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교육부 장관은 가족과 함께 발트해 한가운데 있는 중세풍의 휴양지 고틀란드섬으로 휴가를 떠났다. 당시 총리 내정자이기도 했던 팔메 장관은 현지에서 갑작스럽게 주민들과 간단한 정책간담회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궁리 끝에 팔메는 고틀란드 주도인 비스뷔의 알메달렌 공원에서 주민들과 가볍게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주차된 덤프트럭에 올라 영수증에 간단히 적어놓은 메모를 보면서 즉흥 연설을 했다. 미국의 하노이 폭격을 신랄히 비판한 이 연설은 뜻밖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총리가 된 팔메는 같은 장소에서 다시 주민들과 만났다. 즉석 ‘트럭 연설’의 장소인 휴가지가 스웨덴식 열린 정치의 메카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알메달렌은 정치도 축제로 승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21세기형 아고라’이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 1주일 동안 알메달렌 공원 인근에서 반바지 차림의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5000여개의 크고 작은 행사를 매개로 격의 없이 대화를 즐긴다. 1986년 팔메가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된 뒤 한동안 주춤하기도 했지만, 들러리 설까봐 주저하던 우익 정당들까지 모두 동참했다. 여기에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정당 간, 정치인들 간 ‘정치 배틀’이 되고 있다. 기업과 싱크탱크까지 참가하는 등 축제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스웨덴의 성공은 이웃나라 노르웨이와 핀란드, 덴마크로 확산됐다. 이들 축제는 정치 문화 향상은 물론 쇠락하던 섬이나 해변의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석이조 효과도 거두고 있다. 정치인의 특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진지한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북유럽의 정치 문화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유권자가 주최하고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연수원이 지원하는 제1회 유권자정치페스티벌이 다음달 2일부터 개최된다. ‘한국판 알메달렌’이 정조 개혁 정치의 상징이자 수원 시민들의 쉼터인 서호 변(옛 농촌진흥청)에서 열린다. 시민과 정치인의 격의 없는 만남과 정치인·정당 간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절실하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시민이라도 나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 행사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학습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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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면역이 없고, 운이 나빴다고 할까, 그런 블로그를 만나서 믿고 말았습니다.”

지난 23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넷판에는 50대 여성 ㄱ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ㄱ씨는 차분하고 정중한 말투로 “블로그가 불안감과 공포감을 부추겼다. 세뇌당했다”고 했다.

 

ㄱ씨가 말한 블로그는 ‘여명(余命) 삼년 시사일기’라는 익명의 필자가 운영하는 블로그다. 이 블로그는 “조선인은 일본의 암”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일(在日)’은 불법체류자로 입국관리국에 통보할 것, ‘반일(反日)’은 외환(外患) 유치죄 등으로 경찰에 고발할 것, 조선학교 보조금 중단에 반대하는 변호사회 회장 성명에 찬성한 변호사는 ‘확신적 범죄행위’ 등으로 징계를 청구할 것 등을 촉구해왔다. 이에 지난해 전국 21개 변호사회에는 성명에 찬성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징계 청구가 13만건이나 쇄도했다.

 

ㄱ씨는 징계청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블로그에서 말한 대로 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2015년 한 개그맨의 개그 소재가 ‘반일적’이라는 인터넷 글을 보고 검색을 하다가 이 블로그를 만나게 됐다. “일본이 한국·중국과 분쟁 상태가 되면 재일코리안들과 실질적인 게릴라전 상황이 된다”라는 글에 위기감을 느꼈고, 블로그의 ‘지시’를 즐겁게 기다리게 됐다. 블로그 활동비를 보낸 일도 있다.

 

징계청구에 대해서도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블로그 댓글난에 주소와 성명을 기입하자 지난해 5월과 10월 각각 200장의 고발장과 징계청구서가 왔다. ㄱ씨는 청구서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적고, 도장을 찍어 우편으로 보냈다. 그는 “일본을 위하고, 일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쁜 듯한 심리상태였다. 다음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지시를 바란 부분도 있다”라고 했다.

 

징계청구 대상이 된 변호사들이 업무 방해 등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두려움을 느꼈고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블로그를 보는 것을 그만뒀다. 그는 징계청구라는 수단은 잘못됐지만, 자신이 차별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더러 차별주의자라고 하면 좀 이해가 안 간다”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ㄱ씨의 인터뷰를 보면서 지난 7월 만난 김류스케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959건의 징계청구 대상이 된 김 변호사는 당시 “두렵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실명으로 차별·혐오 발언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일본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고, 당당하게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를 해도 되는 사회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일본인들에게 존재하는 재일코리안을 배제하려는 감정이 유언비어나 선동에 쉽게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량 징계청구 사건을 두고 95년 전 간토(關東) 대지진 때 유언비어가 퍼져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던 사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지난 24일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징계를 청구한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계를 청구했던 41세 남성에게 33만엔(약 33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남성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서면으로도 자신의 입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ㄱ씨를 비롯한 청구자들에게 차별을 했다는 의식은 없어 보인다. 일부 청구자들은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에게 ‘사죄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를 피하기 위한 편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케다 겐타(池田賢太) 변호사는 지난 5월 사죄문을 보낸 이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나한테 사죄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 안에 명확하게 존재하는 ‘차별을 하는 마음’과 마주하고, 차별을 즐기는 것과 결별하는 것입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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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극우 사회자유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승리했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정계의 변방 인물이었으나 대규모 정치 부패 스캔들과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치안불안 등으로 기성 정당의 지지가 추락하자 ‘변화’를 내세우면서 지지율을 높여왔고, 수감 중인 룰라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가 무산되면서 끝내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우려스러운 것은 보우소나루가 성소수자, 여성, 원주민을 차별하고 독재를 비호해온 인물이라는 점이다.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는 과거 군부독재 정권(1964~1985년) 시절을 옹호하는가 하면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두둔했다. 유세 당시에는 경쟁 상대인 노동자당의 지지자들을 총으로 쏘라며 폭력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특히 여성, 성소수자, 특정 인종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여성은 임신을 하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줘야 한다” “동성애자에게는 매질이 필요하다” 등 입에 올리기가 거북한 망언들을 쏟아냈다. 이런 언행들이 백인 기득권층과 재계, 군부는 물론 기성 정치에 실망한 중산층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정치자산이었다니 ‘증오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성싶다.

