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를 곱씹어 보겠습니다. 대북정책의 미래가 큰 관심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위해 북·미관계 개선을 서둘러왔습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진전이 이전만 할 순 없겠죠. 당장 고위급회담도 취소됐고 백악관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했으니 국정운영 전반이 경색되고 북·미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있죠. 북·미 협상을 비판하던 빅터 차의 기관이 북한 ‘비밀’ 미사일 기지를 찾았다며 호들갑 떤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접근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미국 정치는 2020년 대선 국면을 맞습니다. 대결이 더 치열해지면서 트럼프는 의회 견제가 작은 영역, 즉 외교에 집중할 겁니다. 핵문제 해결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면서 북한과는 대화하고, 이란과는 대결하며 성공이라 자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14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중요한 이슈도 있습니다. 이민 문제가 그중 하나죠. 이는 트럼프 정부 핵심 관심사입니다. 대선 캠페인 때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자고 해 재미를 봤죠. 올해는 ‘캐러밴’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수천명의 중미 난민이 미국으로 향하자 트럼프는 이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군대마저 배치했죠. 덩달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민병대를 조직해 국경으로 향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난민 행렬을 안보 위협으로 믿고 있습니다. 난민에 범죄자가, 특히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다며 트럼프 선동에 환호하죠. 난민 수천명이 미국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미 1000만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가 일상의 일부가 돼 있는 마당에 몇만명이 와도 표도 안 날 겁니다. 게다가 군대로 막을 수 있는 국경도 아닙니다. 겁박과 생색일 뿐이죠.

 

이런 선동이 먹히는 데에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백인 땅에 유색인종이 몰려와 백인문화를 흐리고 그들만의 미국을 바꿔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죠. 트럼프는 자기 정치력을 위해 이를 교묘히 이용합니다. 각종 정책이나 발언을 통해 인종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킵니다. 이제껏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이들은 대통령의 ‘재가’에 황송할 수밖에요. 여기에 각종 가짜뉴스가 이런 분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유대교 회당에서 백인 총기 테러로 11명이 목숨을 잃었죠.

 

왜 우리가 미국 이민 문제에 주목해야 할까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예멘 난민 논란으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잔인성은 비밀이 아니니까요. 나와 다른 이를 타자로 구분해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특정 종교 신자, 장애인, 정부 등 무차별적입니다. 가짜뉴스가 이들의 공포와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점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이들의 선동과 극우행태도 폭력으로 이어졌죠. 미국 같은 극단적 사태가 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돌이켜 볼 점은 중간선거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미국 선거는 조금 복잡합니다. 상원의원 임기가 6년, 대통령은 4년, 하원의원은 2년이죠. 그러다 보니 2년마다 연방정부 선거가 있고 대선과 대선 중간의 선거, 즉 중간선거를 치릅니다. 덕택에 유권자들은 정부를 평가할 기회를 얻죠. 덕택에 트럼프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과 공화당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유권자도 그런 기회가 필요하지 않나요?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현재 112석으로 총 의석의 37%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은 20%에 불과하고 정책 대안은커녕 말도 안되는 생떼만 부리고 있죠. 이들 대부분은 박근혜 허깨비 정부에 조력, 방관하며 사또질을 해댔습니다. 처절한 반성도 모자랄 판에 가짜뉴스에 기대서 부활을 꿈꾸고 있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던 게 불과 몇개월 전이었지만 이제 태극기세력은 우익의 근간이라며 들썩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다 같이 밀고 나가도 힘겨울 판에 귤상자마저 걷어차며 씩씩거리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2020년까지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민주주의라면 참 모자란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들의 고함에서 배웁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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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전날 공개한 북한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충분히 인지한 내용이며, 새로운 것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며 CSIS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대해서도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국가정보원도 14일 북한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이미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통상적 수준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히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새로울 것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북한 미신고 미사일 기지’ 의혹은 하루 만에 진화되는 양상이다.

 

CSIS의 보고서는 처음부터 부정확한 사실과 이미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진 미국 조야와 한국의 반북세력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개발을 멈추거나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국내 보수세력들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실확인 차원의 설명을 하자 “북 대변인 행태”라고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워싱턴_AP연합뉴스

 

미국의 싱크탱크와 언론이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 분석과 전망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NYT가 보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뜻밖이다. 부디 팩트 체크가 부족해 벌어진 실수였을 뿐, 정치적 저의가 없었기를 바란다. 

 

