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8.09.28 문 대통령의 자주적 결단
  2. 2018.09.27 [사설]격화되는 미·중 무역갈등 대비하고 있나
  3. 2018.09.27 [사설]2차 북·미 정상회담 임박, 한반도 대전환 이정표 완성해야
  4. 2018.09.21 [정동칼럼]평양 선언문 속 ‘협상의 예술’
  5. 2018.09.18 남북 정상과 포위된 트럼프
  6. 2018.09.17 판빙빙의 실종과 중국의 침묵
  7. 2018.09.17 [기고]김정은과 트럼프의 ‘비핵화 의지’ 국제사회에 공개, 검증받게 하자
  8. 2018.09.17 [시론]한반도신경제가 유능한 진보다
  9. 2018.09.14 [편집국에서]존 매케인은 영웅인가
  10. 2018.09.14 [사설]주목되는 시진핑의 ‘한반도 문제 당사국’ 발언
  11. 2018.09.13 [사설]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남북 넘어 북·미 간 연락도 맡기를
  12. 2018.09.12 [조호연 칼럼]연내 워싱턴-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을 기대한다
  13. 2018.09.12 [사설]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비핵화-평화’ 빅딜을 기대한다
  14. 2018.09.12 재일동포 할머니들의 ‘고향의 봄’
  15. 2018.09.11 [세상읽기]비핵화의 덫
  16. 2018.09.10 [아침을 열며]트럼프 참모의 반란과 한반도
  17. 2018.09.10 [기고]남북경협의 ‘봄날’을 기대하며
  18. 2018.09.10 [사설]ICBM 없는 북 9·9절 열병식, 미국은 기다리기만 할 건가
  19. 2018.09.07 [정동칼럼]가을이 오면, 평화도
  20. 2018.09.07 [사설]“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공약한 김정은, 미국이 응답해야

지난 18~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될 때 전 세계 언론은 온통 비핵화 문제에 관심을 쏟았지만, 사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비핵화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을 남북이 주도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는 것에 더 많은 역사적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임을 선언하고 실천 방안을 명시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 간의 종전선언’이다. 특히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군중에게 “나와 김 위원장은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고 확약했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70년 분단 역사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알리는 자주적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평양공동선언은 문재인 정부의 진짜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낸 회심의 카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서 확실한 어젠다를 갖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한의 태도,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확고한 한·미 군사동맹’은 지금까지의 한반도 안보환경에서 절대 변할 수 없는 상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 안위를 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이 같은 안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지금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북·미 비핵화 대화가 정체된 상황에서 이 같은 공동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굴욕을 감내하면서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긴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미국을 의식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 이후 북·미 대화가 뒤처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미국을 기다려주기보다 남북관계를 가속화하여 북·미 비핵화 대화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대화 정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3차 남북정상회담과 미국이 그토록 불편해 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을 강행했다.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로 비핵화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 자신감은 올해 초 대화에 나서기 시작한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또한 북·미 모두 되돌아갈 수 있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는 판단도 과감한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마이 웨이’를 선언하기에 가장 부담 없는 타이밍은 북·미 비핵화 논의가 확실한 궤도에 오르고 평화체제 논의가 순항하기 시작하는 시점일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 시점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앞으로가 문제다. 남북의 구상이 순항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의 표현대로 ‘탄탄대로도 아니고 역풍도 각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아직 평양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은 남북의 의지 외에 국제적 지지도 필요하다. 미국은 평양선언의 비핵화 방안과 북·미 대화 접점 마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지만, 평양선언 전체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한·미가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남북관계 진전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히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한국 정부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한·미 군사동맹이 장차 어떤 방향으로 성격 변화를 해야 하는지, 한반도 평화체제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물음에 즉각 답할 수 있는 확실한 원칙을 지금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는지 여부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김정은과 트럼프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퇴로가 없는 3자가 벌일 치열한 외교전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가 스러지고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높아지고 있다.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무심하게 흐르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는 운명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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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관세전쟁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은 지난 24일 2000억달러(약 224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 5745개 품목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앞서 추가 관세를 물린 것을 더하면 총 2500억달러 규모다. 이에 맞서 중국도 이날 600억달러 상당의 상품에 5~10%의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중국 측은 “대규모 무역 제한 조처는 칼을 들고 다른 이의 목에 댄 격”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미 재무장관과의 협상도 취소했다. 양측이 정면충돌로 맞서면서 G2 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뉴욕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주재한 후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AP·연합뉴스

 

한국은 미·중 두 나라 수출의존도가 높아 양국 수출환경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수출액을 보면 중국과 미국의 비중은 각각 27%, 12%로 전체의 40%에 가깝다. 중국은 한국 등에서 중간재를 공급받아 완성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인데,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그 파장이 한국에 미칠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취약한 주요 국가로 꼽히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5000종이 넘는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대규모로 추가관세를 물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피해를 산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정부는 미·중 간 무역갈등은 단기간·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고, 파장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향후 20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무역갈등의 배경에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양국 간 갈등구조가 금세 끝날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신경제 냉전’의 시대에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업체(93.0%)가 ‘별도로 대응방안이 없다’고 응답했다. 대기업도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자세로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을 수는 없다.

 

정부는 차제에 수출국 다변화, 수출산업 경쟁력 강화, 신산업 발굴 등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도 혁신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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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기간 쏟아진 미국 뉴욕발 뉴스들은 한가위 선물만큼이나 풍성하고 희망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머지않아 2차 정상회담의 최종 준비를 하기 위해 평양에 가게 될 것”이라며 실무 준비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완전 파괴’를 경고하던 1년 전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으로 ‘톱다운’ 방식의 새 합의를 도출해 비핵화를 이끌어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북·미 2차 정상회담의 흐름은 지난 몇달간 정체 상태였던 한반도 대전환 여정의 힘찬 재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한반도 대전환의 밑그림이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리용호 북한 위무상이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캡쳐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북한이 원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대북 제재 계속’을 거듭 확인한 점을 보면 성급한 낙관론은 경계할 일이다. 청와대도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선에서 회담 결과를 전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보여주는 움직임은 많다. 폼페이오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정한 시설들, 특정한 무기 시스템들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것 이상의 비핵화 추가조치들이 꽤 구체적인 수준에서 협의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25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 간의 ‘뉴욕회동’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올릴 ‘빅딜’ 메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서 나온 언급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는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 듯한 짙은 먹구름 속에 휩싸여 있었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취소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일정도 미뤄지는 등 남북·북미 관계 모두 난관에 처해 있었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김정은이 ‘친서외교’로 소통을 유지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중재노력이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살려낸 덕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남북 및 북·미 3각 채널이 앞으로도 작동될 것이란 점이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미국 외교협회 등 주최로 열린 연설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강조했고,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 방안도 예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재완화를 한 뒤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며 미국이 제재완화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종전선언 하나에도 인색했던 미국을 상대로 제재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지원, 예술단 교류 같은 목록을 꺼내놓는 것은 시기상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과감한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도 ‘통 큰’ 상응조치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외교협상이다. 한반도 대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려면 남·북·미 모두 양보와 상응조치로 ‘윈윈’하는 거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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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이 평양 선언문을 통하여 미국에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든다는 의미는 남북 간에 종전을 선언한 것이다. 전쟁이 없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은 재래식 위협뿐만 아니라 핵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리고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의미는 미국에 직접 위협을 가할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을 우선적으로 포기하고, 사찰, 검증을 받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와 미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에 대한 위협은 우선적으로 사라진다. 미국에 대한 위협을 이러한 방식으로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터이니 이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할 차례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면 그다음 단계인 영변의 미래 핵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 그리고 계속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면서 현재 핵과 과거 핵까지 폐기하여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한반도 전역의 전쟁 위험 해소 등을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이번 평양 선언문은 1조에서 4조에 걸쳐 남북관계, 특히 남북 간의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방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비핵화와 관련된 5조는 행간을 읽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간접적으로 기술되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 간에 집요하게 줄다리기를 했던 북한의 핵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고, 그 의미가 포함될 수 있는 다른 말들로 문장이 처리되었다.

