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섬뜩한 경고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트럼프는 그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비하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자살 임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연설 내용만 봐서는 세계 지도자가 아니라 깡패 두목을 방불케 한다. 북핵 문제가 중요하다지만 어떻게 2500만명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본부 _ AP연합뉴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지도자들과 언론이 일제히 비판과 우려의 반응을 내놓았다. 당연한 일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한반도 긴장만 고조시키는 트럼프의 도발적 언어에 동조할 사람은 없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화염과 분노”처럼 트위터를 통해 위협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전에 준비했고, 유엔 190여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들 앞에서 한 공식 연설이며 유엔 데뷔 무대였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가 걸린 문제를 놓고 마치 누가 더 거칠고 위협적인지 김정은과 경쟁하는 듯한 트럼프의 경망스러운 행태는 특히 한국인의 걱정을 자아낸다.

 

극한적 용어와 초강경 태도는 트럼프식 과장법일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쟁 말고 선택지가 없겠지만, 실제 그런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연설 어디에서도 세계가 직면한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진지한 대안과 숙고가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대책 없이 막말을 쏟아내고 돌아설 뿐이다. 국제사회를 이끌 책임을 진 지도자의 자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유엔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제기구다. 이 때문에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유엔에서 평화 회복을 호소하며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세계 각국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인 자리를 전쟁 위협 무대로 활용함으로써 유엔을 모욕했다.

 

세계의 지도자라면 북핵 해결 전략을 제시하고 국제사회의 결속과 동참을 호소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미국은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국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렇게 하는 대신 마치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눈앞에 둔 지도자처럼 극단적인 적대감만 표출했다. 미국 내에서 그가 유엔 연설을 자극적이고 강경한 수사를 통해 국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기회로 활용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북핵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선동적이고 무책임한 협박만 일삼는 트럼프에게 세계의 지도자라는 호칭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이 남긴 것은 김정은 못지않게 세계 평화에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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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지가 19일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인종청소와 관련해 첫 공식 입장을 밝혔다. 수지는 인종청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뒤 국제 조사를 피하지 않겠다면서도 “반대되는 주장이 있다”고 말했다. 사태 원인을 먼저 파악한 뒤 대응하겠다는 논리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본질을 호도하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는 부수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다”며 군부를 옹호했다. 30분간의 연설 동안 미얀마 정부가 테러단체로 규정한 아라칸로힝야구원군을 지칭할 때만 로힝야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써 ‘로힝야=불법이주자’라는 인식에 여전히 갇혀 있음을 드러냈다. 그의 발언 중 의미 있는 것은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난민의 미얀마 송환과 관련된 조치다. 이마저도 확인 절차를 거쳐 선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실효성에는 의문이 간다.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이 19일 네피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네피도 _ AP연합뉴스

 

수지의 모호한 입장 표명은 다분히 국제사회의 비난을 모면하는 동시에 국내 정치적으로도 군부나 대다수 국민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의미 있는 조치를 기대한 국제사회로서는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난달 25일 시작된 이번 사태는 인도주의 재앙이나 다름없다. 최대 1000명이 사망하고, 난민 40여만명이 생겼다. 유엔은 ‘인종청소의 교과서 사례’라고 했다. 그동안 쏟아지는 비난에도 침묵해 온 수지는 “(집권) 18개월은 우리가 직면한 모든 도전과제들을 극복하는 데 매우 짧은 시간”이라며 그가 처한 현실을 이해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로힝야 문제는 인종과 종교 문제가 결부된 복잡한 사안이다. 더구나 군부와의 권력분점이라는 타협의 산물로 국가 최고직에 오른 만큼 수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중국과 미국의 대결 구도하에 놓인 미얀마의 지정학적 처지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이번 대응은 이해하기 힘들다.

 

국제사회가 수지에게 기대하는 것은 변명에 급급하는 모습이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군부의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당당함과 용기다. 지금 수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것이 더욱더 필요하다. 그것만이 인종청소의 공범자니, 군부의 대변인이니 하는 오명을 벗고 자신의 명예와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그런 수지를 위해서라면 국제사회는 언제든 연대의 손을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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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북핵·한반도 정책에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은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증가에 군사적 조치로 맞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했던 가치나 대선후보 시절 공약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6차 핵실험 이후 정부는 대통령이 공언했던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결정했고 탄두중량을 무제한으로 늘렸다. 또 한국의 방위 수요를 훨씬 뛰어넘는 핵잠수함 도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일본 지도자보다 훨씬 강력한 표현으로 대북 제재 강화를 말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9월4일 (출처: 경향신문DB)

 

이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등 ‘안보상황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보상황이 엄중해져서 군사적 조치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은 일리가 있지만 위험하다. 그 말대로라면 북한이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핵무장까지 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북한이 이끄는 대로 깊은 군비경쟁의 늪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한국은 이 악순환에서 빨리 빠져나와 다른 국면으로 옮기는 것이 유리하다. 정부의 노력도 그런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 마땅하다.

 

박근혜 정부가 ‘알박기’ 해놓은 사드를 철회할 수 없었다면 다른 것을 얻어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사드 배치의 대가로 받은 것은 미사일 탄두중량 해제였다. 미사일 족쇄를 푸는 것은 자주국방 차원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탄두중량을 늘리는 것이 지금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그토록 시급한 일이었는가. 사드를 배치하는 대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담한 대북 접근법을 시도해보자고 미국을 설득하고 북핵 국면을 전환해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는 왜 하지 못했는가.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들에게 “전술핵 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한국 내에 있다”고 전하면서 핵잠수함 도입 필요성을 말했다. 전술핵 배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문재인 정부의 국방장관이 이렇게 말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한국 내에서 일고 있는 전술핵 배치 주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핵잠수함 도입에 동의해달라는 것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군비증강에 매달리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언제까지 미국에 의존해서 살 수 없으니 독자방위 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사드를 배치하고 탄두중량을 늘리고 핵잠수함을 도입하는 식으로 군비를 늘리는 것이 한반도 위기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이 핵을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남한에 무기를 쌓아 놓는 것이 아니다. 자주국방도 필요하지만 동북아 군비경쟁이 촉발되고 그 피해를 한국이 고스란히 받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한 주간지 기자가 페이스북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 북한과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라며 옹호한 적이 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글을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통일·외교·안보 분야 행보에 대한 가장 정확한 분석”이라고 소개했다.

