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상황으로 치닫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평양정상회담으로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난기류에 휩싸이는 분위기다. 2017년의 전쟁위기 이후 엄청난 평화의 반전을 이루었던 2018년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분위기는 조금씩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 ‘평화 만들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정상회담들과 급진전으로 합의가 이어졌던 것과 상대적으로 속도가 비교돼 현재의 난기류가 더 불안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일단 문제의 핵심은 미국이다. 전형적 ‘강짜 부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신뢰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으며,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레짐을 약속했음에도 여전히 대북 불신은 변함없다. 일방적 양보만을 요구한다. 북한은 이미 이례적으로 양보를 했고,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추가 양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만 무한반복하고 있다. 트럼프도 북한에 아무것도 양보한 것이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떤 조건에서 어떤 양보를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면서 북한의 전적인 굴복만 요구한다. 

 

미국은 한국을 향해 남북관계 진전이 비핵화를 앞서선 안된다고 압박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있는 위치를 밝히지는 않으면서 앞서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논리의 오만일 뿐이다. 로드맵이나 계획을 한국과 의논하는 것이 공조의 본질이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한·미 워킹그룹을 공조를 위해 만들었고, 쌍방향 논의의 틀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미국이 한국을 제어하려는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인식이 부담이 됐는지 남북 공동철도조사를 제재 예외로 인정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조사를 넘어 철도 연결까지 인정해야 비로소 여론 무마를 위한 제스처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아마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선제적으로 비핵화를 완성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의 구두약속만 믿고 모든 카드를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리비아에 대한 약속 위반을 목격한 북한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의 불신상황에서 핵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신고하는 것은 미국에 폭격리스트를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불가하다는 말이다. 미국은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해법이 없다. 트럼프는 해법을 모르고, 강경파는 해법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핵화는 사실상 북한이 굴복하고 핵을 포기해야 해결되는 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의 포기를 유도하고, 특히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처럼 포장해줘야 한다. 북한에 자존심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체제 유지의 핵심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모르거나 또는 알고도 패권의 힘을 보여주며 제압하려 한다. 여기에는 트럼프와 강경파가 일치한다.

 

난기류는 비행 중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서우나 비행기를 추락시킬 만큼의 위협은 아니다. 호흡을 고르고, 안전띠를 매야 할 시점인 것은 맞다. 매우 단기적으로 관리 모드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연내 종전선언, 연내 김정은 답방, 트럼프 1기 임기 내 비핵화 완료 등 남북이 타임라인들을 제시했던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시한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고, 당분간은 관리모드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속도조절론에 동의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비핵화도 평화도 모두 비가역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치고 나갈 시점을 노려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계속 국면을 장기화하고 압박만 지속한다면, 우리가 나서야 한다. 미국의 눈치만 보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팀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지금까지 나름의 역할을 했다지만 사실 실력보다는 평창의 도움과 북한의 조응, 그리고 트럼프의 소위 ‘하드캐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행운이 따랐다. 실력을 보여야 할 결단과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세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혼자 가지 말고 소통하라!’ 반대자들은 물론이고 지지자들을 외면하는 독주는 갈수록 고립과 반발을 초래할 뿐이다. ‘부딪치고 협상하라!’ 미국 말을 듣고 번역만 하지 말고 설득해내고 필요하면 맞서야 한다. 자신 없으면 내려오는 편이 낫다. 마지막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주도하라!’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것이고, 이 기회를 놓치면 민족과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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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수입 자동차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 “우리에게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들은 수십년 동안 미국을 이용해 왔다.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며 “제너럴모터스(GM) 사태 때문에 지금 그것(관세부과)이 검토되고 있다”고 썼다. ‘관세폭탄’으로 자동차 수입을 막아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GM이 미국 내 공장의 문을 닫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무역장벽을 세우겠다는 이기주의가 또 불거질 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시시피주 빌럭시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 참석,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부터 특정 제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 초안을 제출했고, 조만간 최종 보고서가 완성될 예정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관세부과 여부를 결정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에 관세장벽이 세워지면 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물론 철강, 석유화학 등 관련 산업들도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지난해에만 85만대가량을 미국에 수출한 한국도 자동차산업의 뿌리가 흔들리는 충격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자동차 부문을 양보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정문에 서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무역확장법 적용 면제를 요청했지만 확답을 받진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8월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왼쪽)이 전달한 ‘레드카드’를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이미 세계 경제에 주름살을 키우고 있다. 많은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내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암초로 미·중 무역전쟁을 꼽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전쟁은 전 세계가 반대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고율관세로 수입품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상대국의 보복관세까지 더해져 미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동차 부문의 무역전쟁까지 추가되면 세계 경제는 공멸의 길로 갈 수 있다. 마침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계기로 치명적인 무역전쟁을 끝낼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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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3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하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다고 양국이 28일 발표했다. 회담의 시간·장소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협의 중이라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밝혔다. 문 대통령의 북·미대화 중재가 긴요한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최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큼 지지부진하다. 이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이 열리지 않은 데 이어 다음달 중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회담까지 사실상 무산됐다. 이런 상태로 올해를 넘기면 북·미대화의 동력이 약화돼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면 전환이 시급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북·미 모두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차기 대선 등 국내 정치 측면에서 북한과의 협상은 버리기 어려운 카드이다. 북한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며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미 국무부가 이날 북·미 고위급대화를 위해 “다양한 수준에서 북한과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문 대통령이 당장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묘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마침 미국이 결정한 유엔의 대북 제재 면제조치로 남북의 철도연결을 위한 공동조사가 30일 시작된다. 남쪽의 열차가 신의주와 두만강까지 북측 철도 구간을 달리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설명함으로써 대북 제재완화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이끌어낸다면 상당한 소득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북한의 핵시설 폐기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중재도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북·미 고위급회담 성사 단계에서부터 주요한 동력을 제공해왔다. 정상들이 이끌어가는 톱다운 방식의 북·미 간 대화는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급격히 추동력이 약화되는 허점을 드러내왔다.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할 때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고위급회담, 실무회담이 속속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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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담 후세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 우다이, 차남 쿠사이다. 사담이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 뭐든지 하는 인물이라면, 그 유전자는 두 살 터울인 두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졌다. 형제는 절대군주인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권력 승계를 위한 충성 경쟁을 하며 괴물이 됐다. 우다이는 ‘늑대’, 쿠사이는 ‘뱀’에 비유됐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마구 죽였다.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떤 짓을 해도 거리낄 게 없었다.

