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날, 외신은 문재인 대통령,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문 대통령과 김 부부장의 악수 장면은 긴급뉴스로 타전됐고, 개회식장 안팎에서 펜스 부통령과 김 부부장이 서로 외면하는 장면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남북선수단 동시입장을 포함한 이날의 풍경은 “한 달 전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거기에는 엄중한 한반도 상황이 있다.

 

펜스 부통령과 김 부부장이 모두 돌아갔다. ‘평창 외교전’의 1라운드는 끝났다. 북한의 문 대통령 방북 요청은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주일 전 “평창 올림픽은 아주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는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전개될지는 안갯속이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경기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과 쇼트트랙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강릉 _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요즘 미국의 대북 메시지가 ‘북핵 문제’보다 ‘북한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북한 문제는 북한 정권과 체제, 인권 등을 말하는데 북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이를 주도하고 나섰다. 특히 올림픽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잇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잔혹한 독재정권”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탈북자 지성호씨를 국정연설에 초대해 소개했고, 이튿날 백악관으로 탈북자들을 초청해 북한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올림픽 납치(hijacking)를 막겠다”며 한국에 와선 평택 해군 2함대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해 북한을 “감옥 국가”라고 맹비난했다. 펜스 부통령의 2박3일 언행은 그가 강경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북 강경론자인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달 북한 핵개발이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전용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남한을 통일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구분하지 못할 리는 없다. 그러면 북핵이 아닌 북한 문제 해결로 방향을 잡았는지, ‘인류 평화의 제전’에 ‘불량국가’ 북한이 끼어드는 게 못마땅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현 상황에서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올리면 북핵 논의의 초점을 흐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여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공동 제시한 ‘4노(No) 원칙(북한 정권 교체와 붕괴, 한반도 통일 가속화, 38선 이북 공격)’도 북한에 당면 과제는 체제가 아니라 핵·미사일이니 안심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의미다.

 

실제 핵·미사일 고도화의 속도로 보면 지금은 북핵에 매달려야 하는 시기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북한 핵·미사일의 본토 또는 미국령 공격 가능 시기를 “곧”이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 문제 해결을 앞세우면 북한의 도발을 만류하는 게 아니라 부추기려는 의도로 읽힐 우려도 있다. 종합적으로 북한과 대화할 생각 자체가 없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평창 올림픽을 북핵 대화의 모멘텀으로 만들겠다는 한국의 ‘평창 구상’도 힘겹게 한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거칠고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충만하다. “내가 처리하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하지만 상호 불신이 깊어 대화의 계기조차 만들지 못하는 게 현재 상황이다. 어렵게 만나도 다시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 게 그동안 북핵 협상의 역사다. 이 과정에서 북한 문제가 부각돼 상황이 꼬인 경우도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던 날이다. 9·19 공동성명은 포괄적·단계적 접근, 병행적 해결 원칙으로 북핵 논의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미국 수석대표는 마지막 발언에서 돌연 북한 인권문제, 테러리즘, 불법행위 등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미국이 북한의 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제재로 북핵 논의는 미국이 ‘30일 내 BDA 문제 해결’을 약속한 2007년 2·13 합의 때까지 겉돌았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지금 기술적 완성을 눈앞에 둔 북한의 핵 능력을 두고 무조건 협상이 만능일 수는 없다. 제재와 압박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없다. 대북 군사옵션도 함부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북한을 선제 정밀타격하는 ‘코피 전략’은 미국 강경파조차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성을 경고하자 백악관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고 한발 빼는 분위기다. 결국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면서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야 하는데, 지금 논점은 북핵 문제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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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축하하러 왔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한 목적에 어긋나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 아베 총리는 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며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 문제는 우리의 주권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총리께서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전 강원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적절한 대처로 정상회담이 파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베의 발언이 부적절한 발언이며 도를 넘은 내정 간섭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일본에도 중요한 현안이지만 한·미 군사훈련은 어디까지나 한국과 미국 사이의 일로 일본은 당사자가 될 수 없다. 남북대화의 진정성 역시 전적으로 한국이 판단할 일이다. 일본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주제넘는 참견에 불과하다. 일본은 10년 만에 재개된 남북대화가 영 반갑지 않은 것 같다.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사태 발생 시 한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대피와 안전확보에 대해 연대하자고 말한 것도 불편하다. 한국의 어려움을 돕기는커녕 자국 잇속만 챙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베 총리의 외교적 결례는 이뿐 아니다. 지난 9일에는 문 대통령이 주재한 평창 올림픽 리셉션에 30여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는 올림픽 개회식에도 참석했지만 다른 하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을 축하하러 온 건지, 방해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국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한국의 운명이 걸린 북핵 위기 국면에서 아베 총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한국인들이 똑똑히 지켜보고 기억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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