나도 문 대통령이 치밀한 계산속에 계획된 행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모습은 그런 믿음을 주기에는 너무 허술했다. 사드 배치 문제로 오락가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급할 때는 말 바꾸기도 했다. 지난 6월 문정인 특보의 이른바 ‘워싱턴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문 대통령은 “나는 선거 과정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축소와 조정을 언급한 적이 없다”며 명백한 사실을 부인했다.

 

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것이 한국 대법원 판례이며 정부도 그런 입장에서 과거사 문제에 임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뒤 일본의 거듭된 해명 요구에 “이 문제는 한·일 합의에 의해 해결된 것”이라면서 자신의 말을 정정한 적도 있다. 섣부른 ‘레드라인’ 발언으로 혼란을 자초하는가 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대북 원유수출 금지를 공개 요청했다가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인권변호사 출신 한국 대통령이 독재자 푸틴에게 “그런 조치는 북한 주민을 다치게 한다”는 훈계를 듣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문재인 정부가 최소한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철저히 준비된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상황은 박근혜 정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당분간 더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외교전략을 가져야 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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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7월 유효구인배율은 1.52배였다. 일자리를 구하는 100명이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이 152곳이라는 뜻이다. 유효구인배율은 지난 2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했다. 같은 날 취업정보회사 리쿠르트가 발표한 내년 봄 졸업예정인 대학생의 내정률(취직이 결정된 사람의 비율)은 84.2%였다. 지난해 79.3%보다 4.9%포인트 올랐다. 2개 이상 기업들에 취직이 결정된 대학생도 64.2%나 됐다. 최근 일본에서 이어지고 있는 ‘구직자 우위’ 취직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이쯤 되면 일본 젊은이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야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젊은 사원들이 적지 않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취직이 이렇게 잘되는 시대에 우울증이라니. ‘취업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 입장에선 “무슨 배부른 소리냐” 싶겠지만, 일본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거나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젊은 사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와세다대 4학년생은 “1년 위 선배가 입사하고 곧바로 우울증에 걸려 회사를 그만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밝혔다. 도쿄대 법학대학원생은 “사회인이 된 친구들이 정신적으로 앓고 있다는 글을 자주 본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산업전문의도 “신입사원의 우울증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런 ‘신형 우울증’의 특징은 직장에선 침울한 상태지만, 일터를 떠나면 밝아지곤 해서 상사들이 ‘진짜 우울병 맞나’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하지만 악화될 경우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신형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 우선 젊은 세대들이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하다는 점을 거론한다. 달리기 경주에선 순위를 매기지 않고, 성적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 등 20대가 거친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자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좋은 아이 증후군’이다. 항상 ‘좋은 아이’로 비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이를 조장한다. ‘연결’된 친구들은 많지만,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별로 없는 탓에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 가운데 과정을 중시하는 ‘착실한 사람’이 많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런 사람은 중도에 좌절을 겪으면 ‘수정’이 안된다.

 

확실히 요즘 일본 젊은이들 가운데 스트레스를 못 견디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는 게 괴로워 회사를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약해 빠졌어”라고만 생각하면 문제 해결은 난망하다. 젊은이들에게 과도한 압력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 구조나 사회적 분위기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우울증 등 ‘마음의 병’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인정된 사례는 498건으로 해당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원인별로는 ‘파워하라’(직장 상사의 횡포)로 대표되는 직장 내 괴롭힘, 왕따, 폭행이 74건으로 가장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가 20명 증가한 107명으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일손 부족으로 인해 20대가 ‘즉시 전력감’으로 여겨지면서 직장에서 과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요즘 일본에서 거의 매일 듣는 말이 ‘일하는 방식 개혁’이다. 일본 정부는 장시간 노동 근절, 유연근무제 확산 등 실행계획들을 내놓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실행계획들 속에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사회는 개인보다 회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회사주의’가 뿌리 깊다. “주변의 공기를 읽는다”는 집단주의 문화도 여전하다. ‘좋은 아이’로 보이고 싶은 젊은이일수록 걸리기 쉽다는 ‘신형 우울증’도 이런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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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가솔린과 디젤 등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중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 자동차산업을 담당하는 고위 당국자는 최근 “중국이 전통 에너지 자동차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는 연구를 시작했으며 곧 시간표를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영국과 프랑스 등이 2040년까지 화석연료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언론은 중국의 판매중단 시기를 2040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이 연간 28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자동차 대국임을 감안하면 이번 선언은 지난 100여년간 자동차를 지배했던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한편으로는 신에너지 자동차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각국의 각축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의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중단은 당국과 업계가 혼연일체가 돼 새로운 자동차혁명에 대비하겠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자동차업체로는 볼보가 이미 2019년 내연기관 차 생산중단을 선언한 상태이다. 중국은 전통적인 자동차산업의 후발주자지만 전기차 부문에서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어제부터 시작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벤츠, BMW 등 글로벌 업체들은 전기차·수소차 등 신에너지차를 대거 선보였다. 신에너지차는 높은 가격, 짧은 주행거리, 부족한 충전시설, 배터리 수명 등 갈 길이 멀지만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애물이 낮아지는 추세이다. 자동차를 구입해 관리하고 사용하는 데 드는 총소유비용 측면을 보면 수년 내 전기차값이 내연기관 차보다 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수치목표에만 매달린 채 공허한 보급계획을 내세우는 등 글로벌 시장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했다. 현대차가 최근 친환경차 로드맵을 내놨지만 글로벌 업체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시장 판매감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후폭풍 등으로 미래 전략을 세우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한국의 전기차 판매비율은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자동차 후발주자의 딱지를 떼어내기는커녕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동차혁명에 머리를 맞대고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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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사이에는 국경을 넘어와 불법체류하는 멕시코인을 혐오하는 표현이 꽤 있다. 멕시코인들은 왜건 승용차에 가족들을 태우고 심야에 경비병들이 잠든 틈을 타 국경을 넘곤 한다. 미국인들은 이른바 ‘개구멍 루트’를 통해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들을 ‘못된 곤충떼’라고 힐난한다. 멕시코의 리오브라보강을 건너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코인들은 ‘추악한 악어떼’로 불린다.