 

사담은 두 아들 중에서 쿠사이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쿠사이는 아버지의 옷차림, 콧수염 같은 용모를 따라했다. 시아파에 대한 대규모 숙청과 각종 암살을 주도했다. 반면 즉흥적, 쾌락적 성향으로 진즉에 아버지의 눈 밖에 난 형은 동생을 시기하고 증오했다. 형제는 미국의 대공습 때 북부 모술의 빌라에 함께 있다 한날한시에 죽었다. 2003년 7월의 일로, 그때 나이 39세, 37세였다.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도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자식이었다. 아들 7명, 딸 1명인데 이들 대부분을 영국, 덴마크,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유학시킨 뒤 정부 요직을 나눠줬다. 자식들 중에서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후계 구도에서 가장 앞섰다. 런던 정경대(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이프는 개혁가를 자처하고 서방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을 통해 독재자 2세의 DNA는 여실히 드러났다. 2011년 2월 혁명의 물결이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에 상륙하자, 자식들이 ‘카다피 가문’의 리비아를 지키기 위해 총대를 멨다. 사이프도 전투기로 시민들을 폭격했다. 분노한 민심에 형제들의 반은 죽고, 반은 옆 나라로 도망갔다. 카다피 왕국은 42년 만에 무너졌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형이 살아 있었다면 영국에서 안과의사를 계속했을지 모른다. 후계자인 형이 교통사고로 죽고, 6년 뒤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하면서 35세 때인 2000년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그는 취임 이후 국영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도입, 정치범 석방, 부정부패 추방 등을 추진해 혁신적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화학무기로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최악의 학살자가 됐다. 철권통치자인 아버지보다 더한 독재자가 됐다. 사이프와 바샤르에게 개혁은 포장이었다. 권력의 기반을 다져 장기 집권으로 가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지난 두 달 동안 국제 뉴스의 중심에 있었던 2세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의 아들이자 실권자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이다. 권력을 향한 집요함과 공격성으로 무장한 폭주기관차다. 그는 온건 이슬람 표방, 여성의 운전 허용, 탈석유 시대를 위한 ‘비전 2030’ 등 개혁적 행보로 서방의 눈길을 끌었다. 반면 사촌형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감금해 왕위 계승권을 빼앗고 잠재적 라이벌인 사촌들을 체포해 항복을 받아냈다. 예멘 내전, 카타르 단교 등으로 중동 정세를 뒤흔든 것도 무함마드다. 이런 그를 비판하는 재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달 2일 피살되자 국제사회는 무함마드를 바라봤다. 대낮에, 외국의 공관에서 카슈끄지를 죽였다는 건 최고위층의 지시나 묵인 없이 불가능하다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사우디는 남들이 비웃건 말건, 무함마드는 ‘레드 라인’이니 건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사우디의 영향력이 미치는 중동국가들은 사건 초기부터 사우디 왕실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번 일이 무함마드의 권력 승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고, 무함마드가 집권하면 적어도 30년 이상 갈 텐데 밉보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 정부의 최종 입장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보국(CIA)이 무함마드 지시로 결론내렸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함마드가 관여했든, 몰랐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트럼프의 면죄부는 보편적 가치 대신 사우디의 전략적 가치를 앞세운 결과다. 트럼프는 사우디를 핵심축으로 놓고 이란 고립·봉쇄 등 중동 전략을 짜왔다. 여기에는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무함마드 라인이 있다. 무함마드 입장에서도 궁지에 몰린 자신을 ‘믿는 척해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무함마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연합, 바레인 등을 방문한다. 무함마드의 무관함을 믿어준 나라들이다. ‘보은 방문’인 셈이다. 무함마드는 이달 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서방 지도자들이 무함마드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진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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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23일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를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기로 의결했다. 한국 정부가 철도 공동조사에 필요한 유류 등 물품을 북한으로 가져가는 것을 안보리 대북 제재에서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하자,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이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남북협력 사업이 북핵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한 데 따른 조치이다.

 

청와대가 이번 조치를 “남북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고 평가했는데 그럴 만하다.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유엔의 제재 면제는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에 대한 물품 반입이 있었지만 이는 기존 시설을 보수·확장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새로운 사업을 승인한 것으로, 남북은 다음주 철도 연결을 위한 조사에 착수하게 되며, 나아가 연내 착공식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대북 제재 해제 조치가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유엔사가 남북군사합의 이행을 지지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내년 봄 독수리훈련의 범위 축소를 밝힌 데 이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북·미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청신호를 잇따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쉬운 것은 이번 제재 해제 조치가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남북이 공동조사 후 철도연결 사업에 본격 착수하려면 별도로 제재 면제를 신청해 예외로 인정받아야 한다. 남북사업에 대한 제재 해제의 폭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남북 간에 합의된 협력 사업 전반에 걸쳐 제재 면제를 폭넓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인 목적이 대북 제재가 아니라 비핵화인 만큼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다음주 아르헨티나에서 한·미·중 정상들이 모두 참석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북·미 고위급회담도 열릴 수 있다고 한다. 북·미대화를 촉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북·미 간 협상이 더딘 것은 양측 모두 오랜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한 탓이다. 이제는 북·미가 비핵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과감한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철도연결을 위한 대북 제재 해제가 양측 간 신뢰를 쌓는 든든한 초석이 되어 향후 북·미대화 진전을 촉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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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당국이 22일 유해공동발굴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을 잇는 도로를 개설했다. 도로는 길이가 북측 1.3㎞, 남측 1.7㎞ 등 총 3㎞가량이며, 폭은 최대 12m이다. 2004년 12월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해 동해선 도로를 개통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정중앙인 철원지역에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남북은 DMZ에서 각각 GP 10개를 시범적으로 철거하기로 하고, 지난 20일 북한이 먼저 폭파방법으로 작업을 완료했다. 북한의 선제적 GP 철거는 남북군사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

