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전체'에 해당되는 글 2060건

  1. 11:15:22 [기자칼럼]젠더 앤 더 시티
  2. 10:38:04 [사설]북·미 미군유해 송환·발굴 합의, 비핵화 논의로 이어져야
  3. 2018.07.16 [사설]주춤대는 북·미 협상, 한국의 ‘촉진자’ 역할 필요하다
  4. 2018.07.13 [정동칼럼]회의론과 장기적 관점의 함정
  5. 2018.07.13 [사설]북·미 정상회담 한 달, ‘비핵화’하려면 종전선언 필요하다
  6. 2018.07.12 북·미 싱가포르 합의가 불안한 이유
  7. 2018.07.12 [사설]기획탈북 확인된 북 종업원 사건, 진상규명 피할 수 없다
  8. 2018.07.12 [사설]중국에 무역 보복 폭탄 터뜨린 미국
  9. 2018.07.11 [특파원칼럼]끝나지 않은 ‘옴 진리교 사건’
  10. 2018.07.09 [사설]북·미의 비핵화 이견, 후속협상에서 해소하면 된다
  11. 2018.07.06 [편집국에서]‘저주받은 자들의 항해’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
  12. 2018.07.05 [사설]미국은 왜 근거 없는 ‘북 비핵화 의심 정보’ 퍼뜨리나
  13. 2018.07.04 [기고]북한으로 수학여행을
  14. 2018.07.04 신시대 중국 대학생 소송
  15. 2018.07.03 [사설]재개된 북·미대화, 차곡차곡 진전시켜야
  16. 2018.07.02 [아침을 열며]시진핑의 직설과 미·중 패권 경쟁
  17. 2018.06.29 [녹색세상]불가역적 비핵화 주장의 저의
  18. 2018.06.28 [사설]북한의 긴 침묵, 비핵화 동력 약화시킬 수 있다
  19. 2018.06.27 [기고]한반도 평화번영의 첫걸음, 남·북·러 3각 협력
  20. 2018.06.27 [사설]무역 전쟁의 역설, 해외 이전하는 미국 할리데이비드슨

30~40대 여성이라면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올해로 첫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1998년 6월6일 처음 방송된 이 드라마는 뉴욕에 사는 싱글 여성 캐리와 샬럿, 미란다, 서맨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뉴요커의 삶을 비현실적으로 화려하게 포장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진취적이고 당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은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이 뉴욕과 뉴요커를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속 뉴욕은 여성들의 꿈이 실현되는 도시였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똑 부러지는 변호사 미란다를 연기했던 배우 신시아 닉슨은 실제 뉴욕을 멋진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3월 닉슨은 뉴욕 주지사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는 9월 당내 경선에서 현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이기면 11월 중간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 스틸컷

 

인지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지만 닉슨 앞에 닥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정치 경험 없는 유명인’에게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유명인을 선출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닉슨이 여성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닉슨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단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자격을 갖췄다’는 사실을 다섯 차례 이상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이라 차별당한다는 감정은 단지 닉슨의 기분 탓이 아니다. 러트거스대 데비 월시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남녀를 비교할 때) 남성은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남성보다 더 크고 많은 성과를 남들 앞에 전시해야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닉슨처럼 분투하는 여성들은 또 있다. 중간선거 본선행 티켓을 획득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뉴욕주 상원의원 경선에 출사표를 낸 줄리아 살라사르,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제피르 티치아웃이 그들이다.

 

28세 신인 오카시오-코테즈는 지난달 27일 뉴욕 연방 하원의원 14선거구 민주당 경선에서 10선 의원 조지프 크롤리를 꺾었다. 영세 자영업자였던 미국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사도우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카시오-코테즈는 주류가 아니었다.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이번 경선에서 당의 지원은 없었다. 그는 유권자를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밑바닥에서부터 지지 기반을 다져 올렸다. 공약은 민주당의 기존 노선보다 진보적인 의제를 내걸었다.

 

오카시오-코테즈의 경선 승리는 즉각 다른 3명의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닉슨의 캠프에는 하룻밤 사이 새로운 후원자 300여명이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기부했다. 몇몇 민주당 중진들이 닉슨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살라사르는 오카시오-코테즈의 승리 당일에만 후원금 2만달러를 모금했다. 티치아웃의 캠프엔 자원봉사자 120여명이 신규 등록했다.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과거 여성 정치인들이 마음의 응원을 주고받는 수준이었다면 이들은 공동 유세를 하고 자원봉사자를 서로 빌려준다. 오카시오-코테즈 캠프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은 경선이 끝나자 닉슨과 살라사르, 티치아웃의 캠프로 ‘원정’을 떠났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물심양면 지지했던 것처럼 이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기득권 정치인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참신한 대안이 되고 있다. 뉴욕은 이들의 꿈을 실현해주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이 동경하는 도시가 될까. 드라마 ‘본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9월 경선을 기다리고 있다.

 

<최희진 국제부>

Posted by KHross

북한과 미국의 군당국이 15일 장성급회담을 9년여 만에 열어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유해 송환 및 발굴 작업을 11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16일 실무회담을 열어 유해 송환과 관련한 세부절차를 협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생산적이었고 협력적이었으며 확고한 약속들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제4항 유해 송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공동성명에는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양측이 공동성명의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기로 한 것은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신뢰구축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한·미 군 장병들이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미 6·25 전사자 유해 상호봉환’ 행사에서 2001년 북·미가 공동발굴한 윤경혁 일병 유해(왼쪽)와 2016년 6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69)은 추모사에서 “남북의 유해 공동발굴에 대비해 국방부 유해발굴단의 전문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충하겠다”며 “유해 발굴을 통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송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한·미 현역장병 등이 참가했다. 권도현 기자

 

