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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나치)은 집권 반년 뒤인 1933년 7월 ‘유전적 결함을 지닌 자손의 예방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으로 37만5000여명이 강제로 단종수술을 받았다. 1935년 9월에는 유전성 질환, 정신착란, 결핵, 성병환자의 결혼을 금지하는 ‘뉘른베르크 법’이 시행됐다. 이도 모자라 1939년부터는 ‘안락사’라는 이름의 장애인 집단학살이 시작됐다. 안락사 대상 장애인들은 회색버스와 밴에 실려 브란덴부르크 등에 위치한 안락사 센터로 이송됐다. 1941년 8월까지 최소 7만여명이 샤워실로 위장된 가스실에서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죽어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학살에 동원된 가스실의 원조다.

1940년 5월 유럽대륙의 중앙부인 폴란드 오비시엥침에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가 세워졌다. 처음 사용된 살인무기는 자동차 배기가스였다. 엔진의 배기가스가 차량 내부로 유입되도록 한 밀폐트럭에 태워 소련군 포로와 공산주의자들을 질식사시켰다. 가스실 처형이 시작된 건 1941년 9월부터다. 공기와 접촉하면 맹독성 청산가스로 바뀌는 시안화계 화합물 ‘치클론-B’를 가스실에 주입해 학살했다. 단 50g의 치클론-B로, 5000명을 학살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42년부터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본격화되면서 유럽 각지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밀려들었다. 하루 최고 9000여명이 독가스실에서 숨졌다.

최근 독일의 자동차 업체들이 인체를 대상으로 가스실 실험을 한 사실이 밝혀져 독일과 국제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폭스바겐, 다임러, BMW 등 독일 자동차들이 지원하는 로비단체 ‘유럽 운송분야 환경보건연구그룹’이 건장한 젊은 남녀 25명을 매주 1회, 3시간씩 한 달간 질소산화물이 포함된 디젤 배기가스를 마시도록 한 뒤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실험에 동원했다고 30일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독일차 업체들은 인체실험을 하는 줄 몰랐다고 발뺌하지만 독일 정부가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과거 독일의 가장 어두운 역사로 남은 끔찍한 나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논평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철저하다는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놀라울 뿐이다.

<서의동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안사람들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트럼프 정부 1주년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 대부분이 비호감이란 평가를 받았다. 큰딸 이방카에 대해서도 호감 41%, 비호감 42%로 싫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한 명 예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다. 멜라니아에 대해서는 호감이란 응답이 48%로, 비호감 33%보다 훨씬 많았다. 지난해 말 갤럽의 조사에서도 멜라니아의 호감도는 1년 사이에 17%포인트나 올랐고 트럼프 집안에서 최고 호감도를 보였다.

멜라니아는 준비된 퍼스트레이디는 아니었다. 화제의 신간 <화염과 분노>에 따르면 멜라니아는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한 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의 안락한 생활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멜라니아에게는 조용히 보호받는 생활을 파괴할 끔찍한 것이었다고 한다. 원하지 않는 공인이 됐고 과거 모델 초년 시절의 누드 사진만 공개됐다. 멜라니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에도 아들 배넌의 학교생활을 이유로 뉴욕에 5개월이나 머물렀다. 워싱턴 생활이 얼마나 싫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멜라니아는 여성편력이 화려한 부동산 갑부 트럼프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이다. 슬로베니아 태생의 모델 출신으로 남편과는 24살이나 차이가 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에게 멜라니아의 외모를 자랑하며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고 떠들었다고 한다. 트로피 와이프는 돈 많고 성공한 중년 남성들이 얻은 젊고 매력적인 부인을 말한다. 그에게 멜라니아는 성공을 상징하는 전리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브런치와 파티를 즐기는 뉴요커의 삶을 원했던 멜라니아에게 바늘방석 같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주어진 지 1년이 지났다. 멜라니아의 첫해 행보는 역대 퍼스트레이디와는 조금 달랐다. 멜라니아는 대통령 남편의 후원자임을 강변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5월 이스라엘 순방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보란 듯이 뿌리쳤다. 최근에는 포르노 배우와의 성추문에 휘말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스위스 다보스포럼 동행을 취소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을 인정한 다음날 여름휴가를 떠나겠다며 가족끼리 손을 잡고 백악관 잔디밭을 걸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힐러리 클린턴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멜라니아에게는 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집무실인 이스트윙의 주인다운 존재감도 부족하다. 대통령 부인의 갑질 논란은 물론 주목받는 공개 활동도 없다. 인기는 올라가고 있지만 힐러리(58%), 로라 부시(77%), 미셸 오바마(61%) 등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인 것도 이 때문이다. 동유럽 이민자 출신인 멜라니아에겐 서툰 영어부터 콤플렉스다. 변호사였던 미셸 오바마처럼 잘나가는 독립적인 여성 이미지도 아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첫째 부인의 딸인 이방카가 백악관에 사무실을 내면서 멜라니아의 위상은 더 줄어들었다. 미셸의 건강한 먹거리 운동 같은 대표적인 활동도 아직은 없다. 사이버 왕따 예방 캠페인에 나섰다가 남편 트럼프 대통령이 사이버 왕따의 지존이란 핀잔을 들었다. 하이힐을 신고 허리케인 피해지역을 찾았다가 홍수패션이란 구설에만 올랐다.

멜라니아에 대한 호감도는 어쩌면 트럼프 집안사람들에 둘러싸여 백악관에 갇힌 연약한 여성 이미지 때문일지 모른다. 돈과 권력을 가진 트럼프에 비해 약자인 멜라니아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많다는 의미다. 취임 초부터 미국 언론들은 멜라니아를 트럼프타워에 갇힌 라푼젤에 비유했다. 멜라니아는 최근 이스트윙 참모진을 대폭 보강했다. 새해에는 멜라니아가 트로피 와이프란 오명을 털어내고 당당한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를 구축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

유라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후 ‘제국의 무덤’으로 불려왔다. 영국과 소련이 아프간을 섣불리 침공했다가 실패하면서 몰락했고, 미국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영국은 1839년부터 1919년까지 3차례 전쟁을 치렀지만 1차 전쟁(1839~1842)에서 영국군 4500명과 지원인력 1만2000명이 궤멸되는 등 번번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국은 결국 1919년 아프간을 중립국으로 인정하는 조약을 맺은 뒤 철수했다. 1979년에는 소련이 한 해 전 쿠데타로 성립한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다. 소련군은 주요 도시를 빠르게 장악한 뒤 승리를 선언했지만, 저항군인 ‘무자헤딘’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병력 5만명을 잃은 채 1989년 철군했다. 아프간 전쟁은 두 강대국의 몰락을 재촉했다.

 

당대의 초강대국들이 아프간과의 전쟁에서 고전한 이유는 한반도 3배 크기(65만㎢)에 달하는 국토의 대부분이 거친 사막이나 험준한 산악지대인 데다 이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아프간인들의 저항이 상상 이상으로 집요하기 때문이다. AK-47 소총과 바주카포를 들쳐 메고 산악지대를 평지처럼 뛰어다니는 게릴라들에게는 세계 최강인 미군도 속수무책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알카에다가 은거해 있는 아프간을 침공해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탈레반 세력들은 산악전과 게릴라전으로 전환했다. 이 와중에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가 내란에 휩싸이자 오히려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세력을 회복했다. 미군이 아프간과 전쟁을 벌인 지 18년째로 접어들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베트남전처럼 ‘수렁에 빠진 전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7일 아프간 수도 카불 시내 병원 부근 검문소에서 발생한 구급차 자폭테러로 최소 95명이 숨지고 158명 이상이 다쳤다. 카불 시내 호텔에서 지난 20일 탈레반 무장세력이 총격테러를 벌여 22명이 숨진 지 1주일 만에 벌어진 참사다. 카불 도심의 국방부 청사, 국회의사당, 외국대사관, 고급호텔, 대학 및 병원 등이 속속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다. 동서양을 잇는 ‘문명의 교차로’이던 카불은 이렇게 ‘테러의 중심지’가 됐다.