 

국제사회는 보우소나루의 집권으로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브라질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보우소나루 정권이 군부독재 못지않은 공포정치를 펼치는 한편 사회적으로 증오와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증오 포퓰리즘’이 발호하고 있다. 독일의 극우성향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28일 선거에서 선전하면서 16개 주의회에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고, 지난달 9일 스웨덴 총선에서도 극우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제3당의 지위를 굳혔다. 지난 27일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유대교회당 총격사건의 범인은 소셜미디어에 “유대인은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증오감을 표출했다.

 

증오 포퓰리즘은 기성정치의 실패를 자양분으로 한다. 제도권 정치가 현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치 불신이 커질 경우 언제, 어느 곳에서건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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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범위를 중국 전체로 넓히면 더 ‘깜깜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에 있다는 이유로 취재 영역을 벗어난 질문을 받곤 한다. 예를 들면 “중국 사람들은 왜 잘 안 씻냐”(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혹은 “아직도 안 씻냐” 같은 질문부터 “중국에도 짬뽕이 있냐”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지난 한 달간 쏟아진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판빙빙은 진짜 어떻게 된 거냐”다. 근래 판빙빙 사건처럼 한국 대중의 전폭적 관심을 끈 중국 뉴스도 없어 보인다.

 

판빙빙 사건은 어찌보면 간단하게 정리되는 뉴스다. 이중계약 의혹이 제기된 후 3개월간 공개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탈세 사실이 확인돼 9억위안(1437억원)가량의 벌금이 부과됐으며 이를 납부했다.

 

2018년 5월 8일 찍은 이 사진은 중국 여배우 판빙빙이 영화 '토도스 로 사벤'의 상영을 위해 도착했을 때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체 한국 대중은 왜 그렇게 판빙빙 사건에 열광했을까. 중국 당국에 의해 통제된 언론 보도와 비밀스러운 조사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인기 정점에 있는 아름다운 여배우, 실종, 정치인과의 관련성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14억 인구 대국이자 통제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뭔가 더 비밀스럽고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의 쇼킹한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부채질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 수준의 가짜뉴스다. 판빙빙이 공개 활동을 하지 않자 실종설, 미국 망명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떠돌았다. 대부분 대만, 홍콩의 연예 매체의 ‘카더라 통신’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인체 표본’설은 기가 막힌다. 중국의 한 아나운서가 정치인 보시라이와 염문설에 얽힌 후 실종됐는데 10여년 후 그녀와 비슷한 인체 표본이 전시되면서 연관설이 떠돌았다는 것. 여기에 ‘실종’된 판빙빙의 뉴스를 슬쩍 얹었다. 마치 판빙빙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정작 이 뉴스에는 확인된 내용은 없고 염문설, 실종설, 임신설, 연관설 등 설뿐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과 아름다운 여배우의 연관설은 대중의 관심을 자극한다. 판빙빙이 탈세 혐의를 인정한 후에는 중국의 유력 정치인과의 관련설이 돌았다.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중국의 수배를 받고 있는 재벌 궈원구이의 주장이 대만 매체를 통해 나왔다. 판빙빙-왕치산 동영상은 확인된 적도 없다. 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마치 판빙빙 동영상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보도가 쏟아졌다. 사실 확인이 보도의 기본 원칙이겠지만 판빙빙 사건에 대해서는 외국 매체 인용이라는 면죄부로 세탁돼 퍼져나갔다. 이들이 인용한 홍콩, 대만 연예 매체는 무자비한 보도로 유명하다. 홍콩 잡지 ‘동주간’은 여배우 유자링이 폭력배들에게 납치된 후 강제로 촬영된 알몸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일말의 도덕 의식도 없다.

판빙빙은 이미 지난해 왕치산에게 성상납을 했다고 주장한 궈원구이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의 연예인들도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수사를 요청한다. 그러나 무자비한 한국의 보도에 대해서는 판빙빙의 감시가 닿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최근 가짜뉴스 근절에 애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짜뉴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중국 배우에 대한 한국 내 보도는 누구의 규제도 닿지 않는 회색 영역에서 부글부글 끓어넘쳤다. 매체와 상상력과 호기심이 빚어내는 이런 가짜뉴스는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홍콩 배우 궈푸청은 2년여 전 22살 연하의 팡위안과 열애 사실을 공개했다. 임신설을 비롯해 팡위안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궈푸청은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자에 의해 멈춰진다”며 누리꾼들과 가짜뉴스 매체들에 일침을 놨다.

 

판빙빙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언제 또 제2, 제3의 판빙빙 사건이 나와 가짜뉴스가 양산될지 모른다. 신중한 보도,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가짜뉴스를 걸러낼 지혜로움이 시급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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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19일 싱가포르에서 회동한 뒤 한·미 연합공군훈련 비질런트 에이스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냈다. 미 국방부는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대한 군사적 지원 측면에서 훈련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국 측은 하루 뒤 “훈련을 유예하기로 방향을 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비태세를 감안해 보완책을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양측은 입장을 조율한 뒤 “이달 말 워싱턴에서 개최하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미측의 발표가 실수일 뿐 엇박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미국의 이번 발표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한·미 국방부는 작은 훈련도 입장을 조율한 뒤 공동 발표해왔다. 군사훈련에 대한 결정은 국방장관이 발표하는 사안도 아니었다. 정치적 파장이 뻔히 예상되는 사안을 한국과 상의하지 않고 먼저 발표한 것은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은 선제적으로 훈련을 유예함으로써 북한에 대화 의지를 보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앞서가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군사합의를 놓고 한·미 간 이견이 불거진 뒤라서 이런 의심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미국의 일방적인 발표는 누가 봐도 부적절했다. 설혹 북한에 훈련 유예를 당근책으로 제시한다 해도 동맹을 당혹스럽게 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공군 출신으로 이 훈련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정 장관이 훈련을 보완할 방안까지 제의했다. 충분히 논의한 뒤 결과를 발표해도 늦지 않다. 독자 행동으로 동맹의 파트너를 당혹하게 만들어 얻을 이득이 무엇인지 미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미가 모든 사안에서 의견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양국 간 이견이 균열로 비치게 돼서는 곤란하다. 그렇잖아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럴 만한 근거도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부 고위인사가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대북 제재 완화를 언급한 것은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귀에 거슬린다. 문 대통령의 대북 제재 완화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굳이 한국 당국자가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한·미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갈 동반자다. 무엇보다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한·미 당국자들이 소통에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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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사건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터키 언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암살팀 요원들이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카슈끄지의 신체 일부를 자른 뒤 7분 만에 참수했고, 시신 훼손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목되고 있다. 국제 여론이 들끓자 사우디 당국은 뒤늦게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가 하면, 상부의 지시 없이 자국 요인들이 벌인 독자적인 작전이었다며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은 커지고 있다. 