미국은 ‘단 한 명의 군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을 정도로 장병들의 유해 발굴·송환을 각별하게 챙겨왔다. 북한에는 5300명가량의 미군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만큼 이번 합의는 향후 협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여론의 지지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미군 유해가 군사적 요충지에 묻혀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의 유해 발굴 허용은 미국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표로 볼 수 있다. 유해 발굴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지리 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북한군과 유엔군사령부 간의 회담이고,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주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13년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던 북한이 이번에 유엔사와의 협의채널을 복구한 것은 종전선언-평화협정에 앞서 정전체제를 잠정적으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직접 다룰 순 없겠지만, 정전체제를 폐기하려면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순서라는 점에서 함의가 작지 않다. 이 채널이 정전체제상의 다양한 의제들을 협의하면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유해 송환 합의가 공동성명상의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미국이 최근 정상회담 후속협의를 위한 실무그룹의 진용을 갖춘 것은 이런 점에서 긍정적인 뉴스다.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 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비핵화 이후 한반도 평화·번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한 달 만에 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에서 문 대통령이 ‘포스트 비핵화’의 비전을 제시하며 강한 어조로 추진의지를 내비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설은 남북이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면 대북 제재 해제가 필수적이고, 그러려면 비핵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핵화 의지를 독려하는 의미가 있다.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 후 첫 일정으로 힌두교를 대표하는 성지인 '악샤르담 힌두사원'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북·미 간 후속 협상이 속도를 내도록 한국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최근 행보에서도 엿보인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목표”라고 한 것은 종전선언에 소극적인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확실히 완화됐지만, 최근 북·미의 태도는 기대감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핵화와 관련해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협상 장기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협상의 장기화는 북·미 양측에 득이 될 게 없을 뿐 아니라 신속한 비핵화를 기반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려는 한국으로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완되고 있는 북·미 협상을 바짝 죄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싱가포르 렉처’ 연설 후 문답에서 “(북·미) 정상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북·미를 압박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북·미가 협상 모멘텀을 확보하도록 남북, 한·미 간 소통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Posted by KHross

6월12일, 북·미의 정상들이 70년 묵은 적대관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세계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경이로이 바라보면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회의론과 부정적 여론이 지배했다.     

 

필자는 싱가포르 현장 가까이서 관찰한 후 곧바로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을 돌면서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 및 한반도 전문가들과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세계에서 트럼프를 믿는 국가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고,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믿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외에는 모두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목표 달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사 케나 미국 보좌관, 알렉스 왕 국무부 동 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 성 김 미국 대사, NSC코리아 앨리슨 후커 감독이 박 화 영빈관에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회의론자들은 줄곧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긍정적 평가와 자화자찬에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다가, 회담 이후 3주간의 소강 상태와 이후 폼페이오의 3차 방북 결과를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적 견해들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허장성세였을 줄 알았다는 반응과, 북한은 얻을 것을 이미 얻었고, 비핵화의 진정성은 원래부터 없었으며, 따라서 과거의 반복일 뿐이라는 반응이 가장 많다. 센토사 회담의 성패 여부를 후속 조치를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미뤘던 셈인데 이마저 성과가 없이 끝났으니 정상회담도 실패라는 논리다. 

 

그런데 회의론자들은 북·미 정상이 구체적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거나 실행과정 국면마다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회의론의 장점은 섣부른 기대를 만들어 실패할 때 더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되는 낙관론의 함정을 피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성공이 가져다주는 행복 배가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은 성공이나 변화에 대해 전적인 우연에 의존한 장점보다 훨씬 더 치명적 함정을 지닌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특히 현재 벌어지는 전혀 다른 비핵화 게임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회의론으로 접근해도 검증이나 제재를 통해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의 자발적 핵폐기 없이는, 그리고 그 핵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는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회의론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기에 비핵화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바뀐 게임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을 그나마 트럼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계약을 지킬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그때 한 악수를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함으로써 회의론을 반박했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전적인 부정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사실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북핵이 그동안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 압박의 빌미였기에 비핵화 과정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커지거나 북한이 지나친 대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천천히 가기를 원한다. 트럼프까지 반복적으로 중국의 배후에서의 훼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는 회의론 못지않은 깊은 함정이 존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5년간 북한핵 문제 해결에 실패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시간제한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한 현재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반대 분위기를 트럼프와 폼페이오 두 사람이 막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은 현재보다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속도전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북·미 협상의 소강국면, 회의론, 그리고 장기적 관점으로 인한 첫 장애물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 북한은 자신들이 포기한 것에 비해 미국이 정치적 종전선언마저 거부한다면 대미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북한이 선제적으로 더 많이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하더라도 제재완화는커녕 정치적 종전선언까지 받아낼 수 없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모델 재현이다. 한국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교차보증’에 나섬으로써 막힌 혈로를 뚫어 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조심할 때가 아니라 나설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북·미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세기의 회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현재 국면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후속협상에서 ‘비핵화 일정표’ 같은 성과물이 나오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선의’를 믿고 성급하게 나섰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가 미국 언론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 의회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카드를 다시 꺼내라는 강경론이 불거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비핵화’ 요구만 내놨을 뿐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번에도 또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의 첫번째 항목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두번째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세번째에 배치돼 있다. 북·미 정상이 서명해 전 세계에 공개한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로 구성돼 있다면 후속협상에서도 각 항목에 최소한 동등한 무게감을 갖고 다룰 필요가 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최소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은 잠정적인 대북 안전보장책이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이 있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미국도 그간 종전선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비핵화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북·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일 것이다.