 

남북의 GP 철거와 DMZ 내 전술도로 연결은 남북 간 군사 분야 신뢰구축의 실질적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곳에서 지뢰를 걷어내고 도로를 연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앞서 남북의 군인들은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남북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남북이 합의대로 연말까지 GP 철거에 대한 상호 검증을 완료하고, 내년 4월부터 유해공동발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북 간 비무장지대를 통한 왕래는 더욱 활발해진다. 이런 차에 내년 봄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을 축소하겠다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밝혔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축소함으로써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남·북·미의 잇단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탄력이 붙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남북 간 관계 개선은 과거와 달리 경제가 아닌 군사 분야가 선도하고 있다. 이것이 가져오는 남북 간 긴장완화 효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직접적이고 다대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일은 아니다. 군사 분야 외에 철도·도로 연결, 산림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간 합의가 신속히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남북 간 합의 이행이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일상화·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 간 관계 진전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불가역적인 단계로 접어든다. 마침 미국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철도 연결이 남북 간 경제 분야 협력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제자본의 북한 투자가 성사된다면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위협은 무의미해진다. 북한의 비핵화를 가장 견실하게 담보하는 방안은 결국 북한이 경제개발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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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반도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변화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용기 있고 창조적인 외교의 결과이다. 두 정상은 중단되었던 남북대화와 협력을 재개한다는 뜻을 우선적으로 밝혔다.

 

남북한 화해의 계기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2017년 말까지 폭발 직전의 위험한 상황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형성되었기에 남북 화해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전례 없이 짧은 기간에 ‘올림픽 화해’가 이루어지고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함으로써 한국인 스스로 한민족과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고자 함을 보여주었다.

 

2018년 4월27일 사상 세 번째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결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역사적인 문서가 실행되면 남북은 평화공존으로 향하는 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언문의 핵심은 8000만 겨레와 지구촌에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이 없음을 엄숙히 선언한 것으로 이는 또한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세계는 남북의 합의사항 실천의지를 보았다. 판문점선언 100일을 맞아 발표된 청와대 자료에는 판문점선언으로 남북 국민들이 전쟁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와 대화가 일상화되었음을 평가한다.

 

5월의 판문점 정상회담과 9월의 평양 정상회담은 이러한 면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들이다. 5월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는 한민족의 이해에 관련된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들에 대해 남북 정상이 신속히 대처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남북 정상의 공조로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9월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은 한반도 운명을 결정하는 데 남북이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에 기록된 정치적 합의들을 구체화하는 진전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중요한 행보를 내디뎠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와 특히 북·미 간의 평화구축 및 적대관계 청산 중 어떤 것이 선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견이 계속 표출되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가 우선순위임을, 북한은 그 반대거나 적어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 초 합의한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조항에 근거하여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남·북·미의 정상들이 그들 앞에 놓인 역사적 책무를 충분히 인식하고 지난 세월 열리지 않았던 ‘기회의 창’을 공고한 평화와 지속적인 협력을 보장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대북 제재의 완화”라는 ‘솔로몬식 해법’을 되새겨 보길 권고한다.

 

러시아는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환영한다. 러시아는 이 과정이 한반도의 오랜 위기상황을 해소하고 남북관계 정상화와 동북아에 보다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정세가 구축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남북의 화해와 관계개선은 러시아에 매우 중요하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 주요 관점에서 러시아의 이익에 부합한다.

 

첫째, 러시아는 극동지역 국경에 접해 있는 긴장의 진원지가 사라지는 데 주목하기 때문이다. 긴장과 갈등의 진원지는 대부분 남북관계의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생겨나 커져 왔었다.

 

둘째, 한반도와 그 주변의 긴장은 남·북·러 3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자경제협력 실천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왔음이 누차 입증되었다. 한국의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을 유치하여 시베리아와 극동러시아 지역에 경제프로젝트들을 실현함은 모두에게 확실한 경제적 이득을 줄 뿐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러시아는 남북한에 수시로 환기시켜왔다. 역으로 이 프로젝트들의 실현은 남북 간의 상호 이해, 신뢰, 협력 심화에 다시 일조한다.

 

다시 말해 국가 안보와 경제적 실리 모두에서 러시아에 남북관계 정상화는 오직 이득이 될 뿐이다. 그러기에 2018년 일련의 남북정상회담들에서 합의된 사항들이 실현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길 러시아는 진심으로 희망하며 우호적인 통일 한국이 한반도에 탄생하는 미래를 변함없이 지지한다.

 

이미 성사된 남북정상회담과 앞으로도 이어질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는 단순한 지역적인 사건으로서의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 안정의 큰 이정표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냉전 시대의 유물로 남아있는 마지막 긴장의 진원지 중 하나가 극복되는 데 기여하고 ‘한반도 비핵화’ 확립에 도움이 됨을 확신한다.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한국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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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를 곱씹어 보겠습니다. 대북정책의 미래가 큰 관심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위해 북·미관계 개선을 서둘러왔습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진전이 이전만 할 순 없겠죠. 당장 고위급회담도 취소됐고 백악관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했으니 국정운영 전반이 경색되고 북·미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있죠. 북·미 협상을 비판하던 빅터 차의 기관이 북한 ‘비밀’ 미사일 기지를 찾았다며 호들갑 떤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접근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미국 정치는 2020년 대선 국면을 맞습니다. 대결이 더 치열해지면서 트럼프는 의회 견제가 작은 영역, 즉 외교에 집중할 겁니다. 핵문제 해결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면서 북한과는 대화하고, 이란과는 대결하며 성공이라 자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14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중요한 이슈도 있습니다. 이민 문제가 그중 하나죠. 이는 트럼프 정부 핵심 관심사입니다. 대선 캠페인 때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자고 해 재미를 봤죠. 올해는 ‘캐러밴’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수천명의 중미 난민이 미국으로 향하자 트럼프는 이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군대마저 배치했죠. 덩달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민병대를 조직해 국경으로 향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난민 행렬을 안보 위협으로 믿고 있습니다. 난민에 범죄자가, 특히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다며 트럼프 선동에 환호하죠. 난민 수천명이 미국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미 1000만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가 일상의 일부가 돼 있는 마당에 몇만명이 와도 표도 안 날 겁니다. 게다가 군대로 막을 수 있는 국경도 아닙니다. 겁박과 생색일 뿐이죠.