 

그래서 행간을 읽어보니 북한은 우선 미국과 미국민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주는 것들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읽힌다. 아직 미완성 단계인 ICBM 개발과 관련된 시설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고, 남북 간에는 종전이 되었으니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이 메시지는 다분히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미국을 향한 북한의 도발을 멈춘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왔는데 이제 단순히 도발을 멈춘 것을 넘어서 위협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선언을 하였으니 말이다. 트럼프가 본인의 치적으로 충분히 내세울 수 있을 만한 북한의 선물인 셈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인 종전선언을 연내에 해준다면, 그다음에는 김 위원장도 다음 단계의 핵폐기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물론 이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추가적인 어떤 제안을 할 수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다.

 

평양 선언문의 이러한 문장과 구조는 절묘한 한 수다.

첫째, 완벽한 핵신고는 부담스러워서 못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로 자랑해 온 미국에의 직접 위협 중단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 간의 실질적인 종전선언을 하여 남북관계 때문에 미국민에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한반도에 주한미군을 보낸 미국 부모, 형제, 부부, 자식들에게 보냈다. 셋째, 일본에 대한 위협과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 제거 내용이 빠져있다. 왜냐하면 일본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언급하지 않았고, 일본을 향한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남겨두고 있는데,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도 일본 정부는 북한과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여 북·미관계와 보조를 맞추어 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빠졌다. 조만간 북·일 정상회담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이를 받아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가이다.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미국의 핵 비확산론자들과 강성 매파들의 견제를 넘어설 결심을 할 수 있을까이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직접 위협 제거와 핵비확산은 다른 문제이다. 전자는 북한과 미국의 양자관계이지만 후자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이 걸린 문제다. 강경파와 비확산론자들은 확실한 비핵화의 증거가 있어야만 종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터이고, 정치인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에의 직접 위협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한다면 종전선언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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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11월 중간선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크게 약화될 수 있다. 북핵 외교도 영향받을 대상 중 하나다.

 

최근 워싱턴의 움직임들은 50일도 남지 않은 중간선거에 맞춰지고 있다. 임기의 4분의 1을 골프장에서 보낸 트럼프가 지난 주말 백악관을 지키며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대응을 지휘했다. 반면 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들은 연일 트럼프 정부의 난맥상을 고발하며 반트럼프 여론을 키우고 있다. 현재로선 트럼프의 정치적 위기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_AP연합뉴스

 

출간 첫날인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에서만 75만부가 팔린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출간과 지난 5일 뉴욕타임스에 익명으로 실린 트럼프 정부 고위 당국자의 칼럼은 트럼프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우드워드는 트럼프를 통제하는 정부 내 ‘어른들’의 역할, 뉴욕타임스 칼럼은 트럼프의 정책을 좌절시키기 위한 ‘레지스탕스’의 존재를 공개했다.

 

로버트 뮬러 러시아 게이트 특검은 트럼프 정부를 흔드는 가장 큰 손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었고 특검의 기소 1호인 폴 매너포트는 최근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받기 위해 특검 수사에 협조하기로 했다. 하루에 수십건씩 올라오는 트럼프의 특검 비판 트위터는 커지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여기에 트럼프의 두번째 연방대법관 지명자인 브렛 캐버노는 고교 시절 성폭행 미수가 폭로되면서 인준 위기를 맞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16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38%로 추락했다.

 

문제는 트럼프의 정치적 위기가 북·미 대화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석 달이 넘게 북·미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서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이 유지되는 것은 트럼프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서 북·미 대화 회의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고 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요청에 고맙다고 화답하며 “우리 둘이서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자”고 말했다.

 

참모들의 생각은 트럼프와 다른 듯하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지난 15일 “대북 정책에 있어 정부 내에서 트럼프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대북 협상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요커는 폼페이오와 대화를 나눈 전직 관리의 말을 인용해 “폼페이오는 대북 대화가 작동할 가능성은 1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NBC도 백악관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발표 다음날 “트럼프의 훈훈한 트윗은 잊어라. 그의 팀은 북한을 엄중히 단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폼페이오는 깊은 회의를 갖고 북한과의 대화에 임했고, 그 과정을 거친 후 대화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전했다. 북·미 대화에서 트럼프는 외로운 섬인 셈이다. 이는 중간선거 이후 북·미 대화를 이어갈 정치적 필요성이 사라지고 트럼프의 의지가 약화되면 대북 협상론은 정부 내 레지스탕스나 어른들에 의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레지스탕스에 포위된 트럼프의 원군이 되어야 한다. 김정은은 구체적 실천으로 비핵화 의지를 증명할 시점이 됐다. 북한이 비핵화에 머뭇거리면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서 살아남을 숨구멍으로 남북관계 개선만 추구한다면 트럼프의 대북 대화론도 힘을 유지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중간선거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딛도록 유인해야 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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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25일, 중국 관영언론 신화통신은 인기 여배우 류샤오칭(劉曉慶·63)이 탈세 혐의로 당국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당일 CCTV도 저녁 9시 뉴스에서 같은 소식을 전했다. 영화, TV드라마 주인공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의 체포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관영언론이 발표하고 나서야 그동안 침묵하던 중국 매체들도 류샤오칭의 탈세 소식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류샤오칭이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체포 3개월여 전인 4월부터였다. 류샤오칭의 매제이자 류샤오칭이 운영하던 연예기획사 대표가 구속됐고, 5월에는 베이징시 지방세무국(국세청)이 류샤오칭 회사 거래은행의 예금계좌 196만위안(약 3억2000만원)을 압류했다. 이즈음부터 류샤오칭의 탈세, 구속, 정치인 연관설까지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그러나 3개월간 언론도, 중국 당국도, 류샤오칭 본인도 침묵했다. 류샤오칭은 이후 2003년 8월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422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다른 수감자 3명과 5㎡의 감방에서 지냈다.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를 연기했던 류샤오칭의 몰락은 그해 가장 큰 뉴스였다.

