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캐버노가 미국의 새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취임했다. 그의 인준이 가결된 후 미국에서는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깊은 우려가 여러 지면을 통해 표명되었고 그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캐버노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에 이어 추행 혐의들이 추가되면서 그를 대법관으로 종신 임명하는 것에 격렬한 반대가 일었다. 혐의를 폭로한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교수의 청문회 증언이 생중계되고 다수가 포드의 신빙성을 인정했지만, 위원회는 11대 10으로 캐버노 인준안을 상원으로 넘겼고 인준은 10월6일 50대48로 가결되었다. 혐의들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도구로 전락하고 사법정의의 이상이 당파적 이익에 쓸려나가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27년 전 애니타 힐이 당시 대법관 후보 클래런스 토머스의 성희롱을 폭로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건의 기시감이 주는 피로는 특별하다. 엘리트 남성의 특권을 사수하는 장면이 최고권력의 장에서 다시금 공공연하게 펼쳐졌고 정치화된 사법권력은 향후 수십년간 미국의 일상을 좌우하게 되었다. 미국적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신봉하는 미국인들은 이 일을 트럼프가 가속화한 그 가치의 쇠락을 치명적으로 가시화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여기는 듯하다. 어떻게 그런 인물이 대법관이 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그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26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체비체이스에 있는 자택을 나서고 있다. 체비체이스 _ AFP연합뉴스

캐버노는 부유한 로비스트의 아들로 특권적 교육을 받고 자라 할아버지의 모교인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법관이 됐다. 자기의 명예를 증명하지는 못하면서 청문회에서 명예손상에 대한 분을 억누르지 못했던 그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던 최상류층 백인 남성의 자아도취와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는 지명을 철회하기는커녕 그에 대해 질문하는 여성 기자들을 모욕했고, 의회 건물 안 엘리베이터에서 상원의원에게 호소했던 성폭행 피해여성 두 명 역시 전문 시위꾼, 무례한 비명꾼이라고 모욕했다.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는 방식을 자랑삼아 늘어놓고도 대통령이 되어 연일 사실을 호도하는 정치를 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트럼프야말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지위에 오른 백인 남성의 표본이다.

 

게다가 캐버노는 현직 대통령의 민사소송 면책 및 형사기소 면제권에 대한 글을 법학전문지에 기고한 바 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호텔의 노사 문제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고 6년 전에 애틀랜틱시티의 트럼프 소유 플라자 호텔 카지노 직원들의 노조운동 방해를 지지하는 판결을 하는 등 권력의 편에 서는 판결을 꾸준히 해왔다. 러시아게이트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트럼프에게 캐버노 대법관이 일종의 보험 같은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가 캐버노를 지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캐버노를 지지한 11명의 법사위원회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유감을 표명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대한 ‘그들만의 공감’은,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의 보수 엘리트 남성들이 서로를 면책하면서 그들의 특권에 대한 위협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동시에 그들은 정직한 아들들과 착한 남편들이 허위 폭로에 의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호소로 대중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공감을 요구한다. 보수 권력이 성 불평등과 성폭력 문제를 역으로 활용해서 남성 기득권을 옹호하는 방식은 이민자들이 시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공동체의 문화를 교란하며 성소수자들이 건전한 가족의 윤리를 파괴하고 질병을 초래한다는 식의 정치적 혐오 수사와 일맥상통한다. 캐버노 사건은 특히 미국에서 오랫동안 권력의 최상층부를 차지해 온 엘리트 집단이 배타적으로 특권을 강화하면서도 그 특권을 예외가 아닌 규범으로 만들었으며, 규범화된 그 특권을 정당화하는 제스처로서 대중을 상대로 여성과 소수자들을 억누르고 폄하하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11월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트럼프와 공화당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것이다. 국제정세 속 우리의 남북관계가 트럼프의 정치적 전략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미국의 정치상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재력과 권력의 공고한 세습구도가 사법제도와 정치를 특권층의 도구로 만드는 포스트민주주의 시대 권력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수십년 전으로 퇴행시킨 미국 공적영역의 젠더 감수성이 보수 엘리트의 포퓰리즘이라는 역설과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은, 포스트민주주의 권력의 자기방어가 성평등의 과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을 우려하게 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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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비핵화 담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재 완화 기류를 견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approval)’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한 것은 지나치다. ‘approval’은 승인 또는 허락, 일상적으로는 재가라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어 주권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쓰는 것은 외교적 결례다.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독자적 조치다. 북핵 문제와 무관한 만큼 미국이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 5·24조치를 해제한다고 해도 해당 사업들이 대부분 유엔 안보리의 제재대상인 만큼 당장 실행할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동맹국을 경시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의 취지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불상사는 강경화 장관의 미숙한 국회 답변이 원인을 제공했다.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금강산관광은 5·24조치 때문에 못 가는 것 아니냐. 5·24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의에 강 장관이 “관계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한 것이다. 5·24조치는 금강산관광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숙지하지 못한 답변이다. 강 장관은 또 ‘남북정상회담 후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남북군사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느냐’는 질의에도 “맞다. 충분한 브리핑을 못 받은 상황에서 여러 질문이 있었다”고 했다. 마치 한·미 간에 큰 이견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답변도 ‘몇 차례 통화해 의견교환을 했다’고 하는 게 사실에 부합한다. 문제의 통화가 남북정상회담 전에 이뤄졌다는 사실도 강 장관은 알지 못한 듯하다. 이 모두 강 장관의 정무적 판단과 업무파악 능력에 의문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남북관계·외교 현안은 답변의 뉘앙스에 따라 오해를 부르고 파장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3자회담을 열어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남북도 경협 재개를 위해 부분적인 제재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제재 해제를 뒤로 미루며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과의 불협화음이 일 개연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한·미 간에 더 밀도 있는 협의를 하되 상호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외교적 품위를 잃는 행동은 비핵화에도 도움이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정간섭성 발언을 삼가고, 정부 당국자들은 언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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