그간에도 미국의 싱크탱크나 언론이 대북 강경론을 부추기는 보고서나 보도로 북·미 협상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다. 그런 만큼 중간선거로 민주당이 미 하원을 장악한 정국구도 변화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한 메커니즘이 본격 작동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신속히 진화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대북 회의론은 앞으로도 북·미 협상 과정의 틈새를 꾸준히 노릴 것이다. 이번 해프닝도 북·미 협상의 교착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이 커진 시기에 불거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기로 목표를 세운 이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집중력 있게 협상을 이끌어나갈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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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중간선거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반대하던 후보들은 패하고, 이를 지지하던 후보들은 승리했다. 이제 물러설 이유도 없으니,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중국과 무역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뭘까? 그리고 이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싸움의 본질은 미·중 간 패권다툼이다. 특히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확고한 우위를 얻고자 한다. 세계화의 역사를 통해 세계는 무역에서의 승리가 언제나 기술우위를 갖는 나라에 돌아간다는 것을 학습해왔다. 중국이 기술굴기를 위해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고안하고, 시진핑이 반도체 칩 제조기술 확보에 정부 보조를 아끼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싸움 이면에서 ‘중국제조 2025’를 저지하고 ZTE(중싱통신)나 푸젠진화와 같은 중국 기술기업의 부상을 막고자 미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자유주의 무역체계의 ‘규칙’을 따르겠다던 중국의 약속도, 트럼프의 ‘더 공정한 무역’이란 말도 이 싸움 앞에서 모두 공허하다. 중국은 WTO 협정을 어겨서라도 기술 자급력을 높이려 하고, 트럼프는 자국 경제의 미래에 실존적 위협이라며 WTO 협정의 빈 틈인 국가안보를 이유로 WTO 협정에 반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 ‘무역’은 기술우위를 점하기 위한 세계적인 싸움터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미·중 간 싸움이 봉합된다 해도 여전히 무역은 규칙 위반자들과의 덜 공정한 게임이 될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여러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는 우리는 이 싸움에서 특히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세계화된 제조 네트워크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지만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조차 기술우위를 잃어가고 있다. 기술융합과 트렌드 창출을 바탕으로 한 현재의 첨단기술은 전문성 있는 다수 기업이 협력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어야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 기술분야는 수직화되고 경직된 협력체계를 아직 못 벗어나고 있다. 무역에서 기술우위를 잃은 국가는 뒤처진 기술에서만 주로 고용이 창출되고, 뒤진 기술의 임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우리도 첨단기술 발전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과 체질 개선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막는 방패가 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일본은 RCEP와 CPTPP를 통해 우리와 새롭게 자유화를 협상하게 된다. 일본은 여러 첨단기술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고 이 기술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 두 협정을 준비해왔다. 뒤진 기술분야의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에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무분별한 자유화는 성장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다. 전문가와 협상의 달인들이 모여 자유화를 늦춰야 할 기술과 시급히 자유화해야 할 기술을 가리고 이를 정교하게 협정문에 반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기술을 발전시키고 지켜낼 역량이 있어야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이지수 호서대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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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 전쟁 이후 계속된 미국의 제재 속에서 핵무장을 했다. 제재는 핵무장을 막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아니, 핵개발을 부추기는 나쁜 방법이었다. 미국은 68년에 걸쳐 입증된 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제재가 비핵화 전환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믿는다. 이런 신념체계를 지닌 세계에서 북핵 문제가 교착 상황에 처할 때 내릴 수 있는 처방은 제재 강화밖에 없다. 제재 시간이 길수록 제재받는 쪽의 고통은 커지고, 그로 인해 굴복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 논리를 배반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 6개월~1년의 단기간 핵 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북한은 당연히 거부했다. 이때 트럼프는 깨달았을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북한을 강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2년 내 핵 폐기를 목표로 하자는 김정은의 유혹적인 제안에 “시간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뿌리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국 중간 선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7번이나 반복했다. 주문을 외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 같았다. 중간 선거 이후 혹시 대북 접근법이 변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품지 못하게 일찌감치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국이 할 일은 북한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접근법,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시간이 갈수록 오바마를 닮아간다는 말을 트럼프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정말 트럼프 편이어서 그의 성공을 보장할까? 북한은 이미 주변국과의 관계를 상당히 개선했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 대립하는 사이 북한이 숨 쉴 구멍은 더 커졌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생존 공간은 확장될 것이다. 이 공간을 제재로 다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북한은 제재에 내성이 생긴(sanction-proof) 경제 체제로 진화했다. 시간을 견디는 일에 관한 한 누구보다 익숙하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대통령·부통령·국무장관이 차례로 나서 앵무새처럼 제재 제재 하고 있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12일 마치 북한이 미사일 기지 13곳을 숨겨놓은 것을 적발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렇게 하면 북한이 겁을 먹고 핵 폐기에 나설까? 아니면, 쉽게 핵을 포기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져먹을까? 제재 우선 정책은 북핵 문제 해결책이라기보다 ‘김정은에 속고 있다’는 미국 내 비판을 의식한 알리바이용이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나쁜 행동이며, 따라서 핵을 가진 북한과 협상하는 것 또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사고가 퍼져 있다. 핵 무장 이전 상태로 돌아간 북한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그런 조건에서만 북한과 실질적인 주고받기 협상을 하는 걸 바람직하게 여긴다. 이 원상회복론은 현실을 거부하는 접근법이자 책임회피의 논리다. 과거 미국의 대북 실패 없이는 북한 핵무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힘을 국가 관계를 지배하는 주요 요소로 본다. 불신이 쌓인 북·미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오랜 대결 역사에서 양측은 힘을 믿었지, 상대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선의를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북한은 비핵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만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했다. 선의의 교환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비핵화와 관계개선 합의라는 화해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북·미가 힘에 의존할 때는 북핵 문제를 악화시켰지만, 선의에 약간의 기회를 줬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활발한 대화와 비핵화 진전을 가져왔다. 힘이 힘을 부르고, 선의가 선의를 부른 것이다. 제재와 압박은 비핵화의 조연이지 주연이 아니다. 핵 신고, 종전선언을 둘러싼 협상 과정에 불신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대화가 막힌 지금 부족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전략적 선의다.

 

권정근 북한 외교성 미국연구소장은 “우리가 주동적이고 선의적인 조치로서 미국에 과분할 정도로 줄 것은 다 준”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은 핵·경제의 병진노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암시를 했다. 선의라는 연료로 달리던 비핵화 열차에 선의가 바닥나고 있다. 북한이 제재 때문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북한 의사에 반해 핵 폐기를 강제하겠다면 전쟁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할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핵 폐기의 길로 가도록 유도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핵 폐기를 북한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지만, 선의 없이는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온 것은 ‘사랑’ 때문이지 채찍 때문이 아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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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신고되지 않은 북한 :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운용 중인 약 20곳의 ‘미신고(undeclared) 미사일 운용 기지’ 중 13곳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CSIS는 한 민간 위성업체가 지난 3월29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들어 이같이 주장하고, 비밀 미사일 기지 중 한 곳이라며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기지’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도 이 보고서를 인용, “위성사진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군당국은 “한·미 정보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며 “삭간몰 등 북한의 모든 미사일 운용지역을 한·미가 면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풀린 주장으로 북한을 비난한 보고서와 보도에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CSIS 보고서는 한국 당국이 즉각 부인할 만큼 오류투성이다. 문제의 삭간몰 기지는 2016년 3월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한 곳으로 군당국이 이미 정밀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다. 민간에서 몰랐을 뿐 새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또 민간위성의 데이터를 근거로 이곳이 단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중거리 미사일도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사위성으로 더 자세히 관측하고 있는 당국은 이곳에서는 단거리 미사일만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단거리 미사일과 그 기지는 ‘신고’나 ‘폐기’ 대상도 아니다. 위성사진을 찍은 3월29일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이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앞에서는 비핵화 협상에 응하면서 뒤로 핵·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왜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느냐고 북한에 따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북·미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에만 무장해제하라는 주장이야말로 억지가 아닌가.

 

미국의 조야가  북한과의 협상을 앞두고 핵 신고를 압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합리적 주장을 담아야 한다. 북·미 간 협상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되지만, 미국도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만큼 미국도 그에 걸맞게 대응해야 한다. 1차 북핵 제네바 합의가 깨어진 데는 미국의 약속 파기도 한 요인이었다. 진정 비핵화를 바란다면 기싸움보다 북한의 선제 조치에 부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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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진먼다오(金門島)에는 도교사원이 편의점처럼 펼쳐져 있다. 과다출점된 서울의 편의점같이 ‘길 건너 하나’꼴이다. 진먼다오가 ‘도교사원 왕국’이 된 것은 지리적, 역사적 요인이 크다. 서울의 4분의 1 정도인 152㎢ 면적의 진먼다오에는 12만명이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1.8㎞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대만과의 거리는 210㎞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대만 국민당의 최후의 보루이자 중국 공산당과의 최대 격전지였다.