 

중국 유명 여배우 판빙빙이 지난 6월2일 이후 3개월이 넘도록 정확한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진 판빙빙 웨이보

 

류샤오칭 사건이 다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건 최근 판빙빙(范氷氷) ‘실종’ 즈음 부터다.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중국 대표 여배우 판빙빙은 지난 6월2일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 티베트를 방문한다는 글을 남긴 후 어떤 근황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CCTV 유명 사회자 추이융위안(崔永元)이 판빙빙이 이면계약을 통해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탈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탈세로 체포됐던 류샤오칭 사건과도 겹친다. 판빙빙이 출연한 영화 개봉이 미뤄지고, 모델인 광고에서도 그녀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감금설, 미국 망명설, 최고위층 연관설 등 미확인 소문이 쏟아진다. 한 대만 매체는 “판빙빙이 감금 중이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주요 매체들이 판빙빙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동안 1인 매체 등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전하면서 소문이 진실인 양 번지고 있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인기스타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잠적했을 가능성은 적다.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어 신변 자유에 제한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언론이 침묵하는 사이 오히려 외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4일 중국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로이터통신 기자가 판빙빙 실종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물었다. 겅솽 대변인은 “그게 외교 문제냐”고 되물은 후 대답하지 않았다. 판빙빙 실종은 외교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합법적 조사라면 사실을 밝히면 될 일이지만 중국 당국은 관련한 어떤 발표도 하지 않는다. 판빙빙이 세무조사를 통해 탈세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추징금을 납부하면 된다. 중국은 ‘의법치국(依法治國)’을 전면 추진하겠다며 2035년까지 법치국가, 법치정부, 법치사회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밀도 아닌 사안에 대한 비밀수사, 그에 대한 언론통제는 법치국가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15일 웨이보에 “판빙빙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의 사무실과 관련 부처가 협조해 대중에 단계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 편집장은 “판빙빙이 거액을 탈세했는지 여부는 법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라면서 “판빙빙이라는 인기스타의 실종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역시 언론의 역할은 언급하지 않았다. 책임을 전가하며 침묵하는 사이에 소문만 더 기승을 부린다. 16일은 판빙빙의 37번째 생일이었다. 팬들은 그녀가 없는 웨이보에 생일 축하 글은 올리며 판빙빙의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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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하여 현 단계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의지와 신뢰의 선순환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어떻게 해서든 양국 간에 신뢰를 쌓으려 할 것이고, 신뢰가 쌓여 나가면 핵문제 해결 의지도 더욱 강해지는 선순환이 작동할 것이다. 6월12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문의 구조가 바로 그러한 선순환을 반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 언론과 대화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론적으로 볼 때, 이러한 선순환을 만드는데 유리한 지도자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이다. 그 이유는 미국과 같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제도적으로 의회의 견제, 언론의 견제, 보좌진의 견제, 그리고 여론의 견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주변의 견제가 약하기 때문에 의지만 강하다면 상대방과 신뢰를 쌓기에 유리하다.

 

지금 북한 비핵화는 이 의지와 신뢰의 선순환에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의지를 왜 미국이 안 믿어주는지 답답하다는 심경을 표현할 정도로 일단 비핵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물론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때의 비핵화 의지를 의미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의 견제에 의하여 그 의지가 상당히 약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당장 종전선언 문제만 보더라도, 이는 이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통전부장과의 만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하기로 약속한 사안인데, 존 볼턴 안보보좌관과 매티스 국방장관 등 주변의 견제로 인하여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의 복스(Vox)뉴스가 여러 정보 소스를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중간선거를 앞둔 국내정치 상황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였으며,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줄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급속한 레임덕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내의 이른바 행정 쿠데타를 폭로한 책 &lt;공포&gt;와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능력을 비판한 고위관료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악재가 더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이렇게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악마국가’로 인식되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과연 강력한 의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에 더해 더욱 불안한 징조는 현재 북한 비핵화 협상에 직접 관련이 없는 재무부와 법무부까지 비핵화 협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2005년 이른바 ‘BDA 제재’의 기억을 되살린다. 이 제재는 미 재무부가 ‘애국법’ 311조를 적용하여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그곳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것인데, 그 결과 순항하던 당시 비핵화 프로세스가 파행하고 북한은 핵실험으로 대응하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미 재무부가 9월13일 북한의 IT 노동자 국외 송출과 관련하여 북한인 1명과 중국·러시아 기업 2곳에 대한 독자 제재를 단행했고, 법무부는 9월6일 ‘박진혁’이라는 이름의 북한인과 북한 기관을 2014년 소니 영화사의 해킹과 영국 및 방글라데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의 배후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최근 러시아, 중국,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가운데 이러한 악재들이 법무부와 재무부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거의 전 부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견제를 하는 모양새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웬만한 선물로는 종전선언에 합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설사 북한의 핵신고와 종전선언이 있어도 1994년의 경험에 미뤄보면 검증 단계에서 위기가 또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이 생각보다 빨리, 강하게 닥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친서외교를 통하여 이 국면을 타개해 나가려 하고 있으나, 이제는 친서보다는 북한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비핵화의 로드맵과 시간표를 국제사회에 전격적으로 공개해야 할 시점이다. 누가 진정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를 국제사회가 판단, 검증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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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길은 북쪽에 있다. 북한은 지하자원, 관광, 노동력 등에서 노다지와 같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가 덕 본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배상도 받는다. 북한에 ‘퍼주기’라고 하는데 ‘퍼오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륙 간 철도가 연결되면 물류비용이 30% 절약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태평양의 물류거점이 된다. 물류가 일어나면 경제가 일어난다. 이런 것은 북한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라시아 대륙이 노다지판과 같다. 길게 보면 이렇게 경제를 살려야 한다.”

 

10년 전이다. 2008년 11월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의 면담에서 ‘북한은 노다지’라는 발언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몰아붙였고, 보수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탁견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출처:경향신문DB

 

민족의 회복은 어디에서 오나. 경제다. 민족의 번영은 어디에서 오나. 그 역시 경제다. 한때는 분단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상대를 패망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망하더라도 남한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도 지배했다. 박근혜 정권기에는 북한 급변론(멸망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상황이 전변했다.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센토사 합의가 그것이고, 향후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후 벌어질 새로운 지평이 있어서다.

 

한국경제는 성장판이 닫혔다. 박정희 경제패러다임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와의 조합은 더더욱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 낡은 성장제일주의와 정경유착, 탐욕의 자유와 노동인권 말살, 저성장과 양극화는 대한민국 경제를 구조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과연 한국경제의 탈출구, 새로운 성장의 기회는 무엇인가?

