라완의 코론 섬도 다녀올 수 있었다. 택시 탈 일이 많아지니 기사분들로부터 엘리트정치에 대한 대중적 반감도 생생히 전해 듣고, 죽치고 있던 호스텔이 필리핀 관광문화를 바꿔보려는 젊은 직장인들의 집단 기획인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카메라(<-도난품목!) 없이 현장을 다니는 허탈과 불안이 진하게 섞인 묘한 해방감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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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인사회에서는
“‘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으면 미국사람 다 된 것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미국식 팁 관행에 익숙해지기 힘든데, 한국과 미국은 서비스보상()’에 관한 한 상반된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
미국에서 팁 문제를 가장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식사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종업원이 적절한 서비스를 해주면 손님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을 준다. 종업원이 웃고 반기며 좋은 자리로 안내해주고, 그날의 재료와 메뉴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양념이나 음료, 식기 등을 잘 챙겨주는 지 그 서비스를 평가하여 주는 것이지만, 사실은 식대의 15-20% 정도를 주는 것이 관행이다. 관광지에서는 팁 관행에 익숙지 않은 관광객들이 이를 무시하지 않도록 영수증에 18%의 팁을 합산한 금액을 적어 줄 정도로 일정 금액이 요청된다.


반면 한국에는 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식당측이 오히려 자주 오는 손님이나 기대 이상 많은 주문을 한 손님에게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공짜 음식을 내준다. 한식집에서는 전을 부쳐 주기도 하고, 새로 만든 반찬을 추가로 내오기도 한다. 사실 한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는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기본 서비스반찬이 있다. 이런 관행이 반영되어서인지 한국의 우동집이나 중국집, 스파게티집이나 피자집에서도 단무지나 짜사이, 오이 피클 등은 기본으로 제공한다. 모든 식당이 손님이 얼마나 팔아주는 지와는 무관하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2.
이러한 차이에서는 서비스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 엿보인다. 미국에서 식당서비스 거래는 손님과 종업원, 식당주인이라는 삼자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손님이 서비스를 사는 주체로 등장하며 종업원은 이들을 식당주인과 연결해주는 제삼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식당에서는 팁을 전제로 종업원에게 최소한의 월급만을 지급한다. 실제 대부분의 주에서는 팁을 받는 종업원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한편 팁은 세금부과를 피해가는 소득이 되기도 하다.) 종업원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식당이 더 많은 매상을 올릴수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구매 액에 비례하여 팁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팁은 종업원의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가 아니라, 손님의 구매능력에 대한 사회적 용인, 나아가 일종의 사회적 재분배 장치로도 보인다.

반면 한국에서 식당서비스 거래는 식당주인과 손님간의 이자관계이다
. 여기서는 식당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주체로 등장하며 종업원은 식당주인 쪽에 완전히 편입되기 때문에 팁을 받을 여지가 적어진다. 식당주인은 모든 손님에게 서비스 메뉴를 넉넉하게 주어야 하고, 일부 손님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다소 은밀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 이러한 거래 관계에서 식당 주인에게는 가격에 정확히 맞추어 음식과 서비스를 합리적으로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넉넉히 제공하는, 최소한 지나가는 길손도 먹여 보내던옛 정서를 알고 장사하는 사람의 역할이 기대된다. (이런 맥락에서는 식당주인이 나서서 남는 음식을 싸줄 수는 있어도 손님이 싸가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불편해진다.)