 

사우디 명문가 출신인 카슈끄지는 미국 유학을 거쳐 중동 각지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해왔고,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과의 인터뷰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빈라덴의 극단적인 반미 테러리즘을 반대하는가 하면 2011년 아랍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을 지지했다. 카슈끄지는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집권 초기의 개혁적 태도에서 벗어나 철권을 휘두르며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자 왕실을 비판하면서 미운털이 박혔다. 지난해 9월 미국으로 망명한 뒤 중동 국가들의 병폐를 지적하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글을 미국 언론에 여러 차례 기고했다. 그의 마지막 칼럼도 ‘아랍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진실과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불의에 저항해온 용기있는 저널리스트의 죽음을 애도한다.

 

카슈끄지 살해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가 유독 눈에 거슬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끄지 실종 2주 만에 암살 사실을 인정했지만 사우디 왕실의 배후 의혹에는 침묵해왔다. 21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짐했지만, 의지가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우디는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고, 미국은 매일 88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할 만큼 사우디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 이란 견제와 중동 내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서도 사우디를 끌어안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맹방이라도 백주에 언론인을 자국 해외 공관에서 살해하는 야만에 눈을 감는 것은 미국의 정의와 가치에 어긋난다. 카슈끄지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중동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사회도 진상규명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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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 중에 무엇이 중요한가. 북한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이건 우문이다. 둘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무엇이 먼저인가. 북·미 비핵화 협상은 나아갈 듯하면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남북관계 개선 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작금의 상황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선행 의지가 분명하다.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고 밝힌 이후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남북은 9월 평양 정상회담, 10월 고위급회담에서 군사 분야와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에 합의했고 후속 일정도 줄줄이 잡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지하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현실화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 작업은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구축이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와 비핵화가 연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핵화 협상은 느린데 남북관계만 치고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는 만큼만 남북관계가 뒤따라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도 두 사안이 선순환적 관계라고 본다. 선순환적 관계는 발전성을 내포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난 6월에 만나고, 또 한 번의 만남이 준비되는 과정 모두 남북정상회담이 디딤돌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 정상의 과감한 움직임이 없었다면 북·미 정상이 만났을까 싶고, 그 만남이 있었기에 남북관계는 한발 더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남북관계와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속도의 비대칭성 자체를 한·미 공조 균열의 징표로 볼 수 없다. 어디까지가 공조이고, 어디서부터 균열이라고 선을 긋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가려는 목표와 방향이 일치하느냐다. 어느 한쪽이 뒤처지면 동행자가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혼자서 걷더라도 어느 한 발이 먼저 옮겨져야 나머지 발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두 발을 동시에 콩콩 뛰어서 이동한다면 오래가기 힘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한·미 공조는 북한 문제에 관해선 튼튼했다. 그것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당시 한·미 정부 모두 압박과 제재가 유일한 대북정책이었다. 현상 유지는커녕 이 시기에 남북관계는 거덜 나고 북핵 문제는 깊어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전략적 인내’라고 불렸는데 무기력·무능력·무대응의 다른 이름이었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접근법이 똑같을 수 없다. 남북은 248㎞의 비무장지대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미국 본토는 한반도에서 1만㎞ 떨어져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성공할 때까지는 현실적 위협도 아니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은 한반도의 적절한 긴장감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는 데 좋다고 여겨왔다. 남북관계가 북·미 대화의 틀 내에서, 딱 그 수준만큼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현상 유지 전략이지 상황 개선을 위한 해법은 아니다.

 

물론 제재 문제는 한·미 간에 조율돼야 할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끈 게 최대의 압박이고, ‘행동 대 행동’ 국면에서도 강력한 압박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남북 협력의 과속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고, 제재 이행이 흔들리면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도 제재 완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뭉개면 북·미 협상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북한에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약속한 ‘관계 정상화’ 합의와도 배치된다. 실상 대북 제재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제재의 키를 쥔 중국과 러시아가 ‘엄격한 이행’을 거부한다. 손 안에 든 모래를 강하게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많이 삐져나오는 형국이 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 6일 4차 방북 이후 북·미가 실무협상 일정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양측 모두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뜻일 게다. 북한은 핵무기·핵시설·핵물질을 둘러싼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미국은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등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 속도가 빠르다고만 볼 게 아니라, 미국도 북·미 협상의 선순환적 진행을 위해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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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옛 소련과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의 파기를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조약을 위반해 왔다”며 “우리는 조약을 폐기하고 탈퇴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2~23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이 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INF는 1987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양국은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 2692기를 폐기했다. 그 후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시리즈를 개발하고, 미국도 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에 나서면서 INF는 사실상 형해화됐다. 그럼에도 INF는 미·러의 핵경쟁을 억제하는 대의명분이 돼왔다. INF 빗장이 사라질 경우 미국과 러시아, 중국 사이에 핵경쟁이 벌어질 우려가 크다.

 

트럼프 행정부의 INF 파기 가능성은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수정주의 국가들”이라며 “최강의 군사력 구축을 통해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지난 2월 발표한 핵 태세검토 보고서에서는 중·러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최강의 핵 능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북한에 핵 포기를 종용하면서 스스로는 핵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열강들의 MD 경쟁 격화로 신냉전의 불똥이 한반도로 튈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러 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레이더의 기능 향상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북 성주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중·러 미사일 추적용으로 활용하려는 욕구도 커지게 된다. 하지만 봉인된 사드 문제가 다시 열리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방해하는 일은 결코 용납해선 안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INF 파기 이후의 상황전개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혜로운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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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 의사를 전달받고 “문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지만,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교황이 사실상 방북을 수락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로써 남북이 추진하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행보가 큰 탄력을 받게 됐다. 교황의 방북 의지를 환영한다. 

