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초유의 산불이 발생해 아테네 인근 휴양도시 마티(Mati)가 잿더미로 변했다. 절벽 근처 한 건물에선 26명이 한꺼번에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탈출을 막았고 궁여지책으로 건물 안으로 피신했으나 불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쫓아오는 불길이 너무 빨라 바다로 피신하기도 전에 죽거나, 구명보트가 뒤집혀 사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망자만 100명 가까이 된다. 아비규환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제 더 안타까운 사실이 알려졌다. 시신들의 유전자를 감식한 결과 아홉 살 난 쌍둥이 소피아와 바실리키 자매가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발견된 것이다. 이들 네 사람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꼭 껴안고 있었다고 한다. 자매의 아버지는 앞서 SNS와 방송을 통해 “구조용 보트에서 딸들을 본 것 같다. 연락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무사귀환의 바람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리스 아테네 인근 라피나에서 23일(현지시간) 발생한 산불에 긴급 대피한 주민들이 건물이 불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화재로 24일까지 최소 50명이 숨졌다. 그리스 적십자에 따르면 해변가 마을 마티에서만 시신 26구가 발견됐다. 구조당국은 라피나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화재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불길이 거세고 기온이 계속 오르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피나 _ AFP연합뉴스

 

이번 산불의 생존자는 “불길이 돌진해와 등이 타는 것 같아 살기 위해 바다로 달렸다”며 “폼페이 최후의 날 같았다”고 했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남부 베수비오 화산 분화로 폼페이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1500년이 지난 뒤 운하 건설 공사 도중 전설 속의 도시가 발견됐고 수세기에 걸쳐 발굴이 이뤄졌다. 도시 유물은 발견됐으나 간간이 빈 공간이 있을 뿐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간에 석회를 부어보니 사람과 개 등 형상이 드러났다. 일상생활을 하다 불에 타 죽은 참혹한 모습들이었다.

 

그리스뿐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산불로 화염지옥이 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44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형 산불로 곳곳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전문가들은 산불이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의 결과라고 말한다. 산불 발생에는 30도 이상의 기온과 30% 이하의 습도, 시속 30㎞ 이상의 풍속이라는 ‘30-30-30 법칙’이 있다. 그런데 유럽과 북미가 기후변화로 혹서·가뭄·바람 등 ‘불의 기후’가 됐다는 것이다. 폼페이의 최후가 자연재해라면 그리스 마티의 참화는 인재다. 기후변화 대책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됐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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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관통하며 남중국해로 흘러든다. 길이 4909㎞. 동남아 최대의 강이며 아시아에서는 창장, 황허에 이어 세번째, 세계에서는 7번째로 길다.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나라들을 두루 적셔주어 ‘동남아의 젖줄’로 불린다.

 

메콩강은 오랫동안 원시의 강이었다. 상류는 산간 고원지대인 데다 교통이 불편해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중국이 메콩강 상류인 란창강 조사를 시작한 것은 민국시대인 1914년이 처음이다. 중하류 지역의 동남아 국가들 역시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메콩강 개발이나 이용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메콩강에 포클레인이 들어선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중국이 앞장을 섰다. 메콩강 상류에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고, 댐 아래에서는 대형 선박을 운항한다는 ‘란창강 개발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지금까지 7개의 대형 댐이 들어섰다.

 

26일 라오스 아타프 댐붕괴 사고현장으로 접근하는 도로 주변이 사고의 여파로 생긴 낙석들로 어지럽혀져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댐 건설로 오랜 잠에 빠져 있던 메콩강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수량이 줄고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강우량이 적은 해에는 유역 국가들이 극심한 가뭄과 식수난을 겪어야 했다. 급기야 메콩강 인근 국가들이 연대해 일어나 중국과 ‘물 전쟁’을 벌였다. 동남아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중국은 막대한 원조와 투자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메콩강 갈등은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댐 건설에 참여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인도차이나 최빈국 라오스는 메콩강 댐 건설에 올인하고 있다. 수력발전을 통해 얻는 전력을 수출해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동남아시아 배터리 프로젝트’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46개 댐이 들어섰다. 건설 예정인 수력발전 댐은 54개나 된다.

 

라오스의 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메콩워치 등 국제단체들은 무분별한 발전 댐 건설이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중단을 요구해 왔다. 강 인근 주민의 삶과 소수민족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재 메콩강 유역에는 4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수백명의 희생을 부른 라오스 댐 붕괴사고가 개발에 신음해온 메콩강 하신(河神)의 분노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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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협상을 다루는 분석틀 중에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는 것이 있다. 국제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국가 간 협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 실무진 간의 협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실무진 간에 주고받기를 잘하여 서로 합의를 이루면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국가 간 협상은 이렇게 단선적으로 협상 실무진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의 협상 실무진끼리 아무리 합리적인 타결을 보아도 그 타결된 안을 각기 국내의 이해 당사자에게 가져가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안은 죽어버리고 만다. 특히 협상된 내용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거나, 국내 여론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국내의 설득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국제와 국내의 양면에서 동시에 접점을 찾아야 협상이 타결된다는 의미에서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 간 협상을 양면게임이라고 부른다.

