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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간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하루 다가오지만, 김정은이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체제보장을 해주면 정말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까? 하나의 체제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불가침 조약, 평화협정? 
 
우크라이나에서 핵폐기 논의 때 군과 보수파는 러시아 위협을 들어 핵폐기를 반대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미국·영국과 함께 안전보장 각서를 체결했다. 핵이 폐기됐다.

 

그리고 7년여 지난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역사는 조약 협정을 맺고도 전쟁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협정 이상이 요구된다. 항구적인 평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법제도, 정책, 질서의 총체, 즉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체제보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비핵화-체제보장(평화체제)을 위한 협상이 있었지만 김정일은 평화 대신 핵을 선택했다. 김정일의 시각에서 평화체제는 체제보장책이 아니다. 체제불안 촉진책이다. 평화가 북한 내부로 스며들면 비평화체제인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고 김정일은 믿었을 것이다.

 

그때 북한은 ‘우리 체제는 우리가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이 보장해준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게 체제보장의 본질이다. 김정일처럼 자기 통치에 불안감을 느끼면 외부의 체제보장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가 정권 안정을 확신하지 못하면 한·미가 비핵화-체제보장 교환 로드맵을 아무리 정교하게 짠들 소용없다. 협상 국면을 공허한 논리 대결과 제자리를 맴도는 소모적 논쟁의 수렁에 빠뜨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가 김정은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노심초사한 김정일과 달리 자신감에 찬 김정은은 북한을 확 바꿔 놓고 있다. 김정일은 정권 붕괴 걱정에 선군정치를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선군정치 정당화의 근거를 무너뜨렸다.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김일성 유격대 결성일인 1932년 4월25일에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게 1948년 2월8일로 옮긴 것이다.

 

인민군에 덧씌워진 항일 혁명 전통의 계승자라는 신화의 베일을 걷어내서 보통 군대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조치였다. 선군정치의 제도적 장치이자 상징이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다. 선군정치는 껍데기만 남았다. 선군정치의 거품을 뺀 김정은은 지난 9일 당 정치국회의 내용을 하루만에 공개하는 등 정치를 정상화했다. 김정일의 은둔 통치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정책도 다르다. 김정일은 2002년 경제 활력을 위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도입, 안팎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체제안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3년 만에 그만두었고 결국 경제난이 심화됐다. 반면 김정은은 과감한 시장 요소를 도입했고, 경제 상황을 개선시켰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통제·빈곤·부족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북한-은 사실 김정일의 작품이다. 북한에서도 1960년대까지 김일성 시대는 좋은 시절, 1970년 이후 김정일 시대는 나쁜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이 가히 살부(殺父)의 정신으로 김정일 시대의 나쁜 기억을 지워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빈말로 하던 광폭정치도 그가 실천하고 있다. 북한 내 정권교체와 다를 바 없다. 김정은이 핵 문제에 대해 김정일과 다른 계획을 갖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 근원은 외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변화 가능성을 지닌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김정일 시대에는 실패했던 비핵화-체제보장이 김정은 시대에는 가능해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트럼프도 체제 변화가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의 시간 벌기라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아직도 김정은에게서 김정일을 보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의 핵폐기 결단이 임박했다고 예단해서도 안된다. 핵폐기는 북한 내부의 변화로 충분하지 않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카드를 보고 결심할 것이다. 역시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있고, 아버지가 못 이룬 위업을 달성할 수 있겠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핵폐기는 김정은·트럼프 두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공동작품이다. 우리는 분단 70년 만에 낡은 냉전의 섬에서 탈출해 한반도 평화를 손에 쥘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 우리가 왜 트럼프가 잘하기를 빌지 않겠는가?

 

<이대근 논설주간>

Posted by KHross

북·미 정상회담의 당사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다음달 또는 6월 초에 그들과 만나는 것을 여러분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9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이달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북남수뇌회담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면한 북남관계 발전 방향과 조·미(북·미) 대화 전망을 심도 있게 분석평가하고 금후 국제관계 방침과 대응방향을 비롯한 전략전술적 문제들을 제시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현안에 대해 거수투표하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두 정상의 발언은 비핵화 주제의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시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일각에서 제기한 ‘회담 연기론’ 등으로 인한 회담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효과가 있다. ‘슈퍼 매파’로 분류되는 존 볼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식 업무를 시작한 날 이 발언이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북 라인에 잇단 대북 강경 인사를 기용했지만 정상회담 준비는 이와 무관하게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있을 것이고 양측 간에 큰 존경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상당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북한 매체의 김 위원장 발언 보도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 변화를 내부에 공개하는 효과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경우 북·미 대치 상황을 고려해 ‘조·미 대화’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번 보도로 운을 뗀 셈이다. 무엇보다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핵 억제력 강화나 핵·경제 병진 노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이 주목된다.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비핵화라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정책 전환에 따른 이해를 구하는 홍보작업을 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을 헌법 서문에 명시할 만큼 핵을 중시하는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내부 정지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정상회담은 불신과 대결로 점철된 한반도 역사를 새로 쓰는 일대 사건이다. 북·미 정상의 정상회담 개최 공식화로 회담 준비에 속도가 붙게 되면서 비핵화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핵과 체제보장을 주고받는 큰 틀의 교환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두 정상의 굳은 의지와 한국 등 주변국의 협력, 정밀하고도 실현 가능한 로드맵이 완벽하게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다.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해지고 전쟁 위기가 다시 고조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퇴로는 없다.