3.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음식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응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에서의 경험으로는, 튀김옷이 덜 익었다거나, 햄버거가 충분히 뜨겁지 않다거나, 추가선택 재료가 (토핑 등이) 잘못 나왔다거나 하는 점을 지적했을 때, 식당에서는 새 것으로 바꾸어 줄 뿐 아니라 가격을 깎아 주거나 디저트 메뉴를 싸주는 등 즉각적인 보상의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이렇게 처리를 중재해 준 종업원에게는 팁을 좀 더 주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험으로는 식당주인이나 종업원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거나, 왜 별 문제가 아닌지 자기 입장을 설득하려 들거나, 마지못해 새것으로 바꾸어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음식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 미국에서는 손님의 입장에서 또 다른 거래로 처리해야 하는 사안으로 인식되지만, 한국에서는 식당주인이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체면 깎이는 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서비스 거래 관계에서 사회적 차별의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도 상반된다
. 미국에서는 종업원의 인종/민족 소속에 따라 팁의 액수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손님들이 유색인종이나 소수민족 종업원에게는 팁을 덜 준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손님이 식당에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 보면, 교수들끼리 단체로 지방의 모르는 식당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마침 바쁜 시간대였고, 중년 여성 종업원분들은 굳이 여자교수들을 골라 (손님이기 이전에 같은 중년 여성이라고 생각하여) 그릇 전달이나 음식 더는 일 등을 부탁하셨다. 또 다른 예로는 이주자 조사 도중 동남아 남성 노동자 두 명과 동행하여 서울 공단지역의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먼저 들어간 그 두 사람만 본 식당주인은 다짜고짜 뭐 먹게?”라며 반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팁 문화는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 대가도 아니며 탈세의 여지가 있어 선진적이라 볼 수도 없지만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관행이다. 종업원을 통해 손님과 식당주인이 서로 거래상의 이익을 도모하는 구조이지만, 실제로는 팁의 비율이 관행으로 굳어져있기 때문에 거래상 손님의 권한은 약화되며 과시적·시혜적 지출의 의미가 더 부각된다. 한국의 서비스 문화는 오래전부터 밑반찬 재활용 같은 위생문제나 음식물 쓰레기 같은 환경오염 문제가 지적되어 왔지만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손님이 기본으로든 특별하게든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거래의 양측 모두가 안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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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터넷시대의 사회변화를 전망한 글을 읽다가 200여년 전 토스터 발명시 나왔던 논란이 시선을 끌었다.[각주:1] 토스터가 발명되기 이전 서구에서는 얇게 자른 식빵을 긴 쇠막대 손잡이로 고정하여 일일이 화덕 속에 넣고 구웠다고 한다. 버튼만 누르면 잘 구워진 토스트가 알아서 탁 튀어오르는 기계의 발명은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다. 일각에서는 토스트가 까맣게 탈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새 시대가 열렸다고 반겼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토스터가 창조적인 아침식사 시대를 끝내고 기계로 똑같이 자른 식빵만 본 아이들이 통식빵을 모르고 자라게 될까 우려했다고 한다. 과거 미국 사회에서 토스터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향을 전해듣자니, 50여년 전 한국 사회에 등장한 라이스 쿠커,’ 전기밥솥이 떠올랐다.

 

1.

과거, 밥짓기는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살림살이 기본 과목이었다. 갓 결혼한 새댁들은 열이면 열 모두 밥짓기 때문에 곤혹스러워했고, ‘며늘아기가 올린 밥상에서 돌을 씹거나 삼층밥을 먹어야 했던 시아버지 이야기가 다양한 버전으로 회자되곤 했다. 밥짓기야말로 가족내 성별분업이 확실하던 시대에 여성의 살림능력 레벨테스트 1단계에 해당하던 종목이었다. 밥은 그냥 만들거나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짓는것이다. 밥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쌀이 익은 정도와 수분 정도를 설명하는 한국어 표현 몇 개만 떠올려 봐도 확인된다. 진 밥, 된 밥, 탄 밥, 설익은 밥, 삼층밥 등등. 밥을 짓는 과정도 복잡했다. 돌 고르기, 쌀 씻기, 물 맞추기, 불 조절, 뜸 들이기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각 단계는 모두 나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살림 사는 여자들라면 모두가 매일, ‘조석(朝夕)으로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밥을 지었던 것이다.

재래식 부엌에서 가마솥에 밥을 짓는 아낙들

돌솥에 갓 지은 밥



이런 과정을 버튼 누르기 하나로 대체한 것이 전기밥솥이다. 예측하다시피, 전기밥솥은 일본에서 발명되었다. 이차대전 중이던 1937년 군대 식사 준비를 위해 네모난 나무통에 쌀과 물을 넣고 전선을 연결한 양극 막대기를 꽂아 밥을 끓인 것이 시초라고 한다.[각주:2] 이러한 시도는 1940년대 말이 되면 미쓰비시사의 상업화된 전기밥솥 제작으로 이어진다.[각주:3] 한편 한국 최초의 전기밥솥은 1965년 금성사에서 나온다.[각주:4]

1970년대가 되면 많이 알려지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사에서 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밥맛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은 맛이 떨어지고 보온 기능을 사용하면 색과 맛이 변하였다.

 

1970년대 유행한 꽃무늬 전기밥솥


2.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기계의 발명과 도입은 상대적으로 쉽고 조용히 진행되는데, 산업화의 후발국 정서 때문일 것이다. 다들 무엇이든 신속히 들여오고 재빨리 따라잡아야 할 처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기밥솥은 냉장고나 세탁기에 비해 그 수용이 더딘 편이었다. 우리집 만해도 어머니는 밥맛을 이유로다루기 힘든 압력솥 사용을 고수하시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전기밥솥 사용을 거부하셨다. 결국 이러한, 가사노동에 대한 한국 주부들의 엄격하고 까탈스런 자기 검열 결과, 1998년 쿠쿠에서 만든 한국형전기압력밥솥은 대성공을 하고, 일제보다 더 선호되기 시작하였다.