2007년 10월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이 발표되었다. 10·4는 다르다. 6·15선언을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제협력 단계로 나아가는 로드맵을 합의했다. 선언 발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장 핵심적 성과로 새로운 경제협력사업을 꼽은 바 있다. 민족경제의 목표와 운영원칙을 합의한 것은 10·4선언의 중요한 성과였다. 10·4선언의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은 남북 간 단순 교역 증가가 아닌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위상과 폭이 대폭 강화되었다.

 

2018년 4월27일, 남북의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무엇보다도 판문점선언의 의의는 ‘평화번영을 향한 연합적 거버넌스’를 제창한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신경제는 다르다. 평화체제 없는 긴장완화형 경협이 아니고 흡수통합형 경협도 아니다.

 

한반도신경제는 네가지 개념축이 상호작용한다. 먼저 ‘평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안정 확보,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체제 안정 보장,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및 해소는 경제를 위한 안전판이다. 둘째 ‘자주’다. 미국과 중국의 입김에 의존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남북한이 직접 평화와 경제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공영’이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북한경제 발전 과정에서 남한경제도 발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넷째 ‘번영’이다. 북한이라는 경제 블랙홀이 사라지면, 작게는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이 크게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일대 도약의 기회가 있다.

 

EU의 발단이 독일이 제창한 ‘석탄공동체’였다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창한 ‘철도공동체’가 될 것이다. 1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라시아 대륙은 노다지판’이라고 내다본 것처럼 말이다. 6·15가 통일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를 논했다. 10·4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논했다. 4·27은 한반도신경제를 통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논하고 있다. 이것이 유능한 진보의 진일보다.

 

<최민식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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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치러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의 장례식은 미국 내에서의 그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은 의회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됐다. 미국 역사상 30명만이 누린 특권이자 명예였다.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은 국장을 방불케 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앨 고어·딕 체니 전 부통령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참모와 각료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말 그대로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적과 동지가 따로 없었다. 한 언론인은 ‘레지스탕스 모임’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이야말로 미국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지도자라는 의미일 터이다.

 

각계 인사들이 쏟아낸 헌사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애국자, 영웅, 자유의 수호자, 평화의 전사….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찬양일색이다. ‘평화의 전사’라는 헌사는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바쳤다. 놀라운가. 그럴 필요는 없다. 매케인에게 쏟아지는 대부분의 헌사처럼 그의 본심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죽은 이에 대한 예의의 표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매케인 장례 기간 동안 그를 성인이나 영웅으로 만들려는 분위기는 역력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게 하는 걸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진행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군인에 대한 예우다. 달리 말하면 국가에 헌신한 자에 대한 존중이다.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다. 매케인만큼 이 전통에 맞는 미국인도 없을 성싶다. 그의 삶은 국가를 위한 봉사로 점철됐다. 젊은 시절에는 해군 소속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23번째 폭격 때 격추돼 포로로 5년5개월간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포로 시절 고문당하고 석방을 거부한 무용담은 그를 진정한 전쟁영웅으로 각인시켰다. 더욱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미 해군 사상 최초로 4성장군을 지냈다. 3대에 걸쳐 국가에 충성한 가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원의원 2선, 상원의원 6선 등 36년을 연방의원으로 봉사했다. 평판도 좋다.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이자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자리매김됐다. 때로는 당론에 반기를 들어 공화당의 이단아로 불렸다. 그의 이단아 기질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사망하기 약 1년 전인 지난해 7월의 일이다. 그는 미 의회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연출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채 2주가 안된 그는 애리조나주에서 워싱턴까지 3000㎞를 날아 상원에 나타났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일명 트럼프케어)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동료 의원들의 아낌없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자신의 건강보다 소임을 다하려는 자세에 대한 찬사였다. 그는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법안은 부결됐고, 같은 당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를 안겼다.

 

하지만 그는 영웅으로 불릴 수 없는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있다. 바로 인류 평화에 대한 기여다. 그의 삶은 전쟁과 분리할 수 없다. 그의 발언과 행동은 전쟁을 부추기는 데 일관돼왔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리비아·예멘 전쟁 어느 하나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란에 대한 공격이나 러시아와의 대결도 지지했다. 2008년 대선에서 매케인이 당선됐다면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평화주의자에게 그는 전쟁 도발자일 뿐이다. 그가 진정한 영웅이 되려면 포로 경험을 바탕으로 반전운동에 투신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의회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아쉽게도 그의 행동은 방산업체의 이해관계와 일치했다. 록히드 마틴사가 그의 죽음에 헌사를 바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사이 중동에서는 수십만명이 죽고 수백만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이런 그를 영웅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매케인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미국 문화의 한 대상일 뿐이다. 그의 추모 열풍은 미국식 영웅 만들기의 한 단면이다. 매케인 사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니콜라스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군사 쿠데타를 모의했다고 폭로했다. 이것이 매케인의 유산을 칭송하는 미국의 본 모습이다. 앞에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뒤로는 제국주의 방식으로 세계에 군림하려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는 특출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국가안보정책에 충실하고, 미국의 가치와 국익을 좇는 정치인에 불과했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대변자였을 뿐이다. 진정한 영웅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과연 1년 뒤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매케인을 기억할까.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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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진핑 주석은 1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국제사회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은 당사자다”라면서 “당사자는 북한, 한국, 미국이다.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어 “그들(남·북·미)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과정의 각종 일들을 계속해야 하고 우리는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주체가 ‘남·북·미 3자’가 될 수 있음을 거론한 것이다. 중국이 빠진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용인하는 쪽으로 중국 지도부가 입장을 정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국의 입장 변화는 북·미 협상이 교착되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2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해양 러시아 아동센터’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_ AP연합뉴스

 