 

이런 선동이 먹히는 데에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백인 땅에 유색인종이 몰려와 백인문화를 흐리고 그들만의 미국을 바꿔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죠. 트럼프는 자기 정치력을 위해 이를 교묘히 이용합니다. 각종 정책이나 발언을 통해 인종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킵니다. 이제껏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이들은 대통령의 ‘재가’에 황송할 수밖에요. 여기에 각종 가짜뉴스가 이런 분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유대교 회당에서 백인 총기 테러로 11명이 목숨을 잃었죠.

 

왜 우리가 미국 이민 문제에 주목해야 할까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예멘 난민 논란으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잔인성은 비밀이 아니니까요. 나와 다른 이를 타자로 구분해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특정 종교 신자, 장애인, 정부 등 무차별적입니다. 가짜뉴스가 이들의 공포와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점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이들의 선동과 극우행태도 폭력으로 이어졌죠. 미국 같은 극단적 사태가 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돌이켜 볼 점은 중간선거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미국 선거는 조금 복잡합니다. 상원의원 임기가 6년, 대통령은 4년, 하원의원은 2년이죠. 그러다 보니 2년마다 연방정부 선거가 있고 대선과 대선 중간의 선거, 즉 중간선거를 치릅니다. 덕택에 유권자들은 정부를 평가할 기회를 얻죠. 덕택에 트럼프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과 공화당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유권자도 그런 기회가 필요하지 않나요?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현재 112석으로 총 의석의 37%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은 20%에 불과하고 정책 대안은커녕 말도 안되는 생떼만 부리고 있죠. 이들 대부분은 박근혜 허깨비 정부에 조력, 방관하며 사또질을 해댔습니다. 처절한 반성도 모자랄 판에 가짜뉴스에 기대서 부활을 꿈꾸고 있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던 게 불과 몇개월 전이었지만 이제 태극기세력은 우익의 근간이라며 들썩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다 같이 밀고 나가도 힘겨울 판에 귤상자마저 걷어차며 씩씩거리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2020년까지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민주주의라면 참 모자란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들의 고함에서 배웁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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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전날 공개한 북한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충분히 인지한 내용이며, 새로운 것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며 CSIS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대해서도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국가정보원도 14일 북한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이미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통상적 수준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히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새로울 것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북한 미신고 미사일 기지’ 의혹은 하루 만에 진화되는 양상이다.

 

CSIS의 보고서는 처음부터 부정확한 사실과 이미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진 미국 조야와 한국의 반북세력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개발을 멈추거나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국내 보수세력들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실확인 차원의 설명을 하자 “북 대변인 행태”라고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워싱턴_AP연합뉴스

 

미국의 싱크탱크와 언론이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 분석과 전망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NYT가 보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뜻밖이다. 부디 팩트 체크가 부족해 벌어진 실수였을 뿐, 정치적 저의가 없었기를 바란다. 

 