 

장담하건데 이제 전기밥솥이 없는 집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밥짓기는 더 이상 주부의 숙련분야가 아닌 귀찮을 수 있는 일상적 가사노동이 되었다. 계량컵으로 쌀을 담아 넣고 밥통 안의 금에 맞춰 물을 붓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집의 부엌에서는 여전히 그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어머니나 아내 뿐이다. 두어 해 전 마닐라 공항에서 방학을 맞아 아이를 데리고 여행길에 오른 한국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아이 아버지가 혼자 집에 있다면서 덧붙이는 말이 햇반을 한 박스 사놓고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의 틀을 유지하는 관습의 힘은 기술의 변화만으로 누그러지지는 않는 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전기밥솥이 얼마나 여성 해방적으로사용되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이제 의도를 가진 아동기 이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밥을 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3.

세계시장의 확대와 자본의 흐름에 따라 서구의 생활방식은 이미 오래전에 전세계 대도시의 의식주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반면 아시아식 생활방식은 사람들 이주의 흐름을 따라 서구로 전파된다. 하와이에서 아시아계는 전체의 1/4 가량을 차지한다. 이중 많은 수는 미국식 교육과 제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20세기초 농장 계약노동 이민자들의 2, 3세대 후손이며 또한 많은 수가 다른 민족과의 혼혈이기도 하다. 아시아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나 소속감은 희미하지만, 밥을 먹는 식습관은 현지화된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아침은 베이컨과 달걀, 토스트,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고기요리로 서양화된 식사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저녁식사 고기요리에 곁들이는 것은 빵이 아니라 밥이다.

 

 아시아인들의 이주와 함께 전기밥솥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각주:5] 미국내에서 아시아계 인구가 가장 많은 하와이에서는 특히 전기밥솥을 아주 쉽게 그리고 싸게 살 수 있다. 주립대학의 구내서점 생활용품 코너에서도 판매할 정도이다.

세일품목의 경우 보온기능이 없는 소형 밥솥을 9.99(약 만천원)에도 살 수 있다. 한편 전기밥솥으로는 남유럽이나 동남아에서 먹는 것과 구분되는 동북아의 자포니카 쌀로 밥을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밥솥의 전파는 특정한 밥요리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하와이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은 쌀밥은 요리 한가지와 함께 접시에 담아 내는 플레이트메뉴에서부터 한국식 비빔밥과 회덮밥, 김밥, 일본식 스시(생선초밥)와 오니기리(주먹밥), 미국식 캘리포니아롤, 하와이식 스팸무스비(뭉친 밥 위에 구운 스팸을 얹고 김띠를 두른 것)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런 추세를 돌이켜 보니, 국제화된 한국식 쌀밥요리법을 개발하고 이런 요리법과 연관시킨 신개념의 글로벌전기밥솥 개발로 한식의 세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화되어가는 쌀밥 요리>

캘리포니아롤

스팸무스비

오니기리

  1. "How the Internet gets inside us" by Adam Gopnik, The New Yorker, 2011년 2월 14일자. [본문으로]
  2. “Rice Cooker",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Rice_cooker [본문으로]
  3. Toshiba Science Museum. http://museum.toshiba.co.jp/history/1goki/1955rice.html [본문으로]
  4. 사이언스타임즈, 2011년 1월 3일.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47286 [본문으로]
  5. 일본에서 발명된 전기밥솥이 과거 자유무역항 홍콩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다룬 책이 있다. Yoshiko Nakano의 Where There Are Asians, There Are Rice Cookers: How 'National' Went Global via Hong Kong, Hong Kong University Press (2009). 죄송하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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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말이 되자 세계적인 브랜드숍들이 모여 있는 호놀룰루의 ‘알라 모아나’ 쇼핑몰 풍경이 바뀌었다. 상점가를 도매하다시피 붙어있던 연말 세일 포스터는 다 떨어지고 대신 “봄 신상품 입고” 선전물이 나붙었다.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 검은 금요일로 시작했던 연말연시 세일의 막은 내리고 상가도 고객도 ‘정상’으로 돌아온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서양 풍속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는 악운이 깃들었다는 ‘13일의 금요일’을 말한다.

하지만 쇼핑과 관련해서는 11월 넷째 주 금요일, 즉 추수감사절 다음 날을 말한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날부터 가게 운영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빨간 잉크 대신 검은 잉크로 장부를 기재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이날을 기점으로 미국의 백화점과 상점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특수를 노린 대대적인 장기 바겐세일에 들어간다. 새벽에 상점 문을 열고 한정수량의 몇 가지 핵심 상품을 무지하게 싼 가격으로 내놓고 전체적으로도 추가 할인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모은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이른 아침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베스트바이” 매장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쇼퍼들 (AP 사진, Peter Pereira)

이렇게 시작되는 ‘홀리데이 세일’의 기세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에 최고조에 달한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지난 직후인 이때가 미국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구나 전자제품, 보석 등 단가가 높은 물품의 구매희망 목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다 이때 사기도 한다. 새해로 접어들면 재고상품이 줄어들면서 세일의 기세는 한풀 꺾이지만 매장에 따라서는 1월말까지 홀리데이 세일을 진행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미국 시장에서 연말연시 두 달간의 매출액이 일 년 전체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실제 2009년 미국 백화점의 12월 매출액은 전달에 비해 45% 증가하였고, 12월 한 달간의 매출액은 일 년의 14%를 차지하였다 (www.census.gov/retail).