 

<서의동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 이후 곧바로 남북 고위급회담에 나와 선수단·응원단·예술단 파견 문제를 일사천리로 결정해 나가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대화제의에 꿈쩍도 않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추세라면 평창 올림픽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한반도 상황은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평화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안도 뒤에는 한층 더 팽팽해진 긴장감이 잠복해 있다.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본게임’이 올림픽 이후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남과 북의 가느다란 대화통로가 한반도 주변에 터질 듯이 가득 찬 긴장의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출구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곧 갖게 된다. 길어야 수개월밖에 시간이 없다. 미국은 이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외교적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군사적 수단으로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내에 압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공통 인식이다. 지금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라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국은 눈앞에 닥친 국가안보 위협을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나라가 아니다.

 

전쟁을 피하려면 미국과 북한의 대화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미는 그동안 매우 거칠게 대결국면을 유지해온 탓에 쉽게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은 이처럼 파국의 순간을 앞에 두고 열린 마지막 기회의 창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 한반도 상황의 결정적 기로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마련된 남북대화’라는 표현을 썼다. 또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듯이 대화를 지키고 키우는 데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는 대목에선 현 상황에 대한 절박한 인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번 남북대화가 북·미 접촉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한반도가 매우 위험해진다는 것을 미국과 북한이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남북대화를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군사적 행동을 일단 유보하고 북한의 의중을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갖고 싶다는 의미다.

 

북한 역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의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 가능성과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 강화도 큰 부담이다. 특히 미·중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북한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라는 ‘버퍼(완충지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꼭 김정은 정권일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중국이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이 같은 상황에서 결정된 대화의 신호다.

 

한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를 안전하게 북·미 접촉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특히 북·미가 한 번 접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올림픽과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접근법이 전략적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평창 올림픽에 참석한 북한 고위급 인사와 의미 있는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 새로운 남북관계 틀을 구축한다는 ‘평창 구상’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같은 구상을 실행할 적기가 아니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꾸준히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이산가족 상봉, 민간교류를 거쳐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했다면 ‘평창 구상’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간 과정을 다 생략하고 갑자기 북한이 올림픽에 뛰어들어온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그랜드디자인’은 불가능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위한 ‘홈런성 타구’가 아니라 북·미 대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해낼 ‘진루타 1개’다.

 

남북관계에서도 습관화된 과거의 패턴을 벗어나야 한다. 북핵 문제가 심화되고 남북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국민들의 대북인식은 극도로 악화됐다. 적대적인 국민정서가 안타깝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현실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는 이미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하고 북핵 문제와도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다’ 식의 감성적 접근으로는 풀 수 없다. 비즈니스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비즈니스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

동해와 맞닿은 일본 아키타(秋田)현 오가(男鹿)시.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사찰 도센지(洞泉寺)에는 유골 10구가 임시 안치돼 있다. 이 유골들은 지난해 11~12월 북한에서 표류해온 것으로 보이는 조잡한 목선 내부 등에서 발견된 것이다.

 

본당에 줄지어 놓여 있는 하얀 유골함들 앞에서 주지 스님은 매일 아침 독경을 한다. 그는 “해마다 4~5구의 유골을 받아들이지만 작년은 이상하게도 많았다”고 도쿄신문에 말했다.

 

도센지는 오가시의 의뢰로 1950년대부터 신원불명의 유골을 받아들여왔다. 1~2년이 지나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유골은 경내 무연고자 묘에 안치된다.

 

지난달 초 ‘재일조선인’이라는 여성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북한의) 어업권이 중국에 팔려서 거친 동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등의 내용이 써 있었다. 봉양에 써달라면서 1만엔이 동봉돼 있었다. 이 밖에도 감사 편지가 몇 통 더 왔고,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방문한 남성도 있었다. 주지 스님은 “북한에 대한 생각은 복잡하겠지만 따뜻한 반응이 많아 안심”이라고 했다.

 

해가 바뀌었어도 북한 추정 어선이나 어민의 시신이 일본 해안에 떠밀려오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앞바다에 북한 어선 추정 목선 1척이 뒤집힌 채 밀려왔다. 부근에선 일부 백골화한 남자 시신 1구가 발견됐고, 며칠 후 선박 안에서 남자 시신 7구가 수습됐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2013~2016년 50~60척이던 북한 추정 어선은 지난 1년간 사상 최대인 104척이 밀려왔다. 이 중 생존자가 있는 경우는 5건으로 42명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경우는 11건으로 43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일본에 표류해오는 배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북한 당국이 식량난 타개를 위해 어업을 장려하면서 어민들이 먼바다까지 나온 데다 예년보다 날씨가 안 좋아 풍랑에 휩쓸렸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당국에 발견되지 않고 바다를 떠도는 배와 시신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낡은 목선을 타고 거친 바다로 나오는 이들. 그리고 시신이 되어 차가운 바다를 떠도는 이들. 북한 당국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 표류 어선과 어민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북한 핵·미사일 위기론과 맞물려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북한 때리기’ 소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관심은 북한 공작선이 아닌지, 북한 스파이가 타고 온 건 아닌지에 집중됐다. 지난해 11월 홋카이도 앞바다 무인도에 표착한 북한 어민들의 ‘도둑질’이 여론을 악화시켰다곤 해도 과잉 반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과 언론들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키웠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공작원 등 여러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고, 집권 자민당의 한 의원은 바이오 테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북한 공작원이 굳이 낡은 목선을 타고 거친 겨울 바다에 나와 일본에 잠입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란 추론은 묻혔다. 과열 반응이 지나고 남은 것은 냉담이다.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목숨을 걸고 차가운 바다로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차가운 바다를 시신으로 떠도는 이들도 누군가의 남편, 아버지, 자식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시신이 되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북한 당국이 인수에 소극적인 탓도 있어서, 앞서 도센지 같은 곳의 무연고자 묘에 묻힌다. 이들은 ‘신원불명의 행로병자’로 처리된다고 한다. 앞서 도센지 주지 스님은 “일본인도 북한인도 생명의 무게는 같다. 시신은 가족이 있는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장례식도 올리지 못한다. 부디 편안히 잠들라고만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도쿄|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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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인이라던 대통령은 알고 보니 외교의 달인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련된 외교 매너로 서구 언론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크롱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고 썼고, 영국 가디언은 마크롱에게 ‘외교적 제스처의 장인(master)’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최근 마크롱은 독일·영국 등 다른 유럽 주요국 정상들보다 더 빈번히 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마크롱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상징을 적절히 활용해 정치와 외교에 서사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상징 활용은 정상 외교의 각종 이벤트에서 두드러진다. 마크롱은 지난해 9월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해 유럽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유럽연합(EU)의 미래상을 제시할 곳으로 민주주의가 태동한 아테네보다 더 적합한 장소가 어디 있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프랑스 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 데이(7월14일) 행사에 초청한 것도 세심하게 기획된 작품이다. 이날 마크롱은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트럼프에게 보여줌으로써 프랑스군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馬)을 선물한 것이나 영국에 11세기 자수작품 ‘바이외 태피스트리’를 대여하기로 한 결정도 마크롱이 상징 외교에 들이는 정성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의미 있는 선물과 이벤트로 감동을 안기다가도 분쟁과 갈등에 예각을 세우고 직설을 아끼지 않는 것 역시 마크롱 외교의 특징이다. 특히 공동 기자회견에서 상대국 정상 면전에 ‘돌직구’를 던지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자신에 대한 허위 기사를 유포한 러시아 매체를 비난했고, 지난달 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선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것을 비판했다. 이런 외교술 덕분에 프랑스는 할 말은 하는, 갈등의 중재자이자 해결사라는 평판을 쌓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위상이 올라가는 사이, 거의 모든 국제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했던 미국의 신뢰도는 이울고 있다. 마크롱이 상징과 직설 사이에서 솜씨 좋게 줄타기한다면 트럼프는 막말의 ‘외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데, 막말도 대륙 하나를 들었다 놓을 정도의 폭탄 발언만 골라서 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입과 트위터로 쏟아내는 무신경하고 부주의한 발언은 전 세계에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아이티와 아프리카 국가를 ‘거지소굴(shithole)’이라 부른 것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정부 관계자와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내 핵단추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것보다 크다”는 말은 트럼프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과 실제 건강검진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던 것도 트럼프의 거친 발언이 초래한 비용이다. 백악관에서 막말이 나올 때마다 골치를 앓았을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거의 매주 드라마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시민들이 트럼프에게 느끼는 피로감은 수치로 구체화되고 있다. 취임 1주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국정수행 지지도는 40%에 그쳤다. 외교 업무 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6%, 다른 나라 정상들이 트럼프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도 65%에 이르렀다.