종전선언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마중물’로 꼽혀왔으나 선언 주체를 남·북·미 3자로 할 것인지, 남·북·미·중 4자로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지속돼왔다. 그간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 지위를 내세워 자국의 참여를 주장해왔으나 미국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입장을 바꾼 것은 종전선언을 놓고 미·중 간 기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 책임론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는 북한 입장에 힘을 실어 미국의 태도변화를 유도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9·9절 방북을 취소하는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최근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고, 시 주석의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읽힌다. 중국 당국의 자제력 있는 행보를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남·북·미 종전선언’을 용인하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종전선언을 미룰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지난 5일 방북특사단에 “한·미동맹이 약화한다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종전선언과 전혀 상관이 없다”며 미국 조야의 불안감을 불식시켰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 주석의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상응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통해 종전선언을 위한 협의에 나설 것을 희망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종전선언이 이뤄져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선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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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선언의 핵심 합의사항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14일 개성공단 내 청사에서 개소식을 열고 즉시 가동에 들어간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남측 소장, 북측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소장을 맡아 교섭·연락, 당국 간 회담·협의, 민간교류 지원, 왕래 인원 편의보장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통일부가 12일 밝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로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갖게 됐다. 남북관계의 상시화·제도화 토대가 마련되는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통일부는 연락사무소장이 책임 연락관이자 대북 교섭·협상 대표의 기능을 병행하며, 필요시 쌍방 최고책임자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대면 협의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연락사무소 설치는 특사의 상시 파견과 맞먹는 효과를 갖는 셈이다. 남북의 책임자들이 한 건물에 상주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남북관계 현안을 조율하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서로 전통문을 주고받으며 날짜를 정해야 열릴 수 있는 남북 당국 간 회담에 비춰보면 시간과 공간을 절약할 수 있는 상주체제가 남북관계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효과는 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12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건물 외벽에 ‘남북정상회담 성공 기원’ 대형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연락사무소의 당면과제는 철도·도로의 연결 및 현대화와 산림협력 등 판문점선언 이행과 관련한 실무적인 논의들이다. 하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서 제재가 해제되면 남북경협의 명실상부한 거점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좀 더 진전되면 연락사무소 체제에서 서울·평양 상호대표부 체제로 확대될 수 있다. 정권의 성향이나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온 남북관계가 제도적 도약을 하는 출발점이 연락사무소인 셈이다.

 

국내 보수세력과 미국 내 일각에서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대북 제재에 저촉된다고 하거나, 남북관계의 독주 사례로 꼽는다. 연락사무소 개소를 위한 유류 등 대북 물자 반출을 놓고 한때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락사무소 설치는 주권국가의 외교활동으로 대북 제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관계 발전만이 아니라 비핵화와 북·미관계를 촉진하는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북측은 비핵화 등 북·미 현안을 남측과 협의할 정도로 태도가 유연해졌다. 통일부가 연락사무소가 “비핵화 협의의 진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판단일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을 지원하는 거점이 되도록 남북이 노력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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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과 미국의 ‘정상 담판 카드’가 재등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공식 요청하고 백악관은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두 정상이 교착상태를 뚫으려면 다시 한 번 직접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북·미 교착상황은 협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시적인 장애가 아니다. 협상의 의미가 퇴색될 만큼 장기화되거나 아예 협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일 협상이 파탄난다면 한반도는 70년 냉전이 기약없이 연장되고 전쟁 분위기로 흉흉했던 과거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와 김정은도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후 북·미 관계는 답보를 거듭했다. 정상회담이 압박과 제재의 기존 비핵화 문법을 뛰어넘는 인식의 대전환을 보여준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북핵 문제를 양국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풀자는 방식은 창의적이고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미국 내 반발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최고지도자들이 북핵 해결의 원칙과 방향을 정했으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 시스템이 작동해야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생각을 보좌하기는 커녕 그에 반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를테면 미 재무부는 지난달 15일과 21일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유엔의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며 제재 조치를 취했다. 지난 6일엔 미 법무부가 사이버공격을 주도한 혐의로 북한 해커를 처음 기소하고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는 싱가포르 합의문 제1항의 정신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전후로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와 장거리미사일실험장 해체, 미군유해 송환 등 미국에 대한 선제적 조치들을 취했다. 지난해 시작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은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하나하나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력 중시의 통치 철학에 반하는데다 수십년 핵개발 논리를 부정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응조치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유예가 전부였다. 등가성도 상호성도 떨어진다.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경제노선 채택을 약점 삼아 제재·압박의 실효성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분위기마저 엄존한다.

 

미국의 이런 자세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오만에서 나온다. 도덕적으로 패륜국가, 정치적으로 깡패국가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항복을 받을 순 있어도 협상 상대로 존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압박 만능심리도 이와 관련이 깊다. 미국 강경파 입장에서 제재·압박은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거나 고사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협상에서도 양보와 타협보다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 역시 70년 적대 역사의 무게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협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시대착오적인 벼랑끝전술을 내놓았다. 김계관의 미국 비난 성명, 김영철의 편지는 협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최고지도자들이 합의한 내용을 측근과 실무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원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인간적 신뢰 뿐이다. 두 사람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상호 의존성을 높여가며 공생관계를 형성해왔다. 국내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던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후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익명기고문’ 위기는 물론 11월 중간 선거에서 원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도 국제지도자로 부상했다. 모두 비핵화 협상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선물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무게는 1차 못지 않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사변이지만 그러려면 상식과 관성을 뛰어넘는 대담한 결단이 요구된다. 김정은은 이미 ‘트럼프 임기내 비핵화’를 제안했다. 절대적인 북한의 핵의존도와 촉박한 시간을 감안하면 정권과 자신의 운명을 건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상응하는 조치로 호응해야 한다. 먼저 ‘임기내 북·미 수교’ 제안은 필수다. ‘비핵화-체제보장 프레임’의 출구 시한 완성을 위해서다. 하지만 북·미 실무자들을 추동하고 비핵화협상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간 단계의 깜짝 이벤트도 필요하다. 연내 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과 일부 핵탄두 폐기의 교환이 하나의 방법이다. 둘다 현재로서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건투를 빈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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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고 백악관이 10일(현지시간) 밝혔다. 백악관은 2차 정상회담에 열려 있고, 이미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혀 양측이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교착상태인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두 정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의 목표에 합의했으나 이후 석달간의 후속 협상은 ‘디테일의 악마’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예정된 방북일정을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양측은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가졌다. 2차 정상회담 추진은 이 탐색전의 결과로 양측이 주고받을 현실적인 타협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거나, 그럴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협상교착의 원인인 ‘핵신고-종전선언’ 대립이라는 난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정상들이 만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7일 (출처:경향신문DB)

 

두 정상이 다시 만나야 할 필요성은 일찌감치 거론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미 협상에서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한 만큼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북·미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면 대북 제재를 완화해 가면서 외부투자와 지원을 받아내 경제성장의 마중물로 활용하려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이 11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2차 정상회담 추진은 지난 5일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이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두 정상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결과이기도 하다. 실무협상이 난항에 빠진 가운데서도 상호 존중심을 잃지 않고 친서외교로 신뢰를 쌓아온 것이 정상회담의 추진 동력이 된 점은 평가할 만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앞으로도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정상 간의 신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때 엇박자 평가를 받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의 궤도로 복귀하게 된 것도 다행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해야 할 ‘빅딜’을 위해 남북이 지혜를 모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사단 파견을 시작으로 중재역에 다시 시동을 건 문재인 정부의 분발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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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지난 8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사쿠라초등학교 강당에 ‘고향의 봄’이 울려퍼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40여명이 함께 입을 모았다.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재일동포 고령자 모임인 ‘도라지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마당극을 여는 노래였다. 마당극 제목도 ‘고향의 봄 2’.

