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한·일관계는 억압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외교·안보 사안에 관해서는 감정적 대응보다 실리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비행’ 사안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미래지향적 관계 개선이 아니라 불행한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은 지난해 12월20일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에 대한 인도적 구조 활동을 벌이던 우리 해군의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 중 하나인 추적레이더(STIR)를 조사(照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우리 해군은 해당 레이더를 가동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인도적 구조 활동을 수행하던 광개토대왕함 상공으로 위협적인 저공비행을 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안 자체는 명확하다. 당시 광개토대왕함은 조난 선박을 구조하고 있었기에 미식별 표적에 대응하기 위한 전투배치 상태가 아니었고 따라서 일본 초계기가 위협을 느낄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백번 양보해 일본 초계기 조종사 등이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 위협을 인지했다 해도 조금만 현장 상황을 파악했더라면 우리 함정이 온전히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고 자신들에게 위협행동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자국 해상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에 대해 민간 항공기에 적용하는 ‘국제민간항공안전협약’을 들먹이며 150m 거리를 유지했으니 문제 없다고 답변하는 건 자기합리화를 위한 견강부회일 뿐이다. 타국 군용 항공기가 군함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며 그렇기 때문에 적정 접근거리에 대한 국제적 기준 자체가 없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12월27일 양국은 실무자급 화상회의를 통해 사실관계와 기술적 분석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관련 실무협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은 총리를 필두로 관방장관과 방위상까지 총출동하여 공세를 펼칠까? 이번 사안이 일본의 안보에 심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최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정부의 ‘위안부 재단 해산’ 등으로 쌓여온 한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일본 우익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 12월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사건’을 빌미로 20년 이상 끌어온 ‘유사법제’ 입법화를 추진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일본은 이 사건이 일본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위중한 사건인 양 대대적인 보도를 하여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유사법제는 2003년 6월 참의원을 최종 통과하여 시행되었다. 이로써 패전 58년 만에 그리고 일본 정부가 1977년 ‘연구’라는 이름으로 검토에 착수한 이후 4반세기 만에 ‘전시(戰時)’ 대비 국가체제 정비를 목적으로 한 법률이 효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그 후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빌미로 군사 대국화와 우경화를 추진해왔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괴선박 사건 그리고 핵과 미사일은 ‘울고 싶은 일본의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따라서 이번 초계기 사안에 대한 아베 정권의 대응 배경 역시 지금까지 일본이 일관되게 취해온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임한규 | 국방개혁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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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인 동북아 전문가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최근 2차 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2차 회담이 열리고 일정 성과를 내서 후속 협상도 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한·미 양국, 특히 미국에 널리 퍼져 있는 생각, 즉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비관론은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체제’라는 구조적 비관론 같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핵 포기는 개혁·개방을, 개혁·개방은 체제 붕괴를 초래한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협상하는 척 할 수는 있어도 핵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현시점에서 비핵화가 어렵다는 판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진지한 협상은 없었다. 북한은 아직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았다. 비관론, 일리 있다.

 

핵 개발도 핵 포기도 아닌, 과도적인 현 ‘비핵화 공약 국면’은 상당 기간 지속될지 모른다. 상줄 수도 없고 벌주기도 애매한, 그래서 북한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황을 북한이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비관론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가장 흔한 비관론은 북한이 과거 그랬듯이 협상-파기-핵 개발을 반복할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북한의 과거로 북한의 오늘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흔히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구분하지만 우리가 아는 북한은 김정일 작품이다. 그게 김일성·김정일 시대는 똑같아 보이고, 김정은 시대는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는 이유다. 김정은은 사실상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시장을 확대했다.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와 다름없다고 장담하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핵 불사용 천명, 핵군축,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전제로 한 한반도 비핵화도 비관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이 모두 핵 협상 때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본격 협상도 안 한 상태에서 스스로 폐기 처분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미국 혹은 남측과의 공식 회담에서 핵군축, 핵우산 철거를 주장한 적도 없다.