 

마크롱은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거지소굴 발언을 비판하며 “그는 고전적(classical) 정치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전적인 정치 문법을 모르는 트럼프에게 마크롱 수준의 외교 수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트럼프의 임기는 3년 더 남았다. 그가 무분별한 발언으로 평지풍파 일으키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설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국제부 | 최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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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활짝 웃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왼쪽에서 나타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흑백 이미지를 가리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오바마를 완전히 가리자 ‘사상 최고의 일식(The Best Eclipse Ever!)’이란 자막이 뜬다. 지난해 8월24일(현지시간)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리트윗한 4장의 연속사진이다. 당시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이틀 전(8월22일) 애리조나주 연설에서 강성 발언을 쏟아낸 뒤 만들어진 사진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애리조나주 연설은 이렇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서라면 연방정부를 셧다운(일시폐쇄)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취임 1년을 맞은 20일, 그의 공언대로 연방정부가 셧다운됐다. 1년 내내 ‘오바마 지우기’에 열중해온 트럼프가 이번에는 오바마 재임 시 연방정부 셧다운을 재현한 건가. 뜯어보면 다르다. 2013년 10월에는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과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이 대립하다 예산안 통과에 실패했다. 이번에는 상·하원 모두 여당인 공화당이 지배하는데도 셧다운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셧다운을 앞두고 실시된 ABC방송·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어느 쪽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8%가 ‘트럼프와 공화당’을 꼽았다.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트럼프셧다운’ 해시태그(#TrumpShutdown)가 전 세계적으로 검색어 최상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여론 흐름이 트럼프에 불리한 데는 또 다른 요인도 있을 터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다카(DACA)’다. 다카는 오바마가 내린 행정명령으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불법 입국한 청소년들의 추방을 유예하고 노동허가증을 발급해주는 정책이다. 트럼프가 폐기를 선언하면서, 불법 체류 청소년 약 80만명이 추방 위기에 놓였다. 민주당은 다카의 부활에 준하는 보완입법을 요구한 반면, 공화당은 이를 거부하고 트럼프는 멕시코 장벽 건설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고 맞섰다. 지난해 8월 NBC 여론조사에선 64%가 다카 유지 쪽에 손을 들었다. 2017년 미국인들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도 ‘다카’였다. 전임자의 자취는 이어받을 수도 있고 지울 수도 있다. 하지만 주권자의 뜻을 외면했다간 큰코다친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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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9일자 지면기사-

 

2018년 벽두부터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해빙의 조짐이 일고 있다. 25개월 만에 남북대화가 복구되었다. 아직은 설익은 희망사고라고 할 수 있지만, 만화처럼 비현실적이고 삼류영화의 막장대화처럼 북·미 간의 말폭탄이 난무했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기대와 들뜸은 허용될 만하다. 물론 해결된 것 하나 없고, 장애물은 끝도 없이 많아 보인다. 평창 올림픽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아득하다. 북한이 지금까지는 놀라울 정도로 협조적이지만 여차하면 무산될 수 있는 위태함이 도사리고 있다.

 

북한 외에도 안팎의 훼방자들이 걱정을 더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나라를 걱정하고 실패를 우려하는 듯하지만, 속내는 성공을 향한 국면전환을 두려워한다.

 

먼저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내부의 훼방자다.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시점부터 한·미관계 이간질을 위한 통남봉미 전술이라고 비판하더니, 평창을 인질로 금품을 요구할 것이며, 위장평화공세로 이미지 세탁과 비핵화압력을 비껴가려는 북한을 문재인 정부가 도와주며 호구인증에 나섰다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예단이기는 하나 고려할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비판의 동기가 성공을 위한 우려가 아니라 판 뒤엎기의 예열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개성공단의 핵개발 자금 유용이라는 프레임의 부활, 남북관계 개선은 곧 한·미동맹의 붕괴라는 근거 없는 흑백논리가 어김없이 뒤따른다.

 

분단고착세력들은 평창 올림픽과 남북대화의 성공보다 미국의 심기가 중요하며, 한반도의 해빙보다는 전쟁위기의 한파를 오히려 편안해한다. 왜냐하면 얼음이 녹으면 이들의 기득권은 수장되기 때문이다.

 

협상국면이 달갑지 않은 외부의 훼방자는 미국의 강경파들이다. 그들의 사고체계로는 북한이 변할 수 없고, 또 변해서도 안된다. 수용할 수 있는 변화는 북한의 항복 또는 붕괴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대화국면을 북한의 계략이거나 한국 종북진보의 반동으로 인식한다.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을 방해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으나, 내심 ‘탈선’을 기다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사드 조기 배치로 압박했었던 그들이 이번에는 샴페인에 취한 탓이라고 매도했다. 다행히 트럼프가 평창 올림픽 기간에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데 동의했고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단 이들의 입은 닫혔다. 물론 지난해 전쟁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던 당사자인 트럼프의 변화조차도 신뢰하기는 어렵다. 무력시위를 통한 위협전략에 피로감이 생길 즈음에 협상이라는 다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 정도일 수 있다.

 

이렇듯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이며 시한부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이 부여하는 외교 지렛대의 위력을 경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농단의 결과로 코리아 패싱을 말하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미국은 한국이 과연 북한을 끌어낼 능력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상대인 미국을 한국이 견인할 수 있는지 주시한다. 중국 역시 북·중관계가 최악인 동시에 북한의 전략적 유용성은 도리어 커지는 딜레마 상황에서 한국이 과연 북·미를 설득해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외교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시한부 국면을 지속가능한 체제로 만들기 위해 양다리가 아닌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훼방자들에게 더 이상의 여지를 줘서는 안되며 당황할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대화국면의 비가역을 확보해야 한다. 지뢰밭을 제거하려면 하나씩 조심스럽게 제거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폭발을 통해 한꺼번에 제거하는 방법이 필요한 때다. 미국을 너무 의식해서 길목마다 비핵화의 단호함을 언급함으로써 스스로 장애물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해빙무드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에 갇히고,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연명을 위한 이야기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훼방자들은 약간의 파행만 있어도 한·미동맹 위기를 들먹이고 주한미군 철수카드로 위협할 것이다. 현재 배후에서 단일팀 구성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본질을 흔드는 선동은 앞으로 비핵화를 전제조건화하면서 북한을 자극하는 동시에 미국 강경파의 동조를 얻어 문재인 정부를 코너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비핵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비핵화의 단일 테이블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테이블을 동시 추진함으로써 완충시켜야 한다. 치밀하게 준비하되 굴하지 말고,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평화의 담대한 ‘문’을 여는 ‘문’재인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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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복원됐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북·미 협상이 최종 보증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들어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북·미 대화에도 전향적인 듯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핵협상 실패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린다. 북한이 최근 몇 년간 핵능력 고도화에 집착하면서 국제사회도 이런 인식이 굳어졌다.