 

교황과 마주앉은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내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바티칸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교황으로서는 방북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이다. 북한에는 가톨릭 신자는 물론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도 없다. 국제적으로 비난받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문제다. 따라서 교황의 방북 의사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력한 지원 의지로 해석된다. 교황의 방북이 실현된다면 한반도 평화가 획기적으로 촉진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작업을 추동하는 의미가 크다. 교황의 방북은 다른 국가 지도자의 방북과 상징성이 다르다. 김 위원장이 교황 앞에서 비핵화 뜻을 밝힌다면 비핵화 의지에 대한 세계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주창해온 교황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만한 비핵화 동력은 또 없을 것이다.

 

교황의 방북은 북한의 정상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북한이 고립국가에서 탈피해 국제사회로 나오는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인권 개선과 민주화 등 북한 내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교황이 평양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함으로 인한 변화의 충격이 있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단안을 내렸을 터이다.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 앞서 교황청은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의 집전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문 대통령도 미사에 참례한 뒤 연설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대장정의 성공을 기원하는 가톨릭 교단 전체의 축복은 상징성이 크다. ‘평화의 사도’라 불리는 교황의 방북은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이루려는 역사적 흐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은 즉각 교황에게 초청장을 보내 조속히 방북 일정을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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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가 휩쓸고 간 워싱턴에서 최근 떠오르는 화제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대결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인 웨스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쓰여진 빨간 모자를 쓰고 백악관을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형제”라고 부르며 브로맨스를 자랑했다. 그는 “이 모자를 쓰면 슈퍼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빨간 모자의 힘을 묘사했고, “트럼프는 영웅의 여정을 밟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는 노예제를 금지한 수정헌법 13조 무용론도 폈다.

 

그보다 며칠 전인 6일 스위프트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상·하원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 필 브레드슨 상원의원 후보의 상대인 공화당 마샤 블랜번 후보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블랙번의 의회 투표 기록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는 남녀동등임금법에 반대했고, 여성폭력방지 법안에도 반대했다. 그는 업주들이 동성 커플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고 종용했다.

 

40대 흑인 남성 웨스트와 20대 백인 여성 스위프트의 엇갈린 선택은 둘의 악연과 맞물려 중간선거 최고의 대결로 화제가 되고 있다. 둘의 악연은 2009년 MTV 비디오뮤직어워드(VMA)에서 시작됐다. 웨스트는 신인 스위프트가 최고 여성 가수 비디오상을 받자 시상식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빼앗고 “비욘세 최고”를 외쳤다. 이후 두 사람은 신곡에 상대를 ‘디스’하는 내용을 꾸준히 담아왔다.

 

두 사람의 변화도 흥미롭다. 시카고 출신인 웨스트는 저소득 흑인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등 흑인 인권 증진을 강조해왔다. 2005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해 “흑인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이나 정책에는 유독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노예제가 400년 지속됐으면 선택”이라며 노예제를 흑인의 책임으로 돌렸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반면 스위프트는 비정치적 연예인이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알트라이트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자신을 ‘아리아족 여신’으로 묘사하며 인종주의적 의제 고취에 활용할 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침묵하지 않겠다며 셀러브리티(셀럽) 영향력의 정치적 활용을 시작했다. “나는 피부 색깔과 성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들의 고귀함을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

 

둘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스위프트의 정치참여는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유권자 등록 종용 후 이틀 만에 미국 전역에서 16만6000명이 추가로 유권자 등록을 했고, 그중 6만2000명 이상이 테네시주에 거주하고 있다. 신규 등록자의 42%가 스위프트의 팬층인 18~24세의 젊은 유권자들이다. 반면 웨스트는 논란은 일으켰지만 팬들을 트럼프 편에 서게 하지는 못할 듯하다. CNN에 출연한 흑인 패널들은 오히려 웨스트를 “관심병자” “흑인이 글을 못 읽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비난한다. 친트럼프 채널인 폭스뉴스가 흑인 보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치켜세울 뿐이다.

 

식상하지만 이들이 주는 교훈은 있다. 둘의 사례는 셀럽들의 정치참여가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지를 묻게 한다. 셀럽들의 정치참여가 권력자의 병풍 역할에 그치거나 권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냉소적 반응을 받기 십상이다. 웨스트가 그 사례다. 더불어 셀럽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소신 표명은 환영이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것과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좇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도 이 기회에 한번 더 생각해보자.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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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라는 용어의 시원은 1957년 10월 유엔 연설에서 폴란드 외무장관 아담 라파츠키가 동독, 서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의 비핵지대(화)를 담은 일명 ‘라파츠키 플랜’에서였다. 라파츠키 자신이 ‘비핵화(denuclearization)’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며, 대신에 1958년 초 소련 제1외무부상이 중부유럽의 ‘비핵화’를 소련이 지지한다는 루머를 일축하는 가운데 이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 캐나다 국무차관도 라파츠키 플랜이 좌초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긴 비밀 전문에서 ‘비핵화’를 썼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라파츠키가 ‘비핵화’ 단어를 촉발시킨 장본인이 된 셈이다.

 

‘비핵화’ 활자가 드러난 대표적 사례는 ‘봉쇄정책의 아버지’ ‘냉전의 설계자’로 불리는 미국의 외교관이자 역사학자 조지 케넌이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뉴욕타임스 1981년 10월11일자에 기고한 글이었다. 기고문 제목이 ‘비핵화’였다. 당시 미국과 소련 간 치열하게 벌인 유럽 내 핵무기 경쟁을 두고 케넌이 기고문에서 언급한 비핵화는 특정국가 내 지상 기반의 핵무기만 제거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방북 직후 청와대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이는 ‘특정 지역 내에서 국가 간 조약 또는 협약에 의해 핵무기의 생산, 보유, 배치 및 실험 등이 포괄적으로 금지된 지역’을 의미하는 비핵지대(Nuclear Weapon Free Zone)와는 결이 다른 핵무기 제거였다. ‘비핵지대’가 역내 조약 당사국들에 핵보유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이 핵무기 사용과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제공하고 있음에 반해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처럼 조약이 아닌 정치적 선언이며 소극적 안전보장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구가 집중된 지역을 최초로 비핵지대화한 1967년의 ‘중남미 핵무기 금지조약’의 애초 명칭도 ‘중남미 비핵화 조약’(Treaty for the Denuclearization of Latin America)이었다. 그러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을 주장한 브라질 ‘비핵화’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명칭 변경을 요구, 현재의 이름으로 확정됐다.