그간에도 미국의 싱크탱크나 언론이 대북 강경론을 부추기는 보고서나 보도로 북·미 협상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다. 그런 만큼 중간선거로 민주당이 미 하원을 장악한 정국구도 변화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한 메커니즘이 본격 작동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신속히 진화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대북 회의론은 앞으로도 북·미 협상 과정의 틈새를 꾸준히 노릴 것이다. 이번 해프닝도 북·미 협상의 교착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이 커진 시기에 불거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기로 목표를 세운 이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집중력 있게 협상을 이끌어나갈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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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중간선거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반대하던 후보들은 패하고, 이를 지지하던 후보들은 승리했다. 이제 물러설 이유도 없으니,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중국과 무역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뭘까? 그리고 이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싸움의 본질은 미·중 간 패권다툼이다. 특히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확고한 우위를 얻고자 한다. 세계화의 역사를 통해 세계는 무역에서의 승리가 언제나 기술우위를 갖는 나라에 돌아간다는 것을 학습해왔다. 중국이 기술굴기를 위해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고안하고, 시진핑이 반도체 칩 제조기술 확보에 정부 보조를 아끼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싸움 이면에서 ‘중국제조 2025’를 저지하고 ZTE(중싱통신)나 푸젠진화와 같은 중국 기술기업의 부상을 막고자 미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자유주의 무역체계의 ‘규칙’을 따르겠다던 중국의 약속도, 트럼프의 ‘더 공정한 무역’이란 말도 이 싸움 앞에서 모두 공허하다. 중국은 WTO 협정을 어겨서라도 기술 자급력을 높이려 하고, 트럼프는 자국 경제의 미래에 실존적 위협이라며 WTO 협정의 빈 틈인 국가안보를 이유로 WTO 협정에 반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 ‘무역’은 기술우위를 점하기 위한 세계적인 싸움터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미·중 간 싸움이 봉합된다 해도 여전히 무역은 규칙 위반자들과의 덜 공정한 게임이 될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높고 여러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는 우리는 이 싸움에서 특히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세계화된 제조 네트워크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지만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조차 기술우위를 잃어가고 있다. 기술융합과 트렌드 창출을 바탕으로 한 현재의 첨단기술은 전문성 있는 다수 기업이 협력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어야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 기술분야는 수직화되고 경직된 협력체계를 아직 못 벗어나고 있다. 무역에서 기술우위를 잃은 국가는 뒤처진 기술에서만 주로 고용이 창출되고, 뒤진 기술의 임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우리도 첨단기술 발전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과 체질 개선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막는 방패가 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일본은 RCEP와 CPTPP를 통해 우리와 새롭게 자유화를 협상하게 된다. 일본은 여러 첨단기술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서고 이 기술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 두 협정을 준비해왔다. 뒤진 기술분야의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에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무분별한 자유화는 성장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다. 전문가와 협상의 달인들이 모여 자유화를 늦춰야 할 기술과 시급히 자유화해야 할 기술을 가리고 이를 정교하게 협정문에 반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기술을 발전시키고 지켜낼 역량이 있어야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이지수 호서대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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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 전쟁 이후 계속된 미국의 제재 속에서 핵무장을 했다. 제재는 핵무장을 막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아니, 핵개발을 부추기는 나쁜 방법이었다. 미국은 68년에 걸쳐 입증된 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제재가 비핵화 전환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믿는다. 이런 신념체계를 지닌 세계에서 북핵 문제가 교착 상황에 처할 때 내릴 수 있는 처방은 제재 강화밖에 없다. 제재 시간이 길수록 제재받는 쪽의 고통은 커지고, 그로 인해 굴복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 논리를 배반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 6개월~1년의 단기간 핵 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북한은 당연히 거부했다. 이때 트럼프는 깨달았을 것이다.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북한을 강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2년 내 핵 폐기를 목표로 하자는 김정은의 유혹적인 제안에 “시간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뿌리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국 중간 선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7번이나 반복했다. 주문을 외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 같았다. 중간 선거 이후 혹시 대북 접근법이 변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품지 못하게 일찌감치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앞으로 미국이 할 일은 북한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접근법,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시간이 갈수록 오바마를 닮아간다는 말을 트럼프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정말 트럼프 편이어서 그의 성공을 보장할까? 북한은 이미 주변국과의 관계를 상당히 개선했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 대립하는 사이 북한이 숨 쉴 구멍은 더 커졌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생존 공간은 확장될 것이다. 이 공간을 제재로 다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북한은 제재에 내성이 생긴(sanction-proof) 경제 체제로 진화했다. 시간을 견디는 일에 관한 한 누구보다 익숙하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대통령·부통령·국무장관이 차례로 나서 앵무새처럼 제재 제재 하고 있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12일 마치 북한이 미사일 기지 13곳을 숨겨놓은 것을 적발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렇게 하면 북한이 겁을 먹고 핵 폐기에 나설까? 아니면, 쉽게 핵을 포기해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져먹을까? 제재 우선 정책은 북핵 문제 해결책이라기보다 ‘김정은에 속고 있다’는 미국 내 비판을 의식한 알리바이용이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나쁜 행동이며, 따라서 핵을 가진 북한과 협상하는 것 또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사고가 퍼져 있다. 핵 무장 이전 상태로 돌아간 북한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그런 조건에서만 북한과 실질적인 주고받기 협상을 하는 걸 바람직하게 여긴다. 이 원상회복론은 현실을 거부하는 접근법이자 책임회피의 논리다. 과거 미국의 대북 실패 없이는 북한 핵무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힘을 국가 관계를 지배하는 주요 요소로 본다. 불신이 쌓인 북·미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오랜 대결 역사에서 양측은 힘을 믿었지, 상대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선의를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북한은 비핵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만한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사랑한다고 했다. 선의의 교환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비핵화와 관계개선 합의라는 화해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북·미가 힘에 의존할 때는 북핵 문제를 악화시켰지만, 선의에 약간의 기회를 줬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활발한 대화와 비핵화 진전을 가져왔다. 힘이 힘을 부르고, 선의가 선의를 부른 것이다. 제재와 압박은 비핵화의 조연이지 주연이 아니다. 핵 신고, 종전선언을 둘러싼 협상 과정에 불신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대화가 막힌 지금 부족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전략적 선의다.

 

권정근 북한 외교성 미국연구소장은 “우리가 주동적이고 선의적인 조치로서 미국에 과분할 정도로 줄 것은 다 준”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은 핵·경제의 병진노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암시를 했다. 선의라는 연료로 달리던 비핵화 열차에 선의가 바닥나고 있다. 북한이 제재 때문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북한 의사에 반해 핵 폐기를 강제하겠다면 전쟁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할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핵 폐기의 길로 가도록 유도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핵 폐기를 북한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지만, 선의 없이는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온 것은 ‘사랑’ 때문이지 채찍 때문이 아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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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신고되지 않은 북한 :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운용 중인 약 20곳의 ‘미신고(undeclared) 미사일 운용 기지’ 중 13곳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CSIS는 한 민간 위성업체가 지난 3월29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들어 이같이 주장하고, 비밀 미사일 기지 중 한 곳이라며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기지’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도 이 보고서를 인용, “위성사진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군당국은 “한·미 정보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며 “삭간몰 등 북한의 모든 미사일 운용지역을 한·미가 면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풀린 주장으로 북한을 비난한 보고서와 보도에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CSIS 보고서는 한국 당국이 즉각 부인할 만큼 오류투성이다. 문제의 삭간몰 기지는 2016년 3월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한 곳으로 군당국이 이미 정밀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다. 민간에서 몰랐을 뿐 새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또 민간위성의 데이터를 근거로 이곳이 단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중거리 미사일도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사위성으로 더 자세히 관측하고 있는 당국은 이곳에서는 단거리 미사일만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단거리 미사일과 그 기지는 ‘신고’나 ‘폐기’ 대상도 아니다. 위성사진을 찍은 3월29일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이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앞에서는 비핵화 협상에 응하면서 뒤로 핵·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왜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느냐고 북한에 따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북·미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에만 무장해제하라는 주장이야말로 억지가 아닌가.

 

미국의 조야가  북한과의 협상을 앞두고 핵 신고를 압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합리적 주장을 담아야 한다. 북·미 간 협상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되지만, 미국도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만큼 미국도 그에 걸맞게 대응해야 한다. 1차 북핵 제네바 합의가 깨어진 데는 미국의 약속 파기도 한 요인이었다. 진정 비핵화를 바란다면 기싸움보다 북한의 선제 조치에 부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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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진먼다오(金門島)에는 도교사원이 편의점처럼 펼쳐져 있다. 과다출점된 서울의 편의점같이 ‘길 건너 하나’꼴이다. 진먼다오가 ‘도교사원 왕국’이 된 것은 지리적, 역사적 요인이 크다. 서울의 4분의 1 정도인 152㎢ 면적의 진먼다오에는 12만명이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1.8㎞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대만과의 거리는 210㎞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대만 국민당의 최후의 보루이자 중국 공산당과의 최대 격전지였다.