 

북핵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다. 하지만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과연 북한에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던 2006년 이전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책임이 크다. 이 시기에 ‘제네바 합의’와 ‘9·19 합의’ 같은 북핵해법의 ‘완결판’이 등장했지만 그때마다 신뢰를 깨면서 파국을 유발한 건 미국 쪽이었다.

 

북한과 미국 간의 핵대화는 1988년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 영변 원자로 부근에 건설 중인 재처리 시설을 확인하면서 시작됐다. 핵무기 제조를 서두를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북한은 1991년부터 3년간 핵 재처리를 중단했고, 핵원료량과 핵시설 리스트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수준 이상으로 제출했다. 핵문제를 북·미협상의 지렛대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 중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미국에 “미군이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다”며 관계 정상화를 제안했다.

 

미국은 제의를 수용하는 대신 IAEA의 특별사찰 수용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맞서면서 긴장이 고조되자 북·미 간 협상의 문이 열렸다. 1993년 말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은 핵사찰을 수용하는 ‘동시행동’에 합의했지만 미국은 얼마 안 가 ‘사찰이 완료돼야 훈련을 중단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북한은 1994년 5월 영변 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을 반출하는 ‘벼랑 끝 전술’로 대응했다. 극대화된 위기는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6월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면서 진정됐고, 그해 10월 북한 핵동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는 북핵해법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네바 합의’가 체결됐다.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 레온 시걸이 북핵 초기국면을 지켜보면서 내린 평가는 눈여겨볼 만하다. “(미 행정부의 다수가) 북한의 폭탄제조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강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강압정책이 시행되지 않을 때만 핵무장을 포기하는 조치를 취했다.”(저서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붕괴론이 유포되자 미국은 합의 이행에 늑장을 부렸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뒤를 이은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 부르고,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이후 북핵문제는 ‘6자 회담’ 테이블로 옮겨갔고, 2년여간의 협상 끝에 2005년 9월19일 북한의 핵포기 및 북·미관계 정상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합의 직후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달러위조 증거를 찾는다며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하면서 합의는 잉크도 마르기 전에 좌초했고, 북한은 1년 뒤 핵실험을 강행한다.

 

1차 핵실험을 분석한 결과 핵폭탄 재료는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플루토늄이었다.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자 동결된 원자로를 다시 돌려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농축우라늄 핵개발’ 주장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달러위조 의혹도 1년 넘게 증거를 찾지 못하자 미국은 북한 자금을 돌려줬다. 미국의 불충분한 의혹제기가 한반도 평화정착의 금쪽같은 기회를 두 번이나 날려버렸다.

 

핵실험을 분수령으로 북핵사태는 더 복잡해졌다. 이번엔 북한이 신뢰를 깼고, 한국 보수정권도 걸림돌이 됐다. 북·미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맞바꾸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의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좌절됐고, 북한은 2012년 2·29 합의를 얼마 안 가 깨버렸다. 이후 오바마는 북핵을 방관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핵무력에 더 집착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도 북한에 불신이 커 접점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핵과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북핵해법의 기본틀은 25년 전과 동일하다.

 

북·미 협상에서 동맹국이자 당사국인 한국의 입장과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한국 여론도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핵능력을 키웠다’는 팩트 없는 담론이 여전히 횡행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북핵을 감싸고 있는 오해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팩트체크’를 제대로 해봐야 할 시점이 됐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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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는 무술년 신년사에서 “자위대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우리들 세대의 책임”이라면서 강력한 개헌 의지를 드러냈다. 아베 총리의 가장 큰 목표는 헌법 9조를 개정하여 ‘전쟁가능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여당인 자민당은 1월22일 정기국회에서 개헌안을 공개하고, 늦어도 올해 가을 임시국회에서 발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국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웃 국가인 우리나라를 공격한 사례가 다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침공계획, 임진왜란, 정한론, 관동대지진 조선인 6000명 대학살,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혐한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은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글로벌화 노선에의 반발로 우경화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오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국민 의식이나 애국심, 국민 상호 연대의식, 자국 언어, 국민문화 등 국가적인 것이 희박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 9조를 개정하는 것 또한 국가적인 것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이며, 우경화 가속페달을 밟는 것이다.

 

일본 자국 내 경제 정체 현상을 글로벌리즘 탓으로 돌리면서 재일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었으며, 재일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 싫어하는 감정이 집중화되었다. 그 이후 199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이 이슈화되면서 1992년 3월 일본 최대 유력 종합월간지인 ‘문예춘추’에 특집대담 기사가 실리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언론에 혐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본의 헌법 개정을 통한 우경화 행보는 앞으로 일본이 더욱더 국내적인 것, 국가적인 것에 집중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친 우경화 행보는 자국 이외의 것을 배척하는 양상으로 이어질 것이며, 한·일관계에서는 혐한으로 이어질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윤선 | 고려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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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대기 줄이 가장 긴 식당 중 하나가 쥐치(局氣)다. 베이징에만 17개 분점이 있는데 입구마다 대기자용 의자가 수십개씩 놓여 있다. 한두 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사람이 너무 많아 두세 번씩 허탕 쳤다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이 식당은 옛 베이징거리를 재현한 인테리어와 전통 복장을 입은 종업원 등 복고풍 콘셉트를 내세웠다. 솔직히 음식이 대단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손님을 당기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인기 메뉴인 흑미 볶음밥은 연탄 모양으로 그릇에 담겨 서빙된다. 중국 전통 의상인 탕좡을 입은 종업원은 연탄 모양의 볶음밥에 식용 알코올을 뿌려 불쇼를 펼친다. ‘인증 샷’을 찍을지 여부까지 체크해 쇼 구성을 달리한다. 불쇼가 포함된 이 볶음밥의 가격은 5000원 정도다.

 

탕청샤오추(湯城小廚)는 5000~8000원짜리 탕 요리를 파는 중저가 식당이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4시간 이상 끓여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탕을 내놓는다. 대추 오골계탕 같은 보양식이 주 메뉴지만 깔끔한 분위기 때문에 20대 고객들이 몰린다. 음식에는 소금을 전혀 넣지 않는다. 대신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소금통에 ‘1~2회 누르면 싱겁게’ ‘3~4회는 보통’ 등 세심한 설명을 붙여놓았다.

 

딤섬으로 유명한 진딩쉬엔(金鼎軒)은 흰색과 검은색 젓가락, 두 벌씩 준다. 하나는 음식을 개인 접시로 덜어올 때 쓰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먹을 때 쓰라는 배려다. 이 식당은 24시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식당들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맛, 위생, 분위기는 기본이고 세심한 서비스와 다양한 메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까지 갖췄다. 고급식당이 아니라 1만원 미만의 음식을 파는 중저가 식당들까지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추고 고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정보기술(IT)까지 더해졌다. 테이블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스캔하고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치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주문, 결제가 가능하다. 대기표 아래 인쇄된 QR코드를 인식하면 스마트폰에 대기인수와 예상 소요시간이 표시되고, 차례가 되면 문자로 통지된다.