 

하지만 우호적 표현도 있다. 부모 세대들이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과 달리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와 성장한 멕시코 청년들을 ‘드리머(Dreamer)’로 부르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는 사람이란 뜻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2년 행정명령으로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DACA·다카)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처음 ‘드리머’로 지칭했다. 다카는 16살이 되기 전 부모를 따라 미국에 불법 입국해 최소 5년을 거주하며 재학 중이거나 취업한 30세 이하 청년에 대해 추방을 유예하는 제도다.

 

팀 쿡 미국 애플사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행정부가 “다카는 위헌”이라며 폐지를 결정하기 하루 전인 지난 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쿡은 “애플에는 250명의 드리머가 근무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은 미국의 가치에 기반을 둔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썼다. 아마존·페이스북·구글·MS 등 주요 기업 CEO 400여명도 행정부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인력의 72%가 드리머다. 다카를 폐지하면 미국 경제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드리머들이 미국경제를 지탱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운 주역이란 뜻이다.

 

다카 수혜자는 80만명으로 추산된다. 한인 청년도 1만~1만5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다카 폐지로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오바마는 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다카 폐지는 잔인하고 자기 파멸적인 행위다. 미래가 밝은 청년들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다카 폐지 결정을 강력 비판했다. 훗날 미국 역사 교과서에는 “2000년대에는 드리머들의 꿈을 지켜주려 했던 대통령과 그 꿈을 무참하게 짓밟으려는 대통령이 있었다”고 기술돼 있지 않을까.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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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진출한 중국 훠궈(중국식 샤부샤부) 음식점 하이디라오에는 여전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여전히’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불과 10일 전 쥐가 제 집처럼 돌아다니는 불결한 주방이 공개되면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위생 상태가 낙제점을 받았지만 하이디라오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소셜미디어(SNS)에는 “그래도 한번 봐줘야 한다” “여전히 좋다” 등 옹호하는 글은 물론 “다른 식당이라고 더 깨끗하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하이디라오의 인기가 불결한 주방 공개를 계기로 오히려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하이디라오는 특급 서비스로 중국인들을 사로잡으며 전국에 117개 지점이 있고 로스앤젤레스, 싱가포르, 도쿄, 서울 등 해외에도 진출했다. 연간 매출액 5000억원을 넘고 직원도 2만명에 달한다.

 

지난달 25일 중국 법제만보가 4개월에 걸친 잠입취재로 베이징 진송점과 타이양궁점 두 곳의 위생 상황을 폭로했다. 쥐가 들끓는 주방에서 직원들은 훠궈 식탁에 올리는 국자로 막힌 하수구를 청소했고 식기세척기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엉겨 붙어 있었다. 1994년 창립 이후 20년 넘게 쌓아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하이디라오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하이디라오는 더러운 위생 상태와 동영상이 공개된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신속하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에는 “조사 결과 매체에 보도된 문제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매우 유감스럽고 송구스럽습니다. 우리는 이번 사태에 대한 어떤 경제적, 법적 책임도 다할 것이며 하이디라오의 설비에 대해 개선 작업에 착수했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신속한 잘못 인정, 진솔한 사과, 사태 수습 방안이라는 사과의 요소가 두루 갖춰졌다. 다시 2시간 만에 해당 점포에 대한 5가지 개선 조치를 발표했다. 각 개선 조치에 대한 책임은 본사 임원진이 맡기로 했다. 중국인들이 감동한 부분은 이 같은 본사의 책임지는 자세였다. 식당 체인인 하이디라오는 비정규직이 많다. 본사는 해당 점포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다. “본사가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한 탓”이라며 모든 책임은 회사 이사회가 지겠다고 나섰다.

 

하이디라오의 사과 화법은 공산당의 화법과는 반대다. 공산당은 직답하지 않는다. 수수께끼 같은 모호한 대답을 늘어놓는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를 앞둔 지난 2월 말 간담회에서 ‘올해도 경제성장률 목표를 구간으로 발표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공산당 간부는 주저 없이 “그것은 양회 개막일에 리커창 총리가 알려줄 것”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차관급인 공산당 부부장은 19차 당대회 개막일을 묻는 기자들에게 날짜는 귀띔해주지 않고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공산당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도 인색하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 탓을 한다. 부처끼리 책임을 미루고,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일쑤다. 특히 행정집행으로 주민들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비정규직 집행요원이 거의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 산시성 옌안시에서 발생한 주민 폭행 사건, 저장성 창난현에서 사진 찍는 행인을 때려 다치게 한 사건, 구이저우 카이리시에서 과일 노점상 여주인을 구타한 사건 등은 모두 비정규직 공무원이 저지른 일이라는 해명으로 꼬리를 잘랐다. 전국을 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비정규직이야말로 중국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아마 공산당의 모호한 사과법에 질린 중국인들이 하이디라오의 깔끔한 사과에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탓만 하는 공산당 때문에 본사가 모든 잘못을 떠안은 하이디라오가 면죄부를 받았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누구나 제대로 된 사과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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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로 상대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북한의 6차 핵실험 감행 이후 북한의 위협을 상쇄시키기 위해 우리도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도처에서 고개를 든다.