 

‘도라지회’는 1998년 1월 가와사키 후레아이칸(교류관)에서 글을 배우던 할머니들의 교류의 장으로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 사쿠라초등학교 한쪽을 빌려 한국 요리나 노래, 춤을 즐긴다.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할머니들이 서로 흉금을 터놓고 위안을 얻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등록 회원은 110명.

 

마당극에 앞서 후레아이칸 30주년 및 도라지회 2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후레아이칸은 재일 인권운동가 고(故) 이인하 목사(1928~2008년)의 주도로 1988년 설립된 다문화 복지시설이다. 후레아이칸과 사쿠라초등학교가 자리한 사쿠라모토(櫻本) 지역은 재일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날 마당극은 일제강점기와 태평양 전쟁, 해방 등 굴곡의 역사를 살아온 재일동포 할머니들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총 4마당에 걸쳐 할머니들의 연기와 노래, 춤이 펼쳐졌고, 중간중간 할머니들이 꼭꼭 눌러쓴 ‘개인사’가 소개됐다. 

 

섣달그믐 밤 어머니가 만들어준 치마저고리를 껴안고 자던 ‘고향’의 기억, 일제의 공출을 피해 쌀을 숨기다 발각된 아버지가 끌려간 일, 가난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바다 건너 일본으로 온 일, 어떻게든 살기 위해 한 잔에 40엔 하는 막걸리 가게를 열고 일본인이 먹지 않던 소 내장을 구해 야키니쿠(숯불고기) 가게를 한 일…. 할머니들의 질곡 많은 삶에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당극에선 억척스럽게 역경들을 이겨낸 할머니들의 모습이 빛났다. 최고령자인 조정순 할머니(94)는 탄광촌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나르던 일을 담담하게 증언하면서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의미로 몇 번이나 했던 한국말로 “아이고 참 좋다”를 외쳤다.

각 마당을 알리기 위해 한 할머니가 손팻말을 들고 엉덩이춤을 추자 관객석에선 “예뻐요”라는 말이, 할머니 10여명이 ‘노들강변’에 맞춰 부채춤을 추자 “멋지다”라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할머니들이 대사를 까먹어 서로 알려주거나 “잘 들리지 않으니 크게 말해” “내가 말할 차례니까 잠깐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할머니들은 무대를 내려오면서 “부끄럽다”면서도 웃었다.

 

마지막 마당에선 도라지회에 다니면서 젊은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들과 함께 “차별을 없애자”고 노력하는 걸 보고 “우리도 힘내야지”라고 다짐하는 할머니들의 심정이 소개됐다.

 

“돌아가라니. 지금 돌아갈 곳은 이곳밖에 없어. 그런 말 말고 도라지회에 오면 어때. 맛난 거 함께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 좋지 않나. 제대로 만나보면 그렇게 말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이어 페루에서 온 일본계 2세 오시마 마사코(大城正子) 할머니의 글이 소개됐다. 할머니는 “(페루에서) ‘네 나라에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조선에 돌아가’ ‘죽어’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슬픈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마당극을 닫는 노래도 역시 ‘고향의 봄’이었다.

마당극이 끝난 뒤 할머니들이 모두 모여 사진을 함께 찍었다. “이 모습으로 모이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진행자의 농담에 모두들 환하게 웃었다. 이날 할머니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남달라보였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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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 간 지루한 비핵화 협상을 지켜보며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18년 전 이맘때 방영된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송혜교에게 “사랑? 웃기지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고 하자, 송혜교는 창백한 얼굴로 “얼마…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정말 많이 필요해요”라고 말하곤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간다.

 

이번 9·9절 행사에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등장시키지 않은 북한이 핵포기 대가로 얼마를 받으려고 할까. 2012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핵개발에 11억~15억달러, 미사일 개발에 17억4000만달러, 총 28억~32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지금까지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을 것이라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심지어 북한이 핵개발로 잃어버린 기회비용까지 요구할 것임을 감안하면 비핵화 비용 최대 추정치가 2조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북한이 지난 9일 정권수립 70주년(9·9절)을 맞아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개막 공연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인간 카드섹션으로 만든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금권정치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돈은 복음이자 만능의 보검이다. 민주주의, 언론자유, 인권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들도 물신화된 ‘아메리카 퍼스트’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진다. 충동적 분노의 화신은 자신의 믿음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한국과 일본이 내는) 돈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트럼프 특유의 즉흥적 도박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판돈이 올라간 싱가포르 선언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도 2차 방북(5·9) 후 미국 CBS 방송 인터뷰(5·13)를 통해 비핵화를 할 경우 제재를 풀어 민간자본이 북한에 유입되어 주민들도 고기를 먹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는 자본주의 심장부 뉴욕의 휘황찬란한 스카이라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듯 오만한 부자는 빈자(貧者)에게 ‘아메리칸드림’을 집요하게 설파하지만 ‘주체 조선’은 요지부동이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9일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전투기가 불꽃으로 숫자 70을 형상화하고 있다. 평양 _ AP연합뉴스

 

그렇다고 강대국을 감정만으로 대할 순 없는 일. 때로는 굴욕적 감정조차 속으로 삼킨 채 짐짓 실사구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게 곤핍한 북한의 운명이자 비애임을 김정은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궁핍한 세습 독재국가가 고진(苦盡) 끝에 낳은 자식인 핵무기는 비현실적이다. ‘절대무기’가 북한의 미래를 밝힐 등불이 되리라 믿는 것은 환상이다. 북한 희망의 빛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연소시켜 나오는 에너지로만 밝힐 수가 있다. 관건은 전인미답 비핵화의 길로 북한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이다.

 

우선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일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 동결과 일체의 핵·미사일 시험 및 발사 중지 그리고 이에 대한 충분한 검증 수용 등 ‘선행비핵화’ 조치와 맞바꾸는 일이다. 선행 조치에 대한 검증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다. 연락사무소가 설치된다면 북한에는 ‘승냥이 미제국주의’가 사라지고, 북한으로 흘러가는 개혁·개방의 수문을 열 수 있다. 미국으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또 있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와 무관함을, 그리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동 종전선언이 유효함을 합의문에 넣어 서명하는 일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설’만으로는 부족하다. 문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에 애써 국회 비준이라는 대못을 박으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에 말(言)이라는 것도 관계가 좋을 때만 통할 뿐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합의문서라도 남아야 그걸로 남북 간 신뢰의 싹이 튼다. 이는 김 위원장의 비장하고 담대한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역사는 가끔 어떤 문제의 해법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곳에다 얄궂게 던져놓곤 한다. 기다림이 점차 위험해지고 있다. 비핵화가 딱 그 모양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역사만을 생각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못할 것도 없다. 정권만을 생각했다면 지난봄 판문점선언과 같은 드라마는 쓸 수가 없었다. 가을에 또 하나의 동화 같은 극적인 합의를 기대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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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백악관에 합류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 전제는 ‘이 체제는 작동할 수 있고, 작동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임기 첫해의 4분의 3이 지났을 뿐인데 고위 참모들 중 이 전제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는 말 그대로 거의 한 명도 없었다. 대다수 고위 참모들이 기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긍정적인 면은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행정부 고위 관리의 뉴욕타임스 익명 기고에 크게 화가 났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가짜뉴스’ 매체를 통해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부하는 계속 암약하겠다고 한다. 무도덕, 무개념, 무지, 충동성으로 똘똘 뭉친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지 않도록 그가 물러나는 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조용한 저항세력의 일원”이 되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 언론과 대화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보스는 부하를 면전에서 모욕을 준다. 부하는 뒤에서 보스의 지적 능력을 조롱한다. 이런 얘기는 삽시간에 참모들 사이를 떠돈다. 누가 ‘바보’ ‘얼간이’ ‘멍청이’ ‘초딩’이라고 했더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킥킥거리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연상된다.