북한 논리는 이렇다. 핵 무력 완성으로 억지력을 확보함으로써 경제·핵 병진노선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경제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억지력 확보로 미국과 협상할 여건이 마련된 만큼 비핵화 협상도 해야 한다. 본래 핵무장의 목적은 핵보유가 아닌, 비핵화였다. 여기서 비관주의자는 잠깐 하며 가로막는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공식 폐기하지는 않았다.’ 맞다. 헌법의 핵보유국 조항도 그대로다. 공식 폐기는 핵문제 완전 타결을 기다려야 한다. 섣불리 폐기했다가 협상이 결렬되면 곤란해진다. 그래도 비관주의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핵 사용도 확산도 않겠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부각했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는 뭐라고 했나?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며 핵동결을 추가했다.

 

과거 보다 한발 전진했다. 궁지에 몰린 비관주의자,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지난해 9월 태형철 김일성 종합대 총장 겸 고등교육상이 뉴욕 토론회에 서면으로 제출한 발표문, 지난달 20일 조선중앙통신 정현의 논평은 뭔가? 핵우산 철거 없으면 비핵화도 없다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의 일방적 핵 폐기로는 미국의 핵위협이라는 실체가 아무 영향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반도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실질적인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비핵화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한 태형철의 해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러는 핵 국가지만 북한은 이들로부터 핵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와 우호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미 양국도 적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한다. … 북·미관계 정상화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한반도 비핵화의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 관계 정상화가 보장된다면 핵우산, 주한미군은 핵 폐기의 변수가 안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9월 평양공동선언 내용이다.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지만 남북이 핵우산, 주한미군 문제 해법에 공감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합의다. 비관론은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비관론이 북한으로부터만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태도, 북·미관계의 복잡성이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북한 주장을, 전후 시차와 공식 비공식 발언의 구분 없이, 대내외 언명의 차이, 최대 목표와 현실적 목표의 간극을 무시한 채 맥락 없이 범벅해서 맹목적 비관론이라는 정체불명의 섞어찌개를 차려 내놓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건 전문가다운 태도도 아니고 정직한 자세도 아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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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협상에 대해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한 지난 11일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국내 보수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초점이 ‘완전한 비핵화’에서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로 옮아가는 징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협상 성과에 급급해 미국에 대한 실질적 위협인 ICBM 생산 중단과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재개를 교환하는 ‘스몰딜’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억측도 나온다. 게다가 주일미군이 홈페이지에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동북아에서 핵보유를 선언한 국가라고 언급한 영상을 공개하자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뜻을 비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김정은 정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보수세력은 걱정한다. 아무리 우려라지만 도가 지나치다. 

 

중동을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카타르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도하 _ AP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지극히 온당하다. 어떤 대외 협상도 궁극적으로는 자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목표 아닌가. 폼페이오는 이 발언 뒤에 “최종적이고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해야 한다. 핵심명제는 전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의 ‘미국민 안전’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뒤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는 미국 언론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를 풀 가능성을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것이다. 최종적인 비핵화로 이르는 도중에 북한과의 ‘주고받기’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며 이 과정의 어떠한 거래도 미국인 안전에는 영향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발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한반도 비핵화가 신뢰구축과 병행해야 하는 과정임을 트럼프 행정부가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지난해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 이미 담겨 있다. 공동성명에는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선 신뢰구축-후 핵신고’의 비핵화 로드맵에도 접근한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 해제는 없다”던 트럼프 행정부의 비현실적 대북정책이 뒤늦게나마 현실감각을 찾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불필요한 기우에 사로잡힐 것 없이 곧 시작될 북·미 고위급회담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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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 출신의 전 미 중앙정보국(CIA) 간부 진우다이(金無怠)를 간첩과 사기 탈세 등 17가지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미국 이름은 래리 우 타이 친. CIA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였던 그가 40년 넘게 중국의 간첩으로 암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옌징대학(현 베이징대)에서 신문학을 전공한 진우다이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상하이와 홍콩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6·25전쟁 당시 한국에 근무하면서 중국군 포로 통역을 맡았다. 이때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CIA 해외방송정보국(FBIS)에서 근무하다 분석관으로 승진했고 이후 CIA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로 중국·대만·일본·한국 지역 기밀정보를 다뤘다. 6·25전쟁, 베트남전의 미군 전략 등 주요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는 1970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를 희망한다는 사실도 미리 중국에 전달됐다. 그는 스파이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100만달러의 보상을 받았고 카지노를 들락거리면서 도박으로 돈의 출처를 숨겼다. 대만 유명 앵커였던 아내도 체포될 때까지 남편의 정체를 까맣게 몰랐다. 1981년 CIA에서 정년퇴직한 후 CIA가 진우다이에게 계속 일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위장은 완벽했다. 간첩 행각이 드러난 것은 1985년 위창성(兪强聲) 중국 국가안전부 북미정보국장의 망명 때문이다. 위창성은 망명 대가로 미국 측에 간첩 정보를 넘겼다. 미국 내 중국 핵심 첩보망이 전부 파괴됐다.