 

1958년 8월부터 10월까지 중국군은 포탄 47만발을 진먼다오에 쏟아부었다. ‘진먼 포전’이라고 부르는 이 대규모 전투로도 중국은 진먼다오를 얻지 못했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포탄에 어찌할 수 없었던 주민들은 그저 신앙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불로장생을 지향하는 도교로 마음의 평안이라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힘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던 이곳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1990년 이후 대만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양안 간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진먼다오에도 기회가 왔다.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이 이뤄진 후 급물살을 탔다.

 

중국과의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은 관광지 개발의 원동력이 됐다. 8·27 전쟁 역사관에는 진먼 포격의 흔적을 담았다.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원들을 지으며 피해가기만 바라던 포탄도 훌륭한 자산이 됐다. 진먼 포격전에 사용된 포탄의 몸체는 단단한 경금속으로 이뤄졌다. 진먼다오 주민들은 이를 재활용하여 식칼을 만들었는데 포탄 나이프로 알려진 이는 진먼다오의 대표 상품이다. 진먼다오는 포탄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땅굴을 팠다. 이 금성민방갱도 등 당시 만들어진 땅굴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유명장소가 됐다. 매년 5월에는 도교사원 순례여행도 이뤄진다.

 

진먼다오 주민의 대부분이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식당·숙박·관광 등 3차 산업 비중이 54%, 진먼고량주·포탄나이프 등 제조업 종사자들이 43%에 달한다. 시내 곳곳에 있는 기념품점에서는 대만 군인의 군화를 본떠 만든 신발을 판다.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됐다.

 

중국과 가까워 전쟁의 포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진먼다오지만 현재는 샤먼(廈門)과 가까운 이점 때문에 되레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에서도 유명 관광도시인 샤먼에서 배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연계한 상품이 인기다. 중국인들이 대만을 가려면 통행증을 따로 만들어야 하지만 진먼다오는 신분증과 사진 등만 있으면 여행사에서 쉽게 방문증을 만들 수 있다.

 

2015년에 진먼다오에 2만㎡의 아시아 최대 면세점이 들어선 것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매년 25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이 중 3분의 1 정도가 중국인 관광객이다.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진먼다오 주민들은 이제 포탄을 “마오쩌둥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조치 후 관광객들과 참관 인원들의 자유왕래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달 중 JSA 왕래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JSA지만 훌륭한 안보견학 장소가 될 수 있다. 한반도 전쟁과 휴전의 중요한 장소인 JSA는 1976년 북한의 도끼 만행 사건 후 경계가 강화됐다. 이곳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면 남북 간 긴장완화는 물론, 분단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국제적인 여론을 이끄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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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유세 풍경은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흔드는 ‘스노글로브’(snow globe)를 연상케 했다. 트럼프가 한바탕 휘저어 놓은 의료보험, 이민, 관세, 무역, 인종, 남녀차별 등 복합적이고도 민감한 이슈들은 금세 ‘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이분법적 구도로 전환됐다. 스노글로브 속의 눈가루가 모두 내려앉은 현재, 트럼프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될 민주당 지배의 하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2020년 재선을 도모하는 트럼프로서는 와신상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공화당 주도의 의회에서 이렇다 할 견제도 없이 무소불위로 군림해 온 트럼프의 통치는 정치적 내상을 입었고, 그 결과 그의 일방적 질주는 사실상 끝났다.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실행할 수 있는 중요 국가정책들은 많지 않다. 주요 정책 관련한 입법과 예산 집행에 앞서 열리는 하원 청문회는 사사건건 트럼프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장 내년 초부터 북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트럼프 일가 비즈니스 등과 관련이 있는 청문회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개최될 게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전날인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행정부 각 부처의 의회 대응전략을 놓고서 백악관의 현미경식 통제도 더욱 어렵게 됐다. 하원의 견제에 따른 트럼프의 권력 금단현상이 어떻게 진화할지 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일촉즉발 워싱턴 정가가 정쟁(政爭)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그 불똥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는 누구도 모른다. 북한도 다급해졌다. 북·미 고위급회담의 돌연 연기 배경에는 제재완화에 대한 이견도 있었겠지만 미국 의회권력의 이동을 주의 깊게 독해해야 하는 평양 수뇌부의 숨고르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만에 하나 김정은이 하원 권력을 넘겨준 트럼프를 오인식(misperception)하여 트럼프를 속일 경우 위기는 인화물질을 기다리는 기름이 될 것이다.

 

2003년 10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15년이 지나도록 복귀는커녕 여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핵무기를 20~60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금년 4월 조선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에서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 최소한의 핵무기만 보유하겠다는 의지표명이자, 핵을 자발적으로 먼저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핵전략은 ‘핵무기 미니멀리즘’이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의 처음과 끝을 모두 섭렵한 핵무기 완성국이다. 다양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북한은 원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추가 핵실험은 긴요하지 않다. 빵가게를 폐점하더라도 레시피만 갖고 있으면 언제라도 고유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이미 공개된 핵 관련 시설들을 영구적으로 없애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하여 어렵사리 이룬 핵무기와 관련 시설들을 제값에 교환하고 그 대가를 자신의 정권유지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이미 끝냈다. 이악스럽기는 해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트럼프마저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비핵화는 불확실성의 장기전에 돌입했다.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발전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기는 해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부터 높이 치켜든 비핵화 깃발은 당분간 외롭게 펄럭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북·미 간 신뢰 에너지 역시 눈에 띄게 방전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신고하고 완전히 제거한들 워싱턴 매파들의 의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비핵화, 제재, 레짐 체인지, 인권 등이 들어있는 스노글로브를 세차게 흔들 것이다.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여 정부는 헤징(hedging)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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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 간 고위급회담이 연기된 가운데 기싸움이 심상치 않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샅바싸움의 성격이 짙어 보이지만 양쪽이 내놓는 발언들의 수위를 보면 우려스럽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8일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거부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단 데다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기 위한 맥락으로 보이지만, 미국 정부 현직 고위 인사의 발언으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거친 언사는 협상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환송하는 모습을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0일 “미국이 ‘서두르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속도조절론을 주장하면서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면 구태여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핵·경제 병진 노선의 부활을 언급한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장의 최근 논평을 거론하면서 “개인 판단으로 써낼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라며 “경종이 울렸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완화를 촉구한 발언치고는 수위가 높다. ‘핵·경제 병진 노선’ 부활은 핵을 완성했기 때문에 폐기하겠다던 내·외부 약속을 되돌리겠다는 모순적 발언일 뿐 아니라 북·미대화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인 만큼 기싸움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런 양측의 기싸움은 북·미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가 끝난 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협상 교착이 장기화되더라도 손해볼 게 없다는 태도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해 전례없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해 나갈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큰 흐름에서 본다면 북·미 협상구도는 유지되고 있고, 이런 발언들도 ‘협상용’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측 간 기싸움이 거듭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면 협상 결렬이나 교착 장기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국가 간 외교에서 선을 넘는 언사들은 언제든 협상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8개월간의 북·미 협상 과정에서도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올 상반기 양측이 쌓아올린 신뢰를 흔드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양측은 더 이상의 기싸움을 멈추고 조속히 대화로 복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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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갖는 법적·역사적·외교적 함의는 매우 엄중하다.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과 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정부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파장과 문제점을 논하기에 앞서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한국의 최고법원이 명확히 재천명했다는 점이 이번 판결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 판결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반도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다.