 

Posted by KHross

“만약 하수관이 터져 오물이 온 동네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먼저 오물이 퍼지지 않게 펜스를 쳐야 한다. 그리고 터진 곳을 막고 펜스 안에 고인 오물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확실히 막았는지 점검하고 재발방지 조치까지 마쳐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북핵 6자회담이 한창이던 10여년 전 미국의 북핵담당 고위 관료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비핵화’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비핵화는 핵물질·기술 이전 차단-동결-핵무기·핵물질·장비 폐기-검증-핵 재무장 방지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완전한’ ‘비가역적인’ 등의 수식어를 앞에 주렁주렁 붙이는 것은 사족일 뿐이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라는 용어를 ‘시간 부족으로’ 북·미 합의문에 명시하지 못한 미국은 지금 PVID, FFVD 등으로 표현을 바꿔가며 북한의 동의를 받아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어떤 용어를 쓰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같은 개념인지 여부가 핵심이다.

 

북·미는 정상회담에서 “4·27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한다”고 합의했다. 그런데 판문점선언에도 남과 북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의미는 다르다. 한국 정부가 번역한 판문점선언 영문본은 ‘핵 없는 한반도(nuclear-free Korean Peninsula)’라고 되어 있지만 북한 외무성은 ‘한반도 비핵지대화(turning the Korean peninsula into a nuclear-free zone)’라고 번역했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나 ‘핵우산’까지 염두에 둔 표현이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판문점선언을 원용했다.

 

비핵화 용어 논란은 미국의 허술한 준비를 드러낸 단편이다. 싱가포르 북·미 합의가 불안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방향이 틀렸거나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협상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와 미국의 협상력 부족 등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비핵화를 이끌어낼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약탈적 거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허술한 면모를 드러낸 것은 북핵 문제를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을 즉각 수용한 것은 준비가 완료됐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 일정에 맞춘 결정이었다. 북·미 회담 성과가 급한 쪽은 오히려 트럼프였다. 실질적 내용보다는 정치적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외형에 집착했다. 상대에 대한 분석도, 전문 인력도 갖추지 못한 채 날짜를 먼저 정해놓고 협상을 시작했으니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일단 합의문에 서명하자 북한이 유리한 입장에 서 있음이 더욱 명확해졌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재촉하고 있지만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양국 수뇌분들께서 합의한 대로’ 비핵화보다 신뢰구축 조치가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북·미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은 신뢰를 구축해 새로운 북·미관계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에 이르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북한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렵다.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은 이미 북한과 밀착하고 있고 미·중은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정상 간 합의를 통한 톱다운 방식의 접근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를 논하는 각론에 들어가면 상황이 다르다. 돌파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최고 권력자들의 ‘통 큰 합의’로 일을 해결하는 방식은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쯤 트럼프는 전임자들이 왜 북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 북·미 합의가 유지되려면 트럼프가 지금보다 훨씬 진지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북한도 선(先)신뢰구축만을 주장하며 비핵화 논의를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비핵화 진전을 통해 신뢰를 만들어가는 조치를 병행해 미국 내 여론의 반대로 북·미 합의가 좌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미 모두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타협점을 찾기 위한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2016년 4월 한국에 온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을 면담한 뒤 “종업원이 한국에 오게 된 경위에서 여러 가지 결점이 있음을 파악했다”며 “이들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특별보고관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나의 제언은 최대한 신속하게 철저하고 독립적인 진상규명과 조사를 통해 책임자가 누구인지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들이 중국에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납치된 거라면 범죄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간 국내에서 제기돼온 ‘기획탈북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유엔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한 셈이다.

 

킨타나 보고관은 이번 방한에서 파악한 내용과 권고사항 등을 유엔총회에 제출할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한국 인권수준의 잣대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통일부 당국자는 ‘자유의사에 따른 탈북’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킨타나 보고관은 종업원들의 북한 귀환 여부에 대해 “그들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이라는 종업원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귀담아야 할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일부만 돌아갈 경우 남측에 남는 종업원들의 가족들이 북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송환에 반대하고 있지만, 원칙에 입각해 풀어가면 해법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종업원들은 킨타나 보고관에게 “딸처럼, 가족처럼 생각하고 이 문제에 접근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지적이다. 정부와 관계당국, 정치권은 그간 정략적·정치공학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나의 가족이 자기 의사에 반해 원치 않는 타국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게 됐다. 철저하고 신속한 진상규명에 나서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이런 ‘부정의(不正義)’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인권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획탈북’이 당시 정부와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확인될 경우 엄정한 법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미국 정부가 10일(현지시간) 2000억달러(약 223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6031개 품목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오는 9월부터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은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지난 6일부터 이 중 340억달러어치 품목을 우선 적용했다. 이에 중국도 즉각 같은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기 시작하면서 양대 경제 대국의 무역전쟁이 시작된 바 있다. 여기에 이날 조치가 추가되면 미국은 대중국 수입액(지난해 5055억달러)의 절반(2500억달러)에 고율관세를 매기게 된다. 가히 ‘핵폭탄급’ 무역보복이다. 이에 중국 상무부도 “필요한 보복을 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 양국의 무역전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이날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경고했던 것을 현실화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 해외는 물론 국내 제조업계와 소비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역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촉발된 무역보복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등 동맹국으로 향할 개연성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 등의 불공정 무역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11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고, 미국 증시의 지수 선물도 하락했다. 한국도 코스피지수가 전날보다 1.3% 넘게 급락했다가 간신히 회복해 13.54포인트(0.59%) 내린 2280.62로 마감했고, 원·달러 환율은 4.0원 오른 달러당 1120.0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미·중 무역전쟁이 가시화된 지난 6월 이후 35원이 급등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대응책은 미온적이다. 미·중의 고율관세 부과가 발효된 지난 6일 이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부처들은 아직 합동대책회의 한번 열지 않았다.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흔들리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장기적으로 미·중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당장 미국의 칼끝이 한국으로 직접 향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외교·경제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1995년 3월20일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으로 일본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옴 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 등 7명에 대한 사형이 지난 7일 오전 전격 집행됐다.

