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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연달아 알려지면서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한국 내 사드 기습배치 문제로 어지럽기 그지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사태 반전이 놀랍다. 남북경협의 가장 큰 장애물인 정치적 긴장이 해소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남북경협으로 눈길이 쏠린다. 더구나 올해는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이 발표되면서 북방정책이 본격 추진되고 남북경협이 첫발을 뗀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 정세의 해빙무드는 한국경제가 지긋지긋한 ‘안보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임과 동시에 남북경협 복원을 위해 무척 다행스럽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조건이 있지만 남북경협 재개 문제는 앞으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랐던 남북경협의 싹을 다시 틔우고,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줄탁동시’의 지혜가 요구된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안에서 병아리가 두드리는 동시에 어미가 밖에서 알을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 어미가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하며 동시(同時)에 이뤄져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남북경협에 적용한다면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북한의 노력과 한국의 대북지원 및 협력이 잘 맞아 돌아가야 남북경협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북한이 폐쇄적 경제체제임은 분명하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결과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시장화는 ‘돈주’라 불리는 거대자본이 공장, 무역회사, 상점 등 여러 분야에 개입하면서 시장을 확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외국자본유치를 추진했고, 나진·선봉 등 기존 5개 중앙급 경제특구 개발과 별개로 19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도 신설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 연구원은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지난 2월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시장 숫자가 1년 동안 46개가 증가하면서 482개에 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화의 바람은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이 내부에서 형성될 여지가 없는 북한으로서는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이나 한국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 북한 지도부는 시장경제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외부로 보내야 한다. 이것이 북한의 줄이다.

 

한국의 탁은 무엇이어야 하나. 북한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협애한 시각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경제적 교류확대에 나서야 한다. 밖에서 두드려주지 않는다고 하면 북한 경제가 자생적으로 활로를 찾긴 어렵다. 이런 점에서 보수정부가 북한의 변화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남북경협의 소중한 싹을 밟아버린 것은 잘못된 일이다. 2003년 개성공단 착공으로 남북경협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지만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선택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재인 정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원칙하에 교류협력을 이끌어 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를 본보기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로의 가치와 삶의 방식은 존중돼야 한다는 양안의 안목은 한반도에도 유효하다. 양안관계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처음 열렸을 때 얼어붙어 있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자극을 받은 양안은 지속적으로 소통, 교류했고 결국 2010년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2016년 초 대만 독립파인 차이잉원(蔡英文)이 집권한 후에도 양안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노력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일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한국경제가 대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분명하나 성급한 통일 대박론을 거론해선 득이 될 게 없다. 꾸준히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촉진시키고, 북한 주민들에게 마음을 얻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정치·안보 문제는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어느 날 거대한 진전을 이룰 수 있지만 경제는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긴 어렵다. 앞으로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가 돌출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모두 정치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경협을 위한 의제발굴과 치밀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오관철 경제부장>

Posted by KHross

정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12일부터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파견해 방북 및 방미 결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은 12~13일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차례로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면담할 계획이다. 서훈 국정원장도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회담 성사 경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이 중·러 두 정상을 면담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들과 전화 통화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한반도 정세 진전에는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적인 만큼 이들 국가에 정상회담 성사 경위와 취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대미특사 자격으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고 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의 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중국의 입장이 특히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 및 북·미 간 정상회담 성사에 환영을 표시했으나 내심 불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으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제재에 동참했는데도 북한을 충분히 압박하지 않았다고 비판받아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미국이 중국을 건너뛰어 직접 북한을 상대하겠다고 나섰으니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법하다. 이런 중국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으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하면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여기는 중국이 북·미 간 접근에 불안해한다면 양측 간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중 두 나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는 해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내건 체제 안전보장 및 경제적 보상도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 또한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되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는 자신을 배제하고 북·미가 정치적 타협을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 및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 일본이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러시아 역시 한반도 정세 진전에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한반도 상황이 급진전하고 있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어떤 돌발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국제적 협력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북·미 및 남북 관계개선에 대한 주변 강국의 협력은 향후 북한의 정상국가화 작업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작업에도 필수적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 등 특사는 지난 5일부터 숨가쁘게 이어진 강행군에 피로가 누적됐겠지만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쌓는다는 각오로 주변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KHross

독일 ‘제3제국’ 시절인 1933년 아돌프 히틀러 총리와 폴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베를린 부근 포츠담에서 역사적인 악수를 했다.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독일 군대와 나치즘이 손을 잡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독일은 참담하게 패했다. 1945년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정상들은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포츠담에 모였다. 나치가 깃발을 올린 곳이 퇴출 결정의 장소가 된 것이다. 또 이 회담의 결정 사항인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는 일본에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은 두 손을 들었다. 항복 조인식이 열린 곳은 도쿄만 요코하마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미주리호 선상이었다.

 

제주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서냉전의 전환기인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났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과 덩샤오핑 주석은 미국 워싱턴에서 만났다. 정권을 이어가며 양국 수도에서 만났다. 핵군축의 주역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서기장 간 회담 장소는 3국인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였다. 서로에게 부담되는 곳은 피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장소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에서는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 제주도 등이 거론된다. 비무장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방한 때 가려 했으나 기상이 나빠져 포기했다. 판문점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장소로서의 상징성이 있다.

 

제주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주도는 김 위원장의 외가 쪽 고향이다. 북한에 감귤 보내기 운동으로 ‘평화의 섬’이란 이미지도 갖고 있다. 제주도는 도민들이 회담장 유치홍보에 나섰다. 국외의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꼽히는 스웨덴은 남북 수교국으로, 북한에서 미국의 영사업무를 대행해왔다. 방북했다가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송환을 위한 북·미 교섭도 스웨덴에서 열렸다. 스위스 제네바는 김 위원장이 유학한 곳이자 북·미 제네바합의가 성사된 장소다. 중국 베이징도 거론된다. 모두 북·미 양국과 역사적 인연이 있거나 평화의 상징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역사적 장소가 된다. 세계 각국이 유치경쟁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한국에서 열렸으면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