 

한·일관계는 애초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할 때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없었다. 안보·경제적 이유로 일본과의 수교가 시급했던 탓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이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전후질서 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에 있다.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7년간의 일본 점령통치를 끝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은 독립국가가 됨과 동시에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다. 미·소 냉전에 대비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따라 전범국 일본에 서둘러 면죄부를 준 것이다. 당시 국제적 존재감이 미미했던 한국은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중요한 부분들은 미해결 상태로 종료됐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상호 필요성에 의존해 유지될 수 있었다.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냉전구도가 해체되면서 한·일은 서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강제징용 판결은 이 같은 한·일관계 변화 추세의 결정판이다. 판결의 핵심은 간명하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므로 강제징용도 불법이고 따라서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한·일이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한·일관계의 ‘태생적 모순’을 정조준하고 있다. 53년간 덮어놓았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1965년 체제’로는 더 이상 한·일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파탄낼 수는 없다. 출발이 잘못됐으니 처음으로 돌아가 한·일관계를 근본부터 뒤집고 이미 국제적으로 뿌리내린 전후질서를 바꾸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전후질서와 동아시아 전략의 희생물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만들어놓은 전후질서의 그늘 아래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는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싫든 좋든 현재의 체제 안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일은 이제 1965년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협력모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적 해결 노력과 국내 여론 설득을 병행할 수 있는 양국 정부의 ‘용기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본은 청구권협정과 한일기본조약의 문구 하나하나를 머리카락 쪼개듯 분석하고 법적 효력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한·일관계에는 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도덕적·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알면서도 ‘법적으로 다 끝난 일이니 책임질 일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한국은 일본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일본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면 즉각 비현실적인 강경론 일색의 반응이 나오고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한국에는 국민적 반일감정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 이 같은 선동에 자극받아 대책없는 대일 강경론에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 이 같은 악순환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눌려 모른 척 침묵하는 비겁한 부류가 존재한다. 정치인·학자·언론·관료·시민단체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개인과 집단 대부분은 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인 담론이 형성될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일 모두에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법리적·현실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소지가 충분한 판결이지만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 양국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기에 가치 있는 판결이라고 말하고 싶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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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있다. ‘통일비용 포비아’, 바로 통일비용에 대한 공포감이다. 젊은 세대들은 여기에 짓눌려 있는 듯하다. 남북 화해 무드에서도 세금을 또 걷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단언컨대 통일비용은 없다! 통일비용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다. 더구나 독일 사례에서 서독의 경제적 부담이 과장되기 일쑤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과거 보수정부의 반감으로 인해 오해와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 온 측면이 적지 않다.

 

독일 통일비용 중 철도, 도로 건설 등 직접적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에 사용된 것은 약 12%에 불과하다. 50% 이상은 동독 주민의 소득보전에 쓰였다.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져 흡수통일이 되다 보니, 동독 주민에게 서독과 동일한 수준의 소득과 복지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남북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번영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실질적 해결과정이 진행되면 대북 경제제재도 풀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흡수통일은 망상에 불과하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적극 피해야 한다. 남북한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격차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바람직한 남북 통합은 우선 평화적 교류 협력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격차를 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세대가 통일을 논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흡수통일이 아니라고 해서 경제협력 비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 SOC 개선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를 통일비용으로 보는 것은 그야말로 오해다. 남북경협 과정에서 과연 어떤 비용이 필요한지 한번 따져보자.

 

우선 개별 기업의 투자는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과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과 같다. 이를 두고 누구도 ‘퍼주기’라고 하지 않는다. 기업은 이익이 된다면 어디에든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가 이뤄지려면 인프라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소한 산업단지에 전력과 용수, 교통, 통신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및 국제 자본이 함께 진출하는 컨소시엄도 해법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 활용이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할 때, 초기 투자비용 부담만 감당할 수 있으면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 인프라 비용까지 투자하고 진출하는 기업에는 상당기간 사업 우선권 등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초기 투자시점과 이익창출 시점 간의 시간차를 해결하기 위해 ‘패키지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큰 비용은 한반도의 ‘대동맥 구축’에 사용될 것이다. 철도, 도로, 에너지, 항만 등 주요 SOC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대기업 차원에서도 독자적으로 부담하기 어렵다. 그러면 이것은 과연 통일비용일까? 나는 이를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경제 접속 비용’ 또는 ‘섬나라 신세 탈출 비용’으로 해석한다. 남북 네트워크 연결은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태평양 해양세력의 접점에 놓인 한반도에 지리경제학적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배로 부산항과 목포항에 와서 다시 기차로 서울, 평양, 베이징, 모스크바, 유럽까지 여행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한반도의 항만 도시들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복합물류 거점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비용은 한반도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투자이다. 한국 자체 역량으로도 감당할 수 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남북이 주도하는 ‘북한개발은행(가칭)’을 투자 플랫폼으로 설립하고 여기에 국제금융기구가 참여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국제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 수익을 우선시하는 탐욕적 자본에 주요 기간시설을 넘겨서는 안된다. 북한 경제개발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며, 남북이 공동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갖추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무분별한 해외자본의 공략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교훈을 알려주어야 한다. 남한은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임을 북한에 이해시켜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젊은이들이 ‘통일비용 포비아’에 현혹되어 한반도의 원대한 꿈을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통일비용은 없다!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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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북·미 고위급회담의 연기가 단순한 일정 조율의 문제라며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중간선거 후 첫 기자회견에서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회담 연기는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다.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데 대한 의구심을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 불식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 패배 후에도 계속 외교적인 북핵 해법을 추구한다는 신호다.   

