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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늘 추수감사절 요리에 쓸 야채를 씻는데 한 번 씻을 때마다 생수 4병을 썼다. 그렇게 3번을 씻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앞둔 지난 21일,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탈리아 부퍼드 기자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부퍼드의 고향은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플린트다. 지난해 이맘때 플린트 주민 멜리사 메이스도 트위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식구들이 모여 앉은 식탁을 배경으로 작은 화이트보드에 추수감사절 요리를 하면서 쓴 생수 58병의 내역이 적혀 있다. 칠면조 해동하고 소금물에 담그기: 생수 33병, 칠면조 헹구기: 3병, 야채 씻기: 6병, 으깬 감자 요리: 6병…. 메이스는 지난 22일 온라인 매체 쿼츠에 “올해도 생수병을 따다 손에 물집이 잡혔다”고 말했다.

 

플린트에서는 수돗물이 납에 오염돼 먹지 못한 지 30일로 790일이 된다. 병에 든 생수로 살아온 지 3년째지만 추수감사절 요리는 플린트의 불합리를 더욱 아프게 드러낸다. 지나 러스터는 7살 딸을 목욕시킬 때 딸아이와 ‘생수로 욕조 채우기’ 게임을 한다. 30분이 걸린다. 러스터네 네 식구의 하루에는 생수 150병이 든다. 그가 수돗물을 쓰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변기 물을 내릴 때.

 

그런데도 주민들에게는 매달 먹지도 못하는 물에 200달러가 넘는 돈을 내라고 청구서가 날아온다. 2010년대 들어 시 재정이 악화되면서 플린트의 수도요금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환경보건 단체 푸드앤드워터워치가 지난해 2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전해 1월 기준 플린트의 가구당 연간 수도요금은 864.32달러로 전국 500개 도시 중 가장 비쌌고 전국 평균 요금의 거의 3배였다.

 

플린트는 전체 인구 9만7000여명 중 흑인이 57%이며 전체 인구의 42%가 빈곤층이다. 플린트가 고향인 마이클 무어 감독은 “공화당 소속 릭 스나이더 주지사가 2011년 취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기업과 고소득자에게 주로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였다. 세수가 줄자 학교, 연금, 식수 안전 등 공공 예산을 깎았다”고 비판했다.

 

플린트시는 디트로이트의 상수관을 이용해 깨끗한 휴론 호수의 물을 사서 쓰다가 재정난이 심해지자 2014년 4월25일 가까운 플린트강으로 상수원을 바꿨다. 이때부터 수돗물이 누렇게 변하고 악취가 났다. 플린트는 1908년 제너럴모터스(GM)가 설립된 곳이다. GM 공장은 번영을 가져다줬지만 플린트강은 ‘GM의 하수구’로 불렸다. 강물은 깨끗하지 않았고 낡은 상수도관은 부식돼 있었다. 주정부는 돈이 없다고 약품 처리도 하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납에 오염된 수돗물이 나왔지만 주정부는 “안전하다”고 무시하다가 이듬해 10월에야 수돗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그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납에 중독되고 레지오넬라병으로 주민 12명이 숨졌다.

 

플린트 사태로 전국이 들끓었다. 정부가 움직이고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해결은 더뎠다. “제때 보고를 안 했다” “몰랐다”는 공무원들의 변명이 반복되고 성난 주민들은 시·주·연방정부를 상대로 10여건의 집단 소송을 걸었다. 지난 3월에야 환경보호국(EPA)은 플린트 상수도 시설 개선에 1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정부는 플린트의 오염된 상수도관 1만8000개를 교체하는 데 동의했다. 지난 6월까지 시 공무원 15명이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지난 21일 플린트 시의회는 주정부 산하 수도청에서 30년 동안 상수원을 공급받는 합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지금 당국이 물을 여과해 납 성분은 안전한 수준까지 낮췄다고 하지만 누구도 수돗물에 손대지 않는다. 시 재정과 주민의 건강을 바꾼 결정은 다시 심각한 불신과 절망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상수도관이 모두 바뀌는 2020년이면 마음이 좀 놓이고 생수병을 따는 수고로움이 덜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플린트에 사는 한 우리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는 마음의 상처는 치료될 것 같지 않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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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미국인이 5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이동의 연휴였다. 대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는 자동차로 넘쳐났고, 주요 공항에서는 비행기 연착이 잇따랐다.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조카도,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삼촌도 고향 집에 모였다. 연휴를 이용해 따뜻한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았다.

 

명절 연휴에 모인 가족이 즐겁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대화가 있다. 노총각·노처녀 결혼 이야기, 중·고등학생 성적 비교만큼이나 짜증을 유발해 화기애애한 가족 만찬을 망칠 수 있는 화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8~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화로 정치가 일등으로 꼽혔다. 종교나 돈 문제보다 정치를 더 입에 올리기 싫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61%가 정치 대화는 가장 하고 싶지 않다고 답해 여야 구분이 없었다. 인종적으로는 66%가 정치 대화가 걱정이라고 답한 백인들이 가장 조심스러웠다. 백인 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가장 심각하다는 의미다. 최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조사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백인들의 여론은 지지 47% 대 반대 49%로 극명하게 갈렸다. 트럼프만 생각하면 짜증부터 나는 민주당 지지자 조카와 미국 노동자들이 못살게 된 것은 이민자들 때문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트럼프 열성팬 삼촌이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정치를 논해봤자 싸움밖에 날 게 없다.