이제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의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까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협상이다. 그리고 양국이 아직까지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최대 전쟁능력인 핵을 포기하는 협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패전에 해당하는 무장해제라고 볼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해 온 북한의 군부와 인민들이 미국 앞에서 무장해제와 패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및 남한과 대결적 전쟁상태가 지속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리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하더라도 이를 북한 국내에서 실행에 옮길 명분과 설득논리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전쟁상태가 종식되고 미국, 그리고 남한과의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성립된다는 확실한 신뢰가 있어야 북한이 핵심전력인 핵을 포기할 명분이 생긴다. 전쟁용으로 개발한 핵을 평화적 환경이 도래했으므로 포기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경제건설에 투입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전이 국내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북한은 의미 있는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과 한국이 우선적으로 ‘종전선언’을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국내적으로 이미 악마화되어 있는 북한에 선뜻 ‘종전’이라는 선물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종전을 선언했는데 북한이 비핵화를 질질 끌면서 제재의 완화만을 노린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북한에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거기다가 종전과 함께 정전협정이 사라지면 유엔사령부의 존재 및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북한이 문제 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한·미동맹의 문제까지 엮이게 되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남한과 미국의 매우 급격한 변동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안보적 우려 역시 존재한다.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생각에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국내적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회동을 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하지만 양면게임의 성격상, 그리고 전쟁용이라는 북핵의 성격상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다. 북한도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그리고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및 ICBM 조립시설 해체라는 초기조치 등을 보여주면서 미국에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종전선언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전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종전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제 종전이라는 과정의 시작을 알린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이라는 과정이 시작되면 전쟁용 무기인 핵을 해체하는 과정도 시작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도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조치들을 취해감에 따라 신뢰가 쌓이고, 궁극적으로는 종전 과정의 끝을 선언하면서 바로 평화체제 수립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종전이 시작되었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핵폐기의 명분이 생기고, 종전이 완벽하게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국내의 우려도 상당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 종전 과정의 끝을 알리는 선언, 그리고 평화체제 및 관계정상화를 향한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외교가 종전선언을 놓고 미국의 선처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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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3일(미국 현지시간)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핵심시설 해체 시작’ 보고서에서 평북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에서 해체작업이 시작됐다고 위성사진 판독결과를 토대로 분석했다. 청와대도 이 동향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밝혔다. 서해위성발사장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핵심 시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곧 폐쇄할 것이라고 말한 미사일 엔진시험장이 바로 이곳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38노스의 관측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본격적인 비핵화 관련 조치를 이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는 비핵화와 관련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못지않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생산중단을 확증하기 위한 선제조치를 취함으로써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트럼프 행정부가 움직일 명분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향한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평가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은 한국전쟁의 종전선언 문제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비핵화 조치를 위한 초기적 안전보장 장치로 보고, 조기에 종전선언을 할 것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전쟁종식을 선포하는 차원을 넘어 불가침선언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는 내부 반론 탓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 대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23일 “종전선언 문제는 판문점선언에 명시된 중요한 합의사항의 하나”라면서 “유감스러운 것은, 최근 미국이 입장을 돌변해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 것은 현재의 답보 국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 시설 해체에 착수한 것은 교착국면을 선제적으로 풀면서 미국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한 의미가 있다.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사항을 실천에 옮기면서 미국에 공을 넘긴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서해위성발사장의 해체작업이 던진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화답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발사장 해체 조치에 상응하는 것으로 종전선언만 한 게 없다. 북한이 요구할 뿐 아니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토대이기도 하다. 미국으로서도 비핵화의 마중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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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無錫) 직업기술대학교의 기숙사에 살고 있는 400여명의 학생들은 이달 초 학교 측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퇴거 명령을 받았다. 일주일 내로 기숙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현재의 기숙사는 재작년에 지어진 최신식이지만 이사 가는 곳의 시설은 매우 낙후됐다. 심야에는 온수가 공급되지 않아 샤워하기도 힘들다.

 

잘 지내고 있던 기숙사를 놔두고 후진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분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원래 살던 기숙사가 유학생 기숙사로 바뀐다는 것이다. 당초 6인실이었으나 2인실로 개조해 더 호화롭게 만들고 유학생들을 받겠다는 학교 방침에 학생들은 폭발했다. “못 나가겠다”는 학생들과 “당장 나가라”는 교직원 측이 충돌했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너희 것이 아니라 학교 것이니 당장 이사 가라”고 고압적으로 소리치는 교직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까지 공개되면서 분노는 전국으로 번졌다.

 

중국 대부분의 대학들은 유학생 기숙사를 분리 운영하고 있다. 보통 6인실이지만 유학생 기숙사는 1~2인실로 구성돼 있다. 유학생 기숙사 가격도 몇 배나 비싸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래왔다. 그런데 최근 ‘하나의 학교, 두 개의 기숙사’ 문제가 여기저기서 동시 폭발하고 있다.

 

지난 10일 시안석유대학 대학원생 기숙사 건물이 갑자기 정전이 됐다. 마침 논문을 쓰고 있던 한 학생은 저장되지 않은 대부분의 내용을 날렸다고 했다. 학교 측은 정전이 시설 정비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유학생 기숙사는 전기가 정상적으로 공급돼 에어컨 냉방까지 됐다. 중국 대학원생 기숙사는 선풍기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들은 명백한 차별 대우라고 항의했다. 산둥성의 한 대학은 도서관에 교수, 유학생 전용 열람실을 따로 설치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유학생들이 주로 쓰는 건물 경비원이 전동차 배터리 충전을 하던 중국 학생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중국 학생은 충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학교 측이 진화에 나섰다.