 

북측의 연기 사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미 양측 간 심각한 이상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국무부는 회담 연기가 제재 해제와 관련돼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우리는 꽤 좋은 상황에 있다”고 단언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미국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며 “양측이 회담 일정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이전과 달리 북한이 먼저 회담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인데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9일 (출처:경향신문DB)

 

북한이 회담을 연기한 것은 미국과의 약속을 무겁게 여긴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제재 완화와 핵리스트 신고의 선후를 둘러싸고 북·미 간 이견은 있는 듯하다. 북한이 조기 제재 완화 조치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제재를 없애고 싶지만 그들(북한) 역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회담 연기는 결정적 갈등이 아니라 북·미가 핵 협상에 앞서 마지막 호흡을 조절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위급회담 일정을 놓고 시간을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모두 역지사지의 태도로 대화를 진척시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리스트를 신고하면 공격지점을 다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미국도 제재 완화 등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이 잡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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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은 상원에서는 다수당 자리를 유지했지만, 중간선거 여당 패배 징크스는 깨지 못했다. 이로써 공화당의 상·하원 장악 구도는 무너지고 공화당은 상원, 민주당은 하원을 분점하게 됐다. 미국 우선주의 깃발을 내걸고 국내외 정책에서 독주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견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부로서도 미국의 의회 구도 변화가 한반도 정세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컸다. 중간선거에서 드러난 미국인들의 표심은 한마디로 경제상황에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트럼프의 국정 수행은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출구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유권자가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비록 상원은 지켰지만 2년 후 대선을 생각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 하얏트리젠시호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중간선거의 하원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음을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견제할 동력을 되찾은 것은 다행스러운 측면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숱한 논란과 충돌을 빚은 트럼프식 정책은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국정 독주를 멈추고 민주당과 타협해야 한다. 반이민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노선, 감세정책, 다자협정 탈퇴 정책이 특히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예산 심의와 각종 법률 심사권한을 가진 하원을 장악한 만큼 미국의 대내외 정책이 동맹국을 비롯한 외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고 보편적 인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도 트럼프 행정부 국정기조 변화에 대비한 치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미국의 정책 변화로 성장세가 둔화되면 한국 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선거가 북·미관계나 한·미관계에 큰 틀에서는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이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주장해온 데다 트럼프 대통령도 차기 대선 가도에서 북핵 해결을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려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터라 방법론에서는 일부 진통과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이 차기 대선만 염두에 두고 트럼프 정부의 북·미 협상을 지나치게 견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향후 비핵화 협상이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날 투표 직후 미 국무부가 8일 뉴욕에서 열기로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중간선거 결과와 무관한 조치인 듯하지만 좋은 조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간선거 이후에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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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 중간선거 투표날이다. 이번 선거의 주인공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다. 공화당의 상·하원과 주지사 권력 독점이 계속될지, 민주당이 하원 권력을 분점할 수 있을지 확인할 순간이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이번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선거다. 트럼프 정권 2년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그가 제시한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승인 여부를 확인할 기회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이번 선거의 의미를 물어보면 꼭 언급하는 단어가 트럼프다. 지난 주말 하원의원 선거 박빙지역인 버지니아 7지구에서 만난 유권자들도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했다. 그가 여론의 중심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반이민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직전 6일간 11개 주를 돌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이름의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백인들로 가득한 유세 현장에서 그가 제시한 공화당 선택의 가장 큰 근거는 반이민이었다. 강경한 반이민 정책은 그를 유력 정치인으로 부각시킨 배경이자 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며 강한 반이민 레토릭을 쏟아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 전날인 5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지원유세를 앞두고 무대에서 대기하고 있다. 포트웨인 _ AFP연합뉴스

 

그는 미국 국경에 도달하지도 못한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군대 파견을 명령했다. 이민자들이 돌이라도 던진다면 발포할 수 있다고 위협해 논란을 키웠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헌법적 권리인 출생시민권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 경찰을 살해한 멕시코 불법이민자가 등장하는 인종차별 정치 광고도 올렸다. 광고는 ‘민주당이 그를 우리나라로 들여보냈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들은 미국인을 죽일 것이고, 그것은 민주당 때문이란 의미다. 이민 이슈로 미국을 둘로 쪼개고 반이민을 원하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다. 시대에 맞게 이민 제도를 손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다른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레토릭은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멜팅팟(melting pot)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미국은 다른 나라다. 그는 반이민 구호를 통해 백인들의 속마음에 숨어 있던 백인 우월주의, 백인들의 위대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워싱턴포스트에서 “남북전쟁 이후로 멜팅팟 이야기를 파괴하려는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자부심의 요인이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는 구분을 원한다. 진짜 미국인과 가짜 미국인이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진짜 미국인은 백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백인 지지층 결집을 위한 트럼프식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반이민은 결국 절대적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백인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백인 우월주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이제 백인의 나라도 아니다. 백인 인구는 60%로 아직 다수이지만, 2007년 이후 출생한 소수인종 인구는 이미 백인 인구를 넘어섰다.

 

다행히 공화당 내부에서도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이 골수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겠지만 중도층의 반공화당 투표를 조장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미국 사회가 백인 우월주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지는 곧 확인된다. 미국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 이어 또 한번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으로 포장된 백인 우월주의에 손을 들어준다면 그들이 원하는 위대한 미국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개방성과 포용성을 상실한 미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아메리카 제국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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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구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러 동의 건물이 들어선 드넓은 단지에선 대학 캠퍼스와 비슷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직원들은 구글 로고처럼 파란색과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이 칠해진 자전거를 타고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이동했다. 햇볕이 좋은 곳엔 파라솔 꽂힌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이 답답한 직원은 야외에서 일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방문객을 안내하던 구글 직원은 이 같은 구글 특유의 환경과 구내식당에서 공짜 점심이 제공된다는 사실을 힘주어 자랑했다.

 

구글의 업무 단지는 이방인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만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게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직원들이 건물 사이를 오갈 때 타던 자전거는 탐날 정도로 예뻤지만 ‘걸어 다닐 시간을 아껴서 일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구내식당의 점심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위해 외출하는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심산으로 공짜 점심을 주는 것은 아닐까. 야외 테이블도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구글 로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매출을 늘려서 이룩한 부로 구글은 무엇을 했나. 지난달 25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구글은 성추행 혐의가 제기돼 회사를 떠난 안드로이드 개발자 앤디 루빈에게 9000만달러(약 1011억원)의 퇴직금을 지급했다. 사측은 피해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루빈에게 거액을 쥐여준 것으로 확인됐다.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가 미국 사회를 휩쓴 것을 지켜보고도 구글은 좋게 말하자면 성추행 가해자를 안이하게 처리했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증했다.