 

북한 역시 남한의 핵무기 도입과 명칭에 민감했다. 북한이 핵무기 반입에 반대 입장을 처음으로 표명한 때는 195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12차 회의의 ‘조선반도 핵무기 반입 반대 결정’을 통해서였다. 이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전술핵을 남한에 배치(1958년 1월)하기도 전에 이루어진 공세적 압박전략의 일환이었다. 1976년 비동맹 정상회담에서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제기했다. 이후 김일성은 1986년 6월 ‘조선반도에서의 비핵지대, 평화지대를 창설할 데 대한 제안’을 발표하고, 같은 해 9월 ‘조선반도에서의 비핵·평화를 위한 평양국제회의’에 80여개 국가 대표들을 초청, 전 세계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핵무기 야망을 분식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반도에서 사실상 미국이 핵무기를 철거하고 반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가지고서 접근 및 통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엄밀히 말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마침내 종점이 북한 비핵화인지 아니면 한반도 비핵지대인지 모호한 버스에 탑승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미증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종착지도 불분명하고, 짙은 안개(사찰, 검증 등)로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은 여정이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유관 당사국들의 속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선전이 다르듯, 비핵화와 비핵지대 역시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련국들은 비핵화와 비핵지대 중 택일을 하고, 동시에 선택한 것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해야 한다. 그래야 핵무기가 없는 전경(全景)을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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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는 거친 속담이 있다. 미국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 제재’가 그렇다. 살릴 수 없다. 법적으로 평가하면, 법적 구속력이 없다. 애시당초 법률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여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을 제창함으로써 생명을 다했다. ‘남북 교역 중단’과 ‘신규 투자 불허’를 내용으로 하는 5·24는 새로운 남북 선언들과 양립할 수 없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면서, 과거로 사라진 밤이다. 해제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5·24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보면서, 대북 제재에서 법치주의가 시급함을 확인한다. 애초 이명박 정부의 5·24는 초헌법적이었다. 헌법에서 정한 긴급명령권 발동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남북교류협력법도 지키지 않았다. 법치주의자라면 이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죽은 5·24를 놓고 ‘해제’니 ‘승인’이니 말을 하는 현실이다. 법치의 취약한 곳을 본다. 법치는 사람의 몸과 같이 하나로 통합된 유기체와 같다. 한 곳이라도 바로 서지 못하면 전체가 탈이 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뒷줄 가운데)과 백화원 영빈관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앞쪽 왼쪽)과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도 배석했다. CBS 카일리 애트우드 기자 트위터

 

이미 죽은 5·24를 놓고 논란을 벌일 만큼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 대북 제재의 불확실성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서 드러난 불확실성과 과잉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정책을 삼켜 버리는 일이 없도록 대북 제재 해결 매뉴얼이 필요하다.

 

남북 교류협력의 일선 현장은 대북 제재의 불확실성과 과잉 적용으로 인하여 매우 혼란스럽다. 문 대통령의 평양 공동선언에서의 남북 경협 자체가 제재로 인하여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조차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대표적이다. 북한 방문에 꼭 필요한 여행경비도 제재 대상인지 논란이 될 정도이다. 특히 은행업은 자칫 미국의 대북 제재 위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초긴장 상태에 있다.

 

제재의 불확실성과 과잉 적용은 미국 독자 제재에서 더욱 심각하다. 미국의 제재에서는 제재 대상인지, 아니면 제재 대상이 아닌 예외사항인지, 대상이지만 면제해 줄 수 있는 사항인지 거미줄처럼 복잡하다. 제재를 집행하는 미국 정부의 재량권도 매우 넓다.

 

미국법은 본디 미국 밖의 한국인에게는 관할이 미치지 않는다. 미국 법에서 총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니 나도 총을 갖게 해 달라고 경찰서를 찾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제재는 금융기관 제재라는 통로를 통해 그 불확실성을 한국에 증폭시킨다.

 

은행은 달러 국제결제망 속에서 영업을 하기에 미국계 은행에 결제용 달러 계좌를 갖고 있다. 미국계 은행에 있는 계좌에는 미국 제재가 미친다. 미국 제재법은 고의로 북한과 관련된 ‘중대한 거래’에 협력한 은행들에 대해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해당 은행이 미국계 은행에 예치한 달러 계좌를 압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 은행도 적용 대상이다. 만일 한국의 은행이 미국계 은행에 예치한 달러 계좌가 동결되면 외환 거래가 불가능한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은행의 초긴장이 이해된다.

 

법치가 가장 필요한 곳이 안 보인다. 제재의 불확실성이 문 대통령의 선언 이행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법치로 대응해야 한다. 유엔·미국의 대북 제재의 공식적 해설을 법치가 담당해야 한다. 유엔·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통일적 적용 기준을 한국이 먼저 마련해야 한다. 유엔과 미국이 협의하여 한국의 은행, 기업, 개인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한국의 은행들이 미국 제재를 적용받는 ‘중대한 거래’가 금액 기준으로 몇 달러부터인지 미국과 조속히 협의해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관광’은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다.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미국의 대북 제재는 한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인 관광객이 북한에 머무는 숙박비와 관광가이드 비용을 북한 사람에게 지급한다고 해서, 북한 사람에게 ‘대량 현금’을 주는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엔과 미국의 제재에서도 가능한 금강산 관광 방식을 만들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법치를 국제적으로도 확장해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동결하고, 핵실험 시설을 해체하는 것과 조응하여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더 간명하게 해야 한다. 특히 북한에 일절 외국 은행 지점을 설치할 수 없게 한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도 해제해야 한다. 북한 경제가 국제경제 속에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대북 제재의 불확실성을 해소하여 문 대통령의 평화 선언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 핵심은 미국의 대북 독자 제재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적용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대북 제재 해설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것을 가지고 미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서, 우리 기업과 은행에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비핵화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법치가 함께 필요하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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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캐버노가 미국의 새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취임했다. 그의 인준이 가결된 후 미국에서는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깊은 우려가 여러 지면을 통해 표명되었고 그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캐버노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에 이어 추행 혐의들이 추가되면서 그를 대법관으로 종신 임명하는 것에 격렬한 반대가 일었다. 혐의를 폭로한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교수의 청문회 증언이 생중계되고 다수가 포드의 신빙성을 인정했지만, 위원회는 11대 10으로 캐버노 인준안을 상원으로 넘겼고 인준은 10월6일 50대48로 가결되었다. 혐의들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도구로 전락하고 사법정의의 이상이 당파적 이익에 쓸려나가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27년 전 애니타 힐이 당시 대법관 후보 클래런스 토머스의 성희롱을 폭로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건의 기시감이 주는 피로는 특별하다. 엘리트 남성의 특권을 사수하는 장면이 최고권력의 장에서 다시금 공공연하게 펼쳐졌고 정치화된 사법권력은 향후 수십년간 미국의 일상을 좌우하게 되었다. 미국적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신봉하는 미국인들은 이 일을 트럼프가 가속화한 그 가치의 쇠락을 치명적으로 가시화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여기는 듯하다. 어떻게 그런 인물이 대법관이 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그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26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체비체이스에 있는 자택을 나서고 있다. 체비체이스 _ AFP연합뉴스