 

2017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 국적 학생은 49만명이다. 아시아 최대다. 당초 다른 기숙사를 제공한 것은 유학생 안전 보장과 효율적 관리를 위한 학교 측의 방침 때문이었다. 톈안먼 사태 직후 중국 대학에서 유학생들의 동태는 철저한 감시 대상이었다. 유학생 기숙사는 점등 제한 시간이 있는 중국 학생 기숙사와 달리 24시간 전기와 온수가 제공됐다. 유학생들에게는 몇 배 비싼 기숙사비를 받았고 이것이 중국 대학의 든든한 수입원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학교에서 자국 학생과 외국 학생을 따로 생활하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방침이다. 중국 학생도 유학생도 기숙사 선택의 자유가 없다. 중국 대학생들은 기숙사 밖에서 거주하는 것이 대체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 더 높다. 유학생들 입장에서도 같은 반 친구들과 따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납득하기 힘들다. 자국에서 역차별 받는 중국 학생들의 불만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신학기가 되면 갈등은 더 선명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980~1990년대 외국인 전용 화폐인 외화교환권을 사용했다. 고궁 등 입장권 가격도 외국인에게는 따로 책정하는 2중 정책을 썼다가 이제는 사라졌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대학 내 내·외국인 차별도 개선돼야 옳다.

 

우시 직업기술대학은 기숙사를 옮기지 않으면 학칙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벌점을 매기고 졸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이미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다. 학교 측의 억지 행정으로 애먼 유학생들이 화살을 맞을 않을지 우려된다.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피해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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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서 잇단 패전으로 패색이 짙던 러시아는 1905년 함대 파견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그해 5월27일 러시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지휘하는 발틱함대는 대한해협에서 일본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결과는 마찬가지, 러시아의 참패였다. 전함 38척 가운데 19척은 격침되고 7척은 나포됐다. 본국으로 돌아간 배는 3척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보물선’ 침몰 사실이 제기됐다. 당시 도엔스키 해군 중장은 ‘150조원어치의 금괴를 싣고 있던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일본 군함의 추격을 받던 중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침몰했다’고 기록했다.

 

신일그룹이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2018.7.17 [신일그룹 제공=연합뉴스

 

전사(戰史)의 기록이 너무 뚜렷해 보물선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980년대 초 일본은 쓰시마섬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정의 선체와 함께 금괴 17개를 발굴했다. 한국에서는 1999년 동아건설이 한국해양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해 본격적인 돈스코이호 탐사에 나섰다. 이후 2003년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발굴했으나 동아건설이 다른 그룹으로 합병되면서 인양까지 하진 못했다.  

 

지난 17일 돈스코이호 선체 발견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는 선체에 선명하게 새겨진  ‘DONSKOII’(돈스코이) 글자와 함께 대포·기관총·앵커·연돌 등도 발견됐다. 113년 전 침몰한 돈스코이호(6200t급)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선체 등 유물이나 발견 위치는 도엔스키의 기록과 부합한다. 세인의 관심은 온통 금괴 존재 여부에 쏠리고 있다. 선체 탐사를 주관한 그룹 산하 기업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이 그룹은 발굴 보증금을 충당하겠다며 돈스코이호를 담보로 코인 판매에 들어갔다.

 

그러나 돈스코이호가 보물선이라는 증거는 없다. 설사 금괴가 나오더라도 소유권 분쟁은 피할 수 없다. 발굴은 ‘국유재산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 규정’에 따라야 한다. 100년이 지났지만 러시아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탐사단은 9~10월쯤 선체를 인양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탐사가 적법하게 진행됐는지, 또 인양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등 따져봐야 할 일이 많다. 이참에 돈스코이호를 ‘보물선’보다는 ‘역사 유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어떨까.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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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으로 6박7일에 걸친 유럽 순방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트럼프식 정상외교의 특징과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18개월 동안 21개 나라를 방문했다. 10개국은 다자 국제회의를 위해 찾았고, 11개국은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같은 기간 23개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8개국을 방문한 데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방 횟수는 적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첫 순방국으로 택했고,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헬싱키 _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기존 미국 외교의 패러다임을 거부한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동맹 때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는 지난 15일 CBS 인터뷰에서 “무역에서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적”이라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는 EU와 연을 끊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러시아 가스 도입을 추진하는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라고 비난했다. 동맹국들이 그를 반길 리 없다.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엘리자베스 여왕이 혼자 만났다. 찰스 왕세자 등 누구도 그와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에서 규범과 원칙은 무의미하다. 이익만이 최우선이다. 소위 ‘아메리카 퍼스트’ 원칙이다. 그는 “무역에서 동맹은 없다”며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EU에 대해 관세 폭탄을 협박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시종 유럽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만 요구했다. 그는 전후 자유주의 세계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은 뒷전이다. 오직 국내 지지층만 바라본다. 외교 정책이 국제 관계뿐 아니라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투 레벨 게임’은 상식이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외교는 국내 정치의 수단이 된 느낌이다.