11월말이면 미국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겨울인데, 할인상품을 건지려는 사람들은 새벽에 매장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가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밤부터 줄을 선다. 그러다가 심심치 않게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2008년에는 최초로 상점 직원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새벽 5시에 문을 연 뉴욕 주의 한 “월마트”매장에서 물밀 듯이 덮쳐들어오는 고객들에게 밟혀, 34세의 직원이 사망한 것이다. 작년에도 총기가 등장하는 폭력사건이 보도되었다. 위스콘신 주의 한 “토이져러스” 매장에서 새치기를 하려던 21세의 여성이 항의를 듣자 줄 선 사람들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체포된 것이다. 토이져서스 매장은 작년부터 블랙 프라이데이 개점 시간을 추수감사절날인 목요일 밤 10시로 더욱 앞당겼고, 사건은 매장 문을 열자마자 발생하였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타겟” 매장 계산대에 줄 선 고객들 (AP 사진/ Jeff Chiu)


미국에는 왜, 이렇게 폭력사태까지 유발되는 홀리데이 쇼핑 관행이 자리 잡은 것일까? 실제로 미끼상품은 얼마 되지 않고 한정 판매를 하기 때문에 얻을 확률도 매우 낮지만, 사람들은 밤새워 줄을 서고 새벽부터 쇼핑을 시작하여 계획에 없던 다른 많은 물건들을 사게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쇼핑에 들이는 시간과 차량 연료, 스트레스 등을 생각한다면 온라인 쇼핑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특정한 날 몰려나가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일까? 언론 보도에서 학자들은 ‘블랙 프라이데이’의 쇼핑관행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모방 심리이고 자신의 소비에 자부심을 가지기 위한 (나는 할인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득을 보는 소비자라는) 경쟁 심리라고 설명한다. 한편 쇼퍼들, 특히 여성 쇼퍼들은 ‘이날’의 쇼핑은 오래전부터 여자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해온 관행이고 전통이며, 휴가 후에 주변사람들과 나눌 주요 화젯거리라고 답한다.  

미국 밖의 시선에서 보자면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중소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판매 상술이 극적으로 구현된 광경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품 가격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오래된 고전적 논쟁 주제이다. 투입된 자본과 노동력의 가치로 계산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소위 자유 시장에서 형성되는 수요와 공급 곡선의 접점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미국의 홀리데이 세일은 후자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한 대사회적 합의이자 천명이다. 이 시기는 주기적으로 공급가격을 내려 기존 소비 수준을 유지할 뿐 아니라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창출하는 식으로 시장체계를 보강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재건과 보강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라는 의례와 결합하여 도덕적 동기가 수반되는 전통과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폭력사태는 자본주의 시장시스템이 전통적 의례 가치와 결합하면서 생겨나는 긴장을 대변한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파티를 열고 선물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변관계를 유지하고 확인하는 시기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쇼핑을 통해 실현된다. 작년 총기사건의 주인공인 21세 여성도 어린 딸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생긴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쇼핑을 통한 사회적 위치 확인의 시대가 수요공급 곡선의 시장가격 체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할 때, ‘싸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가격의 실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그래프상의 시장가격 변화가 싸다와 비싸다를 상대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쇼퍼들은 어떤 제품이 기존 가격보다 싸졌다고 판단되면 필요와 무관하게 구매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여전히 비싸다고 판단되면 그 희소성으로 인해 물품의 구매와 소유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가히 소비의 덫이라 할 만한 시대를 이끌고 있는 미국 연말연시의 풍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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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주제와 관련되는 미국 정치판의 음모론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파들이 그의 시민권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홈페이지에 실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사진.

우선 오바마의 출생과 성장 배경을 간단히 전하면 다음과 같다. 버락 오바마는 1961년 8월 4일 호놀루루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캔사스에서 출생한 백인 미국시민이고, 아버지는 하와이대학에 유학 온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의 시민이다. 어머니는 1964년 이혼 후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했고 1967년 오바마를 포함한 가족은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그러나 1971년 10살이 된 오바마는 호놀루루로 돌아와 외조부모와 함께 살며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부터는 미국 본토로 가서 공부하고 활동하였다. 

한편 미국 헌법 1조 2항에는, 미대통령 피선거권자는 “출생에 의한 시민”(natural born citizen)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출생지주의”(jus soli)를 채택하는 미국은 부모의 미국시민 여부와는 상관없이 미국 사법권 관할 안에서 출생하면 ‘출생에 의한 시민’이 되고, 이는 ‘귀화에 의한 시민’과 구분된다.  