 

1958년 8월부터 10월까지 중국군은 포탄 47만발을 진먼다오에 쏟아부었다. ‘진먼 포전’이라고 부르는 이 대규모 전투로도 중국은 진먼다오를 얻지 못했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포탄에 어찌할 수 없었던 주민들은 그저 신앙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불로장생을 지향하는 도교로 마음의 평안이라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힘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던 이곳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1990년 이후 대만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양안 간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서 진먼다오에도 기회가 왔다.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이 이뤄진 후 급물살을 탔다.

 

중국과의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은 관광지 개발의 원동력이 됐다. 8·27 전쟁 역사관에는 진먼 포격의 흔적을 담았다. 당시 치열했던 전투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사원들을 지으며 피해가기만 바라던 포탄도 훌륭한 자산이 됐다. 진먼 포격전에 사용된 포탄의 몸체는 단단한 경금속으로 이뤄졌다. 진먼다오 주민들은 이를 재활용하여 식칼을 만들었는데 포탄 나이프로 알려진 이는 진먼다오의 대표 상품이다. 진먼다오는 포탄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땅굴을 팠다. 이 금성민방갱도 등 당시 만들어진 땅굴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유명장소가 됐다. 매년 5월에는 도교사원 순례여행도 이뤄진다.

 

진먼다오 주민의 대부분이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식당·숙박·관광 등 3차 산업 비중이 54%, 진먼고량주·포탄나이프 등 제조업 종사자들이 43%에 달한다. 시내 곳곳에 있는 기념품점에서는 대만 군인의 군화를 본떠 만든 신발을 판다.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됐다.

 

중국과 가까워 전쟁의 포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진먼다오지만 현재는 샤먼(廈門)과 가까운 이점 때문에 되레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에서도 유명 관광도시인 샤먼에서 배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연계한 상품이 인기다. 중국인들이 대만을 가려면 통행증을 따로 만들어야 하지만 진먼다오는 신분증과 사진 등만 있으면 여행사에서 쉽게 방문증을 만들 수 있다.

 

2015년에 진먼다오에 2만㎡의 아시아 최대 면세점이 들어선 것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매년 25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이 중 3분의 1 정도가 중국인 관광객이다.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진먼다오 주민들은 이제 포탄을 “마오쩌둥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조치 후 관광객들과 참관 인원들의 자유왕래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달 중 JSA 왕래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JSA지만 훌륭한 안보견학 장소가 될 수 있다. 한반도 전쟁과 휴전의 중요한 장소인 JSA는 1976년 북한의 도끼 만행 사건 후 경계가 강화됐다. 이곳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면 남북 간 긴장완화는 물론, 분단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국제적인 여론을 이끄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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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유세 풍경은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흔드는 ‘스노글로브’(snow globe)를 연상케 했다. 트럼프가 한바탕 휘저어 놓은 의료보험, 이민, 관세, 무역, 인종, 남녀차별 등 복합적이고도 민감한 이슈들은 금세 ‘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이분법적 구도로 전환됐다. 스노글로브 속의 눈가루가 모두 내려앉은 현재, 트럼프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될 민주당 지배의 하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2020년 재선을 도모하는 트럼프로서는 와신상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공화당 주도의 의회에서 이렇다 할 견제도 없이 무소불위로 군림해 온 트럼프의 통치는 정치적 내상을 입었고, 그 결과 그의 일방적 질주는 사실상 끝났다.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실행할 수 있는 중요 국가정책들은 많지 않다. 주요 정책 관련한 입법과 예산 집행에 앞서 열리는 하원 청문회는 사사건건 트럼프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장 내년 초부터 북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트럼프 일가 비즈니스 등과 관련이 있는 청문회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개최될 게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전날인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행정부 각 부처의 의회 대응전략을 놓고서 백악관의 현미경식 통제도 더욱 어렵게 됐다. 하원의 견제에 따른 트럼프의 권력 금단현상이 어떻게 진화할지 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일촉즉발 워싱턴 정가가 정쟁(政爭)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그 불똥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는 누구도 모른다. 북한도 다급해졌다. 북·미 고위급회담의 돌연 연기 배경에는 제재완화에 대한 이견도 있었겠지만 미국 의회권력의 이동을 주의 깊게 독해해야 하는 평양 수뇌부의 숨고르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만에 하나 김정은이 하원 권력을 넘겨준 트럼프를 오인식(misperception)하여 트럼프를 속일 경우 위기는 인화물질을 기다리는 기름이 될 것이다.

 

2003년 10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15년이 지나도록 복귀는커녕 여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핵무기를 20~60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금년 4월 조선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에서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 최소한의 핵무기만 보유하겠다는 의지표명이자, 핵을 자발적으로 먼저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핵전략은 ‘핵무기 미니멀리즘’이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의 처음과 끝을 모두 섭렵한 핵무기 완성국이다. 다양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북한은 원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추가 핵실험은 긴요하지 않다. 빵가게를 폐점하더라도 레시피만 갖고 있으면 언제라도 고유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이미 공개된 핵 관련 시설들을 영구적으로 없애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하여 어렵사리 이룬 핵무기와 관련 시설들을 제값에 교환하고 그 대가를 자신의 정권유지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이미 끝냈다. 이악스럽기는 해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트럼프마저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비핵화는 불확실성의 장기전에 돌입했다.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발전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기는 해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부터 높이 치켜든 비핵화 깃발은 당분간 외롭게 펄럭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북·미 간 신뢰 에너지 역시 눈에 띄게 방전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신고하고 완전히 제거한들 워싱턴 매파들의 의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비핵화, 제재, 레짐 체인지, 인권 등이 들어있는 스노글로브를 세차게 흔들 것이다.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여 정부는 헤징(hedging)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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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 간 고위급회담이 연기된 가운데 기싸움이 심상치 않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샅바싸움의 성격이 짙어 보이지만 양쪽이 내놓는 발언들의 수위를 보면 우려스럽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8일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거부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단 데다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기 위한 맥락으로 보이지만, 미국 정부 현직 고위 인사의 발언으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거친 언사는 협상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환송하는 모습을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0일 “미국이 ‘서두르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속도조절론을 주장하면서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면 구태여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핵·경제 병진 노선의 부활을 언급한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장의 최근 논평을 거론하면서 “개인 판단으로 써낼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라며 “경종이 울렸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완화를 촉구한 발언치고는 수위가 높다. ‘핵·경제 병진 노선’ 부활은 핵을 완성했기 때문에 폐기하겠다던 내·외부 약속을 되돌리겠다는 모순적 발언일 뿐 아니라 북·미대화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인 만큼 기싸움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런 양측의 기싸움은 북·미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가 끝난 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협상 교착이 장기화되더라도 손해볼 게 없다는 태도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해 전례없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해 나갈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큰 흐름에서 본다면 북·미 협상구도는 유지되고 있고, 이런 발언들도 ‘협상용’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측 간 기싸움이 거듭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면 협상 결렬이나 교착 장기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국가 간 외교에서 선을 넘는 언사들은 언제든 협상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8개월간의 북·미 협상 과정에서도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올 상반기 양측이 쌓아올린 신뢰를 흔드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양측은 더 이상의 기싸움을 멈추고 조속히 대화로 복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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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갖는 법적·역사적·외교적 함의는 매우 엄중하다.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과 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정부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파장과 문제점을 논하기에 앞서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한국의 최고법원이 명확히 재천명했다는 점이 이번 판결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 판결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반도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다.