 

독재자들과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다는 것도 트럼프 정상외교의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과의 만남을 긍정 평가했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문가들과 정치권의 반대와 불신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북·미 정상 간의 개인적 신뢰는 후속 협상의 바탕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아 보인다. 톰 플레이트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재떨이 외교’라고 혹평했다. 자기 뜻에 반대하는 나라나 그 나라 정상을 향해 크고 무겁고 각진 재떨이를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욕설외교’라고 불렀다. 폴리티코는 “메이 총리의 측근들은 트럼프 특유의 브랜드인 욕설외교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폭주를 관리하기보다는 견뎌내는 쪽으로 노력했다”고 영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스타일의 정상외교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이면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리더가 아니다. 미국 우선이 미국 혐오, 미국 배제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인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까지 할 경우 6년 후 국제사회에서 자기 나라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지적한다. “트럼프는 미국을 친한 친구도 없고,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지속적 가치에 구속받지 않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언제든 등 뒤에서 칼을 찌를 준비가 돼 있으며, 선거로 당선된 민주주의자보다 마피아 같은 독재자들이 더 편한 이기적이고 부정직한 나라로 만들고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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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대 여성이라면 제목이라도 들어봤을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올해로 첫 방송 20주년을 맞았다. 1998년 6월6일 처음 방송된 이 드라마는 뉴욕에 사는 싱글 여성 캐리와 샬럿, 미란다, 서맨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뉴요커의 삶을 비현실적으로 화려하게 포장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진취적이고 당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은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이 뉴욕과 뉴요커를 동경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속 뉴욕은 여성들의 꿈이 실현되는 도시였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똑 부러지는 변호사 미란다를 연기했던 배우 신시아 닉슨은 실제 뉴욕을 멋진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3월 닉슨은 뉴욕 주지사 민주당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는 9월 당내 경선에서 현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이기면 11월 중간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 스틸컷

 

인지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지만 닉슨 앞에 닥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정치 경험 없는 유명인’에게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유명인을 선출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닉슨이 여성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닉슨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비단 정치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자격을 갖췄다’는 사실을 다섯 차례 이상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이라 차별당한다는 감정은 단지 닉슨의 기분 탓이 아니다. 러트거스대 데비 월시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남녀를 비교할 때) 남성은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남성보다 더 크고 많은 성과를 남들 앞에 전시해야 하는 것이다.

 

뉴욕에서 닉슨처럼 분투하는 여성들은 또 있다. 중간선거 본선행 티켓을 획득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뉴욕주 상원의원 경선에 출사표를 낸 줄리아 살라사르, 뉴욕주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한 제피르 티치아웃이 그들이다.

 

28세 신인 오카시오-코테즈는 지난달 27일 뉴욕 연방 하원의원 14선거구 민주당 경선에서 10선 의원 조지프 크롤리를 꺾었다. 영세 자영업자였던 미국인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사도우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카시오-코테즈는 주류가 아니었다.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이번 경선에서 당의 지원은 없었다. 그는 유권자를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밑바닥에서부터 지지 기반을 다져 올렸다. 공약은 민주당의 기존 노선보다 진보적인 의제를 내걸었다.

 

오카시오-코테즈의 경선 승리는 즉각 다른 3명의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켰다. 닉슨의 캠프에는 하룻밤 사이 새로운 후원자 300여명이 1만5000달러(약 1700만원)를 기부했다. 몇몇 민주당 중진들이 닉슨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살라사르는 오카시오-코테즈의 승리 당일에만 후원금 2만달러를 모금했다. 티치아웃의 캠프엔 자원봉사자 120여명이 신규 등록했다.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과거 여성 정치인들이 마음의 응원을 주고받는 수준이었다면 이들은 공동 유세를 하고 자원봉사자를 서로 빌려준다. 오카시오-코테즈 캠프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은 경선이 끝나자 닉슨과 살라사르, 티치아웃의 캠프로 ‘원정’을 떠났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물심양면 지지했던 것처럼 이들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기득권 정치인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에게 뉴욕의 여성 정치인들은 참신한 대안이 되고 있다. 뉴욕은 이들의 꿈을 실현해주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이 동경하는 도시가 될까. 드라마 ‘본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9월 경선을 기다리고 있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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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군당국이 15일 장성급회담을 9년여 만에 열어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유해 송환 및 발굴 작업을 11년 만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16일 실무회담을 열어 유해 송환과 관련한 세부절차를 협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생산적이었고 협력적이었으며 확고한 약속들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제4항 유해 송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공동성명에는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양측이 공동성명의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기로 한 것은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신뢰구축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한·미 군 장병들이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미 6·25 전사자 유해 상호봉환’ 행사에서 2001년 북·미가 공동발굴한 윤경혁 일병 유해(왼쪽)와 2016년 6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를 운구하고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69)은 추모사에서 “남북의 유해 공동발굴에 대비해 국방부 유해발굴단의 전문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충하겠다”며 “유해 발굴을 통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송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한·미 현역장병 등이 참가했다. 권도현 기자

 

미국은 ‘단 한 명의 군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을 정도로 장병들의 유해 발굴·송환을 각별하게 챙겨왔다. 북한에는 5300명가량의 미군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만큼 이번 합의는 향후 협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여론의 지지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미군 유해가 군사적 요충지에 묻혀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의 유해 발굴 허용은 미국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표로 볼 수 있다. 유해 발굴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지리 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북한군과 유엔군사령부 간의 회담이고,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주체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13년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던 북한이 이번에 유엔사와의 협의채널을 복구한 것은 종전선언-평화협정에 앞서 정전체제를 잠정적으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직접 다룰 순 없겠지만, 정전체제를 폐기하려면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순서라는 점에서 함의가 작지 않다. 이 채널이 정전체제상의 다양한 의제들을 협의하면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유해 송환 합의가 공동성명상의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미국이 최근 정상회담 후속협의를 위한 실무그룹의 진용을 갖춘 것은 이런 점에서 긍정적인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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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 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비핵화 이후 한반도 평화·번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한 달 만에 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에서 문 대통령이 ‘포스트 비핵화’의 비전을 제시하며 강한 어조로 추진의지를 내비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설은 남북이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면 대북 제재 해제가 필수적이고, 그러려면 비핵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핵화 의지를 독려하는 의미가 있다.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 후 첫 일정으로 힌두교를 대표하는 성지인 '악샤르담 힌두사원'을 방문,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뉴스