 

진우다이는 판결 직전인 1986년 2월 감옥에서 자살했다. 주미 중국대사가 “진우다이 사건은 반중세력이 꾸며낸 것이며 중국 정부는 미국에 간첩을 보낸 적이 없다”고 그의 존재를 부정한 직후였다. 부인은 회고록 <나의 남편 진우다이>에서 남편 자살에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은 그를 변절자로 여기지만 중국은 ‘홍색 간첩’ ‘중국 최강 간첩’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위창성은 망명 2년 뒤 남미에서 중국 측 요원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쫓기다 익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창성은 현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인 위정성(兪正聲)의 형이다.

 

대만의 핵개발 계획을 무너뜨린 것도 간첩이다. 장셴이(張憲意) 대만 중산과학연구원 원자력연구소 부소장은 1988년 1월 일가족과 미국으로 망명했다. 핵무기 연구 핵심 책임자였던 그는 20년 가까이 CIA의 비밀 간첩으로 활동했다. 대만의 핵무기 개발 배경과 과정이 담긴 수많은 기밀자료가 그의 손을 거쳐 미국에 전달했다. 장셴이가 망명한 다음날 장징궈(蔣經國) 대만 총통이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대만의 핵개발은 완성 직전에 중단됐다. 이로써 대만은 중국의 무력통일을 저지할 전략적 무기를 잃고 국제사회에서 세력이 약화된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는 스파이를 첩혼(諜魂)이라고도 쓴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있지만, 혼은 국가에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냉전시대 간첩들의 활동은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탈냉전시대에도 첨단 기술을 둘러싼 산업 스파이들의 전쟁은 여전하다. 미국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긴밀한 관계를 근거로 화웨이 장비가 보안에 취약하다며 동맹국과 보이콧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화웨이 유럽 지사 간부가 폴란드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유학생은 모두 스파이라고 했고, 올해 미국의 명문 매사추세츠공대에 합격한 중국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중국은 2014년 반간첩법을 제정하고 간첩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베이징시는 간첩 신고자에게 최고 50만위안(약 8289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활약하는 간첩은 11만명에 달하며 이 중 4만8000명 정도가 외국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간첩만큼 효율적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단도 찾기 힘들다. 미·중 대결이 격화될수록 스파이 전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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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3박4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두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하는 방안’을 깊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이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조율, 공동보조를 약속했음을 시사한다.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지난 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만찬에서 예술공연을 보며 박수치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회담과 오·만찬 행사에서 전에 없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도약’과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시 주석도 북한의 미국을 향한 ‘응당한 요구’에 공감하는 한편 중국을 북한의 ‘믿음직한 후방’ 등으로 표현하며 역할을 약속했다. 또 김 위원장의 공식 방북 초청에 구체적인 방문 계획을 통보하며 화답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지원을 확보했으며, 향후 북·미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에서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 위원장은 또 방중 기간 “북한은 비핵화 입장을 계속해서 견지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유관국이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를 중시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한반도 문제의 전면 해결을 함께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호응이 절실하다.


사전 정지작업을 마무리한 김 위원장이 지금부터 할 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 주고받을 카드를 가다듬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다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을 유의해야 한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등 남측의 선제적 조치도 먼저 국제 제재가 풀린다는 보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기에 성공적으로 열리고 그것이 서울 답방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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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연행사들이 선물로 가져갔던 물건에는 종이, 먹, 부채, 우황청심환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우황청심환은 최고의 인기품이었다.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는 청심환을 먹고 어린아이의 경련이 씻은 듯이 나았다든지, 청심환 속에 신비의 물질 고빙(古氷·녹지 않은 얼음)이 있다는 등의 소문이 자자했다. 연행록에는 청심환을 얻으러 사행단을 졸졸 따라다니는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실려 있다. <열하일기>에는 청나라 유생 왕민호가 박지원에게 은 두 냥을 보내면서 청심환 한 알만 구해달라며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에도 청심환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조선의 우황청심환만 찾았다. 조선 청심환에도 가짜가 없었겠느냐마는 중국인들은 개의치 않았다. “북경 사람들은 청심환을 보배로 여겨 가짜임을 잘 알면서도 구하기를 마지않으니 이 역시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홍대용 <담헌연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_ 신화연합뉴스