 

지난해 중국의 요식업 매출액은 4조위안(약 661조원)을 넘어섰다. 빠르게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한식당들은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로 하나둘씩 들어선 한식당은 교민과 유학생이 증가하고 드라마 <대장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8년에는 베이징에 있는 한식당이 200개에 달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은 60여곳이다.

 

한식당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깨끗하고 친절하다. 그때만 해도 중국인들은 한식당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서비스 수준을 신기해했지만 이제는 더 나은 서비스를 보여주는 중국식당들이 넘쳐난다. 한식당의 메뉴판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중국식당이 신세대의 입맛과 생활수준 변화에 따라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한식당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임대료와 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관련 법규가 까다로워지는 상황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직원 고용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한식당에서 주로 사용하는 숯불이나 휴대용 가스레인지 규정, 오염물 배출 규정이 강화되는 흐름에서 버티지 못했다. 초기 투자 비중이 1.5배 이상 높아지는데 신규 투자는 어려워지면서 중국인 동업자에게 팔거나 사업을 접었다. 한식당은 지금 위기다.

 

그러나 아예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니다. 한국음식을 즐기는 중국인은 여전히 많다. 커져가는 중국 외식 산업에서 한식당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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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은 위험과 재앙으로 점철된 기록자체라고 볼 수 있다.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려는 본래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늘 시달려 왔는데 그중에도 전쟁은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가장 참혹한 재난이었다. 이 시각에도 이러한 재난은 시리아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끝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외국언론에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다루는 기사나 논평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런 까닭에 평소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동료나 친지들도 한반도에 정말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묻는다. 어떻든 걱정스러운 상황이기에 나는 국내와 해외언론의 동향을 더 열심히 챙겨 보게 된다. 한반도의 전쟁위기에 대해 국내와 해외의 일반적 평가나 반응이 서로 조금 엇갈리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국내보다 위기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쟁위험과는 거리가 먼 서울시민의 일상적인 생활과 반대로 전쟁위험이 크다고 보는 서방 측 언론은 위험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호랑이가 아직 우리 안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후자는 호랑이가 이미 우리에서 빠져나와 마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아예 없다거나 아니면 작다거나 또는 상당히 크다고 여기는 판단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위험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우선 사회성원 사이에 퍼진 공포감, 불확실성과 무지에 근거한 집단적 반응으로 본다. 구성주의적 갈등이론도 권위를 행사하는 언론, 학계, 정치와 경제엘리트 등이 어떤 사태를 위험으로 규정하고 소통을 통해 이를 정치화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모두 다 위험의 주관성을 강조한다. 가령 심장병환자의 위중 정도나 기업경영에 나타나는 위험 정도를 상당히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위험(risk)은 큰 암석이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바닷가에 있는 절벽(rhiza) 밑을 항해하는 배의 위기적 상황을 묘사하는 고대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하고, 위험(危險)의 위(危)자도 원래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과 그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형상화하였다. 두 단어 모두 완결되지 못한, 극도로 불안정한 정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호랑이가 우리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나 호랑이가 이미 밖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판단도 위험이 지니고 있는 미완의 긴장성을 지나치고 있다. 위험을 단순히 안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여기고 있기에 이의 부재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우리 삶의 불가피한 요소라고 본다면 차라리 호랑이를 가두어 둔 우리가 정말 튼튼한지에 대하여 먼저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럴 때 평화학자 요한 갈퉁의 주장처럼 단순히 전쟁이 없다는 의미로서 이해되는 ‘부정적인’ 평화는 물론 온전한 평화체제를 적극적으로 확립하는 ‘긍정적인’ 평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인 난기류는 자기이해에 따라 과대평가될 수도 있고, 또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관습화된 믿음과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는 위에 지적한 긍정적인 평화는커녕, 부정적인 평화도 기대될 수 없다. “너희들이 삶을 걸지 않으면 너희들의 삶은 얻어질 수 없다”는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lt;발렌슈타인&gt;의 유명한 대사도 위험이 오히려 새로운 자유를 촉발한다는 역설을 지적하고 있다. 일상 속에 안주하려는 무기력하고 지루한 연속을 일시에 혁파하고 부정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강한 긍정이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키는 힘이다. 이런 까닭에 위험은 모험이나 결단 또는 운명적인 기회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우리는 한반도에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진 두 국가를 세운 지 70년을 맞는다. 냉전시대의 최초의 혈전이 남긴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겪은 지도 이미 65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휴전체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최면에 걸린 안전과 사이비 평화 속에서 살고 있다. 정치사회적인 위기에 직면해서는 4·19의거, 5월 광주항쟁, 6월항쟁 그리고 작년에는 ‘촛불혁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중요한 계기들이 긍적적인 평화는 물론 부정적인 평화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두 번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크고 작은 남북의 만남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창출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체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온 한반도 안팎의 세력이 아주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북핵 문제가 촉발시킨 위험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상유지에 충격을 주고 새로운 변화를 도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쇄빙선이 얼음에 갇혀 더 이상 항해를 지속할 수 없을 때는 선체 안에 적재한 많은 물을 좌우로 강하게 흔들어 생길 때 얻어진 힘으로 얼음을 깨고 전진한다.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현상유지라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충격을 주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까닭에 위험에 관해 지금까지 타성에 젖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도 당연히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 속에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죽을힘을 다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를 미지근한 물 속에 놓고 점차적으로 수온을 높이면 개구리는 그 속에서 편안하게 죽는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길목에 있는 성문의 현판에 쓰여진 단어 ‘순간’은 지루한 시간을 이어온 고리를 단번에 끊는 화두였다. 한반도의 위험이 증폭되는 요즘이 바로 그러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적 동력은 결코 소진되지 않았다. 촛불혁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나 민생과 개헌 문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옥죄어 왔던 근본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체제의 결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촛불혁명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힘있는 계기로 승화되는 소식을 그래서 더욱더 기대하게 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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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때 단체로 남한에 온 북한식당 여종업원의 송환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15일 “북측이 기존 입장을 저희에게 다시 얘기하는 정도”였다며 확인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두고 공개된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탈출’만큼 의혹투성이인 사건도 드물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 ‘류경’의 여종업원 12명과 남성 지배인 1명 등 13명은 2016년 4월5일 돌연 식당을 벗어나 상하이 푸둥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이틀 만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하루 뒤인 4월8일 통일부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여종업원들의 입국 사실을 공개했다.