 

대선 직전이었던 지난해 추수감사절 가족모임 때는 “선거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한마디면 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인 올해는 다르다. 세제 개편, 오바마케어 폐지, 이민 문제 등 논쟁적인 이슈들이 널려 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해도, 성추행 문제를 개탄해도 모든 게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로 귀결된다. 언론들은 추수감사절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충고를 내놨다. NBC는 “올해 추수감사절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며 ‘추수감사절 정치 이야기에서 살아남는 법’ 7가지를 충고했다. 정치 대화를 가능하면 피하고, 불가피하다면 상대방의 자극적 언사에 반응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다. CNN도 에티켓 전문가를 동원해 ‘가족 연휴 식사 자리에서 정치 대화 방법’ 5가지를 소개했다.

 

명절 모임에서 정치 대화를 피해야 한다는 충고는 일반론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짜증 유발자로 전락한 현실이 갈수록 악화된다면 문제가 된다. CNN의 지난해 조사에서 추수감사절 저녁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렵다는 응답은 53%, 정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응답은 43%였다. 하지만 올해 NPR·PBS 조사에서는 정치 대화가 두렵다는 답변이 58%로 늘었고, 기대한다는 답변은 31%로 크게 줄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민주당 지지자들의 절망감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민주당 지지자 중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다른 생각을 듣는 게 흥미롭고 정보가 된다는 답변은 28%에 불과했고, 짜증나고 절망적이란 답변은 63%나 됐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현안에 대한 생각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조사에서 현재 미국 정치권의 담론이 긍정적이란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부정적이란 평가가 50%, 분노가 느껴진다는 답변은 36%였다.

 

트럼프 정부 첫해가 한 달 남았다. 화합보다는 편가르기에 집중하고, 지지층 확장은 포기한 채 ‘개탄스러운 사람들(deplorables)’의 이탈을 막는 데만 주력하는 대통령이 있는 한 정치는 계속 갈등의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고, 서민들 건강보험 혜택 축소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공화당도, 그런 공화당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도 갈등 유발자다. 미국에서 정치가 미래를 선도하기보다는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 볼수록 강해진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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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지난 11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더니 사흘 뒤에는 리커창 총리가 사드의 ‘단계적 처리’를 거론했다. 지난 22일에는 왕이 외교부장까지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사드를 언급했다. 지난달 31일 한·중 양국이 ‘관계개선을 위한 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드 갈등이 봉합됐다’고 한 것과 다른 행동이다. 다음달 한·중 정상회담에서까지 이 문제가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임 후 첫 방중한 강 장관은 22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과 회동하며 문재인 대통령 방중 일정과 양국관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중 양국이 사드 갈등을 봉합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한 결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밝혔다. 시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사드 배치가 임시 조치라는 점까지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불(사드 추가배치,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을 하지 않는다)’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외교부 장관이 공언하고,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중국의 우려 사항을 이해한다고 밝혔으면 중국은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한국 당국자들을 만날 때마다 사드를 거론하고 압박하는 것은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 중국은 ‘3불’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넘어 사드 운용에 제한을 가하는 ‘1한(限)’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사드에 대한 기술적 설명과 성주 기지에 대한 현지조사, 사드 레이더 중국 방향 차단벽 설치 등 세 가지 조치 이행을 요구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사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망발이다. 한국의 보수층은 정부가 3불 이외에 추가로 양보한 것이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 합의 후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작 한국인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을 압박한다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중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주의해야 한다. 각자 입장이 다르더라도 구동존이의 자세로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미래로 가자면서 자꾸 사드를 건드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중국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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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했던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북핵 문제에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두 달여에 걸친 북한의 도발 중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으로 형성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졌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암살하고, 억류하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사망한 사건이 직접적 요인이다. 미국의 잇단 대화 요구에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은 냉랭한 태도도 재지정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중단했지만 이것이 비핵화로 가기 위한 행동이라는 어떠한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비핵화 협상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하면서 “살인정권을 고립화하려는 우리의 최대의 압박 작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불량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다시 얻게 됐다. 하지만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북핵 문제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고강도 유엔 제재를 받아온 북한으로선 이번에 제재가 추가된다 해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 등 무력시위를 재개하고 이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위기상황이 다시 펼쳐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시 주석의 특사를 만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미국에 이어 중국과도 대화를 거부한 것은 북한을 위해서도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다. 성과 없는 중국 특사 파견은 미국이 집착하는 ‘중국역할론’의 한계도 잘 보여준다. 이제 미국은 북한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핵개발을 고집하는 한 북한은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핵보유국은커녕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불량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이 하루빨리 망상을 떨쳐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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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시의 한 아파트에서 9구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그 사이 피해자 9명의 신원이 확인되는 등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15세 여고생으로, 17세 여고생 2명까지 여고생만 3명이다. 19세 대학생과 20대 초·중반 4명 등 5명도 모두 여성이다. 이 밖에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으러 나섰던 20대 남성 1명이 살해됐다.

 

용의자 시라이시 다카히로(白石隆浩·27)는 사건 현장인 아파트에 입주한 지난 8월 말부터 약 두 달 동안 이들 9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그는 사체를 절단해 아이스박스에 나눠 담은 뒤 일부는 밤에 쓰레기로 버렸다. 그는 피해자들에 대해 “트위터에서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관적인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린 여성들에게 “함께 죽자”는 메시지를 보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시라이시는 경찰 조사에서 “정말 죽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피해자들은 “죽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자살을 바라다가 화를 자초했다고 간단히 결론지어도 될까.

 

마지막으로 희생된 20대 중반 여성은 한부모가정 자녀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나온 뒤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이 여성을 길렀다. 그 어머니마저 지난 6월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피해 여성은 지난여름 이혼한 뒤 아이를 혼자 길렀다.