 

뉴욕타임스 보도는 구글 직원들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기름을 부었다. 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구글의 성별 임금 격차와 엮어 경영진의 성평등 의식 수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구글은 동일 노동을 한 여성 직원들에게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했다는 혐의로 노동부 조사를 받고 있다. 어느 직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구글은 특유의 직장 문화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존중과 정의, 공정함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에게 자랑하던 아름다운 근무 환경은 직원들 입장에선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구글 직원들은 사측의 성추행 대처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1일 오전 11시 파업을 벌였다. 일본 도쿄부터 시작해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싱가포르, 인도, 독일, 스위스, 영국, 미국 직원들이 차례로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사측에 사내 성폭력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할 것과, 직원들이 익명으로 안전하게 사내 성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개설하라고 요구했다. 성폭력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보호해달라는 주문도 있다. 구글의 사업 신조인 ‘사악해지지 말라’를 경영진부터 준수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갑질’ 문화에 비하면 구글은 사악함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수 있다. 땅콩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비행기를 돌린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은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였다. 최근에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전·현직 직원 등을 상대로 한 폭행과 엽기적 행각으로 갑질의 새로운 대명사로 떠올랐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이들은 수두룩할 것이다.

 

구글 경영진은 미투 운동이 자사 직원을 비롯한 미국인들의 성평등 의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고, 성추행 가해자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줬다. 한국의 기업 대표는 직장 갑질로 명예가 실추된 대기업 오너를 보고도 자사 직원에게는 닭을 죽이라고 시켰다. 갑들이 반면교사를 모르고 우를 범하는 사이,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설 힘도 없는 을들은 숨죽여 울고 있다. 이방인이 부러워할 직장은 못돼도, 사악해지지는 말아야 한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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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중국은 자국 중심의 물류망 확충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제고를 위해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육해상 실크로드 구축) 사업을 아프리카에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세계 화물의 약 50%가 통과하는 인도양 및 홍해 연안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우선 중국은 유럽과 인도양을 이어주는 홍해연안에 위치한 지부티에 해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지부티-에티오피아 간 철도(756㎞) 건설에 40억달러 차관을 에티오피아에 제공했다.

 

중국은 인도양을 접하고 있는 케냐, 탄자니아의 철도와 항만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케냐는 30억달러의 중국 차관을 도입해 1단계 철도 건설(480㎞)을 완료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38억달러의 중국차관을 추가로 도입해 2단계 철도를 건설하기로 했다. 중국은 탄자니아 인도양 연안의 바가모요 항구(100억달러)와 케냐의 라무 항구(260억달러)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들 항구에서 철도와 도로 건설을 통해 내륙의 우간다, 남수단과 연결할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재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고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들 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로·항만·철도 등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중국의 진출을 환영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과거 유럽의 식민지 정책과 별 차이가 없으며, 아프리카 개도국들이 채무의 덫(Debt Trap)에 걸려 경제적으로 채무 불이행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7년간 아프리카에 약 1430억달러 차관을 제공했으며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에 대한 부채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규모 차관으로 부채가 급속히 증가하는데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은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케냐, 우간다 등 14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로본드 상환이 시작되는 2021년 심각한 부채 상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은 대응방안으로 중국의 차관 제의를 거절하거나, 중국 정부에 부채탕감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부채탕감에 소극적이며 대신 상환기간을 연장해 주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40억달러의 중국차관 상환이 어려워지자 지난 9월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당초 10년 상환기간을 30년으로 연장하였다. 탄자니아 정부는 중국의 70억달러 차관 제의를 거절하고 국제입찰을 통하여 자국의 철도망(1219㎞)을 건설하고 있다. 탄자니아 정부는 중국차관을 통한 인프라 건설 현장에 대부분 중국 노동자가 투입되어 고용 창출 및 기술 이전 효과가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은 중국의 아프리카 일대일로 사업을 견제하기 위해 개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사업예산 600억달러의 국제개발금융공사(USIDFC)를 설립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제3차 중국-아프리카 포럼(FOCAC)에서 앞으로 600억달러의 경제 지원을 공약하는 등 일대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언명했다. 600억달러를 포함할 경우 중국의 아프리카 총 지원 규모는 2030억달러에 달한다.

 

아프리카 진출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보다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5년간 중국의 아프리카 일대일로 사업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그러나 현재 제기되고 있는 중국차관의 상환 문제점과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과 선진국들의 반응을 토대로 우리의 적극적인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12억의 인구를 가진 아프리카는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필요한 세계의 마지막 미개척 시장이며, 발전의 잠재력이 대단한 기회의 땅이다.

 

<송금영 | 주탄자니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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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기 미·소 정상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고르비)는 모두 다섯 차례 만났다. 1985년 11월19~21일 스위스 제네바 정상회담이 시작이었다. 강경 냉전 전사 이미지의 레이건과 젊은 새 지도자 고르비의 첫 만남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던 만큼 별 성과는 없었다. 가시적인 성과라면 고르비의 워싱턴 방문 합의 정도였다. 첫발은 내디뎠지만 후속 회담은 쉽지 않았다. 두 정상이 1986년 10월11~12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약 11개월이 걸렸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당시 실패한 회담이었지만 훗날 냉전 종식의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축의 가시적인 첫 성과인 중거리핵전력(INF)협정이 체결된 3차 워싱턴 정상회담(1987년 12월)의 징검다리가 됐기 때문이다. 군축이라는 거대한 산을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였던 셈이다.

 

제네바 회담 이후 레이캬비크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두 정상은 제네바에서 핵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점과 대화를 규칙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지향점은 달랐다. 고르비는 군축에, 레이건은 ‘스타워스’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에 집착했다. 미국의 리비아 공습, 양국 간첩사건 같은 악재는 대화 추동력을 약화시켰다. 식어가던 정상회담에 대한 열정을 살린 건 두 가지였다. 우선 두 정상의 대화 의지였다. 레이건은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자”며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했다. 고르비도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낡아서 좀약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서도 “이 모든 낡은 옷을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고르비를 만나 중재에 나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역할도 컸다. 결국 고르비는 9월19일 정상회담을 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레이건은 사흘 뒤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 사실을 공개하고, 일주일 뒤 아이슬란드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10여일 뒤 두 정상은 만났지만 “언제 또다시 만나게 될지”라는 기약 없는 말을 남긴 채 헤어졌다. 최대 난관은 SDI였다. 레이건은 핵전쟁 두려움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고르비는 미국의 기술발전에 대한 두려움 탓에 양보할 수 없었다.