 

북·미 간 후속 협상이 속도를 내도록 한국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최근 행보에서도 엿보인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목표”라고 한 것은 종전선언에 소극적인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확실히 완화됐지만, 최근 북·미의 태도는 기대감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핵화와 관련해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협상 장기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협상의 장기화는 북·미 양측에 득이 될 게 없을 뿐 아니라 신속한 비핵화를 기반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려는 한국으로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완되고 있는 북·미 협상을 바짝 죄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싱가포르 렉처’ 연설 후 문답에서 “(북·미) 정상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북·미를 압박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북·미가 협상 모멘텀을 확보하도록 남북, 한·미 간 소통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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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북·미의 정상들이 70년 묵은 적대관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세계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경이로이 바라보면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회의론과 부정적 여론이 지배했다.     

 

필자는 싱가포르 현장 가까이서 관찰한 후 곧바로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을 돌면서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 및 한반도 전문가들과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세계에서 트럼프를 믿는 국가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고,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믿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외에는 모두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목표 달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사 케나 미국 보좌관, 알렉스 왕 국무부 동 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 장관, 성 김 미국 대사, NSC코리아 앨리슨 후커 감독이 박 화 영빈관에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회의론자들은 줄곧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긍정적 평가와 자화자찬에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다가, 회담 이후 3주간의 소강 상태와 이후 폼페이오의 3차 방북 결과를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적 견해들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허장성세였을 줄 알았다는 반응과, 북한은 얻을 것을 이미 얻었고, 비핵화의 진정성은 원래부터 없었으며, 따라서 과거의 반복일 뿐이라는 반응이 가장 많다. 센토사 회담의 성패 여부를 후속 조치를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미뤘던 셈인데 이마저 성과가 없이 끝났으니 정상회담도 실패라는 논리다. 

 

그런데 회의론자들은 북·미 정상이 구체적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거나 실행과정 국면마다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회의론의 장점은 섣부른 기대를 만들어 실패할 때 더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되는 낙관론의 함정을 피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성공이 가져다주는 행복 배가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은 성공이나 변화에 대해 전적인 우연에 의존한 장점보다 훨씬 더 치명적 함정을 지닌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특히 현재 벌어지는 전혀 다른 비핵화 게임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회의론으로 접근해도 검증이나 제재를 통해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의 자발적 핵폐기 없이는, 그리고 그 핵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는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회의론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기에 비핵화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바뀐 게임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을 그나마 트럼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계약을 지킬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그때 한 악수를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함으로써 회의론을 반박했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전적인 부정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사실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북핵이 그동안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 압박의 빌미였기에 비핵화 과정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커지거나 북한이 지나친 대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천천히 가기를 원한다. 트럼프까지 반복적으로 중국의 배후에서의 훼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는 회의론 못지않은 깊은 함정이 존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5년간 북한핵 문제 해결에 실패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시간제한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한 현재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반대 분위기를 트럼프와 폼페이오 두 사람이 막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은 현재보다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속도전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북·미 협상의 소강국면, 회의론, 그리고 장기적 관점으로 인한 첫 장애물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 북한은 자신들이 포기한 것에 비해 미국이 정치적 종전선언마저 거부한다면 대미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북한이 선제적으로 더 많이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하더라도 제재완화는커녕 정치적 종전선언까지 받아낼 수 없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모델 재현이다. 한국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교차보증’에 나섬으로써 막힌 혈로를 뚫어 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조심할 때가 아니라 나설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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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북·미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세기의 회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현재 국면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후속협상에서 ‘비핵화 일정표’ 같은 성과물이 나오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선의’를 믿고 성급하게 나섰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가 미국 언론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 의회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카드를 다시 꺼내라는 강경론이 불거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비핵화’ 요구만 내놨을 뿐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번에도 또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의 첫번째 항목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두번째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세번째에 배치돼 있다. 북·미 정상이 서명해 전 세계에 공개한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로 구성돼 있다면 후속협상에서도 각 항목에 최소한 동등한 무게감을 갖고 다룰 필요가 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최소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은 잠정적인 대북 안전보장책이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이 있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미국도 그간 종전선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비핵화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북·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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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수관이 터져 오물이 온 동네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먼저 오물이 퍼지지 않게 펜스를 쳐야 한다. 그리고 터진 곳을 막고 펜스 안에 고인 오물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확실히 막았는지 점검하고 재발방지 조치까지 마쳐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북핵 6자회담이 한창이던 10여년 전 미국의 북핵담당 고위 관료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비핵화’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비핵화는 핵물질·기술 이전 차단-동결-핵무기·핵물질·장비 폐기-검증-핵 재무장 방지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완전한’ ‘비가역적인’ 등의 수식어를 앞에 주렁주렁 붙이는 것은 사족일 뿐이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라는 용어를 ‘시간 부족으로’ 북·미 합의문에 명시하지 못한 미국은 지금 PVID, FFVD 등으로 표현을 바꿔가며 북한의 동의를 받아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어떤 용어를 쓰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같은 개념인지 여부가 핵심이다.

 

북·미는 정상회담에서 “4·27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한다”고 합의했다. 그런데 판문점선언에도 남과 북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의미는 다르다. 한국 정부가 번역한 판문점선언 영문본은 ‘핵 없는 한반도(nuclear-free Korean Peninsula)’라고 되어 있지만 북한 외무성은 ‘한반도 비핵지대화(turning the Korean peninsula into a nuclear-free zone)’라고 번역했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나 ‘핵우산’까지 염두에 둔 표현이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판문점선언을 원용했다.