Posted by KHross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 동(東)구타 지역에서 지난 7일 화학무기 공격으로 수십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시리아 반군 활동가와 구조단체들은 최소 4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화학무기 살포로 인한 호흡곤란 등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부상자가 100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제구호단체와 의료진이 공개한 영상에는 현지 건물 바닥과 계단에 어린이들을 포함한 시신들이 쌓여 있고, 입과 코에서 하얀 거품이 나오는 장면도 등장한다.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피해자들은 또 호흡곤란, 눈 화상 등의 증상을 보였고, 산소 부족으로 피부가 푸른색으로 변하는 청색증 증세도 나타난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참상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올해로 7년째인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로 인한 인명살상이 빈발하고 있다. 2013년에도 사린·염소 가스 공격 등으로 1400명이 숨졌고, 지난해 4월에도 반군 장악 지역인 칸 셰이쿤 지역에서 사린가스 공격이 발생해 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2013년 9월 시리아 내 화학무기를 전량 폐기하기로 한 합의가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무기가 남용되자 세계는 수많은 희생을 초래한 데 대한 반성으로 1925년 사용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를 채택했다. 1993년에는 화학무기의 사용은 물론 개발·생산·저장을 전면 금지하고, 폐기를 의무화하는 화학무기금지협약을 채택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인명살상을 위해 화학무기를 동원하는 만행이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이르면 10일(현지시간)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화학무기 사태의 진상 조사를 위한 결의안 채택에 나설 계획이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드 정권을 비호해온 러시아의 거부로 부결되면 미국이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반군들이 동구타에서 철수하기로 정부군과 합의하면서 막바지로 접어드는 흐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출한 화학무기 공격이 미·러 대결구도를 촉발시켜 사태를 더 꼬이게 할까 걱정스럽다. 미국과 러시아는 화학무기를 지구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내전이 종식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중국 스포츠 애호가들 사이에서 ‘4·15 마라톤 지도’는 꿈의 지도다. 이 지도는 15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각 도시에서 열리는 43개의 마라톤 대회를 붉은색 중국 대륙에 꼼꼼히 표시해둔 것이다. 중국 육상협회에서 인정한 마라톤 대회가 15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4월15일은 마라톤 축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6만명이 참여하는 이날의 마라톤 행렬을 두고 현지 언론은 중국 설인 춘제 귀성 행렬과 비교하고 있다.

 

중국의 마라톤 열풍은 불과 몇 년 새 급속히 가열됐다. 7년 전만 해도 22개에 불과했던 마라톤 대회는 지난해 관련 대회까지 포함해 1100개로 불어났다. 대회에 참가한 인원만 500만명에 달한다. 마라톤 열풍은 중국의 경제 성장과 관련돼 있다. ‘중산층이 즐기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라톤이 중국인들의 허영심까지 자극했다. 마라톤 대회도 적지 않지만 지원자는 몇 배 더 많으니 대회 참가 자체가 잡히지 않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4·15 마라톤 지도’가 꿈의 지도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라톤 대회 참가 규정은 까다롭다. 심장병, 고혈압 같은 건강 상태뿐 아니라 완주 경험 등을 심사해 참가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완주보다 신청 통과가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꼼수까지 나왔다.

 

2016년 12월 샤먼에서 열린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가 대회 도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사망한 우모씨는 대리인을 통해 신청한 후 그의 이름이 달린 이름표를 달고 뛰었다. 유족들은 우씨의 건강 상태가 마라톤을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대회 측의 관리 부실로 사망까지 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아프리카 국가의 무명 선수들을 참가시켜 국제대회로 이미지 탈바꿈하는 주최 측 상술까지 더해지면서 마라톤 열기는 이상 과열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논평에서 미국에서 풀코스 마라톤 경기는 1100개, 하프 마라톤은 2800개(2016년 기준)로 참가 인원은 1600만명에 이르는데, 이에 비하면 중국의 마라톤 대회가 아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광란의 열풍 속에 관리 부족, 안전 위험 등 더욱 혼란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급속히 성장하면서 제도나 의식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시각장애인 가수 저우윈펑은 은행에서 민사행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은행카드 발급을 거부당했다. 시각 장애인을 자신의 행동을 판별할 능력이 없는 금치산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일었다. 중국 유명 검색사이트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회장은 “중국인은 자신의 개인정보에 민감하지 않다”는 말로 논란이 됐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와 온라인상 편의를 맞바꾸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그의 말은 공분을 일으켰다. 누구보다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뤄야 하는 기업의 책임자의 빈곤한 의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전 불감증, 장애인 배려와 복지 부족, 개인 정보 보호 의식 결여 같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 중국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중국은 반부패 처벌에서만큼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섭게 대처한다. 장런화 산시일보 전 사장은 뇌물 수수 등을 이유로 정청급 간부에서 과원으로 6단계 강등됐다. 사표를 마음대로 던지는 것도 기율 위반인 상황에서 망신을 견디며 일해야 하는 고난형을 받았다. 장중성 뤼량시 부시장은 10억위안 이상의 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아무리 엄중한 부패 호랑이도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2년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왔지만 장 부시장은 1심에서 사형이라는 강력한 심판을 받았다. 중국이 국가 성장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선 성장과 의식의 균형적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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