 

글머리에 인용한 것은 익명 관리의 기고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올 초 마이클 울프가 쓴 책 <화염과 분노> 에필로그의 한 대목이다. 울프가 인터뷰한 참모에 이 관리가 포함됐는지는 알 수 없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대로 움직이기보단 그의 뜻과 반대로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행정부 내 있다는 건 확인된다. 이들은 나라를 위한,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오죽하면 고위 관리가 나서 ‘반트럼프 저항운동’을 하겠다고 했겠냐 싶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도덕적·정치적 참사다.

 

익명 기고에 고위 관리들 사이에선 ‘낫 미(Not Me·나는 아니다)’ 캠페인이 벌어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시작으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 벤 카슨 주택도시장관,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 100명 정도가 고위직으로 분류된다는데 그중 30명가량이 결백 선언과 함께 충성맹세를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내용이 공개된 다음날이라 백악관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지적 장애”라고 했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반역자(기고자)’ 색출을 위한 수사를 촉구했다. 찾는다고 백악관의 난맥상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주목되는 것은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결정과정이다. 우드워드의 책에선 지난해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탈퇴 서한을 대통령이 서명하지 못하도록 집무실 책상에서 몰래 치우고, 매티스 국방장관은 시리아 대통령 암살 지시에 알았다고 해놓고선 포격 공습으로 전환시킨 일들이 묘사돼 있다. 익명 관리가 말한 ‘조용한 저항’의 사례로 여겨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의견과 지시에 다른 입장을 내는 참모를 어떻게 바라볼까. ‘망해가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쥐새끼’ 취급을 하지 않을까. 이런 난장이 벌어지는 백악관에 선뜻 들어가겠다고 손을 들 사람은 얼마나 될까.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에 대한 의심이 커질수록 가족에 더 의존할 개연성도 있다. 이미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남들이 뭐라건 백악관 선임고문직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을 마냥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일만은 아니다. 특히 한국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할 키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 기질 때문이든, 공명심 때문이든 간에 한반도를 놓고 거대한 협상판이 열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비핵화 논의는 그 자체가 무수한 변수를 동반한 지난한 과정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불확실성까지 겹쳐지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의 대북특사단 방북으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제자리를 맴돌던 북·미 비핵화 논의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에 “함께 잘해나가자”고 하고, 김 위원장의 친서가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알리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우드워드의 직설과 참모의 반란으로 연타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으로 시선을 돌리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의 외교안보라인에도 ‘레지스탕스’ 그룹이 존재할까. 있다면 이들은 북핵 협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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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북한 정상이 오는 18~20일 평양에서 만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행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이자, 햇수로는 11년 만이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아마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이나 공동번영을 위한 남북 간 경제협력 방안이 협의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예상의 배경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18 국민미래포럼’에서 문 대통령이 축전을 통해 “남북 간의 전면적 경제협력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시작이자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진행된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한 사이의 경제협력은 우리 경제의 안정과 함께 남한과 북한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매우 크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국민들 사이에 북한과의 경제협력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삼성증권이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연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전망’ 세미나에 100명이 넘게 모였다. 주최 측 관계자는 “한국의 성장속도가 느려지면서 북한과의 협력을 마지막 희망이라고 보거나 경협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접목할 방법을 고민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2007년 11월24일, 첫 남북자원개발 협력 사업인 북한 정촌 흑연광산의 흑연이 인천항을 통해 반입됐다. 황해남도 연안군 정촌리 흑연광산에서 2007년 4월부터 생산된 흑연제품 200t이 23일 오후 북한 남포항을 출발해 24일 오후 마침내 인천항에 도착한 것이다. 북한산 흑연은 인천항과 남포항을 정기운항하는 국양해운 소속 트레이드 포춘호(4000t급)에 실려 들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한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3년부터 추진해온 정촌 흑연광산 개발사업을 2007년 4월부터 정상 가동시켜 생산된 양의 일부를 국내에 반입한 것이다.

 

북한 흑연광산 개발사업은 2003년 7월 광물자원공사와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가 공동 개발키로 합의한 후 2006년 4월 우리 기술로 선광장(가공공장)을 준공했다. 광물자원공사는 지분 50%를 취득하는 대가로 60억원 상당의 현물을 출자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2010년 5·24조치로 중단됐다.

 

남북한 사이의 지하자원 개발 협력사업 대상이었던 흑연 광물의 경우 우리는 지금도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에서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계약대로 흑연광산 개발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북한산 흑연이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흑연의 한 종류인 ‘인상흑연’ 수요량의 약 15%를 대체할 수 있다. 이 흑연은 주로 제철, 제강 등의 용광로 부재료로 사용되지만 기술개발을 할 경우 부가가치가 더 높은 2차전지 배터리(음극재)의 핵심 원료로도 활용된다.

 

한국광물자원공사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 부존하는 광물의 종류는 200여종이다. 이 가운데 경제적으로 유용한 광물은 석탄, 철, 아연, 금, 마그네사이트 등 19종 42개가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 정권은 서해권 자원개발을 통한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듯하다. 북한에는 728개 광산(광물자원공사 2016년 자료)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 중 서해권 지역 광산 수는 황해남도 60개, 황해북도 80개, 평안남도 123개, 평안북도 88개 등 모두 351개다. 북한 전체 광산의 53%다. 또한 서해권에는 북한의 대표적 수출 광물인 무연탄광산이 87개, 철광석을 생산하는 철광산이 12개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지하자원 개발이야말로 남북이 공동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경제발전에 가장 부합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북한 광물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산업에 필요한 원료 광물의 공급 안정화를 위해서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라도 북한 경제가 살아나야 하고, 남북 간 산업이 균형을 이루려면 선행돼야 하는 사업이 자원개발이다.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의 알찬 결실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천구 | 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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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정권수립 70주년(9·9절) 기념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지난 2월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형’과 ‘화성15형’ 등 ICBM이 등장한 것과 비교하면 사뭇 절제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열병식에서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번엔 연설하지 않았다. 대신 연설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제적 목표를 강조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가자들이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집회에서 행진하고 있다. 행렬 가운데 군용전차에 ‘경제건설에 총력을’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노선전환을 채택했던 점에 비춰보면 9·9절의 ‘조용한’ 열병식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열병식을 통해 북한은 대내외에 약속한 노선전환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대화기조를 9월 이후에도 살려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밝힌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때마침 평양 인근에 세워졌던 ICBM 조립시설이 완전히 해체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북한이 자제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메시지가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9·9절 행사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하는 대신 국가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을 보내는 등 ‘로키(low-key)’로 임했다. 중국의 대북접근 강화를 껄끄러워하는 미국을 의식해 중국 스스로가 북·미 협상의 ‘중국변수’ 가능성을 낮춘 셈이다.