 

21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채희준(오른쪽), 천낙붕 변호사(왼쪽)가 법정에 들어서기 앞서 북한 식당 종업원 12명에 대한 인신보호법상 구제 청구와 관련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입국 직후부터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우선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한 달 넘게 걸리는 점에 비춰 단 이틀 만에 입국함으로써 국가정보원의 간여를 짐작하게 했다. 정부가 사진까지 공개하며 입국 사실을 발표한 것도 고위급 인사가 아닌 한 신분과 탈북경로를 공개하지 않는 원칙에 어긋난다. 이런 의혹은 총선 승리를 위한 ‘북풍공작’이라는 의심을 키웠다. 입국 이후의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여종업원들은 정보당국의 특별관리를 받으며 사회와 격리돼 왔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해 7월 민변 변호사들과의 면담에서 “여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은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한정되는데 여종업원들이 그럴 대상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여종업원 중 일부는 강제로 입국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인권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출석해 “일부 종업원은 집단탈출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진술이 있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탈북을 함으로써 가족과 생이별한, 새로운 이산가족이 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및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물론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적 인권 규범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파장이 워낙 커 다루지 않는 듯하지만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는 없는 문제다. 여종업원들 모두 자기 뜻으로 탈북했는지, 자의에 반하는데도 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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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그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10년 가까운 단절의 시대를 끝내고 교류와 협력의 시대로 재진입했다. 이를 북핵 측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가 북핵 게임의 새로운 주도자로 등장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북핵 문제도 해결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고,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 해결을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남북 사이에 북핵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는 남측의 입장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핵보유국으로서 비핵화협상에는 응하지 않으며, 핵·미사일 문제는 북·미 간 현안으로 남한과는 논의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남북대화가 남북관계 개선을 넘어 비핵화 대화로 발전하려면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핵화 성과에 대한 조급증이 불거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북대화가 재개되자 시민 사이에서 비핵화에 대한 때 이른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냉전적 보수세력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비핵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남북대화는 소용이 없다며 대화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다. 보수세력은 나아가 남북대화 자체에 대해서도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에 말려 북핵 완성 시간을 벌어주는 정치쇼”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비핵화는 긴 여정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북한과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복잡한 사안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다. 더구나 남북대화는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이다. 남북대화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호의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미국은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남북대화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부정적인 태도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남북대화가 북·미 대화로 발전하고, 비핵화 단계로 진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핵 동결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동결이라는 목표도 결코 달성하기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당장 비핵화가 가시적이지 않다고 남북대화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남북대화와 교류를 확대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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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정가의 뜨거운 화제는 마이클 울프의 신간 <화염과 분노>다. 주변 인물들 인터뷰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후를 생생하게 담았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트럼프 캠프의 누구도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는 점이다.

 

“대선 당일 저녁 8시를 넘기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예상 밖의 전망이 확정적으로 보일 때였다. 트럼프의 아들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아버지가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라고 말했다. 멜라니아는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대선 승리 소식에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가 놀라는 대목이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트럼프는 대선 일주일 전에 친구인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사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꿈꿔왔던 것보다 더 강력하다. 져도 진 것이 아니다. 이만큼만 해도 우리가 이긴 것이다.”

 

트럼프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다. 트럼프 측은 “쓰레기 저자”의 “기괴한 소설”이라고 부정하지만 책의 내용은 신빙성이 높다. 실제 대선 당일 필자가 확인한 뉴욕 힐튼미드타운호텔에 마련된 트럼프 캠프의 분위기는 승리의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캠프가 제이콥자비츠 컨벤션센터에서 대대적 승리 이벤트를 준비한 것과 너무나 대조됐다. 트럼프의 오랜 친구 크리스 루디 뉴스맥스 사장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어쩌다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이라 불렀다. 루디는 “그 말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어쩌다가 대통령이 됐다. 우연한 상황의 연속이 그렇게 이끌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초반 1년이 왜 그렇게 혼란스러웠는지를 알 만하다. 대선에서 유명해지면 그만이었으니 집권 이후 구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길 생각이 없었으니 욕을 먹더라도 세금 내역을 공개할 이유는 없었다. 대선 승리 후 트럼프에게 기성 정치권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지, 그가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갖게 됐을지도 상상할 수 있다. 자신을 반대해온 공화당 주류가 발아래로 보이고, 포퓰리즘의 힘을 한껏 느꼈을 것이다. 줄곧 클린턴이 이긴다고 떠들던 주류 언론이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을 것이다. ‘가짜뉴스’ 공격에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유명한 ‘어쩌다 대통령’이 또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된 후 1945년 취임 4개월 만에 루스벨트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해리 S 트루먼이다. A J 베임이 지난해에 출간한 <어쩌다 대통령: 해리 S. 트루먼과 세계를 바꾼 4개월>에 따르면 당시 한 백악관 출입기자는 트루먼을 “마치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뽑힌 것처럼 백악관에 들어온 남자”라고 묘사했다. 한반도 전쟁 위협, 핵전쟁 이야기도 두 사람의 겹치는 부분이다. 일본 원자폭탄 투하, 6·25 전쟁 파병이 트루먼 재임 시 이뤄졌다.

 

운으로 시작했다고 훌륭한 대통령이 못될 이유는 없다. 트루먼은 승계한 대통령직을 마친 후 재선에도 성공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전후 세계질서의 기틀을 다졌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도 못 채우고 쫓겨났다. 다만 트럼프에게서는 성공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는 게 비극이다. 트루먼은 취임 5개월 만에 지지율 87%를 찍었지만 트럼프는 1년이 지난 현재 정신건강 의혹까지 제기되며 30%대의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과 통치는 다른 영역이고, 유명인과 훌륭한 정치인은 겹치는 게 아니며, 리얼리티쇼와 대통령직 수행은 달라야 한다는 게 증명됐다.

 

1년 만에 미국 사회에서는 반지성이 횡행하고, 가진 자들의 탐욕은 노골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위대한 미국’의 시작이 아니라 미국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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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북게임이 시작되었다. 운전석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앉았다. 운전자는 바뀌었어도 북·미대화로 가는 차로는 그대로다. 남북대화 현실화에 혼란스러워하던 트럼프도 이내 그것을 깨달았다. “두고보자”던 유보적 태도에서 이틀 뒤 “100% 지지한다”고 돌아선 것은 특유의 손익개념이 발동한 것이다. 과연 트럼프 ‘스럽다.’

 

사실 트럼프로서는 손해볼 게 없다. 어차피 북·미는 꽉 막혀 있다. 남북대화가 잘되면 북·미대화로 연결되지만 잘 안될 경우 책임은 대부분 문 대통령이 진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 성사가 트럼프의 공로라며 한껏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걸 자랑하지 않을 트럼프가 아니다. 즉각 트윗에 “내가 확고하고, 강력하고, 북한에 대해 모든 ‘힘’을 쓸 의지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지금 남북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글을 올렸다. 불과 몇 주일 전만 해도 남북대화에 냉소적이던 그 트럼프가 맞나 싶지만 이게 트럼프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남북 고위급 회담은 남북의 운명이 걸린 중대하고 소중한 기회이다. 항간에서 회자되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지만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회담인 건 맞다. 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문 대통령은 운전석에서 내려와야 한다. 남북은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잃은 채 강대국들의 손에 미래를 맡기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변덕스러운 트럼프는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힘을 실어준 유용한 존재에서 언제 다시 한반도 평화를 흔드는 위험한 인물로 표변할지 모른다.

 

