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지난 10월, 세계 1위의 철강회사 아르셀로 미탈은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플로랑스의 제철소 폐쇄와 노동자 630명에 대한 해고 결정을 알렸다. 출범한 지 몇 달 만에 올랑드 사회당 정부가 맞은 노동문제에서의 첫 번째 도전이었다. 플로랑스로 한달음에 달려가 노조와 사측을 만난 사람은 생산성재건부 장관 몽트부르였다. 대선 당내 경선에서 3위를 하며, 사회당의 급부상하는 왼쪽 날개로 불리던, 훤칠한 외모의 젊은 장관 몽트부르가 플로랑스에 도착하자 모든 카메라와 기자들이 그를 뒤쫓았다. 


그렇게 아르셀로 미탈의 공장 폐쇄 시도는 어느 날, 여론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날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프랑스의 주요 언론은 주요 기사로 이 사태를 다루며 사건의 추이를 밀착 취재했다. 사측과 협상을 벌이던 몽트부르 장관은 “파렴치한 미탈, 이 나라를 떠나라. 정부가 직접 나서 제철소를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급기야 아르셀로 미탈의 회장 락시미 미탈이 프랑스에 도착, 올랑드 대통령과 에로 총리를 만나 협상을 벌였다. 에로 총리는 결국 아르셀로 미탈로부터 제철소 노동자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고, 향후 5년간 1억8000만유로(약 25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대신 정부는 국유화 카드를 접었다. 아르셀로 미탈의 공장 폐쇄 결정에서 에로 총리와의 협상 타결까지는 단 두 달만 소요되었다. 이번 사태가 프랑스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기업의 대규모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수 있었기에 장관, 총리, 대통령까지 팔을 걷고 나서 강력히 외국자본을 압박했던 것이다.


노조 측에서는 협상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5년 이내의 투자라는 말은 4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고, 해고는 하지 않지만 은퇴로 떠나는 사람의 자리를 채우지 않으면서, 결국 공장을 서서히 폐쇄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격적인 철강산업을 유럽에서 가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ULCOS 프로젝트(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온실가스 저감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기술적인 이유로 연기시키면서 의혹은 더욱 커갔다. 올랑드 정부 안에서도 내홍이 있었다. 몽트부르 장관은 자신의 국영화 의도를 묵살해 버린 총리의 태도에 사임의사를 밝혔고, 막 떠나려던 몽트부르를 간신히 대통령 올랑드가 붙잡았다.


 

프랑스 아르셀로르 미탈 철강회사의 근로자들이 보호복을 입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협상에 서명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싸움은 없다.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자리를 일어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행 약속은 변색하기 시작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정론이다. 노조가 이 장밋빛 합의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또다시 파업을 강행할 정도로 불만족스러운 타결을 거머쥔 프랑스의 노동자들을, 리베라시옹·르몽드·르피가로의 1면과 2면에 앞다투어 실리는 이들의 투쟁일지를 난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적어도 홀로 외롭게 죽어가며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이 싸움에서 이미 매우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미탈과 조인한 협정서의 원문 전체가 인터넷에 공개돼, 그 약속이 이행되는지 아닌지를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차가 2005년 쌍용차를 사들인 후 투자는 하지 않고 기술만 유출해가고, 수천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급기야는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먹튀 외국자본의 적나라한 수순을 밟아가는 동안, 우리 정부가 한 일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짐승처럼 다룬 경찰의 진압뿐이었다. 23명이 자살하는 동안, 정혜신이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지영이 책을 써서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동안 정부는 여전히 해가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고아 같은 우리 국민들의 잔혹한 운명, 이제 곧 바뀔 수 있는 걸까.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