 

이 같은 주장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근거는 ‘공포의 핵균형’이다. 상대를 절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서로 가짐으로써 심리적으로 상대의 선제공격을 제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됐으니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 심리적 공포상태의 균형을 이뤄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일 1면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는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탄두로 장착할 더 높은 단계의 수소폭탄을 개발했다고 이날 보도에서 주장했다. 연합뉴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은 그동안 ‘동반 핵무장’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초간편 해법을 놔두고 20년 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다. 또한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아주 쉽다.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하나씩 갖고 서로를 견제하면 세계 평화가 올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포의 균형론’은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론이며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적용 가능한 비현실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전쟁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핵보유국도 전쟁에 휘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류는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서기도 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은 핵무기가 없는 아르헨티나가 핵보유국인 영국을 상대로 일으킨 경우다. 핵을 갖고 있으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이론적으로나마 공포의 균형이 성립하려면 상대도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서른을 갓 넘긴 예측불가능한 지도자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국제질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와 이성적으로 교감하면서 균형을 이룰 자신이 있는가. 동반 핵무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똑같은 수준의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비핵화를 영구히 포기하는 것이며 분단을 고착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고도 핵전쟁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핵전쟁은 면밀한 계산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오판·우발적 충돌·사고 등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핵무기가 늘어날수록, 핵보유국이 증가할수록, 핵통제 체제가 느슨해질수록 핵전쟁 확률은 높아진다. 남북 동반 핵무장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멸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핵무장 주장은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무력감의 다른 표현일 뿐 북핵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엄중함을 진실로 인식하고 있다면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한번 더 숙고해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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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나아가 전 세계는 6번째 핵실험으로 한껏 높아진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즉각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결정, 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높이면서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제 트위터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언급한 뒤 “내가 한국에 말했듯,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북핵 대응책을 협의하기도 전에 평화적 해결을 주장한 동맹국을 공개 비판한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책임전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부인은 트럼프 강좌에 참석 한 후 북한 공격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한국 비판은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선 적전분열로까지 비칠 수 있는 심각한 전략적 실패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에서 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미 간의 일이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핵개발에 나섰고, 협상력 제고를 위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해온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트럼프 자신도 미국의 역대 정권들이 북한을 잘못 다뤄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할 일은 정책을 재점검하고 한국과 함께 북핵 문제를 풀 새로운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엉뚱하게도 북한의 핵실험 책임을 한국 정부 탓으로 돌렸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한·미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는 북한의 전술에 놀아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은 ‘협상가’ 트럼프가 북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보고받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금까지 보여준 북핵 대응은 실망스럽다. 군사적 해결 방안과 대화를 통한 해법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을 잃었다. 북핵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을 뿐 아니라 자칫 호도하려는 태도마저 엿보였다. 북한의 도발 와중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언급한 것은 정상적인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그의 잘못된 북핵 인식에 모험적 대응이 겹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북핵은 확고한 대북정책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접근해도 풀기 어렵다. 군사적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북한을 압박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려면 미국과 그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는 게 먼저다. 트럼프가 진정 책임있는 지도자가 되려면 동맹국을 탓하고 엉뚱하게 압박하려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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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이르면 이번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미국 언론이 2일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중단하고 곧바로 폐기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한·미 FTA에 대해 참모와 논의하겠다”고 밝혀 모종의 변화를 시사했다. 다만 백악관이 정말로 협정 폐기를 고려하는 것인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엄포용’인지는 불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한·미 FTA 개정과 관련한 협상이 단 한 차례 열렸는데 협정 폐기를 운운하는 것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22일 열린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미국은 협정 발효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가 2배 이상 늘었다며 조속한 개정협상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측은 한·미 FTA가 미국의 적자 원인이 아니므로 양측의 전문가들을 구성해 객관적으로 평가·조사하자고 요구했다. 첫 회의가 불만족스럽다고 곧바로 협상테이블을 걷어차는 미국의 태도는 애초부터 협상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들게 할 뿐이다. 한·미 FTA가 미국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많다. 미 국제무역위원회는 한·미 FTA가 미국 무역수지 적자 완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협정체결 이후 미국의 한국시장 점유율도 8.5%에서 10.6%로 높아졌다. 또 한국의 대미 자본투자는 48억달러에서 129억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올 들어 한국 기업들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작금의 한반도 주변상황은 더욱 공고한 한·미관계를 요구한다. 하지만 일방적인 한·미 FTA 폐기 카드는 양국 간 통상마찰과 동맹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주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한·미 FTA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논의가 경제를 포함한 양국 관계 전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한국 정부도 미국의 요구에 따른 대응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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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분을 위령(慰靈)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도지사로서 모든 분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깊은 일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지난 25일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쿄도 위령협회 주최로 열리는 추도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를 추도하고 있고, 조선인 희생자도 거기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학살 희생자와 자연재해 희생자는 다르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은 모습이다.