 

이 여성은 마음의 병을 안고서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이번 사건의 배경에 있는 게 아닐까. 피해 여성들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여대생이거나 만화가를 꿈꾼 여고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실종되기 직전까지 학교에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가족과도 접촉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에게는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상대나 장소가 없었다. 주변에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인터넷상에서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죽고 싶다’고 했지만 실은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길 바랐을지 모른다. 시라이시는 이런 여성들의 ‘틈’을 파고들어갔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듯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실태를 알아야 한다. 구루메(久留米)대학이 지난해 일본 중·고생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죽고 싶다고 때때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3.7%였다. 이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로 가족에 이어 인터넷이 뒤를 이었다. 친구나 학교보다 인터넷에 의지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것이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더 나은 삶의 지수 2017’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통계가 집계된 31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특히 어려울 때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 ‘사회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75.9%만 ‘그렇다’고 답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대 사회에선 개인을 지지해주던 가족이나 친구, 연고 집단이 해체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사회관계는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도와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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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8일 한국을 국빈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국회연설도 했다. 트럼프가 방한 기간 동안 대북발언 수위를 방한 전보다 더 높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트럼프는 비교적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사업가 출신 대통령답게 비싼 무기도 팔고 대미투자도 유치해 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지난 6월 회담과는 달리 문 대통령에게 선물도 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14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아시아 순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서성일 기자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두 가지 중요한 말을 했다. “한국이 수십억달러의 미국 무기를 사기로 했다”는 것과 “미·북 간에 물밑대화를 해왔다. 지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국의 금년 국방예산이 400억달러 수준이고 그중 10% 정도를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용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항간에 나도는 70억달러설은 사실일 수 있다. 무기 구매로 엄청난 비용을 쓰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미국 무기는 어차피 사야 하는 것이고,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오려면 첨단 정찰자산도 구매해 둬야 한다. 일방적 손해는 아니고 사전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대북 압박·제재를 주장해 오던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 미·북 물밑대화를 시인했다. 어떤 맥락일까? 아마도 “압박·제재를 계속하더라도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 있는 퇴로는 열어둬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권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북핵정책이 압박·제재에서 대화·협상 쪽으로도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 8일 국회연설에서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북한도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두 번 반발하는 것에 그쳤다. 트럼프가 언급한 미·북 물밑접촉이 공식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을 북한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9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책임론’ 대신 미·중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의’가 강조되었다. 이는 미·중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2535억달러라는 거액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 주효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11일 베트남에서 “김정은과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며 미·북 대화 가능성을 더 열어놨다. 사실 미·북 물밑대화의 징후는 지난달 하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10월23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강연에서 북 외무성 미국국장 최선희는 “북·미 간 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다”고 했고, 30일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조지프 윤은 미 외교협회(CFR) 행사에서 “북한이 약 60일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미국이 북한과 직접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방한 기간 중의 트럼프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9월15일 이후 지금까지 60일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조용하다. 트럼프도 15일 ‘중대발표’에서 예상을 깨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이런 움직임이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방한 이후 전개되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대화 쪽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7일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시점에 맞춰 북한 제네바 대사가 중국의 제안인 ‘쌍중단’마저 거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건 중국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시켜 주면 ‘쌍중단’으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위기설’이 가라앉고 대화로 나갈 수 있는 국면이 전개되려 하는 건 다행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남북대화를 준비해야 하는데,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화 재개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애착을 보이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스키경기 일부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북한 참가와 남북공동개최를 유도할 수 있다. 체육회담과 함께 내년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한반도평화포럼 여성·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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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겸 외교위원회 위원장과 잇따라 만났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접견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시 주석의 특사 방문이 북·중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진전에 기여할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마침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가 지난 17일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쌍중단(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시 주석의 구상)’을 전제로 대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한·미 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미국과의 협상은 없다”면서도 “미국이 먼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그다음에 우리가 뭘 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9월 미사일 발사 이후 두 달 동안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오른쪽)이 18일 평양에서 북한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평양 _ AP연합뉴스

 

쑹 특사 파견을 중국보다 먼저 발표한 바 있는 북한은 특사 파견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중국은 당초 쑹 특사의 평양행을 시진핑 2기 출범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은 쑹 특사와 리수용의 회담을 전하면서 “조선반도와 지역 정세, 쌍무관계를 비롯한 공동의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논의됐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특사 파견은) 큰 움직임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려보자”며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런 움직임들이 대화를 위한 긍정적 신호이기를 바란다.

 