그런데 2008년 중반 오바마가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하자, 반대파에서는 호놀루루에서 태어났다고 제출한 오바마의 출생증명서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2008년 11월 출생증명서 문제를 내세운 반反 오바마 시위 플랜카드. 시위자는 두 개의 성조기를 통해 자기행위가 애국심의 발로임을, 또 왼쪽 하단의 맥케인 지지스티커를 통해 자신의 공화당 소속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 (사진: 플리커 



오바마측은 온라인 사이트에 출생신고서 사본을 올렸고, 하와이 보건부도 공화당 소속 주지사도 사본이 진짜라고 공인했으며, 생후 며칠후 외할아버지가 지역신문에 낸 출생광고도 확인되었지만, 반대파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왼쪽은 오바마 측이 온라인에 올린 출생증명서이고 

▲오른쪽은 담당의사와 병원명이 기재된 출생신고서에서 호놀루루 주소지를 확대한 것이다(사진보기)

심지어는 (곧 가짜로 밝혀진) 케냐 출생증명서라는 것도 등장했다. 혹자는 오바마가 영국인이거나 인도네시아인 이중국적자였으므로 출생에 의한 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들은 바로 각종 법률소송으로 이어졌고, 모든 소송은 곧 바로 기각되었다. 실제로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몇 가지 확실한 증거들을 결합하면, 

“1961년도에 호놀루루에 사는 19살의 백인 미국인 소녀가 케냐인 남성을 만나 임신하고 결혼한 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케냐로 건너가 흑백 혼혈 아이를 낳았다. 산모는 출산한지 열흘도 되지 않아서 출생신고가 안되어 여권도 없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다시 호놀루루로 돌아왔다.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나중에 이 손자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역신문 광고와 보건부 등록서류에 아이가 호놀루루에서 태어났다고 거짓기재를 하였다.” 
라는 황당한 뒤죽박죽 스토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생증명서 문제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공화당의 세금인상 반대파(소위 TEA[taxed enough already] party)는 이를 이용하여 상당한 액수의 정치모금에 성공하였다. 



◀픽업트럭 뒤에 붙인 범퍼스티커.픽업트럭 뒤에 붙인 범퍼스티커. 티파티(증세반대 모임) 지지내용과 함께, 오바마의 슬로건을 비꼰 내용과 출생증명서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을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붙여놓았다. ‘출생지 의혹’을 ‘정책에 대한 반대’로 연결짓는 사고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집단을 이루게 되면 이처럼 공공연하게 과시된다.


오바마의 49세 생일인 2010년 8월 4일 실시된 CNN의 설문조사에서는, 미국 성인 중 42%만이 오바마의 미국 출생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답했고, 29%는 ‘아마도 그럴 것’(probably yes)이라고 답하여 여운을 남겼다.





이런 설문결과에 대한 대표적인 내부자 설명은 미국 건국과정에 뿌리하고 있는 미국 시민사회의 정치적 양분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설문조사 응답의 차이는 정당소속별로 또 지역별로 확연하게 갈라진다. 하지만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좀 더 근본적이고 비교적 차원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왜 황당한 음모론이 받아들여지는가? 모든 인간은 나약하고 제약이 많은 존재로, 원하지 않고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일말의 가능성’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물리적 취약성을 보완하여 사회관계를 맺고 복잡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내재된 것인지도 모른다. 가정법(“-라면”)이나 부정가정법(“-가 아니라면”)으로 사고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이야말로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현생인류의 종(種)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음모론’은 역설적이게도 ‘희망고문’과 한 뿌리로 보이며, 특히 정치영역에서의 음모론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등장해왔다. 하지만 각각의 음모론은 특정한 토양과 햇빛, 수분, 바람이 조성하는 고유의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미국 현직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음모론 플롯은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무대에 올려져 관객들이 반응을 보이는 한 막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음모론자들은 왜 시민권을 문제 삼는가? 

이민자 국가인 미국은 출생지주의에 입각하여 시민권을 주게 되었고, 논리상 시민의 인종/종족을 문제삼을 수 없다. 그동안 43명의 백인 대통령이 등장해 온 미국 정치역사에 오바마가 출현한 지금, 아무리 흑인대통령이 싫은 사람이라도 인종/종족 차별 논리로 반대하면 자기가 속한 국가 구성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인종차별은 시민권 의혹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런데 오바마의 시민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미국 법률이나 공식기관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이 되고, 이는 또 다시 자기가 속한 국가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시민권 문제는 출생증명서 조작이라는 음모론으로 변질되어 일련의 끈덕진 법률소송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나간다. 

