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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상상력을 시작하며
 
'혼혈'에 대해


나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가르친다.

학과의 거의 모든 과목명에는 '문화'라는 말이 들어가고, 보통 첫 시간은 '문화'에 대한 수강생들의 정의(定義)를 나누고 시대적 상황적 용례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매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수십 명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이미지와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기본적으로 '문화'라는 말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시대용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년을 맞아 하와이의 호놀루루에 나와있는 지금, 이런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품은 작은 소망은 '문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문화'를 설명하는 내공과 필력을 연마하는 것이다.


담당자분이 코너의 이름을 "삶과 상상력"이라고 지어주셨다. 좀 거창하지만 멋있게 들린다.

개인이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때 그는 예술가이거나 발명가, 잘못되면 사기꾼이나 사이코패스가 될지 모른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속한 '집단적 상상력'에, 그러니까 내부용어로는 사회의 관습과 법, 규범과 질서, 윤리와 가치에 충실하게 사는 편이다. 집단 밖으로 걸어 나와 거리를 두고 보면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이 보이고, 그제야 내게 익숙한 삶의 방식에도 집단적 상상력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시대는 내가 속한 집단 밖으로 걸어 나오거나 집단 속으로 다양한 구성원이 들어오는 경험이 더욱 느는 때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상상력은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 낭만적 꿈 같은 것은 아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발휘되는 팀 버튼 감독의 상상력과 더 유사하다고 할까.

사회적 필요와 거기에 부응하는 예기 가능한 또는 예기치 못한 방식의 대응과 임기응변적 변형,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와 그로 인해 애매해지는 현실 감각 등을 요소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의, 집단의 상상력은 정치경제적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왜 하와이야?"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특히 상대가 '놀러가는 거 맞지?' 같은 속내로 웃음을 흘리며 들어올 때 정색을 하고, "사실 하와이 아시아 이주가 말이야..."라는 식으로 응하면 딱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대강 이승만 전대통령이 영부인 프란체스카와 지내던 곳이라거나, 오바마 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거나 하는 정황증거를 흘리면서 너와 나의 사회적 관심과 엮일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켜본다. 사실 세계화의 시대에 나의 삶과 엮이지 않는 지구상의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놀기에도 좋지만, 아시아의 이주와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많으리라는 통밥으로 나의 첫 연구년 장소로 하와이가 선정되었다.
 
 

 



하와이는 말 그대로 태평양 한 가운데에,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사이에 있는 8개의 섬이다.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방문이후 서구와의 접촉으로 섬의 운명은 크게 바뀌기 시작한다. 1959년에 50번째 주(州)로 미연방에 소속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 이미지, 남태평양의 낙원 하와이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한편 19세기말부터 아시아인들이 농장노동자로 이주해오면서 2008년 129만 명의 하와이 인구 중 아시아인은 38.7%이며, 호놀루루는 55%나 된다. 미국 전체의 아시아인 비율인 4.4%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한편 지역사회조사 질문지에서 '인종'(race란 표현을 쓴다) 항목에는 모두 18가지의 선택지가 있고 복수 응답을 할 수 있는데, 2개 이상을 선택한 '혼혈'인의 미국 전체 비율은 2.2%인데 비해 하와이는 21.7%로 10배나 더 많다.

 (미국 지역사회조사 American Community Survey 수치. www.census.gov/acs/www 사이트 참조)



지리상의 위치 그대로 하와이에서 동.서.원주민간 혼혈은 많이 발생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곳에서는 '그냥 한국인'이란 없다. 성인이 되어 이주한 한국인이거나, 부모가 한국인이지만 어려서부터 하와이에서 성장한 한국인이거나,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중 한쪽만 한국인인 '여러 종류의 한국인들'이 있다.

그런데, 생김새와 언어, 윤리와 가치가 일치하는 경험이 뿌리 깊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 본토에서도 '혼혈'은 '물리적 외관'의 문제로 인식된다. 피부와 털의 색깔, 머리카락의 웨이브 형태, 쌍커풀 여부, 이마와 광대뼈, 콧날의 돌출형태, 그런 것에 우리는 의미를 부여한다.  

왜 혼혈을 생김새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일까?


아마도 나와 남의 물리적 구분과 신체적 차이는 인간이 다른 생물유기체와 관계를 맺으면서 고려하는 가장 1차적인 정보일 것이다.
우리는 특히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나나 내가 아는 사람들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부지불식간에 신경쓴다. 1단계로 성별, 인종, 몸집에 대한 호불호에 대해 반사적으로 판정을 내리고, 이어 언어와 말투, 지식과 정보에 대한 공유 여부를 확인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윤리와 가치를 나눌만 한 지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려면 관계에 많은 투자를 해야하지만 여전히 판단은 어렵다.


1단계에서 가능한 효과적인 선택을 해야한다. 그래서 혼혈에 대한 인식과 판정 내용은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 크게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는 혼혈이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한 실체적 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아래는 킵 풀벡(Kip Fulbeck)이란 예술작가이자 남가주대학 교수가 미국내 남녀노소 혼혈인들의 인물사진을 찍고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함께 실은 사진집의 표지이다. 






여러분은 표지 인물의 인종/종족/민족적 배경을 알아 맞출 수 있겠는가? 

답은 일본인+프랑스인+중국인+아일랜드인+스웨덴인+북미인디안 수(Sioux)인이다. 아마 생물인류학 전공자도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사진을 보고 그 인종/종족/민족 구성을 알아맞히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혼혈인을 대할 때의,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우리의 반응, 무엇과 무엇의 혼합인가라는 호기심이 의미없는 정치적 습관이라는 점을 슬며시 깨단게 한다.

사진집 속의 다양한 얼굴을 보고 자기 소개를 읽노라면, 인종과 민족은 물론 남녀노소의 구분도 넘어 인간의 표정과 자기애에 대한 감동과 함께 동조의식이 생겨난다. 결국 레이시스트의 반대는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사진집 상단의 '하파 hapa'란 원래 하와이에서 혼혈인을 뜻하는 말인데 미국 본토의 혼혈인들이 자신들의 혼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mixed'의 대체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인 "100% hapa"는 일종의 반어적 표현이다.

**킵 풀벡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http://www.seaweedproductions.com/hapa/




**필자 김민정은 강원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는 호놀루루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twitter: @minkimee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