한·미 양국이 북핵 위기 국면의 전환을 원한다면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 불러온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엊그제 미·중 양국 정상 간 쌍중단에 관한 입장이 엇갈렸다는 소식은 매우 유감스럽다. 최근 미 항공모함 3척이 한반도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북한은 매해 12월부터 대규모 동계 군사훈련에 들어간다. 지금이야말로 북·미 양측이 쌍중단을 진지하게 검토할 적기다. 트럼프는 압박 강화만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핵 문제를 중국에 맡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한·미 간, 미·중 간 활발한 의견 교환은 물론 북·미 간 직접 협상을 통해 북한의 도발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으로 의견을 모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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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한·미, 미·중을 비롯한 북핵 관련국들의 연쇄 정상회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중국의 제19차 당대회 이후 북핵 당사국들의 행보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로 17일 북한에 파견할 방침이고, ‘북한 관련 중대 발표’를 예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아시아 순방 결과를 설명하면서 기존 대북 접근방식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고 말했지만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이나 군사옵션은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이 두 달 넘게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쑹 부장의 방북이 제19차 당대회 결과와 시진핑 2기 체제 출범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당 대 당’ 외교를 총괄하는 대외연락부장이 특사로 나선 것이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쑹 부장이 방북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북핵 논의 결과를 전달하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촉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중국의 특사 파견은 중국이 북핵 문제 중재 역할을 재가동하는 의미가 있다. 북한은 쑹 부장의 방북을 반기는 모습이다. 그의 방북 사실을 중국 정부나 언론이 발표하기도 전에 조선중앙통신이 먼저 보도했다. 시 주석의 대북 특사 파견 자체가 지난해 2월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특별대표 이후 1년9개월 만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장기간 이어지고 중국마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면서 고립무원이던 북한 입장에서 중국과의 고위급 인사 교류 재개는 청신호일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서는 북·중관계 개선을 환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트럼프와 달리 일관되게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강조해왔다. 북·중관계 개선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전망을 밝게 해 줄 것이다. 아시아 순방기간 동안 강온양면의 복잡한 북핵 메시지를 쏟아냈던 트럼프가 순방 결과 발표에서 대북 강경 자세를 보이지 않은 것도 나쁘지 않은 신호다. 이 같은 북핵 관련국들의 움직임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환경 조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 정부가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고 당사자로서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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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河北)성 이(易)현 시골 마을에 있는 한 사당은 1년 수입이 17억원에 달한다. 특별히 큰 운영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들어오는 돈이 그대로 수입이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사당이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 사당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유독 이곳에 사람과 돈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바로 차신(車神)이라는 21세기 신 덕분이다.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도포를 입은 차신은 두 손으로 자동차 핸들을 꼭 붙잡고 있다. 사당 한쪽 벽에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그려져 있다. 운전면허시험을 보기 전에 여기 와서 절하면 찰떡같이 붙고, 교통사고도 나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자동차 핸들과 신이라는 어색한 조합은 소셜미디어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관리인은 하루에 한 번 ‘공덕함’에 모인 돈을 수거해 간다. 많게는 몇 백만원씩 쌓인다고 한다. 변변한 관광지가 없는 이 시골 마을은 대부분의 수입을 차신으로부터 얻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신이 정말 ‘무사고 안전운전’을 책임질 거라고 믿는 걸까. 그보다는 신이 핸들을 들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찾고, 찾은 김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절도 하고,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재미를 찾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일종의 ‘놀이’인 셈이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행사인 광군제(光棍節·11일)가 지나갔다. 모두가 알리바바가 광군제 행사가 진행된 11일 하루 동안 1682억위안(약 28조3078억원)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싱글들이 쇼핑하거나 선물 주는 날이었던 광군제가 쇼핑 축제가 되고 8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이면에는 바로 ‘재미’가 있다.

 

알리바바는 니콜 키드먼, 판빙빙 같은 국내외 유명 배우 등을 모아 전날 밤 갈라쇼를 연다. 마윈 회장은 올해 갈라쇼에서 직접 출연한 무술 영화 <공수도>를 공개했다. 기업 회장이 뒤에 엄숙하게 앉아 있지 않고 무대의 주인공으로 직접 나섰다. 전 세계 스타와 기업의 회장과 임직원이 다 함께 광군제를 축제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사야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소외된다. 이 거대한 파티에 참여하고 싶게 만드니 매출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올해 광군제의 의미는 천문학적 매출액 자체보다는 쇼핑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만드느냐에 있었다. 온라인 매체인 ‘텅쉰오락’은 “화려한 갈라쇼를 보면 명절 전 설렘과 비슷한 기분이 들고, 그 기분에 홀려 다이어트, 피부 관리, 건강을 비는 마음으로 관련 상품을 사게 된다”고 설명했다. 시골 마을의 사당도, 할인행사도, 즐거움이 있어야 지갑이 열린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주목받았던 ‘코리아세일페스타’도 올해로 3년째를 맞지만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 힘들다. 할인품목과 할인율의 한계, 연휴 및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행사 효과 반감, 낮은 행사 인지도가 장애물로 꼽힌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행사에는 판매자도, 소비자도 즐겁게 참여하는 이를 찾기 힘들다. 페스타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축제로 승화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마윈 회장은 13일 CCTV와의 인터뷰에서 “광군제는 알리바바에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자와 판매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알리바바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광군제를 통해 소비자와 판매자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 싶고 그래서 택배뿐 아니라 전자페이, 판매 플랫폼 기술을 계속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알리바바가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소비자와 판매자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광군제의 기본 신념만큼은 새겨볼 만하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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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우선 순방 목표 중 달성한 게 없다.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순방이 끝나가는 지금 북핵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겠다던 다짐도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14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아시아 순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마닐라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리더십에서 비롯된 위상 약화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인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공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상대로 경제 실리를 챙기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안의 경중을 못 가리는 행동이다. 경제적 이익은 얻었을지 몰라도 지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서 모순적 발언과 위협을 일삼는 트럼프의 변덕에는 북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가 믿을 만한 협상가인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치광이인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트럼프를 견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의 아시아 정치 전문가가 엊그제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눈에 띄게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꼽았다. 사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관계를 무시하면서 국제회의에서 공간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과 상대국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미국의 영향력은 트럼프에 의해 쇠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위대한 나라에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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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위기, 무역 불균형, 미·중관계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트럼프는 양국의 무역 불균형에 대해 “미·중 무역이 일방적이지만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 자국민들을 위해 이익을 취한다고 다른 나라를 어떻게 비난하냐”고 말했다. 그는 “시 주석과 과거 미·중 무역 상황을 토론한 적이 있으며, 절실한 행동을 취해 중국 시장 진입 문제 등 무역 왜곡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 지적재산권 보호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상부상조 관계를 부각하며 무역 갈등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날 2535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제품을 구매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두 정상은 또 향후 외교·안보 대화와 전면적인 경제 대화, 법 집행 및 사이버보안 대화, 사회·인문 대화 등 4대 고위급 대화 체계를 지속하기로 하는 등 상호 협력적인 미·중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방문 환영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국 정상은 환영식 후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무역 불균형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날까지 한·중·일 3개국 순방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 다낭으로 향한다. 베이징 _ AFP연합뉴스