 

한·일관계는 애초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할 때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없었다. 안보·경제적 이유로 일본과의 수교가 시급했던 탓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이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전후질서 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에 있다.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7년간의 일본 점령통치를 끝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은 독립국가가 됨과 동시에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다. 미·소 냉전에 대비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따라 전범국 일본에 서둘러 면죄부를 준 것이다. 당시 국제적 존재감이 미미했던 한국은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중요한 부분들은 미해결 상태로 종료됐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상호 필요성에 의존해 유지될 수 있었다.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냉전구도가 해체되면서 한·일은 서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강제징용 판결은 이 같은 한·일관계 변화 추세의 결정판이다. 판결의 핵심은 간명하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므로 강제징용도 불법이고 따라서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한·일이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한·일관계의 ‘태생적 모순’을 정조준하고 있다. 53년간 덮어놓았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1965년 체제’로는 더 이상 한·일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파탄낼 수는 없다. 출발이 잘못됐으니 처음으로 돌아가 한·일관계를 근본부터 뒤집고 이미 국제적으로 뿌리내린 전후질서를 바꾸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전후질서와 동아시아 전략의 희생물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만들어놓은 전후질서의 그늘 아래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는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싫든 좋든 현재의 체제 안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일은 이제 1965년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협력모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적 해결 노력과 국내 여론 설득을 병행할 수 있는 양국 정부의 ‘용기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본은 청구권협정과 한일기본조약의 문구 하나하나를 머리카락 쪼개듯 분석하고 법적 효력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한·일관계에는 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도덕적·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알면서도 ‘법적으로 다 끝난 일이니 책임질 일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한국은 일본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일본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면 즉각 비현실적인 강경론 일색의 반응이 나오고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한국에는 국민적 반일감정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 이 같은 선동에 자극받아 대책없는 대일 강경론에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 이 같은 악순환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눌려 모른 척 침묵하는 비겁한 부류가 존재한다. 정치인·학자·언론·관료·시민단체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개인과 집단 대부분은 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인 담론이 형성될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일 모두에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법리적·현실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소지가 충분한 판결이지만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 양국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기에 가치 있는 판결이라고 말하고 싶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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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있다. ‘통일비용 포비아’, 바로 통일비용에 대한 공포감이다. 젊은 세대들은 여기에 짓눌려 있는 듯하다. 남북 화해 무드에서도 세금을 또 걷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단언컨대 통일비용은 없다! 통일비용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다. 더구나 독일 사례에서 서독의 경제적 부담이 과장되기 일쑤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과거 보수정부의 반감으로 인해 오해와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 온 측면이 적지 않다.

 

독일 통일비용 중 철도, 도로 건설 등 직접적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에 사용된 것은 약 12%에 불과하다. 50% 이상은 동독 주민의 소득보전에 쓰였다.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져 흡수통일이 되다 보니, 동독 주민에게 서독과 동일한 수준의 소득과 복지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남북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번영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실질적 해결과정이 진행되면 대북 경제제재도 풀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흡수통일은 망상에 불과하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적극 피해야 한다. 남북한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격차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바람직한 남북 통합은 우선 평화적 교류 협력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격차를 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세대가 통일을 논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흡수통일이 아니라고 해서 경제협력 비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 SOC 개선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를 통일비용으로 보는 것은 그야말로 오해다. 남북경협 과정에서 과연 어떤 비용이 필요한지 한번 따져보자.

 

우선 개별 기업의 투자는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과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과 같다. 이를 두고 누구도 ‘퍼주기’라고 하지 않는다. 기업은 이익이 된다면 어디에든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가 이뤄지려면 인프라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소한 산업단지에 전력과 용수, 교통, 통신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및 국제 자본이 함께 진출하는 컨소시엄도 해법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 활용이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할 때, 초기 투자비용 부담만 감당할 수 있으면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 인프라 비용까지 투자하고 진출하는 기업에는 상당기간 사업 우선권 등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초기 투자시점과 이익창출 시점 간의 시간차를 해결하기 위해 ‘패키지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큰 비용은 한반도의 ‘대동맥 구축’에 사용될 것이다. 철도, 도로, 에너지, 항만 등 주요 SOC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대기업 차원에서도 독자적으로 부담하기 어렵다. 그러면 이것은 과연 통일비용일까? 나는 이를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경제 접속 비용’ 또는 ‘섬나라 신세 탈출 비용’으로 해석한다. 남북 네트워크 연결은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태평양 해양세력의 접점에 놓인 한반도에 지리경제학적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배로 부산항과 목포항에 와서 다시 기차로 서울, 평양, 베이징, 모스크바, 유럽까지 여행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한반도의 항만 도시들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복합물류 거점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비용은 한반도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투자이다. 한국 자체 역량으로도 감당할 수 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남북이 주도하는 ‘북한개발은행(가칭)’을 투자 플랫폼으로 설립하고 여기에 국제금융기구가 참여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국제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 수익을 우선시하는 탐욕적 자본에 주요 기간시설을 넘겨서는 안된다. 북한 경제개발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며, 남북이 공동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갖추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무분별한 해외자본의 공략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교훈을 알려주어야 한다. 남한은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임을 북한에 이해시켜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젊은이들이 ‘통일비용 포비아’에 현혹되어 한반도의 원대한 꿈을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통일비용은 없다!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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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북·미 고위급회담의 연기가 단순한 일정 조율의 문제라며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중간선거 후 첫 기자회견에서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회담 연기는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다.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데 대한 의구심을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 불식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 패배 후에도 계속 외교적인 북핵 해법을 추구한다는 신호다.   

