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동칼럼에서 조대엽 교수는 대학에서 “철학이 죽고, 문학이 죽고, 역사가 죽고 있다”며 세상을 거침없이 꾸짖던 대학의 옛 모습을 그리워했다. 대학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물론 무자비한 시장논리를 필두로 하는 배금주의의 유령이 한국 대학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특히 미국 대학은 이미 100여년 전부터 진행되어온 일로 단순히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서 일찍이 이를 두고 많은 지성인들이 우려를 표명했었다. 예를 들면, 실용주의 교육철학가인 듀이가 대학에 “돈만 추구하는 세태가 숨겨져 있다”고 질타한 것이 1902년의 일이다. 탁상공론의 철학을 비판하며 학문이 세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실용주의의 태두조차 대학을 저렇게 힐난할 정도였으니 대학이 얼마나 돈의 힘에 의해 휘둘렸는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 다른 교육개혁가인 채프먼은 1909년 우리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꼽는 하버드대학을 가리켜 “그것을 움직이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업인이며, 이들은 대중을 대상으로 교육이란 상품을 판매하는 거대한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예를 보면 미국 대학에 뻗친 친기업적 시장주의의 마수는 미국에선 그 역사가 1세기를 훌쩍 넘겼다고 봐야 한다. 이런 세태는 여태껏 격렬하게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데 그 결과는 바로 이른바 돈 되는 학문의 번창과 돈 안되는 학문의 왜소화다.

이는 2000년 독일의 한 대학 강연에서 버클리대 총장 버달이 정확히 확인해주었다. 그는 미국 대학에서 일부 학과(생물학, 공학, 컴퓨터공학, 경영대학원)는 친기업적 행보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며 세를 불리고 있는 반면 인문사회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진단했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이 기업의 시장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이와 관련된 흥미 있는 기사가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떴다. 미국의 한 비영리교육단체(ACTA)가 조사해 보니 미국의 상위권 52개 명문 대학의 영문학과 중에서 셰익스피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대학은 7.7%인 4개 대학(하버드, 캘리포니아 버클리, 웨슬리, 해군사관학교)뿐이라는 것이다. 프린스턴과 예일대도 여기에 없었다. 보고서는 영문학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셰익스피어를 빼고 공부하는 것은 “고전(그리스 문학)에서 호머를 빼버린 것과 마찬가지”인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문교양교육(liberal arts)을 전담하고 있다고 떠벌이고 있지만 실상은 “소리만 요란한 속 빈 강정”이라고 비난했다. 이 대목에서 철강왕 카네기의 1891년 어느 대학 졸업식 축사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무슨 밥이라도 먹여주느냐며 이런 게 중시되는 대학교육은 “죽은 언어를 배우는 헛수고이자 실패”라고 전통적인 대학교육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했다. 물론 그의 요청은 철저하게 돈(시장)의 논리와 기업의 논리에 바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대학은 카네기와 록펠러 같은 전설적 갑부들의 희망대로 잔혹하게 재편되어왔음을 텔레그래프의 보도가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의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정문 앞에서 박용성 전 이사장의 여성 비하 발언 의혹에 대한 항의로 얼굴에 분칠을 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미국은 적어도 영문학과에서 셰익스피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 안 할지언정 우리네 대학처럼 돈 안된다고 인문사회계열의 학과를 없애려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나가도 너무 나가고 있다. 심지어 국문학 수업을 영어로 가르치는 희대의 코미디도 국문학과를 없애는 것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여겨야 하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대한민국 대학의 이 ‘웃픈(웃기는데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 코미디는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나 진행될 것인가? 돈의 논리가 그 심장부까지 침투해 들어온 미국 대학의 모습, 그것은 순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Posted by KHross