 

비핵화 용어 논란은 미국의 허술한 준비를 드러낸 단편이다. 싱가포르 북·미 합의가 불안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방향이 틀렸거나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협상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와 미국의 협상력 부족 등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비핵화를 이끌어낼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약탈적 거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허술한 면모를 드러낸 것은 북핵 문제를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을 즉각 수용한 것은 준비가 완료됐기 때문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 일정에 맞춘 결정이었다. 북·미 회담 성과가 급한 쪽은 오히려 트럼프였다. 실질적 내용보다는 정치적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외형에 집착했다. 상대에 대한 분석도, 전문 인력도 갖추지 못한 채 날짜를 먼저 정해놓고 협상을 시작했으니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일단 합의문에 서명하자 북한이 유리한 입장에 서 있음이 더욱 명확해졌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재촉하고 있지만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양국 수뇌분들께서 합의한 대로’ 비핵화보다 신뢰구축 조치가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북·미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은 신뢰를 구축해 새로운 북·미관계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에 이르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북한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렵다.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은 이미 북한과 밀착하고 있고 미·중은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정상 간 합의를 통한 톱다운 방식의 접근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를 논하는 각론에 들어가면 상황이 다르다. 돌파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최고 권력자들의 ‘통 큰 합의’로 일을 해결하는 방식은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쯤 트럼프는 전임자들이 왜 북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 북·미 합의가 유지되려면 트럼프가 지금보다 훨씬 진지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북한도 선(先)신뢰구축만을 주장하며 비핵화 논의를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비핵화 진전을 통해 신뢰를 만들어가는 조치를 병행해 미국 내 여론의 반대로 북·미 합의가 좌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북·미 모두 합의를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타협점을 찾기 위한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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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2016년 4월 한국에 온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을 면담한 뒤 “종업원이 한국에 오게 된 경위에서 여러 가지 결점이 있음을 파악했다”며 “이들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특별보고관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나의 제언은 최대한 신속하게 철저하고 독립적인 진상규명과 조사를 통해 책임자가 누구인지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들이 중국에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납치된 거라면 범죄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간 국내에서 제기돼온 ‘기획탈북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유엔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한 셈이다.

 

킨타나 보고관은 이번 방한에서 파악한 내용과 권고사항 등을 유엔총회에 제출할 보고서에 담을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한국 인권수준의 잣대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통일부 당국자는 ‘자유의사에 따른 탈북’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킨타나 보고관은 종업원들의 북한 귀환 여부에 대해 “그들의 의사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이라는 종업원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귀담아야 할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일부만 돌아갈 경우 남측에 남는 종업원들의 가족들이 북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송환에 반대하고 있지만, 원칙에 입각해 풀어가면 해법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종업원들은 킨타나 보고관에게 “딸처럼, 가족처럼 생각하고 이 문제에 접근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지적이다. 정부와 관계당국, 정치권은 그간 정략적·정치공학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나의 가족이 자기 의사에 반해 원치 않는 타국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게 됐다. 철저하고 신속한 진상규명에 나서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이런 ‘부정의(不正義)’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남북관계는 물론 인권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획탈북’이 당시 정부와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확인될 경우 엄정한 법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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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10일(현지시간) 2000억달러(약 223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6031개 품목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오는 9월부터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은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뒤 지난 6일부터 이 중 340억달러어치 품목을 우선 적용했다. 이에 중국도 즉각 같은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기 시작하면서 양대 경제 대국의 무역전쟁이 시작된 바 있다. 여기에 이날 조치가 추가되면 미국은 대중국 수입액(지난해 5055억달러)의 절반(2500억달러)에 고율관세를 매기게 된다. 가히 ‘핵폭탄급’ 무역보복이다. 이에 중국 상무부도 “필요한 보복을 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 양국의 무역전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이날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경고했던 것을 현실화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 해외는 물론 국내 제조업계와 소비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역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촉발된 무역보복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등 동맹국으로 향할 개연성도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 등의 불공정 무역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11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고, 미국 증시의 지수 선물도 하락했다. 한국도 코스피지수가 전날보다 1.3% 넘게 급락했다가 간신히 회복해 13.54포인트(0.59%) 내린 2280.62로 마감했고, 원·달러 환율은 4.0원 오른 달러당 1120.0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미·중 무역전쟁이 가시화된 지난 6월 이후 35원이 급등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대응책은 미온적이다. 미·중의 고율관세 부과가 발효된 지난 6일 이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부처들은 아직 합동대책회의 한번 열지 않았다.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흔들리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장기적으로 미·중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당장 미국의 칼끝이 한국으로 직접 향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외교·경제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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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20일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으로 일본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옴 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 등 7명에 대한 사형이 지난 7일 오전 전격 집행됐다.