한·미동맹과 남북관계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동맹은 약화되고 그 반대면 강화되는 식이다. 이것이 나쁜 이유는 정치 선동과 음모의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 시도를 동맹 이간책으로 몰아가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수용돼 여론화되는 것이다. 이번 남북대화 성사 과정에서도 이런 병폐가 나타났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회담 성사에 많은 것을 걸어야 했다. 미국의 의심을 감수하면서 ‘3불 정책’과 한반도 전쟁 반대, 한·미군사훈련 연기를 주장했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한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의 전략과는 배치되는 사안들이다. 하위 동맹인 한국으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문 대통령 개인도 대가를 치렀다. 근육 자랑을 하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인 채 미국으로부터는 추종을 강요당하고, 북한으로부터 냉대당하면서 진정성 하나로 버텨냈다. ‘항우의 가랑이 밑을 긴 한신’으로 비유되기까지 했다. 만에 하나 고위급 회담의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이 모든 것은 허사가 돼 버릴 것이다. 남북대화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 문재인 정부의 회담 환경 조성 노력이 없었다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남북 고위급 회담은 일정한 성과를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 참가를 시사하고 한반도 평화와 다방면의 남북 접촉·왕래를 장담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회담을 수락하는 전통문에서 “남북관계 개선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불안한 구석도 많다. 예컨대 김 위원장이 거론한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과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가 ‘한·미군사훈련과 미국의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영구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의구심이 존재한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지만 당장 시행할 환경은 전혀 조성돼 있지 않다. 북측이 이를 남측에 수용하라고 강하게 요구할 경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패를 쥔 것은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대화는 북한의 에어포켓이나 다름없다. 고립된 북한이 국제사회와 연결된 유일한 출입문이자 생존공간이기 때문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남측보다 북측에 훨씬 더 소중하다. 남북대화에서 패를 쥔 쪽이 유리하고 반대쪽은 불리하다고 여기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대북 게임의 운전석에 앉은 것은 문 대통령만이 아니다. 운전을 잘못하면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 만나야 한다. 더 위험하고 험난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모든 것을 걸고 핵개발을 해왔지만 이번 회담에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남북은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 남북화해·협력의 길을 함께 걸었다. 당시 김대중·노무현-김정일 그룹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로를 닦는 노력을 기울였다. 문재인-김정은 그룹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족적을 따라가면 되는 일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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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핵무기는 보유만 하면 적에 대한 억지력이 확보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선제공격을 당한 쪽이 무조건 지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개념이 깨졌다. 일단 상대의 공격을 견뎌낸 후 응징 보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등장했다. 중국의 핵전략인‘장성(長城)전략’도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핵 공격 능력은 최소화한 채 1차 핵공격을 감내하고 나서 2차 반격에 집중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휘부와 핵무기를 쏘아올릴 미사일을 1차 공격에서 온전히 보존하는 게 필수가 되었다.

 

핵 전쟁 시 미국 지휘부가 머물러 ‘지하 펜타곤’으로 불리는 미 펜실베이니아주 레이븐록 지하 벙커의 입구

 

지하 벙커가 등장한 이유다. 최근 유사시 중국의 지도부가 대피하는 지하 핵시설이 공개됐다. 지하 벙커는 지도부들이 집단 거주하는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시산(西山) 국립공원 내 지하 2㎞ 깊이에 있다. 이 벙커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화제가 됐다. 자그마치 100만명 이상에게 식수를 공급할 수 있다. 왠만한 도시 하나가 벙커로 들어가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소림사가 있는 쑹산 일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과 반격훈련 장면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중국 CCTV는 중국군이 이곳에서 한달동안 밀폐된 채 2차 반격 훈련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곳 역시 지하 1㎞ 깊이에 총 길이가 5000여㎞에 달해 ‘지하 만리장성’으로 불린다. 중국의 핵전략 중 방어와 공격을 수행하는 두 핵심시설이 공개된 셈이다.

세계 최강의 핵무기 국가인 미국도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핵전쟁에 대비해 수도인 워싱턴 DC인 펜실베이니아주 레이븐록산과 버지니아주 웨더산 지하에 지휘벙커를, 콜로라도주 샤이엔산에 미사일 시설을 두고 있다.‘지하 펜타곤’으로 불리는 레이븐록 벙커는 워싱턴 DC 북서쪽에 있는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 인접해 있다. 백악관에서 캠프 데이비드까지는 약 100㎞, 웨더 벙커까지는 70여㎞ 떨어져 있는데 유사시 대통령은 이 둘 중 한 곳으로 가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지난 2001년 9·11 공격이 벌어졌을 때 딕 체니 부통령은 백악관 벙커에서 상황을 보다 하원의장과 장관들에게 헬기 편으로 웨더 벙커로 가라고 지시했다. 웨더 벙커를 전쟁 지휘소로 선택한 것이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에 있었다.) 만약 당시 부시 대통령이나 체니 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있었다면 레이븐록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핵 벙커 설치를 주도하는 것은 기업과 민간인들이다. 핵 전쟁이 나면 정부가 주요 인사와 필수 인원만 벙커로 데려가 보호하기 때문에 돈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개인 벙커를 마련하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 저명인사들까지 저택 지하에 벙커를 설치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한 업체는 매출액이 5배까지 늘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민간 벙커 설치가 유행했다.

 

레이븐록 벙커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필수 기능만 갖춘 것에서 호화판까지 벙커도 각양각색이다. 창사 36년만에 최고 매출을 기록한 LA의‘아틀라스 서바이벌 셸터스’는 2만(약 2200만원)∼16만5천달러(1억8천만원)짜리 벙커를 제작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확보하고, 저장고에 음식과 물을 챙겨놔 6개월에서 1년간 생활이 가능하다. 캔자스주에는 미사일 격납고를 개조한 콘도형 벙커가 있는데, 지하 15층에 각 층이 50평 넓이로 침실과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헬스장은 물론 영화관과 수영장, 스파에 심지어 무기고까지 있다. 채소를 가꿀 비닐하우스도 있어 75명 전체 입주민이 5년 남짓 생활할 수 있다. 한 개 층 가격이 400만달러(44억원)다. 최근엔 5성급 호텔과 맞먹는 초호화판 벙커까지 나왔다. 한 채 분양가가 1750만달러(약 190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어떤 시설을 갖췄는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미 조지아주에서 분양되고 있는 5성 호텔급 초호화 지하벙커. 한 채 분양가가 190억원으로 제시됐다


미·소 냉전이 종식된 후 핵무기 무용론이 득세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소련 대신 중국이 부상해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북한의 핵개발이 겹치면서 다시 핵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을 향해 자기 핵 단추가 더 크다고 자랑할 즈음 중국이 대규모 벙커를 공개하자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유사시 벙커에 들어갈 중국인 100만명과 미국의 부유한 시민 수십만명은 전체 인구의 0.1%에 해당한다. 이들만 벙커에서 생존한다면 핵 전쟁에서 이겨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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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군 행보가 심상찮다. 새해 벽두부터 군복을 입었다. 지난 3일 ‘2018년 군 동원훈련 대회’가 열린 허베이성 중부전구 훈련장에 참석해 훈련 명령을 내렸다. 시 주석은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주석이 직접 훈련 동원 명령을 내린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메시지가 있는 행보란 의미다.

 

다음 일정을 보면 짐작이 간다. 시 주석은 육군부대를 시찰한 자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송골봉 전투를 언급했다. 이 전투는 1950년 11월30일 중국군 112사단 100여명이 북한 서부 송골봉에서 미군 2사단 7000여명과 사투를 벌였고, 중국군 7명만 살아남아 진지를 지켰다고 중국 전사에 기록돼 있다.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집권 2기를 출범하며 ‘강군몽’을 선언한 시 주석이 올해 ‘군사 굴기’를 본격화할 뜻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신년사를 발표할 때는 젊은 시절 군복 입은 사진을 뒤편에 놓았다. 사진 자체가 메시지다.