 

고이케 지사는 내달 1일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열리는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 측 요구를 거절해 논란이 일었다. 전임 지사들은 추도문을 매년 보내왔고, 고이케 지사도 취임 첫해인 지난해 추도문을 보냈다. 일본 언론은 태도가 바뀐 배경에 추도비에 적힌 ‘희생자수 6000여명’ 문구 논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선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이 숫자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학살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고이케 지사의 모습에서 가해 사실과 책임을 덮으려는 일본 우익들의 익숙한 패턴을 보게 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종전기념일(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를 이유로 든다. 전쟁 책임과 주변국에 대한 가해 사실은 사라지고 없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특히 태평양전쟁을 기획·주도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선인 희생자를 전체 희생자에 뭉뚱그려 넣는 식으로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의 이번 행태는 이전부터 지적돼온 배외주의가 보다 명확한 형태로 폭주하려는 ‘전주곡’으로 보인다. 그는 ‘첫 여성 총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지만, 극우 포퓰리스트 성향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평화헌법 개정이 목표인 극우단체 일본회의에서 활동하고 있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한다. 극우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의 강연회에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사에 취임한 직후 전임 지사의 제2한국학교 부지 대여 방침을 백지화했다. “보육원 대기아동 문제가 심각한데 외국인에게 왜 공간을 내주느냐”는 우익의 반발에 편승한 것이다. 이는 보육시설 부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분노를 외국인에게 향하게 하는 전형적 배외주의다. ‘고이케 신당’을 추진하는 ‘일본 퍼스트회’는 배외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각각 ‘호주 퍼스트’ ‘뉴질랜드 퍼스트’라는 극우 정치운동이나 정당이 존재한다. 고이케 지사는 ‘고이케 극장’이라 불릴 정도로 능수능란한 이미지 정치로 대중 지지를 얻어 왔다. 하지만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항마로 꼽히지만, 아베 총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질 게 없는 극우 포퓰리스트의 모습이다.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는 공원 내에선 같은 시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단체가 ‘진실의 간토대지진 희생자 위령제’라는 ‘맞불’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주최자는 과거 고이케 지사의 강연회를 개최한 ‘재특회’ 관련 단체다. 재특회는 혐한(嫌韓)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를 이어온 배외주의 단체다.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거절한 것이 이런 움직임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학살 사실을 왜곡하고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이런 배외주의가 대재난을 통해 극대화된 것에 다름 아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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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매일 북한과 미국의 전쟁 가능성을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괌 포위사격 발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경고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온라인에서는 핵전쟁 대피시설과 비상식량 등 전쟁 대비 물품들의 판매가 급증했다.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미국 언론들의 호들갑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사태 두둔 발언 이후 북한 뉴스는 찾기 어려워졌고 화제는 미국 사회의 현존하는 병폐인 인종주의 문제로 급반전됐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 시민들의 반응이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기자는 최근 이번 사태를 회고하는 기사에서 “북핵 위기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마치 두 개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전쟁 위기를 전하는 긴박한 뉴스에 비해 서울 시민들의 반응은 너무나 차분하고 심지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20년 넘게 반복되는 북핵 위기를 한반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0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내셔널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베드민스터_A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위기감은 흙탕물 가라앉듯이 진정되고 있지만 물밑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위기는 이제 본격화됐다는 게 맞는 말이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의 말처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는 “게임 체인저”였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북핵을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임박한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에 대한 속내를 상당 부분 드러냈다. 한국 입장에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이다.

 

2년 후라고 가정해보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터득하고 활용 가능한 ICBM을 모처에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완성까지 2년으로 예상했다가 1년 앞당겼다고 하니 내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한·미는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정부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닐지 모른다.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할 것이고 각종 군사적 옵션이 거론될 것이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거기(한국)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을 폈다는 공화당 의원의 전언은 새삼 공포스럽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미 공격 징후가 없어도 예방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는 지난 20일 “2002년 이라크전 이후 백악관에서 적국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이렇게 많은 토론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선택도 있다. 북한을 파키스탄처럼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미 북핵을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DNI 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이제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정하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전술핵 도입, 핵개발 등 핵으로 핵을 대응하자는 요구도 이어질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으로 며칠 잠잠하던 한반도는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미국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 북핵 위기가 몇 번 더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이냐 북핵 인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20년을 넘게 끌어온 북핵 외교에서 한·미의 완패를 의미한다. 서울 시민들은 무관심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외교관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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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이 연일 고조되는 상황에서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화로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 두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에는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해법에서는 다소의 시각차를 드러냈다. 트럼프는 북한의 도발을 중지시키는 게 급하다고 한 반면 시진핑은 평화적 해법을 강조했다. 이런 차에 조지프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박성일 주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수개월째 비밀접촉을 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북·미 양측이 겉으로는 군사적 수단의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이면에서는 평화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중 두 정상의 통화나 북·미 간 뉴욕채널 가동으로 당장 긴박한 한반도 정세가 누그러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두 정상 간 통화가 고조되는 긴장의 열기를 식히고, 나아가 단기적으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는 충분히 있다. 지난 4월 북핵 위기가 고조됐을 때도 두 정상 간 통화로 사태를 봉합한 바 있다. 이번 통화는 중국 측이 제안한 것으로, 중국의 적극적인 행보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북·미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강력한 도발 자제 신호를 보낸 셈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할 경우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0일(현지시간)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골프클럽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왼쪽) 등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과 회의를 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북한의 괌 공격 발표를 두고 “그(김정은)가 괌에 뭔가를 하려 한다면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일이 북한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드민스터 _ AFP연합뉴스

 