 

레이건과 고르비의 정상회담 과정을 보면 눈에 띄는 점이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 비굴할 정도로 보이는 고르비의 양보다. 고르비는 취임 한 달 뒤인 4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S-20의 유럽 배치 중단을, 7월에는 6개월간 핵실험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그해 8~9월 두 차례 핵실험으로 화답했다. 고르비는 레이캬비크에서도 두 가지를 양보했다. 모든 전략무기 자료 공개와 강제적인 현장 검증이었다. 특히 소련의 전략무기 자료 공개 언급은 미국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고르비의 이 같은 태도는 개혁을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는 또 레이건을 만나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소련의 안전은 미국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인정한 셈이다.

 

지난달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 합의된 북·미 2차 정상회담 조기 개최가 늦어지면서 조급증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끝난 지 5개월도 되지 않았다. 미·소 정상이 두 번째 만나는 데 11개월이 걸렸다.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북한 핵 신고와 검증이 교착상태의 원인이라면 고르비의 행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국제사찰 약속 이행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마침 북한도 국제사찰을 준비하고 있다지 않은가.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가시화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속도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조차 이미 여러 차례 북한 핵실험이 없으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한 마당이다. 레이건이 고르비를 만날 때마다 한 말이 있다.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러시아 속담이다. 말에 속지 않겠다는 의미일 터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도 레이건과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은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미·소 군축 협상 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70년간 미국과 줄다리기를 해온 북한이지만 손을 먼저 내밀지 않았던가. 필요한 것은 서로 신뢰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일이다. 미·소 정상회담에서 슐츠 미 국무장관과 함께 셰르파 역할을 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교장관은 “슐츠와 자주 만났는데, 35회 정도 넘으면서부터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레이캬비크 회담 과정에서 보듯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도 적극 환영할 일이다. 무엇보다 레이건의 인내심과 고르비의 냉철한 현실인식이 없었다면 군축과 냉전 종식은 훗날의 이야기가 됐을지 모른다.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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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3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간 이견이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남북 군사합의서를 전적으로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북이 합의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비준으로 발효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매티스 장관은 이어 “(북한의 군사적) 역량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분명히 상당히 감소했다”고 평가한 뒤 “한·미 양국군 당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 속에서 모든 이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상황 변화를 긍정 평가하면서 한·미 간 공조도 견실하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한반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매티스 장관 발언은 의미가 크다.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제50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이후 공동기자회견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국방장관은 이번 제50차 SCM에서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에 공감하는 전략 문서에 서명했다. 현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할 미래 연합사 체제에 대해서도 한국군이 주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전작권 이양의 시기는 못 박지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추진할 토대를 마련했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라 두 차례나 미뤄진 전작권 환수에 상당한 추진력을 붙인, 의미 있는 성과다.

 

남북 군사당국은 1일부터 지·해·공중 완충구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했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동시에 군사분계선 일대와 동·서해 완충구역 내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지우는 실질적인 군사긴장완화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때에 매티스 장관이 모든 남북군사 합의가 한·미 간 신뢰와 공조 속에 이행되고 있으며, 북한 위협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지지가 될 것이다. 중장기 의제는 물론 단기 현안에 대해서도 견해를 같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 정착과 전작권 이양까지는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 정부는 미국과 간극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조를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 보수세력은 그동안 남북 군사합의가 남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으며 미국도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티스 장관의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발언으로 이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밝혀졌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은 이제 안보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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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가 코앞이다. 패권국가 미국 국력의 절대성이 꾸준히 감소해오긴 했으나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관장해온 그들의 선거는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선거, 특히 국내이슈 위주로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선 큰 변수가 못 되지만, 반대로 결과가 한국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게다가 비핵화 및 평화프로세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우리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9월 평양정상회담으로 긴 교착상황을 끝내고 새로운 돌파구로 가는 듯했지만, 다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시점이라 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미국 정치에서 중간선거는 집권정부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있고, 이는 곧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묻기’라는 인식이 있지만 대부분 집권당의 패배로 결론난다. 부시와 오바마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중간선거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고 상하 양원을 모두 내줬지만 재선에는 성공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시나리오는 하원은 민주당에 내어주고, 상원 다수당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하일 경우 집권당이 하원에서는 평균 36석을 잃었고, 최근 3차례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평균 6석을 잃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40% 내외를 오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양원을 다 잃을 수 있는 통계지만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이 35명만 교체되는 가운데 주로 민주당에서 수성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행운이 과거 통계를 빗나가게 만들 것 같다. 또한 지난번 대선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 것이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투표장 갈 때까지 드러내지 않는 소위 ‘샤이 트럼프(Shy trump)’ 비중이 최소 5%라고 할 때 이번 선거는 트럼프의 패배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결과를 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테네시 주 존슨시티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난달 24일 서명한 개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언급하면서 "지난주 나는 한국과 획기적인 새로운 무역협정에 서명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연합뉴스

 

지난 2년간 겪어본 트럼프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반대로 분열구도를 만들어 싸움을 붙이고, 거기서 자신의 하드코어 지지자들만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거머쥐었고, 또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현 지지율이 의외의 승리를 가져다준 대선 당시와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원을 잃을 경우 예산통과에 어려움을 겪거나 탄핵정국으로 넘어가 발목을 잡더라도 트럼프는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어젠다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일부에서 제기하는 북·미관계에 대해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강경노선으로 돌아갈 것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이룬 유일한 외교적 성과라는 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여기에 기대를 건다. 다만 트럼프가 중장기적 관점보다 현재적 시점에서 얼마나 유리하고, 이길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트럼프가 미국 내 기성질서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점도 사실이다.

 