조선의 명약 우황청심환의 위상이 흔들린 것은 한말 개항 이후다. 의학체계가 한의학에서 서양의학으로 바뀌면서 한방약도 서양 의약품에 밀려났다. 반면 중국은 개항 이후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중의학과 중국 약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살아남은 대표적인 의약방이 동인당(同仁堂)이다. 1669년 설립됐으니 350년 역사를 지닌 노포(老鋪)다. 동인당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황청심환 때문이다. 개혁·개방 후 동인당 청심환은 한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중국의 보따리장수들이 몰래 서울로 들여와 팔아 돈을 챙겼다. 한때 중국 여행객에게는 필수 구매 상품이었다. 작가 박완서는 단편 ‘우황청심환’에서 이러한 세태를 담아냈다. 


지난 9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의 동인당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30분간 머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북한이 생약 현대화·과학화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제약 공장과 의료기기 공장을 현대화하고, 의료 시설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통 의료가 북한만의 관심사일까. 남북 모두 동양 의약에 눈을 돌려 ‘조선 청심환’의 명예를 되찾기 바란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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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대화와 협상이 아닌 대안적 경로를 추진하겠다는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신년사의 전반적인 문맥을 고려하면 미국에 대한 단순 경고 성격이 짙다. 비핵화 의지를 거듭 밝히고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한 것이 그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이라는 전제를 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이 외투 자락을 슬쩍 열어 허리춤의 권총을 보여주는 것은 쏘지 않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까지 보냈다. 혹시라도 자신의 뜻을 오해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경고는 경고다. 특히 대안을 담은 경고는 새겨봐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새로운 길’과 연결지을 수 있는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이 변화가 없다면 (핵·경제) 병진노선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노동신문의 개인 논평이 그것이다. 그 직후 북한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미국이 공동성명 이행 아닌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면 구태여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병진노선 부활 가능성을 언급한 논평이 개인이 써낼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새로운 길’ 발언이 잘 짜여진 일련의 전략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오해’가 가능하다.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중국 베이징행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떠나기 전 환송 나온 인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김 위원장 오른쪽 뒤)도 방중에 동행했다. 연합뉴스

 

미국 언론들은 불에 덴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핵 대결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는 위협” “가시가 잔뜩 박힌 올리브 가지를 내민 김 위원장” 등의 해석은 과도하지만 왜곡으로 볼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북한의 ‘다음 수순’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단순경고였다면 의도치 않은 파장을 낳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신년사 직후 “나도 다시 만날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논평할 기회를 사양한다”고 밝혔다. 해석 불가다. 미국이 북한 신년사에 대한 논평을 거부한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얼핏 이해가 간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선 비핵화를 요구했다. 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는 처사였다. 북한은 비핵화-상응조치의 단계적 교환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인권문제까지 거론했다. 대화하면서 제재도 하는 이상한 협상이 6개월 넘게 계속됐다. 핵이라는 전 자산을 건 북한에 언제까지고 “김 위원장과 곧 만날 것”이라는 트럼프의 계속되는, 그러나 실현되지 않는 ‘희망고문’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북한의 인내심이 바닥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북한은 트럼프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에게 지난 1년여간은 워싱턴의 강고한 반북 및 반트럼프 연합 세력과 싸운 ‘투쟁의 기간’이었다.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는 불량국가로 붕괴의 대상은 될지언정 대화와 협상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북·미대화와 합의를 흔들었다. 이런 풍토 속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미대화 모멘텀을 유지한 것은 트럼프의 분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강력한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가 새 길을 찾지 않도록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정한 효능을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체육관 연설에서 확인한 바 있다. 15만 평양시민은 문 대통령이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핵위협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열렬히 환호했다. 북한 주민도 남한 주민 못지않게 평화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김 위원장도 깨달았을 것이다. 평화는 이제 남북 모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북한은 새로운 길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김 위원장 말대로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과 관련해 중국·러시아와 공조해 미국에 적대하는 방안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길일 수는 있어도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그 같은 냉전구도 속에서 과거 70년 동안 얼마나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북한에 ‘새로운 길’은 없다. 지금 진행 중인 북·미 협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 지난 7일부터 시작된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그 일환이기를 기대한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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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베이징에 도착, 10일까지 3박4일간의 중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북·미 협상이 더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4번째 방중은 의미가 있다. 미국 측도 북·미 간 협상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새해 벽두에 이뤄진 김 위원장의 방중이 북·미 핵협상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주목한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갔다는 신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롄을 급거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다. 이번에도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잡아놓고 우방인 중국과 전략을 조율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으로서도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국임을 강조해온 만큼 김 위원장의 방중이 반가울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협상을 제안한 만큼 이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중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품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덜어내기를 희망한다. 만에 하나라도 중국의 개입이 부정적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또다시 ‘중국 배후론’을 제기하며 북·미 간 회담을 틀어버리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7일 오후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과 리 여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10일까지 중국에 머물 예정이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은 그의 해외방문이 일상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번 방중에는 북한 경제전략의 핵심인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이 수행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경제개발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도 추진되고 있다. 북한의 정상국가화 및 개혁·개방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정보를 중국 및 북한 측과 사전에 공유해왔다고 밝혔다. 남·북·미에 이어 남·북·중 3국 간 북핵 협상을 둘러싼 협력이 선순환 구조로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다.