 

발표한 회담 내용만 보면 두 정상의 만남은 갈등보다 소통·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에서의 첫 만남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북핵 해법과 관련해 트럼프는 시 주석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시 주석을 추어올리며 은근히 중국 역할을 강조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트럼프는 “중국은 이 문제를 쉽고도 신속하게 풀 수 있다”면서 “시 주석이 그 일을 열심히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또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대북 결의를 전면적으로 실천하는 데 동의했고, (북한이) 경솔하고 위험한 행동을 포기하도록 대북 견제와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안보리 결의를 엄격하고도 전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설명했다.

 

트럼프가 매우 부드러운 태도를 드러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중국이 2535억달러어치를 미국에서 구매하기로 계약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미국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당초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대가치고는 괜찮은 거래라고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일본·한국·중국을 순방한 주요 목적의 하나는 중국에 대북 제재 강화를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만일 미국의 압력에 중국이 소극적으로 반응할 경우 미국 독자적인 북핵 해결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을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중국의 미국 제품 대량 구매라는 실리를 얻는 데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대북 제재 강화 원칙에 합의하고도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 앞에서 멈춰 선 형세가 됐다.

 

트럼프는 동북아 3국 순방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에 의탁하거나, 한·미·일 대북 제재 공조만으로는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3국 순방을 정리하면서 북핵·미사일 문제의 접근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에도 중국의 대북 접근법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대화와 제재의 병행으로 북한의 위험한 도박을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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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마다 점보제트기가 한 대씩 추락하고 있는데 정부는 애도만 하면서 대책 마련에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총기사고를 방치하는 미국 사회의 현실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인근의 한 교회에 20대 남성이 난입해 신자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26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사망자 중 절반은 어린이였다. 문제는 이런 끔찍한 총기사고가 미국 사회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1일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58명이 목숨을 잃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보도되지 않은 참사는 더 많다.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샌안토니오 사건이 발생한 당일 미국 전역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총기사건만 38건이다. 이날 하루 64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올해 들어 지난 5일까지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307건 발생했다. 매일 한 건씩 총기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10개월간 총기사고로 총 1만3136명이 죽고, 2만7000여명이 다쳤다. 열흘마다 미국인 400명을 태운 점보제트기가 한 대씩 추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총기가 문제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미국 인구는 세계의 4.4%이지만, 이들은 민간인이 가진 전 세계 총기의 42%를 소유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총격범이 묵었던 호텔 방에서 AK-47 등 20여정의 총기가 발견됐다. 인터넷매체 복스에 따르면 총기 소지율 60%를 넘는 와이오밍주와 몬태나주는 10만명당 16명 이상이 총기에 사망했고, 소지율 10% 수준인 하와이주의 10만명당 총기 사망자는 4명이었다. 총기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텍사스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총기규제 제도화 주장이 다시 들린다.

 

놀라운 점은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총기규제에 반대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제도를 보완할 의지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켄 펙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폭스뉴스에서 이번 사건을 설명하면서 “다행히 텍사스에서는 총기를 보이지 않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권한(concealed carry)이 있어서 누군가가 여러 사람을 죽이기 전에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총기를 들고 다니며 난사범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9월 워싱턴포스트는 조지아주 윈더에 사는 51세 백인 남성 짐 쿨리를 소개했다. 쿨리는 월마트를 갈 때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위험하다며 AR-15 반자동소총을 들고 다닌다. 트럼프 셔츠를 입고 한 손에 소총을 들고 한 손에는 코카콜라를 든 쿨리는 총기소지 자유를 주장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이었다. 쿨리는 이제 휴일 교회를 갈 때도 소총을 들고 갈지 모르겠다.

 

트럼프 정부의 총기참사 대응에는 패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총기 사건 직후 “가슴이 찢어진다”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함께 뭉쳐 슬픔에 맞서야 한다”며 단합도 호소했다. 하지만 “총기 문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라며 총기규제는 반대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사건 때도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조기 게양을 주문하며 애도했지만 제도 보완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은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단합할 시간”이라며 피해갔다. 슬퍼하고 침묵하면서 총기 문제가 잊혀지기를 기다리는 전략이다.