공문서 조작을 고발하는 정의감이라는 포장지로 법률적 공정함을 촉구하는 시민의식이라는 선물상자를 싸놓았지만, 실제 안에 든 내용물은 국민 국가의 합의를 뒤흔드는 인종차별적 인식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바마가 하와이 출신이라는 사실은 음모론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을까? 하와이 보건부는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하와이에 출생신고를 하더라도 출생지는 사실대로 기록된다고 밝혔지만 음모론자들은 하와이의 행정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하와이는 195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래스카보다도 더 나중에, 미국의 50번째 주(州)가 되었다. 당시 미의회에서는 하와이가 인종/종족적 혼혈이 우세한 지역이기 때문에 미연방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였다. 만일 오바마가 뉴욕에서 태어났더라면 정부의 공문서가 조작된 것이라고 의심받을 가능성은 아주 낮아졌을 것이다. 

미국은 이주민 국가이면서 동시에 50개 주의 연방체제이다. 일찍이 1775년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 결집한 15개 주가 1959년 50개로 늘어나는 국가 건설과정에서, 각 주는 각기 다른 성격의 이주와 추방, 승리와 패배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으며 인종/종족과 혼혈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다. 결과적으로 주에 대한 자부심과 차별, 지역주의 등은 각 개인과 집단의 정치권력과 문화자본을 위한 원재료가 된다.


내게 오바마의 하와이 출생에 대한 의혹제기는, 흑인, 혼혈, 이주 집단이 가시적으로 정치세력화 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집단의 비이성적 자기 정당화로, 소수집단과 변방지역의 하위성을 재확인시켜 자기 입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의 히스테리적 자기 강화로 보인다. 

2010년 8월 29일 NBC 뉴스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메카니즘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고도로 복잡해진 미디어 시대에도 사회의 메카니즘은 누군가의 특정한 에너지로 돌아간다.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메카니즘의 작동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것의 동력원을 알아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돌이켜보고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동기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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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에 대해 좀 더...: 근대의 신체와 혼혈

 

신체상의 차이는 차별을 야기하는 가장 일반적인 현상이다. 사실 신체의 모양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붙이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서양인의 큰 키와 높은 코, 움푹 들어간 쌍까풀진 눈과 노랑머리는 낯설고 두려운 힘센 이방인의 표상이었지만, 오늘날엔 한국인이 선망하는 외모적 특성 속에 녹아들었다. 미합중국 건설기에 노예로 살아 온 아프리카 인들의 검은 색 피부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상징이지만, 몸매 좋은 젊은 여성의 태닝한 피부는 섹시한 건강미와 삶의 여유를 떠올리게 하는 매력 요소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는 타고난 대로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망받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길들이고 변형해야 하는 ‘원료’이다.
어떤 종류의 투자로 ‘가치 증식된’ 신체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사람들은 돈과 시간을 들여 헬쓰 센터에서 근육을 과다하게 키우거나 성형수술로 타인의 신체부위와 같은 몸을 만드는 데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본디 타고난 신체 모양의 다양성과 개성은 평가 절하된다. 또한 선망받는 신체의 형태와 특징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유행을 탄다. 여러 형태의 신체관련 시장을 전제로 몸에 대한 가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근대 민주주의 사회는 생득적인 신체적 차이에 대한 차별을 가장 명백한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이를 시정하는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인종, 젠더, 연령은 누구든 처음 보는 순간 딱 알게 되는 신체적 특징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범주이며, 근대가 진행되면서 이에 대한 차별은 시정되고 평등을 지향하여 왔다.
공식적인 미국의 인종차별이나 남아공의 흑백분리정책은 폐기처분되었고, 남녀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으며 성적 소속감이 출생 이후 변화가능하다는 인식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미성년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세심한 수준의 인권이 요청되고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혼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다양하며 변화 와중에 있다.

혼혈은 외모상 정확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의 대상이 된다.
혼혈은 여러 차원에서 다르다고 인식하는 다양한 현상을 지칭할 뿐 그 다름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용어는 아니다. 즉 ‘범주 외’에 해당하는 범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사회에서 혼혈에 이름을 붙이고 차별하는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키아누 리브스는 영국+하와이+중국+포루투갈 혼혈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미국사회의 혼혈 인식방식은 “한방울 법칙”(one drop rule)으로 유명하다.

흑백간 혼혈은 여러 세대를 거쳐 백인에 가깝더라도 먼 조상 중 한 명이라도 흑인이 있으면 흑인으로 간주
되는 것이다. 즉 ‘얼마나 흑인 피가 섞였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며, 혼혈인은 부모 중 낮은 위계에 속한 인종/ 민족의 범주로 분류된다.

차별하기 위해 차별의 요소를 가능한 끝까지 추적하는 식이다. 그 배경에는 흑인노예제를 통한 부의 축적, 노예해방 이후에도 주별로 지속된 차별정책, 20세기 흑인 인권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 역사와 정치경제 구조가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대륙부에서 혼혈은 흑백 ‘인종’ 문제로 제기되고 아시아나 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이주로 인한 혼혈도 종족/민족간 결합 보다는 인종문제로 인식된다.