 

출처:경향신문DB

 

김 위원장의 방중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굳건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정부도 남북·북중·북미 간 교류와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추진되도록 중재자, 촉진자의 역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남·북·미·중의 평화협정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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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대 미국 연방의회가 지난 3일(현지시간) 출범했다. 의원 선서가 있던 하원의 첫날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정장으로 가득했던 본회의장에는 밝고 다양한 색상의 의상이 넘쳐났다. 민주당 진영이 특히 그랬다. 역대 최대인 102명의 여성 의원들 덕분이었다.

 

새내기 여성 의원들 중에서도 유난히 주목받은 인물이 있었다. 브롱스와 퀸스를 포함하는 뉴욕 14지구 출신 29세 최연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그는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평가할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코르테스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부모를 둔 히스패닉계다. 일상을 팔로어들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덕후이기도 하다. 그는 보스턴대를 졸업한 후 고향인 뉴욕 브롱스에서 웨이트리스, 바텐더로 생계를 꾸리며 시민운동을 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 그룹인 ‘정의 민주당원들’의 지원으로 선거에 출마했고, 당내 예비선거 때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10선의 거물 현역의원을 꺾었다.

 

의회 개원 첫날 하얀색 바지 정장을 입은 신인 코르테스가 핑크색 치마 정장을 입은 민주당 주류의 상징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포옹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이렇게 묘사했다. “경력의 정점을 찍은 78세 펠로시와 막 경력을 시작한 29세 통제불가 코르테스, 두 치열한 여성이 대통령 집무실의 72세 네안데르탈인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쳤다.”

 

코르테스는 샌더스 키즈답게 이념적으로 민주당 내에서 가장 왼쪽에 위치한다. 그는 의료 분야에서는 ‘모두를 위한 의료보장’, 교육에서는 ‘공립대 등록금 무료화’, 기후변화 부문에서는 ‘친환경 뉴딜’, 노동에서는 ‘보장된 일자리 프로그램’을 내세운다. 국가가 세금으로 모든 국민의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해 정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12년 안에 화석연료 제로(0)로 산업구조를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부자들에게 소득의 최고 70%까지 세금을 물리자고 말한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눈에 그는 뭣도 모르는 위험한 사회주의자다. 의원 선서 다음날 트위터에 화제가 된 코르테스의 동영상은 그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어나니머스Q’라는 트위터 계정은 코르테스 의원의 대학 시절 춤추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여기 미국인이 좋아하는 똑똑한 체하지만 사실 멍청하게 행동하는 사회주의자가 있다”고 적었다. 코르테스는 다음날 트위터에 의회 집무실 앞에서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며 역공했다. “공화당원들은 여성이 춤추는 걸 추잡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여성 의원 역시 춤을 춘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자.” 여론은 코르테스 완승으로 결판났다.