 

이로써 9월 한반도 정세는 순탄한 흐름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가 다시 대좌할 환경이 최적화됐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사단 방북과 9·9절 열병식에서 드러난 북한의 대화 의지를 미국은 전향적으로 수용해 북·미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희망한다. 양측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협상 재개를 위해 각고의 노력에 나서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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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씨앗을 심고, 가을에 결실을 거둔다. 식상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반드시 적중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벗어날 수도 있다. 홍수, 가뭄 또는 병충해가 심하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월27일, 모두의 가슴에 희망을 심으며 평화의 봄을 알렸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적절한 표현이었다. 2013년 초부터 시작된 한반도 위기 4년의 고비 끝에 찾아온 희망의 씨앗이었으며, 더욱이 막다른 골목 같은 2017년을 몸서리쳐지는 전쟁공포로 지나온 터라 2018년 봄이 우리에게 준 희망은 숨 막히도록 극적이었다. 무너진 나라의 근본을 회복하려고 꽁꽁 얼어버린 겨울의 많은 날들을 참아내며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루고 맞이한 2017년의 봄처럼 2018년의 봄이 주는 희망은 감추기 어려웠다.

 

북한 시민들이 6일 평양 지하철역사 안에서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 소식을 보도한 노동신문 기사를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름의 초입에서 이루어진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적대 및 불신구조를 바꾸는 대전환점을 만들었다. 뜨거운 여름 볕에 열매가 영글듯 평화의 가을로 가는 데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길게는 70년 냉전, 짧게는 25년 북한 핵 위기가 만든 얼음의 두께는 생각보다 견고했다. 실무협상으로 넘어가면서 불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두 정상은 실무협상으로 넘어가면 다시 불신구조가 드러난다는 것을 간과했던 것 같다. 정치적 종전선언은 아무런 문제없이 추진되리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미군철수를 들고나올 것이라고 의심했고, 북한은 미국이 일방적인 핵폐기만을 요구한다고 의심했다. 교착상황과 기싸움 속에서 초반부터 등장했던 냉소와 의심은 다시 커졌으며, 폼페이오의 3차 방북이 무산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러나 남겨둔 카드가 있었다. 그것은 정상 간 타협인데, 폼페이오의 3차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지 않은 것은 비장의 카드로 아껴둔 것일 수 있다. 트럼프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물론 11월 미국의 중간선거까지 이대로 갈 수도 있다. 결국 적어도 교착상태를 푸는 양보는 북한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국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트럼프만 믿고 자신들의 핵심 지렛대를 던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다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그런 인식으로 3월5일 방북 6개월 만에 특사단이 다시 북으로 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왔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특사 방문으로 죽어가는 불씨를 일단 살려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미국에 종전선언을 먼저 해주기를 요청했지만, 과감한 비핵화조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또한 종전선언을 할 경우 한·미동맹 약화나 미군철수를 요청할 것이라는 의심에 대해 그럴 의도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핵신고서 제출과 종전선언의 맞교환 제안은 기본적으로 북·미 문제라는 점에서 특사단에 구체적으로 말했을 가능성은 낮다. 혹시 구체적인 양보조치를 들었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수 없다. 이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남북정상회담 전에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에서 설득을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지난 4월 남측 예술단의 ‘봄이 온다’ 평양공연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즉석에서 ‘가을이 왔다’라는 제목으로 서울공연을 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독히도 더운 여름을 지나 지금 우리는 가을의 문턱에 있다.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여름을 지나 겨울로 가지 않고 원래 희망했던 가을이 오기를 바라고, 평화도 오기를 기원한다.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머무는 한반도의 가을이 되기를 소망한다. 

 

온 국민이 겨울 한파 속에서 싸울 때, 정의로운 분노를 피해 죽은 척하던 적폐들이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서히 사악한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그들은한번도 촛불혁명의 정당성을 수긍한 적이 없지만, 마치 기회를 줬음에도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선동한다.지난봄 한반도평화를 향한 희망을 말할 때도 냉소했던 자들은 교착상황이 오자 대놓고 평화를 방해하려 한다. 제재를 푼 적도, 비핵화의 목표를 결코 버린 적도 없는데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곧 제재를 풀고, 비핵화 목표도 버린 것으로 호도한다. 이 땅에 전쟁을 영구적으로 종식하고 평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향해 또 친북프레임을 뒤집어씌운다.

 

사적 권력욕으로 다시 국민을 기만하려는 안보장사치들은 촛불의 참의미를 모욕하는 사악한 짓거리를 멈춰야 할 것이다. 북한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평화를 원하고, 우리 자녀들의 안위를 위해서 대화하려는 것이다. 조폭들의 비겁한 배짱처럼 무데뽀식 친미반북강경을 애국이라고 여기는 악의와 미몽에서 탈피하라.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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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까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북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 70년간 적대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일정에 대한 구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고 본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촉진제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남북이 이달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개최 합의는 이미 이뤄졌고 이번에 일정이 확정된 것이지만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다는 징표로 충분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세번째 정상회담이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신뢰구축을 구체화하도록 남북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최대 과제는 역시 비핵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 인도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델리 _ AFP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제시한 비핵화 시간표는 지난달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한 ‘1년 내 비핵화’와는 1년가량 차이가 있다. 하지만 ‘1년 내 비핵화’는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답한 형식이어서 동일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번 시간표는 비핵화에 소요되는 시간과 검증 등 여러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현실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임기는 2021년 1월까지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제시했던 비핵화 시간표와도 일치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북한 매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선중앙통신은 6일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표현을 통해 진정성을 거듭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에 나서야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종전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을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틀에서 김 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지 않고 이 점만을 떼어내 문제시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도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의심하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특사단은 전했다. “여러 차례 분명하게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왔는데 이를 선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에둘러 표시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게 됐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비핵화 진전을 위한 남북 협력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토대로 북·미 협상을 재가동시키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지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4일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북·미를 대표하는 수석협상가 역할을 요청한 바 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김 위원장에 감사한다. 우리는 잘해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약화와 무관하다’고 직접 밝히며 미국 일각의 의심 해소에 나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길 바란다. 연기했던 폼페이오 방북부터 재개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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