 

NHK 등 방송들은 당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속보를 내보냈고, 주요 신문들도 호외를 발행하는 등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후에도 시리즈 기사나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옴 진리교 사건의 파장과 의미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23년 전 옴 진리교 사건이 일본 사회에 던진 파장이 그만큼 심대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일본 언론들이 이번 사형 집행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일단락짓는 행위로 풀이하고 있는 점이다. 헤이세이는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연호로, 1989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내년 4월30일 퇴위하고, 아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5월1일 새 일왕에 즉위할 예정이다. ‘헤이세이 최대의 흉악 사건’으로 불리는 옴 진리교 사건을 헤이세이 안에 마무리짓고 새 연호의 시대를 맞이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옴 진리교는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 1994년 마쓰모토시 사린 사건,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극악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켰다. 이들 사건으로 29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은 인파가 몰리는 출근시간대 도쿄 도심에서 화학무기로 일반시민을 무차별적으로 노렸다는 점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새해 벽두 발생해 6300여명이 숨진 한신(阪神) 대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며칠 뒤엔 경찰청장 저격 사건까지 벌어졌다. ‘치안대국’을 자부하던 일본이 받은 충격은 컸다. 옴 진리교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에 24시간 체제의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하고, 위험단체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위기관리체제를 크게 전환하게 된다.

 

일본 사회가 옴 진리교 사건에서 헤이세이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는 이유는 더 있다. 1984년 요가 서클로 출발한 옴 진리교가 교세를 확장해 결국 테러집단으로 변질해간 것은 앞선 연호인 쇼와(昭和·1926~1989년) 말기에서 헤이세이에 걸쳐서다. 이 시기는 일본의 경제와 사회 구조가 크게 바뀌던 때다. 버블 경제와 그 붕괴, 급속한 국제화로 인해 지금까지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흔들렸다. 옴 진리교의 성장 배경에는 당시 ‘삶의 허무함’을 느끼던 젊은이들의 심리를 파고든 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는다. 왜 옴 진리교는 사회를 적대시해 사린 살포라는 극단으로 치달았는가. 왜 학력이 높았던 젊은이들이 교주의 지시 아래 무차별 살인으로 돌진했는가. 이들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건가.

 

옴 진리교의 뒤를 잇는 단체들은 현재 신자 1600명, 35곳의 관련시설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길거리나 대학, 인터넷에선 젊은이들을 노리는 ‘컬트집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한다. 고립감이나 불만, 극단적 사상의 유포 등 젊은이들이 옴 진리교에 끌렸던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이들이 기댈 장소를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등 타자를 배제하고 소외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宮台眞司)는 “사회 전체가 ‘옴’적으로 되고 있는데도 그 자각도 학습도 없이 사형이 집행됐다. 일본 사회는 ‘옴’을 자신들의 문제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일부 언론들이 “옴 진리교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Posted by KHross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6~7일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 문제에서 합의 도출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핵심 사안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비핵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회담 직후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것도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없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회담 전략의 의도도 있겠지만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의 입장 차가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빨리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염원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이어 고위급과 실무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정상들의 추인을 받아 이행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 로드맵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 이견을 좁히고 양보함으로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측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이견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망라해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서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신봉하는 CVID가 과연 유일무이한 방안인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해 북한의 거부감이 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에 북한도 구체적인 자체 안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쪽이 낸 방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Posted by KHross

1939년 5월27일 새벽 4시. 대서양 횡단 독일 여객선 세인트루이스호는 2주간의 항해 끝에 목적지인 쿠바 아바나 해안에 도착했다. 탑승객 937명은 항구의 불빛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대부분이 나치의 핍박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이었다. 자유를 향한 희망에 부푼 이들은 짐을 꾸리고 하선 준비를 했다. 배에 올라온 쿠바 관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당시 6살이던 제럴드 그랜스턴은 쿠바 관리들이 외치는 “마냐나, 마냐나” 말만 반복해 들었다고 회고했다. “내일” 또는 “언젠가는”을 뜻하는 낙관적인 이 말은 배반의 단어가 됐다. 6살 소년조차도 이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배의 입항 및 승객의 하선 금지임을.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로 불리는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은 5월13일 배가 독일 함부르크를 떠나기 전부터 예정됐다. 쿠바 당국은 애초부터 유대인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배가 출발하기 8일 전에 이미 비자를 무효화했다. 선박주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유대인들은 모른 채 탑승했다. 유대인 탑승객들에게 세인트루이스호는 마지막 탈출구였다. 선상에서의 일상은 천국이었다. 지상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식사가 제공됐다. 금요일 밤에는 댄스파티가 열렸다. 영화도 상영됐다. 수영 강습도 열렸다. 히틀러의 흉상은 식탁보로 가려졌다. 로타르 몰톤이라는 소년은 “자유를 향한 크루즈 휴가”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독일인임에도 세심하게 배려한 구스타프 슈뢰더 선장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쿠바 아바나 코앞까지 와서도 내릴 수 없는 유대인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한 탑승객은 자해한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는 정식 하선 허가를 받은 29명만 내려준 채 일주일 만에 미국 플로리다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행정부는 이들을 거부했다. 선장은 미 연안에 배를 좌초시켜서라도 이들을 탈출시키려고 했지만 미 행정부는 이를 막으려 해안경비대를 동원했다. 캐나다마저 외면하면서 기댈 곳은 유럽 국가뿐이었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더라도 독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탑승객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 미국 유대인 단체의 도움으로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가 907명 전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내 배는 벨기에 앤트워프 항에 입항했다. 함부르크를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난 6월17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가 독일을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254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됐다.

