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 | 작가·파리거주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보다는 동네 갱단의 똘마니 노릇을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술과 담배를 밀매하고 창녀촌에서 보디가드로 일하기도 하면서 보내던 청소년기는 파리 상경, 연극배우 입문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22세에 영화에 데뷔한 후 40년간 프랑스 국민배우의 자리를 지켜왔다. 제라르 드 파르디유. 75% 부유세를 피해 벨기에 귀화를 결정한 그를 둘러싼 논쟁은 총리, 문화부 장관,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 등의 가세로 들불처럼 거세게 번져만 간다.


군대를 피하려고 미국인이 되는 것을 선택한 가수 유승준이 한국에서 받은 비난에 비견할 수 있을까. 온 국민의 비난을 한몸에 받은 국민배우는 총리가 그의 결정에 던진 비난의 말 “한심한(minable)”에 폭발해 총리를 향해 공개서한을 날린다. 


 그는 묻는다. “프랑스 국적을 버린 사람 중 유독 나에게만 왜 이토록 가혹한 비난이 가해지는가?” (진짜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성공과 창작, 재능을 가진 사람, 즉 남다른 사람에 대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신들 때문에 나는 이제 떠난다”고 프랑스 국적 포기의 이유를 밝힌다.


제라드 드 빠르디유 주연의 영화 '콜럼버스 1492' (경향신문DB)


그의 글 속엔 사르코지의 우파정당 대중민주연합이 사회당의 75% 부유세를 공격할 때 사용하던 논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1980년대에는 미테랑의 강력한 원군이었고, 1990년대에는 프랑스 공산당의 막강한 후원자이기도 했던 그는, 2005년부터 돌연 사르코지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한다. 


그의 이러한 발언이 전해지자 대중민주연합의 대표 코페는 기다렸다는 듯 올랑드의 부유세가 부자들을 혐오하며 이들을 내쫓는 세금 폭탄이라고 사회당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러나 드 파르디유를 향한 여론이 악화되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드 파르디유가 한 행동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발빠르게 발언의 수위를 조절한다. 


드 파르디유는 이미 자신이 살던 파리6구의 750억원(5000만유로)짜리 저택을 팔려고 내놓고 프랑스와 국경을 접한 벨기에의 작은 마을로 거주지를 이전한 상태다. 


문화부 장관 필리페티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드 파르디유가 거둔 성공의 절반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독보적인 프랑스의 영화제작 지원 시스템에 의지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프랑스의 거의 모든 영화에는 정부와 공공방송기관이 공동제작으로 참여한다. 드 파르디유가 찬란한 배우 인생을 구가했던 그 발판은 프랑스 정부가 제공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작가 브뤼노 타켈은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은 그가 말한 것처럼 부자들을 제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라는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해내기 위해 가진 자들에게 사회적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라며 그를 설득한다. 상위 0.01%의 사람들에게 75%의 부유세를 내게 하는 오늘의 프랑스 정부가 과하게 보인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90%의 세금을 최상위계층에게 거둬들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시라노였고 달타냥이었으며 로댕이었다. 그리고 최근엔 로마군에 대항해 싸우는 프랑스의 작은 영웅 오벨릭스이기도 했다. 용감하고 멋지고 대범한 프랑스의 모든 얼굴이었던 이 명배우. 대대적인 비난과 약간의 동조 속에 몇몇 지식인들은 소리치며 그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제 돌아와. 너무 늦기 전에.” 


국민의 절반이 가난하다고 느끼고, 전체의 92%가 자국에 사는 걸 만족한다는 프랑스. 연대의 미덕이 가장 절실한 이때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한 배우가 세금을 덜 내려고 그 모든 사랑을 분노로 뒤바꾸며 떠나간다는 것, 그가 받아든 최악의 시나리오임에 틀림없으리라.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