캐버노는 부유한 로비스트의 아들로 특권적 교육을 받고 자라 할아버지의 모교인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법관이 됐다. 자기의 명예를 증명하지는 못하면서 청문회에서 명예손상에 대한 분을 억누르지 못했던 그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던 최상류층 백인 남성의 자아도취와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는 지명을 철회하기는커녕 그에 대해 질문하는 여성 기자들을 모욕했고, 의회 건물 안 엘리베이터에서 상원의원에게 호소했던 성폭행 피해여성 두 명 역시 전문 시위꾼, 무례한 비명꾼이라고 모욕했다.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는 방식을 자랑삼아 늘어놓고도 대통령이 되어 연일 사실을 호도하는 정치를 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트럼프야말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지위에 오른 백인 남성의 표본이다.

 

게다가 캐버노는 현직 대통령의 민사소송 면책 및 형사기소 면제권에 대한 글을 법학전문지에 기고한 바 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 호텔의 노사 문제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고 6년 전에 애틀랜틱시티의 트럼프 소유 플라자 호텔 카지노 직원들의 노조운동 방해를 지지하는 판결을 하는 등 권력의 편에 서는 판결을 꾸준히 해왔다. 러시아게이트로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트럼프에게 캐버노 대법관이 일종의 보험 같은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가 캐버노를 지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캐버노를 지지한 11명의 법사위원회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유감을 표명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대한 ‘그들만의 공감’은,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의 보수 엘리트 남성들이 서로를 면책하면서 그들의 특권에 대한 위협을 어떤 자세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동시에 그들은 정직한 아들들과 착한 남편들이 허위 폭로에 의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호소로 대중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공감을 요구한다. 보수 권력이 성 불평등과 성폭력 문제를 역으로 활용해서 남성 기득권을 옹호하는 방식은 이민자들이 시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공동체의 문화를 교란하며 성소수자들이 건전한 가족의 윤리를 파괴하고 질병을 초래한다는 식의 정치적 혐오 수사와 일맥상통한다. 캐버노 사건은 특히 미국에서 오랫동안 권력의 최상층부를 차지해 온 엘리트 집단이 배타적으로 특권을 강화하면서도 그 특권을 예외가 아닌 규범으로 만들었으며, 규범화된 그 특권을 정당화하는 제스처로서 대중을 상대로 여성과 소수자들을 억누르고 폄하하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11월6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트럼프와 공화당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것이다. 국제정세 속 우리의 남북관계가 트럼프의 정치적 전략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미국의 정치상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재력과 권력의 공고한 세습구도가 사법제도와 정치를 특권층의 도구로 만드는 포스트민주주의 시대 권력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수십년 전으로 퇴행시킨 미국 공적영역의 젠더 감수성이 보수 엘리트의 포퓰리즘이라는 역설과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은, 포스트민주주의 권력의 자기방어가 성평등의 과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을 우려하게 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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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비핵화 담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재 완화 기류를 견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approval)’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한 것은 지나치다. ‘approval’은 승인 또는 허락, 일상적으로는 재가라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어 주권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쓰는 것은 외교적 결례다.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독자적 조치다. 북핵 문제와 무관한 만큼 미국이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 5·24조치를 해제한다고 해도 해당 사업들이 대부분 유엔 안보리의 제재대상인 만큼 당장 실행할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동맹국을 경시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의 취지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일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불상사는 강경화 장관의 미숙한 국회 답변이 원인을 제공했다.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금강산관광은 5·24조치 때문에 못 가는 것 아니냐. 5·24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의에 강 장관이 “관계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한 것이다. 5·24조치는 금강산관광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숙지하지 못한 답변이다. 강 장관은 또 ‘남북정상회담 후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남북군사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느냐’는 질의에도 “맞다. 충분한 브리핑을 못 받은 상황에서 여러 질문이 있었다”고 했다. 마치 한·미 간에 큰 이견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답변도 ‘몇 차례 통화해 의견교환을 했다’고 하는 게 사실에 부합한다. 문제의 통화가 남북정상회담 전에 이뤄졌다는 사실도 강 장관은 알지 못한 듯하다. 이 모두 강 장관의 정무적 판단과 업무파악 능력에 의문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남북관계·외교 현안은 답변의 뉘앙스에 따라 오해를 부르고 파장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3자회담을 열어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남북도 경협 재개를 위해 부분적인 제재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제재 해제를 뒤로 미루며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과의 불협화음이 일 개연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한·미 간에 더 밀도 있는 협의를 하되 상호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외교적 품위를 잃는 행동은 비핵화에도 도움이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정간섭성 발언을 삼가고, 정부 당국자들은 언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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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며 프란치스코 교황 초청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관심이 많다. 한번 만나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김 위원장이 적극적인 환대 의사를 나타냈다고 청와대가 지난 9일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8일(현지시간) 교황청을 공식 방문하는 문 대통령과 개별 면담을 할 예정이어서 방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오찬을 한 뒤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와 이야기하고 있다. 평양 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정상회담 때 방북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지난달 25~28일 바티칸에서 교황청의 국무총리 격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을 만나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고 1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 보름가량 시일이 지난 만큼 검토를 끝낸 교황이 문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방북 여부와 구체적인 방북 희망 시기를 밝힐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매우 긍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교황이 김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들여 방북 용단을 내려줄 것을 희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들어 한반도의 주요 국면 때마다 기도와 축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4월1일 부활절 미사에서 교황은 “예수의 씨앗이 한반도를 위한 대화의 결실을 맺어 지역의 조화와 평화를 증진하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직후인 29일 미사 때는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인 결과와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한 진정한 대화를 추진한 양쪽 지도자들의 용감한 헌신에 나의 기도를 덧붙인다”고 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틀 전인 10일 미사에서는 “우리 모두 성모 마리아가 한반도에 임해 이 회담을 인도하기를 기도하자”고도 했다. 교황의 언어에 오랜 고난의 땅 한반도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이입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콜롬비아 평화협정 타결 등에 막후 역할을 해왔다. 이런 이력으로 본다면 교황의 방북은 한반도 대전환의 흐름을 굳건히 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비핵화의 진정성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은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종교의 자유 등 인권 분야에서 실질적인 개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비핵화만큼이나 인권 개선도 중요하다. 김 위원장이 교황을 초청한 데는 앞으로 이런 노력을 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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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중국 공안의 2인자인 멍훙웨이(孟宏偉)가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Interpol)’ 총재 후보로 출마했을 때 국제사회는 고개를 갸웃했다. 1984년 대만을 옵서버로 밀어내며 인터폴에 가입한 이래 소극적으로 활동해온 중국이 갑자기 총재 후보를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중국은 회의에조차 잘 참석하지 않던 터였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멍 총재는 임기 4년의 인터폴 수장 자리를 꿰찼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국가들의 경찰 고위직을 초청해 선거운동할 자리를 깔아줬다. 회원국 기여금으로 운영되는 인터폴로서는 중국의 막대한 지원 약속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의 인터폴에 대한 관심은 시진핑 주석의 부패 척결과 궤를 같이한다. 해외 도피자들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인터폴의 활용 가치를 눈여겨본 것이다. 해외 소수민족 활동가들의 동향 파악에 인터폴 정보망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는 멍 총재 당선 이듬해인 2017년 베이징 인터폴 총회에서 드러난다. 시 주석은 장장 30여분간의 연설에서 “중국이 국제 형사 공조에 미온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를 일소하고 공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공안굴기’였던 셈이다. 그러나 멍 총재의 인터폴 장악은 쉽지 않았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멍 총재를 미주와 유럽 국가들이 견제했다. 특히 멍 총재와 독일 출신 위르겐 슈토크 사무총장 간 치열한 ‘인터폴 내 암투’는 진행 중이었다.