 

쿠바와 미국, 캐나다는 왜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1930년대 세계는 광기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대공황 여파와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었다. 이성이 설 자리는 애당초 없었다. 독일은 1939년 초 자국 국경 대부분을 봉쇄했다. 많은 나라들은 유대인 이주자 숫자를 줄였다. 쿠바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상 최대의 반유대 시위가 열릴 정도로 반유대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쿠바는 탑승객들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이들을 막은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처럼 ‘미국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반이민 정서 때문이다. 2차 대전과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자국 내 독일인을 추방하고 일본인을 억류하지 않았던가. 결국 세인트루이스호 탑승 유대인들의 고난과 역경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오늘날 지중해를 비롯한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난민들의 목숨을 건 항해를 보면 세인트루이스호 탑승객의 비극적인 운명이 겹쳐진다. 79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이들을 막는 자들의 논리와 사고방식은 물론 세상의 작동원리도 마찬가지다.

 

난민 배척 역사는 반복되고, 정책은 오히려 악랄해지고 있다. 과거 세인트루이스호 유대인을 받아준 영국·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 2012년 9월 세인트루이스호 난민을 외면한 데 대한 미 국무부의 공식 사과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빈말이 돼버렸다. 호주를 본받아 가혹한 무관용 정책을 채택한 트럼프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으로 여긴다. 지난해 취임 직후 말콤 텀불 호주 총리와 통화하면서 난민 정책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그가 더 악랄하다고 한 트럼프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난민 문제가 지구촌의 최대 관심사가 된 이후 세계 지도자들이 내놓는 해법은 절망적이다. ‘당신들이 탈출한 지옥으로 돌아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나 연민 대신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언어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어디에 기대야 하나.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을 되새겨보는 이유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Posted by KHross

미국 정보 당국과 언론이 최근 잇따라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재료인 농축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거나 핵탄두 및 핵관련 시설의 숫자를 줄여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2010년부터 영변 외 제3의 장소에서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해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미 정상회담 후 소강상태였던 비핵화 협상이 막 재개된 시점에 왜 이런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2박3일간 북한을 방문, 6·12 북미정상회담에 이은 후속 비핵화 협상을 한다고 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23일만에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것으로, 양국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탈 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폼페이오 장관이 워싱턴 국무부에서 '2018년 인신매매보고서'를 발표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의혹은 대부분 근거가 미흡한 것들이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강성’ 지역에서 2010년부터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왔다고 보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어떤 정보기관이 그 같은 정보를 갖고 있는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방정보국(DIA)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65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북한이 미국 정부를 속이고 이보다 훨씬 적게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 신문의 또 다른 보도도 문제가 많다. 북한 핵무기가 65개로 매우 많은 것으로 추산하지만 맞는지 알 수 없는 데다 신고도 하기 전에 축소신고를 할 것이라고 예단하며 북한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핵관련 성실신고 여부는 국제사회 사찰과 신고, 폐기, 검증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에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을 맞을 때마다 비밀 핵 의혹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의 플루토늄 축소신고 의혹이나 1998년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논란, 2002년의 고농축 우라늄(HEU)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모두 무산됐다. 하지만 추후 이들 의혹은 미국의 대북 강경파에 의한 거짓 정보로 밝혀지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점에서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의 배경과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금명간 방북해 북측과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원칙만 합의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사실상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들 때문에 비핵화의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Posted by KHross

남북관계를 항구적인 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일부 시·도교육청은 청소년의 북한 수학여행, 남북한 학생교류 사업 추진을 천명하였다. 북한에 대해 가감 없이 알기 위해 북한을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 수학여행은 제대로 추진된다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냉전의식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통일 전,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는 남북 학생교류에서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던 국가가 분단되면서 적대적 관계에 있던 두 체제에서 자란 청소년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전 서독은 분단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약화되는 청소년 세대의 민족 동질의식이 언젠가 맞이할 통일시대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지식 중심 수업을 넘어 실제 경험을 통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전후로 광범위한 사회문화 교류가 추진되고, 서독인의 동독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을 비롯한 동·서독 청소년 교류가 추진되었다.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은 크게 사전교육, 본수학여행, 사후교육의 과정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수학여행 실시에 앞서 동독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전교육이 실시되었다. 사전교육은 동독 관련 자료의 개발·제공 역할을 하였던 전독문제연구소가 담당하였는데 수학여행에 참여하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사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사전교육 후 서베를린을 경유한 3~5일 일정의 동독 수학여행이 추진되었다. 수학여행 종료 후에는 소감문 형식의 서면보고서 제출 방식으로 사후지도가 이뤄졌다. 처음 추진될 당시, 매년 2000여명 수준이었던 참가 학생 규모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3만여명으로 늘어나 1980년대 후반까지 33만여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다.

 

추진 초기에 동독 수학여행은 ‘장벽 너머’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서독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여행 인프라가 열악하고, 제한된 지역 방문은 물론 한정된 사람만 접촉이 가능한 수학여행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고, 일부의 경우 폐쇄적인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독은 동·서독 청소년의 만남, 토론회 등 동·서독 학생 간 직접 접촉을 추진하였지만 동독의 소극적 태도로 이러한 만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 수학여행은 청소년에게 ‘장벽 너머에 우리와 역사·문화적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직접 체험을 통해 현존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의도했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음에도, 동독 수학여행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의 시사점으로 첫째, 참여 학생이 북한 수학여행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남북 간 큰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현 세대에게 북한 수학여행이 남북의 심화된 이질성을 넘어 평화,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남북한 청소년 교류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1회성 만남을 넘어, 남북 학생 간에 우편 등을 통한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양측 청소년 간에 실제적인 유대감이 형성·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북한은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교류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체제유지 관점에서 동독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소년 간 직접 만남은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던 동독의 사례를 우리 또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사업이 적절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된 적대 관계와 감정이 일시적인 교류를 통해 단시일 내에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북한 수학여행을 통해, ‘차이가 있지만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우리와 한 핏줄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시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이 그러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구섭 | 전남대 윤리교육과 교수>

Posted by KHross

지난해 6월 중국 대입시험을 끝낸 리모양은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려고 예약한 침대칸은 ‘간접흡연 고문칸’으로 변했다. 객실과 객실 사이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승객뿐 아니라 열차 승무원들이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열차 객실에는 어린이와 임신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흡연을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국의 고속철도에서는 흡연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하고 추가 적발되면 고속철 영구 탑승 금지 조치를 하는 등 엄격히 금연 정책을 실시한다. 그러나 일반 열차는 여전히 흡연구역이 존재한다. 냉방 시스템이 에어컨으로 바뀌면서 환기는 어려워졌는데 흡연구역은 철거되지 않아 거대한 간접흡연 구역으로 변한 것이 문제다.