 

오히려 진짜 싸움은 민주당 내부 투쟁일지 모른다. 민주당 주류 시각에서 그는 당의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는 좌파 급진주의자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만약 남은 2년 동안 비현실적 제안 내놓기 경쟁을 한다면 우리가 집권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당내 좌편향을 비판했다. 좌파 티파티를 대표하는 코르테스가 민주당 주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그는 친환경 뉴딜 실현을 위한 위원회 설치와 하원 운영규칙 문제를 두고 펠로시와 맞붙었지만 모두 패했다.

 

코르테스는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는 CBS 앤더슨 쿠퍼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나라를 바꾼 사람들은 모두 급진주의자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는 급진적 결정을 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급진적 결정을 했다.” 코르테스는 영감을 주는 이상주의적 반항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순진한 시대착오적 반짝 신인으로 끝날까. 초선의원 코르테스의 투쟁 결과가 궁금하다.

 

<박영환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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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사람들 상당수는 그것이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한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인 언행은 장삼이사의 이야기 소재로 오래 회자됐다. 한반도에 핵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바야흐로 열릴 것으로 모두 가슴이 부풀었다. 그땐 그랬다. 


이젠 한·미동맹이 위기라고들 수군거린다. 비핵화를 놓고 북한과 샅바를 잡고 혈투를 벌이는 데 ‘아마추어’ 인사들이 국가안보 주요 자리를 꿰차고 있어 한·미 간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질 않아 핵협상 교착을 자초했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외교부 ‘워싱턴스쿨’로 대변되는 인물들의 대거 퇴진이 동맹위기 지표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불이 났는데도 유능한 소방수가 없다는 장탄식도 함께 터져 나온다. 진실의 실체에 얼마나 근접한 주장인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통으로 불리는 외교부 고위급 인사 다수가 약속이나 한 듯 세종로 청사를 떠났거나 한직으로 밀려난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1·2차장 모두 이전부터 북핵과 한·미 문제에 천착한 전문가들이 아니기에 ‘청와대 정부’에 미국통이 없다는 주장을 억견(臆見)으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전성시대를 향유한 ‘워싱턴스쿨’이 당시 한·미관계를 얼마나 견고하고 촘촘하게 다져놓았던가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 내지 검증의 잣대가 적용되어야 이치에 맞다. 이 시기에만 무려 다섯 차례의 북한 핵실험이 실시됐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를 추수(追隨)한 것 이외에 비핵화 관련해서 어떤 진전을 이루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재정립은 워싱턴스쿨의 유무와 관계없이 ‘기후변화’처럼 불가피하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정의와 공정성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이상을 무시하고 미국 우선주의 깃발만 높이 치켜든 트럼프시대에 일방주의가 강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 어떻게 결말을 짓든 트럼프 외교정책은 예비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 방향은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이다.


역외균형은 고립주의를 지향하지는 않지만 지역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당국이 스스로 해결할 것을 주문한다. 정글로 불리는 국제 문제에 미국이 사사건건 해결사로 나서주길 기대하지 말고 자국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다. 동맹이라도 안보 무임승차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장사꾼 트럼프는 동맹국들에 주는 방위비 보조금을 ‘부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에 비유했다.


주류 외교정책 엘리트들에게 적대적인 트럼프는 동맹국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하는 막대한 자원을 국내 인프라, 교육 그리고 연구·개발 분야 등에 투자하는 것이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여긴다. 그래야 미국의 우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스티븐 월트 교수처럼 역외균형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미군의 해외 주둔 역시 특정 국가가 해당 지역 패권국가에 의해 중대한 안보위협을 받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국익을 철저히 따져 극단적 위기상황이나 전쟁이 이미 발발한 경우가 아니라면 선택적 개입만 하자는 입장이다.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 접근법이다. 