뉴욕채널 가동 또한 마찬가지다. 뉴욕채널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데다 일상적인 연락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양국의 극한 대치 속에서 외교 라인이 수개월간 비밀접촉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고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채널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말기 끊겼다가 북한 억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송환 때 가동된 데 이어 이번에 재가동됐다. 미 국무부의 조지프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로 대화의 급도 낮지 않다. 북한과 미국의 안보 우려 등 근본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외교적 모멘텀을 어떻게 실질적·구체적인 결실로 연결할지 이해당사국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특히 중국의 행보가 중요하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핵 문제를 대화와 담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대로 실현되도록 중국은 적극 노력해야 한다. 특사를 파견해서라도 북한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북·미 간 대화 채널 가동과 미·중 정상 통화로 넓어진 외교적 공간을 활용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오는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 메시지를 주목한다.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백악관은 어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수단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은 주말 이틀간 발언을 자제했지만 언제 어떤 도발을 감행할지 모른다. 북·미가 진정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면 즉시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부터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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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미국의 도발적 행태 역시 군사적 불안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미국은 연일 일관성 없는 거친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잇따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예방전쟁’을 언급했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각료들과 북한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핵개발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미국이 안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 대국이자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로 전쟁 위험에 대해 신중하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은 지금껏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9일 ‘정권의 종말과 파멸’ 운운했다. 북한을 자극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기로 작정한 듯한 발언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도자의 우발적 행동이 전쟁에 단초를 제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트럼프 리스크를 걱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고 “핵 무기를 왜 사용하지 못하느냐”는 트럼프라 해도 남의 나라 운명까지 결정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어제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의 대북 경고가 즉흥적인 발언이었다며 주워 담았다. 초군사강국의 지도자가 이처럼 경거망동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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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하고 정중하게 국민이 맡겨준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개각을 단행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상태로 8초 정도 있었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사과드리고 싶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저자세로 일관했다. 지난 4월 특파원 부임 이래 보아온 아베 총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베 총리의 몸 낮추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요미우리TV에 나와 “마음가짐에 교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측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답변 태도를 ‘반성’한 것이다. ‘일생의 과업’이라던 개헌에 대해서도 “일정이 정해진 게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라고 했다. 마치 “나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홍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단행한 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아베 총리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물론 지지율 추락으로 ‘아베 1강’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이론(異論)을 틀어막는 ‘1강 체제’를 구축해왔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결형 정치’로 정권 구심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정치 자세에는 한때 70%를 넘봤던 높은 지지율, 2012년 정권 탈환 당시의 중의원 선거를 포함해 4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승을 기록해온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대결형·강압적 정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와 지지율 급락으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개각으로 ‘민심(民心)의 일신(一新)’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의 개각과 저자세 행보는 일정한 효과를 얻고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추락은 일단 멈췄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2~9%포인트 정도 상승한 35~44.4% 수준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회복세로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일러 보인다. 지지율 상승이 개각에 따른 반짝 효과일 가능성도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을 상회하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3~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54%로, 찬성 36%를 웃돌았다.

 

한 저널리스트는 이번 새 내각에 대해 ‘잊어주세요 내각’이라고 이름붙였다. 개각을 통해 가케학원 특혜 의혹,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자위대의 문서 은폐 의혹 등 3개의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가케학원 의혹의 핵심 인물인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 전 이사장이나 자위대 문서 은폐 의혹과 관련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의 국회 출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가 “정해진 일정이 없다”고 했지만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각료들의 면면이 아니다. 국민에 대해 겸허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베 총리 자신이 바뀌느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안보 관련법 성립, 원전 재가동, 공모죄법 성립, 개헌 추진 등 ‘아베 노선’을 일방통행식으로 달려왔다. 비판이나 의문의 목소리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과가 지금 ‘아베 1강’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미 그를 불신에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이번에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호박에 줄 긋기’식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 일본 국민들이 그를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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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전면 배격하고 미국에 보복하겠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명의의 성명을 내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조작해낸 유엔안보리의 반공화국 제재 결의를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로 단죄규탄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어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최후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이라며 “미국의 극악한 범죄를 천백배로 결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어도단이다. 미사일로 도발한 쪽은 북한이다. 그런데 그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에 맞서며 도발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주도했지만 북한의 위협 행위는 미국의 문제만이 아닌, 세계적 문제이다.

 

유엔안보리가 지금껏 8차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북한이 외무성 성명보다 격이 높은 정부 성명까지 내며 극력 반발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결의안이 과거와 달리 북한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이 넘는 손실을 줄 수 있는, 강력 제재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제재안에 우호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마저 동의한 것에 대한 충격과 위기감에서 나온 반응일 수도 있다. 

 

7일 오전 필리핀 마닐라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 미국, 일본 외교장관 회담에서 각국 장관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이날 회담에서는 북한 핵개발 및 미사일 발사 대응과 관련해 한미일 공조 등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마닐라 _ 연합뉴스

 

배경이야 어떻든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북한의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은 한반도 정세를 격화시키고 지역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평화와 안전을 볼모로 한 군사적 도발은 단호하게 퇴치해야 한다. 북한은 성명에서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는 자주권과 생존권과 발전권을 말살하는 결의”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북한을 말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핵과 미사일 개발임을 알아야 한다. 과거 북한이 핵개발을 하지 않던 시기에는 국제사회와 이토록 갈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행위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갈등 사안을 논의할 수 없는 불합리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만 강화한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의 헛된 망상을 버려야 한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면 국제사회에서 핵강국 대우를 받으면서 번영할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개발을 멈추지 않는 한 정상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포기라는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체제 보장과 경제적 번영은 물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대우받는 길이 열릴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재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북한은 자중하기 바란다. 어떤 나라든 언제까지 전 세계를 적으로 삼고 살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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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가 지난달 27일 러시아를 제재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러시아가 화를 내는 건 당연한데 유럽도 화가 났다. 독일 지그마어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미국이 관할을 넘어 유럽 기업을 제재하는 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지난주 “우리의 우려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법 시행 후 EU는 수일내 적정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제재에 같이 동참하고 있는 유럽이 왜 미국에 화를 내는 걸까. 가스관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제재 법안에서 기존 러시아 제재에 “러시아 가스관 수출의 건설·복구 사업에 투자하거나 물자 및 기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을 제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더했다. 법안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오는 가스관 확장사업인 노드스트림2 프로젝트를 콕 찍어 “EU의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대한다”고 적었다. 본심은 뒷문장에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에너지 수출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독일은 이를 놓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선 ‘무엇보다 미국(America Above All)’이라고 했다. 미국의 가스 수출을 늘리려고 러시아 제재를 이용했다는 얘기다. 발트해저 1200㎞에 깔린 노드스트림은 동유럽을 거치지 않고 러시아 브이보르그에서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로 바로 가스를 보낸다. 노드스트림2가 놓이면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가스의 80%가 독일을 거쳐가게 된다. 독일이 중계지가 되는 셈이다. 독일의 이권만 걸린 게 아니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이 주도했지만 이 사업에는 독일의 유니퍼와 윈터셀, 프랑스의 엔지, 영국·네덜란드 합작 로열더치셀, 오스트리아의 OMV 등 서유럽의 에너지 대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배로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는 그간 러시아의 값싼 가스값에 밀려 유럽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러시아는 유럽 가스의 34%를 공급한다. 노드스트림2가 깔리면 40%를 넘을 수 있다.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처를 다변화해야 하지만 시장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미국을 보는 유럽의 마음은 불편하다. 가스관 밸브가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든, 미국이든 일방적 사업자는 달갑지 않다.