 

리양은 열차 안전 규정을 찾아 국가철로국과 베이징시, 톈진시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관할 범위가 아니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참다못해 자신이 탔던 K1301 열차를 운행하는 하얼빈 철도그룹에 베이징역과 톈진역 승강장, 해당 기차 내의 흡연구역을 폐지하라는 소송을 냈다. 또 기차표와 마스크 구입비용, 변호사 수임료와 정신적 피해보상도 요구했다. 그가 소송에서 제시한 정신적 피해보상액은 1위안(약 168원)뿐이었다. 1년간의 소송 끝에 지난주 법원은 하얼빈 철도그룹에 30일 내에 해당 열차 내 흡연구역과 재떨이를 모두 철거하고 금연을 홍보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중국 내 공공장소 흡연을 요구한 첫 소송이자 승소 사례다.

 

중국이 대대적인 금연 캠페인으로 3억5000만명에 달하는 흡연 인구를 압박해왔지만 중국인들의 담배 소비 증가 추세를 꺾지 못했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도 금연 표지판 아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리양이 탔던 K1301열차에 한정돼 있지만 향후 중국 열차 전체로 금연구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판결에서 간접흡연의 피해를 인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이 모든 변화를 주도한 것은 갓 대학에 입학한 19세 청년이다.

 

1990년대 태어난 중국 대학생들이 중국 사회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변화의 동력은 소송이다.

 

화둥정법대의 학생 4명은 상하이 번호판 입찰에 내는 수수료 100위안(약 1만6800원)의 합법성 문제를 제기했다. ‘하늘의 별 따기’인 상하이 차량 번호판을 친·인척까지 동원해 여러 차례 신청하지만 수년간 번호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당국에서 수수료만 챙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산시성의 한 대학생은 베이징의 한 교육기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행정 보조를 뽑는 취업 공고에 대상을 ‘남성’으로 국한한 것은 중국 법이 보장한 평등권과 취업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을 통해 시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언론과 집회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중국에서 톈안먼 사태 같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헌법 수정도 큰 반발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그렇다고 중국 대학생들의 변화 시도가 꺾인 것은 아니다. 일반 열차 금연 소송을 이끈 리양은 학교 수업 때문에 법정에 나오지 못했다. 판결이 끝난 후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부처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며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미력이나마 다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1979년에 형법이 처음 제정됐을 정도로 법치의 역사가 짧다. 시진핑 주석이 의법치국을 주창하며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고 법률 보완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의법치국이 장기 집권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신시대의 중국 대학생들이 오히려 법을 내세워 중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경향 국제칼럼 > 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시대 중국 대학생 소송  (0) 2018.07.04
대륙의 갑질  (0) 2018.05.23
한한의 독설  (0) 2018.05.02
중국 ‘마라톤 열풍’의 그늘  (0) 2018.04.11
영재반 폐지와 ‘99.8%’  (0) 2018.03.21
독감 아래 베이징  (0) 2018.02.28
Posted by KHross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3주 만에 재개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북측 인사가 지난 1일부터 판문점에서 만나 비핵화 후속 조치들을 협의하고 있다. 오는 6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돼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였던 북·미대화가 재가동된 것이다. 지난 20일간의 북·미대화 공백은 비핵화 협상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비핵화 대화가 끊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북·미 사이에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이 진행되고,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 상봉 개최 합의 등 4·27 판문점선언이 이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본질적 사안인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후속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일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왼쪽)가 2일 오전 숙소인 서울 종로 포시즌스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이 북한 핵프로그램을 1년 내에 해체하는 방안을 고안했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의심이 간다. 볼턴은 리비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핵폐기 작업에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리비아의 무조건적인 핵폐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몰아붙이는 태도가 걱정스럽다. 그의 발언은 미국의 공식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2020년까지 비핵화 완성을 목표치로 제시했다가 최근 구체적인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북한에 대해 강온병행 전략을 구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율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된 이상 굳이 이런 자세를 드러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북·미 사이에는 무엇보다 일관된 입장과 언행일치의 태도가 요구된다.

 

비핵화 대화의 왕도는 없다. 하지만 합의 번복이나 무산의 경험이 많은 북·미 사이에는 합의 이행은 물론 후속 협상의 속도와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상호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의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동력이 약화되고, 반대로 너무 서둘러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서로 동시적·단계적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차곡차곡 진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Posted by KHross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는 중국을 꿰뚫는 통찰력이 뛰어났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리콴유는 1976년부터 40년 동안 중국을 33차례 방문했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 등 당대의 외교안보 전략가는 물론, 덩샤오핑부터 시진핑까지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그를 만났다. 그들은 중국이 어디로 갈지를 또는 가야 할지를 알고 싶어했다. 리콴유가 2015년 사망하기 얼마 전 미국의 전문가들이 찾아와 “시진핑은 중국이 미국을 대체해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라고 물었다. 리콴유의 답변은 이랬다. “물론입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어떻게 아시아의 1인자가 되고 종국에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강대국, 즉 패권국가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특정된 지역과 나라에서의 우위가 아니라 방대한 범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이 됐다. 경쟁 상대가 없는 군사력, 압도적 경제력, 전 세계로 진출한 다국적기업 등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확고했다.