 

아마도 미국 정치인들의 주요 자금줄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력이 유지되고, 쿨리 같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 의원들이 상하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수정헌법 2조를 들어 각종 총기규제 입법을 무력화시키는 보수 우위 대법원이 존재하고, 트럼프 정부의 뭉개기 전략이 계속되는 한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총기 문화에 이질적인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적인 모습이다. 미국인으로선 부끄러워해야 할 현실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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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양국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문명 세계와 국제 평화 및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략적 인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외교전략으로, 트럼프는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추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아베는 “북한이 정책을 바꿀 테니 대화하자고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도쿄 _ EPA연합뉴스

 

두 나라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한 군비증강도 논의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량 구매하길 바란다”면서 “이 장비로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안보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나아가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간접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는 이에 대해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다”고 호응했다. 일본 방문 직전 트럼프가 지난 8~9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은 요격했어야 했다”면서 “무사의 나라인데 이해가 안된다”고 불만을 드러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미·일 기업경영자 간담회에서 “미국과 인도·태평양의 주권국가들은 안보, 번영, 평화의 미래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은 백악관이 밝힌 트럼프 순방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와 연대해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대중국 포위전략’이다. 이 구상은 중국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허용해 자칫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북 공조를 빌미로 한 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미·일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다. 이를 재확인한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7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 기조에 기초해 문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뒤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의 전략에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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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일주일이 시작됐다. 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10일엔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사이 9일에는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결과에 따라 북핵 위기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역량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국내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싱가포르 CNA방송과 한 인터뷰 내용을 야권이 문제 삼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공조가 군사동맹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미·일 공조가 일본의 군사 대국화 빌미가 되어선 안된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도 더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균형외교를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출처:경향신문DB

국익을 위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도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은 문재인 정권은 물론 과거 보수정권에서도 일관되게 유지해온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당은 “광해군 코스프레”니 “삼전도 굴욕”이니 하며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중국 편향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핵 위협에 대해 한국의 생존만 생각한다면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과 동시에 국가 발전과 통일 기반 마련도 추구해야 하는 한국의 숙명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느 하나 경시할 수 없는 국익이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높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군사 대국화를 추진 중인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야권은 균형외교가 한·미동맹을 훼손하고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는 짧은 소견이다.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한·중 협력과 한·미동맹 유지·발전의 병행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소는 미국 풀도, 중국 풀도 뜯어먹어야 산다”고 갈파한 바 있다.       

 

균형외교의 성패는 이해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한·미 및 한·중 정상회담에서 모든 외교역량을 기울여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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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가 대승해 장기 집권과 헌법 개악, 군사 대국화의 길이 열렸다. 이번 선거로 전후 일본의 기본적 가치인 평화주의나 민주주의의 허구성이 드러났으며,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요인으로 떠올랐다.

 

자민당은 284석을 얻어 전체 465석의 과반수를 차지했고, 공동여당인 공명당의 29석을 합쳐서 개헌선인 3분의 2를 넘었으며, 헌법 9조 개헌을 주장하는 극우 야당과 일본유신회까지 합하면 4분의 3을 차지했다.

 

아베는 이번 선거를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난선거’라고 했다. 국난이란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소비세 인상분(부가세)의 용도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각처에서 아베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모리토모(森友)학원, 가케(加計)학원에 대한 특혜 스캔들을 덮기 위한 ‘은폐 해산’ ‘적전도주 해산’ ‘대의 없는 해산’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역사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지금 상황을 1937년 일본 군부가 전쟁으로 폭주한 중일전쟁 무렵의 시대상황과 비유하면서 “이번 선거는 일본의 진로가 전쟁과 평화, 어느 쪽으로 가느냐 하는 지극히 중대한 선거”라고 했다(한도 가즈토시, ‘기로에 선 평화’, 아사히신문 2017년 9월29일 13면).

 

이번 총선뿐만 아니라 아베는 일본 국민을 위협하고 선동하는 수단으로 북한을 이용해왔다. 지난 8월29일 일본에서 집을 나서려 하는데, 건드리지도 않은 TV가 갑자기 켜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다고 전국순간경보시스템(J Alert)이 작동한 것이다.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쏜 화성-12호가 홋카이도(北海島)를 가로질러 1180㎞ 동쪽 태평양에 착탄했는데, 발사 후 4분 만에 경보가 울리고 전국의 TV, 라디오, 휴대폰에 긴급경보가 자동으로 뜨고,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온 종일 TV는 발사 소식을 내보내고, 도쿄의 지하철 등 일부 전차가 멈추고 몇몇 학교가 휴교하는 등 실제 전쟁상황을 방불케 하는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화성-12호는 경보가 울리기 전 꼼짝할 사이도 없이 발사 1분 만에 홋카이도 상공을 지나가버렸다.          

 

우리나라 일부 언론은, 우리 정부는 북 핵·미사일에 대해 제대로 된 대비도 없는데 일본은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다고 침 마르게 칭찬하지만 지나친 호들갑이다. 어마어마한 비용을 써가면서 국민을 대북 증오와 호전성으로 세뇌하는 심리전 장치다. 북핵 문제의 해법에 대한 10월7일 ‘갤럽’의 14개국 국제비교조사에 따르면 러시아·독일·불가리아는 90% 이상, 미국에서도 압도적인 75%, 우리나라는 66%가 평화·외교적 해법을 지지했다. 그러나 유독 일본만 51%가 군사적 해결을 지지했다(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865).

 

한도는 “국난이라 하는데 … 북조선 문제지요. 스스로가 만든 자작자연(自作自演) 아닙니까?”라고 꼬집었다. 시민단체는 “북조선 ‘위협’에 많은 국민이 공포를 느끼는 상황을 기화로 총선에서 헌법 개정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려는 아베의 술책은 어쩌면 나치의 수법을 상기케 하며 입헌민주주의 정치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했다.