 

NHK 등 방송들은 당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속보를 내보냈고, 주요 신문들도 호외를 발행하는 등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후에도 시리즈 기사나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옴 진리교 사건의 파장과 의미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23년 전 옴 진리교 사건이 일본 사회에 던진 파장이 그만큼 심대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일본 언론들이 이번 사형 집행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일단락짓는 행위로 풀이하고 있는 점이다. 헤이세이는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연호로, 1989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내년 4월30일 퇴위하고, 아들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5월1일 새 일왕에 즉위할 예정이다. ‘헤이세이 최대의 흉악 사건’으로 불리는 옴 진리교 사건을 헤이세이 안에 마무리짓고 새 연호의 시대를 맞이하겠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옴 진리교는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 1994년 마쓰모토시 사린 사건,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극악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켰다. 이들 사건으로 29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특히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은 인파가 몰리는 출근시간대 도쿄 도심에서 화학무기로 일반시민을 무차별적으로 노렸다는 점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새해 벽두 발생해 6300여명이 숨진 한신(阪神) 대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며칠 뒤엔 경찰청장 저격 사건까지 벌어졌다. ‘치안대국’을 자부하던 일본이 받은 충격은 컸다. 옴 진리교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에 24시간 체제의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하고, 위험단체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위기관리체제를 크게 전환하게 된다.

 

일본 사회가 옴 진리교 사건에서 헤이세이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는 이유는 더 있다. 1984년 요가 서클로 출발한 옴 진리교가 교세를 확장해 결국 테러집단으로 변질해간 것은 앞선 연호인 쇼와(昭和·1926~1989년) 말기에서 헤이세이에 걸쳐서다. 이 시기는 일본의 경제와 사회 구조가 크게 바뀌던 때다. 버블 경제와 그 붕괴, 급속한 국제화로 인해 지금까지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흔들렸다. 옴 진리교의 성장 배경에는 당시 ‘삶의 허무함’을 느끼던 젊은이들의 심리를 파고든 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는다. 왜 옴 진리교는 사회를 적대시해 사린 살포라는 극단으로 치달았는가. 왜 학력이 높았던 젊은이들이 교주의 지시 아래 무차별 살인으로 돌진했는가. 이들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건가.

 

옴 진리교의 뒤를 잇는 단체들은 현재 신자 1600명, 35곳의 관련시설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길거리나 대학, 인터넷에선 젊은이들을 노리는 ‘컬트집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한다. 고립감이나 불만, 극단적 사상의 유포 등 젊은이들이 옴 진리교에 끌렸던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이들이 기댈 장소를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등 타자를 배제하고 소외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宮台眞司)는 “사회 전체가 ‘옴’적으로 되고 있는데도 그 자각도 학습도 없이 사형이 집행됐다. 일본 사회는 ‘옴’을 자신들의 문제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일부 언론들이 “옴 진리교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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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6~7일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 문제에서 합의 도출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핵심 사안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비핵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회담 직후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것도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없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회담 전략의 의도도 있겠지만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의 입장 차가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빨리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염원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이어 고위급과 실무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정상들의 추인을 받아 이행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 로드맵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 이견을 좁히고 양보함으로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측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이견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망라해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서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신봉하는 CVID가 과연 유일무이한 방안인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해 북한의 거부감이 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에 북한도 구체적인 자체 안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쪽이 낸 방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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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5월27일 새벽 4시. 대서양 횡단 독일 여객선 세인트루이스호는 2주간의 항해 끝에 목적지인 쿠바 아바나 해안에 도착했다. 탑승객 937명은 항구의 불빛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대부분이 나치의 핍박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이었다. 자유를 향한 희망에 부푼 이들은 짐을 꾸리고 하선 준비를 했다. 배에 올라온 쿠바 관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당시 6살이던 제럴드 그랜스턴은 쿠바 관리들이 외치는 “마냐나, 마냐나” 말만 반복해 들었다고 회고했다. “내일” 또는 “언젠가는”을 뜻하는 낙관적인 이 말은 배반의 단어가 됐다. 6살 소년조차도 이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배의 입항 및 승객의 하선 금지임을.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로 불리는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은 5월13일 배가 독일 함부르크를 떠나기 전부터 예정됐다. 쿠바 당국은 애초부터 유대인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배가 출발하기 8일 전에 이미 비자를 무효화했다. 선박주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유대인들은 모른 채 탑승했다. 유대인 탑승객들에게 세인트루이스호는 마지막 탈출구였다. 선상에서의 일상은 천국이었다. 지상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식사가 제공됐다. 금요일 밤에는 댄스파티가 열렸다. 영화도 상영됐다. 수영 강습도 열렸다. 히틀러의 흉상은 식탁보로 가려졌다. 로타르 몰톤이라는 소년은 “자유를 향한 크루즈 휴가”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독일인임에도 세심하게 배려한 구스타프 슈뢰더 선장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쿠바 아바나 코앞까지 와서도 내릴 수 없는 유대인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한 탑승객은 자해한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는 정식 하선 허가를 받은 29명만 내려준 채 일주일 만에 미국 플로리다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행정부는 이들을 거부했다. 선장은 미 연안에 배를 좌초시켜서라도 이들을 탈출시키려고 했지만 미 행정부는 이를 막으려 해안경비대를 동원했다. 캐나다마저 외면하면서 기댈 곳은 유럽 국가뿐이었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더라도 독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탑승객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다행히 미국 유대인 단체의 도움으로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가 907명 전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내 배는 벨기에 앤트워프 항에 입항했다. 함부르크를 떠난 지 한 달여가 지난 6월17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가 독일을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254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됐다.

 

쿠바와 미국, 캐나다는 왜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1930년대 세계는 광기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대공황 여파와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었다. 이성이 설 자리는 애당초 없었다. 독일은 1939년 초 자국 국경 대부분을 봉쇄했다. 많은 나라들은 유대인 이주자 숫자를 줄였다. 쿠바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상 최대의 반유대 시위가 열릴 정도로 반유대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쿠바는 탑승객들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이들을 막은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처럼 ‘미국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반이민 정서 때문이다. 2차 대전과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자국 내 독일인을 추방하고 일본인을 억류하지 않았던가. 결국 세인트루이스호 탑승 유대인들의 고난과 역경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오늘날 지중해를 비롯한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난민들의 목숨을 건 항해를 보면 세인트루이스호 탑승객의 비극적인 운명이 겹쳐진다. 79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이들을 막는 자들의 논리와 사고방식은 물론 세상의 작동원리도 마찬가지다.