 

북측의 연기 사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미 양측 간 심각한 이상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국무부는 회담 연기가 제재 해제와 관련돼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우리는 꽤 좋은 상황에 있다”고 단언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미국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며 “양측이 회담 일정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이전과 달리 북한이 먼저 회담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인데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9일 (출처:경향신문DB)

 

북한이 회담을 연기한 것은 미국과의 약속을 무겁게 여긴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제재 완화와 핵리스트 신고의 선후를 둘러싸고 북·미 간 이견은 있는 듯하다. 북한이 조기 제재 완화 조치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제재를 없애고 싶지만 그들(북한) 역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회담 연기는 결정적 갈등이 아니라 북·미가 핵 협상에 앞서 마지막 호흡을 조절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위급회담 일정을 놓고 시간을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모두 역지사지의 태도로 대화를 진척시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리스트를 신고하면 공격지점을 다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미국도 제재 완화 등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이 잡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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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되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은 상원에서는 다수당 자리를 유지했지만, 중간선거 여당 패배 징크스는 깨지 못했다. 이로써 공화당의 상·하원 장악 구도는 무너지고 공화당은 상원, 민주당은 하원을 분점하게 됐다. 미국 우선주의 깃발을 내걸고 국내외 정책에서 독주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견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부로서도 미국의 의회 구도 변화가 한반도 정세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컸다. 중간선거에서 드러난 미국인들의 표심은 한마디로 경제상황에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트럼프의 국정 수행은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출구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유권자가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비록 상원은 지켰지만 2년 후 대선을 생각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6일(현지시간) 워싱턴 하얏트리젠시호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중간선거의 하원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음을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견제할 동력을 되찾은 것은 다행스러운 측면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숱한 논란과 충돌을 빚은 트럼프식 정책은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국정 독주를 멈추고 민주당과 타협해야 한다. 반이민 정책과 보호무역주의 노선, 감세정책, 다자협정 탈퇴 정책이 특히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예산 심의와 각종 법률 심사권한을 가진 하원을 장악한 만큼 미국의 대내외 정책이 동맹국을 비롯한 외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고 보편적 인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도 트럼프 행정부 국정기조 변화에 대비한 치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미국의 정책 변화로 성장세가 둔화되면 한국 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선거가 북·미관계나 한·미관계에 큰 틀에서는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민주당이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주장해온 데다 트럼프 대통령도 차기 대선 가도에서 북핵 해결을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려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터라 방법론에서는 일부 진통과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민주당이 차기 대선만 염두에 두고 트럼프 정부의 북·미 협상을 지나치게 견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향후 비핵화 협상이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날 투표 직후 미 국무부가 8일 뉴욕에서 열기로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중간선거 결과와 무관한 조치인 듯하지만 좋은 조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간선거 이후에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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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 중간선거 투표날이다. 이번 선거의 주인공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다. 공화당의 상·하원과 주지사 권력 독점이 계속될지, 민주당이 하원 권력을 분점할 수 있을지 확인할 순간이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이번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선거다. 트럼프 정권 2년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그가 제시한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승인 여부를 확인할 기회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이번 선거의 의미를 물어보면 꼭 언급하는 단어가 트럼프다. 지난 주말 하원의원 선거 박빙지역인 버지니아 7지구에서 만난 유권자들도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했다. 그가 여론의 중심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반이민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직전 6일간 11개 주를 돌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이름의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백인들로 가득한 유세 현장에서 그가 제시한 공화당 선택의 가장 큰 근거는 반이민이었다. 강경한 반이민 정책은 그를 유력 정치인으로 부각시킨 배경이자 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며 강한 반이민 레토릭을 쏟아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 전날인 5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지원유세를 앞두고 무대에서 대기하고 있다. 포트웨인 _ AFP연합뉴스

 

그는 미국 국경에 도달하지도 못한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군대 파견을 명령했다. 이민자들이 돌이라도 던진다면 발포할 수 있다고 위협해 논란을 키웠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헌법적 권리인 출생시민권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 경찰을 살해한 멕시코 불법이민자가 등장하는 인종차별 정치 광고도 올렸다. 광고는 ‘민주당이 그를 우리나라로 들여보냈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들은 미국인을 죽일 것이고, 그것은 민주당 때문이란 의미다. 이민 이슈로 미국을 둘로 쪼개고 반이민을 원하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다. 시대에 맞게 이민 제도를 손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다른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레토릭은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멜팅팟(melting pot)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미국은 다른 나라다. 그는 반이민 구호를 통해 백인들의 속마음에 숨어 있던 백인 우월주의, 백인들의 위대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워싱턴포스트에서 “남북전쟁 이후로 멜팅팟 이야기를 파괴하려는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자부심의 요인이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는 구분을 원한다. 진짜 미국인과 가짜 미국인이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진짜 미국인은 백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백인 지지층 결집을 위한 트럼프식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반이민은 결국 절대적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백인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백인 우월주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이제 백인의 나라도 아니다. 백인 인구는 60%로 아직 다수이지만, 2007년 이후 출생한 소수인종 인구는 이미 백인 인구를 넘어섰다.

 

다행히 공화당 내부에서도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이 골수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겠지만 중도층의 반공화당 투표를 조장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미국 사회가 백인 우월주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지는 곧 확인된다. 미국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 이어 또 한번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으로 포장된 백인 우월주의에 손을 들어준다면 그들이 원하는 위대한 미국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개방성과 포용성을 상실한 미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아메리카 제국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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