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제국이라고도 칭하는 미국이 파열되는 날은 과연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가? 아마도 공상과학 소설의 먼 미래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가 순식간에 일어났듯이, 중동의 혼란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듯이 미국의 혼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지도 모른다. 쌓이고 있는 징후가 언제 변곡점을 넘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지금의 중국이 파열한다면 우리에게 엄청난 안보적, 경제적 위협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제국 미국이 파열한다면 전 세계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인지,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대북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와 같은 좁은 시각에서만 미국을 보지만 정작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더 중요한 미국은 큰 구조적인 흐름 속에 있다.

3월5일 영국의 ‘가디언’지에 미국 정치의 흐름과 관련한 매우 통찰력 있는 분석기사가 하나 실렸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중 하나인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선거전략으로 지금 미국 남부 백인들의 지지를 얻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 분석기사다.

기사의 내용은 1964년 대선 이후 미국 공화당이 남부 백인들을 어떻게 선거에 정교하게 끌어들여 남부 백인의 정당이 되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흑인 노예 해방을 주도한 링컨의 공화당이 오히려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대단히 인종주의적인 색깔로 변모해 온 역사를 추적한 것인데, 그 역사의 뒤에는 옛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남부 백인들을 공화당으로 끌어오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획득해 온 닉슨과 레이건의 선거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_AP연합뉴스

여기까지는 꽤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인데 이 기사가 통찰력이 있는 이유는 남부 및 중하층 백인들이 기존의 주류 공화당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배경과 그들을 트럼프가 낚시질하는 전략에 착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부 및 중하층 백인들이 그동안 공화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공화당 주류 1%만 배부르고 오히려 자기들은 점점 궁핍해지는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깨닫기 시작했는데, 이 지점을 트럼프가 파고들고 있다.

공화당 주류를 비난하면서 지금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문제의 원인을 비백인 이민자와 중국, 일본 등에 돌리고 중하층 백인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시원시원한 말을 리얼리티 쇼에서 말하듯 막 내뱉는다. 동시에 중하층 백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료 및 사회보장 정책을 약속하면서 기존의 공화당 정책과도 차별을 시도한다. 대단히 위험하고 배타적인 포퓰리즘이다. 인종적인 얼굴과 반기독교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남부와 중하층 백인들이 열광한다.

이제 여기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될 문제는 이 이후의 미국이다. 혹자는 트럼프가 비즈니스맨이니까 대통령이 되면 계산이 바뀔 거라고 하고,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피부색의 차별은 기본적으로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우 폭력적이다. 벌써 미국의 초·중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인종주의적인 공격을 공공연히 한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트럼프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남부와 중하층 백인들이 공공연하게 유색인종에게, 그리고 반기독교 문명에 문화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름이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안된다 하더라도 유색인종의 숫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미국은 이제 빤히 서로 알면서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될 것이고, 불신과 반목으로 국가가 파열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잠겨 있었던 판도라 상자를 트럼프가 열어버린 것이다.

1%가 경제와 교육을 독점한 미국에서 다시 이 상자를 봉합할 수 있는 미국의 시스템이 존재하는지 대단히 의문스럽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쩌면 미국은 공존을 거부하는 내부적 싸움이 시작될 것이고, 나라는 삐걱거리게 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예측 불허의 정책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국제정치에서 패권국의 위기는 전 세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엄중한 문제이다. 아직까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머물고 있는 문제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미국 급변사태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이 미국 대통령 후보의 대북정책이나 아시아 정책만 분석하지 말고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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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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