기막히다! 일본은 한반도 분단의 원인 제공자고, 냉전·분단 상황에서 박정희·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두둔해왔으며, 식민지 지배 청산도 제대로 안 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피폭국, 평화주의를 내세우는 일본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호전적이고 파멸적인 대북 무력공격을 지지하다니!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되찾는 군국 부활 프로그램은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기시의 정치 신념은 ‘(미군) 점령하의 정치’로부터 ‘독립된 일본의 정치로’인데 자주헌법, 자주국방, 자주경제를 통한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의 완성’이다. 천황숭배 군국주의자인 그는 A급 전범으로 투옥되었다가 세계 냉전의 시작으로 일본을 동아시아 반공 보루로 만들려고 하는 미국의 노선 전환에 따라 기사회생하여 일본 총리에까지 올랐다. 겉으로는 철저한 친미주의자로 행세하면서 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꾼 자였다. 그는 1946년 수가모 전범 감옥에서 일기(1946년 8월10일)에 “(일본은) 경박하고 역겨운 민주주의, 자유주의에 들뜨고… (자주적인) 기백과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原彬久, <岸信介>, 岩波新書,1995,126쪽)

 

일본에서 ‘센고(戰後)’란 제2차 세계대전 후를 가리키는 말이며, 보통 전쟁 후의 혼란기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언제까지 ‘전후’인가 하는 논쟁이 이어져 왔는데, ‘전후’라는 개념 자체가 미군 점령에 의해 비주체적으로 만들어진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말하고, 일본인의 주체적인 국가 건설이 또렷하게 없어서 ‘전후’가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다.

 

아베도 외조부 기시처럼 일본이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전후’의 종결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이번 일본 선거를 보면서 전후 일본을 구속해 온 평화주의와 평화헌법은 대폭적으로 그 위력을 잃고 군사주의의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되었으며, 일본은 이웃 나라들과의 갈등을 더욱더 격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게 됐다. 특히 가장 약한 고리인 북한 때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중국과는 앞으로 큰 마찰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미·일이 ‘동상이몽’을 하면서 평화 파괴적인 방향으로 상승작용을 하고, 동아시아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마저 있다.

 

일본의 군사화와 전쟁 선동의 구실을 없애고, 일본발 동아시아 안보위기를 봉쇄하기 위해서는 남북 화해와 평화 실현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이미 많은 논자들이 언급하고 있으나, 한국은 담대하고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주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호전적인 트럼프와 아베가 주도하는 한·미·일 동맹에 기대지 말고, 대북 강압정책을 과감하게 포기하여,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주동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향해서 이제는 전쟁 위협과 군사연습을 중지하고,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해서 6·25전쟁을 정치·군사적으로 종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 제재를 해제하라고 권유해야 한다. 그래서 그 실적을 바탕으로 남북 윈윈의 관계 속에서 공신력과 발언권을 확보하여 정상적 남북관계를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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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반역자’로 몰린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처지가 궁색하다. 지난달 27일 독립 선언 후 자치정부가 해산되고 검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는 벨기에 브뤼셀로 몸을 피했다. 그가 여기서 정치적 망명을 하려 한다는 설이 돌았다. 지난달 31일 그는 “망명을 신청하러 온 게 아니라 자유롭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이곳에 왔다”며 “스페인 정부가 (신변 등) 보장을 해준다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벨기에 정부에는 네덜란드어권 지역 플랑드르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신플랑드르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이들이 우호적으로 대해 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회 최대 정당으로 정치권의 ‘주류’가 된 신플랑드르연대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푸지데몬을 초대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벨기에 언론에 따르면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신플랑드르연대 출신 장관들이 만나 스페인과 외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푸지데몬과 접촉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지난달 29일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는 수십만 인파가 바르셀로나 거리를 메웠다. 스페인 깃발이 나부꼈다. ‘침묵하던 다수’가 나왔다고들 했다. 카탈루냐 독립을 주도했던 민중연합후보당(ERC)과 그가 속한 카탈루냐민주당(PDeCAT)은 조기총선을 받아들였다.

퇴로가 막힌 푸지데몬은 결국 12월21일 치러질 조기선거를 받아들이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고 했지만 이미 힘은 빠졌다. 스페인 고등법원은 푸지데몬과 해산된 자치정부 각료 13명에게 2일 반역죄를 심판할 마드리드의 법정에 서라며 소환장을 발부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푸지데몬은 최고 3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스페인 정부는 푸지데몬을 궁지로 몰았으니 성공한 걸까. 당장 분리주의자의 목소리는 작아진 듯하지만 12월 선거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카탈루냐의 민심은 복잡하다. 지난달 1일 스페인 경찰의 봉쇄 속에 얼렁뚱땅 치러진 국민투표는 투표율이 43%에 불과해 반쪽 여론에 불과했다. 카탈루냐의 독립 찬성과 반대 여론은 늘 분분했다. 엘문도가 여론조사기관 시그마도스에 의뢰해 지난달 30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43.3%가 독립을 반대해 찬성 여론(42.5%)보다 조금 높았다. 독립 선언 전인 지난달 23~26일 실시된 조사다. 자치정부의 공공여론조사센터가 지난달 31일 내놓은 결과는 찬성이 48.7%로 반대 43.6%보다 높다.

 

그러나 또 다른 조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9일 시그마도스 조사에서 카탈루냐인들은 중앙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려 헌법 155조를 적용하는 것에 55.5%가 반대하고 32.5%만 찬성했다. ‘침묵하는 다수’들이 독립에 부정적이어도 중앙정부의 강경대응과 억압적 직접 통치 역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풀뿌리 시민활동가 출신 아다 콜라우 바르셀로나 시장의 말은 카탈루냐 사태의 본질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다. “분리주의 정당들이 다수의 지지를 결여한 채 카탈루냐 독립 공화국을 향해 ‘가미카제식 질주’를 한 것에 대응해 마드리드는 ‘민주주의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둘 사이에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정치’는 실종되고 유권자도 소외됐다.