또한 역외균형론자들의 주된 관심이 새로운 패권국가의 등장임을 감안할 때, 미국에는 중국의 부상이 가장 큰 도전이자 위협요소이다. 중국을 여타 국가들과 연합내지 동맹을 유인할 경제·군사적 능력을 갖춘 잠재적 패권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처럼 중국을 견제할 감제고지(瞰制高地) 역할을 한국이 나서서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시대 한·미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담대한 결심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100쪽이 넘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을 정독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오롯이 문재인 정부가 떠안고 가야 할 형틀일 수 있겠다는 비감(悲感)이 새해 벽두부터 떠올랐기에 하는 말이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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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이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 한국 함정과 일본 초계기의 기동을 둘러싼 신경전이 보름간 이어지던 끝에 지난 6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법적 대응을 지시했다. 일제 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을 상대로 재산 압류를 신청하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한 것이다. 최근에는 양국 누리꾼들까지 상대방에 대한 댓글공세로 가세하고 있다. 군사적 사안을 놓고 양국이 충돌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양국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데는 국내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이 숙원인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과의 갈등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레이더 문제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공세를 아베 총리가 직접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자산 압류 신청에 대한 국제재판소 제소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한일청구권협정과 무관하게 개인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사법부의 독자 판단을 무시한 채 행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할 때 한·일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떨어지는 지지율을 독도 방문으로 만회하려다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정부와 정면충돌해 최악의 갈등을 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아베 총리 내각의 지지도가 40%를 턱걸이하는 정도로 떨어져 있는데, 오는 7월 개헌을 좌우할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갈등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면 양국관계를 결정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양국 간 갈등 중재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유관순(뒷줄 맨 오른쪽)을 비롯한 이화학당 학생과 교사의 사진. 3·1운동에는 이화학당 등 여학교 학생들이 적극 참여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한·일 양국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갈등이 더 이상 심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양국 모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우선 군사당국은 추가적인 공세를 자제한 뒤 증거를 토대로 초계기 근접 비행과 레이더 조사 여부에 대한 진상을 가릴 필요가 있다. 외교 채널도 적극 가동해야 한다. 특히 아베 정부가 외국 법원의 판결까지 부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공세가 한·일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아베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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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완전한 비핵화’를 다짐하면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나도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화답했다. 트위터의 짧은 메시지이지만 신년사가 나온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답변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다. 새해에도 여전히 북·미 양측이 2차 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관건은 양측의 이런 의지가 조속히 협상 재개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비핵화 로드맵과 상응조치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고위급회담에서 조율한 뒤 2차 정상회담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고위급회담을 지난해 11월 초순 뉴욕에서 개최하려다 연기한 이후 양측은 두 달 가까이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방침을 밝혔으며,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선제조치를 평가절하하고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은 북한이 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통해 ‘미국인 북한 여행금지’ 재검토 등 유화책을 제시한 것이 최근까지의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더 이상 핵을 만들지도 않고 시험·사용·전파하지 않겠다”는 핵동결 입장도 밝혔다. 종전보다 한 발 진전된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언급과 방침을 주의 깊게 음미하고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회담 테이블에 북한이 앉을 수 있는 여건을 적극 조성해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대화의지만 표명한다고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도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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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미국 상원에서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후보자 인준 청문회가 열렸다. 인준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마틴 루서 킹 목사 부인이 과거 세션스를 비판하며 상원에 보낸 편지를 낭독했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넬 원내대표는 사문화되다시피 한 상원 규정을 끄집어내 ‘워런 의원 발언 금지’를 안건으로 상정해 가결시켰다.

 

매코넬은 “워런은 경고를 받았다. 설명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요하게 계속했다(Nevertheless, she persisted)”고 입장을 밝혔다. 워런의 규정 위반을 강조한 것이지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요하게 계속했다”는 표현은 워런의 투쟁과 진보주의자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부상했다.

 

미국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워런은 ‘싸움꾼’을 자처한다. 2014년 펴낸 자서전의 제목이 <싸울 기회>(A fighting Chance)다. 이 책에는 싸움(fight)이란 단어가 200회 넘게 나온다. 최근 출간된 저서 또한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This Fight is Our Fight)란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실을 전하면서, 자본의 로비에 넘어가 대기업 편에 선 정부와 정치인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흙수저’ 출신으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에 이른 그는 금융규제 강화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일관되게 주창해왔다.