이것이 평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판을 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먼저 종전선언과 핵신고서 제출이라는 교환방정식에 핵프로그램의 일부 조기폐기와 제재완화를 추가함으로써 교환조건을 확대시켰다. 선(先)비핵화만 고집하는 미국 내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상태에서 북한이 전면신고를 하더라도 불성실신고로 규정할 것이 뻔하기에 트럼프의 구미가 당길 만한 과감한 선제조치를 약속한 측면도 있다. 두 번째 판은 문재인 대통령이 키웠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실현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인 비핵화는 현재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으나 변덕 많은 트럼프만 믿고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절박성과 당위성을 유엔에 직접 호소하고, 유럽순방에서도 역설하였다. 그리고 교황 방문을 통해 재차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내정치 일정으로 말미암아 미뤄진 탓도 있지만,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양보에 오히려 피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더 밀어붙여 항복을 얻어내려는 미국은 협상의 원칙과 신의를 망각한 강자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어렵게 되살린 기회를 다시 잃어버릴 수는 없다. 현재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조율된 입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한국에는 자기 방식만 강요하려는 최근 행보에 우린 당당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결국 한반도는 우리 것이고, 우리가 평화하자는 데 외부자들의 도움은 고맙지만 방해는 사양한다는 결심으로 묵묵히 길을 가기를 바란다. “쫄지 마!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며 힘을 주고 싶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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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10월1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제재 해제 검토’ 발언에 “그들(한국)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Well, 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이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대놓고 한국을 속국 취급하는 이 발언은 한국에서는 깊은 모멸감을 불러일으켜 반발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문재인 정부를 아니꼽게 보던 보수들은 ‘쾌재’를 부르며, “거봐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는 식의 비난을 쏟아냈다. 문정인 특보처럼 “협의라는 내용을 더 강하게 하려다 승인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라고 둘러대봐야, 우리가 외세의 제압을 받아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고 살아온 역사를 가릴 수 없다. 그러기에 노무현 정부 이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위해 안간힘을 써온 것이 아닌가. 실은 트럼프의 망언은 우리의 ‘속국성’을 트럼프식의 노골적인 방법으로 드러낸 것이며, 우리가 당면한 역사적 과제를 가리키고 있다.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낸 ‘한국’ 독자제재이며 당시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나,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감히 비판할 수 없는 금과옥조가 되어버렸다. 어뢰의 충격파와 거품으로 1200t이나 되는 군함이 한순간에 두 동강이 났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우격다짐으로 진상으로 만들어버리고, 합리적인 비판에는 “빨갱이” “종북”으로 매도하고 봉쇄했다. 우리는 그 금줄에 칭칭 감겨 옴짝달싹 못하고 남북 공동번영의 길이 막혀 있다. 어차피 해제되어야 할 5·24조치는 유엔이나 미국의 제재와는 관계가 없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토를 달자, 3차례의 정상회담으로 남북이 형제처럼 돈독한 우의를 쌓아가는 것을 못 보고 재를 뿌리려 하는 인간들이 난리를 피운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모욕을 꾹 참고 지나갔지만,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인 ‘적폐청산’이라는 점에서 보면, ‘천안함 사건’이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니, 이참에 거짓의 가면을 벗기는 전면적인 재조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의 양 정상은 평화와 통일을 확신하고, 북의 비핵화 의지가 진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남북의 정상이 서로를 믿고 신뢰하게 되었으니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온갖 모략과 음모, 사술이 판치는 국제정치에서도 평화와 안전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신뢰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랬듯이 문 대통령은 우직하게 성실과 정직으로 상대를 대해왔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구김살 없는 솔직함으로 화답하면서 신뢰를 쌓아왔다.

 

북한은 그간 북·미 정상회담의 약속을 지키고 일부 핵실험장 해체와 미군 유골 반환 등을 실행해왔는데, 미국의 화답이 없다. 핵폐기의 최종 단계까지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미 비핵화와 평화 의지를 명확히 하고, 1년간 핵·미사일 실험을 안 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북한이 이미 대북 제재의 명분을 해소했음에도,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경제제재의 효과로 북한의 의지를 꺾었다고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런 오만함과 모멸은 또다시 긴장고조와 전쟁의 길로 회귀하는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남북, 남남의 목소리를 하나로 하여 “이제 핵·미사일 문제는 해결되니, 70년 만에 한반도 평화·번영의 시대를 실현할 차례”라고 미국을 설득하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 철도 연결 등 줄지어 기다리는 남북의 소통과 구체적인 협력사업을 시작할 차례다. 타율사관이나 사대주의에 점철되어온 우리에게 드디어 주권국가로서 자주독립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현안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인데, 우리에게는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회복의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인임’은 바로 촛불정신이며, 자주, 독립, 해방은 500년간 노예제와 식민지 지배 아래 고통받은 세계의 대다수 인민들의 소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도 평양 5·1경기장에서의 연설에서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봤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며 그들의 고난의 시기의 투쟁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은 그 고립 속에서 민족주권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러왔다. 해방 후 주권을 희생시키면서도 구생(苟生)을 도모해온 한국이 이제는 주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감연히 일어설 자리다. 그러나 주권회복 투쟁이 이제는 항일독립투쟁처럼 무력항쟁이 아니라, 외교적인 수단으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평양시민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준 문 대통령의 평양연설을 일부에서는 “북의 대변인”이라거나 “북을 찬양·고무한다”며 중상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이 서로가 서로를 대변하고 포용하고 찬양·고무하는 것이 바로 남북 화해와 평화의 시대인 것이다.

 

이제 중간선거를 맞이하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주의, 반여성적 성향, 반이슬람 성향, 가짜뉴스 유포와 돌발적 언행으로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란과의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동의 위태로운 국제관계의 균형을 깨는 이스라엘 편향적인 정책, 중국과의 부조리한 무역전쟁 등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한 행태와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북핵·미사일 문제에 있어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낯뜨거운 표현을 하는 등 톤에 사뭇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전임 정권과의 차별성 강조,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실리주의, ‘미국제일’과 ‘내가 제일’의 철학이 작용했겠으나, 한반도 문제에서는 건설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다만, 그 결과물은 신의나 신뢰라는 국제정치의 굳건한 기반에 서는 것이 아니기에 변덕에 의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방법은 남북의 공조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방안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내외 여론 속에서 남북 화해와 평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트럼프를 최대한 치켜세우고, 그 공은 모두 트럼프에게 돌리고 미국의 결심을 유도하려 하는 것 같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현명한 방법이다. 우리는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얻는다면 트럼프에게 노벨상이 돌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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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대북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유엔 대북 제재 준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워킹그룹(실무협의체)’을 운영하기로 했다. 미 국무부는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대북 제재 이행, 남북 협력에서의 유엔 제재 준수 문제 등에 대한 긴밀한 공조 강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간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워킹그룹 설치가 합의됐지만 한국 측이 먼저 제의했다고 밝혔다. 워킹그룹은 이달 출범한다.

 

대북 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 입장차를 감안하면 워킹그룹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비핵화 동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정부는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 등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려는 산림청과 그룹 총수가 평양을 방문했던 대기업들과 접촉, 대북 사업 계획을 탐문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내 7개 국책·시중 은행과 접촉해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미 이견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보수세력은 이를 한·미 사이의 중대 갈등으로 몰고가며 정부를 공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워킹그룹 신설에 합의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우선 한·미 간 이견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작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더 긴밀하고 빈번하게 소통할 필요도 있다. 다만 한·미 양국 모두 이 워킹그룹이 부정적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간섭하고 제동을 거는 통로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핵 해법을 놓고 한·미 간 입장이 항상 100%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견이 장시간 조정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오는 6일 치러지는 미국의 중간선거 직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는 등 북핵 해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어느 때보다 양국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다. 워킹그룹을 통해 양국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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