 

중국이 그 지위를 넘본다. 시진핑은 4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170여년 전 아편전쟁 이후 중국 부활의 꿈에 이토록 가깝게 다가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한판 붙어 패권을 차지할 생각은 없음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강대국이 패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중국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DNA에 없다”(시진핑)는 식이다. 밖으론 그렇게 얘기하지만 경제력에서 미국을 압도하면 물리적 충돌 없이도 패권국가가 될 것이란 게 중국의 생각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집권 초기인 2013년 ‘신형대국관계’란 표현을 썼다가 ‘신형국제관계’로 바꾸기도 했다. 미국이 싫어하는 ‘대국’이란 말 때문에 부딪치기보단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장해 판도를 휘어잡겠다는 계산이다. 유라시아 진출 계획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구상도 그 일환이다.

 

현재 경제성장 추세라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30년을 전후해 미국을 추월한다. 미국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죽의 장막’을 열어젖힌 이후 중국의 발전을 돕는 ‘건설적 포용’ 기조를 대체로 유지해왔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은 전체에서 18.9%, 대미 무역흑자는 전체 흑자액의 65%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이제 보답해야 한다며 무역불균형 시정을 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트럼프는 중국이 기술강국이 되지 못하도록 지식재산권 침해 단죄, 첨단기술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강군몽으로 이어진다. 영토와 주권 등 핵심이익을 사수하기 위한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발 무역전쟁에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지만 미·중 패권경쟁은 이미 남중국해에서 불붙고 있다. 중국은 1974년 베트남의 섬들인 시사군도 점령을 시작으로 남중국해에 개입했다. 이제는 남중국해 전체의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한다. 항구, 활주로, 격납고, 레이더 등을 설치한 데 이어 지난 5월 3개 인공섬에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했다. 군사기지화가 사실상 완료된 셈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이를 “이웃국가를 겁주고 협박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2015년부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펼치고 있는 미국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태평양사령부 명칭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교체했다. 중국의 핵심이익 중의 핵심인 대만에 무기판매 강화를 포함한 군사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무력시위도 주거니 받거니 계속되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주 매티스를 만나 “예로부터 병법을 아는 자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 전쟁사에 해박한 매티스는 손자병법도 줄줄이 외울 정도라고 한다. 시진핑은 그러면서 “선조가 물려준 영토는 한 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시진핑은 최근 미국 기업인 등이 참석한 자리에선 미국의 무역 공세에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놓는 게 아니라) 펀치를 날리겠다”고 했다.

 

시진핑은 이제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중국을 건드릴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던진다. G2(미·중)가 타협해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 낼 것인가. 일단 2020년이 고비다. 그해 트럼프 재선 여부가 결정되고,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는다. 미·중의 동시다발적 갈등이 북·미 협상으로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평화구축 논의에 미칠 영향도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안홍욱 국제부장>

Posted by KHross

북·미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가진 핵무기를 모두 없애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남한에서는 많은 사람이 북한의 핵무기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을 ‘완전한 비핵화’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한반도의 반쪽만을 겨냥한 불완전한 해석이다. 비핵화의 대상은 한반도 전체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핵무기를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핵무기도 한반도에 존재해서도 안되고 개발되어서도 안되고 한반도를 겨냥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모두 폐기되어야 하고, 핵무기를 탑재한 항공모함과 전투기, 그리고 잠수함이 한반도 영해에 들어오는 일이 완전히 없어져야 하고, 한반도를 겨냥한 핵무기, 남한을 위한 핵우산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렇게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북·미 정상의 합의에 CVID라는 말이 빠져 있다고 해서 핵심이 빠진 합의, 미국이 손해보는 합의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의미의 CVID 중에서 완전과 검증 가능은 실현 가능하다.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감시해서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역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불가역적 비핵화란 핵무기를 만들 가능성을 모조리 차단함으로써 다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물리학과 화학 같은 자연과학과 기계공학, 원자력공학, 재료공학, 컴퓨터공학 같은 공학을 연구하지도 가르치지도 말고, 과학기술의 초보상태로 내려가라는 말과 다름없다.

 

핵무기는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과학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나라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한국과 일본도 개발하려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핵무기이다. 단지 마음을 먹지 않았거나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아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개발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은 언제든지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핵무기를 모두 폐기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과학기술 수준은 그대로 유지한다면, 다시 핵무기 보유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니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북한의 과학기술을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그럼으로써 북한을 존립 불가능의 상태로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북한이 망해 없어져야만 가능한 것이 불가역적 비핵화인 것이다.

 

북한이 망해야만 불가역적 비핵화가 가능하다면 CVID가 협상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 불가능한 것이 된다. 망해야 할 대상과는 협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CVID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은 협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거나 압박이나 전쟁을 통해 무너뜨리는 것만을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는 셈이다. 이들에게는 한반도에서 수많은 생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최대의 관심거리다. 그러나 한반도의 대다수 사람들은 오직 평화적인 방식으로만 한반도 비핵화에 도달하는 것을 원한다. 전쟁이나 압박을 통해 북한이 망하는 것은 북한 인민뿐 아니라 대다수 남한 시민들도 원하지 않는다.

 

불가역적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비핵화를 하지 말자는 비현실적인 주장이고, 한반도의 긴장을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현 상황의 영원한 고착이나 전쟁을 원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진로에 조금 방해는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가 평화로 성큼 다가가도록 하려면 CVID에 숨어 있는 저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Posted by KHross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27일로 보름이 지났지만 비핵화 로드맵을 논의할 후속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양측 간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일 것이라는 관측은 나오지만 공식적인 협상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북·미가 정상회담의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협상을 이른 시일 내 개최키로 약속한다는 공동성명 이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외견상 북·미 간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홍보하고 있고,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을 압박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북한 역시 6·25 기념행사에서 종전과 달리 대규모 반미 군중집회를 하지 않았다. 북한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미군유해 송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북 사이에서도 8월 이산가족 상봉행사 합의, 군사당국자 회담 및 철도회담 개최 등 4·27 판문점선언을 착착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질적 사안인 북·미 사이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후속 움직임이 없다.

