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5일 종료됐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중국과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찬 회동에 대해서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으며, 판문점선언을 외교무대에서 실현하기 위한 기초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리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간 회담은 없었다.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의 공식 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남·북·미 3국 외교장관들은 회담장 안팎에서 각자 입장만 폈다. 이번 ARF에서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종전선언의 전기가 마련되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연쇄회의에 참석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대표단 모두 내내 미소는 띠었지만 양국 간 입장차는 작지 않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대북 제재 유지와 종전선언 협상의 더딘 진척에 불만을 제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를 엄격하게 이행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법인 등을 제재 리스트에 새로 추가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북 제재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북·미 간 협상이 지난한 길임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뢰를 확인하고 있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ARF 개회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미측이 ARF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북한에 전달했다. 양 정상이 모두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협상에서 정상 간 신뢰와 유대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다.

 

이제 북핵 문제가 실무선의 협상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새로운 협상 동력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다음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양측을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분위기 조성이 더욱 필요해졌다.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발사장치 해체 등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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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남북이 31일 판문점에서 9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와 유해 공동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적대행위 중단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소장)은 회담 후 “(이들 내용에 대해) 큰 틀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며 “구체적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은 계속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중장도 “회담이 무척 생산적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록 합의문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성과를 거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남북이 공감한 4가지 조치는 상호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 간 우발충돌 방지와 신뢰구축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특히 DMZ 내 GP를 시범적으로나마 철수하는 것은 JSA 내 비무장과 더불어 남북 간 적대행위를 줄이는 가시적인 첫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동안 DMZ는 말만 비무장지대였을 뿐 남북이 서로 중무장한 병력을 앞세워 첨예하게 맞서온 대결의 현장이었다. 여기에 서해상에서 포격훈련 중지 및 해안포 폐쇄 등 적대 행위까지 중단한다면 지상과 해상 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뒤 65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 남북이 합의문을 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회담 분위기로 볼 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측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확언한 터라 후속 논의 과정에 큰 난관은 없어 보인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초석을 놓은 동시에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북·미 간 핵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때마침 북한이 넘긴 6·25 전사 미군 유해가 1일 하와이로 송환됐다. 북·미 양국이 합의한 DMZ 내 유해 발굴에 남측까지 가세하면 상호 신뢰를 더욱 증진할 수 있다. 북측 안 수석대표는 군사 분야가 남북대화를 선도 하도록 하자고 했다. 남북 군사회담은 대북 경제제재와 달리 합의에 제약이 없다. 다음달 개최되는 서울 안보대화에 북측이 대표단을 보내는 것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북방한계선 일대 해역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후속 회담을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성급회담에서 마련한 공감대를 토대로 북한과 대화 모멘텀을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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