반면, 북미에서 흑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도 중남미에서는 백인으로 분류된다.

과거 이베리아 반도에서 온 백인들이 식민지 지배를 하던 브라질의 경우, 식민모국 여성과 결혼할 수 있는 백인 남성은 상층 일부에 불과하였다. 대다수의 백인 남성들은 현지 여성과 결혼하였고 결과적으로 메스티조 인구가 지배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관심은 ‘얼마나 백인 피가 섞였는가’였다. 백인의 피가 섞인 메스티조는 가능한 백인으로 간주되어 온 것이다. 

또한 같은 미국이라 하더라도 하와이의 사정은 대륙부와 많이 다르다. 하와이에서는 본토와 달리 백인의 도래 이후에도 토착 왕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흑인노예제 대신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농장노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하와이에서 ‘흑백’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혼혈은 인종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관습이 다른 종족/민족간 혼합으로 인식된다.
하와이에는 오히려 백인을 부르는 별도의 명칭-하올레(haole)-이 있고, 혼혈을 통칭하는 “하파”(hapa: half에서 온 말)라는 말에도 차별적 어감은 없다. 하와이에서 자란 한 중국인 중년여성은 초등학교 시절 학년초에 친구들이 서로 어디 어디가 섞인 사람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그게 자랑처럼 들리고 부러웠다고 회상한다.

필자가 사정을 좀 아는 필리핀의 경우도 혼혈 자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거의 없다. 식민지배층이던 스페인이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국인과의 혼혈 흔적은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된다.
단, 기대에 부응하는 경제적 부나 사회적 신분이 결여되어 있을 때는 역으로 낙오자처럼 간주될 수 있다. 즉 혼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가 현실화되었는지 여부가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노라 존스는 유명한 시타연주자인 인도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남미대륙이나 하와이나 필리핀의 사례를 보면 이주의 역사가 오래되고 혼혈인의 구성비가 늘어날수록 혼혈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미대륙의 사례처럼 실제로 혼혈이 진행되어도 계속 흑백 구도로 인식하면 차별적 인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대륙의 역사는 근대국가 내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도가 ‘혼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경을 넘나드는 방문과 이주가 늘어나면서 세계는 더욱 더 촘촘히 연결되고 생활방식과 인종은 뒤섞이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소개한 킵 풀백 책의 표지 인물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누구냐고? 나는 2500년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다”라고 답한다. 

결국 인류 이주역사의 흐름으로 본다면, 생물학적으로 혼혈이 정상이고 다수가 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키아누 리브스나 노라 존스같은 세계적인 혼혈 스타들의 외모가 각광을 받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 신체 시장의 유행이 혼혈에게 우호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이주시대에 혼혈 문제에서 평등의 가치 실현은 ‘범주외’인 혼혈에 어떤 이름을 붙여 인식할 지를 모색하는 사회적 고민으로 시작된다.


김민정/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twitter:@minki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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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상상력을 시작하며
 
'혼혈'에 대해


나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가르친다.

학과의 거의 모든 과목명에는 '문화'라는 말이 들어가고, 보통 첫 시간은 '문화'에 대한 수강생들의 정의(定義)를 나누고 시대적 상황적 용례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매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수십 명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이미지와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기본적으로 '문화'라는 말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시대용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년을 맞아 하와이의 호놀루루에 나와있는 지금, 이런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품은 작은 소망은 '문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문화'를 설명하는 내공과 필력을 연마하는 것이다.


담당자분이 코너의 이름을 "삶과 상상력"이라고 지어주셨다. 좀 거창하지만 멋있게 들린다.

개인이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때 그는 예술가이거나 발명가, 잘못되면 사기꾼이나 사이코패스가 될지 모른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속한 '집단적 상상력'에, 그러니까 내부용어로는 사회의 관습과 법, 규범과 질서, 윤리와 가치에 충실하게 사는 편이다. 집단 밖으로 걸어 나와 거리를 두고 보면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이 보이고, 그제야 내게 익숙한 삶의 방식에도 집단적 상상력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시대는 내가 속한 집단 밖으로 걸어 나오거나 집단 속으로 다양한 구성원이 들어오는 경험이 더욱 느는 때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상상력은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 낭만적 꿈 같은 것은 아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발휘되는 팀 버튼 감독의 상상력과 더 유사하다고 할까.