 

무엇보다 북한의 소극적인 대응이 아쉽다. 미국은 여러 차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제의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의 협상 상대조차 정하지 않고 있다. 이 바람에 이달 성사될 것으로 예상됐던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지연되고 있다. 폼페이오와 북한 고위관리 간 협상을 뒷받침할 북·미 실무협상진 구성도 감감무소식이다. 한·미의 연합군사훈련은 유예됐지만 북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미사일엔진 실험장 폐기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북측은 이같이 침묵하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 공백이 장기화되면 반대여론이 힘을 얻게 된다.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한 협상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핵화 동력은 약화될 게 뻔하다. 신뢰기반이 취약한 북·미 사이에서는 신뢰를 쌓아가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양측이 정상회담을 했지만 상호 신뢰가 단단한 상태는 아니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작은 움직임이라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만이 아니라 한국과 주변국들도 비핵화 논의 촉진을 위해 적극 협력하고 지원할 책무가 있다.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공식 수행원으로 참석한 필자는 우리 정상의 19년 만의 국빈방문으로 역사의 변화가 이뤄지는 현장을 함께했다. 기립박수가 계속된 러시아 하원 연설과 300여명의 양국 기업인이 참석한 비즈니스포럼에서 러시아 측의 뜨거운 관심과 환대를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돛의 방향도 돌려야 한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은 비핵화와 경제발전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이번 러시아 국빈방문은 한반도를 둘러싼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가운데 신북방정책의 핵심 파트너인 러시아와의 협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외교적으로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을 공고히 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담론 수준에 머물렀던 남·북·러 3각 협력의 든든한 초석을 놨다.

 

우선 양국의 전력계통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서로 연결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빠른 시일 내에 개시하기로 했다. 전력계통 연계는 러시아의 풍부하고 저렴한 청정에너지 자원의 공유를 넘어 우리나라가 다시 대륙과 연결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앞으로 중국·몽골·일본까지 계통연계가 확장되면 명실상부한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완성될 것이다. 이제 동북아도 북미나 유럽처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전력 관리는 물론 에너지를 통한 역내 평화협력체계 구축도 가능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레물린 궁에서 푸틴대통령과 소규모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천연가스 분야도 파이프라인을 통해 대륙과 연결될 경우 연간 3700만t이 넘는 천연가스를 전량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포트폴리오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 가스가 들어오면 LNG 도입 협상력이 높아져 연간 16조원이 넘는 가스 수입비용도 절감하고 나아가 주변 국가로 천연가스를 재수출하는 ‘동북아 가스 허브’로의 발전도 가능하다.

 

양국은 서비스·투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에 착수하고 상품 분야에서도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FTA가 체결되면 물류·운송 등 서비스 분야에서 남·북·러 3각 협력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투자기업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38억달러 수준인 양국의 투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특히 이번 서비스·투자 FTA 협상 개시는 향후 상품 FTA으로의 확대와 인구 1억8000만명의 거대 시장이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FTA를 추진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작년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합의된 ‘9개 다리’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주요 성과다. 특히 조선 분야에서 우리 조선 3사와 러시아 즈베즈다조선소 간 합작회사를 빠른 시일 내 설립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선박 건조 능력을 향상시키고, 우리는 세계 LNG 선박 주요 시장인 러시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됐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러시아의 기초 원천기술과 우리의 제조·상용화 기술을 결합하는 혁신기술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중소·중견 소재·부품기업의 시장 진출도 적극 돕기로 했다.

이번 러시아 국빈방문으로 1990년 수교 이래 지속돼온 한·러 경제협력의 폭과 깊이를 몇 단계 심화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마련됐다. 산업부는 이번 방문 성과가 조속히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백운규 |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Posted by KHross

미국의 오토바이 회사 할리 데이비드슨이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의 일부 생산시설을 국외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생산시설 이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EU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부과로 EU가 22일부터 미국산 철강, 오토바이, 청바지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한 데 따른 것이다. 할리 데이비드슨의 EU 수출 관세는 6%에서 31%로 치솟아 대당 평균 2200달러(약 245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최대 철못 제조업체인 미드콘티넌트 스틸앤드와이어도 수입 철강 관세 25% 부과에 따른 철못 가격 상승으로 주문량이 격감하자 지난 15일자로 60명을 해고했다. 멕시코에서 수입한 철강으로 철못을 만들어온 이 회사는 6월1일부터 멕시코산 철강에 25%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주문량이 예년의 30% 수준으로 격감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란 테헤란의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의 상점들이 25일(현지시간) 경제난에 항의하며 일제히 문을 닫은 가운데 사람들이 시장을 걸어가고 있다. 테헤란 _ EPA연합뉴스

 

자국산업을 보호하겠다며 일으킨 무역전쟁이 자국 기업과 노동자들의 피해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를 향해 던진 부메랑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할리 데이비드슨이 “백기투항했다”고 비판했지만 탓해야 할 것은 기업이 아니라 원인제공자인 자신일 것이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관세 여파로 미국 농가의 주요 수출품목인 대두 가격이 2년래 최저로 하락했고, 캐터필러, 보잉 등 중국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주가도 급락했다. 무역전쟁이 지속될 경우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가 꺾일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무역전쟁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2일 EU가 보복관세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EU산 자동차에 20%의 고율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미국 상무부는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조사 중이다. 자동차 고율관세가 현실화되면 EU는 미국의 민감품목을 골라 보복할 것이 뻔하다. 미국이 수입 차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한국 자동차 산업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서는 미국 주도의 무역전쟁에서 얻을 것이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1일 베이징에서 기업인들과의 간담회 때 “우리 문화에서는 (한 대 맞으면) 다시 때려서 갚아준다”며 “미국에 반격하겠다”고 했다. 치킨게임의 끝은 파국이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