 

중국은 꿈을 꾸고 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이다. 청나라는 1842년 아편전쟁으로 영국 함대에 무릎을 꿇었다. 난징에 정박 중인 군함 위에서 치욕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홍콩을 넘겨줬다. 100여년이 지난 1949년 마오쩌둥은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 민족이 일어섰다”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했다. 시 주석은 그로부터 또 100년 뒤인 2050년 ‘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부적으론 거칠 게 없다. 사상도, 당·정부 체제도 그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도광양회(韜光養晦·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림)에서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할 일을 함)로, 본격적인 굴기의 시대로 나아가려고 한다. 시 주석이 얘기하는 ‘신시대’는 인류 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때로, ‘백 투 더 퓨처’ 하겠다는 것이다(<백 투 더 퓨처>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1985년 만든 영화 제목이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로 표현된다. 중국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일본을 앞서며 세계 경제 2위에 올랐다.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집계 기준으로 미국 19조3621억달러, 중국 11조9375억달러다. 군사비 지출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은 6110억달러, 중국은 2160억달러다. 1·2위 간 격차는 여전히 크다. GDP와 군사비 3위는 각각 일본(4조8844억달러)과 러시아(692억달러)인데 저만치 뒤에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한다. 하지만 G2로 같이 묶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활용해 2인자가 더 커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규모 2인자는 영국에서 독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지난 연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한 공세를 예고했다.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한 것이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상황이 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 판에 러시아도 끼어들 태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판 ‘중국몽’인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부활’을 노린다. 미국 일극 체제는 물론, 미·중 G2 시대로 고착화되도록 놔두지 않으려 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과 세계질서를 양분했던, 구소련 붕괴 이전인 그때로, ‘백 투 더 퓨처’ 하려고 한다. 강대국들의 민족주의 주창은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국이 초강대국의 DNA를 펼쳐보겠다는데 지금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남이야 뭐라든 뒤집거나 버렸다. 새해맞이 첫 일성도 “2018년 미국을 더욱 위대하게”였다. 올해도 그런 기조는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의 고립 자처는 국제사회의 리더십 포기로 연결됐다. 중국이 움직일 공간을 넓혔다. 중국은 그런 미국을 향해 ‘인류 공동 운명체’를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구조가 서구와 딴판인 중국이지만 미국의 위상이 예전 같지 못하니 세계가 중국의 언행을 주시한다.

 

미·중의 작용과 반작용, 도전과 응전은 2018년을 달굴 것이다. 그 사이에 놓인 한국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부르짖었지만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는 지켜져야 할 가치라는 점도 확인됐다. 어느 일방의 뜻대로 국제질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도 ‘회복력(resilience)’을 발휘할까. 국립외교원이 2017년을 평가하고, 2018년을 전망하면서 선택한 단어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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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이고 명확한 목소리로 남북대화를 지지했다. 트럼프는 남북 고위급 회담을 “큰 시작”이라고 평가한 뒤 “남북이 올림픽을 넘어서 협력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적절한 시점에 우리도 (대화에) 관여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직접 통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남북대화에 이보다 더 큰 힘을 실은 수사가 또 있을까 싶다.

 

트럼프의 지지 표명은 실로 의미가 크다. 트럼프는 과거 몇차례 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번처럼 확실하게 북한과의 대화를 지원한 적이 없다. 이번 언급으로 남북대화에 대해 한·미 간 ‘이견 돌출’이나 ‘대북 엇박자’ 주장이 무색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국이 적절한 시점에 북한과 대화에 참여하고, 자신이 직접 김정은과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밝힌 것은 남북대화가 북핵 대화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의 발로이자 메시지다.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공개적으로 남북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모처럼 조성된 것이다.

 

남북은 주말 이틀 동안 회담 대표단 구성을 마무리하는 등 회담 준비를 마쳤다.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최고의 남북대화 전문가이며, 북측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역시 남북 군사실무회담 등을 이끈 대표적인 대남통이다. 회담을 실무적으로 진행할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 또한 남북대화에 정통하다. 회담의 최우선 의제인 평창 올림픽 참가 문제를 다룰 인사들은 해당 분야 실무에 밝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원길우 체육성 부상 등 차관급으로 채워졌다. 북측은 남측이 제시한 명단에 대표단의 급을 맞춰 ‘격 논란’을 불식시켰다. 과거 어느 때보다 중량감 있는 대표단이 꾸려짐으로써 구체적 성과를 기대하게 한다.

 

그만큼 남북대화의 책임성은 더 커졌다. 남북회담이 궁극적으로 북·미 및 북핵 대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트럼프는 북한과 무조건 대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 “결과가 어떨지 좀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 모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합의가 가능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대화 모멘텀을 저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도 모처럼의 회담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초당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9일 회담에서 북측이 내놓을 메시지에 주목한다. 핵·미사일 도발 중단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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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전쟁을 조작하라고?” “아니, 실제 전쟁이 아니라 ‘전쟁 쇼’ 말이야.”

 

재선을 위한 대선을 10여일 앞둔 미국 백악관에 비상이 걸린다. 대통령의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다. 언론은 이미 냄새를 맡은 상태다. 상대 후보에 앞서고 있지만 곧 역전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이다. 백악관은 그 방면의 최고인 스핀닥터를 고용한다. 스핀닥터는 정치홍보전문가를 말한다. 그는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와 손잡고 가짜 전쟁을 만들어낸다. ‘전쟁 쇼’는 위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의 성추문 뉴스는 뒷전이고, 대통령은 재선된다.

 

1997년에 제작된 미국 블랙코미디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 줄거리다. 영화 제목 ‘왝 더 독’은 개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주객전도를 의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위기에 놓인 권력자가 국민의 관심과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일컫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당시 이 영화가 주목을 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성추문은 1998년 1월17일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영화가 상영된 지 한 달이 채 안된 때다. 클린턴 성추문은 그해 8월 의회 청문회로 이어진다. 바로 그때 영화 <왝 더 독> 같은 일이 벌어졌다. 르윈스키가 청문회에 출석한 이튿날,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카에다 훈련캠프와 수단의 화학무기 공장에 미사일을 쐈다. 그러나 수단 공장은 화학무기 공장이 아니라 제약 공장이었다. 클린턴도 미리 이 사실을 알았다. 전형적인 ‘왝 더 독’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결과는 끔찍했다. 정치적 위기 돌파를 위해 쏜 미사일 한 방에 수단이 생산하는 의약품 절반이 사라졌다. 클린턴 성추문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미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탈출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사례는 흔하다. 1983년 10월23일 레바논 베이루트 주둔 미 평화유지군 주둔지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사망자만 241명.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미군이 희생됐다. 이틀 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명분은 옛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에 따른 내전 우려였지만 베이루트 참사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명분 삼은 조지 W 부시의 2003년 이라크 침공도 마찬가지다. 눈엣가시 사담 후세인 제거가 목적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는 어떤가. 이라크 철군을 했다가 이슬람국가(IS)가 준동하자 오히려 미군을 증강시켰고, 시리아 공습도 시작했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한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실행자였다.

 

도널드 트럼프도 ‘왝 더 독’ 전략을 선택할까. 취임 1년이 채 안된 트럼프는 ‘러시아게이트’로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칼날은 그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 자신은 물론 공화당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 돌파를 위해 그가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른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대표는 최근 “트럼프가 뮬러 특검의 수사에서 궁지에 몰리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한반도에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진보 지식인 후안 콜 교수(미시간대)는 “트럼프의 지지율 추락과 북한과 이란에 대한 애매하고도 끔찍한 위협이 결합한다면 ‘왝 더 독’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미 트럼프는 낮은 단계의 ‘왝 더 독’ 전략을 구사해왔다. 아랍권을 비롯한 전 세계를 뒤집어놓은 예루살렘 수도 이전 선언,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형성에 활용한 트위터 정치가 그것이다. 관심은 트럼프의 마지막 카드다. 전쟁일까. 대상은 북한일 수도, 이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제3국일 수도 있다. “화염과 분노”나 “폭풍 전의 고요”처럼 그가 북한을 향해 쏟아부은 말폭탄은 불길한 전조일지 모른다. 트럼프의 북한 공격은 상상조차 싫다. 현실을 감안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할 수 있고,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트럼프는 불가능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인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트럼프에게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라도 해야 하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바람이 빗나가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두 눈 부릅뜨고 트럼프를 지켜볼 수밖에.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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