 

그런 멍 총재가 지난달 부인에게 칼 모양의 이모티콘과 함께 ‘내 전화를 기다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은신한 범죄자를 찾아내는 국제경찰이 자기 조직의 총수를 찾아야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부인이 기자회견을 한 뒤에야 중국 공안이 그의 구금을 확인했다. 멍 총재의 체포를 실각한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과 연관시키는 시각이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렇게 공들여 따낸 국제기구 수장 자리를, 국가 체면을 구겨가면서까지 버려야 할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시 주석의 권력기관 장악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방증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 어떤 흑막과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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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행보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폴더 인사’다. 지난 1일 김책공대를 방문해 교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년사, 전국노병대회 행사에 이어 올 들어서만 3번째다. 무오류의 최고존엄, 절대적 존재가 주민들에게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하는 모습은 낯설다. 소탈하고 겸손한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노력일 터이다. 평양 정상회담 때 그는 남측 인사들 앞에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진정성이 묻어난다.

 

김정은의 비전이 빛을 보려면 내부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해외에 있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에서 누군가 양보해야 한다면 그것은 북한이다. 북한으로서는 불만스러운 현실이다.

 

북한은 비핵화-종전선언 프레임부터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에 핵을 개발했고,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화되자 위협을 느낀 미국의 필요로 비핵화 협상이 열리게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비핵화 협상은 비핵화-적대정책 철회 프레임이 돼야 한다. 북한은 특히 체제보장이란 용어에 반발한다. 자주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호국 취급을 받는 것을 모욕으로 느낄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입장일 뿐이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는 불법적으로 핵개발을 하고 위협한 것은 북한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또한 핵개발은 용인할 수 없으며 제재와 압박으로 응징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도 공유한다. 양측의 논리는 타당성과 허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방어용이라면서 핵위협을 하는 북한이나, 북한을 협상상대가 아니라 항복대상으로 보는 미국 둘 다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논쟁은 허망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과성과 책임을 가릴 필요가 있다. 한쪽 의견이 부풀려져도, 과소평가돼도 안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계기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비핵화 협상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이른 시기에 열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가장 눈에 띈다. 곧바로 실무협상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미의 협상 태도가 달라진 것도 고무적이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사찰 허용 등 새로운 카드를 제시했다. 미국은 선 비핵화 입장에서 비핵화하면 상응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비핵화 협상이 비로소 일방주의에서 상호주의라는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타협의 여지는 좀 더 커졌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 조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반대파와 대북협상 반대파가 더 많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은 난맥상을 면치 못했다. 사례를 보자.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 압박(“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1년 내 비핵화를 약속했다”, 8월5일 존 볼턴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김정은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약속(9월5일)→트럼프 “북 비핵화에 시간게임 않겠다”(9월26일). 북한이 허들을 넘어서자 미국이 더 높아진 새로운 허들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사도 매번 달라진다. 트럼프는 찬성하는데 행정부의 누군가는 비상벨을 누른다. 트럼프가 북한의 제안을 “환상적”이라고 평가했는데 행정부는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식이다. 조직적 저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러니 트럼프가 “김정은을 사랑한다”면서 “슬프지만 제재는 강화하겠다”는 모순적 대응이 나온다.

 

누군가 양보하지 않으면 비핵화 협상은 진전되지 않는다. 이것이 1차 북·미 정상회담 후 지난 4개월간의 뼈저린 교훈이다.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미국 개최를 제안하기를 권고한다. 미국의 안방을 찾아가 반북세력과 회의론자들 앞에서 비핵화 의지를 역설한다면 그것마저 부정하고 불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급적 미 중간선거 이전에 가는 게 좋지만 이후라도 나쁘지 않다. 북한에는 체제와 2500만 주민의 생존과 번영이 걸린 중대사란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반도 전체로는 70년 냉전과 대결을 끝장내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물론 미국행이 불가능한 이유는 차고 넘칠 것이다. 빈손 방미 가능성도 있고, 미국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결기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위험과 불이익을 합해도 미국행 결단의 명분과 당위에 비교할 수 없다. 안전 문제가 걸린다면 문 대통령과 함께 가면 된다. 워싱턴에서 남·북·미 지도자들이 종전선언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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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총리 관저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아베 내각) 역대 최고인 5명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한 차관급 인사에서 부(副)대신 25명 중 여성이 지난 개각 때보다 2명 늘어난 5명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25세 이상 여성 취업률은 미국을 웃돌고, 임원 수도 정권 발족 전보다 2.5배 늘었다”고 덧붙였다.