 

난민 배척 역사는 반복되고, 정책은 오히려 악랄해지고 있다. 과거 세인트루이스호 유대인을 받아준 영국·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 2012년 9월 세인트루이스호 난민을 외면한 데 대한 미 국무부의 공식 사과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빈말이 돼버렸다. 호주를 본받아 가혹한 무관용 정책을 채택한 트럼프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으로 여긴다. 지난해 취임 직후 말콤 텀불 호주 총리와 통화하면서 난민 정책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그가 더 악랄하다고 한 트럼프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난민 문제가 지구촌의 최대 관심사가 된 이후 세계 지도자들이 내놓는 해법은 절망적이다. ‘당신들이 탈출한 지옥으로 돌아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나 연민 대신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언어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어디에 기대야 하나.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을 되새겨보는 이유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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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 당국과 언론이 최근 잇따라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재료인 농축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거나 핵탄두 및 핵관련 시설의 숫자를 줄여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2010년부터 영변 외 제3의 장소에서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해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미 정상회담 후 소강상태였던 비핵화 협상이 막 재개된 시점에 왜 이런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2박3일간 북한을 방문, 6·12 북미정상회담에 이은 후속 비핵화 협상을 한다고 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23일만에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것으로, 양국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탈 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폼페이오 장관이 워싱턴 국무부에서 '2018년 인신매매보고서'를 발표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의혹은 대부분 근거가 미흡한 것들이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강성’ 지역에서 2010년부터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왔다고 보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어떤 정보기관이 그 같은 정보를 갖고 있는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방정보국(DIA)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65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북한이 미국 정부를 속이고 이보다 훨씬 적게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 신문의 또 다른 보도도 문제가 많다. 북한 핵무기가 65개로 매우 많은 것으로 추산하지만 맞는지 알 수 없는 데다 신고도 하기 전에 축소신고를 할 것이라고 예단하며 북한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핵관련 성실신고 여부는 국제사회 사찰과 신고, 폐기, 검증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에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을 맞을 때마다 비밀 핵 의혹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의 플루토늄 축소신고 의혹이나 1998년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논란, 2002년의 고농축 우라늄(HEU)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모두 무산됐다. 하지만 추후 이들 의혹은 미국의 대북 강경파에 의한 거짓 정보로 밝혀지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점에서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의 배경과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금명간 방북해 북측과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원칙만 합의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사실상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들 때문에 비핵화의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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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를 항구적인 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일부 시·도교육청은 청소년의 북한 수학여행, 남북한 학생교류 사업 추진을 천명하였다. 북한에 대해 가감 없이 알기 위해 북한을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 수학여행은 제대로 추진된다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냉전의식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통일 전,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는 남북 학생교류에서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던 국가가 분단되면서 적대적 관계에 있던 두 체제에서 자란 청소년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전 서독은 분단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약화되는 청소년 세대의 민족 동질의식이 언젠가 맞이할 통일시대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지식 중심 수업을 넘어 실제 경험을 통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전후로 광범위한 사회문화 교류가 추진되고, 서독인의 동독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을 비롯한 동·서독 청소년 교류가 추진되었다.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은 크게 사전교육, 본수학여행, 사후교육의 과정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수학여행 실시에 앞서 동독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전교육이 실시되었다. 사전교육은 동독 관련 자료의 개발·제공 역할을 하였던 전독문제연구소가 담당하였는데 수학여행에 참여하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사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사전교육 후 서베를린을 경유한 3~5일 일정의 동독 수학여행이 추진되었다. 수학여행 종료 후에는 소감문 형식의 서면보고서 제출 방식으로 사후지도가 이뤄졌다. 처음 추진될 당시, 매년 2000여명 수준이었던 참가 학생 규모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3만여명으로 늘어나 1980년대 후반까지 33만여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다.

 

추진 초기에 동독 수학여행은 ‘장벽 너머’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서독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여행 인프라가 열악하고, 제한된 지역 방문은 물론 한정된 사람만 접촉이 가능한 수학여행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고, 일부의 경우 폐쇄적인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독은 동·서독 청소년의 만남, 토론회 등 동·서독 학생 간 직접 접촉을 추진하였지만 동독의 소극적 태도로 이러한 만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 수학여행은 청소년에게 ‘장벽 너머에 우리와 역사·문화적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직접 체험을 통해 현존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의도했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음에도, 동독 수학여행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의 시사점으로 첫째, 참여 학생이 북한 수학여행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남북 간 큰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현 세대에게 북한 수학여행이 남북의 심화된 이질성을 넘어 평화,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남북한 청소년 교류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1회성 만남을 넘어, 남북 학생 간에 우편 등을 통한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양측 청소년 간에 실제적인 유대감이 형성·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북한은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교류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체제유지 관점에서 동독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소년 간 직접 만남은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던 동독의 사례를 우리 또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사업이 적절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된 적대 관계와 감정이 일시적인 교류를 통해 단시일 내에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북한 수학여행을 통해, ‘차이가 있지만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우리와 한 핏줄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시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이 그러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구섭 | 전남대 윤리교육과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