스페인 정부와 카탈루냐 분리주의자들의 정치 도박은 돌아 돌아 결국 다시 카탈루냐 유권자의 손에 맡겨졌다. 위기의 근인을 짚어보고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단 스페인 정부가 폭력 없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누군가의 출마를 제한하지 않고 투명한 선거를 보장하는 것이다. 선거를 유리하게 움직이려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또 결과가 어떻든 민의를 과대포장해 또 다른 정치 도박을 벌이는 일은 카탈루냐 유권자를 배신하는 것이다.

 

<국제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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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양국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어제 이런 내용을 담은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지난해 사드 배치 이후 악화일로였던 양국 갈등이 수습되기를 기대한다.

 

양측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했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여는 데도 합의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이 풀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류 및 관광에 대한 금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내 항공사들도 한국행 노선의 운항을 재개하거나 확대할 것이 예상된다. 31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중국 여객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합의는 사드 문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사드 포대를 배치한 현 상황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드 문제를 봉합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점을 인정하되, 그 문제로 갈등하기보다 협력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전략이다.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과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려 입장을, 한국은 기존 입장을 각각 합의문에 명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핵과 미·중 대결로 동북아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최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2기 체제를 정비하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해결을 유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중 간의 사드 문제 처리 방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만큼 불씨는 남아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다시는 사드와 같은 미·중 갈등 이슈가 한·중관계 악화로 비화되는 일이 없도록 선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정감사에서 이번 합의의 전제나 다름없는 세 가지 원칙을 밝혔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MD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한·미·일 3국 간 군사동맹 반대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중국은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미동맹을 넘어 대중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왔고 실제 사드 갈등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미국만 추종할 경우 중국과 큰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일 북핵 대응 방침과도 배치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만큼 균형 외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만큼 양국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강경일변도 북핵 대응 기조를 압박과 대화의 병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한·미동맹 강화와 제로섬 게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 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에 필요하다.

 

한·중 양국의 합의가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 간의 상호 인식이 악화된 것이 큰 문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당국 못지않게 민간 사이의 다양한 교류채널 확대가 시급하다. 교류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위한 제도화·규범화도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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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엔(廣辭苑)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어·백과사전이다.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1955년 초판을 간행한 이래 누적판매 1190만부를 자랑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6판이 나왔다. 1991년 4판 이후엔 개정할 때마다 항목을 늘려왔다. “일본어로서 정착한 단어”를 엄선해왔다고 한다.

 

최근 이와나미쇼텐은 고지엔 7판을 내년 1월12일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개정판은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7판은 24만개 항목이 실린 6판보다 항목이 약 1만개 더 늘어난다.

이와나미쇼텐이 공개한 고지엔 7판에 추가되는 단어를 보자.

 

‘아프리’(앱), ‘후릭쿠’(flick·터치 패널 화면을 살짝 밀어 조작) 같은 정보기술(IT) 용어나 iPS세포(만능줄기세포) 등 과학 용어가 많이 포함됐다. 그만큼 IT·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대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노리노리’(경쾌한, 기분 좋은), ‘갓쓰리’(실컷) 같은 단어나 ‘오히메사마닷코’(공주님 안기)처럼 대중문화에서 유래한 단어도 추가됐다.

 

뜻이 새로 들어간 단어도 있다. ‘호켄’(보험)에는 “잘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별도 수단”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보험을 들어놓는다”고 말하는 우리와 비슷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사회 분야 신조어다. ‘블랙기업’은 고용 불안 상태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말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서도 쓰이는 말이다.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이 직장에서 당하는 괴롭힘과 부당한 처우를 뜻하는 ‘마타니티 하라스멘토’(maternity harassment), 결혼 활동을 뜻하는 ‘곤카쓰’(婚活),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나는 냄새인 ‘가레슈’(加齡臭) 같은 신조어에선 저출산·고령화나 여성차별 등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엿본다. 주일미군이 오키나와에 배치한 수륙이착륙기로, 종종 사고를 일으켜 일본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오스프리’도 추가됐다.

 

새로 포함되는 단어 가운데 일본 언론이 제일 먼저 드는 건 ‘안전신화’다. 1990년대 이후 크고 작은 사고가 반복되면서 ‘안전대국’ 일본에 대한 신뢰는 조금씩 깎여나갔다. 결정타를 먹인 사건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다.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본 원전의 ‘안전신화’는 붕괴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일본의 현대를 특징지은 ‘확실성’은 끝났다”는 기사를 실었다.

 

공교롭게도 최근 일본은 또 다른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메이드 인 재팬’(일본산)에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모노즈쿠리(장인정신) 신화’다. 일본 고베제강의 알루미늄·구리 품질 조작에 이어 닛산자동차와 스바루의 무자격자에 의한 출하 전 검사 등 대표적 제조기업의 부정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부정이 30~40년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고품질과 안전성을 내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제조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건의 폭발성 여부에 따라 ‘모노즈쿠리’라는 항목에 새로운 뜻이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고지엔에 새로 추가되는 단어는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함) 같은 신조어들이 사회의 일면을 날카롭게 집어냈다.

 

그러고 보면 고지엔 7판에 ‘손타쿠’(忖度·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다)나 ‘국난’(國難·나라가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에 새로운 뜻이 더해지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손타쿠’는 “(아베 총리 등) 윗사람의 뜻을 알아서 기다”라는 뜻이, ‘국난’에는 “꼼수 해산 비판을 막기 위해 갖다붙인 명분으로, 북한 위협과 저출산·고령화를 가리킴”이라는 뜻이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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