 

2018년의 마지막 날, 워런이 예비 선대위 출범을 알리며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영상에서 “미국의 중산층이 공격받고 있다”며 부자·대기업에 유리한 감세정책을 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다. 뉴욕타임스는 ‘대기업 이익에 맞서 싸우는 전사’라는 워런의 정치적 브랜드가 자산이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최근 워런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주 유력지 보스턴 글로브는 워런이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며 불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워런은 자신을 둘러싼 회의론에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자서전 <싸울 기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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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북·미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의 주동적, 선제적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 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 (북·미관계가) 빠른 속도로 전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경제발전 기조를 분명히 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환영한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그해 북한의 국정 방향과 외교의 기조를 밝히는 절대 지침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신년사에서 확고한 비핵화 의지와 함께 북·미관계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밝혔다. 핵무기의 시험, 생산, 사용, 전파 등 ‘핵 4불 원칙’까지 언급하면서 북한 내부를 향해 비핵화를 통해 경제개발에 치중하겠다는 국정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핵 문제를 풀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집무실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남측에 대해서도 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상당히 덜어낸 만큼 남북경협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평가하면서 평화체제 전환을 본격 추진하자고 밝힌 것도 같은 흐름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접견실의 낮은 소파에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30여분에 걸쳐 차분하게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 측근들과 함께 입장하는 등 종전과 다른 파격적인 모습으로 정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려 한 것이다.

 

문제는 북·미 양측이 어떻게 교착 상태에 있는 협상의 물꼬를 트고, 올 상반기 중으로 비핵화 조치의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만큼 미국이 응답할 차례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만 할 게 아니라 적극 협상에 나서야 한다. 최근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조야는 국내 정치와 무관하게 초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여전히 긴요하다. 북한이 경제개발에 나서려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가 전제 조건이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언급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해 제재를 풀라고 촉구한 것이다.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남북 간 군사긴장 완화 조치를 착실히 추진해 나가면서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대화 뒷받침 등 할 일이 많다. 북·미 고위급 협상과 2차 북·미 정상회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등 일련의 과정이 올 상반기 중에 순조롭게 이행되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풀기 어렵다. 모처럼 맞은 기회를 남·북·미 모두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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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가 밝았다. 일본에서는 새해 첫날인 ‘오쇼가쓰’를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즐긴다. 신사나 절을 찾아 한 해의 소원도 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29일부터 휴가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2019년이 어느 해보다 뜻깊은 해가 되길 바랄 것이다. 그는 올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등극을 앞두고 있고, 비원(悲願)인 평화헌법 개정에도 나선다. 장기 정권의 ‘레거시(정치적 유산)’로 북방영토(쿠릴 4개섬) 문제 해결도 노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이어갈 수 있다. 오는 8월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2798일)을 넘어서고, 11월엔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기 재임 총리가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개헌과 북방영토 해결을 올해 목표로 잡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정 헌법의 2020년 실시를 내걸었다. 자민당도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설치 근거를 두는 당 개헌안을 지난해 3월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오산의 연속이었다. 사학 스캔들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소극적인 태도, 전면 배치했던 측근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당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이달 하순 정기국회에서 당 개헌안을 제출할 생각이지만,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전 국회 개헌 발의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개헌 발의를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고 내년 상반기까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 이런 안이 현실화할 경우 참의원 선거 결과가 개헌을 크게 좌우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2019년은 러시아”라며 북방영토 문제 해결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코탄·하보마이 섬을 일본에 인도하는 내용을 담은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기초해 평화조약 협상을 가속하기로 했다. 오는 21일 모스크바에서 가질 러·일 정상회담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진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다만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푸틴 대통령이 2개 섬 인도에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설혹 2개 섬 반환에 합의해도 아베 총리가 당초 4개 섬 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방침을 바꾼 데 대한 여론의 반응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중·참의원 ‘더블 선거’ 얘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북방영토 협상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는 이유로 중의원을 해산한 뒤 중·참의원 동시 선거를 치러 개헌 정족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의 ‘빅 이벤트’인 북방영토 협상, 참의원 선거, 개헌 발의가 얽히고설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해 소원이 대부분 그렇듯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가 뜻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장기 정권에 필연적인 ‘레임덕’이 새 일왕이 즉위하는 5월1일을 기점으로 시작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도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다.

2019년은 돼지, 일본에선 멧돼지의 해다. 멧돼지는 무병장수와 용맹·모험을 상징한다. 저돌맹진(猪突猛進·앞뒤 안 보고 목표를 향해 돌진함)이라는 말도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6년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 알 권리 침해 우려가 있는 특정비밀보호법, 범죄를 계획 단계부터 처벌할 수 있는 공모죄법 등을 여론의 반대에도 강행 통과시켰다.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나눠 사회를 갈라놓는 수법도 두드러졌다. 그가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멧돼지처럼 무턱대고 돌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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