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미국 상원에서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후보자 인준 청문회가 열렸다. 인준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마틴 루서 킹 목사 부인이 과거 세션스를 비판하며 상원에 보낸 편지를 낭독했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원내대표는 사문화되다시피 한 상원 규정을 끄집어내 ‘워런 의원 발언 금지’를 안건으로 상정해 가결시켰다.

 

매코넬은 “워런은 경고를 받았다. 설명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요하게 계속했다(Nevertheless, she persisted)”고 입장을 밝혔다. 워런의 규정 위반을 강조한 것이지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요하게 계속했다”는 표현은 워런의 투쟁과 진보주의자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부상했다.

 

미국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워런은 ‘싸움꾼’을 자처한다. 2014년 펴낸 자서전의 제목이 <싸울 기회>(A fighting Chance)다. 이 책에는 싸움(fight)이란 단어가 200회 넘게 나온다. 최근 출간된 저서 또한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This Fight is Our Fight)란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실을 전하면서, 자본의 로비에 넘어가 대기업 편에 선 정부와 정치인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흙수저’ 출신으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에 이른 그는 금융규제 강화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일관되게 주창해왔다.

 

2018년의 마지막 날, 워런이 예비 선대위 출범을 알리며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영상에서 “미국의 중산층이 공격받고 있다”며 부자·대기업에 유리한 감세정책을 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다. 뉴욕타임스는 ‘대기업 이익에 맞서 싸우는 전사’라는 워런의 정치적 브랜드가 자산이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최근 워런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주 유력지 보스턴 글로브는 워런이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며 불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워런은 자신을 둘러싼 회의론에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자서전 <싸울 기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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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북·미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의 주동적, 선제적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 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 (북·미관계가) 빠른 속도로 전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경제발전 기조를 분명히 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환영한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그해 북한의 국정 방향과 외교의 기조를 밝히는 절대 지침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신년사에서 확고한 비핵화 의지와 함께 북·미관계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밝혔다. 핵무기의 시험, 생산, 사용, 전파 등 ‘핵 4불 원칙’까지 언급하면서 북한 내부를 향해 비핵화를 통해 경제개발에 치중하겠다는 국정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핵 문제를 풀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집무실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남측에 대해서도 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상당히 덜어낸 만큼 남북경협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평가하면서 평화체제 전환을 본격 추진하자고 밝힌 것도 같은 흐름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접견실의 낮은 소파에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30여분에 걸쳐 차분하게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 측근들과 함께 입장하는 등 종전과 다른 파격적인 모습으로 정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려 한 것이다.

 

문제는 북·미 양측이 어떻게 교착 상태에 있는 협상의 물꼬를 트고, 올 상반기 중으로 비핵화 조치의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만큼 미국이 응답할 차례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만 할 게 아니라 적극 협상에 나서야 한다. 최근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조야는 국내 정치와 무관하게 초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여전히 긴요하다. 북한이 경제개발에 나서려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가 전제 조건이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언급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해 제재를 풀라고 촉구한 것이다.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남북 간 군사긴장 완화 조치를 착실히 추진해 나가면서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대화 뒷받침 등 할 일이 많다. 북·미 고위급 협상과 2차 북·미 정상회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등 일련의 과정이 올 상반기 중에 순조롭게 이행되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풀기 어렵다. 모처럼 맞은 기회를 남·북·미 모두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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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가 밝았다. 일본에서는 새해 첫날인 ‘오쇼가쓰’를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즐긴다. 신사나 절을 찾아 한 해의 소원도 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29일부터 휴가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2019년이 어느 해보다 뜻깊은 해가 되길 바랄 것이다. 그는 올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등극을 앞두고 있고, 비원(悲願)인 평화헌법 개정에도 나선다. 장기 정권의 ‘레거시(정치적 유산)’로 북방영토(쿠릴 4개섬) 문제 해결도 노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이어갈 수 있다. 오는 8월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2798일)을 넘어서고, 11월엔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기 재임 총리가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개헌과 북방영토 해결을 올해 목표로 잡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정 헌법의 2020년 실시를 내걸었다. 자민당도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설치 근거를 두는 당 개헌안을 지난해 3월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오산의 연속이었다. 사학 스캔들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소극적인 태도, 전면 배치했던 측근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당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이달 하순 정기국회에서 당 개헌안을 제출할 생각이지만,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전 국회 개헌 발의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개헌 발의를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고 내년 상반기까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 이런 안이 현실화할 경우 참의원 선거 결과가 개헌을 크게 좌우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2019년은 러시아”라며 북방영토 문제 해결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코탄·하보마이 섬을 일본에 인도하는 내용을 담은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기초해 평화조약 협상을 가속하기로 했다. 오는 21일 모스크바에서 가질 러·일 정상회담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진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다만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푸틴 대통령이 2개 섬 인도에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설혹 2개 섬 반환에 합의해도 아베 총리가 당초 4개 섬 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방침을 바꾼 데 대한 여론의 반응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중·참의원 ‘더블 선거’ 얘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북방영토 협상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는 이유로 중의원을 해산한 뒤 중·참의원 동시 선거를 치러 개헌 정족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의 ‘빅 이벤트’인 북방영토 협상, 참의원 선거, 개헌 발의가 얽히고설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해 소원이 대부분 그렇듯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가 뜻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장기 정권에 필연적인 ‘레임덕’이 새 일왕이 즉위하는 5월1일을 기점으로 시작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도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다.

2019년은 돼지, 일본에선 멧돼지의 해다. 멧돼지는 무병장수와 용맹·모험을 상징한다. 저돌맹진(猪突猛進·앞뒤 안 보고 목표를 향해 돌진함)이라는 말도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6년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 알 권리 침해 우려가 있는 특정비밀보호법, 범죄를 계획 단계부터 처벌할 수 있는 공모죄법 등을 여론의 반대에도 강행 통과시켰다.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나눠 사회를 갈라놓는 수법도 두드러졌다. 그가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멧돼지처럼 무턱대고 돌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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