 

러시아 제재 법안은 동·서유럽을 찢어놓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동유럽 국가들은 노드스트림2 사업을 반대해왔다. 가스가 독일로 바로 오면 경유 수수료를 뺏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폴란드가 타격이 제일 크다. 이들 나라가 빼앗길 경유 수익을 가져가는 중유럽은 독일 편에 서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불안감, 서유럽을 향한 경제적 박탈감이 심한 동유럽을 끌어당기고 있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를 찾은 건 서막이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달 30일부터 에스토니아 등 동유럽을 순방 중이다.

 

국익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게 외교라지만 미국은 이번에 대놓고 ‘얌체짓’을 했다. 그런데 미국은 제대로 계산기를 두드린 걸까. 미국 기업들도 의회에 반대 로비를 벌였다. 엑손모빌, GE, 셰브론 같은 에너지 기업뿐 아니라 보잉, 씨티, 마스터카드, 포드 등이 제재 때문에 러시아보다 미국 산업에 손해가 클 거라고 걱정했다. 러시아가 관련된 극지방, 심해 유전 개발부터 금융 거래, 주요 광물 수입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미국만 이익을 보는 글로벌 비즈니스란 없는 법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전통의 우방 미국과 유럽 사이는 껄끄럽기만 하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위분담금 문제에 이어 가스관은 그 간격을 더 벌려놓을 듯하다. 미국과 유럽이 멀어질수록 러시아가 움직일 공간은 더 커진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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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대화의지를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국무부 브리핑에서 “우리는 어느 시점에 북한이 추구하는 안보와 경제적 번영의 미래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정권교체나 정권붕괴, 한반도 통일 가속화를 추구하지 않고 미군을 38선 이북으로 전개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4노(NO)’ 정책도 재확인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어느 시점에 북한과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의 '핵 포기'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이달 들어 북한이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시험 발사한 후 미 조야에서 대북 강경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대화론을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AFP연합뉴스

북핵 위기 속에 미국 외교 수장이 대화론을 제기한 것은 의미있다. 북한의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 이후 미국에서 연일 대북강경론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정권붕괴 이후 주한 미군을 대부분 철수시키겠다고 중국에 약속해주라”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미국·중국 간 빅딜론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지켜보느니 전쟁을 하겠다”고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고강도 제재에도 북한 도발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낀 미국 조야에서 비현실적인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제정치의 변동성을 고려하면 이런 주장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미스터 예측불허’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어떤 강수를 내밀지도 알 수 없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이런 분위기에 제동을 걸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다. 대북 압박 목표가 대화이며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분명하고 일관된 신호는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의심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을 준다. 한반도 위기지수의 가파른 상승세를 진정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은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껏 미국의 대북정책은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을 편다고 했지만 관여 정책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또 대북 제재는 법·결의안 등으로 제도화하면서 대화제의는 빈말에 그쳤다. 이번에도 틸러슨은 현실성 없는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대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화의지를 의심케 한다. 중국에 맡기지 말고 미국이 직접 나서야 북한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마침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거론했다. 미국은 뉴욕 채널 등 모든 창구를 동원해 대화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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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신경 쓰지 않고 밟고 다니는 맨홀 뚜껑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맨홀 뚜껑 인증샷’을 찍거나 ‘맨홀 카드’를 모으기 위해 각 지역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맨홀 뚜껑 애호가’를 가리키는 ‘만호라(manholer)’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디자인의 맨홀 뚜껑을 내놓고 있다. 후루사토(고향) 납세에 대한 답례품으로 맨홀 뚜껑을 준비하는 지자체까지 생겼다.

 

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맨홀 뚜껑이 존재한다. 지역 특산품이나 동식물, 명소 등이 새겨져 있고 색깔이 들어가 있기도 해서 일본의 ‘서브 컬처’(하위문화)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런 ‘디자인 맨홀’의 발상지는 1977년 물고기 떼를 새겨넣은 오키나와 나하(那覇)시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과 하수도단체가 설립한 ‘하수도홍보 플랫폼’에 따르면 일본에는 간단한 기하학적 문양을 포함해 약 1만2000종의 맨홀 뚜껑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만화 <명탐정 코난>의 캐릭터를 그린 돗토리현 호쿠에이정의 맨홀 뚜껑(왼쪽 사진)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히메지성을 새긴 효고현 히메지시의 맨홀 뚜껑.

 

이런 맨홀 뚜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애호가인 ‘만호라’도 적지 않다. 이들은 현지에 직접 가서 맨홀 뚜껑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현지에 직접 갔다는 ‘인증샷’으로 올리는 이들도 있다.