 

라가르드 총재는 “일본은 여성 활약 면에 세계의 챔피언 같은 존재”라고 덕담하면서도 일본이 노동시장에서의 성 격차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한 명이자 선도적인 여권(女權) 옹호자로 꼽힌다.

 

아베 총리가 라가르드 총재 앞에서 낯간지러운 자랑을 한 이유가 있다. 지난 2일 출범한 4차 아베 개조(改造) 내각에서 각료 19명 가운데 여성이 단 한 명밖에 없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부대신에 여성을 늘렸다고 자랑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정무관(차관급) 인사에서 여성은 지난번보다 1명이 줄어든 1명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부대신은 큰 권한이 없다”며 “개각이 파벌의 의향에 얽매였고 여성 각료가 적다는 비판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와 경제에서 여성 참여가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에선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4위를 차지했다.

이번 개각에서 이런 상황이 재확인됐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아베 정권의 ‘본심’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여성 활약’을 간판 정책으로 적극 홍보해왔다. 실제 정권 출범 당시 여성 각료가 5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개각 때마다 여성 각료가 3명, 2명으로 점차 줄어들어 이번에 달랑 1명이 됐다.

 

지난해에는 국제여성회의(WAW)를 유치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를 초청했다. 아베 총리는 이방카가 설립에 관여한 ‘여성기업가기금 이니셔티브’ 기금으로 5000만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는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말했다.

이번 개각으로 그런 ‘여성 활약’ 구호를 내팽개친 셈이 됐다. 아베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개각 후 기자회견에서 “(여성 각료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여성 각료인 가타야마 사쓰키 지방창생상에 대해 “2명, 3명 몫의 발신력을 갖고 일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타야마 지방창생상에게 2명, 3명 몫의 권한을 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여성이 2명, 3명 몫을 해야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본사회의 풍토만 부각시킬 뿐이다.

 

아베 총리는 심지어 “일본은 여성 활약 사회가 막 시작돼 앞으로 점점 입각할 인재가 자랄 것”이라고 했다. 발족 6년이 다 돼가는 정권이 할 말인가 싶다. 정말 생각이 있었으면 그동안 여성 의원과 관료를 늘릴 수 있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여성후보자 비율은 전체 17.7%에 훨씬 못 미치는 7.5%였다.

 

‘1억 총활약 사회’ ‘일하는 방식 개혁’ ‘사람 만들기 혁명’…. 아베 정권은 그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신조어를 잇달아 만들어 정권의 치적을 강조하고 비판을 피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개각을 통해 적어도 ‘여성 활약’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오히려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함정에 빠진 거라는 의견도 많다” 등으로 옹호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건재한 게 정권의 본질에 가까운 게 아닐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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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8일 국무회의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루어질 전망”이라며 “북·일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저는 그 모든 과정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또 도움이 되는 과정이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전망하면서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한다.

 

북·미관계가 중대한 진전을 보이고 있음은 속속 확인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시험장을 곧 미국 사찰단이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2차 정상회담도 세부사항 합의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며 회담 개최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제는 김 위원장이 뒷걸음질치기 불가능할 정도로 비핵화를 통한 경제건설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보는 게 상식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우선 폼페이오가 방북 직전 북한의 비핵화 후 일정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중국의 참여를 언급했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아가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최근 악화된 미·중관계를 접어둘 정도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러·일의 움직임도 드러났다. 김 위원장의 방러는 경제협력뿐 아니라 북한이 정상국가의 길을 완성했다는 의미도 된다. 거기에 북·일이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는 셈이다. 동북아 세력균형 틀이 달라지게 된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일·러의 입장이 한국이나 미국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북·중·러 3자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넘어 동북아 냉전대결 구도를 종식하려면 관련국들의 협조와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특히 중국을 평화협정에 참여시켜 한반도 합의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비핵화뿐 아니라 이후 한반도 안보구도에서도 중요하다. 러시아도 안전판으로 들어와야 하고, 북·일 간 관계 정상화도 필요하다. 정부는 북·미 협상 촉진자로서의 역할 외에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도 강화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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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일 평양을 방문,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종전선언 문제를 협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 후 오찬을 하면서 “오늘은 양국의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이번 방북에서 상당히 좋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아직 할 일이 많지만 오늘 또 한 걸음 내디뎠다”고 말했다. 이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개최키로 김 위원장과 의견을 모았다”며 “양측은 2차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기 위한 협의를 계속 진행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핵화 논의가 구체화되고 2차 정상회담을 둘러싼 양측 간 협의가 진전된 것을 주목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지난 7월 이후 3개월여 만이다.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북·미가 이번 폼페이오의 방북을 통해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의 조응 문제를 어떻게 논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짧은 방북 일정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 두 사람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비핵화 조치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만은 분명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취하게 될 비핵화 조치들과 미국 정부의 참관 문제 등에 대해 협의가 있었으며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에 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북·미 양측이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정상회담 일정 등을 빠른 시일 내에 협의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북·미가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큰 틀에서 의견을 모은 것은 물론 북한 핵 폐기 조치가 미국 정부의 참관을 거론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논의했다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고집하면서 종전선언에 부정적이었던 미국이 취할 ‘상응조치’를 언급한 것은 중대한 진전이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조치와 종전선언을 주고받는 빅딜에 합의했거나 조만간 합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미국 측이 한국의 중재 역할에 각별히 사의를 표한 것도 방북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폼페이오는 이날 “한국이 비핵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곧장 여기로 왔다”며 이 점과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의를 문 대통령에게 전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평양을 방문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이끌어낸 것이 논의 진전의 결정적 전기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번에 북·미가 공감한 비핵화 방향이 최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제시한 핵신고 유예 방안을 담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미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2차 정상회담은 북·미가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의 맞교환을 마무리함으로써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완성하는 행사다. 향후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에 대한 협의를 실무협상단을 통해 하기로 결정까지 했다니 큰 난관은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까지는 긴 여정이 남아 있다. 당장 북한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대화 모멘텀을 이어간다면 해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금강산관광 중단을 내용으로 하는 5·24조치 등 일부 제재 적용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북·미가 2차 정상회담에 대한 추가 협의를 순조롭게 마무리함으로써 연내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단계로 가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