사회적 필요와 거기에 부응하는 예기 가능한 또는 예기치 못한 방식의 대응과 임기응변적 변형,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와 그로 인해 애매해지는 현실 감각 등을 요소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의, 집단의 상상력은 정치경제적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왜 하와이야?"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특히 상대가 '놀러가는 거 맞지?' 같은 속내로 웃음을 흘리며 들어올 때 정색을 하고, "사실 하와이 아시아 이주가 말이야..."라는 식으로 응하면 딱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대강 이승만 전대통령이 영부인 프란체스카와 지내던 곳이라거나, 오바마 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거나 하는 정황증거를 흘리면서 너와 나의 사회적 관심과 엮일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켜본다. 사실 세계화의 시대에 나의 삶과 엮이지 않는 지구상의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놀기에도 좋지만, 아시아의 이주와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많으리라는 통밥으로 나의 첫 연구년 장소로 하와이가 선정되었다.
 
 

 



하와이는 말 그대로 태평양 한 가운데에,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사이에 있는 8개의 섬이다.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방문이후 서구와의 접촉으로 섬의 운명은 크게 바뀌기 시작한다. 1959년에 50번째 주(州)로 미연방에 소속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 이미지, 남태평양의 낙원 하와이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한편 19세기말부터 아시아인들이 농장노동자로 이주해오면서 2008년 129만 명의 하와이 인구 중 아시아인은 38.7%이며, 호놀루루는 55%나 된다. 미국 전체의 아시아인 비율인 4.4%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한편 지역사회조사 질문지에서 '인종'(race란 표현을 쓴다) 항목에는 모두 18가지의 선택지가 있고 복수 응답을 할 수 있는데, 2개 이상을 선택한 '혼혈'인의 미국 전체 비율은 2.2%인데 비해 하와이는 21.7%로 10배나 더 많다.

 (미국 지역사회조사 American Community Survey 수치. www.census.gov/acs/www 사이트 참조)



지리상의 위치 그대로 하와이에서 동.서.원주민간 혼혈은 많이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곳에서는 '그냥 한국인'이란 없다. 성인이 되어 이주한 한국인이거나, 부모가 한국인이지만 어려서부터 하와이에서 성장한 한국인이거나,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중 한쪽만 한국인인 '여러 종류의 한국인들'이 있다.

그런데, 생김새와 언어, 윤리와 가치가 일치하는 경험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 본토에서도 '혼혈'은 '물리적 외관'의 문제로 인식된다. 피부와 털의 색깔, 머리카락의 웨이브 형태, 쌍커풀 여부, 이마와 광대뼈, 콧날의 돌출형태, 그런 것에 우리는 의미를 부여한다.  

왜 혼혈을 생김새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일까?


아마도 나와 남의 물리적 구분과 신체적 차이는 인간이 다른 생물유기체와 관계를 맺으면서 고려하는 가장 1차적인 정보일 것이다.
우리는 특히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나나 내가 아는 사람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부지불식간에 신경쓴다. 1단계로 성별, 인종, 몸집에 대한 호불호에 대해 반사적으로 판정을 내리고, 이어 언어와 말투, 지식과 정보에 대한 공유 여부를 확인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윤리와 가치를 나눌만 한 지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려면 관계에 많은 투자를 해야하지만 여전히 판단은 어렵다.


1단계에서 가능한 효과적인 선택을 해야한다. 그래서 혼혈에 대한 인식과 판정 내용은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크게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는 혼혈이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한 실체적 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아래는 킵 풀벡(Kip Fulbeck)이란 예술작가이자 남가주대학 교수가 미국내 남녀노소 혼혈인들의 인물사진을 찍고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함께 실은 사진집의 표지이다. 






여러분은 표지 인물의 인종/종족/민족적 배경을 알아 맞출 수 있겠는가? 

답은 일본인+프랑스인+중국인+아일랜드인+스웨덴인+북미인디안 수(Sioux)인이다. 아마 생물인류학 전공자도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사진을 보고 그 인종/종족/민족 구성을 알아맞히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혼혈인을 대할 때의,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우리의 반응, 무엇과 무엇의 혼합인가라는 호기심이 의미없는 정치적 습관이라는 점을 슬며시 깨단게 한다.

사진집 속의 다양한 얼굴을 보고 자기 소개를 읽노라면, 인종과 민족은 물론 남녀노소의 구분도 넘어 인간의 표정과 자기애에 대한 감동과 함께 동조의식이 생겨난다. 결국 레이시스트의 반대는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사진집 상단의 '하파 hapa'란 원래 하와이에서 혼혈인을 뜻하는 말인데 미국 본토의 혼혈인들이 자신들의 혼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mixed'의 대체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인 "100% hapa"는 일종의 반어적 표현이다.

**킵 풀벡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http://www.seaweedproductions.com/hapa/




**필자 김민정은 강원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는 호놀루루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twitter: @minkim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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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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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깊은 울림을 주네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기도 한데, 신체적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행위는 인간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생존본능에서 나온 것이지요? 사람이 누군과와 관계를 맺을 때 이뤄지는 일련의 인식-판단 행위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해주신 대목도 인상 깊었습니다.
  2. 저도요... 저도 마지막 문장이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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