 

맨홀 뚜껑 붐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 맨홀 카드다. 앞면에는 맨홀 뚜껑 사진과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가, 뒷면에는 디자인의 유래와 지역 정보가 실려 있다. 각 지역 관공서나 하수도 관련 시설에서 무료로 발매된다. 맨홀 카드는 ‘하수도홍보 플랫폼’이 하수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 4월 처음 무료 형태로 발매했다. 첫 시리즈 30종은 10만장이 순식간에 팔려 증쇄를 해야 했다. 이후 4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다. 1일부터 지자체 49곳이 참여한 5번째 시리즈가 발매됐다. 지금까지 191개 지자체가 222종을 발행했는데, 이달 안에 총발행장수가 100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맨홀 카드는 독특한 디자인에, 현지에 가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다는 희소성이 더해지면서 열광적인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인기 카드는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2만엔(20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지난 1월 사이타마(埼玉)현에서 개최한 ‘맨홀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에는 예상 입장객 700명을 훌쩍 넘는 3000명이 몰려들었다. 이 행사장에선 ‘작은 에도’로 불리는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의 상징인 시계탑 문양 맨홀 카드를 비롯해 맨홀 카드 9종을 미리 배포하면서 ‘만호라’들로 혼잡을 이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맨홀 뚜껑과 맨홀 카드 제작에 공을 들이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맨홀 카드를 구하러 온 이들이 지역 명소를 둘러보도록 해 지역 활성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지역을 대표하는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넣은 한정판 맨홀 뚜껑도 등장하고 있다. 공룡 화석이 다수 출토된 것으로 유명한 후쿠이(福井)현에선 공룡을 디자인한 맨홀 카드를 발행했다.

 

맨홀 카드를 기획한 ‘하수도홍보 플랫폼’의 야마다 히데토(山田秀人)는 “한 종의 카드를 절대 한 곳에서밖에 얻을 수 없다는 설계로 수집 난도를 높인 게 수집가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전체 맨홀 카드를 완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후지산이 포함된 카드’처럼 지역이나 마을, 명소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카드를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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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니미’로 불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공보국장이 임명 열흘 만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코미디처럼 해임됐다. 기존 비서실장을 정신병자로 공격하더니 존 켈리 신임 비서실장에 의해 바로 잘렸다. 스카라무치가 잃은 건 명예만이 아니다. 뉴욕포스트는 지난달 29일 스카라무치의 부인이 최근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부인은 스카라무치가 노골적인 정치적 야망을 위해 정신 나간 듯이 워싱턴을 추구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때문에 이혼한 사례는 또 있다. 플로리다 지역지 팜비치포스트는 지난달 28일 미국프로풋볼(NFL) 치어리더 출신으로 열성 트럼프 지지자인 부인 린 애런버그와 팜비치 카운티 주 검사로 열성 민주당원인 남편 데이브 앨런버그의 ‘트럼프 이혼’ 사례를 소개했다. 남편은 부인의 트럼프 지지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고 둘은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결혼 3년 만에 이혼했다. 트럼프는 대선 직후부터 미국 사회의 스트레스 거리였다. 워싱턴주에서는 22년을 함께 살던 남편이 트럼프를 찍었다고 고백하자 바로 이혼을 선언한 부인도 있었다. 대선 한 달 후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이후 절친한 사람과 관계를 끊었다는 응답이 13.4%나 됐다.

 

앤서니 스카라무치 미국 백악관 신임 공보국장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회견 직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사임 소식이 알려졌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트럼프 본인도 세 번 결혼을 했으니 두 번은 이혼을 해봤다. 첫번째 부인은 체코 출신 모델 이바나였다. 두번째 부인은 유부남 트럼프와 스캔들을 일으켜 첫번째 부인과의 이혼으로 몰고간 배우 말라 메이플스였다. 지금 부인은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 멜라니아다.

 

트럼프의 이혼 사례를 소개하는 이유는 또 한 번의 이혼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와 헤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트럼프의 세번째 이혼은 집권과 국정운영을 위해 정략결혼한 공화당과의 정치적 이혼이다. 성장 배경도 성격도 딴판인 사람들의 사랑 없이 떠밀려 한 결혼이 오래가기는 어렵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다. 트럼프는 워싱턴의 주류 정치를 ‘하수구’라며 개혁 대상으로 설정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성폭행이나 자랑하는 더러운 입을 가진 부동산 졸부를 지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겼고 둘에겐 정략결혼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트럼프는 의회의 힘이 필요했고, 공화당은 10년 만에 집권당이 됐다.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장의 비서실장 임명은 화해의 상징이었다.

 

트럼프는 취임 6개월 만에 결국 공화당과의 연결고리였던 프리버스를 경질했다. 뉴욕타임스가 전했듯이 비서실장에게 대통령 집무실의 파리를 잡는 역할이라도 맡기며 참으려 했으나 한계에 도달했다. 트럼프가 보기에 공화당은 무능 그 자체다. 오바마케어 하나 폐지하지 못하는 공화당을 향해 트럼프는 대놓고 “바보”라고 비난한다. 트럼프는 이제 포퓰리스트로 돌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한심한 사람들’과 함께 주류 정치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 생각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프리버스가 없으면 트럼프는 정당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이혼 협박이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이 과반 여당이란 든든한 배경을 버리고 골수 지지층만 끌어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화당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더욱 원론적 목소리를 내며 트럼프를 옥죌 것이다.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정책에 반기를 들었듯이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는 집권 6개월 만에 레임덕에 빠진 미국의 첫번째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섣불리 이혼을 거론할 게 아니라 숙려기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공화당이 진짜 이혼을 결심하면 가장 불행해질 사람은 트럼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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